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지
- 윤동주 -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저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은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노라고만 쓰자
잠 못 이루는 밤이면
울었다는 말은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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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밤을 지새우며 썼다 지워버린 편지에는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은 정녕 따로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보고싶다, 그립다는 말 차마 쓰지 못하고 길을 가다 문득 떠오르더라고 몇마디 적곤 합니다. 그리움이 배어 흠뻑 젖어버린 편지는 차마 붙이지 못하고 꾸깃꾸깃 뭉쳐져 버려지곤 합니다.
그 시절 차마 편지지위에 적어보내지 못한 종이보다 커다란 그리움을 오늘밤 살며시 들추어봅니다. 그 사람도 그 커다란 그리움 살며시 들춰보았겠죠?
이동원 / 가을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