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잡식성 귀차니스트의 책읽기 (바람돌이 서재) &gt; 퍼온 마이 페이퍼</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category/52797</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우리의 눈물이 얼마쯤 되면 100도씨가 될까?아니면 얼어붙어야 할까?</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4 May 2012 17:56:28 +0900</lastBuildDate><image><title>바람돌이</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53602193463609.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category/52797</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바람돌이</description></image><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4.3 사건의 진실...</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111843</link><pubDate>Mon, 07 May 2007 0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111843</guid><description><![CDATA[제주의 구석구석을 다니다보면 만나게 되는 역사의 흔적이 있다. 4.3학살사건이다. 1948년 4월3일에 시작된 군인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한 양민학살사건이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관광지, 제주도 곳곳이 비극의 공간이었던 4.3학살의 현장이다. 녹색순례 길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록 9일간이지만 직접 발품을 팔아 제주도 중산간을 비롯한 여러 곳을 살펴보는 일정이라 4.3학살현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순례단 중에서 20-30대의 젊은층은 4.3이라는 역사에 대해 막연하거나 모르는 경우도 있어서 새롭게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계기도 되었다. 녹색순례 7일째, 본격적으로 4.3학살의 현장을 살펴보았다. 유사이래 제주도 최대의 비극이자 아픔의 현장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전4.3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제주사람 강태권씨가 생생한 안내를 해주었다.&nbsp;&nbsp; <BR><BR>










▲ 제주는 마을 중심에 정자목(팽나무)을 심고, 집 앞에 난을, 집 뒤편에는 대나무를 심어 키움. 영남동 등 사라진 마을 집터와 마을 중심은 이를 통해 알 수 있음. 영남동 마을을 외롭게 지키는 정자목과, 마을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BR><BR>순례단이 아침에 만난 4.3학살의 현장은 서귀포시 인덕면 광평리였다.&nbsp;&nbsp;제주에서 행정구역상 가장 높은 해발 고도에 위치한 마을이다. 4.3 사건 때 한림읍, 안덕면, 대정읍 등의 지역주민들이 이곳을 거쳐 한라산으로 피신하였다. 토벌대들도 이곳을 거쳐 진압에 나섰다. 광평리가 왜 주요 길목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곳의 지형을 알아야 한다. 서귀포 동쪽 지역의 지형은 초원과 같은 형태이지만 서귀포 서부지역은 완전한 밀림지역이기 때문에 이곳이 주요 길목이 된 것이다. 따라서 이곳 광평리도 4.3의 아픈 기억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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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평리, 이곳을 통해 한림, 대정, 안덕 주민들이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숨어 들어갔다.<BR><BR>녹색순례 구간마다 4.3 사건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BR>순례 3일째 지나간 성산일출봉 옆 너른바위를 관치기라 부른다. 4.3 사건 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학살을 당했고, 그래서 무수한 관을 그곳에서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BR><BR>










▲ 성산 일출봉 옆 너른바위(일명 관치기). 이곳은 4.3 사건 당시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했고, 이곳 성산읍에서 무수한 관을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BR><BR>순례 4일째 지난 성읍민속마을 바로 아래인 표선면 가시리의 지미왓 인근의 새가름마을도 그러한 곳이다.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새가름마을은 가시천 동쪽에 형성되어 신설동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320년 전 오씨가 중심이 되어 만든 마을이다. 20여 가구에 100여명이 조, 메일, 콩 등 농사를 짓고 목축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던 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15일 마을 전체를 군인들이 불질러 없애고 주민들을 표선국민학교에 수용시켰다. 그중 마을 주민 17명이 속칭 버들못 근처에서 처형당하는 등 마을 주민 25명 4.3사건으로 희생당했다. 49년 2월 가시리 현재 마을사무소가 있는 곳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돌아와서 새로이 마을을 일으켰다. 새가름에도 2가구가 들어와 옛마을에 생기를 회복하려고 노력했으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마을을 떠나면서, 새가름 마을은 영원히 사라졌다. 가시리에 인접한 동백마을 신흥리는 더 큰 피해가 있었다. 4.3학살 때 마을 주민 140여명이 사망하였다.<BR><BR>










▲ 4.3 사건 당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살당해 마을의 흔적만 남고 사람이 살지 않은 남제주군 표선면 새가름<BR><BR>순례 6일째, 한라산 남쪽을 관통하는 산록도로 근처에도 곳곳이 4.3의 피해현장이다. 탐라대학교와도 그리 멀지 않은 서귀포시 영남마을이 대표적이다. 화전마을이었던 영남마을은 메밀, 조, 콩, 밭벼 등을 심어서 먹고사는, 법 없이도 살아가던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일제 때부터 애국심도 뛰어나 1918년 마을 주민들이 법정사항일운동에 참여하여 6명이 구속되었고 이중 김두삼(당시 25세)은 옥사하였으며, 후에 독립유공자로 추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마을도 4.3학살을 피해가지 못했다. 48년 11월 20일 마을주민 60명 가량이 군인에게 학살당했다. 한집안 14명이 몰살을 당하기도 했고, 10세 미만의 어린아이도 18명이 죽었다. 4.3은 양민학살이었기 때문에 노인과 부녀자, 심지어 어린이도 많은 피해를 당했다. 인구비례로 가장 피해가 큰 마을이었던 영남동은 법정 지명만 남은 채, 행정으로는 이미 그 의미가 사라졌다. 이곳도 사라져버린 마을이 된 것이다. 이외에도 4.3의 현장은 제주도 전역에 널려 있다. 관광객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현장도 예외는 아니다. 제주공항도 정방폭포도 학살의 현장이었다. <BR><BR>










▲ 서귀포시 영남동 마을, 4.3 이전 마을 사람들이 우물로 사용하던 자리. 이제는 연못으로 변해버렸다.<BR><BR>5.10단선을 반대해서 일어난 4.3 학살의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시기는 4.3이 일어난 48년 4월에서 약 6개월이 더 지난 그해 초겨울부터다. 1948년 11월 15일부터 이듬해 1949년 3월까지 중산간지대 마을은 초토화 되었다. 전체 4.3사건의 사망자 중 약 80%가 이 시기에 죽었으며, 70여 개 중산간 마을 중 성읍, 애월읍 정도가 예전 모습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4.3학살은 제주도민들에게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제주의 정체성속에 한의 정서로 뚜렷하게 남아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속으로 흐르는 정서가 더 뚜렷한지도 모른다. 곳자왈 아래 숨골을 따라 흐르는 지하수처럼 제주의 가슴에 잊혀질 수 없는 정서가 되었다. 4.3의 가장 큰 상처는 저항할 능력이 없는 무고한 양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점이다. 대부분의 제주도 사람들에게 4.3은 비슷하게 인식된다. 국가에 의해서 그것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는 군인과 경찰에 의해서 참혹하게 학살당한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육지에서는 이념의 잣대로 다르게 해석할지 몰라도, 적어도 제주도에선 4.3에 대한 1차적인 사건의 규정은 끝났다. 4.3은 이념의 대립이 빚은 결과가 아니다. 육지에서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제주에서 4.3은 군인과 경찰이라는 공권력에 의한 무자비하게 진행된 양민학살이었다. 죽어간 자들의 죄라고는 중산간지대의 마을에 살았다는 단 한가지 그 이유뿐이다. <BR><BR>










▲ 서귀포시 영남동 마을 사람들이 학살당한 장소 전경<BR><BR>순례단이 오후에 방문한 곳은 동광육거리다. 여섯갈래의 길이 교차하는 제주 서부의 길목이자 교통의 요지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지나가는 곳이다.&nbsp;&nbsp;지방도를 비롯한 주요도로가 지나는 곳이라 파출소도 있고, 주요소와 식당, 식료품점 등이 있다. 이곳에 4.3학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작은 공동묘지가. 그때 학살당한 주민들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가족들이 그 한이라도 풀기 위해 시체가 없는 묘소를 조성한 한 것이다. 4.3학살의 희생자들의 영혼을 쉬게 하는 헛묘이다.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807번지-4에 자리 잡고 있다. 동광리 헛묘는 7기는(2기는 합장묘) 동광리 출신 임문숙일가 9명의 영혼을 수습한 묘지다. 헛묘는 시신을 찾지 못하였을 때, 생전에 입던 옷이나 유품 등을 넣어 만든 분묘이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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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광리 마을 초입에 만들어진 4.3 유적지 ‘헛묘’에는 당시 처형당한 동광리 주민 임문숙씨 일가 9명의 영혼을 수습한 7기(2기는 합장묘)의 묘가 있다.&nbsp;&nbsp; <BR><BR>동광리는 초토화작전이 전개되던 48년 11월 21일 국방경비대 제 9연대에 의해 온 마을이 불태워졌다. 군인들은 마을에 들어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모두 폭도로 간주하여 학살을 자행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인근 큰널궤로 피신했다. 하지만 이곳도 발각되어 또 다시 도주하였으나, 눈에 남긴 발자국때문에 한라산 영실기암 인근에서 볼레오름에 체포되었으며, 서귀포의 수용소에 옮겨져 49년 1월 22일 정방폭포에서 학살되었다. 그 때 동광리 주민들도 40여명 학살되었다. 유족들은 군인들이 무서워 시신을 수습할 엄두를 못내다가 몇 년후에야 비로소 정방폭포에서 죽은 영혼을 달래고 이곳 동광리 초입에 헛묘를 조성한 것이다. 억울한 원혼을 위로하는 듯 헛묘의 비석과 봉분 주변에는 보라색 고깔제비꽃이 피어 있었다. 순례단은&nbsp;&nbsp;동광리일대의 4.3유적지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면서 4.3이 제주의 마을공동체와 주민들을 삶을 얼마나 모질게 유린했는가를 생생히 확인했다. 동광리 비극의 정점인 큰널궤라는 굴속으로 직접 기어들어가, 주민들이 군인들의 학살을 피해서 어둠속에서 숨죽였던 현장을 체험하였다.&nbsp;&nbsp;<BR><BR>










▲ 4.3 당시 마을 사람들이 토벌대의 학살을 피해 피난 생활을 했다는 동광리에서 서북쪽으로 2.5km 정도 떨어진 도너리 오름 근처에 위치해있는 큰넓궤(궤:작은 천연동굴).<BR><BR><BR>










▲ 4.3 당시의 피난민들의 고난을 체험하기 위해 동광 큰넓궤로 들어서는 순례단원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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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사람 하나가 지나기도 힘든 비좁은 동굴 내부에서 순례단은 피난민들이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힘들었을 당시 상황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꼈다.<BR><BR>4.3의 현장은 이제 역사의 현장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인 재평가도 진행 중이며, 정부에 의한 명예회복도 진행 중이다. 제주4.3사건특별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아직 4.3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2008년에는 정부가 지원하고 제주도청이 주관하여 4.3평화공원이 조성된다. 600억 원 가량의 예산을 들여, 죽어간 양민의 영령을 위로하고 4.3학살의 역사적 의미를 인권의 차원에서 정립하자는 취지다. <BR><BR>










▲ 4.3 사건 당시 억울하게 죽어간 동광리 마을 사람들의 서글픈 사연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세운 비<BR><BR>4.3에 대한 기록과 자료가 온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인터넷 인프라가 세계최고인 나라답게 4.3에 관한 현장과 주민들의 아픔을 제대로 정리하는 것이 절실하다. 아울러 대한민국의 누구라도 인터넷으로 4.3사건의 전말과 학살의 현장, 관련 유적, 기념추모시설과 추모비, 관련자의 증언 등을 접근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4.3평화공원이 중심이 되어서 추진해야 할 일들이다. 항쟁과 폭동이라는 시각도 존재하는 현실이만, 분명한 사실의 기록은 어떤 논리와 이유에서도 미룰 수 없다. 그것을 방해하거나, 저지하는 것은 죽어간 제주양민들에 대한 또 한번의 역사적 학살이자, 4.3의 진실을 가리려는 시도다. 이것은 민족에게 역사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BR><BR>










▲ 4.3 사건 당시 토벌대 주둔소로 쓰였던 돌성이 있는 녹하지 오름(알 오름)을 오르는 순례단.<BR>










▲ 녹하지 오름(알 오름)에 올라 순례단에게 4.3 사건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설명해주는 강태권(제주도민)씨<BR><BR>해방과 건국의 과정에서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대결과 아픔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무수한 양민들이 사라져갔다. 그 대표적 사례가 제주도 4.3학살의 피해자들이다. 해방 이후 역사는 여전히 뜨거운 논란이다. 하지만 4.3사건처럼 공권력에 의해 무고한 양민 학살이 집단으로 자행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정부는 그 상처를 어루만지는 것은 물론이고 역사를 냉정히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다시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비극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nbsp;&nbsp; <BR><BR><BR>

<BR>역사의 기록을 위해 청춘을 바친 제주사람 강태권씨&nbsp;&nbsp;<BR><BR>20년 가까운 세월을 4.3의 아픔과 상처를 두 눈으로 응시한 제주사람이 있다. 작년까지 제주4.3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강태권씨다. 대학 졸업 이후 88년부터 지금까지 4.3의 학살과 피해 현장을 찾아서 답사하며 증언을 채록하고 현장을 기록하였다. 강씨는 중산간을 비롯하여 제주도 전역을 다니면서 피해자들이나 목격자들을 찾아서 이야기를 확인하고 학살의 현장을 발굴하는 연구활동을 전개하였다. 강전연구원은 4.3사건이 제주도 전역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웬만한 중산간 마을은 죄다 다녀본 셈이라한다. 88년에 제주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제주4.3학살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과 재평가에 대한 요구가 모아지면서, 제주 4.3연구소가 설립되었다. 초기에는 교사, 향토역사연구자 등이 중심되어 연구소가 운영되었다고 한다. 국민의정부 이전까지 어려운 재정 상황 속에도 제주의 한을 끌어안고 역사적 기록으로 후대에게 정확히 남기자는 의지와 소신들이 연구소의 동력으로 이어졌다. 제주 사람 누구에게나 피해갈 수 없는 4.3에 대한 현장의 발굴과 기록이라는 어려운 일들을 지난 20년 묵묵히 수행했고 그 대표적 일꾼 중 한 사람이 강태권 전연구원이다.&nbsp;&nbsp; <BR><BR>










▲ 4.3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청춘을 바친 강태권씨&nbsp;&nbsp;<BR><BR>피해자들을 만나면서 가장 어려웠을 때가 언제냐는 물음에 “처음에는 말문을 열지 않았다.가슴의 응어리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언젠가 중산간 마을에서 한 촌로를 만난자리에서 ‘알랑, 뭣헐띠’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그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면서 사연을 전해 주었다. 이 말은 제주방언으로 ‘당신이 알아서 뭐하겠느냐?’라는 의미로 달리 표현하면,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을 뜻한다. 강연구원은 “그 말이 바로 4.3살을 직접 겪은 분들의 응어리이자 맺힌 한일 것이다”라고 말했다.<BR><BR>강태권씨는 지금도 제주의 4.3현장을 방문하거나 답사하는 이들과 함께 4.3역사기행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43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책이나 자료를 넘어 직접 현장을 발굴하고 피해자들과 만나서 기록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기에 그와 4.3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은 4.3의 실체를 단박에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BR><BR>강태권씨는 “4.3은 학살의 역사이자. 공권력의 무자비한 주민학살에 대한 항쟁의 역사였다. 역사적 재평가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4.3이 온전히 평가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4.3은 통일이 되어야 온전히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라며 4.3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우리 모두의 숙제라고 이야기 했다. 4.3학살은 한국전쟁 다음으로 우리 현대사에 새겨진 가장 큰 상처다. 강태권씨는 그 역사를 그 어떤 학자보다 정면으로 끌어안고 20대에서 40대까지 이어왔다. 역사에 대해 후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그 아팠던 역사를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역사를 알리기 위해 제주도 전역을 걷고 또 걷는다.]]></description><image><url>http://www.greenkorea.org/zb/icon/member_image_box/1/pilgrim_05_04.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111843</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아이들과 가 볼 만한 전시와 미술프로그램</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109207</link><pubDate>Wed, 02 May 2007 1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109207</guid><description><![CDATA[














&nbsp;아이들과 가 볼 만한 전시와 미술프로그램




전시회 제목

전시&nbsp; 내용

장소 및 일시

입장료

전&nbsp; 화


동화책 속 세계여행

&nbsp;전세계 유명 그림책의 일러스트레이션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

성인,어린이&nbsp;

02-588-8421


&nbsp;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5월 25일까지 동화책 증정

각 8,000원


명화속 주인공 되기

&nbsp;'만종'등 명화속 주인공을 연극으로&nbsp;

사비나미술관

&nbsp;미정

02-736-4371


&nbsp;표현하는 프로그램

13일과 20일 오전 11시


제리&amp;메기 사진전

&nbsp;5가족을 모아 단체관람한 뒤 전시와

한미사진미술관 워크숍

관람료 5,000원

02-418-1315


&nbsp;연계한 작품을 만든다

31까지 매주 토요일 3-5시

참가비 5,000원


점으로부터 점으로

&nbsp;큼직한 천을 나누어 주고 김환기처럼

환기미술관&nbsp; 31일까지

15,000원

02-391-7701


추상화를 그리게한뒤 손수건 만들어 줌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부전자전 아빠닮았네

&nbsp;화가 4명과 화가의 아이들 그림 함께

북촌미술관

어른&nbsp;&nbsp;&nbsp; 3,000원

02-741-2296


&nbsp;전시.

어린이 2,000원


아프리카문화체험전

&nbsp;아프리카 조각 80여점,민예품 50여점

서울시어린이예술마당

어른&nbsp;&nbsp;&nbsp; 3,000원

　


&nbsp;으로 아이들에게 독특한 시각 경험을&nbsp;

&nbsp;(서울7호선 어린이대공원

어린이 2,000원

02-466-2606


&nbsp;준다.

&nbsp;역사내)&nbsp;

교육참가비 1만원

　


&nbsp;

&nbsp;

&nbsp;

&nbsp;참조 : 조선일보&nbsp;&nbsp;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과학향기]화초 잘 키우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마! </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93695</link><pubDate>Fri, 06 Apr 2007 13: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93695</guid><description><![CDATA[















화초 잘 키우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마! [제 585 호/2007-04-06]



