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그레이스의 서재 (그레이스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042294</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04 Jun 2026 21:17:06 +0900</lastBuildDate><image><title>그레이스</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64042294284317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64042294</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그레이스</description></image><item><author>그레이스</author><category>동양고전</category><title>사기(史記)를 읽다 보니 서경(書經)을 읽었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304933</link><pubDate>Fri, 29 May 2026 23: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30493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6811&TPaperId=173049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76/61/coveroff/s29263067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910546&TPaperId=173049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70/coveroff/897291054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452709&TPaperId=1730493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78/86/coveroff/893245270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서경書經』은&nbsp;이제삼왕(二帝三王)의 시대를 통해 정치 철학을 논하고 있다. 이제는 요와 순임금을, 삼왕은 우ㆍ탕ㆍ문무(文武)를 가리킨다. 이 시대 사관들이 기록해놓은 것들 중 후세에 전할 만한 내용을 추려 담은 것이다. 원래는 『상서尙書』라고 불렀으나, 후대에 ‘서書’로 그리고 거기에 경(經)을 붙여 ‘서경’이라고 이름 붙였다. 삼경三經이라고 하면 시경ㆍ서경ㆍ역경을 부르는 말이다.사마천은 사기 본기 중 오제 본기와 하 본기 은 본기 주 본기를 보면 이 서경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가 사기를 쓰기 위해 천하를 3번 주유했을 뿐 아니라, 어려서부터 춘추, 좌전, 국어 등과 함께 이 서경도 읽었다. 그가 사기를 쓰는 데 이 책들이 자료가 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nbsp;  과문불입(過門不入)순 임금 때 우는 아버지 곤에 이어 치수(治水)를 위해 등용된다. 그는 하나라의 우왕이다. 우는 이 일을 완수하기 위해 13년을 밖에서만 지냈다. 자기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감히 들어가지 않았다.(居外十三年，過家門不敢入.) 이것을 줄여서 “과문불입”이라고 말한다. 『사기』의 「하 본기(夏本紀)」에 담겨있다. ‘과문불입’하며 우왕은 홍수로 인해 곤란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위해 물길을 내고 그 땅을 구주(九州)로 나누어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 그 땅을 아홉 등급으로 나누어 세금(공물, 貢)을 거두었다. ‘구주九州’ 안에 속한다는 것은 '왕의 교화가 미치는 문명 세계'임을 뜻했다. 이후 '구주(九州)'는 곧 '천하'이자 '중국'을 뜻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이 내용은 『서경書經』의 「대우모大禹謨」와 「우공禹貢」 등에 담겨있다.   &nbsp;  안민즉혜 여민회지(安民則惠，黎民懷之)순 임금 앞에서 우, 백이, 고요가 의견을 나눈다. 고요는 “그 자신이 수양하는 데 신중하고 길게 생각하며 구족(九族)의 질서를 돈독히 하면 많은 현명한 인재들이 보좌할 것이니 가까운 데에서 먼 곳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여기에 있을 뿐”(83p)이라고 말한다. 우 왕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은 '지혜(哲)'이니, 능히 인재를 적재적소에 등용할 수 있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은혜(惠)'이니, 뭇 백성들이 그를 마음으로 따를 것입니다.(知人則哲, 能官人. 安民則惠, 黎民懷之.지인즉철, 능관인. 안민즉혜, 여민회지)”라고 말한다.  &nbsp;  이어 고요는 인재가 갖추어야 할 아홉 가지 덕을 말한다. 세 가지 덕을 갖춘 자와 여섯 가지 덕을 갖춘 자, 그리고 아홉 가지 덕을 갖춘 자를 차등을 두어 등용해야 한다고 한다. “관대하면서 준엄하고(寬而栗), 부드러우면서도 주관이 있고(柔而立), 성실하면서도 공손하고(愿而恭), 다스리는 재주가 뛰어나면서도 신중하고(亂而敬), 유순하면서도 의지가 강하고(擾而毅), 정직하면서도 온화하고(直而溫), 대범하면서도 청렴하고(簡而廉), 결단력이 있으면서도 착실하고(剛而塞), 용감하면서도 정의로워야(彊而義)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고요는 “직위의 적임자가 아닌데도 관직을 차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천하의 일을 어지럽힌다고 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이 내용 역시 『서경』의 「고요모皐陶謨」의 내용을 『사기』 「하 본기」 에 실었다.   &nbsp;  이 대화에서 우는 “온종일 부지런하게 일할 생각만 하고 있다(85p)”고 말한다. 무엇을 그렇게 하냐고 고요가 묻자 우는 치수와 백성들이 식량을 얻을 수 있도록 실제적인 일을 했다고 한다. 그는 실제로 “육로는 수레를 타고 다니고 수로는 배를 타고 다니며, 진흙 길은 썰매를 타고 다니고, 산길은 바다에 징을 박은 신을 신고 다니며, 산을 다니며 나무를 베어 길을 열었”다. 고요는 그에게 그것이 우의 훌륭한 덕이라고 한다. 고요는 정치 철학을 담당한다면, 우는 행정가이며 실용주의적 인재다. 순은 이런 인재들을 얻었으므로 그의 치세 때 백성들이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가 그것을 말해준다.  &nbsp;  상(商)나라의 탕(湯)왕은 폭정을 일삼던 걸(傑)왕을 치고 하나라를 멸망시켰다. 『서경』의 「탕서」 편에는 걸왕이 폭정을 일삼고, "하늘에 태양이 있는 한 나의 나라는 망하지 않는다. 태양이 죽는다면 모를까, 내 권력이 끝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교만하게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이에 백성들은 “이 태양은 언제쯤 사라질까? 나와 너와 함께 없어져 버리리라!”라고 말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그냥 나라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탕은 여러 제후들과 힘을 모아 ‘명조전투’에서 승리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다.  &nbsp;  사마천이 『사기』에서 ‘상 본기’가 아닌 ‘은 본기’로 한 것은 주 나라에서 은(殷)으로 낮춰 부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은은 상나라가 망할 당시 수도 이름이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 왕의 타락과 폭정은 극단적이었다. 주나라에서는 '은감불원(殷鑑不遠)': "은(殷)나라의 멸망을 거울로 삼아라"라고 교훈했다. 상나라를 폄하함으로서 주나라의 무왕이 새 왕조를 열 수밖에 없었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상(商)이 은(殷)으로 불린 이유다. 역사 시간에 ‘하ㆍ상ㆍ주’ 가 아닌 ‘하ㆍ은ㆍ주’ 로 외웠던 나는 익숙한 것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nbsp;  상(商)나라의 중흥기를 이끈 왕 무정(武丁)은 꿈에서 현몽한 열(說)을 찾고 등용한다. 그에게 부(傅)라는 성을 주고 부열(傅說)으로 불렀다. 그를 전적으로 신임하여 그의 간언을 다 수용한다. 이들의 만남과 대화는 《서경(書經)》의 〈열명(說命)〉 편에 기록되어 있으며, 후대에 수없이 인용되는 위대한 명구들이 담겨있다.  &nbsp;  작주즙作舟楫, 작림우作霖雨若金，用汝作鑢. 若濟巨川，用汝作舟楫. 若歲大旱，用汝作霖雨."만약 내가 쇠(칼)라면 너를 숫돌로 삼을 것이고, 만약 큰 강을 건너려 한다면 너를 배와 노로 삼을 것이며, 만약 해마다 큰 가뭄이 든다면 너를 단비로 삼을 것이다.“왕이 인재(부열)를 얼마나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 비유를 들어 고백한 구절이다. 자신을 숫돌처럼 벼리고, 배와 노, 단비와 같다고 고백한다. 그야말로 왕으로서 신하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요, 구애이다. 이후 훌륭한 재상을 일컬어 '주즙지신(舟楫之臣, 배와 노 같은 신하)'이라 부르고, 가뭄 끝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임우(霖雨)'라고 부르는 유래가 되었다.   &nbsp;  知之非艱，行之惟艱(지지비간, 행지유간)"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다.부열이 무정에게 한 이 말은 수많은 정치가들 사상가들의 화두가 된 명구이다. 쑨원(손문) 등의 혁명가들도 ‘지행합일’을 논하며 인용했다고 한다. 『서경』의 주된 사상은 첫째로 천명(天命)사상이다.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는 것은 천명에 의한 것이며, 천명이 새로워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덕 있는 왕에 의해 나라가 세워지더라도 그 왕위를 잇는 자가 덕이 없다면 천명은 다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워 진다. 따라서 왕은 덕을 닦고 정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둘째로 왕은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 인민을 위한 정치가 『서경』에 나타나는 기본사상이다. 『사기』 「은 본기」 에 “사람이 물을 주시하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듯 백성들을 살펴보면 다스려지는 지 그러지 않는지를 알수 있다.(人視水見形，視民知治不)”(「은 본기」 98p)고 한 것은 바로 이 민본 정치를 말하는 예이다.천명사상과 덕치와&nbsp;민본정치와 함께, 인재를 찾아 적재적소에 등용하는 것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중요한 덕목이다. 『사기』나 『서경』 모두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 잘 다스린 왕들은 인재를 찾고 등용하기 위해 애를 썼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윤ㆍ고요ㆍ부열과 같은 재상을 얻는 것은 그야말로 천명이기도 하고 왕의 덕이기도 하다.   &nbsp;  현대의 정치에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방법론에 있어 다르지만 어쨌든 올바른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인재를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국가의 복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투표소를 나서니,&nbsp;내가 누른 도장의 가벼움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678/86/cover150/89324527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6788673</link></image></item><item><author>그레이스</author><category>소설</category><title>우리 시대의 ‘악령’은? - [악령 - 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295094</link><pubDate>Sun, 24 May 2026 2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29509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0133&TPaperId=172950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096/49/coveroff/893292013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20133&TPaperId=1729509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악령 - 하</a><br/>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박혜경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01월<br/></td></tr></table><br/>작가의 생각에 의문을 갖게 하는 지점이 많았던 소설이다. 한편, 도스토옙스키가 ‘페트라솁스키 서클’에 연루되어서 겪은 극적 경험, 사형수와 유형수로 겪은 고통은 이 작품에도 역시 짙게 배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실 평생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 생각된다.  &nbsp;  1869년 네차예프가 자행한 살인사건으로부터 소재를 얻고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 그는 니힐리스트이며 유럽의 인터내셔널, 바쿠닌 등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가 있었고, 모스크바에 비밀결사를 조직했던 인물이다. 1860년대 러시아에서 니힐리스트는 모든 사상, 의미, 권위 도덕 등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급진주의자이다. 그들 학생 운동은 폭력을 동반했다. 이들의 폭력적인 성향은 『백치』에서도 그려진다.   &nbsp;  도스토예프스키는 『백치』에서도 그랬지만 이 작품에서도 서구로부터 들어온 사상 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의 다양한 ‘사상’, ‘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에서 비판하는 태도를 취한다. 서구의 사상이 혼란스럽게 러시아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들고 무너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윗세대들(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시기)의 서구사상(자유주의)을 여과없이 들여오고 그들의 삶이 부조리하고 위선적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서구로부터 들어온 불온한 사상들에 대항해서 러시아의 정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다. 학자이자 시인인 스쩨빤 뜨로피모비치 베르호벤스끼와 같은 사람들이 구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nbsp;  페테르부르크 근처 지방 소도시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개인 연구실(바르바라의 집)에 모여든 젊은이들은 독자에게 수상한 분위기를 전한다. 화자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집 모임은 소문과 다르다는 것을 말합니다. 소문은 그들 모임이 “자유사상과 방종, 무신론의 온상”이라고 굳어졌다. 그러나 화자는 소문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모임은 “매우 순수하고 온건하며, 순 러시아식의 유쾌하고 자유로운 잡담을 나누었을 뿐이다.”(1권 제1장 9. 52p) 학자연하고 사상가인 양 하는 스쩨빤 뜨로피모비치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 때문에 모인 모임이었다. 소문은 스쩨빤 뜨로피모비치를 긴장하게 하고 극도의 흥분과 공포 속에 몰아넣는다. 이런 증상들은 도스토옙스키의 트라우마와 관계있다. 또한 국가, 계급, 개인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내포하는 경계와 폐쇄를 나타낸다.   &nbsp;  소설 전체에서 중반이 지날 때까지 인물 탐색과 소도시의 사람들의 관계에 존재하는 갈등과 원망, 분노, 지배 같은 것들로 연결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스쩨빤 뜨로피로비치의 모임에 참석하던 리뿌찐, 비르긴스끼, 시갈료프, 키릴로프, 샤토프 등은 스따브로긴과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키의 귀환과 함께 그들이 이 소도시로 모여든 목적이 드러난다. 