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란 파악하기 어려운 주제이다


 

 

 

 

“나는 대체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할 자는 없습니다. 자아란 파악하기 어려운 주제이며, 특히나 이 주제는 스스로를 목적으로 하고 있기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붓다 브레인Buddha's Brain』의 저자 릭 핸슨과 리처드 멘디우스는 자아 관념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또 상황에 따라 변하며, 전적으로 우리 뇌 속의 물질적 기질에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생각, 느낌, 인상, 기타 등등은 신경망의 구조와 활동에 의해 표현되는 정보의 패턴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가현자아apparent self의 다양한 측면들과 은밀하고도 강렬한 경험인 ‘자아 되기being a self’ 역시 마음과 뇌의 패턴으로 존재한다. 문제는 그 패턴이 어디에 존재하는가가 아닙니다. 핵심적인 문제는, 그 본질이 무엇인가? 또한 통합된 존재이며, 끊임없이 이뤄지는 경험의 주체요, 행동의 주인인 ‘나’를 대표하는 이러한 패턴이 과연 진정으로 존재하는가? 또는 자아라는 것 자체가 유니콘처럼 생긴 모습은 알려져 있으되 실제로는 상상에 불과한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자서전적 자아는 사섹적 자아와 정서적 자아의 일부를 통합시켜 사람마다 고유의 과거와 미래를 갖는 ‘나’라는 관념을 제공합니다. 핵심자아는 과거나 미래에 대한 것돠는 거의 관련이 없으며 내재적이고 말로 표현되기 어려운 ‘나’를 형성합니다. 자서전적 자아 형성에 필요한 대부분의 신경적 토대를 제공하는 전전두피질이 손상을 입으면 핵심자아가 남게 되는데, 과거나 미래의 연속성에 대한 인식은 거의 없습니다. 반면 피질 하부나 뇌간 등 핵심자아를 형성하는 조직이 손상을 입으면 핵심자아와 자서전적 자아 모두가 소실됩니다. 이는 핵심자아가 자서전적 자아의 신경적, 정신적 지반임을 말해줍니다. 우리 마음이 평온할 때 자서전적 자아는 활동이 둔화되는데, 이는 신경적 토대가 상대적으로 비활성화되기 때문입니다. 집중 수련과 같은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므로 이러한 비활성화 과정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이 향상됩니다.

대상으로서의 자아는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의식적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생겨납니다. ‘나’에 대한 표현들은 순간순간의 사진 낱장들이 모여 영화가 되는 것처럼, 매 순간의 자아 개념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속된 개념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서술적 자아는 중앙 피질 구조에 기반할 뿐 아니라 측두엽과 두정엽의 연결 부위, 그리고 측두엽의 후부 말단 부분에 기초합니다. 이들 영역은 그 밖의 무수한 기능을 수행합니다. 따라서 이 영역은 특별히 자아 고나념과만 연관된 것은 아닙니다. 자아는 이러한 영역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개울물 위에서 온갖 잔가지와 나뭇잎들이 뒤섞이는 것처럼 온갖 정신적 내용물을 끌어들이고 뒤섞어 버리며, 여기에 특별한 신경학적 상태를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더욱 근본적으로, 주관으로서의 자아는 경험의 주체로서의 경험자의 근본적 감각에 해당합니다. 의식은 본래 특정한 관점에서의 위치 파악이라는 생래적 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치 파악은 몸이 외부 세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뇌는 무수한 경험 속에서 공통점을 지닌 것에 꼬리표를 붙입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은 스스로의 몸입니다. 그 결과, 주관성은 이 몸과 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구분 때문에 생겨납니다. 넓은 의미로 보자면 주관성이란 뇌에서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몸과 외부 세계가 가지는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리고 뇌는 유아기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발달 기간에 걸쳐 주관성의 순간들을 통해 분명한 주체라는 것을 형성하는데, 이는 뇌가 성숙함에 따라 전전두피질의 여러 영역에 의해 만들어지고 쌓아올려집니다. 그러나 사실 주관성에는 그 어떤 생래적 주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상급 명상 수련 과정에서는 주체에 대한 의식이 거의 사라져버립니다. 의식은 주관성을 요구하지만, 주체를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요약하면 신경학적 관점에서 우리가 매일 느끼는 통합적인 자아란, 완전한 환상에 불과합니다. 뚜렷하게 일관성 있고 확고한 ‘나’라는 개념은 사실 발달 과정을 거쳐 여러 하부 및 하부-하부 체계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여기에는 어떤 뚜렷한 중추도 없으며 ‘나’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희미하고 산만한 주관성의 경험을 통해 날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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