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 라틴어 원전 완역판 세계기독교고전 8
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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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제 신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읽기 전과 읽은 후로 나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읽어본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이 함정일 겁니다. 저도 그랬으니까요. 언젠가는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만 여러 번 했던 책인데, 이번에 크리스천다이제스트에서 '라틴어 원전 완역판'으로 <고백록>을 출간했다고 하여 완독에 도전해볼 좋은 기회다 싶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역시 세월을 거슬러 읽혀지는 고전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신앙인 사이에서 사랑을 받아온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당시에 나를 기쁘게 해 주었던 것이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 외에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나는 마음과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과 우정을 나누는 밝은 길을 걸어가지 못하였고, 도리어 진흙 뻘처럼 끈적끈적한 "정욕"과 젊음에서 솟구쳐 나오는 "혈기"가 내뿜는 뿌연 안개가 내 마음을 덮어 어둡게 하였기 때문에, 청명한 날 같은 "사랑"과 안개 같이 희뿌연 "정욕"을 분별할 수 없었습니다. 이 둘은 내 안에서 서로 뒤엉켜 끓어올라서, 불안정했던 나의 청년기를 정욕의 낭떠러지로 이끌고 가서는, 소용돌이치는 치욕의 심연 속에서 던져 버렸습니다. ... 나는 음란함에 사로잡혀서 온갖 짓을 다하며 내 자신을 함부로 굴리며 제멋대로 살다가 결국 다 터버리고 소진되고 말았지만, 주님께서는 침묵으로 일관하셨습니다. 나의 기쁨이신 주님이여, 주님은 왜 그리도 느려터지신 것입니까!(60-61)


해설을 맡은 김명혁(전 합동신학대학원) 교수는 <고백록>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개종한 후 11년 되던 해인 397년 그가 43세 되던 때, 출생 후부터 그 당시까지의 그의 전생애의 내면생활의 변화 과정을 적나라하게 파혜쳐 묘사한 "영혼의 자서전"이다(512). "영혼의 자서전"이라는 한마디에 이 책의 성격이 잘 응축되어 있습니다. <고백록>이라고 하면 자신의 죄를 '낱낱이' 아뢴 책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고백록>은 죄가 초점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 진리이신 하나님, 아름다우신 하나님께 드리는 영혼의 '깊은' 기도요, '기쁜' 찬양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목적으로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나의 목적은 나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에게는 "깊은 곳"이 있고, 우리는 그 "깊은 곳에서"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시 130:1).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고백하는 것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63).


<고백록>이 많은 신앙인들에게 그토록 엄청난 영혼의 떨림을 안겨줄 수 있었던 것은 무서울 만큼 솔직하다는 것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고백 앞에 내 영혼도 벌거벗겨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홀로 괴로워했던 갈등들, 완벽하게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정욕들, 긴긴 밤 몸부림쳤던 의문들, 나를 집어삼켰던 절망의 실체를 이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짙은 어둠들이 더럽고 추악하고 과장되게 고백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진솔하게 한 줄 한 줄 써내려갔는지 그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다운 기도가 되었습니다.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내내 목소리를 높여 으르렁거리며 사납게 짖어댔던 대상이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니라, 나의 육신적인 생각으로 만들어 낸 허구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이었다는 것을 알고서는, 한편으로는 기뻤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탐구하여 제대로 알려고 하거나 확인하려고 하지 않고, 아주 성급하고 불경건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런 것이라고 내 멋대로 단정하고서 단죄해 버린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주님은 가장 높이 계시면서도 우리와 가장 가까이에 계시고, 아무도 찾지 못하게 가장 은밀하게 숨어 계시면서도 우리 곁에 가장 분명하게 임재해 계시며, 크고 작은 지체들을 가지고 계시지 않고, 그 어느 특정한 공간에 묶여 계시지 않지만 어디에나 전체로 계시며, 우리와 같은 유형적인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 않지만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셔서, 머리부터 발까지 공간 속에 존재하게 하셨습니다(170).


<고백록>이 개인적으로 가장 큰 도전을 준 것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격렬한 몸부림과,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로 나아가는 신앙의 자세였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아는 것인지?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믿는 것인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하는 것인지?' 진리를 가르쳐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며, 깊이 고뇌하는 그 모든 순간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전심으로',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순결하고 정결하게' 하나님 앞에 선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게 만듭니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고민하게 만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참된 그리스도교 신앙이 아니라, 나의 육신적인 생각으로 만들어 낸 허구적인 그리스도교 신앙"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번에 크리스천다이제스트에서 발간한 <고백록>은 라틴어 원전 완역판입니다. 총 1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서전적 고백을 담은 9권까지가 많이 읽히고, "완전한 하나님의 인식을 위한 창조의 말씀, 시간의 철학, 창세기의 풀이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있"는 마지막 11, 12, 13권은 출간에서 누락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508). 그러나 마지막 11, 12, 13권까지 읽지 않았다면 <고백록>을 온전히 읽었다고 할 수 없을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랜 시간 동안 번역되어 나온 <고백록>이 많이 있지만, 크리스천다이제스트의 책으로 완독하기를 권해드립니다. 번역도 아주 잘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문장들이 매끄러우면서도 아름답고 힘이 있습니다. 


사족이지만, 혹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아프리카 사람, 그러니까 흑인이 맞습니까? 그의 고향은 아프리카이고, 그의 부모님 역시 아프리카에서 출생했고, 그가 오랫 동안 동거했던 여인이 흑인(혹은 흑인 노예) 여성이었다고 들었는데, 아우구스티누스가 흑인이었다는 설명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그린 성화들을 보면 그가 흑인이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데, 어쩌면 이것은 교회사에 감추어진 음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아시는 분 있으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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