그들은 자유주의 관리, 건축가, 학생이고 슬라브주의자, 인신사상 신봉자, 무신론적 실존주의자, 사회주의자들이다. 이들을 소개할 때 그들의 사상이 어떠한가를 먼저 언급하는 것은 사상이 범람하던 시기에 사상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풍조가 있었음을 알게 된다. 자유주의나 계몽주의에 이어 공산주의가 유럽을 휩쓸던 시대였다.   &nbsp;  “당시는 특별한 시대였다. 무언가 새롭고 이전의 평온과 전혀 다른 아주 이상하지만 스끄보레시니끼에서조차 감지되는 어떤 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러 가지 소문이 들려왔다. 구체적인 사실들은 대체로 어느 정도 알려졌으나, 이 사실들 외에 어떤 사상들이,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사상들이 그에 수반되어 나타났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사상들은 뒤죽박죽이어서 어디에 적용시킬 수도 없었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1권 제1장 5. 32p)  &nbsp;  리뿌찐, 비르긴스끼, 시갈료프, 럄쉰, 똘까첸꼬로 이루어진 5인조는 뾰뜨르 스쩨빠노비치 베르호벤스키가 조직한 비밀결사이다. 러시아 내 각 지방과 유럽 전역에도 이런 비밀결사들이 존재하고 배후에는 더 큰 조직이 있다고 알고 있지만 그들은 그 실체를 본적도 다른 조직을 만나본 적도 없다. 이들은 스따브로긴의 외국에서 만나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그에게서 사상적 영향을 받은 자들에게 스따브로긴은 정신적 지주이고 우상이다. 그 영향력을 뾰뜨르 베르호벤스키가 이용하고 그들을 지배한다. 니콜라이 프세볼로도비치 스따브로긴(Nikolai Vsevolodovich Stavrogin)은 소설의 중심인물이고, 모든 관계의 한 가운데 있지만, 그런 그에게서 지독한 허무를 보게 된다.   &nbsp;  천재적이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스따브로긴은 자기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다시 말해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욕망과 쾌락을 쫓는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두 가지 의지 선과 악의 팽팽한 대립을 느끼지만 그는 범죄와 쾌락을 선택한다. 첫 번째 범죄에 자신을 개방함으로써 경험한 쾌락은 그에겐 놀라운 것이었고 이후 같은 선택을 반복하게 된다. 여기서 스따브로긴은 그가 추구하듯 자유로운가를 질문해본다. 두 의지가 싸우고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그가 자유롭지 않음이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매번 같은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마찬가지 결론에 이른다. 습관이나 경향성은 이미 자유롭지 않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nbsp;  서구의 사상에 물든 사람들은 그 사상을 실현하기 위해 폭력과 살인 그리고 믿는 바를 실행하기 위해 자살을 한다. 과연 그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자유의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는가 질문한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그들은 스따브로긴의 사상적 영향을 받았고, 뾰뜨르 베르호벤스키의 정신적 지배를 받고 있다. 그 끝에는 허무와 공허만 있다.   &nbsp;  그들은 왜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을까? 그들은 결말은 왜 허무일까? 모든 사상이 다 그렇지는 않을텐데, 폭동과 살인, 자살, 공허가 두드러진다. 왜 도스토옙스키는 이렇게 그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19세기 러시아에서 원인을 찾는다. 계급의 벽이 높은 사회다. 사상이 뿌리내리고 꽃피우기에는 그 경계가 장애가 된다. 그들에게는 프롤레타리아가 없다는 작중 인물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지식인들의 모임 밖으로 나갈 개방된 출구가 없었다. 방화나 폭동이 사상을 그 방법이자 에너지로 여길 수밖에 없는 사회적 한계가 존재했다는 생각이다.   &nbsp;  에필로그에 푸시킨의 시와 누가복음 8장 32-37절을 인용하면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밝히고 있다. 그는 푸시킨의 시로 성경을 풀어, 파괴적인&nbsp;사상들이 바로 악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nbsp;  폰 렘쁘께는 ‘자레치예’의 화재 현장에서 "모든 것이 방화다! 이것은 허무주의다! 만약 무언가 타오르고 있다면, 그것은 허무주의다!"(3권 100p)라고 외친다. 허무주의라고 번역된 러시아어 Нигилизм(Nigilizm)은 라틴어 Nihil(무, 아무것도 없음)에서 온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급진 세대의 적극적이고 파괴적인 정치·사회 운동. 종교, 도덕, 국가 권위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이를 철저히 파괴하려 한 유물론적 행동주의다. 허무주의는 폭력성을 띄는 무정부주의를 향한다. 렘쁘께의 외침은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이며, 사상에 대한 작가의 주관이다.   &nbsp;  살해 현장에서 소리를 지르며 광기를 보이는 비르긴스끼와 럄신이 뒤엉키는 장면은 이 소설에서 절정을 이룬다. 비르긴스끼의 절규와 럄신의 발작은 도스토옙스키가 묘사한 급진주의 사상의 민낯이다. 한편, 맡겨진 일(범죄)을 무심하게 해내는 에르껠의 모습은 극적 대비를 이룬다. 범죄와 인간의 본성을 소름끼치도록 그리는 도스토옙스키의 탁월함을 확인하는 장면이다. 이 살해에 연루된 인물들은 『죄와 벌』의 라스꼴리니코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드미뜨리, 스메르자코프를 떠올리게 한다.   &nbsp;  파괴와 혁명을 논하던 지식인과 소시민들은 살해 현장에서는 나약한 존재임을 드러낸다. 살해, 자살, 도주로 그들의 조직은 와해된다. 그들의 사상이 실패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사상이란 결국 인간의 행복을 위한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욕망으로 연결된다. 인간의 욕망을 무시한 사상이란 공허한 말들에 불과하고, 그것을 무시한 사상의 실행은 폭력이다. 생명을 해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사상은 공허하기만 하다. 도스토옙스키가 19세기 러시아에 들어온 급진적 사상에 대해 비판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는 그들의 신앙에서 그 해답을 찾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게는 그것도 모호하게 보일 뿐이다.   &nbsp;  스쩨빤 뜨로피보비치 베르호벤스키는 죽기 전 유언과 같은 말에서 “러시아에 위대한 사상과 위대한 의지가 필요하며, 그것이 악령과 모든 불결함, 혐오스러운 것들을 몰아낼 것”(3권 제7장 2. 327p)이라고 한다. 그 자신 또한 책임에서 피할 수 없고 그 선두에 선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스쩨빤 베르호벤스키의 고백과 병행하며 대비를 이루는 것이 스따브로긴의 고백서이다. 그는 과거의 범죄와 이후 연속된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글을 세상에 발표하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참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파괴적인 행위일 뿐이다. 악령은 그의 내면에 있다. 스쩨빤 뜨로피모비치가 사상을 ‘악령’으로 보는 것과 비교된다.  &nbsp;  이렇게 정치적인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소설은 경향소설로 끝을 맺는다. 모든 사상, 이념이 다 폭력적이고 한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는 것은 아니지만 거대한 사상의 물결이 큰 변혁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불안하고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세상은 엄청난 급변하고 있고, AI 시대를 맞아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정서가 우리를 엄습한다. 