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불타는 골방 (바라 서재) &gt; 냄새나는 극장</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category/2196158</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vitam impendere vero</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6 May 2012 09:24:12 +0900</lastBuildDate><image><title>바라</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25516154514779.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category/2196158</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바라</description></image><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정성일 인터뷰</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4061936</link><pubDate>Mon, 30 Aug 2010 0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406193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615442&TPaperId=406193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53/96/coveroff/895561544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615434&TPaperId=406193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753/95/coveroff/8955615434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00827203554&#160;&#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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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없는 관객…그들에게 보여줄 '영화'는 없다"<!--/DCM_TITLE--><!--KWCM_TITLE_END_1--> <br />

<h4>[프레시안 books 인터뷰] 영화평론가 정성일</h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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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8-27 오후 10:03:3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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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집이라는 장르 혹은 형태는 독특한 독서를 요한다. 독자가 어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그 영화에 대해 쓴 평론 파트는 읽지 않고 그저 건너뛸지도 모른다. 혹은 거꾸로 그 평론을 읽기 위해서 그 영화를 기어이 찾아볼지도 모른다. 텍스트를 한 번에 읽어 내려갈 수 없는, 끊임없이 텍스트 바깥의 이미지가 간섭해 들어오고 독자로 하여금 독서 이외의 행위를 하도록 촉구하는 것이야말로 평론집의 특징일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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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펴낸 평론집 &lt;필사의 탐독&gt;(바다출판사 펴냄)과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정우열 그림, 바다출판사 펴냄)는 그보다 더 복잡한 형태의 독서를 요한다. 1989년 창간한 영화 잡지 &lt;로드쇼&gt;의 편집차장을 시작으로, 1995년 창간됐고 한국의 시네필 문화에 지대한 기여를 한 영화 잡지 &lt;키노&gt;의 편집장이자 혹은 1990년대 중반 라디오 프로그램 &lt;정은임의 FM영화음악&gt;에 출연하여 새로운 영화들을 청취자에게 소개했던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아는 이라면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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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의 글은 일반적인 영화 '감상문'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한국의 영화평론계에서 독보적이고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한 편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필사적으로 '본다'. 독자 역시 그 글을 읽으며 그의 시선을 경유하여 그 영화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는 독자가 거기서 멈출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시선을 경유하지 말고 결국엔 당신 자신의 시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독려하고 선언한다. 이 책을 읽으며 독자는 수동적이 아니라 매우 적극적이 되어야 한다. 정성일을 따라잡기 위해서, 혹은 그를 뛰어넘기 위해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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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정보와 가벼운 감상평을 공유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쩌면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혹은 더 확장된 삶의 태도를 고민하는 독자라면, 이 두 권의 평론집을 통해 확장과 공감과 배움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이다. 8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렸던 시네마디지털서울영화제 프로그램 디렉터로서 한창 바쁜 시간을 보내던 그를 인터뷰하며, 평론집에 얽힌 궁금증들을 질문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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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평론가 정성일.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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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평론가로서 오래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건 첫 번째 평론집을 내기까지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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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자체를 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른 다음 남는 건 영화지, 그 영화에 관한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둘러싼 글이라는 건, 그 글이 쓰인 특정 시간 동안 유효할 뿐이며 소설처럼 계속 읽힐 순 없다. 매우 미안한 얘기지만 그 시들이 남지, 시집 뒤의 김현의 평이 남진 않을 것 같다. 혹은 그 소설들이 남지, 그 소설에 관한 김윤식의 평이 남을 것 같진 않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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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그건 비평의 운명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영화에 대한 글은 그것이 발표된 지면의 운명과 함께 한다. 만일 지면이 오래 남는다면 그 글도 오래 남을 것이고 지면이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된다면 그 글도 그 운명을 따라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태가 좀 변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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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터넷이 생기기 이전부터 글을 쓴 사람인데, 인터넷이 활성화되자 예전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글들이 되돌아오고 다시 떠돌기 시작하고 무한 자기 증식을 시작했다. 어쩌면 이 글들이 다른 방식으로 소멸하거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나서서 책으로 내겠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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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임권택 감독(&lt;임권택이 임권택을 말하다&gt;(현실문화 펴냄))과 김기덕 감독(&lt;김기덕, 야생 혹은 속죄양&gt;(행복한책읽기 펴냄))의 이름 뒤에 숨어서 머물고 싶었다. 첨언하자면, 김기덕 감독 인터뷰를 올해 초에 한 달 반 동안 새롭게 진행했다. 그 책은 아마 올 겨울에 나올 거다. 임권택 감독도 인터뷰를 새로 했다. 감독님의 신작 &lt;달빛 길어 올리기&gt;에 관한 인터뷰까지 추가한 다음, &lt;달빛 길어 올리기&gt; 개봉에 맞춰 출간할 예정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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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t;필사의 탐독&gt;(정성일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 오랜 시간 생명력을 유지하는 훌륭한 평론집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프랑소와 트뤼포가 앨프리드 히치콕을 인터뷰한 &lt;히치콕과의 대화&gt;(한나래 펴냄) 같은 책 말이다. 당신이 편집장으로 재직한 영화 잡지 &lt;키노&gt;에서도 그런 책들을 전략적으로 소개하고 칭송했는데, 왜 본인의 평론집에 대해서는 그렇게 주저한 건지 궁금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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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큼 훌륭하지 못하니까. 그 사람들이야 워낙 눈이 밝은 사람들이니까. 예전에 프랑스 영화 잡지 &lt;카이에 뒤 시네마&gt;의 1959년판을 구해 읽은 적이 있다. 그때도 별점을 매기더라. 루이 말의 &lt;사형대의 엘리베이터&gt;(1958년)와 장뤼크 고다르의 &lt;네 멋대로 해라&gt;(1959년)의 별점을 보고 흠칫 놀랐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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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사형대의 엘리베이터&gt;는 대부분의 비평가들에게 그 해의 새로운 영화라는 찬사를 받았고,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lt;네 멋대로 해라&gt;에 대해선 '어린 평론가가 감독을 한답시고 되게 서툴게 할리우드 영화에 오마주를 바친 철없는 영화'라는 평이 주류를 이뤘다. 그런데 &lt;카이에 뒤 시네마&gt;의 당시 평론가들, 나중에 우리가 눈여겨보게 되는 그 감독들인 에릭 로메, 자크 리베트, 프랑소와 트뤼포 등의 별점을 보면 &lt;사형대의 엘리베이터&gt;에 별 하나, &lt;네 멋대로 해라&gt;에 별 넷을 줬다. 이쯤 되면 이 사람들이 좀 무서워지는 거다. (웃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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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영화가 시간을 견디고 남을지를 당대에 딱 알아본다는 거, 정말 대단하다. 그런 안목은 훔치고 싶지. 내게 그런 안목이 있는가에 대해 끝없이 의심스럽고, 종종 시간이 흐르고 나면 예전에 그 영화를 잘못 봤구나 후회하기도 하고. 여담이지만, &lt;씨네21&gt;의 20자 평이 결정적으로 재미없는 건 대부분의 영화에 별 셋, 혹은 별 셋 반을 주기 때문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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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 영화와 저 영화의 차이가 뭔지를 알 수가 없다. 별 하나를 주는 경우는, 굳이 안 봐도 별 하나짜리인 줄 아는 영화뿐이다. (웃음) 그건 곤란하지 않은가. 물론 그의 안목과 그의 평, 그의 설명이 영화만큼 오랜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이젠 교양이 되어버린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수잔 손탁, 앤드류 세리스 등. 하지만 대부분의 비평문이 그만큼 시간을 견딜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글쎄…….<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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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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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문에서 편집자와 3년 전 "첫 영화를 찍은 다음 책을 내겠다"고 약속했고 정말 &lt;카페 느와르&gt;를 마치고 난 다음 두 권의 평론집을 출간하게 된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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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출판사 편집자가 3년 전에 처음 전화해서 책을 내자고 제안했다. 이리저리 도망을 다녔다. 아직 낼 때가 안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대체 이유가 뭐냐고 묻는데, 마땅한 핑계거리가 없다. 마침 &lt;카페 느와르&gt; 제작 준비 단계여서, 첫 번째 영화를 찍고 나서 책을 내겠다고 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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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정말 연락이 끊겼고,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lt;카페 느와르&gt;가 상영된 직후 전화가 왔다. "자, 이제 책을 내실 때가 왔습니다." (웃음) 그래서 진행하게 됐고, 대신 한 가지 원칙을 내세웠다. 여기에 실릴 글은 내가 고르지 않았다. 이를테면 &lt;필사의 탐독&gt;은 21세기에 발표된 한국 영화로 한정하자는 원칙 하에 에디터가 내 평론 중 일부를 선택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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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다른 에디터가 일했다면 &lt;필사의 탐독&gt;은 전혀 다른 내용이 됐을 수도 있다.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도 에디터와 (일러스트를 그린) 올드독(정우열)이 함께 글을 선정했다. 그 권리를 그들에게 넘김으로써 그런 결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고 할까? 음…나는 책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다. 책이라는 물적 존재에 대해서.<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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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글이라도 책에 실린 글은 다르다. 내가 사방에서 썼던 글들이 샘물처럼 흘러들어 고여 한 권의 책이 된다는 것, 한편으론 그 호수의 고요함과 깊이가 좋지만 또 한편으론 호수의 특징 중 하나가 '썩는다'는 점이다. 뭔가 생각이 멈춘다는 게 싫었다. 내가 글들을 직접 선택한다면, 상당히 긴 시간 동안 내가 이 책에 붙잡힐 거란 생각도 들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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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필사의 탐독&gt;에 실린 평론의 순서는 영화의 개봉 순서와 맞지 않다. 예를 들어 2006년 7월에 개봉한 &lt;괴물&gt; 다음에 6월의 월드컵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이유가 궁금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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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한테 그렇게 부탁했다. 이 책이 연대기로 읽히길 원치 않는다고. &lt;필사의 탐독&gt;이 행여나 21세기 첫 10년간의 한국 영화사로 읽히길 원치 않았다. 그저 10년이라는 하나의 덩어리로 받아들여지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이 언제나 순서대로 간직되는 건 아니지 않나. 개봉 순서보다는 책 전체를 쭉 읽어나갈 사람들의 독서의 리듬을 더 많이 생각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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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글이 다루고 있는 영화 자체의 리듬이기도 할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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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다. 혹은 한 가지 더. 그 영화에 접근한 방식의 리듬도 고려했다. 어떤 것은 비평, 어떤 것은 인터뷰, 어떤 것은 현장 방문이다. 난 '현장 방문은 비평이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비평에는 서로 다른 태도가 있다. 현장 방문과 인터뷰 역시 하나의 비평적 태도다. 어떻게 보면 아카데미에서 시작한 비평가가 아니라, 현장에서 기자로 시작한 비평가인 내가 갖는 메소드의 스펙트럼이랄까,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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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훈련받은 비평가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인터뷰나 취재에는 현장에서의 훈련과 경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난 비평가 후배들이 영화를 본 다음 책상에서만 비평을 쓰는 게 굉장히 불만스럽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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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존경하는 비평가들은, 예를 들어 세르주 다네를 보자. 그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를 보다가 그 영화 속 바람이 궁금해졌다. 아무리 영화를 들여다봐도 바람을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모르겠어. 그럼 방법은 하나다. 현장에 가는 거다. 아키라가 자기의 프레임에서 어떻게 바람을 창조하는가를 견학하러 가는 그런 태도, 또는 프랑소와 트뤼포가 에릭 로메와 함께 히치콕의 &lt;이창&gt; 현장을 방문하여 그 메소드를 구하고 싶어 하는 태도, 오즈 야스지로와 동시대를 살지 못했던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오즈의 촬영 기사와 긴 인터뷰를 하며 오즈의 창작의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그 태도가, 지금의 비평가들에게는 명백히 결여돼 있다. 말하자면 호기심의 빈곤, 한편으로는 맹렬한 비평적 애티튜드의 결함이라고 생각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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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영화라는 건 책상에 앉아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만일 후배 비평가들이 &lt;필사의 탐독&gt;이라는 책을 필요로 한다면, 특정 영화들에 대한 나의 견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메소드를 생각해주었으면 고맙겠다. 책상에서만 쓰인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 현장에서, 한편으로 감독과의 인터뷰로 영화에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주었으면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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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필사의 탐독&gt;에서 제외된 영화, 제외된 평론에 대해서는 본인으로서도 아쉬움이 남겠지만,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을 알지 못하는 독자들로서도 많이 궁금해 할 것 같다. 이를테면 2004년에 중요하게 다뤄졌던 한국 영화에 관한 글들은 여기 없다. &lt;송환&gt;, &lt;빈 집&gt;, &lt;귀여워&gt;, &lt;마이 제너레이션&gt; 같은 영화들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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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lt;사랑니&gt;도 빠졌다. 마음 속 한편으로는 이 글이 왜 빠졌지 하는 생각은 분명 있다. 하지만 영화의 상영 시간이 결정된 것처럼 책의 쪽수도 결정되어 있는 것이니까. 게다가 이건 전집이 아니다. (웃음) 다음 기회를 기다려보자.<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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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손문상)
        
    

- 두 권의 표지는 각각 어떻게 선택한 건가. &lt;필사의 탐독&gt;은 &lt;생활의 발견&gt;에서 경수 역의 김상경이 비 맞으며 손을 내려다보는 장면을 선택했고,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는 &lt;알파빌&gt;의 안나 카리나가 폴 엘뤼아르의 시집을 쥐고 있는 장면을 선택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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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부터 얘기해보자. &lt;알파빌&gt;에 끌렸던 이유는, 영화 속 도시 알파빌에서 '사랑'과 '왜?'가 금지돼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네필들에게 부족한 건 그 두 가지가 아닌가 싶다. 영화에 대한 사랑, 그리고 영화를 본 다음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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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나와선 "별 두 개야" 혹은 "별 넷이야"라고 말한다. 그 외에는 어떤 궁금증도 없다. 혹은 어떤 관객은 너무 근심어린 얼굴로 "큰일이야. 이 영화 백만이 안 될 거 같아"라고 한다. 아니, 근데 그걸 자기가 왜 걱정하냐고! (웃음)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의 표지를 보면, 안나 카리나가 이렇게 폴 엘뤼아르의 책을 들고 허공을 바라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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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두 가지 뜻이다. 첫째, 영화를 읽지 말고 보세요. '영화를 읽는다'라는 말은 아카데미가 만들어냈는데, 사실 영화를 '읽으면서부터' 영화에 대한 비평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본 걸 이야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영화에서 보지 못한 걸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지젝이나 들뢰즈 같은 온갖 이론가들이 필요해진다. 하지만 우리의 시작은 '본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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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그 영화를 볼 땐 교양을 잊지 말아주세요, 교양의 바탕 위에서 생각해주세요. 만일 여러분들이 '교양은 필요 없고 영화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영화는 과연 기뻐할 것인가. 교양 없이 얻어낸 그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lt;필사의 탐독&gt;의 경우, &lt;생활의 발견&gt;의 경수가 손금을 바라본다는 행위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본다는 뜻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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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비평가로서 지금의 영화를 정확하게 읽는다면 한국 영화의 과거를 볼 수 있다. 현재는 과거의 결과니까. 말하자면 과거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한국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미래까지 예측할 수 있다. 대신 그걸 남에게 맡기지 말고, 자기 운명은 자기가 보자는 뜻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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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장면에 굉장히 마음이 끌렸고, 한편으로는 이것이 이 책의 태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디터에게 부탁했다. 다른 순서는 뒤섞어도 괜찮지만 이것만은 지켜달라고. &lt;필사의 탐독&gt;에서 죽은 자에 대한 애도가 제일 처음 들어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고(故) 정은임 아나운서에 바치는 추모사가 끝나자마자 시작하는 원고가 &lt;생활의 발견&gt;이었으면 좋겠다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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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정성일 지음, 정우열 그림, 바다출판사 펴냄). ⓒ바다출판사
        
    

- &lt;필사의 탐독&gt;의 첫머리는 고 정은임 아나운서에게 바치는, 지금은 가고 없는 영화 친구를 향한 애도다. 그리고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은 올드독이라는 새로운 영화친구를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두 책의 첫머리가 그렇게 대구를 이룬다. 그건 결국 가고 없는 친구를 그리워하고,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면서 동시에 독자에게 '나의 새로운 영화 친구가 되어달라'고 초대한다는 인상을 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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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생각하다가) 지금 내가 믿는 정치학은 딱 하나다. 우정의 정치학. 예전의 시네필들은 영화의 친구를 애타게 찾았고 그들과 무리지어 다니고 주말엔 중국집에 모여 자장면을 먹으며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때로 싸우고 때로 설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1인의 시대다. 개인 블로그, 개인 트위터의 시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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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태그에 걸린 영화에 관한 단어들 때문에 수많은 낯선 사람들이 그 블로그 혹은 트위터를 찾아온다. 그들은 블로그나 트위터의 주인이 누군지 알 리도 없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영화에 대한 이 사람의 관심이 나와 어떤 지점에서 조응하고 있기 때문에 찾아오는 거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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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고 싶다. 우리 시대의 시네필은 그 낯선 이를 환대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블로그들을 읽다보면 보면 종종 거칠게 얘기가 진행된다. 너 오지 마. 난 이렇게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같이 보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좋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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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관에서 영화를 볼 때 가장 감동받는 순간은, 내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장면에 이르러 극장 어디선가 누군가 "아…" 하는 탄식을 지르는 걸 들을 때다. 그 순간 외롭지 않다고 느끼는 거다. 이것이 영화를 보면서 갖는 나의 우정의 방식, 낯선 사람에 대한 환대의 방식인 셈이다. &lt;필사의 탐독&gt;과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 두 권의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건, 다소 하드하고 따분한 표현이지만 우정의 정치학, 낯선 친구에 대한 환대를 생각해달라는 나의 호소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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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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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론들이 원래 실렸던 매체에서 붙인 글의 제목과, 이번에 평론집 내에서 새롭게 붙인 글의 제목 사이에 보이는 긴장감이랄까, 미묘한 차이가 흥미롭다. 어떤 면에선 바로잡고, 어떤 면에선 보충하고, 또 어떤 면으로는 수수께끼 놀이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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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에 내 글이 실릴 때 내가 제목을 붙이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첫째로 제목을 붙이는 건 편집자의 권리니까. 두 번째로, 내 글에 관한 독후감이 바로 그 제목이니까, 제목을 어떻게 붙이는지가 궁금하다. 어떤 경우에는 전혀 이상한 제목이 붙어서 당황하기도 하고, 어떨 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근사한 제목을 붙여 과분하기도 하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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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래도 매체에 글을 실릴 때는 제목이 시의성을 탈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제목이 생뚱맞게 들릴 때도 많다. 그래서 이번에 에디터가 제목을 새롭게 달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각 잡고 단 건 아니고, 한편으론 유머처럼 혹은 그 글에서 미처 말하지 못한 나의 메시지 같은 성격으로 제목들을 뽑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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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에 의존해서 영화평을 써야 하는 것의 힘듦을 기술하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평론을 쓸 당시 영화에 대해 잘못 기억하고 있던 오류를 수정하지 않고 이 책에 그대로 싣는다고도 했다. 내가 본 것과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 사이의 불일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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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분이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장면이 명백히 롱테이크라고 생각했는데 쇼트가 쪼개진 거야. 혹은 그 장면이 명백히 클로즈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카메라가 미디엄 쇼트만큼 물러나 있었던 거야. 예전에 임권택 감독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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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보통 '영혼을 끌어내는 듯한 연기, 그 사람의 고통이 드러나는 듯한 얼굴'이라는 표현을 쓸 때, 어떻게 고통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는 건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감독님은 그런 연기를 시키고 끌어내지 않습니까? 그 비결이 뭡니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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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은 0.5초 만에 대답했다.<br />
<br />
"그거 다 사기여 사기. 그런 게 어딨어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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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다음 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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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연출의 핵심은 착시요."<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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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기억된 어떤 순간이 오히려 연출의 의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금 내가 여기서 당신과 대화하고 있다. 미디엄 쇼트만큼 물러앉아 당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그런데 당신이 어느 순간 손을 입가에 올릴 때, 당신의 얼굴이 딱 클로즈업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연출자는 미디엄 쇼트로 계속 찍다가 배우에게 '어머'하면서 손을 입으로 올리게 한다. 쇼트는 그대로인데, 본 사람들은 나중에 컷이 쪼개졌다고 생각한다. 미디엄에서 클로즈업으로 들어갔다고.<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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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펙티브한 쇼크를 줌으로써 우리의 기억을 건드리는 거다. 그 연출이, 되게 중요하다. 그래서 기억의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내가 지금 수학 문제를 풀거나 팩트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심리적 기준을 갖고 비평을 쓰는 사람이니까 그 기억의 오류를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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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게 더 중요하다. 가장 정확하게 기록하되, 그 안에서 나도 모르게 벌어진 기억의 착시야말로 내가 그 영화랑 소통했던 순간이었던 거다. 사실은, 다음 번에 쓰고자 하는 책의 주제가 착시다. 클로즈업, 롱 쇼트, 투 쇼트 등 영화의 개념들을 죽 설명하는데, 정석적인 설명이 아니라 내가 거기서 오류를 범했던 순간들, 착시를 일으킨 순간들을 쓸 거다. 말하자면 퍼스널한 터미놀로지에 대한 해설이 될 거다. 영화의 매직은 오히려 거기 있는 게 아닌가, 라는 깨달음이 긴 시간 동안 영화를 보아온 나의 결론 같은 것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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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영화를 보고 나서 평을 바로 써야 할 때, 어느 정도까지 메모를 하면서 보는 쪽인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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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를 하지 않는다. 메모하면 영화가 안 보인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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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lt;생활의 발견&gt; 평론 등에서 보이는 신과 쇼트의 수는 어떻게 기록하는 건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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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면서 손가락으로 센다. &lt;생활의 발견&gt;의 경우는 두 번을 보고 쓴 거지만, 대개의 경우는 직접 세어 본다. 칸영화제에서 하루에 6편씩 볼 때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났을 때 장면이 30컷 미만이면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세기 시작한다. 대충 어떤 템포로 흘러가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 그게 아마 지금의 젊은 세대와 나의 차이일 텐데….<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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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디오를 처음 본건 20대 후반이었다. 그 전까지 영화는 오로지 극장에서 봐야만 했다. 한번 보면 끝이다. 이 영화를 내가 소장하기 위해선 기억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영화를 보게 된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내 또래 세대 평론가들의 공통적인 훈련 과정이기도 하다. 정보에 접근성이 용이해질수록 기억의 능력이 퇴보하기 시작한다는 글을 보고 나도 공감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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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영화과 학생들을 보면 리와인드해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막 보고난 영화를 쇼트 바이 쇼트(shot by shot)로 기억하지 못한다. 10분 전에 본 영화를 기억하지 못하는 거다. 기억이라는 능력의 퇴화, 퇴보라기보다는 퇴화가 더 정확하겠다. 그럼으로써 영화의 착시라는 매직을 얻지 못한다. 영화를 보는 중요한 능력 하나를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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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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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필사의 탐독&gt;에서는 2006년 월드컵의 스펙터클에 관한,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에서는 김선일 참수 비디오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영화평이 이어지다가 문득 현실의 이미지를 논하는 그 글들이 등장하는 순간 유독 도드라진다. 이 글들을 저널에 발표할 당시에는 그 무렵의 사회적 현상에 대한 당연한 발언이었겠지만, 몇 년 뒤 책으로 엮일 때 이 글이 포함되어 있는 것에는 어떤 특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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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글 모두, 난 그 글이 활용되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썼다. 말하자면 영화평론가가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 말이다. 평론가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힐 수는 있다. 정치적 사건에 대해 격문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글은 철수가 쓰고 영희가 쓴 거지 영화평론가가 쓴 글은 아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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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영화평론가라면 광화문 촛불 집회 당시, 집회에 참가한 경험을 쓰는 게 핵심이 아니라 그것이 중계되는 방식에 대해 쓰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촛불 집회가 방송에서 올바르게 중계되고 있는가, KBS와 MBC가 이를 중계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그 쇼트의 운영 방식에서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를 읽을 수 있는가. 그것이 평론가가 정치적 임무를 실행하는 방식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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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피겨 스케이팅이 죽여요, 라고 쓰는 건 영화평론가의 글이 아니다. 대신 NHK와 한국 방송의 중계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중계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를 비교할 때 스포츠의 윤리에 대한 평론가의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이나 평론가들이 그 메소드, 그 애티튜드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지고 자기의 방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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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스펙터클에 관한 이 글들이, 월드컵 사진과 김선일 사진이 없이 책에 실린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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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낼 때 원칙 중 하나는, 정말 필요하지 않다면 사진을 삽입하지 말자는 거였다. 많은 이들이 들뢰즈의 &lt;시네마 : 운동-이미지&gt;, &lt;시네마 : 시간-이미지&gt;에 대해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개인적으로 그 책들에게 가장 영향을 받은 건 스틸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거였다. 맨 처음 불어판본을 받아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 무슨 영화 책이 사진이 없어! (웃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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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관습적으로 생각한 셈이다. 하지만 그 책을 읽다가 문득 깨달았다. 이미지가 운동하고 있을 때만 영화이고, 이미지가 시간 안에 있을 때만 영화이다. 그걸 멈춰 세운 스틸 이미지는 이미 영화가 아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태도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이번 평론집에서도 장식으로서의 사진을 빼자고 했다.<br />
<br />
- 평론집에서 당신이 되풀이 강조하는 바는 환상에 대한 거절이다. 관객이 영화에게 기대하는 환상, 영화에서 읽어내려는 환상, 혹은 감독이 제공하는 거짓된 위안으로서의 환상. 그 태도에 대해 어쩌면 찬반의 의견이 갈릴 것 같다.<br />
<br />
나한테 영화는, 결국 로베르토 로셀리니다. 로셀리니가 세상에 대해 보여주는 태도, 영화가 가져야 하는 윤리, 그 윤리가 영화의 형식이 되어가는 과정, 그럴 때에만 비로소 영화가 부서지지 않는다는 믿음. 그러나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동료들을 비판하고 싶진 않다. 서로 다른 견해의 다양성이 그만큼 영화에 대한 생각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충분히 존중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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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라는 평론가가 영화를 보면서 영화와 관계 맺는 방식, 혹은 영화로부터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은 로셀리니적인 태도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지지하고 있는 영화,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그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영화들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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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t;필사의 탐독&gt;에서 개인적으로 놀랍게 읽은 글은 허진호 감독의 &lt;외출&gt; 평론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상관없이, 말하자면 영화의 '얼룩'이라고 할 만한 어떤 디테일에서 시작한 의문으로부터 그 글은 시작되고 결론에 이르기까지 밀어붙여진다. 일반적인 영화평이 영화의 전체적 완성도라든가 전체를 관통하는 무엇에 대해 쓰는 것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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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영화 기자나 비평가들이 갖고 있는 고질병은, 자신이 쓰는 그 글이 그 영화에 대한 최종본이 되길 바란다는 점이다. 그런 글이 있을 리가 없잖아. (웃음) 보편적 비평, 일반적 비평이라는 건 불가능하다. 모든 비평은 특수한 비평이다. 난 영화에서 내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점에 대해 답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비평의 시작이라고 본다. 영화를 보다가 문득 나를 멈춰 세우는 대목들 말이다.<br />
<br />
왜 이렇게 됐지? 이 대목에서 감독이 명백하게 '이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영화 전편으로 확산되는 하나의 논리일 수도 있다. 내가 그에 대해 답을 낼 수 있다면 사실상 이 영화의 논리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게는 못 만든 영화와 잘 만든 영화 두 가지가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궁금한 영화와 내가 무관심한 영화 두 가지가 있을 뿐이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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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 할지라도 내가 무관심하다면, 글을 쓸 때 쥐어짠다는 느낌이 있다. 아, 먹고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웃음) 쓰고 나서도 스스로 너무 못마땅해. 하지만 모두가 별로라던 &lt;외출&gt;을 봤을 때, 난 어떤 장면에서 멈춰 섰다. 이런 이상한 연출이 왜 나온 걸까?<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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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이준익 감독의 &lt;님은 먼 곳에&gt;의 마지막 장면, 수애가 남편의 뺨을 때린 다음 바로 엔드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영화를 여기서 끝낼까? 아, 이 감독은 지금 나랑 다른 논리로 영화를 끌고 왔구나. 그렇다면 거기서부터 다시 거꾸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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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점에 있어 정말 흥미롭고 궁금한 영화는 홍상수의 영화다. 그의 영화는, 매 장면이 다 그렇다. (웃음) 1시간 40분의 러닝 타임 동안 한 장면만 나를 멈추는 게 아니라 매 장면이 다 그렇다. 모든 장면을 그렇게 운용하는 홍상수의 영화적인 비전, 그의 영화의 리듬에 이르면 "아, 굉장하다"라는 생각이 든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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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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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지금까지 왜 당신이 홍상수 감독에 관한 책을 내지 않는지 늘 궁금했다. 어딘지 모르게 그에 관한 긴 발언을 미루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거꾸로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에 관한 인터뷰집을 낸 이유가 새삼 궁금해지기도 한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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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에 대해 책을 쓰기까지 나를 이끈 열정의 근원은, 그들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디서도 영화를 배운 적이 없다. 오로지 자신의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의 신체를 통해서만 영화를 배웠다. 자기가 자기로부터 배운 사람들. 그 과정을 통해서 점점 더 나은 영화를 만들면서 스스로 나아갔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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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론 그 태도를 배우고 싶었고 또 한편으론 그 자수성가의 과정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 과정의 기록이 지금 막 영화를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중요한 격려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 역시 한 번도 영화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시행착오를 통해 여기까지 왔다는 동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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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선생님이 가르쳐줬다면 한 시간 만에 끝났을 일이, 어떤 경우에는 1년, 어떤 경우에는 10년이 걸리기도 한다. 오로지, 끊임없이 몸으로 배우는 거다. 또한, 그들이 만든 최종 결과물로서의 영화로부터 배움을 구할 수도 있지만 난 인간의 기록을 하고 싶기도 했다. 결국 영화는, 어떤 예술도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이 만들기 때문에 흥미롭다.<br />
<br />
사람이 먹고 사는 건 언제나 치사한 일이고 자신의 배움을 배신하는 일이다. 타협하고, 교활해지고,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일상이 그의 예술적 영혼을 갉아먹고, 갉아 먹힌 다음 앙상한 나머지만을 끌어안고 그걸 부숴가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 제일 역겨운 건 비평가나 전기 작가들이 그 과정을 멋있게 치장하는 거다. 아름다운 표현이 정말 싫다. 난 스스로 경험한 자의 목소리로 직접 담고 싶었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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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홍상수는 그들과 다르다. 홍상수는 결론을 갖고 시작한 사람이다. 그는 사실상 데뷔작 &lt;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gt;을 찍었을 때 이미 자기 영화를 완성했다. 그 다음부턴 끊임없는 변주만 해나가고 있다. 난 홍상수 감독의 말이 궁금하거나 만드는 과정을 알고 싶지 않다. 그의 영화가 흥미롭고 그의 영화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는 게 중요하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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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홍상수는 충분히 미루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를 인터뷰하고 과정을 기록하는 것이, 그의 예술적 태도에 온당한 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한국 영화사에 위대하고 훌륭한 감독들이 많다. 그러나 홍상수는 어쩌면 한국영화사가 처음 맞이하는 예술가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 그의 작업에 대해 좀 더 시간을 벌고 싶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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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br />
            <br />
            무엇보다도 영화에 관한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기억을 다루는 것이다. 물론 그 영화를 당장 다시 보면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법을 택하지 않는다. 차라리 필사적으로 기억을 찾아서 다시 생각하고, 왜 그것만이 기억에 남았는지를 생각하고, 그런 다음 왜 저것은 사라져버렸는지를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게서 사라져가는 시간과 남아있는 시간 사이에서 오가는 불안과 행복 사이의 경기장이다. 나에게 영화란 그것을 보는 시간과 그것을 보러 가는 시간, 그리고 보고 난 다음의 시간, 세 개의 시간 사이에서 기억의 사용에 대한 용법과 능력의 문제이다. 그저 자유롭게, 종종 선험적으로 상상하며, 때로는 반성적으로 성찰하며,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여기서 영화를 보면서 즐겁게 세상을 쳐다본다.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 13쪽)<br />
            <br />
            나는 오픈 토크에서 앙겔로풀로스에게 질문을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말하자면 우리의 시대는 영화가 이미지에 포위당한, 점점 더 야만적인 이미지들, 이를테면 게임이나 뮤직비디오처럼 사유하지 않는 이미지들에 의해 영화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영화에서 에술을 향해서 싸우고 있는 당신에게 영화의 미래는 어떤 것입니까?"<br />
            <br />
            앙겔로풀로스는 매우 길게 답변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인상적인 말로 마무리를 했다.<br />
            <br />
            "결국 영화는 하나의 기록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그것을 포기한다면 더이성 우리 시대의 인간에 대한 시선의 기억은 말소되고 말 것입니다. 시선을 거둘때, 우리는 더이상 다른 사람을 보지 않겠다는 시대를 맞이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화를 만드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너를 볼 때, 이미 너는 내 안에 있는 것이다. 플라톤의 말입니다."<br />
            <br />
            그리스에서 온 이 현자는 우리들에게 왜 여전히 영화가 필요한지 웅변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몇 번이고 말했다. "영웅적인 절망을 포기하지 마라." 그는 우리 시대에 거의 마지막 남아있는 거인이었다. 다시 한번 그의 영화를 모두 볼 생각이다. (&lt;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gt;, 422~423쪽)<br />
            <br />
            (내 생각에) 홍상수의 새로운 점은 바로 그 변덕, 말하자면 종합의 포기에 있다. 그는 균형을 잡으려 들지도 않고, 그 안에서 그 어느 것에도 명령의 자리를 넘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 변덕을 멋대로 되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홍상수는 자기 영화의 원칙에 대해서 엄격하다. 심지어 이 원칙에 대한 엄격함은 그 자리에 대한 권리를 그 자신도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때로 그 자신의 영화 속 인물들, 혹은 사건에 대해서조차 애매하게 볼 때가 있다. 이미 던져져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거의 자포자기한 세상에 대해 홍상수의 유일하게 반성적인 태도는 그의 직관이다. 그러나 홍상수가 자신의 영화를 직관에 내맡길 때 그는 그 직관이 붙든 것을 분석이 설명하려 드는 것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영화를 흔든다. 그가 영화를 흔드는 방법은 언제나 시간이다. 그 안에서 시간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데, 그럼에도 시간은 되돌아오거나 혹은 되풀이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영화에서 앞의 시간은 반복으로 보이고, 뒤의 시간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홍상수의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는 착시이다. 대부분 그의 영화에서 반복과 차이를 말하면서 그것이 착시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그안에서 홍상수는 우리의 기억과 경쟁한다. (&lt;필사의 탐독&gt;, 234쪽)<br />
            <br />
            정성일 : 교실에서 회의를 하는 장면이 아마 내 생각에는 &lt;친절한 금자씨&gt;에서 가장 공들인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촬영이라는 점에서도. 사실 이 신 전체를 신기하게 찍었는데,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백한상을 죽이러 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카메라가 다 움직이는 쇼트로 찍었어요. 그렇다고 롱테이크로 찍은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장면은 장면대로 나누면서, 핸드헬드로 마치 '대사의 액션 장면'처럼 영화를 연출하고 있거든요. 나는 이 회의 장면을 무척 이상하게 봤어요.<br />
            <br />
            박찬욱 : 여기가 가장 활력있는 장면이죠. 액션 장면이라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금자 씨가 총을 들고 뛰어가는 장면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가득하고 활력있는 장면이라고 봤어요. 그들이 거기서 논쟁을 벌이고 의견을 나누고 하는 것이 찍기에 따라서는 그냥 맥 빠지고 무기력한 군상으로 표현될 수도 있을 거에요. 하지만 이 사람들에게 이건 너무 절박한 일이고, 아이들이 죽은 뒤 자신의 인생을 결산할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자기 의견도 개진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럴것 같았어요. 그럴 때 이것을 차분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뭐랄까 너무 좀 편하게 간달까요, 감독으로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lt;필사의 탐독&gt;, 3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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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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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M_BODY--><!--KWCM_CONTENT_END_1--><br />

/김용언 씨네21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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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인가 상상마당 시사회에 당첨된 친구랑 본 영화.
재작년 4월 28일 20주년 김세진 이재호 열사 기념식 때 크랭크인되어 정식으로는 14일부터 <br />
<br />
개봉한다고 한다.
심리학과 84학번 김응수(영화감독), 정치학과 83학번 조유식(서점 운영) 등의 여러 인터뷰가 
나온다. 후시로 녹음된 감독/인터뷰어의 음성은 묘하게 취조같기도 하고, 마치 천상
에서 들려오는 것처럼,&#160;등장인물들의 고해성사처럼 느껴졌다. 남북정상회담과 군사작전권
이양이 운위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순응과 부적응이 동시에 공존하는 얼굴 표정들. 
20년 전 선배/친구/후배의 분신을 바로 곁에서 지켜본 20살 안팎의 젊은 시절로 순간적으로나마
돌아가 그/녀들은 이야기하고 주저하고 고개젓고&#160;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86년&#160;4월 28일 그날.
당시 반전반핵 양키고홈이라는 구호의 정당성이나 당시 전방입소에 관한 사실관계는 다큐에서
다뤄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날을 경험했던 여러 사람들의&#160;세세한 기억들을 가만히 따라간다.&#160;
김응수 감독은 80년대를 재현하는&#160;많은 기존의 영화들에 반감 내지 혐오감을
가지고 있다고 상영 전에 밝혔다. '시간은 오래 지속된다'로 데뷔했던 감독은 어쩌면 이제서야
비로소 정말 하고 싶었던, 그러나 결코 종결될 수는 없을 애도작업을&#160;시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음은 감독의 말.
&#160;“사람들이 진실과 맞부딪치기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예전엔 ‘정치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면, 이제는 그런 범주에 포함되는 것을 두려워하죠. 그런 강박에서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 이야기는 언젠가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고, 마침 김세진 이재호 기념사업회의 요청이 있어 작업이 가능했어요. … 난 내가 분절적으로 존재하는 시간을 거쳐 온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가 살았던 시간들이 모두 함축돼 있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에게도 이 영화가, 그 시간들을 성찰케 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br />

&#160;
<br />
&#160;]]></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5516154358651.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1962404</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용서받지 못한 자</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699271</link><pubDate>Thu, 15 Nov 2007 03:3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699271</guid><description><![CDAT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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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우습게도, 대학 와서 처음 내가 가졌던 희망사항 중 하나가 공익이 되는 것이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는 종종 군인이 되어 있는 모습이 가장 상상이 되지 않는 인물 중 하나로 지목되곤 했었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신검에서 4급을 받기에는 그 기준에 비해 나의 신체는&#160;'정상적'이었고, 결국 현역 입대 판정을&#160;받았고, 여차저차해서 입대를 결심하게 된 후, 그래도&#160;굳이 육군으로 가기는 싫어서 소방으로&#160;대체복무를 하게 되었다.&#160;조금은 끝이 보이는 것도 같다.
벌써 몇 달 전에 보려고 했던 &lt;용서받지 못한 자&gt;를 이제서야 보게 되었다. 영화 속 태정(하정우)처럼 나도 어느새 주위로부터&#160;'말년병장'이라고 불리는 '짬'이 되어서인지, 처음에는 그저 이 영화가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그런 에피소드들을 지극히 평이하게 그린 영화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한참&#160;유행했던&#160;오인용의 '연예인지옥' 같은 플래쉬의 수준에서 훨씬 더 나아간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영화가 견딜 수 없이 나를 자극했던 것은,&#160;영화 구석구석에, 대사 하나 하나 속에&#160;나의 경험들이&#160;교차되고&#160;겹쳐있다는 것, 다시 말해 영화가 던지는 질문 속에 분리불가능하게 내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160;나는 어떤 면에서는 지훈이었고 또 승영이었고 또 태정이었으니까. 아마도 예비역들이 이 영화를 보는 것과 실제의 경험없이 보는 것은- 어느 쪽의 독해가 더 객관적이라거나 우월하다거나 하는 차원과는 무관하게-무시할 수 없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160;(그러고보니 중학교 동창인 태정과 승영(서장원)이 신병과 내무반장의&#160;관계로&#160;만나는 것처럼 극적이지는 않아도, 일선 서에 배치된 후에 학교 선배를 선임으로 만나기도 했다.물론 선배가 선임이었기에 그 관계의 복잡함은 훨씬 덜 했지만)&#160;&#160;&#160;&#160;&#160;
금기시되는 듯 하면서도 오히려 무수하게 많이 소통되어 있는 군대의 '폭력성'이라는 주제는 이 영화 속에도 중심에 있다. 물론 그 폭력은 선 후임 간의 위계서열, 군대라는 '조직' 내의 물리적, 상징적 폭력의 문제, 때로는 성기 만지기, 수치심 주기 등으로 등장하는 성폭력에서 표면화된다. 영화 속 승영의 반폭력의 의지가 실천적으로 무력한 것으로 드러나는 것은 착한 선임 '하나'가 군 조직을 결코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드러낸다. 이 영화를 승영 개인의 군대 적응 실패로 요약하는 방식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승영의 개인주의(심지어 자살하는 순간까지도 귀에 달고 있던 이어폰의 이미지가 상징하는)가 결국 폭력의 모방으로 이어지는 모습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라고 여겨질 정도이다. 승영이 후임인 지훈(윤종빈 감독 본인!)에게 '뽀글이'를 끓여준다든지, 전화를 하게 해주는 식으로 '잘해주는 것' 외에 실질적으로 군 선임과 후임의 관계를 바꾸기 위한 노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어떤 의견교환이나 소통, '집단적인' 운동도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시종일관 군대의 '비합리'를 외치는 승영의 '합리적인' 개인주의는 어쩌면 너무나 소박하고 순진한 태도이며, 이 '비합리적인' '집단주의'의 힘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160;단순한 대립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일반적인 군 생활의 형태가&#160;아니었고 내무생활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적은 인원과 생활한 나 조차 영화 속 태정, 승영, 지훈 등이 경험한 일들을 거의 겪어봤다는 사실을&#160;재발견한 것은 놀라웠다. 군 생활을 어떻게 견뎠냐는 승영의 질문에 태정이 답한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기억 조차 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마 기간에 따른 진급과 전역제도가 있는 군대의 절대적 진리일까? 군대가 갖는 호소력의 실질적인 힘은 어쩌면 이러한 강한 의미에서의 '평등'이라는 보편성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당장 내일모레 전역하는 '깔깔이'를 입은 말년병장에게도 지훈과 같은 시절이 있었다는 것, 역으로 지훈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필연적으로 '깔깔이'를 입게 되리라는 것) 누구도 다시 가라면 가지 않을 군대이지만 남자들끼리 모이기만 하면 군대 얘기를 늘어놓게 되는 것은, 또한 전역 후의 시간적 거리가 갖는 낭만화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160;그렇게 그들은 시간의 자연스런 흐름에 따라 위계서열을 경험하고 그 순서가 역전되고 자신이 받은 폭력을 다시금 밑을 향해 돌려주었던 '평등'하고 '인간적인' 시절을 그리워한다. 차이화와 개성화의 원리를 더욱 더 심화시키면서 이를 자신의 고유의&#160;동력으로 삼고 있는 자본주의의 경향이 심해질수록 이러한 향수는 아마 더욱&#160;강렬해지지 않을까? 그런데, 뜬금없게도&#160;진중권 등이 하는 것처럼 한국의 '군사문화'를 비판하고 '일상 속 파시즘'담론이 수면 위로 활발히 떠오르는 오늘의 세태는&#160;이와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군의 문화와 사회의 다양한 제도들을 필요이상으로 상동적인 것으로 간주하면서 구체적인 개별성들을 무시해버릴 위험.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문제설정이 현재로서의 '이제'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위험. 쉽게 '말할 수 있다'는 단언이 과거 전체를 현재 자신과 단절되고 분리되는 것으로 간주해버릴 위험. 
이른바 덜 빡센, '땡보' 생활을 한 나에게 현재를 견디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더 힘든 보직, 더 힘든 군인들의 사례를&#160;보라고 강요하곤 했다.(너희는 군인도 아니야/그래도 너희는 군인이야라는 이중잣대)&#160;그나마 어떤 것보다는 더 낫기에, '덜' 고통스럽기에 견딜만 하다는 것, '덜' 하기에 견딜 수 있어야 한다는 것, 폭력을 등급화하고 그 효과를 중화하고 그 폐해를 정당화하는 논리말이다. 이른바 몇 년전 '노동귀족', '대기업노조' 등에 대해 지배계급(아직 마땅히 더 좋은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이 퍼부었던 비난의 논리에도 유사한 구조(배부른 대기업노조와 노조 조차 결성하지 못하는 비정규직 간의 이상한 대립구도)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160;이런 견딤/복종의 논리는 꼭 군대에만 해당되는&#160;문제는 아니겠지. 
그런데&#160;실질적으로 사병 내 계급을 폐지할 수는 없을까? 얼마전 병영 내 존칭 문화 확산에 관한 뉴스를 듣고,&#160;그러한 시도가 실질적인 계급 폐지와 병행된다면 조금은&#160;군 조직에서 폭력의 감축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그에 대한 예비역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소였으며 이런 식의 댓글이 붙는다. '김 일병님, 대가리 박으세요. 정신이 외박 나갔군요' 그럼 이렇게 얼차려를 주어야 하냐는 식의 항변) 그러고보면 군대 내에서 폭력만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어쩌면 무익한 시도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군 조직 자체와 폭력을 동일시하는 것 역시 곤란하기는 마찬가지인 듯 하다. 예전에는 군대없는 세상을 왜 상상하지 못할까? 라고 얼마간 단순하게 생각했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160;어쩌면&#160;무책임한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군대의 민주화라는 말은 성립될 수 없는 말이기만 한 걸까? 
이상하게도 영화의 주제랑은 크게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지훈과 승영이 자살하는 두 가지 모습의 대조가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군화끈에 목을 매달아 강렬하고 짧은 고통을 택하는 지훈과 수건으로 스스로 목을 조르려다가(그것도 침대에 누워서!) 실패하고 손목을 그은 뒤 욕조 속에 몸을 담근(음악이 나지막히 흘러나오는 이어폰을 들으면서) 채로 서서히 죽어가는 승영.
몸은 힘들었지만 쉽게 잊혀지는 훈련소 시절과 후임을 받게 되면서 고민하고, 힘들었던 몇 달, 그나마 좋아했던 운동과 '공동작업'의 땀흘리던 기억, 목소리가 작다며 얼차려를 받던&#160; 기억들, 또 2년.. 영화 중반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나오는 승영과 태정의 대화처럼 나는 '어른'이 된 걸까? 어른이 되고 싶었을까? 정말 신기하게도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던 2년동안의 기억이 점점 희미하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5516154336980.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1699271</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화려한 휴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456995</link><pubDate>Mon, 30 Jul 2007 00: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456995</guid><description><![CDATA[<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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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개봉한다는 소리 듣고, 보고싶긴 했지만 여느 때처럼 혼자서 보는 일이&nbsp;자신이 없어 망설이던 차에 한 친구가 마침 이 영화를 보잔다. 왜 보고싶냐니까 그냥 의무감에 본다는 그 친구는 고등학교까지 광주에서 살았다. 부끄럽게도 난 여태 광주 근처까지만 가 봤다. 치약 같은 건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nbsp;영화는 최루성이었고, 그 탓에 영화를 보면서 거의 울어본 적이 없는 나도 (펑펑 통곡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자꾸만 눈물이 흐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에어콘&nbsp;때문이기도 했지만 몸은 계속 부들부들 떨렸고&nbsp;잠시도 등 대고 편안히 앉아서 볼 수가 없었다.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nbsp;시민들이 총격을 받는 장면, 잠시의 평화가 찾아왔을 때, 실은&nbsp;광주 전체가 고립된 후 서로 음식을 만들어먹고 김상경과 이요원이 사과를 나눠먹는 장면, 그리고 마지막,&nbsp;영혼결혼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장면들이 인상깊었다. 화생방 훈련을 받았을&nbsp;때처럼 눈, 코에서 물이 자꾸 나와서 마치 훈련 때 가스실에서 갓 나왔을 때처럼 극장 밖으로 두 팔 벌린 채로 뛰쳐나가고 싶었다.&nbsp;몽둥이질과 총탄과 피칠갑이 난무하는 영화 내내 겁도 나고 화도 나고 나중엔 멍해졌다.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영화에서 특정한 정치색이 드러나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임진곡도 가사는 나오지 않는다.&nbsp;이유없이 총격을 당하고,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것만으로도 싸울 이유는 충분할지도 모른다.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는, 우리를 기억해달라는 말 한마디에서 모든 것이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안성기는 &quot;총보다 무서운 건 사람&quot;이라고 말한다.&nbsp;그러나 한편으로 100억이 넘는 자본의 스펙타클이 두 시간동안 사람들을 뒤흔들어놓은 뒤,&nbsp;그 감정들의 출구는 어디일까? 한 편의 액션활극, 전쟁영화를&nbsp;감상하는 듯, 쉴 새없이 떠들던 뒷 자리에 누군가는 둘째치고, 불과 몇 시간만에 점점 둔해지는 나의 신경과 가슴이 더욱 가증스러워 던지게 되는 질문이다.&nbsp;또 다른 한편으로 총 든 군인이&nbsp;눈 앞에서 쏘아대는&nbsp;총알에는 누구나 쉽게 분노하고 시민들에 동일화할&nbsp;수 있지만, 그보다&nbsp;중대하고 더욱 분별하기 어려운 폭력들이&nbsp;27년이 흐른 오늘날에는 과연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nbsp;오늘에 대해서는 또 27년이, 100억이, 그 이상의 시간과 돈이 필요한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팝콘과 콜라를 들고 영화관에서 회고조로, 저마다의 참회를, 고해를...&nbsp;다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불편한 현실인만큼 쉽게 잊고 억누르고 일상에 젖어들어가는 이 망각증을 어떻게 넘어설까?&nbsp;어쨌거나 이건 단지 영화일 뿐이라 보람없는 질문일 뿐인가? (데리야마 슈지를 살짝 비틀어) '영화'를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김상경은 좋았는데 거의 10등신인 거 같은 간호사 이요원과 퇴역 후 택시회사 사장을 하고 있는 왕년의 별 네 개짜리 안성기는 좀 현실감이 떨어지긴 했다. 친구나 조폭마누라 따위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5516154312738.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1456995</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인권영화제</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119368</link><pubDate>Sat, 19 May 2007 02: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119368</guid><description><![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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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회 인권영화제 개최

18-24일, 서울아트시네마..국내, 국외 총 26편 상영








배혜정 기자&nbsp;&nbsp;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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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올해로 11년 째를 맞는 인권영화제가 오는 18일 서울아트시네마(구 허리우드)에서 개최된다. 이번 영화제는 24일까지 총 26편(국내 13편, 해외 13편)을 무료로 상영한다. 인권영화제는 1회부터 현재까지 전 작품을 무료로 상영하고 있다. 누구든 인권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BR>&nbsp;&nbsp; <BR>&nbsp;&nbsp; 







△개막작 '고스트'(닉 브룸필드 감독/영국/드라마/2006) ⓒ인권운동사랑방<BR>&nbsp;&nbsp;개막작은 닉 브룸필드 감독의 2006년 작, '고스트'다. 2004년 영국 이민 브로커들에게 고용돼 심야에 모캄베이 해변에서 불법으로 조개잡이를 하다가 밀물에 변을 당한 중국인 불법 노동자 23명의 실화를 영화로 옮겼다. 실제 그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주노동자 에이 퀸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영화를 보다보면 지난 2월 여수 외국인 화재로 숨진 10명의 이주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이 오버랩 된다. <BR>&nbsp;&nbsp; <BR>&nbsp;&nbsp;&lt;사랑의 정치&gt;는 동성애자들이 사회적으로 배척당하지 않고 당당한 인간으로 인정받게 된 투쟁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영화는 캐나다 퀘백주에서 2002년 동성애 부부의 시민 결합권 뿐 아니라 양육권까지 명시된 법안이 통과된 현장을 당사자와 그들과 연대한 이들의 목소리로 생생히 재구성했다. (낸시 니콜/2005년/캐나다. 다큐/68분) <BR>&nbsp;&nbsp; <BR>&nbsp;&nbsp;그런가 하면 성전환자들의 애환을 조명한 작품도 있다. 이탈리아 작품인 &lt;레오 N이라는 사람&gt;은 성전환자들이 겪는 고통을 심도 깊고 밀착된 카메라의 시선으로 보여 준다. 감독은 이들이 '비정상적 성'이 아니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알베르토 벤데미아티/2005/이탈리아/다큐/87분) <BR>&nbsp;&nbsp; <BR>&nbsp;&nbsp;이 외에도 입소문을 타고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김명준 감독의 &lt;우리학교&gt;와 최근 국가폭력에 의해 강제이주된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일상을 잔잔하게 다룬 들소리 방송국의 &lt;황새울 방송국 들소리&gt;도 상영된다. <BR>&nbsp;&nbsp; <BR>&nbsp;&nbsp; 














전체 작품 소개<BR>&nbsp;&nbsp; <BR>&nbsp;&nbsp;- 한국작품 -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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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 <BR>&nbsp;&nbsp;이현정/ 2006/ 다큐/ 134분 <BR>&nbsp;&nbsp; <BR>&nbsp;&nbsp;2005년 10월부터 2006년 2월까지, '희망을 만드는 노숙인 생산 공동체'를 모토로 하는 노숙인 공동체 [더불어 사는 집]은 서울 정릉의 빈 집을 점거해서 함께 모여 살았다. 카메라는 혹독한 겨울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 '왜 하는가' 질문의 답을 함께 찾아 간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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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동백 아가씨 <BR>&nbsp;&nbsp;박정숙/ 2006/ 다큐/ 78분 <BR>&nbsp;&nbsp; <BR>&nbsp;&nbsp;소록도의 한센인(나병 환자)에 관한 다큐멘터리. 역사의 굴레에서 편견과 무지함 대신 작은 배려만 있었다면 가능했을 여성의 평범한 삶, 78살의 명랑하고 재치 있는 할머니의 지난한 삶을 감독의 나레이션으로 풀어가고 있다. 잃어버린 그녀의 그 삶은 과연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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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멋진 그녀들 <BR>&nbsp;&nbsp;주현숙/ 2007/ 다큐/ 62분 <BR>&nbsp;&nbsp; <BR>&nbsp;&nbsp;'이주 여성', 또는 '어머니'는 하나의 극적인 장르가 아니라 삶이다. 임신한 이주 결혼 여성들을 카메라에 담던 과정에서 결혼과 임신을 경험하며 감독은 다른 느낌, 그들과 공동의 무엇을 함께 느끼게 된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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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새끼 여우 <BR>&nbsp;&nbsp;이유림/ 2007/ 드라마/ 28분 <BR>&nbsp;&nbsp; <BR>&nbsp;&nbsp;파업 투쟁의 결과 남겨진 해고의 고통... 그리고 다시 찾아온 복직의 기회... 현실과 원칙 사이에서 한 노동자는 갈등한다. 돌아가게 된 사람과 남게 된 사람들은 갈등하고 그가 카메라에 담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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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어부로 살고 싶다 - 살기 위하여 - <BR>&nbsp;&nbsp;이강길/ 2006/ 다큐/75분 <BR>&nbsp;&nbsp; <BR>&nbsp;&nbsp;태극기가 휘날리는 가운데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끝으로 새만금 이야기는‘뉴스’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것이 끝인가? 우리는 누구의 이야기를 들었던가. 아니 우리는 누구의 변명을 믿으며 주민들을 왜곡하며 찢어갔는가! 그 땅에 남겨진 그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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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 <BR>&nbsp;&nbsp;박정미/ 2006/ 다큐/ 80분 <BR>&nbsp;&nbsp; <BR>&nbsp;&nbsp;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누군가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답은 미궁이 아닌 간단한 논리학이다. 위치 추적을 당한 사람들은 ‘삼성’의 ‘전현직’ ‘노동자들’이다. 이를 둘러싸고 삼성 노동자들과 삼성, 그리고 검찰과 인권 단체들 간에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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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우리 학교 <BR>&nbsp;&nbsp;김명준/ 2006/ 다큐/ 134분 <BR>&nbsp;&nbsp; <BR>&nbsp;&nbsp;일본 땅 조선 아이들의 용감한 등교가 시작되엇다. '조총련 학교'라고만 알고 있었던 '조선 학교'. 그곳에서 12년 동안의 민족 교육을 마치고 졸업을 앞둔 고3들. '우리학교'를 통해 자신들의 공동체를 유지하며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그들을 만나본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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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Out : 이반 검열 두 번째 이야기 <BR>&nbsp;&nbsp;여성영상집단 움/ 2007/ 다큐/ 110분 <BR>&nbsp;&nbsp; <BR>&nbsp;&nbsp;천재, 초이, 꼬마. 세 사람의 셀프스토리. 편견 없이 열려있다고 세상은 말하지만 그들에겐 수많은 벽들로 둘러쌓여 있다. 하지만 멈추어 섬이 아닌, 함께하기. 그리고 조금씩 내일을 움직여 넘어서기.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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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파산의 기술 <BR>&nbsp;&nbsp;이강현/ 2006/ 다큐/ 61분 <BR>&nbsp;&nbsp; <BR>&nbsp;&nbsp;파산하고 삶의 나락으로 떨어져 눈물 흘리는 사람들. 그리고 때로는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 신자유주의의 미친 춤바람에서 살아내려고 발버둥치는 이들의 몸부림 뒤에 승리의 웃음을 짓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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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그림의 떡 <BR>&nbsp;&nbsp;박재현 /2007/드라마/ 28분 <BR>&nbsp;&nbsp; <BR>&nbsp;&nbsp;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고, 보편적이고 일상적이라 느껴지는 문화가 바로‘영화’라는 장르이다. 하지만 그‘문제없는 영화’속에 ‘그림의 떡’이란 낯선 시선이 존재한다. 영화를 꿈꾸며 사랑하며 평등한 세상을 바라는 영화이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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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황새울 방송국 들소리 <BR>&nbsp;&nbsp;들소리 / 2007/ 다큐/ 30분 <BR>&nbsp;&nbsp; <BR>&nbsp;&nbsp;2007년에도 봄은 왔다. 너무나도 잔인한 봄이 대추리, 도두리에 내려앉았고, 평생 그 땅을 일군 농민들은 결국 떠나야만 했다. 2006년부터 들소리 식구들이 10개월 동안 살아간 대추리는 잔인하지만, 일상 속에 평화가 물들어 있었다. 국가 폭력에 의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만 아직 남겨진 이야기들이 있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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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강요된 미래 그리고 개방 <BR>&nbsp;&nbsp;한미FTA독립영화실천단 /2007/ 다큐/30분 <BR>&nbsp;&nbsp; <BR>&nbsp;&nbsp;정부의 지속적인 신자유주의 정책과 최근 한미 FTA 협정으로 한국의 농업은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것은 국민의 안전을 대가로 자동차나 옷을 팔아 수익을 남긴다는 이야기다. 소비자들이 좀 더 똑똑해지면 되는 걸까? 안전하지 않은 먹거리는 알아서 시장의 논리대로 퇴출될 것인가? <BR>&nbsp;&nbsp; <BR>&nbsp;&nbsp;- 해외작품 -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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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내 사랑 블레인 Bilin My Love <BR>&nbsp;&nbsp;샤이 카멜리 폴라 / 2005/ 팔레스타인 / 다큐 / 84분 <BR>&nbsp;&nbsp; <BR>&nbsp;&nbsp;팔레스타인 마을 블레인은 절반 이상의 땅을 잃을 처지에 놓여있다. 마을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앗아갈 분리 장벽의 설치에 맞서 싸우고, 카메라는 1년이 넘는 이들의 투쟁을 따라간다. 모하메드와 농부 와지를 중심으로, 함께 저항하는 이스라엘 활동가들과 마을 사람들 사이에 싹트는 관계를 포착했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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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땅, 비, 불: 와하까 보고서 Land, Rain &amp; Fire : Report from Oaxaca <BR>&nbsp;&nbsp;타미 골드 /2006/ 멕시코 / 다큐 /30분 <BR>&nbsp;&nbsp; <BR>&nbsp;&nbsp;2006년 5월, 멕시코 와하까에서 지역 자치 투쟁의 역사가 시작된다. 교사들의 파업으로 시작된 이 투쟁은 와하까 민중연대회의를 만들어냈다. 교사들은 임금 인상과 함께 교과서 무료 배급 등 교육 공공성 확보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와하까 민중들의 요구에 정부는 총탄과 곤봉으로 탄압한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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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레오 N이라는 사람 The Person de Leo N <BR>&nbsp;&nbsp;알베르토 벤데미아티/ 2005/ 이탈리아 / 다큐 / 87분 <BR>&nbsp;&nbsp; <BR>&nbsp;&nbsp;니콜라 드 레오는 12살 때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는다. 40살이 된 니콜은 이름을 바꾸고 성전환자로 살아간다. 영화는 니콜의 일상과 수술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으며 성전환자가 겪는 어려움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아들이 아닌 딸로서 어머니를 찾아가게 된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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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블랙골드 Black Gold <BR>&nbsp;&nbsp; <BR>&nbsp;&nbsp;마크 프랜시스 &amp; 닉 프랜시스 Marc Francis &amp; Nick Francis 2006/ 영국/ 다큐/ 78분 <BR>&nbsp;&nbsp; <BR>&nbsp;&nbsp;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거래되는 커피 한 잔은 3달러이지만 정작 에티오피아 농부가 힙겹게 버는 돈은 3센트. 에티오피아 협동조합은 세계 커피 시장을 점령한 4개 다국적 기업의 독점적 거래를 고발하며 1천 5백만 농민의 삶을 살릴 공정무역을 찾아 나섰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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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사랑의 정치 Politics of the Heart <BR>&nbsp;&nbsp;낸시 니콜 / 2005/ 캐나다/ 다큐/ 68분 <BR>&nbsp;&nbsp; <BR>&nbsp;&nbsp;동성애 부부가 합법적으로 인정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양육의 권리를 보장 받는 것은 거기서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하는 것. 영화는 2002년 캐나다 퀘백주에서 동성애 부부의 시민 결합권뿐 아니라 양육권까지 명시된 법안이 통과된 그 현장을 당사자 그리고 그들과 연대한 이들의 목소리로 생생히 재구성한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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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소똥 Bullshit <BR>&nbsp;&nbsp;페아 홀름퀴스트 &amp; 수잔 카달리안 PeA Holmquist, Suzanne Khardalian/ 2005/ 스웨덴/ 다큐/ 73분 <BR>&nbsp;&nbsp; <BR>&nbsp;&nbsp;반다나 시바는 인도의 대표적 환경 운동가. 감독은 그녀를 따라 WTO 회담장부터 코카콜라 공장 폐쇄 운동 현장까지 2년 동안 동행한다. 그녀의 유기농 재배 농장과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인 몬산토의 연구소를 종횡무진하며, 특허권의 의미와 증가하고 있는 농민 자살율의 근본적인 원인을 묻는 작품.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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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에도시의 노래 The Songs of Eh Doh Shi <BR>&nbsp;&nbsp;타 하우 코 Hta haw koh 2006/ 태국/ 드라마/ 85분 <BR>&nbsp;&nbsp; <BR>&nbsp;&nbsp;태국 난민촌 카렌인 마을. 아이들은 출생증명서나 주민증이 없어서 학교에 입학할 수 없다. 주민들은 마을 청년에게 아이들 교육을 맡기지만 고아인 에도시는 3일째 공부하러 나오지 않았다. 군인이 되려는 에도시는 서글프게 노래 부른다. "권리와 자유를 위해 ∼ 조국을 위해 ∼ 전장에서 죽어 땅위에 뿌려진 피”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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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이야기해 봅시다 Let's talk about it <BR>&nbsp;&nbsp;디파 메타 Deepa Mehta 2005/ 캐나다/ 다큐/ 47분 <BR>&nbsp;&nbsp; <BR>&nbsp;&nbsp;나이지리아 태생의 네카와 인도에서 건너온 아멘딥, 엘살바도르가 고향인 지오마라는 모두 남편 폭력으로 고통을 당한 이주 여성들. 이들의 자녀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부모를 인터뷰하며, 침묵 속에 가려져있던 폭력의 실체와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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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전쟁 기지 필요 없다 基地はいらない、どこにも <BR>&nbsp;&nbsp;고바야시 에우시 /2006/ 일본/ 다큐/46분 <BR>&nbsp;&nbsp; <BR>&nbsp;&nbsp;일본 미군 기지의 75%가 오키나와에 주둔해 있다. 95년 미군 소녀 성폭행 사건으로 촉발된 이 곳 주민들의 분노는 평택처럼 주일 미군 재편을 맞아 더욱 조직적이고 끈질긴 주민 운동으로 바뀌었다. 영화는 10년 넘게 헤코노 앞바다를 지키는 해상 시위 등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기지 운동을 담고 있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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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전쟁 주문 받습니다 Shadow Company <BR>&nbsp;&nbsp;닉 바이카닉&amp;자송 부르끄/2006/캐나다/다큐/86분 <BR>&nbsp;&nbsp; <BR>&nbsp;&nbsp;자본주의 시대인 현대에서는 군인마저 돈만 주면 싸워주는 ‘상품’이 되어버렸다. 2004년 이라크는 이들 가장 잘 팔리는 군인들이 크게 돈을 벌 공간일 뿐이었다. 감독은 그 전쟁을 전후로 활약한 용병, 언론인, 정치인 등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쟁 대행 주식회사’를 낱낱이 비판한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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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조각난 이라크 Iraq in Fragments <BR>&nbsp;&nbsp;제임스 롱리/ 2007/ 미국/ 다큐/ 94분 <BR>&nbsp;&nbsp; <BR>&nbsp;&nbsp;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고 바트당이 무너지고 나자 수니, 시아, 쿠르드로 쪼개진 이라크에서 민중들은 더욱 힘든 삶을 살아간다. 그들에게 미국은 어떠한 나라일까. 아버지를 잃은 11살 소년, 중산층 출신의 대학생 그리고 이라크 북부를 차지한 쿠르드인 등을 만나 본다. <BR>&nbsp;&nbsp; <BR>&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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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 noWrap width=15><BR>&nbsp;탐보그란데: 망고, 살인, 광산 Tambogrande <BR>&nbsp;&nbsp;에르네스토 카벨로스/2006/페루/다큐/85분 <BR>&nbsp;&nbsp; <BR>&nbsp;&nbsp;페루 남쪽의 주민들은 잘 팔리는 금을 거부하고 전통을 이어 망고를 재배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지켜나간다. 어느 날 그들에게 세계화를 등에 업은 채굴 회사들이 들이닥친다. 영화는 이들 신자유주의의 첨병에 맞서 꿋꿋하게 싸워나가는 그들의 투쟁과 생활을 카메라에 담는다. 




<BR>2007년05월05일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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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더빙, (화) 화면 해설, &lt;비&gt; '비디오로 행동하라!'. +감독 및 활동가와의 대화 


5. 18.(금)&nbsp;&nbsp;&nbsp;&nbsp;&nbsp;&nbsp;&nbsp; 
01:00 pm&nbsp;&nbsp;&nbsp;&nbsp;&nbsp;&nbsp;전쟁 주문 받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 &nbsp;&nbsp; 86m&nbsp;&nbsp;&nbsp; 
02:40 pm&nbsp;&nbsp;&nbsp;&nbsp;&nbsp;&nbsp;땅, 비, 불: 와하까 보고서&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 &nbsp;30m &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전쟁 기지 필요 없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 46m&nbsp;&nbsp;&nbsp; 
04:10 pm&nbsp;&nbsp;&nbsp;&nbsp;&nbsp;&nbsp;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nbsp;+&nbsp;&nbsp;&nbsp;&nbsp;&nbsp; &nbsp;80m 
06:00 pm&nbsp;&nbsp;&nbsp;&nbsp;&nbsp;&nbsp;강요된 미래 그리고 개방 &lt;비&gt;&nbsp;+&nbsp;&nbsp;&nbsp;&nbsp; 30m&nbsp;&nbsp;&nbsp; 
07:00 pm&nbsp;&nbsp;&nbsp;&nbsp;&nbsp;&nbsp;개막식 
08:30 pm&nbsp;&nbsp;&nbsp;&nbsp;&nbsp;&nbsp;고스트 (더)&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96m 


5. 19.(토)&nbsp;&nbsp;&nbsp;&nbsp;&nbsp;&nbsp; 
12:00 pm&nbsp;&nbsp;&nbsp;&nbsp;&nbsp;&nbsp; 이야기해 봅시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47m 
01:00 pm&nbsp;&nbsp;&nbsp;&nbsp;&nbsp;&nbsp; 그림의 떡&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28m&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새끼 여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28m 
02:50 pm&nbsp;&nbsp;&nbsp;&nbsp;&nbsp;&nbsp; 블랙 골드&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78m 
04:40 pm&nbsp;&nbsp;&nbsp;&nbsp;&nbsp;&nbsp; 내 사랑 블레인&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84m 
06:20 pm&nbsp;&nbsp;&nbsp;&nbsp;&nbsp;&nbsp; 할매꽃+&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97m&nbsp;&nbsp;&nbsp; 
08:30 pm&nbsp;&nbsp;&nbsp;&nbsp;&nbsp;&nbsp; 어부로 살고 싶다-살기 위하여-&nbsp; &nbsp;75m&nbsp;&nbsp;&nbsp; 


5. 20.(일) &nbsp;“소수자의 날”&nbsp; 
12:00 pm&nbsp;&nbsp;&nbsp;&nbsp;&nbsp;&nbsp; 고스트 (더)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96m&nbsp;&nbsp;&nbsp; 
02:10 pm&nbsp;&nbsp;&nbsp;&nbsp;&nbsp;&nbsp; 동백아가씨&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78m 
04:00 pm&nbsp;&nbsp;&nbsp;&nbsp;&nbsp;&nbsp; 우리 학교 (화)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131m 
06:40 pm&nbsp;&nbsp;&nbsp;&nbsp;&nbsp;&nbsp; 레오 N이라는 사람&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87m 
09:00 pm&nbsp;&nbsp;&nbsp;&nbsp;&nbsp;&nbsp; 사랑의 정치&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68m 


5. 21.(월)&nbsp;&nbsp;&nbsp;&nbsp;&nbsp;&nbsp;&nbsp; 
01:00 pm&nbsp;&nbsp;&nbsp;&nbsp;&nbsp;&nbsp;이야기해 봅시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 47m &nbsp;&nbsp; 
02:00 pm&nbsp;&nbsp;&nbsp;&nbsp;&nbsp;&nbsp;그림의 떡&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 28m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새끼 여우&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28m 
03:10 pm&nbsp;&nbsp;&nbsp;&nbsp;&nbsp;&nbsp;전쟁 주문 받습니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86m&nbsp;&nbsp;&nbsp; 
05:10 pm&nbsp;&nbsp;&nbsp;&nbsp;&nbsp;&nbsp;192-399: 더불어 사는 집 이야기&nbsp;+&nbsp;&nbsp;&nbsp;134m&nbsp;&nbsp; 
07:50 pm&nbsp;&nbsp;&nbsp;&nbsp;&nbsp;&nbsp;Out: 이반 검열 두 번째 이야기 +&nbsp;&nbsp;&nbsp; 110m&nbsp;&nbsp; 


5. 22.(화) 
01:00 pm&nbsp;&nbsp;&nbsp;&nbsp;&nbsp;&nbsp;황새울 방송국 들소리 &lt;비&gt;&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30m&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강요된 미래 그리고 개방 &lt;비&gt;&nbsp;&nbsp;&nbsp;&nbsp;&nbsp; &nbsp;30m&nbsp;&nbsp;&nbsp; 
02:20 pm&nbsp;&nbsp;&nbsp;&nbsp;&nbsp;&nbsp;어부로 살고 싶다 -살기 위하여-&nbsp;&nbsp;&nbsp;&nbsp;75m &nbsp;&nbsp; 
04:10 pm&nbsp;&nbsp;&nbsp;&nbsp;&nbsp;&nbsp;멋진 그녀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62m 
06:00 pm&nbsp;&nbsp;&nbsp;&nbsp;&nbsp;&nbsp;탐보그란데: 망고, 살인, 광산&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85m&nbsp;&nbsp;&nbsp; 
08:00 pm&nbsp;&nbsp;&nbsp;&nbsp;&nbsp;&nbsp;에도시의 노래+&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85m&nbsp;&nbsp;&nbsp; 


5. 23.(수)&nbsp;&nbsp;&nbsp;&nbsp;&nbsp;&nbsp;&nbsp; 
01:00 pm&nbsp;&nbsp;&nbsp;&nbsp;&nbsp;&nbsp; 레오 N이라는 사람&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87m&nbsp;&nbsp;&nbsp; 
02:40 pm&nbsp;&nbsp;&nbsp;&nbsp;&nbsp;&nbsp; 사랑의 정치&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68m 
04:00 pm&nbsp;&nbsp;&nbsp;&nbsp;&nbsp;&nbsp; 소똥&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73m 
05:30 pm &nbsp;&nbsp;&nbsp;&nbsp;&nbsp; 블랙 골드&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78m 
07:00 pm&nbsp;&nbsp;&nbsp;&nbsp;&nbsp;&nbsp; 파산의 기술記述 &#8729;&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61m &nbsp;&nbsp; 
08:30 pm&nbsp;&nbsp;&nbsp;&nbsp;&nbsp;&nbsp; 할매꽃&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97m &nbsp;&nbsp; 


5. 24.(목)&nbsp;&nbsp; &nbsp;“반전 평화의 날”&nbsp;&nbsp;&nbsp;&nbsp;&nbsp;&nbsp; 
12:00 pm&nbsp;&nbsp;&nbsp;&nbsp;&nbsp;&nbsp;조각난 이라크&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94m&nbsp;&nbsp;&nbsp; 
02:10 pm&nbsp;&nbsp;&nbsp;&nbsp;&nbsp;&nbsp;내 사랑 블레인&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84m 
04:10 pm&nbsp;&nbsp;&nbsp;&nbsp;&nbsp;&nbsp;땅, 비, 불: 와하까 보고서&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30m &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전쟁 기지 필요 없다&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46m 
06:00 pm&nbsp;&nbsp;&nbsp;&nbsp;&nbsp;&nbsp;황새울 방송국 들소리 &lt;비&gt;+&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30m&nbsp;&nbsp;&nbsp; 
07:00 pm&nbsp;&nbsp;&nbsp;&nbsp;&nbsp;&nbsp;폐막식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올해의 인권영화상 상영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퍼온글] [정윤철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정성일 ②</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116166</link><pubDate>Mon, 14 May 2007 12: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11616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59610733&TPaperId=11161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7/82/coveroff/321243086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96390123&TPaperId=11161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8/68/coveroff/9196391618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86116108&TPaperId=11161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1/18/coveroff/908611610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69290024&TPaperId=11161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1/93/coveroff/353243056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86118224&TPaperId=1116166"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2/53/coveroff/9086118224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vara/1116166'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mp;article_id=46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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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철: 당신이 자주 인용하는 발터 벤야민의 말이 생각난다. 정치적인 것을 미학적으로 다루는 것은 파시즘이고 미학적인 것을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은 자본주의라고.<BR>정성일: 그 문장을 김우창 번역으로 스무살에 읽었다. 이후 모든 판단에서 하나의 좌표가 되었던 말 중의 하나다. 
정윤철: 영화 자체의 미학과 영화가 갖는 정치성은 늘 대립할 수밖에 없는 문제인가.<BR>정성일: 아니, 그 반대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 똑같은 것을 누군가는 미학적으로 이해하고 누군가는 정치적으로 이해하는 거다. 나는 그것을 전적으로 미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락하고, 정치적으로만 본다면 프로파간다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이 예술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안 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창조를 다루고 있다. 창조를 다룰 때는 미학과 정치, 혹은 삶과 사회, 혹은 과거와 미래 말하자면 지나간 시간과 도래해야하는 시간, 그 둘 사이의 중재의 문제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가의 임무 중의 하나는 창조적 중재에 있지 않을까. 오직 예술가들만이 창조적 중재에 나선다. 정치가들은 협상을 하고, 장사꾼들은 판매할 뿐이다. 누구도 중재는 하려 들지 않는데, 그것을 해결할 임무가 예술가들에게 주어져있다. 그리고 그 중재의 기술을 읽어내는 것이 비평가의 몫이다. 
정윤철: 하지만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영화에 관해서는 쓰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나쁜 영화라고 하더라도 쓴 소리를 해야만 발전이 되는 것이 아닐까..<BR>정성일: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영화에 관해 쓸 때는 두 가지 중의 하나다. 그 영화에 대해 ‘친화성’을 느끼거나 ‘적개심’을 느끼는 것. 내게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영화에 관해서 쓰는 것은 나를 무료하게 만들고, 뭐랄까 내가 망가지는 느낌이다. 나 말고도 비평가는 많으니까 다른 사람이 써도 충분하지 않겠나. 
정윤철: 그렇다면 진짜 대중영화는 어떤가. 감독으로서 나는 평론이 계속 세상에 영향을 미쳤으면 좋겠는데, 감흥이 없더라도 잘 만든 대중적인 영화에 대해 글을 쓸 수는 없는 건가.<BR>정성일: 나는 당신이 말하는 대중적인 영화도 좋아한다. 나는 지금도 홍콩무협영화를 좋아하고, 두기봉의 &lt;흑사회&gt;를 보면서 심금을 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기봉의 영화가 왜 아직도 한국에서 개봉이 안되는지 너무 궁금한 사람이다. 혹은 전적으로, 정말 전적으로 김태희의 클로즈업이 보고 싶어서 &lt;중천&gt;을 보러 간다. 아니면 대중들의 관심이 궁금해서 &lt;미녀는 괴로워&gt;를 보기도 한다. 내가 완전히 고립돼서 내 취향만 고집하는건 아니다. 나도 2007년 남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고 관심사를 공유하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몸이 내 마음이 더 좋아하는 영화들에 끌리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어떤 평론가에게도 하루는 24시간밖에 없다. 그래서 내가 봐야 하는 영화와 내가 보고 싶어하지 않는 영화의 시사회가 겹친다면, 당연히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한다. 하지만 &lt;스윙걸즈&gt; &lt;박치기!&gt; &lt;훌라걸즈&gt;같은 영화들을 보고 아 죽여주게 나를 울리는구나, 이런 느낌을 받기는 한다. 

정윤철: 느낌을 받기는 해도 그런 영화들은 다른 사람이 쓸 것이라는 건가.<BR>정성일: 내가 보고 싶어서 보기는 하지만, 허우샤오시엔의 &lt;쓰리 타임즈&gt;와 에릭 쿠의 &lt;내곁에 있어줘&gt;같은 영화들만큼 울림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감흥을 받아야 쓰고 싶은 말이 많아지지 별 느낌이 없는데 쓰고 싶지는 않다. 나는 같은 주에 &lt;훌라걸즈&gt;와 &lt;좋지 아니한가&gt;를 봤다. &lt;씨네21&gt;에 연재하는 &lt;전영객잔&gt;을 써야했는데, 나는 두 영화 중에서 &lt;좋지 아니한가&gt;를 택했다. 쓸 것이 많고 궁금한 게 많고 질문할 지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칭찬은 안했지. 하지만 정성일의 관심권 안에 들었다는 생각에 묘하게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어. 옛날 이장호 감독이 신상옥 감독 조감독을 할 때 5년 동안 감독에게 늘 이름 대신 야이 새끼야, 자식아 불려지다가 어느 날 녹음실에서 신상옥 감독이 ‘장호야~’ 하는 순간 선 채로 눈물을 주루륵 흘렸더랬는데 그런 건가... 
정윤철: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평론가가 되어 인터넷에 평론을 쓰고, 별점이나 인터넷 평점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런 세태를 본다면 기존 영화평론이 관객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할 필요가 절실해지지 않았는가. 대중영화라고 할지라도 그 최소한의 미덕을 발굴해주고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려는 평론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BR>정성일: 나는 반문하고 싶다. 읽는 행위 자체를 싫어하는데 어떤 시도를 한들 읽겠느냐는 거다. 지금 인터넷 글쓰기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지만, 글이 약간만 길면 ‘스크롤의 압박’이라는 말로 제껴 버린다. 이런 현실에서 나는 무엇보다도 영화를 위해 영화비평이 대중에게 굴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평마저 대중에게 굴복한다면 그 다음엔 더 이상 방어선이 없다. 그 다음엔 남는 건 하나, 영화는 돈에 굴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비평은 한편으로 영화를 위한 일종의 방어선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다. 허우샤오시엔을 임권택을 데이빗 린치를 진지하게 사고하고 질문하는 방어선이 사라졌을 때, 그때는 방어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남아있지 않다. 시장에서 어떤 생산적인 담론도 만들지 못하고 버림받는다면 때는 영화가 굴복을 해야지. 나는 그때는 굉장히 끔찍해질 것 같다. 
정윤철: 모든 감독의 꿈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같이 잡는 것이 아닐까. 이루어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BR>정성일: 그 시대는 끝난 게 아닐까. 영화는 태어난지 이미 100년이 넘었다. 
정윤철: 질문을 마저 하자면 결국 비평도 대중성과 심도있는 분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불가능한가. 그런 시대도 이미 끝난 건가?<BR>정성일: 나는 영화에서의 대중성이라는 문제를 다른 판본으로 말하자면 상품성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같은 말의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영화가 대중성을 껴안는 한편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서 나아가던 시대는 영화의 고전주의시대였다(3,40년대). 예를 들면 우리는 고전주의 회화를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상주의를 통과하며 그림에서 형상이 부서졌고, 그림은 보는 이에게 교양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소통을 하고 싶다고 고전주의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퇴행이다. 영화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 거다. 그 100년이라는 역사를 왜 무효화시키려고 하는가. 영화도 관객에게 교양과 역사에 대한 이해와 시네마테크적인 경험과 영화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관객은 게으르게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자기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를 원시적인 상태로 돌려보내는 거다. 영화는 고전주의 시대를 통과했고, 이제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의 길을 가고 있다. 그것을 왜 퇴행적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심지어 감독들이 왜 자꾸 고개를 뒤로 돌려 그런 퇴행을 바라보는가. 나는 거기에 대해서 분개하는 쪽이다. 
정윤철: 영화는 꿈이지만 관객은 꿈꾸어서는 안 된다는 고다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가.<BR>정성일: 그렇다. 고다르의 영화를 보면서 중3때 깨달았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난 꿈꿀 수 없다. 
정윤철: 중3때!!! 본의 아니게 고다르의 영화를 보면서 선악과를 깨문 격이다. 그러니까 신이 내린 거겠다.<BR>정성일: 그분이 오신 거지(웃음) 나중에 다시 보니 프랑스 문화원에서 본 &lt;기관총 부대&gt;는 고다르 영화 중 에서도 그렇게 쇼킹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전까지 주말의 명화와 홍콩액션영화만 보면서 관습적인 영화에 너무 익숙해지다 보니 이야기에만 심취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며 문득 이게 영화를 보는 방법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었다. 내가 항상 하는 이야기인데, 영화에서 카메라를 발견하는 순간, 너는 영화를 볼 때면 언제나 카메라가 먼저 보이게 될 것이다, 라고 말한다. 사실 보통 관객에게는 카메라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행복한 거다. 이야기에 몰두할 수 있고 인물에 몰두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영화를 보는 건 고전적인 거고 나아가 원시적인 거다. 
그러나 인간은 때때로 퇴행을 즐긴다. 어린애였던 시절, 짐승이었던 때를 그리워한다. 사랑에 빠지는 것도 퇴행 아닌가. 순간적으로 어린 애가 되는 것이다. 아무튼, 중3 이후로 영화의 신이 내려 카메라 귀신이 보이는 이 박수무당에게 그 자신이 쓴 몇몇 평론에 대한 의문점을 물어보았고, 그는 진지하고 긴 답변을 한다. 
정윤철: 당신은 무엇이 현대적인 영화라고 생각하는가. 한국이든 다른 나라 영화든.<BR>정성일: 그것은 아마도 현대라는 단어를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질 거다. 현대가 컨템포러리가 될 수도 있고 모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는 현대를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놓을 것인가하는 문제가 있다. 영화에서 현대라는 문제를 다루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까닭은 영화가 이미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근대의 맨 끝자락에 도착했다. 회화에 모던이 도착했던 인상주의 시대에, 혹은 제임스 조이스가 &lt;율리시즈&gt;를 쓰고 마르셀 프루스트가 &lt;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gt;를 쓰던 시대에, 영화가 시작됐다. 

그 두 작품은 플래시백을 비롯해 영화적인 기법을 사용했는데, 영화는 처음부터 그런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생각한다. 영화에서 모던이 끝날 때 영화 자체의 운명도 끝나는 것이고, 영화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모던이라고. 거기엔 어떤 동시성이 있다. 나는 그런 점에서 만일 영화가 박물관으로 간다면 모던한 것에 종말이 왔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변할지 우리는 예단할 수 없다. 오늘날 미술은 인스톨레이션의 개념이 되었고 더 이상 과거의 프레스코화 개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캔버스로 작업하는 미술은 과거의 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예술도 수많은 변화에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현재 보고 있는 영화의 방식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우리가 모던한 사고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영화에 두 번째 혁명의 시기가 시작됐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뤼미에르 이후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동일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는 이행의 시기가 도래했고 그 핵심은 디지털이다. 그것이 어떻게 혁신될지는 지켜보아야 하겠지만. 지금은 누구나 영화감독이다.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나와 영화를 찍는데, 지금은 핸드폰만 켜면 영화감독 아닌가. 프레임과 지속시간과 주연을 결정하고 블로그에 띄어 상영을 한다. 너무나 편한 매체이기 때문에, 예전에 종이와 펜만 있으면 이야기를 썼듯, 카메라는 더 이상 특권이 아니다. 오늘날 영화는 점점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있다. 미장센단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만든 감독이 큰 상을 받은 다음 충무로로 오고 있다. 한 감독이 처음으로 만든 3시간짜리 영화가 부산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올해부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한편에 15억원씩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생기는데, 그걸 연출하는 감독은 훈련된 연출자가 아닐 수도 있다. 들뢰즈가 생전에 &lt;리베라시옹&gt;과 인터뷰를 했을 때 세번째 책 &lt;디지털 이미지&gt;를 쓰게 될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그 책을 쓰지 못했지만, 우리는 목격은 하고 있다. 혹은 그 시대로 들어왔다. 다만 우리는 디지털 이미지 시대에 걸맞는 미학이나 철학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윤철: 현대적인 영화가 모던 자체라고 해도 일반 관객으로서는 내가 보는 영화가 쌍팔년도 영화인지 재탕영화인지 현대적인 영화인지 알아야할 것같다.<BR>정성일: 반대로 질문하겠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정윤철: 나는 영화가 100년밖에 되지 않은 예술이므로 다른 예술과 비교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미술과 비교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처음 인상파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왜 이따위 그림을 그렸느냐고 욕을 했다. 그런데 인상파가 자리를 잡게된 이유는 그전 그림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데 비해, 그러니까 예수의 승천이나 왕의 대관식이나 그리스 신화 등을 그렸던데 비해, 인상파는 그릴 필요가 없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그렸기 때문이었다. 해바라기나 해지는 인상이나 나무들을. 인상파 회화들은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에너지와 아름다움을 느낌과 인상으로 받았고 감정을 그리기 시작한 거다. 나는 거기서 모던 회화가 시작됐고, 세잔이 나오고 입체파로 넘어오고, 미술이 인간의 내면으로까지 들어갔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으려고 시작됐던 영화는 그 다음부터는 뭘 그릴 것인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이야기는 약하더라도 캐릭터와 사람을 다룰 때, 그것이 모던한 영화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위 말하는 플롯 위주의 영화가 아닌 캐릭터 위주의 영화, 더 나아가 인간의 내면으로까지 뛰어드는 영화가 모던한 영화라는 생각이다. 인간의 내면으로 뛰어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인간의 내면에는 시공간의 개념이 없고, 기억이라는 것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없지 않은가. 그런 것들을 이미지로 다루는 영화가 모던한 영화가 아닐까. 알랭 레네의 &lt;히로시마 내사랑&gt;같은 영화를 보면 사람의 마음 속의 기억과 감정들을 다루고 있는데, 그것이 모던 영화의 시작을 대표한다고 본다. 

이야기 자체는 약하지만 인간의 감정이 드러나고 캐릭터가 드러나는 영화들, 그러니까 홍상수나 로베르 브레송처럼, 대충 찍은 것 같아도 인간의 캐릭터가 매우 또렷이 보이는 영화들 말이다. 어떤 거대한 이야기가 아닌, 인간의 기억과 시간을 다루는 영화들, 인간 그 자체에 대해 다루는 영화들이 모던한 영화가 아닐까.<BR>정성일: 회화의 결론 중의 하나가 인상주의에서 나왔다. 그래서 대상을 그리는 대신에 대상과 그림 사이에 있는 공기를 가지고 오고 싶어한 거다. 공기를 그릴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다. 공기에 떨어지는 빛의 스펙트럼을 그리는 것뿐이다. 문제는 거기서 한걸음 나가는 순간 형상이 부서진다는 것이다. 그다음에 등장하는 인물은, 그러니까 세잔 다음으로 도착하는 인물은, 피카소와 뒤샹과 베이컨이다. 그렇게 형상이 부서지기 시작하다보면 그다음부터 세상은 정확하게 몬드리안의 그림이 된다. 선과 면만 남는 거다. 영화는 시간이라는 것을 다루어 왔는데, 시간이라는 뇌의 스크린을 다루는 영화들은, 끝났다는 느낌이 든다. 그것이 끝나갈때, 뇌의 스크린이 환상의 구조라고 말할때, 세상은 뭐가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때 세상은 표면이 된다. 완전한 표면만 보인다. 나는 영화가 음악에 비해 유치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이 인간의 정신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는 예술이라면 한없이 내려온 밑바닥에는 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을 다루고자,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찍었다. 사건이란 사실상 이야기고, 이야기가 되어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생겨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화의 역사란 사실상 어떻게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매치 컷과 인비저블 커팅과 더블액션을 비롯한 수많은 방법들도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기술이었다. 그런데 영화는 어느 순간 그것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영화는 시간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액션을 포기했고, 그것은 사건을 포기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시간으로 넘어갔지만, 영화가 시간을 포기할 때 그리하여 영화가 세상의 표면만 찍을 때, 그것은 힘을 잃어버렸다. 음악도 회화도 문학도 마찬가지다. 즉 이야기가 없는 영화들을 가지고 관객을 효과적으로 설득한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키아로스타미의 &lt;테이크5&gt;는 50분 동안 다섯개 쇼트로만 이루어져있다. 첫번째 쇼트는 길을 보여주고, 두번째는 들판을 보여주고, 마지막 쇼트는 바다에 파도가 들어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세상의 표면을 보여주면서 세상을 다루는 것이다. 거기엔 시간도 없고 오직 세상의 표면이라는 것만 있다. 키아로스타미는 그것이 영화가 갈 마지막 길이라고 믿는 거다. 몬테이로가 찍은 &lt;백설공주&gt;는 대사는 들리지만 계속 검은 화면만 보인다. 그리고 가끔 하늘을 한번 보여준다. 그러니까 세상은 두 가지라는 거다. 하늘과 암흑으로 가득한 세상. 그 영화가 미학적으로 멀리 나간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가야만 하는지 질문할 필요는 있다. 문제는 만드는 사람도 비평도 그것이 극영화라고 믿는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실험영화와 극영화가 있었지만, 나는 오늘날 남은 실험영화는 하나뿐인 것 같다. 현대의 실험영화는 광고다. 나머지는 다 그냥 영화라는 생각을 하는 거다. 
정윤철: 우리는 아무리 컴퓨터그래픽이 많고 제작비가 많아도 스필버그의 영화가 현대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lt;마이너리티 리포트&gt;가 미래를 찍는다고 해도 그건 기승전결 구조를 갖추고 헤피엔드로 끝나는 고전적인 영화다. 관객이 이 영화가 현대적인 영화구나 아니면 구시대적인 영화구나라는 것을 알면서 본다면, 영화를 보는 눈이 좀 밝아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관객들에게 현대적인 영화를 간단하게 정의해준다면.<BR>정성일: 내가 보는 현대적인 영화는 피로를 찍은 영화다. 말하자면 보들레르가 말한 근대를 살아가는 피로, 속도로 살아가는 피로 말이다. 나는 영화가 그것을 다룰 때 모던한 것을 다룬다고 생각한다. 고다르와 레네와 허우샤오시엔과 린치를 볼때, 모던한 것을 살아가는 피로가 보인다. 피로의 감정, 피로의 인상, 피로의 감각이. 
정윤철: &lt;해변의 여인&gt;을 보면서 홍상수가 한국에서 유일하게 모던한 것을 다루는 감독이 아닌가 했다. 모던의 특징은 피로함이라는 건가.<BR>정성일: 그것은 영화가 주는 인상, 감각의 피로함이지, 조폭으로 사는 것의 피로함은 아니다(웃음). 거기에 현대영화의 핵심이 있지 않나 싶다. 왕가위의 영화를 보면 피로하지 않은가. 지아 장커의 &lt;소무&gt; &lt;임소요&gt; &lt;세계&gt;에서도 중국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속도로 살아가는 것의 피로함이 보인다. 심지어 그 무게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정윤철: 그렇다면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인 영화는 현대적인 영화가 되기 힘든 것인가. 나는 &lt;해변의 여인&gt;을 보면서 피로감을 느꼈지만, 고현정이 차를 몰고 구덩이에 빠졌다가 거기서 빠져나와 해변을 달리는 장면을 보면서 다른 느낌을 보았다. 또다시 구덩이에 빠질 지도 모르지만, 힘들었던 시기를 지나고 달려나가는 인간의 뒷모습에서, 그래도 살아야지 어쩌겠어라는 느낌을 본 것이다.