 
화초를 처음 키울 때는 애인을 사귀는 것처럼 마음이 즐겁다. 나날이 커가는 모습은 앙증맞고 작은 이파리는 너무 귀엽다. 컴퓨터 앞에 앉아 야근을 할 때도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하나의 잊혀지지 않는 눈짓’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꽃집에서 사올 때의 싱싱함은 온데 없고 이파리가 축 늘어져 죽어간다. 이를 어쩌나! <BR><BR>사람만 “배탈 났어요” “감기 걸렸어요”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식물도 아플 땐 신호를 보낸다.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신호를 못 알아챈다는 것. 식물이 보내는 신호를 잘 알고 이에 따라 대처하면 사랑스런 화초를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 어떻게 식물과 더 잘 교감할 수 있을까? <BR><BR>식물은 잎이 아플 때 잎 색깔이 변하는 신호를 보낸다. 사람도 음식을 먹으면 배설을 하듯 식물도 뿌리를 통해 물과 양분을 얻고 잎으로 물을 내뿜는 증산작용을 한다. 하지만 물이 부족하면 증산이 활발한 잎의 가장자리부터 세포손상이 일어난다. 그래서 잎의 가장자리를 따라 누렇게 마르면 화분에 물을 듬뿍 줘야 한다. <BR><BR>그런데 물을 흠뻑 줬는데도 잎의 가장자리가 마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동양란을 키우면서 양동이나 물뿌리개가 아닌 분무기로 잎에만 물을 준 경우다. 난은 일반 식물이 잔뿌리를 통해 물과 양분을 얻는 것과 달리 특수하게 생긴 ‘허브’란 조직에 물을 담아 사용한다. 일종의 물탱크에 물을 담아놓고 사용하는 전략이다. 이 때문에 난은 한번 물을 주더라도 뿌리가 흠뻑 젖도록 줘야 한다. 오히려 조금씩 여러 차례 나눠주는 것은 안 주는 것만 못하다. 보통 난과 식물은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 뿌리가 물에 잠겼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줘야 한다. <BR><BR>반면 잎이 누렇게 변하긴 하지만 가장자리를 따라 마르는 것이 아니라 잎 끝에서부터 누렇게 펴지기도 한다. 이럴 때는 물이 부족한 게 아니라 양분이 부족해서다. 식물체를 구성하는 주요 양분 가운데 질소가 부족하면 광합성을 하는 엽록소가 파괴돼 초록색을 만드는 색소가 줄면서 누렇게 변한다. 가까운 꽃집에서 질소가 포함된 깻묵비료를 구입해 토양에 넣어주면 낫는다. <BR><BR>잎만 아픈 것이 아니다. 뿌리도 아플 수 있다. 하지만 흙 속에 파묻힌 뿌리는 어떻게 신호를 보낼까? 뿌리가 아플 땐 잎이 오그라든다. 경우에 따라 건조한 토양이 문제일 수 있지만 습한 토양이 원인인 경우가 더 많다. 물과 양분을 흡수하는 뿌리는 숨도 쉬기 때문에 뿌리가 물에 포화상태로 잠기면 뿌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병충해에 취약하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익사하게 되는 원리와 같다. <BR><BR>고온 다습할 때는 미생물이 번식할 수 있다. 장마철이면 식중독에 걸리기 쉽듯 화초도 뿌리가 썩거나 잎이 병들 수 있다. 잎에 생긴 어두운 반점은 병원균이 뿌리에서 잎으로 올라와 퍼진 탄저병일 가능성이 높다. 얼룩송아지처럼 잎의 곳곳에 검은 반점이 돋아났다면 가까운 화원에서 관련된 약제를 구해 뿌려줘야 한다. 사람도 어릴 때부터 시기에 맞춰 예방접종을 맞혀야 하듯 화초를 구입할 때도 식물의 종류에 맞게 뿌려줘야 할 약제는 없는지 물어보는 것이 좋다. <BR><BR>동양란의 경우 뿌리와 잎 사이의 ‘벌브’라는 조직에 병이 생길 수도 있다. 동양란은 화분이 자갈로 깔려있어 물이 잘 빠지지만 벌브가 토양에 묻혀 있으면 미생물이 쉽게 침입해 뿌리썩음병이 발생한다. 벌브가 토양에 묻혀 있지 않도록 주의하고 썩은 뿌리는 잘라내고 약제를 뿌려줘야 살 수 있다. <BR><BR>벌레가 끼는 경우도 있다. 처음에 구입할 땐 애인처럼 달콤한 향기를 내뿜고 아기처럼 야들야들 귀엽던 화초도 지저분한 곤충이 생겨나면 보고 싶지 않아진다. 그렇다고 기다려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니 속히 해결해줘야 한다. 대부분 실내 습도는 50% 이하로 진딧물과 흰털솜깍지벌레 같은 곤충이 살기에 쾌적한 환경이다. <BR><BR>진딧물은 잎과 줄기, 꽃 등 식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끈적한 배설물(감로)을 남긴다. 배설물은 주변에 다른 곤충을 불러 모으고 잎을 검게 만드는 그을음병이 생기게 한다. 따라서 진딧물이 눈에 띠면 바로 약제를 뿌려줘야 손상을 최대한 줄일 수 있다. 진딧물이 생겼다는 건 그만큼 주인의 애정이 식었다는 증거다.잎의 뒷면에 하얀 솜털이 보이면 식물에서 돋아난 털로 여기기 쉽지만 사실은 흰털솜깍지벌레가 모여 있는 것이다. 흰털솜깍지벌레가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 얼룩이 진다. 주로 벤자민 고무나무, 행운목 같은 관엽식물에서 볼 수 있고 근처 나무로 잘 번진다. 걸레로 닦아주면 겉보기에는 효과가 있지만 영구적인 치료는 될 수 없다. 화초 전체로 퍼지기 전에 해당 곤충에 맞는 약제를 뿌린 후 가습기를 틀거나 분무기로 물을 주면 효과가 있다. <BR><BR>화초를 키울 때 가장 어려운 일은 ‘물주기’일 것이다. ‘특히 얼마나 자주 줘야 하나’가 가장 큰 질문이다. 정답은 없다. 왜냐면 같은 품종이라도 자라는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힌트를 하나 가르쳐 주겠다. 바로 토양의 수분상태를 파악하면 물을 주는 시기와 양을 조절할 수 있다. <BR><BR>일단 나무로 된 이쑤시개를 2~3cm 깊이로 흙에 꽂아보자. 이쑤시개를 꽂고 30분 뒤 꺼냈을 때 이쑤시개가 1cm 이상 젖어 있다면 뿌리가 흡수할 수 있는 수분이 있다는 표시지만 그 미만이라면 물을 줘야 한다. 또 손가락으로 화분의 흙을 꾹 눌러서 들어가지 않으면 토양이 메말랐다는 증거다. 더 확실한 방법은 손으로 흙을 쥐어보는 것이다. 만약 흙을 쥐었을 때 모양이 어느 정도 유지되면 수분이 충분하므로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 <BR><BR>또 물주는 방법도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식물에 물주는 요령을 몰라 꽃이나 잎 등 아무 곳에나 주고 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흙에만 주도록 하자. 꽃에 물을 주면 꽃봉오리가 떨어지거나 꽃이 빨리 시든다. 잎과 잎 사이처럼 주름진 곳에 물을 주면 썩을 수도 있다. 잎에 먼지가 끼었다고 물을 뿌리지 말고 물을 묻힌 부드러운 수건으로 닦아주자. <BR><BR>식물 역시 살아있는 생명이기 때문에 주인의 관심과 손실로 자란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면 식물도 삐질 수도 있다. 나무 심고 가꾸기 좋은 계절이다. 간략하게나마 화초를 키우는 요령을 살펴봤다. 내 손으로 아픈 화초를 고치고 잘 키워낼 자신감이 조금은 생기지 않았는지? (글 : 서금영 과학칼럼니스트)]]></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대단한 책이 또하나 나오다 -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 청소년과 함께 살아숨쉬는 21세기 대안교과서]</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93114</link><pubDate>Thu, 05 Apr 2007 13: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931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1761&TPaperId=109311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90/42/coveroff/895862176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1761&TPaperId=10931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 청소년과 함께 살아숨쉬는 21세기 대안교과서</a><br/>김육훈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04월<br/></td></tr></table><br/>김육훈 샘이 또 한건 했다. 어느 시절에 이런 작업을 했나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책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이름 석자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한다(너무 심한가 -.-;;;) 하여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가 이 책의 서문에 올린 글이라고...
<BR>1.<BR>“차라리 독립운동이 없었으면 좋겠다?”<BR>언젠가 교과서로 독립운동사를 공부하던 학생이 한 말이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이들의 역사가 이렇게까지 읽힌다는 것은 정말이지 가슴 아프다.<BR>수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지만 사람의 숨결도 사건의 역동성도 느끼기 어려운 교과서.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을 알고 싶은 지 관심 없이 그저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무뚝뚝하게 풀어놓은 교과서가 가져온 비극이다. <BR>아이들은 한 페이지에도 수없이 등장하는 인물과 그들이 속했던 단체를 암기하는데 급급하다. 맥락이 설명되지 않은 수많은 사건의 나열 속에서, 아이들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여러 갈래로 독립운동을 했는지 원망스러운 마음도 일어날 듯하다.<BR>교과서가 늘 가까운 곳에 두고 싶은 소중한 역사책일 수는 없을까? 편하게 읽다보면 어느 새 그때 그 현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없을까? 그때 그 곳에서 일어난 과거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만들려던 목소리를 되살리고, 새로운 미래를 탐색하는데 도움되는 독서는 과연 불가능할까?<BR><BR>2. <BR>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앞에 던져질 그 무엇이 아니다. 미래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가,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땀흘리며 만들어가는 것이다. <BR>오늘 우리가 사는 현재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그렇게 주어진 듯 보이는 현재도,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여 있다. 역사 공부는 그들의 흘린 땀과 눈물을 기억하고, 그들의 걸음걸음에 담긴 의미를 지금 다시 살려보는 과정이다. <BR>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을 다루는 근현대사는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그 동안 우리가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우리가 걸어온 길과 가지 않은 길을 확인하는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새로운 미래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과거야 말로 오래된 미래가 아닌가.<BR><BR>3. <BR>‘살아있는 교과서’라 이름붙인 것은 교과서가 독자를 향해 살아있어야 한다는 소망을 담고 싶어서였다.<BR>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글을 쓰려 했고, 여러 종류의 시각자료를 잘 디자인하여 보는 것으로만 시대와 삶을 읽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단원의 도입에서 마무리까지, 책의 처음에서 끝까지 일관된 시각을 유지함으로써 책 읽기가 생각하기로 이어지길 바랬다. <BR>우리 근현대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과 사람,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분명한 주제의식-큰 흐름 위에 배열하기는 쉽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무리한 곳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큰 흐름을 이해하고, 인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교과서여야 한다 생각하고 용기를 냈다. <BR>‘살아있는 교과서’란 이름에는 역사가 살아있어야 한다는 소망도 담겨있다. 이 책에 실린 모든 이야기는 질문을 담고 있다. 모든 단원에서 한국사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살피고, 다른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보려는 꼭지를 담았다. 단원의 끝을 ‘과거를 향해 질문을 던지다’는 꼭지로 매듭한 것도 그래서다. <BR>역사는 오늘 이 곳에서 살아있어야 한다. 역사 공부는 과거에 대한 지식을 얻는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해 자신을 향해, 그리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이들과 함께 토론의 장을 마련하는 과정이어야 한다.<BR><BR>4. <BR>이 책의 단원 구성은 교과서나 흔히 보는 근현대사책과 조금 다르다. 국권을 상실한 1910년이 아니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구성을 기준으로 단원을 나누었다. 많은 책이 1945년 이후 역사를 한 단원으로 하거나 매 10년을 한 단원으로 삼는데 비해, 이 책은 해방에서 1960년 무렵까지를 한 단원, 1980년대 후반까지를 또 한 단원으로 삼았다. <BR>근현대사의 시기 구분을 새롭게 해본 것이다. 근대와 현대를 민주주의란 일관된 흐름으로 파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단원은 새로운 국가 체제를 모색하고 신분제를 폐지하는 과정, 둘째 단원은 전제 군주제가 지양되고 민주공화정에 합의하기까지, 셋째 단원은 일제와 싸우며 민주공화정의 내용을 탐색하는 과정을, 넷째 단원은 민주주의의 제도화와 분단이 이에 미친 영향을, 다섯째 단원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는 과정과 그 특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BR>민주주의, 공화주의야말로 오랜 세월의 분투를 통해 달성한, 그래서 어느 누구도 되돌이킬 수 없는 우리 모두의 현재임을 확인하고, 민주공화국이란 무엇인지를 끊임없는 성찰의 대상으로 삼자는 뜻에서였다.<BR>결과적으로 정치&#8228; 경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으나 일상의 삶과 관련된 사회&#8228;문화 관련 내용도 비중 있게 다루려 하였다. 과학기술과 삶의 변화, 한국사와 세계사의 관련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각 분야의 이야기를 큰 흐름 속에 담으려 노력했다는 점이 이 책의 또 다른 특징이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가 각각 서로 관련을 맺으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BR><BR>5.<BR>올해로 역사교사를 시작한지 21년이다. 부족한 이 글은 그 동안 아이들과 대화하고,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자료를 찾아 공부하며, 함께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님들과 나눈 소중한 대화의 산물이다. <BR>그 동안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시로 나를 일깨워주었던 학생들, 역사교육이 조금이나마 달라졌으면 하는 희망으로 어려운 길을 함께 걸어온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집안 곳곳을 먼지투성이 책으로 채워 알러지와 전쟁을 벌이는 가족에게도 미안함과 감사의 뜻을 전한다. <BR>감히 ‘살아있는 교과서’란 말을 써도 되는지 두려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교과서는 살아있어야 하고, 역사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소망이 또 한걸음을 내딛었다는 점에서 약간의 자부심도 있다. 이 책을 읽는 이들과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에 대한 토론의 장이 열리길 소망한다. <BR><BR>2007. 4 <BR>역사교사 김육훈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90/42/cover150/8958621761_3.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621761</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저희도 천벤트 함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84255</link><pubDate>Thu, 22 Mar 2007 09: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84255</guid><description><![CDATA[안녕하세요. 저희가 알라딘에서 서재를 오픈한 지 2달이 되어갑니다. 이 곳보다 한달가량 먼저 오픈한 모사이트&nbsp;블로그에서는 오늘까지 토탈 322명 방문에 주문전화&nbsp;0건이 상황이라 거의 개점휴업인 상태인지라&nbsp;이 곳 알라딘에서 홍보를 주력하고자---넘, 속보이죠?---, 그리고 우리 서재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인사를&nbsp;하는 차원에서 저희도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 해서요. 아직은 시작인지라 많이는 못하구요, 그냥 샘플 조금만 넣어서 보내 드리려구요(아래 사진요).
<BR><BR>&nbsp; 사실, 저는 내일이나 모레쯤 알릴력고 했는데 허걱! 오늘 보니 금방일 것 같아서 급하에 올립니다.
이벤트 당첨은 일단 "total 1,000"을 제일 먼저 캡처해 주신 분과, 저희 홍수네 수호천사가 되어 주십사 하는 마음에 "total 1004"를 제일 먼저 캡쳐해 주신 분들께 보내 드릴께요.
&nbsp;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요!!!]]></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9638143278897.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84255</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저희도 천벤트 함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84253</link><pubDate>Thu, 22 Mar 2007 09: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84253</guid><description><![CDATA[안녕하세요. 저희가 알라딘에서 서재를 오픈한 지 2달이 되어갑니다. 이 곳보다 한달가량 먼저 오픈한 모사이트&nbsp;블로그에서는 오늘까지 토탈 322명 방문에 주문전화&nbsp;0건이 상황이라 거의 개점휴업인 상태인지라&nbsp;이 곳 알라딘에서 홍보를 주력하고자---넘, 속보이죠?---, 그리고 우리 서재를 방문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인사를&nbsp;하는 차원에서 저희도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 해서요. 아직은 시작인지라 많이는 못하구요, 그냥 샘플 조금만 넣어서 보내 드리려구요(아래 사진요).
<BR><BR>&nbsp; 사실, 저는 내일이나 모레쯤 알릴력고 했는데 허걱! 오늘 보니 금방일 것 같아서 급하에 올립니다.
이벤트 당첨은 일단 "total 1,000"을 제일 먼저 캡처해 주신 분과, 저희 홍수네 수호천사가 되어 주십사 하는 마음에 "total 1004"를 제일 먼저 캡쳐해 주신 분들께 보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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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자보를 이곳, 저곳으로 옮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description><image><url>http://pal.or.kr/bbs/data/al_free/nowarfilm.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81460</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ㅍ/아직도 308명이 교복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59823</link><pubDate>Mon, 12 Feb 2007 20: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59823</guid><description><![C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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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재단 소개 | 기금과 배분 | 자주하는 질문 | 1%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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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 출발일짜 : 2007년 2월 3일 
- 출발시간 : 08 : 00 ~ 13 : 20 
- 답사지 : 송애당(법천석천암각) → 쌍청당(원일당) → 정려공원(고흥유씨 정려각 및 정려비) 
- 준비물 : 중리동 세부 지도, 디지털 카메라, 볼펜, 자전거, 메모할 수첩, 장갑&nbsp; 
- 동료 : 김웅진(대덕구 구청에 근무)씨, 한남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이름을 밝히기를 꺼려해서 직책만 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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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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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학교 역사교육학과 교수로 근무를 하고 있는 친구와, 대덕구청 문화담당에 근무를 하고 있는 친구가 대전 대덕구에 있는 역사와 유적지, 유물 등을 알리려는 계획을 작년 10월부터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미 대전에 올라온 것을 알고 작업을 같이 하자는 제안에 따라 하게 되었다. 물론 맨 처음 대답은 못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왜냐하면 경주 박물관에서 부여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고, 가장 큰 이유는 박물관에 있는 나로서 나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소에 해오던 일이라 크게 어려울 것은 없었지만, 왠지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부담감이 작용을 했던지 중리동 유적지 답사를 끝낸 지금도 마음이 내키질 않는다. 대덕구 역사기행은 나로서 무척 부담스러운 작업임과 동시에 몰랐던 대전 대덕구 역사를 안다는 것 자체는 큰 기쁨으로 다가왔으므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대전시 대덕구를 알린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면 두려움이 앞서지만, 대덕구 한 시민으로서 역사기행을 시작했다. 앞으로 역사기행을 하면서 유적, 유물사진과 보고를 약식으로 작성해 알라딘 사이트에 올려놓으려고 한다(역사기행전문은 대덕구에 속한 재산이므로 책으로 발간이 될 때까지는 못 올려놓는다는 말에 개인적으로 작성을 해서 올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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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 대덕구 문화유적답사 대장정이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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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저녁 박물관에서 퇴근을 해서 토요일에 있을 유적지 답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면서 금요일 저녁이 지나고 토요일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허락한 이상 이제는 꼼짝없이 해야 한다는 친구의 협박성 말이 떠올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세수를 하고 답사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겼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 유적조사를 함께 할 친구들을 만나려고 만날 장소로 이동을 했다. 어제 저녁 차로 이동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자전거로 답사하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자전거로 대덕구 전 지역을 답사하기로 했다. 시간이 많이 든다는 단점은 있지만, 오히려 장점이 많다는 사실에 전부 동의를 하고 결정을 한 것이다. 앞으로 나, 그리고 친구들의 발이 되어줄 자전거에게 감사함을 표함과 동시에 한남대학교 정문에서 2007년 2월 3일 토요일 아침 8시 정각 맨 처음 답사할 코스로 장소를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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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사를 한 장소(松崖堂 - 雙淸堂 - 정려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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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세차게 부는 바람 때문에 이동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이미 시작된 여정인 것을...... 답사자 모두 바람이라는 방해물로 가면서 ‘왜 이렇게 바람이 세게 부는 거야’라는 불평을 해보지만 그와는 반대로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져있다. 그만큼 답사가 기다려진 모양이다. 松崖堂(송애당)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9시. 출발 장소 지역에서 만난 시간은 아침 8시였지만, 이런 저런 애기를 나누다보니 30분 넘게 그곳에 있게 되었으므로 출발시간이 그만큼 지체가 되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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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법천석총암각 - 정면에서 찍은 사진&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오른쪽 옆면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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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애당에 도착을 해 자전거에서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겨준 것은 송애당 정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법천석총암각바위’이다. 우리가 맨 처음 답사 장소를 정한 것도 이 암각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대전에 이렇게 큰 암각바위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과연 이번 유적지 답사기행을 잘 했구나하는 생각이 언뜻 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송애당을 지키고 있는 대장군처럼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을 대하니 또한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감격은 수없이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느껴본 것이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느낀 것은 차원이 달랐다. 뭐라고 할까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샘물처럼 솟아나듯 깊은 내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파손된 것이 없나 살펴본 후 걸음을 송애당에 정문으로 옮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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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 송애당을 설명하는 알림판&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송애당 왼쪽 옆에 세워진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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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담 넘어 정면을 찍은 사진&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松崖堂(송애당)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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松崖堂은 대덕구 중리동 115번지 위치하며, 유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으로 조선 효종 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경여(金慶餘, 1597-1653)선생이 丙子胡亂(병자호란) 후 벼슬을 버리고 돌아와 1640년(인조18)에 지은 별당이다. ‘松崖(송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 않는 소나무의 굳은 절개와 우뚝 선 언덕의 굳센 기상을 마음에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선생의 높은 기개와 충성심을 마음에 담고자 건물 이름을 삼은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의 크기는 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각지붕을 올렸으며, 이곳에서 당시의 유명한 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고 한다. 이 유적지를 둘러보면서 김경여 선생님의 체취를 느껴볼 수 있었다. 지난 역사를 되돌려 한번이라도 만나봤으면 한 위대한 조선의 학자이자, 유학자였던 사실을 이번 유적 탐방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너무나 큰 성과가 아니었나 싶다. 이런 유적지를 담사하면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나 우리민족의 역사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 반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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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은 심산 김태원 선생님을 기념해서 만든 비석이 위치한 곳이다. 심산 김태원 선생님 또한 모르고 있던 인물로 처음 들어본 생소한 인물이었다. 내 자신 스스로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얼굴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낯이 뜨거웠다. 소위 역사를 전공했다는 말이 거짓말처럼 내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다시 한 번 내 자신에 대한 무지함에 각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이번 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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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심산 김태원 선생의 추모비&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심산 김태원 선생의 생애를 알리는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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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애당과 심산 김태원 선생의 비석이 있는 곳을 답사하고 두 번째로 이동한 장소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雙淸堂을 답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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雙淸堂(쌍청당)은 대전시 대덕구 중리동 71번지에 위치하며,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이 건물은 조선 초기에 부사정을 지낸 쌍청당 송유(1389~1446)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이곳 백달촌에 내려와 살다가 1432(세종4년)에 지은 별당이다. ‘雙淸’은 “천지사이에 가장 맑은 바람(淸風)과 밝은 달(明月)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기상을 마음에 담고자 자신의 호와 건물 이름을 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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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쌍청당 오른쪽 면을 찍은 사진&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 &nbsp;&nbsp;&nbsp;&nbsp; 쌍청당 왼쪽 면을 찍은 사진&nbsp;&nbsp;&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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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은진송씨대종가집 옆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쌍청당송유선생유적비&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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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3칸, 옆면 2칸에 팔각기와 지붕을 올렸으며, 조선시대에는 민가에 단청하는 것을 법으로 금하였는데도 건물에 단청을 한 것이 특징이다. 쌍청당과 은진송씨 대종가 댁에 방문을 해서 은진 송씨 집안에 대한 내력을 듣고 나오게 되었다. 문을 나서면 돌에는 ‘은진송찌대종가’와 ‘쌍청당’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돌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찾기가 매우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은진송씨댁 사람들은 그들의 넉넉함을 베풀어 준다. 이 유적지를 답사하고 나오면서 그들의 푸근함과 인정스럽게 대해주는 이들의 고운 마음씨를 한 아름 받고 나온 기분 좋은 답사였다.&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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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마지막 코스인 고흥유씨 정려각 및 정려비가 있는 곳을 도착해 시간을 보니 12시 30분. 점심을 먹고 나서 답사를 계속 하자는 제안을 해왔으나 유적답사에 대한 흥을 깨기 싫어서 끝내고 먹자는 말을 건네고 유적지를 돌아보던 중 정려각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파손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대덕구청에 근무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파손된 경유를 물어보니 술을 먹고 지나던 행인들의 소행이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아려 옴을 느낀다. 아직도 국민들의 문화재 의식수준은 밑바닥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부여에서도 2006년 12월 4째 주 유적지를 돌면서 주위에 흩어져 있던 쓰레기를 치우며 느꼈던 것인데 이번 답사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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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BR>&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고흥유씨 정려비 앞면&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고흥유씨 정려비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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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왼쪽에서 찍은 사진(정려각)&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nbsp; &nbsp;&nbsp; 오른쪽에서 찍은 사진(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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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유씨 정려각 및 정려비는 대전서 대덕구 중리동 산2-1에 위치하며, 유형문화재 제 25호로 등록이 되어 있다. 유씨부인(1371~1452)은 류준의 딸로서 진사 송극기의 부인이었다.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이 죽었으며, 네 살 난 아들이 있었다. 친정부모가 재가시키려 하자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네 살 난 어린애를 업은 채 개경(지금의 개성)에서 수백리를 걸어서 회덕의 시가에 내려왔다. 류씨부인은 시부모를 극진히 모시고 아들 쌍청당 송유를 잘 보살펴 키웠으므로 효종 4년(1653)에 열녀로서 정려되었고, 현종 4년(1665)에는 정려비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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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시 20분 중리동 답사를 마치면서 앞으로 한 달에 두 번씩 격주 토요일에 계속될 답사가 기다려짐을 알게 되었다. 맨 처음 유적답사에 대한 부담감은 어느 정도 없어진 듯하지만, 아직 나에게 남은 부담감은 여적 나의 마음구석 한 구석에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다. 대덕구에 유치한 유적들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것이 나로 하여금 잘못 알려지게 되면 어떡하나 다시 한 번 때 아닌 걱정을 해본다. 유적 답사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면서 마지막까지 그리고 책이 발간될 때까지 같이 답사를 계속하기로 약속을 했다. 친구와 함께 한 유적 조사였기에 더욱 기뻤다. 대전 대덕구에 위치한 유적을 알리기 위한 이 두 친구에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 일을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이 이토록 아름다운 고장임을 느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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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4일 오후 20시 07분에 답사여정을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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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지&nbsp; 
오늘 나의 발이 되어준 자전거에게 큰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은진송씨 댁을 방문했을 때 적극 촬영을 도와주시고 설명을 해주신 은씨 송진대가를 이끌고 계신 송○○분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그러나 답사하는 내내 바람이 우리를 못살게 군것이 아쉬움으로 남을 뿐이다.&nbsp;&nbsp;&nbsp;&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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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iamX의 '왜 자기 자신에게는 그토록 관대한가?'에 대한 내 생각이다.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131)<BR>
첫째, "좋은 책을 나누고 싶어서 서평을 쓴다"는 주장에 대해서."에 대해서 
&nbsp;제도의 헛점을 이용하며 상금을 타가는 사람들을 비판해야지, 중복리뷰를 비판해서는 안된다. 중복리뷰를 올리는&nbsp; 사람들 모두가 제도의 헛점을 이용하며 상금을 타가는 사람들과 동일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비판의 대상은 중복리뷰어가 아니라 '중복리뷰로 반복해서 상금을 타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땡스투를 받기 위해 제대로 된 리뷰가 아니라 한줄에서 다섯줄짜리 리뷰를 부지기수로 올리는 리뷰어가 있는데, 이 분은 아마도 알라딘에만 거주하는 듯 싶다. 그렇다면 알라딘에서만 활동하는 이런 불량리뷰어들은 훌륭하고, 두곳이상에 거주하며 그래도 꽤나 '성실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잘못되었다고 봐야하는건가? 너무나 단순한 분류방식이 아닌가. <BR><BR>&nbsp; 또 내가 문제제기자와 달리 고정적인 월급이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몇십원, 몇백원 안들어와도 상관없다. 단지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그 책을 사게 되었다는 것이 기쁠 뿐이다. 대부분의 알라디너들이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오늘 아침 지난 밤의 누군가로부터 땡스투를 받아 '50원'이 들어왔다면, 사람들은 50원을 벌어서 기뻐하는것이 아니라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선택을 해줬기 때문에 기쁜 것이다. 땡스투 많이 받는 자를 인기인이라고 칭한다면, 그들은 나름대로의 책서평가로서의 명예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터다. 인기와 명예를 얻는 것이 나쁜가. 몇십원가지고 너무 까칠하게 바라보지 말 길 바란다. 그걸 돈으로 바라보지&nbsp;않길 바란다. <BR><BR>
&nbsp;둘째,&nbsp;&nbsp;"중복 서평은 문제다."에 대해서
&nbsp;"개인은 책을 읽고 난 소감, 비판을 위해 서평을 쓸지 모르지만, 그것을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그 서평은 곧 올린 인터넷 서점과 그 책을 낸 출판사의 홍보도구가 된다. 그깟 몇 십원, 몇 백원 혹은 많아야 몇 만원 정도의 혜택 갖고 저렇게까지 중복 서평을 올리겠냐라고 누군가 반문해오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다." <BR><BR>&nbsp; 일단, 아이엠엑스님은 중복 리뷰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다른 문제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예 그동안에 쌓여있던 인터넷 서점 업계와 출판업계, 리뷰어들에 대한 불만을 다 털어놓으실 셈인 듯 하다. 다른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코멘트 달자면, <BR><BR>&nbsp; 인정한다. 내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순간 인터넷 서점과 출판사의 홍보도구가 된다. 실제로, 인터넷 서점업계 매출 하위순위를 달리고 있는 알라딘의 리뷰는 인터넷 서점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예스24보다 월등히 많다. 그리고 어떤 다른 인터넷 서점보다 인문/사회 분야의 리뷰가 많고, 리뷰의 질 또한&nbsp;높다. 고로 이러한 수많은 리뷰어들이 만들어낸&nbsp;알라딘의 리뷰들은 알라딘이라는 인터넷 서점에겐 좋은 이미지 홍보 효과로 둔갑할 수 있다. 또한, 잘 쓴 한 편의 자발적인 독자리뷰는 출판사가 갓 낸 책에 대한 좋은 홍보거리가 되고 있고, 고로 출판사는 더 돈들이지 않고, 많은 이들에게 공짜책을 나눠줌으로써 최대의 홍보효과를 노린다. 
&nbsp; 그러나 출판사 입장에서 홍보를 위해 공짜 책을 베풂으로써 많은 이들이 돈안들이고 책을 읽게&nbsp;된다. 그들은 또&nbsp;공짜 책을 받은 만큼의 최소한 의무감(리뷰작성하기)을 행하고 있다. 이게 문제가 되는가. 오히려 문제가 되기는커녕 더 좋은 것 아닌가 모르겠다. 공짜 책을 마음대로 베풀지 못하는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출판사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흐름은 많은 이들이 돈안들이고 책을 받아 읽게 되고, 책을 읽고 리뷰까지 쓰게 되는 좋은 습관을 길러주고 있으며, '책 읽는 문화'를 조성하게 하지 않나 생각한다. <BR><BR>&nbsp;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더라도, 책 홍보를 위해서 직업으로서의 서평가들, 출판전문가들에게 서평과 리뷰를 의뢰하지 않고, 다양한 독자들의 리뷰에 의존하게 되니, 우리는 맨날 봤던 사람들의 글로 책을 안내받지 않고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글을 통해 책을 안내받으니 더 좋은 것이 아닌가. 다양성 면에서 말이다. 중복리뷰어가 여기저기 활동함으로써 같은 리뷰를 여러곳에 올리게 되면 결국 우리는 똑같은 글을 보며 책을 안내 받는 것이 아니냐는 말은 하지 말자. <BR><BR>&nbsp; 아이엠엑스님같은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분들은 이곳저것 돌아다니며 같은 글 없나 검색해보실지 모르겠지만 대개의 책 구매자들은 한 곳에 있는 리뷰만 본다. 그들은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않고, 책 하나 사기 위해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올라온 모든 리뷰를 꼼꼼히 읽어볼 필요도 못 느낀다. 나름 부지런하다고 자처하는 나부터도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만 한번 쭉 훑어보게 되지 예스24 리뷰는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한가지 더 첨언하자면, 땡스투 제도는 책을 구입함에 있어 타인의 리뷰를 읽어보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온다. 해당 도서에 대해 수십건의 리뷰가 올라왔다면 그 중에 내 머리와 가슴을 가장 울리는 리뷰가 무엇인지 찾아 읽어보게 되고, 기왕이면 그에게 단돈 몇십원을 하사하고자 한다. 
&nbsp; "그리고 만약, 자신이 그런 소소한 이익에 대해 관심이 없다면, 떳떳하게 밝혀라. "이 글은 원래 어느 인터넷 서점에 올린 글이었으며, 소통의 가능성을 위해 이 서점에도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에 대해서는 어떤 혜택도 바라지 않습니다." 라고"
&nbsp; 굳이 이렇게까지 까칠하게 해야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외박을 안하던 녀석이 외박을 밥먹듯이 한다고 어머니가 너 이제부터 외박할거면 여자랑 있지 않겠다고 각서써.&nbsp;그다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꼭 무슨 대단한 잘못을 했기&nbsp;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하고&nbsp;가슴에 써붙이고 돌아다니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건&nbsp;도가 지나치다.&nbsp;&nbsp;왜 이렇게 까칠하게 나오시는지 이해가 안된다. 
"인터넷 서점의 가장 강력한 홍보도구는 바로 인터넷 서점 이용자들의 서평이다. 인터넷 서점의 차별화는 독자 서평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 서평이 여기저기 중복되어 올라오고 있다면? 결국 남는 것은 "가격 차이" 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인터넷 서점의 경영을 힘겹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복 서평은 인터넷 서점이 나서서 막아야 할 문제다. 이렇게 썼는데도 위기의식을 갖지 못하시겠다면,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다. 지금 나는 굉장한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Yes24와 알라딘의 차이가 TTB 밖에 없다면 믿으시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그렇다. 나를 포함해서 책 꽤나 읽는다는 분들은 시장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
&nbsp; 인터넷&nbsp;서점들, 알라딘과 예스24의 차별성을 위해 리뷰어들이 중복리뷰를&nbsp;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거 같은데, 내가 알라딘이나 예스24 사원도 아니고 왜 그렇게까지 해가면서 그들 서점들이 차별성을 갖는데 기여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예스24와 알라딘은 책을 파는 똑같은 서점인데 왜 우리가&nbsp;서로 다른 분위기와 이미지를 갖도록 해줘야&nbsp;하는가. 가격차이만 난다고 해도 하등 문제 될 바가 없다. 억지로 각각의 문화를 만들어내려고 애쓰지 말자, 중복리뷰가 난무하는 이 시점에도 알라딘과 예스24는 분명히 다르다. 해당 서점의 블로그와 서재에 거주하는 이들에 따라서, 또 블로그와 서재의 운영방식에 따라서만도 충분히 서로 차이점을 보인다. 
"자신의 서평이 너무 좋아서 다른 이들이 자신의 서평을 보면 책을 사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딴 생각은 그만두라고 진심으로 충고해주고 싶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책이 좋으냐 나쁘냐를 다른 예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서평이다. 그러나, 그 서평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면? 효과는 반감, 아니 확실히 줄어든다. 역효과만 날 뿐이다."
&nbsp; 글쓴이는 아직 감정이 격해져있는 듯 하다. 글을 좀 더 온건하게 썼으면 좋겠는데 ' 그 딴 생각'은 '그런 생각'쯤으로, 그리고 문장은 좀 더 부드럽게 해줄수는 없는지. 보는 사람들도 생각해줘야지. 서평이 여기저기 널려있어도 - 기껏해야 두 군데 이상 활동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있더라도 상관없고) - 책 구매자는 한 군데서만 본다.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피곤한 짓 하지 않는다. 해당 도서에 대한 중복리뷰를 쓴다해도 그 리뷰가 가장 위에 올라와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어려운 인문사회과학 도서 쯤이 이에 속할텐데,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책이라면 또 리뷰가 그만큼 없을 것이고, 리뷰가 아예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것이 구매자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중복리뷰 인정하자. 효과 난다.
&nbsp;아휴 힘들다. 아침부터 이게 뭐야. 힘들어서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이곳에 거주하는 다른 분들의 생각도 좀 들어보고 싶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하여 아래 관련글을 묶어놨습니다. 
&nbsp;
2007.1.13 아침 첨언 <BR><BR>&nbsp;만일, 동일리뷰로 상금을 받게 되는 이가 생기더라도 그것은 각 인터넷 서점이 재차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상금을 받은 리뷰어의 잘못은 아니다. 고로 소통을 위해 중복리뷰를 올리는 나같은 이들은 상금을 주건 안주건 관심없다. 소통을 위해 블로그를 활용하고 리뷰란은 채우지 말라는 의견이 있는데, 리뷰란을 활용하는 이유는, 소통을 넘어서서 누군가 내 글을 보고 가벼운 공감, 지지, 딴지를 해주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같은 책을 읽은 이 혹은 같은 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가 &nbsp;먼저 들르는 곳은 리뷰란이며 해당 블로거의 블로그가 아니다. 타인의 의견을 읽고 듣고 피드백하여 자기발전을 이루려는 목적, 그리고 타인과 공감을 얻고픈 목적, 못 쓴 글이지만 타인에게 내 글을 보여주고픈 목적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블로그 게시판보다는 리뷰란을 활용하는 것이다. 
<BR><BR>&nbsp;
관련글 모음 <BR><BR>* 가급적 논의가 진행된 순서대로 모아놨습니다. 뒤늦게 글을 보고 궁금하신 분들은 이 모음글이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현재 2007년 1월 12일 새벽부터 2007년 1월 15일 오전 12시 40분까지의 글들을 모아놨습니다. <BR><BR>
&nbsp;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8878&nbsp;(인터넷 서점의 중복서평을 고발한다1 - iamX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8995&nbsp;(중복서평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정군님)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083&nbsp;(매너놈이중복서평안쓰는이유,그리고첨언-매너리스트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075&nbsp;(알라딘에 거주하고 있는 박쥐로서 한마디 - 아프락사스)<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011&nbsp;(차이를 인정하고 살자 - antitheme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8923&nbsp;(관련댓글들 - 반딧불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126&nbsp;(인터넷 서점의 중복서평을 고발한다2 - iamX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131&nbsp;(왜 자신에게는 그토록 관대한가? - - iamX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158&nbsp;(iamX의 중복 리뷰 비판에 대해 - 아프락사스)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13&nbsp;(매너리스트 글의 위서가님 댓글에 대한 반딧불님 댓글)<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23&nbsp;(공개사과드립니다 - iamX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36&nbsp;(반딧불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39&nbsp;(지지, 공감, 감동 - 아프락사스)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47&nbsp;(iamx님께, 그리고 매너님께&nbsp;- 마태우스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16&nbsp;(노벨문학상과 리뷰 - 자유님)<BR>&nbsp;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06&nbsp;(박쥐 - 메피스토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288&nbsp;(사각의 링 - 메피스토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12&nbsp;(중복리뷰가 안되는 이유? 난 되는 이유 - 자유님)&nbsp;<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13&nbsp;(정군님의 서평은 어디에 실리는가? - iamx 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14&nbsp;(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면 된장녀일까? - 블루마린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32&nbsp;(중복리뷰보다 더 중요한 문제 - 마태우스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64&nbsp;(나와 알라딘 - 딸기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65&nbsp;(우린 왜 작은 일에 서로를 상처주는가? - antitheme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363&nbsp;(1인 미디어 시대의 서평권 - 맑음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24&nbsp;(서평의 범람 - 중복서평 논란을 보며 - 낡은구두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28&nbsp;(요즘 알라딘 마을이 들썩인다 - 스위트피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32&nbsp;(자체 검열 - 마노아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37&nbsp;(박쥐라... - 아름다운 단비양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485&nbsp;(다시 이야기를 해볼까 - 정군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05&nbsp;(저는 리뷰를 두곳 이상에 쓴 적은 없지만 - 불멸의 나애리)<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06&nbsp;(치졸한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 불멸의 나애리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57&nbsp;(위서가님께 - 클리오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68&nbsp;(착한 나라 사람으로서 - 클리오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59&nbsp;(중복 리뷰 논란에 대해,iamx님,매너님,위서가님&nbsp;- 기인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571&nbsp;(웹 2.0과 블로그... 그리고 책에 대한 리뷰 - 쿼크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09&nbsp;(중복리뷰가 뭐 그리 문제인가요? - 아름다운 단비양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30&nbsp;(알라딘 마을이 들썩이고 있는데 - 카프리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71&nbsp;(사람이 떠났습니다 - 매너리스트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74&nbsp;(자기 글&nbsp; 링크 문제에 대하여 - 자명한산책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83&nbsp;(나는 왜?(1) - iamx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691&nbsp;(중복리뷰 - 이유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717&nbsp;(나는 왜?(2) - iamx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730&nbsp;(언어 이전의 우주와 언어 이후의 우주 - 승주나무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757&nbsp;(다시 중복리뷰가 무슨무슨문제냐는분들께-매너리스트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820&nbsp;([코멘트] 사람이 떠났습니다 - 반딧불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832&nbsp;(나는 왜?(3) -&nbsp;iamx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886&nbsp;(위서가님에게 - 조선인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897&nbsp;(매너님의 중복모델에&nbsp;대한 다른 입장 - 승주나무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39930&nbsp;(iamx님께 - 정군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0036&nbsp;(iamx님께(2) - 정군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0159&nbsp;(iamx님의 나는 왜? 에 부쳐 - antitheme님) <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0163&nbsp;(논리적이라는 말의 재수없음에 대하여 - 치카님)<BR>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40205&nbsp;(정보차단을 획책하는거 아닐까요?&nbsp;- 치카님)<BR><BR>&nbsp;<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우리나라 문화 유산</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34484</link><pubDate>Sat, 06 Jan 2007 22: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34484</guid><description><![CDATA[한국인의 품을 닮은 지리산, 그 속에 아름다운 절을 찾아서
&nbsp; 왜 지리산인가? 지리산의 모습은 한국인의 속으로 정 많은 심성과 닮았다. 그 깊이와 폭을 가늠할 수 없으면서도, 언제나 후덕하고 시련을 꿋꿋하게 이겨나가는 우리의 모습이 바로 지리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리산에도 그 속에 품은 절이 없다면, 그 절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사람들의 흔적이 없다면, 지리산도 우리나라 사람의 참모습을 닮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BR>&nbsp; 지리산과 그 품안의 절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살아온 삶의 자취와 오늘의 모습, 그리고 미래까지도 오롯이 보여주는 곳이다.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지리산 성모설화의 배경인 노고단,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에 지어진 쌍계사, 연곡사, 화엄사, 천은사, 실상사. 그 절의 속살을 채운 고려와 조선의 유적들이 과거의 모습이라면, 물 맑은 섬진강, 쌍계사의 벚꽃 길, 연곡사의 계단식 논밭, 천은사의 석축은 현재를 일구어 가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보여준다. 실상사 주변의 생태 논밭과 그 절에서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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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쌍계사의 벚꽃과 쌍계 - 지리산의 계곡이 품은 절
&nbsp; 봄날, 쌍계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사람들로 장사진이다. ‘전라도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끝의 화개 장터에서 시작된 벚꽃이 말 그대로 십리. 벚꽃 길의 벚꽃만큼이나 사람도 많다. 모두 어우러져 장관이다. 그러나 어느 때 가도 기본은 갖춘 절이 쌍계사이다. 쌍계사는 계곡으로 이름난 절이다. 쌍계사는 최치원이 '쌍계'라는 석문을 써서도, 섬진강 그림자를 본 딴 팔영루 때문도, 절집이 우아하거나 아름다워서 이름이 높은 게 아니다. 오직 쌍계사의 그 이름처럼 절을 깊게 두르고 있는 두 계곡(=쌍계)이 이름값을 한다. <BR>&nbsp; 심지어 나라에서 국보로 지정한 "진감선사 부도비"도 보통의 관광객에겐 별로 의미가 없다. 오히려 담장에 기와 조각을 넣어 만든 소박한 꽃문양이 우리나라 사람의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하는 성품과 더 닮았다. <BR>&nbsp; 쌍계사가 이름 높은 이유는 지리산이 품고 있는 비경인 불일폭포 때문이기도 하고, 그 물을 받아 잘 자라는 녹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번잡한 것을 싫어한다면 쌍계사는 들르지 않아도 좋다. 다만 벚꽃이 핀다면, 그 어떤 수고를 하더라도 벚꽃 길을 걸어보는 맛도 있다. 차로 휙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벚꽃 길을 걸으면 산 중턱에 드문드문 자리 잡은 차밭도 눈에 들어올 것이다. <BR>&nbsp; 참, 그리고 범종각 앞에 소담스럽게 핀 연보랏빛 수국과 절집 담장을 따라 핀 천리향, 분홍 꽃빛이 든든한 배롱나무, 그리고 흔하디흔한 나리꽃도 좋은 물과 함께 해서 그런지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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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연곡사의 부도 - 나라 안 최고 작품 두 가지
&nbsp; 연곡사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안 최고 작품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피아골에 펼쳐진 계단식 논밭이고, 다른 하나는 이름난 승려들의 사리를 보관하기 위해 만든 돌조각품인 부도이다.&nbsp; <BR>&nbsp; 지리산 중에서도 가장 단풍이 곱다는 피아골을 따라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산 중턱에 어떻게 저런 곳에도 밭을 일구었을까 싶은 산중턱의 밭들이 나온다. 층이 많은 곳은 100여 층도 넘는다고 하니 농부들의 지혜가 사뭇 놀라울 따름이다.&nbsp;&nbsp; <BR>&nbsp; 쌍계사가 계곡의 절이라면 연곡사는 부도(이름난 승려들의 사리를 넣어둔 돌조각)의 고향 같은 절이다. 우리나라 모든 부도의 아름다움이 이곳 연곡사에서 나와 다시 이곳에 모인다. 지리산 피아골에 사는 사람들의 억센 기운을 보여주는 계단식 논밭을 거슬러 올라 피아골 적당한 중턱에 자리 잡은 연곡사는 공간이 넓지 않음에도 규모가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아마도 담장이나 번잡한 무엇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 앞 꽃밭이 정갈하게 가꿔져서 절 주인의 정갈한 솜씨가 배어난다.<BR>&nbsp; 우리나라의 최고 수준의 부도는 대적광전의 산기슭에 앉아 절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름은 건물의 동쪽에 있어 동부도. 연곡사 동부도는 아마도 탑으로 치면 불국사 석가탑의 엄정함과 단아함, 다보탑의 화려함과 산뜻함을 절묘하게 섞어 놓은 것 같다. 차갑고 시커먼 돌덩이에 이렇게 환상적이고 멋진 옷을 입혀놓을 수가 있을까 싶다. 연곡사 동부도만으로도 한국 전통 예술의 자랑스러움을 설명할 수 있다. 돌에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동부도의 아름다움은 바로 위의 북부도와 반대편의 서부도, 그리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다양한 부도들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부도들은 줄을 잘 못 서서 괜히 억울할 것 같다. 이들도 다른 곳에 있었으면 그래도 꽤 괜찮은 평을 들었을 텐데, 사람들이 연곡사 동부도를 보고 난 후에는 아무래도 (눈이 높아져서) 평가가 박하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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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천은사 - 아름다운 전설과 우아하고 정갈한 분위기
&nbsp; 천은사(泉隱寺-샘이 숨은 절이라는 뜻이다.)는 분위기의 절이다. 그리고 자리 잡음의 절이기도 하다. 이 절집의 분위기는 절집 앞에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호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절을 둘러싸고 있는 지리산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지리산의 끝자락인 노고단 아래에 푹 둘러친 곳에 앉은 것도 그렇고, 절집의 공간을 끌어당기기 위해 일주문 옆에 헛담(담의 기능을 하지 않는 담)을 세운 것도 그렇다. <BR>&nbsp; 천은사에서는 입구의 감로수(甘露水)를 반드시 마셔야 한다. 한숨 돌리고 감로수를 마시며 천은사의 전설을 들어야 절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천은사의 원래 이름이 감로사였다. 그 감로수 때문에 절이 세워진 것인데, 그 물에서 뱀이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절에 사는 스님들이 그 뱀을 잡아서 죽였더니 이제는 절에 화기가 일어 불이 자주 났다. 이 때 조선시대의 명필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 라는 편액을 마치 물이 흘러가는 듯한 글자체로 쓴 이후부터는 절에 불이 한 번도 나지 않았다고 한다. <BR>&nbsp; 천은사에 들어서면 눈에 잘 띄는 것이 자연석을 아주 잘 써서 건물의 터를 잡고, 공간 배체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천은사의 돌담과 돌계단이 오랜 세월에 잘 갈린 것처럼 둥글둥글하며 적당히 색이 바랬고(사실 은행잎이 노란 가을엔 천왕문 뒤에 선 은행나무 때문에-지천이 노란색이다- 정말 장관이다.) 알맞게 높으며 또 곧다. <BR>&nbsp; 천왕문 앞에서 바라본 ‘보제루’의 기둥 쓰는 법은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지를 말없이 가르쳐준다. 스님들 넉넉한 마음 씀씀이 덕에 보제루에 앉아서 현판을 쓴 호남 명필 "창암 이삼만"을 떠올리며 지리산을 바라보면 좋다. 아픈 몸으로도 평생 벼루 10개를 붓으로 뚫고 천 개의 붓을 사용했다는 사람이 이삼만이라는 사람이다. 그러니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보여도 저 정도의 글씨가 나오려면 보통 내공으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천은사 담벼락에 곱게 핀 능소화가 천은사 분위기를 닮아 유달리 우아하고 정갈하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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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실상사 - 현재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희망의 공동체
&nbsp; 천은사에서, 우리나라에서 차가 가장 높이 올라갈 수 있는 곳이라는 성삼재에 차를 두고 잠시 야생화의 천국인 노고단을 올라보는 것도 좋다. 10년도 넘게 걸린 야생화 복원 프로그램 덕에 겨우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있는 한 노고단에서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운해를 볼 수 있으면 더 좋을 것이다. <BR>&nbsp;성삼재를 지나 도로를 달리면 전라북도 남원이다. 남원은 그 유명한 춘향이의 고향이고, 이곳 남원과 이웃 동네 함양 어름엔 흥부/놀부 형제가 살았다는 곳으로 우리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남원읍에서는 꽤 떨어진 한적한 시골 마을, 지리산의 맨 끝자락에 실상사가 있다. 실상사 앞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면 바로 돌장승이 서 있다. 힘들고 어려운 현실을 웃음으로 극복해 온 삶의 모습 그대로, 익살이 잔뜩 묻어나는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BR>&nbsp; 실상사 주변의 논과 밭은 한국 농업의 미래를 좌우할 실험실이다. 실상사에서 운영해 온 귀농학교 출신들이 이곳에 터를 잡고 다양한 생태 농업을 연구하고, 실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BR>&nbsp; 실상사에서 눈여겨 볼 보물은 보광전 앞의 동서 3층 석탑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탑인 석가탑과 다보탑의 상륜부(탑의 맨 꼭대기를 해당하는 부분)를 복원할 때 그 원형을 자세히 알 수 없어서, 이곳 실상사의 동서 3층 석탑 상륜부를 본 따서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보면 볼수록 석가탑의 모습과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BR>&nbsp; 실상사에도 멋진 유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절에는 ‘이것을 봐야 한다.’는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실상사를 찾는 이유는 절에 살고 있는 사람의 마음씨가 좋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생명체의 한 그물로 얽혀있어 서로 존중해야 한다는 ‘인드라망’ 공동체 운동의 중심인 실상사답게 수행자만을 위한 절이 아니라 낯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절이다. 그런 마음들은 생태 뒷간을 비롯해서 절집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BR>&nbsp; 미래의 한국 불교를 이끌어 갈 젊은 스님들이 치열하게 고뇌하는 절! 작은 배려로 사람을 흐뭇하게 만들 줄 아는 절! 절도 이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실천하는 절! 아직은 겉멋이 들지 않아 풋풋한 사람 냄새가 나는 절이 바로 실상사이다.&nbsp; <BR>그래도 실상사에서 볼거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다 실망한 사람은 실상사에 속한 실상사 백장암으로 가면 된다. 백장암은 실상사로부터 약 6-7킬로미터 떨어진 산 속에 있는데 우리나라 조상들이 얼마나 돌을 기막히게 다루었는지를 실증한 탑이 있다. 깊은 산 중에 제대로 기단(탑의 밑받침)도 갖추지 못한 탑이 국보 제 10호! 이 탑의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은 연곡사 동부도에나 비길만 하다.&nbsp; <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만두사랑 이벤트 공지입니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26687</link><pubDate>Tue, 26 Dec 2006 21: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2668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734809&TPaperId=1026687"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4/33/coveroff/899573480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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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사랑 이벤트에 후원해 주신 여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게으름을 바쁨으로 변명해가며 2주간 직무유기를 해서 면목이 없습니다만,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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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2분이 기꺼이 스폰서로 참가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걷힌 후원금 총액이 53만5천원에 감귤쵸콜렛 두 개와 비누 네 개, 와, 이정도면 물만두님의 위상에 걸맞은 멋진 이벤트가 되지 않을까요? 참고로 비누는 비누학을 전공하신 따우님께서 제작해 주실 건대요, 피부의 습도에 따라 녹차비누와 진피비누를 2개씩 드릴 겁니다. 그리고 40만원어치 책을 지른 뒤 2년째 도피 중인 서재계의 풍운아 스타리스카이님도 2만원을 후원하셨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BR>
이벤트 방식에 대해 늘 고민했습니다. 미리 사과드리자면, 제가 일전에 ‘몇등에게 얼마 스폰서한다’는 걸 명시해 달라고 공지를 했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셨고, 또 실제 결과를 보니 상품 나누는 게 쉽지가 않겠더라구요. 역시 현실은 제 생각과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해서 그 의견은 없던 일로 하겠어요 호호호. 
<BR>
이제 이벤트 방식을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이벤트는 만두님의 서재 방문객 숫자가 19만7천이 되는 순간 시작되며, 20만이 되는 순간 종료됩니다. 참고로 현재 만두님의 방문객은 19만6천5백입니다. 
<BR>
1. 캡쳐 이벤트 
캡쳐 이벤트에는 총 10만원의 상품이 걸려 있습니다. 20만을 가장 먼저 캡쳐해 주신 분께는 4만원을, 2, 3등으로 캡쳐해 주신 분께는 각각 3만원어치 책을 선물로 드리며, 4, 5등을 하신 분께는 따우표 비누 두 개씩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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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엽서 이벤트 
총 20만원의 상품이 걸려 있는 엽서 이벤트는 여러분이 ‘만두의 이벤트’란에 써주신 엽서 중에서 선정됩니다. 
1) 만두사랑상 
응모한 엽서 중 만두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두분을 만두님이 뽑아서 각각 4만원어치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참고로 만두님은 직접적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걸 좋아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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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만두맘상 
엽서이벤트 참여자 중 평상시 만두님께 잘해주신 분을 만두님이 마음 가는대로 선정해 두분께 3만원씩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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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마일만두상 
만두님을 가장 즐겁게 해준 엽서를 써준 분 두분께 각각 3만원씩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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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만두를 알자 이벤트 
총 10만5천원의 상품이 걸려 있습니다. 방문객이 19만8천이 되는 순간 만두님이 그간 쓰셨던 페이퍼와 리뷰를 토대로 열다섯문제를 내겠습니다. 여기서 일등을 하신 분께는 4만원, 2등에겐 3만5천원, 3등을 하신 분께는 3만원어치의 상품을 드립니다. 참고로 동점인 경우에는 먼저 답을 쓰신 분이 앞선 순위가 됩니다. 평소 만두님이 쓰시는 글의 양을 생각하면 포기하고픈 마음도 들겠지만, 알라딘도 제법 검색이 잘 되거든요. 많이들 참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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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상 
이벤트 페이퍼에 댓글을 달아주신 분 중 만두님이 마음 가는대로 한분을 선정해 3만원어치의 상품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치카님이 후원해주신 ‘감귤쵸콜렛상’이라는 게 있는데요, “엄마야!” 하는 비명이 나오게끔 댓글을 달아주신 분을 새벽별님과 만두님이 각각 한분씩 뽑아서 제주도 특산인 감귤쵸콜렛을 와장창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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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결산 
이렇게 하면 십만원이 남는데요, 후원해주신 분들 중 대부분이 “후원금의 20%는 만두님께 돌아가야 한다”고 단서를 달아 주셨기에 만두님이 이 금액만큼 읽고픈 책을 사시고, 대신 어떤 책을 사셨는지 페이퍼로 올려 주셔야 합니다. 만두님이 골라주신 책 중 재밌는 게 아주 많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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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써놓고 보니 걱정이 앞섭니다. 만두님에 대한 사랑으로 후원금을 내주신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겨우 이거 하려고 그랬어?”라는 비난이 들리는 듯하네요. 하지만 아무리 허접한 계획이라 할지라도 여러분들이 열성적으로 참여해 주신다면 곳곳에 산재한 미숙함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두님의 20만 이벤트에 많이들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직위원회를 맡고 있는 저와 치카님은 이제부터 문제 내기 합숙에 들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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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리 
긴 글 싫어하시는 분들, 이것만 읽으셔도 됩니다! 
-캡쳐 이벤트: 20만을 먼저 잡으신 한분께 4만원, 두 번째 세 번째 분께는 3만원을 드립니다. 그리고 4, 5등에겐 따우표 비누가 두 개씩 돌아갑니다. 
-만두사랑 이벤트: 만두님의 엽서란에 써준 엽서 중 만두님에 대한 사랑을 가장 잘 표현한 두분께 각 4만원을 드립니다. 
-만두맘 이벤트: 엽서 이벤트에 참여해주신 분 중 평소 만두님께 잘해주신 분을 만두님 마음대로 두분 선정해 각 3만원을 드립니다. 
-스마일만두이벤트: 엽서로 만두님을 웃겨주신 두분께 각 3만원의 상품을 드립니다. 
-만두를알자 이벤트: 만두님의 페이퍼와 리뷰를 토대로 문제를 내서 1등에게 4만원, 2, 3등에게 3만5천원과 3만원의 상품을 각각 드립니다. 
-댓글상: 만두님 마음에 드는 댓글을 다신 한분을 만두님이 선정해 3만원의 상품을 드립니다. 그리고 새벽별님과 만두님이 “엄마야”라고 비명을 지르게 해주신 분께 치카표 감귤쵸코렛을 각 한분씩 드리겠습니다. 
-캡쳐이벤트는 20만이 되는 순간에, 그리고 엽서 이벤트는 19만7천이 되는 시간부터 시작, 20만이 되는 순간 종료됩니다. 
-만두를알자 이벤트의 문제는 치카님과 제가 출제하며 19만 8천이 되는 순간 만두님의 이벤트 페이퍼에 올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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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두사랑 이벤트에 후원해 주신 분들 명단: 배혜경, 마노아, 파비아나, 달밤, 따우, 해리포터7, 물만두, 승연, 수니나라, 치카, 비연, 수암, 세실, 클리오, 메피스토, 가을산, 바람돌이, 토트, 깍두기, 야클, 해적, Kel, 조선인, 실비, 무스탕, 날개, 새벽별, 스타리, 실론티, 미래소년, 울보, 산사춘, 그리고 저와 부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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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4/33/cover150/8995734809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734809</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소말리아.</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26670</link><pubDate>Tue, 26 Dec 2006 21: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2667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29936&TPaperId=102667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37/85/coveroff/325200389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다. 에티오피아는 `이슬람에 맞선 기독교국가'를 자처하며 크리스마스인 25일 소말리아를 공격했고, 이슬람 극단주의를 내세운 소말리아 군벌들은 거기 맞서 교전을 벌였다. 
소말리아 내전이 에티오피아의 개입으로 국제전으로 비화한 가운데, 비무장 민간인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고 현지 구호기구들이 전했다. 올들어 최악의 홍수를 겪은데 이어 분쟁이 벌어진 탓에 소말리아에서 50만명이 기아 선상에 놓이는 등 인도주의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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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 기아, 피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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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세계식량기구(WFP)는 25일 소말리아에서 헬기로 식량을 공중 투하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소말리아는 원래 반(半)사막성 건조기후인데 몇 년 간 혹독한 가뭄을 겪은 뒤 올여름 반세기만에 최악의 홍수 피해를 입었다. 극심한 기상재해로 소말리아의 농산물 생산량은 급감했으며 50만명이 기아에 직면한채 구호식량에 의존하고 있다. WFP 소말리아 책임자 레오 반 데어 펠덴은 데일리메일&amp;가디언 인터뷰에서 "홍수와 치안 불안 때문에 기아 지역에 접근조차 하지 못해 속수무책인 지경"이라며 "식량 투하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말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구매력 기준 600달러에 불과한 소말리아는 홍해에 면한 동부아프리카의 빈국으로, 아프리카에서도 특히 식량 위기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어린이의 20%가 5살을 넘기지 못한 채 숨지고, 국민 평균기대수명이 50세에도 못 미친다. 홍수 피해에 더해 이달들어 에티오피아의 공격까지 벌어지자 기아 위기가 상대적으로 덜했던 지역에서도 피난민들이 짐을 꾸리기 시작, 대규모 난민 사태까지 우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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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BR><BR><BR>에티오피아군에 숨진 것으로 보이는 소말리아 이슬람 민병대원 /AFP<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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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소용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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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는 지난 8일 소말리아 내에서 이슬람 군벌과 첫 전투를 벌였으며 24일에는 이슬람세력이 장악했던 벨레드웨인과 불로바르데를 공격했다. 이튿날인 25일에는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의 발레도글 공항을 비롯해 공항 2곳을 폭격했다. 
소말리아에서는 지난 6월 이래 이슬람 무장세력 `이슬람법정연대(UIC)'가 모가디슈를 장악한 뒤 전국으로 세력을 확장해왔다. 에티오피아는 이슬람 극단주의 확산을 막고 소말리아 과도정부를 보호한다며 두달 전 UIC를 상대로 전쟁을 선언했다. AFP통신 등은 에티오피아가 이미 소말리아에 약 8000명의 병력을 들여보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소말리아 이슬람세력과 기독교계 에티오피아는 이미 1960년대 이래로 갈등을 계속해왔다. 1960년대와 70년대 두 차례 전쟁을 치른데 이어, 최근 몇년 동안에도 소규모 충돌을 계속했다. 소말리아는 수단의 지원을 받는 이슬람 무장세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1991년 이래 내전을 겪었고, 미국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2년 전 과도정부가 출범했으나 무기력하게 이슬람 군벌들에 유린당하고 있다. UIC는 모가디슈에서 강력한 사회적, 문화적 통제를 실시하며 이슬람 형법을 도입하는 등 극단적인 정책을 도입해 안팎의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에티오피아의 침공, 이슬람 극단주의를 내세운 군벌의 횡포, 소말리아 사태에 개입하며 지원보다 분쟁을 부추기는 주변국들, 무능한 과도정부 사이에서 민간인 희생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모가디슈 적십자사는 분쟁 중인 이슬람세력과 에티오피아에 "민간인 보호 원칙을 지켜달라"고 호소했으나 공허한 외침이 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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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BR>블랙호크 다운-- 이 영화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참 많지만. 정말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영화는 리얼했다만, '리얼리티'는 때론 '현실'과 다른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37/85/cover150/3252003899_1.jpg</url><link>http://dvd.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6000529936</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루돌프 사슴 이야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1026603</link><pubDate>Tue, 26 Dec 2006 19: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1026603</guid><description><![CDATA[먼 옛날, 동쪽 머나먼 땅끝에는 여러 동물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토끼, 사슴, 다람쥐, 소, 오리, 염소를 비롯한 여러 동물들은 서로 도우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학교가 하나 있었습니다. 마로 다람쥐, 예린 다람쥐, 루돌프 사슴은 이 학교에 같이 다니는 단짝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루돌프 사슴은 태어나자마자 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습니다. 마로 다람쥐와 예린 다람쥐는 다리가 불편한 루돌프 사슴을 도와 책가방을 들어주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 부축해주며 우정을 키워나갔습니다.
평화롭던 학교에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오기 시작한 건 하이에나들이 전학 온 다음부터였습니다. 한꺼번에 전학을 온 상돈 하이에나, 지호 하이에나, 성호 하이에나는 '뉴라이터' 라는 서클을 결성하더니, 학교 기강을 바로잡겠다며 학생들을 괴롭히고 돈을 뜯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분개했지만 하이에나들의 위세에 눌려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마로 다람쥐와 예린 다람쥐도 하이에나들의 행패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둘은 하교하면서 하이에나들을 어떻게 무찌를까 상의했습니다.
"어? 근데 예린아, 오늘 루돌프가 하루 종일 안 보이네?"
"나도 아까 찾아봤는데 없더라구."
그 때 골목에서 웬 어린 사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엉엉엉..."
마로 다람쥐와 예린 다람쥐가 재빨리 달려가 보니 루돌프 사슴이 울고 있었습니다. 눈 주위에는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린 다람쥐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루돌프, 여기서 왜 울고 있어? 그리고 얼굴은 왜 그런 거야?"
루돌프 사슴은 울면서 말했습니다.
"엉엉... 뉴라이터 하이에나들이 자기들 숙제를 오늘부터 나보고 전부 대신 하라잖아, 엉엉... 싫다고 했더니 얼굴을 마구 때리고.. 엉엉..."
마로 다람쥐와 예린 다람쥐는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둘은 하이에나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아니, 꼬맹이들이 우리한테 뭔 볼 일이 있어서 왔냐? 맹랑한 녀석들일세, 낄낄낄."
상돈 하이에나가 기분 나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마로 다람쥐는 겁이 났지만 용기를 내서 소리쳤습니다.
"야, 너희들이 루돌프한테 숙제를 대신 시키고 때리기까지 했다며? 앞으로 또 이런 짓을 하면 가만 안 두겠어!"
잠시 멍하니 있던 하이에나들은 곧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습니다.
"우.. 우하하하... 우헤헤... 아이고, 미치겠네.. 낄낄낄.."
예린 다람쥐도 화가 나서 외쳤습니다.
"야, 뭐가 웃기다고 그렇게 웃는 거냐!"
그러자 상돈 하이에나가 웃음을 멈추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습니다.
"이 꼬맹이들이 귀여워서 봐주려고 했더니... 좋아,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제.. 제안? 뭐냐? 말해봐."
"우리 하이에나 셋이 한 팀, 너희 두 꼬맹이 다람쥐와 루돌프 사슴이 한 팀이 돼서 눈썰매 경주를 하는 거다. 우리가 지면 깨끗이 마을을 떠나지. 대신 너희들이 지면 루돌프는 우리가 졸업할 때까지 부하 노릇을 해야 한다."
지호 하이에나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야, 지금 저런 꼬맹이들하고 무슨 장난을 하자는 거냐? 너 왜 그래?"
상돈 하이에나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차피 우리가 저 꼬마들한테 질 가능성은 전혀 없잖냐? 그냥 이 기회에 재미삼아 눈썰매나 타고 놀아보자는 거지. 저 겁없는 꼬마들이 주제파악도 할 수 있게 도와주고 말이야, 하하."
"흐음... 그렇다면 뭐 해 볼 만한 장난이겠군."
상돈 하이에나는 몸을 돌리더니 마로, 예린에게 말했습니다.
"야, 니네들 어떻게 할 거야? 자신 없으면 그냥 '잘못했습니다' 빌고 사라져라, 하하하."
마로와 예린은 화가 나서 동시에 외쳤습니다.
"좋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
큰소리를 치고 돌아서기는 했지만 마로와 예린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휴, 어쩌면 좋지? 화가 나서 대결 약속은 했지만 우리가 지면 루돌프는 저 나쁜 놈들한테 계속 시달림을 받게 될텐데.."
"저 하이에나들은 덩치도 크고 힘도 좋은데, 우리는... 게다가 루돌프는 한쪽 다리도 불편하고..."
둘은 마을 공원 벤치에 앉아 고민에 잠겨 있었습니다.
공원 관리를 맡고 있는 파란 여우 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다가와 물었습니다.
"아니, 얘들아. 집에 안 가고 여기서 뭐하고 있니?"
마로와 예린은 파란 여우 언니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놨습니다.
"쯧쯧, 정말 걱정이로구나."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파란 여우 언니는 갑자기 무릎을 치면서 외쳤습니다.
"아, 맞다!"
마로와 예린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언니, 무슨 좋은 방법이 있나요?"
파란 여우 언니는 팔을 들어 마을 한쪽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저 산봉우리가 보이니?"
"네, 저기는 가을산이잖아요. 산에는 아무도 안 살고 꼭대기에 암자가 하나 있다는 얘기는 엄마한테 들었는데.."
"맞아. 아무도 안 사는 꼭대기에 암자가 하나 있고 거기에 산타는 스님 한 분이 살고 계시지. 워낙 귀신같이 산을 잘 탄다고 해서 '산타 스님' 이라고 불린단다. 그런데 워낙 신출귀몰하셔서 그 분의 모습을 제대로 본 마을사람은 아직 한 명도 없거든. 득도한 고승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그 분에게 상의해보면 뭔가 좋은 수가 생길지도 모르겠구나."
"아, 언니. 정말 고마워요."
마로 다람쥐와 예린 다람쥐는 루돌프 사슴과 함께 곧바로 가을산 봉우리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 오르기에는 너무 벅찬 곳이었습니다.
"엉엉... 마로야, 예린아, 더이상 못 견디겠어.."
"루돌프, 조금만 참으면 곧 정상... 이 아니구나, 아직도 멀었네. 어쩌지?"
마로와 예린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갑자기 위에서 동아줄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습니다.
"얘들아, 이 밧줄을 잡고 올라오너라."
마로, 예린, 루돌프는 밧줄을 잡고 간신히 정상에 올랐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안개가 자욱히 낀 산꼭대기에 조그만 암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암자에는 '성탄절' 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고 그 앞에는 자상한 인상을 가진 늑대 스님 한 분이 서 계셨습니다.
"스님이 우리를 구해주셨나요?"
"그래, 어린아이들이 어른도 오르기 힘든 봉우리를 왜 이리 힘들게 올라왔느냐?"
"우리는 산타 스님께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산타 땡중을 찾아왔다고? 아니, 그 쓸모없는 땡초는 찾아서 뭐하게?"
마로와 예린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산타 스님은 땡초가 아니라 훌륭한 분이에요. 스님은 좋은 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마로와 예린이 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늑대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하하, 귀여운 녀석들이군. 내가 바로 사람들이 산타 스님이라고 부르는 늑대 승려 메피스토란다."
"예? 정말로 스님이 산타 스님이신가요? 제발 저희를 좀 도와주세요."
마로와 예린은 늑대 승려 메피스토에게 자초지종을 말했습니다.
"음, 그런 못된 녀석들이 있단 말이냐? 당연히 내가 도와주마."
"아, 고맙습니다. 메피스토 스님."
마로, 예린, 루돌프는 늑대 승려 메피스토에게 일제히 절을 했습니다.
"인사는 필요 없으니 그만 일어나거라. 친구를 사랑하는 너희들의 착한 마음씨가 기특해 도와주려는 것뿐이다. 내가 곧 너희들에게 특수 눈썰매를 만들어주마."
"특수 눈썰매요? 그게 뭔가요?"
"음.. 이 특수 눈썰매는 최첨단 신소재 합금과 첨단 반도체 기술을... 말해줘도 너희들이 이해하기는 힘들 것 같구나. 어째든 이 눈썰매만 있으면 그깟 하이에나 녀석들 쯤은 간단히 이길 수 있단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메피스토 산타 스님."
마로, 예린, 루돌프는 얼싸안으며 기쁨을 나눴습니다.<BR>.<BR>.<BR>.<BR>.<BR>.
시간은 흘러 며칠 후, 결전의 날이 밝아왔습니다.
"마로야, 나 아무래도 불안해. 메피스토 스님이 만들어준 이 썰매는 보통 썰매하고 다를 게 전혀 없어 보이는데.."
"예린아,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잖아. 우리는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자, 예린, 루돌프, 힘내자!"
"우와, 마로야. 그런 어려운 말도 알고 역시 똑똑하다니까. 그래, 우리 약한 모습 보이지 말고 힘내자!"
"야, 너희들 무슨 잔말이 많어. 이제 경주 시작이다, 탕!"
하이에나들은 기습적으로 먼저 출발을 해버렸습니다.
"저런 비겁한 놈들, 우리도 빨리 출발하자!"
마로, 예린, 루돌프는 최선을 다해 눈썰매를 몰았지만 하이에나들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습니다.
"마로야, 큰일났다. 하이에나 녀석들이 아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멀리 갔어."
"괜찮아, 아직 기회는 있어. 우리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
"엉엉... 얘들아, 미안해. 나 때문에 괜히 이 고생을..."
"바보야,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 없는 거야. 쓸데없는 소리할 시간 있으면 빨리 썰매나 몰아."
"마로야, 그 대사는 지금 상황에 별로 적절치 않은 거 같은데.."
"지금 그런 거 따질 때니? 빨리 썰매나 몰아."
"그래, 알았어. 미안."
셋은 최선을 다해 눈썰매를 몰았지만 격차는 점점 벌어져 갔습니다.
하이에나들은 여유 있게 썰매를 몰고 있었습니다.
"우헤헤, 이거 너무 차이가 나니까 싱거운데. 여기서 좀 놀다 갈까?"
"임마, 방심은 금물이야. 일단 확실히 이겨놓고 놀자구. 어?"
"상돈아, 왜 그래?"
"저 앞에..."
하이에나들 앞에 갑자기 늑대 승려가 나타났습니다. 바로 메피스토였습니다.
"어이, 중 아저씨. 썰매에 받히고 싶지 않으면 빨리 비키셔."
"허허, 이런 싹퉁머리 없는 녀석들을 봤나? 내 너희들을 십년간 교육시켜 사회에 해가 되지 않는 건전한 사람, 아니, 미안하다, 하이에나로 재탄생시켜 주겠다."
"아니, 이 중 양반이 제정신이 아니네? 빨리 비키지 못해?"
상돈 하이에나가 덤비려는 순간 메피스토 늑대 승려는 품속에서 밧줄을 꺼내 던졌습니다. 밧줄은 정확히 날아가 하이에나 세 마리의 몸을 한꺼번에 휘감았습니다.
"으아악~" "이.. 이게 뭐야?" "빨리 풀지 못해?"
"후후후, 내 솜씨가 아직 녹슬지 않았군."
메피스토 늑대 승려는 하이에나 세 마리를 성탄절로 데려가 지하실에 가둬버렸습니다.
"여기서 십년간 수행하며 너희들의 잘못된 행동을 반성하거라. 십년 후에 내가 찾아와 확실히 반성한 것 같으면 풀어주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십년을 더 여기서 수행해야 한다."
말을 마친 메피스토는 지하실 문을 잠그고 나가버렸습니다.
"으아아~ 잘못했어요, 제발 풀어주세요."
하이에나들이 울부짖으며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습니다.
그 때 마로 일행은 하이에나들이 메피스토 승려에게 끌려간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습니다.
"어? 예린아, 저 썰매는 하이에나들이 타고 간 거 같은데 왜 썰매만 나동그라져 있지?"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데. 다른 썰매로 바꿔 타고 갔나? 신경쓰지 말고 우리는 가던 코스나 계속 가자."
마로 일행은 실종된 하이에나들의 실격패로 경주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학교에는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BR>.<BR>.<BR>.<BR>.<BR>.
메피스토 늑대 승려의 인품에 크게 감화된 루돌프 사슴은 성탄절로 찾아가 자기를 제자로 받아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메피스토 승려는 흔쾌히 루돌프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성탄절에서 오년동안 같이 수행하며 깨달음을 얻은 메피스토와 루돌프는 뜻한 바가 있어 성탄절을 떠났습니다. 둘은 눈썰매를 타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착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었습니다. 메피스토 산타 승려와 루돌프 사슴의 명성은 전설처럼 전세계에 퍼졌습니다. 
전세계를 바쁘게 돌아다니던 메피스토 산타 승려는 그만 하이에나 세 마리를 성탄절 지하실에 감금해둔 사실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이에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미궁으로 빠지고 말았습니다.
세계의 음유시인들은 이 얘기를 듣고 감명을 받아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습니다.
<BR>루돌프 사슴에겐 좋은 친구 있었지<BR>마로 예린 다람쥐 삼총사라 불렸네<BR>못된 하이에나들 루돌프를 괴롭혔네<BR>분노한 마로 예린 그들에게 덤볐네
안개낀 성탄절에서 스님 말하길<BR>최첨단 눈썰매로 그놈들 혼내주렴<BR>못된 하이에나들 지하실에 감금됐네<BR>삼총사 멋진우정 길이 길이 기억되리
&lt;끝&gt; <BR>]]></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파주 보광사 </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59668</link><pubDate>Fri, 29 Sep 2006 12: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59668</guid><description><![CDATA[











