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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하루 -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 ㅣ 하루 시리즈
이한우 지음 / 김영사 / 2012년 11월
평점 :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이 책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중얼거린 조선임금의 묘호 첫자리 순 입니다. 남들은 다 외우고 있다는 저 짧은 27자를 저는 오늘에서야 외웠습니다. 국사를 싫어하나보다, 암기하는 것도 싫어하나보다 생각하신 분 있으시죠? 하하 사실 저는 역사교육 전공을 지원한 적도 있고 역사과목에 흥미가 많은 사람입니다. 진짜로!!
많은 사람들이 아시다시피 공무원 과목에 한국사 과목이 있습니다. (교원임용에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봐야한다고 들었습니다) 이왕 한국사 공부하는 거 제가 좋아하는 책을 읽으면서 하고 싶어서 요즘 역사에 관련된 책 읽기에 돌입했습니다. 남들 눈에 비능률적이라고 보일지도 모르겠지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방법 추천하고 싶습니다. "수험은 학문이 아니다, 합격하고 나서 더 공부하고 싶으면 하라"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이지만 저는 제 고집대로 해 보렵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즐기면서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한국사 기본서(수험서)만 공부하는 대신 한국사에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으며 공부하는 방법의 좋은 점이 벌써 한가지 분명하게 나타났습니다. 전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태정태세문단세…"를 찾아서 외워보았습니다. 학교다닐때도 외우지 않았고, 한국사를 가르치는 강사가 외우라고 해도 미뤄두었던 암기를 저 스스로의 의지로 잘 외웠습니다. 역시 학습은 자발성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수험서에 나오지 않은 왕의 하루하루가 눈앞에 그려지고, 강사의 말이 뒤늦게 '번쩍'하고 이해가 갑니다. 이렇게 독서로 얻어진 풍부한 정보는 기억력을 강화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보세요 잘 외우고 있지요? 요즘 다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고 있는데요! 18,19권은 아직 한번도 안 읽었고, 다시 처음 1권부터 읽기 시작해 9권 인종 · 명종 편을 읽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정순헌철고순 이 부분은 순전히 암기만 되어 있는 상태라 살짝 버벅거려집니다. 정조까지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도 읽었고 이 책에서도 자꾸 나와서 반복이 되고, 앞뒤 맥락을 아니까 잘 외워집니다.
이래서 이해를 기반으로 암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하
평소 가벼운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또 그런 책들은 읽다보면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이 잘 보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서평은 주로 가벼운 책들 위주로 써 왔는데, 거의 역사교과서와 다름 없는 이 책을 읽고 도대체 어떻게 서평을 써야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책 제목처럼 왕의 하루를 가상으로 쓴 부분은 개인적으로 별로였습니다. 어렸을 때 가상신문만들기 과제로 역사 속 인물과 인터뷰를 하면서 쓴 글을 뒤늦게 발견하고 읽는 느낌이 났습니다. 그리고 오래전에 읽은 정경모의 『찢겨진 산하』라는 책이 떠오릅니다. 그 책은 김구·여운형·장준하의 상상의 대화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일관성있게 잘 쓰여진 책입니다. 그래서 이 책도 그와 유사한 형식으로 국왕의 '하루'만을 제대로 잘 담아내는 책이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저는 실록과 사관이 미처 쓰지 못한 비밀의 역사는 이 책에 없다고 봅니다. 『조선출판주식회사』라는 책을 함께 읽고 있는데요 - '나라는 망할 수 있으나 역사는 없을 수 없다'는 역사의식을 가지고 조선의 국왕을 비롯한 통치자들이 실록 편찬을 국가의 중대사로 여기고, 인력과 물력을 적극 동원하여 실록을 간행해 온 그 피나는 노력들이 있었기에 조선사를 주제로 한 수 많은 책들이 존재할 수 있는 거라 봅니다.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아하, 그렇구나' 싶었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주로 교과서에 나오는 인물들이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제자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는데요- 토막토막난 역사 속 많은 낯선 이름들을 암기할 대상이 아니라 쭉 어떤 일관된 흐름 속에서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딸이었기에, 제자였기에 그들이 할 수 밖에 없었던 선택들을 드라마나 영화를 보듯이 차분하게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 교과서 참 재밌네요^^ 요새 아이들은 이렇게 공부하는가봐요
위에 나온 사극 들 중 하나도 본 게 없습니다. 단순히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사극드라마를 꺼렸었는데,(누가 누군지 정말 모르겠더라구요) 선덕여왕과 공주의 남자는 봤습니다.^^ 공주의 남자 덕에 '문단세'는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하하
하지만 이렇게 역사는 수 많은 인물들이 모여서 만들어 가는 거 였습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역사를 단순한 사실로만 여기고, 짜맞추기 놀이처럼 공부해 왔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답을 고르기 위한 역사 공부, 객관식 시험의 폐해때문일까요?
우리 선조들이 필사적으로 남기고자 했던 우리 역사 기록! 그 기록을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게 여겨 본 적이 없었네요. 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하며 어떻게 공부해야할까? 다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소중한 우리의 유산을 우리 아이들에게 잘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한번 더 읽어야겠습니다. 그 때도 여전히 "태정태세문단세…" 읊어가며. 그 때는 좀 더 총체적으로, 큰 흐름을 따라가며, 관망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