정성일: 나는 정반대를 보았다. 그 차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유턴한다. 그 차가 갔던 길을 돌아올때 지옥으로의 영겁회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아마 그 차는 다시 구덩이에 빠질 거고, 고현정은 내년 봄에 다른 남자와 다시 해변에 오겠지, 하는. &lt;해변의 여인&gt;에 나오는 강아지는 동일한 강아지인데도 호명만 계속 변한다. 나는 대상과 호명 사이의 불일치, 그 사이에서 겪어야하는 피로를 봤다. 의도인지 결과인지는 알 수 없지만 &lt;좋지 아니한가&gt;에 나오는 인물들도 모두 피로하다. 천호진은 완전히 지쳤고 황보라도 지쳤고 박해일도 지쳤다. 그 모두가 피로감에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정서는 &lt;가족의 탄생&gt;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혹은 복수를 하기 위해 그 무거운 총을 들고 돌아다녀야만 하는 금자도 피로한 거다. 그런 인물들이 모던한 영화 속에 나타나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정윤철: 그것은 주제적인 측면이 아닐까.<BR>정성일: 그런 것을 주제로 다루지 않는 영화도 모두 거기에 휩싸여있다. 아니 오히려 &lt;우아한 세계&gt;처럼 피로를 다루는 영화는 피로하지 않다. 그 영화는 즉시 장르영화로 몰입하게 된다. 그런데 &lt;좋지아니한가&gt;는 피로함을 찍으려고 한 영화가 아니지만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을 찍기 때문에 피로를 피해가지 못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피로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미국과 유럽의 영화들이 모두 그야말로 휩싸여 있다. 
정윤철: 19세기에 고호와 세잔은 보잘것없는 존재였지만 지금은 역사에 크게 자리 잡고 있고, 당시 잘나가던 살롱전 입상 화가들은 루브르 지하창고에서 썩고 있다. 그렇게 볼 때 평론가의 역할은 새로운 재능을 발굴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지금 주목하고 있는 감독이 한국에 있는가.<BR>정성일: 작년에 데뷔한 감독 중에서는 조창호와 신재인을 주목하고 있다. 두 감독 모두 주제와 형식에서 새로운 영화, 이제까지 없던 영화를 찍었다. 특히 신재인은 한국에서 본적이 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정윤철: 중견감독은 어떤가<BR>정성일: 임권택 감독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다. 홍상수와 김기덕의 다음 영화가 궁금하고, 정지우와 정윤철, 윤종찬, 임순례, 임상수의 다음 영화도 궁금하다. 박찬욱이 어떻게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다음 영화를 밀고나갈 것인가, 김지운이 어떻게 장르를 혁신할 것인가, 류승완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세계를 계속 방어할 것인가도 궁금하다. 지금 갑자기 떠올렸기 때문에 놓친 이름이 많을 거다. 
정윤철: 가장 먼저 언급한 세 감독, 임권택과 홍상수와 김기덕에게 조금이라도 더 관심이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BR>정성일: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영화는 항상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끊임없이 반성적 성찰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같은 것을 반복하거나 뭔가 머뭇거리고 있거나 심지어 퇴행하고 있을 때, 그것을 지켜보는 일은 괴롭다. 무언가 앞으로 나아간 감독의 영화를 볼 때, 그리고 그것을 쫓아가려고 할 때, 비평가도 한걸음 나아간다. 같이 성장하는 것이다. 나쁜 감독의 영화를 계속 쓰면 비평가도 퇴행한다. 그런 의미에서 내겐 그 세 명의 감독이 매우 소중하다. 
정윤철: 한국영화의 문제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다. &lt;친구&gt;가 개봉한 다음에 당신은 그 영화의 성공에 어떤 사회적 무의식과 욕망이 담겨있는가를 물으며 지난 1년 동안 괴로웠다는 내용이 담긴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렇다면 7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의 무의식과 욕망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BR>정성일: &lt;좋지아니한가&gt;에 관한 글을 쓰면서도 했던 이야긴데, 나는 한국영화가 갑자기 가족이라는 화두에 왜 이렇게 매달리고 있는지가 매우 크고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영화들의 공통점은 가족을 때려부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맹렬하게 가족과 싸우고 있다. 그런 점에서 &lt;좋지아니한가&gt;는 이래도 좋은가, 이렇게까지 부서져도 좋은가, 라고 반문하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가족이 힘을 합해 싸우고 나서 집을 향해, 밥솥이 있는 집을 향해 뛰어올때, 비루하더라도 참고 사는게 좋지 않겠는가라고 물어보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lt;좋지아니한가&gt;가 매우 흥미로운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토록 가족과 싸워야만 하는지 생각해보니 한 가지가 떠올랐다. 내가 노무현 시대에 가장 납득할 수 없었던 스타는 문근영이었다. 문근영은 개인으로서는 착한 소녀지만, 저 소녀에게 스타라고 불릴 만한 힘이 있는지 의아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문근영에게 붙은 국민 여동생이라는 수식어였다. 왜 스타가 여동생이어야 하는가. 말하자면 가족주의인 것이다. 가족이 되어야만 스타를 사랑할 수 있다. 이 가족의 모습이 흉물스럽게 나타난 것이 월드컵이었다. 월드컵은 계급과 정치적 견해와 사회적인 삶의 질과 이해관계, 이 모든 것들이 갑자기 마법처럼 사라지고,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일치단결했을 때 보여준 무시무시한 하나 되기였다. 이것은 가족 되기의 또 다른 판본이다. 나는 그런 점에서 관객 1400만명이 본 영화 &lt;괴물&gt;이 딸을 죽여야만 끝날 수 있었을 때 무시무시했다. 

딸을 죽이면 이 가족은 복원이 안된다. &lt;괴물&gt;에서 변희봉은 이렇게 말한다. “얘들아, 현서가 죽어서 우리가 한자리에 모였다.” 그런데 현서가 다시 죽었으므로 이 가족은 다시는 모이지 못할 것이다. 그 가족 부수기에서 나는 마법적 하나 되기와 국민 되기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가족을 부수면 정말 살 수 있어?’라는 질문을 &lt;좋지아니한가&gt;가 바인딩해서 되던진다는 느낌이었다. 이처럼 영화는 하나의 시대정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메시지와 징후를 우리에게 되돌려준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식으로 가족을 다룬 영화들이 &lt;괴물&gt;을 제외하고는 단 한편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여기에 동의하지 않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국민들은 여전히 하나 되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것은 무시무시하다. 
정윤철: 5년 전에 진보적인 모든 세력이 노무현을 밀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올 정도로 에측불허의 행동을 했다. 적이라면 싸우면 되지만, 내부에서 그런 문제가 생기니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고, 가치관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됐다. 그런 것이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같다. 2,30년에 걸친 진보운동 끝에 노력하면 된다는 이성주의가 해피엔드를 맞는 듯했는데, 그것이 산산조각 나고 카오스 상태가 되어버린 것같다.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영화는 탈역사화되고 흥미 위주로 가지 않겠는가. 우리가 믿었던 거대한 사상,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으니, 어디에 기댈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영화 자체로 파고들자, 영화만 잘 만들자, 그런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비평가로서의 걱정은 없나?<BR>정성일: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윤철: 돈이다.<BR>정성일: 그걸 이데올로기로 말한다면? 
정윤철: 개인이 잘 사는 것 아닐까?<BR>정성일: 이런 생각을 해봤다. 각각의 시대는 이전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내가 생각하기에 70년대는 교양의 시대였다. 그때는 &lt;사상계&gt; &lt;창작과 비평&gt; &lt;문학과 지성&gt;을 비롯한 많은 계간지가 나왔고, 지금과는 다르게 파워가 있었다. 그런데 교양과 지성의 단점은 입으로만 떠들지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반작용으로 80년대는 행동의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실천으로 나갔다. 그런데 정치의 결정의 다른 판본은 도그마이므로, 90년대는 다양성의 시대를 요구했다. 90년대는 문화의 시대였다. 막시즘만 진보가 아니고 페미니즘과 이반과 수많은 다양한 목소리들이 진보를 말했다. 이 문화의 시대의 약점은 실속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실용주의가 된 것 같다. 지금 사람들은 실용적인 게 아니면 견디지를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미친 것이다. 나는 이 실용주의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내가 돗자리를 깔지 않았으니 모르겠지만(웃음), 새로운 대통령이 나오면 보일 것 같다. 실용주의 시대가 계속될지, 아니면 반작용이 나와 실용주의를 끝장내고 다른 시대를 불러올지.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것을 선점할 것인지 아니면 시대에 매달려 질질 끌려갈 것인지 지켜보아야 한다. 비평가는 예언하는 것이 직업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난 다음에 평하는 것이 직업이다. 비평이라는 것은 시대에서 가장 뒤에 오는 것이다. 
정윤철: 스크린쿼터가 축소됐다. 영화인들은 다양성을 위해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한다고 하지만 한국영화가 멀티플렉스를 독점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회의가 들기도 한다. 이제 스크린쿼터 축소는 기정사실화됐고, 앞으로는 극장과의 싸움이 남아있다. 우리는 생산자이고 관객은 소비자라면 극장은 유통사업자다. 영화를 관객과 만나게 해주는 극장은, 아무리 영화가 시대를 앞서가며 다양성을 창조한다고 하더라도, 돈이 되는 영화를 상영하려고 할거다. 그렇다면 투자자와 배급자가 같은 한국영화의 산업구조에서 과연 한국영화의 미래가 있는가라는 걱정이 든다. 교차상영같은 것들을 보면 극장의 파워가 너무 세진 것같다. 비평가에게 그런 것을 물어본다는 것이 애매할 수도 있겠지만, 당신의 의견을 묻고 싶다.<BR>정성일: 문제는 그걸 막을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부를 끌어들이는 것. 하지만 나는 그 방법이 여우를 내쫓기 위해 늑대를 끌어들이는 꼴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그것을 운영하는 방식에 성패가 달려있다. 더구나 한국은 어떤 정당이 정권을 잡는가에 따라 운영방식이 너무나 유동적이다. 일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은 믿지만, 운영방식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는 우리들의 화두로 남을 수밖에 없지 않나싶다. 계속 몰고 나가면 자본주의를 바꾸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건 너무 근본적이고 위험하다. 그리고 일개 영화평론가가 이야기하기엔…(웃음) 
정윤철: 당신은 십몇 년 동안 한국영화를 지켜보아왔다. 그 동안 감독과 프로듀서에게 답답하거나 안타까웠던 것은 없었는지 묻고 싶다.<BR>정성일: 나에게 신기한 것은 한국의 프로듀서는 신인감독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들(프로듀서들)은 사실상 감독이나 마찬가지다. 감독을 하고 싶은데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는 싫은 거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감독은 일종의 카게무샤인 셈이다. 죽으면 까내고 또 까내고. 나는 모시고는 일을 못하겠다는 거지. 이렇게 된다면 프로듀서와 감독의 관계는 창조적인 관계가 되기 힘들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머리가 큰 감독들은 프로듀서를 제작부장처럼 쓰고 싶어할 뿐이고 의논 상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머리 큰 감독과 머리 큰 프로듀서가 만나 멋진 결과를 끌어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창작에 대한 감독의 고민과 시스템적인 힘과 창조적인 의논의 대상으로서 프로듀서가 만나 변증법적으로 승화된 결과가 없는 것이다. 이건 제도나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들이 이런 결과에 관해 반성적으로 물어봐야만 한다. 
정윤철: &lt;매트릭스&gt; DVD에 메이킹 필름이 수록돼 있는데, 프로듀서인 조엘 실버가 헬기 위에 턱하니 앉아 인터뷰를 한다. 그는 50줄에 접어든 중견이다. 차승재 대표하고 나이도 비슷하고 외모도 비슷한데(웃음), 현장에서 뛰는 모습이 보기 좋더라. 한국에선 웬만한 프로듀서는 삼십대에 이미 영화사를 차리지 않나. 물론 감독들도 많이 그러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독은 현장에서 뛰는데, 프로듀서는 30대 후반쯤 되면 현장에서 보기 힘들다. 40대 감독은 가끔 있지만 40대에 현장에서 뛰는 프로듀서들이 얼마나 있는가. 감독은 신인이 많다고 하더라도 4,50대의 프로듀서가 필요한데 말이다. 현장 경험이 많은 프로듀서들이 많아야 하는 게 아닐까. 한국영화는 그런 모습을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BR>정성일: 나는 안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바깥에서 보기엔 감독과 프로듀서가 의논해 예술적 창작을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정윤철: 이번에는 &lt;오아시스&gt;에 관해 묻고 싶다. 당신은 &lt;오아시스&gt;에 관해 &lt;씨네21&gt;에 기고한 매우 긴 글에서 그 영화는 환상을 만들고 있다, 장애인이 소재지만 가부장적인 이야기를 한다, 고 말했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두 보잘것없는 인간들 사이에 생겨난 사랑 말이다. 홍종두는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정상적인 판단력이 부족한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다.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과 육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장애가 없는 사람과 같은 것을 기대하기란 힘이 드는 일이다.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하여 영화 전체가 위험하고 문제가 크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BR>정성일: 나는 한공주와 홍종두를 가련하게 생각한다. 

진심으로 두 사람이 잘됐으면 좋겠고 행복했으면 좋겠고 사랑을 맺었으면 좋겠다. 내가 역겹게 생각하는 건 이 영화가 환상을 만들어가는 구조다. 이야기는 사랑인데, 이야기의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제다. 공주와 종두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들을 맺어주는 구조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생산 구조와 정확하게 맞물려 있다. 그래서 나는 &lt;오아시스&gt;가 보수적일 뿐만 아니라, 휴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수준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lt;오아시스&gt;는, 영화가 끝난 다음에 어떤 비극이 다시 올지는 모른다고 해도, 행복할 것 같은 조짐을 보이며 끝난다. 하지만 그런 영화는 굉장히 많다. 행복의 조짐으로 끝나는 것이 그렇게 잘못인가.<BR>정성일: 나는 &lt;오아시스&gt;의 마지막을 믿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종두는 감옥에 갔으니 별 네 개를 달고 나올 거다. &lt;오아시스&gt;는 모든 이야기를 한시간만에 빨리 끝내고 그 다음으로 갔어야만 했다. 별 네 개를 달고 나온 전과자가 공주와 행복할 수 있는가, 그들은 그런 현실을 견딜 수 있는가. 그 이야기가 있어야만 &lt;오아시스&gt;는 오아시스가 있는지, 너희는 정말 복지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장애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지, 물어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lt;오아시스&gt;는 그 직전에 끝난다. 종두의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과 함께 희망이 보이는 것처럼. 더 망연자실한 것은 그 장면에서 공주가 바닥을 청소하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아내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과 그 쇼트를 결합해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것처럼 끝내는 것은 완전한 환상이다. 거기에서 완벽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장애인이 아닌 우리다. 우리를 환상의 구조에 밀어 넣고선, 우리는 공주와 종두가 얼마나 불쌍한지 알고 있어, 우리는 그들을 동정했어, 라고 면죄부를 주는 거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같은 사회에서 공존의 방식을 묻고 있는가. &lt;오아시스&gt;가 그저 전과자와 교육받지 못한 여자의 문제라면 거기서 끝나도 된다. 하지만 장애인을 끌어들이고 별넷단 남자를 끌어들였다면, 그들이 정말 이 사회를 견딜 수 있는가를 물어야한다. 임권택 감독의 &lt;길소뜸&gt;을 생각해보자. 만약 &lt;길소뜸&gt;이 신성일과 김지미가 아들을 찾으러 가는 장면에서 끝났다면, 열린 구조이기 때문에 멋있을 수 있었을 거다. 관객은 그들이 아들을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lt;길소뜸&gt;은 모든 이야기를 한 시간으로 압축하고 1시간 5분만에 어머니가 쓰레기가 되어 있는 아들을 만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녀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지저분한 아들을 싫어하고 경멸한다. &lt;길소뜸&gt;은 분단으로 헤어진 이산가족이 만났을 때 그들은 정말 잘 살았을까, 라는 공존의 문제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런데 &lt;오아시스&gt;는 공존의 정치학을 질문해야하는 시점에서, 왜 영화를 끝내버리는 것인가. 앞의 이야기를 한시간 만에 끝내고 종두가 감옥에서 나왔다면 이 영화를 그렇게 비판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앞의 이야기가 없더라도 관객은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건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질문을 던져야하는 순간 영화를 끝내는 행위는 정치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납득할 수 없다. 그럴 바에는 왜 이야기를 꺼냈느냐는 거다. 나도 얼마 안되는 원고료를 쪼개 성금을 보내지만, 그런 행동이 스스로도 역겹다. 면죄부를 받는 거거든.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헌금을 내는 것과 같다. 이 돈을 내면 죄사함을 받을 거야. 그런데 죄가 사해지는가. 
정윤철: 이창동 감독은 가난과 힘든 삶과 공존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것같다. 그들도 우리처럼 사랑할 수 있다, 더 솔직하게 사랑할 수 있다고. 종두가 공주방의 창문을 가리는 나무를 잘라주듯이, 이것이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텐데.<BR>정성일: 그렇다면 그것이 신파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리고 그런 신파를 하면서 장애인을 끌어들이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lt;오아시스&gt;는 장애인을 가장 비참한 데까지 끌어내어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체적 우위에 서게 만들고, 가련함이라는 감정을 자동적으로 끌어낸다. 만약 공주네 집에 돈이 무지 많아 유일한 문제는 장애일 뿐인데, 종두를 만나 같이 산다. 그러면 보는 사람은 화가 날거다. 인간은 동정심을 만들어 내는 자동인형 같은 반응을 영화 안에 전제하고 있거든.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던질 때에 사랑은 정말 본질적인 것인가, 라고 반문한다. “나는 너를 사랑해”의 다른 판본은 “나 너랑 하고 싶어”다. 모든 숭고한 말에는 외설적인 이면이 있다. 그런데 &lt;오아시스&gt;는 숭고한 면만 있는 것처럼 진행하며 외설적인 이면이 습격해 오는 것을 온갖 방식으로 방어한다. 그러므로 내게는 이 영화가 매우 값싼 신파처럼 보이는 거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게 걸작을 찍은 것처럼 얘기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정윤철: 해피엔드를 싫어하는 건가.<BR>정성일: 납득할 수 있다면 좋아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해피엔드는 기만이다. 대부분의 비극이 기만인 것처럼. 절대적인 비극과 해피엔드가 가능한 것인가. 
정윤철: 그 말을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비극적인 엔딩을 바라는 것도 아니라는 뜻인데.<BR>정성일: 영화가 끝나면 우리는 현실로 돌아가야하니까. 
정윤철: 그렇다면 납득할 수 있는 엔딩을 좋아하는 거겠다.<BR>정성일: 정확하게는 윤리적이고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을 견딜 수 있는 엔딩을 좋아한다. 
정윤철: 무식한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정치와 윤리와 미학에 순위를 매긴다면.<BR>정성일: 윤리가 가장 먼저다. 정치적이고 미학적인 것은 영화에 따라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만약 &lt;오아시스&gt;와 장애인 소재의 &lt;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gt;를 비교한다면 어떤가.<BR>정성일: 물론 &lt;오아시스&gt;가 훌륭하다. 

&lt;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gt;는 상업영화고, &lt;오아시스&gt;는 내러티브 구조나 형식에 있어서 이창동이라는 감독의 미학적인 시도들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lt;오아시스&gt;는 나의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질문을 견디지 못했다. 내가 &lt;오아시스&gt;에 관해 그렇게 길게 썼던 것도 그 영화에 미학적인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정치적이고 윤리적으로 동의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 거다. 
정윤철: 나도 &lt;오아시스&gt;의 엔딩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은 종두가 강간을 했고,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쇼트를 교묘하게 배치했다고 썼는데, 우리도 알다시피 종두는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는 남자가 아닌가. 그러니까 강간을 하고 나서도 집에 가서는 엄마하고 묵찌빠를 하면서 노는 거고.<BR>정성일: 내 얘기가 그거다. 종두 같은 인간은 언제든지 공주를 강간할 수 있다. 그런 일은 대한민국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이다. 그게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장면을 왜 그렇게 붙여놓았느냐는 거다. 마치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것처럼. 어떤 남자가 강간을 하고 집에 가서 엄마하고 묵찌빠를 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강간신 다음에 이걸 붙여놓으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나는 종두는 용서할 수 있지만, 그렇게 붙여놓은 편집은 용서할 수 없다. 내가 &lt;오아시스&gt;에서 역겹게 생각하는 건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그 시네마틱한 부분이다. 공주가 종두에게 전화할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그사이에 옆집 부부가 공주 집에 와서 섹스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그것으로도 부족해 오빠 부부가 공주를 장애인 임대 아파트에 데리고 가서 함께 사는 것처럼 거짓말하는 장면을 보여주는가. 물론 그런 인간은 무지하게 많다. 하지만 강간과 묵찌빠와 섹스와 오빠라니. 그 다음에 공주가 전화 거는 장면이 나오면 관객은 자동적으로 공주도 섹스하고 싶은 거야, 라며 강간을 용서하게 된다. 그런 편집은 너무나 비윤리적이다. 당신이 나보다 더 잘 알겠지만, 영화에서 이미지는 전적으로 운이다. 그 순간 바람이 불 수도 있고 해가 비칠 수도 있고 구름이 지나가며 얼굴에 그늘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구름이 지나간 다음에 한 여자의 얼굴이 붙는 것은 백만분의 일의 우연도 아니다. 나는 &lt;오아시스&gt;가 그런 식으로 장면을 붙인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당신은 &lt;사이보그지만 괜찮아&gt; &lt;다세포 소녀&gt;에 관한 비평도 썼는데, 이런 영화까지 정치적인 기준으로 생각을 한다는 것이, 나는 조금 그랬다.<BR>정성일: 나는 그 두 편의 영화가 굉장히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한다. 
정윤철: 어떤 면에서 정치적이라는 건가. 당신은 &lt;사이보그지만 괜찮아&gt;의 마지막을 비판했는데, 그처럼 판타지적인 엔딩에서 어떻게 정치적인 보수성을 발견했는지 궁금하다.<BR>정성일: 왜 판타지로 피해갔느냐는 거다. 판타지가 동원되는 것이 이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했을까. 나는 그 영화를 보며 &lt;오아시스&gt;와 똑같은 궁금증을 품게 됐다. 그런 엔딩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엔딩 다음에 왜 정신병원이 나오는 에필로그를 붙였을까. 

&lt;사이보그지만 괜찮아&gt;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문득 질문하게 만든다. 어느 쪽이 진짜인가. 그렇다면 이 영화가 진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정신병원인가 정신병인가. &lt;사이보그지만 괜찮아&gt;는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그 에필로그는 구조로만 따지면 전혀 필요가 없는데, 무엇을 매개하는지 답을 피하기 위해 구태여 갖다 놓은 것이다. 그것은 질문을 피하기 위한 알리바이다. 
정윤철: 정신병인지 정신병원인지 하는 질문이 왜 중요한 것인가.<BR>정성일: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대상이 문제인가, 이 영화가 우리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목표가 생기기 때문이다. 
정윤철: 누가 보더라도 &lt;사이보그지만 괜찮아&gt;는 영군과 일순이 주인공이고, 그들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지가 메인 플롯으로 보이지 않을까.<BR>정성일: 누구나 알 수 있도록 만든 것은 박찬욱의 재능이고 그 안에 알레고리를 짜넣은 것도 그의 솜씨다. 하지만 그가 너무 나이브했던 것도 사실이다. 
정윤철: 그들이 맺어지면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것인지.<BR>정성일: 그건 상관없다. &lt;사이보그지만 괜찮아&gt;가 둘만의 이야기로 끝나버리는 것이 반동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영군과 일순을 비롯해 이 병원의 모든 인물은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그것은 이 병원이 한국사회의 압축판이라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신병을 안에 숨기고 살아가지만, &lt;사이보그지만 괜찮아&gt;는 그걸 뒤집어놓았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이 세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끝을 낼 것인가, 환상 밖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환상을 유지할 것인가, 질문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lt;싸이보그지만 괜찮아&gt;는 정신병원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그러니까 이건 정신병원을 찍은 걸까 정신병을 찍은 걸까라고 질문을 완전히 바꿔버린다. 박찬욱은 정치적인 것을 피해가고자 마지막에 그런 질문을 밀어넣었던 것이다. 왜 마지막에 패러다임을 완전히 지우는가. 박찬욱은 그것이 재미있었을지 모르지만 내겐 아니었다. 도대체 1시간 40분 동안 내가 보았던 영화는 무엇이었는가. 이 정신병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남한은 이 수많은 모순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똑같은 질문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러 박찬욱은 질문을 바꾼 것이다. 그것은 기만이다. 나는 문득 박찬욱은 용기가 없었거나 엔딩을 찾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엔딩을 찾지 못했다고 얘기하든지, 나는 그렇게까지 밀고나가고 싶지 않았다고 얘기했어야만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라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가 영화 전체와 에필로그, 두개의 신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쪽에서 에필로그를 볼 것인가, 에필로그 쪽에서 영화를 볼 것인가, 에 따라 영화가 달라진다. &lt;괴물&gt;이 그런 영화다. &lt;괴물&gt;은 세 개의 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롤로그와 영화 전체, 그리고 송강호가 어두운 매점에 앉아 눈을 희번덕거리는 마지막 신. 의미심장하게도 이 세번째 신은 한강인데도 세트에서 찍은 장면이다. 한강이 나오는 모든 장면을 진짜 한강에서 찍었는데, 이 장면만 세트였던 것이다. 그순간 세상은 시뮬라크라가 되고, 영화는 질문한다. 어느 쪽이 진짜인가. 
정윤철: 당신은 &lt;다세포 소녀&gt;가 프롤레타리아의 사랑을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lt;다세포 소녀&gt;는 만화같고 키치적인 영화다. 물론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를 아무 생각없이 쓰기는 했다. 하지만 코미디조차 그렇게 보아야만 할까.

<BR>정성일: 원작만화에서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재용은 왜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그 소녀를 택했는가. 성적 취향의 다양성을 드러내자면 너무나 많은 인물이 있었다. 아니면 만화처럼 인물을 옮겨다닐 수도 있었을 거다. 그런데도 영화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에게 고정점을 두고 있으므로, 그녀의 퍼스펙티브로 영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이 영화에서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성적 취향에는 그토록 자유롭고 관대하면서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조롱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문제로 삼은 것은 각색이었다. 영화는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나오는 하나의 조합이다. 
정윤철: 코미디는 장르적인 특성을 고려해야만 하지 않을까 한다. 그렇게 씹는 맛에 보는 영화인데 너무 정색을 하면 문제가 있지 않나.<BR>정성일: 코미디를 만들 때는 풍자의 관대함과 풍자의 날카로움이 있다. &lt;다세포 소녀&gt;가 풍자의 관대함을 성적 자유에 맞춘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풍자의 엄격함이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에게 맞춰진 것에 관해선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lt;다세포 소녀&gt;를 이야기하면서 완성도는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성적 취향에는 이토록 관대하고 판타지를 투영하는 영화가 계급 문제에 있어서는 왜 이렇게 현실적인가를 묻고 싶다. 
정윤철: 코미디나 대중영화에 있어서까지 그렇게 정치적인 것을 고려해야만 하는 걸까.<BR>정성일: 나는 영화가 의도적으로 정치적인 것을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핵심이 되는 질문은 이런 거다. 만약 민주주의를 다룬다면, 그걸로 무엇을 얻고 싶은 건데? 예를 들면 누군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이스라엘에 군사자금을 대겠다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없지만 거기서 커피를 마시는 반복적인 행위가 결국엔 팔레스타인 아이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는 행동이 된다. 그것이 가지는 무의식적인 정치적 함의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거다. 나는 정치가 너무 싫다고 하면서 대통령 선거가 있는 날 놀러가는 것도 결국 정치적 행위인 것이다. 
정윤철: 선거를 피하는 것은 기회를 없애는 거지만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기회를 만드는 것이 기에 더 중요하다는 것인가?<BR>정성일: 수많은 이야기와 인물 중에서 하필 그것을 선택한 정치적 의도가 무엇인가. 예를 들면 &lt;좋지 아니한가&gt;에서 천호진이 굳이 학교 선생님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학교 교사인지 직장에 다니는지 자영업을 하는지에 따라 의미의 방점이 이동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정치적인 의도가 없다고 해도 그것이 불러 일으키는 효과마저 비정치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이펙트를 따지자는 거다. 의도가 무엇인지는 의미가 없다. 의도를 묻는 것은 예술을 창백하게 만들 수 있다. 의도는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그 의도가 가져오는 이펙트에 대해선 물어야한다고 믿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보수적이라고 그의 영화까지 보수적이라고 하지 않지 않는가. 물론 그의 영화에는 많은 보수적인 의도가 깔려 있다. 그러나 그 이펙트는 보수적인 이데올로기에 봉사하지 않는다. 이스트우드가 공화당에 찬성한다고 하여 그의 영화도 보수적이라고 말하는 건 바보짓이다. 마찬가지로 감독이 민노당을 지지한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진보적인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다. 나는 그에게 비슷한 논쟁이 벌어졌던 &lt;아멜리에&gt;에 대한 키노의 기사를 보여준다. 





&lt;아멜리에&gt;의 열기가 계속되자 ‘리베라시옹'지는 정치가들에게 입장을 물었다. “순진함이 신선했다”고 한 우익 장관에서, 반자본주의 투쟁을 읽어낸 파리 공산당 부시장까지 반응은 모두 놀라울 정도로 긍정적이었다. 좌익 공화 단체 ’제네라시옹 레퓌블리끄‘도 “민중을 진솔하게 그렸다”고 영화를 칭찬했다. 반면 카간스끼는 &lt;아멜리에&gt;의 감상적 파리묘사를 국민전선 선전 비디오 같다고 비난했다.’리베라시옹‘도 호평은 했지만 한 기자는 주네가 가장 저급한 ’프랑스다움‘을 이용했다는 암시를 남겼다. “아코디언 음악, 서민 구역, 프랑스기...섬뜩하다. 프랑스는 이런 과거를 가진 별 볼일 없는 국가일 뿐이다.”<BR>&lt;아멜리에&gt;의 내용을 생각하면 이런 분석은 과민반응이다. 찬반 양 진영 모두 영화가 코미디라는 사실을 망각한 것 같다. 코미디는 과장과 특정한 연기를 통해 사회현실을 모방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따라서 이념적으로 양면적인 장르다. 코미디는 소위 진지한 장르가 무시하는 문제들을 이슈화하고, 동시에 종종 보수적 결론으로 그것을 무마한다.<BR>(..중략..)<BR>비시정권하에서 나치 협력이란 치욕의 역사를 겪은 프랑스인들은 전후 무엇이든 그쪽으로 해석할 만큼 강박관념을 갖게 되었다. &lt;아멜리에&gt;는 따라서 저항이냐 협력이냐 하는 싸움이 전개되는 최신 전장이 된 것이다. 그러나 비시 정권하에는 사실 저항에서 무관심, 비겁, 암시장 등쳐먹기, 파시스트 협력 등 다양한 입장의 행동들이 존재했다. 전쟁이 벌어지면 늘 그렇듯이 백퍼센트 좌파, 백퍼센트 우파 행동이란 건 없다. &lt;아멜리에&gt;에 대한 이런 해석은 상관없는 작품에서 부당하게 역사적 경험을 읽어내는 것이다.<BR>-키노 2001년 1월호 SIGHT &amp; SOUND 기사 번역문 중. 
정윤철: 단 한순간만이라도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잊고 즐기고 싶은 욕망도 있지 않나. 그래서 영화를 보는 거고.<BR>정성일: 그 순간 그것은 욕망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자살해버리는 거다. 
정윤철: 하지만 살다가 힘들면 죽고 싶듯이 영화를 보며 가상으로나마 사회적으로 자살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BR>정성일: 어떤 인간에게도 생명을 포기할 권리는 없다. 그것은 비윤리적이다. 사회적으로 자살하겠다고 하는 순간 사람은 훨씬 곤란한 문제에 부딪치게 된다. 자기를 진짜 괴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정윤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좋겠지만, 그런 싸움은 너무도 지난한 것이다.<BR>정성일: 1969년 동경대 야스다 강당을 점거하고 농성을 하던 전공투 극좌파 학생들이 잡혀갈때 누군가 벽에 낙서를 남겼다. 질 줄 알면서도 싸워야하는 싸움이 있다고. 그 싸움을 포기할 수는 없는 거다. 
정윤철: 요즘 세대는 책읽기도 싫어하고 인터넷 20자평에 모든 영화의 운명이 왔다갔다 하고 있다. 당신은 앞으로도 계속 평론을 써야하는데 어떤 전술을 택할 것인가.<BR>정성일: 나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런 태도가 더욱 만연했으면 좋겠다. 20자평도 귀찮아, 나에게 10자평만 줘, 이렇게. 그렇게 된다면 다음 세대가 지금을 비웃으며 반작용을 보이지 않을까. 80년대에는 모두 정치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90년대에 타르코프스키와 키아로스타미와 앙겔로풀로스의 영화들이 몇 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 영화를 보던 사람들이 죽은 게 아니지만, 그때 조금 과하기도 했다. 그래서 반발이 일어났다. 나를 즐겁게 해줘. 나는 지금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계속 방관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정윤철: 당신은 &lt;키노&gt;에 글을 쓰면서 &lt;스바키 산주로&gt;에서 주인공인 산주로가 아이들을 뒤돌아보며 던지는 마지막 장면의 대사를 인용한 적이 있다. “바보 자식들, 이제부터 너희들의 시대인 거야, 너희들이 어른이라구! ” 그렇다면 평론을 하는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이제부터 너희들의 시대일 거라는 생각이 드는가.<BR>정성일: 영화평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가 부산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 와서 했던 말이다. 그는 프랑스 영화학교인 이덱에 다니다가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 이수하지 않으면 학교를 떠나야하는 필수과목이 있었다. 쇼트 나누기였는데, 앙겔로풀로스는 고전적인 편집방식이 너무 싫어서 선생이 요구하는 방식과 다르게 콘티를 짰다. 그러자 선생이 말했다. 앙겔로풀로스, 당신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당신의 천재성은 그리스에서나 발휘하고 지금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던지 학교를 나가라. 앙겔로풀로스는 밤새도록 고민하며 물었다고 한다. 나는 영화를 원하는가 그리고 영화는 나를 원하는가. 그리고 학교를 떠나 결국 그리스로 돌아갔다고 한다. 나도 묻고 싶다. 내가 글쓰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글쓰기도 나를 원하는가. 어떤 영화는 글쓰기를 요구하지만 어떤 영화는 감흥이 없다. 완성도를 떠나 아무런 화학작용이 없는데도 글을 쓰는 건 자신과 영화 모두를 망가뜨리는 거고 쥐어짜는 거다. 
정윤철: 마지막 질문이다. &lt;키노&gt;를 떠난 후 감독이 될 준비를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완벽한 영화는 아직 찍지 않은 영화라고 한다. 언제쯤 완벽하지 못한 영화를 우리에게 보여 줄 생각인가.<BR>정성일: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유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주겠다, 이런 생각은 아니다. 그런 건 유치한 20대에나 가능한 생각일 거다. 나는 책상에서 혼자 영화를 하는 것에 한계에 부딪쳤다. 생각이 나가지 않는다. 영화에 대해 생각하고 책을 보고 여러가지 방법을 써도, 내게 남은 방법은 한가지 밖에 없더라. 함께 영화를 만드는 것. 나는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드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한 숏과 신을 놓고 나눌 것인가 붙일 것인가, 나누는 것이 결단인가 나누지 않는 것이 세상에 순응하는 것인가, 토론하고 싶다. 나는 세상과 영화에 대해 더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영화에 대해 아직 욕심이 있고 더 멀리 가보고 싶다. 내 생각을 더 멀리 밀고 나가고 싶다. 학생 시절에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나는 영화에 대해 쓰는 것과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영화에 관해 토론하고, 어떻게 찍을까 붙일까 나눌까 고민을 하는 거였으니까. 
정윤철: 마지막으로 &lt;씨네21&gt;에 바라는 바는 없는가.<BR>정성일: 이건 아주 특별한 표현이다. 필사적으로 버틸 것. 나는 &lt;키노&gt;를 해봤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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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nbsp;머릿속에 피어난&nbsp;키워드는 두가지였다. 하나는 종교. 다른 하나는 유교. 이미 정성일의 태도가 종교적인 그것이라는 것은 진작에 확인되던 바였다. 그러나 그 태도 안에서 유교적 흔적을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문득 이 영화비평가가 종교가가 되면 가장 이상적인 결말이 나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자체도 적당히 비의적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가 세례를 맞은 건 성당이 아니라 프랑스문화원이었다. 어쩌면 그의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불행해질지도 모를 결론이다.
더해서&nbsp;인터뷰를 읽다가 그가 [보랏]에 대해서 어떻게 평했을지가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세상에, 굉장한 호평이었다. 이정도의 반응은 좀 의외기도 하고 다시 생각해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고전주의자인 그를 재확인할 수 있는 바이기도 했다. 이해행위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해야 할 당위성을 얘기하는 그가 [보랏]을 보고 웃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어쩌면 신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있어서 [보랏]은 오지게 재미가 없었던 영화였다. 그 영화의 정치성이나 그 모든 주변적인 것을 염두에 둔다 하더라도 바로 그 영화 자체의 진부함이.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0/45/cover150/9082381974_3.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82381974</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퍼온글] [정윤철 감독, 평론가에게 묻다] 정성일 ①</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116165</link><pubDate>Mon, 14 May 2007 12: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11616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78098910&TPaperId=111616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2/67/coveroff/915139570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3532430272&TPaperId=111616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2/55/coveroff/353243027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3122430175&TPaperId=111616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2/42/coveroff/312243017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97550262&TPaperId=111616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7/83/coveroff/350243086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78070813&TPaperId=1116165"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86/85/coveroff/9178070813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vara/1116165'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5001001&amp;article_id=46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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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은 스타일리쉬하다. 수많은 인용, 괄호치고 설명하기, 문장의 도치, 접속사 없애기, 단문의 연속 등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데, 인용은 영화의 플래시백에, 괄호치기는 나레이션에, 접속사 없애기와 도치 및 단문은 빠른 편집과 점프컷 등에 해당된다. 이런 영화의 대가는 왕가위다. 그리고 그는 왕가위를 굉장히 좋아한다. 초현실주의 작가 마그리트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시립미술관에서 그를 만난다. 
정윤철: 일단 트뤼포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겠다. 그는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영화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이고, 마지막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도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인터넷 별점을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lt;씨네21&gt; 기사를 보는 것이고, 마지막은 정성일의 글을 읽는 것이다(웃음). 이번에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당신의 글을 많이 뒤적거려봤다. 그런데 굉장히 옛날에 썼던 글이 있더라. 성균관대 3학년 때 쓴 영화평이었다. 대학교 3학년이었던 정성일 학생의 글은 어떨까 궁금했다. 그런데, 똑같이 어려웠다(웃음). 놀랍기도 하고 사람은 정말 바뀌는 게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대체 영화는 언제부터 좋아했고 글은 언제부터 썼나.<BR>정성일: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내가 본 영화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정리를 해야만 했던 이유는 일단 어린 나로서는 영어자막을 읽기가 힘이 들었고, 그러니 영화를 보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lt;씨네21&gt;도 인터넷도 없고, 참고할 어떤 자료도 없던 시절이었다. 불어를 모르니까 내가 본 영화의 감독 이름을 읽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영화를 보고 나면 너무 이상한 느낌이 있으니까 그걸 머릿 속에서 정리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윤철: 그래도 영화잡지는 있지 않았나<BR>정성일: &lt;스크린&gt;도 나오기 전이었다. &lt;스크린&gt;은 내가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야 창간됐다. 
정윤철: 대중적인 자료는 전혀 없었으니 혼자 글짓기하듯 쓰는 셈이었겠다.<BR>정성일: 어떤 글도 참고할 수 없었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고마웠다. 
정윤철: 그렇다면 독자적으로 초식을 닦았다는 건데, 중학교 3학년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프랑스 문화원에 가기는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형이 있었다든지 해서,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할 수 있는 환경이었는지.<BR>정성일: 내가 장남이니까 형은 없었고, 어머니가 영화관에 데리고 갔다. 내가 돈을 내고 혼자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국민학교 4학년 때 부터다. 주로 재개봉관에 가서 영화를 많이 봤다. 주로 쇼브라더스와 장철의 무협영화들을 미친 듯이 봤는데 성북구 일대 영화관은 안 다닌 데가 없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라디오 영화 프로그램을 들었는데, 자주 나오는 음악 중의 하나가 영화 &lt;금지된 장난&gt; 주제곡인 ‘로망스’였다. 이 영화가 죽인다는데 볼 수가 없는 거다. 그때는 비디오도 없었고, TV에서 방영되는 &lt;명화극장&gt; 같은 것도 모두 할리우드 영화였으니까. 1974년 즈음인가, 좌우간 내가 중3일 때, 우연히 신문 구석에 있는 작은 기사를 보니 프랑스 문화원에서 &lt;금지된 장난&gt;을 상영한다는 거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해서 찾아갔다. 막상 갔더니 &lt;금지된 장난&gt;은 다음 회여서 엉뚱한 영화를 먼저 보게 됐다. 그게 고다르의 &lt;기관총 부대&gt;였다.&nbsp;
정윤철: 고다르도 알았단 말인가? 벌써?<BR>정성일: 알 리가 없지. 중3인데. 좌우간 &lt;금지된 장난&gt;은 기대했던 것보다 전혀 심금을 울리지 않았고 왜 좋은 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lt;기관총 부대&gt;는 미학적으로 어떤지 어린애가 알 리가 없었는데도 쇼크가 너무 컸다. 
정윤철: 어떤 영화였길래...<BR>정성일: 제목과는 달리 군대 영화는 아니다. 배경은 현대인데도, 시골에 살던 두 청년이 전쟁이 벌어졌으니까 입대하라는 왕의 명령서를 받고, 전쟁이면 재미있겠다, 그러면서 전쟁에 나가는 이야기다. 그런 이야기를 작은 전투들을 쫓아다니는 것처럼 찍어서 풍자한 영화였다. 그 영화를 보고 내가 쇼크를 받았던 이유는, 나는 이게 스스로 너무 자랑스러운데(웃음), 영화를 ‘카메라로 찍는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거다. 화면에서 카메라를 본 거다. 그때까지는 주인공과 이야기만 쫓아갔었다. 그런데 &lt;기관총 부대&gt;를 보다가 문득 “아, 영화는 카메라로 찍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라는 존재를 알게 된 거다. 그렇게 영화에서 카메라라는 존재를 발견한 다음부터 내 안에서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이 일어났다. 그땐 정확하게 몰랐지만 영화를 보는 내 태도가 바뀐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이야기에 몰두할 수 없었고, 더 이상 주인공을 쫓아가지 않았다. 영화라는 것은 카메라를 보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윤철: 카메라의 존재감을 느꼈다는 건가. 그렇다면 영화에 몰입하기가 어려웠겠다.<BR>정성일: 나를 밀쳐낸 거다. 영화가 만들어내는 환상에 동화가 안 되는 거지. 
정윤철: 그런데 고다르는 그런 점을 의도하는 감독 아닌가. 그런 걸 모르고 그의 영화를 보았는데 도 그런 점이 느껴지던가.<BR>정성일: 만약 고다르가 브레히트의 방법을 사용했다는 등의 사실을 알고 봤다면 오히려 쇼크를 안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완전 무방비 상태였다. 영화에 대한 교양이 전혀 없는, 영화라고는 오직 홍콩영화와 액션영화와 주말의 명화극장에 홀려있던 애한테, 무방비 상태의 애에게 환상에서 빠져나오는 소외 효과를 바로 느끼게 한 거다. 그때부터 영화를 보고 정리를 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중3 때였다. 그때 &lt;금지된 장난&gt;만 보고 돌아왔다면 그것을 깨닫기까지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다. 
정윤철: 중3때 프랑스 문화원이라...대단하다. 당시 그곳의 최연소 관객이었겠다.<BR>정성일: 그땐 이상하게도 그런 애들이 몇 있었다. 중3 마지막 무렵, 11월부터 다니기 시작했는데, 예고 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해서, 아주 특별한 학생은 아니었다. 
정윤철: 듣자하니 학창시절 때 한가닥 했다는데? 주먹 좀 썼다는 게 사실인가?<BR>정성일: 철없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때 그랬는데, 별 얘기 다하게 되네(웃음) 그때 이미 지금만큼 키가 커서 70명 중에서 65번, 64번 이랬다. 이미 집안은 기울기 시작했고, 집으로부터 풀려나기도 했고, 뒤에 있는 애들이랑 어울리다보니 그렇게 됐다. (주먹을 들어보이며) 싸움이란 건 처음에 사람 한번 때리기가 힘든 거지, 그 다음부턴 때리는 건 일도 아니게 된다. 처음에 주먹 날리는 건 힘들었다.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한번 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쉬웠다. 질 것 같으면 의자를 들어서 내리치고, 상대에게 겁을 주려고 맨주먹으로 유리창을 깼다. 한 1년 반을 진짜 막 살았다. 나는 지금도 싸우다가 접질린 오른쪽 손이 완전히 안 젖혀진다. 
놀랍게도 그의 주먹엔 아직도 굳은살이 박혀 있다. 후진 영화를 보고 감독을 때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요즘도 집에서 혼자 벽을 치는 걸까? 
정윤철: 프랑스 문화원에 다니면서 그랬다는 건가.<BR>정성일: 아니, 중학교 1,2학년 때였다. 
정윤철: 고다르를 만나기 전이었군.<BR>정성일: 그때는 홍콩영화만 봤으니까 상부구조와 하부구조가 일치를 한 거다(웃음). 집안이 어려우니까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고. 그런데 더 이상 이러면 안 되겠구나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 마지막 날이었는데 친한 친구가 청소를 안 하고 도망갔다가 붙잡혀서 애들 앞에서 뺨을 맞았다. 근데 이 녀석이 우리 아버지도 내 뺨을 안 때린다며 선생을 때렸다. 아무리 친한 친구지만 저건 아니다 싶었다. 그러고 3학년에 올라갔더니 담임이 불러다가 너 걔랑 제일 친하다며, 나는 때리지 마라, 그러더라.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좌우간 그때 이후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 뒤에서 놀던 애들하고 떨어졌는데, 공부하는 아이들은 내가 무서운 거야. 1, 2학년때 모습을 봤으니까. 그런 식으로 학교에서 고립이 되다 보니 더욱 영화에 몰입을 했다. &lt;금지된 장난&gt;은 중학교 1,2학년 때부터 궁금했던 영화지만, 신문에 난 상영 기사를 보는 순간 점화 되는 느낌이었다. 피리 부는 사내에게 끌려가는 아이들처럼, 그렇게 홀리듯 프랑스 문화원에 갔다. 그런 식으로 문화원 다니면서 영화 보고 나서 혼자서 글을 계속 쓰다가 대학에 갔는데, 워낙 친구들 사이에서 영화 좋아한다고 소문이 났었고 과도 신문방송학과이다 보니, 학보사에서 일하는 친구가 한번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영화평을 쓰기 시작했다. 
정윤철: 연극영화과에 갈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건가.<BR>정성일: 그것이 정윤철 감독 세대와 내 세대의 차이다. 내가 영화를 공부하겠다고 하니까 어머니가 보고 있던 TV를 때리더니 정신 차리고 공부나 하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계속 TV를 보시더라(웃음). 그때는 영화과에 가는 것이 인생을 망치는 거였다. 
정윤철: 우리 때도 비슷했다. 내가 90학번인데 80년대 후반은 1, 2억 가지고 한국영화를 만들 때였다. 전혀 비전이 없었다.<BR>정성일: 그리고 영화과에 간다고 해서 영화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대학에 간 다음에 영화수업을 너무 듣고 싶어서 모대학교 영화과에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어떻게 된 놈의 학교가 맨날 휴강이야(웃음) 그렇게 한 학기를 다니다가 좌절하고 다시는 가나봐라 하면서 그만뒀다. 
정윤철: 대학 때도 계속 문화원에 다녔을 텐데, 그렇게 영화를 보다가 전환점이라고 할 만한 일이 있었나.<BR>정성일: 대학에서 영화하는 친구들을 만났고, 큰 도움이 됐다.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전양준 선배가 1년 과선배였고, 부천영화제 집행위원장인 한상준 선배도 있었고, 독일 문화원에서는 강한섭 교수를 만났다. 
정윤철: 당시 독일 문화원파와 프랑스 문화원파가 경쟁을 했다던데.<BR>정성일: 그런 건 아니었다. 궁금하다면 얘기해보겠다. 그때 프랑스 문화원이 활동을 잘하니까 독일 문화원도 지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나보다. 그래서 문화원장이 황당무계한 공약을 내걸었다. 독일 문화원 산하 서클에서 활동을 하고 독일 문화원에서 요구하는 어학시험을 통과하면 유학을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속아서 약 400명이 한꺼번에 독일 문화원으로 몰렸다. 하지만 유학은 한명도 못갔다. 80년 5월 독일 문화원 산하 헤겔 연구회와 카프카 학회가 광주와 관련이 있다고 하여 서클이 완전히 끝장났고, 원장은 본국으로 소환당했다. 그 사람이 약간 좌파였던 것이다. 공약을 내걸었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가니까 공약도 무용해졌다. 
정윤철: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처럼 글을 쓰겠다고 생각했었나.<BR>정성일: 전혀 아니었다. 일단 공부를 하고 싶었고,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당시는 도제 제도가 있어서 연출부를 안 하면 감독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연출부 임금이라는 것은 지금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집안이 파산을 했기 때문에 나는 소년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정말 충무로에 가고 싶었기 때문에 시나리오도 쓰고, 서울극장 기획실장도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집안을 먹여 살려야 했다. 번역도 하고 필명으로 원고도 썼다. 창피해서 차마 필명을 대지는 못하겠는데 여러 잡지에 썼다. 그런데 사람이 가고 싶지 않은 길이 잘 풀릴 때가 있지 않나. 글이 꽤 인기를 얻어서 여기저기서 청탁이 들어왔다. 
정윤철: 그때는 전문비평이 아니고 영화감상 정도였나.<BR>정성일: 지금처럼 쓰면 거기선 안 받지(웃음). 그러다가 &lt;말&gt;지 기자가 나를 찾아왔다. 우리가 당신 글을 읽었는데 영화평을 좀 써주면 고맙겠다고 했다. 정윤철 감독의 대학 시절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도 좋은 세상이 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lt;말&gt;지에 글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lt;말&gt;지는 수배자가 아니라면 본명으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수배자는 아니니까(웃음) 그러면 알겠다고 했다. 스물여덟살 때부터 지금까지 쓰고 있다. &lt;말&gt;지 최장수 필자지. 내가 &lt;말&gt;지 편집장 일곱 명과 담당기자 열 두명을 갈아치웠다(웃음). 그 글을 보고 &lt;스크린&gt; 경쟁지를 만든다고 창간된 &lt;로드쇼&gt; 편집장으로 오지 않겠느냐는 제안이 들어왔다. 그 이후는 지금 알고 있는 것과 똑같다. 
정윤철: &lt;로드쇼&gt; 편집장을 맡으면서 우리가 아는, 공식적인 수면으로 드러난 정성일의 인생이 시작됐다. 나도 &lt;로드쇼&gt;를 본 기억이 나고 이 사람은 누군가 궁금해했다. &lt;로드쇼&gt;를 하다가 &lt;키노&gt;를 만들게 된건가.<BR>정성일: &lt;로드쇼&gt;는 92년에 그만두었고, 그해에 &lt;정은임의 영화음악&gt;에 출연하고 &lt;한겨레신문&gt;에 영화평을 썼다. &lt;로드쇼&gt;를 하면서 열패감이 있었다. 하고 싶은 영화저널을 해보겠다는 욕심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30대였다. 그래서 &lt;키노&gt;를 만들게 된거다. 
정윤철: 모델이 &lt;카이에 뒤 시네마&gt;같은 잡지였나.<BR>정성일: 그렇다. 하나의 롤모델이라고 생각했다. &lt;카이에 뒤 시네마&gt;는 영화에 대해 생각을 하고, 인터뷰가 가장 중요한 비평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lt;키노&gt;는 모든 감독, 심지어 단편영화 감독도 인터뷰했다. 결국 최선의 비평은 인터뷰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쓴 영화평은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되지만 영화를 만든 감독의 목소리는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영화잡지가 하는 일은 기록하는 거다. 
정윤철: 그 때문에 임권택 감독과도 그렇게 집요하게 인터뷰를 한 건가. 임권택 감독과 인연을 맺은 건 이장호 감독이 당신을 임권택 감독 책자 필자로 섭외하면서였다고 했는데.<BR>정성일: &lt;씨네21&gt; 598호에 실린 &lt;천년학&gt; 관련 에세이에 이미 썼는데, 내가 임권택 감독을 처음 발견한 건 대학교 1학년때 &lt;족보&gt;를 보면서였다. 

그때 황석영을 중심으로 민중문학 논쟁이 벌어지면서 결국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 한국영화란 무엇인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대학에 가기 전에 나는 한국영화를 너무 경멸했다. 시네마테크도 없고 영상자료원도 없고 글도 없던 시절이니까.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 나는 한국영화를 너무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감독 이름도 모르는채 &lt;족보&gt;를 봤는데, 즉각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왔다. 내가 보아왔던 영화들과 편집 방식이 너무 다른데 굉장히 아름다웠다. 이게 뭘까, 극장 밖으로 나와 감독 이름을 보니 임권택이었다. 그때부터 그 사람 영화를 줄기차게 보기 시작했다. 신기했던 것은 임권택 감독을 더 알기 위해 당시 영화진흥공사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전혀 없더라는 것이었다. 유현목과 김기영, 이만희, 신상옥, 하길종 등은 수많은 자료가 있는데 말이다. 만약 임권택 감독을 알면 한국영화를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장호 감독은 마음 속으로 유현목이나 김기영 감독 등을 기대했을텐데 내가 임권택 감독에 관해 쓰겠다고 하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충무로스럽다고 생각했겠지. 대학을 졸업하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 애가 와서 책을 만들 때는 기대하는 게 있었을 텐데 갑자기 상업적인 감독의 이름을 대니 말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임권택 감독을 &lt;만다라&gt;가 개봉한 86년 11월 둘째주 화요일에 처음 뵙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정윤철: &lt;족보&gt;는 개봉한 영화였나.<BR>정성일: 그렇다. 정확히 말하면 개봉관을 못 잡았고 재개봉관에서 개봉한 걸 봤다. 
정윤철: 그게 언제였나.<BR>정성일: 79년이었다. 그이후 &lt;안개마을&gt; &lt;길소뜸&gt; &lt;티켓&gt; 등을 계속 봤는데, 영화들이 서로 너무 다를 뿐만 아니라, 매번 일취월장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그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묻고 싶었다. 
정윤철: &lt;족보&gt; 이후 100번째 영화인 &lt;천년학&gt;까지 왔는데, 그사이에 있던 영화들을 모두 본건가.<BR>정성일: 한편도 빼놓지 않고 모두 봤다. 아시안 게임 기록영화까지 봤으니까. 그 영화는 프린트 자체가 사라졌다. 
정윤철: 한 거장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아온 것인데,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느낌은 무엇이었나.<BR>정성일: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임권택 감독에게 배운 가장 큰 것은 아버지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굉장히 오랫동안 아버지와 불화의 시간을 보냈다.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너무 냉정했다. 그런데 임권택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그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그의 인생을 들었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그것도 호남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가출을 했고 떠돌면서 20대를 보냈던 사람, 수전증까지 걸려서 내가 정말 살기는 살겠나 이러면서 살았던 사람을 말이다. 임권택 감독은 열여덟에 짐꾼을 했는데, 사지가 너무 아프니까 잠을 자지 못해 밤마다 깡소주를 마시다가 수전증에 걸렸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영화를 만드는 걸 보면 건강한 거지. 어쨌든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삶을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 그가 왜 그토록 나에게 냉정했고 그런 요구들을 했던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임권택 감독 연세가 우리 아버지와 딱 한살 차이다. 문득 내 아버지의 삶이 가련하게 느껴졌다.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정말 힘겹게 버티어 여기까지 온 모습이. 그러니까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이해하는 과정이 내게는 내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불화의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다. 임권택 감독이 그런 것을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인터뷰를 통해 나는 선물을 얻은 셈이다. 
정윤철: 어떤 치유의 과정을 겪었겠다. 어찌 보면 임권택 감독은 당신의 아버지가 채워주지 못했던 아버지같은 느낌을 주었던 것이 아닌가.<BR>정성일: 그렇다기보다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산다는 것에 관한 문제였던 것같다. 꼼짝없이 동시에 체험해야만 했으니까. 1950년대 한국전쟁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폐허 속에서 살았고, 해방 이후 좌우대립을 겪었다. 그 이전 일제강점기 또한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가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세상에서 홀로 버티고 살아갈 수밖에 없던 사람이 가정을 이루었을 때 자식들에게 보여준 모습이라는 것은 그 삶의 결과였을 것이다. 
정윤철: 이제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보겠다. 책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는 편이지 않은가. 당신의 비평을 보면 저렇게 많은 책과 영화를 어떻게 보나 놀라게 되는데, 비결이 있는 건가. 잠을 자지 않는다던지, 하는 소문도 돌고 있는데. 아, 그리고 &lt;키노&gt; 시절을 잠깐 떠올린다면, 그 몇 년의 세월, 행복했는가.<BR>정성일: 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좋은 동료들과 좋은 책을 만들어서 행복했다. 그때 같이 일했던 기자들은 나중에 편집장이 된 이연호 씨부터 막내에 이르기까지 다들 진심으로 일을 했다. 그것이 너무 행복했다. 그리고 불행했던 건 시자하자마자 경제적인 압박에 시달려서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문제는 끝내 해결이 안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화잡지라는 것을 만들면서 그런 문제에 부딪치면 하중이 편집장에게 걸릴 수밖에 없다. 편집장이 일정 정도 책임이 있는 문제기도 하고. 시작하고 딱 1년 동안만 경제적인 문제로부터 자유로웠지 그이후로는 굉장히 힘들었다. 아, 책과 영화를 많이 보는 비결은, 그냥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정윤철: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보려고 노력하는 편인가.<BR>정성일: 원칙이 하나 있다. 내가 군대에서 맹세한 건데,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하루에 한 페이지 이상은 반드시 읽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나하고의 약속이다. 두 번째 약속은 아무리 짧은 문장이라도 하루에 한 가지 이상 글을 쓴다는 것이다. 때로는 단상일 수도 있고 때로는 긴 글일 수도 있다. 세 번째는 아무리 바빠도 일주일에 세편이상 영화를 본다는 것이다. 집에서 DVD를 보든 시네마테크에 가든. 그것이 내가 스물 두살 이후 지키고 있는 나와의 약속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시네필이어서 영화만 계속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다 보면 사람이 바보가 된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면 말이다. 반면 글을 안 쓰고 책만 계속 읽는 사람은 머리가 잡다해지는 것같다. 나는 영화를 보는 것과 책을 읽는 것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글을 쓴다는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중재하는 것, 내가 표류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정윤철: &lt;키노&gt;가 창간되던 시기는 냉전이 끝나고 포스트모던적인 사조가 밀려들 무렵이었다. 영화에 있어서도 우리가 시도하지 않았던 사조와 담론들이 소개됐다. 독자에겐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lt;키노&gt;는 그런 것들을 소개하는 거의 유일한 잡지였다. 나도 &lt;키노&gt;를 많이 샀는데, 당시만 해도 낯설었던 이름들인 보드리야르, 들뢰즈, 푸코 등을 인용하곤 했다. &lt;키노&gt;는 어떻게 보면 최초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후기 구조주의 철학 이론 등을 끌어들여 영화를 연구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됐나.<BR>정성일: 책을 읽다보면 한 권의 책이 다른 책을 소개하게 된다. 우리는 최신 철학을 소개해야해,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동시대적인 사고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있었다. 왜냐하면 &lt;키노&gt;는 혹은 나는 지금 현재에 살고 있는 거지 과거에 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고전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사고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을 때, 그 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한다.. 내가 명석하다면 그 답을 혼자 생각했겠지만 그 정도 지혜는 가지고 있지 못하니 자꾸 다른 사람 견해를 구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동시대의 철학자와 미학자, 소설가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로 접속을 하는 거다. 정윤철 감독도 고전영화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동시대를 사고하기 위해 현대영화도 보고 동시대 철학책도 읽지 않나. 그렇게 하는 까닭은 이 시대에 살아가기 위한 ‘좌표’를 얻기 위함이다. 칸트와 헤겔과 스피노자는 위대하다. 그러나 그들을 읽으면서 2007년 남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좌표를 얻기란 쉽지 않다. 
정윤철: &lt;키노&gt;가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lt;키노&gt;에서만 다루는 현대 철학과 다른 이론들이 어렵고 낯설었던 까닭도 있겠지만, 이 잡지는 왜 이런데 관심이 있을까 궁금해서이기도 했다. 불어도 많이 쓰고 소제목 이름도 어렵고(웃음). 죄우간 아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하면서 호기심도 생기는, 뭐랄까 어떤 이국적인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연관을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엔 지식이 없었으니까.<BR>정성일: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한 탓도 있다. 효율적으로 전달을 하고, 전략을 세워서 배치도 잘 했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선 미숙했다. 
정윤철: 당신은 그때부터 색이 확실했고 지금도 호불호가 명확하다. &lt;키노&gt;에서 그런 가치관이 확립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BR>정성일: 나는 어릴 적부터 그랬다. 영화를 본다는 행위에는 직관이 포함되어 있고, 논리적으로 따지는건 사기라고 생각한다. 직관적으로 이 영화가 좋다 싫다라고 몸이 반응을 한다. 당신도 직관이 오지 않나. 그런 직관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나의 세계관과 경험과 세상에 대한 태도의 총체적인 반응이다. 그대신 나는 나이를 먹어가며 이런 걸 묻게 됐다. 나는 이 영화가 싫다, 그러면 왜 싫은가. 그런 것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았다. 비평가로서 어떤 영화에 대해 가지는 자신의 태도는 중요한 것이다. 
정윤철: 어쨌든 자기 색이 뚜렷했다.<BR>정성일: 새로 기자를 뽑을 때 난 먼저 &lt;키노&gt;는 편견이 있는 잡지라고 말했다. 우리는 균형 잡힌 사고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가 싫다면 다른 잡지를 선택해라,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좋아할 거고 우리가 싫어하는 영화들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겠다고. 만약 영화잡지가 &lt;키노&gt; 뿐이었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당시 &lt;씨네21&gt;을 비롯한 너무나 많은 영화잡지들이 생겼고, 얼마 뒤엔 인터넷도 보급됐다. 여러 가지 정보들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럴 때 한 잡지가 소위 균형 잡힌 생각을 한다는 건 이 시장을 다 책임지겠다는 건데, 그건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정책은 무엇인가, 그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겠는가. &lt;키노&gt;에 서운해 하는 감독들도 있다. 나에겐 관심이 없다, 어떤 감독을 과도하게 다루는 거 아니냐, 라는 거지. 그런데 키노는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랑’의 명단이 중요하다고.
정윤철: &lt;키노&gt; 마지막 호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가들에 관한 글을 쓰며 어찌 어렵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글들을 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하지만 영화가 어렵고 위대하다고 하여 그걸 해석하는 글조차 어려울 필요가 있는지.<BR>정성일: 거기에 관해선 항상 인용하는 아도르노를 인용하고 싶다. ‘자본주의는 지식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지식을 간단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점점 사고를 마비시키고 논리 자체를 무시한다. 결정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점점 광고 카피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아도르노는 내 글을 읽는 것은 사유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아도르노처럼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 태도는 배우고 싶다. 
정윤철: 일부러 쉽지 않게 글을 쓴다는 뜻인가.<BR>정성일: 쉽지 않다는 것은 고마운 표현이고, 나는 내 글을 읽고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내고 싶다. 나는 별점을 굉장히 경멸한다. 그 별점은 영화가 아니라 그 자신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 어떤 영화에 별 두개를 매기는 순간, 그가 영화를 보는 수준도 별 두개가 된다는 뜻이다. 지금 영화는 너무 쉽게 소비되고 있는데, 나는 영화를 잠시 멈추어 세우고, 영화를 본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해석의 공간, 창조의 시간에 대한 성찰, 세상에 대한 반성 등을 획득할 수 있다. 내가 그 영화를 봤지, 하고 만다면 누가 영화를 향해 배움을 구할 수 있느냐는 거다. 정윤철 감독도 누군가 당신의 영화를 보고 나서 스무자로 쓰고 별점 주면 화나지 않나. 그 영화를 싫어해도 길게 쓰는 게 좋지. 
정윤철: 그렇다고 해도 영화에 관한 글을 쓰면서 소통을 염두에 둘 텐데, 어느 선을 지킬 것인지 고민되겠다.<BR>정성일: 종종 하는 이야기지만, 내 글의 독자는 단 한사람,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다. 내 글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사실 관심이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독의 이름으로 비유되는 영화의 주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윤철이라는 이름에는 그 영화의 모든 관련자들이 압축되어 있지 않나. 그러므로 내가 감독을 호명할 때 그것은 감독 개인이 아니라 그 영화에 참여한 모두, 어떤 총체성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물론 감독 개인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더더욱 쉽게 써야하지 않나? 감독들 생각보다 무식하다...라는 말을 나는 차마 못한다. 
정윤철: 하지만 글을 쓰면서 대중에게 무언가 설명해주고, 하다못해 계몽을 한다는, 그런 욕망은 있지 않나.<BR>정성일: 나는 영화를 보고 나서 내가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을 설명하고자 하는데 전력투구한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눈 다음에 알게 되긴 했지만, &lt;좋지 아니한가&gt;를 봤는데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이 영화가 도대체 왜 이래야 하는 건지. 천호진과 정유미를 보면서 둘 중 하나다 싶었다. 그 이야기에 뭔가 하나가 더 있어야 했거나, 섹스를 하고 새 족을 꾸며서 나감으로써 심씨 가족이 돈 버는 기계인 아버지 없이 견딜 수 있느냐고 물어보거나. 그런데 &lt;좋지아니한가&gt;는 어느 쪽으로도 결정을 안 했다. 전자라면 이 영화는 뭔가 결핍된 거고, 후자라면 이 영화는 결단을 하지 못한 거다. 이런 불균질성이 발생했을 때 나는 질문을 던져보고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생각하여 글을 쓰는 거다. 그 질문을 견디지 못한다면 그 영화는 부서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질문을 통해 내가 세상에 대한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다면 나는 기꺼이 그 영화를 지지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정윤철: 글을 쓰고 논리적으로 생각을 하여 결론까지 간다는 건데,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는 건가.<BR>정성일: 내가 항상 답을 구하지는 못하니까. 때로는 그 감독의 다음 영화에서 답을 얻기도 한다. 
정윤철: 그렇다면 질문을 던지는 대상이 단 한명의 독자인 감독인가. 영화는 무생물이니까 말이다.<BR>정성일: 예를 들면 &lt;피와 뼈&gt;의 감독 개인에게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감독의 이름으로 비유되는 영화의 주인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윤철이라는 이름에는 그 영화의 모든 관련자들이 압축되어 있지 않나. 그러므로 내가 감독을 호명할 때 그것은 감독 개인이 아니라 그 영화에 참여한 모두, 어떤 총체성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이 모든 것을 조율하고 결정하고 판단하는 것은 물론 감독 개인이다. 그래서 그 이름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그런 면에서 이야기를 이어보자면 어떤 영화를 보아야하는가라는 문제에 도달하게 된다. 예전에 당신이 에 썼던 글을 읽었다. 주인같은 노예가 있다, 자신이 주인이라고 착각한 그 노예는 언제까지나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이런 논의로 내용을 이어나가며 진짜 영화와 가짜 영화를 언급했다. 좀 더 설명을 해줄 수 있는가.<BR>정성일: 이렇게 대답을 하겠다. 대중으로서 영화를 보는 단계를 지나 내가 자의식을 가지고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를 보는 여러 가지 태도가 생겨난다. 예를 들면 스피노자적인 태도와 플라톤적인 태도가 있다. 내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니체적인 영화보기가 가능하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니체가 세상을 대하듯 말이다. 영화라는 것은 세상을, 잠재적인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영화라는 것은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액추얼한 세계로 놓고, 가능한 세계를 찍는다. 이 가능한 세계에 대해 내 자의식으로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 내가 이 화두를 던진 이유는 많은 비평가와 진지한 이들이 영화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 데카르트적으로 사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고. 나는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는 영화를 볼 때 니체적인 영화보기를 통해서 자기가 영화를 보는 행위에 의문을 던져보고, 그 영화에 붙들린 노예의식이라는 것으로부터 뛰쳐나오고, 거기에 대해 비판하고 주체를 되찾는 것도 가능하지 않나 싶다. 그럴때 비로소 니체가 말하는 진짜와 가짜가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가짜는 부정적인 의미의 가짜는 아니고, 가능성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정윤철: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사유를 하고, 괴로움을 참으면서까지 영화를 보는 이는, 일반 대중이라면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굳이 나눈다면, 영화는 대중영화와 예술영화로 나눌 수도 있겠는데,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해본다. 대중음악은 대중음악 평론가가 있고 클래식은 클래식 평론가가 있고 재즈는 재즈평론가 있는데, 영화는 한명이 그 넓은 스펙트럼을 뭉뚱그려 매체에 글을 쓰지 않나. 그런데서 부담감이 오지는 않나.<BR>정성일: 그것은 생각의 차이일 수 있을 거다. 나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영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내가 어떻게 영화를 붙들 것인가, 어떻게 영화를 이해할 것인가, 납득하고 싸울 것인가라는 것이다. 이건 대중영화니까 이건 예술영화니까 이렇게 보지는 않는다. 

관객의 숫자와 관계없이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lt;괴물&gt;은 예술영화다. 내러티브 구조와 영화의 형식을 비롯한 여러가지 점에서 그 영화는 아트필름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나는 영화에 대해 생각할 때 대중영화와 예술영화를 구별하는 것이 매우 무의하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당신도 &lt;말아톤&gt;은 대중영화로 찍고 &lt;좋지아니한가&gt;는 예술영화로 찍고, 그렇게 하지는 않지 않았나. 
정윤철: 이 자리에 오기 전에 감독과 배우 몇 명에게 질문을 받았다. 이건 김혜수가 물어온 질문이다. 영화평을 보면 좋고 나쁨을 떠나 이 사람은 이런 영화를 좋아하고, 저 사람은 저런 영화를 좋아한다고, 안 봐도 알 수가 있다. 말하자면 장르화 되어 있어서 평을 읽기도 전에 결과를 예상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잘 안 읽게 된다는 거다.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에게 이런 문제가 있다고 보나.<BR>정성일: 똑같이 반문하고 싶다. 홍상수 감독에게 &lt;친절한 금자씨&gt;를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이 가능한가, 혹은 박찬욱 감독에게 다음 영화는 &lt;해변의 여인&gt;과 비슷하게 찍으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한가. 비평가들도 자기 세계관이 있고 취향이 있고 지금까지 읽어온 책과 보아온 영화가 있고 경험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 &lt;극장전&gt;도 좋아하고 &lt;태극기 휘날리며&gt;도 좋아하면 그 사람 되게 이상한 비평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당신의 애티튜드는 무엇이냐고 묻고 싶은 거다. 나는 한쪽을 지지하는 비평가에 대해선 반감이 없다. 가끔 보면 모든 영화에 별 네 개나 세 개를 주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취향을 가진 비평가인가. 나는 그럴 때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 글은 읽지 않아도 알아, 그 사람이 누구 좋아하는지 알고 있지, 이것이 매너리즘에 빠지면 문제가 되겠지만 취향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사람의 취향 자체를 알 수 없을 만큼 공정함을 내세우는 것은 더욱 의심스럽지 않은가. 
정윤철: 하지만 영화가 만들어질 때 의도가 다르다면 어떤가. 상업영화와 예술영화를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처음부터 목표 지점이 다른 영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카테고리를 지어주면서 비평을 하는 것은 불가능할까. 이 영화의 목표지점은 이 정도, 그러니까 음악으로 치자면 대중가요 정도다. 음악에는 댄스그룹의 노래도 있고 싱어송라이터가 부른 그럭저럭 잘 만든 대중음악도 있고 나아가면 클래식이나 이런 예술적인 음악도 있다. 영화도 이런 각자의 틀 안에서 완성도를 평가받는 건 불가능할까.<BR>정성일: 이렇게 대답을 하겠다. 나는 정윤철 감독의 단편 &lt;기념촬영&gt;을 지금도 좋아한다. 아주 좋아하고, 굉장히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lt;기념촬영&gt;은 무언가 간절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수많은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크린을 건너 뛰어와서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그런 다음에 &lt;말아톤&gt;을 봤을 때 나는 그 영화를 대중영화나 상업영화의 카테고리로 보지는 않았다. 나는 이 영화가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지를 보았다. 무슨 질문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더라.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lt;말아톤&gt;은 자폐증 소년에게는 그다지 관심이 없고 가족의 문제를 우회해서 다루고 있다. 문제는 이야기하려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장치들, 이야기들,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몰아가기 위해 수없이 덧붙여진 것들이 &lt;말아톤&gt;을 둔하게 만들었다. 나는 질문하고 싶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뻔한데 왜 에둘러갔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lt;말아톤&gt;을 보고 나서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lt;기념촬영&gt;을 찍었던 감독이니까. 이 연출자가 두번째 장편으로 &lt;좋지 아니한가&gt;를 찍었기 때문에 나는 기대를 하게 된 거다. 물론 나도 제도권 영화의 현장에서 한 사람의 연출자가 데뷔하기 위해 감수하는 여러 가지 타협의 순간들과 열악한 환경을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을 다 괄호칠 만큼 비평가가 세상의 현실에 둔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lt;말아톤&gt;을 둔하게 만드는 것들을 보며 저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묻게 됐다. 그 질문은 비평가에게 매우 중요하다. 나는 이 영화의 퀄리티나 완성도 같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내 질문은 이 영화의 애티튜드는 무엇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웰메이드라는 단어를 경멸한다. 그것은 영화를 제작자나 프로듀서의 것으로, 말하자면 상품으로 보는 것이고, 어떤 창조의 영역도 발견하지 못한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창조하는가, 무엇을 비판하는가, 그리고 그사이에서 어떻게 중재하는가를 보고 싶은 거지, 잘 만든 이야기를 보고 싶은 건 아니다. 
정윤철: 내가 한국의 영화평들을 읽으며 가장 아쉬웠던 것은 내러티브(이야기) 위주의 분석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한국평론가들은 줄거리와 이야기에 집착을 하고 이야기가 잘 짜여져 있는가를 문제삼는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도 결국 이야기 아닌가. 그것도 영화에서 핵심이겠지만, 영화가 왜 영화인가 하는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한다. 컷이 있고 사운드가 있고 예술로서 영화가 있는데, 평론은 내러티브와 인물과 구성 위주로만 풀어간다는 것이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에 &lt;필름아트&gt; 저자인 데이빗보드웰이 한국에 와서 그의 강의를 들으러 갔다. 미국의 교수가 홍상수와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샷 바이 샷으로 분석하며 허우샤오시엔과 비교하는 것을 보며 놀랐다. 미장센과 영화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을 하는 걸 보고 대단하구나 싶었다. 한국영화계에는 그처럼 미학적인 스타일이나 영화 자체를 분석하는 평론이 왜 이렇게 없는 것인가.<BR>정성일: 내가 모든 비평을 읽지는 못하므로 개인적인 소견이라는 것을 전제로 말하겠다. 나는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숏과 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숏과 씬은 결국은 다 떨어져나가는 단위들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숏을 씬으로 연결하는 논리가 필요한데, 이 논리가 이야기다. 영화비평이 이야기를 물어본다면, 그 질문은 정확하게 이야기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의 논리가 무엇인지 묻는 거다. 숏이 어떤 방식으로 붙어있는가, 붙어있는 이야기를 연출자가 어떻게 쪼개고 있는가, 이 이야기는 왜 쪼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가,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장면을 투숏으로 찍었는가 혹은 숏 리버스 숏으로 찍었는가, 하는 것들을 묻는 거다. 나는 한국의 영화감독들에게 묻고 싶다. 한국영화가 점점 깊이가 없어지는 까닭은 젊은 감독들이 리액션 숏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리액션 숏에 대한 철학이 없고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끊어서 상대를 보여줄때, 이것은 결단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숏은 어차피 찍어야 하는데, 리액션 숏을 찍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그 논리를 질문하고 싶다. 그러므로 당신 질문과 똑같은 답이 되는 셈이다. 나는 영화에 대한 질문을 문학 텍스트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문화하고 줄거리로 환원하고 그 줄거리를 묻는다면, 이것은 줄거리 요약에 불과하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를 따져 물어야 할 때가 있다. 이야기에서는 필연적으로 나와야 하는 장면이 있는데 안 찍은 거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가 그렇다. 왜 건너뛰어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왜 그 씬이 없습니까. 그의 영화는 이야기로 환원하지 않으면 질문을 할 수가 없다. 임권택은 장면을 건너뛰며 찍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고다르가 점프컷의 고수라면 임감독님은 점프씬의 대가랄까? 좌우간 &lt;취화선&gt;, &lt;하류인생&gt;에서 끝장을 보여줬지. 많은 관객들이 이야기가 툭툭 끊겨 당황했지만 그런 편집이 개인적으론 씨원 씨원했구 뭔가 미래적인 영화의 느낌이었다. 
정윤철: 어쨌든 이야기를 제일 중요시하면서 말이 된다 안 된다 식의 평이 많은 건 사실이다. 스토리텔링 위주의 비평이 관객에게는 쉽게 읽힐 수는 있겠지만 감독이나 영화인들에게는 자극이 되지가 않는 것같다. 편집과 연출과 사운드와 연기 같은 여러 중요한 요소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왜들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지 모르겠다.<BR>정성일: 나의 동료들을 위해 반문하자면, 스토리텔링을 중요하게 보지 않아도 되는 영화들을 찍어줬으면 좋겠다. 허우샤오시엔의 &lt;카페 뤼미에르&gt;는 스토리텔링으로 쓰려고 해도 쓸 수가 없다. 차이밍량의 &lt;나는 혼자 잠들고 싶지 않아&gt;,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lt;열대병&gt;, 지아 장커의 &lt;스틸 라이프&gt;, 데이빗 린치의 &lt;멀홀랜드 드라이브&gt;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줄거리를 써봐야 이야기 자체가 뭔지 모르는 영화들이다(웃음). 나는 그런 비평이 범람하는 것을 뒤집어 보면 그만큼 한국영화가 스토리텔링에 매여 있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많은 감독이 스토리텔링에 매여 있고, 당신이 말했던 모든 요소들이 스토리텔링에 봉사하고 있지 않나. 한국영화비평의 약점은 한국영화의 약점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의 영화비평은 한국영화와 상관없이 쓰여지는 게 아니라 조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독들이 영화비평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편함이 아닌 부족함이라고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은 고스란히 한국영화의 부족함으로 돌아온다. 
정윤철: 그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일수도 있겠다. 스토리텔링 위주의 비평을 하다보니까 감독들이 스토리를 중요시여기고 결국 시나리오도 자기가 쓰려고 하는 것 아닐까?<BR>정성일: 원인과 결과가 바뀔 수는 없다. 영화가 나와야 비평이 나오는 거지, 이런 비평을 받고 싶다고 만드는 영화는 없기 때문이다. 홍상수의 영화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를 따져 묻는 사람은 없다. 김기덕과 박찬욱도 마찬가지다. 비평가들은 영화에 조응하는 비평을 쓴다. 감독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스토리텔링의 감독은 아니었는지, 내 영화의 많은 요소가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것은 아닌지. 
영화를 왜 영화 자체로 못 보는가.. 나와 동료 감독들은 늘 말하곤 한다.
정윤철: 좋다. 당신은 한국영화의 약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건데, 감독도 노력해야 하는 문제다. 그런데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보고, 정치적인 함의를 파악하고, 정신분석하듯 영화를 분석하는 것들도 중요하지만, 비평이 미학적인 관심도 가졌으면 좋겠다. 영화를 잘 찍었다고 말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무슨 개념으로 리액션 숏을 이렇게 붙인 건가, 클로즈업이 왜 들어가는가, 이 스타일이 주제에 맞게 쓰였는가... 이렇게 영화를, 미학을 지닌 텍스트 자체로 보고 형식 자체에 대한 비평을 한다면 감독들도 좀 더 긴장을 하게 될 거다. 영화를 분석하며 언제나 철학이나 정신분석이나 여러 가지 다른 학문을 끌고 들어와서 분석하는 경향이 많다는 건 영화미학을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닌가?<BR>정성일: 전혀 다른 문제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영화가 다른 예술에 비해 세상에 너무 가까이 다가와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베토멘의 현악사중주를 분석하면서 창작 과정을 분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땐 악보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현악사중주에서 도와 미 사이에 이데올로기는 없다. 레와 솔 사이에 어떤 이데올로기적인 차이가 있는지 묻는다면 답은 끝내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lt;좋지 아니한가&gt;의 가족은 등장하는 바로 그 순간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중산층인가라고. 혹은 &lt;가족의 탄생&gt;을 보면 왜 김태용 감독은 가난한, 거의 부서져가는 가족을 다루는가를 묻게 된다. 말하자면 영화는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너무 세상 안으로 들어와 있다. 레와 솔을 물어보듯, 도와 미를 물어보듯, 미학적인 방향으로 완전히 철수할 때, 영화는 굉장히 빈곤해지고 앙상해진다. 그 영화를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세상을 향해 던지고 있는 (영화 속의) 수많은 질문과 기호와 모순과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한 편의 영화를 끌어안기 위해 세상의 지식을 함께 생각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왜? 세상을 찍고 있으니까. 나는 정신분석학이건, 사회학이나 경제학이나 정치학이건, 분과별로 보기보다는 세상의 지식으로 보고 싶다.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니까. 그러므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선 세상의 지식이 필요하다. 
정윤철: 많은 영화인과 감독, 심지어 관객마저도 평론에 불만을 제기하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이런 것이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생각해야지, 자기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고 그것으로 영화 전체를 평한다는 거다. 나도 그런 경향이 너무 많지 않나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그런 식으로 비평을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아니면 좋을 텐데.<BR>정성일: 똑같이 반문하겠다. 그 질문 자체가 영화를 폄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즉, 영화는 그냥 구경거리가 아니다. 예를 들면 정윤철이 시나리오를 쓸 때,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시나리오를 쓰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쓰는 순간 세상은 이미 시나리오에 끌려온다. 이 인물은 합당한가, 나는 2007년에 왜 이런 이야기를 쓰고 있나, 이 이야기가 세상과 어떤 호흡을 이루는가, 가족이라는 토픽을 던질 때 내 화두는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영화는 그 자체로 하나의 가능(한)세계라고 생각한다. 그 가능한 세계라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현실적 세계에 닿아 있다. 감독들은 홍상수가 가능한 세계 1을, 정윤철이 2를, 김기덕이 3을, 임권택이 4를 만든다. 즉, 이런 식으로 이 세상을 둘러싼 여러 (가능한) 세계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통해 우리는 현실적 세계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질문을 던지고, 우리에겐 무엇이 문제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럼 현실세계에 살고 있는 비평가들이 가능세계를 만든 영화를 보고 현실세상의 변화 의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영화를 영화로만 봐달라고 한다면 가능세계는 현실세계로부터 떨어져나와 불가능 세계가 된다. 우리가 헐리웃 영화를 보며 후진 영화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그런 거다. 영화를 영화로 봐라, 그렇다면 &lt;300&gt;을 보면 되는 거다. &lt;300&gt;이 영화의 참맛인가. 
정윤철: 무엇이 좋은 영화이고 나쁜 영화라고 여기는가?<BR>정성일: 나는 이런 말을 인용하고 싶다. 차이밍량이 서울에 왔을 때 누군가 질문했다.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의 차이는 무엇인지. 차이밍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는 영화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하는 영화다. 나는 거기에 진리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정윤철: 그렇지만 내 문제만이 아닌 어떤 거대한 것들을 이야기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BR>정성일: 그럼 파시즘이 되는 거지. 
정윤철: 환경문제나 남의 문제들을 걱정하는 영화가 나쁘단 말인가?<BR>정성일: 나는 그때 영화가 프로파간다가 된다고 생각한다. 진보적 프로파간다도 있고 보수적인 프로파간다도 있지만 비슷하다. 나는 똑같은 사건(미국 컬럼바인 고교의 총기 난사사건)을 다룬 영화라고 해도 &lt;엘레판트&gt;는 지지하지만 &lt;볼링 포 컬럼바인&gt;은 지지하기가 힘들다. 

&lt;볼링 포 컬럼바인&gt;은 폭력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반문하고 싶다. 이해해도 괜찮은 건가. 폭력이 이해되는 순간 그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 사건은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말 부조리하다는 질문을 던지고, 가능해서는 안 되는 사건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영화의 미학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봐달라고 했는데, 우리는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보면 이런 표현을 쓰지 않나. 숭고하다고. 결국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는 숭고한 가치가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미학에 사로잡히는 것이 타락의 징후로 보인다. 눈을 움직이는 건 미학이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건 숭고함이다. 
어떤 이에게 영화란 종교적인 무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간다.
정윤철: 영화가 재미있고 분석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영화만이 갖고 있는 상호텍스트성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이야기에 세상이 담겨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 이데올로기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게 읽혀지지 않는 영화를 보면 어떻던가?<BR>정성일: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아무런 정치적 메시지도 담고 있지 않다. 거대담론도 없고, 평범한 이야기일 뿐이다, 딸을 시집 보내는 게 전부인데도 그 영화는 진행이 너무 기괴해서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lt;오차즈케의 맛&gt;을 보면서 망연자실했다. 