<BR><BR><BR><BR><BR>보광사엔 왜 장기수 묘역이 조성되어 있을까? <BR>중생들 사는 세상엔 여러 모양이 있다 <BR><BR>박상표 수의사 <BR><BR>침묵하고 있는 풍경과 나누는 묵언의 대화<BR><BR>세상에 어찌 사연이 없는 풍경이 있을까마는 말을 붙이거나 농(弄)을 걸어도 풍경은 언제나 묵묵히 침묵하고 있다. 풍경은 자기 자랑을 하기 위해 너스레를 떨지도 않고 남을 깎아내리기 위한 허튼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저 그곳을 찾는 사람과 묵언(默言)의 대화를 나눌 뿐이다.<BR><BR>경기도 파주시 광탄면(廣灘面) 영장리(靈場里) 고령산(高靈山)에 있는 보광사도 많은 사연을 안고 있는 절집이다. 그러나 보광사를 둘러싸고 있는 풍경들은 그곳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아무런 사연을 전해주지 않는다.<BR><BR>왜 이곳에 장기수묘역 ‘연화공원’이 들어서게 되었는지, 어찌하여 한나라당의 색깔공세에 호응한 극우단체가 이곳을 훼손했는지, 언제 이곳이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원찰이 되었는지, 무슨 이유로 광주민중항쟁 당시 계엄사령관을 지낸 이희성이 1981년에 이곳에 호국대불을 세웠는지, 무슨 영문으로 1994년 새로 지은 원통전과 지장전의 바깥벽에 특이한 벽화를 그렸는지를 얘기해주지 않는다. <BR><BR>숙빈 최씨의 원찰, 고령사<BR><BR>보광사(普光寺)의 옛 이름은 고령사(高靈寺)였다. 고령사는 숙빈 최씨(1670~1718)의 원찰(願刹)이 되기 전까지는 그저 이름 없는 절집에 불과했다.『신증동국여지승람』권11의 양주목 불우(佛宇)조를 보면 “고령사(高靈寺) : 고령산(高靈山)에 있다”고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BR><BR>숙빈 최씨는 인현왕후에게 세숫물을 떠다 받치는 무수리 출신으로 숙종의 후궁이 되었다. 그녀는 3명의 왕자를 낳았는데, 그들 중에서 금(昑, 연잉군)이 훗날 왕위에 올라 영조가 되었다. <BR><BR>그러나 숙빈 최씨는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전인 1718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경기도 양주목 고령동(高嶺洞) 옹장리(瓮場里)에 묻혔고, 무덤의 이름은 ‘숙빈묘(淑嬪墓)’라고 불렸다. 이러한 상황은 18세기 중반에 제작된『해동지도』「양주목 지도」와 19세기 전반에 제작된『광여도』「양주목 지도」에 반영되어 ‘고령사’와 ‘숙빈묘’가 표기되어 있다.<BR><BR>1724년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왕세제였던 연잉군이 왕이 되었다. 노론의 지지를 받아 왕이 된 영조는 자신의 어머니가 미천한 신분이라는 콤플렉스를 안고 있었다. <BR><BR>영조의 콤플렉스와 소령원, 육상묘, 어실각<BR><BR>영조는 이러한 콤플렉스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숙빈 최씨의 무덤(墓)을 소령원(昭寧園)으로 격상시키고, 그녀의 신주를 모시기 위한 사당(廟)으로 육상묘(毓祥廟)를 세웠다. 그리고 고령사를 원찰로 삼고 어실각(御室閣)을 세워 숙빈 최씨의 위패를 모셨다. <BR><BR>고대 중국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분리되어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형체인 백은 땅으로 돌아간다는 저승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저승관에 따라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사당(廟)을 짓고, 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하여 무덤(墓)을 만들었다. <BR><BR>한편 불교는 중생은 생전에 자신의 행위인 업장에 따라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아수라(阿修羅)·인간(人間)·천상(天上)이라는 육도윤회를 한다는 사후관을 가지고 있다. 왕실이나 귀족들은 망자(亡者)가 육도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함으로써 부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원찰(願刹)을 세웠다.<BR><BR>소령원과 육상묘, 그리고 보광사는 바로 이러한 저승관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1739년에 겸재 정선이 그린「육상묘도(毓祥廟圖)」(보물 873호)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기록화라고 할 수 있다. 영조는 1753년에 육상묘를 육상궁으로 승격하였으며, 숙빈 최씨에게 화경(和敬)이라는 시호를 추시했다. <BR><BR>조선말에 고령사에서 보광사로 이름이 바뀌다<BR><BR>고령사가 언제 보광사로 이름을 바꾸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현재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지도를 통해서 추정해보면, 조선후기에 보광사로 부르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BR><BR>보광사 대웅보전에는 불국옹(佛國翁) 여여(如如)가 1869년(고종 6)에 쓴「고령산 보광사 상축서(高靈山普光寺上祝序)」가 걸려 있다. 응진전에도 1870년(고종 7)에 여여(如如)가 쓴「양주 고령산 보광사 십육성중전 이건기서(楊洲高靈山普光寺十六聖衆殿移建記序)」라는 판각이 걸려 있다. 이들 기록을 통하여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한 이후 봉은사나 보광사 등 왕실의 원찰도 함께 중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BR><BR>서울대 규장각에 소장된『1872년(고종 9) 지방지도』중의「양주목 지도」에도 ‘소령원’과 ‘보광사’라는 표기가 나타난다. 1899년에 편찬된『양주군읍지(楊洲郡邑誌)』불우(佛宇)조에는 “고령사 : 주의 서쪽 40리 백석면이 있는데 지금은 보광사라 한다.”고 기록했다. 1901년에 낭응 경림(朗應鏡臨)이 지은「고령산 보광사 법전 중창 병단호기서(高靈山普光寺法殿重創幷丹호記序)」에도 ‘보광사’라고 표기했다.<BR><BR>노동자·농민·학생·전경이 어깨를 걸고 탑돌이를 하는 원통전 벽화 <BR><BR>보광사의 원통전과 지장전 바깥벽에는 일반적인 사찰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벽화가 있다. 원통전(圓通殿)은 관세음보살이 사는 집이다. 원래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아바로키테슈바라'에서 유래했는데, 자재롭게 보는 이(觀自在者)라는 뜻이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을 관자재보살이라고도 부른다. 관세음보살은 모든 곳에 두루 있으면서 중생들의 고통을 씻어주고 소원을 들어준다. <BR><BR>지장전은 지장보살이 사는 집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 떨어진 모든 중생들을 다 구제할 때까지 부처가 되기를 거부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에 온 힘을 다 바치고 있다. 지장보살은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고 있고, 저승세계인 명부(冥府)를 관장하는 진광대왕·염라대왕·전륜대왕 등 10명의 시왕을 권속으로 거느리고 있다. 그래서 지장전을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 호세전(護世殿)이라고도 부른다.<BR><BR>보광사 원통전의 벽에는 정병을 들고 흰 옷을 입은 관세음보살이 머리띠를 질끈 동여 맨 노동자, 삽을 든 농민, 책가방을 둘러 맨 학생, 전투모를 쓴 전경 등을 두루 보살펴주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또한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전투경찰 등 모든 중생이 어깨를 걸고 부처님을 상징하는 석탑을 빙 돌면서 탑돌이를 하는 그림도 있다. <BR><BR>불기 2540년(서기 1996년) 9월 7일에 완성한 이들 그림들은 마치 80년대 대학가의 걸게그림을 연상하게 만든다. 사실 걸게그림은 불교의 괘불탱화(掛佛幀畵)가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원통전 벽화는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는 불교의 자비정신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BR><BR>관세음보살의 따사로운 손길은 왕이나 왕비뿐만 아니라 노동자, 농민, 학생, 전투경찰에 이르기까지 뭇 중생들을 두루 어루만져준다. 그 손길에는 차별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러기에 사상과 이념의 차이를 떠나 비전향장기수들의 묘역을 조성했던 것이리라.<BR><BR>게 눈 속의 연꽃 <BR><BR>지장전의 벽에는 모든 민중들이 용이 이끄는 지혜의 배 반야용선(般若龍船)을 타고 부처의 세계로 나아가는 그림이 있다. 반야용선에 탄 사람들의 모습은 서양인이나 중국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이를 통하여 종교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구름 위의 허공 속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구체적 현실 속으로 내려와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BR><BR>1994년에 신축하기 전에는 이 건물을 ‘호세전(護世殿)’이라 불렀는데, 황지우 시인의 ‘게 눈 속의 연꽃’이라는 작품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시인 황지우는 호세전 벽화에 그려진 게 눈 속의 연꽃을 보러 문학평론가 김현과 함께 보광사를 다녀온 이야기를 시와 대담(평론)으로 남겼다. <BR><BR>게는 바다로 나아가는 반야용선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김현과 황지우는 결국 게 눈 속의 연꽃을 찾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 벽화를 촬영한 사진이 보광사 종무소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몇 년 전 홍수가 나서 아쉽게도 분실되었다고 한다. <BR><BR>계엄사령관이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시주한 까닭은<BR><BR>보광사 뒤편 언덕에는 1980년 5월에 계엄사령관을 지낸 이희성이 시주했다는 거대한 석조미륵보살입상이 위압적으로 서 있다. 이 미륵상은 고령산의 산세나 절집의 규모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BR><BR>‘자비·우정’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레야’에서 유래한 미륵보살은 석가모니 입멸 후 56억 7천만년이 지나 세상에 출현할 미래의 부처라고 한다. 그는 용화수 아래에서 세 번의 설법을 통해 석가모니불이 구제하지 못한 중생들을 구제할 예정이다. <BR><BR>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무슨 생각으로 12.5m가 넘는 거대한 미륵보살상을 시주했을까? 광주에서 무고한 시민을 학살한 죄를 씻고 극락왕생을 꿈꾸었는지, 현세의 뛰어난 무공(?)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는지 궁금하다.<BR><BR>우익단체 회원들의 장기수 묘역 '연화공원' 훼손 <BR><BR>보광사 진입로 왼편 야트막한 언덕에는 장기수 묘역인 ‘연화공원’이 있었다. 연화공원에는 금재성(1998년 8월 사망), 최남규(1999년 12월 사망), 정순덕(2004년 4월 사망), 손윤규(1976년 4월 사망), 정대철(1990년 사망), 류락진(2005년 4월 사망) 등 여섯 명의 비전향장기수 유골이 안치되어 있었다. <BR><BR>최근 한나라당과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연화공원에 대해 색깔시비를 제기했다. 이에 고무된 대한민국애국청년동지회·대한민국HID특수임무청년동지회 등 우익단체 회원들이 지난 12월 5일에 보광사에 난입하여 빨간 스프레이를 뿌린 다음 비석을 때려 부수었다. 또한 우익단체 회원들은 장기수들의 유골을 파헤치고, ‘남파 공작원은 영웅이고 북파공작원은 역적이냐’ ‘연화공원을 찬양조성한 주지 일문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러한 사태로 인해 연화공원은 철거되었고, 장기수들의 유골을 다른 곳으로 이장하였다.<BR><BR>연화공원에 묻혔던 여섯명의 장기수<BR><BR>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1998년 당시 남북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해 유해마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비전향장기수 금재성의 자그마한 묘비를 진입로 왼편 호젓한 숲속에 세웠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BR><BR>“의사 고 금재성지묘 - 선생은 일제강점하 민족해방투쟁으로 3년의 소년옥과 해방 후에는 조국통일을 위해 57년 투옥되어 30년의 형옥 속에서도 전향을 하지 않고 당신의 지조를 지키며 빛나는 생을 마치다. 부인 이명숙, 아들 금환·금충렬, 딸 금두심”<BR><BR>금재성은 1924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졸업한 다음 해 온 가족이 함경도 원산으로 이사했다. 해방 전 원산에서 노동운동에 가담한 그는 1944년 금촌 소년 형무소에 투옥되었으나 해방직후 출소 했다. 출소 후 원산으로 돌아가서 45년 5월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해방 후 독찰대(헌병) 원산지구 대장으로 있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인민군으로 참전하였다. <BR><BR>정전협정 이후 인민군을 제대하여 원산 주을전기전문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던 금재성은 1956년 평화통일을 선전하는 정치공작원으로 선발되어 고향 땅 대전으로 내려왔다. 남파된 이듬해 체포되어 15년형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BR><BR>그러나 유신시절의 악법 가운데 하나였던 사회안전법으로 다시 청주보호감호소에 수감되었다가 1989년에 사회안전법이 폐지되어 출소했다. 수감 중 그는 비인간적인 전향고문에 저항해서 싸웠다. 출소 후에는 췌장암으로 오랜 기간 병마와 싸우다가 1998년 8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BR><BR>중생들이 사는 세상은 여러 가지 형상이 있으나…<BR><BR>1999년 12월 11일에는 87세의 비전향장기수 최남규 노인이 사망했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는 오갈 데 없는 그의 유해를 또 다시 보광사에 안치했다. 최남규는 청진교원대학 지리학교수로 일하다가 1957년에 소위 ‘평화통일을 위한 대남 정치공작사업’에 동원되었다. <BR><BR>남파된 직후에 체포된 그는 비전향자라는 이유로 29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징역을 살았다. 1989년에 사회안전법이 폐지되어 출소한 그는 오랜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폐렴·중풍·치매를 앓다가 1999년 12월 11일 서울의 보라매병원에서 사망하였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삶은 작가 류시춘이『안개너머 청진항』(창작과비평, 1995)이라는 제목으로 소설화시키기도 했고, 한국역사연구회 현대사연구반이 엮은『현대사 증언록 1 ; 끝나지 않은 여정』(대동, 1996)을 통하여 알려지기도 했다.<BR><BR>정순덕은 1963년에 지리산에서 체포된 여성빨치산으로 22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손운규는 빨치산 출신으로 유신정권의 조직적 전향공작과 고문·폭력 등 위법한 공권력에 의해 1976년에 사망했음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밝혀냈다. 정대철은 한국전쟁 때 인민군으로 참전한 빨치산으로 21년6개월 동안 투옥되었다. 류락진은 빨치산·혁신정당·호남 통혁당 재건위·구국전위 사건 등으로 모두 4차례에 걸쳐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BR><BR>남과 북은 이들을 서로 상반되게 평가하고 있다. 남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간첩’ 또는 ‘빨갱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북에서는 ‘통일애국투사’ 또는 ‘의사’로 찬양하고 있다. 이처럼 분단과 냉전이 만들어낸 적대의 골은 도저히 빠져나오기 힘들 정도로 깊기만 하다. 아마 옳고 그름을 따져 이들에 대해 통일된 평가를 내리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었던 전쟁의 당사자들이 옳고 그름을 따져서 화해와 평화를 이룰 수는 없다. <BR><BR>종교의 역할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보광사 원통전 벽화의 화기(畵記)에는 “중생들이 사는 세상은 여러 가지 형상이 있으나 반드시 부처님의 법 가운데로 돌아온다(衆生世界諸形相 必竟歸來佛法中)”는 글귀가 적혀 있다. 그러기에 아미타불과 관음보살은 따스한 손을 내밀어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계엄사령관 이회성, 노동자, 농민, 학생, 전경, 비전향장기수뿐만 아니라 소, 말, 개, 돼지, 새, 물고기까지 세상의 모든 존재를 두루 어루만져 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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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며칠 전 안재성의 소설 &lt;경성 트로이카&gt;를 읽으며 문득 떠오른 분이 있어 검색하다가<BR>파주 보광사의 연화공원과 원통전 벽을 알게 됐다.<BR>오래 전, 윤후명의 무슨 소설('모든 별들은 음악소리를 낸다'였던가?)을 읽다가 <BR>아주 상세하게 소개된 세종문회회관 외벽의 승천하는 선녀들 부조가&nbsp;<BR>그렇게도 보고싶더니만......<BR>그 소원을 푸는 데 5년 걸렸다.<BR><BR>바다야 항상 좋지만 가을에는&nbsp; 山寺가 더 운치있다.<BR>가을이 저물기 전에 꼭 가서 보고 싶다. <BR>그 정다운 벽화를, 숲을, 절집을, 그리고 묘역을......<BR><BR><BR><BR><BR><BR>보광사 대웅보전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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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보광사 원통전 벽화<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40221103240612.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59668</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개항도시 인천, 옛 모습 탈환 대작전 </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51703</link><pubDate>Fri, 15 Sep 2006 10: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51703</guid><description><![CDATA[


