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이 연극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매를 한 후,다시 책을 꺼내 들었다.
책장을 펼치는 순간 영수증이 책갈피처럼 꽂혀 있었다. 덕분에 내가 이 책을 읽은 지 십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았다. 그때 독후기를 찾아보고,지금과 다른 느낌으로 읽었지만, 내가 강렬하게 기억한 문장은 그때와 지금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나 자신의 밖과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 역시 마찬가지다(...)"/68쪽
삽십오 년 동안 폐지를 압축하며 살아온 노인 '한탸'의 이야기다. 이제 곧 있으면 일을 그만두어야 하지만, 한탸에게 닥친 슬픔은, 자신이 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엄청난 압축기 한 대가 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이다.괴물 같은 기계에 놀란 노인의 고백에서,그가 자신의 일을 얼마나 즐겁고 소중하게 즐겼는지를 느낄수 있었으니까..
"(...)종이의 감촉을 더 잘 느끼고 두 손 가득 음미하기 위해 나는 절대로 장갑을 끼지 않았으니까.그러나 이곳에서는 그런 기쁨에 폐지가 지닌 비길 데 없이 감각적인 매력에 아무도 마음을 두는 것 같지 않았다(...)저 끔찍한 용기가 가득차면 벨트가 멈추었고 거대한 수직 나사가 천장에서 내려와서는(..)종이를 짓누른 뒤(...) 책더미들이 여기서 몽땅 파괴되었다"/90쪽
십년 전 읽을 때는 휴머노이드를 상상하지 못했다. 휴머노이드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마냥 부정적으로만 보고 싶지는 않지만, 한탸노인이 할 수 있는 몇 배의 거대 압축기가 들어오게 된 이상, 노인은 더이상 일을 할 수 없지 않은가.. 평생의 자부심이었던 세계가 무너졌을 때 그가 느꼈을 쓸쓸함도, 기계의 거대한 소음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의 선택에 대해서도 감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