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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의 꿈 맨발의 여행자 - 낯선 이름의 여행지 동티모르의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달콤한 이야기
박성원 지음, 정일호 사진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평점 :
낯선 이름의 여행지, 동티모르. 그 낯선 이름이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이라는 것은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나서고 싶은 욕심이 한 몫 한다. 그 때문인지 친숙한 곳 보다는 낯선 곳이 더더욱 사람의 발길을 재촉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잡아끌곤 한다. 최근 <맨발의 꿈>이라는 영화로 우리에게 찾아 온 곳의 배경 역시 동티모르다. 동티모르에서 축구를 가르친 전 축구선수 김신환 선수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그래서 인지 이 책 속에서도 김신환 선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 당시 직접 축구를 했던 소년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어쩐지 타지에서 무언가를 이룩해 낸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언저리부터 시큰하고 뿌듯해지곤 한다.
이 책은 다소 사진을 보는 재미는 다른 여행 에세이집에 비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책 속에 담긴 글은 어느 정도 내 마음을 움직였고, 공감을 일으켰다. 간섭하지 말고, 비교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저자의 말처럼 이는 우리가 갖고 있는 선입견을 깨부수는 일이다. 비단 나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 역시 너무도 많은 것들을 단편적인 시선과 개인적인 감정으로 바라보지는 않았는가. 글 속 소녀처럼, 그저 지니고 있는 기타로 인해 풍족한 행복을 느낀다면 그것이 행복이자 기쁨인 것인데, 엉켜있는 기타 줄을 애써 맞춰주겠다 나서 외려 기타 줄을 끊어 먹고 말았다. 그 그대로가 소녀에겐 행복이 되고, 꿈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인데 말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그대로의 온전한 것들을 자신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오기를 부렸는가 말이다.
나는 비오는 날을 참 좋아한다. 비바람을 동반한 강풍이 아니라 온전히 쏴- 하고 내리는 소나기를 말이다. 그럴 때면 간혹 밖으로 뛰쳐나가 흠뻑 비에 젖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것이 너무도 시원해 보여서 말이다. 시원하게 비가 내리는 거리를 맘껏 내달리는 동티모르의 소년과 소녀들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도 그 충동을 다시금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온 몸을 감싸는 빗줄기. 그 거센 빗줄기에 많은 것들을 흘려보내고 싶기 때문일까. 그리고 비오는 날의 축 처지는 그 묵직함과 아련함 역시도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다. 결코 가볍지 않은 그 감정. 그것은 슬픔이자 즐거움이었고, 기쁨이었다. 가끔은 빗줄기에 내 몸을 맘껏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 빗줄기에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내 보는 거다. 아주 개운하고 시원하게 말이다.
여행은 새로운 무언가를 깨닫고,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모험이기도 하지만,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벗어나 평온하고 나른한 휴식을 취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가 여행 도중 방갈로에 들어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홀로 보내는 시간을 바라보며 그 역시도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했다. 나 역시도 가고 싶은 여행지 중 한 곳이 이탈리아의 오르비에토인데, 그 이유가 바로 편안함과 나른함, 느긋한 여유를 즐기고 싶은 연유에서였다. 작은 마을에서의 평화로움, 그 곳에서는 마치 시간마저도 느리게 움직일 것만 같다. 이러한 여행 역시 꿈꾸는 것은, 간혹 이런 잔잔함 속에서 인생의 여유와 반환점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엉뚱하게도 바다 위를 날아가는 나비들이 있다. 한없이 이어진 바다에서 나비들이 바닷바람을 이기며 길을 찾으려면, 수 만 번의 날개 짓이 필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나 역시도 그런 적이 있었다. 많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조금씩 부족했고, 가까이 있는 줄 알았는데 한 참을 지나쳐 멀어져 버린 길. 인생을 살면서 이런 좌절과 쓰린 기억을 몇 번이나 맛보았던가.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고통과 아픔을 겪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하고, 바다를 뛰어 넘는 나비 역시 존재하는 것이리라. 좌절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 역시 목표와 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동티모르 사람들은 악어를 조상이라 섬기며 절대 해치지 않는다. 또한 악어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알아보고, 나쁜 사람들만 해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악어와 마주쳤다면, 악어는 나를 해치려고 공격을 가할까, 아니면 아무렇지 않게 나를 피해갈까. 과연 나는 좋은 사람일까, 나쁜 사람일까. 썩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으니 악어의 공격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동티모르에 가게 된다면 악어만은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이 책 속의 글을 읽으며, 참으로 행복하게 지친다는 저자의 말이 계속해서 잊혀지지 않은 채 머릿속에 맴돌았다. 여행 자체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낯선 환경에 놓인 채 두렵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적응하느라 지치고 힘들면서도, 그것이 가슴 벅차도록 행복한 것. 그것이 바로 계속해서 사람들을 떠나게 만드는 여행의 최고 매력이 아닐까 싶다. 그 중독성에 빠져 다시금 여행자의 길로 나서게 만드는 것이다. 행복하게 지친다는 말을 들으니, 더더욱 여행이 떠나고 싶어지는 이 마음. 계속해서 들뜨는 기분이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저자는 여행 중 만난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픈 강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이 질문은 돌고 돌아 내게도 의문점을 남겨놓았다. 과연 나는 행복한가? 이 책에서 넌지시 말하고 있듯 행복은 말 그대로 일상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 그 삶 속에서 행복을 찾고, 그 삶 자체가 행복인 것이다. 그리 생각하면 나는 참 행복하다. 행복한 삶을 살아왔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바다와 하늘이 아름다운 저자의 마지막 여행지, 아따우로를 바라보며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신 역시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