개항도시 인천, 옛 모습 탈환 대작전<!-----부제목------->

만국 공원 새단장, 서양식 근대건축물 5동 2011년까지 복원 추진 … 역사문화의 명소 ‘부푼 꿈’<!-----기자------->



인천=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 자료제공=인천학연구원 



“이미 전화(戰禍)로 烏有化한(폐허로 변한) 유서 깊은 건물 중에 가장 뇌리에 살아남는 것을 들라치면 서슴지 않고 인천각(仁川閣)을 지적할 것이다. 아름다운 다각형 지붕 위 짜르르 윤이 흘러내리는 새빨간 기왓장이며, 복잡한 굴곡의 새하얀 벽면과 엇비슷이 두 쌍 세 쌍 바다를 향하여 매어 달린 창(窓)과 창의 잊을 수 없는 향수여!”



<!-----발문 끝 -------><!----- CALVINTEX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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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의 만국공원 복원 예정도. 
시조시인으로 광복 직후 인천의 근대건축물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기록한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1958)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인천각’이란 1905년 건설된 존스턴 별장을 말한다. 기와지붕을 얹은 유럽 양식의 석조건물이었던 존스턴 별장은 ‘개항도시’ 인천의 랜드마크였다. 배를 타고 인천항으로 들어올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응봉산 언덕 위에 자리한 이 별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별장은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두 시간 앞두고 진행된 함포사격에 의해 재와 먼지로 변하고 말았다. 
이 존스턴 별장이 복원된다. 인천시는 100년 전 개항기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자유공원(옛 각국공원)과 그 주변에 열강들이 지었던 근대건축물 5개 동을 2011년까지 단계적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역사성, 건축성, 관광자원 가능성, 복원 가능성 등을 고려해 선정된 복원 대상은 존스턴 별장, 세창양행 사택, 알렌 별장, 영국영사관, 러시아영사관 등. 
인천시 중구 응봉산 언덕 위에 위치한 자유공원은 1888년 조성된 한국 최초의 공원으로 처음에는 각국공원으로 불리다가 이후 서공원, 만국공원, 자유공원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이하 조선인들이 가장 즐겨 부르던 이름인 ‘만국공원’으로 칭한다). 지난해 철거 논란이 일었던 맥아더장군동상이 바로 이 공원 안에 있다. 
만국공원이 옛 모습으로 단장되고 근대건축물들이 복원되면 우리도 일본 요코하마의 야마테 지구나 고베의 기타노 지구와 같은 개항기 역사문화를 간직한 명소를 보유하게 된다. 조선 땅에 서양 문물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만국공원이 바라보고 있는 인천항으로, 이 일대는 새로운 근대문화가 조선 전체로 퍼져나간 ‘문화 발신지’라고 할 수 있다.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김창수 박사는 “자유공원은 ‘다문화의 평화로운 공존’을 나타내는 공간이기 때문에 21세기에도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당시 중구 일대는 영국, 독일, 러시아, 중국, 일본 등 외국인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쪼개졌는데, 만국공원은 각국 조계(租界)지역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각국 대표가 참석해 조계지역의 운영과 치안, 도시계획 등을 협의하던 ‘제물포구락부’가 이 공원을 조성해 운영했다. 조선에 진출한 서구 열강들의 평화로운 ‘공존지대’였던 셈이다. 
만국공원은 경성 사람도 자주 찾던 관광명소 
처음에는 주로 외국인들이 이 공원을 드나들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조선인들도 즐겨 찾았다고 한다. 경인철도를 타고 인천에 놀러 온 경성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르던 관광명소. 하지만 이곳은 차별의 설움을 감당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공원과 건축물을 건설할 때 주로 일본인과 조선인 인부들이 동원됐는데, 조선인은 일본인과 똑같은 노동을 하고도 임금차별을 겪었다. 당시 일본인 목수와 미장꾼은 일당으로 70전을 받았는데, 조선인은 3분의 2 수준만 받았다고 한다. 또한 일본인 짐꾼의 일당은 50전이었는 데 반해, 조선인 짐꾼의 일당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 23전이었다. 
복원될 근대건축물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면 당시의 시대상이 읽힌다. 그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최성연 선생의 ‘개항과 양관역정’에 나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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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존스턴 별장 자리에 세워진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먼저 세창양행 사택은 1884년 건축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다. 세창양행은 독일 함부르크 상인 에드워드 마이어가 설립한 무역회사로, 직원 사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현재 맥아더장군상이 있는 자리에 이 사택을 지었다. 당시 조선인들 사이에서는 쉽게 무뎌지거나 부러지지 않는 ‘세창바늘’이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세창양행이 바로 이 바늘을 팔던 회사다. 세창양행은 우리나라에 최초로 재정차관 10만냥을 제공하기도 했고 1886년 ‘한성주보’에 최초의 신문광고를 싣기도 한, 우리에게 의미가 남다른 서구 회사였다. 
현재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이 서 있는 자리에 위치했던 존스턴 별장의 주인은 스코틀랜드 태생으로 상하이에서 항만건설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번 제임스 존스턴이다. 그는 여름철을 보내기 위해 이 별장을 지었다. 존스턴 별장은 존재 그 자체로 ‘다문화’를 웅변했다. 설계는 독일인이 맡았고 건축자재와 가구는 영국에서 가져왔으며, 붉은 기와는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공수해왔다. 실내 조각장식은 존스턴이 직접 중국에서 데려온 12명의 1급 중국인 조각가가 맡았고, 인부로는 조선인과 일본인이 동원됐다. 이 별장의 건축비는 35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였는데, 당시 인천 최고 갑부의 전 재산이 35만원이었다고 한다. 
존스턴은 여름철마다 상하이에서 가족과 친구들을 데리고 이 별장으로 와 머물렀다. 아예 기선 한 척을 통째로 세내어 많은 군중을 데려온 적도 있는데, 그중에는 개, 고양이, 중국인 아이들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월미도 포구에서 바라본 1907년 당시 인천항 풍경. 
한 모퉁이를 둥근 탑으로 쌓아올려 작은 돔을 세운 것이 특색인 알렌 별장은 주한 미국공사이자 선교사이며, 한국 최초의 현대식 병원 광혜원을 설립한 알렌의 별장이었다. 아관파천으로 상심한 고종황제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 알렌 별장 바로 옆 부지에 피서용 이궁을 지으려 했다가 러일전쟁이 발발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파라다이스 호텔이 있는 자리에 위치했던 영국영사관은 붉은 단층 벽돌집으로 정원이 특히 아름다웠다고 한다. 1903년 건축된 러시아영사관은 다소 성급하게 건축됐다. 당시는 러일전쟁의 전운이 감돌던 때로, 러시아는 커져가는 일본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서둘러 인천에 영사관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만국공원 일대의 ‘평화로운 문화 공존’은 점차 와해돼갔다. 열강이 떠난 근대건축물은 일본 차지가 됐고, 광복 후에는 미국 몫이 되었다가 6·25전쟁 당시에는 북한군에 의해 점령됐다. 


복원 예정 근대건축물 세부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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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턴 별장 
세창양행 사택 
알렌 별장 
영국영사관 
러시아영사관 

건립 연도 
1905 
1884 
1893 
1897 
1903 

멸실 연도 
1950 
1950 
1956 
1950년대 
1974 

멸실 사유 
인천상륙작전 함포사격 
인천상륙작전 함포사격 
소실 
6·25전쟁 당시 없어짐 
철거 

현재 상황 
자유공원 내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탑 
자유공원 맥아더장군동상 부근 화단 부지 
인천 전도관 
파라다이스 호텔 
상업건물 

의의 
인천의 랜드마크, 인천의 상징물로 기능 
인천 최초의 서양식 건물 
고종황제의 이궁 예정지 옆에 세워짐 
영국영사관으로 발전에 중요 역할 수행 
인천해관, 러일전쟁, 제물포 해전 관련한 역사적 장소 

주요 기능 
별장, 여관, 고급식당, 장교 숙소 
외국인 주택, 인천부립도서관, 인천시립박물관 
별장 
영사관 
체신국 출장소, 미국 철도 수송대 등 
&nbsp;&nbsp; 




러시아영사관의 옛 모습. 
1904년 2월 러일전쟁이 터지자 러시아영사관은 일본군에 의해 포위됐다. 러시아 공사 파브르프는 인천항에서 쫓겨나다시피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그는 닷새 동안 배 안에서 러시아 거류민, 부상병 등이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출항했다. 이후 러시아영사관은 일본군 철도수송대 사무실 등으로 이용됐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패망하자 인천에 있는 독일인들의 재산이 동결됐다. 세창양행 사택에 거주했던 독일인 파울 슈르바움은 1916년 일본군에 의해 쫓겨나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떠돌았다고 전해진다. 존스턴 별장은 독일인과 결혼한 존스턴의 딸 월터 부인이 재산 동결로 경제적 고충이 심해지자 일본인 히로자와에게 4500원이라는 헐값에 팔아넘겼다. 히로자와는 조선 총독이었던 사이토 마코토 자작에게 이 별장을 뇌물로 바칠 생각이었는데, 거절당하자 다른 일본인에게 매각했다. 이후 존스턴 별장은 해방될 때까지 ‘인천각’으로 불리며 고급여관 겸 요정으로 사용됐다. 
존스턴 별장, 인천 점령자들에게 최고 인기 
인천의 근대건축물 중 가장 아름답고 전망이 좋았던 존스턴 별장은 인천의 점령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건물인 듯하다. 광복 이후 이 별장은 미 군정청이 점유해 독신장교 숙소로 사용됐고, 6·25전쟁 때는 북한군의 주요 간부 숙소로 활용됐다고 한다. 





영국영사관의 옛 모습. 
만국공원 복원 프로젝트는 현재 인천시민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4월3일부터 열흘 동안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에서 열렸던 ‘만국공원의 기억전’에는 1300여 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전시를 주관한 인천문화재단 관계자는 “현재의 자유공원이 과거 이러한 역사를 가진 공간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어 뜻 깊었다는 시민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인천문화재단은 5월1일부터 인천터미널 역에서 추가 전시회를 열었다. 상지대 조우 교수(관광개발학과)는 “연간 인천을 찾는 관광객은 1000만 명 수준인데, 월미도와 차이나타운, 자유공원 등을 돌아본 뒤 실망감만 안은 채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며 “근대건축물들이 복원되면 개항기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어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인천에 소재한 재능대학 손장원 교수(실내건축디자인과)는 “벽돌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100년 전 건물을 다시 짓는다는 것은 껍데기만 만들어놓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영국영사관, 러시아영사관, 알렌 별장 등은 만국공원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했는데도 만국공원으로 옮겨와 복원한다는 것은 단순한 관광단지 개발에 불과한 것 같아 아쉽다”고도 덧붙였다. 
이제 우리도 근대의 시발점이었던 100년 전 개항기 역사를 간직한 ‘특별한’ 공간을 갖게 될까. 만국공원 복원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될지 사뭇 기대된다.&nbsp;&nbsp;&nbsp;(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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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BR>ㅡ사진 : 바람구두(인천광역시립박물관에서)
벽돌 한 장, 설계도 한 장 남아있지 않은 건물을 복원한다는 다소 무리해 보이는 프로젝트가 추진되고 있다. 아무리 근대건축물의 복원이라지만 단지 사진 몇 장으로 증거되는 건축물, 그것도 식민시절의 추억을 복원하는 사업이 추진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곳이 과거의 만국공원, 현재의 자유공원이기 때문이다.
아다시피 자유공원에는 맥아더 동상이 있고, 이 동상을 철거하기는 커녕 옮기기도 쉽지 않은 형국이다. 그러다보니 일종의 꿈수를 두는 셈인데... 물론 나는 맥아더 동상이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편이긴 하다. 그러나 우스운 건, 현재의 식민지성 혹은 불구성을 감추기 위해 과거의 불구를 찾아 제자리에 돌려두는 일은 과연 옳은가? 본질적으로 과연 얼마나 다른 일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 의문이 풀리지 않아 나는 슬프다.]]></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앙코르 가기 전 책 몇권 추천해드립죠.</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49754</link><pubDate>Mon, 11 Sep 2006 22: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4975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510264&TPaperId=94975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4/86/coveroff/8991510264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642102&TPaperId=94975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4/20/coveroff/898264210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642099&TPaperId=94975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4/19/coveroff/898264209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9205603&TPaperId=94975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5/31/coveroff/898920560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70906&TPaperId=949754"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4/77/coveroff/8936470906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baramdori/949754'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제가 읽은 책이 몇권 안되는지라,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BR>앙코르 가기 전, 혹은 가서 읽을 책 몇권 추천해드립니다. 
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list.aspx?MCID=2136431
위의 리스트.는 ilovecambodia.com 에서 보고 참조하고, 내용 요약한 리스트인데, <BR>캄보디아. 관련 거의 모든 책.을 망라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중에서 제가 골라 골라 읽은 것이 몇권 있구요. 
한권만 읽으셔야겠다면, 
<BR>&nbsp; ' 앙코르와트의 모든 것' 을 추천합니다. <BR>&nbsp; 제목이 너무 적나라한가요? <BR>&nbsp;사진이 모조리 흑백이라 맘에 안드나요?<BR>&nbsp; 
&nbsp;각각의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물론이고, <BR>&nbsp;앙코르와 관련된 책들의 발췌부분도&nbsp;알차고, &nbsp;<BR>굳이 컬러가 아니어도 좋은 흑백사진들도 보기에 좋습니다. <BR>빨간색의 컬러가 주.인데, 사진 옆 설명.들이 빨간 박스에 들어가 있고, <BR>각단락의 제목이 빨간 박스에 들어가 있으며, <BR>각 단락/유적마다 '포커스 하이라이트'가 빨간 색으로 본문 옆에 강조되어 있습니다. 
캄보디아/앙코르의 현재에 대해서도, 근대사에 대해서도 사진과 설명이 아주 친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BR>역사나 유적지에 대한 일화들도 사진자료와 함께 잘 소개개되어 있습니다. <BR>
이런 책을 읽을때 쥐약.인것은 '재미없음' 인데, 작가의 필력도 나쁘지 않아<BR>앙코르.를 모를때에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BR>앙코르.를 탐험하면서는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두권을 보신다면 <BR>
&nbsp;유재현의 '메콩강의 슬픈 그림자 인도차이나' 를 추천합니다. <BR>&nbsp;유재현님의 글은 쿠바사진에세이 '느린 희망'을 읽고 믿음 가지고 이 책도 샀는데, <BR>&nbsp;'느린 희망' 보다 훨씬훨씬 재미있게 봤습니다.&nbsp;<BR>&nbsp;사실, 이 책은 앙코르.를 가거나 말거나, 강력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nbsp;<BR>&nbsp;일본에 하루키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유재현이 있다! 라고 ( 최소한 여행기에서는) 말하고 <BR>&nbsp;싶을 정도로 재미납니다. 하루키의 유유자적 작가적인 여행기들에 비해, 유재현님은 뭐랄까, 소외되고 아픈 곳을 담담하게 기록하는 여행기.입니다. 유머! 가 빠질 수 없습니다. 인생은 아름다워. 어떤 상황에서라도. 가끔은 감정적이지만, 대부분은 담담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BR>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의 이야기입니다. 캄보디아.를 알기 위해, 베트남.과 태국. 을 아는 것이 중요한데, <BR>우리나라의 역사를 볼 때 일본과 중국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는 것처럼요. 도올의 '앙코르와트, 월남 가다' 를 읽고 그 오만에 한참 신물날때 이 책을 읽어서 더욱 더 훌륭하게 여겨지는 책입니다. <BR>유재현님이 직접 찍은 사진들.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얘기 보다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 소회들, 그 나라의 역사, 정치,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많은 유적지.들에 체하기 보담은 이 책에서 본 유적지는 유독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세권 이상을 보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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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도올의 '앙코르와트, 월남가다.' 는 베트남 얘기 반, 앙코르와트 얘기 반. 이 아니라, <BR>대부분 '앙코르' 이야기 입니다. 도올에 면역이 있으신 분이라면, 유적지 정보, 건축물 이야기, 신화 이야기 등에 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가끔 뜬금없이 끌어다붙이는건 정말 재섭죠. 두권으로 나눈 것도 불만.<BR>역시나 도올이 직접 찍었다는 사진(컬러입니다) 은 의외로(?) 괜찮습니다. 책은 작고 얇은 하드커버. 두권! 도올이 일주일 여행하고 쓴 여행기( 부럽기도 하고, 일주일.만큼이다 싶기도 하고) 
윌리엄 쇼크로스의 '숨겨진 전쟁' 은 퓰리쳐상 후보에도 올랐던 영국 저널리스트, 윌리엄 쇼크로스의 책입니다. 원제는 키신저, 닉슨의 캄보디아 침공. 인데요, 베트남 전쟁이야 널리 알려졌지만, 그 과정에서의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에 대해서는 그로인한 많은 민간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직후 폴포트의 킬링필드탓으로 대부분 돌려졌습니다. 그에 관한 리포트. 인데, 첫장부터 꽤나 긴박한 것이, 베트남전조차, 영화.나 책.으로만 접한 저에게는 미국의 캄보디아 침공이 어마어마하게 불합리하고, 억울하고, 야만적인 전쟁. 으로 느껴지더군요. 정확한 시간, 작전명, 관련된 실명들이 시간별로 급박하게 진행되어, 단숨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씨엠립의 외국서적의 캄보디아 서적들 모아 놓은 곳에도 이 책이 (물론 영어원서로) 있더군요. '지금 한국번역본으로 읽고 있다' 고 하니, 책파시는 아주머니가&nbsp; ' 아주 좋은 책이다' 를 몇번이고 말씀하시더군요. 이런 종류의 책이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캄보디아 통인 김주환 기자의 번역으로 소개된 귀한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 다만, 앞의 서문들, 추천사들은 좀 오버;;) 
앙드레 말로의 '왕도로 가는 길'을 사야지 싶었던건 '앙코르와트의 모든 것'에 꽤나 여러장에 걸쳐 인용되었던걸 보고 나서.입니다만, 앙드레 말로가 젊은 시절 반테이스라이.의 부조( 압사라상)을 밀수하려다 잡혔던 기억을 토대로 쓴 소설.이라지요. 실제로, 살아있는듯한 앙코르 유적의 부조들이 그 경험이야 치사했건 어쨌건간에 '고전'의 반열에 든 대작가의 필치로 살아 있지요. <BR>유재현님이 이 책을 보고 막연히 앙코르.에 가고 싶다. 고 꿈꿨다고 하네요. 
<BR>&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28/2/cover150/8986045575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6045575</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몽둥이를 놓자 폭력이 보였다.</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43111</link><pubDate>Thu, 31 Aug 2006 0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43111</guid><description><![CDATA[몽둥이를 놓자 폭력이 보였다<BR><BR>

국기에 대한 경례 거부로 징계를 앞둔 상동고 이용석 교사의 심경 고백…폭력을 휘두르는 교사가 된 자신을 돌아보며 전체주의에 반대하기로 결심 

▣ 이용석 부천 상동고 교사<B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아침이다. 교문지도를 해야 하니까 서둘러야겠다. 아 참! 오늘은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이잖아. 
아침 7시에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의 수업 자료가 들어 있는 가방을 책상에 내려놓고 교문으로 나간다. 난 학생생활지도 담당 교사이다. 내 손에는 이미 나에게 잘 길들여진 단단한 몽둥이가 들려져 있다. 교문에서 학교 건물로 이어지는 진입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제대로 봐야 한다. 