이런 세상을 어떤 사유로 바라보아야 하며, 인류가 새롭게 해야 할 사상과 끝까지 지켜야할 가치는 무엇인가를 질문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구세대의 이념은 증오와 혐오를 상속하고, 생명을 조롱하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양산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현재의 혼란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가치를 잃어버린 증상은 아닌지! 도스토옙스키의 표현대로 말한다면 우리 시대의 ‘악령’은 무엇일까?  &nbsp;  나는 자유의지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가 하는 생각, 선택, 행동들은 자유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인간은 전적인 자유의지 상태에 있을 수 있을까? 나는 어떤 영역에서 자유롭지 못하는가? 무엇의 지배를 받고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을 위해 자유로운 선택을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런 질문들을 해보게 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096/49/cover150/893292013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0964955</link></image></item><item><author>그레이스</author><category>철학</category><title>문학 권태기 처방-어려운 책, 낭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242262</link><pubDate>Mon, 27 Apr 2026 21: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24226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42137087&TPaperId=172422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14/52/coveroff/k04213708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84412&TPaperId=172422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575/6/coveroff/893748441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92135133&TPaperId=172422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17/30/coveroff/k592135133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5664448&TPaperId=172422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559/0/coveroff/893566444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42839786&TPaperId=1724226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453/85/coveroff/k142839786_2.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242262'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쓰기 싫다’가 먼저였던 것 같다. 그리고 ‘문학 읽기 권태기’가 왔다. 계속 비슷한 주제에 도달하게 되는 소설에 식상하기도 하고 지치기도 했다. 그려지는 일상과 대화들은 빠른 속도로 훑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순간이 잦아졌다. 결말을 알 것 같은 전개와 혹은 중요한 메시지임에도 작가의 의도가 미리 읽혀지는 머리 부분에서 ‘계속 읽어야 하나?’ 하는 갈등을 하곤 했다. 나름대로 내린 처방은 문학이 아닌 난이도 있는 책 읽기와 두꺼운 책 함께 낭독하기였다. 그래서 선택한 책이 움베르토 에코의&nbsp;『경이로운 철학의 역사』다. 사이즈도 크고 페이지도 많지만, 읽지 않고 모셔두기엔 너무 비싼 책이다.^^  &nbsp;  저녁을 먹고 치우고 어둠이 내리는 길을 걸어서 만나기로 한 카페를 향했다. 마음이 설렜다. 달리기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을 지나 천변 길을 걸어서 카페에 도착했다. 다행히 카페는 한산했다. 창가 테이블이 자리를 잡고 짊어지고 간 무거운 책을 꺼냈다. 함께 읽기로 한 독우(讀友)를 기다리며 ‘이 두꺼운 책을 3권까지 무사히 읽을 수 있을까?’ 하고 잠깐 생각했다. 걱정보다는 기대, 드디어 읽게 되었다는 뿌듯함이 더 컸다.   &nbsp;  사람이 없는 조용한 카페에서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우리는 서론부터 읽어나갔다. 번갈아가며 조용한 목소리로 빠르게 읽다가 중요한 문장에서는 속도를 줄이며 줄을 치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을 만나면, “이 문장 이해되세요?” 하고 다시 새겨 읽고, 서로 설명을 덧붙였다.(길지 않게) 한 사람이 읽고 있는 듯이 자연스럽게 주고받았다. ‘너무 좋은데!’ 저절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함께 한 독서 친구여서 그런가? 이전에 함께 낭독으로 읽었던 경험도 있어서 서로에게 갖고 있는 믿음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nbsp;  다른 잡담 없이 계속 읽어가며 나는 “이 부분 재밌네요.”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독우의 책에 대한 조용한 열정과 성실함 때문에 완독의 전망이 높아진다. 불가피한 일 때문에 빠질 걸 예상하고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만나서 읽기로 했다. 돌아오면서 시간을 두고 여유 있게 즐기면서 하자고 생각했다. 이제 해가 길어지고 오고 가는 길이 조금 더 밝을 것이다.  &nbsp;  그렇게 1장의 반 분량을 읽고 이번 주 다시 이어서 읽게 되었다. 아직은 그리 어려운 철학 용어들이 등장하진 않지만, 그리스인들의 신화와 본질을 탐구했던 고대 과학과 철학에 대해 잘 전달하는 에코의 문장도 우리가 쉽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었다. 그의 접근도 신선하고 흥미를 끈다. 그렇게 특이하지 않음에도 그의 글에는 관심을 끄는 새로움이 담겨있다.  &nbsp;  그는 아르케(arche), 아페이론(apeiron), 그리스어(mythos)에 담겨 있는 신화(myth)의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현대의 철학자들의 해석도 간략하고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nbsp;  서론 부분에서 가장 눈길을 끈 내용은 “인간이 경이로움을 경험하면서 이에 대한 반응으로 철학을 시작했다(8p)”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인간은 경이로움을 만나면,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경배를 하거나, 질문을 한다. 경이로움에 대한 과학이나 철학적 반응은 질문이다. 고대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질문들은 과학이 답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고, 이어지는 질문들은 철학의 영역에 해당한다. 철학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생각의 훈련이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와 시칠리아 아프리카 북부, 이오니아 지역의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지도를 보며, 그동안 읽어왔던 서양 고전 독서가 이 책을 쉽게 읽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nbsp;  어쩌면 이 두꺼운 책의 1장 부분이 『수학의 정석』 「집합」이 될지도 모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 용어들이 멈추게 할지 모르겠다. 