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절 워버턴Nigel Warburton의 『한 권으로 읽는 철학의 고전 27』(도서출판 知와 사랑)
이 책은 27개의 장으로 이뤄졌으며, 각 장은 한 권의 철학 고전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7권의 철학책이 한 권에 담긴 것입니다. 이 고전들은 현재에도 여전히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철학적 문제들을 담고 있으며, 새로운 통찰력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줍니다. 이런 이유 외에도 27권은 자체로 위대한 문학작품으로서의 지위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책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플라톤의 『국가』 중에서
정의로운 국가와 정의로운 개인 the just state and the just individual
플라톤이 묘사하는 이상국가는 완전하기 때문에, 그는 이 국가는 지혜와 용기, 자기절제, 정의의 성질들을 소유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그에게 이런 성질들은 완전한 국가의 네 가지 주된 덕이다. 지혜는 통치자들의 지식에서 비롯되는데, 이를 통해 통치자들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용기는 보조자들에게서 관찰되는 덕으로서, 이들은 훈련을 통해 용감하고 두려움 없이 국가를 방어할 수 있게 된다. 자기절제는 세 계급들 사이의 조화에서 생겨나며, 이로써 대다수의 무절제한 욕망이 통치자들의 현명한 결정에 의해 통제된다. 마지막으로, 각자에게 천성적으로 주어진 직분을 수행한다는 의미에서 개인들 저마다가 자신의 일에 충실함으로써, 비로소 정의는 국가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사회적 동요를 일으키려 하는 사람은 누구든 국가의 안정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이상국가가 네 가지 주덕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것은 세 계급의 구분과, 각 계급에 부여된 역할들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 때문이다. 플라톤은 국가에 비유해서 개인도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혜, 용기, 자기절제 그리고 정의의 성질은 개인의 부분들 사이에서 조화로운 상호작용에 의존한다고 주장한다.
영혼의 세 부분 the three parts of the soul
‘영혼soul’이란 말은 보통의 의미보다 더 영적인 어떤 것을 시사한다. 플라톤이 영혼불멸을 믿기는 했지만, 그가 『국가』에서 영혼 삼분설에 관해 서술하는 내용은 신체와 분리될 수 있는 영혼이라든가, 신체와 구별되는 어떤 것으로서의 영혼을 연상시키지는 않는다. 사실 그의 관심은 행위의 동기에 관한 심리학에 있다. 그가 말하는 영혼의 세 부분이란 이성Reason, 기개Spirit 그리고 욕망Desire이다.
이성은 이상국가에서 통치자들의 역할에 해당한다. 통치자들처럼 이성은 전체의 선을 추구한다. 영혼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이성은 이기적이지 않다. 이성은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마련할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와 더불어 진리에 대한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
기개는 분노와 노여움 같은 형태로 심리적 행위 동기를 제공하는 인격의 부분이다. 기개는 적절하게 훈련될 때, 대담성과 용기의 근원이 된다. 기개는 보조자들의 역할에 상응한다.
욕망은 음식, 술, 섹스와 같은 것들에 대한 순수한 욕구이다. 욕망은 이성과 정면으로 대립할 수 있다. 실제로 플라톤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그들이 자신들에게 최선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사이에 발생하는 대립을 자신의 영혼 삼분설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한다. 욕망은 노동자들의 역할에 상응한다.
지혜, 용기, 자기절제, 정의의 네 가지 덕목은 모두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개인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플라톤은 이런 덕목들을 영혼의 부분들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이성의 지도하에서 결정을 내린다. 용감한 사람은 위험에 직면하여 기개로부터 행위한다. 이때 기개는 이성의 동맹군 구실을 한다. 스스로 절제하는 사람은 이성의 지도에 따르며 욕망을 통제한다. 가장 중요한 것인 정의로운 사람은 영혼의 모든 부분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행위한다. 즉 각 부분들은 이성의 지휘 아래 저마다의 적절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개인에 있어 정의란 일종의 심적 조화이다. 이 심적 조화야말로 정의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상태로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철학자 왕들 philosopher kings
플라톤이 국가의 정의를 논한 이유는 개인에 관련된 물음들을 밝히기 위해서였지만, 그는 또한 자신이 창안한 이상국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런 정치 체제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주목하면서, 유일한 희망은 권력을 철학자들의 손에 두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플라톤은 다소 놀랄 만한 이러한 제안을 또 다른 비유를 들어 옹호한다. 배 한 척과 근시안에다 귀가 약간 멀고 항해술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는 배의 주인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선원들은 누가 배의 키잡이가 되어야 하는지를 놓고 언쟁을 벌인다. 이들 중 누구도 항해술을 익히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았으며, 실제로 그들은 그것을 배울 수 있다고도 믿지 않는다. 여러 파벌이 배의 지배권을 쥐려고 서로 경쟁하면서, 배에 비축된 물자들을 마음대로 처리한다. 결국 항해는 일종의 술 취한 뱃놀이로 전락하고 만다. 이들 중 누구도 날씨와 별자리를 연구하는 항해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이들은 그런 기술을 익히는 사람을 별을 바라보는 무용한 사람쯤으로 간주한다.