<BR>
△&nbsp;지난 7월 징계위에 불참한 이용석 교사는 고민 끝에 출석하기로 결심했다. 8월4일 출석에 앞서 경기도 교육청 앞에서 연설하고 있는 이 교사의 모습.<BR>


등교하는 아이들의 머리 모양, 교복 상태, 운동화 종류, 왼쪽 가슴에 부착돼 있어야 하는 이름표, 남학생의 넥타이와 여학생의 리본 착용 여부 등 이 모든 걸 한눈에 보고 지나가는 아이들 개개인을 모두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교하는 아이들이 왼쪽으로 일렬을 지으며 들어온다. “너, 머리!” “너, 운동화!” “너, 야! 너 말이야! 왜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 엉?” 색출된 아이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손 들고 서 있게 한다. 

가장 싫어하는 인간과 닮아버린… 

아침 7시50분. 등교 시간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모두 지각생이다. 지각생들은 진입로 오른쪽에 일렬로 ‘엎드려뻗쳐’를 시킨다. “인문계 고등학생들이 제정신이냐?” “넌 또 지각이야?” 지각생들은 엉덩이를 맞는다. 잘 부러지지 않게 다듬어놓은 몽둥이로 초범과 재범 등을 가려내어 엉덩이를 때린다. 어쩔 수 없다. 이건 벌이니까. 지각했으니 정신을 차리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해서라도 아이들을 바로잡는 것이 결국 아이들을 위한 것이다. 아직 아이들은 성인이 아니기 때문에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 이건 교사의 역할이자 의무이다. 
아침 9시. 학교 전체 운동장 조회가 시작된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저 뒤에서 시시덕거리는 아이들이 눈에 보인다. 아이들 사이를 가로질러 가서 정강이를 냅다 걷어찬다. “지금 국기에 대한 경례 하는 거 몰라?”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중이다. 아이들의 줄이 흐트러지고 여기저기서 잡담이다. 아이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며 정강이 차기, 뒤통수 치기, 꿀밤 주기 등 온갖 잡기를 동원해서 ‘질서’를 잡는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반장, 시작하자” “차렷!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 
교사 1년차 때 나의 모습이다. 덕분에 나는 1년 내내 1교시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울 수밖에 없었다. 





<BR>
△&nbsp;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다. 국기 경례에 대한 다른 의견도 다양성으로 포용하지 못한다.<BR>


군대 시절에 많이 맞았다. 군기를 잡기 위해, 부대가 원활히 움직이게 하기 위해, 상명하복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많이 맞았다. 그때 난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느꼈다. 인간으로서 존중이 아니라 오로지 계급에 의해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그곳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고 치를 떨었다. 난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이미 나에게는 그 폭력이 내면화돼 있었다. 당연히, 혹은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각인시키면서 아이들에게 똑같은 폭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교사가 된 뒤 1년을 보내며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의 모습을 내가 닮아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그로부터 1년 뒤, 상당한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뒤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손에서 몽둥이를 놓은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에게 하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몽둥이를 들지 않은 손과 입과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들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게 말이다. 

‘하지 않는 것’으로 출발하다 

여학생들에게 여자다움을, 남학생들에게 남자다움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남녀의 성역할을 고정시킴으로써 성적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있는 교무실에서, 꾸중을 듣고 있는 아이의 자존심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잘못을 해서 교무실에 불려와 교사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수치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다는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되돌아가는 모습에서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똑같은 머리 모양과 똑같은 복장에서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전체주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장 선생님께 대하여 경례!’라고 힘있게 말하는 마이크 소리에서 군대식 복종 문화가 자리잡은 학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들지도 않은 학생 두발 규정에 의해 머리카락이 잘려나가는 아이들의 인권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호에 모두가 국기만을 바라보는 모습에서 무조건적 충성을 요구하는 국가주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한 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학교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진 자, 남성, 성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중심의 획일화된 가치관과 그것이 반영된 제도가 ‘상식이고 정상’이라고 말하는, 단지 차이일 뿐인 것을 차별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소외된 약자(없는 자, 여성, 청소년, 성적 소수자, 장애인)의 권리는 사회 전체를 위해 희생될 수 있다는,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이 ‘미덕’이고 ‘우선’이라고 말하는 이 사회를 그대로 가르치고 있다. 그렇기에 말로는 다양성을 말하지만 사실은 ‘획일화된 상식’이 교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몽둥이만 들지 않았을 뿐, 획일화된 상식의 폭력이 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아마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학교장의 말 한마디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지금의 학교 구조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몇 명의 학생이 남았는지가 교사의 학생지도 능력으로 이해되는 입시지옥 학교 현실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이들에게 인권은 사치가 되어버린 학교의 몰인권적 문화 속에서 일개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무기력함이 부끄러운 시간들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에서 출발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으로 아이들과 함께할 것인가? 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주입시키는 곳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나는 삶으로 아이들과 함께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삶에서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나의 삶이 획일적 상식이 아니라 다양성 그 자체를 인정하고, 나의 말과 행동이 어떤 대상에게도 폭력적이지 않도록 하는 것에서 말이다.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한다 

그래서 나는 하나만을 강요하는 모든 경향성을 반대한다. 그 경향성은 ‘전체주의’로 귀결될 것이다. 전체주의는 결국 모두에게 개인의 삶을 부정하는 억압과 폭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 경향성은 ‘인간’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획일화된 문화와 규범에 반대한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개인과 존재의 다양성을 말살하기 때문이다. 학교장의 지시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학교 구조에 반대한다. 그것은 일방적 복종만을 통해 이 사회를 그대로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힘들 것 없는 동작과 몇 마디밖에 안 되는 문장이 무조건적 충성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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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이 교사의 행동은 수구보수 세력의 ‘전교조 죽이기’에 이용되고 있다. 8월4일 집회에 나온 민주노총 조합원들.<BR>


다르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가할 수 있는 권리와 정당성은 과연 누구에게서 부여받은 것인가? 지금 이 획일화된 사회에서 내가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해 나는 내 삶에서 작은 것이라도 ‘획일화된 상식’을 거부하고 싶다. 국기 경례(맹세)를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일부 학부모들은 나에 대해 경기도교육청에 민원을 접수시켰고,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은 나를 교단에서 영구 퇴출할 것을 경기도교육청에 요구하고 있다. &lt;조선일보&gt;는 나를 ‘편향된 가치관 교육’의 문제 교사로 낙인찍었다. 그리하여 나는 경기도교육청으로부터 중징계 의결 예정을 통보받았다. ‘획일화된 상식’의 벽이 아직 매우 높다는 것에 마음이 우울하다. 앞으로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상황이 나 자신에 대한 시험장이 될 것 같다.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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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 

이 교사 사건은 수구 세력의 ‘전교조 죽이기’와 연결돼 

▣ 수원=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이용석 교사의 징계위원회가 열린 8월4일 오후, 수원은 섭씨 35도까지 올랐다. 경기도교육청 앞에서는 40여 명의 동료 교사와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땡볕 속에서 장시간 집회를 벌였다. 이 교사는 고민 끝에 징계위 출석을 결심하고 나왔다. 그는 “위원회에 들어가 징계의 부당성을 말하겠다”며 집회 군중을 뒤로하고 건물로 들어갔다. 징계위는 오후 2시께 시작됐다. 
국기 경례를 하지 않고 ‘편향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징계위 회부까지 이어진 이용석 교사 사건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수구보수 세력의 일련의 ‘전교조 죽이기’ 속에서 돌출된 사건이라는 점이다. 도교육청의 ‘장학지도’로 해결되던 사안이 &lt;조선일보&gt;에 의해 대서특필돼 사회 문제화되고, 급기야 ‘학교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가 개입하기 시작한 점이 이를 보여준다. &lt;조선일보&gt; 등 수구보수 세력들은 전교조 부산지부의 통일교재 사건 등과 함께 이 교사를 지목하며 사상 공세에 ‘올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 교사 사건은 근본적으로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관한 문제다. 우리는 국기 경례를 하지 않는 개인에게 과연 불이익을 줄 수 있느냐는 논쟁적 장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경기도교육청은 이 교사의 행위가 공무원의 품위 유지와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평화인권연대 등 39개 단체가 모인 인권단체연석회의는 8월3일 성명을 내어 경기도교육청의 징계 시도를 “우리 사회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검열하고 교사가 소신 있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하는 위험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징계위는 5시께 끝났다. 온도는 2도밖에 내려가지 않았다. 이 교사는 “가치관에 관한 문제는 징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사실관계에 대해서만 답변을 했다”며 “이 때문에 징계하려면 차라리 헌법을 징계하라”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은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해 이 교사에게 통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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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일본공산당의 조선인을 기억하라 </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42027</link><pubDate>Tue, 29 Aug 2006 09: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42027</guid><description><![CDATA[


일본공산당의 조선인을 기억하라



[한겨레21 2005-08-0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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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한겨레] 1952년 6월, 동포 죽이는 살인무기 제조를 거부한 스이타역 타격사건<BR>일본 지식인사회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그들의 잊혀진 역사를 찾아나서다 
▣ 도쿄·오사카=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최근 일본 사회는 일본공산당뿐만 아니라 남한도 북한도 버린, 1952년의 재일 조선인의 ‘위대한 투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가운데 스이타 사건은 일본 반전 투쟁의 커다란 산이다. 일본공산당이 지도한 스이타 사건은 오사카부 스이타시 스이타역 조차장에 있던 군수열차를 타격하려다 경찰의 발포로 강제 진압된 투쟁으로, 지난해 6월 &lt;오사카에서의 반전 투쟁&gt;이라는 책이 나와 학계로부터 다시금 주목받았다. 
1945년 패망한 일본은 1950~53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다시 고도 성장의 발판을 마련한다. 패망 이후 멈췄던 군수공장에서 다시 기계가 돌아갔고, 경기도 살아나기 시작했다. 
강제징용자들의 새로운 비극 
그러나 재일 조선인의 비극은 다시 시작됐다.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군수공장에서 노역에 시달렸던 조선인들은, 이번에는 한국전쟁에 쓰이는 각종 무기를 만들어야만 했다.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우리 손으로 동포를 살해하는 무기를 만들어선 안 된다”며 파업을 선동했다. 그리고 공산당의 지도 아래 모인 시위대는 반전 집회를 마치고 군수공장 폭파·군수열차 정지 등 각종 폭력투쟁을 벌였다. 그 하나가 바로 스이타 사건이다. 
초여름의 열기가 피어오르는 오사카 최대의 한인촌 쓰루하시. 한국전쟁에 실려가는 각종 무기의 원자재가 생산됐던 이곳에서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74)씨를 만났다. 일본공산당 민족대책부 산하 조국방위위 기관지 &lt;마루세다&gt;의 기자로 스이타 사건을 지켜본 그는 아직도 일본 경찰이 벌였던 추악한 탄압을 잊지 않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4·3 항쟁을 겪고 한국에 건너온 뒤 1950년 공산당에 입당했어. 미군에 의해 폐쇄된 나카니시 민족학교를 다시 여는 임무를 맡았고, 동네 구석구석을 다니며 학생들을 모집했지. 고생 끝에 1952년 5월에 나카니시 학교의 문을 열고 조선말을 가르쳤어. 겨우 안정됐나 싶었는데 스이타 사건이 일어났어. 그해 6월24일이었지.” 한국전쟁 발발 2주년 전야였던 1952년 6월24일. 미군은 오사카부 이타미 기지에서 터를 잡고 연일 한반도를 향해 폭격기를 쏘아올렸다. 스이타역의 조차장에선 전쟁무기와 군수품을 실은 열차가 달렸다. 이 물건들은 고베항에서 한반도로 보내졌다. 
이날 저녁 6시께 오사카대학에서 조선인과 일본인 4천여명은 ‘이타미 기지 분쇄, 반전 독립의 밤’ 집회를 치렀다. 집회를 마친 뒤, 시위대열은 두 갈래로 나눠 행진했다. 목표 지점은 스이타역 조차장. 시위대는 이곳에서 군수열차를 부수는 거사를 벌이기로 한 터였다. 
“일본인들 대부분은 1차 집회를 마치고 자리를 떴고, 조선인들이 많이 남았어. 일단 스이타역의 철길과 열차에 불을 지르고, 그래도 안 되면 쇠사슬을 묶고 시위대가 철길에 드러눕기로 했지. 군 수송열차를 1시간 지연시키면, 조선인 동포 1천명을 살릴 수 있거든.” 
흥분한 시위대열 “오사카역으로 가자!” <BR>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면서 경찰과의 대치와 돌파를 거듭한 끝에 25일 새벽에야 스이타역 조차장에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썰렁한 철길 위에는 새벽 안개만 피워오를 뿐이었다. 군수열차는 보이지 않았다. 
“오사카역으로 가자!” 흥분한 시위대열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전철을 타기 위해 시위대가 스이타 역사로 들어서는 순간, 기다리던 일본 경찰은 총을 쏘기 시작했다. 스이타역은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11명이 중경상을 입고 250여명이 체포됐다. 
김씨는 자신이 일궈왔던 나카니시 민족학교의 동지들이 많은 희생을 치른 것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 
“보통 열차 정지 투쟁에서 후미 대열은 선두 대열보다 훨씬 위험했어. 후미 대열은 십중팔구 경찰에 잡혀갔지. 공산당 상부에서 후미 부대를 누구로 할까 고민했는데, 나카니시 사람들이 선정된 거야. 나카니시는 당시 오사카 일대에서 가장 잘 조직된 곳이었거든. 말리고 싶었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도 없고….” 김씨와 절친했던 나카니시 민족학교 교장인 장학수씨와 학생과 교사, 학부모들이 이날 일본 경찰에 연행됐다. 이날 체포된 시위대 250여명 가운데 111명이 소요죄와 공무방해죄로 일본 검찰에 기소됐다. 이 가운데 40%가 조선인이었다. 재판은 19년이 걸렸다. 이 와중에 1953년 재판정에 선 피고들이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을 위해 묵념을 한 ‘스이타 묵념’ 사건(상자기사 참조)이 일어나는 등 여러 논란이 인 끝에 결국은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시종씨는 한국 음식점이 즐비한 쓰루하시 일대를 가리키며 “여기서 한국전쟁 때 쓰이는 군수물자를 다 조달했다”며 씁쓸해했다. 가난했던 조선인들은 고철을 주워 영세 철공소에 갖다주며 생계를 이어갔다. 철공소는 이를 적당히 가공해 대규모 군수공장에 내다 팔았다. 군수공장의 하청업체였던 셈이다. 한번 터지면 사방 200m로 파편이 튀는 오아쿠 폭탄도, 네이팜탄도 이곳 조선인 노동자들의 손을 거쳤다. 수류탄의 안전핀을 직접 만드는 공장도 있었다. 
‘조선인 사장’들은 파업에 불편해하다 




<BR>그래서 조선인 당원들은 철공소 노동자들에게 ‘동포를 죽이는 일에 가담치 말라’며 파업을 선동했고, 일단 만들어진 전쟁무기가 조국으로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선 군수열차를 정지시켜야만 했다. 돌을 던져 신호등을 깼고, 철길의 목침을 잘랐다. 화염병을 던져 수송열차 한 편만 정지시켜도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절박했다. 살인무기가 조선 반도로 건너가도록 놔둬선 안 됐다. 
흥미로운 건 쓰루하시에 있는 영세 철공소 사장의 상당수가 자수성가한 조선인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인 사장으로선 ‘동족상잔의 무기’라도 팔아야 이문이 남았다. 그래서 김씨는 “1950년대 반전 투쟁은 재일 조선인이 계급적으로 분리되는 계기”라며 “반전 투쟁은 계급 투쟁이기도 했다”고 평했다. 철공소 사장들은 공산주의자들이 ‘기계를 멈추라’고 하는 파업 선동에 불편해했고, 일부는 민단이 보낸 ‘학도 의용군’에 성금을 보냈다고도 했다. 
<BR>
일본 공산당 주요 연표 
1922년 7월 일본공산당 창당. 가타야마 센, 사카이 도시히코, 도쿠다 규이치 등이 중심 인물. 
1923~24년 주요 간부가 체포되면서 비합법적인 투쟁 전개. 
1931년 10월 ‘일국일당’ 원칙에 따라 조선노동당 일본총국이 흡수되면서 조선인들이 활동 시작. 
1945년 10월 주요 간부 출옥, 합법적인 정당으로 재건. 중앙위원에 재일 조선인 김천해 포함됨. 
1949년 1월 총선거에서 35석 차지. 
9월 점령군(미군)·일본의 좌익 탄압 정책(단체 등 규제령)에 따라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해체. 
1950년 1월 코민포름의 일본공산당 비판. ‘평화혁명론’과 ‘점령군=해방군론’은 제국주의를 찬미하는 이론이라는 내용. 이를 소극적으로 받아들인 소감파와 전면적 수용을 주장한 국제파로 분열. 
5월 민족대책부 중심 비합법적 조직 조국방위위 결성. 
6월 점령군, 공산당 중앙위원 추방령 발표. 기관지 &lt;아카하타&gt; 발행 금지. 도쿠다 규이치 중국 망명. 
1951년 10월 ‘51년 테제’ 발표. 무기제조법 교과서 배포하는 등 군사노선으로 선회. 
1952년 5월 조선전쟁 반대 투쟁. 도쿄 ‘피의 메이데이’ 사건, 스이타 사건. 