그 영화는 오즈의 다른 영화들처럼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타이틀이 올라올 줄 알았다. 남편은 여행을 떠나러 공항에 갔고 아내는 문제가 해결이 됐다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오즈의 영화에 언제나 나오는 방식으로 텅 빈 방들이 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밤중에 귀신처럼 남편이 돌아온 거다. 이 사람이 미쳤나, 여기서 더 이상 어떻게 하려고 그러나 생각하는데, 남편이 비행기가 고장 나서 떠나지 못했다고 말하는 거다. 언제나처럼 무뚝뚝하게. 그러다가 밥을 좀 먹자고 그런다. 그 집은 언제나 식모가 밥을 했는데 한밤중이니까 집에 간 거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아내가 남편을 위해 밥을 한다. 오차즈케를. 오차즈케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다. 남편은 자수성가를 했지만, 아내는 부유한 사람이어서 오차즈케를 촌스럽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반찬이 오차즈케 뿐이었다. 부부가 저녁 식탁에 앉았는데, 이건 절대 나누지 못할 거야, 나누는 순간 이야기가 진행이 안 되니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즈는 그 장면을 나누었다. 그 순간 오즈는 왜 그 장면을 쪼갰는가. 그는 감독으로서 결단하듯 내리친 거였다. 쪼개는 순간 이 구도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생각하다 집에 가는 길에 문득 그 결단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그 장면은 고정된 카메라로 롱테이크를 찍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찍어서 두 사람의 감정을 자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오즈가 그걸 자르고 진행한 것은, 투샷으로 찍어서 시간이 진행되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거다. 관객은 그 장면을 이미 투샷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다음 장면에서 남편은 친구를 만나 여행갔다 온 이야기를 한다. 전날 밤 남편이 돌아온 것이 아내의 꿈이었는지, 남편이 진짜 집에서 밥을 먹고 여행을 떠난 건지, 영화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순간은 영화에서 가장 위대한 순간 중의 하나다. 숏을 쪼개는가 마는가, 진행을 하는가 마는가, 마음을 나눌 것인가 이을 것인가의 결단. 오즈는 나에게 이 배움을 줬다. 영화는 세상이지만 쇼트는 그자체로 우주다. 그래서 쇼트는 항상 영화보다 크다는 생각을 한다. 왜? 영화는 세상을 쫓지만 쇼트는 잡는 순간 완결된 우주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쇼트를 쪼개는 건 우주를 자를 것인가 말것인가를 질문하는 거다. 그것은 브레송에게도 르누아르에게도 히치콕에게도 당연히 묻게 되는 질문이다. 
정윤철: 그런 상호텍스트성이나 함의가 없더라도 영화 자체가 신선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 영화의 형식 자체가 사유를 하게 만들고 새로움을 느끼게 해준다면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 않은가.<BR>정성일: 이건 개인적인 느낌인데 나는 켄 로치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영화는 한 번도 내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켄 로치는 그냥 정치를 다룬다. 나는 영화가 정치를 다룰 때 촌스러워진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영화를 정치적인 것으로 만들 때는 행복하다. 정치적인 영화는 힘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오즈가 &lt;오차즈케의 맛&gt;의 마지막 장면을 찍었을 때, 그것은 정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다. (보통 때 같았으면 롱테이크로 찍었을 두 부부의 식사 장면을 샷을 나눠서 한 명씩 잡았음) 전후 일본사회에서는 오즈에게 있어 숏을 쪼개는 그 결단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전후 일본이 패전을 딛고 경제성장을 향해 나아갈 때 가족이 어떻게 쪼개지느냐, 개인화, 파편화 하느냐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정치를 다루진 않지만 샷을 쪼개는 것 그 자체가 오즈를 정치적으로 만든다. 
정윤철: 영화가 정치를 다룰 때와 영화를 정치적으로 다루는 것은 다르다는 말인가.<BR>정성일: 나는 후자를 지지하고 싶고, 후자가 항상 더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강의를 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영화를 진행하며 해서는 안되는 결정적인 일이 자신이 창조한 인물을 함부로 죽이는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 영화는 쓰레기야, 네가 창조한 인물이라고 해서 함부로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면 너는 파산한 거야, 그런다. 그것이 아무리 미학적인 것이더라도. 나는 미학적인 결정보다 상위에 있는 결정은 윤리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윤리라는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것은 도덕과는 다르다. 나는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면 미학은 포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미학은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미학에 매달릴수록 영화는 빈곤해지고 퇴폐적이 될뿐만 아니라 몰락한다. 미학의 절정에 도달한 순간 모든 예술은 타락을 경험했지 않았나.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1/4/cover150/9178074037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78074037</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103634</link><pubDate>Mon, 23 Apr 2007 1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103634</guid><description><![CDATA[&nbsp;
<BR><BR>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언젠가 케이블 티비에서&nbsp;&nbsp;불량공주 모모코를 재밌게 보았는데
바로 그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말에 곧바로 보게 된 영화다.&nbsp; 근데 전작만큼 마냥 유쾌하진 않다.
중학교 교사였던 마츠코는 우연히 일어난 도난사건에 휘말려 교사직을 그만두게 된다.
이후 그녀는 츄리닝을 허리까지 끌어올리는 버릇을 지닌 동료교사, 자신이 다자이 오사무의 환생
이라고 믿는 작가지망생, 불륜남, 기둥서방, 자신의 제자였던 야쿠자 등 여러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마츠코에게 돌아오는 것은 폭력과 무시, 배신, 착취 뿐이다. 그 와중에 마츠코
역시 절도, 성매매, 살인, 옥살이 등을 경험하게 된다.&nbsp;&nbsp;끝내 사랑을&nbsp;멈추고 혼자서 살아가기로
한 마츠코. 언젠가 다자이 오사무가 남겼다는&nbsp;말, 그리고 죽기 전 마츠코가 자기 집 앞 벽에 쓴 말은 &nbsp;
바로 &nbsp;"태어나서 죄송합니다".&nbsp; 그녀의 순진무구한 존재가 어쩌다가 이렇게 죄의 나락으로 미끄러져
갔는가? 기실 삶을 결정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아주 우연적인 사건들이다. 조그마한 실수 하나, 
누군가의 거짓말, 충동적인 결정, 어린 소년들이 휘두른 방망이가&nbsp;일생의&nbsp;주된 국면들을 결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츠코가 간절히 보고싶었던 아버지의 따뜻한 미소가 가슴 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해 미웠던, 그러나 사랑했던&nbsp;병약한 동생도 있다. 
삶의 근원이 언제나 구태의연한 가족드라마가 상연되는 극장이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만이 모든 이야기의 기원과 목적을 결정하는 제일원인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것 역시 한 인생을&nbsp; 휘어잡는 강력한 우연의 실마리 중 하나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nbsp;
그런데 우리는 그&nbsp;'원인'을 정당하고도 근원적인 '이유'로 삼도록 오래 배워오지&nbsp;않았는가?&nbsp;&nbsp;&nbsp;
&nbsp;
마츠코가&nbsp;자기 인생에서 아버지를 제외한 &nbsp;남자들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너무나 익숙한, 너무나 
끔찍한 성의 폭력들인데,&nbsp;그렇다고 그녀가 꼭 여남관계 속 희생자/피해자의 구도에 고정된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nbsp;&nbsp;그녀의 제자이자 야쿠자인 류가 감옥에서 던진 물음, 
"어째서 신은 사랑입니까?"에 의해 그녀는 수난당하는 신, 미워하지 않고 언제나 사랑을 베푸는, 
오히려 원수에게마저 사랑을 베푸는 신으로 형상화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때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에서 성스러운 마츠코의 일생으로 옮겨간다. 
언제나 사랑없이 살아갈 수 없는 마츠코에게서 각자의 편린을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동시에 사랑이란게 얼마나 쉽게 시작할 수 있는지,&nbsp;그러나&nbsp;아가페로 나가는 것은&nbsp;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타인에게로 향하는&nbsp;공격충동 속에서, 어쩔 수 없는 나르시시즘의 구조 속에서 이웃사랑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또한 아니다. 
그토록 원하던 고향의 아버지와 동생을 만난 마츠코의 미소는 행복을 의미할까? 
아마 그녀의 일대기는 그녀가 방망이에 얻어맞아 죽은 시점에서 되돌릴 수 없이 끝나버렸을테니 
이런 물음은 의미가 없는지도 모르지만... 나의 혐오스런 일생은 또&nbsp;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 
조금은 진지해져야겠다. &nbsp;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25516154286736.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1103634</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퍼온글] 필견!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88073</link><pubDate>Wed, 28 Mar 2007 15: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8807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45413529&TPaperId=108807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3/10/coveroff/894541352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240538&TPaperId=108807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9/21/coveroff/895524053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7871754&TPaperId=108807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9/14/coveroff/898787175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7871789&TPaperId=108807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9/14/coveroff/898787178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7871770&TPaperId=108807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29/14/coveroff/8987871770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vara/1088073'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나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를 네 편 보았다. -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를 '보았다'라는 의미는 '도전했다', '찾았다', '발견했다', '얻었다', '해냈다', '이겨냈다', '얻었다', '만났다', '자각했다', '각성했다', '참아냈다' 등등의 모든 어휘를 망라한다. 이 표현은 내게 결코 과장이 아니다. - &lt;홀리 마운틴&gt;, &lt;성스러운 피&gt;, &lt;엘 토포&gt;, &lt;환도 이 리스&gt; 순서대로 보았는데 첫 장면 한 컷부터 이 감독의 영화는 내 영혼에 엄청난 충격과 전율, 묘한 기시감과 욕망, 두려움과 거부감, 잔혹과 쾌감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 본 영화 중에서 어찌 본다면 가장 영화답지 않은 영화를 손꼽으라면 나는 단연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작품을 들 수밖에 없다. 틴토 브라스의 &lt;칼리큘라&gt;, 스탠리 큐브릭의 &lt;시계태엽 오렌지&gt;,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lt;소돔 120일&gt;, 짐 셔만의 &lt;록키 호러 픽쳐 쇼&gt; 등의 작품들을 보았을 때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지만, 조도로프스키의 영화를 보았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다.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내게 엄청난 시적인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가능하다면, 나는 그의 영화를 시로 옮긴다면 거대한 서사시를 쓸 수도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어둠의 세계를 통해 그의 작품을 보았는데 이번에 개봉하는 그의 작품은 HD 완전 복원판에 완전 무삭제 버전이다. 흐릿한 화면에, 내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삭제된 장면을 상상하며, 엉성한 번역을 통해 보았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금 새롭게 그의 작품을 접할 생각을 하니 너무 가슴이 설렌다. 
3월 8일 6시 10분에 씨네 큐브에서, 3월 9일 6시 10분 필름포럼에서 시사회와 감독과의 대화 시간이 있고 이후 3월 15일부터 일반 개봉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 나는 3월 9일 필름포럼에서의 티켓을 예매했다. 본 영화지만 내게 어떤 감흥과 영감을 줄 것인지 기대된다. 영화라는 예술에 대해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조도로프스키는 만화와 시나리오 작가로도 매우 유명하다. 알라딘에 그의 만화도 검색이 된다.
현재 조도로프스키는 마릴린 맨슨이 출연하는 영화 &lt;아벨카인&gt;을 찍고 있다고 한다. 이 역시 엄청나게 기대가 된다. 마릴린 맨슨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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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inecube.net/publicity/2007_etc/trailer.wmv
&nbsp;&lt;영화 예고편&gt;

&nbsp;&lt;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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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씨네 21의 자료&gt;<!------------ 바이오그래피 ------------>














자신만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영화 속에 절묘하게 투영시킨 ‘조도로프스키’ 감독.<BR>보통 사람들이라면 감히 상상도 못했을 기발한 영상들을 자신의 영화 속에 가득 담아 관객들을 넋 나가게 만들어버린 이 괴짜감독은, 판토마임, 연극, 만화 연재, 초현실주의 잡지 출간, 소설, 타로카드 점술 등 거의 모든 예술영역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말 그대로 세계적인 ‘아티스트’다.<BR><BR>1929년 칠레의 볼리비아 국경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유태인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서커스단 배우의 아들이었던 운명적(?)탓에 어린 시절부터 피에로 연기와 마리오네트를 쉽게 배울 수 있었다. 산차고 대학에서 심리학과 철학을 공부하다가,1953년 의사가 되라는 아버지에 반항하며 돌연 학업을 중단하고 프랑스 파리로 날아가 아방가르드 문화를 온 몸으로 접하며 판토마임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BR><BR>그는 여기서 ‘장 루이바로’의 스승이었던 판토마임의 대가 ‘에티엔느 두크레’ 에게서 마임을 배웠으며, 그 곳에서 세계 최고의 마임니스트 ‘마르셀 마르소’와 함께 마임쇼를 하기도 했다. 이 시기쯤, 그는 가장 활발한 창작 활동을 보였는데, 직접 카메라를 구입해서 판토마임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 후 1962년, 잔혹 연극의 대가이며 초현실주의자인 ‘페르난도 아라발’, ‘롤랑 토포르’와 함께 '파닉 무브방' 그룹을 조직해, 여러 해프닝과 퍼포먼스를 벌이며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했다.<BR><BR>이 밖에도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문학을 유럽 지역에 소개하는 잡지 "S.nob"을 창간하였으며, 무대연출가, 음악가, 구성 작가로도 활동하고, 자신이 소설과 만화를 직접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의 국보급 만화작가 '뫼비우스' 와 함께 &lt;존 디풀의 모험&gt; 을 제작한 것 또한 그를 설명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대목. <BR><BR>멕시코 모든 예술계의 거장으로 활약한 ‘조도로프스키’감독은, 지금도 모든 예술의 근원은 ‘판토마임’이며, ‘모든 예술은 인체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BR><BR>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 실험주의 색채가 강한 그의 영화 속에는, 보면 볼수록 끌리는 묘한 매력이 가득하다. 신비로운 개성이 넘치는 ‘씨네아티스트’로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조도로프스키’는 대부분의 전위 영화감독들이 독립제작방식을 갖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 헐리웃의 자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하지만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감독 중 한 명.<BR><BR>‘조도로프스키’가 영화를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67년에 이르러서이다. <BR>그는 히치콕, 조지 A 로메로, 존 워터스의 영화들에 감흥을 받아 ‘영화’라는 매체에 도전을 했다고.<BR><BR>60년대 후반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으로 손꼽히는 &lt;환도와 리스&gt;,그리고 &lt;엘 토포&gt;는 컬트고전이 된 걸작들. 70년대 중후반에는 &lt;홀리 마운틴&gt;과 ＜Tusk＞를 만들며, 자신의 명성을 재확인시켰다. 그리고 오랜 공백 끝에 1989년 &lt;성스러운 피&gt;를 만들었다. 90년대에도 그는 노익장을 여전히 발휘 중이며, 최근에는 <KING Shot(2007)>작업을 진행 중이다.<BR><BR>기괴한 컬트 감각의 소유자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그의 영화가 매니아들을 열광하게 하는 이유는, 그의 무한한 상상력과 더불어 영화 속 열린 결말을 의도하여 이야기의 마지막 판단을 독자들에게 떠맡기는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BR>이렇듯 항상 논쟁과 날카로운 비평을 유도하며, 평론가들과 관객을 흥분하게 만드는 게 이 감독의 특기이다.<BR><BR>하지만, 그의 화려해 보이기만 했던 영화인생에서도 좌절은 많았다.<BR>10년 동안 준비했던 <DUNE(사구)>은 그의 아들 ‘브론스키’와 ‘오손 웰즈’, <BR>‘살바토레 달리’, ‘글로리아 스완슨’ 초호화 캐스팅으로 촬영 될 예정이었으나‘조도로프스키’는 16시간 상영 시간의 대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끝까지 굽히지 않음으로써 결국 무산되고, 그 후 방향을 잃어버린 이 프로젝트는 ‘데이빗 린치’에게 넘어갔다. ‘데이빗 린치’의 영화를 본 조도로프스키는 "질투 때문에 1년 동안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고. <BR><BR>또 80년대에는 펑크 작가 윌리엄 버로우즈의 원작 &lt;네이키드 런치&gt;를 영화화 <BR>하려고 했으나, 역시 쓴 맛을 본다. 즉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에게 그 프로젝트가 넘어가 버린 것이다. <BR><BR>&lt;엘 토포&gt;의 속편 격 마릴린 맨슨 출연의 &lt;아벨카인 (Abelcain)&gt;을 찍는 과정에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원래 &lt;엘 토포의 아들&gt;이라는 제목으로 기획되고 있었던 이 작품은 &lt;엘 토포&gt;의 저작권을 쥐고 있는 프로듀서가 그 캐릭터의 이름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제목과 주인공 이름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바뀐 주인공의 이름은 El TOPO가 아닌 EL TORO. <BR>이에 대해 조도로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엘 토포에 선을 하나 덧대니까 더욱 멋진 것이 되었다. 이렇듯 장애요인이 더욱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기도 한다.” 이런 긍정적이고 독특한 생각이, 그를 ‘컬트의 거장’으로 만들었던 것이다.<BR><BR><BR>조도로프스키 감독과의 ‘남다른’ 인터뷰(2006년 12월 13일 &lt;엘 토포&gt; 프랑스 개봉당시)<BR><BR>Q. 30여년이 지난 오늘 새롭게 복원되어 관객들이 이 영화를 다시 찾게 하는 <BR>매력은 무엇인가. <BR>A. 우울함과 기쁨의 공존이라고나 할까...세월이 지나 나는 많이 변했지만, <BR>이 영화들은 내 과거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30 여년을 투쟁한 끝에 다시 <BR>관객을 찾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BR><BR>Q. 특히 &lt;엘 토포&gt;와 &lt;홀리 마운틴&gt;은 감독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BR>A. 내 몸과도 같은 작품들이다.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정직하고 순수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하지만 영화의 순수한 의미 그대로 업계에서 인정 받을 거라고는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이 두 영화는 어찌 보면 내게는 UFO와도 같다. 내가 가진 능력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고 어떠한 타협 없이 내가 만들고 싶은 의도 그대로를 살려서 만든 작품이다. <BR><BR>Q. 첫번째 작품 &lt;환도와 리스&gt;에 대해 순수한 예술의 결정체라 평가받고 있는데<BR>A. 여유 자금이나 능숙한 기술 없이 찍었던 영화다. 멕시코에서는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었다. 그 영화가 나온 후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고도 들었다. 지금에야 웃으며 이야기 하지만 당시에는 내 영화가 가진 컨셉을 처참히 부셔버린 끔찍한 일화다. <BR><BR>Q. 자신이 만든 영화들이 오래되었다고 생각하나<BR>A. 전혀. 엘 토포의 경우 언제부터다 라고 딱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영화다. &lt;홀리 마운틴&gt;의 경우는 특정 머리 모양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당시만 해도 난 현대적인 유행을 만들어내려 노력했었다. 기묘한 신발 끈이나, 인디언들의 헤어스타일이라던가. 이 모든 것들을 난 앞서서 실행했다. 그러니 영화가 오래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디지털 효과가 없었다. 투견 씬의 경우, 실제 투견 장면이다. 오늘날 만든 것은 모두 만들어진 가짜 장면이 아닌가. 그 당시에만 해도 이러한 기술들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영화가 오래된 것이 아니라, 색다른 것일 뿐이다. <BR><BR>Q. 이 두 영화가 영화계에 미친 영향과 파장은 엄청나다. 수많은 영화 팬들에게 칭송받고 있는데, 심지어 당신을 신격화 하는 팬들도 있다. <BR>A. 난 오히려 신화화 되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 영화들, 만화영화들, 책들을 제작한 것이 바로 나니까. 그들이 나를 신화화 하는 모든 이유들이 내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니까. <BR><BR>Q. 두렵지 않은가<BR>A. 전혀. 그 존재가 바로 나 자신 아닌가. 난 내가 두렵지 않다. 나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건 내 상상력이 끝도 없이 넘쳐나기 때문이고, 나는 한순간에 강한 결말을 끄집어낼 수도 있는 것이다. <BR><BR>Q. 새로운 작품을 시작할 생각도 있는가<BR>A 자금의 여유만 주어진다면 당연히! 수익성 좋은 흥행 감독이 된다면 사실 &lt;엘 토포&gt;와 &lt;홀리 마운틴&gt;으로는 10원 한 장도 벌지 못했다. 게다가 &lt;엘 토포&gt;의 프로듀서이자 모든 영화의 판권을 보유하고 있는 알렌 클라인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고 나서는 다시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래서 영화가 다시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BR><BR>Q. 엘 토포의 후속작을 시도했다고 들었는데<BR>A. 그렇다. 엘 토포의 아들에 관한 얘기이다. 살아있는 한, 혹 100세까지 산다면 언젠가 꼭 만들어보고 싶은 이야기이다. 실제로 내 부친도 100세까지 사셨다. 그러니 나도 모를 일 아닌가. 이번 재개봉으로 이제는 돈을 좀 만져 볼 수도 있겠다. 사람들이 나를 돈 잘 버는 감독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나는 영화에 필요한 최소 제작비만을 가지고 제작에 임한다. 하지만 사실 ‘영화’라는 것이 순수한 열정도 필요하지만, 수익을 내긴 해야 한다. 영화도 일종의 산업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예술인 동시에 비즈니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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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마운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INFORMATION 




ST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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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nbsp;&nbsp; 
각본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nbsp;&nbsp;&nbsp; 
촬영 / Rafael Corkidi&nbsp; 
제작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 Roberto Viskin&nbsp; 
음악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돈 체리 (Don&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Cherry), 로날드 프란지페인 (Ronald Frangipane) 
미술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의상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Micky Nichols 
편집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Federico&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Lande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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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 

주연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 지도자 역 
&nbsp;&nbsp;&nbsp;&nbsp;&nbsp;&nbsp; 후안 페라라 (Juan Ferrara) : 예수를 닮은 사내 역 
조연 / 니키 니콜스 Nicky Nichols&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 리차드 루토브스키 Richard Rutowski&nbsp; 
단역 / 아나 드 세이드 Ana De Sade&nbsp; 
&nbsp;&nbsp;&nbsp;&nbsp;&nbsp;&nbsp; 파블로 레데르 Pablo Leder&nbsp; 
&nbsp;&nbsp;&nbsp;&nbsp;&nbsp;&nbsp; 데이빗 실바 David Silva&nbsp; 
&nbsp;&nbsp;&nbsp;&nbsp;&nbsp;&nbsp; 마누엘 돈데 Manuel Donde&nbsp; 
&nbsp;&nbsp;&nbsp;&nbsp;&nbsp;&nbsp; 마셀라 로페즈 레이 Marcela Lopez Rey&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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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마운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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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로프스키 감독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야심작이자 
미드나이트 영화의 정수. 
오늘날의 그 어떤 감독도 흉내 낼 수 없는 천재적이면서도 자극적인 영화. 
<BR>
- Premiere Magazine by Aaron Hi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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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도로프스키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종교의 세계. 
영적인 탐험과 난폭한 충격이 적재적소에 만나면서, 
눈이 즐겁고 생각이 즐거운 한 편의 양식과 같은 영화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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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cago Reader by Jonathan Rosen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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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이면서도 재치 넘치는 기묘한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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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York Times by Roger Greensp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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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마운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HOT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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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홀리 마운틴&gt;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기까지 <BR>
홀리 마운틴은 십자가회 ‘세인트 존’의 &lt;카르멜 산의 등반&gt; 및 ‘르네 다우말’의 &lt;아날로그 산&gt;에 기초해서 만든 이야기이다. 위의 두 스토리를 중심으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멕시코 전역의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영화 장면에 대한 구상을 글로 옮겼다. 이 여행은 40일 동안 계속되었는데, 영화에 대한 감독의 열정과 멕시코의 강렬한 영감이 만나,&nbsp; 짧은 기간이었지만 영화의 큰 틀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nbsp;
감독은 “40일간의 여정 동안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내 안에 있는 신비한 열망과 뜻 모를 향수가 지구, 아니 지구 밖의 공간을 통해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며 40일 동안 탈고의 기억을 되새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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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마운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HOT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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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했던 &lt;홀리 마운틴&gt; 촬영장과 
감독의 특별한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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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lt;엘 토포&gt; 이후,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열렬한 팬이 된 <BR>비틀즈의 ‘존 레논’과 그의 부인 ‘요코 오노’가 이 영화에 투자를 했다는 것은 <BR>이미 유명한 일화. 이 덕분인지, &lt;홀리 마운틴&gt;은 제작 당시 150만 불의 예산으로 기획되어 멕시코 영화 제작 사상 가장 투자 규모가 큰 영화로 기록되고 있는데, <BR>사실 실제 촬영에 소요된 비용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았다. 
&nbsp;
이 영화 촬영에 앞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젠 마스터’의 지도 <BR>아래 1주일 간 수면 금지, 아내와의 성생활 금지 등의 수행으로 <BR>세속적인 욕망을 자제하며 한 달 동안 영화 속의 인물로 지내기도 했다. 
게다가 &lt;홀리 마운틴&gt;은 &lt;엘 토포&gt; 제작 때처럼, 정부의 허가를 받지 못한 채 멕시코에서의 촬영을 강행했다. 촬영지로 집중되는 관심을 피하기 위해, <BR>촬영 스텝 모두 경찰복으로 변장하고 일을 하기까지.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BR>정부로 부터 “계속해서 경찰 유니폼을 사용하거나 교회를 모독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 이라 협박까지 받게 된 것이다. 결국 감독은, 촬영 장비를 멕시코에서 모두 철수하고, 뉴욕으로 촬영지를 옮겨 영화 작업과 음악 작업에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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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멕시코를 찾은 감독에게 멕시코 정부는 <BR>그때서야 그 동안 감독의 노고를 치하하며, 전 세계에 멕시코를 알릴 수 있는 <BR>다른 좋은 작품들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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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마운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SYNOPSIS&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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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처음 접한 사내와, 일곱 수행원들의
<BR>‘성스러운 산’ 수행기 <BR>&nbsp;<BR>예수를 닮은 한 사내. 이름 모를 기이하고도 그로테스크한 곳에 떨어졌다.<BR>벌거벗은 채로, 난쟁이를 따라 얽히고설킨 ‘세상’에 조금씩 눈을 뜨게 되는 그.<BR>복잡한 세상을 정신없이 헤매던 그는 기묘한 여정에 들어서게 된다. 
우선 사내는 우연히 신비의 지도자를 만나게 된다.<BR>지도자를 통해 ‘연금술’의 능력을 배우면서 지도자에게 인정을 받게 된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7명의 인물을 만난다. 
이 7명의 인물들은 태양계의 행성들을 각각 수호하고 있는데,<BR>각자가 세상을 위해 하는 일들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독특하게 소개된다.<BR>&nbsp;<BR>그 이후 예수를 닮은 사내와 지도자, 7명의 수행원은 속세의 물건을 모두 <BR>버리고 9명이 한 무리를 이루어, 신의 일을 대신하고 있는 불사의 현자들을 <BR>찾아 성스러운 산(Holy Mountain)으로 길을 나선다. 
과연, 그들이 성스러운 산을 오르기까지 어떤 놀랄만한 사건들이 그들을 엄습해 <BR>올 것인가. 성스러운 산에 올라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절대 쉽지가 않다.<BR>&nbsp; 

홀리 마운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CHARACTER

‘지도자’ 역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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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거의 신(神)적 존재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뛰어난 연금술사. 수행자들과 함께 신의 영역을 뛰어넘고자 고행을 시작한다. 믿음직스러운 리더의 뒷면에, 엉뚱함도 느껴지는 캐릭터. 
<BR>
- &lt;홀리 마운틴&gt;에서도 역시 다재다능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nbsp;&nbsp; 활약은 변함없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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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닮은 사내’ 역 ‘후안 페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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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본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충만한 그는, 처음엔 세상의 옳고 그름을 깨닫지 못한 채 무조건 받아들이며 즐기게 되지만, 우연히&nbsp;만난 지도자의 가르침 아래 다양한 수행경험으로 홀리마운틴을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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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예수를 닮은 배우’를 캐스팅 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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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포&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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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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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nbsp;&nbsp; 
각본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nbsp;&nbsp;&nbsp; 
촬영 / Rafael Corkidi&nbsp; 
제작 / Roberto Viskin&nbsp; 
음악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Nacho Mendez 
미술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의상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편집 / Federico Lande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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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ST 

주연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Alejandro Jodorowsky) : 엘 토포 역 
조연 / 브론티스 조도로브스키 (Brontis Jodorowsky) : 엘 토포의 아들 역 
&nbsp;&nbsp;&nbsp;&nbsp;&nbsp;&nbsp; 조스 레가레타 (Jose Legarreta) : 죽어가는 남자 역 
&nbsp;&nbsp;&nbsp;&nbsp;&nbsp;&nbsp; 알폰소 아라우 (Alfonso Arau) : 산적 역 
&nbsp;&nbsp;&nbsp;&nbsp;&nbsp;&nbsp; 호세 루이스 페르난데즈 (Jose Luis Fernandez) : 산적 역 
&nbsp;&nbsp;&nbsp;&nbsp;&nbsp;&nbsp; 알프 훈코 (Alf Junco) : 산적 역 
단역 / 파블로 레데르 (Pablo Leder) : 노예 역 
&nbsp;&nbsp;&nbsp;&nbsp;&nbsp;&nbsp; 지울리아노 지리니 사스세롤리 (Giuliano Girini Sasseroli) : 승려 역 
&nbsp;&nbsp;&nbsp;&nbsp;&nbsp;&nbsp; 크리스티안 메르켈 (Cristian Merkel) : 승려 역 
&nbsp;&nbsp;&nbsp;&nbsp;&nbsp;&nbsp; 데이빗 실바 (David Silva) : 대령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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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포&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RE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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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당하고도 클래식한 초현실주의, 신비주의, 이태리 웨스턴, 잔혹극... 
다양한 기법이 뒤죽박죽 되어있지만 결국 놀라운 작품이 되어버렸다. 
이치에 맞는 감각보다는, 끝날 것 같지 않는 잔인함과 난폭함을 
즐길 수 있는 묘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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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cago Reader by Jonathan Rosenba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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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인들이 함부로 따르기 어려운 믿음을 추구하고 있는 영화 
영화 자체의 오만을 버리고 즐겁게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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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 York Times by Roger Greensp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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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신화적 탐구 자세가 일궈낸 놀라운 작품. 
폭력 자체가 가진 느낌이 서서히 멀어지면서, 폭력이 가지는 관객과의 
묘한 거리감은 마치 구약성서에 나오는 ‘대학살’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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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icago Sun Times by Roger Ebe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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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포&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HOT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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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컬트 무비의 시작점! 
‘존 레논’과 ‘앤디 워홀’등 최고 아티스트들의 
열광적인 지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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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에 작품은 완성 되었지만, 개봉이 늦춰지면서 결국 1970년 12월 
뉴욕의 심야영화관에서 깜짝 개봉을 감행한 &lt;엘 토포&gt;. 
신비하면서도 광적인 분위기의 영화 &lt;엘 토포&gt;는 ‘플라워 파워(Flower-power : 1970년대 히피들이 벌였던 평화운동)’ 세대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컬트 매니아 층을 사로잡았고, 결국 이 영화는 최초의 심야영화로 세계 영화사에 
대기록을 남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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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뉴욕 언더그라운드 미드나이트 영화’로 불리며 
&lt;이레이저 헤드&gt;, &lt;몬티 파이톤과 성배&gt;등의 영화와 함께 장기 상영되면서&nbsp; 매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lt;엘 토포&gt;는, 
전위영화는 흥행에 참패한다는 철칙을 깨고 천만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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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세계적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 ‘데이빗 보위’는 이 영화의 열렬한 지지자이며,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은 &lt;엘 토포&gt;에 심취한 나머지 영화 판권을 구입하여 전국 개봉을 추진시키기도. 
그래서 이 영화의 판권은, 다른 영화들처럼 영화사가 아닌 유명 음반 레이블인 애플 레코드가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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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포&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HOT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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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과 모험을 감수하며 
&lt;엘 토포&gt; 한 편을 만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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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lt;엘 토포&gt;는, 비윤리적이고 사회비판적인 영화 내용 때문에 당국으로부터 촬영허가를 거부당했었다. 하지만, 여기서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영화 열정이 중단 될 수는 없는 터. 결국 ‘불법’으로 숨어서 촬영을 강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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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제 사막의 악조건 속에서 야심만만하게 촬영을 강행한 감독은, 최소한의 촬영 스텝만을 구성하여 감시자들의 눈을 손쉽게 피할 수 있었다고. 이렇게 위험한 촬영 끝에, 현재의 우리는 감사하게도 &lt;엘 토포&gt;속 멋지고 귀한 장면을 극장에서 편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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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또한, 조도로프스키 감독의 작품 세계는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이란 주제에 매혹되어 있었다. 이 주제를 극명하고 강렬하게 전달하고자 캐스팅 또한 예사롭지 않았는데, 불구자와 기형자 등 사회에서 소외받은 계층을 영화의 주 무대에 끌어올림으로써 메시지 전달에 더 큰 힘을 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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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감독은 “열정에 미친 예술가의 눈으로, 멕시코 작은 마을 골목이란 골목은 모두 뒤져 작품에 필요한 배우가 아닌 작품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는 인물 자체를 찾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들을 보면 징그럽다 괴물이다 하겠지만, 내 눈에는 그들이 바다에서 어렵게 건져낸 진주와도 같았다. 내 영화에 유명한 배우가 출연하는 것이 싫다. 스타라는 대단한 자아가 영화의 매력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라는 말로 그의 영화 속 주인공들을 자신 있게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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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포&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SYNOPSIS&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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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뜨겁고 황량한 사막에서 벌이는 
현자(賢者)들과의 한 판 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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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엘 토포’는 환상적인 총 솜씨를 자랑하는 유명한 총잡이. 
아들과 말을 타고 사막을 건너는 중, 한 마을에서 끔직한 살육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악당의 횡포로 폐허가 된 마을을 ‘엘 토포’가 대신 나서서 복수 해주고, 
어린 아들 대신 한 여자 ‘마라’를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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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곧 ‘신(神)’인 것처럼 기세등등하게 다시 사막을 걷는 ‘엘 토포’는 
‘마라’의 부추김에 동양철학자. 자연주의자, 사막의 성인(聖人) 등 다양한 현자들을 만나며 대결을 하지만, ‘엘 토포’는 단순한 ‘총잡이’일뿐 처음부터 그들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엘 토포’는 비열한 속임수와 우연한 행운으로 모든 대결에서 승리를 맛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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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은 잠시. 믿었던 ‘마라’의 배신에 ‘엘 토포’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 후, 자신은 ‘신(神)’이 아니라 하찮은 인간일 뿐, 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뒤늦게 때달으며 스스로 목숨을 포기한 채 그때서야 신(神)을 부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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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포&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SYNOPSIS&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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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엘 토포’의 부활! 
그리고 새로운 수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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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동굴 속에서 ‘엘 토포’가 긴 잠에서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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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속에서 ‘소외받은 자’들을 만난 ‘엘 토포’는 자신을 살려준 그들을 위해 
희망의 통로를 만들어 주기로 다짐한다. 그리고 과거의 죄를 씻고 해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수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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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희망’처럼 보이는 바깥세상은 탐욕과 차별로 더럽혀진 곳일 뿐. 
흔히 ‘정상인’으로 불리는 바깥세상의 사람들은 동굴 속 ‘소외받은 자’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더럽혀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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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결국 우여곡절 끝에 통로가 만들어 지고 ‘소외받은 자’들은 
한꺼번에 바깥세상을 향해 내달리지만, 결국 사람들에 의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엘 토포’는 그들의 횡포를 목격하고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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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포&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CHARAC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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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토포’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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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할 위험과 고난이 넘쳐나는 ‘사막’을 횡단하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전진하는 신비한 매력의 ‘총잡이’ 엘 토포. 
총 쏘는 기술이 현란한 건 말할 것도 없고, 사막에서의 생존법까지 터득하고 있어 
이미 그쪽 세계에서는 이미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아들을 여자와 바꾸는 무모함, 혹은 비겁한 싸움기술도 보이지만 
내면에는 서부극의 주인공답게 남자다운 ‘의리’가 가득 차 있는 진짜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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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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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lt;엘 토포&gt;에서 감독, 각본, 주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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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재다능의 기질을 확실히 보여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연기자로써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리얼한 연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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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P : 영화 &lt;엘 토포&gt;속에 등장하는 ‘어린 아들’ 역은,&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실제 아들이 연기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nbsp;
* 한 편의 영화에, 필견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니 놀랍다. '필견"이라는 단어를 이 영화를 <BR>통해 처음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조도로프스키의 영화에 이 단어를 쓴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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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5/0/cover150/8970853251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853251</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독립영화계의 문제적 감독 신재인 스토리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58508</link><pubDate>Sat, 10 Feb 2007 22: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58508</guid><description><![CDATA[



독립영화계의 문제적 감독 신재인 스토리 영화  
2005/11/14 03:10

http://blog.naver.com/deux0524/100019445840
<!-- 포스팅 -->
신재인의 진실이 전진한다 










신재인은 누구인가? 지난해와 지지난해 독립영화를 조금이라도 주목했던 사람이라면 이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lt;재능있는 소년 이준섭&gt; &lt;그의 진실이 전진한다&gt;라는 단 2편의 단편영화로 독립영화계의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이 문제적 감독에 대한, 조금 늦게 날아온 보고서.
이 사람은 신재인이다. 70년 대전 출생,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영화아카데미 17기다. 혹자는 그를 “영화천재”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자는 “약간 사이코라며?” 되묻기도 한다. 본명은 신미경. 재인(才人)이란 이름은 지난해 투병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재능있는 인간’이기도 하고 ‘영화 만드는 광대’이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도 사진기자에게 “왼쪽 얼굴이 잘 나오니까 사진은 왼쪽으로 찍어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 걸 보니 꽤나 까다로운 성격임에 분명하다. 하나 이런 사실이나 추측들은 그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유독 상 복, 상금 복 많은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번쩍이는 트로피 역시 신재인을 설명할 수 없다.
… 이 기괴한 순환. 또는 술래를 알 수 없는 숨바꼭질. 그래서 번번이 불려가야 하는 지옥의 영겁회귀. 여기에 이 도착증에 빠진 채 물구나무를 선 신재인의 종잡을 수 없는 묘기가 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lt;타이타닉&gt;과 루이스 브뉘엘이, 혹은 스즈키 세이준과 마리오 바바가 뒤죽박죽으로 앞서거나 뒤서면서 등을 떠밀거나 발을 걸어 시종일관 휘청거리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상징적 법의 인과성을 교란시킨다. 말 그대로 그것이 담론의 목에 꽂혀서 삼켜질 수 없는 형상-원인이 되어 결국 토해내게 만든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환원되지 않는다. 익사할 만큼 넘쳐나는 담론의 토사물. 이 영화 안에 들어서는 것은 말 그대로 신재인 월드에로 다이빙하는 것이다….” - 영화평론가 정성일
“&lt;재능있는 소년 이준섭&gt;은 기발한 이야기 소재에 엉뚱하고 성숙한 유머를 천연덕스럽고 솜씨있게 비벼놓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모든 감독들을 한방에 보내버렸다. 뒤에 알았지만 그에게 매료당한 영화인들이 꽤 있었던 걸로 안다.” - 영화감독 김지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글은 순전히 신재인이란 감독에 대한 소개글이다. 그러니 잠시, 콸콸 쏟아져 흘러내리는 극찬들과 단명한 진실을 거두고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물론 이 흥미로운 ‘중독의 역사’ 역시 신재인이라는 인간을 아는 데는 작은 단서밖에 안 되겠지만.








신재인이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88년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 분신을 했고, 거리는 화염병과 피로 뒤덮였다. 매일 매일이 전쟁 같은 시기였다. 그는 혼란에 빠졌다. 대의명분을 강요하는 사회에도 신물이 났고, 대의명분에 따라 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도 자괴감이 밀려왔다. 결국 그는 정반대로 사랑에 탐닉했다. 중독에 가까운 연애였다. 1학년 때 만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당시만 해도 너무 파격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였고, 그를 “똘아이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루는 기숙사에 남자친구를 불러들였다가 들켜서 전 기숙사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한 여성지에서는 ‘요즘 대학생들의 문란한 성생활’이라는 기사로 그를 다루기도 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인터뷰가 실렸고, 기사는 마치 그를 ‘새시대의 자유부인’이라도 되는 양 보도하고 있었다. 캠퍼스를 걷다보면 학생들이 “이런 시국에 사사로운 연애질이 웬말이냐!”는 증오 담긴 쪽지를 돌에 묶어서 던지고 가곤 했다. 결국 기숙사에서 쫓겨났고 2학년 때부터 학교 코앞에서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했다.
화학과를 다니다 “너 같은 아이는 철학을 해야 해”라는 말에 다시 시험을 쳐서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동·서양철학은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이었다. 대신 수학처럼 명료했던 논리학에만 빠져들었다. 결국 하루라도 빨리 이 혼란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4학년1학기 만에 조기졸업했다. 그러나 연애와 논리학으로만 버틸 수 있었던 대학 4년이 준 정신적인 외상은 꽤나 컸다. 졸업은 했지만 목표없이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자괴감에 허우적대며 심한 데카당이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던 중 별 생각없이 고시준비를 시작했다. 원래 “안 자고, 안 씻는 걸 잘하고, 시험운도 좋은 편이라” 사시, 행시 1차는 몇달 만에 붙어버렸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금세 2차도 붙겠거니 기대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디오방이었다. 그 당시 신림동 고시촌 주변에 비디오방이 우후죽순 불어나면서 가게 사이 경쟁이 붙어 한편에 500원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어느 날부터 그는 비디오에 중독되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네마테크에 빠져든 영화광처럼 하루에 5편은 기본이었다. 공포영화, 액션영화, 멜로영화 등 가리지 않고 보았다. 결국 2차 시험일, 그는 비디오방에서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lt;어쌔신&gt;을 보고 있었다. 그냥 그 영화가 좋아서라기보다 중독이란 다 그렇듯, 이유없이 그 영화를 오늘 안 보면 못견딜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장롱을 부수셨고, 거의 죽이기 일보직전으로 노여워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길로 고시공부를 때려치웠다. 대학원도 가고, 이런저런 직장도 다녔다. 1년 동안은 모 대학 법대교수 비서로 들어갔는데, 이 생활은 정말 가관이었다. 강남의 으리으리한 멤버스술집 문 앞에서 양복 들고 기다리는 일은 양반이었다. 썩어문드러진 인간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적나라하게 보는 기회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98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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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몸속을 돌아다니는 피는 다음과 같이 속삭이곤 한다고 합니다. ‘너의 이야기가 진실이어도 거짓이어도 상관이 없다. 다만 모순이 없도록만 하여라. 그럼 내 네게 영생(永生)을 약속하마.’ 한때 그의 몸속을 돌아다니기도 했던 이 피의 속삭임을 믿는다면 그가 영생을 누리지 못한 까닭은 단지 그가 모순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소설집 &lt;포도주&gt; 프롤로그 중
짧은 단편들로 이어진 소설집 &lt;포도주&gt;는 한 문화재단 공모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결국 여덟 군데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긴 좀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거절의 말을 들어야 했다. 99년 여름 1년간 처박아 두었던 소설을 다시 읽어보았다. 다시 출판사에 들고 가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걸로 영화를 만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99년 한겨레문화센터에 들어갔고, 영화아카데미가 나이제한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조해서 만든 단편 &lt;소세지&gt;를 들이밀었다.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연극영화과 출신이라 비디오방에서 1년을 죽친 자신과는 지식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났지만,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학교는 가르쳐주는 게 없었지만 동기들이 영화 찍는 걸 옆에서 보면서 진짜 영화란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 우리 인간들은 소중한 양분이 될 많은 자원들을 방치해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지에 먹을 것을 널어두고도 배를 곯고. 단지 무지, 비위 혹은 그놈의 테이스트 때문에 말야….” 소설집 &lt;포도주&gt; 중 &lt;남이 먹을 때1&gt;
아카데미 1학년 작품이었던 &lt;재능있는 소년 이준섭&gt;은 뭐든 먹어치우는 놀라운 비위를 가진, 그것만이 유일한 재능인 소년의 이야기다. 영화 제목인 ‘이준섭’은 그 아이의 본명이다. 촬영헌팅을 갔던 학교에서 “PC방 가려는 데 돈이 없다, 천원만 주라”며 뻔뻔하게 묻던 아이였다. 그외 아역배우들 역시 섭외한 학교 운동장에서 무작위로 불러모은 100% 아마추어였다. 하루 나왔던 아이들이 그 다음날은 안 나오는 통에 연결이 튀는 경우도 많았다. 여자주인공을 비롯한 소녀들은 자칭 ‘칠공주파’라고 부르던 그 학교에서 좀 ‘나가는’ 아이들이었다. 머리염색해야 한다고 돈 달라는 건 예사고, 돌아서면 “아줌마, 대사가 이게 뭐야!”라는 솔직한 소리도 서슴없이 내뱉았다. “나는 아이들이 싫다. 내 영화에 아이들이 곧잘 등장하곤 하지만 결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내가 인간에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요소가 바로 위선적이라는 것과 코미디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아이들은 코미디를 할 수는 있지만 너무 솔직해서 위선을 못 떤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 이렇듯 아이들을 싫어하는 감독이 만드는, 아이들만 등장하는 이상한 영화의 촬영장엔 감독도 아마추어, 배우도 아마추어였다. 날은 영하 20도, 학교협조도 잘 안 되었고, 프로듀서는 쉼없이 내리는 눈을 치우다가 결국 삽을 던지고 도망갔다. 고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신재인은 너무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 너무 기뻐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연애할 때의 희열, 쾌락과 정확히 일치했다. 전기가 몸에 찌릿찌릿 오는 것 같은, 깊은 고통과 엄청난 희열이 시소를 타는. 그렇게 그는 이제 ‘영화촬영’에 중독되었다. 결국 첫경험을 치르고 졸업영화를 찍기까지 1년 동안은 엄청난 금단현상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촬영장에 나가서 카메라를 잡고 싶었다.
“… 들어라, 여기 유일한 것이 있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닌 것이 여기 있다. 그래도 그들이 듣지 않는다면 너는 그들의 뺨을 함몰시키고 그들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꺾어버리고자 했을 것이다. 그들의 두개골을 열고 진실을 슬쩍 집어넣은 뒤 봉합하고도 싶었겠지. 그리고 그들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면 너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느니 그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설집 &lt;포도주&gt; 중 &lt;너의 진실1&gt;









1년 뒤 들어간 졸업영화 &lt;그의 진실이 전진한다&gt;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교회가 어떻게 물에 잠기냐고 걱정을 했지만 스스로에겐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터넷 공모로 스탭들이 모였고, 의외로 교회섭외도 쉽게 이루어졌으며 특수효과 하나 쓰지 않고도 시나리오를 영상화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냥 너무 행복했다. 촬영이 끝나면 밤새 술을 마시고 (그들은 별로 탐탁지 않았겠지만) 스탭들에게 헤어지기 싫다고 집에까지 쫓아가기도 했다. 고단한 줄도 힘들지도 않았다. 찍고 나니 아카데미에서 준 제작비 중 50만원이 남았다.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고 촬영이 끝나는 날 펑펑 울었다. 또 찍고 싶다, 어떻게 여기서 끝내냐, 그러다가 촬영에 대한 집착이 중독을 넘어가는 순간이 왔다. 촬영이 없는 일상생활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밥먹고, 차마시고, 자는 시간들이 단조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준비 중이던 에로영화 프로젝트가 엎어지자 금단증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미쟝센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번 본 적 있는 봉준호, 허진호 감독을 무턱대고 찾아가서 “스탭으로라도 써달라”고 애걸했다. “&lt;친구&gt;의 마약 먹은 준석이처럼 눈이 퀭해져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감독들은 “영화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큰 사람 같으니, 바로 당신 영화를 찍어라”며 그를 스탭으로 두는 것을 유보했다. 이런 그를 두고 충무로에서는 “신재인이란 여자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사이코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아이디어는 콸콸 쏟아지는 물처럼 흘러넘쳤다. 그러나 하나를 붙잡고 진득하게 시나리오를 발전시키고, 영화사를 찾아가고 하는 과정을 진행해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계속 트리트먼트 수준의 글들만 쉼없이 쏟아냈다. 그때 쓴 트리트먼트가 대략 30여편이 되었다. 꿈에서도 카메라가 돌아가고, 빨리 찍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행한 시기 중간중간에 영화제에서는 상을 주었다. 그러나 상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면 조잡한 영화라도 빨리 찍을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남편도 “너 좀 이상한 것 같으니까 정신병원에 가봐라”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두문불출하고 무지막지하게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던 중 한 제작사 대표에게 &lt;천사를 본 소년&gt;과 &lt;재수없는 소녀&gt;의 두개의 중편을 묶은 장편 프로젝트 &lt;남이 먹을 때&gt;를 들고 갔고 소액이지만 투자하겠다는 뜻을 들었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에 당선되어 3천만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2003년 10월이었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영화찍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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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너무 말을 잘한다. 그래서 지겹다. 그중 누구도 내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내 친구는 돼지다. 나는 소를 사랑한다.” - 소설집 &lt;포도주&gt; 중 &lt;공포영화&gt;
“11월이면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장담했지만 이건 아카데미 단편이 아니었다. 15일 빡빡하게 준비하면 가능했던 단편과 달리 독립장편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처음에 투자를 약속했던 제작사는 지나친 서류작업을 요구했고 이런 소모적인 과정 속에서 PD들이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두달간의 작업은 “유황불에 몸을 달구는 것” 같았다. 캐릭터 있는 아이들만 15명, 전체 25명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아역배우 캐스팅부터 고아원 헌팅까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10월 초부터 조감독과 둘이 앉아 한달을 꼬박 준비했는데 준비된 건 없었고, 몸은 축이 날 때로 나 있었다. 조강지처 같았던 조감독은 어느 날 “나는 감독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스탭들은 “수능 두번
본 기분”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선상반란이 가장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하지 않나. 스탭들의 분위기가 거의 선상반란 수준이었다.” 감독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손등을 지지는 꿈도 꿨다. 이렇게 할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 자신의 영화가 너무 싫었다. 영화를 엎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차마 못하겠고 “누가 뒤통수를 부수고 갔으면 했다. 영안실에 누워 있다면 영화를 안 찍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신만은 쓰러지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유체이탈 같은 상태로 며칠 밤을 멍하니 새기도 했고 누군가는 “영화 한편 찍고 죽을 겁니까?” 하고 답답한 듯이 묻기도 했다. 결국 12월 초에 조연출과 연출부들을 새로 구성해야 했다. 제작사와는 사무실을 빌려쓰는 정도로 정리했다. 그렇게 12월22일 우여곡절 끝에 독립장편영화 &lt;천사를 본 소년&gt;의 첫 촬영에 들어갔다.
“옛날에 어떤 여자애가 있었어. 그애의 모친은 사려 깊게 그녀를 교육시켰지. 그녀를 소설 나부랭이로부터 격리시키고. 대신 어머니는 그녀에게 과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녀는 아름답고 단순한, 행복한 여인으로 성장했어. 그런데 어느 날 그만 소설 &lt;파우스트&gt;를 읽고 말지.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지고. 결국 그녀는 쓰러진다. 연애 감정, 죄의식, 부적절한 비유, 답이 없어도 되는 의문들, 모든 것을 아는 체하며 또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양….” - 소설집 &lt;포도주&gt; 중 &lt;탕아, 돌아오다&gt;
경기도 파주 교하읍, 허름한 건물에 만들어진 고아원 세트에서는 추운 날씨 속에도 촬영이 한창이다. 하지만 신재인 감독의 얼굴엔 지난 2달의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모든 고민들과 고통들이 눈녹듯이 녹았다. 그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촬영하지 않을 때이고, 다음은 프리프로덕션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촬영하고 있을 때”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번엔 “매일매일 장편의 리듬을 깨우쳐가고 있는 중”이라며 꽤나 신이 난 표정이다.
“원래 집 밖에서 자는 걸 좋아한다”는 그가 촬영 시작 뒤 거의 열흘 만에 집을 찾는다. 꼬불꼬불한 상도동 골목을 따라 들어간 그의 집 문을 열자 영화준비하는 두달 동안 신경을 못 써줘서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는 푸들잡종 두 마리가 유난히도 부산스럽게 주인의 사랑을 갈구한다. 머리의 무게를 가누지 못해 자꾸 고꾸라지는 중국산 스탠드가 어두운 집안을 밝히는 가운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얼굴이 담긴 액자와 &lt;피아니스트&gt;의 포스터가 부조화스럽게 붙어 있다. “스필버그는 극장에서 돈내고 보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네케 사진은 지갑에 넣어서 다닐 정도고, 아! 김기영 감독의 영화도 너무 좋다.” 이 널뛰는 ‘테이스트’의 주인공은, 13년째 은단중독이라는 이 여자는,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하루 4갑이라는 이 골초감독은 “상업성이 본질적인 것을 침해하지 않는 한 언제라도 상업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다”며 “그러나 이 지독한 중독이 다른 데 꽂혀버리면 그땐 영화를 아예 그만둘지도 모른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의 앞엔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노인을 이용해 엽기적인 성행위를 벌이는 심각하게 야한 시나리오”를 비롯, 에로영화 트리트먼트도 수북이 쌓여 있고, 당장 &lt;남이 먹을 때&gt;의 2편인 &lt;재수 없는 소녀&gt;를 찍고 싶은 조바심도 목 끝까지 차 있다. 서늘한 시선, 기괴한 감성, 진실된 유머, 의외의 상업성으로 무장한 괴물 같은 감독 신재인. 이 재능있는 인간의 진실이, 그의 중독이 전진하는 발걸음을 따라 한국영화의 지형도에서 한번도 탐험되지 않은 처녀지는 지금 막 그 입구를 열기 시작했다.





<H3 class=h3>그녀의 영화들, 보셨나요?</H3>
▶ &lt;재능있는 소년 이준섭&gt;








소년 이준섭은 못생기고, 뚱뚱하고, 인기도 없는 외톨이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부터 샤프심, 지우개, 가래침으로 비빈 도시락, 분필, 노트 등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의 관심을 사기 시작한다. “야, 니네 반에도 이런 애 있냐?” “없어, 이런 애가 어딨어.” 그는 전교에서 유일한, 독창적이고, 신기한, 그리고 비위가 좋은 소년이다. 그런 이준섭이 한 소녀를 좋아한다. 소녀는 그에게 “너 나 좋아하지? 얼마나 좋아해? 많이 좋아해? 그럼 너 내 똥도 먹을 수 있어?”라고 묻는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소녀와 소녀의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똥이 담긴 도시락을 앞에 두고 꿈을 꾼다. 소년은 똥을 먹음으로써 사랑을 확인시키고 전교생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연다. 해피엔드. 그러나 더욱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100년 만에 찾아온 가뭄으로 전 인류가 굶주려 있을 때 소년은 기차역 앞 노숙자들을 향해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세요, 눈을 뜨세요. 모든 게 여러분의 밥입니다!”라고 외친다. 구황(救荒)소년은 그렇게 지구를 구한다. 판타지가 깨지면 소년은 여전히 도시락 앞,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다. “그래도 나는 재능있는 소년. 소녀는 나를 사랑할 거야. 그래도 우린 행복할 거야….”
▶ &lt;그의 진실이 전진한다&gt;








한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오며 보호자에게 말한다. “수술 잘되었구요… 환자의 머릿속에는 제 진실을 넣었습니다.” 다급히 의사를 부르는 간호사의 외침을 뒤로 하고 남자가 들어선 곳은 법정이다. 남자는 법정에서도 다음 장소인 교회에서도 “내 입에선 오로지 진실만이 콸콸 쏟아져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모두가 내 진실에 빠져 죽으리라”고 말하며 판사와 목사에게 대항한다. 그를 바라보는 정체불명의 푸른 모니터와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은 이 이상한 이야기에 의문을 더할 뿐이다. 그러나 “내 입을 크게 열라”는 잠언의 말씀에 따라 남자가 입을 열자 그의 입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고 결국 교회는 물속에 잠긴다. 목사는 물에 잠긴 채 말한다. “그동안 네 이야기 재미있었다. 나는 그러면 된 거라고 생각한다.” 장면이 전환되면 이곳은 경찰서 고문실이다. 남자는 “네 입을 크게 열라”는 성경구절이 써 있는 깨진 거울 아래 수조에서 물고문을 당하고 있고, 목사와 판사로 등장했던 이들은 그에게 “물 좀 고만 먹고 이제 진실을 불라”고 강요하는 형사들이다.
▶ &lt;천사를 본 소년&gt;
외딴 고아원 ‘천사의 집’의 원장은 식비를 줄이기 위해 원생들에게 먹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는 성경의 구절을 들먹이며 아이들의 식욕을 유린하고 결국 고아원의 아이들은 배가 고픈 것을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돼서야 식당에 가서 초코파이를 타서 침대 밑이나 화장실에서 회개하며 먹는다. 이들에게 가장 큰 벌은 남이 보는 데서 식사하는 일이다. 뚱뚱한 소년 성일은 원장의 교리를 가장 잘 따르는 아이지만 말라가는 친구들과 달리 풍만한 자신의 몸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식탐하는 돼지라는 오해를 산다. 결국 성일은 금식선언을 하는 등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 하지만 아이들은 믿지 않는다. 금식에 실패한 어느 날, 성일은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날개로 가려주는 따뜻한 천사를 본다. 한편 아이들은 우연히 원장과 수위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이들에게 원장과 수위의 식사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그들이 섹스를 나눈 것 같은 환상과 겹쳐지면서 끔찍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성일의 유일한 친구이자 원장을 의심하던 갑수는 원장을 살해하고 시내로 탈출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갑수가 원장에게 반발하는 사이 오히려 성일이 고아원을 탈출하게 된다. 다음날 시내에서 눈을 뜬 성일, 그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수치심도 모른 채 밥을 먹는 놀랍고 역겨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뮤지컬 영화 &lt;렌트&gt;-일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56849</link><pubDate>Thu, 08 Feb 2007 01: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56849</guid><description><![CDATA[


<BR>젊고 가난한 뉴욕 예술가들의 초상<BR>&nbsp;&nbsp;&nbsp;&nbsp;&nbsp;<BR>뮤지컬 영화 &lt;렌트&gt;<BR><BR>

 노조수연 기자<BR> 2007-01-29 20:50:50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듯, 장르간 이동 역시 새로운 소재 발굴과 비슷한 우려먹기에 지친 우리에게 흥미롭고도 익숙한 풍경이다. ‘원작’의 아우라가 새로운 장르로 이식되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재미와 감동, 교훈 그리고 문화적 소비자를 불러낼 때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재창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BR><BR>그러나 각색-번역의 작업은 갈채 받는 원작에 손대야 할 때 큰 부담을 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 &lt;렌트&gt;의 열혈 팬이었던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가 이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그러했으리라.<BR><BR>렌트 헤드(rent head)라 불리는 광적인 팬덤 중 한 사람이었던 크리스 콜럼버스는 일찍이 &lt;나홀로 집에&gt;, &lt;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gt;, &lt;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gt; 등 주로 ‘아동 취향’ 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 감독이 누구든지, 뮤지컬 팬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작품이 영화로 옮겨질 때 종종 다른 각색에서 벌어지는 재앙처럼 원작의 깊이가 훼손될까 우려했을 것이다.<BR><BR>그러나 콜럼버스 감독은 그의 신상(神像)에 크게 망치질을 하지 않은 채, 뼈대와 재질을 거의 그대로 살려놓았다. 심지어 출연한 주요 등장인물 8명 중 조앤과 미미 역을 제외한 6명은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팅 출신이다. 거기에 더하여 영화 &lt;렌트&gt;는 제한적인 무대에서 표현할 수 없는 뉴욕이라는 공간을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으로 한껏 확장하여 스크린에 화려하게 펼쳐보였다.<BR><BR>비록 ‘원작 뮤지컬을 단지 스크린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다’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연출자로서는 그 역시 존경하는 원작자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며, 실제로 브로드웨이에서 오리지널 캐스팅 공연을 보지 못한 전세계 &lt;렌트&gt; 팬의 갈증을 달래주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한 것이다.<BR><BR>“Season's of love”라는 노래의 무대 위 합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 1989년 12월 24일.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감독 마크(앤서니 랩)와 록 가수이자 송라이터인 로저(아담 파스칼)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한 다락방을 같이 쓰는 가난한 예술가다. 먹을 것도, 불을 지필 것도 없이 상당히 비참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게 된 이들은 청천벽력으로 밀린 집세(rent)를 내라는 독촉을 받게 된다.<BR><BR>‘애비뉴 A의 공공의 적’이 된 옛 친구 베니(타이 디그스)는 집세를 영구 면제해주겠다는 약속을 철회했지만, 만일 로저와 마크가 건물철거에 반대하는 공연을 개최하는 모린(이디나 멘젤)을 저지한다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거절한다.<BR><BR>로저와 마크의 친구이자 MIT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콜린스(제스 마틴)는 한밤중 뉴욕의 골목에서 강도들에게 얻어맞고 길거리에 쓰러져 신음하다 ‘북치는 소년’ 엔젤(윌슨 저메인 헤르디아)을 만나 구조된다. 한편 아래층에 사는 댄서 미미(로자리오 도슨)는 로저와 가까워지려 노력하지만, 여자친구의 자살과 에이즈로 인한 절망, 그리고 죽기 전 완성해야 할 하나의 노래를 찾지 못한 조바심으로 가득한 로저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여는데 힘겨움을 느낀다.<BR><BR>마크는 자신을 차버리고 변호사 조앤(트레이시 토마스)을 새로운 연인으로 택한 매력적인 공연예술가 모린의 부탁으로 그녀의 공연장 세팅을 돕기 위해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주친 건 모린이 아닌 그녀의 연인 조앤. 마크와 조앤은 서로 불쾌감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모린이라는 공통분모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탱고 모린’을 춤춘다. 이 장면은 영화 &lt;렌트&gt;에 있어서 가장 영화적이면서도 스펙터클이 살아난 장면이며, 질투심과 의구심에 괴로워하면서도 끌릴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존재에 대한 심적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BR><BR>건물주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훌륭하게 이끌어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모린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은 다같이 레스토랑에 모인다. 이들에게 “보헤미안은 죽었어!”라고 선언하는 베니를 향해 일갈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합창인 “La Vie Boheme”은 뮤지컬과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다만 가사의 묘미를 살릴 수 없는 자막번역이나 단어의 문화적 내연에 대한 무지는 이 작품의 이해와 재미에 현저히 걸림돌이 될 것이다.<BR><BR>예컨대 “La Vie Boheme”에 나오는 일련의 명사들, ‘손하임, 손탁, 케이지, 커닝햄, 파블로 네루다, 구로사와, 8BC’등의 단어는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이나 예술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운율-라임을 맞추는 일종의 장치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지만 ‘소설가, 무용가, 민중시인, 영화거장, 록그룹…’ 식으로 자막이 제시되면 노래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되므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lt;렌트&gt;를 더욱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학습도 필요한 것이다.<BR><BR>베니와의 관계를 의심한 로저는 미미와 헤어지고 뉴욕을 떠나 산타페로 간다. 이미 에이즈로 친한 친구인 엔젤을 떠나보낸 후였다. 생계를 위해 추구하던 작품세계를 버리고 방송국에 취직한 마크 역시 방황한다. “La vie Boheme”으로 맺는 1막이 등장 인물들 간의 만남과 사랑, 추구하는 길에 대한 신념, 구체제에의 저항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2막은 이별과 인물간의 갈등과 화해로 이루어져 있다. 각자 방황하던 이들은 다시 돌아오고 그러기까지 1년의 세월이 흐른다. 1년이 걸려 이들이 깨달은 사실은,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뿐 다른 날은 없다는(no day but today) 것이다.<BR><BR>&lt;렌트&gt;는 푸치니의 오페라 &lt;라 보엠&gt;을 원작으로 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이 비교된다. 19세기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20세기 뉴욕의 역시 가난한 예술가들로, &lt;라 보엠&gt;에서 주인공이 앓던 결핵은 &lt;렌트&gt;에 와서 에이즈와 약물중독으로 치환됐다.<BR><BR>물론 가장 큰 차이점은 눈에 보이는 결말부일 것이다. 그러나 &lt;렌트&gt;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군(레즈비언, 게이, 크로스드레서, 흑인, 백인, HIV보균자, 약물중독자 등)에 대한 묘사가, 더욱 이 시대의 보엠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마크가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창조라 주장하는 부분에서, 이 사회의 전형적 질서와 권태 역시 그들의 적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다.<BR><BR>여러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치열한 삶이다. 그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질병에 신음하지만, 추구하는 예술세계에 대한 애정과 갈망을 숨기지 않으며 기존 체제의 모순과 관습에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현실은 비루하지만 정신은 그러하지 않다.<BR><BR>그것이 보헤미안의 삶이라는 건가?<BR>Viva, La vie Boheme!<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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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다'에 게재된 모든 저작물은 출처를 밝히지 않고 옮기거나 표절해선 안 됩니다.

<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퍼온글] 디스크자키 전영혁이 골라준 영화 O.S.T 베스트 20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43706</link><pubDate>Fri, 19 Jan 2007 12: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43706</guid><description><![CDATA[디스크자키 전영혁은 늘 음악을 수집한다. 그리고 수집한 음악을 매일 밤 풀어놓는다. 음악은 전파를 타고 흘러가 고픈 이들의 마음에 양식으로 쌓인다. 알고 보니 그가 모으는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는 학교가 일찍 파하는 시험기간을 기다려 하루에 3편씩 영화를 보던 학생이었고, 영화를 실컷 볼 심산으로 대학 졸업 뒤 태창영화사 수입부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lt;씨네21&gt;은 그가 꼽는 영화음악에 대해 들을 수 있겠냐고 청했다. 얼마 전 &lt;전영혁의 음악세계&gt; 방송 20주년을 맞은 그는, 기념행사며 인터뷰며 여러 가지로 분주함에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요즘 영화는 &lt;룩 앳 미&gt;와 &lt;코러스&gt; 정도뿐이네요.” “요즘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니까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옛날영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수 있을 것도 같고요. 이렇게 좋은 영화들을 못 보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해요. &lt;베로니카의 이중생활&gt;, 앙겔로풀로스 영화들, &lt;흑인 오르페&gt; 이런 건 꼭 봐야 해요. 너무 슬프고 감동적인 영화예요.” 조용히 얘기를 시작한 그는 영화음악보다 외려 영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듯도 싶었다. “그래야 책 보는 사람이 판도 사고 영화도 볼 거잖아요. 궁극적으로 영화를 봐야 해요. 판만 들으면 안 돼. 그래서 영화도 좋고 음악도 좋은 영화를 골랐어요.” 그렇게 그는 자신이 수집한 ‘음악이 좋은 영화’ 20편을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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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 class=h2>
<H2 class=h2>우아하고 감상적인 프랑스영화의 O.S.T</H2>
<H3 class=h3>삶을 풍요롭게 하는 선율</H3></H2>









&lt;베로니카의 이중생활&gt; La Double Vie De Veronique<BR>1991년/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음악 즈비그뉴 프라이즈너
아카데미 작품, 음악, 여우주연, 촬영, 각본 이렇게 5개 부문은 수상했어야 마땅한 영화다. 폴란드 감독이 만든 프랑스영화라고 상을 안 준 거다, 미국 사람들이. 우선 음악이 너무 좋고, 내가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고 생각하는 이렌느 야곱이 나왔다. 영상도 아름다웠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다. 요즘에는 이상한 영화를 다 컬트라고 하는데, 이런 영화가 진짜 컬트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주제로 철학을 담은 영화가 진짜 컬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는 나하고 똑같은 이름에 똑같은 외모에 성격이 똑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압권은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노래하다가 탁 쓰러져서 죽는 장면인데, 그때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이를 닦고 있다. 근데 갑자기 막 아파오는 거다.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슬픈 거다. 자기의 분신이 죽었으니까. 그런 착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음악 역시 너무 좋다. 슬프고 아름답고.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음악은 항상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만들었다. 그런 훌륭한 영화음악가가 있었기 때문에 영상과 음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재미난 것은 반 부덴 메이어라는 네덜란드 작곡가의 존재인데, 영화 속에 그의 음악이라며 너무 좋은 곡이 나온다. 내가 음악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어서 알아내서 음반을 모조리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하는 음대 교수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 클래식 백과사전에서 찾았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거기는 한곡만 남기고 죽은 사람들도 다 나오는데. 이 천재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반 부덴 메이어는 결국 프라이즈너 자신인 거다. 이 사람 &lt;레드&gt;에도 나온다. 잠깐 등장한 이렌느 야곱이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서 반 부덴 메이어 음반을 찾다가 나가는 장면이다. 아무튼 굉장히 고생했다. 이 사람이 천재 콤비가 지어낸 가상의 존재라는 걸 알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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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세상의 모든 아침&gt; Tous les matins du monde<BR>1991년/ 감독 알랭 코르노/ 음악 조르디 사발
알랭 코르노 연출, 제라르 드 파르디외의 호연, 조르디 사발의 음악이 삼위일체를 이룬 고전음악영화의 걸작이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모태인 악기인데, 그 연주가의 얘기다. 재밌다. 제라르 드 파르디외는 후진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연기도 잘하고, 영화 못지않게 음악도 좋다. 조르디 사발은 고음악의 일인자다. 이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을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다. 몽세라 피구에라스가 노래도 했는데, 조르디 사발의 아내다. 우리는 흔히 조르디 사발 사단이라 그런다. 아들, 딸, 뭐 다 같이 하거든. 전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다(조르디 사발의 아내, 아들, 딸이 멤버를 이룬 고음악 전문 실내악 앙상블 ‘에스페리옹21’은 지난해 3월 내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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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룩 앳 미&gt; Comme Une Image<BR>2004년/ 감독 아녜스 자우이/ 음악 필립 롱비
프랑스판 ‘삼순이’. 최근 본 영화 중에 너무 좋았던 영화다. 여주인공을 보고 처음엔 ‘너무너무 못생겼다’ 했는데 끝으로 가니 나 역시 그녀가 좋아지더라.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섬세하고 순수하고 아주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는, 그런 심리묘사가 잘돼 있다. &lt;타인의 취향&gt;의 명장 아녜스 자우이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백미는 단연 음악이다. 슈베르트의 명곡 &lt;음악에&gt;가 여러 버전으로 담겨 있는데 라스트신의 합창이 가장 감동적이다. 슈베르트가 이미 오래전에 알려준 거다. 음악은 종교 이상의 가치를 가졌고, 사람의 생명도 구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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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코러스&gt; Les Choristes<BR>2004년/ 감독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음악 브뤼노 클레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뤼노 클레가 음악을 맡아 2004년 프랑스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휴지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최고의 소년합창단으로 만들어낸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감동을 안긴다. 그러나 단순한 음악영화로 보면 안 된다. &lt;코러스&gt;는 현재 우리들의 문제- 빈부 격차, 버려지는 아이들, 추락한 교권- 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다.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화고, 촌지받는 선생님들을 다 모아서 보여줘야 하는 영화다.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데, 고아 수출국 1위다. 아이 버린 사람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 입장가! 아이와 어른 모두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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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월드뮤직의 모태가 된 O.S.T 


<H3 class=h3>그리스가 낳은 천재적 음악가들</H3>








&lt;Music For Films&gt; <BR>테오 앙겔로풀로스 영화의 영화음악 모음집/ 음악 엘레니 카리인드루
키에슬로프스키와 앙겔로풀로스, 이 두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 이 사람들 영화는 다 봤다. 지난번 씨네큐브에서 (앙겔로풀로스의) 전작 시리즈를 할 때도 가서 하루에 하나씩, 다 봤다. 상업성이라곤 없이 예술성을 추구하는 위대한 감독들이다. &lt;왕의 남자&gt; 이런 거 보는 사람들은 막 짜증낼 수도 있다. 왜 이런 영화들을 좋다고 그랬는지. 한 3차원쯤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속에 철학이 담겨 있고, 장면 하나를 딱 떼어내면 훌륭한 그림이 된다. 영상작가인 거다. 대사는 거의 시고. 최근작 &lt;흐느끼는 초원&gt;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미망인의 이야기다. &lt;태극기 휘날리며&gt;와 배경은 같다. 한국과 그리스는 비슷한 데가 많으니까. 외침도 많이 받았고,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됐고.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주인공이 아들과 남편 시신 앞에서 비명을 한마디 콱 지르면서 끝나는데 소름이 막 돋는다. 너무 감동적이고 슬퍼서. 그런 게 영화 만드는 기술인 것 같다. 한국영화 보면 배우들이 미리 다 울어버리지 않나. 그래서야 관객이 울 시간이 없다. 앙겔로풀로스에게는 엘레나 카라인드루가 있다. 그리스의 천재적인 영화음악가다. 여성의 슬프고 섬세한 음악이 영화 속의 슬픔을 극대화한다. 이 여자가 없었으면 앙겔로풀로스가 오늘날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을 거다. 음악이 반은 해준 거다. 이 앨범은 숙명의 짝인 이들 콤비의 영화음악 모음이다. &lt;안개 속의 풍경&gt;의 주제곡 &lt;아다지오&gt;를 비롯해서 &lt;비키퍼&gt; &lt;시테라 섬으로의 여행&gt; 등에서 나온 카라인드루의 곡들이 들어 있다. &lt;엘리제 포 로자&gt;는 그녀가 직접 노래한 유일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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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흑인 오르페&gt; Orfeu Do Camaval<BR>1959년/ 감독 마르셀 카뮈/ 음악 루이즈 본파,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다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프랑스 감독 마르셀 카뮈가 브라질에 가서 만든 영화다. 영화를 못 봤어도, 주제곡 &lt;카니발의 아침&gt;은 들으면 다 안다.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 스탠더드가 된 음악이다. 루이스 본파,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함께 음악을 했다. 낙천적이고, 카니발을 하고, 음악이 너무 좋은 나라 브라질을 세계에 알렸다. 보사노바, 삼바, 오늘날 워낙 유명하지 않나. 이 영화를 보고 스탄 게츠 같은 사람들이 브라질 음악을 알게 됐고, 근래 &lt;댄서의 순정&gt;까지 브라질 음악이 나오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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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희랍인 조르바&gt; Zorba The Greek<BR>1964년/ 감독 마이클 카코야니스/ 음악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음악으로 보자면 &lt;희랍인 조르바&gt;도 굉장히 히트했다. 세계의 유명 밴드들은 한번씩 다 리메이크했던 곡이니까. 명곡이 된 거다. &lt;흑인 오르페&gt;가 브라질 음악을 세계에 알렸다면, &lt;희랍인 조르바&gt;는 그리스 음악을 알렸다. 데오도라키스라는 그리스 국민음악가의 힘과 명배우 앤서니 퀸이 콤비네이션을 이뤄서 오늘날 월드뮤직 부흥의 모태를 이뤘다. 그리스라는 나라가 세계 문명의 발상지이자 철학의 나라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데오도라키스의 제자인 코스타스 파파도폴로스가 신들린 듯한 부주키(기타처럼 생긴 그리스 악기) 연주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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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페드라&gt; Phaedra<BR>1962년/ 감독 줄스 다신/ 음악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lt;흑인 오르페&gt;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렸다. 여주인공 멜리나 메르쿠리는 가수이자 배우로 그리스의 국민스타다. 남자주인공은 &lt;싸이코&gt;의 앤서니 퍼킨스가 맡았다.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의 대비,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이 좋았다. 역시 데오도라키스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lt;희랍인 조르바&gt; O.S.T와 함께 그의 양대 역작으로 불린다. &lt;페드라 사랑의 테마&gt;는 멜리나 메르쿠리가 직접 노래했다. 내용은 ‘옛날 그리스 신화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다. 비극의 끝이 곧 오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라스트신은 앤서니 퍼킨스가 자동차를 타고 자살하는 장면이다. 앤서니 퍼킨스가 카오디오를 맥시멈으로 올려놓고 바흐 음악을 들으면서 ‘굿바이 존 세바스천’ 이렇게 비명을 지른다. 차가 굴러떨어진다. O.S.T에 음악, 목소리, 차 부서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어 있다. 영화 본 사람은 당시 소름끼쳤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거고 안 본 사람은 영화가 보고 싶어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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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러브스토리로 유명해진 O.S.T 


<H3 class=h3>세상 끝의 슬픔 그리고 고독</H3>








&lt;부베의 연인&gt; La Ragazza di Bube<BR>1963년/ 감독 루이지 코멘체니 / 음악 카를로 루스티첼리
대학 다닐 때 ‘BB냐 CC냐’ 하는 말이 있었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둘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거다. 그럴 정도로 이 두 여자가 세상 뭇 남자를 사로잡았는데 나는 CC의 팬이었다. CC는 청순가련형이고 BB는 막 벗는 스타일이라 CC의 팬이 7 대 3 정도로 적었다. 나는 BB 좋아하는 애들과는 안 놀았다. 대개 불량학생들이고 공부도 못했거든.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얘기하는데, 꼭 필요한 부분에 알몸으로 나오는 건 예술이다. 금방 목욕했는데 5분 뒤에 목욕을 또 하면 그게 외설이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목욕을 자주 했다. 그래서 싫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딱 한번만 한다. 그래서 좋았다. 사춘기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청초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lt;부베의 연인&gt;은 이 청초한 여인의 순애보다. 조지 차키리스라고, 당시 유명했던 배우가 부베 역을 맡았다. 부베는 말하자면 운동권 학생이다. 계속 데모하고 반정부 투쟁하고 피해다니면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항상 외롭게 한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쁘니까 아까 말한 BB 좋아하는 애들이 들러붙어서 ‘부베는 가망없는 애다. 언젠가는 사형당할 수도 있다’면서 유혹한다. 다른 여자 같았으면 스스로 그 남자를 버렸을 텐데 그녀는 안 넘어간다. 정말 좋은 여자인 거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매번 감옥으로 면회를 가는데, 기차를 타고 부베를 만나러 갈 때 기뻐하는 그 청순가련한 표정. 그 뒤로 이탈리아 음악가 카를로 루스티첼리의 주제곡이 쫙 깔린다. 이 음악이 청초한 순애보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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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미드나잇 카우보이&gt; Midnight Cowboy<BR>1969년/ 감독 존 슐레진저/ 음악 존 배리 
지금은 죽고 없는, 존 슐레진저 감독의 명작이다. 배우 존 보이트를 세상에 알린 영화기도 하다. 영화의 압권은 더스틴 호프먼이다. 절름발이 노숙자를 연기했는데, 신들린 듯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더스틴 호프먼은 이 영화에서 연기상을 못 받았다. &lt;빠삐용&gt;에서도 상을 못 받았다. 이런 영화에서 상을 안 주고 &lt;투씨&gt; 같은 후진 영화에서 상을 주다니, 아카데미의 권위를 다시 한번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제목을 두고 ‘카우보이가 밤에 뭐 다닐 일 있냐’ 하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는데, 어떤 소외된 청년, 우리나라로 치자면 어둠의 자식, 그런 뜻이다. 도시의 어둠과 자본주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영화. 하모니카의 제왕 투스 틸레망의 연주도 들어 있고 주제곡은 해리 닐슨이 불렀다. 전체 음악 스코어는 007 시리즈의 존 배리가 담당했다. 음악도 좋고, 영화는 더 좋고. 보지 않은 사람에겐 꼭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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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파리 텍사스&gt; Paris, Texas<BR>1984년/ 감독 빔 벤더스/ 음악 라이 쿠더 
빔 벤더스는 영화감독 중에서 손꼽히는 음악광이다. 그 파트너가 또 라이 쿠더인 거고. 좋은 감독 옆에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음악감독이 있다. 그들의 앙상블이 절묘한 빛을 발한다. 빔 벤더스가 방황하는 여인 나스타샤 킨스키를 아름답게 찍어냈고, 라이 쿠더의 처절한 슬라이드 기타가 채찍처럼 발목에 감긴다. 요부 스타일로 많이 나오는데다 삼류영화에 많이 나와서 나스타샤 킨스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가 생각을 바꿔놓았다. 감독들이 장사하려고 그동안 너무 거지 같은 영화에 출연시켜서 그렇지, 이 여자가 너무 아름다운 여자구나 하고 생각했다. 주제곡과 &lt;Cancion Mixteca&gt;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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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라스베가스를 떠나며&gt; Leaving Las Vegas<BR>1995년/ 감독 마이클 피기스/ 음악 마이클 피기스
알코올 중독자와 창녀의 이야기를 너무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이 영화가 없었으면 니콜라스 케이지도 없다. 엘리자베스 슈도 그 못지않게 잘된 캐스팅이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때문에 엘리자베스 슈를 좋아하게 됐다. 나는 나만 좋아해주는 여자가 좋지 창녀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창녀가 있을 수 있나 싶더라. 재즈 뮤지션이기도 한 마이클 피기스 감독 자신이 음악까지 담당했다. 주제곡 &lt;My One &amp; Only Love&gt;를 비롯한 &lt;Angel Eyes&gt; &lt;It’s A Lonesome Old Town&gt; 같은 곡들은 스팅이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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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마니아라면 필히 들어야 할 O.S.T 


<H3 class=h3>벽을 깨부수는 저항의 외침</H3>








&lt;헤어&gt; Hair<BR>1979년/ 감독 밀로스 포먼/ 음악 맥 더모트
밀로스 포먼의 3대 명작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lt;아마데우스&gt;를 알고, 마니아들은 &lt;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gt;도 알고 있지만 &lt;헤어&gt;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헤어’는 히피들의 긴 머리를 지칭한다. 베트남전의 희생양이 된 미국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반전영화인데, 군사정권 때 수입돼 국내개봉이 금지됐다. 체코 출신 밀로스 포먼은 내가 보기에 영화감독 중에서 음악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다. &lt;아마데우스&gt;에서는 모차르트를 완벽하게 묘사했고 &lt;헤어&gt;는 사이키델릭 록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클래식부터 록을 다 꿰뚫고 있는 거다.
존 새비지가 주인공인데, 오클라호마 농부의 아들, 그러니까 촌놈이다. 별달리 할 일도 없고 취직도 안 돼서 베트남전에 지원한다. 군대 가기 전, 그가 한 무리의 히피를 만나서 놀러다니고 대마초도 피우고 하는 장면이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다. 존 새비지가 입대한 뒤 여자친구가 그를 만나러 온다. 공식적인 면회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들이 만날 수 있게 히피 친구가 존 새비지 대신 훈련소에서 잠깐 자리를 채워준다. 그런데 갑자기 베트남으로 가는 수송 비행기가 오는 거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보는 이는 손에 땀을 쥐고, 결국 친구가 어이없이 전쟁터에 끌려간다. 라스트신이 압권이다. 다른 감독 같았으면 장황하게 전쟁장면을 보여줬을 텐데, 밀로스 포먼은 한마디 설명없이 바로 무덤을 비춘다. 벌써 죽어서 묻힌 거다. 사람들이 &lt;Let the Sunshine In&gt;을 합창한다. 아무도 울지 않지만 보는 사람은 눈물이 난다. 왜 죄없는 젊은이들을 데려다 죽였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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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토미&gt; Tommy<BR>1975년/ 감독 켄 러셀/ 음악 더 후
더 후는 비틀스에 버금가는 영국 록 그룹이다. &lt;토미&gt;는 더 후가 만든 록오페라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소년 토미의 시점에서 인간 군상의 추악함을 고발한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토미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그런 추악함을 더 잘 볼 수 있다. 토미가 성장하여 산 정상에 올라 만세를 부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더 후의 리드 보컬 로저 달트리가 토미로 분했다. 감독 켄 러셀은 원래 촬영감독 출신이라 영상이 너무 멋지다. 화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연결되는데 신기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록 그룹이 직접 만든 음악이니 음악 자체는 말할 것 없이 좋다. 숨은 스타 찾는 재미도 있다. 엘튼 존, 에릭 클랩턴, 키스문 같은 유명한 카메오들이 등장한다. 에릭 클랩턴은 사이비 교주로, 엘튼 존은 핀볼 위저드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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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핑크 플로이드의 벽&gt; Pink Floyd: The Wall<BR>1982년/ 감독 앨런 파커/ 음악 핑크 플로이드
박찬욱이 타란티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앨런 파커에게 더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타란티노도 앨런 파커에게 영향을 받은 거고. 엽기적인 영화는 이 사람이 최고다. &lt;핑크 플로이드의 벽&gt;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컨셉 앨범 &lt;The Wall&gt;을 통째로 영화화한 것이다. &lt;토미&gt;와 마찬가지로 썩어가는 인간 군상을 그렸고 그것을 하나의 벽으로 생각했다. 가장 쇼킹한 장면은 학교를 소시지 공장으로 표현한 부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기계 위에서 뚝 떨어지면 소시지가 되어 나온다. 음악이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한다. 너무 슬펐다가 너무 격정적이었다가. 록 뮤지션인 주인공 핑크를 연기한 밥 겔도프는 실제로도 가수다. &lt;Dark Side of the Moon&gt;과 &lt;The Wall&gt;로 많은 이들을 그들의 음악에 빠지게 만든 핑크 플로이드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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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올모스트 훼이모스&gt; Almost Famous<BR>2000년/ 감독 카메론 크로/ 음악 Various Artists
카메론 크로 역시 음악을 좋아하는 감독이다. 음악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영화지만, 국내 개봉이 안 돼서 못 본 사람들이 많다. 비디오나 DVD로 볼 수 밖에 없는데, 대여점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워 마니아들끼리 서로 돌려보고 그랬다. 밴드 따라다니는 그루피들과 어린 록 칼럼니스트의 이야기니까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재밌을 수밖에 없는 영화다. 하루종일 음악 얘기하고 공연하고. 영화에서 그루피들이 LP판을 죽 넘기면 유명한 레코드들이 많이 지나가는데, 그런 거 보는 재미도 컸다. ‘저 판은 나도 있는 건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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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긴장을 배가시키는 O.S.T 


<H3 class=h3>신경쇠약 직전의 음악</H3>








&lt;사형대의 엘리베이터&gt; Frantic, Ascenseur Pour L’echafaud<BR>1958년/ 감독 루이 말/ 음악 마일스 데이비스
좀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루이 말’ 하면 다 안다. 프랑스영화의 교과서 격으로 생각되는 감독이니까. 이 사람 역시 음악을 굉장히 많이 알았다. &lt;사형대의 엘리베이터&gt;는 그의 대표작인데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프랑스의 훌륭한 재즈 뮤지션을 다 놔두고 파격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음악을 맡겼다. 지금이야 마일스 데이비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1958년이니 마일스 데이비스가 청년이었던 시절이고 아직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이다. 그의 재능을 알아볼 만큼 루이 말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은 남편을 살해하고 그 죽음을 자살로 가장하려 한다. 연인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만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 상황을 긴박하게 몰아간다. 남자는 애인의 남편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여주인공은 그를 찾아 밤거리를 헤맨다. 그들의 차를 훔쳐탄 또 다른 커플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잔 모로가 여주인공 역을 맡아 긴박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지금은 할머니가 됐지만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한 프랑스 배우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오싹오싹하게 느껴지는 그의 트럼펫 소리가 들려오면 보는 이는 더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기분을 맛본다. 루이 말이 노린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는 그 자체로도 훌륭해서 영화 마니아들뿐 아니라 음악 마니아들도 영화를 보게 만들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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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웨스턴&gt; C’Era Una Volta Il West<BR>1968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음악 엔니오 모리코네
세르지오 레오네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창시자다. 이 이탈리아 감독은 존 웨인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런 스타일의 서부영화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예를 들면 결투장면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미국 서부영화들은 롱숏으로 누가 먼저 쏘나 하고 한 화면에 다 담아버리는데, 레오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풀숏으로 탁 잡아, 보는 이에게 더 큰 긴장을 안긴다. &lt;웨스턴&gt;은 그의 황금기 작품. 헨리 폰다, 찰스 브론슨이 냉정한 총잡이로 출연했다. CC,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도 나온다. 무관의 제왕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영화의 백미다. 그는 레오네가 &lt;황야의 무법자&gt;를 만들 때부터 함께해왔지만 그중에서도 &lt;웨스턴&gt;의 음악이 가장 아름답다. 특히 에다라는 여성 보컬이 노래하는 &lt;Finale&gt;는 몹시 슬프고 처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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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트윈픽스&gt; Twin Peaks: Fire Walk with Me<BR>1992년/ 감독 데이비드 린치/ 음악 안젤로 바달라멘티
컬트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데이비드 린치는 두말 필요없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 중에서 &lt;엘리펀트 맨&gt;을 가장 좋아한다. 이 감독은 최근 이상한 영화만 만들고 있지만, 이미 그렇게 좋은 영화를 옛날에 만들었으니 용서할 수 있다. &lt;블루 벨벳&gt; &lt;광란의 사랑&gt; &lt;로스트 하이웨이&gt; &lt;멀홀랜드 드라이브&gt; 등의 영화에서 린치와 줄곧 함께해온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음악이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줄리 크루즈라는 여가수가 부른 &lt;Nightingale&gt; &lt;Into the Night&gt; &lt;Falling&gt;, 이 세곡은 영화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잘 맞는다. 노래도 아름답고, 창법이 독특해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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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미드나잇 익스프레스&gt; Midnight Express<BR>1978년/ 감독 앨런 파커/ 음악 조르지오 모르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앨런 파커의 대표작. 그가 아니고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다. 터키 여행 끝에 얼마 안 되는 마약을 반출하려다 종신형을 받고 터키 감옥에 갇힌 윌리엄 헤이즈의 이야기로, 지옥 같은 감옥에서의 사건과 그의 극적인 탈출이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조르지오 모르더의 신시사이저 음악이 불안을 더한다. 그의 음악은 영화 이상으로 히트해서 O.S.T도 많이 팔렸다. 판에 주제곡의 보컬 버전도 실려 있고. 지어낸 이야기라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실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고 보면 너무 충격적이다. 더 재밌고. 당시 아직 감독 데뷔 전이던 올리버 스톤이 이 영화의 각본을 써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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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출처 : 씨네21&gt;]]></description><image><url>http://image.cine21.com/resize/cine21/article/2006/0504/K0000023_focus55003[W470-].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1043706</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즐거운 지식</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40215</link><pubDate>Mon, 15 Jan 2007 00: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40215</guid><description><![CDATA[서울아트시네마에서 장 뤽 고다르 특별전을 한다는 얘기는 언젠가 들었는데
오늘이 마지막날인데다가 때마침 외출 시간이 맞어서 '즐거운 지식'을 보게 되었다.
원제는 Le Gai Savoir/Joyful Wisdom/Die froehliche Wissenschaft . 
예전에 청하판으로 나온 니체의 책을 읽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으나 사실 니체랑은 별 상관없었다-_-;;
사이트에 실린 영화소개를 옮겨보면 이렇다
&lt;에밀 루소와 파트리샤 루뭄바는 소리와 이미지의 관계, 그것들이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다. 소리와 이미지 분석은 자연스럽게 텔레비전과 영화, 언론과 정치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진다. 텔레비전에서 제작을 의뢰했으나 1968년 5월을 겪은 후 방영을 거부당한 이 영화는 &lt;중국 여인&gt;과 함께 ‘지가 베르토프 집단’ 영화의 모태가 된다.&gt; 
<BR>지가 베르토프 집단이라... 1968년 5월 혁명을 겪은 고다르가&nbsp; 당시 유력한 학생운동 지도자와 함께 
만든 영화집단의 이름이란다.&nbsp; 이 집단은 혁명 영화의 생산과 제작, 배급을 선언하며 자본에 대항하는 
급진적 영화 만들기를 모색했다 하는데, 과연 온갖 이미지(와 그 위의 문자들)와 소리가 정말 
전위적으로 난무하는 가운데 맑스-레닌, 마오, 문화혁명 등의 말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에밀 루소라는 남자와 파트리시아 루뭄바라는 여자가 계속 온갖 종류의 이미지와
소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진행된다.&nbsp; 혁명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았을 그 무렵의 시위 구호가
아무런 이미지없는 화면에서 소리만으로 울려퍼지거나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단어들을 연속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아무 소리없이 제3세계의 참상을 다룬 사진들, 마오의 초상, 또는 만화의 한 컷, 
데리다나 기 드보르의 책 표지(스펙타클의 사회) 등등이 휙휙 지나가기도 한다. 
초반에 사물과 현상 그리고 그 둘의 내적 관계로서의 이미지 어쩌구 하는 얘기가 나오다가 이미지와 
소리 간의 관계, 그 각각의 특성들, 그리고 막간의 인터뷰 등을 통해 언뜻 흥미있는 생각거리를 
던져주기도 하는데, 무분별하고 무질서해보이는 나열과 병치 속에&nbsp; 의미와 비의미의 경계는 아슬아슬하다. 
일단 영화가 워낙 정신없이 훌훌 지나가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자막 따라가기도 벅차서
막상 영상에 관심을 많이 못 쏟기도 했고...&nbsp; 확실히 느리고 완만한 성찰의 여지보다는 이미지와 음향의 
즉각적인 물질성이 영화에서는 주도적으로 나타난 듯 하다. 
정신없이 90여분을 보고 난뒤 든 첫생각은 아..&nbsp; 영화를 이렇게 찍을 수도 있구나 하는 멍한 생각 정도.
왜 근데 제목이 즐거운 지식인가? 에밀 루소라는 다소 작위적인;; 이름이 뒤로 들여오는 계몽의 뉘앙스, 
또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문화혁명의 토대(대학을 학생에게! 아니 대학을 노동자에게!), 
아님 이미지와 소리들을 모으기/그것들을 비평하기/이미지와 소리의 두어가지 모델을 설정하기
라는 순서로 이어지는 그들의 (영화)학교와 관련되기 때문일까? 
그건 그렇고 그 뒤에 다시 상업영화로 복귀한 고다르가 영화와 혁명 사이에서 생각했던 것은 뭐였을까?
기술복제시대 속에서 사진이나 영화를 혁명적 역량의 매개가 될 수 있다고 본 벤야민 같은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슷한 시대에 극장에 앉아서 똑같은 영화를 보고있는 대중들을 보고 도롱뇽 같다고
무시한 아도르노도 있었으니...&nbsp; 상식과 관습을 깨부순 이미지-소리의 극단적 실험과 자본주의(및 자본
주의적 배급망)에 대한 거부 속에서 그가 본 것은 과연 무엇일지...
뜬금없게도&nbsp; "우리는 제로(0)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등장인물의 대사, "빗자루로 쓸지 않으면 
먼지는 스스로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말은 왠지 기억에 남는다.&nbsp; <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일다에 실린 친절한 금자씨 기사</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26416</link><pubDate>Tue, 26 Dec 2006 16: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26416</guid><description><![CDATA[


<BR>금자씨가 여성관객에게 어필하는 것<BR>&nbsp;&nbsp;&nbsp;&nbsp;&nbsp;<BR>영화 &lt;친절한 금자씨&gt;<BR><BR>

 김윤은미 기자<BR> 2005-08-01 21:03:50 




&lt;기사를 보고 영화를 보면 재미가 덜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gt;<BR><BR><BR>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호기심을 사로잡더니, 개봉 후에도 수많은 평들이 쏟아지고 있는 영화 &lt;친절한 금자씨&gt;. 이 영화는 대작에 기대하기 쉬운 기승전결로 꽉 짜인 플롯을 피하고 인물들의 소개장면과 에피소드 나열로 사건을 이어나간다. 블랙코미디적인 유머와 정확한 비유를 사용해 만든 장면과 에피소드가 이 영화가 갖춘 미덕인 듯싶다. 영화는 복수를 하는 금자씨와 그녀 주위인물들의 면면을 다면체처럼 잘게 부수어서 조합함으로써 상당한 여운을 남긴다.<BR><BR>관객의 몰입 방해하며 복수 정당화<BR><BR>&lt;친절한 금자씨&gt;의 전반부는 가볍고 경쾌하다. 어린이 유괴 및 살인사건으로 감옥에서 13년을 살아온 금자씨는 출옥 후 백선생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감옥에서 알게 된 여자동료들을 찾아간다. 방북으로 유명한 임수경씨의 조언을 얻었다고도 하는데, 감옥의 여성 인물들은 상당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남편과 동반으로 은행 강도를 저지르다 감옥에 들어온 여자, 불륜을 저지른 남편과 상대 여자를 죽여서 고기를 먹어버렸다는 여자, 출옥 후 감옥에서 배운 기술을 이용해 남자의 목을 들고 있는 여자 조각을 주문 제작하는 여자도 있다. 그녀는 고운 목소리로 “여자 손님들이 좋아해”라고 말한다.<BR><BR>&lt;올드보이&gt;에 비해 &lt;친절한 금자씨&gt;는 여성관객에게 어필하는 면들을 상당히 많이 가지고 있다. 여성들이 독하게 마음을 먹고 합심해서 금자씨의 복수를 돕는다는 설정도 그러하다. 자칫 지나치게 잔인하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면면들임에도, 어이없을 정도로 진지한 나레이션과 빠른 전개, 코믹한 설정들이 영화에 깊이 몰입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BR><BR>특히 금자 역을 맡은 이영애의 하얗고 맑은 얼굴과 천사 같은 미소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심각한 장면에서 느닷없이 등장해 상당히 큰 효과를 발휘한다. 금자씨의 얼굴에서 빛이 나오도록 하는 화면 처리나, 신장을 기증하는 상황에서 자신이 들은 대로 웃으면서 욕을 지껄이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감옥에서 동료를 성적으로 착취하는, ‘마녀’라 불리는 여자에게 착한 얼굴로 밥을 먹이면서 락스를 뿌려대는 장면은 압권이다.<BR><BR>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들지만, 웃음의 말미에 씁쓸함을 집어넣는 블랙코미디를 운용하는 캐릭터. 금자씨의 캐릭터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원한 관객이라면 환영할 만한 매력적인 구석이 있다. 출옥 후 착하게 살라고 말하는 목사가 내미는 두부를 “너나 잘하세요”하며 무표정하게 엎어버리는 장면이나, 연하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후 담배를 피우는 장면 등은 관습적인 이미지들을 패러디 해 웃음을 전달하면서도 그 자체로 멋지다.<BR><BR>영화에서 복수가 진행되는 후반부는 전반부의 경쾌함에서 돌변해 심각하게 진행된다. ‘여성’과 ‘복수극’의 조합에서 특별한 화학작용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만족할 듯싶다. 여성복수극은 자칫 여성이 복수 임무를 대행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 있는데 &lt;친절한 금자씨&gt;는 그렇지 않다.<BR><BR>복수의 대상 백선생의 캐릭터는 일반적인 ‘마초 아저씨’다. 어렵게 자신을 찾아온 금자씨에게 백선생은 목욕한 후 가슴 털을 그대로 드러낸 채 문을 열어준다. 그는 밥을 먹다가 식탁에 부인을 눕히고 섹스를 한 후 다시 밥을 먹는 동물적인 인간이자,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모든 인간은 완벽하지 않아요”하고 서슴없이 변명할 줄 아는 인간이다. 위악적이다 싶을 정도로 선명한 백선생의 면모는, 여성의 경험에서 종합되는 남성의 불쾌한 면모들이 조합된 듯하다.<BR><BR>복수의 윤리보단 현실의 부조리 드러내<BR><BR>‘복수 3부작’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표명, 영화 곳곳에서 ‘속죄’를 외치는 이영애의 대사 등으로 인해 복수의 윤리학 등 철학적인 수준에서 영화를 읽어내려는 시도들이 많다. 하지만 이 영화가 플롯 상에서 던지는 속죄에 대한 고민은 그다지 깊지 않다. 우선 금자씨는 매우 손쉽게 자신의 복수를 달성한다. ‘악인’ 백선생은 관객들에게 윤리적 고민을 던져주기에는 고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악하다. 금자씨의 정의감이나 백선생의 악함은 관객에게 고뇌를 던져주기보다는 순간적인 충격을 전달하는 장치에 가깝다.<BR><BR>백선생을 처벌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lt;오리엔탈 특급 살인사건&gt;을 떠올릴 수 있다. 소설에서는 어린애를 유괴해서 돈을 뜯고 다녔던 악인 카세티를, 피해자의 부모와 친지들이 공동으로 살해한다. 카세티는 악인인 데다가 경찰에 넘겨도 처벌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카세티에게 복수한 이들은 교양 있고 선량한 시민들이자 버젓하게 사회적 위치를 갖춘 인물들이다. 이들의 복수는 소설 속에서 정당한 것으로 인정된다.<BR><BR>&lt;친절한 금자씨&gt;에서의 복수는 그보다 한 발 더 나아간 수위에서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 백선생을 경찰에 넘길 수도 있었지만 이들은 법에 대한 환멸과 증오심 때문에 자신들이 직접 처리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이들의 복수는 정의감보다는 삶의 부조리함이 느껴지는 페이소스를 풍긴다. 억지로 돈을 벌어서 자식을 백선생의 영어학원에 보냈다며 한 여자가 억울함을 호소하자, 또 다른 여자가 조용하게 “그런 사연 없는 부모가 어디 있나”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그 예다.<BR><BR>감옥 속 여성 캐릭터들처럼, 사람들의 삶에서 관찰되는 현실의 부조리한 측면들이 이 복수의 면면에도 붙어있다. 그래서 복수가 끝나고 나서도 사람들의 표정은 그다지 후련하지 않다. 이들이 생각해 낸 것은 백선생의 돈을 빨리 나누어달라고 계좌를 적어주는 것인데, 그 순간 천사가 지나가는 듯 엄숙한 침묵이 흐른다. 마치 악에 대한 복수, 자식에 대한 사랑 같은 숭고함과, 복수에 대한 책임 회피 같은 비루함이 삶 속에 공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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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퍼온글] [레디앙]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공산당도 외면한 낭만적 마르크스주의자</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1020976</link><pubDate>Mon, 18 Dec 2006 1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1020976</guid><description><![CDATA[&nbsp;




공산당도 외면한 낭만적 마르크스주의자 

[세계의 사회주의자-23]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88년 제60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영화 &lt;마지막 황제&gt;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lt;마지막 황제&gt;는 이탈리아인인 그가 활동무대를 할리우드로 옮기고 영어로 제작한 첫 번째 영화였다. 그리고 그는 엘리아 카잔 이후 30여년 만에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마르크스주의자 영화감독이었다. <BR><BR>1941년에 태어난 베르톨루치는 유명한 시인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15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20대를 시작할 무렵에는 이미 작가로 이름을 알려졌다. 또한 아버지를 통해 파올로 파졸리니를 알게 됐고 1961년에는 파졸리니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듬해에는 자신이 감독한 첫 작품 &lt;냉혹한 사신&gt;을 발표하면서 영화작가의 인생을 시작했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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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각인 시킨 작품은 두 번째로 제작한 &lt;혁명전야&gt;였다. 1964년에 공개된 이 작품을 통해 베르톨루치는 자신이 낭만적인 마르크스주의자임을 공표했다. 
동시에 소부르주아 계급 출신이라는 신분과 사상의 불일치에서 오는 불안감을 노출했다. 이는 이후 오랫동안 그의 영화에서 반복된 주제이기도 하다. <BR><BR>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영화작가의 계보 <BR><BR>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혁명의 열정으로 충만했던 1968년에 이탈리아공산당PCI에 입당했다. 앞서 이야기한 파졸리니 뿐만 아니라 루키오 비스콘티처럼 ‘네오리알리스모’로 대변되는 이탈리아 영화계는 좌익의 영향이 강한 영역이었다. 그러나 베르톨루치는 이탈리아의 선배들만큼이나 이웃 프랑스의 좌익 영화작가 장 뤽 고다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영화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고다르처럼 당시 급진적인 청년들을 사로잡던 마오주의를 수용했다. <BR><BR>공산당에 입당한 베르톨루치는 정치적인 영화를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영화와 정치를 직접 결합시키기 위해 고민했다. 1971년 베르톨루치는 공산당계 노총인 이탈리아노동자총연합CGIL에 소속된 보건 노동자들의 도움을 받아 16밀리 흑백 카메라를 숨긴 채 로마의 공공병원에 잠입했다. 
기독교민주당 시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의료시설의 열악한 환경과 의료실태를 몰래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30분 만에 들통이나 병원에서 쫓겨났지만 이 30분짜리 필름으로 베르톨루치는 &lt;가난한 사람은 빨리 죽는다&gt;는 미니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그해 로마 시의회 선거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선거운동 중 공산당원들은 거리에서 즉석으로 영화를 상영했다. 이 영화는 그의 공식 작품목록에 기재되지 않았다. <BR><BR>이 시기에 제작된 두 편의 영화 &lt;거미의 전략&gt;과 &lt;순응주의자&gt;는 파시즘의 문제를 정면에서 다루었다. 각각 1970년과 1971년에 제작된 이 두 영화는 편집을 비롯해 영화 전반에 걸쳐 68년 혁명의 들뜬 분위기가 물씬 배어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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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 영화 &lt;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gt;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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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공개된 영화가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면서 동시에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lt;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gt;였다. 말론 브란도라는 대배우의 출연과 함께 적나라한 성적묘사는 이탈리아 국내뿐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상영허가여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게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스크린에 걸린 나라들에서도 대부분 검열당국의 가위질을 피할 수 없었다. <BR><BR>심지어 본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상영은 고사하고 검열당국이 존재하는 모든 필름사본을 폐기할 것을 명령했다. 또한 법원은 베르톨루치의 공민권을 5년간 정지시키고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상영금지조치는 1986년까지 지속됐다. 이탈리아는 1970년에 이르러서야 이혼이 합법화될 만큼 가톨릭의 사회적 영향이 강한 나라다. <BR><BR>이때의 경험을 놓고 베르톨루치는 “나는 어떠한 형태의 검열에도 반대한다. 이는 내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주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lt;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gt;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할리우드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출과 작품을 지지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도덕이라는 이름의 검열과 싸워야 했던 그에게 이번에는 자본과 정치라는 다른 이름의 검열이 기다리고 있었다. <BR><BR>검열에 맞선 오래된 투쟁 <BR><BR>&lt;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gt;에 이어 1976년 공개된 &lt;1900년&gt;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작이었다. 일단 영화의 시공간은 1900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 북부가 파시스트들에게서 해방되는 1945년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이후의 이야기를 생략한 채 영화의 두 주인공이 노인이 되어 죽는 현재(70년대 후반)까지 이어진다. <BR><BR>이탈리아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하드라마인 만큼 등장인물의 수도 엄청났다. 배역도 로버트 드니로, 제라르 드빠르디유, 버트 랭카스터, 도널드 서덜랜드 등 미국과 유럽의 쟁쟁한 스타들로 채워졌다. <BR><BR>이 장대한 이야기의 촬영을 마치고 베르톨루치가 편집한 필름은 상영시간이 5시간 18분이었다. 도저히 극장에서 상영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제작자는 임의로 3시간짜리 편집본을 제작했다. 제작자에 의해 영화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베르톨루치는 4시간 50분짜리 편집본을 만들어 대항했다. 
결국 법원의 중재로 4시간 15분짜리 편집본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국배급을 맡은 파라마운트가 4시간 15분도 너무 길다며 배급포기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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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영화 &lt;1900년&gt;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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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깐느에서 공개되고 호평을 받자 미국 내에서도 개봉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우여곡절 끝에 파라마운트는 영화를 배급했지만 홍보를 거의 하지 않는 등 의도적으로 흥행실패를 유도했다. 평론가들은 “파라마운트가 &lt;1900년&gt;의 미국 개봉을 막기 위해 개봉했다”고 분석했다. 베르톨루치는 90년대 들어 5시간짜리 감독 편집판을 복원했다. <BR><BR>&lt;1900년&gt;의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같은 날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알프레도와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난 올모, 두 친구를 통해 이탈리아 현대사를 되돌아보는 시도였다. 
올모는 공산주의자로 반파시스트 빨치산이 되고, 알프레도는 신분과 상황에 밀려 파시즘을 돕게 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는 농장 관리인 출신이며 자발적인 파시스트인 아틸라가 있다. 마치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연상시키는 이야기 구조다. <BR><BR>베르톨루치는 이 영화를 이탈리아 공산당에 바쳤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1945년까지 파시스트에 의해 점령돼 있던 이탈리아 북부가 해방되던 날 산에서 내려온 빨치산들이 파시스트의 앞잡이들을 체포해 인민재판을 여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그것도 다름 아닌 공산당에 의해서 말이다. <BR><BR>공산당은 1945년 당시 당은 인민재판을 지시한 적이 없으며 또한 실제로 재판이 일어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공산당은 반파시즘 투쟁을 통해 지배계급을 전복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며 영화를 부정했다. 공산당 계열의 출판물들은 무시에 가까울 정도로 영화에 대해 침묵했다. <BR><BR>70년대 후반 이탈리아공산당은 독자적인 집권노력을 포기하고 기민당과의 대연정을 성사시킨다는 이른바 ‘역사적 타협’을 추진하고 있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선거에서 공산당이 다수파가 되지 못하는 현실과 설사 성공한다하더라도 칠레처럼 쿠데타가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에서 나온 노선전환이었다. 그런 사정 속에서 부르주아의 심기를 건드리는 영화가 달갑지 않았던 것이다. 공산당 우파의 지도자였던 조르지오 아멘돌라는 공개적으로 &lt;1900년&gt;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BR><BR>이에 대해 베르톨루치는 “당신들은 1945년에 지배계급을 심판할 힘도 없었고, 30년이 지난 지금에는 영화 속에서 처단 장면을 보는 것조차 두려워한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됐는지 그는 1978년 무렵 탈당했다. 베르톨루치는 후에 공산당뿐만 아니라 부패와 냉소주의가 만연한 이탈리아 자체를 참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BR><BR>과거를 부정하는 공산당에 실망 <BR><BR>&lt;1900년&gt;으로부터 10년 뒤 베르톨루치는 중국으로 날아갔다. 중국 당국이 할리우드 자본에 자금성 촬영을 허용한 것은 그의 마오주의 배경과 인맥 덕분이라는 이야기가 나도는 가운데 &lt;마지막 황제&gt;는 &lt;1900년&gt;보다 더 큰 규모로 제작됐다. 당시에는 영화 속에서 묘사된 중국혁명, 문화혁명 등을 통해 여전히 베르톨루치가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미 그의 시선은 동양적 신비주의에 경도되고 있었다. <BR><BR>&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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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제&gt;이후 그의 영화 경력은 종종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비판을 들을 정도였다. 티벳불교를 다룬 &lt;리틀 부다&gt;에 이르러서는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버리고 불교에 귀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확실히 그의 시선이 60~70년대의 영화들과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영화 외의 부분에서도 드러났다. 지난 2004년 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영화에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지 않는다. 그건 우체국의 역할이다”고 밝혔다. <BR><BR>90년대 후반,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베르톨루치는 두가지 계획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1945년으로 이야기가 끝난 &lt;1900년&gt;의 후속편을 찍고 싶다는 것과 그에 앞서 68년을 다룬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은 68년의 아이들이야말로 자신들의 부모 세대임에도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우리가 어떤 희망을 품고 있었는지 너무 모른다. 요즘 아이들과 함께 영화를 통해 이상과 반항의 68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자주 내비쳤다. <BR><BR>아마도 지난 2003년 개봉한 &lt;몽상가들&gt;이 바로 ‘68년으로 돌아가기’에 해당하는 작품이었을 것이다. &lt;몽상가들&gt;을 완성하고 나서 그는 60년대를 이렇게 회상했다. “젊은 우리들은 그 시절 미래에 대해 확신했고 희망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우리는 세상을 꿈꾸고 또 바꿀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빠진 것이 이런 상상력이다.” <BR><BR>이 영화를 통해 베르톨루치는 오랜 우회 끝에 &lt;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gt;에서 다룬 주제와 장소(파리)로 돌아왔다. 이제 그에게 남은 다른 반쪽의 계획은 1945년 이후 이탈리아의 현대사, 특히 60년대 격동하는 이탈리아에 관한 영화다. 그리고 그 영화는 무엇보다도, 감독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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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11일 (월) 13:27:08