현재로서는 모르는 것은 놓고 갈 예정이다. 내일 만나서 읽을 생각을 하니 오히려 맘이 편해진다. 준비도 예습도 없이 책만 지고 가서 반가운 친구와 앉아서 읽다가 올 생각을 하니 그 만남이 기대된다.  &nbsp;  또 다른 모임에서도 낭독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생 남자아이 둘과 헤로도토스&nbsp;『역사』를 낭독하고 있다. 읽고 설명해주고 지도나 역사와 인물설명을 해야 해서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지만 덕분에 나는 세 번째 읽고 있고, 눈으로 읽고 정리할 때와 달리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을 발견한다.  &nbsp;  곰브리치&nbsp;『서양미술사』는 미술 모임에서 한 주에 한 장씩 요약 발표하면서 읽었던 책이다. 그 모임 회원과 한 번쯤 읽었던 몇 사람이 낭독만 해보자는 의견이 모아져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독서가 기대했던 것 보다 큰 효과가 있어서, 처음 읽었던 때와 달리, 시대별 정리가 되고, 보이지 않던 그림이 보이고, 또 곰브리치의 작은 오류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읽었던 책들과 관람했던 전시들을 통해 얻은 지식과 보는 눈이 생겼음을 스스로 느낀다. 격려가 되는 독서다.  &nbsp;  바르트의 책(『영도의 글쓰기』)이 잘 읽혀지는 것을 보니, 이 처방이 맞나 보다. 어렵다고 생각되는 책들을 주문하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미셀 푸코의&nbsp;『말과 사물』은 1장 부분만 읽었다. 벨라스케스의 &lt;시녀들&gt;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오래 전에 읽고 참고했고, 거기에서 멈췄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만 읽고 만다고 어디에선가 읽고 공감되서 웃었었다. 이번 기회에 읽어버려야지 했는데, 눈에 보이는 대로 꺼내놓다 보니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버렸다. 이번엔 성공하길!&nbsp;『말과 사물 강의』를 사야할까? 생각 중이다. 어쩔 수 없이 읽어야 할 소설이 있긴 하다.&nbsp;왜 권태기가 왔을까?&nbsp;글쓰기도 식상하고…….&nbsp;생각하는 틀이 고정되어 있고 깊어지지 않아서 그런 듯하다.&nbsp;그래서 아무래도 지금은 이 책들을 읽는 게 맞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5834/91/cover150/895097584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8349136</link></image></item><item><author>그레이스</author><category>소설</category><title>﻿연매장된 진실 - [연매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232824</link><pubDate>Wed, 22 Apr 2026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23282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8527&TPaperId=1723282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54/72/coveroff/k32203852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22038527&TPaperId=1723282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연매장</a><br/>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04월<br/></td></tr></table><br/>안티고네는 길에 버려진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흙으로 덮고 장사지내기 위해 목숨을 건다. 고대의 비극이나 서사시에서는 시신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희생을 치르고 찾아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우스에게 고개를 숙인다. 성경에는 먼 거리를 밤새도록 달려가 사울의 시신을 찾아왔다는 기브아 사람들 이야기도 있다. 그들은 왜 목숨을 걸고 시신을 구했을까? 인간의 육체와 죽음 그리고 사후(死後)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육체를 썩고 분해되어 기본적인 물질로 환원되는 것으로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특별히 사후세계나 부활과 관련된 특별한 신앙이 없더라도, 생전에 함께 하고 사랑했던 존재의 틀(혹은 그릇)을 안타깝고 귀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아끼던 물건이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쉽게 함부로 버리지 않는데, 하물며 사람의 육신이지 않은가.  &nbsp;  평생을 기억상실인 채로 살았던 딩즈타오는 남편의 죽음 앞에서 “연매장은 안돼!”라고 외친다. 그리고 죽음을 앞두고도 “연매장되기 싫어!”라는 말을 반복한다. 연매장이란 시신을 관에 담거나 시신을 감싸는 어떤 것도 없이 매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학살, 혹은 예를 갖출만한 여력이 없는 극단적 상황을 내포한다. 학살은 시체들을 묻고, 시간은 그들을 발굴한다.  &nbsp;  1950년대 초 중국 공산당은 지주(地主) 계급의 토지를 무상 몰수하여 빈농에게 분배하는 대규모 토지 재분배 정책인 토지개혁을 한다. 이 과정에서 수백만 명의 지주가 학살되거나 숙청되었다. 딩즈타오는 이때 가족과 재산을 다 잃고 혼자 살아남아서 강에서 구조된 여성이다. 그녀의 아들 칭린은 아버지의 일기, 기억을 잃은 어머니의 분절된 말들, 직장상사인 류샤오찬의 아버지 류진위안의 기억을 통해 그들의 인연과 그들이 겪은 시대적 아픔을 알게 되고, 어머니가 상실한 기억의 진실과 고통의 근원 가까이에 다다른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처럼 그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지 않고 덮어두려 한다.   &nbsp;  “칭린은 알기 싫은 일을 알려 하지 않는 것도 강함의 또 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이 진실의 모든 것을 연매장 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게 진실의 모든 것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432p)”  &nbsp;  그 진실을 추적해 쓰는 것은 칭린의 친구 룽중륭이 한다. 칭린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지만, 룽중륭은 싼즈탕 지역과 그 장원과 사건을 추적해서 쓴다. 칭린은 어머니의 과거와 고통의 진실이 매장된 채로 모든 것이 풍화되기를 바랐지만, 룽중륭은 역사는 진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망각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선택해.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444p)”라고 말한다. 칭린은 냉소하며 생각한다. 진실이 어떻게 언어와 글로 표현될 수 있겠느냐고, 세상의 어떤 일도 진정한 진실을 가질 수 없다고….  &nbsp;  작가가 이 시대 토지개혁과 관련된 개인적 경험을 듣고 ‘연매장’이라는 말에 사로잡혔다고 한다. 이 단어는 시대적 비참을 품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도 수많은 연매장이 있고, 진실이 묻혀 있는 평토장 무덤들이 있다. 이 땅에는 여전히 감자를 먹지 못하는 많은 순이 삼촌들이 있고, 멸치도 못 먹는 유가족들이 있다. 자신의 손으로 묻은 가족들과 죄의식을 기억의 심연에 매장한 딩쯔타오처럼 침묵으로 아픔을 묻고 침묵하도록 강요받았던 사람들이 있다. <br>칭린이 진실을 밝히길 거부한 이유는 무엇일까? 차라리 알려하지 않는 것이 강함의 표현이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나? 칭린과 룽중륭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실, 칭린의 태도에 나는 조금 의아했다. 알지 않으려 하는 게 강함의 표현이라고? 