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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각의 번역
- 도리스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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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 - 2021-08-31
: 408
◇ 원본
◇ 시작하는 문장
일본에 도착해 구겨진 옷차림으로 잠이 덜 깬 채 비틀거리며 공항을 나설 때면, 몇 시간이나 비행한 뒤에도 막 다림질한 것 같은 반듯한 차림의 여자들을 보며 경탄하곤 한다.
◇ 밑줄
이 빵들은 전부 타박타박하다. 뮌헨에선 바삭바삭하다는 말을 ‘타박타박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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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내 기분을 곧장 ‘업’시켜준 기사 한 편을 읽었다. 파스타는 살을 찌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년간의 편견을 단숨에 폐기시키는 한 방이었다. 하! 이거 정말 기가 막히지 않은가? 나는 당장 부엌으로 달려가 물을 얹고, 파스타 한 봉지를 뜯어 고스란히 물속에 털어 넣었다. 드디어 스파게티를 두고 먹을지 말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얼마나 넣는담? 100그램은, 솔직히 1인분으로는 너무 박하다. 125그램 정도만 돼도 괜찮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자면, 200그램이면 좋겠다. 200그램까지는 엄두도 내지 못한 지 한 100년은 된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기사를 읽은 뒤라면? 말해 뭣하랴! 파스타를 먹은 뒤 세로토닌 레벨이 상승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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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이었는데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오렌지가 크리스마스트리의 공 장식처럼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마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모습 같았다. 아이들의 그림처럼. 독일 북부 출신이라면 누구에게든 이런 오렌지나무는 영원한 기적으로 남으리라.
이른 봄이면 오렌지 열매의 곁에 오렌지 꽃 아자한Azahan이 눈처럼 하얗게 피어난다. 오렌지 꽃은 아침저녁으로, 무릎에서 힘이 빠질 정도로 매혹적인 향기를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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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 예식은 존재의 덧없음과 허무함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리의 시간은 흘러간다. 탈주는 없다. 주의를 기울일 때 경험하는 찰나의 순간에만 깨달음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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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는 이 중에서도 지능이 가장 뛰어나다. 문어는 다리가 여덟 개인데, 그중 한 개는 생식 기관이 끝에 달려 있어 다른 것에 비해 길이가 길다. 문어는 심리적 상태에 따라 몸 색깔을 바꾼다. 기분이 안 좋을 때, 그리고 죽기 직전 매우 창백한 빛깔을 띤다. 반대로 기분이 좋거나 신이 날 땐 주위 배경과 똑같이 몸의 색깔과 문양을 바꾼다. 문어는 지루한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지루하게 있느니 어렵사리 돌려 닫은 병뚜껑을 능숙한 솜씨로 열며 노는 걸 더 좋아한다. 그 솜씨가 얼마나 능숙한지 주방 보조원으로 두고 싶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수족관 벽에 빨판을 붙여 좁디좁은 수족관 뚜껑 틈새로 몸을 비집고 빠져나가기도 한다. 사람을 알아보기도 하고, 호불호도 아주 분명하다. 신이 나면 친구의 얼굴에 물을 분사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었을 때, 나는 문어에게 반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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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는 뚜렷한 이유 없이 마치 무엇에 홀린 것처럼 지느러미로 이리저리 모래를 파헤친다. 일주일 내내, 온종일 쉬지 않고 모래를 파헤치는데 만다라 같은 아름답고 복잡다단한 문양을 만든다고 한다. 그러고는 조개로 마지막 장식을 한다. 나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이런 물고기를 먹을 순 없는 거다. 미켈란젤로를 기름에 튀겨서 저녁식사로 먹어치우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거다. 그럴 순 없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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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는 제빵사 에스포지토Esposito가 1889년 6월11일 움베르토 왕과 그의 부인을 위해 처음 구워냈다고 한다. 에스포지토는 이탈리아의 상징색을 지닌 붉은 토마토, 녹색 바질 그리고 하얀 모차렐라를 토핑 재료로 피자에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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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주문한 마로니에 군밤이 다 구워질 때까지 거리에서 기다리는 동안 느껴지는 약간 쌀쌀한 추위도 한겨울 정취에 한몫한다. 새까만 겨울 하늘에서 싸락눈이 소록소록 내리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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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수박은 아프리카에서 온 과일로 건조한 모래땅을 좋아한다. 89퍼센트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지만, 막상 수박 자체가 성장하는 데는 약간의 물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놀라울 뿐이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수박은 나에게 한결같이 재미있는 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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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깨달았으면 철저하게 바꿔야 하는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 감상
독일 영화계의 거장 도리스 되리
그녀가 들려주는 맛있는 이야기
가볍게 넘긴 책장 사이에는
동화 속 낱말들이 올망졸망
🎄 밑 선물처럼 가득 쌓여 있다
베트남 쌀국수와 꽃다발을 넣은 기차역
겨울에 가까운 단어, 오렌지
다크초콜릿 처방전
온 우주를 담은 차 한 잔
층층이 쌓은 행복처럼, 바움쿠헨
그녀가 정성껏 차린 음식들은
고소한 내음을 풍기며
우리를 어린 날 추억으로 이끌고
때론 달콤한 설렘을 듬뿍 뿌려
지금의 행복을 흔들어보이다
짭쪼름한 풍미를 더해
삶의 감각을 생생하게 만든다
게다가 우유, 커피, 아보카도···
이런 불편한 진실도 잊지 않았는데
날카로움이 없는 사유의 덧칠
덕분에 책임감을 다시 깨달았다
*
이제 우리는 식탁에 함께 앉는다
맛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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