장석원 객원기자  badiera@redi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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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날짜와기자이름바끝//-->]]></description><image><url>http://www.redian.org/news/photo/200612/4237_3888_1336.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1020976</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lt;예고&gt;파업전야</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92630</link><pubDate>Sat, 04 Nov 2006 23: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92630</guid><description><![CDATA[최루탄과 싸우며 보던 '파업전야', KBS에서 '상영'
<!--기사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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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독립영화의 전설과도 같은 영화, 한국 최초의 노동영화,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팔뚝질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조각의 기억 정도는 가지고 있는 영화 &lt;파업전야&gt;가 마침내 지상파 방송에서 상영된다.<BR><BR>






△90년 당시 '파업전야' 상영안내 포스터. '사랑, 분노, 희망과 단결' ⓒ출처불명KBS1TV의 독립영화 소개 프로그램인 &lt; KBS 독립영화관&gt;이 11월 10일 자정을 넘긴 새벽 1시 &lt;파업전야&gt;를 방송하기로 한 것. &lt;독립영화관&gt;은 11월 3일과 10일 ‘한국독립영화의 전설’을 특별히 기획했다.<BR><BR>3일에는 ‘독립영화 1세대 감독’이라 할 수 있는 이익태, 한옥희, 이정국 감독의 70~80년대 독립영화 &lt;아침과 저녁 사이&gt;, &lt;색동&gt;, &lt;백일몽&gt;을 연 이어 ‘상영’한다. 특히 이익태 감독의 &lt;아침과 저녁 사이&gt;는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날 방송에서는 이익태, 한옥희 두 명의 감독이 직접 출연해 영화를 만들 당시의 이야기도 함께 들려줄 예정.<BR><BR>그리고 바로 10일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가 제작한 &lt;파업전야&gt;가 ‘상영’된다.<BR><BR>1989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해 90년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영된 &lt;파업전야&gt;는 영화를 틀고, 보는 과정 자체가 투쟁의 연속이었다. 당시 장산곶매의 대표로 &lt;파업전야&gt; 제작을 담당한 이용배 감독(현 계원조형예술대학 교수)이 기억하는 당시 ‘파업전야 상영 투쟁’의 과정을 통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잠시 살펴보자.(‘컬쳐뉴스’ 2004년 9월호 ‘파업전야 생생기’ 인용)<BR><BR>














90년 4월 7일 혜화동 ‘예술극장 한마당’.<BR><BR>“형, 지금… 놈들이 쳐들어와서… 다 가져가… 영사기랑… (필름)릴까지…”<BR><BR>경찰 병력이 밀고 들어와 상영 중이던 &lt;파업전야&gt;에 대한 압수수색을 집행한 순간이다. 시나리오를 담당했던 ‘장산곶매’ 회원 한 명은 한쪽 구석에서 벽에 머리를 박으며 ‘꺼이꺼이’ 통곡하고 만다. 자리를 지킨 관객들은 어깨를 걸고 ‘철의 노동자’를 외쳐 부른다.<BR><BR>90년 4월 8, 9일(?) 연세대.<BR><BR>“내용이 파업을 선동하고 있으며, 노동쟁의 조정법상 제 3자 개입금지에 해당된다”는 당국의 엄포와 봉쇄에도 불구하고 &lt;파업전야&gt;를 보려는, 아니 지켜내려는 관객들의 줄은 정문에서 대강당까지 이어진다. 대학영화연합이 중심이 되어 짜였던 학생 사수대들은 입장 관객들의 학생증 등을 일일이 검사해서 입장시킨다. 강당 안 역시 우리의 전재산이기도 한 16mm 영사기와 필름이 있는 공간을 빙 둘러서 마스크 쓰고 쇠파이프 든 학생들이 지킨다. 비장감마저 흐르는 열기가 가득하다. 상영 도중에 경찰들이 학교 안으로 진입을 해 극장 안에 불이 켜진다. 상영 책임자들이 황급히 학생 사수대들의 보호를 받으며 영사기와 필름을 챙겨 연세대 뒷산으로 빠져나간다.<BR><BR>






△90년 당시 '파업전야'가 상영되던 대학가의 안내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사료관<BR><BR>90년 4월 13일 전남대.<BR><BR>다연발 페퍼포그가 쏟아낸 최루가스 구름을 헤집고 천 여명의 전경(경찰 추산 1, 300여 명)이 쏟아져 들어온다. 순간 하늘에서는 요란한 소리의 헬기 한 대가 해산할 것을 알리며 선회한다. 직격 최루탄은 결국 사수대를 맡던 한 학생의 턱 뼈를 가격하고 만다. <BR><BR>이용배 감독의 기억처럼 당시 &lt;파업전야&gt;는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순회상영투쟁’을 벌였고, 상영장소가 된 대학들은 어김없이 경찰의 침탈을 당해야 했다. 그런 과정에서도 &lt;파업전야&gt;를 본 인원이 30만명을 넘었다. 당시만 해도 30만명이란 숫자는 일반 상업영화의 경우에도 흥행에 성공했다고 평할 수 있는 수준.<BR><BR>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은 &lt;파업전야&gt;를 ‘세계노동절 101주년 기념영화’로 선정했고, 각 사업장의 노동자들과 대학생들 사이에는 &lt;파업전야&gt;를 보는 게 하나의 관행처럼 자리 잡게 된다.<BR><BR>한편, KBS에서 이미 16년 전에 &lt;파업전야&gt;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이번 &lt;독립영화관&gt;에서처럼 공중파를 타고 TV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당시 ‘방송민주화 투쟁’을 하던 KBS 노동조합에서 &lt;파업전야&gt;를 상영했고 어김없이 경찰이 쳐들어갔다. 하지만 어느새 세월이 흘러 &lt;파업전야&gt;가 KBS의 전파를 타고 전국의 TV에서 방송되게 된 것이다.<BR><BR>






△'파업전야'의 마지막 한 장면. ⓒ장산곶매&lt;파업전야&gt;는 독립영화에 있어 ‘사실주의’ 기법을 도입한 획기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위장폐업 중이던 부평공단의 한 공장이 제작현장이 되었고 현장 노동자들이 직접 출연했다. 열악한 조건의 노동현장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이 사실적으로 그려졌으며, 특히 파업 조짐이 발각되어 구사대에 의해 주변 동료들이 끌려가는 것을 본 노동자들이 스패너를 들고 기계를 멈추고 마침내 ‘궐기’에 나섬과 동시에 안치환이 부르는 ‘철의 노동자’가 흘러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노동자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BR><BR>






△'파업전야'의 마지막 한 장면. 작업도구를 든 노동자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장산곶매물론 지금의 시각에서 보자면 단순한 이야기 구조가 ‘촌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당시 시대상황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할 것. 아울러 세월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한국 사회의 노동현장이 당시와 비교해 근본적으로 얼마나 바뀌었는지도 &lt;파업전야&gt;를 보면서 한 번 되새겨 볼 부분.<BR><BR>비정규직 노동자는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고, ‘노동조건 개선’, ‘주5일 근무’를 주장하며 투쟁하던 노동자가 경찰의 폭력 의해 사망하는가 하면, KTX 승무원들은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00일 넘게 싸우고 있는 중이다. 이들이 처지가 &lt;파업전야&gt;의 노동자들과 어떻게 다른지 영화를 보면서 곰곰이 생각해본다면 더욱 의미있는 영화 감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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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형 기자<BR><BR><BR>※진보언론 최초의 1인 미디어 '민중의소리 블로그' blog.voiceofpeople.org<BR>'현장의 감동 살아있는 뉴스' ⓒ민중의소리 www.vop.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description><image><url>http://photo-media.hanmail.net/200611/02/vop/20061102161013.069.0.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992630</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귀향-페드로 알모도바르</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87349</link><pubDate>Mon, 30 Oct 2006 02: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87349</guid><description><![CDATA[
P {MARGIN-TOP: 2px; MARGIN-BOTTOM: 2px}











귀향


페드로 알모도바르


페넬로페 크루즈, 카르멘 마우라, 롤라 두에냐스, 블랑카 포르티요, 요아나 코보, 츄스 람프레아베


120분





스페인어


2006-09-21


http://cafe.naver.com/spongehouse.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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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그 순간, 잃어버린 어머니가 찾아왔다

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라이문다는 한없이 거칠고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일상을 살아간다. 그녀는 기둥서방과 다름없는 남편과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둔 실질적 가장으로 모든 현실이 짐스럽기만 하지만, 뭐든지 해내는 억척스런 생활력으로 가정을 이끌어 가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그녀의 딸 파울라가 성추행 하려는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BR><BR>그날 밤, 라이문다의 동생 쏠레에게도 비밀스런 사건이 시작된다. 열정적이고 거친 라이문다와는 다소 다른 소심하고 조용한 성격의 쏠레는 고향인 라 만차에 다녀오는 길에 엄마의 유령을 만나게 된다. 쏠레는 불법 미용실을 운영하며, 미용실 손님과 바람난 남편에게 버림받은 후 홀로 살고 있었다. 그녀는 엄마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라이문다에게 숨긴 채, 미용실 손님들에게 엄마를 러시아 노숙자라고 소개한다. 엄마는 미용실 손님들과 차츰 어울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쏠레의 현실에 적응해가지만, 정작 가장 만나고 싶었던 라이문다에게는 나타나지 못한 채 그녀를 바라보기만 하는데..<BR>

[Character] &lt;귀향&gt;속 다섯 명의 ‘그녀’들… 

라이문다 _ 거칠고 억척스런 겉모습, 하지만 마음속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여인’<BR>마드리드에 살고 있는 억척 엄마 라이문다. 요리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소리도 잘 지른다. 아직 한참이나 뒷바라지 해야 하는 사춘기 딸 파울라와 게으르고 무책임한 ‘인간쓰레기’같은 남편을 부양한다. 버럭버럭 화도 잘 내고 억새 보이지만, 딸 파울라를 위해서는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드는 강인한 모성애를 가진 여자. 마음 한 켠엔 엄마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을 동시에 묻고 산다.<BR><BR>이렌느 _ 귀엽고 사랑스런 ‘우리 모두의 엄마’ <BR>유령의 모습으로 돌아온 엄마. 사랑스럽고 다정한 그녀와 대화 하다 보면, 어느새 그녀가 유령이기 때문에 가졌던 두려움 따윈 잊게 된다. 딸들의 밑반찬을 몰래 챙겨주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텔레비전을 보는 그녀의 행동은 항상 옆에 있어왔던 것처럼 너무나 익숙해서 더 아련하게 느껴진다. 라이문다에 대한 죄책감으로 평생을 가슴 아프게 살아왔던 엄마. 이제 라이문다에게 용서를 빌고 그 동안 말 할 수 없었던 비밀을 털어 놓으려 하는데….<BR><BR>쏠레 _ 수다스럽고 엉뚱하며 ‘정 많~은 그녀’<BR>라이문다의 동생. 동네 ‘야매 미용실’을 운영하며 혼자 살고 있다. 비록 야매 미용실이지만 일에 있어선 프로페셔널. 미용보조로 일하게 된 엄마에게 타올 쓰는 법부터 샤워기 두는 위치까지 챙겨주는 세심함을 보인다. 걸핏하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억척스런 라이문다와는 달리 감수성이 풍부하고 동정심이 강하다. 그녀는 엄마가 돌아와 요즘 너무나 행복하다. 단지 라이문다가 자신을 미쳤다고 생각할까 조바심이 날 뿐…. <BR><BR>아구스티나 _ 라 만차의 ‘비밀을 간직한 그녀’ <BR>라이문다와 쏠레가 자라난 동네 라 만차에서 평생을 사는 ‘진정한 라 만차인’.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 라이문다의 고모 파울라를 가족처럼 돌보았다. 오래 전 동네에 큰 불이 나던 날, 어머니를 잃었으며, 그 불로 인해 라이문다 부모님 역시 돌아가셨다. 동네에 떠도는 라이문다의 엄마유령에 관한 소문을 쏠레에게 맨 먼저 전했다. 그녀는 죽기 전에 엄마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간절히 듣고 싶어한다. <BR><BR>파울라 _ 저도 이제 어른이거든요?! 누구보다 ‘속 깊은 딸내미’ <BR>라이문다의 어린 딸 파울라. 늘 전화기를 끼고 살아 엄마한테 꾸중을 듣는다. 멋모르고 철없어 보이지만 눈치 빠르고 속도 깊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할뻔한 위기의 순간에서 아버지를 칼로 찔러 죽인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엔 너무나 큰 일을 저지른 그녀지만 파울라 역시 라이문다처럼 씩씩한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고 엄마와 할머니와 이모를 사랑하고 사랑 받으면서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BR>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Oacute;VAR 

1951년 9월 25일생. 라 만차의 중심부인 시우다드레알지방의 칼자다 드 칼라트라바에서 태어났으며, 여덟 살에 가족들과 함께 에르뜨레마두라로 이주, 그곳에서 살레시안 신부들과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들이 가르치는 학교를 다녔다. 16살에 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에 무일푼으로 마드리드로 온다. 그러나 프랑코 정권 하에 영화 학교는 폐쇄되었고, 때문에 학교에서 형식을 배울 수 없었던 그는 대신 내용을 채워넣기로 했다. 그 내용이란 곧 ‘삶’ 자체였다. 당시 나라를 옭아매던 독재에도 불구, 시골 출신의 이 청년에게 있어 마드리드란 문화와 독립과 자유의 상징이었다. 여러 가지 잡일을 하다가 스페인 전화국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게 되자 수퍼 8미리 카메라를 샀다. 그 후 전화국에서 사무 보조로 12년 동안 일을 했고 그 12년 동안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를 완성시켜줄 다양한 활동에 매진했다. 아침에는 전화국에서 스페인 중산층의 소문과 스캔들 등 미래의 이야기꾼에게 있어서는 금광과도 같은 소중한 지식을 얻었고 저녁이면 글을 쓰고 연애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신화가 된 독립 단체인 Los Goliardos와 함께 연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수퍼 8미리 비디오 카메라로 영화를 만들었고, 단편을 기고하는 등 다양한 소규모 잡지들과 협력하기도 했으며 그 단편들 중 일부는 출판이 되기도 했다. 한편 그는 ‘Alm&oacute;dovar and McNamara’ 라는 풍자적인 펑크 락 그룹의 멤버이기도 했다.<BR><BR>1980년에 일년 반 동안 16미리로 힘들게 작업한 &lt;산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많은 여자들&gt;(80)이라는 영화를 개봉했고, 이 첫 번째 상업영화는 성공적이었으며 우연히도 스페인의 민주주의와 그 시작을 함께 했다. 배우와 스탭들의 협조로 만들어진 전위 영화였던 이 영화에서 카르멘 마우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처음 영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1986년, 동생 아구스틴과 함께 그는 El Deseo S.A 라는 제작사를 차렸고 그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lt;욕망의 법칙&gt;(86)이었다. <BR><BR>1988년 그는 &lt;신경 쇠약 직전의 여자&gt;(87)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의 영화들은 전 세계에 개봉되었다. 1999년에는 그에게 다시 한번 화려한 명성을 안겨준 작품 &lt;내 어머니의 모든 것&gt;(99)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과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칸 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고, 세자르, 유러피안 필름 어워드, 다비드 디 도나텔로, BAFTA, 고야 어워드를 휩쓸며 45개상 수상을 기록했다. 3년 뒤, &lt;그녀에게&gt;(01)로 돌아온 그에게 또다시 아카데미 각본상, 유러피안 필름 어워드에서 5관왕, BAFTA에서 2관왕, 세자르 영화제를 비롯 유수의 영화제에서 열띤 찬사와 수상의 영광이 이어졌다. 2004년에는 &lt;나쁜 교육&gt;이 칸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며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경이적인 흥행을 기록하였다. <BR><BR><BR><BR>필모그래피 <BR>&lt;산 정상의 페피, 루시, 봄 그리고 다른 많은 여자들&gt;(80) &lt;열정의 미로&gt;(82)<BR>&lt;어둠 속에서&gt;(83) &lt;내가 뭘 잘못 했길래&gt;(84) &lt;욕망의 법칙&gt;, &lt;마타도르&gt;(86)<BR>&lt;신경쇠약 직전의 여자&gt;(87) *토론토 영화제 관객상, 베니스 영화제 각본상 수상<BR>&lt;나를 묶어줘&gt;(89) &lt;하이힐&gt;(91)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노미네이트<BR>&lt;키카&gt;(93) &lt;내 비밀의 꽃&gt;(95) &lt;라이브 플래시&gt;(97)<BR>&lt;내 어머니의 모든 것&gt;(99) *칸 영화제 감독상,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수상 &lt;그녀에게&gt;(01)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BR>&lt;나쁜 교육&gt;(04) *칸 영화제 개막작 &lt;귀향&gt;(06)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 각본상 수상<BR><BR><BR><BR><BR>

[Introduction]

가슴을 울리는 위대한 모성!!<BR>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BR>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바치는 헌사<BR><BR><BR>욕망에 희생된 어긋난 사랑, 지독하고도 강렬한 옴므파탈 느와르였던 &lt;나쁜 교육&gt;에 이어 코믹하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섬세하고 감동적인 여성의 이야기로, 어머니의 이야기로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돌아왔다. 거칠고 질퍽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죽은 엄마의 유령이 찾아온다는 판타지적 요소가 매력적으로 살아나는 아름다운 영화 &lt;귀향&gt;은 알모도바르 감독과 페넬로페 크루즈, 카르멘 마우라와의 재회만으로도 많은 화제를 모았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억척스런 엄마 역의 페넬로페 크루즈의 생생한 연기는 이제 명실공히 그녀를 스페인 최고의 여배우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BR>칸 영화제에서 평단의 극찬과 가장 높은 데일리 점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었던 &lt;귀향&gt;은 여우주연상과 각본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프랑스에서 200만 명 이상의 관객동원을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BR>홀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강인한 생명력, 그들끼리의 따뜻한 우정과 연대감, 무엇보다 자식으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고 자식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심지어 유령이 되어서까지 딸에게 나타나는 어머니의 감동적인 사랑이 알모도바르의 기상천외한 유머와 판타지 속에 녹아 들어 이 가을,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준비를 하고 있다. <BR><BR><BR>

열정과 관능, 유머와 감동이 넘치는 알모도바르식 팜므 판타지

&lt;귀향&gt;의 대본을 읽으면서 소설 &lt;페드로 파라모 (Pedro P&aacute;ramo)&gt;가 떠올랐습니다. 룰포(Rulfo)의 소설과 페드로의 대본은 죽은 자와 산 자, 현실과 비현실, 환상과 일상, 경험과 경험하지 못한 것, 잠듦과 깨어있음의 공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다는 점 외에는 전혀 상관이 없지만요. 룰포의 소설과 &lt;귀향&gt;의 대본을 읽을 때면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물론 깨어있지만 그 두 손에 들고 있는 것만으로도 꿈에 사로 잡힙니다. 룰포의 소설은 굉장히 ‘멕시코’적이고 페드로의 각본은 매우 ‘만차’스럽다는 것도 독특한 공통점이랄 수 있겠죠.<BR>-후안 호세 미야스 (Juan Jos&eacute; Mill&aacute;s)<BR><BR>&lt;귀향&gt;은 알모도바르 감독의 장기를 살린 드라마틱한 코미디다. 이야기는 거칠고 절망적일정도로 “현실”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관습적이지 않다. 가장 지독한 현실의 이면에 초현실적인 마법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알모도바르 감독이 만들어낸 이 아름다운 판타지는 절망의 끝에서 딸을 찾아온 어머니의 유령이라는 소재로 더욱 치밀하고 완벽하게 관객을 사로잡는다. 알모도바르 감독은 장르의 교합을 즐기는 감독으로 이 영화 역시 교묘한 마술과 생생한 현실의 지속적인 내러티브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누구도 알모도바르 감독이 쳐놓은 그 교묘함을 절대 간파할 수 없을 것. 그는 줄타기 곡예사와 같이 생사를 넘나들고 내러티브적인 요소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자연스럽게 융합함으로써 환상적이고 뛰어난 각본이라는 찬사와 함께 칸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BR><BR>유령이 찾아온다는 판타지적인 요소는 코믹함을 부각시키는 데도 일조한다. 쏠레가 라이문다 몰래 엄마의 유령을 숨기고, 미용실 고객들과 유령이 아무렇지도 않게 어울리는 장면은 스릴까지 선사하며 웃음을 자아낸다. 또한 남편의 죽음, 그것도 딸에 의한 살인이라는 지독히 절망적이고 끔찍한 사건 다음에 보여지는 시체를 처리하려 고군 분투 하는 라이문다의 모습 또한 코믹한 상황을 연출한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의 유령이 왜 라이문다 앞에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며, 딸의 미래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엄마의 무섭고도 강인한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뒤흔든다. 웃음은 웃음으로 끝나지 않고, 판타지는 단지 판타지만이 아니다. 코미디와 여성, 열정과 감동이라는 알모도바르의 모든 장기가 어우러진 &lt;귀향&gt;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BR><BR><BR><BR>“장르를 혼합 한다는 것은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건 위험한 시도일 수도 있다. 장르 사이를 오가거나, 바로 이야기의 톤을 바꿀 때 해야 할 일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그럴싸하게 연출해 자연스러운 스타일로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묘한 작업에서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은 배우들이다. 이 영화에선 특히 여배우들이 많은 도움을 줬다.” <BR>-페드로 알모도바르 <BR><BR><BR><BR>

어머니에게서 딸로, 다시 딸에게로 전해지는 여자들만의 비밀 이야기

<BR>“&lt;귀향&gt;은 가족에 관한 영화이고 나의 가족과 함께 한 영화이다. 나의 가족은 쏠레와 라이문다처럼 성공을 위해 촌에서 도시로 왔다. 내 여동생은 다행히도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머니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집에서 나와 도시인이 되었다. 라 만차의 관습과 문화로 돌아 갔을 때 그러한 경험이 나의 가이드가 되어주었다.”<BR>-페드로 알모도바르<BR><BR><BR><BR>&lt;귀향&gt;의 가족은 여성들로 이루어졌다. 돌아온 할머니는 바로 카르멘 마우라였고 그녀의 두 딸은 바로 롤라 두에냐스와 페넬로페 크루즈였다. 요아나 코보는 손녀였고 츄스 람프레아베는 아직 마을에 남아있던 파울라 숙모였다. 그리고 이웃인 아구스티나가 있다. 그녀는 라이문다 가족의 수많은 비밀을 알고 있고, 고향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라 만차에 남아 라이문다 대신 파울라 숙모를 돌보았다. 일어나자마자 파울라 숙모가 대답할 때까지 집 창가를 두드리며 매일 빵을 가지고 왔으며, 숙모가 죽은 걸 발견하고 마드리드에 있는 쏠레에게 연락을 했다. 그녀는 또한 유령에게 문을 열어 줘 조카가 도착하기 전에 쉴 수 있게 해주었다. 아구스티나는 라이문다 가족의 일원이나 다름 없다.<BR><BR>드러나지도 돋보이지도 않는 캐릭터일수도 있지만, 사실 아구스티나는 여성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말하고 있다. 그건 바로 이웃 여성들간의 연대이다. 마을의 여자들은 문젯거리를 함께 공유하고 고통을 좀 더 잘 견디기 위해 함께 해결해 나간다. 물론 그 반대의 일도 일어난다. 이웃에 대한 증오는 결정적 사건이 터질 때까지 몇 세대를 내려오며 풀리지 않는다. 감독은 어린 시절 경험한 자신의 고향마을에서 있었던 긍정적인 사건들만을 기억했다고 한다. &lt;귀향&gt;은 홀로 살거나 홀로 된 여인들과 함께 하며 도움을 주는 이웃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감독의 어머니도 그러한 환경 속에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이웃들은 아구스티나의 캐릭터에 영감이 되었다. &lt;귀향&gt;에서 보여지는 여성들끼리의 강인한 연대감, 그것은 모성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가족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여성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 무엇으로도 거스를 수 없는 힘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우정을 나누는 아름다운 존재들이기도 하다. <BR>]]></description><image><url>http://www.cinecube.net/posterimg/gdsmall/20060915183123volver_poster.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987349</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인디다큐페스티벌2006</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78182</link><pubDate>Mon, 23 Oct 2006 22: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78182</guid><description><![CDATA[








<BR>



시간표&amp;극장안내 





<!--- 링크 #1 : <br>--><!--- 링크 #2 : <br>--><!--- 이미지 #1 : <Zeroboard (0), Download : 0<br>--><!--- 이미지 #2 : <Zeroboard (0), Download : 0<br>--><BR>상영시간표<BR><BR>10/27(금)<BR>



11:00am
국내신작전7 
&lt;택시블루스&gt;

105분

1:30pm
국내신작전6
&lt;쇼킹패밀리&gt;

111분

4:30pm
FTA특별전-해외3
&lt; FTA란? 자본가들의 도둑질!&gt;<BR>&lt;물을 향한 투쟁 - 바리케이트를 치며&gt;<BR>&lt;이것이 자유무역의 진실&gt;

76분

7:00pm
개막식 및 개막작 상영
&lt;우리 학교&gt;

134분<BR>10/28(토)<BR>



11:00am
국내신작전3
&lt;어느 날 그 길에서&gt;

97분

1:00pm
국내신작전10
&lt;얼굴들&gt;<BR>&lt;타워크레인노동자&gt;

66분30초

3:00pm
마켓상영1
&lt;월마트:싼 가격을 위한 비싼 대가&gt;

59분

5:00pm
국내신작전1
&lt;192-399:더불어사는집 이야기&gt;

133분40초

8:00pm
국내신작전9
&lt;대추리전쟁&gt;<BR>&lt;차라리 죽여라…&gt; 

88분<BR>10/29(일) * NO FTA의 날 오후 5시에 열리는 한미 FTA 반대 마당극('빵과 장미'팀)은 무료입장입니다. <BR>



11:00am
FTA특별전-국내1
&lt;146-73=스크린쿼터+한미FTA&gt;

85분

1:00pm
FTA특별전-해외3
&lt; FTA란? 자본가들의 도둑질!&gt;<BR>&lt;물을 향한 투쟁 - 바리케이트를 치며&gt;<BR>&lt;이것이 자유무역의 진실&gt;

76분

3:00pm
FTA특별전-해외2
&lt;스위치 오프&gt;

87분

5:00pm
한미 FTA 반대 마당극 

15분

5:30pm
FTA특별전-해외1
&lt;파이프 라인&gt;

90분

8:00pm
FTA특별전-국내2

&lt;0년 00개월째, 이제는 일터로&gt;<BR>&lt;장마, 거리에서&gt;<BR>&lt;2006년 7월 12일 저녁, 경복궁 앞&gt;<BR><DOWN Down FTA!>

57분20초<BR>10/30(월)<BR>



11:00am
국내신작전5
&lt;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gt;

100분

1:00pm
마켓상영2
&lt;영화 i&gt;

87분

3:00pm
국내신작전1
&lt;192-399:더불어사는집 이야기&gt;

133분40초

5:40pm
특별상영
&lt;불타는 필름의 연대기&gt;

110분

8:00pm
국내신작전2
&lt;동백아가씨&gt;

86분<BR>10/31(화)<BR>



11:00am
국내신작전9
&lt;대추리전쟁&gt;<BR>&lt;차라리 죽여라…&gt; 

88분

1:00pm
국내신작전3
&lt;어느 날 그 길에서&gt;

97분

3:00pm
국내신작전7
&lt;택시블루스&gt;

105분

5:30pm
국내신작전4
&lt;우리들은 정의파다&gt; _ 시각장애인용 화면해설

105분

8:00pm
국내신작전8
&lt;농담같은 이야기…&gt;<BR>&lt;파산의 기술記述&gt; 

88분40초<BR>11/1(수)<BR>



11:00am
국내신작전2
&lt;동백아가씨&gt;

86분

1:00pm
FTA특별전-해외1
&lt;파이프 라인&gt;

90분

3:00pm
개막작
&lt;우리 학교&gt;

134분

5:30pm
국내신작전6
&lt;쇼킹패밀리&gt;

111분

8:00pm
국내신작전5
&lt;우리에겐 빅브라더가 있었다&gt;

100분<BR>11/2(목)<BR>



11:00am
국내신작전8
&lt;농담같은 이야기…&gt;<BR>&lt;파산의 기술記述&gt; 

88분40초

2:00pm
국내신작전4
&lt;우리들은 정의파다&gt; _ 시각장애인용 화면해설

105분

4:30pm
국내신작전10
&lt;얼굴들&gt;<BR>&lt;타워크레인노동자&gt;

66분30초

7:00pm
폐막식 및폐막작
&lt;스위치 오프&gt;

87분<BR><BR>장애인 특별상영 <BR>장애인 접근권 확보를 위해 미약하나마 몇가지 사항을 마련하였습니다. <BR>상영장 입구 및 화장실 계단에 지체장애인을 위한 경사로 설치,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더빙, <BR>그리고 장애인을 대상으로 천원 관람권을 판매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기다립니다.<BR>*시각장애인용 화면해설이 더빙된 상영작<BR>&lt;우리들은 정의파다&gt; (이혜란/ 2006/105분/DV/stereo/컬러) <BR>상영 일시(2회) : 10.31(화)17시30분 / 11.2(목)14시 <BR>*장애인 관람권 1000원 (극장에서만 판매) 
예매 및 극장 안내 <BR>입장료 : 5000원 <BR>(청소년, 20명 이상 단체 1000원 할인/ 60세이상 노인 무료/장애인 1000원/<BR>*한독협 회원 무료:회원증 지참/*미디액트 회원) 1000원 할인)<BR>인터넷 예매 맥스무비, 무비OK, 티켓링크, 다음, 야후, 조이시네, 시네21<BR>현장 예매 개막당일 11시부터 시작 / 당일 포함 3일권까지 구입 가능
오시는 길 <BR>*지하철<BR>종로3가역(도보 5분)<BR>1호선_엘리베이터;승강장-&gt;개찰구-&gt;1,2번 출구<BR>3,5호선_리프트+엘리베이터;승강장-&gt;<BR>리프트 설치구간 2~3개 통과해 1호선 승강장으로 이동-&gt; 개찰구-&gt;1,2번 출구<BR>*버스<BR>종로 방면, 인사동, 종로경찰서 방면으로 오는 버스 이용 <BR>*주차는 인근 유료주차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BR>*극장 안내 전화 02-741-9782,745-3316

&nbsp;



			var tagnamelist;
			var tagnameurllist;
			
			function getArticleTag()
			{  
			
			    processRequest('/ArticleTagView.nhn', 'POST', 'clubid=10229071&articleid=1880', null, processGetData);
			}
			function processGetData(req)
			{
				
			    var o = eval('(' + req.responseText + ')');
			    var convertHTML = "";
                
			    tagnamelist = o.tagnamelist;
			    tagnameurllist = o.tagnameurllist;
			    tagnamestr = "";
			 	
			  	for (var i=0;i<tagnamelist.length;i++) 
			    {
			    	document.getElementById("tageditstack").innerHTML = tagnamelist[i];
				    tagnamelist[i] = document.getElementById("tageditstack").innerHTML;
			        convertHTML += ""+tagnamelist[i]+"";
			    	
			    	
			    	
			    	
                    if(i!=tagnamelist.length-1)
                    { 
                    	convertHTML += ", ";
                    	
                    }
				}
				
			    
				document.getElementById("tagviewtd").innerHTML = convertHTML;
			    document.getElementById("tagview").style.display = "";
			    document.getElementById("tagedit").style.display = "none";
			    
			}
			
			function editArticleTag()
			{
				var tagnamesstr = "";
				if(tagnamelist != null)
				{
					for (var i=0;i<tagnamelist.length;i++) 
				    {
				    	tagnamesstr += tagnamelist[i];
	                    if(i!=tagnamelist.length-1)
	                    { 
	                    	tagnamesstr += ",";
	                    }
					}
				}
				document.getElementById("tagnames").value = tagnamesstr;
			    document.getElementById("tagview").style.display = "none";
			    document.getElementById("tagedit").style.display = "";
			}
			function cancelArticleTag()
			{
			    document.getElementById("tagview").style.display = "";
			    document.getElementById("tagedit").style.display = "none";
			}
			
			function deleteArticleTag(idx)
			{
				if(confirm('해당 태그를 삭제하시겠습니까?'))
				{
					var tagnames = "";
					for(i=0;i<tagnamelist.length;i++) 
					{
						if(i!=idx) tagnames += tagnamelist[i];
						if(i!=idx && (i!=tagnamelist.length-1)) 
				    	{
				    		tagnames += ",";
				    	}
					}
					document.tagForm.tagnames.value=tagnames;
					document.tagForm.target="tagiframe";
					document.tagForm.action="/ArticleTagUpdate.nhn";
					document.tagForm.submit();
				}
			}
			
			function updateArticleTag()
			{
				document.tagForm.target="tagiframe";
				document.tagForm.action="/ArticleTagUpdate.nhn";
				document.tagForm.submit();
			}
			
			