<BR>7월 나고야 오스 사건 1954년 8월 북한 남일 외상 성명 “재일 조선인은 공화국의 해외 공민”. 
1955년 초 조선인 당원 집단 탈당. 
5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총련) 결성. 
7월 제6차 전국협의회에서 극좌모험주의 비판, 평화혁명 노선으로 재전환, 민족대책부 해체. 
2005년 현재 중의원 9석(총 480석), 참의원 9석(총 242석).<BR clear=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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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념’이 던진 파문 
스이타 사건 피고인들의 재판정 돌발행동이 일본 사법부의 독립성을 깨우다 
스이타 사건의 피고인 111명은 소요죄와 공무집행방해죄로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았다. 대개가 재일 조선인이었다. 변호인단은 “헌법 옹호를 위해 행진하던 시위대를 경찰이 부당하게 습격한 사건”이라고 반박했다. 
1953년 7월29일 제29차 공판. 조선인 피고인 강순옥은 재판정에서 “7월27일 합의된 휴전을 축하하며 전쟁 때 스러진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자”고 제안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피고인들은 일제히 묵념을 했다. 검사는 제지를 요청했지만, 재판을 진행하던 사사키 데쓰조오 판사는 묵념을 중지시키지 않았다. 
이 사건은 일본 법조계에 파문을 던졌다. 재판정에서의 단순한 묵념 사건은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논쟁으로 번졌다. 오사카 검찰은 재판부가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며 즉각 항의했고, 중의원 법무위원회까지 나서 ‘적절한 조처’를 요구했다. 재판관 탄핵소추위원회는 8월11일 오사카 고등법원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사사키 판사는 “재판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라고 조사를 거부했다. 오사카 지방법원 판사들도 자료 제출을 거부했기 때문에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피고인 전원이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사건은 일단락됐다.<BR clear=all>ⓒ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description><image><url>http://imgnews.naver.com/image/036/2005/08/05/021005000120050803571_59_1.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42027</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한국군의 군사력, 그 정확한 실체는무엇인가?ㅡ2 </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40370</link><pubDate>Sat, 26 Aug 2006 06: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40370</guid><description><![CDATA[자 그럼 시작하자. <BR>전 시리즈에서는 해군에 관한 숫자놀음의 허구성을 깨보았다. 이젠 하늘로 가보자. <BR>먼저 독자여러분의 이해를 돕기위해 남북한의 비행기 숫자를 살펴본다. 북한은 890여대의 전투기를 가지고 있고, 남한은 대략 480여기이다. <BR><BR>공군.. 이거 아주 중요하다. 현대전쟁의 핵심전력이면서 승패를 결정적으로 좌우한다. <BR><BR>사실 20세기 전쟁에서 제공권(하늘장악)을 빼앗기고도 이긴 나라는 없다. <BR>(베트남만이 유일한데, 이것은 미국의 제한 전쟁전략에서 기인한 영향이 크다. 북위17도선 위로 지상군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미국의 전략은 물론 미국이 맘이 좋아서 이런것은 아니다. 미국매파들은 손발을 묶어놓고 싸운다는 불만이 많았고 따라서 몇번이나 17도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생각했었다. 이것은 68운동이라 불리는 전세계적인 반전평화시위와 테트공세(구정공세)에 놀란 국내 정치적 상황에서 나온 타협책이었다는 성격을 기억해야 한다.) <BR><BR>공군은 돈이 많이 든다. 따라서 미국처럼 전세계의 바다를 석권할 생각이 아니라면(미국국방비의 38%를 해군이 사용한다. 그다음은? 당근 공군이다. 다음은? 육군이고 전략로켓군, 해병대 순이다.) 공군이 투자 1순위다. <BR><BR>공군의 투자가 돈으로 쳐바르는 이유중 하나가 일단 비행기는 날아야 한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즉, 한시대의 최첨단 기술이 집약되는 병과가 공군이라는 것이다. 물론 바다에 뜨거나 바닷 속을 가는 것도 기술이 필요하지만 나는것에는 상대도 안된다.(항공역학이라는 분과학문이 있다. 조금만 공부해보시라..) <BR><BR>일례를 한번 들어보자. 얼마전에 "물먹는 하마" 전투기 한대가 우리나라에 출현하였음은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이다. 이 비행기는 기름대신 물을 먹었다. <BR>그래서 활주로에 오바이트(?)를 하였는데 결과가 어땠나? <BR><BR>317억 날렸다.. 자그마치 317억.. 물한번 먹은 댓가치고는 넘 하지 않나? <BR><BR>차세대 전투기사업이라고 미국의 F16(파이팅 팔콘) 120대를 10년동안 들여왔으니 한번 계산해 보라 317억 X 120 ... 간단하게 3조원이 넘는다. <BR><BR>과거 공중전은 비행기의 성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조종사의 기량이 우수하면 충분히 커버가 되었다. 2차세계대전의 수많은 에이스 조종사들을 떠올리면 간단하다. 그런데 최근의 공중전은 보통 "버튼전쟁" 혹은 "슛 앤드 포겟"전쟁이라 부른다. (SHOT AND FORRGRT - 쏘고 잊어버려라.. 얼마나 간단한가..) <BR><BR>비행기는 크게 두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만 쫓아다니는 전투기, 또하나는 땅을 돌아다니는 애만 때리는 폭격기, 요새는 이 두가지 기능을 같이 하는 것이 추세다.그래서 전폭기라고 부르기도 한다.(폭탄만 바꾸면 간단하다.) <BR><BR>전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레이더와 미사일이다. 물론 기본적인 기체성능과 조종사의 기량을 전제로 하고서 하는 말인데 잼있는 예가 있다. 1981년 레바논과 1982년 포클랜드에서 일어난 공중전들인데 무기의 차이가 얼마나 일방적인 전투가 되어버리는지 잘 보여준 전쟁이었다. <BR>먼저 레바논 전투부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게릴라전에 못 이겨 "이 싸가지들 전부 쓸어버리갔어.."하고 쳐들어갔던 전쟁이 레바논 전쟁이었다. 물론 너무도 유명한 베이루트 팔레스타인 난민학살사건은 말하지 않겠다.(3000명이 넘는 민간인을 학살한 책임은 누가 졌는가? 요새 미국넘들 하는 짓거리가 넘 우습다.) <BR><BR>당근 레바논의 기득권을 갖고 있던 시리아가 참전했는데 이스라엘은 F15,F16전투기가 56대 출동하였고, 시리아는 MIG21,MIG23 전투기 70대가 출동하였다. <BR><BR>결과는? 이스라엘의 KO승.. 스코어가 49:0 이다. <BR>(이스라엘 놈들이 아랍애들보다, 머리가 똑똑하다거나 전투기술이 우수해서가 아니다. 다만 무기가 좋았을 뿐이다.) <BR>F15나 F16의 레이더는 대개 140 - 100KM 였고 미그기는 40 - 80KM 정도였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전투기는 전후방에서 발사하면서 레이더 유도 미사일도 있었지만,(F15전투기의 스패로 미사일이라고 20KM정도 날아간다.) 시리아 전투기는 비행기의 뒷 꽁무니로 돌아서 발사하는 구식 적외선 유도 미사일뿐이었다. <BR>(사정거리 4 - 6KM ) 탑건 할애비가 와도 이 싸움 못 이긴다. <BR><BR>미리 좋은 공격위치를 잡고( 오.. 너 1시에서 오는 구나..) 미사일 발사버튼을 누른다음에 차가운 맥주마시러 기지로 돌아간다. 이게 이스라엘의 전술이었다. 시리아 아그들은 어디서 무슨 미사일에 맞아 자기가 황천길로 가는 줄도 몰랐다. <BR><BR><BR>왜 이 야그를 길게 했느냐면은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무기체계가 남한과 북한의 무기체계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함이었다. 간단하다. 북한은 시리아보다 더 구식 전투기가 태반이고(미그19) 우리나라는 AWACS(공중조기경보기)의 지원아래 앉아서 누르는 버튼전쟁을 하면 되는 것이다. <BR><BR>이래서 비행기는 비싼거 사야 한다. 푼돈(? ^^) 아까워하다간 줄초상 치른다. <BR><BR>조기 경보기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하겠다. 여러분은 쟁반달린 비행기를 보았을 것이다. 바로 그거다. 물론 레벨은 여러등급이 있는데 가장 좋은 비행기가 미국이 갖고 있는 727AWACS이고( 1대에 1조1천억하는 괴물이다... 반경 400KM안의 모든 비행항적을 추적할 수 있다. 아울러 컴퓨터가 전투현장을 지휘한다. 따라서 가장 좋은 전투기 F22나 F15가 2대씩 붙어서 호위한다.참고로 미국은 이것을 12대 가지고 있다. 물론 일본도 4대 가지고 있다. 세계에서 두나라 뿐이다.), 우리나라는 거의 폐기처분의 E3C(호크아이) 4대를 이번에 대당 3000억씩 주고 4대나 샀다. <BR><BR>린다 김 사건 아실것이다. 바로 이거다. 현장부대에서 "쓰.바 넘 고물이야" 아우성쳐서 사건전모가 터졌다. 몸바쳐 1조원이라... 몸로비 할 만 한가? <BR>물론 F16이나 호크아이정도는 쓸만 하다.(이거라도 없어서 아쉬운 넘들 엄청 많다.) 문제는 비싼 돈주고 제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옵션으로 사왔다는 데 있다. 미국넘들 팔면서 핵심기능들 다 빼냈다. 뭐 제 3국에 위협적이라나? <BR>(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그만 둔다. 한마디만 더 하겠다. 항공대 다니는 친구녀석이 차세대 전투기로 F16이 선정되자 밤새 울분을 토하면서 물태우를 수십번 죽였었다. 벌써 10여년전 기억이다.) <BR><BR>김일성이 한국전쟁때의 패전이유를 제공권 상실로 보았다는 점은 칭찬할 만 하다. 하지만 문제는 비행기의 질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젠 양으로 질을 커버못한다. 솔직히 북한 비행기 10대 날라와도 우리비행기 서너대만 있으면 바로 아웃이다. 워크아웃도 아니고 바로 커밍아웃이 되는 것이다. <BR><BR>자 이젠 육군의 숫자놀음을 깨보자. <BR>북한탱크(3800대) 남한(2100대), 병력(105만) (65만) , 야포(10800문) (7200문), 특수부대(10만) (4만), 헬기(230대) (690대) <BR><BR>대략 2배 수준이다. 허걱 놀라지 마시라. 땅개들이라고 시대의 유행에 둔감하지는 않다. 즉, 이것도 무기의 질이 양을 압도한다 이말이다. <BR><BR>현대전쟁을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인간은 사라지고 기술만 남아있는 듯한 무미건조함을 느낀다. 도무지 인간의 냄새가 안난다. 적어도 3,40년 전만 해도 무기의 성능이나 장비의 질이 조금 처지더라도 인간의 능력(훌륭한 지휘관과 용감한 병사들)으로 어느정도 커버가 되었고, 따라서 극적인 역전의 드라마도 보였는데 이젠 아니다. 이젠 인간의 살내음을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더 끔직한 일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베트남에서 미군 병사들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는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눈으로 찢겨나가는 시체들을 보면서.. <BR>하지만 걸프전이나 유고전쟁에서 미국병사들은 버튼누르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무슨 죄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첨단 무기개발에 이러한 심리적 측면을 고려했다는 말도 있다. 수십킬로 떨어진 목표물에 버튼을 누르는 병사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단지 명중했는가? 아닌가?의 차이일뿐..) <BR><BR>북한과의 전쟁에서도 우리 병사들은?... 저들도 나와같은 말은 하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러한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아무리 우리가 유리하다 해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선 안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말하지 않았는가? 전쟁이란 승자도 패자도 없는 모두가 인간성이 으깨어지는 상처입은 패자가 될 뿐이라고..) <BR><BR>자, 먼저 병력을 살펴보자.. 사실 이점에서 한반도는 세계에서도 가장 무서운 나라이다. 전 국민(성인남자 대부분)이 총을 쏠줄 알고 혹시라도 까먹을까봐 복습(예비군훈련)도 철저히 한다. <BR>전쟁이 터지면 적어도 사흘안에 남북 양쪽 모두 500만 대군이 튀어나온다.(합치면 천만대군이다. 허걱...) 엄청난 일이다.(쪽수라면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중국도 이건 못한다.) 총은 살상무기다. 아무나 함부로 주지 않는다. 왜? 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병사는 남에게 피해만 주는 짐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BR><BR>막말로 총 닦다 안에 총알이 들었는지 확인도 안한 상황에서 옆의 동료를 그만 쏴 버렸다치자. <BR>미안하다고 할 건가? ^^ <BR>뭐라 말 할 수 있겠는가? 이 상황을... 그래서 아무리 급하다 해도 최소한 사격연습은 3주정도 시키고 전선에 내보낸다. 낙동강까지 밀렸을 때도 그랬고, 이스라엘도 귀국한 유학생들 바로 전선에 보내지는 않았다. 왜? 총은 살상무니니까.. 잘못하면 적이 아니라 아군도 쏴 죽일 수 있으니까 최소한 총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BR><BR>남북한은 이럴 필요없다. 50년간 괜히 전쟁준비하고 민방구훈련하고 야비군 훈련한 것 아니다. 다 이럴때 써먹을라고 한 짓거리들이다. <BR>따라서 현역군인은 일주일 안에 소모하는 소모품들이고 진짜 전쟁은 이 동원예비군들을 가지고서 한다.(물론 현역병들이 정예임은 분명하고 그래서 일선 부대를 제외하고서 대부분 반격을 위한 전략예비군으로서 뒤로 빠진다. 필자의 경우를 말한다면 백골이 철원에서 죽어라 막을때 오뚜기가 뒤에서 준비하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그 뒤는 예비군들이 헐레벌떡 올라온다.) <BR>적어도 남북한 전쟁에서 현역병의 쪽수는 아무 의미가 없다란 말이다. <BR><BR>특수부대? 흔히 수구언론의 꼴통들이 잘 드미는 것이 요 메뉴인데, 조금만 살펴보면 얼마나 우스운 야그인지 잘 알 수 있다. <BR>북한은 특수부대가 10만 정도다. 물론 숫자도 많고 훈련도 빡세다. 그럼 남한은? 대략 특전사 예하 병력이 4만여 수준이다. 병력의 10% 가까이 특수부대로 양성하는 나라 세계에 남북한뿐이다.(우리 특수부대는 북한에 대항하기 위한 대항마의 의미가 크다. 실제 미국넘들의 특수부대 수준에는 남북모두 어림없다. 쪽수만 많을 뿐이다.) <BR><BR>특수부대의 생명은 기습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이 남한 후방에 기습할 정도의 특수부대를 파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BR>먼저 이동수단이 마땅하지 않다. 수송기로 대량으로 날리자니 남한 공군력에 전멸당한다. 이게 바로 논에 물대기다. 그렇다고 AN-2기로 날리자지 저공비행에다가 지나가던 남한 군바리 하나가 "어 저거 못보던 비행기네"하고 소총으로 갈기면 금쪽같은 특수부대원 15명이 공중에서 날아간다. <BR>그렇다고 걸어가자니 언제? 어느세월에? (방어선을 뚫기도 어렵지만 뚫었다 해도) 기습의 효과는 사라진다. 잠수함? 전쟁터진 판국에 몇십명 후방에 뿌려서 뭘 어쩌자는 건가? 티도 안나게 사라진다. <BR><BR>그래서 답은 땅굴이다.(괜히 땅굴파는 거 아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가 나온다. 일단 수도권까지 땅굴을 판다는것은 불가능하고(역학상 그렇다는 말이다. 어느 꼴통은 서울까지 팠다고 이게시판에 글 올렸는데 아주 기본적인 지리학도 모르는 꼴통이다.) 기껏해야 2선방어선 수준인데 거기는 군바리들이 바글바글하다. 더구나 보급이란 문제가 걸린다. 대규모 병력이 후방에 침투했을때 그들은 대부분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기본적 탄약과 장비를 가지고 간다. 따라서 보급없이는 이틀이상 버틴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탱크라도 만나면 바로 죽음이다. 그런데 어디서 보급할 것인가? 땅굴로? .. 아마 출현과 동시에 위치가 탄로날텐데 비행기와 헬기는 장식품이 아니다. <BR><BR>헬기얘기가 나와서 한마디 한다. 쪽수로 우리가 북한을 이기는 유일한 메뉴다.^^ <BR>간단하게 말하겠다. 헬기는 탱크 킬러다. 대신 비행기에겐 밥이다. <BR><BR>걸프전을 예로 들면 보통 헬기 1대가 탱크 12대정도를 잡는다고 한다. 그럼 한국헬기는 어떤가? 690대 모두 공격헬기(AH)가 아니다. 대략 180여대가 공격헬기인데 우리나라는 AH-1 코브라를 쓰고 있다. 상당히 성능이 좋다.(미국 아파치만큼은 아니지만..) 180X12 해봐라.. 북한탱크들 70%는 황천간다. <BR>물론 이것은 제공권을 장악했을 때의 얘기인데 당근 하늘은 앞서 말한 것대로 우리거다. 그럼 결론도 뻔하다. 북한의 헬기 230대는 대부분 수송헬기거나 휴이 300H(우리 500MD헬기와 유사한) 기종인데 별다른 위협은 되지 못한다. <BR><BR>시간을 보니 12시가 넘었다. 탱크와 야포는 다음 시리즈에서 말하기로 하고 이말 줄인다. 이 글을 보면서 어 이렇게 군사력 차이가 나면 골치아프게 협상하고 대화할 일 무엇인가? 짧고 굵게 끝내기위해 한번 밀어부치면?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BR>그래선 안된다. 북한도 비장의 히든카드가 있다.(핵이나 미사일이 아니다. 착각하지 말기를..) 북한이 전쟁에서 이길 수는 없어도 "그래 함 니 죽고 나죽자"라는 동반자살용 카드가 있다는 말이다. 이게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되는 두번째 이유다.(첫째 이유는 위에서 설명했다.) <BR><BR>전편에서 다룬 공군과 지상군의 병력규모, 특수부대, 헬리콥터부분은 4편을 참조하기 바란다. 이제 지상전의 왕자라 부르는 기갑전력(탱크와 야포)을 다루겠다.(북한탱크 3800: 남한 2100, 북한야포 10800: 남한 7200) <BR><BR>먼저 탱크부터.. 탱크를 한마디로 하면 "포를 쏘면서 움직이는 자동차"로 정의할 수 있겠다. 먼저 간단한 역사부터 .. 탱크가 출현한 것은 1차세계대전에서 영국이 참호전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만든 전쟁신무기에서 출발한다. (1916년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육군의 왕자로 등장한 것은 2차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기갑사단편성에서 시작되었다. <BR><BR>히틀러는 탱크의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주목하였고, 이것을 집단으로 편성하여 강력한 돌파력을 가진 부대편성을 구상하였는데(구데리안이라 부르는 독일의 천재적인 장군의 아이디어였다.) 이것의 위력은 1차세계대전때 200만이 넘는 독일군이 4년동안 공격해도 이루지 못한 일은 기갑사단7개(약 30만)로 300만이 넘는 영불연합군의 허리를 끊어서 6주만에 프랑스가 항복하는 전격전의 신화로 나타났다. (영국의 덩케르크철수는 이과정에서 나온것이다.) <BR><BR>이후 세계 각국은 전차전력을 경쟁적으로 확충하였고, 탱크도 이것에 발맞추어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로 끊임없이 발전하였던 것이다. <BR><BR>자, 이젠 구체적으로 가보자. 현대전차를 MBT라고 부른다. 흔히 "다목적 전차"라고 표현하는데, 이런 MBT가 되기 위해선 몇가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BR><BR>먼저 MBT가 되기위한 기본적 성능부터.. <BR>우선 자동차를 잘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보라. 탱크엔진이 얼마나 클 것 같은가? 자동차 엔진의 3배정도 크기다. 이 엔진을 가지고 통상 50TON이 넘는 괴물을 시속 70KM로 달려야 한다. 즉, 엔진효율이 엄청 좋아야 한다는 말이다. <BR>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자동차 생산 메이커다. 실제 세계에서 MBT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나라는 9개정도이다.(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이스라엘, 한국) <BR><BR>아울러 5M정도의 수심은 거뜬하게 건너야 한다. 프로펠러로 건너는 것 아니다. 스노켈이라는 공기흡입구(길다란 빨대를 생각하면 된다.)를 달고서 강바닥을 캐터필더로 달린다. 물론 이는 급박한 전투상황에서 하는 경우이고 대부분은 주교나 부교를 공병대가 건설하면 도하한다. <BR>물을 건너는 광경을 상상하는 독자는 다음의 사실도 가볍게 눈치챘을 것이다. 탱크는 완벽하게 밀폐되어 있다. 즉 화생방전이나 가스전쟁에서 탱크안에 있으면 아무염려없다. <BR><BR><BR>필자는 땅개(보병)다. 따라서 당근 탱크를 본 적이 거의 없지만 운 좋게 K-1전차가 전속력으로 달려가는 것을 한 번 본적 있다. 겨울에 지뢰매설훈련에 나가서 쓰벌 @나 안 파지네.. 하고 투덜거리며 열심히 곡괭이질을 하고 있다가 88전차(K-1전차) 두대가 눈앞에서 눈썹휘날리게 달려갔었다. <BR><BR>땅이 울린다.. 그리고 정말 엄청 빠르다. 보지 않고는 실감 못한다.. <BR><BR>저 밑에 깔린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었다. 그리고 헤치위의 전차병(계급이 하사였던 것 같다.)이 가슴을 펴고 폼 잡으며 앉아있는것을 보면서.. "우와... 좆나 좋겠다.."라고 한없이 부러워한 적이 있었다. (그날 할당량을 못채워 기합 받았다... 그 광경 본후 맘이 울렁거려 도저히 작업할 기분이 안나서 분대장의 직분을 망각하고 ..^^ ) 휴가나온 기갑부대의 친구는 이런 필자속을 더욱 긁어놓았다.. <BR><BR>둘째, 현대 MBT의 핵심이 바로 FCS라 불리는 화기제어장치이다. 즉 사격을 컴퓨터로 조종하면서 한다는 말이다. 탱크는 통상 4명이 탄다.(전차장, 포수,운전수, 탄약수) 그런데 우리나라 탱크는 전차장용 관측장비와 포수용 관측장비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전차장이 지휘한다. <BR>이게 무슨 소리냐면 전차장이 보는 시선이나 포수의 시선에 따라 포탑이 움직인다는 말이다.(공격헬기도 마찬가지다.) <BR><BR>이것의 무서움은 사격속도가 엄청 빠르다는 것이다. 보는 순간 발사한다. <BR>물론 전차장이 11시방향에서 적 탱크를 발견하고 포수가 1시방향에서 적 보병을 발견했을 때의 문제가 나온다. (포탑이 왔다갔다 할까?) 당연히 전차장 우선권이다. 즉, 전차장이 강제로 자신이 보고 있는 방향으로 포탑을 지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면 전차장은 전차위에서 지휘하면서 360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고, 포수는 차체 안에서 보므로 시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BR>실제 우리나라 탱크는 1분에 대략 7-8발 정도를 발사한다. 북한탱크는? 대략 2발에서 3발 정도다. 더구나 북한은 화기제어장치가 아예 없다. <BR>북한 아그들이 적을 발견하면? 무전기나 탱크를 두드리며 큰소리로 외친다. <BR><BR>"스펄 @됐다.. 11시 적 전차 ~~~~" <BR><BR>그럼 정신없이 포탑을 돌린다. 이 차이는 삶과 죽음의 차이다. <BR>(참고로 전차포탄의 속도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는가? 1초에 1700M 날라간다. 불꽃이 보이는 순간, 하얀 저승사자의 얼굴을 봐야한다.) <BR><BR>구슬치기 해봐서 알거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를.. 조준장치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우리탱크는 레이저 조준기와 적외선 조준기 모두를 사용한다. 즉, 레이저나 적외선을 쏘아서 반사되는 거리를 컴퓨터가 측정하고 변수들(풍향, 바람)을 감안하여 사격한다는 말이다. 포탄속도를 감안하면 거의 맞는다고 보아야 한다. 탱크가 하는 전투현장에서 야지기동을 보면 디스코와 탱고춤은 저리 가라이다.(좌우로 왔다갔다.. 아주 혼을 빼놓는다.) <BR><BR>북한아그들은 참 불쌍하다. 우선 문명의 혜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그들이다. <BR>그들의 구식탱크(T54,55,62)들은 광학조준기를 사용하는데 시셋말로 사람이 조준하는 거다. 덜컹거리는 탱크안에서 ... 상상해보라.. <BR>물론 포탄 속도에서는 큰 차이가 안나지만(1초에 1400M정도) 우리의 라인메탈사의 120MM포에는 상대가 안된다. <BR><BR>세째, 포가 탱크의 공격력이라면 장갑은 방어력이다. (권투로 비유하면 포는 주먹, 장갑은 맷집정도가 될거다.) <BR>MBT 대부분은 복합장갑이란걸 사용한다. 이게 뭐냐면 맷집을 증가하기 위해 예전에는 그냥 강철을 두텁게 해서 만드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얇은 강판에다가 그 사이에 나일론, 세라믹, 석면, 스티로폼같은 이물질을 끼워넣는것이다. (영국에서 최초로 개발했고 세계MBT들은 거의 채용했으나, K-1 전차는 돈이 딸려서 이것까진 하지 못했고, 96년 이를 개량한 K-1 A1전차는 부분적으로 했다고 한다.) 이 장갑은 보병의 바주카포같은 대전차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서 나온 것이다. 즉, 첫번째 강판을 뚫어도 두번째 이물질들과의 밀도차이로 튕겨나가서 세번째 강판을 뚫지 못하는 강력한 장갑이다. <BR><BR><BR><BR>북한은? 당근 없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없지만 일부 있다. 그래서 북한이나 우리나라는 전차표면에 반응장갑이라 불리는 강철 딱지들을 붙이고 다닌다.(이걸로 어느정도 화약탄을 방어할 수 있다.) <BR>전차 포탄을 크게 두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화약탄, 하나는 물리력탄(APES라고 부르는데 송곳을 연상하면 된다. 길이는대략 1M 내외)이다. <BR><BR>복합장갑의 무서움은 화약탄을 무기력하게 만드는데 있다. 즉 보병들은 더이상 전차사냥을 할 수 없고, 오히려 사냥당하는 신세란 말이다.(탱크가 처음 나왔을 때처럼 ..) 다만 물리력탄은 이 반응장갑을 격파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송곳처럼 날카로운 포탄이 강력한 열로 이 장갑을 뚫으면서 들어간다.(탄두 표면에 열화 우라늄을 처리해서 충동시 순간적으로 900-1300도의 열이 발생한다. 그리고 전차내부로 들어가 수백개의 작은 화살로 변해 승무원들을 찢어서 죽이는 살상무기이다.) <BR>물리력탄은 통상 탱크에서 발사한다. 그래서 탱크를 잡는것은 탱크라는 말도 나오지만.. 헬기나 비행기도 탱크잡기는 마찬가지다.(이들의 기관포는 탱크의 장갑을 뚫어버린다. 왜? 잘 알고 있는 물리법칙 하나만 설명하겠다. <BR>F(힘)=M (질량) X V(속도)의 제곱.. 비행기 속도가 얼마인가? 기본 시속 1000KM이다. 상상해보라.. (일례로 지상에서 쏘는 같은 20MM기관포의 위력이 비행기와 대략 8배차이난다고 한다. 참고하시라.) <BR><BR>컴퓨터 모의 실험결과나 걸프전의 결과를 보더라도 K-1전차 1대는 북한 탱크 서너대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즉, 쪽수는 북한이 우리보다 두배 많지만 실제 전투에서는 압도적으로 밀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헬기나 비행기를 제외하더라도.. <BR><BR>독자여러분들의 이해를 쉽게하기 위해 한가지 예만 들어보겠다. 비교하시라. <BR>걸프전에서 미군 전차 M1 에이브람스 1개 중대(14대)와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소속의 T72전차 1개 연대(102대)가 쿠웨이트 국경에서 전투를 벌였다. 결과가 어떠했겠는가? <BR>스코어는 38:1이다. 어느 미국전차는 12방을 맞고도 멀쩡했다고 한다. 이것이맷집의 차이다. 뽀개진 미국전차 한대도 더럽게 재수없는 놈이었다. 아군 전차에 맞은 놈이다. ^^ <BR>이라크 아그들이 무슨 생각이 들었겠는가? 자기들은 아무리 쏴도 말짱하게 돌아다니는 괴물을 보면서.. 그 괴물이 쏠때마다 원샷 원킬이 되는 자신들의 처지를 보면서.. 여러분이라면 어쩌겠는가? 상상해보라... <BR>( 이런걸 보고 전투라 하지 않는다. 그냥 학살일 뿐이다. 세상에 25만이 넘는 이라크 병사들이 죽었는데 미군은 587명이 전사했다. 저쪽이 500명 죽으면 이쪽이 1명 죽는다. 이게 어느전쟁에서 있었던 일인가?.. 이게 현대전쟁이다.) <BR><BR><BR><BR>포병에 관하여 살펴본다. <BR><BR><BR><BR><BR><BR>흔히들 망각하는 것이 있다. "대포의 위대함"에 대하여.. <BR>사실 전쟁무기중에서 가장 덜 화려하고 초라한 것이 포병이다. 전투기나 헬기, 탱크와 같은 화려함도 없고, 함대와 같은 웅장함도 없으며, 보병과 같은 아기자기한 재미도 없다. <BR>그래서 자주 까먹는다. "전쟁의 신은 포병이다"는 사실을.." <BR><BR>듣고서 오해하지 마시라.. 포병이 가장 강력하고 훌륭한 무기라는 말이 아니다. 필자가 말하는 부분은 "살상력에 있어서 포병의 강력함"을 말하는 것이다.(핵을 예외로 한다면..) <BR>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BR>걸프전은 첨단무기의 시험장이자,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화려한 경연장이었다. 아마도 삶과 죽음을 가름한다는 점에서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더 치열한 무대였을 것이다. 따라서 오스카 트로피를 노리는 화려한 주연배우들이 아주 많았다. " 토마호크미사일, 패트리어트 미사일, 강력한 M1A1전차, F15를 비롯한 전투기들, 밤의 지배자 아파치헬기들, B1B와 B52 전략폭격기들, 언제봐도 웅장한 함대와 "갑판위의 발레"를 거쳐 캐터필트에서 출격하는 해군전투기들, 상륙용장갑차에서 뛰어내리는 해병대등등.." <BR><BR>하지만 포병은 항상 조연배우였다.(조연상의 경쟁자는 AWACS를 비롯한 각종 전자전기, 정찰위성과 특수부대정도였을 것이다. ^^ ) <BR><BR><BR><BR>그러나 아카데미시상식과 걸프전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어느 영화든 조연이 형편없으면 주연의 가치는 급락한다는 사실.. 조연이 연기못하는 영화 절대 작품상 못탄다. 마찬가지다. 포병을 비롯한 위의 조연들이 활약하지 못한 전쟁은 절대 이길 수 없다. (혹자는 미군이 세계최강인 것은 위 조연들의 훌륭한 연기력 덕분이라고 단언하고 있고, 필자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부분이다.) <BR>예전에 비해서 포병의 가치가 하락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까지도 절대적이다. <BR>한가지 예만 들어보자. 걸프전에서 사상한 이라크군은 많게는 25만에서 적게는 15만 정도로 추산하지만 대략 20만 이상이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중에서 포병에 의한 손실이 얼마인줄 아는가? 대략 70% 수준이다. 즉 이라크군 14만 정도는 포탄에 의하여 사망했다는 소리다. 물론 나머지는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주연배우들에 의하여 사망했다... ^^ <BR><BR>포병의 위대함은 전술적 운용성이 탁월하다는 데 있다. 무슨 말인고 하면, 박격포부터 MLRS(다연장 로켓포)에 이르기까지 유효거리안에서 포병이 못 때리는 목표가 없으며,많은 종류의 포탄으로 여러가지 일들(포격부터 지뢰매설까지)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포병은 무슨 일이든 한다. 특히 공군과 비교해서 값이 아주 싸다.(전투현장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는 점에서 땅개(보병)와 유사하다.) <BR><BR>여러분은 전쟁영화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예전 80년대 TV드라마 "전투"에서 최근의 라이언 일병구하기에 이르기까지.. 포병을 상상하는 대다수의 일반인들은 "슈욱"하는 포탄이 날라오는 소리와 함께 "꽝"하는 포탄이 폭팔하는 장면을 상상하실거라 생각한다.(아직도 이런 포탄을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은 사실이다.) <BR><BR>하지만 요새 포병은 50년전의 구닥다리가 아니다. 시대의 민감한 유행에 떨어지면 어느 무기든 죽음뿐이다. 살아남기위해 필사의 개량을 거쳤고, 그 덕분에 포탄의 위력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BR><BR>먼저 포탄의 위력부터.. 단순한 충격탄(충격으로 폭팔하는 포탄. 전쟁영화의 포탄을 상상하시면 된다.)부터 클래스터 폭탄(집속탄), 기화폭탄, 대전차포탄등 다양한 포탄이 있다. <BR>일례로 사람을 죽이는 클래스터 폭탄의 위력을 살펴보자. 이 포탄의 특징은 공중에서 수백개의 자탄으로 분리되는 것인데, 전차든, 사람이든 용도에 따라 쓸 수 있다. 일개 포대(3문)의 쇼트사격(일제사격)에서 포탄이 발사되면 보통 수킬로미터에서 수십킬로미터까지 날아가서 지상에서 200M상공에서 수백개로 갈라진다. 그 자탄들이 일시에 폭팔하는데 반경 240X180M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할 수 있다. <BR>쉽게 말하면 축구장 2개 크기의 면적은 초토화시킬수 있다는 말이다. <BR>포 3문의 일개 포대 위력이 요렇다.. 상상해보라.. <BR>(물론 콘크리트 엄폐호에 숨어 있으면 피해를 많이 줄일 수 있다.) <BR><BR>그럼 기화폭탄이란게 나온다. 용어에서 눈치챘겠지만 쉽게 말하자면 가스폭탄이다. 뭐 한국전때 썼던 네이팜이나 소이탄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태워죽이는 포탄이다. <BR>이것의 위력은 어떤가? 공중에서 포탄이 분리되면서 천천히 가스가 내려온다. 물론 공기(산소)보다 무겁고 포병에 있던 친구녀석왈 화장품냄새와 비슷하다던데 안맡아봐서 모르겠다. 이게 지상에 닿는 순간 어마어마한 불기둥이 치솟는다. 반경 400M정도는 불바다가 된다고 하는데 그 불기둥의 높이가 대략 20M이상이라 한다. 이것의 파괴력은 어마어마하다. 소형 핵무기나 다를바 없다. <BR><BR>불은 뭘 먹고 사나? 바로 산소다. 이 어마한 불기둥이 산소를 일시에 잡아먹으면 그지역은 일순간 진공상태가 되고 따라서 그것을 메우기 위해 주변공기가 엄청난 속도로 들어온다. 바로 원폭의 폭풍효과와 똑같다. 이 폭풍속에서 지하5M정도의 땅은 죄다 뒤집어진다. 그 밑으로 숨으면 되지 않은가?란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계신분들을 위해 한마디 하겠다. 질식해 죽는다. <BR><BR>따라서 이 무기는 병력을 상대로 사용하진 않는다. 왜? 바로 똑같이 보복공격을 받으니까.. 대신 지뢰밭 개척하는데는 짱이다.(미군은 주로 이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북한도 남한도 물론 수만발의 기화폭탄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는 북쪽 아그들 맘이다. ) <BR><BR><BR><BR><BR>다음 포탄의 정확성부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포탄은 정확성에 있어서 상당한 변수(바람, 대기의 상태등) 를 가진다. 따라서 예전엔 양으로 질을 커버하는 방법을 많이 썼다.(연합군의 독일폭격이나 소련군의 화력집중전술은 어차피 정확히 못 맞출봐에야 그 일대를 강철의 파편으로 깔아버린다는 무식한 전술이었고 독일군에게 무식한 피해를 안겨주었다.) <BR><BR>요새는 GPS(위성항법장치)를 사용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컴퓨터로 목표좌표를 입력(자주포의 경우지만)하여 발사하기 때문에 거의 백발백중이다. 아울러 포탄의 위력이 예전과는 상상도 안되기 때문에 근처에만 떨어져도 무시무시한 피해를 입힌다. <BR><BR>포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는데 견인식 야포와 자주포로 나뉜다. <BR>간단하다. 견인식 야포는 자기힘으로 못가고(누군가 끌어주어야 하고) 자주포는 자기힘으로 간다. 당근 견인식 야포보다 자주포가 방어력이나 이동속도에서 우월하다. 그래서 많은 국가들은 "포병의 자주화"에 힘을 쏟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북한이 자랑하는 다연장 로켓포는 자주포의 계열로 구분한다.) <BR><BR>자, 북한의 히든카드는 바로 이 포병이다. <BR>필자가 군사력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남북전쟁이 일어나면 상호간에 파멸적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한적이 있는데 바로 북한의 포병전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BR>북한이 현대전쟁의 개념에서 남한을 이길 수 있는가? 란 질문에서 필자는 부정적이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밝힌다.<BR><BR>언젠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고 북쪽 아그 하나가 말했을때 나라가 온통 뒤집어진 적이 있다. 필자는 충분히 긍정한다. 북한은 서울은 불바다로 만들 수 있다. 다만 그렇게 했을 경우 평양도 불바다가 되면서 북쪽정권은 무너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잃을 게 많은 우리가 손해보는 장사라는 점을 명백히 인식해야 한다.) <BR><BR>북한이 전쟁에 이길수는 없더라도 동반자살은 가능하다는 시나리오가 바로 포병전력에 있다. 먼저 수치를 살펴보자. <BR>야포 : 북한 10800문, 남한 7200문 <BR>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북한의 다연장 로켓군단(240MM카츄샤 로켓 사정거리가 대략 40KM 내외다. 휴전선에서 쏘면 서울 근방에 떨어진다. 대략 4000문에 가깝다.)인데, 이것을 막을 뾰족한 방법이 별로 없다. <BR><BR>포병은 1회용 주사기다. (물론 제공권을 장악한 미국은 예외지만) 한번 쏘면 대개 끝이다. (미사일처럼) 이게 무슨소리냐면 "대포병사격"을 말하는 것인데, 포는 발사한지 대략 2-3분안데 반격탄을 맞는다는 말이다. <BR>현대 야포는 사정거리가 대략 30KM내외다.(미국의 M109팔라딘은 최대40KM이고 MLRS도 37KM내외이다.사거리 150KM가 넘는 ATACMS는 뺐다. 우리나라 155MM야포 KH179도 30KM내외이고 자주포 K9도 40KM는 넘지 않는다.) 따라서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가는데 이것은 물론 사거리를 늘리기 위한 방법이다. 포탄은 지상 수백미터에서 1KM이상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지상레이더나 공중경보기에서 바로 잡힌다. 그러면 아군포병부대나 초계비행중인 전투기에 연락하여 포를 발사한 지점에 바로 반격탄을 날리는데 이것을 대포병사격이라 부른다. 즉, 포는 포가 잡는다는 말이다. 이것을 미국은 2분안에 우리나라나 북한은 5분이내에 할 수 있다고 한다. <BR>(이 문제때문에 필자와 포병출신의 필자친구는 싸운적이 있다. 가을동화버젼으로 꾸며본다. ^^ <BR>술자리에서 필자왈 "니가 땅개들의 슬픔과 괴로움을 아냐? 수십킬로를 걸어다니는 그 행군의 고통.. 똥차 타고 다닌 닌 아마도 모를거다." <BR>필자를 쏘아보면서 친구왈 "니가 포병의 슬픔을 아냐? 1분 속사훈련의 그 참혹함을.. 넌 아마도 상상도 못할 거다." <BR><BR>이해를 못해서 자세히 물어봤다. 포병들은 1분속사훈련을 하는데 땅개들의 사격대회와 비슷한거라 한다. 105나 155MM 야포에서 정해진 포탄수를 얼마나 빨리 쏘는가?를 경쟁하는데 포탄의 무게는 40KG에 가깝고, 포탄구멍은 왜 그리 작은지.. 한번 어긋나면 포대원들의 눈초리가 매섭고, 연신 땀을 훔치면서 정신없이 정해진 포탄을 쏘고 나면 100M떨어져 있는 엄폐호에 군장매고 눈썹휘날리게 달리고 전 포대원이 엄폐호에 들어오는 순간 겜은 끝난다고 하는데.. 그 훈련의 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고 한다. 1초라도 줄이기 위해 수백번 반복훈련을 하고 .. (물론 포는 그대로 놔두고 간다. 잠시라도 어물거렸다간 포와 함께 날아간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이라 정해진 포탄(통상 8발)을 쏘는데 아무리 빨라도 4분이나 5분이상 걸린다고 한다. 전시에서는 죽음과 직결된다) <BR><BR>쏘면 잡히지만 쏘기전까지는 모른다. 2탄 3탄은 방지할 수 있겠지만 1탄은 앉아서 당해야 한다. 이게 무서운 점이다. (날아오는 포탄은 요격할 수가 없다.) <BR>공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4000문 모두가 서울을 향해 발사할 수 없겠지만 그중 몇백문이라도 휴전선에서 서울을 향해 날린다고 생각해봐라. 서울에 축구장이 수 만개 되나? 더구나 다연장로켓은 발사속도(1분에 16발 날린다. 물론 재장전은 일반야포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다. 한번에 날리는데 당연한 소리다.^^)나, 이동속도에서 일반 야포보다 우수하기때문에 상대하기 상당히 까탈스럽다. <BR><BR>이점에서 북한의 포병은 전쟁을 승리로 인도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휴전선과 수도권은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더구나 기습이면..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들이다.) <BR><BR>잼있는 예가 하나 있다. (군대에 애인 보내신 분들 잘 살펴보시라 아주 중요한 야그다. 필자는 왜 여자분들이 군가산점에만 집착하고 통일정책이나 병역의 사회성과 역사성, 정치성에는 둔감한지 안타까울 뿐이다. 사랑하는 애인들의 목숨과 직결되어 있다.참고로 이 게시판의 필자가 쓴 "병역에 관한 남과여의 차이"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BR><BR>1950년 한국전쟁때의 국군에 관한 것이다.. <BR>개전당일(여러분도 잘 알고 있는 1950.6.25 ^^) 국군은 105800여명이었고, 인민군은 198000명이었다. 그 국군 10만명중에 1953.7.27일 휴전이 된 후 사지 멀쩡하게 온 정신으로 살아남은 국군장병이 대략 5000명 수준이었다. 팔다리 하나 잃거나 정신이 약간 이상해졌을 지라도 목숨을 보전한 사람들까지 합한다면 18000여명 수준이었다. 즉 개전했을 당시의 군인들 중 2할 정도가 목숨을 부지한 사람들이었다는 얘기다. 50년 전이 이러했을 진대, 과학기술과 무기가 발전한 오늘날 남북간의 전쟁이 발생했다고 상상을 한다면 65만 현역군인들중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BR><BR>누가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BR><BR>군사력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전쟁은 남의 일이 아니다. 내 신상에 영향을 주고 사랑하는 내 주변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나의 문제"인 것이다. 때문에 필자는 항상 북한을 폭격하자는 "수구꼴통"(용어를 지적하신 네티즌에게 다시한번 말씀드린다. 이해하시라.. 경각심을 갖는다는 것과 전쟁하자는 것은 차원이 다르지 않은가? ^^ 이 차이를 구별 못하는 단순무식한 람보들에게 하는 소리이다.)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BR><BR>"탱크는 네가 몰아라.. 그리고 이 지옥의 불바다로 네가 달려가라.. 엉뚱한 사람 괴롭히지 말고.. 북쪽 아그들이 화끈하게 환영해줄 것이다!"라고.. <BR><BR><BR>http://bbs2.hani.co.kr/board/ns_military/Contents.asp?STable=NSP_003023000&amp;RNo=3201&amp;Search=&amp;Text=&amp;GoToPage=1&amp;Idx=4074&amp;Sorting=1]]></description><image><url>http://www.dkbnews.com/img/2005/11/1120_thisis_01.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40370</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퍼온글]한국군의 군사력, 그 정확한 실체는 무엇인가? </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40369</link><pubDate>Sat, 26 Aug 2006 06: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40369</guid><description><![CDATA[<BR>ㅡ2001년 자토방에 '검객'이란 분이 올렸던 글입니다.<BR>마침 갈무리 해 둔게 있어서 관련 논문 몇편 퍼오려다 <BR>너무 딱딱한것 같아 이걸로 올립니다.<BR>단순숫자 비교는 이제 그만 좀 합시다.<BR><BR><BR>필자는 게시판에 올린 여러글에서 이미 밀리터리 매니아임을 밝혔었다. <BR>따라서 나름대로 한국군의 군사력과 남북전쟁상황에서의 전개예상, 주한미군 역할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음을 고백하며 아울러 이것은 필자의 주관적 생각임을 미리 밝혀둔다. 하지만 필자가 제시하는 자료들은 비교적 객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며, 판단은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의 몫이라는 사실도 미리 지적한다. <BR><BR>먼저 흔히 잘 까먹는 것이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군사강국이다는 사실이다. <BR>50년동안 내내 전쟁준비를 했던 나라는 세계에서 몇 안된다.(미국을 예외로 치면 남북한, 이스라엘, 대만 정도이다. 전쟁을 준비하지 않는 군대가 어디 있겠냐만은 필자가 말하는 부분은 군사인프라(전국 방방곡곡에 산재되어있는 군사시설, 훈련강도와 숙련도, 전투경험의 축적등의 분야를 말하는 것이다.)를 중심으로 말하는 것이다. <BR><BR>국방비는 대략 20조원 규모인데 세계 9위의 수준이다.(1년에 백억불 이상 쓰는 나라는 14개 나라에 불과하다. 물론 북한은 이 수준은 택도 없지만 무형의 국방예산 - 토지 임대료를 내지 않는 것 - 등을 감안해야 한다.) <BR><BR>20조.. 얼른 상상이 안 갈 것이다. 어느정도인지.. ^^ <BR>간단히 설명하겠다. 이 돈의 10%만 줄이면 대한민국 300만 중고생이 의무교육을 할 수 있고 30%를 삭감하면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은 대줄 수 있다. <BR><BR>사실 이 시리즈를 계획하면서 일반인들에게 낯설은 전문군사용어나 지식을 어떻게 알기 쉽게 이해하도록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나름의 고민(그래서 표현에 있어서 일부 기교와 자극적인 표현을 일부러 하였다는점을 널리 양해하기 바란다. 워낙 이부분은 딱딱해서..비개없는 삼겹살을 무슨 맛으로 먹겠는가?)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재주도 없고 잘 할 자신도 없으면서 이 시리즈를 그대로 밀고 나가려는 것에는 앞서도 말했던 의무감과 덧붙여 몇 몇 네티즌들의 과분한 당부말씀 때문이었다는 점도 미리 밝혀둔다. <BR><BR>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북한과 남한이 붙으면 누가 이길까?"란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다. 대략 80%에 가까운 아이들이 "북한이요"하고 대답한다.( 조기 반공교육의 놀라운 교육적 효과이다. !!) " 주한미군 없이 맨투맨으로 붙으면 누가 이길까?"라고 질문을 던지면 남한이 이길거라 대답했던 몇 몇의 아이들도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기껏해야 한 두명의 아이가 손을 든다.( 어느 곳에서든지 대세(?)에 반항하는 기특한(^^) 아이들이 있다. ) <BR><BR>필자는 이것을 "공포의 조작효과"라고 부른다. <BR>매년 국방부에서 "국방백서"라는 것을 발간한다.(불과 10여년 전부터 하는 최근의 일이다. 박통이나 전통때는 상상도 못하던 짓거리다. 국방정보를 문서로 발간하는 것을 이적행위라고 불렀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처음 나온 것은 1990년이다. 참고 바란다. 물론 앙꼬없는 찐빵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BR><BR>이것을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에서 대서특필하던 것도 최근까지의 일이다.(요새와서는 약발이 떨어졌는지 그렇게 자주 볼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그 꼴통들도 시대의 흐름은 아는 구나.라는 안도감도 드는게 사실이다.) <BR><BR>덧붙이면 재주는 언론이 부리고 돈은 국방부가 대준다는 말이 정확하다. 뭐, 미국에만 군산복합체가 있는게 아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일례로 현대 중공업의 주요 매출분야중의 하나가 K-1 A1전차와 K200장갑차 생산라인이고 얘네들이 망한 대우에서 잠수함 만드는것은 미친짓이다고 열렬히 로비했던 이유도 다 여기에 있다. 막말로 잠수함 한척(2100억) 팔면 1년 농사짓는데 눈 뒤집히지 않을 놈 어디 있겠는가? <BR><BR>언론에서 국방백서를 항상 인용할 때 짓는 제목 또한 거창하다. "남북 군사력 비교" <BR>하지만 문제는 전부 아라비아 숫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독자들이 그 숫자놀음의 진실을 알아채기가 전문지식없이는 불가능하다는데 있다.그래서 순진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교묘한 숫자놀음에 현혹되기 십상이고, 그점에서 필자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구언론들의 고의성을 엿본다. 대개 이 박스기사엔 통계표와 크기가 다른 그림이 첨부되는데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다. 사람크기가 다른 그림 기억나실 것이다. 최근 미국과 아프간 군사력 비교를 참고하셔도 된다. 필자는 통계표를 만들 재주가 없어서 그냥 말로 나열하겠다. 이해바란다. (왜 게시판에선 워드가 안되는 거야? ^^) <BR>자 그 숫자놀음을 한번 살펴 보자. <BR><BR>북한 병력(105만) 남한(65만), 북한 전투기(890대) 남한(480대), 북한탱크(3800대) 남한(2100대), 북한 전투함정(757척) 남한(212척), 북한 잠수함(19척) 남한(7척), 북한 포병(10800문) 남한(7200문), 북한 헬기(230대) 남한(690대), 북한 특수부대(10만) 남한(4만) <BR><BR>이 통계표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허걱!!"하는 비명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시셋말로 "북쪽 아그들이 내려오면 우린 좆된다!"란 비탄이 따라서 나오고 "니미럴 우리 정부는 그 많은 국방비 다 어디다 썼어?"하는 욕설이 나오는게 순서다. 이걸 보고 필자는 "공포의 조작효과"라고 말하는 것이다. <BR><BR>간단히 말하겠다. "속지 마시라." <BR>필자가 말하는 것은 통계숫자가 틀리다는 말이 아니다. 밀리터리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런던국제전략연구소의 통계도 대충 비슷하다. 이런 티나는 걸로는 구라 못친다.조선일보는 바보가 아니다.(금방 탄로날 것을 뭐하러 구라를 칠 것인가? 오히려 런던국제전략연구소의 통계와 비교하면서 자신들의 공신력을 높이려고 할 것이다. ) <BR><BR>문제의 핵심은 현대전쟁에서 군사력의 우위는 숫자로 달성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은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BR>현대전쟁의 특징을 여러가지 말로 표현하지만(총력전이니, SF전쟁이니) 핵심은 "버튼전쟁"이라 불리는 과학기술에의 과도한 의존과 "기술력의 차이"(다른 말로 무기의 양이 아니라 질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짓는것을 핵심으로 한다. <BR>이는 걸프전과 코소보전쟁에서 충분히 보여 주었고 아마 아프간도 군사적인 관점에서만 국한해 말한다면 충분히 보여줄 것이다.(그점에서 필자는 아프간의 승리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하고 싶다.) <BR><BR>알기 쉽게 하나만 예로 들어보자. 토마호크 미사일이란게 있다. 열심히 TV시청하신분들은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현재 미국과 영국만이 보유하고 있는데(영국의 개발은 2년전의 일이다.) 그 성능이 기가 막히다. 함 보자. <BR>우선 사정거리는 대략 350KM이상이다. 가격은 100만불정도니 우리나라 돈으로 대략 13억 정도 할 것이다. 음속이하로 저공(100M내외)을 수평비행하면서 미리 입력된 지형지도를 따라 이동한다. 따라서 지상 레이더를 회피할 수 있고 탄두의 위력은 30M콘크리트 벽도 뚫을 수 있다. (허걱... 3M가 아니다.) <BR><BR>하지만 이 미사일의 가장 무서운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수백킬로를 날아가면서 오차가 불과 5M라는 사실에 있다. 허걱.. 비유하자면 저쪽 포항 앞바다에서 광화문에 있는 세종문화회관 3층 유리창을 맞추고 싶다면... <BR>맞춘다!! 이게 문제다. <BR>이런 미사일을 이라크에 900발, 유고에 400발 정도를 선물로 안겨주었다. 많이 기뻤을 것이다. 요격 수단은 페트리어트 미사일 정도인데 이라크에 페트리어트가 있나?(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BR><BR>미사일을 1회용주사기라 부른다. 왜? 쏘면 끝이니까.. 13억은 쏘는 순간 날아간다. 자폭하든지, 목표물에 명중하든지.. 900 X 13억 해봐라. 이래서 미국의 군사력이 무섭다는 것이다.(1년에 괜히 370조원을 국방비로 지출하는 거 아니다.) 그래서 미국도 전략목표물(교량, 항만, 통신시설, 보급기지, 군사령부, 공군기지등등)에 국한 시켜 이 미사일을 사용하고 있다. 아프간에서 뭘 뽀개겠다는 건지 몹시도 궁금하지만 이런게 우리나라에 쏟아지거나 북한에 쏟아진다는 상상을 하면 끔찍한것도 사실이다.(신문에서 지형운운하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엄청난 과장이 섞였다. 이래서 기자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공군이나 미사일은 지형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는다. 얼마 남지도 않은 주요시설이 폭격당하고 보급과 교통과 통신이 끊긴 채 빈약한 장비로 "고립"된 아프간 군대가 도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건지.. 더구나 방문예정자는 돈으로 쳐바른 전투귀신들(=특수부대들)이라고 하지 않는가... 스팅어? 나중에 설명하겠다.) <BR><BR>쓰다보니 잠이 솔솔 온다. 이래선 안되는데.. ^^ <BR>먼저 해군부터 숫자놀음의 허구성을 깨보기로 하자. 앞의 통계에서처럼 쪽수는 북한이 우리보다 3배나 많다. 그런데 문제는 뱃놀이는 쪽수로 하지 않는다.이미 이순신이 일본 아그들에게 가르쳐준 뼈저린(아마 뼈가 씨렸을 것이다. 바닷속에서) 교훈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곧잘 까먹는다. <BR><BR><BR><BR><BR>배에도 레벨이 있다. 암만 구식 구축함 100척이 몰려가도 항모 1척 못잡는다. <BR>해전은 "리베르타 법칙"이라는 게 있는데 즉 전력이 약간 처지는 쪽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고 우세한 쪽은 거의 손상을 입지 않는다. <BR><BR>왜? 바다에서는 도망칠 곳이 없다. 바다에 줄 긋는다고 그것이 방어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란 말이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적의 군함을 찾아 돌아다니지 바다를 확보하는 것에는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는다. 이점에서 육상전투와 차이가 있다. 더구나 해전은 결전의 양상을 띤다. 한번 밀리면 끝장이라는 얘기다. 왜냐하면 육군처럼 후퇴하여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제2, 제3의 방어선을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덧붙여 배를 만드는 것에는 장기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BR>즉, 극적인 역전드라마를 펼칠 수가 없다는 말이다.(일단 배가 있어야 뭘 하든 말든 할 것 아닌가? 일례로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승장구하던 일본이 항모 4척을 잃었다고 전쟁에 질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리베르타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어 패전할 때까지 일본해군은 단 한번의 승리도 얻지 못한다. 다만 많이 벌어논 것을 축차적으로 소모했을 뿐이다.) <BR><BR>북한과 남한의 해전도 마찬가지다. 현대해군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쪽수가 아니라 총 배수량이다. 즉, 배가 얼마나 크냐 작냐?를 따지는데 배의 크기에 공격력과 방어력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총톤수가 얼마나 될 것 같나? <BR>한국해군은 대략 15만톤 내외다. 북한은? 6만톤 정도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나라배가 북한배보다 대략 10배정도는 크다는 말이다. 즉, 우리는 공격군, 북한은 어뢰쏘고 도망치는 간첩선 수준의 해군력이다. <BR><BR>잘 아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서해 "연평해전"이라 불리는 무력충돌이 있었음은 독자여러분들도 기억하실 것이다. 남방한계선을 침입한 북한배를 보디체크로 밀어내던 광경도 생각나실 것이다. 이건 말그대로 권투로 치면 헤비급과 밴텀급이 싸우는 꼴이다. 헤비급의 잽은 밴텀급의 스트레이트다. 까먹지 마라. <BR>울렁거리는 배안에서 분노를 참지 못한 북한의 똘아이 하나가 슈류탄을 뽑아서 용감하게 던졌다. "엿 먹어라. 이 간나들.."하고서.. 그러자 갑판에서 할 일 없이 놀던 우리 아그 세명이 파편에 맞아 다쳤다. 그러자 어쨌는가? <BR>"니가 잠자는 사자의 콧털을 뽑아? 한번 맞아봐라"하고 우리 구축함의 영국제 57MM 보슬링 포가 불을 품었다. (이거 꽤 비싸다. 대포 하나가 57억이다. ) <BR><BR>이 포를 잠깐 소개한다. 일단 발사속도부터 .. 분당 600발 나간다. 허걱...그리고 30MM 철판도 뚫는다. 문제는 이게 아니다. 진짜 핵심은 백발백중이라는 점에 있다. 이 포탄은 직사가 아니라 곡사로 날아간다.(워낙 빨라서 직사로만 보일 뿐이다.) 그런데 포탄은 뜨겁다. 이제 감이 조금씩 올 것이다. 이 포탄이 지나간 자리는 미세한 열기운이 남아 있고, 컴퓨터의 적외선 센서가 이를 포착한다. 그래서 첫번째 포탄이 목표에서 5M 벗어나면 둘째탄부터는 자동으로 컴퓨터가 탄도를 수정하여 발사한다. 분당 600발 나가니까 1초에 10발... <BR>쏘는 순간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BR><BR>그 때 북한 아그들은 뭐하고 있었나? <BR><BR>...포를 열심히 돌리고 있었다. 수동으로...(상상해 보라) 이런 불쌍한 사람들.. <BR><BR>첫번째 북한 경비정은 포 한발 쏴보지 못하고 그대로 침몰했고(후에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상자가 50명이 넘었다고 한다.) 죽어가던 동료를 구원하러 오던 의리강한 친구는 흠뻑 맞고 쫓겨났다. 이게 현대 해전이다. <BR>(이 야그 듣고 너무 좋아하지 마시라. 일본 만나면 우리가 북한꼴 된다. 하나만 말하겠다. 우리나라 제일 큰 배가 광개토 대왕급 구축함(3800TON)인데.. 일본의 제일 작은 구축함보다 훨씬 작다.) <BR><BR>잠수함? 더 기가 막힌다. 한국 잠수함은 미국의 압력을 뿌리치고 독일제 잠수함을 선택하였다.(누군지는 몰라도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한 애국자들이다.) 아시다시피 잠수함은 핵잠수함과 재래식 잠수함으로 나뉜다. 쉽게 말하면 원자로를 탑재한 잠수함은 핵잠수함이고(최근 침몰한 쿠르스크호는 러시아의 최신 핵잠수함이다.) 전기나 디젤을 쓰는 잠수함은 재래식잠수함이다. <BR>- 활동반경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실 것이다. - <BR><BR>재래식 잠수함의 건조기술은 누가 뭐래도 U - 보트의 나라 독일이다. 우리나라 잠수함을 209급 장보고함이라 하는데 일명 장보고급 잠수함이라고도 한다. <BR>한마디로 짱이다.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잠수함들 중의 하나이다.(이제 제일 무서운 점이다.) 일례로 아펙훈련이라는 게 있다. 태평양 연안국가들의 해군합동훈련인데 주로 미국의 동맹국들이 참가한다. 이 아펙훈련(1998년도일거다.)에서 우리 잠수함이 미국 항모를 모의 훈련과정에서 격침시켰다. 1991년부터 참여한 일본잠수함들도 하지 못한 일이다.(그래서 일본에서 가장 경계하는 한국군의 군사력은 잠수함 전력이 되었다.) <BR><BR>자세히 말하면 길어질 것같고 좌우간 잠수함을 찾는 초계기부터 호위잠수함, 호위 구축함, 호위 대잠헬기등 몇겹으로 둘러싼 SOCUS라 부르는 대잠방어선을 뚫고 1800억짜리 잠수함이 10조원이 넘는 항모를 뽀개버렸다는 것은 미군에게도 엄청난 충격이었고 이후 그들은 대잠방어전술을 바꾸게 된다. <BR>잠수함의 생활은 절대 편하지 않다. 오히려 가장 열악한 환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군화를 헝겊으로 감싸서 최대한 소음을 줄이는 것은 기본이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고 힘들다. 그래서 잠수함 승무원의 자부심은 해군중에서도 최정예라는 대단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다. <BR><BR><BR><BR>무엇보다 잠수함의 생명은 은밀성과 기습이다. 즉 은밀하게 침투하여 단 한번의 공격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통상 10여발 내외의 어뢰를 한번에 날려서 통렬할 기습을 가하고 재빨리 빠져나오는 히트앤드런 전법을 구사한다. 대신 실패하면 통상 죽음과 직결된다. 잠수함이 탑재하는 어뢰와 하픈 미사일이 해군함대에겐 치명적이기 때문에 (어뢰 한발이면 왠만한 군함은 날아간다. 물론 공중의 새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일단 잠수함경보가 뜨면 찾아낼때까지 구석구석을 아주 정성스럽게 하나도 안 빼먹고 수색한다.(더 자세한 얘기를 하면 오늘 밤을 샐 것같아 그만둬야겠다. 밀리터리 매니아들은 필자의 얘기가 아주 함축적이란 걸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생략이 많다.) <BR><BR>자, 그럼 북한 잠수함은 어떤가? <BR><BR>우리 해군이 표현하기를 "바다속을 돌아다니는 경운기"이다. 허걱.. <BR><BR>경운기..통통통통.. 나 여기 지나갑니다. 온동네 광고하고 다니는 경운기 모두 아실 것이다. 그만큼 소음이 크다는 말인데 미 해군은 표현이 약간 다르다. <BR><BR>"바다속을 돌아다니는 움직이는 관" 관은 어느때 쓰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 믿고 나머지는 여러분들의 상상에 맡긴다. <BR>물론 북한이 해군에서 이런 고물들을 사용하게 된 원인은 한가지다. 돈이 없기 때문인데, 이 잠수함도 로미오급이라 불리는 소련에서 50년전에 쓰다가 폐기하기 귀찮아서 "공짜로 줄테니 가질래? 물어본 것이었고, 한국사람이 누군가?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사람들이 아닌가? 북한만을 미련하다고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도 형편이 나아져서 그렇지 예전엔 미국 떡고물만 바라보던 처지였음을 잊지는 말아달라. <BR><BR>이거 이렇게 쓰다가 언제 공군과 육군과 핵전력에 대하여 쓸 것인지 암담하다. 오늘은 해군만 하고 이만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눈꺼풀을 짓누른다. <BR><BR>간단히 정리한다. <BR>"괜히 돈 많이 주고 비싼무기 사는 거 아니다. 비싼무기는 비싼만큼의 값어치를 한다." 아울러 한마디 덧붙이면 "북한해군은 우리해군의 밥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BR><BR>다음편 기대하시라... 바로 밑에 있는 2편이 더 재밌습니다^^<BR><BR><BR><BR><BR>한토마에 이윤정&nbsp;/&nbsp;ho5888님이 올려주신 글입니다.
http://bbs2.hani.co.kr/board/ns_military/Contents.asp?Stable=NSP_003023000&amp;Idx=4069&amp;Rno=3201&amp;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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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개학한 첫날, 어느 반에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떼지어 이 질문을 던졌다.
북한과 우리가 싸우면 누가 이겨요? 
뜬금 없는 그 질문에 솔직히 당황도 했고, 대체 왜 아이들이 이런 얘기를 하나 싶었다. 
아마도, 근래에 나오는 뉴스들 때문일 것이다.&nbsp; 아이들의 부모들이 뭐라뭐라 얘기를 했을 것이고, 게 중에는 조중동의 주장을 그대로 읊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nbsp; 어린 아이들도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같이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을 게다.
참, 답답했다.&nbsp; 이 어린 학생들마저 당장 전쟁이 나면 우리 어떡해요? 라는 말이 일상어처럼 사용하게 되었다는 현실이 말이다.&nbsp;&nbsp; 그것이 나라에 대한 걱정이라면 좋겠는데, 그런 것보다는 일종의 '세뇌'처럼 보이니 말이다.
올린 글은, 정보 차원에서 잘 보았지만, 여전히 씁쓸하다.&nbsp; 전 세계가 쏟고 있는, 우리가 쏟고 있는 그 무시무시한 국방비.&nbsp; 모두가 내려놓으면 모두가 굶주림 없이 살수 있는 세상이 올 테지만, 누구도 내려놓지 않는다.&nbsp;&nbsp; 그건 꿈이고 몽상이고 이상이다.&nbsp;&nbsp; 나라도, 그리는 못하겠지...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nbsp; 사회주의가 실패한 것처럼 보이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혹은 민주주의가 진정한 영광의 주인인 것처럼 보였던 때가 있지만, 민주주의도 약점이 있고, 자본주의의 폐해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nbsp; 그런 모든 주의들은, 그 자체의 문제점보다,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문제에 있다고.
너무너무 더운 여름이다.&nbsp; 습기가 하늘을 찔러 불쾌지수도 엄청 높다.&nbsp; 에어콘 없이는 죽을 것 같다.
난 항상 더위를 생각할 때 94년도의 폭염을 떠올린다.&nbsp; 서울 온도가 무려 40도까지 올라갔던.
그때 명동에 잠시 들렀던 기억이 나는데, 손을 내뻗으면 공기가 고체처럼 달라붙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무서운 더위였다.&nbsp; 그런데, 그때는 에어콘 없이도 버텼다.&nbsp; 심지어 우리반 교실은 맞바람이 치질 않았고 선풍기도 두대뿐이었는데, 그나마 옥상 교실이어서 거의 온실 수준이었다.&nbsp; 그래도... 살만했다.
지금은 어떤가?
교실엔 에어콘이 나온다. (정말 좋아진 학교 풍경이다.)&nbsp; 그런데, 가운데만 시원하고 가장자리는 땀 뻘뻘 흘린다.&nbsp; 분필 가루 때문에 선풍기도 설치하지 못한다.&nbsp; (선풍기는 교실 양 옆에만 있다.)
물론 내가 서 있고, 말을 많이 하고, 그러니 당연히 더 덥기는 하지만, 에어콘이 있는 이 환경에서 이토록 더위를 느낀다는 게 황당하기도 하다.
웬만한 건물들은 다 에어콘을 돌리고 있고, 그 에어콘의 냉각효과가 건물 바깥의 기온을 높인다.&nbsp; 자동차도 마찬가지다.&nbsp; 열섬 효과를 만들며 도시 전체가 거대한 용광로처럼 끓고 있다.&nbsp; 더우니까 에어콘을 사들이고, 에어콘을 사용할수록 우리의 환경은 더 더워진다. 
그 악순환.&nbsp; 계속 되풀이하고 있지만 결코 줄어들려고 하지 않는 악순환.&nbsp;&nbsp; 우린 야금야금 우리의 살을 파먹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이렇게 더운데 너는 에어콘 안 틀고 살겠니? 라고 하면 나 역시 못 산다고 하는 것.ㅡ.ㅡ;;;;;
체쳇.... 망상만 늘고 이럼 안돼... 혀만 차고, 결국 실천은 없다.&nbsp; 껍데기만 있다니까.&nbsp; 한심하다.<BR>]]></description><image><url>http://www.dkbnews.com/img/2006/07/20060728060725-N-7981E-109.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40369</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부부합산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의 국민들은 보시오!</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34840</link><pubDate>Thu, 17 Aug 2006 04: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3484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338&TPaperId=93484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67/86/coveroff/899027433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우석훈 선생의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2006, 녹색평론)을 읽다가 요근자에 읽은 어떤 FTA관련 서적들에 비해 확실히 알기 쉽게 FTA를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읽다가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 함께 읽어보자는 마음으로 일일이 타이핑을 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부분적으로 본래 책의 원고와 틀린 부분은 내가 교정을 본(교열이 아니라) 부분이거나 아니면 타이핑 하다가 오타가 난 부분이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부부합산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노무현호 아니 현재 흐름대로라면 '대한민국호'에 타고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현재의 추세가 바뀌지 않는다면 부부합산으로 연소득 6,000만원 이하를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현재의 '노무현호'를 타고 미래로 갈 이유는 없다. 만약 '고향' 혹은 '우리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어서 이 특수한 상품 혹은 서비스를 소비하는데 매우 특별한 만족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체재'를 찾는 것이 절실한 순간이다. 어차피 학교에서도 이제는 '우리말'이 대접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것인데, 우리 말을 사용하는 편리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높다. &lt;21쪽&gt;
그리고 "7장.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라는 부분을 한참 신나서 읽고 났더니 몹시 슬픈 이야기였다. 원고 내용 중 밑줄&nbsp;치고, 굵은 글씨&nbsp;부분은 별도로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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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7. 그럼 도대체 정부가 아는 건 뭐야?
한미 FTA의 결과, 무역수지는 손해인데, 서비스업도 별로 밝아보이지 않고, 미국 시장에 대해서 잘 아는 것도 아니고, 한국 시장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럼 대체 정부가 아는 게 뭔가? 보통의 경우라면 정부가 모르는 것을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정상적이다. 그러나 지금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이 한 얘기를 빈틈없이 뒤집어보면 정부가 뭘 제대로 아는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정부가 도대체 지금 무엇을 알고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렇게 용감하게 “최단 시일 내에 성공적 협상을 하겠다”며 질주하는 정부는 도대체 무엇을 알고 있을까? 한번 정부가 알고 있는 걸 찾아보기로 하자.
가. 농업은 망한다<BR>어쨌든 노무현 정부는 농업이 망한다는 정도는 아는 것 같다. 이건 새로운 미국과의 통상 관계 때문이 아니라 농업은 그만둔다는 정책 기조로 지난 3년간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이다. 졸저 &lt;아픈 아이들의 세대&gt;에 노무현 정부의 농업 정책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분석한 적이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농업의 얘기를 접기로 하자. 현재 국민의 8% 정도인 농민이 4%대로 줄어들지, 아니면 정부의 목표대로 1%대로 내려앉을지가 문제일 뿐이다.
나. 월마트한테는 안 당한다<BR>월마트와 까르푸가 국내 유통업계에서 철수하게 된 것이 금년(2006년) 초이다. 정부는 대형유통시장에서 한미FTA로 경쟁조건을 바꾸더라도 국내 업체에게 승산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계속 죽어나갈 것이다. 월마트가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하여간 정부는 “월마트한테 안 당한다”는 정도는 안다.
다. 한국영화 안 본다고 죽는 거 아니다<BR>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면서 국내 영화산업은 일단 현재의 절반 정도로 축소될 것이다. 국내영화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로 유지가 되어야 할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정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스크린쿼터 146일 규모에서 일종의 ‘규모의 경제’가 생겨서 몇 개의 경쟁력 있는 한국영화가 나온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데, 이 규모가 73일이 되면 기계적으로 시장 규모가 반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규모의 경제에 미치지 못하는 그만그만한 영화가 나오게 되는 것이 현대 영화시장의 특징이다. 이것까지는 정부가 몰랐던 거다. 정부가 아는 것은 다만 “한국 영화 안 본다고 안 죽는다”는 점이다.<BR>멕시코의 일류 감독들이 지금 CF감독으로 연명하면서 3~4년간 돈을 모아서 겨우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 한 편 만드는 상황을 보면서도, 정부는 미국에 일단 스크린쿼터를 내주고 협상을 시작하고 있다.
라. 병원 안 간다고 다 죽는 건 아니다<BR>보건경제학 쪽에서 조금 더 자세한 분석이 나오려면 6개월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숫자를 정확하게 내기는 어렵지만 아마 국민의 30%에서 40%정도는 한미FTA 이후 5년이 지나면 의료비와 보험비가 비싸져서 병원에 가기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다. 계산하기 어려운 것은 얼마나 되는 국민들이 병원에 갈 수 없을지 여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건 소득분배의 재구성 모델이 나와야 숫자가 정확히 나온다. 의료서비스의 가격이 비싸지는 것은 시나리오 형태로 추정할 수는 있는데, 단지 국민들이 “얼마나 가난해질지를 몰라서” 계산하기가 어려운 것이다.<BR>정부에서는 한 가지를 알고 있다. 병원에 안 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물론 그렇기는 하다. 돈 없어서 병원에 못 가는 것이 서럽기는 해도, 아프다고 다 죽는 것은 아니다. 약초요법과 전통의학 등 ‘대체의학’이 급속도로 발전할 수도 있다.
마. 공무원들한테는 별일 안 생긴다<BR>사실 정부라는 것은 공무원들의 총합이기도 하다. 공무원들의 운명은 사실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FTA는 민간부문과 민영화되는 공공부문까지 영향을 크게 미칠 뿐, 공무원들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이 거의 없다. 국민들이 겪게 될 평균적인 변화와는 다른 미미한 변화만이 생길 뿐이다. 만약 공무원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지금 같은 방식으로 한미FTA 추진이 가능했을까? 확실히 정부는 공무원들에게는 별일 안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정부 내에서 저항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BR>물론 지금 정부가 조심스럽게 준비 중인 ‘행정민영화’ 프로그램이 진짜로 강도 높게 추진된다면, 원칙론적인 ‘희망’과는 달리 공무원 세계도 격랑에 휘말리게 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바. 국민들은 농민 편 안 들어준다<BR>정부도 인정하는 것과 같이 사실 한미FTA로 가장 많은 타격을 받을 사람들은 농민들이다. 꼭 한미FTA에서 특별한 규정이 생기거나 쌀시장이 추가로 개방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상 쌀시장은 이미 다자관계인 WTO에서 개괄적인 틀로 결정된 상태다. FTA라는 틀에서 쌀시장을 다룰 이유가 별로 없다.<BR>전략적으로는 미국이 약간 요구하는 척 하다가 양보할 것이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그래도 쌀시장을 지켰고, 그 대가로 다른 분야에서 좀 희생을 했다는 선전을 할 것이다. 정부가 양자관계에서 다룰 필요가 없고 다루지도 않는 ‘쌀시장’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걸 보면서 이건 거의 ‘야바위’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한미FTA가 농민들에게 치명적인 것은 협상이 진행된다는 이유만으로 몇 년 후에 시행될 ‘농업죽이기’ 정책이 훨씬 빨리 진행될 것은 물론, 추곡수매가 사라진 다음 실질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던 보조금 정책 등을 ‘없던 얘기’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BR>그렇지만 정부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것은 국민들이 농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확실하다. 한미FTA를 통해서 농민이 손해보고 그 대신 서비스업은 좋아질 것이라고 정부가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위험해진 미장원 주인들조차 농업이 망하고 어려워진 만큼 그 이익이 자신에게 올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농민들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대다수 국민들이 절대로 농민들 편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큼은 확실히 안다.
사. 한나라당은 꼼짝할 수가 없다<BR>노무현 정부는 적어도 한미FTA에서만큼은 한나라당이 꼼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FTA가 실제로 어떠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어떤 부문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분석할 수 있는 실무전문가가 없다. 따라서 정부에 곤란한 질문을 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도 아는 것이 별로 없는데, 한나라당이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상당수 한나라당 당원들은 일단 ‘자유무역’이란 말이 들어가면 무조건 찬성하는 경향이 있다.
아. 국민들은 벤츠를 좋아해<BR>한국정부는 자동차 부문의 협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은 모양새다. 미국정부도 한국시장에서의 자동차 판매에 꽤나 공을 들이고 있는 형편이다. 자동차 조금 더 팔자고 3,000cc 이상의 대형자동차에게나 적용될 제도들을 없애고, 배기가스 배출기준을 없애고, 심지어는 수도권 대기관리대책까지 없애라고 하는 미국의 요구는 내정간섭에 해당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런 기본적인 환경정책의 틀 정도는 지킬 가능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게 진짜 협상의 핵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부문의 변화가 워낙 크기 때문에 어차피 타는 수입자동차, 독일제를 타나 미제를 타나 국민경제에는 별가시적 변화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연소득 6,000만원 미만의 국민들에게는 어차피 해당사항 없는 일이기도 하다.<BR>정부는 국민들이 미국자동차를 타지 않는 이유가 다른 복잡한 이유가 아니라 벤츠와 BMW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잘 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아직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독일제 자동차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나 보다. 죽기 전에 한번이라도 캐딜락을 타고 싶다는 미국인들처럼 한국인들도 자신의 첫 번째 외제 승용차는 벤츠이기를 바란다. 물론 한국정부는 이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자. 국민들은 식품 안전에 관심이 없다<BR>정부가 아는 또 한 가지 사실 중에서 가장 슬픈 일은 한국 국민이 식품안전에 사실상 별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사고가 터지면 벌떼처럼 떠들지만, 길어야 일주일이다. 광우병 의혹이 있는 미국산 축산물도 문제지만, 한미FTA로 정말 곤란하게 되는 것은 유기농산물의 기반이 무너지고, 그래서 장기적으로는 안전한 식품공급시스템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붕괴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한국 국민들은 이런 근본적인 식품안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무엇보다도 OECD 국가 중에서는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인식수준이 가장 낮은 국민이라는 점을 정부는 잘 알고 있다. WTO협상에서도 다른 선진국이 전부 만들어 넣은 학교급식 재료조달에 관한 예외규정을 하나도 만들지 않은 게 한국이다. 정말 한국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국민들의 약점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차. 그래봐야 이민 갈 용기가 있는 국민은 별로 없다<BR>다음 장의 결론을 미리 당겨서 말하자면, 현재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FTA체제 속에서 ‘개인으로서의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국민직접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국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 보인다. 이러한 경우에 유일한 의사표시 방법은 많은 국민들이 이민을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그래봐야 이민 갈 정도로 용기 있는 국민이 별로 없다는 사실까지도 잘 알고 있다. 이미 붕괴된 교육시스템에 불만이 있어서 많은 학생들이 조기 유학을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 뭔가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공부 못하는 애들 유학 보내봐야 인생만 망가진다”는 ‘조기유학 위험론’으로 협박을 일삼던 정부다. 가끔 소주 마시며 대통령을 씹어대긴 하지만, 사실 국민들이 미래를 불안하게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못할 거라는 점을 노무현 정부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쉽게 정리해보면, 정부는 한미FTA와 관련해서 정부가 꼭 알아야 할 것들은 거의 모른다. 그런데 국민들과의 협상에서 이기는 방법은 너무 잘 안다. 진화적 게임이론으로 상황을 설명하자면 ‘노무현 시스템’은 외국이 아니라 국민들을 상대하는 감각기관이 기이하게 발달&#8228;진화한 시스템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정부’라고 뭉뚱그려 표현하지 말고 대체 어떤 시스템을 가진 정부인지 좀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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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본문 126~133&gt;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BR>우석훈 지음 / 녹색평론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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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에는 장봉군 화백의 만평이 실려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를 끌고 과속질주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앞길에는 미국과의 FTA협상으로 국민경제가 파탄 지경에 이른 멕시코가 있다.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 
아마도 우석훈 선생은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맞는 말이다. 협상 한 번 잘못했다고 나라 망하는 거 아니다. 대신에 이민도 갈 수 없고, 그렇다고 이 나라에서 이대로 살기도 어려운 국민들만 망하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FTA를 막을 길은 국민직접행동뿐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67/86/cover150/8990274338_1.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274338</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교육의 얼굴을 한 시장’ 원하는가?</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34835</link><pubDate>Thu, 17 Aug 2006 04: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34835</guid><description><![CDATA[&nbsp; 학교 위에 국가가, 국가 위에 시장이 있으니 학교는 국가정책보다 시장의 이윤 여부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해진다. 교사도 학생도 학교도 상시 구조조정의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마당에 ‘지속가능한 교육’이 발붙일 여지가 어디 있는가.
&nbsp; 교육부가 교사 성과급을 굳이 차등해서 지급하겠다는 건 긴 서사의 서장이다. 그 끝은 ‘교육의 소멸’이다. 왜 그런가? 
&nbsp; 교사의 성과를 계량화하기 위해 현재는 수업시수, 담임, 보직, 수상경력 등이 나열돼 있지만 이는 ‘미끼’일 따름이다. 곧 시행된다는 교사평가는 교장, 교감, 동료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하도록 돼 있는데 이 역시 문제가 많아 상당한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다. 그럼에도 어차피 교사에 대한 ‘평가’로 성과급을 ‘차등’해야겠다면 저항이 덜한 숫자로 기준을 삼을 수밖에 없다. 가장 분명한 숫자는 학생들의 학업성적이다. 즉 이 모든 혼란은 결국 ‘학교별 학생성적 평균’으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이후는 뻔한 수순으로 진행될 것이다. 이미 학교를 시장화한 미국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nbsp;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부임하자마자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을 시행했다. 그 방법은 간단하다. 공립학교 학생들에게 쉼없이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이다. 목표한 학업 수준에 이르지 못한 학교는 교장·교사 해임, 학생들이 사립학교로 옮길 수 있도록 학비지급(바우처 제도), 자율경영의 차터스쿨 전환, 아예 사기업이 학교를 맡는 위탁경영 등 ‘시장화 구조조정’을 겪게 된다. 해당 학교는 망하고 교사는 학교를 떠난다. 낙오학생방지법이 시행된 후인 2003년, 5년차 교사의 46%가 학교를 떠났다. ‘퇴출’이라기보다 ‘이직’에 가깝다. 교직은 ‘더 나은 연봉’을 잡기까지의 비정규직, 혹은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추락한다. 그래도 시장주의자 눈에는 46%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으니 성공으로 보인다. 
&nbsp; 더 중요한 건 다음이다. 학생들 학업성취를 측정하기 위해 객관적인 평가 기관이 있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걸 민간에 맡긴다. 낙오학생방지법 때문에 미국 각 주는 6년 계약에 19억달러(객관식 유형)에서 많게는 53억달러(에세이나 자유주제 글쓰기)의 돈을 써야 한다. 간접비용까지 합하면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불어난다. 초국적 거대기업들이 이 ‘엄청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학력평가업체를 차렸다. ‘하코트 교육평가’, ‘시티비(CTB) 맥그로 힐’, ‘리버사이드 출판사’ 등 3~5개 업체가 학력평가시험 시장의 메이저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 중 맥그로 힐이 부시 대통령 가족과 3대에 걸친 친분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2002월 1월 〈네이션〉 보도). 그렇다면 이는 ‘시장→로비→정책’으로 이어지는 시장국가 미국의 전형적 모습이기도 한 셈이다. 가히 ‘교육의 얼굴을 한 시장’이라 할 만하다. 
&nbsp; 이쯤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 2차 협상에서 웬디 커틀러 미국 쪽 대표가 “교육평가 시스템에 관심이 있다”고 한 말이 새삼 생생하게 들리지 않는가? 국경의 문턱을 없애면 이들 평가업체가 물밀듯 몰려들 것이다. 학교 위에 국가가, 국가 위에 시장이 있으니 학교는 국가정책보다 시장의 이윤 여부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해진다. 기업들이 학생과 교사와 학교 평가의 전권을 가지고 우리 교육을 쥐락펴락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도 학생도 학교도 상시 구조조정의 거센 물살에 휩쓸리는 마당에 ‘지속가능한 교육’이 발붙일 여지가 어디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교육은 자연스레 소멸한다. 이것이 ‘교사 성과급 차등지급’으로 비롯되는 서사의 종막이다. 우리가 이런 세상을 원하고 있는가? 
&nbsp; 경쟁, 효율, 평가, 구조조정으로 순환하는 신자유주의적 시장시스템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것은 약인 동시에 독인 파르마콘(pharmakon)이며 ‘비시장 시스템’인 학교에서는 단연코 독으로 작용한다. 학교는 무엇인가? 경쟁하는 곳인가, 협력하는 곳인가. 계층분리하는 곳인가, 계층화합하는 곳인가. 완벽하게 승리하는 곳인가, 실패를 통해 성숙하는 곳인가. 먼저 이런 기본들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것, 그것이 진짜 교육 경쟁력이라 본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할 것을 정부에 촉구한다. 
이석범 /소설가·서울 신원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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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2006년 8월 10일, [왜냐면]에서 가져왔어요.<!--ⓘ AD kisa banner include 시작-->]]></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전국에서 가장 경치좋은 팬션 모음 </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33542</link><pubDate>Mon, 14 Aug 2006 2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33542</guid><description><![CDATA[