자라면서 알고 있던 부모의 정체가 다르다는 사실은 그의 삶을 흔드는 것일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감춘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아픔을 느끼지만 그는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중국인들이 문화혁명과 같은 부조리한 역사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같은 태도를 본다. 과거의 역사를 대하는 그런 방식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일 수도, 유물론적이고 실용적이 그들 나름의 태도 때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칭린에게서는 진실을 완벽히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패배의식도 엿보인다. 그러나 진실에 연루되어 있는 칭린보다는 자유로운 룽중륭은 연구자와 작가로서 탐사를 계속한다. 작가는 칭린을 이해하는 듯 쓰고 있지만, 사실 그의 태도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기에 룽중륭을 등장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비중이 적은 제3자로서의 룽중륭은 작가 자신이라고 짐작된다. 룽중륭의 등장은 기록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작가 자신에게 확인시키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nbsp;  호메로스나 그리스 비극, 특히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다보면 사람들의 주검에 대한 예(禮)는 시대, 지역, 문화마다 조금씩 상이하나, 그것은 그 사회에서 가장 고귀하다고 생각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사회에서 화장은 선호하는 장례방식은 아니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시대의 변화와 문화에 따라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도 달라졌음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훼손되고 함부로 매장된 육체는 경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경악하고 있지 않은가?<br>&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254/72/cover150/k32203852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2547243</link></image></item><item><author>그레이스</author><category>소설</category><title>전쟁이 끝나길 기다리는 시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178321</link><pubDate>Fri, 27 Mar 2026 23: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17832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290264&TPaperId=171783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8/29/coveroff/899129026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7359446&TPaperId=171783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9019/87/coveroff/8967359446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893290984&TPaperId=171783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569/38/coveroff/e89329098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2909849&TPaperId=1717832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87/35/coveroff/893290984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이오니아 반란의 주동자 밀레토스의 아리스타고라스는 자신이 일으킨 전쟁을 이오니아에 있는 도시들과 사모스나 키프로스 같은 섬들과 스파르타나 아테네에 까지 확산시킨다. 아리스타고라스의 배후에는 페르시아로 끌려간 밀레토스의 참주 히스티아이오스가 있었다. 히스티아이오스는 밀레토스를 공격해온 다레이오스에게 일찌감치 항복하고 그의 수하에 들어가 페르시아에 봉사하고 있었다. 그는 밀레토스를 다시 차지하고자 자신을 대리하고 있는 사위 아리스타고라스에게 페르시아에 항거하라고 비밀리에 메시지를 전한다. 이 메시지를 받기 전 아리스타고라스는 페르시아에 공적을 세우고자 군대를 동원해 낙소스를 공격했다. 낙소스 원정은 실패하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만을 입었다. 아리스타고라스는 다레이오스에게 받을 문책이 두려워 오히려 페르시아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다. 그는 스파르타와 아테네에 원병을 요청하고,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오니아 지역 도시들을 선동했다. 각 도시국가들은 셈법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전쟁에 참전했다. 이것이 Ionian revolt, 헤로도토스가 말하는 이오니아 반란이다.  &nbsp;  헤로도토스는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을 연구하며 이오니아와 아프리카 흑해주변 도시 등의 역사와 문화, 인종 등을 조사하고 직접 다니며 탐사했다. 그러면서 마라톤 전쟁 직전에 일어난 이오니아 지역 헬라스 도시들의 페르시아에 대한 전쟁에 주목한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서술해간다. 이 이오니아 전쟁을 통해 많은 도시들의 시민들이 희생됐다. 나름의 전쟁을 일으킬만한 이유들과 열망들이 있기도 했다. 노예 상태로 이주한 민족들과 혈육이 몰살당한 사람들의 분노와 복수심 등.  &nbsp;  주목할 만한 것은 지도자들의 욕망과 무책임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빼앗긴 권력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시민들의 복수심과 불안감을 이용한다. 페르시아가 시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노예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거짓을 전파하며 선동한다. 아리스타고라스는 이오니아의 많은 도시들이 다 일어난 것처럼 호도하여 다른 도시들의 참전하게 한다. 그리고 패색이 짙어지자 도주하기를 반복하는 것을 볼 수 있다.(제5권~6권) 헤로도토스는 이 역사를 기록하며 페르시아 전쟁의 원인들에 집중한다. 지도자들의 욕망에 의해 전쟁에 끌려 나온 시민들과 노예들의 희생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nbsp;  전쟁의 승패가 기울면 지도자들은 항복과 결사 항전을 고민하고, 협정을 맺기도 하지만, 합의에 이르는 마지막까지 이익을 앞에 놓고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싸운다. 그 와중 협상과 지체와 결렬과 재개 사이를 오가며 사람들의 희생을 키우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 고대 국가들은 전쟁 중 서로가 적이 되기도, 연합군을 이루기도, 중재자로서 개입하기도 한다. 구원(舊怨)을 따라 혹은 이익을 따라 합종연횡을 일삼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대에 일어난 전쟁의 발단과 전개, 그리고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 현대 전쟁과 다르지 않은 것을 보게 된다.   &nbsp;  영화 &lt;서부전선 이상 없다&gt; 에서는 휴전시간 15분을 앞두고 지휘관의 자존심 때문에 신병들을 적의 참호로 보내 육탄전을 벌이는 비인도적 장면이 있다. 종전 협정 내용이 독일에 수치스러운 것이었기에 지도자는 프랑스군을 그대로 보낼 수 없다고 울분을 토한다. 적의 참호에서 끔찍한 육탄전을 벌이던 파울 보이머는 칼에 찔리고,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휴전 나팔이 울리고 사격중지 명령이 내려진다. 그 소리를 들으며 파울은 죽는다. 전쟁의 허망함을 전하려는 극적 연출 장면이다. 