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 - 옛 초상화에서 찾은 한국인의 모습과 아름다움
이태호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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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금새 진경산수화, 풍속화, 초상화에 빠지게 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우리 것 보다는 서양의 미술에 노출이 많이 된다. 따라서 미술사라고 하면 바로크, 로코코부터 이야기를 하지 비슷한 시기의 에 일어난 풍속화, 진경산수화에 대해서는 바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에 고르게 된, 『사람을 사랑한 시대의 예술, 조선 후기 초상화는 명지대학교 이태호 교수님께서 정년을 오래 두지 않고 쓰신 역작이다. 40년이 다되는 시간 동안 한 분야에 매진한다면, 속된 말로 대충 써도 역작이 되는 경우가 많다. 평생을 두고 실견한 초상화 작품만 500여점이라하시니, 그 맥을 꿰뚫는 정도가 놀라울 따름니다. 특히나 이런 깊이 있는, 그리고 필연적으로 현대에는 전혀 쓰이지 않는 한자어가 다수 등장하는 문서들은 저자들이 일부러 약속을 한 것인지 맥락이 안맞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행간에 담긴 숙의를 파악해야 하는데, 비전문가인 독자가 전문가인 저자의 것을 간파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본서는 교양과 전문서적의 경계를 오가며 쓰여진 책이다. 전문성으로만 저자의 연배를 파악하는 일은 어렵지만 문투로는 저자의 연배를 대략 짐작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에 대한 정보가 사전에 없었다면, 젊은 큐레이터가 집필한 책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심어준다. 아마도 책 디자인과 구성 또한 한 몫을 했으리라.



전주 경기전에 있는 태조 어진으로 고종9년에 다시 그려졌다. 국보 제317호



청나라 4대 황제. 강희제(재위 1661-1722)



명나라 13대 황제. 만력제(생몰 1563-1620)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의 어진 제작 방식을 따라 정면의좌상으로 그려졌다. 정면의좌상이란 자리에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구도를 의미한다. 현재 태조의 어진은 남아 있는 어진 중 유일한 정면의좌상 구도.


p.13

조선시대는 초상화의 시대라고 이를 만하다. 한국미술사에서 가장 많은 초상화가 그려졌고, 500년 동안 예술성 높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왕의 초상인 어진(御眞)부터 고위 관료인 공신(功臣)이나 문인(文人)의 영정(影幀)에 이르기까지, 초상화 제작은 대부분 도화서 화원들의 몫이었다.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

조선의 초상화는 진솔한 사실성에 기초하여 제작되었다. 심지어는 근자에는 초상화에 그려진 검버섯과 피부병을 분석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논문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극사실적인 기치는 단지 외형적인 닮음에 한정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을 담아 내기위하여 배채법을 활용하였다. 


배채법이란 화폭의 뒷면에 채색을 하여 이 것이 앞면으로 나타나도록 한 것인데, 이러한 방법은 은은한 효과 덕에 기풍과 사실성 모두를 잡아낼 수 있었다. 특히나 수염을 그리고, 황인인 조선의 문인을 담아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기법이었다.



초상화의 제작과정(문화유산채널 발췌)1

초상화(肖像畵)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부터 발달해 온 미술 장르 중 하나로모범이 되는 역사적 인물을 추모하기 위해 제작되기 시작했다초상화는 넓은 의미에서 인물화의 범위에 속하지만특정한 인물을 대상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보편적인 인물의 모습을 그린 일반 인물화와는 구별된다따라서 초상화는 개성을 지닌 특정 인물을 대상으로 지극히 사실적인 태도로 형상화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외형을 똑같이 묘사하는 것만으로는 완성할 수 없고 대상 인물의 내면까지 표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초상화라고 할 수 있다.





칠실관화설; 바늘구멍사진기

어렸을 적 바늘구멍사진기를 접해본 기억이 있다. 당시에도 원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을 들었지만 실제 이해를 하게 된 것은 조금 더 커서의 일이다. 이 바늘구멍사진기를 왜 사진기라 부르는지는 조금 더 성장했을 때 알게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라는 것은 조금 더 지나서의 일이다. 


이 것을 조선시대에는 칠실파려안이라 불렀다. 명칭의 생소함을 떠나 조선에 카메라 옵스큐라가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우며, 그 기록은 정약용 선생의 문집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움 속에 다행스러운 반가움이다.