모처럼 자연을 찾아 떠나는 여행. 숙소 앞에 푸른 바다나 강, 산 등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굳이 주변 여행지를 돌아보지 않아도 펜션에 묵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풀리고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 절경으로 둘러싸인 곳. 전국의 전망 좋은 펜션을 한곳에 모았다.<BR>&nbsp;<BR>펜션은 전원에서의 특별한 휴식과 레저를 위한 숙박업소다. 대부분의 펜션이 예약전문회사와 연계되어 있거나 자체적으로 예약 관리를 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든 예약 시스템은 매우 편리하게 되어 있는 것이 특징.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펜션은 해당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 예약을 해도 되고, 직접 전화를 해도 된다. 펜션 홈페이지에는 객실 내부 사진과 부대시설, 특징, 위치 등이 소개되어 있으므로 사전에 꼼꼼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다. 
비수기이거나 주중이 아닌 한 예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번 주말에 펜션이나 가볼까’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주말은 모든 펜션의 공통적인 성수기이므로 최소 2주일에서, 길게는 2개월 전에 미리 예약하는 것이 필수다. 또 성수기와 비수기는 물론 주말과 주중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한다. 이용 요일에 따라 보통 30~50%까지 요금 차이가 나며 1일 기준으로 평일에는 6만~9만원, 주말에는 10만~15만원선이다. 같은 펜션 내에서도 설비 수준과 평수 등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천차만별. 요즘은 주5일제의 영향으로 금요일부터 주말요금을 받는 곳도 있음을 알아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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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강화도 일마레<BR>멀리 갯벌이 내다보이는 야산자락에 자리 잡은 그림 같은 펜션. 창을 통해 바다가 한눈에 펼쳐지며 하얀 건물이 눈부시게 아름다워 각종 광고 촬영지의 명소가 되었다. 부대시설로 카페와 하이킹로, 배드민턴장을 갖추고 있다. 투숙객들은 편하게 커피나 홍차를 끓여 마실 수 있고,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준다.<BR>위치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여차리 문의 032-937-6242 홈페이지 www.ilmarepens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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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솔베르크<BR>서울에서 불과 1시간 거리이지만 마치 금방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도착한 듯한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곳. 드라마 &lt;별을 쏘다&gt;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하다. 펜션 밖으로 나가면 바로 삼림욕을 즐길 수 있을 만큼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있으며 싱그러운 솔향기를 내뿜는 산책로와 여기저기 피어 있는 야생화가 아름답다.<BR>위치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문의 031-771-7262<BR>홈페이지 www.dreampensi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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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히든밸리<BR>명지산 북쪽 자락 해발 600m에 자리해 있으며, 펜션 밑으로 약 500m 지점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펜션에 예약을 한 사람만 입산할 수 있다. 펜션 건물 전면의 널찍한 야외 데크에 서면 아득하게 펼쳐진 산자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청정지역에 있는 목조 주택이라 자고 일어나면 머릿속이 말끔히 씻겨나간 듯이 개운해진다. <BR>위치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BR>문의 031-581-1905 홈페이지 www.aletsg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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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해피하우스<BR>제부도 가는 길목에 있는 ‘어섬’이라는 섬에 위치한 독특한 외관의 펜션. 숲 속에 사는 파란 난쟁이 스머프 마을을 본떠 지은 앙증맞은 버섯 모양의 집이다. 각 방에는 원형 물침대가 구비되어 있고, 커플 전용 룸의 경우 침대에 누워서 창밖으로 바다를 볼 수 있어 로맨틱함을 자랑한다. 전화로만 예약이 가능하다.<BR>위치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고포리 문의 031-357-3908<BR>홈페이지 www.ehappyhous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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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 금주산방<BR>산 좋고 물 맑은 산자락에 들어앉은 펜션. 각각의 객실에는 넓은 테라스가 딸려 있어 계곡의 전망을 즐길 수 있다. 그룹 룸인 ‘하늘이 보이는 방’에는 천창이 나 있어 밤이면 쏟아지는 별을 보며 잘 수 있고 커플 룸인 ‘산새방’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그림이 걸려 있어 운치를 더한다. 특히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금주저수지에 가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아침 물안개를 감상할 수 있다.<BR>위치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BR>문의 031-531-1122<BR>홈페이지 www.kumjusanb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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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안성 안성퓨전21<BR>화사한 연노란색의 유럽식 목조 주택. 새벽이면 펜션 앞의 용설리 저수지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데 그 아름다운 풍광에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펜션 뒤로는 짙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포켓볼, 탁구대, 족구장, 배드민턴 코트 등 각종 오락시설이 구비되어 있으며 애완동물도 동반 가능하다.<BR>위치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용설리 문의 031-675-1807 <BR>홈페이지 www.ansungfus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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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아름다운 여행<BR>구불구불한 계곡길을 빠져나오자마자 뇌운계곡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 펜션 마을. 5000여 평의 넓은 산속 부지에 12개 동의 통나무집이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다. 야외 바비큐는 물론 동물농장과 삼림욕장 등 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설들이 잘 갖춰져 있다. 각각의 객실은 독립된 통나무집으로 마련되어 있어 오붓함을 즐길 수 있다. <BR>위치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뇌운리 문의 033-332-7907 <BR>홈페이지 www.beautifultou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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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어느 멋진 날<BR>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정면에 유유히 흐르는 홍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깔끔한 화이트톤의 내부 인테리어와 테라스 바깥으로 시원하게 펼쳐진 풍광이 휴식 그 자체. 넓은 뜰에는 어린아이를 위한 작은 모래밭과 분수대가 자리 잡고 있으며 분수대 안에는 투숙객들이 강에서 직접 낚아온 다양한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BR>위치 강원도 홍천군 서면 반곡리 문의 033-434-7920 <BR>홈페이지 www.smart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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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양양 흐르는 강물처럼<BR>우리나라에서 가장 맑은 계곡 중 하나로 꼽히는 법수치에 지어진 새하얀 목조 건물. 법수치계곡은 연어가 알을 낳으러 오고 수달이 사는 남대천 상류 1급수. 이곳에서는 영화 &lt;흐르는 강물처럼&gt;에서 브래드 피트가 멋진 폼으로 던지던 플라잉 낚시를 직접 해볼 수 있다. 또한 깊은 산이라 각종 산나물과 송이를 캐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BR>위치 강원도 양양군 법수치리 문의 033-673-0941~2 <BR>홈페이지 www.riverrun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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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평창 달과 물안개<BR>진부로 가는 길목에 호젓하게 자리 잡고 있는 펜션. 매일 아침 탁 트인 테라스 창밖으로 오대천 자락의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해발 550m, 장쾌하게 뻗은 산자락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벼랑 위에 세운 듯한 5채의 독립된 객실 건물 앞에는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깊은 계곡의 전경이 넓게 펼쳐져 있는 곳. 인근에 패러글라이딩 전문 활공장이 있다. <BR>위치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수항리 문의 011-366-1177 홈페이지 www.moonfo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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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성 케빈타운<BR>성우리조트 스키장 슬로프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어 각 객실의 데크에서 시원스러운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산의 가파른 경사면을 그대로 살려 지은 통나무집으로 테라스 앞과 아래로는 울창한 숲이 펼쳐져 있다. 객실이 모두 남향이라 볕이 잘 들고, 향긋한 통나무 내음과 함께 숲 속에 안긴 듯한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다.<BR>위치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두원리 <BR>문의 033-344-5946 <BR>홈페이지 www.cabintow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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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해돋는 화가마을<BR>서해안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펜션. 보리밭과 억새밭이 아름답고 철새들의 휴식처인 대야도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해 있다. 서해안임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다를 향하고 있는 침실 바로 옆의 통유리창을 통해 해 뜨는 눈부신 광경을 볼 수 있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넓은 갯벌 위로 산책로가 드러난다.<BR>위치 충남 태안군 안면읍,<BR>문의 조이빈 펜션(02-701-1126) <BR>홈페이지 www.joybin.com
<BR>&nbsp;<BR>안면도 씨 앤 썬<BR>서해안 아름다움의 정수만을 뽑아내 펜션 앞에 펼쳐 놓은 듯 맑고 푸른 바닷물과 풍부한 갯벌의 조화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곳. 각 객실에는 저마다 바다를 향해 통유리창이 나 있으며 아담한 데크가 마련되어 있다. 날이 저물면 자갈이 정갈하게 깔린 안마당에서 밤바다를 내려다보며 바비큐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이곳은 적어도 2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이용이 가능하다.<BR>위치 충남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 문의 041-672-5100 <BR>홈페이지 www.sspens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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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드림 레이크<BR>청풍호반을 앞마당으로 한 단지형 펜션. 해질녘이면 호수를 붉게 물들이며 떨어지는 노을을 정원, 발코니는 물론 객실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아침이면 하얀 물안개가 살포시 피어올라 분위기 만점. 펜션 옆에는 호숫물을 그대로 끌어다 쓴 조립형 미니 수영장이 있고 정원 곳곳에는 연인들을 위한 그네형 의자가 설치되어 있다. <BR>위치 충북 제천시 청풍면 교리 <BR>문의 휴 펜션(02-2057-1561) <BR>홈페이지 www.huepens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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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울산 비홍산방<BR>주위의 산새가 기러기의 날갯짓과 같다 하여 비홍산방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곳은 그 이름처럼 주위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앞쪽으로 1급수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큰 저수지가 있어 더욱 낭만적이다. 아침 일찍 저수지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계곡을 따라 산책로를 거니는 맛이 일품. 펜션 앞 저수지에서 낚시도 즐길 수 있다. <BR>위치 울산 울주군 범서읍 문의 052-211-8700 홈페이지 www.bihong.co.kr
<BR>밀양 몽블랑<BR>풍광 좋고 물이 깨끗하기로 유명한 밀양 얼음골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북미산 수입 소나무로 지어진 통나무집으로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진 펜션이다. 주변에 사자평, 호박소 등 크고 작은 계곡과 산들이 위치해 있어 공기 또한 물 만큼이나 맑다. <BR>위치 경남 밀양시 산외면 희곡리 문의 055-353-7261~2 <BR>홈페이지 www.montblanclogtow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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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안동 지례예술촌<BR>1663년 숙종 때 건립하였으며 종택, 제청, 사랑방, 객사 등 10여 동 125칸의 규모를 자랑하는 고택이다. 임하호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들어앉아 경관이 수려하고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겨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도 인기를 끌었다. 민박시설 외에도 제사상 차리기, 종가음식 체험, 장작패기 등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장으로 발전하고 있다.<BR>위치 경북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BR>문의 054-822-2590 <BR>홈페이지 www.chir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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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문리버<BR>무주리조트와 인접한 통나무 펜션. 국립공원 임도를 따라 나 있는 진입로가 아름답다. 덕유산 휴양림에서 삼림욕이 가능하며 밤에는 청정지역에서만 산다는 반딧불이를 볼 수 있다. 지하 50m에서 끌어올린 청정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한다.<BR>위치 전북 무주군 무풍면 문의 063-322-7009 <BR>홈페이지 www.dal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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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BR>서귀포시 귤림성 팜스테이펜션<BR>넓은 테라스에 서면 제주의 아름다운 비경이 한눈에 내다보이는 정통 미국식 목조주택. 주변의 밀감밭과 잘 다듬어진 정원수들이 눈에 가득 차고, 멀리 한라산과 서귀포 월드컵경기장, 그리고 산방산과 가파도, 마라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BR>위치 제주도 서귀포시 호근동 문의 064-739-3331 <BR>홈페이지 www.gyulims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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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제주군 한마음하우스 <BR>제주의 해안도로 중 가장 멋지고 아름답다는 애월 해안도로(구엄 바닷가)에 위치한 그림 같은 펜션. 내부 전체가 원목으로 꾸며져 있으며, 1층은 거실 겸 주방, 화장실 2층은 침실 전용으로 침대에 누워서도 아름다운 바닷가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복층식 구조로 되어 있다.<BR>위치 제주도 북제주군 애월읍 구엄리 <BR>문의 064-711-7134~5 <BR>홈페이지 www.jejuhanmau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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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제주군 카멜레아힐<BR>중문단지 인근의 5만여 평에 이르는 수목원 속에 자리 잡고 있다. 밤이면 해안을 밝히는 고깃배들의 시위가 한눈에 들어오며 무엇보다 정원 조경이 잘 되어 있다. 잔디를 깔고 그 사이로 현무암 디딤돌을 놓았다. 마당 한편에는 옹기 200여 개와 조각품, 비자나무, 대나무 등을 배치해 고풍스러운 멋을 더했다. 목조 별장과 스틸 하우스, 초가 별장 등이 있다.<BR>위치 제주도 남제주군 안덕면 상창리 <BR>문의 064-739-3900 <BR>홈페이지 www.camelliahill.co.kr]]></description><image><url>http://ib.emimg.com/blog/paper/head_0065.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33542</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이 시대 최고의 미술 이야기꾼</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31680</link><pubDate>Fri, 11 Aug 2006 03: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3168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250391&TPaperId=93168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7/44/coveroff/8956250391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250383&TPaperId=93168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7/44/coveroff/8956250383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9131067&TPaperId=93168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56/20/coveroff/895913106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8902769&TPaperId=93168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2/0/coveroff/898890276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6250138&TPaperId=931680" target="_blank"><img src="http://image.aladin.co.kr/product/40/54/coveroff/8956250138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blog.aladin.co.kr/baramdori/931680'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금요일자 한겨레 북리뷰를 인터넷에서 미리 훑어보다가 '한국의 책쟁이들' 시리즈에서 미술 저술가 이주헌씨 편을 읽었다. 이 연재물을 즐겨 읽지만 유독 이 글만을 옮겨올 생각을 한 것은 그의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띄어서이고 또 그가 현재 러시아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을 집필중이라는 소식이 반가워서이다. 이만한 저술가/책쟁이들이 더 많아지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역정'을 잠시 따라가본다.