그리고 지도층의 몇 사람의 공로 의식이나 욕심에 의해 많은 생명이 부질없이 죽어가는 전쟁에 대한  분노를 느끼게 한다.  &nbsp;  원작을 각색한 이 영화는 2023년 미국과 영국 아카데미에서 많은 부분 수상을 했다.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과 전장의 잔인함을 대비시킨다. 인물들의 대화는 때로 즐거운 상상을 하게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굶주린 병사들의 열악한 식사와 후방에 있는 고관들의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식사 장면을 대비시킨다. 조국을 위해 참전하는 십대 청년들의 낭만과 첫 전투의 공포와 참혹함이 급격하게 대립한다. 그들의 패기와 열정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절망으로 변해버린다. 나 역시 저들이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돌아간다 한들 희망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참담한 풍경이 반복되면서 나도 모르게 남아 있는 러닝 타임을 확인했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빗발치는 총탄과 화염 방사기 앞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을 달리는 그들의 둔한 몸짓이 나를 숨막히게 했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이 비참한 시간을 버티고 있는 그들의 심정이 화면 건너편으로 전해졌다.  &nbsp;  “학교 교사, 탄광의 광부, 은행원, 양계장 주인, 시골 지주, 도시 중간계급, 노동자, 농민 등 그들이 격렬한 전화(戰火)의 한복판에서 계속 참호를 지키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무인지대 언저리 저 냉혹한 죽음이 다스리는 그 자투리 땅에서 그들을 버티게 한 것은 무엇일까? 병사들이 참호 밖으로 나와 공격에 나서도록 한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그들을 버티게 했을까?”(『봄의 제전』 289p)  &nbsp;  원작인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는 작가의 체험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상상된다. 그가 16살 때 전쟁이 났고, 2년 뒤 1916년 11월에 사범학교를 다니던 중 징집되었고, 1917년 플랑드르에서 처음으로 최전선의 전투를 경험했다고 한다.(『봄의 제전』467p)    &nbsp;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전선 이상 없다』에는 영화의 대비적 이미지 보다는 화자인 파울의 마음에 집중한다. 그의 심상에 떠오르는 문장들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잔인하고 허무하다. 17살인 파울과 그의 동기들 7명은 전선으로 보내져 흩어져 배치되고 죽음을 경험한다. 파울은 자신들이 기대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파울은 “우리는 길을 잃은 것 같다”고 고백한다. 학생이 아닌 전우들은 구두 수선공, 농부 등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는 똑같이 총탄, 장갑차, 화염방사기, 화학전 독가스로 인해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다. 1918년 종전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파울은 끝나지 않는 전쟁에 조바심 낸다. 그 초조함과 실망이 나의 마음을 울린다.  &nbsp;  “1918년 여름 – 불타 버린 전쟁터 위로 부는 희망의 바람, 초조함과 실망의 미칠 것 같은 열병, 두렵기 짝이 없는 죽음의 공포, 이해할 수 없는 물음. 왜? 왜 전쟁이 끝나지 않는가? 그런데 왜 끝난다는 소문이 솔솔 나도는가?”(11장)  &nbsp;  기다리는 동안 그들은 더욱 전쟁에 나가는 것이 힘들어지고, 여전히 어쩌면 더 많은 죽음들을 경험한다. 희망과 실망을 반복하는 파울 보이머에게서 우울과 당혹감을 엿보게 된다. 반면 그의 눈에 비친 나무들, 빨간 마가목 열매는 아름답기만 해서 처절하고 더욱 허무하다.   &nbsp;  “하지만 1918년 여름에 출정은 계속되고 죽음도 그치지 않는다. 비록 초라한 모습이긴 하지만 이곳 생활이 지금처럼 우리에게 간절히 여겨진 적은 없었다. 우리의 숙소 주변 초원에 피어난 붉은 양귀비꽃, 풀줄기에 달라붙은 매끈매끈한 닥정벌레, 어스름하고 서늘한 방 안에 스며드는 따스한 저녁노을, 해 질 녘의 신비스러운 검은 나무들, 하늘에 떠 있는 별들과 흐르는 물, 꿈들과 오랜 수면-아, 이런 생활, 생활, 생활!”(『서부 전선 이상 없다』 11장)  &nbsp;  그리고 “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고 작가는 쓰고 있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lt;서부 전선 이상 없음&gt;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로 마치며, 자고 있는 것처럼 땅에 쓰러져 있는 파울의 몸을 조명한다.  &nbsp;  종전 소식을 기다리는 전쟁 지역의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대피 사이렌과 폭탄 터지는 소리로 시끄러웠던 도시의 밤이 당분간 조용하려나? 죽음의 공포를 겪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국가의 권력자들은 수많은 셈법과 경우의 수를 따져 이익이 되는 조항들을 매일 갱신하고 있다. 이 전쟁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사람들도 나름의 예측과 전망을 통해 종전의 때를 점치고 있다.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고 그 시간이 언제 올지 불안한 가운데 어디선가 적막을 깨는 폭격 소리에 실망하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87/35/cover150/893290984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873512</link></image></item><item><author>그레이스</author><category>한국소설</category><title>길티 플레져, 죄의식과 욕망에 관하여. - [혼모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166763</link><pubDate>Sun, 22 Mar 2026 22: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64042294/1716676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959&TPaperId=1716676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01/66/coveroff/s7621373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32137959&TPaperId=1716676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혼모노</a><br/>성해나 지음 / 창비 / 2025년 03월<br/></td></tr></table><br/>인터뷰에서 작가는 글을 쓸 때 두려움을 느낀다면서, ‘잘 쓰고 있나’ ‘인물이 윤리적인가’ ‘고증이 확실한가’와 같은 자기 검열을 자주 한다고 고백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이런 인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불편한 것을 애써 감추는 건 기만이고, 시대에 어떤 도움이 되는가’ 이런 질문들을 오래 논했다는 작가의 말이 맴돌았다.(시사In) 인물들과 이야기에서 작가의 고민에 공감되는 지점들이 있다. 나 역시 다 읽고 나서도 그 이유 때문에 오랫동안 리뷰를 할 방향을 찾지 못했었다.  &nbsp;  모 배우의 한 줄 평이 카피라이팅 슬로건(copywriting slogan)이 되었다. 그의 영향력 때문에 과장된 경향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둘째가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읽고 소설 넘 신박하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도, 다 읽은 책을 소장하기 위해 구입하는 것을 보고도&nbsp;아이의 취향이겠거니 하고 읽어야 할 책 순서에서 뒤로 미뤄 놨었다. 