다산문집 10권. 애체출화도설

*애체 렌즈 애체(靉靆 화경(火鏡))의 불은 태양의 난기(煖氣)이다태양의 난기는 강렬하여도 태우지 아니하므로 비록 한여름이라도 사람이 견딜 만하다사람이 견딜 만한 것은 그을려도 불타지 않기 때문이다가령 한 창문이 동그랗게 말굽 크기만하게 있다고 하면거기서 받는 태양의 난기도 말굽 크기만할 것이다방법이 있으니 말굽 크기만한 것을 녹두알만큼 작게 집약한다면 말굽 크기만하게 받은 난기도 녹두알만큼 작게 집약될 것이다말굽만하게 퍼져서 온화하던 것을 녹두만하게 집약한다면 매우 뜨겁지 않겠는가매우 뜨거운 것이 부딪히면 불이 그때 발생되는 것이니이것이 애체가 불을 낼 수 있는 까닭이다.


칠실관화설

*고개지, 육탐미: 둘 다 유명한 화가 / 집을 산과 호수 사이에 지으니 여울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이 좌우에 비춰 들고 죽수 화석(竹樹花石)은 떨기떨기 쌓였으며 누각(樓閣)의 담장과 울이 죽죽 뻗어 있다이에 청명하고 좋은 날을 가려 방에 들어가 외부의 밝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창과 출입구를 다 막아 방안을 칠흑같이 하되오직 한 구멍만 남겨 애체를 그 구멍에 안정시킨다그리고는 눈처럼 하얀 종이판을 애체와 두어 자 거리에 애체에 따라 거리를 조정한다받아서 비추게 하면여울과 산봉우리의 아름다움또는 죽수 화석(竹樹花石)이 떨기져 쌓인 것과 담장과 울이 죽죽 뻗어 있는 것이 모두 판지 위에 반사되어 짙고 옅은 청록색과 성긴 가지와 조밀한 잎의 형태와 색깔이 천연 그대로 선명하고 위치가 정연한 한 폭의 천연적인 그림이 되어섬세하기가 실오라기나 머리털 같아 고개지(顧凱之)육탐미(陸探微)로도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니아마도 천하의 기관(奇觀)일 것이다애석한 것은 바람받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을 묘사하기 어려운 것이다그러나 사물의 형체가 거꾸로 되었으므로 황홀한 감상이 든다지금 어떤 사람이 조금도 틀리지 않은 초상화를 그리려 한다면 이밖에 다시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뜰에 단좌(端坐)하여 마치 이소인(泥塑人흙으로 빚어서 만든 사람 모양)같이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면 묘사하기 어려움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와 다를 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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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호 초상화> 이명기, 1787


위는 도화서 화원 이명기가 그린 유언호의 초상화로 당시 우의정이었다. 저자는 이 그림을 카메라 옵스쿠라로 그렸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그 근거가 명확하다. 초상화 우측 하단에 쓰여있는 작은 글귀는 '용체장활시원신감일반'으로, 뜻을 풀어보면, '얼굴과 몸의 길이와 폭은 원래의 신장에 견주어 절반으로 줄인 것이다'이다. 즉, 배율조정이 가능한 카메라 옵스쿠라로 초본을 떳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ㅣ<이기양 초상>, 작자미상. 1780-1790추정. 한국미술감정평가원에서는 가치를 5~8천만원으로 추산


복암 이기양 묘지명

*나=정약용, 형=정약전, 이기양과 정약전은 베프 / "복암이 일찍이 나의 형 집에서 칠실파려안(camera obscura)을 설치하고 거기에 거꾸로 비친 그림자를 따라서 초상화 초본을 그리게 하였다. 복암공은 뜰에 설치된 의자에 태양을 향해 앉아 있었다. 털끝 하나라도 움직익이면 모사하기 어려운데, 공은 흙으로 빚은 사람처럼 의연하게 오랫동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역시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이다."



<윤증초상> 장경주, 1744



<윤증초상> 이명기, 1788


윤증초상

윤증초상은 1744년 장경주에 의해 제작되었다가, 1788년 이명기가 이모하였다. 그런데 이 이모과정에서 카메라 옵스큐라가 사용되었을지 모르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우선 제의적 의미가 강한 초상화를 밑에 두고 배끼는 작업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기에, 이모는 그림을 옆에 두고 따라 그리는 작업으로 진행되었다.


p.115

소품의 초본은 바로 카메라 옵스큐라로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원본을 옆에 놓고 보면서 그렸다면 두 그림 사이에 차이가 있어야 할 것인데, 장경주본과 이명기의 구법 초상화는 외관상으로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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