  ]]></description><image><url>http://cafefiles.naver.net/data21/2006/10/22/240/intro2006-02.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978182</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추천영화 100-정성일, 김소영 등 </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50689</link><pubDate>Wed, 13 Sep 2006 14: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50689</guid><description><![CDATA[#1. &lt;인톨러런스 Intorelance&gt;(1916) / 감독: D.W. 그리피스
왜 Ｄ.Ｗ. 그리피스인가？<BR>우리는 이 시리즈가 왜 미국 영화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그리피스로부터 시작하는지를 물어보아
야 할 것이다. 우선 그의 영화 &lt;국가의 탄생&gt;(1915)은 미국의 지배적 신화를 국가의 탄생에 관
한 것으로 만든 작품이다. 이후 서부극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장르 영화들이 이 신화를 재구축
해 나갔고, 할리우드가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영화가 미국을 만들어 나갔다는 역설은 
그리피스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그리피스는 할리우드가 전세계 영화 시장을 헤게
모니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감독이다.<BR>켄터키주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책 외판원으로 인생을 시작해, 아
메리칸 드림의 주인공이 된 그리피스는 월트 휘트먼의 애독자였다. 그는 특히 '역사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된다'는 휘트먼의 시집 &lt;풀잎&gt;의 한 구절을 늘 외우고 다녔다. 그런데 드디어 
그 구절을 영화화할 기회가 찾아왔다. 그에게 엄청난 명예와 부를 안겨다 준 &lt;국가의 탄생&gt;이 
그 인종차별적 색채로 말미암아 흑인 인권 운동가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쿠클
럭스클랜(KKK)단을 옹호하다가 궁지에 몰리게 된 그리피스는 오히려 흑인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것과 같은 이러한 무자비한 불관용이 전 인류사를 통해 반복되었으며 그래서 역사가 그 목적을 
잃게 되었다는 자기방어적인 작품을 들고나왔다. 그것이 바로 &lt;인톨러런스(불관용)&gt;(1916)이다.<BR>네 가지의 이야기들이 평행 몽타주로 전개되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작품 &lt;인톨러런스
&gt;에는 20세기초 미국의 한 젊은 연인들의 고난과 1572년에 일어난 위그노 학살, 예수의 삶에 대
한 에피소드, 그리고 페르시아 왕에 의해 함락되는 바빌론이 동시에 등장한다. 즉 시간적으로는 
고대의 이교도들과 유대&shy;기독교 시기 그리고 르네상스와 현대가 한꺼번에 다루어지고, 공간적
으로는 오리엔트에서 시작해 지중해와 서유럽을 거쳐 미국으로 이동하는 제국들의 역사가 펼쳐
지는 것이다.<BR>더 놀라운 점은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그 당시 미국 관객들에게 이미 친숙한 여러 영화들의 형식
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필름 다르'(예술 영화)와 고몽사의 작품들, 이탈리아
의 스펙터클 등이 각 에피소드들마다 적절하게 인용된 이 영화는 유럽 영화를 미국식으로 길들
이려는 그리피스의 야심에 찬 스펙터클이며, 특히 둥근 기둥에 코끼리들이 늘어선 거대한 바빌
론 세트 장면은 이후 "할리우드 바빌론(탐욕과 악의 상징)"이라는 미국 영화산업의 이미지로 이
어진다. 이 바빌론에서 그리피스는 바벨탑의 붕괴 이후 잃어버린 보편적 언어의 복권을 열망했
고, 그것이 바로 미국 영화의 언어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의 세계 영화 시장은, 그의 
그러한 요구에 충분히 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BR>&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gt; 
#2. &lt;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The Cabinet of Dr. Caligari&gt;(1919) / 감독: 로베르트 비네 
영화사를 통해서 1920년대 유럽만큼이나 영화매체의 독자성을 밝히기 위한 실험이 활발했던 시
기는 없다. 프랑스의 인상주의, 러시아의 형식주의, 그리고 독일의 표현주의가 그 시기 영화의 
대표적인 경향들이다. 그들의 공통분모는 현실을 재현하는 영화매체의 기존의 속성에 도전해 현
실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낯설게 바라보도록 영상의 내재적 의미를 탐구하고자 한 것이다.<BR>1919년에 제작된 &lt;칼리가리박사의 밀실&gt;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작품이다. 그 서사
와 시각적 특성은 당대의 가장 실험적 양상의 하나로 꼽히며 이후 수년간 지속된 표현주의 영화
경향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었다.<BR>영화는 주인공이 칼리가리라는 연쇄살인범을 회상하며 얘기해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에 따르
면 칼리가리는 몽유병자에게 최면을 걸어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여자친구를 유괴한다. 그의 추
적 끝에 칼리가리는 18세기에 있었던 대리살인을 재현하고자 하는 강박관념에 빠진 정신병원의 
원장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면 이제까지 이 이야기를 해준 주인공은 사실 
정신병원의 환자이며 칼리가리는 그를 담당한 의사라는 것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병실로 끌려가
며 소리치고 의사 칼리가리는 그제야 그의 병증을 이해했다고 한다.<BR>이 마지막은 관객을 당황시킨다. 관객은 이제까지 보고 들은 것이 미친 자가 꾸며낸 망상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그러면서도 그가 정말 미쳤는지를 의심하게 된다.<BR>그러나 관객의 의구심을 누르는 것은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이다. 영화의 장면화는 현실감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형태와 색채를 통한 왜곡, 구성의 부조화 등 당대의 표현주의 회화의 특성이 
세트 곳곳에 그대로 살아 있다. 평면적으로 그려진 세트에는 원근감이 과장되어 있고 사물의 형
태가 각지거나 왜곡되어 있다. 인물 또한 분장이나 의상을 통해 그 세트의 일부처럼 기능한다. 
조명은 명암의 대조가 극단적으로 이뤄져 있으며 연기 또한 극히 기교화되어 있다.<BR>이런 극히 양식화된 장면이 창조하는 것은 현실과는 먼 환상세계이다.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서 
공간의 표현이란 곧 정신의 표현이다. 즉, 영화 속 공간에 합리적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불안과 
과대망상증으로 가득찬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BR>이 광인의 이야기가 시각화돼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가 된 것은 헤르만 바름 등 세트 디자이너의 
역할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제작자 에리히 포머의 역할이 컸다. 칼리가리가 연쇄살인을 저지
르는 미친 악당으로 되어 있는 원래 각본을 뒤집어 주인공을 광인으로 설정한 것도 그였으며, 
세계시장을 지배하던 미국영화와 경쟁하기 위해 예술적인 영화를 만들고자 표현주의 회화기법을 
영화에 끌어들인 것도 그의 결정이었다.<BR>포머의 그런 결정은 이 영화의 해석에 흥미 있는 변수가 된다. 원래 각본의 의도는 어쩌면 개인
의 자유가 폭정적 권력에 의해 남용되는 것을 비판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완성된 영화는 
폭정적 권력이 어쩌면 개인들에게 유익할지도 모른다는 시사를 한다. 이는 당시 독일인물의 의
식 저편에 있는 불안과 공포심을 암시한 것이며, 칼리가리라는 인물을 통해서 히틀러의 등극을 
예시했다는 이 영화의 의미를 명확히 해준다.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gt;
<BR>#3. &lt;북극의 나누크 Nanook of the North&gt;(1922) / 감독: 로버트 플래허티
로버트 조지프 플래어티(1884∼1951)의 '기념비적' 다큐멘터리 &lt;북극의 나누크&gt;는 1922년에 만
들어졌다. 설원에 사는 에스키모인 나누크와 그의 가족의 생활을 그린 이 영화는 당시 파테영화
사에 의해 미국과 캐나다 전국에 배급되어 상업적인 성공을 거뒀고 유럽, 러시아, 일본 등 전세
계에서 상영되었다.<BR>&lt;북극의 나누크&gt;는 일반극장에 흥행 목적으로 배급된 최초의 장편 기록영화였고 에이젠슈테인을 
비롯한 당대의 러시아 영화인들로부터 1960년대의 다큐멘터리 감독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에
게 영향을 끼쳤다.<BR>&lt;북극의 나누크&gt;가 1920년대 관객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 영화는 낯선 풍물과 이국적인 삶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었다. <BR>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대중매체로서의 영화를 발명한 그 순간부터 카메라는 '구경거리'를 찾
아 전세계 곳곳을 누볐고, 1920년대까지는 "미개인의 기이한 풍습"류의 짤막한 영화들을 보는 
데 관객들이 익숙해져 있었다. 아직 '다큐멘터리'라는 용어와 개념이 나타나기 전이었지만 카메
라가 잡은 생생한 현실을 보고 즐기는 관객층은 이미 이루어져 있었다.<BR>이러한 관객들에게 &lt;북극의 나누크&gt;는 익숙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영화였다. &lt;북극의 나누크&gt; 이
전의 기록영화들은 모두 20분 미만의 짧은 길이였고 춤, 제의, 전투 등의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다룬 것들이었다. 1910년대 극영화에서는 이미 장편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촬영, 편집, 극적 
구성 등에서 많은 테크닉이 개발돼 일반화되고 있었다.<BR>&lt;북극의 나누크&gt;는 바로 이런 극영화기법을 기록영화에 적용하여 커다란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관객들의 관심을 끌고가는 주인공이 있고(순박하고 유능한 에스키모인 나
누크), 쉽게 공감할 수 있는주제가 있으며(혹독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투쟁), 유머러스한 장면
과 긴장된 장면을 넘나드는 흥미진진한 줄거리의 전개가 있다.<BR>측량기사 출신인 플래어티는 광물탐사를 목적으로 캐나다 북부지방을 여행하며 에스키모들의 생
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탐사작업 틈틈이 에스키모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던 것에서 출발해 
그는 그들의 삶을 영화로 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플래어티 연구가들에 의하면 그는 처
음부터 이 영화를 장편으로 만들어 극장에 배급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 
점에서 플래어티는 오늘날 독립영화작가들의 원형을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BR>&lt;북극의 나누크&gt;의 성공은 플래어티에게 그가 바라던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그는 영화의 새로
운 영역을 개척한 예술가로서 영웅대접을 받았고 그의 명성은 &lt;모아나&gt;&lt;아란의 사람들&gt; 등 이후 
그가 만든 영화를 통해 확고해졌다.<BR>그의 영화들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대상인 인간에 대한 애정과 장기간의 현지 조사를 통한 사
전작업은 다큐멘터리 영화작가들에게 모범을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반면 체계적인 방법론의 구
축보다는 주관적이며 감성적인 문화의 이해에 의존한 점, 살아 있는 문화를 필름에 담기보다는 
이미 사라져버린 원형의 복원에 집착한 점은 많은 비판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lt;필자: 김홍준/
영화감독&gt;
<BR>#4. &lt;마지막 웃음 Der Letzte Mann&gt;(1924) / 감독: F.W. 무르나우
독일 표현주의로 불리는 1919∼25년 시기의 영화들은 대략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는 프리츠 랑의 &lt;숙명&gt;(1921)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는, 신화로 남은 역사의 사건들을 재구
성하는 역사물들이다. 둘째는 표현주의 연극의 무대장치와 연출에 의해 영향받은 괴기스럽고 신
비스러운 분위기의 영화들로, 이 부류의 대표작은 &lt;칼리가리 박사의 밀실&gt;(1919)이다. 마지막 
세번째 부류는 막스 라인하르트의 연극에서 비롯된 이른바 '실내극 영화'들이다.<BR>실내극 영화들의 특징은 다른 표현주의 영화들과는 달리 특정한 시간·공간 속에서 대개는 사회
에서 중간계층 이하인 인물들의 행위와 심리가 단순한 내러티브(이야기)에 의해 전달된다. 실내
극 영화의 부류에 포함되는 '거리영화'들을 예로 들면 대부분이 가속화하는 근대화에 편승해 헛
된 꿈을 좇는 남자들에 의해 버림받는 비극적인 여자주인공들의 이야기로, 감상적인 멜로드라마
의 종래적인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다.<BR>무르나우의 1924년작 &lt;마지막 웃음&gt;은 폴 레니의 &lt;뒷계단&gt;(1920), 루푸픽의 &lt;파편&gt;(1921)과 함
께 실내극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다른 두 편과 마찬가지로 칼 마이어가 시나리오를 쓴 &lt;마
지막 웃음&gt;은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호텔 도어맨(에밀 제닝스 연기)이 나이 들어 
화장실 조수로 밀려나자 주위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게 되는데 화장실을 사용한 미국인 백만장
자의 뜻하지 않은 유언(화장실에서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자신을 지켜본 사람에게 유산을 남겼다
)에 의해 비참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BR>해피 엔딩임에도 불구하고 &lt;마지막 웃음&gt;은 관객들에게 씁쓸한 웃음으로 영화의 마지막을 지켜
볼 수밖에 없게 한다. 영화 내내 관객들로 하여금 늙은 도어맨의 좌절과 비참함을 공유하게 만
들기 때문이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도어맨이 유니폼을 벗을 때 이 영화에서 유일하
게 사용한 자막을 통해 "그를 불쌍히 여긴다"고 말하고, 이 자막은 부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불
구하고 사회적으로 지위가 하락하게 되는 중산층에 대한 감독의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BR>&lt;마지막 웃음&gt;이 영화사에서 자리매김되는 이유는 1920년대 독일 사회가 직면하게 된 중산층의 
부상을 사회적·정치적 맥락에서 관객들에게 설명함에 있어서 뛰어난 카메라 테크닉과 주인공의 
심리묘사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lt;마지막 웃음&gt;은 영화에 대
한 가장 일상적인 질문인 영화의 주제와 형식의 일치의 중요성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일 수도 
있다.<BR>영화의 시작은 자전거에 장치된 카메라가 호텔의 엘리베이터와 회전문, 그리고 화려하고 사람들
이 북적이는 로비 등을 자유롭게 다니며 도시화, 근대화가 대두하는 당시 사회상을 엿보게 한다
. 칼 프룬드가 촬영한 이 도입부분은 도어맨이 처하게 된 피할 수 없는 어두운 운명을 예시하고 
있다. 영화사에서 유명한 도어맨이 술에 취한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도어맨의 가슴에 매달려 세
트를 비틀거리며 휘젓고 다니는데, 이는 도어맨의 심리적 불안과 함께 당시 중산층 계층의 불안
정한 위치를 말해준다.<BR>&lt;마지막 웃음&gt;은 감독 무르나우, 카메라맨 프룬드, 작가 마이어에 의해 고안된 영화적 테크닉에 
의한 내러티브의 성공적 재현으로 찬사를 받고 있고, 영화사가들은 이 영화가 그리피스의 카메
라 트래킹과 시점 편집을 발전시켜 더 정제된 영화문법으로 정착시키는 데 공헌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lt;필자: 문혜주/영화평론가&gt;
<BR>#5. &lt;황금광 시대 The Gold Rush&gt;(1925) / 감독: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188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1977년 88살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2살 때 극단
의 아역배우를 시작으로 유리공, 이발사, 팬터마임 배우 등을 전전했으며 네번결혼과 한번 약혼
에서 열명의 자녀를 생산했다. 1910년 팬터마임 배우로 미국에 발을 디딘 뒤 40여년간 미국에서 
살다가 47년 할리우드의 '빨갱이 사냥'에 걸려 52년 추방당했다. 평생 동안 그는 81편의 작품에 
관여했는데 이중 70여편이 자신이 직접 감독과 주연을 겸한 것이었다.<BR>&lt;황금광시대&gt;(1925)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고 지금도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다. &lt;시티라이
트&gt;(1931)가 자본주의가 이미 자리를 잡은 도시의 쓸쓸한 풍경이자 돈과 인격에 관한 수채화라
면 &lt;황금광시대&gt;는 황금을 쫓아 부나방처럼 헤매는 인간들을 그린 흑백사진이다. &lt;모던 타임스
&gt;(1936)가 자본과 권력에 대한 비판의 시작이라면 &lt;황금광시대&gt;는 공격을 위한 몸풀이다. 채플
린의 5대 희극 안에는 이 세편 외에 &lt;독재자&gt;와 &lt;무슈 베르두&gt;가 추가된다. 그리고 이 희극 5편
은 채플린 최고의 영화들 속에 포함된다. 채플린은 삶과 사회에 대해 지극히 비관적이었던 대신
에 그것을 묘사하는 무기로 웃음을 선택한 셈이었다. 물론 그가 웃음을 택했던 것은 불우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거부했던 심리와 철벽같은 세상에 대한 전술이었겠지만 이 속에 상업주의적 
타협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밝은 화면과 또렷한 사물들, 그리고 사건 위주의 단순한 이야기 
구조 등 그의 영화는 당시 <BR>할리우드의 모두가 그랬듯 예술보다는 상품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채플린의 영화들, 특히 
&lt;황금광시대&gt;가 세상을 향해 내쏘았던 질타는 사회비평적 모범으로서 이후의 영화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정신적인 부분과 더불어 우리는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한 많은 현대영
화에서 채플린 영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BR>찰리는 지독한 굶주림 때문에 구두를 삶아 먹으며 구두창의 못을 뼈다귀처럼 핥고 찰리의 상대
편에 있는 사람은 찰리를 닭으로 착각하고 덤빈다. 금광을 발견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싸우지
만 현실(눈사태)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찰리는 어느 오두막에 들어가 고달픈 육신을 달래
지만 이제 그에게는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몰려온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고 현실은 언제나 초라
했으며 욕망은 항상 아귀처럼 달려들었다. 그래서 찰리로 나온 채플린은 웃음으로, 엉뚱한 댄스
스텝으로, 초라함과 낭만이 가득찬 풍경으로 그것에 대항했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은 채플린이 
금광을 발견한 사람의 동료가 되고 게다가 아름다운 주점 무용수를 품에 안고 행복한 웃음으로 
키스를 나누려는 장면으로 끝난다. 원래는 우수와 비애로 가득한 사회비판적 영화였는데 채플린 
역시 할리우드 사람답게 할리우드의 고색창연한 행복한 결말의 관습을 이어받았다. 상업주의와 
야비하게 타협한 셈이었다.<BR>채플린은 그뒤 &lt;시티라이트&gt;에서 최대의 서정으로 현대를 그린 뒤 &lt;모던 타임스&gt;에 가서 구체적
인 비판을 시작한다. 이것은 &lt;독재자&gt;(1940)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BR>짧은 콧수염의 히틀러와 찰리, 찰리는 꽉 죄는 윗도리와 헐렁한 바지, 그리고 군함만한 구두와 
대나무 지팡이로 히틀러에 대항했다. 남들은 현재에 안주할 나이, 쉰살 때의 일이었다.<BR>이런 채플린이 두번째 부인 리타 그레이와 몰래 결혼하고 &lt;황금광시대&gt;를 만들 때, 절망한 독일
의 영화 예술가들은 &lt;마지막 웃음&gt;(1924)을 만들거나 필름 느와르의 원조격인 &lt;활기없는 거리&gt; 
등을 만들고 있었고, 한국에서는 나운규가 &lt;아리랑&gt;(1926)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가 이제 막 
근대영화의 진입단계에 다다랐을 때였고 그뒤 각 나라의 영화역사는 나라 사정에 따라 제각기 
걸음을 내딛었다. &lt;황금광시대&gt;는 이러한 영화역사의 비극성과 현대의 비극성 모두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lt;필자: 이효인/영화평론가&gt;
<BR>#6. &lt;전함 포템킨 Bronenosets Potemkin&gt;(1925) / 감독: 세르게이 에이&#51820;슈테인
장 누아르와 그리피스 그리고 에이젠슈테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서양 영화 초창기의 맥락과 영화
이론을 이해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또 서양 영화가 동양영화에 끼친 영향을 생각할 때 비록 그 
영향이 때로 강압적이었더라도 이 세 감독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거쳐야만 할 과제이다. 특히 
에이젠슈테인이 사회주의 영화를 대표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한, 타락한 영화세상에서 사
회주의 영화를 통해 어떤 희망적 단서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찾아가곤 했다. 그 
대표작이 바로 &lt;전함 포템킨&gt;(1925)이다.<BR>전함 포템킨의 수병 반란, 그리고 오데사 계단에서의 대학살극이 &lt;전함 포템킨&gt;을 이루고 있는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영화가 무기가 될 수 있으며, 대중교육책이며, 뛰어난 선동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극단적으로 대조를 이루는 억누르는 전함의 장교와 억눌리는 수병들, 압살
하는 백군 기병대와 코사크 군대와 피를 흘리는 인민들, 모든 것이 극단적인 대조를 통하여 표
현된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즐겨 그렸고 극장의 무대 디자이너로 일했던 에이젠슈테
인에게 그러한 서술상의 대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정작 에이젠슈테인을 에이
젠슈테인으로 만든 것은 그의 화법이었다. 그것은 흔히 몽타주로 알려진 것이다.<BR>그의 선배 프도프킨이 필름의 결합을 통해 서술적 의미의 확대와 강조를 꾀했다면 에이젠슈테인
은 두개의 대조적인 쇼트들을 통합해 새로운 개념을 창조했다. 코사크 병사가 내리치는 칼, 깨
어져 뒹구는 안경, 피 흘리는 여인 얼굴의 클로즈업…. 이런 편집을 통해 에이젠슈테인은 상황
묘사라든가 감정의 고조를 넘어서서 관객들에게 단호한 정치적 입장을 요구하는 논리로 떨쳐나
갔던 것이다. 물론 그는 이 오데사 계단 장면뿐만 아니라 많은 장면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를 설
치해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크기로 쇼트들을 찍었다. 그는 찍힌 것을 어떻게 편집하느냐가 영
화 창작의 처음이자 출발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BR>&lt;전함 포템킨&gt;은 이렇게 포템킨호의 선상 반란에서 시작하여 오데사 계단 그리고 마지막 승리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쇼트도 낭비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끌어간다. 서구 무성영화 특유의 지루하고 
나른한 느낌은 이곳에서 찾을려야 찾을 수 없다.<BR>하지만 그의 몽타주론에 대한 비판 역시 만만치 않았다. &lt;낡은 것과 새로운 것&gt;(1929) 등에 대
한 비판은 끝없이 이어졌고 그는 자신의 몽타주론을 완성하기 위해 낮에는 소련영화학교의 강단
에서, 밤에는 연구실에서 일했다. 급기야 그는 형식주의자로 매도당했고 어떤 영화는 정부에 의
해 제재를 당하기도 했다.<BR>물론 그는 '위대한 사회주의'를 믿었지만 그것을 온순하게 따르는 멍청한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형식을 연구하는 사람을 형식주의자라고 한다면 매독을 연구하는 사람은 매독주의
자다"라고 항변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그의 이후는 불행으로 이어졌다.<BR>결국 &lt;전함 포템킨&gt;은 소련 영화의 명예로 남아 있을 뿐 자신의 조국에서는 이어지지 않았다. 
또 그의 독특한 인물 전형화론 등의 이론은 이제 후학들의 과제로만 남아 있다. 역설적으로 그
의 몽타주 기법과 사회의식은 1930년대 영국의 사회적 다큐멘터리로 전수되었다. 더욱 기가 막
힌 것은 이제 거의 모든 할리우드 영화가 너무나 천연덕스럽게 그의 편집 기법을 써먹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몽타주론은 이 타락한 영화세상 만큼 통속화되었다.<BR>그렇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 흥행작들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다시 &lt;전함 포템킨&gt;을 읽어야 한다. 고전이라서가 아니라 영화를 통해 세
상과 아이들의 미래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뜻에서다. &lt;필자: 이효인/영화평론가&gt;
<BR>#7. &lt;어머니 Mat&gt;(1926) / 감독: 프세볼로트 푸도브킨
막심 고리키의 &lt;어머니&gt;는 러시아의 혁명문학 중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일 것이다. 프
세볼로트 푸도프킨(1893∼1953)의 &lt;어머니&gt;(1926)는 바로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무성영화의 걸
작이다. &lt;전함 포템킨&gt;이 시종 망치로 때리는 듯한 충격을 안겨주는 숨가쁜 영화라면 &lt;어머니&gt;
는 서정을 통해 격정을 쌓아가는 질긴 밧줄과 같은 영화이다.<BR>푸도프킨과 시나리오작가 자르히는 고리키를 영화로 옮기면서 원작의 이차적인 이야기는 과감히 
버리고 등장인물의 수를 줄이는 대신 날카로운 갈등을 중심으로 한 극적구조를 부각시켰다. 그
들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한 가난하고 무식한 노동자의 아내이자 어머니가 어떻게 혁명의 길로 
나아갔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고리키의 깊이와 넓이를 희생시키는 것이었지만 무성영화로
서 극적 혁명적 효과를 달성하는 데는 최선의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영화는 의식적으로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술집과 집과 공장의 파업을 오가는 도입부의 알레그로와 아버지의 죽음
이 가져다주는 장례식의 아다지오, 수색·배반·체포·재판·감옥생활을 그리는 알레그로와 해
방·시위·폭동·아들과 어머니의 죽음을 그려나 가는 격렬한 프레스토의 차례로 영화는 연주된
다. 이 계산에 의해 푸도프킨의 &lt;어머니&gt;는 보는 이의 감정곡선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뛰어난 운
율의 영화이며 성격과 사건과 극을 하나로 엮어나가는 탁월한 비극이기도 하다.<BR>에이젠슈테인, 도브첸코와 더불어 소련 무성영화시대의 3대 거장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푸도프킨
은 물리학과 화학을 공부한 과학도였으며 시·회화·연극·연출 등 여러 예술분야를 두루 섭렵
한 재기 넘치는 예술가였다. 그는 러시아 몽타주의 아버지 쿨레쇼프의 수제자로 소련 영화의 중
심으로 진입했는데, 엑센트릭한 단편 &lt;체스열기&gt;와 과학영화 &lt;뇌의 역학&gt;에 이어 만든 &lt;어머니&gt;
는 사실상 그의 첫 장편이었다.<BR>&lt;어머니&gt;에는 그의 이런 예술적 역정들이 창조적으로 담겨 있다. 예컨대 재판장면은 톨스토이의 
부활장면의 재창조이며, 감옥에서의 원운동장면은 명백히 반 고흐의 '감옥 안마당'에서 따온 것
이었다. 뿐만 아니라 타마리나가 연기한 어머니의 형상에는 드가와 청색시대의 피카소와 콜비츠
의 판화가 응축되어 있다. 그 자신 배우이기도 했던 푸도프킨은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사실주의 
연기전통을 고스란히 영화에 가져옴으로써 뛰어난 심리적·서정적 효과를 창출하기도 하였다.<BR>그러나 &lt;어머니&gt;를 세계영화사의 걸작으로 만든 기본요인은 탁월한 몽타주에 있다. 서정과 서사
, 배우의 연기와 편집, 세부와 전체, 심리와 카메라의 시선, 긴 흐름과 짧은 단절을 적절히 교
차·병치·조합하는 그의 몽타주는 에이젠슈테인과 또다른 특징을 갖는 것이다.<BR>흔히 그의 몽타주이론을 연계의 몽타주라고 단순화하나 이는 옳지 않다. &lt;어머니&gt;의 마지막 부
분인 시위와 학살과 투쟁의 장면은 '오뎃사 계단' 못지않게 충격적이다. 사실 그와 에이젠슈테
인의 본질적 차이는 후자가 몽타주를 영화의 방법론으로 접근했다면 그는 서술의 기술로 간주했
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듯한 차이는 결과적으로 세계영화사에의 평가를 가르고 말았
다. 그의 영화는 30년대 이후 사회주의 리얼리즘영화의 한 전범으로 평가받았으나 정작 그 자신
은 발성영화가 도입된 뒤 이렇다 할 작품을 남기지 못하였다. 이 아이러니는 물론 스탈린주의에 
의한 억압 탓이기는 하나 기술적 실험과 타협을 맞바꾸고자 했던 그의 쇠약한 예술혼에서 빚어
진 것이었다. &lt;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gt;
<BR>#8. &lt;메트로폴리스 Metropolis&gt;(1927) / 감독: 프리츠 랑
영화가 역사 바깥에서 만들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만일 볼셰비키혁명이 에이젠슈테인의 &lt;전
함 포템킨&gt;을 만들었다면, 프리츠 랑의 &lt;메트로폴리스&gt;(1927)는 나치즘을 '예언'하는 것이었다.<BR>브레히트의 친구였으며, 루카치가 증오하는 예술가였고, 벤야민이 찬미했으며, 아도르노가 비난
했던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가 프리츠 랑(1890∼1976)은 건축학과 미술을 공부했으며, 괴테와 
말러의 찬미론자였다.<BR>그의 꿈은 원래 화가였으나 1차대전 참전중 부상으로 후송되어 병원에서 시나리오를 쓰면서 독
일 영화의 거물 프로듀서 에리히 포머를 알게 되었고, &lt;마브세 박사&gt;(1924)를 만들면서 프리드
리히 무르나우와 함께 독일 무성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무르나우가 회화적인 표현
주의를 추구했다면, 랑은 건축적인 표현주의 양식을 완성하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BR>그리고 이듬해 촬영감독 카를 프로인트와 귄터 리타우, 미술감독 오토 훈트와 에리히 케텔후트, 
카를 볼프레히트 등 표현주의 영화의 주력부대를 이끌고 독일 최대의 촬영소 우파 스튜디오에서 
3백10일에 이르는 대작 &lt;메트로폴리스&gt;의 촬영작업에 들어갔다.<BR>미래도시 메트로폴리스는 두 개의 세계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행복하고 안락한 부르주아들의 
지상낙원이고, 또 하나는 온통 기계로 둘러싸인 노동자들의 지하감옥이다. 지상의 가진 자들은 
지하의 빼앗긴 자들의 노동의 대가로 천국을 소유한다.<BR>그러던 어느날 지상세계를 움직이는 자본가의 아들 프레더가 우연히 비밀의 문을 통해 그 끔찍
한 지하세계로 내려가 천사같은 소녀 마리아를 알게 된다. 그녀는 노동자들의 유일한 성녀와도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과학자가 음모를 꾸민다. 그는 마리아를 납치해 마리아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지하세계로 내려보낸다. 가짜 마리아는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지하세계의 노동자들은 계
급투쟁을 향해 전진한다.<BR>랑이 만들어내는 이 어둡고 음침하면서도 무섭도록 열광적이고 흥분을 자아내는 계급투쟁의 우
화는 공상과학영화라는 형식 속에서 무성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압도적인 시각적 완성도를 보여
준다.<BR>그는 독일 영화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기 위해 당대 러시아 영화의 몽타주나 프랑스 영화의 
아방가르드 전통을 모두 무시했다. 그 대신 영화 전체를 거대한 건축적인 유기체처럼 설계하고 
그 속에서 집단적 움직임과 기하학적 구도,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와 그 사이로 늘어선 
기형적인 세트, 그리고 기계적인 화면과 카메라의 이동으로 표현했다. <BR>아마도 어떤 표현주의 영화도 이보다 더 표현주의 정신을 구현한 작품은 없을 것이다.<BR>그러나 이 영화의 미학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랑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lt;메트로폴리스&gt;는 위험
한 결론으로 이끌린다. 그는 선동과 집단봉기의 계급투쟁의 결과를 공상과학영화라는 모호한 변
명 속에서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변질시켰다.<BR>그래서 마지막 순간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는 자본가와 자본가 아들 사이의 화해로 변질해 노동
자계급의 패배로 끝나며, 혁명은 폭동으로 변질하고, 결국 부르주아 휴머니즘의 승<BR>리로 막을 내린다.<BR>&lt;메트로폴리스&gt;는 무시무시한 인플레가 독일 전역을 휩쓸던 1927년 1월10일 베를린에서 개봉되
었다. 두 사람이 이 영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
였고, 또 한 사람은 할리우드 제작자 월터 윈저였다.<BR>13년 뒤 프리츠 랑은 괴벨스의 나치 선전영화 제안을 거절하고 할리우드로 가 필름 누아르 영화
의 선구자가 되었다. 아도르노의 말처럼 그는 '실패한' 독일 영화의 바그너였다. <BR>&lt;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gt;
<BR>#9. &lt;황금 시대 L'Age d'or&gt;(1930) / 감독: 루이 브뉴엘
루이스 부뉴엘(1900∼1983), 20세기와 함께 스페인에서 태어나 프랑스 미국 멕시코를 거쳐 프랑
스에서 긴 영화역정을 마감한 이 거장은 생애의 대부분을 상업영화를 만들며 보냈으면서도, 당
대의 주류문화를 거스르는 '스캔들'로서의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낸 특이한 존재이다.<BR>그는 첫 작품 &lt;안달루시아의 개&gt;(1928)에서 마지막 작품 &lt;욕망의 모호한 대상&gt;(1977)에 이르기
까지 자신의 영화에 일관된 세계관은 초현실주의라고 주장하였다. 부뉴엘은 인간이 자신의 본능
과 비이성적인 면들을 제도와 문명이라는 틀로써 다스리려는 시도들이 얼마나 부질없고 무의미
한 일인가를 끈질기게 보여주려 하였다. 그래서 그의 영화세계에는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 종
교 - 그의 성장 배경인 카톨릭 교회 - 를 향한 공격, 유럽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야유와 경멸, 
그리고 무의식과 본능의 영역으로서의 성에 대한 탐구가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음흉하리 
만큼 우회적으로 들어갔다.<BR>이러한 부뉴엘 영화의 특징들은 그의 두번째 영화 &lt;황금 시대&gt;(1930)에 가장 잘 압축되어 있다. 
상영시간 1시간인 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
처럼 전갈의 생태를 묘사하며 시작해서 산적들, 사제, 군인, 관료가 차례로 등장하고,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한 쌍의 젊은 남녀가 사랑을 벌인다. 이들의 사랑이 부르주아들에 의해 끊임
없이 방해받는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인 셈인데,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영뚱하게도 사
드의 소설 &lt;소돔의 120일&gt;의 후일담으로 넘어간다. 여기 등장하는 4명의 '패륜아' 중의 한명은 
예수의 모습을 하고 있고, &lt;황금 시대&gt;의 마지막 이미지는 사막에 버려진 십자가이다. 이러한 
이야기 사이사이에 우스꽝스럽고 기괴한 부르주아의 삶의 단편들이 끼어들고, 자막과 대사와 음
악(&lt;황금 시대&gt;는 최초의 발성영화 중의 하나이다)은 이 영화의 공격대상이 무엇인지를 숨김없
이 드러내고 있다.<BR>부뉴엘이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함께 만든 첫 작품 &lt;안달루시아의 개&gt;는, 당시 파리 문화계에 
유행하던 예술지상주의적인 전위영화에 대한 공격이라는 만든 이들의 의도와는 달리, '예술영화
'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작품이라는 오해(?)와 함께 부르주아 문화인들로부터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 이어 부뉴엘이 &lt;안달루시아의 개&gt;의 성공에 힘입어 만들 수 있었던 다음 영화 &lt;황금 시
대&gt;는, 일부 좌파 지식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격렬한 분노와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가장 문제
가 된 것은 예수를 사드 소설의 주인공으로 묘사한 '신성모독' 부분이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
장에 몰려온 극우단체 회원들은 영사막을 찢었고, 찢어진 영사막 위에 영화는 며칠간 계속 상영
되었다. 결국 들끓는 여론과 카톨릭 교회의 압력에 따라 파리시 당국은 상영금지 조처를 내리고 
프린트를 압수하였다. 1950년에 &lt;잊혀진 사람들&gt;로 유럽영화에 '복귀'하기까지, 부뉴엘에게는 '
악명높은 그 영화를 만든 감독'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다녔고, &lt;황금 시대&gt;의 오리지널 네가는 
1993년에야 원래의 형태로 복원되었다. &lt;안달루시아의 개&gt;가 '고전'으로 인정받아가던 세월 동
안, &lt;황금 시대&gt;는 여전히 '스캔들'로서 남아 있었던 셈이다. &lt;필자: 김홍준/영화감독&gt;
<BR>#10. &lt;장군 The General&gt;(1926) / 감독: 버스터 키튼
버스터 키턴은 1895년에 태어나 보드빌(노래·춤·곡예 따위를 곁들인 소희극)의 연주자이던 부
모와 함께 세살 때부터 무대에 섰다. 슬랩스틱 코미디(배우가 치고받고 하면서 연기·동작을 과
장하는 희극)가 한창 주가를 올리던 1917년 영화연기를 시작했으며, 1920년대에는 자신의 영화
사를 갖고 본격적으로 연출과 연기를 겸하기 시작했다. 1928년 그의 영화사가 MGM으로 넘어가기
까지 키턴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열두편의 장편희극영화를 만들었다. &lt;우리의 
환대&gt; &lt;셜록 2세&gt; &lt;조종사&gt; &lt;장군&gt; 등이 그 시기에 만든 대표작들이다.<BR>&lt;장군&gt;은 "어수룩한 낙오자가 사내다운 용기를 증명해보여 사랑하는 여자를 얻게 되는" 이야기
이다.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몇번을 보아도 신선하다. 정치성도, 사회에 대한 풍자도 없다. 단지 
키턴의 독창적인 희극적 효과가 있을 뿐이다. 백치 같음과 철학적인 것이 엿보이는 키턴 특유의 
무표정과 절제된 신체적 움직임, 주인공이 싸워야 할 상대가 한 소대가 타고 있는 기차 혹은 한 
부대가 주둔해 있는 적지라는 것, 기관차라는 거대한 기계덩어리로부터 무한한 희극적 효과들을 
끌어내는 규모 등은 당대 여느 코미디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었다.<BR>동시대 슬랩스틱 코미디와 채플린 영화들이 연기자의 신체적 움직임과 얼굴표정을 중시하고 영
화가 단지 그것을 기록한 데 비해 키턴은 특정한 카메라 위치와 시각적 효과, 정확한 타이밍, 
편집리듬을 중요하게 여긴다. 주인공 자니가 실연당한 뒤 장면은 그런 요소들의 묘미를 보여주
는 한 예이다. 자니는 '장군호' 바퀴의 빗장 위에 힘없이 앉아 있다. 잠시 뒤 기차는 천천히 움
직이고 자니의 몸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자니의 몸은 자니가 지닌 실연과 고뇌의 무거움에 비해 
너무나 가볍게 빗장 위에서 원을 그린다. 두바퀴를 돈 뒤, 화면 오른쪽으로 그가 사라지기 직전
에야, 그는 상황을 깨닫는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운명의 힘, 그 주변을 따라 
도는 자니, 희비극이 공존하는 그 순간은 고정된 카메라, 거리를 둔 카메라 위치, 인물의 미세
한 움직임 직후 곧 페이드아웃되는 편집 등이 그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한 것이리라.<BR>&lt;장군&gt;이 영화사에서 소중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 현대적 면모일 것이다. 카메라는 관객으로 
하여금 곤경에 빠진 주인공을거리두고 관찰하게 하고 그 곤경을 즐기게 한다. 그래서 관객은 주
인공과 감정의 동화를 이루지 못한다. 또한 상황에 대한 불가피한 절망감을 보여주는 키턴 특유
의 냉철한 무표정은 그러한 이화작용을 더욱 강화시킨다.<BR>또하나 영화의 현대적 맛은 빅토리아 시대의 전통적 신사도를 물려받아 여성을 영화에서 곱게 
다루던 시기에 여성을 세상 안으로 끌어낸 점이다. 자루에 넣어 화물칸에 던지고 그 자루를 나
중엔 발로 무자비하게 밟고, 몸이 쓸려버릴 듯한 펌프물 세례를 주고, 목숨을 건 탈주에 어리석
게 행동하는 여자의 목을 조르다 할수없어 입맞춤을 하긴 하지만. 당대로서는 진지한 소재로 상
업적 성공을 거둔 남북전쟁 때의 로맨스는 이러한 현대적 면모들로 패러디가 되고 그의 영화에
서 감상은 모두 씻겨나가 버린다.<BR>3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 아래서 재능을 잠식당한 키턴은 다시는 &lt;장군&gt;과 같은 독창적 코미디를 
만들지 못했다.<BR>키턴은 채플린에 버금가는 유일한 희극영화인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채플린과는 아주 다른 현대
적 감성으로 죽은 뒤 더욱 유명해진 인물이다. 특히 부조리극이 성행하고 브레히트가 영화에 수
용되던 시기의 그의 죽음은 수십년 전 그의 영화가 보여준 현대적 감성을 되씹게 했는지도 모른
다. &lt;필자: 주진숙/중앙대 교수·영화학&gt;
<BR>#11. &lt;잔다르크의 수난 La Passion de Jeanne D'Arc&gt;(1928) / 감독: 칼 데어도어 드레이어
"잔 다르크의 투명한 눈물 한방울을 상자 속에 간직하고 싶다."<BR>루이 브뉘엘이 이 영화에 대해 한 말이다. 하지만 에릭 로드 같은 영화사가는 감독 카를 테오도
르 드라이어에 대해 고통에 빠진 여성들(이 영화와 &lt;분노의 날&gt;(1943), &lt;오데트&gt;(1955), &lt;게르
트루드&gt;(1964) 등의 작품)을 가학적으로 재현해내는 남성우월주의자라고 생각했다.<BR>반면 질 들뢰즈의 견해는 달랐다. 그는 드라이어야말로 관객에게 최고의 정서적 효과를 불러일
으키는 작품을 만든다고 평했다. 또 혹자는 "절규하는 소리가 나는 무성영화"라고 이 영화를 정
의하기도 했다.<BR>그러나 어떠한 관점에서 보건 부정할 수 없는 점은 그가 매우 특이한 형식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최소한의 카메라 움직임과 미니멀리즘으로 관객들의 정서를 이끌어내는 드라이어는 사
실 세계영화사에서 일본의 오즈 야스지로 감독이나 프랑스의 브레송과 더불어 독특한 전통을 차
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들은 느낌표나 의문부호보다는 말줄임표를 즐겨 사용하며, 오히려 데
스마스크에서 가장 강렬한 삶의 표현을 포착해 낸다.<BR>1920년대 후반 르네 클레르와 페르낭 레제 그리고 루이 브뉘엘이 초현실주의 아방가르드 영화에 
관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을 때, 덴마크에서 프랑스로 옮겨온 드라이어는 프랑스 영화사로부터 
작품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BR>그는 역사상 흥미로운 세 명의 여성들, 즉 카트린 드 메디치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잔 다르
크 중 한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생각하다가, 드디어 마지막 인물로 낙점한 뒤 중세의 
일상을 재현하기 위한 꼼꼼한 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잔 다르크 역을 맡을 배우로는 순
박한 시골처녀 같으면서도 순교자의 열정과 고통을 간직한 지방 연극배우 마리아 팔코네티가 선
정되었다.<BR>모든 사람들을 놀라운 시각 경험에 빠지게 한 섬세한 클로즈업 중심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다양
한 톤에 반응하는 팬크로매틱 흑백필름을 사용했고,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진 서술구조에 적합
한 짧은 길이의 '숏'들로 이루어진 평행편집이 채택되었다.<BR>전체적으로는 잔 다르크를 마녀로 몰기 위한 재판 과정과 화형 장면으로 나뉘어 있으며, 역사적
으로 실재했던 인물들(주교, 영국인, 판사 그리고 군중)이 각기 다른 종교적 신념과 분노를 가
지고 이 전쟁터에 뛰어든다.<BR>'숏'과 거기에 대응하는 '뒤집힌 숏'의 관습적인 사용을 피해 가면서 흐르듯 이어지는 클로즈업
을 채택한 이 영화의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잔 다르크의 고통에 찬 얼굴과 그 뒤 하얀색의 
텅빈 실내공간이다. 말하자면 원근법에 따른 공간적 깊이가 부재하는 것인데, 이때 이것을 대체
하는 것이 바로 정신적 깊이이며, 잔 다르크 역의 팔코네티의 얼굴은 마치 중세의 종교적 도상
화처럼 정신적 형상으로 제시된다.<BR>그러나 중세와는 달리 이 영화의 후반부는 종교적 구원의 영원성보다는 잔 다르크의 삶에 대한 
열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가 삭발당한 채 화형대에 올라 "오늘밤 나는 어디에 있을까"라는 독백
을 할 때, 그리고 바람에 날려가는 머리카락과 하늘을 나는 비둘기들, 어머니의 품에 편안히 안
긴 아기의 이미지들이 보여질 때, 천상의 세계는 멀어 보이고 지상은 그보다 가까워 보인다.<BR>하지만 이런 문제제기는 정말 이제 고전적(진부함)으로 보이고, 이 영화가 영화 100년사에서 갖
는 의미는 그래서 형식미의 탁월함 정도에 머무를 것 같다.<BR>그러나 들뢰즈의 의견은 또 다르다. 이 영화는 오히려 세상이 저질영화처럼 보이는 20세기에 태
어난 서정적 영화이며 바로 그 정서적 효과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잃어버린 것<BR>을 복원할 꿈을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체 무엇을 복원한단 말인가? &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
가&gt;
<BR>#12. &lt;대지 Zemlya&gt;(1930) / 감독: 알렉산드르 도브첸코
알렉산드르 도브첸코(1894&shy;1956)의 &lt;대지&gt;는 소련영화의 발달사에서 다민족국가 영화의 출현을 
의미한다. 볼세비키 혁명 후 소련영화는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발달했으나 곧 이어 그 동력은 각 
민족국가로 확산되었다. 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그러나 &lt;대지&gt;의 영화사
적 가치는 그에 한정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혁명의 선전선동과는 궤를 달리하여 인간과 대지의 
하나됨이라는 영원성의 테마를 추구한 것이었으며 형식상으로는 당대 소련영화의 거대한 흐름이
었던 몽타주영화와는 달리 명백히 시적 영상으로 형상화된 작품이었다.<BR>도브첸코는 우크라이나의 체르니코프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혁명의 와중에서 그는 교사, 
공산당 지하요원, 외교관 등의 다양한 경력을 쌓게 되는데 사실 그를 매료한 것은 예술이었다. 
그는 베를린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고 귀국해서는 풍자화가로 
나섰다가 1926년에 영화에 몸을 던졌다. 영화에서 도브첸코의 첫 작업은 엑센트릭한 코미디 장
르에서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그다지 주목을 못 끈 실험작들이었다. 영화감독으로서 그의 명성
을 확고하게 해준 것은 네번째 영화인 &lt;즈베니고라&gt;(1928)였다. 여기서부터 그의 영화는 고향 
우크라이나의 자연과 삶과 빈곤과 혁명을 담아내기 시작하였다. 앞의 영화와 &lt;무기고&gt;(1929), &lt;
대지&gt;, 발성영화 &lt;이반&gt;(1932)은 이 계열의 4부작이라 해도 좋은 영화일 것이다.<BR>&lt;대지&gt;는 우크라이나의 한 농촌마을에서 일어난 근본적인 사회적 변동을, 새 것과 낡은 것, 콜
호스 농민과 지주, 사람에 대한 신뢰와 신에 대한 신앙 사이에서 생기는 비극적 충돌을 통해 응
시하고 있다.<BR>도브첸코는 '나는 &lt;대지&gt;를 농촌에서 새 생활의 새벽을 예고하는 작품으로서 기획했다'라고 말
했으나 결과는 그 이상이었다. 왜냐하면 완성된 영화는 농촌사회의 계급투쟁을 담고 있으면서도 
본질적으로 땅을 경작하는 농민들의 영원한 세계인 노동과 대지의 친화, 자연의 순환처럼 끝없
이 이어지는 인간생명의 순환, 그리고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지방의 토속적 서정으로 가득찬 영
상시로 나타났기 때문이다.<BR>&lt;대지&gt;는 인간의 노동으로 기름진 자연에 대한 찬가에서 시작한다. 휘늘어지게 열매를 맺은 사
과나무 아래서 한 노인이 사과를 씹으며 죽어간다. 그의 곁에는 노인의 생명을 이어가기라도 하
듯 한 어린애가 역시 사과를 먹고 있다. 느리고 시적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농업의 집단화를 둘
러싼 지주와 빈농의 갈등으로 긴장을 더해가다 바실리가 이 마을의 첫 트랙터를 들여와 수세기 
동안 이어져온 낡은 소유의 상징인 밭두렁을 허무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마지막 장면은 지
주에게 살해된 콜호스 농민지도자 바실리의 장례식이다. <BR>친구가 든 그의 미소짓는 초상이 사과나무 가지를 스친다. 이어 바실리의 어머니가 또 하나의 
생명을 낳고 비가 내려 대지를 적시는 시적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BR>도브첸코는 이 영화에서 서술을 위해서든 충돌을 위해서든 장면 내에서 당대 소련영화의 화려한 
몽타주를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미지와 이미지, 장면과 장면의 연결과 병치와 상승작용
을 더 중요시하였다.<BR>그의 쇼트들은 대체로 느릿하고 길며 종종 극도의 광각으로 촬영된다. 그것은 대지의 광대함과 
자연의 영원성을 드러내는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요소 때문에 단세포적인 
혁명론자들에게 공격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그것은 영화사가 &lt;대지&gt;를 도브첸
코의 오랜 화가의 꿈이 스크린에서 성취된 걸작으로 기록하게 한 요소였다. &lt;필자: 이정하/영화
평론가&gt;
<BR>#13. (1931) / 감독: 프리츠 랑
영화사에 길이 남는 걸작 가운데는 대중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거나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경
우가 많지만 그와 더불어 다음 세대의 영화에 끼친 영향력이 더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경우도 있
다.<BR>프리츠 랑의 &lt;Ｍ&gt;도 그러한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작품이다. 30∼40년대 필름 누아르 감독들에게 
&lt;Ｍ&gt;은 교과서와 같은 텍스트였고, 20년대말 유성영화가 갓 태어난 뒤 사운드를 영화 속에 어떻
게 삽입할 것인가에 대해 우왕좌왕하고 있던 영화인들에게 &lt;Ｍ&gt;은 역시 모범적인 교본이었다.<BR>20년대와 30년대의 독일사회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권위주의를 지향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
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된 작품이 바로 &lt;Ｍ&gt;이다.<BR>뒤셀도르프의 어린이 살해사건을 모델로 한 이 작품은 어린이 살해범 베케르트를 쫓는 경찰과 
지하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랑은 이러한 이야기를 통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에 
대한 주제를 제시한다.<BR>근대적 의미의 공동체는 자손을 통해 영속되며 법과 같은 권위적 관리체제에 의해 유지되는데, 
그러한 권위는 개인의 권리를 제한함으로써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끝없는 자유를 원하는 
개인의 본능은 공동체와 권위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 될 수도 있다.<BR>살인범 베케르트는 바로 그러한 위협의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정체성의 혼
란을 겪는 인물이다. 이러한 베케르트의 정체성 혼란, 즉 또다른 자아를 구현한랑의 기법들은 
필름 누아르의 시각적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BR>베케르트의 또다른 자아는 그림자나 거울 또는 유리창에 반영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림자나 
거울은 필름 누아르의 가장 지배적인 시각적 모티브 가운데 하나다.<BR>또한 랑은 베케르트의 개인적 혼란과 더불어 사회적 혼란도 이야기한다. 즉 베케르트를 추적하
는 사회적 세력이 경찰과 지하세계로 이원화되어 있는 것이다. 랑은 이러한 두 집단의 장면들을 
완벽한 대칭구조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두 집단의 베케르트 추적을 위한 회의 장면은 교차편집
의 전형으로 꼽힌다.<BR>사운드기법은 오늘날에도 그 탁월함이 빛을 잃지 않고 있다. 랑은 사운드를 단순히 영상에 종속
적인 것이 아닌, 대위법적인 관계로 파악했다.<BR>특히 경찰과 지하세계의 장면들은 그 유사한 구도에 반해 사운드를 통해 대립적 관계를 부각시
키고 있다. 즉 두 집단이 살인범을 쫓는 과정에서 경찰은 시각적인 것(지도, 필적 등)에 치중하
는 반면, 지하세계는 소리를 통해 베케르트를 붙잡는다. 맹인거지가 기억해낸 베케르트의 '페르
귄트 조곡'의 휘파람소리는 청각적인 모티브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나 랑의 가장 탁월한 사운
드기법은 은유적 기법이다.<BR>소녀 엘시가 납치되었음을 알리는 장면은 어머니가 엘시를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다음 장면인 
텅빈 계단에서 울려퍼지며, 이어 엘시의 공이 공터로 굴러가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BR>이처럼 랑은 사운드를 영상과 결합시켰을 때 그것이 만들어내는 은유적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도 
앞선 생각을 가진 감독이었다.<BR>이 작품이 지닌 또하나의 가치는 표현주의의 그림자를 안고 심리적 사실주의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lt;Ｍ&gt;을 영화사의 전환기에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도 있는 것
이다. &lt;필자: 김지석/부산예술학교 교수&gt;
<BR>#14. &lt;모던 타임스 Modern Times&gt;(1936) / 감독: 찰리 채플린
&nbsp;
헐렁헐렁한 바지에 꽉 끼는 윗도리, 작은 중산모에 크고 낡아빠진 구두, 짧은 콧수염에 특유의 
마당발 걸음, 그리고 옆구리엔 지팡이를 지닌 구시대의 신사. 서울의 수많은 레스토랑 간판에 
새겨져 있어 이제는 그 분장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도 다 바래버린 형상. 이 형상은 찰리 채
플린이 지금으로부터 80년전 처음 영화에 출연하면서 창조한 방랑자의 모습이다. 시대를 거슬러 
가는 이 방랑자의 분장은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두에서 산업화를 향해 치닫는 미국사회의 물질주
의적 가치관에 대항하는 존재의 상징이었다. 빅토리아 시대의 신사도와 자부심으로 전통을 고수
하며 현대사회를 비판하고 도전하는 인물을 표상한 것이었다.<BR>1936년도 영화 &lt;모던 타임스&gt;(현대)는 채플린이 이 방랑자의 분장으로 등장한 마지막 영화이며 
또한 그의 마지막 무성영화이다. 방랑자는 기계만능의 현대를 풍자하는 데 발레와 같은 슬랩스
틱 제스추어를 이용하며 감상적 로맨스와 함께 그 사회를 떠나버림으로써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다. 채플린에게서 말하는 방랑자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이 마지막 무성영화에서 
방랑자로 하여금 무국적의 묘한 언어로 노래하게 함으로써 무성과 유성의 경계를 넘어버린다.<BR>&lt;모던 타임스&gt;에서 채플린이 그리는 현대는 냉혹하다. 노동자들은 축사로 끌려가는 양떼처럼 공
장으로 몰려 들어가고, 자본가는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노동자들을 감시한다. 최소의 시간에 최
대의 생산을 위해서 노동자들은 숨쉴 틈도 없으며 화장실 가는 시간도 체크당한다. 화장실에서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 하면 한쪽 벽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자본가가 불호령을 내린다. 점심시간
도 아까워 자본가는 작업 중에 급식할 수 있는 자동급식기계를 설치한다. 자동화되는 일터는 실
직자를 대량 생산해내고 그들은 거리에서 시위를 벌인다. <BR>굶주림 때문에 빵 하나를 훔치는 사람도 있고, 시위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이도 있다. 그러
한 이들로 인해 거리에는 경찰관들이 가득하다.<BR>주인공 방랑자는 현대의 노동자이다. 그는 무엇을 생산해내는지 알 수 없는 작업대에서 볼트를 
조인다. 그의 손이 반의 반초만 늦어도 일관작업체제는 엉망이 되고 쉴새없이 볼트를 조이는 그
의 두 손은 작업대를 떠나도 자동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여자의 엉덩이에 달린 단추도 조이려 
달려든다. 그는 자동급식기계를 시험하는 대상으로 뽑히지만, 고장이 나 광포해진 기계는 그에
게 음식물을 내치고 그를 폭행하고 미치게 하고 거대한 기계의 흐름으로 먹혀들어가게 만든다.<BR>거리에서 그는 트럭의 꼬리에서 떨어진 붉은 깃발을 들고 뛰다가 시위대열에 앞장서기도 하며, 
고아 소녀를 만나 가정을 꿈꾸고 직업을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방랑자는 현대의 작업에 적응하
기 힘들다. 결국은 소녀와 지평선을 향해 떠난다.<BR>대중사회에서 소멸되어가는 인간성에 대한 고발과 물질문명이 가져오는 비인간성에 대한 비판을 
담은 &lt;모던 타임스&gt;는 공산주의적 경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물의를 일으켰다.<BR>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상영이 금지되었으며, 오스트리아에서는 붉은 깃발을 들고 뛰는 장면이 
검열에서 잘렸다 한다. 그리고 이 영화와 뒷날 만들어진 &lt;위대한 독재자&gt; &lt;베르두씨&gt;에서 보여
준 비판적이며 좌파적 색채는 훗날 매카시 선풍이 할리우드를 뒤흔들 때 채플린이 미국으로부터 
추방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 담긴 비판의 소리는 아직도 또 앞으로도 유효
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
<BR>#15. &lt;올림피아 Olympia&gt;(1938) / 감독: 레니 뤼펜쉬탈
&nbsp;
레니 뤼펜쉬탈이 파시스트의 어용작가라는 치욕적인 오명을 얻게 된 것은 1934년 나치의 전당대
회를 기록한 &lt;의지의 승리&gt;로부터 출발한다.<BR>히틀러를 천상에서 내려온 구세주로 표현하면서 지루한 정치적 이벤트를 웅대한 드라마로 탈바
꿈시킴으로써, 그는 베니스 영화제의 그랑프리를 거머쥠과 동시에 대표적인 관변 작가의 대열에 
올라섰다.<BR>그러나 그의 다음 작품 &lt;올림피아&gt;는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나치당의 공식선전영화라고 하기에
는 힘든 배경을 지니고 있다. 인간육체의 미적 가치에 매혹당한 뤼펜쉬탈은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의 직접 교섭을 통해 촬영허가를 받아내는 데 몇개월을 소진해야 했고, 자신과 애증관계에 있었
던 선전상 괴벨스의 방해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 아리안족의 우
수성을 만천하에 알리고 파시즘의 도도한 흐름을 전파할 절호의 기회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lt;의
지의 승리&gt;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나치당에게 그리 매력적인 매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너무도 '느린' 매체였으며, 선전의 효율성에서 보자면 영화보다는 라디오가 확실한 투자 대상이
었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오락적 기능에 초점을 맞춘 우민화의 도구로 정의되었다. 기념비적인 
행사에 걸맞는 술작품을 후세에 남기고 싶어하던 히틀러의 독단이 없었다면, 뤼펜쉬탈은 엄청난 
제작비를 끌어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BR>개회식 장면을 성대하게 묘사하기 위해 비행선에까지 카메라가 장치되고, 다이빙 장면을 연속적
으로 찍기 위해 촬영기사들은 몇개월 동안 수중촬영 훈련에 몰두해야 했다. 그런 치밀한 사전준
비 결과 2주간의 운동경기는 2백25분의 서사시로 새롭게 탄생했다. 바그너풍의 음악을 배경으로 
안개에 싸인 고대 그리스에서 채화된 성화가 독일로 전해지고, 히틀러는 천상의 신전에서 이를 
내려다본다. 프로파간다의 기조가 깔려 있지만, 이것만은 아니다. 나레이션을 최소한으로 줄이
고 인간육체와 음악을 절묘하게 조화시킴으로써 뤼펜쉬탈은 전혀 새로운 예술적 성과를 창조해
냈다.<BR>게다가 가장 역동적인 시각적 이미지가 넘쳐흐르는 육상경기들을 미국의 흑인선수들이 휩쓸어버
리는 바람에 영화는 애당초 선전의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어졌고, 이러한 장면을 삭제하라는 나
치관료들의 요구를 뤼펜쉬탈은 단호하게 거부했다.<BR>그러나 정치적 구호의 거세도 프로파간다로부터의 탈출을 보장할 수는 없었다. 인간의 육체가 
시종일관 찬양되고, 준군사적이며 독특한 양식으로 패턴화된 시각적 모티브들이 반복해서 등장
함으로써 파시스트의 미학과 시각적 상상력의 정수가 드러난다. 그 점에서, 히틀러에게는 매력
을 느꼈지만 나치의 이데올로기에는 반대했다는 뤼펜쉬탈의 항변은 별다른 힘을 지니지 못하며, 
파시즘의 매혹적인 시대정신을 그는 무의식적으로 담아내버린 셈이다. &lt;올림피아&gt;가 이후 대중
세뇌의 주요수단으로 등장한 텔레비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장르의 원초적 형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그러한 역사적 평가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근거이다.<BR>객관성을 가장한 물신주의는 언제라도 파시즘과 만나게 되기 마련이다. &lt;올림피아&gt;가 남긴 교훈
은 하나의 이벤트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당대 현실의 왜곡과 동치될 수 있다
는 점이다.<BR>그것이 국가의 정책적 개입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개인의 작가적 소신에 의한 것이건, 어떤 '
기록'도 역사적 책임 앞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lt;필자: 김명준/영화평론가&gt;
<BR>#16. &lt;커다란 환상 La Grande Illusion&gt;(1937) / 감독: 장 르누아르
&nbsp;
만일 영화가 리얼리즘과 형식주의 사이에 놓여 있다면, 그건 미장센과 몽타주의 역사로 다시 서
술될 수 있을 것이다. 미장센은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크다는 변증법적인 몽타주와 반대로 시간
과 공간의 현실적 반영 위에 놓여진 전체로서의 시스템이 부분의 합보다 크다고 생각한다. 영화
의 리얼리즘은 카메라가 현실을 기계복제할 때 어떻게 모순을 보존하고 반영하는가에 달려 있다
고 믿어 왔다.<BR>장 르누아르(1894∼1979)는 미장센이라는 영화 수사학과 리얼리즘이라는 미학을 자신의 작품 속
에서 구현해낸 감독이다. 인상주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는 회
화보다는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보마르셰의 연극, 그리고 좌파 인민전선의 활동에 더 많은 정열
을 바쳤다. 르누아르 자신이 마르크스주의자인 적은 없었으나, 한번도 노동자들과 인민의 편에
서 벗어난 적도 없었다. 그러한 세계관이 때로는 모순되고 때로는 모호한 상태로 머물면서도 그
의 영화 속에서 사해 동포주의적 휴머니즘을 일관되게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르누아르의 믿음이 담긴 영화가 &lt;커다란 환상&gt;이다.<BR>영화의 무대는 1차 세계대전 말, 프랑스 공군 마레샬(장 가방)과 장교 보엘디외는 비행기가 추
락하여 그만 독일군 포로가 된다. 이 포로수용소에는 여러 나라의 군인들이 잡혀 있었고, 수용
소장은 귀족 출신인 폰 라우펜쉬타인(&lt;그리이드&gt;의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감독)이다. 그는 제네
바 협정에 따라 신사적으로 포로를 대하지만, 포로들은 탈출을 계획한다.<BR>그리고 프랑스 장교 보엘디외의 희생 덕분에 마레샬과 유대인 로장탈은 탈출에 성공한다. 두 사
람은 천신만고 끝에 영구 중립국인 스위스 국경을 넘는다.<BR>장 르누아르는 이 영화를 '전쟁장면이 하나도 없는 전쟁영화'라는 전무후무한 원칙을 갖고 연출
한다. 그것은 평화에 대한 그의 희망이고, 신념이다. 하지만 포로수용소에 모인 수 많은 인간들 
사이의 모순에 찬 세상만사의 만화경은 그러한 꿈을 또다른 전쟁으로 이끈다. 거기에는 귀족과 
노동자 또는 자본가 사이의 계급모순, 유럽 속의 유대인의 민족 모순, 국가간의 모순, 종교 모
순이 서로 충돌하고, 편견에 차서 증오를 드러내고, 미워하고 맞선다. 그것을 르누아르는 어느 
편에 서는 대신 장시간 이동 카메라와 편집 없는 롱 테이크, 그리고 딥 포커스를 이용한 공간적 
깊이를 통해 고전적인 현실모순의 리얼리즘으로 담아낸다. 르누아르는 전쟁 아래서의 자유, 전
쟁 속에서의 평등, 전쟁과 박애를 준엄하게 묻는 것이며, 그의 질문은 주제와 형식의 일치를 통
해서 보기 드문 성공을 거두었다.<BR>영화사상 유명한 마지막 장면. 인터내셔널한 단결을 꿈꾸는 노동자 출신의 마레샬은 말한다. "
이제 곧 전쟁이 끝나겠지, 그러면 다시는 전쟁이 없을거야." 그러자 유대인 은행가 로장탈은 대
답한다. "그건 자네의 커다란 환상일세." 그리고 두 사람은 눈 덮인 스위스 국경을 넘는다. 이 
영화는 37년 6월4일 개봉되었고, 그로부터 2년 뒤 예언대로(!) 2차 대전이 발발하였다.<BR>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lt;커다란 환상&gt;을 '영화의 적 1위'라고 부르며 모든 프린트를 소각시키라
고 지시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전후 이 영화의 프린트가 발견된 곳은 46년 뮌헨이었다. 그뒤 
수많은 시네마데크의 노력으로 72년에야 비로소 우리가 볼 수 있는 '완전판'이 복원되었다. &lt;필
자: 정성일/영화평론가&gt;
<BR>#17. &lt;게임의 규칙 La R gie du jeu&gt;(1939) / 감독: 장 르누아르
1956년, 파리의 시네클럽을 운영하던 장 가보리와 자크 마르샬이 창고 속에 처박혀 있던 &lt;게임
의 규칙&gt;의 필름을 발견해 냈다. 이 필름은 그뒤 3년이 지난 1959년에 1939년의 원판에 거의 가
까운 상태로 복원되어 다시 공개됐다. 이 작품의 전면적인 재분석에 들어간 영화평론가, 학자들
은 영화사상 가장 복잡한 등장인물간의 관계와 풍부하고도 상징적인 영상기법에 놀랐다.<BR>후작 로베르의 성에서 열리는 사냥파티에 참가한 상류계급 사람들간의 갈등과 하인계급 사람들
간의 갈등, 그리고 이들 두 부류 사이의 얽히고 설킨 갈등이 마지막에 가서 만나는 플롯을 통해 
장 르누아르는 '사회의 각 계층'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BR>그러나 상류·하류계급의 등장인물의 관계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관객들은 여러번 이 작품을 
보지 않고서는 그 관계를 이해하기 힘들다.<BR>상류계급의 경우 후작부인 크리스틴은 젊은 비행사 앙드레, 앙드레의 친구이자 아버지의 친구였
던 옥타브, 생오뱅과 미묘한 관계에 빠지고 로베르는 주느비에브와 연인관계이다. <BR>로베르와 주느비에브의 관계는 옥타브가 알고 있으며 크리스틴도 알게 된다. 하녀 리제르는 남
편 슈마허와 새로운 하인 마르소와 삼각관계에 빠지며 이들의 관계가 엉뚱하게 앙드레의 죽음을 
불러 일으킨다.<BR>르누아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나는 모든 게임이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규칙을 깨뜨리는 이는 게임에서 지는 것이다." 여기서 게임의 규칙은 상류사회의 결
혼과 간통, 사냥 등이며 하인계급의 유희일 것이다.<BR>그러나 이러한 게임은 궁극적으로는 성의 게임이며 또 서로 얽히고 깨어지지만 상류사회의 그것
이 보다 '위선'적이다. 앙드레는 이러한 규칙을 깨뜨리기 때문에 죽음을 당한다.<BR>르누아르는 그 자신이 직접 옥타브로 출연하여 이들의 성적 게임의 매개자이자 또 참여자가 된
다. 그래서 유려한 카메라워크는 옥타브를 중심축으로 이동해 나간다. 카메라는 그를 따라다니
며 귀족계급과 하인계급의 사회를 자연스럽게 대비시키는 것이다.<BR>그리고, 무엇보다도 오손 웰스의 &lt;시민 케인&gt;(1941)의 딥 포커스 촬영이 이미 여기서 확고한 미
학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영화적 공간개념을 확장시킨 것이다. 전심초점 공간의 표현으로 깊
이감을 강조하였을 뿐 아니라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프레임의 경계를 계속 드나들게 함으로써 훗
날 영화학자 노엘 비루시가 체계적으로 분석한 외화면공간(오프스크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르누아르의 탁월한 연출기법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클로즈업이 거의 배
제된 풀숏화면의 배경이 되는 세팅과 의상코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중의 의미를 내
포하고 있다(남성성/여성성, 우아함/천박함, 전통/현대, 도시/시골, 상류/하류계층 등).<BR>이처럼 이 작품에서 르누아르가 20세기초 프랑스 사회의 모든 계층을 들여다보는 영화적 형식은 
독창적이기도 하지만, 프랑스의 방대한 문화적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18세기 프랑스 코미디 야
외극의 전통과 뮤세, 보마르세, 마리보의 영향에서 낭만주의 회화의 전통에 이르기까지 &lt;게임의 
규칙&gt;에 세세하게 스며있는 문화적 전통은 왜 르누아르의 영화가 프랑스인들로부터 그토록 사랑
을 받았는지를 짐작케 해 준다. &lt;필자: 김지석/영화평론가·부산예술학교 교수&gt;
<BR>#18. &lt;판타지아 Fantasia&gt;(1940) / 제작: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월트 디즈니는 1937년 겨울 &lt;백설공주와 일곱 난장이&gt;를 개봉했고 이 작품의 엄청난 성공은 디
즈니에게 해마다 장편 만화영화 한 편씩을 공개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는 곧 
&lt;피노키오&gt;와 &lt;밤비&gt; &lt;판타지아&gt; 등 세 편의 장편 만화영화를 동시에 제작한다는 계획에 착수했
다.<BR>해를 넘기면서도 승승장구하는 &lt;백설공주…&gt;에서 얻은 세계적인 명성과 결벽증에 가까운 완성도
를 이어가고자 디즈니는 늘 그래왔듯이 &lt;피노키오&gt;의 줄거리를 완전히 개작하는 한편, 필라델피
아 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였던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와 교류하며 &lt;판타지아&gt;의 명장면들을 구
상해 갔다.<BR>&lt;판타지아&gt;는 1940년에 처음 발표되었지만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면들은 1990년에 영화 발
표 50주년을 맞아 현대적인 영상기술과 과학에 힘입어 원작보다 세련되게 복원한 작품이다.<BR>이 장편 만화영화는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디즈니 프로덕션의 화가들을 포함한)에 의해 만들어
졌음을 애써 강조하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화면 중심에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뒷모습이 실루
엣으로 우뚝 서고, 간혹 반사된 그림자로 처리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들려주는 클래식 명
곡이 도입부를 장식한다. 그 첫 삽입곡은 바흐의 &lt;토카타와 푸가 라단조&gt;. 이때의 화면은 디즈
니 작품 스타일로서는 의외라고 여겨지는 실험적 영상들로 꾸며져 있다.<BR>음악과 어우러지는 선과 면의 움직임, 속도감과 중첩의 이미지, 인류가 이루어 온 음악의 성과
와 새로운 영상인 애니메이션의 조화는 제목 그대로 관객들을 판타지아의 세계로 끌어간다. 독
일의 표현주의 전위미술가 오스카 휘싱거의 추상 애니메이션이 이를 뒷받침한다.<BR>다음 곡은 디즈니의 전형으로 굳어진 금빛가루 뿌리는 요정 팅커벨이 유도하는 차이코프스키의 
&lt;호두까기인형조곡&gt;이다. 이 부분을 구성하는 음악과 춤의 장면들이 사실은 &lt;미녀와 야수&gt;의 황
홀한 댄스 장면 등 이후에 제작된 거의 모든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화면 구성에 정형적인 모범으
로 재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BR>디즈니의 미키마우스에 대한 집착은 이어지는 삽입곡을 담은 세번째 장면에서 드러난다. &lt;마법
사의 도제&gt;(폴 듀카스 작곡)라는 표제음악이 선행하는 이 부분에서 디즈니는 무언의 미키의 행
동을 첫 곡인 바흐의 삽입곡에서와 일치하도록 꾸며 자신이 공들여 창조한 만화영화의 주인공에
게 인간의 예술을 향유하도록 한다.<BR>인류의 클래식 예술을 향한 디즈니의 허영은 이어지는 스트라빈스키의 &lt;봄의 제전&gt; 장면에서는 
우주의 창조와 지구의 탄생을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면서 진가가 드러난다.<BR>완전 수공으로 제작되었을 당시의 작업 환경에서 이러한 교만에 가까운 작품을 지휘할 수 있었
던 디즈니의 집착은 그의 감추어졌던 생의 진면목이 일부분 드러나면서 이해를 구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BR>이 작품의 예술적 방황은 베토벤 6번 교향곡 &lt;전원&gt;을 삽입곡으로 하는 부분에서 그리스 신화와 
만화영화의 접맥을 시도하면서 나른한 로맨스를 표현하더니, 이윽고 발레 오페라인 &lt;시간의 춤&gt; 
장면에서 코끼리, 악어, 하마 등이 벌이는 잡탕적 무희로 이어져 한숨을 돌리게 한다.<BR>그러나 영화는 러시아 작곡가 무소르그스키의 &lt;민둥산의 하룻밤&gt; 삽입곡이 이어지면서 이 모든 
것을 일거에 거부하는 듯 흉칙한 악마의 죽음을 부르는 몸짓으로 비틀린다.<BR>움추린 악마의 몸뚱아리가 교교하게 험한 산봉우리에 몸을 숨기면 카메라는 서서히 빠져나와 어
느덧 신을 경배하는 길고 긴 촛불행렬로 이어지며, 슈베르트 곡 &lt;아베마리아&gt;의 선율만 남기며 
역사상 등장했던 더없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작품 하나'가 끝이 난다. &lt;필자: 이용배/만화영화 
감독&gt;
<BR>#19. &lt;시민 케인 Citizen Kane&gt;(1941) / 감독: 오손 웰즈
&nbsp;
영화의 역사는 1941년 5월1일 개봉한 &lt;시민 케인&gt;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어떤 영화도 
이제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영화의 모든 사고에 새로운 배치가 이루어졌다. 역
사는 갑자기 인식론적 단절을 경험하고, 고전주의 영화의 시대는 그 막을 내렸다. 그리고 &lt;시민 
케인&gt;은 모더니즘 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BR>오손 웰즈(1916∼1985)는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추종자였으며, 체홉과 입센에 정통한 연극연출자
였다. 그는 22살에 머큐리 극단을 결성하여 실험극을 시도했지만 후원자는 아무도 나서지 않았
다.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하여(!) 라디오 드라마 연출을 맡기도 하였다. 그리고 38년 10월30일 
CBS 라디오에서 "임시 뉴스를 알려 드립니다"로 시작하는 가상 화성인 침입 드라마 &lt;우주전쟁&gt;
으로 라디오 역사상 유례없는 소동을 일으켰다.<BR>오손 웰즈는 그 해의 인물이 되었으며, RKO 영화사는 파격적인 조건으로 그에게 영화 연출을 제
안하였다.<BR>오손 웰즈는 머큐리 극단을 이끌고 할리우드에 입성하였다. 그리고 그는 영화에 관한 전권을 갖
는다는 조건으로 허만 맨키비츠와 공동으로 쓴 시나리오로 '비밀리에' 촬영에 들어갔다.<BR>영화는 거대한 성 제나두에서 신문왕 찰스 포스터 케인이 "장미꽃 봉오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에 관한 기록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아무래도 그 한마디가 걸린다. 그래
서 기자 톰슨은 살아 생전 친했던 네 사람을 만나 그에 관한 이야기를 취재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비밀을 알지 못한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가 어린 시절 썰매에 쓰인 이름인 줄은. 오손 웰즈
는 단 한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기자를 따라가며 네 사람을 만나 플래시 백 구조로 케인의 
주변에 있던 다섯 사람의 눈으로 케인을 본다. 잘 짜여진 19세기 소설의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
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그 속에서 같은 사건과 같은 인물은 서로 상이한 진술에 의해 반복과 
차이를 경험한다. 그것은 영화에서 이중화법을 통하여 영화적 시간으로 이야기를 다시 배열하고 
거기서 생겨나는 모순을 드러내, 질서정연하다고 믿었던 고전적 세계를 비판적으로 다시 성찰하
게 만드는 것이다.<BR>오손 웰즈는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만남을 담으면서 촬영감독 그레그 톨란드의 '혁명적인' 도움
을 받았다. 그는 초점거리가 깊은 딥 포커스와 정지할 줄 모르는 이동 카메라, 그리고 장시간 
촬영과 경사 구도로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공간과 소련 몽타주 기법에서 끌어낸 화면과 사운드
의 충돌, 그리고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의 미장센을 할리우드의 거대한 기술적 토대 위에서 전적
으로 새롭게 배치할 수 있었다. 이것은 영화의 백과사전이며, 전례가 없는 대규모의 실험영화였
다.<BR>그러나 당시 언론 재벌이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자신의 스캔들을 소재로 삼았다는 이유에서 
이 영화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매장하였다.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하였으며, 오손 웰즈는 
평생 그 빚 속에서 헐떡거리며 저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마침내 복권한 &lt;시
민 케인&gt;이 모든 영화평론가들의 열광이며 모든 영화감독들의 절망이 되기는 했지만, 오손 웰즈 
자신에게는 지옥이었다. &lt;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gt;
<BR>#20. &lt;폭군 이반 Ivan the Terrible&gt;(1944/1946) / 감독: 세르게이 에이&#51820;슈테인
이반 4세(1530∼1584)는 모스크바 공국을 중심으로 통일 러시아를 건설한 최초의 차르이니, 그
는 뒤에 폭군 이반으로 불린다. 이 인물의 성격과 비극과 역사적 역할은 이후 러시아 예술의 주
요한 테마로 등장하였다. 에이젠슈테인이 제정 러시아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을 테마로 한 &lt;파
업&gt;으로 그의 영화활동을 시작하여 제정 러시아의 기초를 놓은 폭군 이반에 관한 영화로 이를 
마감하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BR>그는 "공포와 피로 얼룩진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국가 지도자들의 의외성과 비밀, 조폭성과 공
포, 모스크바 공국을 위한 이반의 활동과 투쟁을 전면적으로 그리"고자 하였다. <BR>그러나 모든 전체주의 국가에서 그러하듯 역사영화는 고도의 정치적 은유를 띠게 마련이다. 여
기서의 이반이 곧 스탈린을 의미함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마지막 영화임
을 알고 있었다.<BR>그는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에 앞서 수백쪽에 이르는 등장인물의 영화적 전기를 만들고 모
든 인물성격과 무대의 장면과 쇼트를 그림으로 그렸다. 그의 작업 방법은 이전과는 달리 극히 
독선적이고 광적인 것이었다.<BR>1944년 3부작 중 1부가 완성되었다. 영화는 찢어진 러시아를 통일하는 이반의 투쟁을 그린 것으
로서 기본적으로 낙관적 정서로 차 있었다. 당은 이를 환영했지만 그의 진짜 의도는 46년 2부가 
완성되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BR>그러나 3부가 거의 편집되던 시점인 46년 8월부터 당국은 &lt;폭군 이반&gt; 2부를 신랄하게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진보적 군대였던 이반의 오프리치니키(친위대)를 미국의 KKK단을 연상케 하는 타
락한 무리로 그렸으며, 강력한 의지와 성격의 소유자 이반을 나약하고 의지가 여린 햄릿과 같은 
성격으로 그린" "무가치한 영화"라는 당 중앙위원회의 비난은 2부를 58년까지 상영금지로 묶어 
놓았고 3부의 네가와 편집필름 모두를 불살랐으며 결국 에이젠슈테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결과
를 빚었다.<BR>미완성 영화 &lt;폭군 이반&gt;은 이상한 아름다움과 전율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lt;전함 포템킨&gt;과 영
화적 방법은 다를지라도 영화사상은 참된 인간주의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극적으로 증명하는 작
품임과 동시에 색채와 음악, 화면구성과 몽타주 등 모든 영화적 요소의 유기체적 통일을 지향한 
그에게 제2의 정점을 의미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역사와 관련하여 이 영화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 있는가는 동료감독이었던 미하일 롬의 다음과 같은 증언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1부와 
2부를 확연히 구별하는 것은 제작기술의 관현악적 완벽성도, 각 에피소드의 놀라운 완성도도, 
액션의 압도적인 표현력도, 편집도, 열광적인 리듬도, 영상과 소리의 대위법도 아니다. 이 모든 
면에서 2부가 1부에 비해 더욱 완벽하긴 했지만, 두 영화의 차이점은 내적 주제에 있다. 스탈린 
개인숭배의 고통이 절정에 달했을 때, 에이젠슈테인은 2부에서 감히 그 개인숭배에 반대하여 손
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공공연한 역사적 등가물들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으나 영화의 
전체구조가 그것을 시사하며, 실제로 모든 장면의 문맥(컨텍스트)을 형성하고 있다. 거의 피부
에 닿을 듯이 영화의 표현력은 풍부하였다. 그래서 살인, 처형, 혼란, 고뇌, 잔혹, 의심, 책략, 
배신 등의 분위기는 이 영화의 첫 관객들에게 광기에 가까운 불쾌감을 가득 채워 주었고, 그들
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감히 입 밖에 내려고 하지 않았다." &lt;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gt;
<BR>#21. &lt;말타의 매 The Maltese Falcon&gt;(1941) / 감독: 존 휴스톤
필름 누아르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던 41년 존 휴스턴 감독의 &lt;말타의 매&gt;와 함께 태어났다.<BR>프랑스의 범죄소설을 지칭하는 세리 누아르에서 가져온 이 말은 하드보일드풍의 펄프 픽션 이야
기 구조와 사립탐정, 어두운 세트 공간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를 그려
내면서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에 절정기를 맞이하였다. 분명했던 기승전결은 범죄의 욕망 속
에서 헝크러지기 시작했고, 얌전했던 여주인공들은 요부로 변신하였으며, 남자 주인공은 사방이 
악으로 둘러싸인 함정 속에서 배신당하며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BR>필름 누아르는 할리우드의 모든 장르 중에서 가장 음울하고 비관적인 기분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지키는 파수병이었다. 그리고 &lt;말타의 매&gt;에는 그 모든 것이 거의 완전한 원형으로 보존되어 있
다.<BR>존 휴스턴(1906∼1987)은 윌리엄 와일러와 하워드 혹스 밑에서 연출 수업을 받았으며, 그 스스
로 고백하듯 평생 제임스 조이스의 열렬한 독자였다. 그는 여러 장르의 영화를 찍었으나 자신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필름 누아르로의 복귀'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말해왔다.<BR>그는 빔 벤더스와 존 밀리어스, 로만 폴란스키, 오우삼 그리고 &#53276;틴 타란티노의 우상이었으며 
또한 프랑스 카이에 뒤 시네마 비평가들에 의해 이류 감독(!)으로 낙인 찍힌 연출자이기도 했다
.<BR>&lt;말타의 매&gt;는 하드보일드 소설가 새뮤얼 대시엘 해밋 원작의 세번째 영화화이다. 사립탐정 샘 
스페이드(험프리 보가트)는 브리지드라는 미스테리한 여성의 방문과 함께 동료를 살해당한다. 
그는 사건을 뒤쫓으면서 사방에서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음험한 사내 카이로(페터 로레)와 그 뒤에 있는 '뚱보' 굿맨은 그에게 '말타의 매'라는 조각을 
요구한다. 그 속에는 보석이 들어 있다는 단서와 함께. 음모와 허무로 가득 찬 하드보일드 소설
을 어둠과 욕망의 영화로 옮겨놓은 것은 전적으로 존 휴스턴의 뛰어난 각색과 연출이다. 그는 
영화 전편을 세트에서 촬영하면서 실내 공간을 밀폐공포증의 노이로제와도 같은 상황으로 만들
어 놓았다. 등장인물들은 예외없이 운명의 덫에 빠져든 것처럼 꼼짝 못하고, 영화는 이야기가 
한단계 진전될 때마다 매번 같은 공간으로 돌아와 이야기 구조 속에서 플롯을 발전시킨다. 그것
은 반복이면서 또한 차이의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프레임과 사운드의 관계를 새롭게 발전시켰다. 
그 관계는 끝이 없을 것 같은 쇼트와 상대 쇼트의 반복 속에서 두 사람만이 있는 미디엄 쇼트(
프랑스어에서 '아메리칸 쇼트'라고 번역하는!)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냈으며, 거기서 할리우드
는 고전적인 프레임의 공간을 완성하였다.<BR>웨스턴의 올 쇼트, 뮤지컬의 풀 쇼트, 갱스터 영화의 편집, 멜로드라마의 클로즈업에 이어 필름 
누아르는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새로운 신화적 공간을 만들어냈으며, &lt;말타의 매&gt;는 바로 그 입
구이다. &lt;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gt;
<BR>#22. &lt;인생유전 Les Enfants du Paradis&gt;(1945) / 감독: 마르셀 까르네
2차대전이 발발하자 30년대 프랑스의 시적 사실주의를 주도하던 중요한 작가들은 프랑스를 떠났
다. 장 르누아르와 줄리앙 뒤비비에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자크 페데는 스위스로 피난갔다. 그들
이 프랑스를 비운 사이 이미 &lt;안개 낀 부두&gt;로 명성을 떨치던 마르셀 카르네만이 파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느 평론가는 "비시 정권이 패배한다면 그것은 &lt;안개 낀 부두&gt;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 그 염세적이며 패배감에 찬 성향이 문제라는 것이다.<BR>카르네는 1840년대 루이 필립 치하의 파리 극장가 블르바르 뒤탕플을 무대로 인간극을 연출했다
. 극장과 나이트 클럽이 줄지어 서 있던 환락가이자 범죄의 거리인 이곳에서 팬터마임 연기자 
바티스트 뒤브로아주는 스테이지에서 나체춤을 추는 가랑스와의 애정을 축으로 장장 3시간35분
의 인간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가랑스를 둘러싼 뒤브로, 극작가 피에르 라스네르, 연극배
우 프레데리크 르메트르 등은 실존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낭만적인 사랑은 가상적인 것이
었다.<BR>우리들에겐 샹송 &lt;고엽&gt;의 작사자로 더 알려진 시인 자크 프레베르가 시나리오와 대사를 담당했
다. 나치 점령하의 파리에서 3년3개월간의 제작 끝에 이뤄진 작품이다.<BR>예술을 사랑하는 서민들의 기질과 사랑의 끈질긴 근성을 보여줌으로써 나치에 대한 저항으로 평
가되었던 &lt;인생유전&gt;에는 수많은 프랑스인들이 갈채를 보냈다. 카르네는 프랑스가 해방되고 다
시 이 영화를 상영했을 때 의상제작자 제리코 역의 로베르 비강이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피
에르 르누아르로 교체시켰다.<BR>모두 2부로 구성된 이 작품은 1부 &lt;범죄의 거리&gt; 2부 &lt;하얀 남자&gt;이다.<BR>장 루이 바로의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사랑과 팬터마임 연기. 당대의 명배우 피에르 브라쇠르, 
마르셀 에랑, 마리아 카르레스와 무엇보다 여주인공인 아를레티 등의 불꽃튀는 열연으로 발자크
의 인간극장을 연상케 한다.<BR>&lt;세계 영화전사&gt;를 쓴 프랑스의 영화사가 조루주 사들은 이 작품을 카르네의 대표작으로 꼽는다
. '뒤브로의 사랑. 팬터마임. 발자크적인 여인 아를레티와 정숙한 아내 마리아 카자레스와의 대
비, 보헤미안적인 배우 브라쇠르, 무정부주의적인 암살자 에를랑. 그리고 대중연극과 범죄의 거
리의 풍속도 등은 예술과 현실 사이를 넘나드는 걸작이다. 멜로드라마, 비극, 팬터마임 등의 묘
미가 섞여 있다.<BR>이 작품이 나치 치하의 파리에서 상영되기 시작했을 때 연합군은 이미 이탈리아 제노아에 막 상
륙했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한편에 2천7백50미터 이상의 필름을 사용하지 못하게 모든 제작사
에 명령했지만 이 작품은 5천미터나 되는 필름을 사용했다.<BR>원제목을 직역하면 &lt;천국의 아이들&gt;이지만 'paradis'라는 뜻은 극장 3층의 가장 값이 싼 자리를 
일컫기도 하나, 프레베르는 서민과 연극배우를 통틀어 그렇게 부른 것이다.<BR>&lt;인생유전&gt;은 나치에 저항하는 프랑스 서민들의 예술기질과 사랑의 대서사시이다. 즉 프랑스 서
민과 민중을 대변하는 민족적인 영화인 것이다. &lt;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단국대 교수&gt;
<BR>#23. &lt;무방비 도시 Roma, Citt Aperta&gt;(1945) /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nbsp;
사회현실과 역사를 충실히 기록함으로써 관객의 의식을 변화시키려는 영화의 시작은 아마도 네
오리얼리즘일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하고, 열린 결말을 추구하는 모더니즘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도 네오리얼리즘 영화였다. &lt;무방비도시&gt;는 네오리얼리즘의 서장을 장식한 
영화이며 그 방법론과 실제를 구체화한 로셀리니의 전쟁 3부작 중 하나다.<BR>2차대전중 독일 점령하에서 비밀리에 기획된 이 영화는 연합군이 상륙한 직후 촬영이 시작되었
다. 연합군은 기록영화에만 제작허가를 내주었으나 로셀리니는 이를 장편극영화로 만들어 종전 
직후 성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동시녹음을 위한 필름과 기자재는 엄두도 못낼 만큼 비쌌고 
촬영할 스튜디오도 구할 수 없었다. 그 결과 &lt;무방비도시&gt;는 각기 다른 종류의 자투리 필름으로 
찍혀 화면은 다양한 질감을 갖게 되었고 로케이션 촬영이 돋보이는 기록영화적 분위기를 한껏 
자아냈다. 게다가 느슨한 플롯과 열린 결말의 이야기에 가미된 감상적 멜로드라마는 네오리얼리
즘 영화의 정수를 보여준다.<BR>독일군에게 살해된 한 신부의 실화를 근거로 만든 &lt;무방비도시&gt;는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완만하
다. 영화를 시종 이끄는 인물은 레지스탕스 요원 맨프레디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그가 피신하는 
행로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에게 있다. 먼저 그의 동료의 약혼녀 피나가 있다. 이미 아들이 하나 
있는 그는 독일군들이 약혼자를 붙잡아가는 것을 뒤따르다 결혼식날 무참하게 총살당한다. 피나
의 결혼을 주례할 돈 피에트로 신부는 레지스탕스의 자금을 운반해주고 맨프레디와 동료를 수도
원에 숨기려다 체포된다.<BR>맨프레디의 옛 정부는 그를 하룻밤 피신시켜주나 그로부터 경멸을 받는다. 그리고는 마약과 사
치품, 변태적인 애정행위에 팔려 그를 독일군에게 밀고한다. 맨프레디는 모진 고문에도 입을 열
지 않고 영웅적인 죽음을 맞으며, 같이 체포된 신부도 결국 총살당한다.<BR>그밖에도 전쟁이 싫어 탈주했으나 체포돼 감방에서 목매는 오스트리아 군인이, 또 게슈타포지만 
나치이념에 냉소적이고 결국은 그 이념이 실패하리라 확신하는 술취한 장교가 이야기에 양념을 
얹어준다.<BR>로셀리니는 이들을 공평하게 자유롭게 그러나 아주 강렬하게 그린다. 주인공은 하나가 아니며 
중심이 되는 사건도 없다. 억압적인 나치·파시즘 아래서 모든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은 그 자체
로 강렬하다. 로셀리니는 이들을 통해 독일 점령하의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골목길에서 벌어졌
을 일들, 일상 속에 스며들어 있는 레지스탕스 정신 혹은 그에 반하는 타락의 모습을 훑어줄 뿐
이다. 그 모습들은 하나하나가 멜로드라마다. 그래서 영화는 여러 겹의 멜로드라마가 된다.<BR>이 감상적인 비극에 희극적 요소들을 삽입하는 로셀리니는 관조적이고 희망적이다. 맨프레디를 
쫓던 독일군들은 여자들의 치마밑 풍경을 보느라 그를 놓치는가 하면, 동네아이들은 어디엔가 
폭약을 설치하고 늦게 집으로 와 부모에게 야단맞으며 끌려들어간다. 그리고 신부는 병자성사를 
위장하기 위해 멀쩡한 노인을 프라이팬으로 때려 눕힌다. 로셀리니는 그 신부가 총살당하는 마
지막 장면에 아이들로 하여금 레지스탕스의 휘파람을 불게 함으로써 희망을 준다.<BR>전후 이탈리아인들의 도덕성과 심리적 분위기를 즉각적으로 표출한 이 영화는 당시 이탈리아 영
화가 지향할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현실도피적 환상을 부추겨온 전쟁전 부르주아 영화를 벗어
나, 세계를 왜곡시키지 않은 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가 곧 그것이었다. 로셀리니를 세계적 감
독으로 만든 이 영화는 영화의 사회변혁기능을 실천한 많은 영화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gt;
<BR>#24. &lt;품행 제로 Zero de Conduite&gt;(1933) / 감독: 장 비고
&nbsp;
최초의 사운드 영화라는 &lt;재즈 싱어&gt;가 1929년 프랑스에서 개봉되면서 아벨 강스와 마르셀 레르
비에가 이끌던 20년대 프랑스 무성영화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BR>할리우드와 경쟁할 만한 음향기술 시스템도 미처 갖추지 못한 프랑스 영화계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 동안 &lt;재즈 싱어&gt;는 그 당시 50만의 관객을 불러모았다.<BR>즉시 미국과 독일의 음향기술이 프랑스 영화계에 도입되었고 제작비는 3배로 치솟았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아벨 강스는 자신의 성공작 &lt;나폴레옹&gt;을 음향을 입혀 다시 제작했다가 실패한다. 
이제 무성영화의 대감독들은 연이어 몇 편의 실패작들을 남긴 채 황혼의 전사로 사라져갔다.<BR>1930년 초 프랑스 영화계는 &lt;파리의 지붕 밑&gt;(1930년)이라는 영화를 만든 르네 클레르와 함께 &lt;
품행 제로&gt;의 감독 장 비고의 시대였다. 장 비고는 전기작가들이 군침을 흘리며 달려들 만한 모
든 요소들을 갖춘 예술가였다. 우선 아버지는 당대의 이름난 무정부주의자여서 감옥을 빈번하게 
드나들었고, 자신의 이름마저도 '똥이나 먹어라'식으로 개명할 만큼 파격적인 사람이었다.<BR>아버지가 감옥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을 때 비고는 12살의 병약하고 조숙한 소년이었고 이미 
반카톨릭적인 자유주의자였다. '반역자'의 아들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이 소년은 학교 기숙사에
서 영화 &lt;품행 제로&gt;에 실명 그대로 등장하는 문제아들을 만나 그야말로 성적표의 품행란에 영
점을 기록하며 십대를 보낸다.<BR>결핵을 앓기도 하던 20대, 그는 마침내 전설적인 소련 다큐멘터리스트 지가 베르토프의 아우인 
보리스 카프만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도시 다큐멘터리 &lt;니스에 관하여&gt;라는 걸작
이다.<BR>1932년과 33년 사이에 만든 &lt;품행 제로&gt;는 여름방학을 집에서 지낸 두명의 소년 코사와 브루엘
이 학교 기숙사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시작한다.<BR>담배연기와 증기기차의 수증기가 어우러진 기차 안은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아이
들은 악몽으로 끌려들어가듯 학교로 돌아간다. 곧 그들은 '마른 방귀'라는 별명을 가진 기숙사 
사감에게 처벌당하는데, 교장을 비롯한 교사들은 이 영화에서 작은 폭군들인 양 희화적으로 묘
사된다.<BR>그러나 위게라는 젊은 교사는 찰리 채플린의 흉내를 내고 만화를 그려주기도 하면서 학생들의 
숨통을 터준다. 이 선량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마을로 소풍나가 떼지어 한 숙녀를 따라가는 장면
과 그것과 교차되는 난쟁이 교장의 음모 장면은 슬랩스틱 코미디와 다큐멘터리를 혼합한 것 같
은 이 영화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BR>교장과 교사들의 규율과 처벌에 맞서 코사 일행은 일대 소동을 일으키는데 바로 이때 베개와 침
대보에서 터져나온 하얀 오리털이 폭설처럼 방안을 가득 채우는 세계 영화사의 환상적인 명장면 
하나가 탄생한다. 느린 속도로 촬영된 이 부분은 사실 미적이면서 가치전복적이고 현실적이면서
도 초현실적이다.<BR>마침내 마지막 시퀀스의 학교 축제를 맞아 국가, 종교, 군대를 대변하는 세명의 손님이 도착하
자, 코사 일당은 지붕 위에서 책과 돌, 신발 등을 던지며 이들을 마음껏 조롱한다. <BR>그리고 학생들은 마침내 프랑스 국기를 내려버리고 자신들의 혁명기를 올린다. 그리고 지붕 위
를 걸어가며 하늘을 향해 노래한다.<BR>&lt;품행 제로&gt;는 종교와 교육제도에 대한 신랄한 조롱 때문에 "사회질서를 교란시킨다"는 이유로 
그 당시엔 상영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들과 풍자 코미디 그리고 초현실주의
의 영향이 보이는 이 실험성 높은 영화는 오히려 미래를 위해 만들어진 듯 보인다.<BR>프랑스 누벨 바그의 악동 트뤼포의 &lt;400번의 구타&gt;나 영국 프리 시네마의 기수인 린지 앤더슨의 
&lt;만약에&gt; 등과 같은 제도교육의 모순을 다룬 영화들은 사실 모두 이 영화에 빚지고 있기 때문이
다. &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gt;
<BR>#25. &lt;파이자 Paisa&gt;(1946) / 감독: 로베르토 로셀리니
&nbsp;
이탈리아는 2차대전에서 패배한 나라다. 그러나 영화로 세계를 제패했다. 낡은 카메라와 자투리 
필름을 모아 영화를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이다.<BR>로베르토 로셀리니를 비롯하여 비토리오 데 시카, 알베르토 라투아다, 주세페 데 산티스, 루이
지 잠파 등 수많은 영화인들이 내놓은 작품들은 분명히 새로웠다.<BR>평론가 피아트란젤리는 그것을 '새로운 사실주의'라는 뜻의 '네오 레알리즈모'라고 명명했다. 
카메라를 현실 속에 놓고 상황과 작가 사이에서 새로운 리얼리티를 찾아낸 것이다. <BR>샤를 스파크나 앙리 장송 그리고 자크 프레베르, 더들리 니콜스, 로널드 리스킨 등 극적 구성의 
시나리오가 중심이 되어 인간을 극의 틀 속에서 파악하던 30년대의 가공된 미학에서 벗어나 현
실 속에서 인간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낸 것이다.<BR>로베르토 로셀리니는 &lt;무방비도시&gt;로 그 선두주자가 되었다.<BR>그의 두번째 작품 &lt;파이자&gt;는 놀랄 만한 충격으로 우리 앞에 다가온다. 로셀리니를 비롯하여 나
중에 대가가 되는 페데리코 펠리니, 그리고 세르지오 아미데이 등 6명이 시나리오를 썼다. 이는 
2차대전 때 미국과 영국의 연합군이 시칠리아로부터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하여 북상하며 해방시
킬 때까지의 6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BR>제1화는 1943년 7월10일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한 때의 이야기다. 조라는 미군 병사는 카르
멜라라는 이탈리아 소녀를 알게 되지만 둘은 차례로 총살된다.<BR>제2화는 10월1일의 나폴리다. 흑인 미군과 그의 군화를 훔친 이탈리아 소년의 이야기다. 미군은 
소년을 집으로 데리고 가지만, 그에겐 집도 부모도 없다. 부모는 전쟁중 폭격으로 사망한 것이
다. 소년의 유머러스한 모습이 재치있다.<BR>세번째 에피소드는 로마다. 한 미군 병사가 거리의 여자를 따라가지만 몇달 전에 사귄 프란체스
카를 잊지 못한다. 여자는 주소를 가르쳐 주고 문 앞에서 기다린다.<BR>제4화는 피렌체다. 레지스탕스의 영웅 루포를 찾아 나서는 여자와 남자 이야기다. 시가전의 틈
을 타 그들은 거리를 가로질러 가지만 남자는 살해된다.<BR>다섯번째 에피소드는 전쟁중에 휴식을 취하는 듯한 삽화다. 어느 프란체스코 수도원을 찾은 미
군 선교군목 세 사람과 수도승과의 하룻밤이다. 수도승은 군목 중 유대교인이 한명 있다고 놀란
다. 군목들은 비참과 가난의 전쟁터에서 모처럼의 안정과 평화를 찾는다.<BR>여섯번째 에피소드는 미국의 OSS(CIA의 전신)와 영국군, 그리고 빨치산이 펼친 포 강에서의 저
항이다. 결국 이들은 모두 독일군에게 잡혀 배에서 강물 속으로 차례차례 밀려 떨어진다. 충격
적이다. 세 가지 에피소드가 레지스탕스와 관련이 있다.<BR>앙드레 바쟁은 이 작품이 미국 소설가 사로얀을 비롯하여 도스 패소스, 포크너, 헤밍웨이 등의 
중편소설들과 같은 구성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섯 가지 에피소드는 각각 분리되어 있지만 
미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한 뒤 있음직했던 이야기를 엮은 것이다.<BR>'파이자'는 이탈리아계 미군이 이탈리아 사람을 일컫는 말로 영어로는 '파이잔'이다. 일본에서
는 이 작품을 &lt;전화의 건너편&gt;이라고 번역했다. &lt;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단국대 교수&gt;
<BR>#26. &lt;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gt;(1947) /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nbsp;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갈등은 항상 사회적 경제적 갈등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마르크시스트 신념
을 영화로 구체화시키기 위해 1947년 루키노 비스콘티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자금지원을 받아 시
칠리아로 갔다. 전후 시칠리아의 경제적 문제들을 짧은 기록영화에 담는 것이 목적이었다.<BR>그가 기획한 것은 중간상인들에게 착취당하는 어부들,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광부들, 마피아
라는 준봉건적 제도에 대항하는 농부들에 대한 3부작이었다. 비스콘티가 구상했던 마지막은 "갑
자기 말발굽소리가 들리며 수백명의 농부들이 지평선 위로 나타나며, 그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대지는 진동하고 그들은 붉은 기장과 삼색기를 휘날리며 경작할 대지를 점령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비스콘티가 대면한 시칠리아 노동자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착취와 억압에 대항해 혁명을 
일으킬 의지도 없었고 그 혁명적인 '진동하는 대지'의 마지막을 그릴 만한 상황도 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 마지막에서 제목을 딴 &lt;흔들리는 대지&gt;는 바다를 삶의 원천으로 삼고 있는 어부들을 
그린 한 편의 허구영화가 되었다.<BR>&lt;흔들리는 대지&gt;는 네오리얼리즘 미학의 정수를 가장 잘 뽑아낸 작품으로 꼽힌다. 영화는 아치
트레차라는 어촌을 배경으로 그 마을 주민들을 연기자로 등장시키고 있으며, 대다수의 이탈리아 
사람도 알아듣기 어려운 그들만의 사투리를 그대로 대사로 이용하며, 소수의 밤 장면을 제외하
고는 모두가 자연조명을 이용하고 있다.<BR>또한 대지와 바다를 이어주는 긴 카메라의 움직임, 실내와 외부를 연결하는 심도 깊은 공간표현 
등은 이 영화의 사실성을 한껏 높여주는 기능을 한다.<BR>비스콘티가 이 사실주의적 영상 속에 그려낸 이야기는 무척 비극적이고 강렬하다.<BR>어부들의 고된 노동의 가치는 중간상인들의 손에서 나날이 떨어진다. 주인공 토니는 바다에서 
죽은 아버지 대신 할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 세 여동생과 남동생을 부양해야 하는 처지
이다. 토니는 중간상인들의 횡포에 대항해 어부들끼리 힘을 합치자고 주장하지만 동조하는 어부
들은 없다. 직접 생선을 팔기 위해 그는 집을 담보삼아 배를 산다.<BR>한동안은 생활이 나아지나 엄청난 폭풍 속에 배를 잃고 겨우 목숨만 건지게 된다. 남동생은 미
지의 이방인에 이끌려 집을 떠나며 할아버지는 죽는다. 집마저 잃은 토니의 가족에겐 빈곤과 굶
주림만 남아 있다. 토니는 애인으로부터 버림받고 토니의 여동생은 목걸이 등의 물건에 팔려 유
혹에 넘어간다. 도매상인들은 번성하고 어촌의 경제는 그들에게 장악된다.<BR>마지막에 누더기차림의 토니는 남동생들을 이끌고 다시 중간상인에게 일을 구걸하고 바다로 나
간다. 사람들이 마침내는 "서로 사랑하고 힘을 합치는 것"을 배우게 될 좋은 세상이 오길 희망
하면서.<BR>&lt;흔들리는 대지&gt;가 처음 상영되었을 때 중류계층 관객들은 휘파람을 불고 야유를 했다. 귀족 출
신의 감독이 자신의 계층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한편 좌익 비평가들은 "누더기의 형식주의"라고 
비난했다. 혁명적 기록영화로 시작한 작업이 비관적인 결말을 담은 과장된 멜로드라마가 그들에
게는 역겨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BR>&lt;흔들리는 대지&gt;의 화면은 로셀리니의 &lt;무방비 도시&gt;나 &lt;파이자&gt;의 거친 화면에 비해 너무나 우
아하고 장중한 엄숙미를 주며, 데 시카가 절망적인 상황 속의 인물들을 열린 태도로 관조하게 
하는 데 비해 비스콘티는 인물들을 운명론적으로 그려준다. 풍부한 문예교육을 받고 자란 귀족, 
2차대전중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마르크스시스트인 비스콘티의 미학적 모순 혹은 갈등의 흔
적은 이 영화 전편에 남아 있다.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
<BR>#27. &lt;자전거 도둑 Ladri di Biciclette&gt;(1948) / 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
&nbsp;
네오 레알리즘 영화중 비토리오 데 시카의 &lt;자전거 도둑&gt;만큼 널리 성공한 작품도 드물다. 영화
사의 10대 걸작을 꼽을 때면 으례 하나로 뽑히곤 한다. 루이지 바르톨리니의 원작을 네오 레알
리즘의 이론적 기수인 체자레 자바티니가 시나리오를 썼다.<BR>데 시카가 없는 자바티니는 생각할 수 있지만 자바티니가 없는 데 시카는 존재할 수 없다는 말
이 있듯이 데 시카는 자바티니에게서 많은 것을 얻어 왔다. 이 둘은 네오 레알리즘의 환상의 명
콤비였다. 2차 대전이 끝나고 폐허가 된 로마에서 오랜동안 실직상태이던 안토니오 리치는 어느
날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포스터를 붙이는 일이다. 그 일에는 자전거가 필요하다. 아내 마리아
에게 말해 헌 옷가지를 전당포에 맡기고 자전거를 구한다. 어린 아들 브루노도 따라 나선다. 그
러나 어느 모퉁이에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달아난다. 안토니오는 
쫓아가나 허사다. 경찰에 신고하지만 경찰은 하찮은 일이라는 듯 반응이 없다. 허탈해진 안토니
오는 자전거포를 뒤지다 어느 젊은이가 자기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을 본다. 쫓아가지만 또 
허사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그 젊은이 집을 찾는다. 안토니오는 빈민가의 그 집을 보고 절망
에 빠진다. 자기처럼 가난한 데다 <BR>젊은이는 간질을 일으키며 길가에 쓰러진다. 경찰이 오나 증거도 없다. 그러던 중 아들과 다투
고 아들이 없어진다. 안토니오는 강가에서 어린애가 빠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들을 찾아 나선
다. 아들은 계단 위에 나타난다. <BR>경기장에서는 축구시합이 한참이다. 밖에는 자전거들이 즐비하다. 안토니오는 아들에게 먼저 집
에 가 있으라고 하고 자전거 한대를 훔쳐 달아나다 곧 주인에게 붙잡힌다. 경찰이 온다. 그는 
자전거 주인의 선처로 풀려난다. 석양의 거리를 아들은 뒤따르고 안토니오는 허탈한 모습으로 
걸어간다.<BR>자전거를 도둑맞은 노동자가 결국 자전거도둑이 된다는 전후 로마의 이야기는 참으로 역설적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이 작품은 프롤레타리아 영화이다.<BR>데 시카는 1955년 3월4일 프랑스신문 &lt;르몽드&gt;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작
품을 영화화하려고 몇달째 제작자를 찾았으나 구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한 미국 제작자가 나섰
다. 단 주인공으로 케리 그랜트를 써달라는 조건이었다. 나는 거절했다." 여기에 바로 이 작품
의 성공의 열쇠가 숨겨져 있다. 그는 미남인 케리 그랜트 대신 어느 공장의 무명의 노동자 람베
르토 마지오라니를 대담하게 주인공으로 기용했다. 아들 브루노에는 거리를 쏘다니던 부랑아 엔
조 스타이올라, 그리고 아내에는 기자 리아델라 카렐을 기용하는 등 모두 비직업적인 무명배우
를 썼다.<BR>&lt;자전거 도둑&gt;은 스튜디오 촬영이 없다. 모두가 거리에서 촬영한, 현실에 가까운 가장 사실적인 
작품이다. 앙드레 바쟁은 말했다. "이는 순수영화의 첫 작품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배우
도 없고 이야기도 없고 연출도 없다. 이것은 영화가 이제 더 이상 완벽한 미학적 환상 속에 존
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이에 앞서 그는 "확실히 (지난) 10년 동안 제작된 공산주의적 영화 중
에서 유일하게 가치있는 공산주의적 영화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그 사회적 의미를 추상화
시키더라도 그 뜻을 간직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 수 있다"고 비평했다. &lt;필자: 안병섭/영화평
론가·단국대 교수&gt;
<BR>#28. &lt;제3의 사나이 The Third Man&gt;(1949) / 감독: 캐롤 리드
&nbsp;
캐럴 리드 감독의 &lt;제3의 사나이&gt;(1949)는 참으로 '이상한' 영화이다. 아마도 이처럼 세련된 상
업영화 스타일과 다양한 예술영화의 전통이 함께 행복하게(!) 만난 예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
는 올드 팬들에게는 향수가 되었고, 시네마데크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리스트이며, 젊은 영화광
들의 고전이면서, 영화이론의 논쟁적 장소를 마련하였다.<BR>무대는 종전 직후 연합군 공동관리체제 아래 놓인 빈. 여기에 미국인 소설가 홀리 마틴스(조지
프 코튼)가 친구 해리 라임(오손 웰스)을 찾아온다. 그러나 친구는 이미 교통사고로 죽은 다음
이다. 홀리는 친구의 애인 안나(아리다 발리)를 만나본 다음 이곳을 떠나려 한다. 영국군 소령 
캘로웨이(트레버 하워드)는 홀리에게 친구 해리가 가짜 페니실린을 유통시킨 혐의로 연합군의 
추적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게다가 해리는 죽은 것이 아니었으며, 홀연히 해리 앞에 
나타나 전망차 앞에서 명대사를 한다. "칠백년 평화로운 스위스에서는 뻐꾸기 시계 하나를 만들
었지만, 전쟁이 이어지던 이탈리아에서는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있었지." 그러나 홀리는 가짜 
페니실린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고 해리를 고발하기로 결심한다. 함정에 빠진 해리는 홀리의 
손에 죽고, 안나는 그의 곁을 떠난다.<BR>낙엽지는 초겨울에 빈에서 촬영한 &lt;제3의 사나이&gt;는 원작자 그레이엄 그린 자신이 각색한 시나
리오로 만들었다. 캐럴 리드는 '결코' 위대한 영화감독은 아니지만, 그는 단 한편의 걸작을 남
기는 데 성공하였다. 처음부터 의도된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선 영화의 백과사전적인 만남이 이
루어졌다. 우선 무엇보다도 종전 직후의 황폐한 빈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로버트 크래스커의 흑백촬영은 존 그리어슨으로 시작하는 영국 기록영화의 전통에 서 
있으며, 한편으로는 거리에서 미학을 완성시킨 이탈리안 네오 레알리즘과도 정신적 연대를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대부분의 장면이 밤에 촬영되면서 동원된 조명과 미술, 세트는 
전후 빈을 마치 독일 표현주의 영화와도 유사한 빛과 그림자의 세계로 바꿔놓는다. 의도적으로 
경사 구도의 카메라 앵글로 화면을 만들었으며, 인물들은 그 사이를 떠도는 유령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여기에는 리얼리즘과 표현주의 영화의 전통이 서로 뒤섞여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데이비드 셀즈닉의 자본이다. 그는 기꺼이 이 유럽
영화에 투자했으며, &lt;제3의 사나이&gt;가 유럽에서 만든 필름 누아르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
는 자신이 원한 것을 손에 넣었다.<BR>&lt;제3의 사나이&gt;는 49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으며, 국제적인 흥행성공을 거두었다. 
비록 영화적 깊이나 미학적 실험은 없지만, 마치 홀린 듯이 안톤 카라스가 연주하는 민속악기 
지타의 선율을 따라 빈에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수많은 명장면과 전율할 만한 이미지의 황홀감
을 안겨준다. 특히 가을 낙엽이 지는 빈의 가로수 저편에서 걸어와 기다리는 홀리를 거들떠 보
지도 않고 무표정하게 지나가는 안나와의 기나긴 이별의 마지막 장면은 영화사상 가장 유명한 
장면의 하나이다. 영화는 때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명장면의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다. &lt;제3의 사나이&gt;는 추억과 감상주의 사이에 선 아슬아슬한 기억이다. 
&lt;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gt;
<BR>#29. &lt;라쇼몬 羅生門&gt;(1950) / 감독: 구로자와 아끼라
&nbsp;
일본영화가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평가를 받기 시작한 것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lt;라쇼몬&gt;
(50년 8월 개봉)이 195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고나서부터였다. <BR>이후 일본영화는 미조구치 겐지, 기누가사 데이노스케 등이 잇따라 세계영화제를 석권하면서 패
전으로 실의에 빠져있던 일본인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완성 당시만 
해도 일본 안에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채 지나쳤던 &lt;라쇼몬&gt;이 서구인들에게 높이 평가받은 
이유는 색다른 동양문화였기 때문이 아니라, 보편적 주제의식과 영화적 미학의 뛰어남 때문이었
음은 지난 82년 베니스영화제 역대 대상(황금사자상) 수상작중 최고 작품으로 선정된 사실에서 
알 수 있다. 현재까지도 이 작품은 주제의식의 강렬함, 뛰어난 형식미로 인해 영화학도들에게 
교과서적인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BR>&lt;라쇼몬&gt;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lt;라쇼몬&gt;(15년)과 &lt;숲 속에서&gt;(21년) 두 편을 묶어 
각색한 영화다. 작품의 배경은 내전으로 인해 피폐한 12세기 헤이안조 시대다. 숲 속에서 한 무
사가 살해되고 그의 아내가 산적에게 강간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절반쯤 쓰러져가는 라쇼몬에
서 승려와 나무꾼, 행인이 그 살인사건을 회상한다. 법정에서 무사의 아내, 살인 강간 혐의로 
잡혀온 산적(미후네 도시로), 무당을 통해 증언하는 죽은 무사의 혼령, 목격자 나무꾼이 증언하
는데, 그들은 그 사건을 서로 다르게 이야기한다. 모두가 자기 말이 진실인듯 말하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끝까지 알 수 없다.<BR>영화는 '살인범은 누구인가?'라는 미스테리 모티브로 시작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건은 분명 하나인데 사람에 따라 자기 중심적 입장에서 달리 
증언한다. 거기서 핵심 주제인 인간의 이기주의와 진실의 상대성을 읽을 수 있다. 구로자와는 
각색과정에서 원작에 나타난 허무주의적이고 인간에 대해 냉소적인 관점을 휴머니즘으로 변화시
키고자 후반부에 (원작에 없는) 어린아이를 등장시켜 인간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제시한다. 휴
머니즘, 인간에 대한 탐구와 따뜻한 애정은 구로자와 영화 전반에 나타나는 주제의식이다. 그는 
카메라로 해를 직접 찍는 것을 금하던 당시의 틀을 깨고 숲 사이로 비친 해를 과감히 찍음으로
서 조명의 새로운 미학적 효과를 창출했을 뿐 아니라 몽타주의 적절한 사용, 정교한 카메라 움
직임, 고전적인 일본연극의 인물배치에서 착안한 화면구도, 서양음악을 재해석한 음악과 음향효
과의 적절한 사용 등으로 영화미학을 진일보시키는 데 공헌했다.<BR>&lt;라쇼몬&gt;은 당대 일본영화의 대가들인 오즈나 미조구치의 영화들과 비교해 서구적 스타일의 영
화로 자주 언급된다. 물론 카메라 움직임이나 복합적인 스토리 구성, 음악 등에서 서구적 영향
이 많이 나타나긴 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숨어있는 일본적인 구도나 이미지를 간과해선 안된다
. 특히 재판관을 생략한 채 증언자들만 보여주면서 그들을 양식화된 화면구도로 잡아내는 법정 
장면이나 일부 정적인 분위기들은 순전히 일본적이다. 구로자와에게는 서구적 기법을 자신의 일
본적 이미지 속에 융화시키는 재주가 있다. 그는 또 '단순화는 현대예술의 중요한 미학적 테크
닉의 하나'라고 주장하면서 최소한의 등장인물(엑스트라 포함 9명)과 단 몇군데의 공간(라쇼몬, 
법정, 숲속, 강가)만으로 경제적인 화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lt;필자: 이정국/영화감독&gt;
<BR>#30. &lt;사랑은 비를 타고 Singin' in the rain&gt;(1952) / 감독: 진 켈리·스탠리 도넌
&nbsp;
뮤지컬은 지나치게 할리우드적인 영화 장르다. 서부영화가 미국의 건국신화라면 공상과학영화는 
미국의 미래 국가전략을 영상으로 실험하는 일종의 전략적 도상게임이라 할 수있다.<BR>미국-할리우드만이 만들 수 있는 이 세 가지 장르 영화 중에서도 뮤지컬 영화는 그 화려함과 환
상적 성격으로 할리우드적인 영화의 전형적 모습으로 꼽힌다.<BR>할리우드에서도 뮤지컬 영화의 명문은 포효하는 사자의 로고로 유명한 미국 MGM사였다. 그리고 
그 '꿈의 공장'의 좌우명은 사자 위에 라틴어로 쓰여 있다. 'ARTS GRATIA ARTIS'. 이 말은 '예
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 일이다. 이것은 무슨 심각하고 고상한 예술
영화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아니다. 현실의 복잡함과 고통 대신 영상의 환상세계를 관객에게 선
사하겠다는 할리우드 영화 프로페셔널리즘의 '탈현실 선언'이다.<BR>1952년 사자는 다시 으르렁거리고 멋진 쇼가 시작되었다. 노란 비옷에 검은 우산을 쓴 세 사람, 
즉 진 켈리, 데비 레이놀즈, 도널드 오코너가 등을 보이며 서 있다. 그리고는 뒤돌아서며 주제
곡을 부르기 시작한다.<BR>"빗 속에 노래하면… 얼마나 빛나는 순간인가요. 나는 다시 행복을 찾았어요… 태양은 내 가슴
에 사랑을 준비하고 있어요."<BR>이 노래로부터 켈리와 레이놀즈가 사랑의 언약을 맹세하는 마지막 장면까지의 1백3분은 영화적 
재미의 모범답안이며 뮤지컬 영화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시간이다.<BR>장르 영화를 재평가하고 있는 요즘 영화 100년 역사의 10대 걸작영화의 하나로 꼽히는 &lt;사랑은 
비를 타고&gt;는 우선 경이로운 영화다. 볼 때마다 춤과 노래, 세트 그리고 강렬한 색채에 매혹당
하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는 산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일깨워준다.<BR>'그들을 웃겨라'라는 노래를 부르며 춤추는 오코너의 모습에서 인생은 제목 그대로 웃음이다. 
그것도 정신 차릴 수 없는 폭소연발이다. 그리고 사랑의 발견 뒤에 정말 비를 흠뻑 맞으며 주제
곡을 부르는 켈리에게서 가슴 충만한 사랑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BR>게다가 켈리가 뇌쇄적인 여배우 시드 채리스와 함께 '브로드웨이 리듬' 발레를 추는 장면은 황
홀한 인생의 절정을 보여준다.<BR>개념으로 세상을 보게 마련인 '불행한' 영화비평가들은 뮤지컬 영화를 영화의 현실 도피적 성격
이 극대화한 영화 장르로 설명한다. 즉 뮤지컬 영화는 영상의 환상 속에서 사랑-증오, 성공-실
패, 부유함-빈곤함, 그리고 남자-여자와 같은 현실의 대립항들을 거세시키면서 관객들을 유토피
아의 축제로 초대한다는 것이다.<BR>논리적으로 맞는 말이다. 또 이런 주장들은 역사적 증거까지 제시한다. 그러나 &lt;사랑은 비를 타
고&gt;를 보면서 이런 주장을 편다면 그건 멋대가리 없는 똑똑함이다. 걸작영화에는 몇 가지 개념
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lt;사랑은 비를 타고&gt;는 뮤지컬 영화의 대표
작 그 이상이다. 이 작품은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발전하는 시대를 드라마의 배경으로 설정
하면서 영화의 역사에 대한 영화로 발전한다.<BR>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한 세기를 살아 온 대중적 낙관주의의 대표
작으로 남아있다. &lt;필자: 강한섭/영화평론가·서울예전 교수&gt;
<BR>#31. &lt;오하루의 일생 西鶴一代女&gt;(1952) / 감독: 미조구찌 겐지
&nbsp;
구로사와가 베니스 영화제에서 &lt;라쇼몬&gt;으로 대상을 받았을 때 가장 자극받은 사람은 당시 일본
에서 최고로 대접받던 미조구치 겐지였다. 자존심 강한 그는 한참 후배인 구로사와가 먼저 국제
적인 평가를 받자 그 자신도 국제무대를 향해 포문을 열기 시작했는데, 그 첫 작품이 &lt;오하루의 
일생&gt;이었다.<BR>미조구치는 그 작품과 이후 연작 형식으로 만든 &lt;우게쓰 이야기&gt;(53년)와 &lt;산쇼다이후&gt;(54년)로 
특유의 탐미적 리얼리즘과 롱테이크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어 서구 평론가들의 극찬 속에 3년 연
속 베니스 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BR>특히 앙드레 바쟁을 비롯한 &lt;카이에 뒤 시네마&gt;의 평론가들은 미조구치가 사용한 '원 신 원 쇼
트'에 의한 롱 테이크 카메라 스타일을 진정한 리얼리즘 미학의 모범으로 높이 평가하였다.<BR>미조구치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lt;오하루의 일생&gt;도 남성본위 사회의 여성의 비참함과 자기 
희생을 신비적일 만큼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리고 있다.<BR>사이가쿠 이하라 원작을 항상 각본 작업에서 콤비를 이뤄온 요다 요시카다와 공동각색한 작품의 
배경은 17세기 봉건시대의 일본이다. <BR>이야기는 '오하루'라는 한 늙은 창녀의 회상에서 시작된다. 교토의 사무라이 집안의 딸로 태어
난 그는 신분이 낮은 하인과 사랑에 빠졌다가 들켜 영주에게 쫓겨나고, 그의 애인은 처형당한다
. 그뒤 그는 다른 영주의 씨받이로 팔려가 아들을 낳아주고 쫓겨나 고급기생으로 팔린다.<BR>거기서 다시 부유한 상인에게 팔리고 마침내는 떠돌다가 하류 사창가에서 창녀가 되어 늙어간다
. 자기가 낳은 아들이 영주가 됐지만 신분이 달라 직접 만나지도 못하고 멀리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BR>그는 결국 불교에 귀의해 비구니가 되어 자신에게 닥쳐왔던 불행을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일본
판 '여자의 일생'이라 할 수 있는 &lt;오하루의 일생&gt;은 봉건제 아래서 남자들에 의해 인생유전하
던 한 창녀가 점차 성녀처럼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 종교적인 숙연함까지 느끼게 한다.<BR>어린 시절 기생인 누나의 손에 자란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여성에 대한 시각과 관심의 일면이 
작품에 매우 잘 표현되어 있다.<BR>&lt;오하루의 일생&gt;을 비롯한 미조구치 영화 대부분이 남성보다는 여성의 강인함과 끈질긴 생명력
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묘사는 매우 이중적이다. 즉 여성들의 인생역정은 매우 비극적이
지만 그것을 보여주는 형식은 지극히 탐미적이다.<BR>그는 여성들의 역경과 비참함을 사회의 제도적 모순 비판의 시각에서 그리는 듯하면서도 그들의 
자기 희생을 관조하는 미적 관점으로 바라보고 있다.<BR>그래서인지 그의 영화는 강렬한 비극성으로 인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시대 고증과 
미장센에 관한 철저함으로 진정한 리얼리스트 미조구치는 구로사와에게도 큰 영향을 주기도 했
다.<BR>그의 영화 형식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몽타주를 거부한 일관된 카메라 스타일이다. 그는 클로
즈 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주로 롱 쇼트, 롱 테이크, 그리고 느리게 움직이는 카메라로 상황
을 객관적으로 제시하여 주인공 오하루의 인생을 관조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BR>그러한 미학은 서구의 젊은 영화인, 특히 50년대 말에 등장한 프랑스 누벨바그 감독들에게 영향
을 끼치기도 했다. 자크 리베트같은 감독은 자신의 작품 &lt;수녀&gt;(65년)를 &lt;오하루의 일생&gt;의 의
도적인 모방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을 정도다. &lt;필자: 이정국/영화감독&gt;
<BR>#32. &lt;도쿄 이야기 東京物語&gt;(1953) / 감독: 오즈 야스지로
&nbsp;
오늘날 서구의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에게 뒤늦게 진가를 인정받으며, 마치 아시아 영화의 정신적 
지주인 듯한 이미지로 신화화하고 있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과연 얼마나 동양적인가? 우리
가 이러한 신화화에 무작정 동참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그의 대표작 &lt;도쿄 이야기&gt;에는 우리
와 비슷한 정서적 측면과 오즈 나름의 독특한 영화적 스타일(물론 그것이 반드시 동양적이라고 
못박기는 어렵다)이 농축되어 있어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BR>남부 일본의 오노미치에 사는 한 노부부가 도쿄에 사는 아들과 딸 내외를 만나러 가지만 그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를 온천관광지인 아타미로 보내는 등 소홀히 대한다. 전쟁통에 남편을 잃
어버린 며느리 노리코만이 그들을 정성껏 모신다. 오노미치로 돌아온 뒤 어머니는 병을 얻어 숨
을 거둔다. 아들과 딸 내외는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도쿄로 돌아가 버리고 노리코가 남아 시아버
지를 위로하고 떠난다.<BR>'드라마게임'에서 흔히 보았음직한 이 '가정 드라마'에서 오즈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또 명료하다. 그에 따르면 "부모와 성장한 자식들을 통해 일본의 가족제도의 붕괴를 
그리려 했다"는 것이다. 사실 가족간의 갈등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재이다. 단지 오즈
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과 이별, 부부간의 갈등 등을 일관되게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며 
절제된 형식적 미학의 완성이 &lt;도쿄 이야기&gt;에 있다. 즉, 연기자와 카메라의 움직임을 최대한 
억제하면서 마치 고요히 강이 흐르듯 노부부의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차분히 그려나간다. 감정
의 절제를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하는 일본인의 정서와 미학관이 절정을 이룬다. 아마도 서구의 
영화학자와 평론가들은 이러한 절제의 미학에 매료되었을 것이다.<BR>그렇다면 우리는 &lt;도쿄 이야기&gt;를 어떻게 볼 것인가. 확실히 &lt;도쿄 이야기&gt;는 여러 면에서 우리
의 영화를 돌이켜 보게 한다.<BR>&lt;도쿄 이야기&gt;는 정서적 측면이 얼핏 보면 우리와 유사한 부분이 많은 듯하면서도 다른 점이 곳
곳에서 발견된다. 아내가 죽고난 새벽, 슈치키 노인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아, 아름다운 새벽이
구나"라고 읊조린다. 그리고 가족들은 눈물만 찔끔찔끔 흘릴 뿐이다. 우리는 다정다감한 대화를 
생각할 때 마주 앉은 술좌석을 떠올린다.<BR>반면 &lt;도쿄 이야기&gt;에서 그런 대화는 서로 마주 보지 않고 한쪽 방향을 바라보면서 이루어진다. 
마치 낚시터에서 낚시찌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낚시꾼을 보는 듯한 이 장면은 빔 벤더스가 흠모해 
마지않았던 것과 달리 우리에게는 낯설게 보인다.<BR>다다미와 온돌방이 좌석문화라는 점에서는 유사한데 왜 우리에게는 다다미 쇼트와 같은 독특한 
구도가 생겨나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러한 질문을 떠올리면 평범한 소시민의 생활 속에서 따뜻
한 인정을 발견한다는 &lt;도쿄 이야기&gt;도 실은 극도로 양식화한 일본문화의 전형(예를 들면 템포
를 중요하게 여기는 오즈가 자신의 영화에서 연기자들에게 걸음의 숫자마저도 꼼꼼하게 지시할 
만큼 형식미를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이지, 그것이 곧 동양문화의 
전형은 아닌 것이다. 아시아의 영화감독들이 오즈에게 경도된 것은 아마도 형식미보다는 그의 
영화 속에 녹아 있는 인간애일 것이다. &lt;필자: 김지석/영화평론가&gt;
<BR>#33. &lt;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gt;(1954) / 감독: 구로자와 아끼라
&nbsp;
현대 일본영화사는 60년대 이전의 막강한 거장인 구로사와, 오즈, 미조구치 등을 극복하려고 발
버둥치다 실패한 역사와 같다. 살아있는 유일한 거장이라는 구로사와 아키라조차도 50년대 전성
기의 자신을 극복하려다 실패했다. 그는 이미 50년대에 &lt;라쇼몬&gt; &lt;산다&gt; &lt;7인의 사무라이&gt; 등으
로 절정기를 보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작이 54년에 만든 &lt;7인의 사무라이&gt;다. 그 작품은 현재
까지도 일본뿐 아니라 세계영화 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구로사와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듯이 &lt;7인의 사무라이&gt;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절묘하게 배합하는 데 성공한 영화다
. 그의 영상언어는 일본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어 서구까지 미칠 정도로 세계성, 보편성을 담고 
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구로사와가 누구보다도 서구영화, 특히 미국영화의 영상미학을 
긍정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BR>&lt;7인의 사무라이&gt;는 16세기 중반 내전으로 혼란스런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산적들의 빈번
한 침입에 시달리는 한 마을의 농부들이 자신들을 지켜줄 의로운 사무라이를 찾아 나선다. 간베
이라는 한 중년 사무라이는 농부들의 요청을 받고, 칼솜씨가 뛰어나고 개성이 뚜렷한 사무라이
들을 하나씩 모아 일곱명이 되자 그 마을에 들어가 산적들과 싸운다. <BR>농부들에게 고용된 사무라이들은 오히려 보호자 입장이 되어 농부들을 훈련시키고 지도하여 그
들을 괴롭히는 산적들을 모두 해치운다. 살아남은 사무라이들은 평화로워진 마을을 뒤로 하고 
정처없이 길을 떠난다.<BR>&lt;7인의 사무라이&gt;는 농민, 사무라이, 산적, 이 세 집단간의 미묘한 갈등과 싸움을 다루고 있지
만 구로사와가 최종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집단은 결국 사무라이들이다. 그는 정의로운 사무라이
들을 통해 자신의 휴머니즘을 실현하고자 한다. 스토리 구성과 인물설정의 기본 모티브는 중국
의 고전 &lt;수호지&gt;에서 따왔지만, 한 영웅이 혼란스럽고 무정부적인 마을에 들어가 악을 물리치
고 정의를 실현한 뒤 떠난다는 신화적인 구조 설정은 미국 서부영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
사무라이에 대한 짙은 향수'라는 일본적인 의식을 주제로 삼되 그것을 풀어나가는 미학적인 틀
은 서부영화의 거장 존 포드 감독의 &lt;황야의 결투&gt;(46년)에서 차용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카메
라를 다루는 기법이나 일부 에피소드가 눈에 띄게 유사하다.<BR>그러나 구로사와는 단순한 모방으로 끝내지 않고 오히려 한단계 발전시키는 창조적인 모방을 통
해 자신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그런 재능으로 인해 그는 미국영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면서도 나중에 오히려 미국 감독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기록된다. 코폴라, 
스필버그, 루커스 같은 현대 미국영화 거장들이 각각 &lt;대부&gt; &lt;대추적&gt; &lt;스타워스&gt; 등에서 구로
사와의 영향을 숨기지 않는 걸 보면 쉽게 알 수 있다.<BR>&lt;7인의 사무라이&gt;에선 존 포드적인 역동적인 카메라와 프랭크 캐프라적인 유머, 미조구치 겐지
적인 리얼리즘과 오즈 야스히로적인 양식화된 구도가 잘 어우러져 있다. 특히 각 집단이나 주요 
인물마다 테마음악을 설정하여 사용한 사운드, 당시엔 별로 사용되지 않던 망원렌즈의 대담하고 
효과적인 사용과 극대 클로즈업, 극적인 슬로 모션과 함축적이고 빠른 편집, 원형 모티브를 이
용한 화면구성 등, 형식과 내용의 조화로 인한 총체적인 미학의 완성도는 베토벤의 교향곡 &lt;합
창&gt;을 연상시킨다.<BR>&lt;라쇼몬&gt; &lt;요진보&gt;가 그랬듯이 &lt;7인의 사무라이&gt;도 미국판으로 번안되어 만들어졌는데 존 스타
제스의 &lt;황야의 7인&gt;(60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 작품 역시 &lt;라쇼몬&gt;의 번안작 &lt;폭행&gt;처
럼, 흥행에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미학적 퇴보를 보여주었을 뿐이다. &lt;필자: 이정국/영화감
독&gt;
<BR>#34. &lt;길 La Strada&gt;(1954) /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nbsp;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는 네오레알리슴에서 출발해서 자기 환상에 대한 탐닉으로 영화 인
생을 끝마친 인물이다. 그는 영화가 곧 삶이고 삶이 곧 영화인 그런 삶을 살았는데 이 점에서 
그의 영화는 내적 경험을 중요시하는 주관주의의 범주로 틀지워질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비평적 
입장이라 하더라도 그 격정성과 인간내면에 대한 관심이 뿜는 그의 영화의 매력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BR>&lt;길&gt;은 펠리니의 명성을 국제적인 것으로 만든 초기 대표작의 하나다. 이 영화는 명백히 네오레
알리슴의 틀 안에 있던 자신의 영화를 시적이고 주관적인 세계로 열어놓는 전환점이며 동시에 
이탈리아 영화가 네오레알리슴의 외적 현실에서 인간관계의 내적 현실로 초점을 이동하는 과도
기의 징후적 작품이기도 하다. 펠리니는 네오레알리슴의 대표자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lt;무방비 
도시&gt;(45년), &lt;전화의 저편&gt;(46년)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 이력을 시작하여 1952년 &lt;백인 
우두머리&gt;로 감독이 되었다. 이 영화는 다음 작품 &lt;이비텔로니&gt;와 더불어 네오레알리슴 계열로 
분류되지만 &lt;길&gt;에서 돌이켜보자면 주관성 또는 내적 접근의 특성은 이미 여기에 드러나 있었다
고들 말한다.<BR>펠리니는 떠돌이 서커스단과 대중적인 뮤직홀의 배우였고 열렬한 칭송자였다. &lt;길&gt;에는 펠리니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인 서커스와 사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두가지 주제가 얽혀 있다. &lt;길&gt;은 떠
돌이 광대 잠파노와 백치 소녀 젤소미나, 줄광대 일 마토 사이의 단순한 이야기를 통해 바로 사
랑을 통한 구원이라는 주제를 이야기한다. 주제는 길에 놓여 있다. <BR>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제목대로 세 떠돌이의 삶의 여행의 한 기록이다. 잠파노(앤소니 퀸)는 
삼륜차를 몰고 마을을 떠돌며 쇠사슬을 끊는 재주를 선보이는 광대이다. 젤소미나(줄리에타 마
시나)는 잠파노의 조수였던 언니가 길에서 죽은 뒤 그 자리를 대신 채우려 팔려온 백치 소녀이
다. 그는 북을 치고 트럼펫을 불며 잠파노 묘기의 조수 역할을 하는데 사실은 우악스런 잠파노
가 성욕을 배설하는 소유물이다. 그러나 그의 천진성과 헌신성은 서커스단에서 줄광대 일 마토(
리처드 제이스하트)를 만나면서 인간적 가치를 드러낸다. 그는 잠파노와 젤소미나 사이의 촉매
자가 되려 하나 야수성과 천진성이라는 운명적 비극의 관계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들의 길은 서
로 결정적으로 어긋난다. 잠파노는 일 마토를 죽이고 젤소미나는 절망에 빠진다. 그리고 잠파노
는 젤소미나를 버린다. 5년 뒤 잠파노는 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때서야 비로소 잠파
노는 그의 부재를 통해서 스스로의 고독을 깨닫는다.<BR>&lt;길&gt;은 하층계급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지만 가난이 아니라 인간관계의 내부와 운명과 시간 간의 
비극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러면서도 &lt;길&gt;의 예술성의 바닥에는 리얼리즘과 환상과 정신적 가
치에 대한 추구가 한꺼번에 고여 있다. 동시에 이 영화에는 뜨내기로 추락한 미녀와 야수의 패
러디가 있으며 예수의 이미지로서의 '바보' 줄광대와 성녀 이미지로서의 '백치' 소녀라는 종교
적 알레고리가 숨어 있다. 오텔로 마르텔리의 카메라와 니노 로타의 음악은 이 영화가 고전이 
되는 데 크게 기여했지만 만약 앤터니 퀸과 줄리에타 마시나의 역을 제작자의 고집대로 실바나 
망가노와 버트 랭커스터가 했더라면 결과는 전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펠리니가 
이 영화를 그의 '영감의 원천'인 아내 마시나를 위해 만들었다는 말은 기억할 만하다. 동시에 
펠리니가 말하는 사랑을 통한 구원이 사실은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주관주의와 리얼리즘을 잇는 통로일 수 있기 때문이다. &lt;필자
: 이정하/영화평론가&gt;
<BR>#35. &lt;바람에 쓰다 Written on the Wind&gt;(1956) / 감독: 더글라스 서크
&nbsp;
더글러스 서크의 &lt;바람에 쓰다&gt;가 '영화 100년, 영화 100편'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좀 뜻밖의 사
실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 미국 영화사를 뒤적여 보아도 서크의 존재는 미미하다.<BR>실제로 더글러스 서크는 영화사에서 재발견된 사람이다. 60년대 후반부터 멜로드라마 장르에 관
심을 가진 영국의 문화이론가들이 서크의 영화에 주목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정열적
으로 할리우드와 브레히트적 영화의 행복한 결혼을 꿈꾸던 파스빈더가 서크의 &lt;하늘이 허용하는 
모든 것&gt;(1955년)을 전범으로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lt;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gt;를 만들고, 서크
의 단편영화 &lt;버번스트리트 블루스&gt;(1978년)에 배우로 출연하자 사람들은 그의 영화들을 꼼꼼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이후 그의 작품들은 대안적 영화를 생각하고 만들고자 하는 영화이론가들
과 필름메이커들의 텍스트가 되었고 영화사의 중요한 한 장이 그에게 헌정된다.<BR>덴마크에서 태어나 독일로 건너가 좌파 지식인으로 연극·영화 연출가가 된 더글러스 서크는 파
시즘의 등극과 함께 할리우드로 망명했다. 그러나 할리우드는 그에게 싸구려 스릴러나 멜로드라
마 시나리오를 던져주며 돈은 많이 못 주지만 잘해보자고 당부했고, 그래서 만든 작품이 &lt;히틀
러의 미치광이&gt;(1943년), &lt;수수께끼 잠수함&gt;(1950년) 등과 같은 저예산 장르영화들이었다. 브레
히트의 할리우드에 관한 시 "아침마다 밥벌이하러 거짓을 사주는 시장으로 가지/희망에 부풀어 
올라 나는 장사꾼들 틈에 끼지"는 서크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편
