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의 단편(500여편이라고 알고 있다)을 다 읽는 날이 오긴 할까? 그러나 한 편씩 읽다보면,언젠가는 다 읽게 될지도 모른다는 행복한 상상을 해본다. 민음사에서는 이미 체홉의 단편집이 한 번 출간될 걸로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후에도 또 나올지 모르겠다. '상자 속 인간' 을 읽었다. "벨리코프는 자신의 생각까지도 상자 속에 감추려고 애썼습니다.그에게 분명한 것이란,뭔가를 금지하는 지시문과 신문기사뿐이었죠"/188쪽 리뷰로 남겨 놓은 줄 알았으나..아니었다. 분명 읽은 기억은 있는데..아니면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런데 ~자신의 생각까지도 상자 속에 감추려고.. 문장을 읽는 순간, 분명(?) 읽었다는 기억이 났다. 그러나 결말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제목에서 이미 무얼 이야기하고 싶은지 사실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러나 상자 속 인간..의 주인공은 어쩌면 벨리코프 가 아닐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자신 만의 세계 속에 숨어 사는 남자를 향한 다른 이들의 시선을 듣다 보면,그들 역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 속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나는 <체호프에 관하여>에서 비슷한 생각도 만났고,우리가 상자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알았다.
"독자는 이 인물의 비상식적인 행동보다는 이 이야기의 냉혹한 교훈에 주목해야 한다.이제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상자(관)속에 갇힌 교사의 죽음 이후,그의 동료들은 잠시나마 자유로운 아이처럼 느낀다.그러나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일상은 본래의 흐름을 되찾는다.(...)벨리코프를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가 단지 그들 자신의 삶을 축약한 상징일 뿐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그들 역시 다른 현실의 가능성을 탐색할 권리는 없다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21쪽
'상자 속의 사나이' 를 통해 체홉이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였을지 짐작이 간다.그런데 '사랑에 대하여' 제목으로 '상자 속의 사나이'가 실린 이유가 또 궁금했었는데,<체호프에 관하여> 덕분에 그 비밀도 풀렸다. 물론 단편 제목이기도 해서,타이틀로 정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상자 속의 사나이>가 남자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인생을 주제로 한 3부작 중 하나에 포함되었다는 점이다.벨리코프가 그녀를 사랑했고, 결혼했다면,조금 다른 인생을 살았을지도..그러나 운명에 갇혀 사는 삶을 살아가는 이에게,결혼은 또 다른 운명의 굴레가 되지 않았을까. 소설과,체홉에 관한 책을 함께 읽어가는 것도 즐거움이란 사실을 알았다. 비교하는 재미와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뭔가 체홉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기분이다. (접속사가 갖는 상징성도 알게 되었으니,좀더 '접속사'에 집중해봐야 겠다. 물론 함몰되는 건 위험하겠지만^^)
"그의 작품에서 접속사는 대개 대립을 나타내기보다는 사건을 연장하고 서로 연결하는 역활을 한다. 희망과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이유는 바로 시간이 먼 곳의 자유를 향해 열려 있기 때문이다."/7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