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25>
오늘의 첫 코스는 동방문화원이다. 동방문화원은 유,불,도교를 망라하여 그와 관련된 여러 건축물들과 볼거리가 조성되어 있는 곳으로, 그 전체 스케일이 제법 장대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둘러본다면 나름대로 괜찮을 듯싶지만, 시간이 없는 우리로서는 대충 흘려보는 식이라 큰 감흥을 느낄 겨를이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도 역시 동방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이고 보니, 많이 익숙한 것도 사실이다(물론, 그 규모면에서는 확실히 놀랄 만하지만).
동방문화원을 끝으로 항주에서의 일정은 모두 끝이 났다. 기대했던 항주의 참모습을 보지 못해서 많이 아쉽지만, 일단은 인사나 한 셈치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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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시간쯤 걸린다는 주장으로 이동이다. 어제 상해에 도착하자마자 중국의 고속도로를 달렸을 때는, 그래도 이국에 막 도착한 설렘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또 다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은 따분하기만 하다. 차라리 잠을 청해도 보지만, 우리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중국인)는 자동차 경적소리를 유달리 좋아하셔서 걸핏하면 '빵빵'이고, 버스는 지나치게 낡아서 의자는 연신 '삐거덕' 거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기도.
이러저러해서 주장에는 오후 2시쯤 도착했는데, 최소한 내게는 바로 이곳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은 어차피 베니스를 가본 적이 없으니 내 알 바 아니나, '물의 도시' 주장은 확실히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점심 먹을 곳으로 가기 위해 물길을 따라 안으로 계속 걸어 들어갔는데, 그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취해서 밥 따위야 먹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역시,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분' 일뿐, 실제로 이 아름다운 경치도 지친 몸, 특히 주린 배를 달래주지는 못한다. 하여 점심을 먹고 나서 본격적으로 이 곳, '물의 도시'를 둘러보았다. 우선 나룻배(?)를 타고 물길을 따라 이 도시(사실 이게 도시인지 동네인지 잘 모르겠다)를 돌아보았는데, 마치 시대를 거슬러 온 듯한 느낌이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갑자기 허공을 격하고 날아와 뱃전에 착지한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 만큼, 이곳은 무협영화의 세트장으로도 그다지 손색이 없을 정도다. 더욱이, 오늘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는 관광객이 그리 눈에 띄지 않아서 이곳의 정취를 좀 더 그럴듯하게 만든다. 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뒤쪽 배에서는 중년의 여자 뱃사공(?)이 노래를 한 곡조 뽑는다. 쓸쓸이 내리는 빗소리의 적막함 속에서 그녀의 노랫소리가 멀리 퍼져나간다. 특별히 아름다운 목소리도 아니고, 썩 잘 부른다고도 할 수 없지만, 삶의 흥겨움이 묻어나는 그녀의 노래는 즐겁기만 하다. 느릿느릿 앞으로 나아가는 배의 속도가 외려 고맙다.
배에서 내려서는 몇몇 유명한 사람들의 고택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유명한 건 어디까지나 중국 내의 일이기에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이름들이고(원래 유명한 사람인데 나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뭐, 사실 누구네 집인지는 관심 있게 듣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고택들은 조금 심심하다. 오히려 그저 골목을 돌아다니는 쪽이 훨씬 흥미롭다. 족히 수백 년은 되었을 법한 전통적 색채를 여전히 간직한 채, 그 속에서 현재의 삶을 꾸려나가는 주장의 모습이 골목골목에서 여지없이 펼쳐진다. 물론, 어쩌면 주장 사람들의 현재적 삶이란, 사실 수많은 관광객들에 의해 지탱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들의 삶은 다분히 타의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나는 내 눈으로 본, '과거가 현존하는 주장'의 모습 또한, '진실'이라고 믿는다.
주장에서의 짧지만 강렬했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상해로 이동했다. 상해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을 먹고 발 마사지를 받은 후(아빠를 제외하고는 모두 전신 마사지를 받았다), 상해 야경을 보기위해 동방명주 타워를 찾았다.
밤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동방명주 타워에 대한 첫인상은, 솔직히 멋있다기보다는 좀 희한하다. 음, 묘사하기는 꽤나 까다로운데 이도저도 아닌 것이 꼭 우주인의 작품 같다고나 할까. 뭐, 그게 의도라면 나름대로는 성공했다고도 할 수 있을 터이고, 무엇보다 내 심미안이라는 게 그리 고명하지 않으니 내 느낌 따위야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어쨌든 겉모습은 그냥 그렇다. 그런데 놀랍도록 빠른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니, 매우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잔뜩 흐리고 비까지 오는 날씨는 상해의 그 매혹적인 야경을 보여주는 것마저 단호히 거부한다. 이쪽저쪽 창에 얼굴을 갖다 대도 그저 뿌옇기만 한 유리창에는 흐릿한 상해의 불빛만 아른거릴 뿐이다. 그러니까 자고로,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했던가!(이건 좀 아닌가...)
잔뜩 실망만 하고서, 동방명주 타워 지하에 위치한 상해 역사박물관에는 별 기대 없이 갔는데, 의외로 여기가 제법 볼만했다. 상해 역사박물관은 상해의 옛 탈것들(마차, 자동차)에서부터 옛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상해의 옛 모습을 실물 크기의 모형과 사람 인형, 그리고 그림과 미니어처로 다채롭게 꾸며놓고 있었다. 물론, 상해의 역사를 모르니 구체적으로 와닿는 것은 없지만, 그래도 시각적인 흥미를 주기에는 충분하다. 더욱이 이나마 라도 보지 않았다면, 동방명주 타워는 오직 그 초고속 엘리베이터로만 기억되었을지도 모르니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다.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고, 상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당조호텔에는 10시도 넘어서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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