현재의 국가형태는 미숙한 선원들의 손안에서 비틀거리는 배와 같다. 오직 숙련된 항해사의 손에서만 그 배는 통제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비록 쓸모없다고 비웃음을 살지는 모르지만 철학자만이 국가를 운영하기에 필요한 지식을 갖춘 유일한 사람이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왜 특히 철학자들이 통치를 위해 잘 준비된 사람들인가를 설명해준다.
이데아론 the theory of Forms
이 장의 출발점이었던 동굴의 비유는 플라톤이 이해한 인간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부분의 인간은 단순한 현상들, 즉 동굴의 벽면에 비친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에 만족한다. 그러나 철학자들은 진리를 사랑하기에 실재에 관한 지식을 추구한다. 곧 그들은 동굴 밖으로 여행하여 이데아에 접근한다.
이데아론은 『국가』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펼친 이론이지만, 일반적으로는 플라톤의 철학으로 인정된다. 사람들이 플라톤주의에 관해 말할 때는 보통 그의 이데아론을 두고 말한다. 플라톤이 ‘이데아’라는 용어를 통해 의미했던 바를 가장 쉽게 이해하는 길은 그가 든 예를 하나 살펴보는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침대가 존재한다. 어떤 것은 2인용, 어떤 것은 1인용, 어떤 것은 네 기둥이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것들은 이들 모두를 침대라고 부르게 만드는 무엇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것들이 공유하는 것은 이상적 침대, 즉 침대 ‘이데아’와의 관계이다. 이 이데아는 실제로 존재하며, 이것이야말로 유일한 ‘진정한’ 침대이다. 다른 모든 침대들은 침대 이데아의 불완전한 복사물들이다. 이것들은 현상의 세계에 속하며, 실재의 세계에 속하지 않는다. 결국 우리는 침대 이데아로부터만 진정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현실의 침대들에 대한 정보는 무엇이든 견해에 불과할 뿐 지식은 못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의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이데아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며 불변한다. 철학자들은 지혜의 사랑을 통하여 이데아계에 접근하고 사유를 통하여 지식의 가능성을 얻는다. 반면에 지각은 우리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흐르는 현상계 안에 붙잡아 둔다.
플라톤은 정확히 어떤 것들이 이데아를 갖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열거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분명 선의 이데아가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이 ‘선’이야 말로 철학자들이 알고자 하는 궁극적 대상이다. 플라톤은 이 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태양의 비유를 든다. 태양은 우리로 하여금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며 또한 성장의 근원이다. 선의 이데아는 마음의 눈으로 하여금 실재의 본성을 ‘보고’, 이해하도록 해준다. 선의 이데아가 던져주는 빛이 없다면, 우리는 현상과 견해라고 하는 어슴푸레한 세계 속에서 저주받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선의 빛 아래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주워 모을 수 있는 것이다.
불의의 사례들 examples of injustice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로운 국가란 그 안의 여러 다른 계층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는 그런 국가이며, 정의로운 개인이란 그 안의 여러 다른 동기들이 조화를 이룬 그런 개인이다. 플라톤은 국가와 개인에서의 몇몇 불의의 사례들을 살펴본다. 그는 네 유형의 정의롭지 못한 국가와 이에 대응하는 개인유형들을 고찰한다. 금권국가timocracy, 과두국가oligarchy, 민주국가democracy, 참주국가tyranny가 그것이다. 금권국가는 스파르타처럼 군인의 명예욕이 지배하는 국가이다. 과두국가에서는 부가 가치의 상징이다. 민주국가는 국민 전체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이다. 참주국가에서는 통치자가 절대 권력을 가진다.
또다시 플라톤은 국가와 개인의 대칭구조를 이용한다. 예를 들어 그는 민주국가는 정의로운 국가에 필수적인 ‘통치 훈련의 원리’를 무시한다고 주장한다. 민주적 통치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이 국민의 친구임을 공언하는 것이다. 이에 대응하는 민주적 개인은 민주적 국가와 마찬가지로 온갖 종류의 쾌락을 즐기며, 선한 욕구에 기초한 사람들과 악에 근원을 둔 사람들을 구별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심리적 부조화이다. 즉 민주적 개인은 이성이 각종의 부적절한 욕구들을 통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쓸모없는 일시적 기분들이 판치고, 불의가 지배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