의 시나리오를 팔고 할리우드를 따나야 했던 브레히트와는 달리 서크는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생존했고, 장르영화의 컨벤션을 전복하여 아이젠하워 시대의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능력있
는 감독으로 성장했다.<BR>1956년에 만든 &lt;바람에 쓰다&gt; 역시 시나리오 상으로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다. 석유재벌인 해들
리가의 장손인 방탕한 카일(로버트 스택)은 여비서 루시(로렌 바콜)와 충동적으로 결혼한다. 친
구 미치(록 허드슨)와 아버지는 이들의 결혼을 축복하지만 동생 메리리는 루시를 증오한다. 결
국 메리리는 루시와 미치가 부정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오빠에게 거짓말을 하고,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카일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며 아내를 구타한다. 점차 광기에 사로잡히게 된 
카일은 미치와 결투 끝에 권총사고로 죽게 되고, 영화는 미치와 루시가 새로운 삶을 찾아 집을 
떠나는 것으로 끝난다.<BR>재벌의 아들과 그의 가난한 친구 그리고 여비서의 삼각관계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주모티브
인 이 영화를 의미있는 텍스트로 전환시킨 것은 전적으로 서크의 몫이었다. 사람들이 멜로드라
마에서 기대하는 것이 감정의 분출이라는 점을 서크는 잘 간파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비극적 
주인공을 설정하고, 바로 그 주인공을 죽음으로 이끄는 것이 자아성취라는 강력한 미국의 이데
올로기라는 점을 드러낸다.<BR>50년대 미국사회의 비극은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을 채우지 못해 모순덩어리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는 것이 서크가 멜로드라마 장르를 우회해 건넨 이야기다. <BR>이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그는 신경질적인 노란색을 부각시켰으며, 로버트 스택에게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은 발성법을 훈련시켜 관객들에게 청각적으로 고통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크는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관객을 만나기 위해 독일로 돌아가 10여년 남짓 기다
려야 했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어두운 노래를 불렀던 그의 영화들은 이제 그 어두운 시대
의 지혜로운 기념비로 영화사에 서 있다. &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gt;
<BR>#36. &lt;추적자 The Searchers&gt;(1956) / 감독: 존 포드
&nbsp;
가장 미국적인 영화감독을 꼽으라면 아마도 존 포드가 단연 첫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그는 미
국영화의 역사와 함께 성장했고 미국인의 이상과 정서를 가장 잘 그린 감독이기도하다. 그의 작
품은 주로 이민, 카톨릭, 공화주의, 개척사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관객들은 '
존 포드'하면 서부극을 먼저 떠올린다. 사실 그가 만든 1백12편의 작품 가운데 서부극은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반적으로 존 포드의 작품은 서부극만이 기억된다.<BR>그의 서부극은 무엇보다도 미국적 신화와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lt;추적자&gt;는 그 정점에 
서 있는 작품이면서 동시에 낭만적 서부극의 마지막 고별 작품이기도 하다. 남북전쟁이 끝난 몇
년 뒤 형의 집을 찾아온 이던 에드워즈는 얼마 뒤 형의 가족이 인디언에게 몰살당하고 막내 조
카딸 데비가 추장 스카에게 납치되자 5년에 걸친 추적 끝에 그를 찾아 돌아온다. 존 포드의 서
부극이 흔히 그렇듯이 이 작품의 낭만적 성격은 미국인의 가슴에 언제나 전설처럼 남아있는 '고
독한 서부의 사나이'인 이던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의 과거 행적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그가 
그토록 애타게 데비를 찾아다니는 동기를 제공한 형수 마타에 대한 애틋한 사랑, 그리고 데비를 
귀환시킨 뒤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의 이던은 서부극의 낭만적 인물유형의 전형인 셈이다. 
이러한 고독한 인물유형은 서부의 개척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 전설처럼 점차 사라져가며 존 포
드는 그 특유의 롱 쇼트를 통해 이러한 전설을 서정적으로 담아낸다. 광야를 배경으로 끝없이 
데비와 추장 스카를 찾아 헤매는 이던 일행의 롱 쇼트는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구도지만 사라져
가는 서부의 낭만적 시대에 대한 아쉬움과 추억을 담아내는 도구이기도 한 것이다.<BR>그러나 이 작품은 단순한 낭만적 성격 이상의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인종, 결혼, 
혈족, 종족 등과 같은 인류학적 이슈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안고 있다. <BR>데비는 프롬의 신화분석학의 관점에서 보면 영웅과 악한의 싸움을 유도하는 중개인의 역할을 하
는데, 포드에 있어 선과 악의 구분은 명확하고 또 단순하다. 백인문명은 선이고 인디언문명은 
악이라는 것이다. 이던이 백인과 인디언의 혼혈인 마틴을 싫어한다거나, 어렵게 찾아낸 데비가 
이미 코만치 여자로 성장한 것을 보고 죽이려 하는 데서도 그러한 시각은 분명히 드러난다. 또
한 마사나 큰 조카딸 토리의 시체는 보여주지 않는 반면 마틴을 따라다니는 인디언 여자 루크의 
시체는 전혀 주저함 없이 드러내 보이는 사소한 연출기법도 이러한 존 포드의 문명관과 무관하
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 작품이 만들어진 1956년의 미국은 흑백갈등이 심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이 작품이 의도적이었건 아니건 간에 당시의 흑백갈등의 문제를 그다지 위협적이
지 않은 또다른 인종갈등의 문제로 대체하거나 무마하는 역할을 하였으리라는 짐작도 어렵지 않
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 &lt;추적자&gt;의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측면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그 서정성과 잘 짜여진 내러티브 구조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숭
배받는 '감독들의 컬트영화'로 남아있다. &lt;필자: 김지석/영화평론가·부산예술전문대 교수&gt;
<BR>#37. &lt;파테르 판챨리 Pather Panchali&gt;(1956) / 감독: 쇼티아지트 레이
&nbsp;
인도의 영화작가 쇼티아지트 레이는 50년대에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와 더불어 아시아 영화를 
세계정상으로 끌어올린 동양의 거장이다. 레이는 비부티 바네르지의 베스트셀러 소설 &lt;파테르 
판챨리&gt;를 영화로 옮겨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BR>레이는 프랑스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영화작가 장 르누아르가 1949년 첫 색채영화 &lt;강&gt;을 인도
에서 촬영할 때 그와 만났다. 훗날 레이는 비토리오 데 시카와 장 르누아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술회했다. 좋은 집안의 후손으로 선조로부터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은 레이는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가끔 집에 드나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었다.<BR>레이의 첫번째 작품인 &lt;파테르 판챨리&gt;는 1956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인간 다큐멘트상을 
수상했다. 뒤이어 2부 &lt;아파르지토(정복되지 않은 사람)&gt;도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최우수 작품상
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올라섰다. 1952년부터 제작이 시작된 &lt;
파테르 판챨리&gt;는 나중에 제작자금이 딸려 인도 정부의 지원금을 얻어 서부 벵골영화개발공사에
서 제작을 끝냈다.<BR>아푸라는 소년의 성장과정을 그린 이 '아푸 3부작'(3부는 &lt;아푸의 세계&gt;)의 1부인 &lt;파테르 판챨
리&gt;는 벵골 지방 농촌에서 아푸 소년이 부모와 누나 두르가, 그리고 친척 아주머니 인디르와 함
께 살며 겪는 이야기다. 무능력한 성직자인 아버지는 일찍이 집을 떠났고 보통여자인 어머니는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웠다. 계절풍 몬순이 몰아치는 벵골 지방의 찢어지게 가난한 삶에서 즐거
움이라면 인디르 아주머니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BR>어느날 남매는 동구 밖에 나갔다가 검은 연기를 뿜고 달려가는 기차를 보고 풍요로운 도시에 대
한 동경과 설렘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아푸는 숲에서 인디르 아주머니의 죽음을 목격하고 이어 
누나 두르가가 알 수 없는 병으로 죽는 비운을 겪는다. 두 사건으로 아푸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BR>집을 나갔던 아버지는 참담한 실패 끝에 돌아와 가족을 갠지스강가의 도시 바라나시로 데려가기
로 한다. 세 식구는 소달구지에 실려 마을을 빠져나간다.<BR>레이는 시도 썼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을 뿐 아니라 화가이며 시인이었던 할아버지로부터 재능
을 이어 받아 포스터나 책표지, 만화그리기 등 미술에도 소질을 보였다. &lt;파테르 판챨리&gt;의 음
악은 인도가 자랑하는 시타르 연주자 라비 샹카르가 담당했다. 한국에도 연주차 다녀간 샹카르
와는 여러 작품에서 함께 작업했다.<BR>영화는 인도 농촌의 빈곤, 그 속에서 자라나는 꿈많은 소년 아푸가 도시로 나와 결국은 소설가
가 되어 겪는 장중한 인간 다큐멘트 3부작. 1부는 &lt;자전거도둑&gt;처럼 직업배우를 쓰지 않았다. 
느린 템포의 음영짙은 흑백촬영과 음악 그리고 레이의 시적 상상력은 빈곤이 배경인 사실적인 
이 작품에서 세계인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느끼게 했다.<BR>&lt;파테르 판챨리&gt;는 '길의 노래'라는 뜻의 인도말이다. 또한 이제까지 사티아지트 레이로 알려진 
그의 이름의 정확한 벵골 발음은 쇼티아지트 레이이다. &lt;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 ·단국대 교
수&gt;
<BR>#38. &lt;제7의 봉인 Det Sjunde Inseglet&gt;(1957) / 감독: 잉마르 베리만
&nbsp;
잉마르 베리만의 &lt;제7의 봉인&gt;이 만들어진 것은 1957년의 일이었다.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은 
쇠퇴기를 이미 지나고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한무리의 청년 비평가들이 누벨바그의 전조를 준비
하고 있었으며, 영국에서는 프리시네마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무도 더이상 신을 말하지 않
았고 유럽인은 전쟁의 상처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대중문화의 중심은 고통의 세대에서 전후세
대로 옮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처럼 보였다. 그때 베리만은 전혀 뜻밖에도 
신의 존재와 부재에 대해서 질문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lt;제7의 봉인&gt;의 시대배경이 중세인 
것 만큼이나 중세적인 질문으로 보였다.<BR>&lt;제7의 봉인&gt;은 14세기 중엽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기사 안토니우스 블록의 귀향기이다. 그는 
청년시절을 무의미한 전쟁에 흘려보내고 스웨덴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의 귀향길은 '삶에 대
한 참을 수 없는 공포'에 짓눌려 있다. 영화의 서막을 여는 바닷가 장면에서 체스판을 뒤로 한 
채 비스듬히 상체를 일으키고 있는 블록의 표정은 이미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사신이 찾아온다. 그는 체스게임을 제안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 의
미를 찾기 위한 시간을 유예받기 위해서이다. 마을은 페스트와 함께 마녀사냥의 집단적 광기가 
휩쓸고 있다. 도처에 삶의 공포가 만연해있으나 신은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에게 있어 유예받
은 삶의 마지막 목표는 신을 감각하는 것이다. 그는 고해성사에서, 감각으로 신을 인식하는 것
이 불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신은 왜 불완전한 약속 뒤로 숨어버렸는지를 격하게 묻는다. 그러
나 돌아오는 대답은 '신은 침묵을 <BR>지킨다'는 것일 뿐이다. 마을에서 벌인 두번째 체스판에서도 그는 이긴다. 그러나 그가 절망 속
에서 찾는 신은 끝내 현전하지 않는다. 집으로 향하기 전 한무리의 마을 사람들과 숲을 지나면
서 그는 다시 사신과 마지막 체스게임을 벌이나 그것은 그가 유예된 시간을 반납할 결심을 굳힌 
후의 일이었다. 신은 아예 부재하든가 아니면 부재와 다름없는 침묵에 빠져있는 것이다.<BR>잉마르 베리만이 이 절망적인 귀향기에 요한계시록의 이야기를 따서 '제7의 봉인'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아다시피 그것은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 봉인
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는 중세를 빌어 현재의 인류가 '제7의 봉인' 앞에 서 있다고 말하고 싶
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그는 극단의 비관주의를 표출했거나 감히 다룰 수 없는 주제를 건드린 
셈일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영화 속에서 인간은 그 봉인을 그대로 덮어둘 수 있는 어떤 가능성
도 가지지 못한 것으로 그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lt;제7의 봉인&gt;은 교리문답
에 관한 것도 신학논쟁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결국 베리만이 강조점을 찍은 것은 사람들 사이
의 단절이다. 그것이야말로 삶의 참을 수 없는 공포를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고 신을 부정하며 
신을 침묵하게 만드는 원인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블록이 체스말을 쓰러뜨리며 광대 요프 일
가를 구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매우 역설적이다. 이 장면은 베리만의 예술가로서의 자기존재와 
인간에 대해 마지막 믿음의 끈을 잡으려는 몸부림에 가까운 절규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요컨대 
&lt;제7의 봉인&gt;은 중세적 주제가 아니라 현대의 삶의 공포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이다. &lt;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gt;
<BR>#39. &lt;현기증 vertigo&gt;(1958) /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nbsp;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활용하였던 히치콕 특유의 버릇 '훔쳐보기'는 &lt;현기
증&gt;에 이르러 마침내 관음주의자의 한계를 벗어나 창조자의 도구 구실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서 연구의 대상이 되는 &lt;현기증&gt;은 자신 때문에 동료경관이 사망한 과거의 사건 때문에 고소공
포증이라는 도덕적 마조히즘에 빠진 전직 형사 스카티의 '자기치료' 과정과 함께 한 여성과 사
랑에 빠지고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혀나가는 과정을 다룬 전형적 이중플롯의 작품으로 히치콕의 
관음주의와 환상주의가 만들어낸 지극히 남성적 시각의 작품이기도 하다.<BR>친구의 부탁으로 그의 아내 마들린을 쫓는 스카티는 언제나 마들린을 훔쳐보며 동시에 관객도 
마들린을 훔쳐본다(이러한 훔쳐보기의 배후조정자는 물른 히치콕이다). 그것은 스카티에게 있어
서는 환상이다. 스카티는 마들린이 죽고난 뒤 그를 꼭 닮은 주디를 발견하고는 그를 마들린으로 
만들려 한다. 이제 스카티는 환상을 현실로 바꾸는 창조주의 위치에 서려는 것이다. 물론 그 모
든 시도는 실제로 주디가 스카티가 쫓던 마들린의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난 
뒤 주디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스카티는 고소공포증에서 벗어나 현실을 자각하게 된
다. 히치콕이 이 모든 과정에서 보여주는 남성적 시각은 너무도 뚜렷하다. 스카티의 시점은 분
명히 제시하는 반면, 주디와 마들린, 그리고 마들린의 선조인 카를로타의 시점은 애매하게 만들
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것은 히치콕이 노린 함정이다. 이를테면 주디가 연기하는 마들린은 그의 
역할이 끝날 때까지 딱 한번의 분명한 자기시점만이 보여질 뿐이다. 그러나 그 시점도 사실은 
마들린이 아닌 주디의 시점이었다는 사실은 영화의 결말부분에 간 뒤 다시 그 장면으로 피드백
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마들린의 남편 엘스터와 스카티가 주디를 마들린으로 만들었지
만, 동시에 히치콕이 킴 노박을 주디로 만들고 또 마들린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해
야 한다.<BR>히치콕의 이런 반페미니스트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인간의 근원적 욕망, 곧 죽음의 충
동에 대한 이야기를 은밀하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을 요구한다. 카를로타
와 마들린으로 대변되는 죽음에의 욕망은 그에게 이끌리는 스카티의 심리상태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욕망을 이처럼 은유적이고 우회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찾기 힘든다(
물론 여성이 환상이면서 동시에 죽음의 이미지로 묘사된다는 것은 페미니스트들의 또다른 비판
의 대상이 되기도 할 것이다). 이 관음주의와 환상주의 그리고 죽음에의 충동을 짜맞추어 나가
는 할리우드의 프로이드 히치콕의 세밀한 연출기법은 범접하기 힘든 개성을 지니고 있다. 특히 
영화적 형식의 탁월함은 두고두고 논의의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4번에 걸쳐 사용된 줌과 트랙
의 결합장면은 주인공 스카티의 고소공포증을 묘사하는 데 매우 효율적이었고, 스카티의 시점에 
관객을 동일화하기 위해 사용한 주관적 트래킹 숏은 이제는 영화문법의 고전처럼 이야기된다.<BR>히치콕에게 영화는 환상의 실현수단이고 동시에 관객과의 게임도구다. 그래서 그는 늘 지적 우
월감을 만끽한다. 그중에서 &lt;현기증&gt;에 감추어진 비밀들은 관객들에게 고난도의 지적 게임을 요
구한다. 어차피 게임의 승자는 늘 히치콕이겠지만 관객은 패배를 기분좋게 받아들인다. &lt;현기증
&gt;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lt;필자: 김지석/영화평론가·부산예술학교 교수&gt;
<BR>#40. &lt;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North by Northwest&gt;(1959) /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nbsp;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국에서의 대표작이 &lt;39계단&gt;이라면 미국에서의 대표작은 MGM사 제작의 &lt;북
북서로 진로를 돌려라&gt;일 것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lt;현기증&gt;을 그의 최고 걸작으로 꼽지만 &lt;북
북서…&gt;가 극적 구성이나 형식, 서스펜스에서 더 세련되고 잘 짜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BR>미 CIA가 실존하지 않는 인물을 내세워 사건을 해결하는 예가 있다는 것이 뉴욕의 한 신문기자
를 통해 알려지자, 여기서 영감을 얻은 히치콕은 어니스트 레흐만에게 시나리오를 의뢰했다. 상
영시간이 1백36분이 되자 MGM은 뒷부분을 줄일 것을 제안했지만 그는 양보하지 않았다.<BR>뉴욕의 광고업자 로저 손힐은 어느날 아침 비서에게 일정을 알려주고 택시에서 내리다 두 명의 
괴한에게 납치된다. 그는 글렌코브의 어느 저택에서 술을 강제로 마신 뒤 버려져 음주운전으로 
체포된다. 다음날 홀어머니와 함께 현장으로 가보나 그곳은 전날밤의 내부가 아니다. 그 저택주
인이 유엔에 나가는 타운젠드라는 이야기를 듣고 유엔 본부 로비에서 그에게 면회를 신청하나 
엉뚱한 사람이 나왔다가 현장에서 등에 칼을 맞고 쓰러진다. 삽시간에 살인범 누명을 쓰게 된 
손힐은 괴한들이 그를 조지 캐플런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고 놀란다. 여기서부터 사건은 복잡하
게 미궁으로 빠져들어간다. 결국 손힐은 조지 캐플런이라는 인물의 정체를 찾아나서 누명을 벗
어야겠다고 생각해 추적에 나선다. 그는 시카고행 열차에서 이브 켄들이라는 금발의 미녀 산업
디자이너를 만나게 되어 사랑을 속삭인다. 켄들의 제보로 손힐은 41번 국도변에서 캐플런을 만
날 수 있을 줄 알았으나 헬리콥터의 습격을 받는다. 켄들에게 속은 것이다. 손힐은 미술품 경매
장에서 납치범의 두목격인 밴덤과 함께 나타나는 켄들을 본다. 그들이 조각품을 사가지고 사라
지자 손힐은 소란을 피워 경찰에게 끌려가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사우스다코타주 라피트 시
티의 커다란 대통령 얼굴석상이 있는 러시모어 산 아래 카페에서 다시 밴덤과 나타난 켄들을 만
나게 된다. 켄들은 권총 두 발로 손힐을 쓰러뜨리고 사라진다. 한 대학교수가 손힐을 구출해 차
에 싣고 숲으로 오나, 그것은 공탄이었다. 대학교수는 자신은 CIA 고문이고, 켄들은 밴덤의 정
부라고 말한다. 밴덤은 경매장에서 구입한 조각품 속에 국가기밀의 마이크로필름을 넣어 그날밤 
함께 비행기로 탈출한다.<BR>그러나 켄들도 CIA의 요원이며 조지 캐플런은 CIA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었다. 켄들은 손힐
의 기지로 조각품을 빼앗아 도망쳐 대통령 얼굴 석상 밑으로 내려오다 CIA 요원들의 구조로 살
아난다. 뉴욕으로 돌아오는 열차에서 둘은 결합한다.<BR>조지 캐플런이 누구인가 하는 의문 속에서 복잡한 사건, 반전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냉전시대 첩보전의 비정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BR>유엔 빌딩 안에서의 촬영은 하마슐드 사무총장이 금지시켜 몰래카메라로 복도를 찍고 로비는 재
현했다. 커다란 대통령 얼굴 조각상도 재현한 것이고 밴덤의 별장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
축물이다. 켄들 역의 에바 마리 세인트가 손힐 역의 미남 케리 그랜트를 유혹하는 침대차의 시
퀀스는 전 미국 영화중 가장 감미로운 러브신의 하나이다.<BR>히치콕은 일찍이 말했다. "내가 신데렐라를 만든다면 마차 속에 시체를 넣겠다.… 나는 스토리
보다 어떻게 이야기하느냐에 더 관심이 있다." 히치콕과 인터뷰한 프랑수아 트뤼포는 그의 죽음
에 즈음하여 그의 작품세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히치콕에게 형식은 내용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
다. 형식 자체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lt;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단국대 교수&gt;
<BR>#41. &lt;재와 다이아몬드 Popiol i Diamont&gt;(1958) / 감독: 안제이 바이다
&nbsp;
폴란드 영화는 1956년부터 1959년 사이에 르네상스기를 맞았다. 현대 폴란드 영화는 이 때부터 
시작됐다. 소련에서 스탈린이 죽은 직후 동구권에 불어닥친 해빙 분위기가 폴란드 영화인들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이다. 당시 폴란드 영화들이 내용과 형식 면에서 하도 출중해서 
서구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폴란드 유파라는 말이 떠돌았다. 그리고 안제이 바이다는 폴란드 유
파 중에서 가장 주목되던 감독이었다. 바이다가 1958년에 발표한 &lt;재와 다이아몬드&gt;는 곧 당시
의 폴란드 영화 수준을 대변하는 작품이 됐다. <BR>&lt;재와 다이아몬드&gt;는 1948년에 출간된 예르지 안드레예프스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 2차 대전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되던 해방 첫 날부터 복잡다단한 정치적 사연이 있던 폴란드 
사회를 묘사한 이 소설을 바이다는 하룻밤 하루 낮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로 축약했다. 배경도 자
잘한 에피소드를 빼면 주로 호텔이라는 한 공간으로 좁혀 놓았다. <BR>그러나 단일한 시공간으로 좁힌 내용의 상징적 의미는 폭이 넓다.<BR>2차 대전이 끝나고 해방을 맞이한 날, 전쟁은 끝났지만 폴란드에는 좌우 이데올로기 투쟁이라는 
또 하나의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마체크와 안제이는 우파 민족주의 진영의 레지스탕스 대원이
다.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 슈츠카를 암살하는 임무를 명령받는다. 그러나 테러는 실패하고, 두 
사람은 호텔로 피신한다. 이데올로기에 관심없는 마체크는 호텔 여급 크리스티나에게 수작걸기 
바쁘고 다시 지시를 받으러 간 안제이는 상부의 테러 명령에 회의를 느낀다. 그러나 역사는 이
미 개인의 손을 떠나 있다. 크리스티나와 하룻밤을 보낸 마체크는 투쟁보다는 연인을 택하고 싶
어하나 안제이의 설득에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마체크는 새벽에 호텔을 나서는 슈츠카를 
암살하고 도망치지만, 쓰레기장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는다. &lt;재와 다이아몬드&gt;는 정치영화지만 
대단히 낭만적인 분위기로 포장돼 있다. 호텔 방과 폐허의 교회에서 두 주인공 남녀가 나누는 
사랑 장면이라든지 쇼팽음악을 불협화음으로 사용한 결말 장면은 특히 애상적이다. 그러나 이는 
감상으로 흐르지 않고 전체에 대한 통찰로 이어진다.<BR>바이다는 슈츠카와 마체크를 모두 공감가게 묘사해 놓고 있다. 슈츠카는 폴란드의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는 사려깊은 지도자다. 그러나 왜 싸워야 하는지 모르지만 충동적으로 싸우고 있는 폴
란드의 이유없는 반항 세대 마체크 역시 관객에게 공감을 준다. 바이다는 폴란드에 새로운 힘을 
불어넣을 수 있었던 슈츠카와 역사의 시계 바늘을 거꾸로 돌린 마체크를 다같은 희생자로 묘사
하는 독특한 결론을 내린다. 다분히 회의적인 관점이라고 해야겠지만 거기에 제대로 갈피를 잡
지 못한 폴란드의 역사가 녹아 있는 것이다.<BR>선굵은 조명과 딥 포커스로 짜임새를 갖춘 바이다의 화면 설계는 오슨 웰스 감독의 영향을 암시
하고 있다.<BR>제목 &lt;재와 다이아몬드&gt;는 폴란드 낭만주의 시인인 노르비트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횃불과 같
이 네 몸에서 불꽃이 퍼질 때, 넌 아는가. 자기 몸을 태워가며 자유의 몸이 되어 감을…. 영원
한 승리의 여명에 잿 속 깊은 곳에 찬란한 다이아몬드만이 남으리."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자신
들이 재가 될 것인지 다이아몬드가 될 것인지 알지 못한다. 바이다 역시 한 때의 역사적 순간에 
대해 어떤 해답을 쥐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남는 것은 그저 역사와 인생의 부조리함뿐이다. &lt;
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lt;씨네 21&gt; 기자&gt;
<BR>#42. &lt;오발탄&gt;(1961) / 감독: 유현목
&nbsp;
&lt;오발탄&gt;은 1960년에 만들어져 1961년에 상영되었다. 5·16 쿠데타 세력에 의해 상영이 중단되
었다가 1963년에 다시 상영되었고 이후 20여년이 지나 이 영화는 다시 떠오르게 되었는데, 이러
한 복권 아닌 복권은 한국영화의 굴곡과 비슷한 그래프를 따라 이루어진 것이다. '80년대 세대'
에 의해 &lt;오발탄&gt;은 다시 대중들 앞에 나타났고, 이제는 비디오 가게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는 말이다.<BR>틈만 나면 "가자"고 외치는 늙은 어머니, 상이군인인 동생 영호, 만삭인 아내와 어른들을 믿지 
않는 딸, 양공주가 된 여동생, 신문팔이를 하는 막내동생 그리고 주인공 철호는 언덕바지에 있
는 마치 영화 세트 같은 판잣집에서 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꿰뚫고 있는 것은 바로 '전쟁'이
다. 환경과 심성의 뒤틀림은 전쟁으로 비롯된 것이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없다. 60년
대 한국영화의 놀라운 포착이다.<BR>비록 이범선의 원작에 기대고 있긴 하지만 유현목이 자기 작품에서 포착한 것은 문학적 서술이 
아니라 영화적 표현, 에이젠슈테인에 기대서 말하자면 유기성과 파토스(정념)였던 셈이다. 유현
목은 전쟁이 휩쓸고 간 서울의 바지런함 속의 공허, 공허 속의 실낱같은 희망, 희망의 좌절 등
을 차례차례 그려가고 있다. 이런 순차적 배열은 계획적인 주제 전달로서 유기성을 획득하고 그 
결과 치열한 정서가 폭발한다.<BR>멀쩡한 신사복 사내가 치통이 있으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이유를 깨닫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
니다. 여동생이 양공주가 된 사연과 동생 영호의 은행 강도짓이라든가 딸의 불신 등을 이해하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주요 배경인 집안을 비춘 화면 구도와 빛의 명암 
그리고 배우들의 동선과 그것을 잡은 카메라 렌즈의 깊이 등을 눈치채기 위해서는 공을 좀 들여
야 한다.<BR>그런데 여기서 불협화음이 일어난다. 반항아 영호(최무룡) 등이 선술집에서 술을 마시는 배경과 
몸짓, 집안 실내 배경의 서구적 구도 등은 미학적으로는 완결성을 갖추고 있지만 낯설게 보인다
. 이 낯설음은 서구 영화를 기준으로 하면 낯익은 것이고, 우리 상황으로 보면 낯선 것이다. 유
현목은 안의 고민을 바깥 것을 동원하여 드러내려 하였고 그럼으로써 '근대 영화'에 다가섰던 
것이다.<BR>어디로 갈 것인가. 유현목의 발걸음은 갈팡질팡한다. 죽은 아내가 있는 병원? 동생이 갇힌 경찰
서? 어머니가 있는 집? 꼭 그만큼 그는 방황한다. 감정의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영화? 
네오리얼리즘? 몽타주? 할리우드 또는 유럽의 대중 영화? 결국 유현목은 결정하지 못한다. 단지 
택시기사가 "나참,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군…" 하고 불평할 뿐이다. 이렇게 유현목은 단역의 
입을 빌려서 영화를 마감하였다. 꼭 그만큼 유현목은 전쟁과 서울을 놀랍도록 날카롭게 묘사하
지만 그 고민 방식은 어딘가에 기대고 있는 듯하다.<BR>그래서 &lt;오발탄&gt;의 좌표는 한국 현실이라는 수직선과 '빌려온 근대영화적 고민'이라는 수평선 
위에서 찍힌다. 수직으로는 한없이 올라간 지점이며 수평으로도 멀리 나아간 지점. 물론 수평의 
마이너스 영역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추앙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 될 때, 
&lt;오발탄&gt;은 다시 부활할 것이고 당분간 혹은 오랫동안 한국 최고의 영화라는 영예를 누릴 수 있
을 것이다. &lt;필자: 이효인/영화평론가&gt;
<BR>#43. &lt;히로시마 내사랑 Hiroshima Mon Amour&gt;(1959) / 감독: 알랭 레네
&nbsp;
사운드가 사라진 뒤의 낯선 침묵, 이미지의 이상스런 유혹, 그리고 사운드와 이미지의 새로운 
만남. 영화는 이렇게 늘 실험중이었다. 적어도 50년대 말에서 60년대에 이르는 시기에는 그랬다
. 20년대의 역사적 아방가르드의 실험 이후 두번째로 맞는 르네상스 시기의 영화들은 새로움이
라는 뜻의 '누벨'(프랑스), '노이에'(독일), '노보'(브라질)라는 이름으로 영화 매체를 재구성
한다. 영화의 네오 모더니즘 시대가 된 것이다.<BR>&lt;히로시마 내사랑&gt;의 감독인 알랭 레네와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장 뤼크 고다르가 &lt;마지막 숨결
&gt;(네멋대로 해라)를 내놓은 바로 그 해에 그들의 첫번째 공동 작업을 완성한다. 그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운드와 이미지의 매체인 영화로 2차대전이 남긴 기억의 흔적을 텍스트화한다. 무
대는 사람들 개개인의 육체 속에 원폭의 악몽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히로시마라는 도시, 그 히
로시마에서 에로티시즘과 역사적 기억이 만난다. 영화가 시작되면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벗은 
몸 위, 애무의 손길 위로 원폭 피해자의 상흔을 연상시키는 거친 모래입자 같은 것이 오버랩된
다.<BR>전쟁이 끝난 지 10여년 뒤, 히로시마의 강가 카페들은 네온으로 눈부시고, 원폭의 공포는 전쟁
기념관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는 듯이 보이며, 프랑스 여배우(에마뉘엘 리바)는 일본인 건축가
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히로시마는 완강하게 과거의 박제화에 반대한다. 그리
고 영화라는 매체는 바로 그 박제화에 대항하는 형식이다. 세계의 평화를 위해 제작된다는 영화 
속에서 히로시마의 거리는 피해자들의 시위로 뒤덮이고, 사람들은 울부짖고 원폭으로 으깨진 손
과 몸이 클로즈업된다. 그리고 여주인공은 히로시마에서 자신의 전장이던 느베르를 기억한다.<BR>독일군 점령 당시 여주인공은 프랑스의 느베르에서 독일군 병사와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은 마
을사람들의 분노 속에서 죽어갔다. 그 죽음과도 같은 고통 때문에 그는 자신이 히로시마의 모든 
고통을 보았고 이해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일본인은 그의 기억과 보기의 방식을 거부한다. 그래
서 여자는 "나는 히로시마에서 모든 것을 보았어요"라고 말하고 남자는 "당신은 히로시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어요"라고 되받는다. 사실 히로시마와 느베르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러나 영화는 플래시백과 오버랩을 반복하며 그 두 공간을 잇는다. 플래시백을 통해 느베르는 히
로시마의 공간 속에서 예기치 못하는 방식으로 솟아오르고 오버랩은 일본인 연인과 독일 연인을 
환유의 관계로 만든다. 일본인 남자는 그러나 영화 이미지의 이러한 비역사적 마술에 사운드로 
저항한다. 그는 오히려 "당신에겐 히로시마가 전쟁의 끝을 알리는 기쁨이었지만, 우리에겐 고통
의 시작이었다"고 말한다. <BR>말하자면 이미지와 사운드는 프랑스 여성과 일본인 남성으로 주체화되어 서로 불화하며, 역사 
역시 그들을 통과하며 그 의미에 대한 싸움을 벌인다. 마지막 장면, 여자가 남자에게 바로 당신
이 히로시마였다고 말함으로써 개인적 층위의 화해는 이루어지지만 이 영화의 정치적 입장은 모
호하다. 영화는 실험이다 라고 뒤라스와 레네가 말했을 때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미지와 사운드
의 복합성에 관한 진술이었고 그 의미로만 한정시킨다면 &lt;히로시마 내사랑&gt;은 영화라고 이름붙
여진 작은 실험실 안에서는 성공적이다. &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gt;
<BR>#44. &lt;정사 L'Avventura&gt;(1961) / 감독: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nbsp;
도둑맞은 자전거 문제도 없어진 이제 중요한 것은 자전거를 도둑맞은 적이 있는 사람의 마음과 
머리 속에 무엇이 있는지, 그는 어떻게 적응하고 사는지, 그의 과거경험, 전쟁과 전후의 시기, 
전쟁을 치른 이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모든 것은 그에게 무엇으로 남아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BR>이는 네오레알리슴 시기에 각본쓰기, 단편영화 만들기로 습작기간을 거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
니가 그 전통을 빠져나오면서 던진 말이다. 안토니오니는 그 사람의 내면을 &lt;어느 사랑의 이야
기&gt;(50)에서는 치정살인을 둘러싼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통해, &lt;외침&gt;(52)에서는 여인으로부터 
버림받은 남자의 황폐한 여정을 통해 탐구하고자 했다. 그리고 &lt;정사&gt;에서부터 그는 산업사회로 
급격히 진입하고 있는 이탈리아 현대인의 내면을 그려낸다. 안토니오니에 의하면 그 현대인은 
기술의 진보에 한걸음 처지는 도덕적 수단으로 세계를 산다. 그래서 그는 그를 둘러싼 환경, 인
간들, 사물들과 진솔한 관계를 맺을 능력이 없다. 그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도덕적 갈등에 대
응하기 위해 그는 성이나 사랑을 찾는다. 그러나 이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
는 새로운 가능성, 새로운 모험을 생성해낼 정서로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BR>여기서 '모험'은 바로 &lt;정사&gt;의 원제목이며, 영화는 그 모험이 필요한 현대인을 다룬다. 이야기
는 너무 간단하다. 요트여행 중 안나라는 여자가 실종되고 그녀의 친구 클라우디아와 애인 산드
로가 그녀를 찾아나선다. 소문을 따라 안나를 찾아다니던 두 사람은 연인이 된다. 그런 가운데 
매춘부와 하룻밤을 지낸 산드로에게 클라우디아는 절망하나 연민으로 그를 감싸안는다. 연민이 
새로운 모험의 첫걸음인 듯 세 사람 외에 영화는 다양한 인물들을 그 이야기와 필연적인 관계없
는 배경으로, 어쩌면 잘못 연출된 섹스풍자극의 인물들처럼 간헐적으로 등장시키기도 한다.<BR>하지만 두시간 이십분 가량 아주 느슨하게 방황하는 영화의 흐름은 안나의 실종을 아무것도 아
닌 것으로 다룬다. 영화는 실종에 대한 답으로 향하지도 않으며 그 실종이 친구와 애인에게 던
진 정신적 여파에도 별 관심이 없다.<BR>꽉 짜인 이야기 구조를 지닌 영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 영화가 칸에서 상영되었을 때 호된 야
유를 보낸 관객들처럼 이 영화를 참아낼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구차한 삶에는 적용할 
만한 부분이 눈곱만큼도 없는, 정말 하릴없는 부유층의 권태와 나른함과 거짓 욕망들을 바라보
는 것도 참기 힘든 것이리라.<BR>그러나 보통 영화에서 생략해 내버리는 우리 일상의 진실의 순간들, 인과의 고리가 없이도 생겨
나는 무수한 순간들, 너무나 일상적이라 존재하지 않는 듯한 순간들 속의 현대인들을 이 영화처
럼 잘 묘사해낸 작품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들의 말없음, 미세한 움직임, 공허한 표정, 방향
잃은 자태들은 완벽하게 아름다운 화면구성과 길고 짧음의 리듬감을 가진 촬영과 편집속에서 스
스로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플롯이 이야기를 한다기 보다 관객 스스로가 빈 듯한 화면, 무표정
한 인물들, 배경이 되는 지형과 인물간의 관계를 읽으며 그 너머의 이야기를 쌓는 것이다.<BR>이러한 주제와 시각적 특성이 당대 이탈리아를 예술영화의 보고로 함께 세워낸 펠리니의 투명한 
자기반영적 기법과도 다른, 바로크적 미학으로 성과 정치를 논한 비스콘티와도 다른, 영화를 하
나의 예술작품, 그 자체로서 충분히 미학적 가치를 갖는, 오랜 시간을 견디는 미적 대상으로 만
드는 데 안토니오니가 기여한 바일 것이다.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
<BR>#45. &lt;네멋대로 해라 A Bout de Souffle&gt;(1959) / 감독: 장 뤽 고다르
&nbsp;
제로에서 다시 시작하자. 장 뤼크 고다르의 선언은 '새로운 영화'의 명제가 되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은 고전적 양식을 완성하였고(앨프리드 히치콕, 존 포드, 그리고 장르 영화들), 
이탈리안 네오 레알리슴은 부패하기 시작하였고(펠리니, 안토니오니, 비스콘티), 프랑스영화는 
문학의 진부한 재각색(르네 클레망, 앙리 조르주 클루조에서 알랭 레네까지)에 사로잡혔다. 영
화는 진퇴양난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이제 영화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결별(!)이 필요했다.<BR>장 뤼크 고다르(1930∼)는 바로 이때 수호천사처럼 등장하였다. 프랑스 영화비평지 &lt;카이에 뒤 
시네마&gt;에서 영화평을 쓰던 고다르는 하워드 혹스와 뮤지컬, 험프리 보가트, 그리고 할리우드 
Ｂ급 영화의 열렬한 숭배자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와 앙드레 바쟁의 미
장센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킬 가능성을 모색하였다. 비평가 시절 그가 쓴 '몽타주, 나의 멋진 
근심'은 영화감독으로서의 고다르에 대한 예고편이다.<BR>고다르는 8편의 단편영화 수업을 거쳐 그의 &lt;카이에 뒤 시네마&gt; 동료이자 영화감독인 프랑수아 
트뤼포의 시나리오 &lt;네 멋대로 해라&gt;로 데뷔했다. 그는 스스로 이 영화를 '오토 플레밍거의 &lt;슬
픔이여 안녕&gt;에 대한 속편'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으며, 또 한편으로 험프리 보가트에게 바치는 
연애편지(!)라고 불렀다. 고다르는 &lt;네 멋대로 해라&gt;에서 자신의 영화광적인 영화에 대한 애정
으로 영화에 바치는 존경심과 함께 정반대로 모든 영화에 대한 부정을 시도하고 있다. 영화는 
마치 B급 갱스터 영화의 멜로드라마처럼 보인다. 주인공 미셸(장 폴 벨몽도)은 별다른 이유없이 
차를 훔치고, 여자들을 울리고, 경찰을 총으로 쏘고, 미국에서 온 애인 패트리샤(진 세버그)를 
설득해 도망치자고 유혹한다. 그러나 패트리샤는 경찰에 고발하고, 미셸은 거리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다.<BR>고다르는 미셸과 함께 59년 파리를 달린다. 알제리가 프랑스 대혁명정신에 근본적 질문을 던지
고, 실존주의가 구조주의에 자리를 양보하고, 드골정권이 보수반동주의로 변질하고 있는 파리에
서 '새로운 세대'의 공기와 시대정신이 무엇인가를 영화는 영화 스스로 질문한다. 고다르는 영
화사상 최초로 '영화에 관한 영화'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래서 카메라는 스스로의 자의식을 갖
고 주인공과 이야기와 작가 사이에서 영화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주인공은 갑자기 카메라를 향
해 말을 걸고, 화면은 점프 컷과 롱 테이크의 수사학으로 영화의 불문율을 차례로 돌파한다. 영
화는 지켜야 할 문법을 갖고 있지 않은 담론이며, 고다르는 영화란 '네 멋대로' 만드는 것이라
고 선동한다.<BR>고다르는 단호하게 말한다. 영화에서 이론이란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영화에 관한 이론이란 영
화(들)뿐이라고 대답한다. 만일 그러하다면 고다르는 여전히 영화로 영화를 말하는 영화평론가
인 셈이다. 그는 &lt;네 멋대로 해라&gt;에서 미래의 영화를 발명한 것이며, 고다르를 통해서 영화는 
무한히 다양한 상상력의 이미지를 타고 도주하는 복화술사가 되었다. 고다르 이전에 고다르 없
고, 고다르 이후에 고다르 없다. 평생 고다르가 싫어했던 미셸 푸코의 찬사다. &lt;필자: 정성일/
영화평론가&gt;
<BR>#46. &lt;쥘과 짐 Jules et Jim&gt;(1961) / 감독: 프랑소와 트뤼포
&nbsp;
1953년, 73살의 앙리 피에르 로셰가 고령에도 불구하고 첫 소설 &lt;쥘과 짐&gt;을 발표했다. 프랑수
아 트뤼포는 당시 21살, 랑글루아가 만든 시네마테크의 악동이자 앙드레 바쟁의 &lt;카이에 뒤 시
네마&gt;로 평단에 입문한 그는 이 소설을 언젠가 반드시 영화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
로부터 8년이 지난 1961년, 트뤼포는 기어코 그 꿈을 이루게 된다.<BR>&lt;쥘과 짐&gt;은 두 남자와 한 여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상투적인 멜로드라마에서 닳고 
닳도록 써먹은 소재다. 그러나 트뤼포는 진부한 삼각관계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는 여성의 
자유와 그에 대한 남성의 반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중심인물은 &lt;쥘과 짐&gt;이라
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쥘이나 짐이 아니라 카트린이다. 쥘 그리고 짐과 친구이자 부부, 연인의 
관계를 유지하다 죽음을 맞이하는 카트린은 이상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였다. 그는 누구에게 이
해를 바라기보다는 행동으로 여성의 '해방'을 쟁취하려 했다. 그러나 1차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문화적 순수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불안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유럽의 시대, 사회적 배경은 
그가 설 공간을 남겨두지 않는다. 사실 카트린이 이루려고 했던 자유는 쥘과 짐이 스스로에게 
던진 과제이기도 했다. 그 과제를 카트린만이 목숨을 던져가며 쟁취하는 것이다. &lt;쥘과 짐&gt;에서 
가장 강력한 나름대로의 자기해방이기도 하다. 그래서 카트린은 쥘과 짐에게, 아니 트뤼포에게 
아나키스트이며 동시에 대지의 어머니다. 이처럼 60년대 그의 영화 속의 여성들은 매우 지적이
며 또 남성들에 비해서도 훨씬 당당하고 진취적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여성을 이해하는 척 하
려 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려 한다. 트뤼포
의 관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삼각관계는 필연적으로 소외를 야기하는데 트뤼포는 이를 언
어의 문제로 파악한다. 쥘의 독일식 액센트는 그를 타자와 분리시키고 쥘과 짐은 다른 트뤼포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언어가 가장 중요한 작가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카트린의 문제
는 언어로는 풀리지 않는다.<BR>확실히 트뤼포는 같은 랑글루아와 바쟁의 아이면서도 고다르처럼 직접적으로 정치적이지는 않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성의 정치'에 대한 관심이 무시되어서는 안된다. 쥘과 짐, 카트
린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가장 기초적인 정치집단, 즉 가정에 대한 관심의 일면이기도 하다. 
정치란 가정에서 시작되며 따라서 사랑 이야기는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BR>이를테면 그는 결혼이 불완전한 제도임을 인정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에 대한 대안도 부재한
다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카트린의 죽음은 '성의 정치'에 관한 항거다.<BR>르누아르로부터 일상적 삶의 시각적 표현에 대한 열정을, 히치콕으로부터 영상의 힘과 감각을 
배운 호모-시네마티쿠스 트뤼포는 이러한 그의 주제의식을 때로는 서정적 스타일로 또 때로는 
낯선 사진적 효과와 편집효과(스톱 프레임, 스위시 팬, 점프 컷 등)로 엮어나간다. 말하자면 대
중성을 충분히 갖추면서도 누벨바그의 실험적 정신을 잃지 않는 조화로움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 바로 이 점 때문에 &lt;쥘과 짐&gt;은 누벨바그 영화를 따분하게 생각하는 대중들에게조차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 &lt;필자: 김지석/영화평론가·부산예술학교 교수&gt;
<BR>#47. &lt;8과 2분의 1 Otto E Mezzo&gt;(1963) /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
&nbsp;
이탈리아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네오레알리슴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BR>&lt;8과 1/2&gt;은 &lt;무방비도시&gt; 등 네오레알리슴의 걸작 대본을 도맡아 쓴 페데리코 펠리니와 그 네
오레알리슴의 결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는 제목 그대로 펠리니의 "8편 반째 만들어지고 있
는 영화"(크리스티앙 메츠)다. &lt;달콤한 인생&gt;에 로마의 퇴폐적이고 나태한 부자들의 생활을 보
도하는 기자로 나온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역시 주인공이다. 그는 신경쇠약을 치료하기 위해 
온천장에 온 유명한 영화감독 '구이도'로 출연했다. 구이도는 우주로 도피하려는 제3차대전 생
존자들에 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는 항상 동업자들, 제작자와 시나리오 작가와 배우들에
게 포위되어 있다. 그들은 그에게 영화에 대한 의견과 생각을 쉴 새 없이 요구하고 질문을 해 
대지만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는, 마침내 현실인식에 도달했을 때, 다시 말해서 자신이 
인류를 위한 메시지를 담은 거창한 영화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며 그 대신 자신의 혼란, 불확실
성, 타협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깨닫고서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BR>&lt;8과 1/2&gt;은 흔히 모더니스트의 전통에 놓인 '의식의 흐름'의, 혹은 내적 독백의 영화로 분류되
는데 여기서 펠리니는 주·객관적 시각을 교차시켜가며 관점의 복잡한 변화를 아주 기술적으로 
구사한다. 구이도의 백일몽과 플래시백과 악몽을 돋보이게 해주는 건 '객관적' 장면들이다. 예
를 들면 앞뒤로 꽉 막힌 상태를 암시하는 영화 시작 부분의 교통마비 장면은 구이도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도 그가 느끼는 폐소공포증적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가 자동차에서 탈
출하여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 자유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발이 밧줄에 매달려 
땅으로 당겨지는 장면을 통해 표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그것 또한 구이도의 악몽임
이 드러난다.<BR>현실세계에 대한 구이도의 부적응은 성적 무능과 여성관계에서 드러난다. 그는 두 가지 여성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어린 시절 기억 속 한 자락을 차지하는 라 사라기나는 성욕과 순진함, 
악마와 강력하고 두려운 생명력의 상징이다. 그의 뮤즈, 클라우디아는 환상 속에서 항상 그에게 
무엇인가를 베푸는 이상적 여성이며 영원한 어머니 마돈나와 같다. <BR>현실의 그는 또 자신의 정부를 창녀처럼 분장시키려는 욕구를 느낄 정도로 억압되어 있다.<BR>&lt;8과 1/2&gt;의 1백35분(시중에는 2개의 비디오테이프로 나와 있다)동안 관객들이 보는 것은 구이
도가 만들려는, 혹은 만들어놓은 영화의 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영화라기보다는 영화가 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찾기 위한 여행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구이도
는 "정말로 예술가라 불릴 가치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의 창조적 생활에서 한가지 것, 침묵에 
대한 헌신을 맹세해야 한다"는 말에서 힘을 얻어 원무를 연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예술적 아이디어 고갈에 대한 작가의 두
려움을 이 영화를 통해 그려보인 펠리니 자신의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후 그는 스펙터클과 
기억의 환상에 더욱 집착하였고 단순한 배경과 향수로 격하된 역사의 묘사, 자전적 표현주의 양
식에 너무 깊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가의 삶과 상상력의 산물에 예술가의 영감이 서려 
있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낭만주의로 회귀하였다. &lt;필자: 변재란/영화
평론가&gt;
<BR>#48. &lt;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 Teni Zabytykh Predkov&gt;(1964) / 감독: 세르게이 파라자노프
&nbsp;
1964년, 서방세계 영화는 '실험주의 시대'라 불릴 만한 모더니즘과 컬트주의에 휩싸였다. 누벨 
'까이에' 바그 악동들(고다르, 트뤼포, 리베트, 샤바를)은 막다른 영화로 치달렸으며, 돌아온 
거장들(부뉴엘, 브레송, 펠리니, 베리만)은 형이상학적 주제에 매달렸다. 뉴욕에는 앤디 워홀 
공장이 생겼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60년대 이미지의 계몽주의 프로젝트 속에서 가장 야심
적이고 놀라운 성공을 거둔 이는 두 사람의 러시아인이었다. 한 사람은 &lt;안드레이 루블례프&gt;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였고, 또 한 사람은 &lt;잊혀진 선조들의 그림자&gt;의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였
다.<BR>파라자노프(1924∼1990)는 평생 '저주받은 작가'의 길을 걸었다. 그는 그루지야에서 태어나 아
르메니아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언제나 변방의 영화작가였다. 20년간 감옥과 감시 속에서 보낸 
파라자노프는 옥중에서 8백점의 공예품을 만들고, 2백31편의 시나리오를 쓰고, 23편의 구체적 
영화계획을 세우고, 7편의 영화만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력에서뿐만 아니라 영화수사
학적으로도 변방의 영화, 바깥의 영화, 예외의 영화를 만들었다.<BR>서방세계에서는 &lt;불타는 말&gt;로도 알려진 그의 세번째 영화 &lt;잊혀진…&gt;은 그 이후의 모든 영화감
독들(파졸리니, 고다르, 펠리니, 헤어초그, 레네, 데릭 자만, 배용균)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또
한 언제나 그들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모스필름에서 영화를 만들던 파라자노프는 평
생 동료였던 촬영감독 유리 일리옌코와 함께 모스크바를 떠나 키에프의 도브젠코 스튜디오로 옮
겼다. 거기서 우크라이나 지방의 소설가 코치유빈스키 원작과 카르파티나지방의 민담을 각색해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이 영화는 12개의 에피소드로 나누어 촬영
했다. 서로 반목하는 집안에서 태어난 이반과 마르치카는 사랑에 빠진다. 이반은 마을을 떠나고
, 마르치카는 기다린다. 기다리던 마르치카는 죽고, 이반이 돌아온다. 새아내 파라냐와 결혼하
지만, 아내는 부정을 저지른다. 이반은 고통 속에서 죽는다. 파라자노프는 우리시대에 태어난 
민담 소리꾼처럼 보인다. 그는 빅토리아 왕조 이후의 대중소설 이야기 구조나 조이스 또는 프루
스트 이후 모더니즘의 자동기술의 '의식의 흐름' 모두를 부정한다. 또한 에이젠슈테인의 몽타주
나 앙드레 바쟁이 정식화한 미장센도 거절한다. 파라자노프는 일시에 모든 영화의 수사학 바깥
으로 나와 문어체 영화의 상상력으로부터 구어체 영화의 직관력으로 옮겨간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에 관한 모든 사고를 교란시킨다!<BR>파라자노프는 마치 멜리에스 이후의 모든 영화가 없었던 것처럼 자유자재로 영화를 만든다. 영
화는 시제를 잃고, 구조도 없으며, 형식도 없이 융단처럼 직조된 콜라주의 민담이 된다. 그는 
중국 국경에서 흑해연안에 이르는 민담을 끌어모아 그 이야기의 방식에 따라 스스로 말하게 만
든다. 그 속에서 여러개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는 민속박물관의 창연함이 있으며, 잊혀진 민중들
의 세상이 살아나 벌이는 축제가 된다. 파라자노프의 영화는 이야기하는 자의 언어로 노래하는 
영화이며, 공식문화에 저항하는 방언과 상소리와 속된 것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민중들의 다채로
운 노래를 예술가의 영혼으로 듣는다. 이것이야말로 아래로부터 생각하는 영화이다.<BR>그러나 이 단 한편의 영화로 파라자노프는 타르코프스키와 함께 60년대 내내 침묵을 강요당했다
. 그것은 레닌의 교훈 "인민들 스스로의 예술로 말하게 하라"는 교훈과도 다른 것이다. 당 지도
부는 틀린 것이며, 흐루시초프는 사회주의 영화를 죽인 것이다. 시간은 언제나 예술가의 편이 
아니다. 파라자노프의 유언이다. &lt;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gt;
<BR>#49. &lt;알제리 전투 La Battaglia di Algeri&gt;(1965) /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
&nbsp;
역동적인 시네마 베리테의 스타일로 알제리의 혁명을 재연한다. 1965년에 만들어진 질로 폰테코
르보의 &lt;알제리 전투&gt;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알제리의 민족해방투쟁을 세
부묘사한 서사극이다. 식민주의의 몰락을 염원하던 사람들은 이 영화에 대해 열광했고, 영화의 
선언을 과대해석한 우파 평론가는 "사적 유물론의 메시지가 당신의 뼈 속 깊숙이 스며들 것"이
라며 분통을 터뜨렸으며, 프랑스 정부는 영화의 배급을 금지시켰다.<BR>"알제리의 전투를 드라마로 재연한 이 영화에는 뉴스릴이나 다큐멘터리 장면이 단 한 피트도 포
함되어 있지 않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 자막이 없다면,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와 구분
해낼 화면상의 근거는 그리 많지 않다. 무대는 1957년 알제리, 민족해방전선(NLF)의 비밀 아지
트를 포위한 프랑스 공수부대는 항복할 것을 요구한다. 포위된 게릴라들 속에 앉아 있던 오마르 
알리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상념에 잠기고, 시간을 거슬러 NLF가 재건되던 1954년으로 옮겨간다.<BR>거리에서 야바위꾼 노릇을 하다 체포된 알리는 감옥에서 우연히 게릴라의 처형장면을 목격한다. 
생명을 건 테스트를 거친 뒤 그는 게릴라 활동가로 변모해서 암살과 파괴의 임무를 수행한다. 
1956년 6월을 기점으로 투쟁이 본격화하자, 이듬해 프랑스정부는 공수부대의 힘을 빌려 무력진
압에 나서게 된다. 레지스탕스 출신의 지휘관 마튜 대령은 체계적으로 NLF의 하부 세포 조직을 
파괴해나가고 오마르 알리 또한 항복을 거부한 채 폭사한다. 알리가 죽은 지 2년 뒤인 1960년, 
갑작스럽게 알제리 민중들의 시위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오고 1960년 7월2일 알제리는 독립을 쟁
취한다.<BR>60년대 초반 요리스 이벤스의 영향 아래 몇편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던 감독 질로 폰테코르보는 
자신의 경험을 드라마 깊숙이 끌어들인다. 시위와 총격전의 가운데를 카메라는 마치 종군기자처
럼 흔들거리면서도 집요하게 누벼가며, 인공적인 조명을 배제한 자연상태의 촬영은 마치 뉴스릴
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BR>그러나, 강력한 현실성이 '보이는' 촬영 스타일에서만 출발한 것은 아니다. 알제리 정부의 지원 
아래 만들어진 이 영화는 모두 알제리의 실제 장소에서 촬영되었고, 촬영현장에 동원된 알제리 
민중은 전투의 기억을 되살리며 울부짖었다. 엑스트라의 표정이 살아 있다는 말이 이 영화만큼 
적절한 경우도 흔치 않으며, 엔니오 모리코네의 격정적인 음악에 실려 있는 배우들의 진지함과 
농축된 대사는 영화의 차갑고 건조한 기조를 보상해준다.<BR>그 결과 &lt;알제리 전투&gt;는 스타일과 내러티브에 있어서, 이후 70년대를 풍미한 정치 영화의 전형
이 되었지만, 질로 폰테코르보 자신은 그 이후로 다시는 &lt;알제리 전투&gt;로 돌아오지 않았다. 
1969년 그는 베트남전에서의 미국과 프랑스의 위상을 우화처럼 다룬 &lt;불살라라!&gt;를 통해서 '전
통적인' 영화도 모더니스트만큼이나 저항적일 수 있음을 입증하려 했다.<BR>30년이 지난 현재, 감독은 베니스 영화제 집행위원장이 되어 있고, 그가 출발점으로 삼았던 시
네마 베리테는 캠코더의 보급에 힘입어 이제는 세계 곳곳에서 민중들의 손에 의해 마다 수없이 
재탄생하고 있다. 그리고 &lt;알제리 전투&gt;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알제리는 혼란의 와중에 있다. 영
화 속에 스쳐지나가는, 체포된 지도자의 대사 한마디가 이토록 뼈아플 줄은 감독 자신조차 예상
하지 못했을 것이다. "혁명은 일으키기도 어렵고, 지속해가기도 어려우며, 승리로 이끌기는 더
욱 힘들다. 그러나 진정 힘든 문제들은 승리 그 이후에야 닥쳐올 것이다." &lt;필자: 김명준/영화
평론가&gt;
<BR>#50. &lt;무셰트 Mouchette&gt;(1967) / 감독: 로베르 브레송
&nbsp;
&lt;무셰트&gt;는 조르주 베르나노스가 1936년 발표한 소설 &lt;무셰트의 새로운 이야기&gt;를 로베르 브레
송이 각색하고 연출했다. 브레송은 '파편화'와 '벗김'의 개념, 몽타주에 의한 영상과 소리를 결
합한 독특한 문체를 구상한 영화작가다. 이 영화에서 브레송은 영화의 시각적 기능을 넘어서 해
독적 기능을 채용하여 시각적 이미지의 또다른 차원을 보여주고 있다.<BR>주인공 무셰트는 아주 가난한 마을에 사는 14살 소녀다. 그는 가슴을 앓고 있는 어머니, 알콜중
독자인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6개월 된 남동생을 돌보아야만 한다. 어느날 무셰트는 학교가 파
한 후, 숲속을 방황하다가 비를 만나 길을 잃게 된다. 어둠 속에서 비를 피하다가 밤사냥을 마
치고 통나무 집으로 돌아가던 밀렵꾼 아르젠느를 만나게 된다.<BR>그는 "술김에 삼림감시원 마티유를 죽였다"고 고백하고 무셰트는 "알리바이를 해주겠다"고 제의
한다. 그날밤 간질발작에서 깨어난 아르젠느에게 무셰트는 강간당한다. 그후 아르젠느로부터 도
망쳐 집으로 돌아온 그는 엄마에게 그날밤 겪은 고통을 이야기하려 했지만 엄마는 숨을 거둔다. 
다음날 아침, 식품가게 주인 여자에게 지난밤의 일이 발각되고 아르젠느가 죽였다는 삼림감시원
을 그의 집에서 맞닥뜨리게 되자 아르젠느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게 된다. 무
셰트는 엄마의 염을 맡은 노파에게서 엄마의 시신에 입힐 모슬린을 받아 걸친 채 마을 어귀의 
작은 연못에 자신의 몸을 던져 자살한다.<BR>이 영화에서 돋보이는 연출은 동양화의 여백 같은 여운을 주는 침묵의 사용이다. 엄마의 죽음으
로 인한 침묵, 자살을 향한 길 위로 마치 다른 세계에서인 듯 들려오던 사냥꾼들의 총소리와 성
당의 먼 종소리가 멎은 후의 침묵, 무셰트가 물에 빠질 때 둔탁한 음향 뒤에 오는 침묵 등이 그
것이다.<BR>가벼운 부감촬영은 브레송의 거의 모든 쇼트에 순환적으로 나타난다. &lt;무셰트&gt;에서도 그렇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이러한 카메라는 관객들에게 이 영화 속에 항상 존재하는 억압상태를 느
끼게 한다. 그가 수업을 마친 후 교실에서 나와 항상 적대감을 느껴온 급우들에게 진흙덩이를 
던지기 위해 낮은 웅덩이 비탈에 숨는 장면에서 특히 그렇다. 그러나 아르젠느가 그에게 죄를 
고백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그를 앙각으로 우러러 보게 된다. 그는 이 순간에 연약한 소녀가 아
니다. 고백을 듣는다는 사실이 그에게 어떤 힘(모성애)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짧은 앙각촬
영에 이어 카메라의 위치가 다시 높아지면 그의 사회문화적 핸디캡(연약한 소녀)도 다시 나타난
다.<BR>브레송은 이 영화에서 소음을 음악으로 만들었다. 예를 들면, 무셰트가 식료품 가게에 들르는 
장면에서 들어가기 전 트럭에서 내는 소음이 트레블링된다. 안으로 들어갈 때문에서 들리는 작
은 종소리, 커피잔에 설탕을 넣을 때 나는 소리가 클로즈업되고 이어서 다른 손님이 들어올 때 
작은 종소리가 들리며 커피 마시는 소리가 클로즈업된다. 길가에서 들려오는 트럭소리가 줌인되
면서 무셰트가 떨어뜨린 커피잔 깨지는 소리가 클로즈업된다. 무셰트가 나갈 때 멀리서 들려오
는 종소리가 어우러져 훌륭한 음악을 만든다.<BR>브레송은 직업 배우를 거부하고 모델이나 아마추어 배우를 선택한다. 그의 배우는 초상화가의 
모델과 같다. 그는 이 모델에 등장인물이 투사되거나 외형화하는 것을 막는다. 그래서 그의 '모
델'들의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지만, 무셰트는 두번 웃는다. 하나는 무셰트가 절
대 그렇게 될 수 없는 여인의 웃음이고 하나는 어머니 같은 웃음이다.<BR>자살하기 전, 무셰트는 연못가에 난 길로 트랙터를 몰고 가는 농부에게 의미 모를 손짓을 한다. 
죽기 전까지 그는 새로운 어떤 것의 계시를 기다린다. 그의 자살은 끝이 나지 않는 새로운 인생
의 시작이다. 마지막 부분의 클로드 몽테베르디의 '성모마리아의 찬가'는 그가 구원되었다는 것
을 우리에게 믿게 해준다. &lt;필자: 지명혁/공륜새매체부장&gt;<BR>&nbsp;
#51. &lt;페르소나 Persona&gt;(1966) / 감독: 잉마르 베리만
&nbsp;
펠리니는 그를 '중세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렀고 고다르는 낭만적이라고 했다. 나라면 그를 낡은 
예술 영화의 묘지기라고 부르겠다. 잉마르 베리만이 스웨덴에서 영화를 시작한 46년은 정신분석
학과 결합한 실존주의가 전후의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던 시대였다. 영화사적으로 보자면 네오
레알리슴이 그 새로움을 천명하던 시기였고 안토니오니와 고다르의 모더니즘 영화들이 나오기 
이전이었다.<BR>&lt;제7의 봉인&gt;과 &lt;처녀의 샘&gt;들이 국제적으로 알려지면서 베리만은 말 그대로 예술 영화의 대부
가 되었다. 베리만의 종교적 색채를 쏟아부은 존재에 대한 사색과 특히 여성에 대한 '심오한' 
정신분석 그리고 영화 안에서 영화 매체에 대해 언급하는 성찰적 태도 등은 영화의 예술성을 증
거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이후에도 영화적 예술성은 종종 베리만식 형식과 내용에 견주어 논
의된다는 이야기다. 아마도 타르코프스키가 그 좋은 예가 될 것이다.<BR>하지만 국제적 명성과 달리 그 당시 스웨덴의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은 베리만을 그리 자랑스러워
하지 않았다. 스웨덴식 사회주의의 집단성에 대한 고민과는 달리 그는 개인의 심리나 종교적 문
제에 매달렸고 이런 것들은 그 당시에도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BR>하지만 자신을 완벽하게 고립시킬 수 있는 개인 소유의 섬에서 베리만은 흔들리지 않고 영화들
을 만들어 갔다. &lt;페르소나&gt;는 &lt;어두운 유리를 통해&gt; &lt;겨울빛&gt; 그리고 &lt;침묵&gt; 이후의 2번째 3부
작 가운데 한편이다.<BR>&lt;페르소나&gt;는 제목 그대로 가면과 그 가면 뒤에 있다고 추정되는 본질에 관해 복잡한 질문을 던
진다. 영화가 시작되면 제물로 올릴 양이 살해되는 장면과 못이 박힌 손 등의 기독교적 이미지
와 죽음과 악이 등장하는 스웨덴의 초창기 영화, 클로즈업으로 확대된 커다란 거미, 영화 카메
라와 스크린 등이 보인다. 그리고 침상에 누운 아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
리브 울만)와 알마(비비 앤더슨)의 이미지가 중첩된다. 영화의 서두에서 &lt;페르소나&gt;는 이와 같
이 꿈과 같은 형식으로 복제예술과 공연예술이 현실과 맺고 있는 관계, 모성과 죄의식 그리고 
인간의 이중성 등의 문제들을 응축적으로 제시한다.<BR>이 영화에는 세명의 여자와 두명의 남자가 나온다. 남자들은 피상적으로 등장하는 반면 여자들
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재현된다. 결코 사회적 가면을 벗지 않는 여자 의사와 달리 여배우인 
엘리자베스와 간호원 알마는 그 가면을 벗는 순간 정체성 위기를 맞는다. 알마는 연극 &lt;엘렉트
라&gt; 공연 도중 언어를 거부하게 되면서 예술과 남편 그리고 아이를 포기하게 되는 엘리자베스를 
돌보기 위해 함께 섬으로 떠난다. 곧 결혼해 안정된 삶을 살기를 욕망하던 알마는 위기에 빠진 
엘리자베스에 동일화하게 되면서 임신 중절 수술이나 난교와 같은 과거의 죄의식이 여전히 자신
을 억압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에는 알마를 관찰하며 가학적 쾌락을 즐기던 엘리자베
스 역시 점차 그녀의 어두움의 세계로 끌려간다. 그리고 자신 안에 숨어있던 공포스런 죄의식과 
조우한다.<BR>영화에 사용되는 유대인 학살을 기록한 필름과 베트남전의 분신 장면들은 이렇게 제어할 수 없
는 공포를 가시화하는 데 차용되지만 사실 좀 자의식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위에서 이
야기한 양과 거미라든지 못박힌 손, 정체성의 융합과 분리 그에 따른 혼란, 이 모든 것들이 실
제로 어딘지 예술연하는 수사학적 과장으로 보인다. 돌아보건대 베리만의 영화적 실험은 이제 
그 시효를 다한 듯이 보인다. 시간은 상징과 상투성의 차이를 급히 무화시켜 버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베리만이 이즈음의 영화사나 영화 연구에서 잊혀진 이유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국립영상원 교수&gt;
<BR>#52. &lt;적과 백 Csillagosok, Katon k&gt;(1967) / 감독: 미클로슈 얀초
&nbsp;
얀초 미클로슈의 영화는 잘 안무된 춤과 같다. 카메라는 항상 이동하고 등장하는 사람들도 이리
저리 움직인다. 카메라로 찍은 집단의식, 혹은 총체극을 보는 느낌을 주는데, 혁명과 반혁명, 
억압과 해방이라는 주제를 추구하는 마르크시스트 영화감독의 화면에서 이만큼 형식주의적인 성
향을 발견하는 것도 보기 드문 일이었다.<BR>얀초는 헝가리 민속 예술의 집단군무와 그의 마르크시스트 세계관을 합칠 수 있는 지점에 그의 
영화세계를 세우고자 했다. 매너리즘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이런 스타일은 사람들
을 매혹시켰다. 어떤 이론으로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어떤 풍부한 힘이 그의 영화에는 있다, 
그의 영화세계는 그래서 흔히 '얀초의 나라'라는 명칭으로 정의된다.<BR>&lt;적과 백&gt;은 &lt;귀향&gt;(1964), &lt;검거&gt;(1965)와 더불어 얀초 미클로슈의 초기영화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옛 소련의 혁명 50주년을 맞아 헝가리와 소련이 공동으로 제작한 이 영화에서 그러나 
얀초는 혁명 축하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진술을 하고 있다. 1만여명의 헝가리군 장교와 병사가 
적군과 백군의 내전의 와중에 적군에 가담해서 소련과 세계 혁명을 위해 싸우는 내용이지만 영
화는 승리를 향한 영웅적인 투쟁기라기보다는 처형과 학살을 시각화한 발레 같다는 인상을 준다
.<BR>흑백 필름으로 찍힌 이 영화에서 흰 셔츠와 검은 바지를 입은 등장인물들은 서로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말을 들어보지 않으면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 죽이고 체포
하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적군의 도덕적 우월성이 암시된다면 그것은 그들이 백군
보다 조금 더 엄격하고 선택적으로 처형한다는 사실 뿐이다.<BR>처형과 학살과 전투의 풍경을 따라가기 쇼트로 묘사하면서, 얀초는 서로 이기고 지는 힘의 부침 
현상을 하나의 롱쇼트로 보여준다.<BR>억압과 폭력의 종식을 향한 싸움은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갈등과 대립을 낳는다. 반복적으
로 순환하는 화면 움직임은 쉽게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현실과 역사를 가리키지만 이 순환을 담
아내는 스타일, 끊임없이 움직이는 스타일은 역동적이다.<BR>얀초는 결과보다는 '과정'에 방점을 찍는다. 멈추지 않는 힘은 새로운 질서를 향해 갈 수 있다
는 것을 얀초의 화면 스타일은 암시하고 있다. 얀초의 70년대 이후 작품은 바로 이 역동적인 스
타일에 기초한 보다 더 원숙하고 낙관적인 세계관을 보여준다. &lt;붉은 시편&gt; &lt;헝가리 광시곡&gt;과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BR>얀초는 한국에 온 적이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하는 문화 행사의 하나로 한국방송공사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찍었던 얀초는 그 때 어느 대학 영화과 학생들과 가진 비공개 대화 석상에
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다.<BR>"지난 시기의 우리 선배들은 현실에 지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싸웠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달
라졌고 그럴 필요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참을성있게 웃으며 혁명
하자." &lt;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씨네21 기자&gt;
<BR>#53. &lt;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gt;(1967) / 감독: 아더 펜
&nbsp;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는 1930년대의 부부 갱이었다. 금주령 시대(Depression)의 이들은 감
옥에서 나온 클라이드가 카페 여급 보니를 만나면서 갱의 행각을 벌이기 시작한다.<BR>여기에 떠돌이 모스가 가담하고 나중에 형 버크와 형수 블랑슈가 합세해 모두 다섯명이 한 차에 
타고 차례로 은행을 턴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던 보니가 초원에서 어머니와 친척들을 만나는 장
면은 참으로 시적이다.<BR>보니와 클라이드의 실제 사진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미국의 '새로운 영화'의 효시 같
은 작품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 같은 작품이 된 이 영화에 주목한 미국 
시사주간지 &lt;타임&gt;은 1967년 12월8일자 커버스토리로 이 작품을 대서특필하기도 했다.<BR>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월남전이 기폭제였다. 월남에서의 폭력 그리고 이제까지의 미국은 무엇인
가를 되돌아보는 관점이 젊은 영화인들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lt;이지 라이더&gt;는 이런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정점을 이룬 작품이다. 소자본으로 큰 돈을 번 이 작품부터 미국의 '새로운 영화'
가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BR>보니와 클라이드의 전기적인 영화 &lt;우리에게 내일은 없다&gt;에서 클라이드의 형 버크와 형수 블랑
슈는 도중에 부상을 입고 떨어져 나가고 모스도 아버지에게 잡혀 결국 보니와 클라이드만이 벌
집 같은 기총소사로 최후를 맞이한다. 보니는 사실은 전기의자에 앉아 죽어갔다. 이 기총소사의 
처절한 라스트에서 보니는 성적 오르가슴을 느꼈을 것이라는 평이 있다. 클라이드가 성 불구자
여서 잠자리에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평론가는 30년대에 있어 은행은 서민의 착취기
관이요 클라이드의 갱단은 이를 공격함으로써 권위와 질서에 도전한다는 것이다.<BR>보니는 시를 썼다. 그들의 행각을 쓴 시는 일종의 발라드다. 그 마지막 연은 이렇다.<BR>"어느날 그들은 함께 내려갈 것이다/사람들은 이들을 나란히 묻을 것이다/아주 적은 사람들에겐 
슬픔-/그리고 법에게는 구원이리라/그러나 그것은 보니와 클라이드를 위한 죽음일 뿐."<BR>데이비드 뉴먼과 로버트 벤튼의 시나리오는 아서 펜이 프랑수아 트뤼포에게서 영감을 얻어, 특
히 그의 &lt;피아니스트를 쏴라&gt;를 생각하며 지시한 것이라고 평론가 폴린 킬은 적고 있다. 클라이
드 역의 워렌 비티가 제작했다.<BR>폭력과 시정 그리고 30년대에 대한 향수를 발라드식으로 구성한 이 작품에서 폭력은 베트남전과 
무관하지 않다.<BR>아서 펜은 이 작품의 의도를 이렇게 밝혔다. <BR>"(…) 내가 이 영화중에 묘사한 것은 베트남에서의 폭력과 관계가 있다는 말을 덧붙일 수 있다. 
(또) 클라이드가 죽는 장면을 촬영할 때 나는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을 생각했다."<BR>보니 역의 페이 더너웨이는 모자와 시거로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lt;우리에게 내일은 
없다&gt;는 일본에서 붙인 제목인데 우리가 그대로 사용했지만 원제는 &lt;보니와 클라이드&gt;이다. &lt;필
자: 안병섭/영화평론가·단국대 교수&gt;
<BR>#54. &lt;저개발의 기억 Memorias del Subdesarrolo&gt;(1968) / 감독: 토마스 구티에레즈 알레아
&nbsp;
쿠바에서 사회주의 혁명은 일어났고 승리를 거뒀다. 부르주아에게 그 승리는 불확실한 미래를 
의미할 뿐이다. 그래서 부모와 아내 또 친한 친구는 쿠바를 떠난다. 9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
은 미국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길을 택한다. 그 이별에 한 남자는 결코 슬프지도 고통스럽
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가 혁명을 열렬히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지식인이며 혁명 전까지
는 스물다섯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가구점을 경영해 왔고 이젠 아파트 임대로 먹고 사는 부르
주아다. 그는 홀로 하바나에 남는다.<BR>&lt;저개발의 기억&gt;은 세르지오라는 이 남자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현실과 몽상을, 그리고 픽션과 
기록(？)을 넘나들며 쿠바를 말한다. 그것은 불연속선이고 산발적이며 변덕스러운 영상의 흐름
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그 영상들은 세르지오의 끊임없는 내적 독백으로 강화되고 또 어긋나기
도 한다.<BR>세르지오는 그가 모든 사회적 관계로부터 떠난 만큼이나 멀리서 쿠바의 정치적 현실을 관찰한다
. 아내가 남긴 물건들이, 또 이미 소원해진 아내와 싸우던 소리가 생생히 녹음돼 과거를 되살리
는 아파트에서 그는 망원경으로 하바나를 둘러본다. 거기엔 미국의 쿠바 개입 초기에 세운 상징
물인 거대한 독수리가 혁명후 제거된 것이 보이며, 하바나항의 수비대의 모습이 보이며, 미국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 준비하는 탱크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 먼거리 관찰과 변증법적으로 조우
하는 것은 영화의 주축을 이루는 세르지오의 여인들과의 관계다. 그는 과거와 현재의 여인들을 
통해서 쿠바를 말하고 혼란스런 자신의 정체성을 읽는다. 그에게 있어서 십대에 경험한 창녀촌
의 여자들, 그를 지겨워하며 떠나버린 아내, 성적 몽상의 대상인 청소년, 거리에서 유혹한 엘레
나, 심지어는 그의 어머니까지 모두가 하나의 감정이나 관념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전체를 보는 
눈이 결핍된 열등한 존재다. 나아가 그들은 저개발의 상징들이다.<BR>유일하게 그가 만족한 여성은 독일인의 피를 이은 한나였다. 유럽인처럼, 쿠바처럼 후진하는 곳
이 아닌, 무언가 진정한 일들이 벌어지는 유럽에서 살고 싶었던 세르지오에게 한나는 그 모든 
것을 표상한다. 그러나 현재의 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엘레나는 모든 면에서 저개발을 느끼게 
할 뿐이다. 엘레나가 지니는 저개발을 아내의 옷으로 갈아입히고 성적으로 이용하지만, 그는 참
을 수 없는 경멸감만을 느낀다. 결국 그 경멸의 대상에게 성폭행자로 고소되지만. 순간적이고 
산발적인 회상들, 정지되고 파편화하는 움직임들, 쿠바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보여주는 뉴스
영화와 사진들, 그리고 영상에 질의하고 또 그와 어긋나는 세르지오의 내적 독백은 이 영화를 
혁명과 혁명이 한 개인에 미치는 영향을 변증법적 형식으로 그려낸 강도 높은 보고서로 만들었
다. 그렇다고 이 영화는 우리를 설득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끊임없이 질문을 받을 뿐이다.<BR>혁명 이후 현재까지 쿠바영화산업기구의 주요직을 맡고 있는 구티에레즈 알레아는 이 영화를 통
해 사회변혁을 위한 영화의 미학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으며 라틴아메리카의 제
3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쿠바의 사회주의나 거기서 꽃피웠던 영화문화가 이제는 분명히 
쇠퇴의 길로 들어섰지만 아직도 그는 영화를 통해 그 사회의 모순과 딜레마에 질문을 던지고 있
다. 최근의 &lt;딸기와 초컬릿&gt;(93년)이 그 예다.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
<BR>#55. &lt;만다비&gt;(1968) / 감독: 우스만 셈벤
&nbsp;
아프리카 세네갈의 탁월한 영화감독인 우스만 셈벤은 제3세계 지식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민지 본국 유학이라는 경로를 밟지 않았다. 그는 10대에 이미 자동차 수리공, 벽돌공을 거쳤
고, 단지 배고픔 때문에 군대에 지원했는가 하면 고향에 돌아와선 철도대파업에 참가하고 파리
의 공장과 마르세이유의 부두노동자로 노동조합 활동에 몰두했던 노동자 출신 지식인이다.<BR>그는 이런 경험을 소설로 쓰게 되는데 결국 프랑스어로 써야만 한다는 현실 앞에서 마르크시즘
과 아프리카 민족주의를 대중에게 전파하고 검증하는 수단에 대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BR>특히 문자화된 예술형식으로는 대부분 문맹인 동포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없다는 깨달
음은 그를 기꺼이 영화로 관심을 돌리게 했다.<BR>늦깎이 영화감독이 된 셈벤은 1963년부터 1977년까지 8편의 영화를 만들어낸다. '우편환'이란 
뜻의 &lt;만다비&gt;는 그 네번째 영화이자 첫 컬러영화이며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프
랑스어와 울로프어판이 있는 이 영화는 국립프랑스영화센터(the Centre National de la 
inematographie Francaise)의 부분적인 자금지원에 힘입어 만들었다. <BR>훌륭한 영화감독이라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영화작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BR>&lt;만다비&gt;는 문화적 경제적 '저발전'에 대한 드라마다. 두 아내가 있는 남편의 실업은 그가 프랑
스어나 울로프어를 읽고 쓸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교육의 부재를 암시한다. 또 그는 주민등록
증이 없어서 파리에서 청소부 일을 하는 조카가 보내준 우편환을 현금으로 바꿀 수 없다. 그의 
모든 재난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여기서 대부분의 동포들처럼 지금까지 주민등록증 
없이 살아온, 그리고 그에 따른 불이익에 대한 정보없이 살아온 50대 남자를 볼 수 있다. 동시
에 현대적인 삶의 욕구들이 전혀 의지할 데 없는 한 남자에게 갑자기 가하는 폭력을 보여준다.<BR>그의 이후 작품들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가 보는 세네갈 사회의 모순에 대한 날카
로운 통찰이 배어 있다. 주인공 디엥은 허풍선이에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그의 두 아내를 지
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생활에서 그는 두 아내만큼의 지혜도 없다. 영화는 그가 살고 있는 
작은 세계의 사소한 탐욕과 질투뿐만 아니라 이 남자를 주변의 악덕 고리대금업자의 자비에 맡
겨버린 무관심하고 무책임한 관료들과 탐욕스런 사업가를 비판한다.<BR>영화는 이런 모든 과정을 배우들의 연기, 특히 주인공의 몸짓, 트림, 불평하는 소리로 채워간다
. 이 영화에는 셈벤의 작품에서 계속 나타나는 연출상의 특징이 있다. 그는 어떤 특수효과도 거
부한다. 야외촬영과 비직업배우의 등장도 또다른 특징이다. 연기는 자연스럽고, 카메라는 예술
적 기교나 형식적 탐색에 집착하지 않는다. 널리 배급되어 세네갈 영화, 나아가 아프리카 영화
에 주목하게 만든, 최초의 세네갈 영화인 &lt;만다비&gt;는 관료주의와 고립된 전통주의자 사이의 갈
등이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적·사회적 차원의 변화를 통해서만 난국을 극복할 수 
있다는, 풍부하게 채색된 아프리카 사회연구라 할 수 있다. &lt;필자: 변재란/영화평론가&gt;
<BR>#56. &lt;만약에... If...&gt;(1968) / 감독: 린제이 앤더슨
&nbsp;
&lt;언제나 마음은 태양&gt;에서 &lt;위험한 아이들&gt;에 이르기까지 문제학생들에게는 '좋은' 선생들이 있
었고, 그 덕분에 그 학생들은 곧 평정을 찾았다. 하지만 '혁명의 해'인 68년에 만들어진 &lt;만약
에…&gt;는 이런 화해를 거부한다.<BR>이 도전적인 영화는 제목이 같은 키플링의 시, 장 비고의 &lt;품행 제로&gt;라는 영화, 데이비드 셔윈
과 존 홀리트의 '십자군들'이라는 대본에 힘입은 린제이 앤더슨의 특별한 영화다. <BR>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힘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찾아야 한다. 50년대 중반의 영국
의 변화, 다시말해서 신좌파의 등장, 프리시네마의 탄생, 브레히트의 재발견, 존 오스본 등 연
극계의 '성난 젊은이'들의 활약, 린제이 앤더슨을 주축으로 &lt;사이트 앤 사운드&gt;를 통해 펼쳐진 
비평활동이 두드러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다큐멘터리 리얼리즘'(존 오스본), 놀
랄 만하게 초현실주의적인 사건들(프리시네마), 권위를 전복하고자 하는 충동들(신좌파), 그리
고 자기성찰의 장치 사용(브레히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영화란 감독 개인의 자기진술
의 장이고 그것이 동시대 사회에 대한 주석으로 기능해야 하며 영화감독이 도전하고자 하는 기
본 가치에 대한 견해가 반영돼야 한다는 앤더슨의 견해는 여기서 참여가 결여된 자유주의의 허
약함에 대한 주석으로 바뀐다.<BR>영화는 영국의 한 공립학교를 배경으로 권위주의적인 제도 안에서 벌어지는 모순과 변화를 추구
하려는 학생들의 작고 큰 반란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 물리적 환경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영화의 핵심은 아니다. 그것은 권위에 의한 개인의 억압을 보여주기 위한 사회의 축도다
. 동시에 지성과 상상력이 분리돼 있는 체제에 대한 은유다. 공립학교의 환경은 개인의 창조적
인 발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의 분열과 파편화를 초래할 뿐이라는 게 앤더슨의 생각
이다.<BR>&lt;만약&gt;은 고전적 극영화에 전형적인 일종의 리얼리즘의 경계 안에 있다. 하지만 그것은 브레히
트적 장치와 초현실주의적 영상에 의해 방해된다. 브레히트적 장치는 8개의 시퀀스를 대표하는 
8개의 소제목과 칼라장면 안에 흑백장면을 집어 넣은 것과 관련된다. 연대기적으로 배치된 '학
교기숙사―신학기' '학교―한번 다시 모이다' '과외활동' '종교적 의식과 로맨스' '훈육' '저항
' '이제 전선에' '십자군'이라는 자막은 색채와 흑백장면이 교차되는 편집과 더불어 관객이 영
화매체에 대해 깨닫게 하는 '거리두기' 장치로 기능한다.<BR>영화의 초반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환상일 수도 있는 일들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대부분의 관
객들은 일어나는 사건들을 환상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앤더슨은 "그것 모두가 사
실"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서 알 수 있듯 환상장면(총 맞은 교목이 서랍 안에서 부활한다든지, 
주인공들이 카페에서 나체가 돼 뒹구는 장면, 복도에서 교장 부인이 벌거벗고 달려가는 모습, 
학생들이 학부모과 교사들과 전투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은 사실과 환상을 구별하기보다는 그것
이 섞이고 침투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BR>하지만 이 영화의 힘은 무엇보다도 체제(？)로부터 해방된 믹(말콤 맥도웰)이 기존 질서의 파괴
라는 최종적 행동에 돌입해 행동의 주체이자 창조자가 된 데 있다. &lt;만약에…&gt;의 미덕은 다른 
영화들과의 차별성, 결국 기존체제에 순응해 버리고 마는 대중적 장르 영화들을 초월했다는 사
실이다. &lt;필자: 변재란/영화평론가&gt;
<BR>#57. &lt;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 2001: A Space Odessey&gt;(1968) / 감독: 스탠리 큐브릭
&nbsp;
스탠리 큐브릭의 &lt;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gt;는 영화가 철학이고 종교일 수 있다는 것을 웅변
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6백만달러로 시작된 대작 SF영화가 1천만달러짜리 언더그라운드영화
로 탈바꿈한 것도 기적이지만(메이저영화사가 멋지게 당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메이저 스튜
디오가 만들어낸 사상 최고의 실험영화인 셈이다), SF영화가 이처럼 진지한 문명비판과 철학적
·종교적 주제를 심오하게 구현했다는 것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BR>큐브릭은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완벽한 독립영화작가이다. 메이저의 돈을 끌어다 쓰면서도 그의 
영화는 수시로 메이저영화의 관습을 벗어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내러티브의 관습적 전
개방식을 따르지 않고 있다. 경이로운 우주의 공간과 우주선의 기하학적 구도가 영화 전반부에 
걸쳐 플롯보다 더 중요하게 제시되는 것이다. 특히 &lt;푸른 다뉴브&gt;의 멜로디와 함께 하는 우주선
의 '기계발레'는 데이비드 린의 '사막'과 더불어 영화사에 있어 전혀 뜻밖의, 가장 아름답고도 
놀라운 장면일 것이다.<BR>이 작품에서 궁극적으로 이야기되는 주제는 '신'의 문제와 '기술의 진보에 따른 인간의 비인간
화'이다. '인류의 기원' 편에서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진보는 도구·무기가 발견되고 만들어지는 
과정과 일치한다. 그러나 기술의 진보는 곧 인간의 비인간화를 낳고 그리고 마침내는 2001년 즈
음에 이르러 컴퓨터가 더 인간적인 감성을 지니게 된다. 우주선 디스커버리호의 통제컴퓨터 핼(
철자로는 HAL이지만 발음은 마치 '지옥'처럼 들린다)은 자신의 기능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고 조
그만 실수에도 그것을 수치로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주비행사 데이브에 의해 해체되어 갈 
때 핼은 '데이지'를 부르며 죽어간다. 그는 일면 빅 브라더였으면서도 프랑켄시타인이었던 것이
다(HAL의 철자 하나씩을 뒤로 넘기면 IBM이 된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또한 과학문
명의 발달은 곧 '커뮤니케이션'의 발달과도 그 맥을 같이 하는데 큐브릭은 이 '커뮤니케이션'의 
기술이 발달할수록 '간접적'이 되며, 그에 대한 신뢰가 커질수록 진실은 왜곡되기가 쉽다고 본
다. 여기서 21세기의 많은 사람들은 통신수단을 통한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만을 행하며, 또한 
핼은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컴퓨터라는 절대적인 신뢰가 커뮤니케이션의 왜곡을 
낳고 불행한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점차 간접적으로 변해가는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인간
적 유대관계는 점차 상실돼 가는 것이다.<BR>목성을 향하던 데이브가 발견하는 것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다. 자신의 늙은 모습, 임종,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아기의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탄생'의 의미에 이르러 비로소 큐브릭
은 '신'의 존재를 묻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에서부터('인류의 기원') 플로이드 박사의 딸의 생
일, 우주비행사 프랭크의 생일, 그리고 마지막 장면인 데이브의 재탄생에 이르기까지 '탄생'은 
곧 생명의 존귀함과 과학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신비를 신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 인
간존재의 미미함을 의미한다(이를테면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이 신의 존재에 비하면 부처님 손바
닥에서 노는 손오공 같다고나 할까). 그런 면에서 데이브는 예수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예수가 때로는 다윗(DAVID)의 아들이라 일컬어지기도 한다는 점(마태복음 1:1)에
서 이는 매우 흥미롭다.<BR>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주제를 큐브릭은 논리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관객으로 하여금 경험
하고 느끼게 하려 했다. 음악과 구도, 특수효과 등은 이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되고 있는 것이다
.<BR>오늘날 모든 SF영화는 이러한 &lt;2001년：스페이스 오디세이&gt;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 우주선과 우주공간, 스타게이트의 이미지 등 독창적인 세트디자인과 막스 오필스의 그것에 비
견될 만한 카메라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학적인 주제에 이르기까지 이 '우주의 대서사시'
는 이제 신화가 되었다. &lt;필자: 김지석/부산예술전문대학 교수&gt;
<BR>#58. &lt;루시아 Lucia&gt;(1969) / 감독: 움베르토 솔라스
&nbsp;
&lt;루시아&gt;는 움베르토 솔라스가 스물여섯의 나이에 만든 대작이다. 그는 열네살에 이미 카스트로
가 이끄는 반란군의 도시게릴라였으며 스무살도 되기 전에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섯번째 
작품인 &lt;루시아&gt;는 구티에레스 알레아의 &lt;저개발의 기억&gt;과 더불어 국제적으로 비평적 찬사를 
받은 쿠바의 혁명영화다.<BR>솔라스는 영화 소재를 역사적 사실로부터 끌어온다. 역사란 현재를 바로보기 위한 대화를 열어
주고, 인간의 어떠한 경험도 모두 역사성을 간직하기 때문이다. &lt;루시아&gt;는 쿠바의 근세사에서 
중요한 시기를 여성들의 사랑 이야기로 전환시켜 탐구한다. 영화는 세개의 드라마로 나뉘며 그 
주인공들의 이름은 모두 루시아다.<BR>첫 이야기의 루시아는 1895년 스페인 식민시대를 살고 있는 귀족이다. 거리엔 반란군들의 시체
가 나뒹굴고 그의 남동생도 농민들과 연대해 싸우고 있지만, 루시아의 일상은 친구들과의 한담
과 놀이로 채워져 있다.<BR>루시아는 그에게 접근해 온 스페인군의 앞잡이 라파엘과 사랑에 빠지고 그것은 곧 동생의 죽음
을 가져오는 배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는 라파엘을 찔러죽임으로써 복수한다. <BR>끌려가는 거리에서 루시아는 한 미친 여자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전장에서 스페인군에게 강간당
한 수녀, 그 뒤 "쿠바여 깨어나라!"고 절규하며 거리를 헤매던 여자로부터.<BR>두번째 이야기는 마카도의 독재가 바티스타의 독재로 대치되던 1930년대 정치투쟁 속의 루시아
를 다룬다. 그는 담배공장에서 기계적인 일을 하면서 혁명운동가 알도와의 사랑을 회상한다. 그
와 사랑에 빠지면서 자신도 행동가가 되어 시위에 참여했던 일, 알도의 경찰 습격, 마카도를 타
도했을 때 그들이 잠시 누린 행복, 그리고 알도를 죽게 한 폭력적인 정치활동 등이 루시아의 내
레이션과 함께 재생된다. 이야기는 알도의 아이를 가진 채 혼자가 된 루시아가 카메라를 직시하
는 것으로 끝난다.<BR>마지막 이야기의 루시아는 혁명후 농촌의 노동자다. 질투심 많은 남편 토머스는 루시아를 밖에 
나가거나 일하러 가지도 못하게 한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의 말을 따르지만 루시아의 불만은 
커져만 간다. 그러다 문맹퇴치를 위해 아바나에서 온 혁명군에게 루시아는 글을 배운다. 그가 
쓴 첫 글은 남편에게 남긴 "난 떠나요. 난 노예가 아니어요"다. 그러나 루시아는 토머스에게 돌
아온다. 일도 하고 당신도 사랑할 것이라면서. 이야기는 루시아와 토머스가 바닷가에서 엉켜 싸
우는 것으로 끝난다.<BR>이 세 이야기는 모두 형식을 달리하고 있다. 각 형식은 그것이 다루는 역사적 시기와 계층을 가
장 정확하고 자세하게 제시하는 전략이 된다. 식민시대 귀족계급의 파괴적 열정은 서사적 멜로
드라마로, 혁명가와의 사랑에 대한 중산층의 회고는 관습적인 드라마로, 그리고 쿠바의 뿌리깊
은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노동계급의 투쟁은 경쾌한 코미디로 그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 지배
적 형식들은 그 속에 사용된 다양한 양식에 의해 전복되기도 한다. 특히 들고 찍은 카메라로 현
실감을 증폭시켜 지배적인 형식의 신비를 벗겨버림으로써 장중하고도 우아한 서사멜로드라마나 
서정적인 사랑의 회고, 그리고 남성우월주의에 대한 익살의 차원을 변환시킨다.<BR>솔라스의 이 형식적 전략은 여성을 중심인물로 택한 전략과 일치한다. 그에게 있어서 여성의 이
야기는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고 변혁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여성에 대한 이중적 억
압은 혁명영화의 극적 잠재성을 배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과거의 이야기들을 장엄한 비극으로 
혹은 모호한 슬픔으로 전하던 솔라스는 마지막 이야기에서 낙관적인 결말을 내린다. 혁명이 여
성-인간-사회가 갖는 모순을 모두 풀어줄 수 있다는 듯이.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
<BR>#59. &lt;죽음의 안토니오 Antonio-das-Mortes: O Prag o da Maldade Contra o Santo Guerreiro&gt;
(1969) / 감독: 글로베르 로샤
&nbsp;
쿠바혁명의 승리는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 운동에 불을 붙였으며 영화를 통한 민족주의와 탈
식민화의 구현은 60년대 말 정점에 달했다. 시네마 노보는 쿠바의 혁명영화와 더불어 진보적 영
화미학의 정수를 국제무대에 알린 브라질의 민족영화 운동을 일컫는다.<BR>글로베르 로샤는 브라질 시네마 노보의 핵심적인 이론가이자 실천가이다. 그는 브라질 영화사나 
시네마 노보의 이론을 담은 책과 글들을 통해 브라질 나아가서는 라틴아메리카 고유의 영상언어
를 탐색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지배적인 영화에 대한 반역에서 나오며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아우르는 것이어야 했다. 그 현실의 핵심을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굶주림과 폭
력의 미학이다. 굶주림은 브라질 사회의 본질이며 그것을 가장 당당하게 표명하는 길은 폭력이
라는 것이다.<BR>이러한 미학의 성취를 위해 로샤는 브라질의 다양한 민중문화적 요소들 - 민중종교, 신화, 전설
, 음악 - 을 영화로 끌어들인다. 억압에 대한 영원한 반항인 동시에 현실로부터의 도피라는 양
면성을 가진 민중문화로부터 로샤는 진보적인 힘을 끌어내고자 시도한다.<BR>그 대표적인 작품이 &lt;죽음의 안토니오&gt;다. 영화는 가뭄과 빈곤의 땅인 브라질 북동부 황야를 배
경으로 한다. 거기엔 억압받고 무력한 민중이 있고 그들의 편엔 천년도래를 전파하는 성녀와 의
적의 무리가 있다. 그들 반대편에는 농지개혁을 반대하며 농민을 착취하는 눈먼 지주가 있고 그
의 정부가 있고 그를 보좌하면서 황야를 산업화하고 외국자본을 끌어들이자고 주장하는 하수인
이 있다. 그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인물로 알코올에 찌들어 현실을 망각하고 있는 교수가 있다
.<BR>이 곳에 '죽음의' 안토니오가 나타난다. 그는 의적대장 코이라나를 죽이고자 지주가 고용한 킬
러다. 코이라나에게 치명적인 상해를 입히는 데 성공한 안토니오에게 성녀는 말한다. 민중들은 
형제이며 형제를 죽이는 자는 심해로 떨어질 것이며 코이라나가 죽게 되면 곧 민중도 죽게 될 
것이라고. 성녀는 그에게 '끝없는 전투' 혹은 '끝없는 불길 속을 걷기'를 촉구한다.<BR>코이라나의 죽음은 안토니오뿐만 아니라 교수를 혁명적인 투사로 만들며, 또한 아프리카 토속종
교를 대표하는 안타오라는 수동적인 흑인을 전사로 만든다. 다시 고용된 킬러들에게 민중들은 
모두 학살당하고 안토니오와 교수는 킬러들을 죽인다. 성녀를 말 뒤에 태운 안타오는 지주를 죽
이며 교수는 코이라나의 칼과 총으로 무장한다. 안토니오는 마을을 떠난다. 마지막으로 그는 셸 
석유회사의 간판이 걸려있는 현대적인 거리를 걷는다. 그 간판이 표상하는 새로운 식민주의가 
그에게 주어진 끝없는 전투의 새로운 장이라는 듯이. 서부극의 틀과 주인공을 패러디한 듯한 이 
이야기의 의미를 로샤는 브라질의 전설과 신화를 이용해 확장한다. 전설적인 실제 의적의 이야
기를 빌려와 그 혁명적 부활의 의미를 말하며, 악을 상징하는 드래곤을 찔러 죽인다는 게오르그 
성인의 신화로 흑인들의 혁명 역량의 토대를 마련해준다.<BR>또한 로샤는 역사적 정치적 의미를 담은 인물유형들의 갈등과 투쟁을 결코 편안하게 보게 두지 
않는다. 수평적이고도 깊이 있는 공간을 창출하는 카메라, 원사와 길게 찍기로 보여준 지형과 
인물들의 움직임, 브라질 고유의 색채를 재현한 의상과 세팅, 양식화한 연극적 연기, 안무된 칼
싸움, 영상에 동반하는 음유시적인 노래 등의 양식적 요소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일깨우고 비판
적으로 참여하게 한다<BR>저개발 사회에 공명을 일으킨 이 우화적인 영화를 만든 뒤 로샤는 정부의 탄압을 피해 브라질을 
떠났다. 망명 중 기록영화 등 소수의 작품을 만들긴 했지만 이 영화나 &lt;검은 신 하얀 악마&gt;에서 
보여준 브라질적 미학의 성취를 다시는 재현하지 못한 채 80년 마흔셋의 나이로 갑작스런 죽음
을 맞았다.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
<BR>#60. &lt;콘돌의 피 Yawar Mallku&gt;(1969) / 감독: 호르헤 산히네스
&nbsp;
잉카족의 성스러운 호수 티티카카호에서 찍은 &lt;우카마우&gt;는 볼리비아 최초의 장편극영화로 기록
돼 있다. 볼리비아 영화협회가 제작하고 문학과 철학에 심취했던 호르헤 산히네스(1936∼)가 연
출한 이 영화는 지배계급에 저항하는 인디오의 모습을 개인적이고 다소 탐미적으로 담았다.<BR>그러나 &lt;우카마우&gt;는 영화로서가 아니라 제3세계의 민중영화 운동의 상징적 이름으로 알려져 있
다. 정부 차원에서 제작된 이 영화는 쿠데타로 등장한 군부정권에 의해 상영금지되고 호르헤 산
히네스는 &lt;우카마우&gt;의 대중적 명성을 살려 그의 영화그룹을 '우카마우 집단'으로 이름지었던 
것이다. 우카마우는 아이마라어로 '올바른 길'을 뜻한다. &lt;우카마우&gt;에서 그것은 아내를 잃은 
인디오가 메스티조 상인에게 복수하는 것을 의미했다면 '우카마우 집단'에 와서 그것은 미제국
주의에 반대하는 민중투쟁의 길을 뜻하게 된다. 우카마우 집단은 그 '올바른 길'을 "민중영화는 
민중 속에서 탄생하고 민중적 미학을 담으며 민중에게 보여져 그들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민중
노선'으로 걷고자 했다. &lt;콘돌의 피&gt;는 '우카마우 집단'의 첫 영화다.<BR>안데스 산지의 칸타 마을. 인디오 이그나시오는 술에 취해 아내 파울리나를 괴롭힌다. 그들에게
는 자식이 있었으나 전염병으로 잃고 말았다. 이그나시오는 파울리나를 때리기까지 하지만 파울
리나는 남편이 자기자신을 때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상하게도 이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태
어나지를 않는다. 이그나시오는 그 원인을 밝혀나가던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마을에 
들어온 미국의 평화봉사단(볼리비아에서는 '진보부대'로 불렸다)이 개설한 산부인과병원에서 은
밀하게 불임시술을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농민들을 조직하여 '여성의 배에 죽음을 뿌리는
' 선교사와 병원과 평화봉사단을 습격한다. 곧 이어 닥친 탄압. 그는 간신히 생명을 건지고 도
시에 노동자로 나간 동생 시스토를 찾아간다. <BR>시스토는 자신의 뿌리를 떠나 메스티조가 되기를 꿈꾸는 젊은이다. 의사는 이그나시오의 출혈이 
심하여 급히 수혈을 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말한다. 시스토는 피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지
만 헛수고다. 혈액을 가진 백인 의사들은 그들의 사교모임을 인디오 때문에 방해받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그나시오는 죽는다. 시스토는 이 모든 비극의 원인을 깨닫고 인디오로서 다
시 마을로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은 하늘로 치솟은 총구들을 긴 정지화면으로 잡고 있다.<BR>&lt;콘돌의 피&gt;는 물론 칸타 현지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는 비록 출연자 모두가 비전문배우거나 농
민들이며 거의 자연광과 들고 찍기에 의존하곤 있지만 민중적 삶의 양태를 탁월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에 강렬한 동의를 표시하고 있다. 영화는 극적 맥락, 인물 구성, 
음악, 리듬 등 모든 면에서 대립적인 구조로 짜여져 있다. 아이들이 뛰노는 마을 잔치와 아이들
의 인형을 땅에 묻는 장면, 푸쿠나(피리)를 부는 인디오 농민과 로큰롤에 맞추어 춤추는 평화봉
사단, 전투적 이그나시오와 백인 여배우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은 도시의 시스토, 피를 구하기 
위해 트럭 뒤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리는 시스토와 고상한 의사들의 사교모임을 대조시키는 
호르헤 산히네스의 관점은 매우 분명하다. 이야기 구성은 파울리나가 시스토에게 들려주는 회상 
형식을 취한다. 그 때문에 잦은 플래시백의 사용이 불가피한데 그것은 농민들의 이해를 방해하
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또한 그는 이 영화가 지나치게 개인의 역할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농
민들에게 왜 그들이 불임시술을 하는가를 밝혀주지 않는다.<BR>이런 부분적인 결함에도 불구하고 &lt;콘돌의 피&gt;는 제3세계 전투적 민중영화 운동에서 하나의 이
정표와 같은 작품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1971년 미국의 평화봉사단을 추방하게 되는데 여기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lt;콘돌의 피&gt;다. 우카마우집단은 이후 본격적인 집단적·전투적 
영화인 &lt;민중의 용기&gt;(1971), &lt;제1의 적&gt;(1974) 등을 발표했다. 비록 80년대 이후의 활동은 미
약해졌지만 우카마우 집단의 믿음과 실천은 간단히 평가돼서는 안될 것이다. &lt;필자: 이정하/영
화평론가&gt;
<BR>#61. &lt;순응주의자 Il Conformasta&gt;(1970) /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nbsp;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초기영화는 등장인물의 '분열'에 주목했다. 머리는 혁명가인데, 
가슴은 퇴폐적인 부르주아. &lt;혁명 전야&gt;의 주인공 아고스티노와 &lt;파리에서의 마직막 탱고&gt;의 여
자주인공 잔느는 모두 그런 인물이다. 마르크시즘과 파시즘, 부르주아식 결혼과 성 해방의 욕구 
사이에서 망설이는 그들은 보수적인 순응주의를 택한다. 아마 그것은 베르톨루치의 무의식을 반
영했던 것 같다.<BR>&lt;순응주의자&gt;의 주인공 마르첼로 클레리치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어린시절 자기를 유혹하는 게
이를 권총으로 쏜 기억에 시달린다. 그는 자신의 동성애 기질을 부정하기 위해 부<BR>르주아 여성과 결혼하고 이탈로라는 파시스트를 스승으로 모신다. 그리고 대학시절 은사였고 지
금은 반파시즘 진영에서 싸우는 콰드리 교수를 암살하기 위해 파리로 간다.<BR>자신의 '정상성'을 증명하기 위한 마르첼로의 노력은 파시즘과 부르주아식 결혼을 택하도록 이
끈다. 그러나 &lt;순응주의자&gt;가 매력적인 것은 성과 정치에 대한 이런 식의 해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BR>베르톨루치는 당시까지 서구영화가 개발해낸 모든 표현 수사를 총동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
다. 마르첼로가 파리로 가는 도중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마르첼로의 과거 회상 장면은 잘못된 기
억과 믿음으로 고통받는 한 남자의 분열된 의식을 아주 화려하게 펼쳐놓고 있다. 이 스타일의 
뿌리에는 오슨 웰스와 요제프 폰 슈테른버그와 막스 오퓔스의 영향이 보인다.<BR>&lt;순응주의자&gt;의 주제는 성정치학에 기초해 파시즘의 심리적 기원을 캐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에
서 베르톨루치의 '부친 살해' 욕망도 보인다. 당시 베르톨루치는 장 뤼크 고다르와 절친한 사이
였으며 고다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BR>그러나 프랑스에서 일어난 68년 5월혁명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결별한다. 고다르는 점점 과격해졌
고 한 때 이탈리아 공산당원이었던 베르톨루치는 오히려 온건해졌다. &lt;순응주의자&gt;는 과거의 '
적' 파라마운트 영화사와 손잡고 만든 영화다. 그러나 이 당시에 고다르는 모든 상업 배급망과 
절연하고 노동자들과 실험영화를 찍고 있었다.<BR>&lt;순응주의자&gt;에서 콰드리와 고다르의 이름이 비슷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콰드리 교수가 사는 
파리 주소는 실제 고다르가 살았던 집 주소다. 콰드리 교수가 숲 속에서 암살당하는 장면은 장
관이다. 아마 영화사상 가장 잔인하고 장엄한 살인장면일 것이다.<BR>베르톨루치는 "난 마르첼로이며 파시스트 영화를 만든다. 혁명적인 영화를 만드는 과거의 선생 
고다르를 죽이고 싶다"고 스스로 자문자답했다.<BR>사실 좌파정치학을 표방하는 화려한 외피에도 불구하고 &lt;순응주의자&gt;의 속내는 그다지 진보적이
지 않다. 콰드리 교수의 부인인 안나는 자유주의자이며 해방된 여성이지만 부르주아적인 퇴폐미
를 물씬 풍기고 동성애자에 대한 관점도 모호하다. 동성애에 대한 억압된 심리를 파시즘과 연관
시키는 대목도 그리 명확하지는 않다.<BR>그 모든 것을 제치고 이 영화를 대하면 남는 것은 거듭 봐도 찬탄하게 되는 스타일의 매혹뿐이
다. &lt;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씨네21 기자&gt;
<BR>#62. &lt;이지 라이더 Easy Rider&gt;(1969) / 감독: 데니스 호퍼
&nbsp;
1960년대는 두개의 세계 대전과 원자폭탄으로 얼룩진 20세기에 대한 비판의식이 절정에 이른 시
기였다. 매카시즘으로 얼어붙었던 1950년대를 지나 60년대에 도착한 미국은 좌파경향의 사회운
동(흑인·성의 권리운동과 반전운동)과 보수주의자들의 반격으로 흥분과 혼돈이 교차해 나갔다. 
사회운동은 부분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날로 심각해져가는 베트남전과 거듭되는 암살사건(케
네디 형제, 마틴 루터 킹과 말콤 Ｘ)은 1970년대의 패배를 암시하고 있었다.<BR>장르-스타-스튜디오 시스템의 공식으로 운영되던 할리우드 영화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lt;우리에게 내일은 없다&gt;가 발표된 1967년은 '혁명의 해'로 불
릴 만큼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메리칸 뉴 시
네마는 또한 희망과 절망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60년대 젊은이들의 복잡한 감정을 영화로 담아
낸 결과였다.<BR>데니스 호퍼의 1969년작 &lt;이지 라이더&gt;는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결정판이었다. 빌리(데니스 호
퍼)와 캡틴 아메리카(피터 폰다)는 모터 사이클을 타고 '미국을 찾아서'(캡틴 아메리카의 가죽
잠바와 헬멧과 모터 사이클에는 성조기가 그려져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올리언스까지 여행
을 떠난다. 돈은 마약밀매로 마련했고, 일용할 양식은 마약과 마리화나이다. 그들의 여정에 히
피들과 변호사 조지 핸슨(잭 니콜슨)이 스쳐지나간다. 히피들은 문명을 거부하고 기존의 질서를 
비판하면서, 무한한 '자유'가 허용되는 새로운 삶과 기독교의 원시공동체로의 회귀를 꿈꾸고, 
조지(조지 워싱턴?)는 전쟁과 빈곤과 지도자와 모든 인생고가 사라져 버린 '평등'한 사회를 이
야기한다.<BR>영화는 자유와 평등을 명시한 미국독립선언의 실현불가능성, 아메리칸 드림과 미국역사에 대한 
회의로 빠져들어간다. 모래땅에 씨를 뿌리는 히피들은 이상주의자들이며, 알코올중독에 빠진 조
지는 허무주의자일 뿐이다. 빌리와 캡틴 아메리카는 뉴올리언스에서 열리는 마르디그라(사육제
의 마지막 날)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지만, 축제의 제물로 바쳐진 것은 기성세대(또는 보수주
의자들)의 총에 맞아죽는 그들 자신이었고 남은 것은 아메리칸 드림의 파산이었다. 노예시장으
로 악명 높았던 뉴올리언스에서 실패했다고 고백하는 두 사람은 미국역사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
각하게 만든다.<BR>할리우드식 영화 만들기에서 벗어난 방법은 영화의 주제를 뒷받침하고 있다. 스타를 배제하고, 
카메라를 스튜디오에서 야외로 옮기고, 장르를 패러디하는 저예산의 독립영화. 서부영화의 와이
어트 어프와 빌리 더 키드는 캡틴 아메리카와 빌리가 되고, 그들은 서부로부터 동쪽으로 와서 
영웅이 아니라 패배자가 된다. 동성애를 암시하는 버디 무비와 가정이 부재한 로드 무비의 형식
. 록 다큐멘터리와 뮤직비디오를 예견케 하는 반전무드의 록 음악 사용. 고전적 영화문법에 정
면으로 도전한 장 뤼크 고다르의 &lt;네멋대로 해라&gt;와 미국 언더그라운드 운동의 기수 케네스 앵
거의 &lt;떠오르는 전갈궁&gt;은 참고서가 되었다.<BR>'위대한 영화가 상업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을 때, 오류가 발생한다'는 고다르의 예언처럼, 데니
스 호퍼와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1970년대의 보수주의 물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은 모두 빼앗겨버리고 덧없이 시들어갔다. &lt;필자: 김경욱/영화평론가&gt;
<BR>#63. &lt;떼오레마 Teorema&gt;(1970) / 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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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을 지옥과 천국이 마주보는 문으로 안내하겠다. 파솔리니의 영화 가운데 카톨릭 보수파들
로부터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던 작품인 &lt;떼오레마&gt;에서 부르주아 가족은 그리스도 같기도 하고 
때로는 악마 같기도 한 신비한 인물 테렌스 스탬프로부터 성의 향연에 초대 받는다. 그것은 지
옥으로 가는 길일까 아니면 천국일까.<BR>1961년 &lt;아카토네&gt;로 국제영화계에 이탈리아의 가장 논쟁적 감독으로 알려지게 되는 피에로 파
올로 파솔리니. 그 당시 이탈리아 영화계는 네오레알리슴의 시대를 끝내고 펠리니와 안토니오니
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스트 시네마의 새 장을 열고 있었다. 그 두 거장에 비하면 파솔리니는 오
히려 주변부의 아방가르드였지만, 바로 그 주변성이 그의 영화를 오늘날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칼처럼 휘번득이게 한다.<BR>이미 50년대에 시인이며 소설가로서 몇 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던 파솔리니는 이탈리아 
지식인의 두가지 짐, 카톨릭과 그람시의 마르크시즘을 그의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다. 도시 빈민
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카톨릭에 대한 재해석은 &lt;마마 로마&gt;(1962)와 &lt;성마태복음&gt;(1964) 등에
서 잘 드러난다. 그러나 비기독교적 신화에 대한 매혹과 이탈리아 공산당에 가한 비판 때문에, 
카톨릭계는 물론 좌파 역시 그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다. 신비주의에 대한 경도와 마르크시즘
적 태도 사이의 화해불가능한 모순은 파솔리니 영화의 특징이 됐고, 그는 회화, 르포르타주, 연
극, 비평 등을 넘나들며 더욱 그 모순들을 다면화했다. 따라서 더 많은 적들이 생겨났다. 거기
다 그의 육체 자체가 일종의 실험실이며, 논쟁의 장이었다. 뿌리 깊은 카톨릭 사회에서 파솔리
니의 동성애 성향은 스캔들 이상의 파문이었기 때문이다. &lt;캔터베리 이야기&gt;(1972), &lt;쌀로-소돔
의 120일&gt;(1975) 등의 영화에서 그는 과잉적 성과 폭력 그리고 신성모독을 다뤘으나, 오히려 죽
음 자체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영화를 재연하는 무대 혹은 장이 됐다.<BR>&lt;떼오레마&gt;에서 테렌스 스탬프는 부유한 이탈리아 가정에 머물며 가족들을 차례로 유혹하는 역
을 맡는다. 그가 하인과 아들, 어머니와 딸,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성 관계를 갖고 떠나
자 이들은 모두 서서히 자기파괴의 길로 들어선다. 다양한 현상을 주재하는 추상적 법칙이라는 
뜻의 영화 제목 &lt;떼오레마&gt;는 바로 이 신비한 손님을 가리키며 다섯명의 가족들의 운명은 바로 
그에 의해 결정된다. 이 영화에서 성애는 신과 인간의 충일한 관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그 관계
는 테렌스 스탬프가 갑작스레 떠남으로 파괴된다. 랭보를 읽는 테렌스와의 천국의 나날들이 지
옥의 한철로 바뀌는 수난은, 사실 신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순간이기도 한 셈이다.<BR>실현되지 않은 약속의 땅을 기다리며 사막과 같은 밀라노에서 몰락하는 한 가족의 우화는 사실 
종교와 마르크시즘 사이에서 그리고 네오레알리슴의 유산과 자신의 '신비적 리얼리즘' 스타일 
사이에서 동요하는 파솔리니 자신에 대한 영화적 성찰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동요는 노상의 비
극적 죽음으로 끝난다. 1975년 파솔리니를 살해했던 17살의 청년은 그가 자신을 유혹했기 때문
에 죽였노라고 진술했다. &lt;필자: 김소영/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gt;
<BR>#64. &lt;대부1·2·3 The Godfather partⅠ,Ⅱ,Ⅲ&gt;(1972∼1990) /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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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약속받은 땅이었던 미국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가. 미국의 70년대는 집단적 나
르시시즘의 시대였고 코폴라는 미국의 번영 뒤에 가려있던 치부를 갱스터 영화의 양식을 빌려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1972년에 시작된 대부 시리즈는 90년대에 와서야 3부작이 완성됐다. 
제1부는 비토 코를레오네의 쇠락과 마이클의 성장, 그리고 제2부는 비토의 젊은 시절과 마이클 
가족의 해체, 제3부는 마이클의 사회적 성공과 쓸쓸한 죽음을 그리고 있지만 세 편 모두가 사실
은 동일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화려한 파티와 은밀한 거래에서 시작해 음모와 살인, 갈
등이 빚어진 다음 혼자 남은 마이클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BR>코폴라는 마이클이야말로 순수악이며 미국적 부패의 총체적 상징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러나 1
편에서는 관객이 마이클에 은근히 동조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는 권력에 대한 관객의 환상과 
욕망을 마이클이라는 인물이 충족시켜 준 탓이기도 하지만 이야기 구조 자체가 신화나 전설의 
서사적 구조를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갱스터 영화의 보편적 특성 가운데 하나인 고독한 영웅(
마이클)과 그 적들, 그리고 영웅을 돕는 후원자(비토)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
면서 동시에 마이클을 동정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2편에서 코폴라는 마이클
을 좀더 고통스런 인물로 묘사하기로 했고 그와 더불어 아메리칸 드림의 악몽을 좀더 깊이 그리
고자 했다.<BR>시실리에서 피살의 위험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비토는 성공의 기회를 잡지만 그것은 살인과 
범죄의 대가로 이뤄낸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가족의 안전과 패밀
리(조직)의 영화였다. 그러나 그러한 가족의 가치와 사회적 가치는 늘 대립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BR>마이클은 이러한 아버지의 뒤를 이으면서 음지에서 양지로, 암흑가의 보스에서 존경받는 기업가
로 끊임없는 변신을 꾀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노력은 그를 암흑의 세계로 더 깊숙히 
빠져들게 하고 가족과도 멀어지며 마침내 혈육인 형까지도 죽이게 한다.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원죄는, 마이클이 아무리 씻으려 해도 씻을 수 없으며 오히려 더 깊어만 가는 것이다.<BR>3편에서 마이클은 그 죄의 대가를 가장 처절하게 치른다. 1편과 2편에서 소외돼가는 모습으로만 
비치던 마이클이 3편에서는 목숨과도 같은 딸을 잃고 혼자 쓸쓸히 죽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함
으로써 코폴라는 미국적 악몽의 상징인 마이클을 처단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폴라는 
미래에 대해 그다지 낙관적이지 못하다. 코를레오네 패밀리는 마이클 이후에도 그가 평생을 걸
쳐 소원했던 합법적 기업의 탈을 쓰고서, 한층 더 냉혹한 조카 빈센트에 의해 사업을 계속 확장
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BR>도대체 선과 악의 구분은 무엇인가. 미국적 가치의 숭고함은 어디에 있는가. 낙원을 만들고자 
했던 이민세대의 꿈과 희망은 처절한 악몽이 되어 후세대에 이어지고 있지만 그 악몽이 깨어질 
가능성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코폴라의 미국 묵시록, 이 비극의 대서사시는 그래서 너무나 
암울하다. &lt;필자: 김지석/영화평론가·부산예술전문대학 교수&gt;
<BR>#65. &lt;아기레,신의 분노 Aquirre, der Zorn Gottes&gt;(1972) / 감독: 베르너 헤어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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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카스파르 데 카라발의 일기형식으로 엮은 스페인의 페루탐험기 &lt;아기레, 신의 분노&gt;는 황
금의 이상향 엘 도라도를 찾아가는 정복자들의 이야기다.<BR>1560년 크리스마스로부터 시작해 뗏목에 탄 모든 스페인 사람들이 죽고 반란을 주도한 돈 로페 
아기레만이 남는다. 자신이 "신의 분노"라 외치며 미쳐 날뛰는 마지막 장면에는 원숭이떼만이 
온통 뗏목을 뒤덮는다. 진화론과 인류의 종말을 연상시킨다. 아기레의 저주받은 광기 속에서 세
계 정복을 꿈꾸던 나치 히틀러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우화가 강력한 메시지로 전해진다.<BR>2차 대전 뒤 독일 영화는 이탈리아, 영국, 프랑스, 스웨덴에 비해 뒤떨어진 상업영화만이 판쳤
다. <BR>1956년 독일의 젊은 영화인들은 '오버하우젠 선언'을 통해 "아버지의 영화는 죽었다"고 외친다. 
그리고 곧 의회는 독일 영화 부흥을 위한 지원법안을 통과시킨다. 뮌헨을 중심으로 젊은 영화인
들이 영화를 만들고, 70년대에 들어서 독일 영화는 새로워진다. 그 새로운 변모를 영국평론가들
이 먼저 발견해 '새로운 독일 영화', 즉 뉴 저먼 시네마라고 했다. <BR>독일 국내에서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노이에 벨레'라고 했다. 이렇게 독일 영화는 부활했
다. 1910년대 말에서 20년대 찬란했던 표현주의의 영광이 70년대에 와서 다시 살아난 것이다. 
그 대표주자의 한 사람이 베르너 헤르초크이다.<BR>미국 시사주간지 &lt;뉴스위크&gt;는 '독일 영화의 르네상스'라는 커버스토리로 새로운 독일 영화 특
집을 마련하며 새로운 독일 영화에는 표현주의의 맥이 보인다고 했다. 헤르초크에게서는 &lt;최후
의 인간&gt;의 프리드리히 무르나우의 영향이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르초크는 지나간 시대의 
표현주의 영화를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독일인의 핏속에 흘러내려오는 표현주의적 국민
성이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BR>&lt;아기레, 신의 분노&gt;는 남미의 자연 그리고 급류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는 정복자들의 모습과 뗏
목과 숲 속에서 겪는 권력과 이에 반항하는 아기레의 집요한 대결이 잠시의 숨돌림도 없는 긴장 
속에 전개된다. 파스빈더에게서도 그렇지만 새로운 독일 영화에는 유머가 없다.<BR>인디언의 화살이 날아오고 하나씩 죽어가는 뗏목 위에서 혼자 남은 아기레는 외친다.<BR>"나는 신의 분노이다. 멕시코를 코르테스로부터 되찾고, 그리고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나갈 것이
다. 내 딸과 결혼해 함께 순수한 왕국을 건설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대륙을 지배할 
것이다. 우리는 참고 견뎌나갈 것이다. 나 말고 다른 누가 있겠는가. 나는 신의 분노이다." 신
의 저주받은 정복자를 자처하는 아기레 역의 클라우스 킨스키의 연기가 일품이다. 마치 세계 정
복의 망령에 휩싸였던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모든 독재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BR>헤르초크가 시나리오와 연출을 겸했다. 영화는 카스파르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다가 누가 잉크
를 마셔버려 일기는 중단되고 아기레의 독백으로 내레이션이 계속된다. &lt;필자: 안병섭/영화평론
가·단국대 교수&gt;
<BR>#66. &lt;내슈빌 Nashville&gt;(1975) / 감독: 로버트 앨트먼
&nbsp;
&lt;내슈빌&gt;은 70년대 미국영화의 성취를 얘기할 때면 꼭 맨먼저 거론되는 작품이다. 제임스 모나
코의 &lt;미국영화는 지금&gt;이란 책의 말미에 실린 68년에서 77년까지의 미국영화 수작 목록을 보면 
&lt;내슈빌&gt;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lt;대부&gt; 1, 2편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설문에 응한 
20여명의 미국 평론가들은 거의 예외없이 &lt;내슈빌&gt;을 추천작 10편 안에 넣었다.<BR>&lt;내슈빌&gt;은 미국영화가 앞으로도 좀처럼 도달하기 힘들 것 같은, 아주 수선스러우면서도 날카롭
기 그지없는 사회 풍자극이다. 미국 컨트리 음악의 총본산인 내슈빌. 이곳에서 열리는 음악제에 
참석하기 위해 각지에서 대중음악인들과 구경꾼들이 몰려온다. 유명한 컨트리 가수, 야심에 불
타는 무명가수, 포크음악그룹, BBC의 리포터, 정치유세꾼 등 24명의 인물이 등장해 한바탕 떠들
썩한 일화들을 꾸린다.<BR>감독 로버트 앨트먼은 누구 한 사람에게도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집단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구
조로 2시간 40분을 끌고 간다. 영화 초반에 묘사되는 교통체증 장면부터 장관이<BR>다. 공항에서 내슈빌까지 오는 도로가 차로 꽉 막히고 이 사태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앨
트먼은 한사람씩 차근차근 소개하는데, 그 사람들이 모두 영화의 주인공이다.<BR>이 영화는 에피소드식 구성으로 돼 있기 때문에 줄거리가 한가닥으로 이어지지 않고 따로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준다. 클로즈업이나 반응 숏도 별로 없다. 미디엄 롱 숏이나 풀 숏 위주로 화
면을 짠 연출은 어느 등장인물에 특별히 주목을 요하지 않고 그저 전체를 담담히 보게끔 유도한
다. 따라서 이런 스타일과 얘기구조에서는 누가 성공하고 누가 사랑을 맺느냐 하는, 극적 장치
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BR>앨트먼의 연출의도는 효과가 있었다. 음악인과 관객 사이에 오고가는 공감이 감동을 주는 사이
에 슬그머니 이 영화의 진짜 주제가 드러난다. 가수들은 사랑과 가족을 노래하지만 그들의 실제
모습은 그런 메시지와는 관계가 없다. 망가진 인간관계, 음반업계의 착취로 인해 그들의 사생활
은 멍들어 있다. 한번도 화면에 나타나지는 않지만 스피커를 통해 자주 방송되는 대통령 입후보
자의 연설도 같은 맥락에 있다. 앨트먼은 떠들썩한 집단 축제의 끝에서 속빈 강정과 같은 미국 
대중문화와 미국인의 허상을 본다. 미국인들을 기만적인 정치와 문화산업의 책략에 장단 맞추는 
희생자로 그려내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키스 캐러딘이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 &lt;그건 걱정이 안
돼(It Don't Worry Me)&gt;도 이 주제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이 영화에 담긴 노래는 모두 출
연 배우들이 직접 불렀다). "그건 걱정이 안돼. 그건 걱정이 안돼. 당신은 내가 자유롭지 않다
고 말하겠지. 하지만 그건 걱정이 <BR>안돼."<BR>그러나 앨트먼은 걱정이 많았던 것 같다. 내슈빌이라는 마을 자체는 미국을 표상하는 하나의 이
미지다. 많은 등장인물과 다층적인 이야기 구조로 앨트먼은 미국 사회의 겉으로 보이지 않는 재
앙을 그려낸다. 영화 &lt;내슈빌&gt;이 없었으면 70년대 미국영화역사는 아주 허전할 뻔했다. &lt;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씨네21 기자&gt;
<BR>#67. &lt;길의 왕 Im Lauf der Zeit&gt;(1976) / 감독: 빔 벤더스
&nbsp;
&lt;베를린 천사의 시&gt;로부터 10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빔 벤더스의 초기작 &lt;길의 왕&gt;(원제: 시간의 
흐름 속에서)을 만난다.<BR>로드 무비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이 영화에서 두 남자 브루노 빈터와 로버트 란더는 몰락해가는 
동독 접경지대를 여행한다. 젊은 영화관객들에게 이 영화가 특별한 종류의 로드 무비로 남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주인공 브루노 빈터가 영사기 수리기사이며 영화광이라는 점때문이다. 그래서 
&lt;길의 왕&gt;은 그 장르의 영화들이 그렇듯 젊은 시절의 고뇌에 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영화에 관
한 영화가 되었다. 1970년대 미국 배급업자들의 횡포로 값싼 포르노를 강매 당하던 시골 극장들
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삽입된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영화와 록에 경도되어 자
라난 세대의 대변자로서 로버트가 내뱉는 대사, "양키들이 우리의 의식을 식민화했어"가 암시하
듯이 미국 문화에 대한 애증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BR>아내와 헤어진 뒤 엘베 강에 차를 처박아 자살하려다가 실패한 로버트는 브루노의 밴에서 함께 
기거하면서 그의 영사기 수리 여행에 동참한다. 둘은 서로에게 기묘한 우정을 느끼면서 여자와
는 화해로운 관계를 만들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것은 고독하고 금욕적인 영웅이 등장하는 
서부 영화의 주인공들과 동일화하면서 여성없는 세계에 머물게 된 영화광의 고백적 성격을 띠기 
때문에 개인사적 차원을 넘어서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 로버트는 여자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
야 한다고 브루노를 설득한 뒤 그들이 함께 밤을 지낸 미군용 오두막 문 위에 "모든 것이 변해
야만 해" 라는 쪽지를 남기고 떠난다.<BR>미국 대중문화의 집중적인 세례를 받고 자라난 벤더스는 미국 영화와 록 음악이 자신의 삶의 구
명대였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그 영향에서 벗어나 할리우드 영화와 유럽 영화를 
새롭게 결합, 재창조할 것인가가 벤더스의 영화 여정의 이정표였는데 &lt;미국 친구&gt; &lt;파리 텍사스
&gt; 등이 바로 그 기착지들이다.<BR>&lt;길의 왕&gt;에는 미국 문화에 대한 이런 애증어린 성찰뿐만 아니라 독일 사회에 잔존하는 나치즘
도 명시하고 있는데 히틀러는 늙은 극장주의 모습으로, 촛대의 장식으로 망령처럼 모습을 드러
낸다. 로버트와 아버지가 만날 때 그 아버지와 교차되는 히틀러 모양의 촛대는 나치 세대인 아
버지와 교통할 수 없는 젊은 세대의 딜레마에 대한 암시다.<BR>할리우드 영화에 대항해 '자전거를 만들 만한 돈으로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만들려고 시도'했던 
알렉산더 클루게와 빔 벤더스를 포함한 신독일 영화 감독들의 고민은 사실 오늘날 한국 영화산
업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서독은 적극적인 국가지원이 있었고, 그 결과 신
독일 영화는 70년대 롤스로이스처럼 서구 영화제와 영화시장을 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BR>영화감독이 되기 전 감정을 자유롭게 풀어놓는 독특한 문체를 지닌 영화비평가이기도 했던 벤더
스는 짐 모리슨의 노래와 하워드 호크스 그리고 존 포드를 오가며 '순간적인 몰아'의 이미지를 
남기는 어떤 순간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는데 흔히 '감각주의'라고 불리는 그의 영화세계는 이
미 비평가 시절부터 마련되었던 셈이다.<BR>그는 영화를 이미지가 야기한 감정의 움직임 '(E)motion'이라고 명명하는데, 이것은 문자 중심
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미지에 몰입하는 독일 신세대의 감수성으로 영화를 재정의한 것이고 그의 
영화가 특히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는 근거가 된다. &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국립 영상원 교
수&gt;
<BR>#68. &lt;칠레전투 Batalla de Chile&gt;(1975) / 감독: 파트리시오 구즈만
&nbsp;
1973년 9월11일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선거에 의해서 입성한 칠레의 사회주의 민중연합정부의 
지도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반동적 쿠데타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리고 비극적 다큐멘터리 &lt;칠레
전투, 비무장 민중의 투쟁&gt; 3부작(1975∼79)은 바로 거기서 끝나고,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BR>라틴 아메리카의 해방과 독립, 투쟁과 전투의 진보운동 속에서 칠레는 20세기의 파리 코뮨이었
다. 말 그대로 '마르크스가 &lt;프랑스 내란&gt;에서 문제제기하고, 레닌이 &lt;국가와 혁명&gt;에서 정식화
한' 모든 일들이 민중들의 힘에 의해 눈 앞에서 펼쳐졌다. 이것은 책이 아니라 일상생활의 스펙
터클이었다.<BR>1972년 11월2일 아옌데 정부의 출범과 함께 진보적인 젊은 영화인들은 이 '위대한 사건'을 기록
하기로 하였다. 그들은 아무런 영화 현장 경험이 없었으며, 또한 기자재도 부족하였다. 하지만 
파트리시오 구즈만(연출), 페데리코 엘론(기획), 호르헤 뮬러(촬영), 베르나르도 멘조(사운드), 
호세 피노(조명)는 16㎜ 에클레어 카메라와 나그라 녹음기 한 대, 그리고 코닥 흑백필름만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매일매일의 경이적인 체험과의 만남이었으며, 
그들은 작업일지에 '이 영화는 새로운 역사의 첫번째 영화가 될 것'이라고 써넣었다. 대부분의 
장면은 롱테이크로 촬영되었으며, 수많은 생산계층의 민중들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어두운 조명 
때문에 많은 장면들은 자연광 아래서 '생생하게' 찍혀야만 했다.<BR>그러나 희망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옌데 정부는 쿠데타로 무너졌고, 촬영은 중단되었다. 파트
리시오 구즈만과 그의 동료들은 필름과 녹음 테이프를 들고 6개월에 걸친 밀반출 끝에 쿠바로 
망명했다. 그리고 아옌데 민중정부 아래서의 8개월에 걸친 삶과 희망을 담은 필름은 그로부터 6
년에 걸친 편집과정을 통한 후반작업에 들어갔다.<BR>그 과정에서 이 영화는 3부작으로 재구성되었다. 그래서 제1부 &lt;부르주아지의 봉기&gt;와 제2부 &lt;
쿠데타&gt;, 그리고 제3부 &lt;민중의 힘&gt;으로 다시 쓰였다.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BR>이행이라는 전례없는 정치적 실험과, 사회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와 매판 부르주아지들의 반동적 
폭력에 대한 4시간 30분에 걸친 이 장대한 진술은 영화에 담겨 있는 현실 속에서의 <BR>'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과, 또 한편으로는 비극적으로 끝난 아옌데 정부에의 냉철하고 분석적
인 시도가 서로 변증법적으로 보여주고 대답하고, 질문하고 다시 보여준다.<BR>그런 의미에서 이 다큐멘터리는 선동적이라기보다는 분석적이며, 예언적이라기보다는 희망적이
다. 부르주아 국가의 억압적 기구들의 파괴없이 정말 사회주의에로의 평화적 이행이란 불가능한
가？ 더 나아가 계급투쟁에서 부르주아지들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바꾸는 진정한 힘
은 어디서 나오는가?<BR>파트리시오 구즈만과 그의 동료들은 &lt;칠레전투&gt;가 영화에서 마르크스-엥겔스의 &lt;공산당 선언&gt;과
도 같은 의미를 갖기 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연민과 향수에 찬 아옌데 정부에의 기록
을 넘어서서 바로 영화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망치가 되었다.<BR>파트리시오 구즈만은 이 영화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과도기적인 필름이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
다. 일보전진, 이보후퇴! &lt;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gt;
<BR>#69. &lt;택시 드라이버 Taxi Driver&gt;(1976) / 감독: 마틴 스콜세지
&nbsp;
1970년대의 미국영화를 베트남전과 떼어내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베트남전은 60년대 이래 발
전해온 급진적 사회운동, 청년문화, 페미니즘, 흑인 인권 운동, 동성애자들의 투쟁 등을 폭발시
키는 뇌관과 같은 역할을 했다. 미국사회는 전면적인 위기에 빠진 듯이 보였다. 워터게이트 사
건은 이 위기를 더 부추겼다. 지배층은 대처능력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안
적 사회개혁 프로그램이 작동한 것도 아니었다. 미국을 지탱하고 있는 거대한 보수와 냉전의 기
반이 그만큼 두터웠던 것이다. 그래서 70년대의 미국의 위기는 혁명이 아니라 혼란의 양상을 보
였다. 70년대 '새로운 미국영화'는 베트남전을 결코 '인류의 양심에 그어진 상처'로 그리는 법
이 없다. 그들에게 그 전쟁은 자신들의 혼란을 증폭시킨 계기일 뿐이었다. 문제의식의 초점은 
늘 자신들의 붕괴증후군에 모아져 있었다. 우리의 관점에서 &lt;디어 헌터&gt;나 &lt;지옥의 묵시록&gt;을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그들 또한 항변의 근거를 가진 셈이다.<BR>마틴 스코시즈의 &lt;택시 드라이버&gt;는 바로 이 혼란에 관한 혼란스런 영화다. 여기서도 주인공 트
래비스 비클(로버트 드 니로)은 베트남에서 귀향한 제대군인으로 등장하지만 그는 베트남 전쟁
에 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지만 그 원인을 찾고자 하지도 않는다
.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결단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그도 모른다. 트래
비스는 택시를 몰고 뉴욕의 밤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의사소통의 단절을 겪고 있으며 몽유병자
처럼 현실에 발을 대고 있지 못한 그에게 도시는 형태를 잃고 떠다니는 이미지일 뿐이다. 뉴욕
의 뒷골목은 쓰레기로 가득하다. <BR>그의 결단은 이 쓰레기들과 연관되어 있다. 물론 이 속에는 창녀, 포주, 마약꾼, 구역질나는 검
둥이들, 호모와 레스비언 등의 '인간쓰레기'가 포함된다. 그는 거리를 청소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그는 대통령 선거 홍보전을 치르는 베티를 만나지만 그 관계는 '어떤 결단'을 재촉하
는 장치이자 허구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 거리에서 10대의 창녀 아이리스(조디 포스터)를 
만나면서 그는 드디어 어떤 결단을 내린다. 그것은 인간쓰레기들을 피로써 씻어내는 일이다.<BR>트래비스는 사회의 정상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정신병자이지만 미국영화의 전통 속에
서 보자면 도시에 나타난 마을의 청소부, 곧 보안관이다. 이러한 성격 부여는 공포영화와 서부
극의 영향을 엿보게 한다. 그가 결단에 이르기까지 내보이는 극심한 도덕적, 정치적 혼란은 이
러한 성격화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그는 대통령 후보 팰런타인을 암살하려 주변을 맴돌지만 결
국은 아이리스의 포주 스폿(하비 케이텔)을 살해하고 만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빠져있던 혼란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도시의 영웅으로 등장하게 되지만 그 의미는 애매하기 짝이 없다. 그는 과연 
존재의 혼란에서 벗어난 것일까. 그는 영웅으로 불러 합당한 인물일까. 그는 과연 아이리스를 
사랑하기나 한 것일까. &lt;택시 드라이버&gt;는 이러한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미학적 
