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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도 모르고, 호기심 가는 제목으로 읽게 된 <잠긴 방>. 너무 재미나서, 이 시리즈를 역주행 했던 기억이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순간(2022년 구월) 스웨덴영화제에서 '어느 끔찍한 남자'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가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제목을 다르게 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원작을 다시 찾아 읽었다.
형사가 살해당했다.요즘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뭔가 원한이 있을 거란 생각을 짐작할..수 있다. 제목 처럼 살해당한 형사는, 동료들에게, 시민들에게 '끔찍한' 형사였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한없이 따스한 아빠였다.(물론 이 부분은 소설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 제목은,'지붕 위의 사나이'다 영화는 아직 보기 전이지만, 덕분에 완전 다른 느낌으로 읽은 기분이다.'어느 끔찍한 남자' 의 시선으로 볼때는, 살해당한 형사가 저지른 행동이 끔찍하고, 그가 살해당한 모습이 끔찍하고,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기분이들었다. 그런데 '지붕 위의 사나이', 제목은, 뉘른 형사를 죽일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만 보인 것이 아니라. 경찰이란 조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했다.끔찍한 가해자를 처단하기 위해 또 다른 괴물이 만들어지는 구조는 부조리하다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경찰조직이정의로웠다면, 에릭손은 괴물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사법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불안과 불신이 커지게 된다면 에릭손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스스로를 정의라 믿으며 총을 드는 비극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아직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소설 '어느 끔찍한 남자'로 읽었을 때는, 괴물이 되어버린 에릭손에게 죄를 물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 정도 밖에 하지 않았더랬다. '지붕 위의 사나이' 시선으로 읽으면서는, 남자가 하려 했던 '복수'보다 더 무서운 걸 들려주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에릭손의 복수는, 사법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상황을 경고해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