막내 아이도 읽고 좋았다고 하고, 지인들도 좋은 평가를 하고, 그제서야 책을 옆에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nbsp;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자는 의견이 나오고서야 읽기 시작했다. 확 빨려들어가고 신박한 느낌은 들었다. 계속해서 긴장시키는 부분도 있었다. 독서모임 회원들은 만난 순간부터 정말 좋았다고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나는 마음이 불편하지? 방어벽을 쌓았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  &nbsp;  인물들이 주는 불편함이 너무 컸다. 선과 악, 윤리적이고 비윤리적인 문제는 아니다. 인물들이 경계에서 줄을 타고 있어서, 사유라는 게 없어서, 작가가 그들을 위해 변명을 하고 있는 듯해서 무서웠다. 작가는 중립적인 자리에서 독자들에게 생각할 문제를 던지기도 하지만, 그래도&nbsp;짧은 문장 안에서도 작가의 철학은 묻어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nbsp;독서모임에서 회원들과 토론하면서 나는 철학 없이 재미로 읽는다면 차라리 영화를 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nbsp;<br>미디어와 텍스트는 어떻게 다를까? 나의 경우 독자의 사유에는 텍스트가 더 선명한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는&nbsp;기이한 상상인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nbsp;주제는 무겁다. 내 경우, 망막을 통해 들어온 이미지는 사라지거나 그 세계 안에 머물거나 인상적인 몇 장면을 남기거나 하는 정도로 생각을 만든다. 반면, 텍스트 한 단어 한 문장이 그대로 들어와 각인되고 비평과 수용을 통해 사유가 된다. 그래서 더 선명하다.   &nbsp;  읽은 후 몇 달 동안 작가의 펜이 향하는 방향이 어디일까 고민 했다. “권력에 복무하기보다는 항거하며 시대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작은 지점을 찾아가는 게 문학의 몫이라 생각한다. 그중 하나가 ‘기억’이고, 그것을 오답 삼아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나”라고 한  작가의 말에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여전히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는 듯한 뉘앙스에는 마음이 쿵 내려앉는 불안을 겪는다.  &nbsp;  등장인물들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들의 경향성은 우리 시대정신이지 않을까? 특히 「혼모노」에서 무당이 섬기는 할멈 신이 그 정신의 극단적 상징이다.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의 내용이 대부분 그렇지만 이 「혼모노」는 최근 내란과 그 배후 사건들과 관련하여 더욱 시의적이다.  &nbsp;  혼모노(ほんもの)는 일본어로 ‘진짜’, ‘진품’을 뜻한다. 일본 문화에서 이 단어는 장인정신의 상징이다. “저 사람은 진짜 혼모노다”라고 말하면, 그 분야에서 더 이상 증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한편 집착적인 오타쿠를 뜻하는 은어로 쓰인다. 그렇게 '혼모노'는&nbsp;진품에서 비정상으로, 찬사에서 조롱으로 의미가 달라진다.  &nbsp;  우리가 오타쿠처럼 집착하며 욕망하는 실체는 무엇일까? ‘길티 플레져’, 죄의식을 동반하는 즐거움일까? 죄의식은 무엇에 대한 것일까? 누군가를 추앙하는 팬클럽 회원들 각자에게 숨겨진 의도에 대한, 순수하지 못함에 대한 것일까? 누군가를 추앙하는 것, 진실이 무엇이든 무조건 믿는 것이 스스로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때문일까? 그들은 배타적 언어와 규칙들과 가식적인 대화와 가장된 호의로 의구심들을 덮는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모인 가짜들이다. 그들은 마치 이빨과 발톱이 빠진 호랑이를 만지는 것과 같이, 진실이 아닌 허위의 대상을 추앙하는 아니 자신의 욕망을 추앙하는 사람들이다.  &nbsp;  '구의 집'이라는 이름에는 누군가의 범죄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감금과 고문을 위해 지어진 이 건물을 설계한 주인공은 구보승이지만, 이것을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자는 그의 스승 여재화이다. 대학원생이던 구보승에게 설계를 맡기고, 그 설계대로 세워진 건물에 이름을 ‘구의 집’이라고 명명한 것은 자신의 죄와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이다. <br>이 작품에서 구보승은 이 건축물 설계에 엄청나게 집중하고 그것이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의의를 부여한다. 재능도 의욕도 없어 보이던 대학원생 구보승이 뜻밖에 열정과 비상한 재능을 보이며&nbsp;설계에 구현한 공간은 감금과 고문, 의도된 자백을 받아내기에 최적화된 건물이다. 구보승에게 결여된 것은 무엇일까? 두 사람 중 누가 혼모노이고 니세모노(가짜)일까? <br>‘민주화 운동 기념 사업회’&nbsp;홈페이지에서&nbsp;‘남영동 대공 분실’의&nbsp;빈틈없이 용도에 최적화된 정교한 설계가 담겨진 도면을 볼 수 있다.&nbsp;이 건물은 한국의 유명한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고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nbsp;  왜 작가는 한 건축가의 설계가 아닌 그야말로 무기력한 무사유의 인간이 그를 대리하게 했을까? 그 유명한 건축가를 변명하는 듯 보여 오랫동안 고민했다. 두 사람 다 설계를 의뢰받는 순간부터 건물의 용도를 알고 있었다.&nbsp;한 사람은 정의나 인륜 같은 것에 무심한 채 순간의 욕망과 성취감에 충실했고, 다른 한 사람은 사회적 명성, 사회적 지위때문에 거절할 수 없는 범죄에 다른 사람을&nbsp;가담시키고 그에게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결론은&nbsp;그가 끌어들인 사람이 한 명 두 명 백 명으로 늘어난다 하더라도 그는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nbsp;  타인의 안위나 사회적 정의와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정신을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위험하다. 그 극단적인 정신의 형태가 「혼모노」의 할멈 신이다. 박수무당이 30년 간 섬기던 신은 다른 신애기에게로 옮겨간다. 그 귀신 조차 자신의 이익을 따라 옮겨다니는 것이다. 그런 신에게 자신의 안위를 의탁하고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국가와&nbsp;많은 사람들을 위해야 할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과 부를 지키기 위해 신당을 찾는 욕망이 낳을 결과가 얼마나 비윤리적이고 부도덕할지는 자명하다.  &nbsp;  이것이 시대정신의 경향성이다. 단편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인의 욕망만을 추구한다. 타자들 혹은 공동체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 아니 그런 것들을 생각할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직관적인 죄의식만을 희미하게 갖고 있는 것 같다. 습관이 된 이런 경향은 죽음의 위험을 당한 혈육 앞에서도 자신의 자존심과 욕심을 우선순위에 놓는 어리석음을 낳는다.   &nbsp;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것을 극대화하려는 욕망은 자연스럽다. 시류에 합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게 죄가 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욕망만을 추구하고 이익만을 챙기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고 경향이 된 존재가 개별자로서 혹은 집단을 이루어 괴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상상해본다. 무섭고 두렵다. 그게 내가 되지 않으란 법이 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101/66/cover150/s7621373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1016676</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