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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마지막까지, 눈이 부시게
- 리디아 더그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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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0) - 2021-06-02
: 132
◇ 원본
https://m.blog.naver.com/03x24/222420225287
◇ 시작하는 문장
나는 후회한다. 그때 왜 터너 씨를 살렸을까.
◇ 밑줄
우리의 생이 시작되는
바로 그 순간,
우리가 죽어가고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매일 매순간의 한계를 알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하십시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지금 하십시오.
미루어 놓은 내일이라는 날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 요한 바오로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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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이자 작가인 빅토리아 스위트는 얼마 전부터 ‘슬로우 의학’을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패스트푸드보다 슬로우푸드가 건강하듯, 패스트 의학보다 슬로우 의학이 건강하다는 논리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있다면 이 의견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는 실용적 지혜, 즉 인간이 궁극적인 선을 추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고를 미덕으로 여겼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환자의 내면까지 더 깊이 보살피는 의학적 접근은 궁극적으로 환자에게 환자에게 유익하다. 치료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부담을 최소화하고, 의사가 지쳐 치료를 포기하는 불상사를 예방한다. 그렇기에 슬로우 의학은 실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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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다면 현명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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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전 중세 유럽인들도 병원에서 맞는 죽음의 문제를 고민해왔는데, 그에 대한 답으로 ‘죽음의 기술’을 의미하는 라틴어 소책자『아르스 모리엔디Ars Moriendi』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 책은 좋은 죽음과 좋은 삶에 대한 중세 유럽인들의 실용적 지혜를 담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탄생과 삶, 죽음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죽음 자체에 대한 사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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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대부터 죽음을 상기하던 습관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각적인 요소로 이어졌다. 이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고 한다. 이 표현은 ‘기억하다’ 또는 ‘명심하다’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메미니memini’와 ‘죽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모리오르morior’가 결합해서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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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의 대표적인 형태로 바니타스 회화를 꼽을 수 있다. ‘바니타스’라는 명칭은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라는 코헬레트의 유명한 설교 구절에서 비롯됐다. 무한한 것에 비해 모든 유한한 것은 사소하고, 하찮고, 헛되다. 코헬레트는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라.”
바니타스 회화는 인간의 유한성을 나타내기 위해 그린 정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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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화 치료 전문의 아이라 바이오크Ira Byock는 죽음을 앞두고 재정적, 법적 이슈를 처리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관계를 제대로 정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바이오크가 근무하는 호스피스 병동에서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용서할게”, “용서해줘”, “고마워”, “사랑해”, “안녕” 다섯 문장을 활용해 관계 바로잡기를 실천하라고 권한다.
이 짧은 문장들은 관계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다. 살아있을 때는 물론 죽음 앞에서 특히 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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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hospital은 여행자와 가난한 사람을 환대hospitality하는 장소라는 의미에서 파생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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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명윤리학자 하워드 브로디는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의사가 어떻게든 환자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는 환상은 권력 과시나 다름없다. 이는 의사가 죽음의 문턱에 선 환자를 구해낼 힘이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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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음의 의미를 찾는 질문을 피하는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질문을 피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생명의 유한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생의 무한함을 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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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비스 공급자’가 되는 것을 그만뒀다. 죽어가는 그들에게 내가 무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무엇보다 환자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라는 의사이자 치료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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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무너지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세상이 무너진다. 내 친구는 이를 ‘훼손된 샬롬 정신’이라고 불렀다. 히브리어로 ‘평화’라는 뜻을 지닌 샬롬shalom은 가장 온전하고, 조화롭고, 풍요로운 상태의 평화를 의미한다. 훼손된 샬롬은 단순히 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온 사방에 구멍이 나 물이 새는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갖은 애를 쓰는 행위와 같다. 복잡한 수술을 받고, 화학 요법의 부작용을 겪고, 길어지는 입원으로 좌절감이 커지는 가운데 어떻게든 생존하려는 노력이 모두 훼손된 샬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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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은 자신의 유한함을 ‘보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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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책을 들고 있는 모든 독자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여러분에게는 죽음을 준비할 시간이 있다. 그리고 무엇이든 준비는 이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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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죽음의 공포를 정복하려고 노력해서는 좋은 죽음을 맞이할 수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두려움과 슬픔을 향해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괴롭지만 고귀한 임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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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인내, 희망, 겸손, 믿음, 초월의 덕목은 풍성한 삶과 죽음을 가져올 것이다. (···) 이런 성품들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매일 삶에서 연습하며 함양해나가야 한다. 잘 살아낸 오늘이 모여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만든다.
◇ 감상
언제나 죽음이 두려웠다
내가 남긴 흔적들이
오답이 될까
계속 고치거나 지웠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종종 그런 생각을 했고
순간보다는 전체를 두루 살피며
물 흐르듯 살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겁이 난다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짓눌린다
*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걸어간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우리는 그를 피할 수 없다
찬란하게 빛났던 내가
마지막까지 눈부시도록
불안으로 뒷걸음질치지 말고
준비된 상태로 앞에서 맞이하라
끔찍한 면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형태를 바꿀 수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 주위를 가꾸며
매일을 온전하게 보낼 때
마침내 삶은 죽음으로 튼튼해진다
*
당신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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