견지에서 진보적이었던 스코시즈와 정치적으로 신파시스트였던 폴 슈레이더의 기묘한 결합은 이 
모든 혼란의 근원이다. 초월로서의 어떤 결단, 영웅주의, 인간쓰레기에 대한 경멸 따위가 슈레
이더의 세계라면 뉴욕의 뒷골목, 트래비스의 소외, 존재의 혼란은 스코시즈에 속한 영역이기 때
문이다. 영화 막바지에 트래비스가 모호크족의 머리모양을 하고 아파치족을 흉내낸 스폿을 쏘는 
장면은 그러한 작가적 모순의 첨예한 돌출로 이해할 수도 있다. &lt;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gt;
<BR>#70. &lt;애니 홀 Annie Hall&gt;(1977) / 감독: 우디 앨런
&nbsp;
우디 앨런이 감독·각본·주연을 겸한 &lt;애니 홀&gt;은 프랜시스 코폴라의 &lt;대부&gt;, 로버트 앨트먼의 
&lt;내슈빌&gt; 등과 함께 70년대 미국 영화의 걸작으로 꼽힌다. 무엇보다도 &lt;애니 홀&gt;은 장르로서의 
코미디를 스타일로서의 코미디로 승화시킨 감독의 재능이 십분 발휘된 전환기적 작품으로, 이전
의 슬랩스틱 코미디나 시각적인 개그가 주류를 이뤘던 &lt;돈을 갖고 튀어라&gt; &lt;바나나&gt; 등의 초기 
작품과는 달리 이후 우디 앨런의 일관된 스타일을 이루는 대사 중심의 개그와 담론이 코미디의 
핵심이다.<BR>우디 앨런은 주로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자전적 정신세계를 프로이트적인 정신분석 코미디에 가
까운 영화로 만들어 내곤 했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lt;애니 홀&gt;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평소 
뉴욕에 대한 사랑, 쇼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환멸, 사랑과 죽음, 우울과 강박관념, 가족과의 관
계와 여자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심각하게 탐구하고 있다. &lt;애니 홀&gt;의 이야기는 주인공인 앨비 
싱어가 사랑하던 여자 애니 홀과 헤어지고 나서 왜 그렇게 되었나를 회상하는 데서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애니 홀과의 만남, 사랑, 헤어짐, 그리고 그의 가족과 그가 이전에 사귄 여러 여자
들의 관계 속에서 앨비의 독특한 성격이 마치 정신분석을 하듯이 보인다. 결국 앨비는 애니 홀
과 헤어졌지만 자신이 쓴 희곡에서 허구의 인물을 통해 그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만든다.<BR>앨런의 대부분의 코미디는 주로 고통이나 강박증으로부터 나오는데, 그는 어린 시절의 아픈 기
억이나 현재의 괴로움, 자신의 열등감 등을 중요한 코믹요소로 승화시켜 항상 웃음 뒤에 페이소
스를 느끼도록 만든다. &lt;애니 홀&gt;에서 앨비의 냉소적이고 신경증적이며 탐욕적인 성격은 실제 
우디 앨런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한다. 무성영화 코미디언 해럴드 로이드처럼 안경을 쓴 앨비는 
앤티히어로로서 현대미국사회의 관찰자, 기록자 노릇을 했던 채플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인
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채플린이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면 앨런은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코미디에 접근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BR>&lt;애니 홀&gt;은 무엇보다도 진지한 주제의식과 파격적인 구성, 그리고 신선한 형식미가 돋보이는데
, 그것은 앨런이 초기에 많은 영향을 받은 바 있는 필스, 막스 브러더스, 채플린보다는 정신분
석학자인 프로이트와 영화감독 잉마르 베리만 등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이야기를 풀어
가는 방식이나 주인공의 정신분석에 대한 의존도, 그리고 섹스를 삶의 중요한 모티브로 이용하
고 있는 점 등이 프로이트와 관련이 있고, 삶의 의미와 신의 경험, 그리고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고통스러우면서도 고독한 집착이 지극히 베리만적이다.<BR>&lt;애니 홀&gt;의 형식은 무척 파격적이어서 어떻게 보면 진부해질 수 있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
주 근사하게 보이는데, 알고 보면 그 대부분의 새로운 형식 요소들은 과거의 걸작들에서 응용해 
집대성한 것이다. 과거를 현재인물이 방문하는 모습은 베리만의 &lt;산딸기&gt;에서, 주인공이 관객을 
향해 말하는 것과 속마음을 자막으로 처리하는 것은 고다르 영화에서, 이중노출에 의해 애니의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는 이미지는 구로자와 아키라의 &lt;술취한 전사&gt;에서, 애니메이션을 사용하
는 것은 스탠리 큐브릭의 &lt;시계태엽장치 오렌지&gt;에서 그 영향을 받아 응용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형식요소들은 대부분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재해석에 의해 시
각화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디 앨런의 특별한 재능은 그 모든 것을 내
용과 조화를 이루며 철저히 코미디로 승화시켰다는 점에 있다. &lt;필자: 이정국/영화감독&gt;
<BR>#71. &lt;파드레 파드로네 Padre Padrone&gt;(1977) / 감독: 비토리오 따비아니 &amp; 빠올로 따비아니
&nbsp;
타비아니 형제는 로셀리니와 각별한 관계에 있다. 이 형제가 영화를 시작한 것은 로셀리니의 &lt;
파이자&gt;(1948)를 보고난 뒤고 이들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 &lt;파드레 파드로네&gt;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도 로셀리니로부터였다. 또 마르크시스트 영화인이라 불렸던 이들의 작
품에서 우리는 로셀리니적인 인물을 만날 수 있는데 다만 유토피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하다는 차이가 있다. 이는 네오리얼리즘의 영향 아래 좀더 진보적인 이데올로기를 수용한 
타비아니 형제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BR>타비아니 형제는 그들의 전작품을 공동연출하는 보기 드문 예를 보여준다. 그것도 거의 작업을 
분담하지 않은 채 시나리오, 음악, 촬영, 편집까지 함께 고민하는 것이다. 비토리오는 1929년, 
파올로는 1931년에 이탈리아 신 미너이토에서 태어난다. 1950년께 피사의 시네클럽을 주도하면
서 영화경력을 시작한 이들은 1954년 자바티니와 공동으로 나치즘에 관한 단편영화를 만들고 이
후 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lt;전복자들&gt;(1964)은 이들 형제의 첫 장편영화였고 그 뒤 3,4년
마다 한편씩 꾸준하게 수작을 발표해 왔다. 톨스토이의 &lt;신과 인간&gt;을 각색한 &lt;성인 미셸은 수
탉을 가졌다&gt;(1971)에서 &lt;알몽장팡&gt;(1975), &lt;카오스&gt;(1984), &lt;굿모닝 바빌로니아&gt;(1987), &lt;밤에
도 태양이&gt;(1990)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은 당당한 자존심, 사회적 신분의 변화, 본원으로의 
귀환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BR>&lt;아버지, 주인&gt;으로 옮길 수 있는 이 작품 &lt;파드레 파드로네&gt;는 양치기에서 대학교수로 성장한 
한 사르디니아인의 베스트셀러 자서전을 각색했다. 이야기는 이 영화가 요리하는 삶의 주인공인 
사르디니아의 방언학자 가비노에 의해 플래시 백으로 서술된다. 어린 가비노는 주인으로 군림하
는 난폭한 아버지에 의해 교실에서 끌려나온 뒤 양치기로 일자무식의 생활을 하다가 군에 들어
간다. 군에서 이탈리아 본토의 표준어와 사르디니아 지역의 방언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 방면
의 권위자가 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세련된 본토에선 양치기들의 방언이 이데올로기적 불이익을 
가질 수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BR>타비아니 형제는 이 영화를 통해 두 세계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사르디니아 섬 양치기들의 
원시적인 생활을 그리는 객관적인 세계는 화면으로 직접 전달되는데, 탁월한 카메라 움직임이 
양치기들의 삶과 광활한 사르디니아의 대지를 생생하게 훑고 있다. 또 다른 세계는 사운드 몽타
주로 전해지는 주관적인 세계다. 타이틀 자막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합창, 영화 도입부에서 가비
노가 끌려나간 뒤 들려오는 아이들의 내면의 소리, 그리고 나무와 시냇물 소리, 양치기들의 외
침같은 청각적 요소는 그 자체의 독립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갖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갈등, 
&lt;아버지, 주인&gt;으로부터의 극복이라는 주제를 그려내고 있다.<BR>이 작품 &lt;파드레 파드로네&gt;에서 구사된 타비아니 형제의 연출력은 이후 &lt;굿모닝 바빌로니아&gt;에
서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와 정신적 고양을 표현하기 위한 수직적인 카메라 움직임을, 그리고 &lt;
밤에도 태양이&gt;에선 자기성찰을 위해 은둔과 병상을 택한 주인공을 묵상의 나무로 이끄는 수평
적 카메라 움직임과 내면의 갈등을 그리는 주관적 사운드 몽타주를 찾게 된다. &lt;필자: 조인숙/
영화평론가&gt;
<BR>#72. &lt;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gt;(1979) /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nbsp;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계보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이름이 없었으면, 그것은 허망한 
신기루로 남았을 것이다. 코폴라는 60년대 말 이후 할리우드 영화에 개혁 바람을 일으킨 세대 
가운데서 가장 선배축에 속하는 세대이며, 영화과를 졸업한 뒤 누구보다도 먼저 '타락한' 상업
영화 체제에서 도전을 시도했던 감독이다. 그리고 그의 70년대는 빛나는 영화적 성취를 거둔 시
기였다.<BR>&lt;대부&gt; 1, 2편으로 비평과 흥행 면에서 모두 대성공을 거둔 코폴라는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암시
를 얻은 소품 규모의 문제작 &lt;도청&gt;으로 74년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뒤 자신의 영화세계
를 중간결산할 작품을 궁리하게 된다. 바로 베트남 전쟁을 다룬 대작 &lt;지옥의 묵시록&gt;이다. 코
폴라는 패기만만했지만 영화제작은 숱한 난관을 겪었다. 주연배우의 교체, 미군의 비협조, 촬영
지였던 필리핀을 때마침 덮친 태풍 등 결국 이 영화는 79년에 가서야 세상에 공개됐다.<BR>&lt;지옥의 묵시록&gt;은 잘 알려진대로 조셉 콘라드의 소설 &lt;어둠의 심장&gt;을 베트남 전쟁의 상황에 
맞게 각색한 것이다. 원작의 제목처럼 이 영화는 어둠의 심장을 향하고 있다. 영화가 전개될수
록 점점 화면의 명도가 떨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학살의 쾌감, 죽음과 인접해 있는 게임의 
스릴을 만끽하게 하는 초반의 전투장면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영화의 시청각적 공명효과는 미치
광이 쿠르츠 대령이 등장하는 후반부 장면에서는 공격성을 감춘 인간 광기의 근원에 대한 형언
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바뀌어간다.<BR>말론 브랜도가 연기하는 쿠르츠 대령은 코폴라의 주제의식을 집약하고 있다. 그는 바이런의 싯
귀를 읊조리면서도 사람의 목을 태연히 따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전쟁으로부터 공포를 느끼지만 
동시에 그 전쟁에 매혹당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베트남전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맥락을 보편
적인 전쟁의 광기로 추상화시킨 결함이 남는 대신, 그 광기를 영화적으로 형상화해 낸 점에 있
어서는 기념비적인 업적을 표한다. 현대의 가장 끔찍한 재난인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인간이 전
쟁에 대해 느끼는 공포를 가장 추상적인 형태로 재현해 낸 스펙터클인 것이다.<BR>코폴라 감독은 괴물같은 사람이다. 미국적 토양에서 그는 좀처럼 보기 드문 예술가다. 동시에 
베트남전을 미군들이 즐겼던 일종의 쇼, 로큰롤 전쟁이라고 생각하는 다분히 미국적인 감각을 
지녔다. 쇼처럼 즐거운 것은 없다. 그러나 예술적인 영화도 만들고 싶다. 그 이중적인 욕망이 
충돌하면서 영화사상 가장 심오하고 복잡하지만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베트남전 영화가 만들어졌
다.<BR>코폴라는 훗날 회고했다. "우리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전쟁을 치를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다. 우리의 인원은 너무 많았고, 돈과 장비도 너무 많이 낭비됐고, 조금씩 우리는 미쳐갔다
." 마약과 히스테리에 쌓인 베트남 전쟁이라는 쇼처럼 &lt;지옥의 묵시록&gt; 영화 그 자체도, 영화 
스태프들도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다. &lt;지옥의 묵시록&gt;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레퀴엠이었다. &lt;
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lt;씨네21&gt; 기자&gt;
<BR>#73. &lt;이레이저 헤드 Eraserhead&gt;(1978) / 감독: 데이비드 린치
&nbsp;
1970년대의 가장 흥미진진한 영화현상은 컬트영화의 등장이었다. 심야극장의 영화광들은 &lt;럭키 
호러 픽처 쇼&gt;를 계기로 해서 컬트영화 신드롬을 만들어 냈으며, 세상에서 가장 기괴하고 이상
한 영화들을 차례로 뒤져나갔다. 그리고 1978년에 드디어 자기 세대의 컬트영화 감독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바로 데이비드 린치이었다.<BR>미술을 공부하고 애니메이터로 일하던 데이비드 린치는 자신의 경험을 최대한 살려서 장편영화 
데뷔작 &lt;이레이저 헤드&gt;를 찍었고, 그 결과 초현실주의 회화와 실험영화가 결합한 악몽 그 자체
의 영화가 탄생하게 되었다.<BR>단숨에 컬트영화의 명단에 올라간 이 영화는 꿈과 현실, 천국과 지옥이 모두 끔찍하게 뒤틀려버
린 세상의 풍경을 보여준다. 방전된 것처럼 머리털이 곤두선 헨리는 움직이는 닭요리를 먹고, 
운행에 문제가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해초더미가 자라나는 방에서 산다.<BR>헨리는 강경증(强硬症)에 걸린 여자 매리(그의 할머니는 살아 있는 시체 같고, 아버지는 한쪽 
팔이 마비되어 있다)와 결혼하여 기형아를 키우게 된다. 매리의 주변에는 두개의 세계가 있다. 
하나는 온몸에 화상을 입고 창 밖을 바라보는 남자의 세계인데, 그는 헨리에게서 정충처럼 보이
는 것을 빼내어 기형아를 만들어낸다. 다른 하나는 라디에이터 속에 살고 있는 소녀의 세계이다
. '천국에서는 모든 일이 잘된다'고 노래하는 소녀는 춤을 추면서 정충처럼 보이는 것을 발로 
밟아 터뜨려 버린다. 라디에이터를 바라보며 마음의 안식을 얻던 헨리는 아내가 버린 기형아를 
가위로 찔러 죽이고, 그 세계로 들어가서 소녀의 품에 안긴다.<BR>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매리라는 이름을 성모 마리아로 생각하고, 기형아의 모
습에서 털을 벗겨낸 어린 양을 떠올린다면(매리의 어머니가 헨리에게 매리와 성관계가 있었느냐
고 추궁할 때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는다) 화상을 입은 남자는 신으로 해석된다. 그는 원자폭탄
과 공해에 찌들어 기형아를 만들어내고, 낙태로 무수한 생명을 희생시키는 세상의 신이며, 침묵
으로 일관한다. 폐허 같은 건물들과 썩은 물이 고여있는 거리,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은 또한 
산업사회의 악몽이다(헨리의 직업은 인쇄공이다).<BR>헨리의 가족은 외디푸스 가족 내부의 컴플렉스를 드러낸다. 끊임없이 울어대며 부모에게 쉴 틈
을 주지 않는 아이는 가정의 행복이 곧 불행의 씨앗으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준다. <BR>매리는 헨리의 손길을 피하고, 헨리는 매리의 배에서 탯줄 같은 것을 꺼내어 벽에 던진다. 그들
의 절망적인 몸짓에는 성관계의 공포와 아버지가 되는 두려움이 들어있다. 그러나 무수한 퍼즐 
조각으로 가득찬 수수께끼 같은 영화는 이 모든 해석을 무색하게 만들어 버린다.<BR>데이비드 린치는 &lt;엘리펀트 맨&gt;과 &lt;블루 벨벳&gt;으로 아카데미 영화제의 감독상 후보에 지명되었
고, 곧장 제도권으로 진입하였다. 그는 텔레비전 시리즈 &lt;트윈픽스&gt;를 제작하면서 컬트영화의 
감수성을 일반 대중에게 확산시켰으며,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은 &lt;광란의 사랑&gt;으로 그것
이 포스트 모던 시대의 작가주의라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lt;이레이저 헤드&gt;에서 &lt;광란의 사랑&gt;까
지, 데이비드 린치가 걸어간 길은 또한 컬트영화 신드롬의 운명이 되었다. &lt;필자: 김경욱/영화
평론가&gt;
<BR>#74. &lt;마리아 브라운의 결혼 Die Ehe der Maria Braun&gt;(1979) / 감독: 라이너 베르너 파쓰빈더
&nbsp;
파스빈더의 영화에선 죽음의 전조와도 같은 이상한 흥분이 발견된다. 폭발을 기다리는 억눌린 
광기, 무정부주의적 페시미즘 그리고 데카당스한 탐미적 경향들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를 60
년대 이후 독일 반문화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뉴저먼시네마는 사실 그의 존재와 더불어 국제화
했고 또 독일화했다. 하지만 1982년 36살의 파스빈더는 과다한 마약복용과 일년에 다섯편에 이
르렀던 영화생산으로 때이른 죽음을 맞는다. 실제로 그의 죽음은 뉴저먼시네마에 조종을 울린 
사건이었다.<BR>&lt;베로니카 보스의 갈망&gt;(1981), &lt;롤라&gt;(1981)와 더불어 3부작인 &lt;마리아 브라운의 결혼&gt;(1979)
의 원제는 &lt;우리 부모의 결혼&gt;이다. 영화는 전후 독일 중산층의 성장을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착
취에서 비롯된 것으로 간주하면서 그것을 마리아(한나 쉬굴라)라는 한 여성의 삶에서 읽어낸다.<BR>1943년 마리아와 헤르만 브라운의 결혼식은 공습으로 엉망이 된다. 전쟁에 끌려간 헤르만이 러
시아에서 실종되자 마리아는 흑인 미군 빌에게 매춘해 삶을 이어나간다. 그 와중에 남편 헤르만
이 돌아오고 마리아는 빌을 살해한다. 헤르만이 마리아 대신 감옥에 들어가고 빌에게서 익힌 능
숙한 영어 덕분에 마리아는 사업가 오스발트의 경제적, 성적 파트너가 된다. 하지만 마리아는 
남편에겐 사랑을, 그리고 오스발트에겐 섹스만을 제공한다고 믿고 자신이 그 관계들을 조절하는 
주체라고 생각한다. 마리아의 꿈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부르주아적 가정을 마련하는 
것이지만, 오스발트가 남긴 유언은 그를 뒤흔들어놓는다. 마리아는 자신이 삶의 주인이라고 생
각해왔지만 실제로 그의 삶은 오스발트와 헤르만의 계약에 의해 설계된 것이었다. 사실 문, 창
문 그리고 계단에 의해 계속 프레이밍되는 마리아의 이미지와 급하게 움직이는 카메라는 관객들
에게 그의 인식 이전에 이미 그가 누군가에 의해 프레임화해 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BR>마리아가 자신의 실체를 발견하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 부주의하게 켜둔 가스가 폭발해 집은 삽
시간에 폐허로 변하고, 그 순간 1954년의 독일과 헝가리의 축구 경기를 중계 중이던 라디오에선 
'독일은 세계의 주인'이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BR>우연성에 지배받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키는 멜로드라마의 관행을 따르고 있는 이 영화를 그 세계
로부터 구출한 것은 전후 독일사에 대한 파스빈더의 역사의식이다. 마리아 브라운이 남편 헤르
만과의 관계에서 표현하는 개인적 희생이라는 덕목은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저급한 형태이면
서 파시즘이 요구하는 것이기도 했다. 또한 영화의 후기, 아데나워에서 헬무트 슈미트에 이르는 
수상들의 초상화 몽타주가 음화로 재현되고 이것은 영화 도입부의 히틀러 초상화와 맞물려 역사
의 악순환을 지시한다. 이 장면들은 파시즘적인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아래 놓인 마리아 브라운
이라는 한 여성의 삶을 멜로드라마의 예정된 해피엔딩이 아닌 비극으로 몰아간 것임을 명시하면
서, '독일은 세계의 주인'이라는 공언 또한 파시즘의 연장선상에서 구축된 것임을 시사한다. 실
제로 이 영화를 만들기 2년 전에 일어났던 모가디쉬 하이재킹과 슐레이어 납치사건 그리고 바더
·마인호프 테러리스트 살해사건 등은 파스빈더가 &lt;마리아 브라운의 결혼&gt;을 우회하며 펼쳐보이
는 독일 현대사 읽기가 멜로드라마적 과장만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신독일 영화의 기수인 파
스빈더는 사실 1945년 이후를 신독일사회의 시작이 아니라 옛 독일의 연장으로 간주했던 셈이며
, 우파는 물론 좌파로부터도 지지받지 못했던 그의 역사적 페시미즘은 아직도 그 깊이를 짐작하
기 힘든 심연으로 동시대 영화 속에 남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국립
영상원 교수&gt;
<BR>#75. &lt;양철북 Die Blechtrommel&gt;(1979) / 감독: 폴커 슐렌도르프
&nbsp;
&lt;양철북&gt;을 본 사람은 누구나 떠올릴 만한 것들이 있다. 어린아이의 장난스런 목소리이지만 반
음조 쯤 높여져 신경질적으로 들려오는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 유리를 깰 수 있는 주인공 아이
의 높은 기성, 바다에서 건져올린 말의 머리에서 꾸역꾸역 나오는 뱀장어들, 연민을 느끼게 하
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로테스크한 난장이 연기자들. 자극적인 기억을 남겨준 이 영화의 시작은 
동화 같다. 황량하고 드넓은 감자밭에서 촌부가 군감자를 호호 불며 먹고 있다. 한 남자가 경찰
을 피해 달려오고 있고 그는 여자의 네겹 치마 속에 피신처를 구한다. 여자는 그를 깔고 앉아 
경찰을 따돌려주고 남자는 치마 속에서 바지앞춤을 여미며 나온다. 그렇게 잉태된 이가 주인공 
오스카의 엄마다. 오스카는 <BR>자신이 태어나게 된 유래를 아주 자랑스럽고 기고만장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BR>그러나 영화는 동화처럼 흘러가지는 않는다. 자궁 속에서부터 엄마를 동시에 사랑하는 두 남자
중 어떤 이가 자신의 아버지인지를 혼동하면서, 또한 그때부터 너무나 섬뜩한 어른의 눈빛을 한 
아이로 오스카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기이해져간다. 아이의 목소리도 이제는 히스테리컬하게 
들려온다. 그 아이는 세살이 되던 날 자신의 눈을 통해 보이는 세상의 모습, 특히 합법적인 아
버지의 눈을 교묘히 피해 성적 관계를 끈질기게 이어가는 얀 아저씨와 엄마, 그리고 그것을 알
면서도 방조하는 아버지의 행태에 실망하고는 더이상 자라지 않기로 맹세하고 계단에 몸을 던진
다. 그리고 그는 스물한살이 될 때까지 세살의 크기로 남아있게 된다. 얀 아저씨가 준 양철북을 
분신처럼 메고 다니며. 그가 성장을 멈춘 동안 마을에 나치가 등극하고 위세를 떨치고 그리고는 
패배한다. 엄마는 얀의 아이를 잉태한 채 자살하고, 아버지는 나치당원이 되고, 얀 아저씨는 폴
란드인이란 이유로 나치에 의해 죽음을 당한다. 오스카가 사랑한 동갑의 마리아는 아버지의 정
부가 된다. 또 독일군 위문공연에 나서는 서커스단에서 만난 난장이 여자를 사랑하고 그의 죽음
을 목격한다. 그리고 패전 뒤에는 아버지로 하여금 나치를 색출하는 소련군 앞에서 자신이 버린 
나치 배지를 다시 삼키게 함으로써 죽음으로 밀어넣는다.<BR>그런 세상에 오스카가 개입하는 것은 양철북을 두드리고 기성을 질러 유리를 깨는 것을 통해서
다. 엄마의 간통행위의 절정을 온동네 유리를 깨어가며 망치고, 나치전당대회를 왈츠를 추는 무
도장으로 바꾼다. 성적 열정과 정치적 엄숙함은 파괴되고 희화화해 버린다.<BR>귄터 그라스의 1959년도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독일역사에 대한 일종의 학습이다. 영화는 오
스카라는 비정상적인 아이의 시각이라는 우회도로를 통해 이 학습에 이르게 한다. 그럼으로써 
영화는 인류에 대한 최대의 죄악을 범한 이 역사에 대한 접근을 아주 기이하고 변태적인 것으로 
만든다.<BR>아버지로 대표되는 과거 독일을 죽이고 아버지가 남긴 정부와 자신의 아이일지도 모르는 동생, 
즉 아버지의 짐을 지고 어딘지 모를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오스카는 어쩌면 독일 전후세대의 자
화상이자 새로운 독일영화의 자기선언일지도 모른다.<BR>폴커 쉴렌도르프가 새로운 독일영화의 대표적 감독들과 공유하는 감성은 바로 이러한 역사에 대
한 해석에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벤더스나 파스빈더 또는 헤어초크 등에서 보이는 개성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그는 독일의 정체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추구하되 그 원천을 문학
작품에서 찾는다. 사회비판적이고 정치적인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서 이야기는 자극적이되 스타
일은 그에 흡족한 것이 못된다. 하지만 &lt;양철북&gt;은 칸에서도 수상하고 아카데미에서도 외국영화
상을 수상했으며, 새로운 독일영화 가운데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둔 드문 작품이다. &lt;필자: 주진
숙 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BR>&nbsp;
#76. &lt;성난 황소 Raging Bull&gt;(1980) / 감독: 마틴 스콜세지
&nbsp;
&lt;성난 황소&gt;는 마틴 스콜시스와 로버트 드 니로 짝이 만든 흑백 권투영화이자 뉴욕의 뒷골목 영
화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보통 권투영화는 아니다. 이를테면 이 영화에는 1970년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권투영화 &lt;록키&gt; 시리즈가 보여주는 노동계급 영웅의 성공을 위한 무대나 영웅주의자
의 무대로서의 권투 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콜시스는 권투영화와 전기영화를 결합시켜 
관객의 전통적인 기대들을 당황스러울 정도로 뒤집음으로써 할리우드 장르들의 모순들을 두드러
지게 하고 그것들을 철저하게 재고찰한다.<BR>거의 항상 그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뉴욕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분명 걷고 대화하기에 상
쾌한 우디 앨런의 뉴욕 거리와는 일정한 차이가 있다. &lt;비열한 거리&gt; &lt;택시 드라이버&gt; 그리고 &lt;
폐점 후&gt;처럼 &lt;성난 황소&gt;의 뉴욕은 거친 사람들, 복잡한 거리, 끊임없이 이어지는 싸움, 창녀
들의 장소 그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롤랑 바르트의 개념을 빌어온다<BR>면 '뉴욕적임'으로써 도시 그 자체와 거의 관계가 없고 오히려 거기 사는 많은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뉴욕에 대한 공유된 이미지이며 집단적인 기표이다. &lt;성난 황소&gt;의 뉴욕은 한때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제이크 라모타의 힘의 반영이며 혼란스러운 폭력의 장소이다.<BR>폭력은 미국영화에서 널리 사용되며 종종 오락의 기본 토대가 된다. &lt;성난 황소&gt;는 난폭한 권투
시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또한 가혹한 싸움들로 폭력을 전경화한다. 하지만 그 폭력은 매력적
이면서도 혼란스럽게 묘사되고 있다. 오히려 서사구조나 사실주의의 양식적 관습의 사용과 주인
공 라 모타의 마음의 풍경으로서의 표현주의적 현실을 통해 링 위에서나 가정 모두에 걸쳐 있는 
미국생활에 있어서의 폭력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BR>주로 제이크 라 모타의 실제 삶에 기초하고 있는 이 영화는 제이크의 삶을 지배하는 폭력의 상
징으로서 권투시합장면을 사용한다. 그는 권투시합이 없을 때도 말다툼, 협박, 구타 등이 아니
면 어느 누구와도 교제할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특히 두번의 결혼생활, 사실상 매니저 
역할을 하는 동생 조이와의 관계에서 보이는 질투와 폭력은 타인들에게 상처를 주는 동시에 그 
자신에게도 파멸만을 안겨 준다. 이런 행위들은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을 몰아내고 마침내는 비
만한 몸으로 마이크 앞에서 관객을 웃기는 삼류 배우로 전락한 그가 행사하는 자학적 폭력으로 
귀결된다. 이 영화에서 '오락'은 폭력 못지않은 처벌이고 희생이다. 그것은 고통을 주고받기 위
해 사용하는 육체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출구이며 상처를 입히기 위한 사적인 욕구를 공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다.<BR>영화 마지막 부분의 "한때 눈이 멀었지만 지금은 볼 수 있다"는 성경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제이크는 비판받을 인물이긴 하지만 동정어린 시선으로 그려지고 있다.<BR>젊은 제이크 라 모타와 늙은 제이크 라 모타, 긴장된 챔피언으로서의 제이크와 몰락한 삼류배우
로서의 제이크는 모두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에 기대고 있다. 그것은 단순하거나 편안한 성격을 
창조하기를 거부하고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이해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인물의 슈도(의사·疑似
)마조히즘에 대한 심리연구로서 탁월한 의미를 가진다. &lt;필자: 변재란/영화평론가&gt;
<BR>#77. &lt;메피스토 Mephisto&gt;(1980) / 감독: 이슈트반 자보
&nbsp;
자보 이슈트반(1938∼)은 1956년 반소봉기 이후 탄생한 새로운 헝가리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이
다. 그는 당시 동서 유럽을 휩쓸던 모더니즘과 작가주의에 크게 영향받았다.<BR>단편시대를 거쳐 1961년 &lt;백일몽의 시대&gt;로 장편영화 감독이 된 자보의 초기 영화들은 명백히 
트뤼포와 고다르를 반영하고 있으며 레네의 시간에 대한 실험을 적극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의 영화는 &lt;부다페스트 이야기&gt;(1976)를 기점으로 커다란 전환을 이룬다. 이때까지 시간, 몽
타주, 현실과 환상에 대한 파격적 형식실험에 치우쳤다면, &lt;신뢰&gt;(1979) 이후의 영화는 리얼리
즘 양식을 주된 서사구조로 채택하고 있다. 그는 늘 시대의 전형으로서의 개인에 초점을 두는데 
초기 영화가 비극적 상황조차도 낙관의 시선으로 감싸고 있다면, 후기의 그는 시대의 희생이 된 
인물들의 비극적 파멸에 동정어린 눈길을 보낸다. 서독과 합작한 &lt;메피스토&gt;(1980)는 자보의 후
기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서방의 대중에게 각인시킨 작품이다.<BR>클라우스 만이 1936년에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브레히트의 혁명적 연극에서 출발
해 나치즘의 선전원으로 전락하는 한 극예술가의 반생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회프겐의 모델은 
독일 현대연극사의 한쪽을 차지하는 구스타프 그륀트겐즈(1899∼1963)다. 함부르크 지젤 극단에
서 연기경력을 쌓기 시작해 나치 아래서 베를린 국립극장장을 지낸 그륀트겐즈는 1932년 상연된 
&lt;파우스트&gt;의 메피스토텔레스 역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프리츠 랑의 에서 지하세계의 
음흉한 두목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사실 토마스 만의 아들인 클라우스 만이 소설 &lt;메피스토&gt;를 
썼던 것은 구스타프 그륀트겐즈의 죄악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사적 감정이 개입
돼 있었다. 그의 여동생 에리카 만이 바로 20년대 그륀트겐즈의 동료이자 애인이었던 것이다.<BR>그러나 자보는 그를 매도하지는 않는다. 그는 회프겐이라는 인물에 내재된 욕망과 결핍과 두려
움 따위를 복합적인 관점에서 조명한다. 회프겐은 출세를 위해 베를린 극장장의 딸과 결혼하고 
나치 장군의 애인에게 접근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부를 해외로 도피시키고, 동료를 밀고하면서도 
반나치 활동으로 체포당한 친구 오토의 석방을 탄원하기도 하며, 나치에 협력하면 할수록 무대
에 더욱 광적으로 몰두하기도 하는 인물이다.<BR>자보는 그를 연민한다. 이 점은 끝 장면에서 분명해진다. 회프겐은 사방에서 스포트라이트가 비
춰지는 경기장에 서 있다. 그는 후원자인 괴링 장군의 커다란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를 뒤쫓는 
스포트라이트를 피해 달아나며 중얼거린다.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난 단지 배우일 뿐인데
…." 자보에 따르면 회프겐은 끝없이 스포트라이트(출세, 갈채, 명성)만 동경했다. 그는 그것에 
모든 것을 종속시켰지만 결국 바로 그것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는 물론 예술적 지성을 결여
한 인물이며 천박한 인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자보는 그가 특수한 개인이 아니라 시대 속에 놓
인 보편적 개인이라고 말한다. 이 인물상은 &lt;레들 대령&gt;으로 계승되지만 &lt;레들 대령&gt;과 비교하
면 자보의 관점은 분열돼 있다.<BR>자보는 연대기적 내러티브를 따르면서도 외적 상황은 리얼리즘으로, 내면세계는 표현주의적 미
장센으로 잡아내고 있다. 전자가 교훈극을 낳는다면 후자는 비극을 예고한다. 자보가 화려한 기
법으로 부각한 회프겐(클라우스 마리아 브란다우어)의 자기도취적 무대연기는 &lt;천국의 아이들&gt;
의 장 루이 바로처럼 관객을 흡인해 버린다. 비극이 너무 생생해지면서 교훈극을 상투적으로 만
들어버린 것이다.<BR>영화는 2차 대전 이전의 상황에서 끝나지만 그륀트겐즈는 전후에도 계속 활동했다. 그는 뒤셀도
르프와 함부르크 시립극장장을 지내며 뒤렌마트, 오즈번 등의 현대극을 연출했다. <BR>그러나 그가 다시 &lt;파우스트&gt;를 올렸는지는 알 수 없다. 자보의 해석대로라면 그는 결코 메피스
토텔레스를 다시 맡지는 않았을 것이다. &lt;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gt;
<BR>#78. &lt;욜 Yol&gt;(1982) / 감독: 일마즈 귀니
&nbsp;
일마즈 귀니의 삶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지난했다. 터키의 군사정권 아래서 불온서적을 발표한 
죄로, 수배학생을 은닉한 죄로, 그리고 반공주의자 판사를 저격 살해한 혐의로 그는 10년 이상
을 감옥에서 보냈다. 60년 첫번째 감옥행은 그의 배우생활의 시작을 갉아 버렸고, 70년대 초 두
번째 감옥행은 연출가로서 한창 활동하는 그를 옭아매었다. 그리고 곧이은 18년 형을 받은 세번
째 감옥행은 그로 하여금 감독으로서 특이한 위치를 차지하게 했다. 감옥에서 지속적으로 시나
리오를 집필하고는 조연출 혹은 다른 이를 통해 연출하게 하는 작업을 계속한 것이다. 80년 군
사정부가 그의 작품을 상영금지시키고 영화작업이 불가능해지자 그는 감옥을 탈출해 스위스로 
망명했다. 그리고 &lt;벽&gt;(82년)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47살의 나이에 84년 암으로 숨졌다.<BR>&lt;욜&gt;도 그가 감옥에서 시나리오를 쓰고 세리프 괴렌을 내세워 원격조정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망명지 스위스에서 그가 직접 편집한 이 영화에 82년 칸의 대상이 주어진 것은 어쩌면 작품 자
체보다는 귀니가 생명을 건 영화에 대한 열정 혹은 정치적 폭력과 억압에 맞선 영화의 힘 때문
이었을 것이다.<BR>영화는 실제로 귀니가 장기간 수감됐던 감옥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모범수로 일주일의 휴가를 
받은 다섯명의 인물에 초점을 두어 터키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고대하던 고향길이었지만 귀휴증
을 잃어버려 다시 구치소에, 그것도 그가 있던 곳보다 더욱 자유가 억제된 공간에 갇히는 인물, 
짧은 휴가 동안 친척들의 집요한 감시 아래서만 약혼녀와 데이트할 수밖에 없는 청년, 처남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죄로 처와 자식들을 처가에서 내주지 않아 결국은 함께 도망치나 처가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남자, 쿠르트족이란 이유로 밤이면 총성이 그치지 않는 고향에서 형의 죽음을 맞
이해야 하는 인물, 그리고 자신이 없는 동안 간통한 죄로 사슬에 묶인 채 살고 있는 아내를 가
문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단죄해야 하는 인물 등이 그들이다.<BR>이들을 통해 본 터키의 현실은 너무도 암담하고 희망없고 처연하기까지 하다. 군인들은 총을 들
고 차에 탄 남자들을 수색하고 신분증을 확인하며 민중들은 당연한 듯이 명령에 따른다. 기차 
안 화장실에서 부부 사이의 성적 욕구를 해소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승객들로부터 구타를 
당하는 부부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하다. 자신이 단죄해야 할 아내가 오히려 지쳐 죽기를 
바라며 허허로운 눈밭을 아들과 함께 걸어가는 사내의 모습도 있다. 또한 가족의 몰살을 피하기 
위해 형의 주검을 보고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는, 그리고 형수에게 관습에 따라 형수의 
남편이 됐다고 형의 죽음을 말하는 인물도 있다.<BR>이들을 억압하는 것은 현대 터키 속에 남아있는 봉건과 전통과 관습 그리고 군사정권이며 그 억
압에서 자유로운 개인이란 영화 어디에도 없다. 아니 자유란 것은 이 터키라는 곳에 부재하는 
단어로 보인다. 영화에는 어떤 영웅도 없으며 운명에 순응하는 무기력한 민중들만 있다. 여자들 
또한 전통과 관습 그리고 남성의 명분을 위해 존재하는 듯 그저 수동적이다. 영화는 그저 그들
을 보여주고 그들의 상황을 묘사한다. 그들의 조건은 정치적 목표의 좌절이나 절망에서 나온 것
이 아니다. 오히려 여자들과의 관계나 소수인종의 상황에서 인물들의 역정이 기인한다.<BR>이런 점에서 &lt;욜&gt;은 네오레알리슴의 새로운 작품 같기도 하다. 인물의 성격보다는 상황의 불가
피함이 극을 이끌고, 그에 대한 비판보다는 묘사로 그치면서 열려진 결말로 이끄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까운 과거를 엿본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영화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직접적인 묘사는커녕 매춘의 영화를 만들던 시절을 부끄럽게 한다. &lt;필자: 주
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
<BR>#79. &lt;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gt;(1982) / 감독: 리들리 스코트
&nbsp;
1982년, 리들리 스콧의 &lt;블레이드 러너&gt;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와 동시에 개봉돼 흥행경쟁
을 벌이다가 일주일 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관객들은 현실도피적인 <E·T>의 유토피아를 어
둡고 비관적인 &lt;블레이드 러너&gt;의 디스토피아보다 훨씬 더 좋아했다. 이 영화를 '저주받은 걸작
'의 명단에 올려놓은 이들은 컬트영화광들과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었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게 이 영화는 공간의 혼성모방(pastiche)과 시간의 정신분열증(schizophrenia)으로 특징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징후를 보여주는 일종의 교과서였다.<BR>2019년, 3차 세계대전의 후유증으로 검은 비가 내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이미지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혼성모방으로 채워져 있다. 세계 도처에서 이주해온 다양한 인종들, 코카콜라와 일본 여
자의 광고판, 용의 형상을 한 네온사인, 그리스·로마 시대와 바로크 시대의 건물, 마천루 위에 
자리잡은 고대 이집트의 피라밋, 로스앤젤레스는 또한 후기산업사<BR>회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햇빛이 없는 지상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과 지상에서 벗어
나 맑은 공기를 마시는 부르주아들, 편리한 문명의 이기 옆에 널려 있는 쓰레기, 자<BR>본주의 사회의 소비주의는 모든 것을 소모하고 황폐화시켜버린다. 25살에 늙은이가 되어버린 세
바스티안은 발전의 속도가 가속화해 시간과 공간의 압축현상이 일어나는 후기 산업사회와 닮아 
있다.<BR>복제인간 레플리컨트의 시간은 과거도 미래도 없고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 시간의 연속성을 
경험할 수 없고, 따라서 '나'라는 정체성을 가질 수 없는 레플리컨트의 상태는 정신분열증이며, 
그들은 자신의 기원을 찾아 지구로 온다. 과거의 기억과 역사를 증명해 주는 가장 중요한 단서
는 사진과 어머니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라는 슬로건으로 만들어진 레플리컨트는 진짜와 
가짜, 현실과 상상, 원본과 카피의 구분이 없어지는 단계로 진입하는데, 이것은 장 보드리야르
의 모조품과 원본 없는 복제(simulation)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BR>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해석에 성서에 대한 패러디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더하면, &lt;블레이드 
러너&gt;는 더욱 복잡한 텍스트가 된다. '자본가이자 과학자인 타이렐이 레플리컨트를 만들고 4년
의 수명을 주었다'는 내러티브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일정한 수명을 주었다'는 메타 내
러티브로부터 온 것이다. 레플리컨트 로이는 아버지 타이렐을 찾아서 수명을 연장해 달라고 요
구한다. '섭리는 변경될 수 없는 것'이라는 대답에, 로이는 타이렐의 눈(오이디푸스처럼)을 찔
러 죽인다. 로이는 레플리컨트를 제거하는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를 살려주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의 이미지로 죽어간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인간은 '인간은 무엇이며,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라는 르네상스 이후부터 계속된 논의를 확신에서 의문으로 바꾸어 놓는다.<BR>1992년, &lt;블레이드 러너&gt;는 감독판으로 다시 개봉되었다. 1982년판과의 차이는 데커드를 레플리
컨트라고 암시하는 부분이다. 그 결과, 낯선 공간에 타자를 던져 놓고 그들이 악전고투하는 이
야기를 계속해서 그려온 리들리 스콧의 영화계보에 따라서, 영화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더 
많아졌다. 타자 레플리컨트가 낯선 공간 지구에 찾아와서 패배하는 이야기로 영화를 읽는 것은 
포스트 식민주의를 논의하는 1990년대에 더욱 적합한 해석처럼 보인다. &lt;필자: 김경욱/영화평론
가&gt;
<BR>#80. &lt;향수 Sacrifice&gt;(1983) /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nbsp;
고향이나 조국을 떠난 예술가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은 특히 러시아인들에게 있
어 좀 유별나 보인다. &lt;향수&gt;에서 보이는 러시아 예술가의 향수병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에 이르기까지 처절하며 또 전혀 변함이 없다. 18세기에 실존했던 러시아의 음악가 파벨 소스노
프스키는 농노의 신분으로 지주의 후원을 받아 이탈리아에 음악유학까지 떠나지만 향수병을 극
복하지 못하고 귀향한 뒤 술에 절어 살다가 결국 자살하고 만다. 이 소스노프스키의 발자취를 
따르던 소련의 시인 고르차코프는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고향과 고향에 두고 온 아내, 자식들을 
끊임없이 떠올린다. 여기까지가 영화 속의 과거와 현재다. 그렇다면 미래는? 바로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삶이다. &lt;향수&gt;를 만든 직후 서방세계로 망명한 그는 이후 &lt;희생&gt;을 만든 뒤 암으로 사
망하고 만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소스노프스키), 현재의 영화속 현실(고르차코프), 미래의 현
실(타르코프스키)이 모두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즉, 소스노프스키가 곧 고르차코프이
며, 고르차코프가 또한 타르코프스키이다.<BR>영화란 `관찰'이라는, 평범하지만 잊혀졌던 진리를 깨우치며 인간의 근원적 고독과 사랑을 이야
기하는 타르코프스키는 &lt;향수&gt;에서 시간을 자신의 영화 속에 가두고 공간을 재구성한다. 그래서 
결코 어떤 상징적 의미로도 해석되기를 거부했던, 그의 영화 속의 미장센은 가장 강렬한 영상언
어이자 동시에 `타르코프스키풍의 영화'(Tarkovskian film)를 규정하는 절대 요인이 된다. &lt;향
수&gt;에서는 물과 물로 상징되는 `향수'와 `희생'의 의미화가 두드러진다. 타르코프스키의 뇌리 
속에 고향은 비가 자주 구성지게 내리는 곳으로 각인돼 있다. 그래서 &lt;향수&gt;에서도 비나 물은 
고르차코프의 향수를 일깨우는 중요 모티브로 기능한다. 그런데, 이 물은 불과 만나면서 인간의 
이기주의를 꾸짖는 고귀한 희생정신의 모티브로 발전한다. 고르차코프가 투스카나 언덕에서 만
난 광인(그리고 성인인) 도메니코는 사람들에게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로마의 
광장에서 스스로를 불사르며, 이 순간 고르차코프는 도메니코와 약속한 대로 말라버린 야외온천
탕에서 촛불을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나른다. 그리고 영화는 이탈리아식 성당에 둘러싸인 
러시아의 농가(집 앞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고르차코프/타르
코프스키가 타국에서 느끼는 향수임과 동시에 고르차코프와 도메니코의 연대의식을 의미한다. 
이처럼 불로 상징되는 `회생'과 `구원의식'은 그의 다음 작품이자 유작인 &lt;희생&gt;으로까지 이어
진다. 이 고르차코프와 도메니코의 연대는 비범한 첫 만남에서부터 비롯되는데 고르차코프가 도
메니코의 집안에 처음 들어설 때 물이 고여있는 빈 창고 같은 공간에서 그는 갑자기 고향의 산
하를 본다. 이 독창적인 공간구성방식은 `시간의 개인적 흐름'과 일상적 삶에서 비롯된 꿈과 환
상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데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즉, 그의 공간구성은 그의 영화 속
에서 언제나 중요한 배경이 되는 자연, 그 자체의 거대한 세계와 타르코프스키 자신의 가슴과 
머리 속에 각인돼 있는 기억과 환상의 공간이 혼합되는 독특한 세계인 것이다.<BR>영화사상 이렇게 독특한 시공간을 보여준 감독은 없었다. 이러한 그의 영화세계는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못했지만 아이러니칼하게도 그의 영향을 받은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 의해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덴마크의 라스 폰 트리에, 뉴질랜드의 빈센트 워드, 영국의 마이클 래드퍼드, 그리
고 러시아의 콘스탄틴 로푸샨스키, 알렉산드로 카이다노프스키, 알렉산드로 소쿠로프에서 한국
의 배용균에 이르기까지 80년대 이후의 세계영화를 이끄는 주요 감독들의 면면을 보면 타르코프
스키는 분명 80년대 이후 새로운 영화의 스승으로 기록될 것이다. &lt;필자: 김지석/부산예술대 교
수·영화학&gt;
<BR>#81. &lt;황토지 黃土地&gt;(1984) / 감독: 첸 카이거
&nbsp;
&lt;황토지&gt;는 현대 중국영화의 분기점을 이루는 '시대의 영화'이다. 1930년대부터 문화혁명 직전
까지 중국 영화계의 지도적 존재였던 문예활동가 시아옌은 문혁기의 영화에 대해 한마디로 '무'
라고 표현했다. 중국영화가 문혁의 상처에서 벗어나 정상적 궤도에 진입한 것은 1978년 무렵이
다. 이 때의 흐름은 숱한 정치투쟁의 상처와 회한을 고발한 감상적인 상흔영화들이 주도하였다. 
셰친의 &lt;천운산 이야기&gt;가 대표작이다. 그러나 동시에 한 쪽에서는 "셰친의 영화를 타도하자"는 
외침이 나오고 있었다. 그 주인공들인 첸카이거와 장이모는 1978년 다시 문을 연 베이징 영화학
교의 셰친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셰친은 진정 새로운 중국영화의 탄생을 위한 
변증법적 부정의 대상에 지나지 않았다.<BR>&lt;황토지&gt;는 그들의 슬로건이 치기가 아니었음을 입증해 주었다. 1984년 로카르노 영화제와 이듬
해 홍콩영화제에서 &lt;황토지&gt;를 본 사람들은 그 압도적인 땅의 구도 앞에서 경악했다. 그것은 중
국영화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지금 중국의 제5세대 영화라고 부르는 것
이 탄생했다. 열서너살에 문혁을 만나 난폭한 홍위병이 되었던 세대, 이윽고 믿었던 혁명에서 
배반당한 채 도시에서 농촌으로 하방되었던 세대, 그러나 온몸으로 중국의 현실을 체험했던 세
대, 그럼으로써 혹독한 현실체험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을 획득한 세대가 그들이다. 아버지를 고
발했던 홍위병이었던 첸카이거가 &lt;황토지&gt;를 만들기까지의 역정은 인생의 장정으로 표현할만한 
드라마로 차 있다.<BR>그렇지만 정작 &lt;황토지&gt;에는 그러한 드라마가 없다. 1930년대 항일전 시기 황하 주변의 고원 지
대를 무대로, 민요채집을 위해 온 팔로군 병사와 전통적 농민 소녀의 교차점을 그린 이 영화는 
전통적인 사회주의 중국영화의 경계를 박차고 나가버렸던 것이다. 병사는 와서 얼마간을 머물고 
떠난다. 소녀는 병사에게 옌안의 해방된 생활 이야기를 듣지만 곧 돈에 팔려 시집을 간다. 병사
가 다시 왔을 때 소녀는 떠나고 없다. 그는 소녀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그것을 현실화시켜 주지
는 못했다. 소녀는 시집살이를 견디다못해 옌안으로 도망가기 위해 강을 건넌다. 그러나 첸카이
거는 소녀가 무사히 강을 건넜는지 빠져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BR>영화 속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팔로군 병사가 마을을 떠날 때, 소녀는 자신도 옌안으로 데려가 
달라고 한다. 병사는 군에는 규율이 있으며 자신은 규율에 따라 허락을 받은 다음 다시 소녀를 
데리러 오겠다고 말한다. 소녀는 이렇게 되묻는다. 그 규율을 바꿀 수 없느냐고. &lt;황토지&gt;는 전
통적인 사회주의 중국영화의 미학과 내용의 두 측면에서 바로 이 규율을 바꾸려 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BR>특히 이 점은 형식적 측면에서 탁월하게 표현되었다. 첸카이거와 촬영기사 장이모는 전통적 농
민의 삶과 인민해방군의 접점, 민족해방과 여성해방의 모순을 광대하고 원근감이 깊은 화폭, 지
루하리만치 호흡이 긴 화면, 토속 민요가 어우러진 강렬하고 독특한 시적 방법으로 담아내었다. 
&lt;황토지&gt;는 온갖 종류의 모호함으로 가득한 작품이다. 첸카이거는 그것이 현실의 모습이며 인간
의 삶이며 최종적으로는 인간의 주체적 선택의 문제가 남는다는 답변을 내놓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무책임하고 지식인적이라기보다는 민중의 생명력에 대한 체험적 믿음에 기반한 것이었다
. &lt;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gt;
<BR>#82. &lt;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gt;(1984) / 감독: 짐 자무쉬
헝가리 아가씨 에바가 뉴욕에 사는 건달 친척 윌리의 집에 찾아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lt;천국보다 
낯선&gt;은 착상이 도전적이다. 이 영화에 담긴 미국 사회의 풍경은 아메리칸 드림,모든 것이 넘쳐
나는 풍요의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 이 흑백 장편영화는 삭막하고 스산하기조차 한 미국을 보여
줬다. 그리고 이 영화로 청년 감독 짐 자무쉬는 84년의 칸 영화제 신인감독상과 로카르노 영화
제 황금 표범상을 받았다. 그는 단숨에 뉴욕 독립영화계의 총아로 떠올랐다.<BR>&lt;천국보다 낯선&gt;은 미국영화지만 사실 미국영화라기보다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 유럽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한 화면이 한 장면을 이루는 길게 찍기, 시선의 비상한 집중을 요구하는 
고정된 카메라 스타일, 서로 진정한 의사소통에 이르지 못하는 인간관계, 여기저기 떠돌지만 정
신적으로 건조한 삶의 조건, 긴 페이드 아웃의 화면전환이 주는 형식의 단절감 등은 무엇보다 
대리만족을 주는 이야기체 영화를 중시했던 미국영화의 전통과는 별로 상관없다.<BR>자무쉬는 빔 벤더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로베르 브레송 등의 유럽 영화감독과 일본 영화의 
대가 오주 야스지로 등의 영화로부터 영감을 빌려와 황폐한 미국 생활의 이미지를 재구성했다. 
영화 표현의 뿌리를 여러 혈통에서 빌려온 셈이다. 그래서 곧잘 '포스트모던'이란 수식어가 붙
는다. <BR>그러나 자무쉬 영화의 새로움은 유럽영화에서는 이미 상투화한 진술을 미국의 상황으로 옮겨놓
은 낯설음에서 온다. 예를 들면 에바와 에바의 사촌 오빠 윌리가 식탁에서 TV 디너에 관해 대화
하는 장면같은 것이다. "티브이 디너 안먹을래?" "안먹어, 배 고프지 않아." "왜 티브이 디너라
고 부르지?" "그냥... 티브이를 보면서 먹으니까... 텔레비전말이야." "텔레비전이 뭔지는 나도 
알아." "그 고기는 어디서 난거야?" "뭐?" "그 고기는 어디서 난거야?" "쇠고기지 뭐." "쇠고기
야? 고기같이 보이지 않는데." "휴... 상관하지마. 어쨌든 여기선 이런 걸 먹는다구. 고기, 야
채, 디저트, 그리고 설거지할 필요도 없어." 이런 식의 반복된 대화의 연속과 단조로운 양식은 
황폐한 미국생활을 암시하는 놀라<BR>운 공명을 불러일으킨다.<BR>자무쉬는 원래 이 영화의 1부인 &lt;신세계&gt;를 단편영화로 발표했었다. 영화가 평판이 좋자 자무쉬
는 두 단락을 더 붙여서 장편영화로 공개했다.<BR>그러나 1부 '신세계'에 이어 추가된 '일년 후'와 '천국'은 1부의 부연설명에 지나지 않는다. 주
인공들은 뉴욕에서 클리블랜드와 플로리다로 옮겨 다닌다. 이 여정은 야만의 땅에 문명을 심으
며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이 걷던 신화적인 여정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의 장소이동 모
티브에는 더 이상 상징적인 의미가 없다. 클리블랜드로 가는 차 안에서 주인공들은 어딜 가나 
다 똑같다고 중얼거린다.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저 천국보다 낯선 곳일 뿐이다.<BR>자무쉬는 그러나 &lt;천국보다 낯선&gt; 이후에 만든 영화들에서 &lt;천국보다 낯선&gt;의 신선함에 맞먹는 
결실을 거두지는 못했다. 형식이 매너리즘에 빠져버린 것이다.<BR>그러나 그렇더라도 그는 종래의 미국적인 이미지를 뒤집는데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재미있
는 것은 이 관심이 모방과 짜집기와 재구성이라는 80년대 이후의 양식적 경향 속에서 추구된다
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아주 미국적인 감독이다. &lt;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lt;씨네21&gt; 기
자&gt;
<BR>#83. &lt;마기노 마을의 이야기&gt;(1985) / 감독: 오가와 신스케
영화가 민중의 삶 깊숙이 침투하여, 일상을 함께 하고 희망과 미래, 그리고 투쟁의 현실을 화면 
가득 담아내는 그런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해낸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인지는 모르지
만, 영화 1백년의 역사 속에서 우린 그 전형적인 인물들을 가끔 만날 수 있다. &lt;날으는 네덜란
드인&gt; 요리스 이벤스는 카메라와 한몸이 돼 세상을 대상으로 이를 실천했고, 장 뤼크 고다르는 
그 이론을 발명했다. 그리고 이들과 지구 반대편에 살던 한 동양인이 이들의 양분을 섭취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오가와 신스케. 수은중독에 의한 대표적인 공해병 미나마타 병에 관한 다큐
멘터리 연작을 20여년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유명한 노리아키 스치모토 감독과 함께 70년대 일
본 다큐멘터리영화를 이끈 오가와 신스케 감독은 흔히 일본농민의 영화동지라 불린다. <BR>70년대 일본 다큐멘터리영화의 부흥과 성장은 60년대 이후 일본 좌파운동의 성장과 그 맥을 같
이한다. 오가와 신스케 감독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1969년 통신대학생들의 대학 자주화투쟁에 
관한 기록영화 &lt;청년의 바다&gt;,그리고 학생운동권 지도부의 1년간의 투쟁과 패배를 기록한 &lt;압살
의 숲&gt;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1967년 오가와 감독에게 새로운 소식이 전해진다. 
도쿄 근처의 조용한 농촌인 나리타에 새 공항을 세운다는 정부의 방침을 그 지역 농민들이 반대
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새로운 투쟁이 진행중인 나리타로 자신의 무기인 카메라를 들고 간 오가
와 감독은 투쟁하는 농민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다. 흔히 오가와 감독의 대표작이며 &lt;
산리주카 7부작&gt;이라고 불리는 나리타 공항 건설 반대 투쟁의 기록영화가 바로 그것이다. 1968
년에 시작해 1977년에 시리즈를 완성한 오가와 감독은 그 마지막편이라 할 수 있는 &lt;헤타부락&gt;
편에서 자신의 고민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제 투쟁이 있는 곳에 카메라가 가는 것만이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 일상속에 카메라가 침투해 함께 시간을 기록해야 한다." 오가와 감독은 투쟁하
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며 왜 그들이 농사짓는 것을 사랑하며, 자연의 섭리를 중요시하고 있는지
를 고민하게 됐다. 1977년 오가와 신스케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농촌으로 가자'. 조감독 
한명에게 그때까지도 끝나지 않은 나리타 투쟁에 관한 지속적인 작품을 만들 것을 지시하고 오
가와 신스케 감독은 야마가타 지역의 마기노라는 마을로 가 집을 짓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영화 100년의 역사속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영화 &lt;천년을 새기는 해시계 - 
마기노 마을의 이야기&gt;가 만들어진다.<BR>&lt;마기노 마을의 이야기&gt;는 오가와 감독의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나는 오가와 감독입니다. 이
곳은 마기노 마을이고 우린 이곳에서 살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화면 가득 논이 보
인다. 해가 뜨고 벼가 자란다. 오가와 감독은 농민의 삶속에 자연과 과학이 함께 있음을 잘 알
고 있었다. 그는 농민을 사랑했고, 스스로가 농민이기를 원했고, 그래서 벼가 자라는 그 과정도 
중요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는 과학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벼가 자라는 과정을 
현미경 카메라와 저속촬영으로 기록해낸다. 그의 영원한 동지였던 촬영감독 다무라는 1년간 같
은 장소에서 저속촬영으로 벼가 자라는 과정을 매일 15분 간격으로 촬영해낸다. 농사를 짓고 자
연과 싸우며 벼를 생산해내는 노동의 시간과 공간을 기록한 영화 &lt;마기노 마을의 이야기&gt;는 영
화를 하는 사람들에겐 민중의 일상 속에 영화가 어느정도까지 침투할 수 있는가를, 그리고 관객
에겐 농민의 생산하는 시선을 일깨워 준다. "나에게 있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일본의 농민들
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쓰는 것입니다." 오가와 감독의 말이다. &lt;필자: 변영주/영화감독&gt;
<BR>#84. &lt;녹색광선 Le Rayon Vert&gt;(1986) / 감독: 에릭 로메르
&nbsp;
이 영화에선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중년의 여자도, 그리고 주인공인 20대 여성 델핀도 녹색광선
에 대해 말하고 생각한다. 태양의 적광이 수평선 아래로 잠기면 하늘과 바다에 잠깐 녹색 띠가 
둘러지는데 이 녹색광선이 빚어내는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삶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 된다. 
물론 이 녹색광선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삶에서 그리 많지 않다.<BR>그 진실의 아름다움과 만나기 위해 델핀은 긴 바캉스 동안 해변을 따라 우울한 소요를 거듭한다
. 하지만 에릭 로메르의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 &lt;녹색광선&gt;에는 그 어떤 과잉이 없다. 델핀의 우
울은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 만큼의 무게이고 마지막 진실을 확인하는 순간도 드라마틱하지 않다
. 삶의 표면을 이야기하다가도 얼핏 그 심층을 한번 돌아보게 하고 또 불확정적 사건에 대해 이
야기하면서도 그 사건을 만든 필연적 계기들을 영화 속 인물들의 정서와 감정에서 찾도록 하는 
에릭 로메르의 영화들은 '문학적'이라고 알려져 있다.<BR>사실 그의 배우들은 문어체의 말을 많이 하며 또 철학개론이나 문학개론 시간 외에는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는 내용의 이야기들을 주고받는다. 게다가 영화 속에선 주로 문학작품들이나 철학책
들이 언급된다. &lt;녹색광선&gt; 역시 랭보의 시로 시작해 쥘 베른을 거쳐가며, 델핀은 소설을 읽다
가 마침내 자신의 꿈의 연인을 만난다. 한 평자는 그의 영화들에서 프루스트와 파스칼, 발자크, 
헨리 제임스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BR>하지만 그의 영화는 문학적인 것만큼 또 영화적이다. 빛의 움직임, 특히 일광과 석양을 인물의 
심상에 맞추어 잡아내는 솜씨나, 배우들의 감탄할 만한 즉흥 연기 그리고 프랑스 도시들과 해안 
지방의 풍광을 풍요롭게 활용하는 것 등은 분명 문학적인 경지를 넘어선다. 또한 그의 영화는 
무거운 듯하면서도 가볍고, 속물적인 듯하면서도 질박해서 주인공들의 지적 허영은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일상의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BR>에릭 로메르는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로 시작해 흔히 '도덕 이야기'로 묶이는 여섯편의 영
화 &lt;모드 집에서의 하룻밤&gt;(1969), &lt;클레르의 무릎&gt;(1970), &lt;오후의 클로에&gt;(1972)의 사이클이 
끝난 뒤 클라이스트의 소설과 중세에 쓰여진 글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후 로메르는 1980년 &lt;비
행사의 아내&gt;라는 영화로 '코미디와 격언' 시리즈를 시작하는데 &lt;녹색광선&gt;(1986)은 그 시리즈
의 한 편이다.<BR>파리에서 비서로 일하고 있는 델핀은 바캉스를 맞아 당황한다. 남자친구가 있긴 하지만 소원해
진 데다 가족들은 그리스 등으로 떠나고 친구의 빈 별장으로 휴가를 가보지만 휴양지의 지나친 
가벼움에 점점 더 소외감만 느낄 뿐이다. 하지만 우연히도 그는 녹색광선에 대해 듣게 되고 또 
거리에서 자신의 운명을 일러주는 듯한 카드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녹색광선을 함께 볼 
남자를 기다리게 되는데, 프롤로그에 인용된 랭보의 시처럼 마침내 그 시간은 오고 관객들은 델
핀의 가슴 설레는 소망 충족에 함께 하게 된다.<BR>이미 몇가지로 우상화된 영화라는 매체의 성격을, 심각하고 무거운 스타일을 동원하기보다 이렇
게 깜찍하고 귀여운 영화를 이용해 바꾸는 작업은 한층 더 어려운 일일지 모른다. <BR>에릭 로메르는 60∼70년대 영화사에 '영화적 문학성'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것을 소개했고 그곳
에서 18세기와 20세기는 매우 역설적이고 희극적인 방식으로 만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 만남 속
에서 유럽 영화의 우상적 얼굴, 즉 고급 예술로서의 문예 영화는 매우 명랑한 모습을 띠게 됐다
. 그래서 예술 영화관을 나오며 반드시 철학자의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게 됐던 것이다. &lt;필자: 
김소영/영화평론가·영상원 교수&gt;
<BR>#85. &lt;메이트원 Matewan&gt;(1987) / 감독: 존 세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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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미국 독립영화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존 세일즈. 소설가이자 저예산 상업영화의 시나리
오 작가이며 80년에 &lt;세코서스 7인의 귀환&gt;이라는 영화로 데뷔하면서 미국영화사에 등장했다. 
그러나 87년에 &lt;메이트원&gt;을 만들 때까지 그는 독창성은 있으나 영화적 수완은 뛰어나지 못한 
감독 쯤으로 평가받았다.<BR>&lt;메이트원&gt;은 20년대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탄광마을 메이트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학살사건을 영
화로 만든 것이다. 미국판 '파업전야'라 부를만 하다. 레이건과 람보가 판을 치던 80년대에 이
건 꽤 높이 평가해줄만한 작업이었다.<BR>광산노조가 아직 결성되지 않은 20년대. 메이트원에서 파업이 일어난다. 광산사장은 이탈리아 
이민과 흑인들을 모집해 구멍난 노동력을 메우려고 한다. 그렇게해서 메이트원에 흘러들어온 비
조합원 노동자 중에는 쿠퍼도 끼어 있다. 그러나 그는 사실 세계산업노조에서 파견된 노동운동
가다. 쿠퍼는 메이트원의 노동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독려한다.<BR>쿠퍼는 사용자측에 매수된 다른 노조원의 모함을 받기도 하고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와 다른 조합원들의 노력으로 노조는 점점 강해지고 파업은 최고조에 달한다. 이<BR>런 와중에 조합원 힐라드가 석탄을 훔치려다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사용자측은 볼드윈 
탐정사무소를 통해 사람을 사들이고 다음날 마을에는 피비린내나는 총격전과 학살이 벌어진다.<BR>&lt;메이트원&gt;은 노조 결성 투쟁기에 사람들이 품고 있던 완벽한 공동체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이 잘 
포착돼 있는 영화다. 그러나 감독 세일즈의 의도는 너무 눈에 보이게 드러난다. <BR>낭만적인 분위기로 미화된 등장인물의 성격화나 멜로 드라마적인 과장이 때로는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이 영화가 실제 역사에 기반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영화는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변질된 20세기 미국 노동조합의 역사를 직설화법으로 담았다. 노조가 결성되고 
투쟁이 시작되고 많은 사람이 죽어갔어도 &lt;메이트원&gt;에는 사람들이 그토록 바랬던 노동자들의 
유토피아가 이룩되지 않는다.<BR>&lt;메이트원&gt;의 촬영은 베테랑이었던 하스켈 웩슬러가 맡고 있다. 탄광촌 마을을 잡아낸 풍경중에 
웩슬러가 찍은 화면의 아름다움에 필적할 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잔인한 현실과 아름다운 풍경
의 부조화는 영화의 비판적 진술에 묘한 무게를 싣는다. 세일즈는 웩슬러의 촬영술에 힘입어 공
동체를 향한 감상적이면서도 이상화된 동경을 담아냈다. 공동체 정서를 곧잘 화면에 담아 냈던 
존 포드 감독의 서부영화로부터 세일즈가 많이 배웠음을 알 수 있는데, 포드의 서부영화와 비교
해도 쳐지지 않는다.<BR>세일즈가 메이트원과 인연을 맺은 사연은 오래 전부터다. 세일즈가 웨스트 버지니아 지방을 무
전 여행할 적인 60년대에 이 지방 사람들에게 광산전쟁과 메이트원 학살 사건에 관한 얘기를 들
었다고 한다. 나중에 좀 더 자료 조사를 한뒤 세일즈는 &lt;노조의 권리&gt;라는 소설을 썼고, 거기에 
담지 못한 부분을 영화로 만들었다. 이 영화는 8년동안 준비해서 4백만달러의 예산으로 만들었
다. 그리고 결실을 톡톡히 맺었다. 평자에 따라서는 &lt;메이트원&gt;을 80년대 미국 독립영화계의 최
고작으로 치기도 한다. 그리고 바다 건너 우리 나라에서도 &lt;메이트원&gt;은 노동운동 현장이나 대
학가에서 심심치 않게 비디오로 상영하는 '컬트'가 됐다. &lt;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lt;씨네21&gt; 
기자&gt;
<BR>#86. &lt;붉은 수수밭 紅高粱&gt;(1988) / 감독: 장 이모우
&nbsp;
1985년 천카이거의 &lt;황토지&gt;가 신중국영화의 탄생을 처음으로 외부세계에 알린 이후 장이머우의 
1988년 작 &lt;붉은 수수밭&gt;은 전세계가 신중국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기폭제가 됐다. 서구의 관
객들은 이국적이면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구성에 매료됐다. 장이머우는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를 허물고자 했고, &lt;붉은 수수밭&gt;은 그 두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셈이었다
.<BR>&lt;붉은 수수밭&gt;은 화면에 등장하지 않는 손자의 내레이션을 통해 20세기 초에서 일본의 침략기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한 벽지마을에 살던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도입부분에서부터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준다. 쉰살이 넘은 양조장집 주인 문둥이에게 팔려
가는 주얼(공리)의 붉은 가마와 웃옷을 벗어제친 건장한 가마꾼들의 춤과 노래는 시청각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을 전달함과 동시에 가련한 여인의 운명, 건장한 남성에 대한 주얼의 은근한 눈길
, 중국의 봉건적 폐습 등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프롤로그로 확실한 인상을 남긴다.<BR>중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것, 장이머우 영화의 성공의 핵심이다. 이를테면 술은 흔히 중국
인들에게 시적이며 낭만적인 이미지로 비친다. 이 작품에서도 고량주는 조부의 낭만적이고 남성
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모티브로 작용하며, 병균을 물리치는 약의 역할과 일본군에 맞서는 폭탄
의 역할까지도 한다. 즉, 고량주는 정열과 낭만, 생산, 활력, 단결, 의리의 상징이다. 서구인들
은 여기서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인간 정신의 재현이나, 바흐친의 '카니발'을 떠올렸을 것이다. 
특히 사흘간이나 술독에 빠져 노래를 부르던 조부의 모습에서 낭만과 관습적이고 억압적인 도덕
적 굴레로부터의 탈출을 보았을 것이다.<BR>&lt;붉은 수수밭&gt;은 분명 정치적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일면 30년대 중국의 좌파영화와 유사한 모
습을 보인다는 점은 유의할 필요가 있다. 30년대 중국의 좌파영화가 주로 그랬듯이 이 작품은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가부장제로부터의 여성해방, 육체의 해방을 이야기한다. 반일항쟁의 
이야기는 다소 도식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주얼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연관지어 보면 달리 
읽을 수도 있다. 주얼은 전래의 전통적 여인상에서 벗어나 있다. 그는 양조장 주인이 살해된 뒤 
양조장 운영을 책임지는 반(半)모계사회의 가장이 되며, 일본군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라오한의 
복수를 이끄는 지도자이기도 하다. 장이머우는 이런 개척적이고 능동적인 여인상과 함께 건장하
며 낭만적인 남성상을 제시한다. 대부분 웃옷을 벗고 등장하는 조부와 양조장 일꾼들의 모습은 
도덕적 틀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하늘과 땅의 도리를 알고, 또 자유롭다. 이들의 모
습은 일본군의 제복과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이들의 건장한 신체는 오늘날 은밀해지고 심리적 
문제로 치부되는 '육체'를 과거의 자유로운 집단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의미를 지닌다.<BR>이처럼 내레이터 조부모의 개인적 경험은 곧 집단의 경험이 되고, 동시에 중국역사의 알레고리
가 된다. 그래서 이 영화는 비정치적이면서도 역사의 흔적이 배어있고, 전통적이면서도 동시에 
비전통적이다. 그것은 전적으로 장이머우의 연출능력과 의도 덕분이다. 전통과 새로움의 조화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lt;붉은 수수밭&gt;은 더욱 돋보인다. &lt;필자: 김지석/부산예술학교교수·영
화학&gt;
<BR>#87. &lt;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gt;(1989) / 감독: 스파이크 리
&nbsp;
뉴욕의 하워드 비치에서 한 흑인 청년이 살해되었다. 범인은 젊은 백인 청년들. 인종이 다른 것
을 문제삼아 살인한 '증오범죄'의 전형적인 경우였다. 이미 &lt;그 여잔 그걸 가져야만 해&gt;라는 영
화로 블랙 아메리칸 시네마의 새 장을 열었던 스파이크 리는 &lt;똑바로 살아라&gt;라는 논쟁적 영화
로 이 사건에 즉각적으로 개입했다.<BR>이탈리아계, 푸에르토리코계, 한국계, 유대계들이 모여 사는 브루클린의 베드퍼드 스타이베산트 
지역.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탈리아계 미국인 살이 경영하는 피자가게와 한국계가 주인인 식료
품점 주변 동네에 살고 있는 각기 다른 인종적 배경을 가진 주민들이 24시간 동안 벌어지는 인
종전쟁에 말려든다.<BR>영화는 일거리를 찾지 못한 채 무리를 지어 거리를 배회하는 흑인 청년들과 푸에르토리코인들, 
역시 하릴없이 술만 마시는 노인들로 어수선한 거리 풍경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거기서 인종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적 형식이 새롭다. 기울어진 카메라 앵글과 도발적 원색 그리고 역동적으
로 사용된 랩과 팝송에 일종의 펑크스타일이 부분적으로 가미된다. <BR>다큐멘타리적 스타일과 펑크적인 것이 결합된 이 새로운 형식은 젊은 관객들에게 인종갈등문제
를 전달하기위한 효과적인 장치로 보인다.<BR>피자집 종업원 무크로 출연한 이 영화의 감독 스파이크 리는 일종의 메신저처럼 각기 다른 인종
의 입장을 피자를 배달하듯 관객들에게 전한다. 그 전언에 따르면, 증오범죄적 태도로부터 자유
로운 인종은 없다. 백인경찰, 흑인계, 이탈리아계, 한국계 모두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고 저주한
다.<BR>저중산층 유색인종들이 백인중심주의가 만들어낸 인종차별이라는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피라미드
식으로 재생산하는 셈인데, &lt;똑바로 살아라&gt;에서 흑인과 이탈리아계의 대립은 결국 방화, 구타 
그리고 살인으로 치닫는다. 물론 이 사건은 누적된 인종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미지'가 그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살의 피자가게에 붙어있는 사진들이 알 파
치노 등 이탈리아계뿐임을 발견한 흑인청년 고객은 살에게 말콤 엑스나 마틴 루터 킹과 같은 흑
인 영웅의 사진으로 바꿔 붙이라고 요구한다. 이에 대한 살의 거절이 피자가게에 대한 보이콧과 
파괴로 이어진다. 영화의 종반부, 타버린 벽 위에 붙여지는 말콤 엑스와 킹의 사진은 이제 이미
지를 지배할 수 있는 힘을 흑인들도 가져야 함을 의미한다.<BR>이후 대서사극 &lt;말콤 X&gt;(1992)가 말해주듯 이 영화는 사실 이중적 효과를 노리고 있다. 즉 인종
갈등의 현장을 역동적으로 재현함과 동시에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도 이제 영화나 사진과 같은 재
현양식을 조정하고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야 한다는 영화감독다운 제안을 하고 있다는 말
이다. 그것은 결국 이미지 재현의 형식과 내용을 결정짓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싸움이기
도 하다.<BR>실제로 스파이크 리의 작업 이후 존 싱글톤, 마리오 반 피블스, 어네스트 디커슨과 같은 흑인 
감독들이 인종들 간의 그리고 흑인들 내부의 갈등을 아프리카계 미국 젊은이들의 하위문화적 코
드들을 전유해 강력하게 재현하고 있다. 또 레슬리 해리스, 줄리 대시와 같은 흑인여성 감독들
은 여기서 더 나아가 인종문제와 여성문제를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BR>&lt;필자: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gt;
<BR>#88. &lt;비정성시 悲情城市&gt;(1989) / 감독: 허우 샤오시엔
&nbsp;
이제는 1996년, 89년작 대만영화 &lt;비정성시&gt;를 다시 본다. 베니스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 2천
년대 거장의 하나인 허우샤오시엔 감독? 세계 최고의 영화중 하나? 줄거리조차 이해를 못하겠다
? 하지만, 지금 이 영화에 쏟아지는 기존의 찬사 혹은 몰이해는 중요하지 않다. 자잘한 분석은 
이제 그만, 시간이 없다. &lt;비정성시&gt;가 주는 마음의 칼을 찾아라!<BR>이 작품은 1945년 일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자막으로 문을 연다. 1948년 중국에서 패한 장개석
이 대만에 정부를 설립했다라는 자막으로 문을 닫는다. 그렇다, 이 영화는 역사로 문을 연다. 
우리 역사를 연상시키는 대만 현대사가, 제주 4·3항쟁을 연상시키는 2·28항쟁의 추이과정이 
배경에 깔려있다. 깔려있다고?<BR>&lt;비정성시&gt;는 가족의 역사를 다루기 때문이다. 영화의 문 안에는 인간의, 한 가족의 삶이 도도
하게 흘러간다. 드라마의 중심에는 문씨 집안 형제의 3대에 걸친 슬프고도 꿋꿋한 가족사가 서 
있다. &lt;비정성시&gt;의 역사성과 생명력은 역사에서 출발하여 인간을 그리지 않고, 먼저 인간을 묘
사하면서 그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이 드러나게 하는 과정에 있다. 감독 특유의 서정적이고도 호
흡이 긴 카메라 리듬, 생략적인 심리묘사와 사건 전개, 음향 방식 등은 자신이 체험한 대지의 
인간을 온 몸으로 기록하려는 감독의 시선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된다. 진정한 인간주의야말로 역
사성, 서정성과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 &lt;비정성시&gt;의 자궁 속에서 잉태된 감동이요, 가르침이
다.<BR>필자와 &lt;비정성시&gt;의 인연은 깊은 셈이다. 영화를 본 감동 때문에 대만을 여행했고 허우샤오시
엔을 인터뷰했고, 급기야 대만영화에 관한 방송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게 되다니... 대만 영화인
들중에 허우샤오시엔과 비슷한 "붕어빵"이 많다.<BR>그 사람들은 틈만 나면 가족을, 사람을, 역사를 말한다. 게다가 그들의 대표작들도 어딘가 허우
샤오시엔과 비슷하다. 주제는 물론 긴 호흡에 관조적인 카메라 시선 등 스타일조차 닮았다. 그
래서 "장사"가 안된다는 점까지도. 하지만 그들은 허우샤오시엔의 붕어빵이 아니었다. 허우샤오
시엔이야말로 대만인들의 삶과 역사 때문에 생겨난 붕어빵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풀지못한 과거
의 숙제, 평생을 끌고 가야할 희망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힘이 있다. 서구의 고전적 영화형
식과 대등하게 보편적 영화문법의 하나로 자리잡은 &lt;비정성시&gt;의 영화언어로 허우샤오시엔과는 
다른 개인<BR>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들은 &lt;비정성시&gt;를 넘어선 것이다.<BR>그래, 우리도 이젠 허우샤오시엔을 만날 필요가 없다! &lt;비정성시&gt;라는 성배를 찾아 떠날 이유도 
없다. 이 땅 안에, 우리 마음 안에 허우샤오시엔이 있고, &lt;비정성시&gt;가 있다! &lt;비정성시&gt;는 바
로 시선의 에너지요 힘이다. 자기가 선 땅을, 가족을, 자연을, 역사를 어떻게 제대로 응시하느
냐의 미학이다. 자기가 살고 보고 느낀 것만큼만, 보고 느끼고 만들 수 있다던가... &lt;비정성시&gt;
는 우리에게 절규한다. 두 발로 대지를 굳게 밟고 두 눈을 부릅뜬 채 당신의 삶과 역사를 응시
하라고. 안이한 영화 습관, 잘못된 인생관을 잘라버릴 자객의 칼이 없이 영화를 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BR>비수처럼 박히는 불가의 화두. 마음이 거세된 모든 것은 허상이다. 허우샤오시엔을 만나면 허우
샤오시엔을 죽이리라. &lt;비정성시&gt;를 만나면 &lt;비정성시&gt;를 죽이리라, 아니... 영화를 만나면 영
화를 죽여라! &lt;필자: 조재홍/영화평론가&gt;
<BR>#89. &lt;십계 Dekalog&gt;(1989&gt; / 감독: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nbsp;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1941년 바르샤바 생, 불우한 어린시절, 신부를 꿈꾸었던 인물, 폴
란드 국립 영화학교에서 다큐멘터리를 배우면서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출발. 키에슬로프스키의 
이름이 세계적 주목을 받은 것은 1988년 깐느영화제에서 &lt;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gt;이 심사위원특
별상을 수상하면서부터이다. 살인자와 애숭이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에서 키에슬로프
스키는 인간의 윤리적 결단이 법적 관습적 판단 기준에 선행하며 또한 높은 차원에 있음을 말한
다. 그는 스스로를 영상의 윤리학자로 드러낸 셈인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이 영화는 십
부작 연작인 &lt;십계&gt;의 한편이었기 때문이다.<BR>&lt;십계&gt;는 폴란드 텔레비전과 자유베를린 방송사가 같이 만든 텔레비전용 영화이다. 여섯번째 연
작은 &lt;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gt;이라는 제목으로 역시 극장용으로 재편집된 바 있다. &lt;십계&gt;에는 
영화작가 키에슬로프스키의 특질과 미덕이 원형적으로 녹아있다. 제목만으로 종교적 우화를 연
상할지 모르나 전혀 그렇지 않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십계'를 현대 폴란드 사회를 건져올리는 
그물로만 사용한다. 그 그물에 올라온 열 장의 실존적 지도, 그것이 영화 &lt;십계&gt;이다.<BR>한 첼로 주자가 있다. 그녀에게는 중병에 걸린 남편이 있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인 애인이 있다
. 그녀와 남편 사이에는 아이가 없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임신 중이다. 애인의 아이를 가진 것
이다. 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가 지워야 하는가. 그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노의사를 찾아간다. 
그녀는 의사에게 남편이 살 수 있는지를 말해 달라고 한다. 의사는 모른다고 말할 뿐이다. 그녀
는 다시 말한다. 남편이 살아난다면 아이는 지워야 한다고. 그러나 만약 아이를 지웠는데 남편
마저 죽어버린다면 그녀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고. 그렇게 되면 그녀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그러니 살아날 확률을 말해 달라고 한다. 그러나 의사는 의학상 죽음의 확률이 높은 경
우에 오히려 더 많은 생존자가 발생하고 살 확률이 높았던 경우에 느닷없이 죽어버리는 경우를 
숱하게 보아왔다. 생명은 의학의 범주 밖에 놓여 있는 것이다. 여자는 병상의 남자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는 고집스럽게 외면한다. 여자는 다시 찾아온다. 똑같은 질문이다. 의사는 딜레마에 
빠진다.<BR>연작 중 두번째 영화의 도입부이다. &lt;십계&gt; 연작은, 아버지를 사랑한 나머지 차라리 의붓아버지
이기를 바라는 소녀의 얘기, 수학적 원리로 세상을 재단하는 대학교수가 날씨를 잘못 예상한 탓
에 호수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얼음이 녹아 빠져죽는 아들의 얘기, 늘 훔쳐보기를 하던 소년을 
잃은 여인이 거꾸로 소년을 사랑하게 된 얘기 등, 실존의 수수께끼와 맞닥뜨려본 사람들을 순식
간에 사로잡는 힘을 가진 에피소드들로 채워져 있다. 키에슬로프스키는, 이 연작에서 인간사의 
어떤 근본적 딜레마, 일상 속의 비일상, 고뇌와 결단의 순간 등만을 다룬다. 그 이유는 간단하
다. 그러한 순간에 인간 삶의 본질과 존재의 불가해성이 더없이 날카롭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드러낼 뿐 그 이상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열편의 연작은 각기 미완성인 채
로 관객에게 열려 있는 것이다. &lt;십계&gt;에서 키에슬로프스키는 텔레비전 영화라는 한계를 오히려 
조건삼아 독자적인 형식미학을 추구한다. 이 미학의 기초에는 빛과 소리와 음악으로 유기적 전
체를 구성하는 견고한 리얼리즘이 놓여있다. 하지만 거기에서 피어난 것은 리얼리즘의 꽃이 아
니라 예의 영상의 윤리학이다. 그것은 특히 빛으로 표현된다. 한 화면 안에서 푸른빛과 흰빛과 
붉은빛을 변화무쌍하게 나누고 모으고 다시 나누는 빛의 미학은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lt;블루&gt;, 
&lt;화이트&gt;, &lt;레드&gt;라는 색채 삼부작이 우연이 아닌 것이다. &lt;필자: 이정하/영화평론가&gt;
<BR>#90. &lt;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gt;(1989) / 감독: 배용균
&nbsp;
1989년 로카르노 영화제는 세 사람의 신인감독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해 그랑프리는 배용균 감
독의 &lt;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gt;, 은표범상은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의 &lt;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
가&gt;, 동표범상은 박광수 감독의 &lt;칠수와 만수&gt;에 돌아갔다. 그 뒤 세 감독은 서로의 길을 향해 
나아갔다. 아마도 앞으로도 서로의 길이 교차하지는 않을 것 같다.<BR>&lt;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gt;을 만들어낸 배용균은 한국영화 속에서 UFO같은 존재다. 그는 인터
뷰하지 않으며, 제도권 영화와도 거의 교류가 없으며, 5년에 한번씩 자신의 영화를 갖고 느닷없
이 돌아온다. 그는 앙드레 바쟁의 표현을 빌리면 '완전작가'다. 언제나 감독과 각본, 촬영, 편
집, 기획을 그 혼자서 해낸다. 유머라고는 거의 없으며, 형이상학적인 주제와 관념적인 대사들, 
그리고 영화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진지한 믿음은 거의 노이로제처럼 보인다. 바로 이러한 강박
관념은 사실은 그의 영화정신이 흔히 알려진 것과는 반대로 신비주의가 아니라 리얼리즘에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진심으로 영화가 리얼리즘의 산물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배용균의 영화적 
계보는 로베르토 로셀리니(또는 오즈 야스지로의 일상생활의 리얼리즘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의 시적 리얼리즘)에 닿아 있다.<BR>배용균은 (필자와의 매우 개인적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세계를 '일요일의 리얼리즘'이라고 
이름 지었다. 모두들 평일의 리얼리즘을 다룬다면 자신은 모든 규칙이 하루동안 쉬는 세상의 일
상생활을 다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그 어떤 다른 변형을 가하지 않
으려는 자연의 풍경과 한번도 연기경험이 없는 아마추어 연기자들의 표정 속에서 끌어내려는 마
음으로부터 그의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에서 정말 그러하다. 그래서 배용균의 영화는 풍경과 표
정 사이의 자기성찰로 이루어져 있다.<BR>&lt;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gt;은 산사에서 수도생활하는 세 사람의 스님에 대한 영화다. 노스님 
혜곡은 스스로 자신이 입적을 앞두고 있음을 알고 있다. 젊은 스님 기봉은 사바세계에 두고 온 
눈 먼 어머니가 주는 번민으로 괴로워하면서도 도를 깨치기를 갈망한다. 동자승 해진은 고아로 
태어나 산사에서 자라난다. 그는 어머니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혜곡 스님이 이 세상을 떠나자 
거기서 얻은 작은 깨달음을 안고 두 사람은 서로의 길을 간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은 화두로 남
는다. 계속 질문하고, 의심하고, 대답하고, 번민하고, 그리고 다시 질문하는 독백과 방백의 화
법이 이어지면서 영화 전체는 선문답의 삼천대천세계로 펼쳐진다.<BR>배용균은 우주처럼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풍경과 표정 사이에서 번뇌의 입구를 본
다. 바로 이 순간 리얼리즘의 찰나찰나에 모더니즘의 형식이 끼어들고, 카메라가 담아내는 광경 
속으로 영화의 수사학이 펼쳐진다. 천변만화하는 세상의 표정은 수도자들의 번뇌가 된다. 이것
은 세상을 표상하는 것과 자기 성찰 사이의 싸움으로 밀고 나아간다. <BR>그래서 이 한편의 영화는 보이는 것과 말하는 것 사이의 경계의 긴장으로 가득차 있다. 수많은 
선화로부터 영향받은 것이 분명한 화면들은 그런 의미에서 번뇌이며, 그가 넘어서려<BR>고 하는 차안과 다가서려고 하는 피안의 경계를 타고 물어보는 공과 색의 넘나듦이다.<BR>지나치게 중생으로부터 멀리 있다고? 그러나 잠깐. 여기서 배용균이 대답하지 않지만 그의 질문
이 끝난 것은 아니다. 두번째 영화 &lt;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gt;(95년)은 화두에 이은 그의 사바세
계의 밤으로의 산책이다. 그는 우리의 세계 속으로 비행하고 있으며, 한국영화는 배용균을 통해
서 또 하나의 리얼리즘의 계보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세번째 영화까지 다시 5년을 기
다려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잔인한 일이다. &lt;필자: 정성일/영화평론가·월간 &lt;키노&gt; 편집장&gt;
<BR>#91. &lt;안개 속의 풍경 Topio stin Omichli&gt;(1989) / 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
&nbsp;
지난해 &lt;율리시즈의 시선&gt;이 칸 영화제의 강력한 대상후보로 언급되기 전까지 앙겔로풀로스는 
우리에게 낯선 감독이었다. 백두대간의 예술영화관 개막 프로그램으로 &lt;안개 속의 풍경&gt;이 한 
회 상영된 것이 이제까지 유일한 공식적 소개다.<BR>앙겔로풀로스는 프랑스 영화학교 이덱에서 수업했고 시네마 베리테의 선구자인 장 루쉬의 조수
로 일했다. 64년 그리스로 돌아와 좌익신문의 영화평을 쓰기도 했으며 그의 첫 영화작업은 시네
마 베리테 양식의 기록영화였다.<BR>이후 결코 다작을 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은 비평적 찬사를 받아왔으며 그리스의 
대표적인 감독으로서 위치를 공고히 해왔다. 특히 &lt;1936년의 나날들&gt;(72년), &lt;유랑극단&gt;(75년), 
&lt;알렉산더 대왕&gt;(80년), &lt;키테라섬으로의 여행&gt;(84년) 등을 통해 그는 격랑의 그리스 근대사와 
사회상을 시적이며 우화적으로 그려왔다.<BR>그는 고향에선 버림받았으나 그래도 고향을 향한 길 위에 선 이들의 모습을 드라마의 중심에 둔
다. &lt;안개 속의 풍경&gt;도 그 여정이란 소재의 연장이다. 그가 선호하던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상
황보다 여기서는 공허하고 스산한 현대의 그리스를, 절망적이고 고통스런 나이어린 오누이의 여
정을 통해 보여준다.<BR>긴 호흡으로 찍어낸 현대 그리스의 풍경은 비어있고 비가 내리며 어둡고 삭막하다. 거기서 오누
이는 아버지를 찾아 길 위에 선다. 아버지가 돈벌러 갔다는 독일을 향해 북으로 나서는 것이다. 
그들은 사생아이며 독일에 있다는 아버지도 모두 바람난 어머니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이 초반
에 드러나지만 영화는 그래도 그 막막한 여정에 매달린다.<BR>그들은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된다면 돌아오겠다고 상상 속의 아버지에게 말한다. 모든 것이 이해
할 수 없고 두렵기는 해도 길을 떠난 것은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닥친 삶의 여러 
양태는 결코 닿지 못할 곳을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안겨주고, 그들을 무너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이 그저 빛과 어두움 뿐인 곳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그들 자신의 경험
과 함께 감독이 그들의 여정에 개입시킨 다양하고도 모순된 삽화들을 통해서 일어난다. 모든 것
을 중단하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군상, 결혼이란 축제 전경에서 죽어 넘어지는 말, 공연장조
차도 얻지 못하고 헤매는 유랑극단(&lt;유랑극단&gt;의 재등장), 사소한 질투와 순간적인 욕정으로 소
녀를 범하는 트럭 운전사, 헬리콥터가 물 속에서 끌어내 달고 가는 거대한 손 등은 삶의 무력함
과 절망만을 그들에게 알려준다.<BR>그들은 아버지를, 아니 아버지의 대리인을 만난다. 유쾌함과 다정함과 따스함, 그리고 소녀에게 
첫사랑을 주는 청년이 그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 만남은 순간일 뿐 하나의 가족을 구성할 수는 
없다. 그는 입대를 며칠 앞두고 불안 속에 삶의 의미를 의심하는 청년이다. 또한 은밀히 보여주
듯 동성애자다.<BR>통과의례를 다룬 영화, 아버지라는 사회질서로 편입하기 위한 고통스런 행로의 영화, 그러면서
도 현대 그리스의 모습을 서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인 &lt;안개 속의 풍경&gt;은 시적이고 아름다우며 
또한 잔인하다. 그것은 미조구치 겐지의 극적인 경제성보다는 안토니오니의 공간을 향한, 투시
에 가까운 길고도 긴 촬영이 주는 사색에 기인한다.<BR>청년은 소녀에게 아무것도 찍히지 않은 텅빈 필름 조각을 보여준다. 그는 거기서 안개 속에 멀
리 서있는 나무를 본다. 대상에 대한 카메라의 냉정한 움직임과 죽은 듯한 공간에 대한 앙겔로
풀로스의 오랜 응시, 그것은 아마도 그 텅빈 필름인지도 모른다. 그 안개 속의 풍경을 우리도 
보게 하려는 오랜 응시일지도. &lt;필자: 주진숙/영화평론가·중앙대 교수&gt;
<BR>#92. &lt;바톤 핑크 Barton Fink&gt;(1991) / 감독: 조엘 코엔
&nbsp;
브로드웨이의 젊은 극작가 바톤 핑크는 할리우드의 초청을 받아 로스앤젤레스에 온다. 바톤은 
도착하면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정황들과 연속적으로 마주친다. 지옥으로 가는 관문 같은 기괴
한 분위기의 호텔, 할리우드 사람들의 미치광이 같은 생활양식, 그곳에서 폐인이 돼버린 대작가 
등. 이런 상황에서 하룻밤 같이 잔 여자는 자신의 침대에서 피투성이로 죽어 있고, 친구로 여겼
던 뚱뚱한 남자가 여자를 죽인 미치광이 살인광임이 밝혀진다.<BR>&lt;바톤 핑크&gt;는 얼핏 예술가를 질식시키는 할리우드, 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작가의 허위의
식, 현실의 불가해함에 관한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형 조엘이 감독, 동생 에단이 제작을 맡
는 코엔형제는 그런 주제를 정교한 농담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들은 영화를 퀴즈처럼 만드는데 
명수다.<BR>바톤을 초청한 캐피탈(돈) 영화사 사장은 야심에 불타는 바톤을 어린애 대하듯이 다룬다. 그는 
속사포 같은 언변으로 바톤에게 게임의 규칙을 강조한다. 영화는 연애담이 아니면 액션, 혹은 
성공담을 재빨리 조합시켜 내놓는 인스턴트 식품과도 같다. 그의 단순명쾌한 사업가적 기질 앞
에서 바톤은 얼이 빠져 듣고만 있다.<BR>바톤은 불쌍하면서도 어리석은 예술가다. 그는 할리우드 사람들 앞에서는 꼼짝 못하지만 보통사
람들 앞에서는 귀담아 듣는 대신 일방적으로 말하려 든다. 바톤이 어린애 같은 오만에서 벗어나
지 못하는 멍청이임을 암시하는 대목은 옆방의 투숙객 찰리와의 만남을 통해 두드러진다. 찰리
는 눈을 빛내며 자신의 진실을 말하려 한다. 그러나 바톤은 자아도취의 상태에서 숨가쁘게 자기 
말만 이어나간다. 말하고 싶었으나 저지당한 찰리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곧 영화의 절정부다. 
찰리는 미치광이 살인광 문트인 것이다. 바톤이 묵고 있는 얼(Earle) 호텔은 이름에서 암시되는 
것처럼 세상의 모든 소리를 흡수하는 공간처럼 존재한다. 바톤이 호텔에 도착했을 때 누른 차임
벨 소리의 한없는 이어짐, 호텔 복도의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 외부의 소음이 막힘없이 전달되
는 바톤의 방. 바톤은 그 소리들을 유념하기보다는 불평한다. 창작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
래서 나중에 큰코 다친다.<BR>얼 호텔은 또한 묵시록적 현실의 상징적 축도이기도 하다. 급사는 지하에서 올라오고 엘리베이
터를 관리하는 늙은 종업원은 해골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방의 책상에는 엄청난 먼지가 쌓여 
있고 벽지는 내부의 부패로 인한 열로 흐물흐물 녹아내린다. 사람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는데 
복도에는 빈 구두가 놓여 있다. 내부로부터 무너져가는 이 호텔의 아리송한 면면은 곧 지옥의 
변방에 다가서 있는 현실 이미지다. 그것의 논리적 귀결은 불로써 정죄당하는 묵시록적 현실이
다. 호텔로 되돌아온 찰리는 호텔 곳곳에 불을 지르고 나타나 도망치는 형사를 쫓아 달려오며 
소리지른다. "이 세상의 참모습을 보여주마."<BR>찰리의 행동에서 영감을 얻은 바톤은 스스로 최고작이라고 생각하는 시나리오를 쓰지만 영화사 
사장에게 질책만 듣는다. 풀이 죽은 채 바톤은 해변가로 간다. 거기서 바톤은 호텔 방에서 본 
액자 속의 여자가 걸어와 액자 속에서와 똑같은 자세로 해안을 응시하는 것을 본다. 바톤은 영
원히 자신의 말이 통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BR>그런 그에게 이 정경은 기묘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말로써 옮길 수 없는 실제의 아름다움을 목
격하는 순간이다.<BR>바톤은 재현의 대상이 놓여 있는 현실의 복잡성과 그 복잡성을 도식화할 것을 요구하는 또 다른 
현실과 창작자로서의 겸손을 배웠다. 그러나 코엔 형제의 다음 작품 &lt;허드서커 대리인&gt;은 재기
에 비해 알맹이가 없었다. 정작 코엔 형제 당사자들은 바톤 핑크의 재난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lt;필자: 김영진/영화평론가·씨네21 기자&gt;
<BR>#93. &lt;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Zendegi Edame Darad&gt;(1992) / 감독: 압바스 키아슬로타미
&nbsp;
1987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잘못 가져온 친구의 숙제장을 돌려주기 위해 친구집을 찾아 헤매
다 하루해를 다 보내는 꼬마의 이야기를 다룬 &lt;내친구의 집은 어디에?&gt;를 발표해 세계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 작품의 촬영지는 이란 북부의 가난한 마을이었고 대부분의 출연
자도 마을 주민들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90년 이란 북부지역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당시 
뮌헨을 방문중이던 키아로스타미는 &lt;내 친구…&gt;에 출연했던 꼬마들의 생사가 염려돼 곧바로 귀
국해 카메라를 들고 그 마을을 찾아 나섰다. 그 과정을 다룬 작품이 &lt;그리고 삶은 계속된다&gt;다.<BR>이 작품은 분명 극영화다. 줄거리는 지진으로 폐허가 된 곳을 어렵게 헤쳐나가며 두 꼬마를 찾
는 과정이 전부이며, 여기서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의 구분은 더 이상 무의미해진다. <BR>이는 고다르처럼 이데올로기적이지도 않으며 요즘 범람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장르해체라는 시
대조류와도 거리가 멀다.<BR>그러나, 이런 장르해체보다 더 파격적인 것은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극영화건 다큐멘터리건 그 속에 담기는 이야기는 대부분 굴곡이 있게 
마련이고 또 다층의 플롯을 지니는 경우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한 부자가 톨게이트를 지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영화가 끝날 때까지 누군가를 찾는 과정만을 91분 동안 담아낸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눈길을 꼭 붙잡아 놓을수 있는지 이해하기도, 
설명하기도 힘들다.<BR>경이로운 것은 이런 영화를 만들겠다는 키아로스타미의 영화관이다. 그의 파격은 조용한 작품 
성격에 반비례해 너무나 충격적이다. 영화사에 있어 파격에 관한 한 첫손 꼽히는 고다르의 경우 
영화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에서 그 출현의 개연성이 수긍되는 반면 키아로스타미의 출현은 돌연
변이라는 표현으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의 영화는 그 어느 누구의 영화 와도 닮지 않았으
며 영화사의 발전과정과도 무관하다. 단지, 이란영화가 전통적으로 다큐멘터리분야에서 강세를 
보여왔다는 점 정도를 그의 영화의 출현 배경으로 언급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의 영화가 
돌연변이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담겨있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은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만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이 어린이의 세계에 대한 따뜻한 시각
, 그리고 인간의 삶에 대한 경이가 담뿍 담겨 있다.<BR>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의 삶을 힘든 고갯길을 넘어서는 것에 비유한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마
지막 장면을 보자. 주인공 부자가 탄 차가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다 힘에 부쳐 다시 내려온다. 
이때 조금 전에 태워달라는 요청을 무시당했던, 짐을 진 한 청년이 차를 밀어 내려가는 것을 도
와준다. 청년은 다시 짐을 지고 고개길을 올라가고 내려갔던 차가 잠시후 다시 올라와 마침내 
고개를 넘어 그 청년을 태우고 떠난다. 비록 꼬마들을 찾지는 못했지만 삶에 대한 희망은 여전
하다는 주제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lt;그리고 삶은…&gt;이라는 제목에도 딱 맞아 떨어지는 
라스트씬이다.<BR>영화의 장르구분, 리얼리즘의 개념, 내러티브의 개념, 시나리오론, 그리고 영화사, 이제는 이 
모두가 다시 쓰여져야 할지 모른다. 그것은 순전히 변방의 영화로만 인식돼 왔던 이란의 거장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구중심의 이른바 '주류영화'의 흐름을 통째로 
뒤엎을 만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키아로스타미로 인해 새로운 영화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lt;
필자: 김지석/부산예술전문대 교수·영화학&gt;
<BR>#94. &lt;올란도 Orlando&gt;(1992) / 감독: 샐리 포터
&nbsp;
&lt;올란도&gt;는 '빅토리아조의 치마를 두른 게릴라 전사'라는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소설
을 영화화 한 것이다. 울프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사람은 영국의 페미니스트 감독 샐리 포터. 
여성 소설의 대모와 80년대 이후 실험적인 페미니즘 영화를 만들어 오고 있는 여성 감독과의 만
남은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다. 포터는 장난스러울 만큼 기지넘치는 울프의 아방가르드 소
설을 브레히트적 기법과 만나게 해 그 실험성을 스크린 위에 성공적으로 전환했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후반부에 20세기를 덧붙여 19세기에서 끝나는 소설을 동시대화했다. 그것은 모터사이클
을 타고 런던 시내를 달리는 올란도와 그의 딸의 당당한 모습을 여성운동의 현지점을 알리는 유
쾌한 지표로 읽을 수 있게 만들었다.<BR>&lt;올란도&gt;는 4백년을 산 그/녀의 이야기로 양성성의 문제를 알레고리적 형식을 통해 표현하고 있
다. 제목 'Orlando' 자체가 영화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암시하고 있는데 '혹은, Or' 또는 '그리
고, and'를 섞어 붙인 주인공의 이름은 남성 혹은 여성, 또는 남성 그리고 여성인 주인공의 이
름으로서는 매우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복장 전환과 성적 전도를 통한 양성적 실험을 하면서 '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것을 예시적으로 보여주는데, 영화를 보는 동안 
관객들은 가장무도회에 초대받은 것 같은 즐거움을 느낀다. 그리고 그 무도회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기존의 여성성/남성성이 문화적,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는 사실이다.<BR>4세기에 걸친 수명을 누리게 되는 올란도는 귀족의 자제로 태어난다. 때는 16세기, 성을 정확하
게 구별하기 어려운 복장을 한 미소년 올란도는 러시아인 사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가 돌
연 러시아로 떠나버리자, 일주일 동안 죽음과 같은 잠에 빠져든다. 그후 시를 쓰려는 노력을 하
지만 시인으로서는 3류임을 깨닫게 되자 터키의 대사로 떠나게 된다. <BR>그곳에서 제국주의에 항거하는 폭동이 일어나는 사이, 올란도는 또 깊은 수면에 빠지고 마침내 
여성으로 전환된다.<BR>이제 그는 발걸음조차 떼기 힘든 거추장스러운 옷을 입고 18세기의 영국으로 돌아와 여성으로서 
억압적인 제도들과 싸우게 된다. 법적으로 남성 올란도가 사망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재산소유
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재판이 벌어지고 그는 귀족으로서 누렸던 모든 특권을 상실하게 
된다.<BR>19세기 빅토리아조의 어둠 속에서 그의 양성적 실험은 중단되고 끝내 결혼을 하게 되는데 역설
적이게도 모험적인 혁명가와의 결혼은 오히려 그에게 상대적인 자유를 허용하게 된다. 소설과는 
달리 여자아이를 잉태한 올란도는 남성이었을 때는 실패했던 글쓰기에 성공하게 되고 딸은 20세
기의 소녀답게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관찰한다.<BR>&lt;올란도&gt;에 나타나는 양성성을 남성성/여성성의 유토피아적 통합으로 볼 것이냐 아니면 이질적
인 것이 중첩된 알레고리적 주체성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전자의 경우엔 버지니아 울프를 소박
한 낭만주의자로, 후자의 경우엔 그를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샐리 포터
의 영화적 해석은 사실은 다소 애매모호하다. 하지만 다양한 가면들을 보여 주며 여성이 주체로 
설 수 있는 공간을 탐색하는 영화 &lt;올란도&gt;는 60년대 이후 지속되는 페미니즘 영화의 귀중한 성
과물이다. &lt;필자: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gt;
<BR>#95. &lt;패왕별희 覇王別姬&gt;(1993) / 감독: 첸 카이게
&nbsp;
경극 &lt;패왕별희&gt;가 처음 창작된 것은 1918년께이다. 경극은 중국의 대표적인 전통연극으로 베이
징을 중심으로 발달해, 일본의 가부키나 노처럼 동양 연극의 값진 자산이 되었다.<BR>경극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로 사랑받는 &lt;패왕별희&gt;는 홍콩에 살고 있는 소설가 릴리언 리(본명 
이백화)에 의해 소설로 쓰여졌다. 이 소설을 릴리언 리와 루 웨이가 각색하고 &lt;황토지&gt;로 중국 
현대영화의 새 장을 연 첸 카이거가 영상으로 옮긴 것이 바로 영화 &lt;패왕별희&gt;다.<BR>릴리언 리는 &lt;패왕별희&gt;의 두 스타 살로와 데이의 동성애적인 우정,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주산
과의 사랑을 중국 현대사의 격변기 속에서 훑어가며 예술과 인간 그리고 중국의 역사를 살펴본
다. 1924년의 군벌시대부터 문화혁명을 거쳐 1977년까지.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의 치부를 드러
낸 이 소설이나 영화는 중국에서는 금지되었다.<BR>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중화민국시대, 항일 전쟁시대, 중국 내전시대, 중화인민공화국시대, 토지
개혁운동, 반우파운동, 문화혁명운동, 그리고 개혁개방운동의 시대를 거친다. 어린 시절, 매타
작을 당하며 혹독한 훈련을 거친 뒤 중국의 민중 연극으로서 경극의 명성을 잇는 두 남자의 우
정을 현란한 영상 속에 수놓고 있다. 굴곡 많은 중국사 속에서 남녀양성의 사랑을 간직하는 주
인공이 끝내 경극과 우정의 순수함을 지키려 자살하는 끝 마무리는 비장하다.<BR>&lt;패왕별희&gt;가 중국 민중에게 사랑받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중국 옛역사의 초패왕과 그에
게 죽음으로 사랑을 받던 우희의 절개가 무엇보다 크게 작용한다. 우리나라의 &lt;춘향전&gt;이나 일
본의 &lt;츄신구라&gt;처럼 절개와 지조 그리고 충절이 무엇보다 동양인에게 으뜸되는 미덕으로 꼽히
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대목이다.<BR>특히 이런 충절과 애정을 주축으로 한 패왕과 우희의 옛 사랑의 패턴을 실생활에 있어 살로와 
데이, 두 스타의 우정 혹은 동성애적인 관계 속에 현대적으로 옮겨 허구로 만든 것은 원작자 릴
리언 리의 탁월한 상상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BR>첸 카이거는 원작을 요령있게 요약하면서 그 재미와 경극의 절묘함을 영상에서 보여주는 데 성
공한 것이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는 평범한 진리로 세계적인 평가를 얻은 것이다.<BR>&lt;패왕별희&gt;가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던 해에 우리의 &lt;서편제&gt;
가 칸 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으나 아깝게도 예선에서 탈락하였다. 우리의 민족적인 판소리의 한
이 세계성을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커다란 교훈을 준다.<BR>그 교훈은 세계 영화제에서 어깨를 겨누려는, 또는 세계 영화시장에 뛰어들려는 한국 영화인 모
두가 한번쯤 숙고해 보아야 할 점이다. &lt;패왕별희&gt;가 영화적 형식과 소재 양쪽에서 세계적 보편
성을 갖춘 작품이었던 데 반해 &lt;서편제&gt;는 그 둘을 다 결여하고 있었다면, 이제 우리 영화인들
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해진다. &lt;필자: 안병섭/영화평론가·서울예전교수&gt;
<BR>#96. &lt;서편제&gt;(1993) / 감독: 임권택
&nbsp;
열광 뒤의 외면, 외면 끝의 반성. 임권택의 &lt;서편제&gt;에 대한 우리 동네의 풍경이었다. 여하튼, 
좌우지간에, 이 영화가 90년대 한국영화의 그물에 걸려든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그물은 대체로 
지겹도록 상투적이며 비린내가 풀풀 나는 것이지만 때로는 가장 중요하며 정확한 측정이다. 그
래서 그물코 사이의 숭숭 뚫린 구멍을 빠져나간 영화들을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는다). &lt;서편제&gt;
는 그 교직하는 그물에 포착된 것이고, 그 교직하는 품새를 우리는 비평적 틀이라고 부른다. 이 
틀은 여전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역사적이며 때론 폭력적이라서 투쟁이라는 한 마디로 압축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는다.<BR>앞질러 말한다면, &lt;서편제&gt;는 결코 임권택의 &lt;만다라&gt;를 뛰어넘지 않는다. 그러나 전자가 후자
보다 앞서 보였던 것은 탄생의 시공간적 차이와 헐거운 비평작업 탓도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
유는 그것이 훨씬 투쟁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투쟁은 참으로 정당한 부분도 있었지만 부당한 측
면 또한 없지 않았다. 정당한 부분이란 '도대체 한국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응했다는 점
이며, 부당한 측면이란 '오도된 민족주의 프로젝트'와 조응했다는 점이다. 물론 어떤 부분도 감
독의 의도와는 다를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이 영화는 패러디, 정형적인 내러티브의 파괴, 카
메라 시점과 음향의 독특한 사용 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당연히 현대영화라든가 현대영화
의 탈을 뒤집어쓴 키치영화와는 더욱 더 거리가 있다. 사실이 그랬다. 현대영화처럼 외면당하지
도 않았고, 키치같은 '대중적 돌파력'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감독이 &lt;장군의 아들&gt; 연작이라는 
짧은 방황 끝에 유봉, 송화, 동호라는 소리꾼 일가를 통해 '소리'와 '우리'에 대해 말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를 두고 행한 발언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그 얘기가 왜 그다지도 위력
적이었는가를 먼저 묻는다면 우리는 우선 한국의 영화역사와 역사를 떠올려야 한다. 60년대 초
반에 잠깐 해보았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70, 80년대를 지나면서 우리는 잊어버렸다. 90년대
에 들어와서야 이제 다시 그 질문(투쟁)을 하게 된 것이다. 얄밉게도 여기에 '오도된 민족주의 
프로젝트'도 끼어 들었지만. 그 질문은 쇼트와 쇼트들의 겹쳐짐 그리고 전체의 기(氣)를 통해 
답해진다. 소리꾼의 내력, 실명의 내력, 후일담으로 이루어진 내러티브만으로는 그다지 감동적
이지 않다. 송화가 묻는다. 해가 졌냐고, 유봉은 해가 졌다고 말한다. 그 쇼트에 걸려든 것은 
붉은 노을이다. 이것을 우리는 '내러티브가 뚝뚝 떨어지는 쇼트'의 한 예라고 부를 수 있다. 그
리고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는 긴 화면 쇼트 하나(반영)와 마지막 송화와 봉수의 대결 몽
타주 장면(묘사), 이것들은 독립적이라기보다는 연속됨으로써 빛을 발한다. 이도흠의 '화쟁 기
호학'에 의하면 모방상과 굴절상의 행복한 만남이다. 마지막, 영화 전체의 기. 유봉과 송화의 
삶은 '우리'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이며 다원주의적 가치관에 대해 '내'가 택할 수 있는 가치는 
어떤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임권택은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의 출발에 초조하지 말고 벗어
나려고 애쓰기보다는 가라앉아서 찾자고 말한다. 그것은 말로 형용하기도 눈으로 찾기도 쉽지 
않다. 아는 만큼 보일 뿐이다(?).<BR>물론 예술적 수사와 현실의 대응은 다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 당시의 사회적 질문에 충분히 
토론하지 않았다. 아니 벌써, '새로운 것'을 칭송하고 있다. &lt;서편제&gt;는 그렇기 때문에 투쟁적
이며 외로울 뿐이다. 우리는 정말 '공멸'을 원하는 것일까? &lt;필자: 이효인/영화평론가&gt;
<BR>#97. &lt;피아노 The Piano&gt;(1994) / 감독: 제인 캠피온
&nbsp;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오스트레일리아의 영화감독 제인 캠피온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을 &lt;피아
노&gt;의 위력을 빼놓은 채 이야기 할 수 없다. 그는 이 영화로 칸영화제와 미국 아카데미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감독으로 부상했고, 그 여파로 한국의 극장들은 &lt;내 책상위의 천사&gt;나 &lt;스위티&gt; 
같은 이전 영화들을 속속 불러들였다.<BR>그는 이제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영화산업의 지역적 변방성에 여성이라는 성적 변방성
이 지운 이중의 한계를 극복한 대표적인 여성감독이 됐다.<BR>이렇게 되기까지는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엄청난 국가적 재정지원에 힘입은 오스트레일리아영
화의 국제적 부상과 그 안에서 나날이 이루어지는 여성영화인구의 증가라는 빼놓을 수 없는 원
인이 있었다.<BR>&lt;스위티&gt;에서 시나리오, 촬영, 편집을 여성들과 함께 한 그는 &lt;피아노&gt; 역시 여성제작자인 잔 
채프만과 결합해 만들었다. 여성들로 일단 전선을 구축한 다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해 여성의 삶
과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그의 작업스타일인 셈이다.<BR>얼핏 보기에 진부한 삼각관계 이야기인 듯 싶은 &lt;피아노&gt;는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식민지였던 뉴
질랜드를 배경으로 시대와 공간이 여성에게 주는 억압, 특히 성적인 억압을 보여준다. 주인공 
아다는 이름도 성도 모르는 새 남편과 아버지의 교환수단이 된다. 그리고 자기의 표현수단인 피
아노는 자신의 허락도 없이 남편과 낯선 남자 사이에 거래된다.<BR>여기서 아다는 벙어리이다. 이 여성의 침묵과 피아노라는 표현수단의 설정은 억압적인 가부장제 
언어체계 안에서 침묵이 저항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입술을 
통하지 않고 그의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열정적인 피아노 소리로, 딸에게 보내는 신호로, 종
이 위에 연필로 쓰는 글로, 연인의 몸을 쓰다듬는 손길로 표현된다. 하지만 그의 자기 표현이 
남편에게 충분히 위협적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것은 남편이 그의 손가락을 잘라버리는 
데서 확실히 드러난다.<BR>그렇다면 제인 캠피온은 아다의 성적, 정서적 각성을 왜 빅토리아 시대라는 이미 지나간 시대 
속에 구조화시켰을까? 우선 빅토리아 시대는 여성성욕의 억압과 동의어인 시대다. <BR>또한 남성지배적인 역사에서 여성의 경험은 거의 완전히 감추어져 왔고 여성들의 상상력을 해방
시키고 현재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는 수단으로 과거는 가장 흔한 공격대상이 된다. <BR>&lt;피아노&gt;가 한 여성의 과거에 대한 단순한 여성영화가 아닌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다.<BR>이 영화는 또한 남성들간의 차이를 보여주고 어떤 것이 여성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지를 묻
는다. 구획을 짓기에 익숙한 자본주의적 인물이자 도끼로 상징되는 스튜어트라는 남편을 버리고 
원주민과 친한 베인즈를 아다가 선택하는 것은 두고두고 논쟁거리가 될 만하다.<BR>할리우드적 관습을 버리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이용한 이 영화의 접근법은 분명 아직도 낭만적
인 사랑의 각본을 믿고 싶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친근하게 다가가는 데 상당한 영향
을 미쳤으리라. &lt;필자: 변재란/영화평론가&gt;
<BR>#98. &lt;용서받지 못한 자 Unforgiven&gt;(1993) / 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nbsp;
1960년대를 뒤흔든 미국의 사회운동은 보수적인 할리우드를 변화시켰다. 1967년, 아서 펜의 &lt;우
리에게 내일은 없다&gt;는 할리우드 영화의 틀이 돼 온 장르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었다. 장르영
화 가운데 가장 먼저 틀을 갖추었고 가장 오랫동안 만들어진 서부영화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1930년대와 40년대를 거치면서 탄탄하게 구축됐던 '고전 웨스턴'의 틀을 벗어버리고, '수정주의 
웨스턴'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BR>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레오네는 1964년부터 '달라 3부작'(&lt;황야의 무법자&gt; &lt;속 황야의 무법자&gt; &lt;
석양의 무법자&gt;)을 차례로 만들었고, 서부영화의 변종격인 마카로니 웨스턴이 탄생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상업적 성공과 함께 스타가 됐다. 바로 그가 환갑을 바로 지난 
1992년에 &lt;용서받지 못한자&gt;를 만들었다.<BR>이스트우드가 연기하는 윌리엄 머니는 과거에는 살아있는 것을 모두 죽인 무법자였지만, 지금은 
두 아이와 함께 돼지를 기르며 살아가는 평범한 노인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1천달러의 현상금 
소식을 들은 머니가 다시 총을 잡고 보안관 일당을 모두 처치하는 것이 전부다. 본격적인 이스
트우드의 관심은 두가지다. 자신의 스타 이미지와 장르로서의 서부영화를 노인의 눈으로 성찰해
보려는 것이다.<BR>윌리엄 머니가 끊임없이 이야기하는 과거의 모습은 이스트우드가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구축했던 
무법자의 이미지다. 누더기 망토를 걸치고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백발백중의 사격 솜씨를 자
랑하던 그는 지금 말에서 떨어지고 총알은 번번이 빗나간다. 그는 젊은 카우보이에게 말을 타고 
신나게 총을 쏜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무법자와 살인에 관한 대화가 지루할 정도로 계속된 다음, 마지막 
총격전 장면이 시작된다. 머니는 보안관과 그의 부하 네 사람을 순식간에 해치운다. 서부영화다
운 멋진 총격전에서 관객들이 통쾌함을 느끼지 못하고 거듭 성찰하게 되는 이유는 뇌리에서 아
직 사라지지 않은 대화들 때문이다. 비가 내리는 밤에 초라하고 쓸쓸하게 떠나가는 머니의 모습
은 정의를 구현하는 당당한 서부영화의 영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BR>영화의 다른 장치들은 이분법으로 구축된 서부영화의 틀을 뒤집는다. 정의를 구현하는 보안관은 
법을 이용해 잔인하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물이고, 명사수로 명성이 자자하던 잉글리시 밥은 허
풍이 심한 비겁자로 밝혀진다. 불의에 분노하는 장본인은 매춘부들이다.<BR>1960년대의 젊은이들에게 '서부'는 때묻지 않은 순수의 상징이며, 이상향이었다. 클린트 이스트
우드는 이제 그런 서부는 죽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무덤을 파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살인강도 
머니를 그토록 사랑해 주었던 여자 클라우디아는 이미 죽어 있다. 따라서 그의 진짜 관심은 존 
포드의 &lt;추적자들&gt;이나 세르지오 레오네의 &lt;옛날 옛적 서부에서&gt;처럼 서부 영화 장르를 성찰하
고 해체하는 작업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비춰지는 오염된 세상으로 현실을 은유하는 것이다. 
그는 옛날의 완벽한 세상, '퍼펙트 월드'를 꿈꾸는 순수한 보수주의자인 셈이다. &lt;필자: 김경욱
/영화평론가&gt;
<BR>#99. &lt;스모크 Smoke&gt;(1995) / 감독: 웨인 왕
&nbsp;
세계 영화사를 빛내는 100편의 영화. 왜 &lt;스모크&gt;가 끼어들었을까? 중국계 미국인 감독의 영화
라서가 아니라 색다른 미국영화, 그것도 무척이나 따뜻하고 눈물겨워서 웨인 왕이 나눈 다섯개
의 분절 속에서 헤어나오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비유를 동일성쯤으로 다루는 허술함을 내
비치지 않는다면, 이 영화는 바로 &lt;성난 황소&gt;와 맞바꿀 수 있다. 아니, 좀더 무리를 하자면, 
어두운 삶의 황량함을 그린 &lt;대부&gt;와 살아가는 방법과 답이라곤 도대체 모르겠다고 구시렁거리
는 &lt;비열한 거리&gt;(마틴 스코시즈)를 돌아서 나와 굽이굽이 뻗어 있는 &lt;파리 텍사스&gt;(빔 벤더스)
의 쓸쓸함으로 침몰하거나 또는 &lt;인생&gt;(장이모)이 내비친 중국인 특유의 역사성 새옹지마를 뉴
욕에서 원용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BR>물론 모든 영화적 맥락은 정당하지 않다. 영화 한 편은 자기만의 고유한 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
이다. 하지만 광의의 영화적 맥락은 한 작품이 지닌 체계와도 교통한다.<BR>그렇다. 오기는 좀도둑 소년의 지갑을 돌려주러 갔다가 카메라를 훔쳐 나오고 그 덕택에 작가인 
폴은 비명횡사한 아내의 사진을 보게 되고, 흑인 소년 라시드 덕택에 교통 사고를 면한 폴은 라
시드가 저지른 일로 봉변을 당하고, 또 라시드는 오기의 담배 가게에서 사고를 치게 되지만 라
시드가 내놓은 돈으로 오기는 과거 애인과 황폐해진 딸에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게 된다. 뉴욕
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여기에서 인종의 경계는 무너진다. 하지만 그 무너짐은 상투적인 
화해가 아니며 상대에 대한 인정과 관용에서 비롯한다. <BR>라시드는 흑백 구역으로 나눠진 그곳을 다른 은하계라고 표현하면서 '그것을 이상적이라고 생각
하지 말라'고 폴에게 경고하지만, 바로 그 장면에서 폴의 심정은 셔츠를 촉촉하게 적시는 여름
에 하염없이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 같다. 후경에 자리잡고 돌아가는 선풍기는 이미 등장했던 피
사체다.<BR>그것은 선풍기로 나타나지 않고 라시드가 시침을 뚝 떼고 12년 전에 헤어진 아버지의 자동차 수
리점 앞에서 앉아 있을 때, 차고 앞으로 삐죽 나와 있는 적당히 낡은 흰 차 밑에 포진하고 있는 
그림자로 나타났다. 그 어둠은 부자의 비밀과 은밀한 삶의 쓸쓸함을 모두 감싸고 있다. 쨍쨍 내
리쬐는 햇빛 속에 드러난 아버지 사이러스의 황량하고 황당해하는 표정을 뒤로 하고 라시드는 
그 풍경을 그린 흑백 그림을 차고 안에 집어넣고 나온다. 그 흑백 스케치에 의해 풍경은 살아난
다. 이후 사이러스는 라시드가 아들인 것을 알고는 그 큰 주먹으로 친다.<BR>달리 방법이 없었다. 마지막 분절 '5. 오기' 부분은 성탄절을 앞두고 폴이 이야기를 요청하는 
장면이다. 폴은 담배를 줄이고 이제 둘만 남았다. "세명은 성가시지만" 참 쓸쓸하다. 오기는 카
메라에 얽힌 비밀을 털어놓고 창피해한다. 카메라는 고정 상태에서 오기를 대상으로 근접 이동
한다. 웨인 왕은 이 영화에서 3번째 쓰고 있다. 눈이 촉촉해진 폴은 친구니까 괜찮다, 그것이 
인생의 가치라고 말해준다.<BR>그리고 에필로그. 16개의 쇼트로 구성된 흑백 장면과 속을 뒤집어 놓는 음악. 대부분이 풀 쇼트
이거나 그보다 크다. 임대주택 단지의 겨울 나무들을 훑는 롱 쇼트 한 개를 빼고는. 서로가 속
는 체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흑인 할머니와 오기. 마지막, 오기가 카메라를 들고 문을 나설 때 
고리를 여는 소리와 문 여닫는 소리는 살아난다. 질문에서 주장으로, 운문에서 산문으로 이동한
다. 여균동에게서 인용하자면, 인간의 시선이 존재하는 한 세상은 변할 것이고 살 만하다. 바로 
그 얘기다. &lt;필자: 이효인/영화평론가&gt;
<BR>#100. &lt;언더그라운드 Underground&gt;(1995) /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
&nbsp;
D.W 그리피스에서 시작된 영화기행이 에미르 쿠스투리차에서 끝난다. 지난 1백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던가. 그리고 영화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연히도 &lt;언더그라운드&gt;의 탄생은 영화
탄생 1백년과 겹친다. 또한 95년은 성공적이라는 디지털 영화 &lt;토이 스토리&gt;가 제작된 해로 그
것이 예시하고 있는 미래의 영화는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래프가 지향했던 사실주의나 멜리에스
의 바이오스코프식 판타지라는 관행적 이분법을 분명 무색케 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제작된 &lt;언
더그라운드&gt;도 영화 속의 인물 마르코가 티토를 만나는 컴퓨터 합성장면을 삽입해, 말하자면 아
날로그와 디지탈의 접합에서 새로운 영화적 현실감을 구성하고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을 감동케
도 하고 격분시키기도 했던 &lt;언더그라운드&gt;에서 가장 오해(혹은 이해)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바로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현실을 뒤섞어 이제는 사라진 유고의 과거와 현재에 개입하는 방식
인 듯하다.<BR>영화는 시간과 장소를 명시하고 시작한다. 1941년 독일에게 점령당한 유고의 베오그라드. 무기
밀매를 하던 블래키와 마르코는 지하실에 무기생산고를 만든다. 이로부터 3년후, 마르코는 블래
키를 독일군으로부터 구출해 지하실로 숨게 한다. 하지만 유고가 해방된 후에도 마르코는 지하
실 사람들을 속여 계속 무기를 만들게 하는 한편 블래키가 사랑하는 여자 나탈리아를 빼앗고, 
티토의 측근이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린다. 블래키의 아들 요반의 결혼식날 언더그라운드는 사고
로 파괴되고 아직도 전쟁이 진행중인 것으로 믿고있는 블래키는 자신의 영웅담을 영화화하고 있
는 촬영현장에 도착해 진짜 총을 발사한다. 1992년 다시 전쟁에 휩싸인 베오그라드. 마르코와 
나탈리아는 블래키의 지하군에 의해 살해된다. <BR>마지막, 블래키의 죽음에 의해 잉태된 꿈의 장면, 모든 죽은 사람들이 햇살 밝은 곳에서 축제를 
벌이는데 그들이 딛고 있는 땅이 육지로부터 떨어져 나간다.<BR>이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표현물질들 즉 신파조의 연극, 영화 속에서 제작되고 있는 영
웅주의적 가짜 영화, 실제 뉴스릴 속에 삽입된 가상상황과 인물들은 1941년에서 1992년이라는 
명시된 역사적 시간과 베오그라드라는 구체적 공간과 땅위 현실 세계로부터 망각된 언더그라운
드를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또한 &lt;언더그라운드&gt;는 균질적인 리얼리
즘의 언어 대신 불경스럽게 보이는 이질언어들을 동원해―한 비평자는 니체적 욕망, 디오니소스
주의의 언어로 파악하며 쿠스투리차 자신은 집시의 문화, 이교도적 문화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현실과 몽상, 창조와 파괴, 역사와 종말, 진실과 거짓 그리고 인간성과 야수성이라는 범주들
의 경계를 와해시키고 있으며(하지만 결코 성차의 문제는 탈경계화되지 않는다), 동시에 그 붕
괴의 와중에서 잉태되는 절망과 희망 또 그 이후를 그려내고 있다.<BR>영화가 뤼미에르식으로 발전, 진화해야만 한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쿠스투리차의 영화는 분명 이
단이다. 또 현실의 자명성과 역사의 텔로스를 믿는 이들에게 쿠스투리차의 뫼비우스 띠는 필경 
재앙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바로 그러한 이단과 재앙이 일으키는 혼돈 속에서 생성되는 질서를
, 즉 종말과 유토피아가 맞닿아있음을 에필로그에서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lt;언더그라
운드&gt;를 세기말에 대한 그리고 이제 1세기를 막 넘긴 영화라는 매체가 직면한 위기에 대한 알레
고리로 읽어도 과잉독해는 아닐 것이다.<BR>미국이라는 국가의 건국과정을 인종차별주의를 전혀 숨기지않은 채 과시했던 그리피스의 &lt;국가
의 창생&gt;으로부터, 인종분쟁으로 분화된 옛 유고를 애탄하는 &lt;언더그라운드&gt;에 이르기까지 영화
는 얼마나 멀고도 가까운 길을 걸어왔는가. 20세기 그 1백년간 영화는 역사와 문화를 재구성해 
왔고, 스크린은 컴퓨터의 윈도 체계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세상과 관객을 잇는 인터페이스
로 기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가 창이며 거울이라는 것은 은유 이상이다. &lt;필자: 김소영/한
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gt;
&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마이 제너레이션</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49870</link><pubDate>Tue, 12 Sep 2006 03: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4987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13255606&TPaperId=9498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4/63/coveroff/304243036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nbsp;
&nbsp;
&nbsp;
&nbsp;
배, 배, 배 외쳐도 배는 떨어지지 않는다. 
나쁘게 살지 말자고, 착하게 살자고 두 사람은 속삭이고 
배밭을 떠나자 그제서야 배가 떨어진다. 
캠코더&nbsp;밖의 흑백의 진짜 세상과 캠코더로만 보이는 '너'만의
세상이 있다. 
카메라를 끄고, 눈물을 그치고, 비로소 이야기하고, 
단지 너'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자화상을 만나자.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4/63/cover150/3042430367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13255606</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빈 집</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36672</link><pubDate>Sun, 20 Aug 2006 10: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3667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34452729&TPaperId=936672"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3/3/coveroff/322243036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최근의 한국영화에서 한 여자와 두 남자를 다룬 이야기는 많다. 별로 놀랍지도 않은 사실이긴 하지만 대개 남자들은 여자를 사이에 두고 다투고, 여자는 그 남자들만의 교환 경제에 편입될 뿐이다. 그리고 그 와중의 온갖 갈등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은 남과 여의 일대일의 결합이라는 최종적인 목적을 이루는 서사적 장치에 지나지 않는다. 빈집의 포스터는, 그리고 빈집의 결말은 언뜻 보기에 일대이의 공존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로 일대이인가? <BR><BR>줄거리는 간단하다. 영화에서는 오토바이를 타고 빈집을 돌아다니는 한 남자가 나온다. 그 남자는 빈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빨래를 하거나 청소를 할 뿐, 그 밖의 물건은 건드리지 않는다. 어느 날엔가 그 남자는 남편에게 매맞는 한 여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 둘은 같이 빈집을 돌아다닌다. 나중에 경찰의 신고로 남자는 감옥에 갇히고 여자는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진다. 감옥 속에서 남자는 "유령되기 연습"을 통해(어떻게 하는가하면, 자신의 손바닥에 눈동자를 그리는 것이다. 곧 시선으로부터 벗어나는 식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교도소 간수의 혹독하고도 일방적인 공격을 경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을 다른 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 있게 된다. 출소 후 다시 그 집을 찾아간 남자는 여자와 함께, 그리고 그 남편과 함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다. 남자와 여자의 포옹이 이루어지는 체중계 위의 눈금은 0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장자로부터의 인용이 마지막 자막으로 오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가 없다"<BR><BR>남자는 실로 유령적인 무언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사람들은 그를 어떤 서늘한 기운으로 느끼긴 하지만 실제로 보지는 못한다. 이 남자를 가리켜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있을까? 빈집을 들르는 이 남자는 자체로는 현전하지 않는, 그러나 동시에 그 빈집의 '소유주'들에게 있어서는 쉽사리 떼어낼 수 없는 처치곤란한 대상이다. 그렇다면 이 유령에게 우리가 해야 할 공정한 태도란 어떤 것일까. 여기서 어떤 평자는 데리다를 따라서 유령의 존재론에 이어 환대의 윤리학이라는 테마를 섣불리 끄집어 내는 것 같지만 이 영화의 교훈으로 '무조건적이고 유보없는' 환대라는 말을 '덧붙이기'는 약간 망설여진다.&nbsp;그렇다고 이 영화를 어떤 '노마드적 삶'의 양식을 자본주의적 대안으로던져주고 있다고 보기도 좀 무리가 따른다.&nbsp; 
&nbsp;
<BR><BR>
마지막 장면을 보면&nbsp;그 남자라는 제3자의 개입으로 인해 매맞는 여자와 남편의 결혼생활은 다시금 어떤 질서와 안정을 되찾는 것 같다. 곧 남자는 이 둘 모두에게 있어서 현실을 견뎌낼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nbsp;환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 때 그 남자라는 유령적 환영을 대하는 남편과 여자의 태도는 같지 않지만, 최소한 그것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공통적인데, 이들 모두 남자의 유령되기 연습처럼 손바닥에 그려진 눈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는 외면할 수 밖에 없는 손등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nbsp; 이 때 현실적 관계에 있어서의 어떤 맹점, 또는 상상적 착각의 필연성의 문제는 자연히 뒤따라 나오는 것이겠다. &lt;말&gt;지에 실린 정성일의 다음과 같은 평가는 영화를 보고나서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던 아쉬움을 거의 흡사하게 표현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인용해본다. <BR><BR>"그는 점점 더 세상을 하나의 수수께끼로 만들고 있으며,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각자의 구원을 위한 환상을 만들어내야 한다. 김기덕은 이제 그것을 구하기 위해서 자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이제 무능력에서 무관심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김기덕의 영화를 보고 그가 이제 순화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견해에 반대하는 까닭이다. 그는 주관적 목적론의 그 어떤 전도된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다. 나는 그것이 슬프다. 김기덕은 그 싸움을 통해서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현실적인 좋은 세상의 환상을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이 허락된다면) 공동의 객관적 착각의 공존을 위해, 더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관적 착각의 왕국에로 이끌렸다." <BR>
"공동의 객관적 착각", 이 말들에 방점을 찍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3/3/cover150/3222430362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134452729</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퍼온글]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임필성 감독이 말하는 "남극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34426</link><pubDate>Wed, 16 Aug 2006 15: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34426</guid><description><![CDATA[<!-- 기사 -->&nbsp;어제밤에 ocn에서 &lt;남극일기&gt;를 봤다.
무쟈게 무섭더라... 끄고 싶은 걸 결말이 넘 궁금해서 끝까지 봤다.
TV로 봤으니 중간중간 광고가 있어 다 볼 수 있었지 극장에서 봤으면 고문당하는 것 같았을 것 같다.
다보고 자려니 방에 불이 켜 있어도 불은 끈 것처럼 시야가 차단되는 느낌이 들었다. 꽤 무서웠다.
근데 앞에 각색인가 각본에 봉준호 감독이 있어 오늘 검색해보니 두 감독이 막역한 사이란다.
&lt;괴물&gt;에서 박해일의 선배로&nbsp;출연하기도 했었단다.
영화는 무서웠는데, 인터뷰는 넘 웃긴다. ^^
=========================================================&nbsp;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임필성 감독이 말하는 &lt;남극일기&gt;



[필름 2.0 2005-05-25 20:00] 

<!-- 끼워넣기 --><!-- 끼워넣기 -->








<BR>무릇 모든 일엔 시작과 끝이 있다. 한국 최초의 남극 탐험 영화 &lt;남극일기&gt;는 시작도 힘들었지만 마치기는 더욱 힘들었던 영화다. 제대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던 불귀(不歸)의 설원, &lt;남극일기&gt;에서 돌아온 임필성 감독을 만났다 <BR><BR>인간의 본성을 그리는 게 주가 된 영화이긴 하지만, 볼거리도 만만치 않다. 
내가 처음 제작사인 싸이더스픽쳐스의 차승재 대표를 설득했을 때, 구경거리로서도 아깝지 않은 영화가 될 거라고 말했다. 촬영지인 뉴질랜드의 스펙터클한 광경도 있고 스타 배우들의 좋은 연기, 그리고 몇 번의 공포 장면, 그런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면 영화라는 매체의 원초적인 매력인 구경거리로서도 114분이라는 상영 시간과 7천 원이 아깝지 않은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거고. 
어떤 관객들에겐 이야기보다 스펙터클이 더 강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다. 
내가 담아내려는 어둡고 공포스러운 세계를 모두가 공감해 주길 바라진 않는다. 단편영화 때부터 그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한쪽에선 예선 탈락한 영화가 다른 쪽에선 상을 받고, 부산은 떨어졌는데 베니스는 가고. 이런 영화를 찍어왔기 때문에 '모두가 좋아하는 영화는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강했다. 그런 면에서 첫 장편 상업 영화인 &lt;남극일기&gt;는 내 개인적인 취향과 대중의 보편적인 취향이 교집합을 이룰 수 있다고 봤다. 지금 내 레벨이 대중 입맛에도 맞고 영양가도 높고 먹기도 편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스펙터클과 스타, 그런 조건조차 없었다면 만들어지기 어려운 영화였을 텐데, 그걸 최소한의 접점이라 생각하고 내가 의도한 나머지 부분을 좋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억지로 설득하고 싶진 않다. 
그런 생각 때문인가, 확실히 관객들에게 불친절한 부분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대사가 안 들린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여섯 명 대원들이 구분이 안 간다고도 하고. 
단편영화와 비교해본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했다. 노력을 안 한 거는 아닌데 내가 생겨 먹은 게 이러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능동적으로 보면 그런 배려를 느낄 수가 있는데 관객들에겐 떠서 먹여 주는 게 너무나 익숙한가 보구나, 어떤 절망감 같은 걸 느낀다. 자막도 추가로 넣어주고 대사도 ‘줄줄줄’ 설명적인 것까지 많이 살린 데다 다른 사운드를 말도 안 되는 수준까지 낮추면서 대사를 키웠는데 이해가 안 된다니, 내가 이해가 안 된다. 의상도 고민이 많았다. 탐험복이 우주복 같지 않아서 디자인이 한정적이다. 딱 나와 있는 디자인 내에서 그나마 색을 조절해야 구별이 간다. 내 취향대로라면 대원들 의상도 전부 모노 톤으로 가고 싶었는데 정정훈 촬영감독이 "그러면 관객들이 구별 못한다. 색깔로 구별해줘야 한다"고 해서 그나마 빨강, 노랑, 검정으로 갔다. 여섯 명을 여섯 색깔로 입혀 놓으면 무슨 독수리 오형제 같지 않나.(웃음) 지금도 세 가지 색깔 대원들을 잡은 장면을 보면 무슨 텔레토비 같은데 전부 다르게 입었다면 이런 영화에 얼마나 생뚱맞았을까. 
탐험대장 도형(송강호)과 민재(유지태)에게 똑같이 빨간색 의상을 입힌 건 둘이 유사 부자관계라는 설정 때문이었나? 
도형, 민재, 성훈(윤제문) 셋이 빨간색이다. 도형과 민재를 같은 색으로 표현한 건 명백히 그런 의도가 있었다. 성훈은 그 구도에서 어차피 멀리 있으니까 크게 지장 없을 거라고 봤고. 그런데 아뿔싸, 김선민 편집 기사도 도형과 성훈을 헷갈리는 거다.(웃음)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지만 편집 기사가 헷갈리니 나도 당황했다. 
그런데 왜 탐험대가 여섯인가? 다섯이나 일곱이면 안 되나? 
처음 시나리오는 ‘독수리 오형제’에 입각해서 다섯 명으로 썼다. 근데 다섯 명으로 출발하면 클라이맥스에선 세 명밖에 안 남는데 그 긴 시간을 어떻게 끌고 가나 막막했다. 지금도 투 샷 다음에 스리 샷 나오고 다시 포 샷, 그리고 투 샷 이렇게 가는데 다섯이었으면 그 조합이 더 적을 테니까. 또, 일곱은 너무 많았다. 일곱으로 가면 도형과 민재가 갈등하는 장면에서 2대 1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초반에 이해준 작가와 시나리오를 쓰면서 남극의 자연 현상 중 어떤 게 인격적인 게 될까 고민을 했다. 동상, 화이트아웃(온 세상이 아득한 빛 속으로 사라져버리는 백시 현상), 블리자드(눈보라를 동반한 남극의 겨울 폭풍), 크레바스(‘악마의 틈새’라 불리는 빙하 표면의 균열) 등이 나오더라. 그것에 대입해 하나씩 사고를 당하는 게 어떨까, 애거사 크리스티의 &lt;열 개의 인디언 인형&gt;을 생각했다. 
[[0]]그들은 모두 각자의 도달 불능점을 향해 탐험을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는 그것을 남성적인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섯 가지 유형의 남자가 필요했겠다. 
동사무소 공무원 출신 대원 재경(최덕문)은 소시민적인 욕망이 가장 큰 인물이다. 가장으로서 가족에 집착하는 캐릭터였는데 그런 약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최초의 희생자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분란을 일으키는 악역 성훈은 겉으론 의리를 내세우지만 사실 어떨 때 보면 마초의 가장 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성훈은 재경을 구하러 가자고 하지만 그게 동료애 때문만이 아니라 한편으론 두렵기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거다. 비겁한 남자 캐릭터다. 식사 담당 근찬(김경익)은 &lt;장화, 홍련&gt;에서 문근영이 연기한 수연 같은 순박한 희생자다. 순진하고 소박하지만 대장에게 반항하거나 상황을 뒤엎을 순 없다. 권위에 순응하는 남자 캐릭터였다. 부대장 영민(박희순)은 콤플렉스가 많은 남자다. 대장에 대한 2인자 콤플렉스와 신체적인 콤플렉스가 있다. 눈이 나쁘고 체력이 약해서 더 지지 않으려고 탐험가가 됐다. 도형과는 달리 탐험 그 자체보다는 탐험으로 얻어지는 크레딧이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편집 단계에서 이상 네 캐릭터에 대한 디테일을 생략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제일 중요한 캐릭터는 도형과 민재다. 그들의 도달 불능점은 뭔가? 
민재는 도달 불능점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진짜 막내, 아직 남자가 되지 않은 소년이다. &lt;플래툰&gt;의 찰리 신 캐릭터처럼 전쟁 자체는 모르고 전쟁의 추상적인 면만 아는 캐릭터다. 반면 도형은 전쟁 자체인 사람이다. 도달 불능점에 가야 한다는 목표가 강한 게 아니라 어쩌면 이 사람 자체가 ‘인간 도달 불능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거는 &lt;주먹이 운다&gt;의 류승완 감독이 좋아한 설정인데, 도형이 애 죽고 이혼당하는 데 불치병까지 걸려서 죽으러 남극에 왔다, 이런 설정으로 갈까도 생각했다. 너무 심하다 싶어 다소 객관적으로 그린 거다. 도형은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도달 불능점에 간다고 해서 어떤 욕망을 채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소시민적인 욕망도 명예도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어디에도 기댈 데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지점에 가야 한다. 그게 광기다. 광기라는 게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면 광기가 아니다. 도형이 거기 가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둥 여기서 평생 살아왔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다른 대원들을 설득하는데, 이런 게 광기다. 그 사람의 세계 속에선 옳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말도 안 되는 거. 
도형은 왜 미쳐갈까? 남극 때문인가? 아들에 대한 기억 때문일까? 초반에 발견된 영국 탐험대의 일기가 미칠 것을 예상했으니까 미친 건가? 개연성이 부족한 거 아닌가? 
일기는 설정상 드라마의 실체로 유도하는 ‘매거핀’이라 생각했다. 인간의 광기를 그린 원형적인 이야기라 관객에게 따라갈 수 있는 어떤 요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시작부터 미쳐 있는 사람이다. 처음에 도형은 크레바스의 조그만 구멍을 쳐다보다가 나중엔 빙벽 내부로 들어가서 큰 구멍을 쳐다본다. 남극이 인체 같은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도형이 자궁 속으로 들어간 듯한 의도로 연출했다. &lt;모비딕&gt;에서 노선장 에이허브가 모비딕과 함께 사라지는 것처럼, &lt;폭풍 속으로&gt;에서 파도타기 선수 패트릭 스웨이지가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처럼 도형이 남극 속으로 사라져가는 느낌을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원형적인 주제는 어떤 스토리냐에 따라 본질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전형적인 상투성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lt;남극일기&gt;가 전형적이라는 생각은 안 하나? 
전혀. 전형적이라면 투자가 빨리 됐겠지.(웃음) 전형적으로 안 가려고 온갖 몸부림을 한 것이 이 영화다. 난 이 영화를 여기까지 끌고 오면서 충무로가 상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형성의 파시즘 같은 걸 느꼈다. 이런 전형적이지 않은 스토리텔링을 하느라 거의 인종차별주의에 가까운 핍박을 받았다. 그러면서 과연 무엇이 상업성을 보장해 준다는 거지? 그냥 관객의 무의식에 익숙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찍는다면 뭐하러 작가와 감독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런 고민을 했다. 난 그런 전형성에 맞춰가는 감독이 되고 싶지 않았다. 어떤 리뷰는 영화가 미스터리라고 해놓고 촘촘하지 않다고 지적하던데, 나는 이 영화를 미스터리로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미스터리라는 것도 기본적인 틀이 있을 뿐이지 어떤 규칙을 꼭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난 관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충분히 단초를 던져주면서 온 것 같다. 
[[1]]단초를 던진 다음에 적절한 시점에서 결론을 내주고 보상을 줘야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기존의 리듬을 의도적으로 타지 않은 건가? 
솔직히 난 그 리듬을 잘 모른다. 물론 흉내낼 순 있겠지. 하지만 체화되지 않은 걸 사용하면 ‘구경하는 연출’이 된다. 신인감독 영화들에서 그걸 많이 보면서 난 안타를 일곱 개, 여덟 개 맞아도 승리 투수가 되자는 마음으로 찍었다. 엄청난 스펙터클도 중요하지만 난 표정의 스펙터클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상업적으로 부담이 되는 규모의 영화가 됐지만, 이 시나리오를 조그만 고치면 연극으로도 올릴 있는 소극이라고 생각한다. 
감독한테 따질 건 아니지만, 그럼 뭐 하러 70억 원을 들여 이런 영화를 만드나? 
감독한테 따져도 된다.(웃음) 왜냐하면 그건 감독으로서 또 다른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얘기를 몇 천 명의 관객에게 보여 주는 작은 연극으로 만들기보다는 관객에게 볼거리도 주면서 이런 주제에 대한 공감대를 키우고 싶은 야심이 있었다. 한국영화가 도전하지 않은 어떤 영역에 일천한 신인감독이 그걸 끝까지 해냈다는 거, 그게 나의 도달 불능점이었다. 이 영화에는 단 한 컷도 내가 동의하지 않은 컷이 없다. 차승재 대표나 송강호 선배가 뭐라 해도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바꾸지 않았다. 끝까지 지켜왔다는 거에 자부심을 느낀다. 
&lt;남극일기&gt;는 이기심과 탐욕이 부른 과도한 집착을 경계하는 영화다. 그러면서 막상 당신은 과도한 집착을 보이며 이 영화를 완성한 건가? 뭔가 역설적이다. 
재미있는 시각이다.(웃음) &lt;남극일기&gt;는 도달 불능점이 거대한 환상이라고 말하는 영화지만 &lt;남극일기&gt; 뿐 아니라 모든 야심적인 목표를 가진 영화들은 다 그런 거대한 환상을 좇았다. 범인을 잡지 못하는 형사 영화 &lt;살인의 추억&gt;도 그렇고. 그런 거대한 환상이 의미가 있다면 관객들이 반응을 해주면서 영화 자체가 생명력을 가질 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lt;남극일기&gt;를 좋아할지 모르겠다. 그건 영화의 운명이다. 
당신의 단편영화 &lt;소년기&gt;는 부자관계에 있어 ‘반역 모티프'를 공포 장르로 풀어냈는데 &lt;남극일기&gt;도 그런 면이 있다. 
실제의 나는 닭살스러울 정도로 단란한 가정에서 컸다. 일찍 결혼해서 딸애가 있고 내 여동생도 일찍 결혼해서 애들 쑥쑥 낳고 잘산다.(웃음) 사람들이 &lt;소년기&gt;를 보고 자서전적인 얘기냐는 질문을 많이 했는데 주인공이 뚱뚱해서 그렇지 내가 할아버지 죽이고 그런 거 전혀 없다.(웃음) 다만 그런 얘기에 관심이 많은 거 같다. 나한테는 기존의 가치나 권위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 반에서 거의 꼴찌하고 지진아 반에 들어가기도 했다. 난 우등생들이 쉽게 적응하는 규범들을 따라가는 게 너무 힘들었다. 군대 가서 줄 맞춰 총검술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기절한 적도 있었다. 그게 영화에선 반역의 모티프로 드러나는 거 같다. 
&lt;남극일기&gt;는 민재의 시선으로 시작해 민재의 시선으로 끝난다. 하지만 중간중간 민재의 시선뿐 아니라 탐험대를 지켜보는 관찰자의 시점, 남극을 인격화한 전지적인 시점이 혼재한다. 
내 모든 단편영화의 시점은 1인칭이었다. 하지만 &lt;남극일기&gt;는 1인칭과 3인칭이 혼재한다. 그게 또 나한테는 도전이었다. 위에서 바라보는 명백히 전지적인 시점이 있는가 하면, 텐트 밖에서 창문을 통해 가까이 지켜보는 것 같은 3인칭 시점도 있다. 그런 시점들이 부딪힐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점이 일관성이 있어야 된다는 걸 누가 정한 건가, 라는 의문이 있었다. 남극이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어디든 침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시점을 섞어 썼다. 혼동된 시점을 통해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lt;멀홀랜드 드라이브&gt;같은 영화를 보면 영화를 이해한다는 느낌보다 영화를 체험하게 된다. 영화를 볼 때는 혼동스럽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이상한 세계에 빠졌다 나온 듯한 쾌감이 있다. 관객에게 그런 체험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시점을 정리해 편하게 이해시키기보다는 다른 효과를 노리기 위해 시점을 섞었다. 
중간중간 자연스런 편집 흐름에서 이탈한 기법들이 등장한다. 
김선민 편집 기사가 &lt;색즉시공&gt;부터 &lt;살인의 추억&gt;까지 다양한 영화를 작업한 사람이다. 그중에서 &lt;남극일기&gt;가 가장 독특하다고 하더라. 처음 김선민 기사에게 보여 줬던 영화가 &lt;인썸니아&gt;와 &lt;레퀴엠&gt;이었다. 일견 정적으로 보이는 영화지만 점프 컷이나 강렬한 인터 컷이 섞여 있고 후반으로 갈수록 그게 더 과해진다. 난 &lt;남극일기&gt; 이야기가 원형적이고 클래식하다 하여 편집을 정공법으로 가기보다는 모던하게 해보고 싶었다. 초반에는 약간씩 점프 컷이 들어가다 나중엔 과격한 인터 컷이나 감각적인 장면 전환을 많이 썼다. 영화 후반, 민재가 영국 탐험대의 시체를 보다 영민한테 가는 장면에선 피 흘리는 장면이 인터 컷으로 짧게 들어간다. 그걸 편집실에서 보는데 스탭 중 한 명이 녹화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다.(웃음) 편집 기사도 도형과 성훈을 구별 못하는데 오죽했겠나. 그래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렵다고 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편집이 관객의 무의식에 잔상을 남겨서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불쾌한 효과를 내길 바랐다. 그게 영화의 목표였고, 내가 원하는 리듬이었다. 
[[2]]불쑥 끼어 드는 하얀 손이나 붉은 피 같은 인터 컷은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기 위해서였나? 
흰 눈에 피가 뿌려지면서 쫘악 스며드는 느낌, 그건 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최초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그 장면이 한 컷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집착이 있었다. 그 컷에 대해 ‘저거 뭐야 도대체?’ ‘괜히 무섭게 하려고 피 뿌리는 거 아냐?’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난 그 컷 하나가 80년 전 영국 탐험대가 서로 죽고 죽이면서 남극에 흘렸던 피, 그리고 지금의 탐험대가 앞으로 남극에 흘리게 될 피의 이미지를 ‘플래시백’과 ‘플래시 포워드’ 두 가지 기능 모두를 통해 읽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은 일관된 거다. 남극이 도형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게 악마의 손이라면 생뚱맞지만 도형한테는 아들의 손이고 남극의 손이다. 그래서 관객에게만 보이고 대원들한테는 안 보이는 거다. 
그 손에 대해 관객들이 갖는 배신감이 있다. 예를 들어 &lt;알포인트&gt;에서는 희미한 귀신의 존재가 나중에 여자로 밝혀지는데, &lt;남극일기&gt;에선 결국 안 밝혀진다. 
난 &lt;알포인트&gt;에서 그게 밝혀지는 장면이 제일 싫었다.(웃음) 
정말 모든 컷을 원하는 대로 찍고 붙인 것 같다. 얼마나 만족하나? 
배우 연기에 대해선 90%, 영화를 관객에게 체험시키고 싶었다는 면에선 60%. 
나머지 40%는 뭔가? 
더 영화적인 언어로 설득하고 싶었다. 남극을 캐릭터로 체험시키기 위해 여섯 단계로 구상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처음에는 평온한 설원의 모습으로 가다가 나중에 도달 불능점은 천국인지 지옥인지 모르는 그런 어마어마한 낭떠러지 같은 걸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제작 여건상 불가능했다. 그런 부분이 목표치까지 갔다면 심리 체험극 느낌을 더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왕 거대한 환상이라면 더 무시무시한 거대한 환상을 해볼 수 있는 건데 이 제작비와 여건에선 이 정도 밖에 표현할 수 없었다. 
그래도 대단한 성과다. 특히 CG가 뛰어났다. 
내 머릿속에 있는 비전을 시각 효과 회사 EON이 최선을 다해 백업해줬다. 도달 불능점 밤 장면은 모두 양수리에서 소금 뿌리고 찍었는데 그 정도로 나온 게 대단하다. 합성 장면 중엔 뉴질랜드, 한강 고수부지 스케이트장, 강원도 피닉스 파크, 양수리 세트에서 나눠 찍은 후 붙인 게 있다. 미친 짓이지.(웃음) 그런데 영화를 보면 표가 나지 않는다. EON에겐 그게 도달 불능점이었을 것이다. 어제 &lt;반지의 제왕&gt;을 했던 뉴질랜드 웨타 디지털의 관계자가 왔다. EON에게 몇 명이 했나고 물어봐서 8명이 했다고 하니까 기겁을 하더란다. 그러면서 웨타로 오라고 제의를 했단다. 정성진 팀장이 그런 제의받고도 안 가겠다고 했다. &lt;남극일기&gt;가 그런 예술가로서의 투지를 한국영화에서 도전해볼 수 있다는 기회를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감독으로서 기쁘면서 고맙다. 
어떤 면에서 &lt;남극일기&gt;는 모든 스탭들에게 도달 불능점이었을 것 같다. 
4, 5년 전 35mm 단편영화 찍고 2년 전 DV 작업을 했던 나로선 실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지금 한국영화 퀄리티의 상당 부분이 스탭들의 엄청난 노력과 장인 정신에서 나온 것 같다. 자부심을 가질 정도로 정말 뛰어나다. 난 그런 노력이 참 신성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정훈 촬영감독도 &lt;친절한 금자씨&gt; 촬영 일정 때문에 마지막 5% 정도를 못 찍고 떠났다. 감독으로서 서운함이 적지 않았지만 후반 작업하면서 보여 준 열정과 집요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가 디지털 색보정에 신경을 많이 써서 이 영화가 주는 히스테리컬한 느낌이 잘살았다. 
드디어 첫 장편영화를 완성했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나? 
장편영화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더라. 정말 외로웠던 순간도 있었지만 든든한 마음으로 작업한 기간이 길었다. 다 스탭들 덕이다. 앞으로도 나보다 뛰어난 스탭, 그게 확실히 ‘뜬’ 스탭이라기보다는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EON이나 황인준 미술감독처럼 잠재력과 열정이 큰 스탭들과 함께 영화를 하고 싶다. 
사진 김춘호 기자<BR>한승희 기자 ]]></description><image><url>http://imgnews.naver.com/image/074/2005/05/25/people_2121_L.jpg</url><link>http://blog.aladin.co.kr/vara/934426</link></image></item><item><author>바라</author><category>냄새나는 극장</category><title>남극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vara/926003</link><pubDate>Tue, 01 Aug 2006 16: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vara/92600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242888&TPaperId=92600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5/92/coveroff/895924288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74177395&TPaperId=926003"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7/15/coveroff/907417739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남극일기는 지독한 영화이다. 굳이 5년간의 제작 기간, 85억원이라는 제작 액수 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임필성은 첫 장편 데뷔를 찬사와 악평의 양극화된 관중들과 함께 맞게 되었고, 송강호는 여전히 건재를 과시했다. 그의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내가 본 한에서는 가장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유지태도 나름대로 잘 어울리는 배역을 맡긴 했지만, 송강호에 가려진 탓인지 또는 자신의 연기력이 덜 만개한 탓인지 어쩐지 한 끗이 부족한 느낌이었다.&#160; 
&#160;
남극일기는 또한 숭고한 영화이다. 여기서의 숭고란 바로 ‘미’와 대비되는 칸트적 의미에서의 숭고라고 해보자. 그것은 물론 일단 롱기누스 이래로 이해된 바와 같이 엄청난 크기, 무제한적인 대상의 ‘양’적 형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을 가리킨다. 광막한 빙하, 남극. 그리고 ‘도달불능점’으로의 무한한 탐험이 주는 막막함은 그 크기(자본뿐 아니라 스펙타클 자체가 갖는)에서부터 관객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숭고는 단지 남극(실제로는 뉴질랜드이지만) 자체의 속성에서만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남극일기의 영상들이 숭고한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부적합성, 우리의 이성에 온전히 현시되지 않는 이념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물론 쾌와 불쾌의 교차, 그리고 이러한 낯선 부정적 쾌를 안겨주는 영화가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만약 남극일기가 단지 수학적 숭고에 그친 것이었다면 아마 그저 그런 재난 영화의 범주에 넣는 것 정도로 지나갈 수 있는 영화라고만 하면 족할 것이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크기의 숭고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이러한 할리우드적 숭고와의 단절을 이루는 것은 바로 이 영화가 역학적 숭고-우리의 정신을 근본적으로 문제삼는-의 차원으로 옮아가는 지점에 있다. 
&#160;
“이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고 파스칼이 말했던가. 남극의 공간은 절대적으로 비어 있는 공간, 마치 무 자체인 것만 같은 공간이다. 6달은 낮만 계속되고, 6달은 밤만 계속되는 곳, 하늘은 마치 이전에, 어쩌면 태어나기 전부터 본 것만 같이 태연하고, 그 드넓은 공간을 걷고 또 걸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곳, 모든 계측기와 통신 장치가 무력화되는 곳이 바로 남극이다. 도달불능점을 향하는 6명의 대원들은 이 ‘무’와 싸워야 한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모든 가상을 걷어낸 이후 네오 앞에 펼쳐졌던 사막의 모습처럼, 남극은 모든 상징적 질서를 걷어낸 뒤에 존재하는 ‘실재’를 탁월하게 형상화한다. 아까 흘리고 간 사진과 그 옆에 난 자그마한 구멍, 한참을 헤매다가 다시 돌아오는 이 지점은 그리고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또 제자리로 돌아오는 실재이다. 언제 어디서 크레바스를 숨기고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실질적으로 6명의 탐험대를 떠받치고 있기에 실재이다. 그 자체 도달불능점이면서 그 안에 도달불능‘점’을 가지고 있는 ‘물 자체’로서의 남극은 실재이다. 그리고 이 실재에 온갖 환상과 의미가 덧붙여지는데, 이는 영화 종반에 80년전 영국 탐험대가 남기고 간 일지에서 나오는 말이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우리의 욕망이 이곳을 지옥으로 만들었다.” 무엇에 대한 욕망인가? 바로 정복과 성취와 만족을 위한 욕망이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욕구demand와는 구별된다는 의미에서 정확히 욕망desire이라고 새겨져야 마땅하다. 세계최초라는 상징,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에 가야한다는 상징에 의해 매개되어 있는 욕망 말이다.(물론 이 탐험대의 대장인 송강호, 그리고 그의 아들과도 같은 막내 유지태는 거기에 태극기 따위를 꽂으러 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사로잡혀 있는 강박증은 이 영화가 안겨주는 충격과 공포가 단지 외적 대상이 아닌 탐험대의 내부, 더 정확히는 우리의 내부에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어설픈 타협을 거부하고 끝까지 간다. 이제까지의 단서에 그친다면, 남극일기는 식상한 공포 영화의 아류가 되거나, 대자연의 엄청난 위력 앞에서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그려내는 재난 영화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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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송강호라는 캐릭터이다. 그는 대장으로서 탐험대원 6명을 이끄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다. 그런데 이 ‘아버지’라는 지위가 상당히 독특하고 애매하다. 아버지는 아버지인데 자식이 없는 아버지이다. 그는 피를 나눈 가족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탐험대원들이 유일한 그의 가족-아들들-일뿐이다. 그의 아들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었다. 엄마는? 아이의 엄마는 영화를 통틀어서 어디에서도 암시되지 않는다. 다만 이 죽은 아들의 환상은 탐험하는 내내, 아니 송강호가 살아있는 내내(탐험 자체가 그의 삶, 생명과 동일시되어 있으므로) 계속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추락하는 아들의 환상을 쫓아버리기 위해서, 아니면 그 환상 속으로 완전히 침잠하기 위해서 그는 탐험한다. (빗금쳐져 있지 않은)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도달불능점을 향해 가거나, 늘 텐트 밖에서 ‘가만히 있는’ 것뿐이다.(전진과 정지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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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버지 캐릭터는 갈수록 입체감이 증발되어 가며 그 일관된 잔혹함과 광기를 내보인다. 그는 자신의 유일한 가족인 아들을 한 명 한 명 죽여 간다. 물론 직접적으로 죽이는 것이 아니라, 도달불능점을 향한 ‘불가능한’ 탐험에 내버려 둠으로써 말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강렬한 생명력의 “원초적 아버지”는 그의 친아들이 죽었던 방식을 계속해서 ‘상연’해갈 뿐인지도 모른다. 균도 없는 남극에서 감기에 걸린 듯이, 환상에 사로잡혀서, 아들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번 죽임으로써. 나약한 아들들은 하나둘 죽어간다. 아버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전진할 뿐이다. 남극이라는 무대 위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혹독한 방치의 드라마. 이것은 적어도 ‘외관상으로’ 모노드라마는 아니다. 막내아들 유지태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지태 역시 친부모는 없다. 그저 송강호에게 매혹되어 탐험대에 합류했을 뿐이다. 이 ‘상상적’ 매혹은 기묘하게도 막내아들과 아버지의 동형성을 암시한다. 일례로, 처음 자신의 잘못으로 한 대원이 죽었을 때, 그리고 다른 대원들이 차례로 죽어 나갔을 때도 그는 구조를 요청하지 않고 탐험을 계속하는 쪽을 택한다. 대장으로부터 80년 전의 영국 탐험대원들이 남기고 간 일지를 건네받은 것도 유지태이다. 이처럼 거울의 양면처럼 자기를 비추고 재인지하는 아들과 아버지는 결국 끝까지 남는다(왜냐하면 처음부터 이렇게 되도록 연극 장치가 조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비틀려진 목적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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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와중에는 부대장으로 대표되는 아들들의 반란이 감초처럼 끼어든다. 어떤 주석가가 했듯이 후기 프로이트의 토픽을 비유하자면, 부대장의 반란은 자아붕괴의 은유가 되는 것은 억설일까? 이 반란에 아버지는 자아(자연의 빛을 한껏 받아 안는)의 안경을 부숴버리는 것으로 응수한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됐다. 자아는 알아서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린다. 동시에 초자아는 인자하게 다른 아들의 발을 자른다. 광폭한 날씨의 씬과 더불어 정신 장치에 대한 탈중심화는 보다 급진적으로 진행된다. 막내아들(이드)과 아버지(초자아)의 동형성이 보다 선명하게 발휘되는 것은 이 지점에서부터이다. 이 둘이 사실 무의식의 상이한 두 측면이라는 점에서 사실 전적으로 다른 것이 아닌 것처럼, 남은 의식의 아들들의 무덤을 지어준 뒤 둘 다 도달불능점으로의 행보를 계속한다. 그리고 일몰의 마지막 순간, 이 둘은 도달불능점에서 조우한다. 라캉이 “칸트와 함께 사드를”이라고 외쳤을 때 또한 이 목적론적 마주침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유로워져라”, 아들은 “즐겨라”를 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들과 아버지의 항이 바뀌어도 별다른 상관은 없다.) 만신창이가 된 채로, 자신의 진리는 알지 못한 채로 아들은 묻는다. 이 도달불능점이 당신에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러나 애초에 질문은 핵심을 빗나가 있는 것이 아닐까. 환상을 걷어내고 ‘가만히’ 그것만을 지속하는 충동drive 또는 향락jouissance. 그것은 만족과 불만족의 변증법, 상징적 의미망을 비껴나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탐험은 아무 것도 없는 곳으로, 선험적 이성의 변증론이 가리키는 이념의 세계로 외출하는 과정 자체, 그곳으로 가야 하기에 갈 수 있는 의무 자체에서 그 윤리성을 획득한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의 모티브는 아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죄의식을 떨쳐버리고 싶은 심리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유지태는 물론 그 과정을 알지 못한 채로, 그러나 그 숙명적 매혹을 느끼면서 그 윤리적 행위에 합류했다. 마지막 대화의 와중에 “너만은 나를 말려야 했다고”라는 말 속에서 이 두 두 남자의 동근원성은 통렬하게 드러난다. 이 ‘실재의 윤리’는 새로운 주체철학의 판본을 제시한다. 이 분열증. 아버지와 아들이 공유하는 이 분열증의 교훈은 결국 어디서 찾아야 할까.(결국 이 교훈을 찾으라는 것이 이 새로운 계몽철학의 유언이 될 것이다)아들은 구출받고 아버지는 계속 제 갈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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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남는 물음. 남극이라는 실재 속에서 실재의 윤리는 제 나름의 정당성을 찾기는 한다. 그러나 실재의 윤리학에 대해 적절한 ‘대상’을 찾아 주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왜냐하면 그 실재는 한갓 스크린 위에서, 이곳 남한이 아닌 저 멀리 뉴질랜드에서, 또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숭고를 감식하는 우리의 미감적 이념 속에서, 가상적으로만 남아있는 낭만주의적 잔재에 불과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57/15/cover150/9074177395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9074177395</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