한겨레(06. 08. 11) “나 자신이 미디어라고 생각해요”
-이시대 최고의 미술 이야기꾼이 이주헌(46)씨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어보인다. 대중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미술을 만나게 안내해주는 필자로 이씨만큼 유명한 이는 아직 없다. 일찌감치 이 분야에 뛰어들어 가장 먼저 이름을 얻은 ‘개척자’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신문사에서 미술담당 기자를 지낸 이력을 보면, 그가 미술 저술가가 된 것은 어찌보면 아주 자연스러운 변신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씨가 기자를 그만 두고 최고의 미술저술가가 되는 과정이 과연 그렇게 순조로왔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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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한겨레&gt;에서 미술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이씨는 93년 5년 넘게 몸담았던 신문사에 사표를 낸다. 미술 글쟁이로만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열달 남짓 미술잡지 편집장을 지낸 뒤 이씨는 아예 전업 저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94년 봄, 이씨는 무작정 화랑 겸 출판사인 학고재의 우찬규 사장을 찾아갔다. 이씨는 우 사장에게 유럽 주요 미술관을 가족과 함께 답사해 기행문처럼 들려주는 대중적 미술책을 펴내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 취재비용으로 1000만원을 먼저 달라고 요청했다(*이게 그림을 보는 안목보다도 더 배울 점이다). 선인세로 받아 책이 나온 뒤 팔리는만큼 갚는 것인데, 한가지 조건을 더 달았다. “책이 안팔려 절판되도 갚을 돈이 없다”고 미리 못박은 것이다. 지금 보면 거의 ‘배째라’ 수준이지만, 당시 이씨의 형편으로선 솔직하게 밝힐 수밖에 없었다. 
-이씨가 특별한 교분이 없었던 우 사장을 찾아간 것은 학고재의 성격이 책의 성격에 맞아보였고, 그런 지원을 해줄 인식을 지닌 출판사가 학고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 사장은 놀랍게도 그자리에서 흔쾌히 이씨의 조건대로 책을 펴내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1100만원을 지원받은 이씨는 저금한 돈 400여만원에서 100만원만 남기고 모두 인출해 여행비에 보탰다. 그해 8월 말, 이씨는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유럽으로 출발했다. 이씨 나이 서른세살, 아이들은 겨우 세돌과 한돌이 지났을 때였다. 그리고 도착지에서 바로 답사기를 &lt;한겨레&gt;에 송고하기 시작했다. 53일간의 미술관 답사기는 &lt;한겨레&gt; 연재를 거쳐 &lt;50일간의 유럽 미술관 기행&gt;이란 제목으로 학고재에서 출간됐다. 

-“제 인생의 승부를 건 것이죠. 이게 되면 이걸 통해 살아갈 길이 나올 것이고, 안되면 미술 글쓰기를 접기로 하고 이 책에 제 전부를 던진 겁니다.” &lt;50일간의~&gt;는 미술과 여행 두가지 재미를 함께 지녔다는 평을 들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최초의 대중적인 미술 저술가’ 이주헌은 이처럼 더이상 물러날 곳 없는 배수의 진을 친 도전으로 탄생했던 것이다. 신문기자를 그만 두고 그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인 ‘미술 저술가’에 승부를 건 것 역시 당시로선 아무도 하지 않았던 모험이었다. 이후 이씨는 &lt;미술로 보는 20세기&gt;, &lt;신화 그림으로 읽기&gt; 등 내는 책마다 호평을 받았고 당대 최고의 미술 저술가로 자리를 굳혔다. 
-이씨의 강점으로는 잘난척하는 법 없이 차분하고 편하게 미술을 설명하는 글솜씨가 맨 먼저 꼽힌다. 이씨 이전에도 미술 글쟁이들은 있었다. 그러나 대중들로 하여금 오히려 미술과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그들만의 언어로 그들만의 관심사를 논할 뿐이었다(*인문학의 다른 분야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저술가로서 가져야 할 문장 구사력, 그리고 작품의 배경과 여러 의미를 읽어내는 인문적 소양을 갖춘 필자도 드물었다. 이런 모든 단점을 한꺼번에 극복하고 등장한 저술가가 이씨였다. 신문기자를 하면서 늘 미술을 쉽게 설명하는 훈련을 쌓았던 것이 이씨의 자산이었다. 미술과 대중과의 거리를 좁힌 최초의 저술가가 이씨이고, 대중들에게 감상의 동반자로 나선 저술가도 이씨가 처음이었다. 
-이씨의 글은 철저하게 저널리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씨가 생각하는 저널리즘은 결국 ‘소통’의 문제다. 정보나 지식 등 필요한 것을 전하는 과정에서 일상인의 언어로 길을 터주는 것이다. 이씨 스스로도 항상 ‘나 자신이 미디어다’라는 생각을 갖고 글을 쓴다. 그래서 이씨의 글은 가장 편하게 읽으면서 정보와 감상을 얻을 수 있다는 평을 듣는다. 이씨 이후 이씨보다 더 학문적 배경을 갖췄거나 이씨처럼 쉽게 글쓰는 이들이 등장했지만 누구도 이씨처럼 대중들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다. 그 이유가 바로 ‘저널리즘적 글쓰기’ 감각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씨가 10년 넘게 최고의 미술 저술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에는 글솜씨 이상으로 탁월한 책 기획력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이씨는 자신이 책의 모든 부분을 기획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철저한 프로의식이 깔려 있다. 이씨의 출세작인 &lt;50일간의~&gt;을 보면 이씨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프로’인지를 알 수 있다. 이씨는 처음부터 아이들을 데려갈 생각이었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미술책이므로 가족여행 이야기가 들어 있어야 독자들이 편하게 책을 접할 수 있고, 또한 아이들을 데리고 가야 글을 쓸 에피소드들이 나올 것으로 계산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부부는 힘들어도 책에 재미를 넣어 보다 폭넓은 대상들을 독자로 끌어들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이런 기획은 기막히게 맞아떨어졌다. 당시만해도 이런 식의 미술책은 거의 없었다. 가족들에게 미술이 뭔지 쉽게 설명해주는 이씨의 고군분투 여행기를 읽다보면 유럽 풍광을 엿보는 동시에 옆에서 설명듣듯 미술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이 책만의 새로운 재미였다. “당시 여행자유화가 되면서 유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때였어요. 그런데 유럽에 가면 미술관을 가봐야 하고, 미술관에 가면 뭔가를 좀 알아야 그림을 볼 수 있으니, 이제는 이런 책이 나올 때가 됐다고 본거죠. 개인적으로는 ‘될 수밖에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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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획력으로 이씨는 지금까지 낸 10여종의 책을 단 한권도 절판되지 않은 스테디셀러로 만들어냈다. 이씨의 책들은 모두 제각기 컨셉과 문체, 구성이 다르다. 이씨처럼 계속 책에 변화를 주는 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씨는 언제나 책의 소재와 주제를 그 시점의 미술책 트렌드에서 벗어나지 않되 새로운 것으로 골라 철저하게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다. 자신의 취향보다는 독자들이 관심가질 만한 것들을 고르는 것이 원칙이다. 한동안 그가 집중적으로 소개한 라파엘 전파가 대표적인 사례다. 때로는 철저하게 타깃 독자들에게만 맞추기도 한다. ‘가정주부’들만을 대상으로 한 미술책 &lt;그림속 여인처럼 살고 싶을 때&gt;가 대표적이다. 
-이씨의 프로기질에는 미술 관련 글이 아니면 절대 쓰지 않는 자기 분야에 대한 순결주의와 자기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파주 헤이리 자택에 틀어박혀 오로지 미술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만을 쓸 뿐이다. 요즘에는 러시아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을 집풀중이다. 트레챠코프 미술관과 에르미타주 등 러시아가 자랑하는 미술관들과 그 소장품을 소개하는 책이 조만간 이씨의 책목록에 이름을 올릴 예정이다.(글 구본준 기자) 
06. 08. 11. 
 
P.S. 따져보니 내가 갖고 있는 그의 책은 &lt;미술로 보는 20세기&gt; 한권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의 러시아 미술관 소개를 나는 손꼽아 기다려보기로 한다(사진은 트레챠코프 미술관의 입구)...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product/0/20/cover150/9788985846066.jpg</url><link>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584606X</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윤두서 머리통 자화상’ 수수께끼 풀렸다 </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30938</link><pubDate>Wed, 09 Aug 2006 22: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30938</guid><description><![CDATA[‘윤두서 머리통 자화상’ 수수께끼 풀렸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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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밑바탕에 색칠도 드러나 “미완성 인물상 아니다” 몸체 그린 방식은 아직 못밝혀<BR><BR>우리 회화사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18세기초 선비 화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lt;자화상&gt;(국보 240호·해남 윤씨 종가 소장)은 그림을 둘러싼 숱한 수수께끼로도 이름높다. 자기 내면을 투시하는 듯한 형형한 눈매, 불꽃처럼 꿈틀거리는 수염, 안면의 핍진한 묘사가 압권인 이 절세의 초상화는 목과 상체는 물론 귀도 없이 머리통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뛰어난 사대부 지식인이던 공재가 당대 유교적 미의식을 정면으로 벗어나면서까지 엽기적 자화상을 그린 까닭은 무엇일가. 왜 이 걸작은 미완성 그림처럼 남았을까.<BR><BR>한국 미술사학계의 첨예한 논란거리였던 공재의 ‘머리통 자화상’에 얽힌 비밀이 최근 상당부분 풀렸다. 결론부터 말하면,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은 지금도 두 귀와 목과 상체의 윤곽이 뚜렷하게 남은, 온전한 그림이었다. 자화상은 윤곽선만 그린 것이 아니라 정밀하게 채색까지 되어 있었다. <!-- 사진 Star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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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End -->단지 이런 부분들이 후대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런 사실은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보존과학실 연구팀이 지난해 용산 박물관 개관 특별전을 위해 윤씨 종가에서 빌려온 액자 형태의 &lt;윤두서 자화상&gt;을 처음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밝혀냈다. 연구팀은 박물관이 최근 펴낸 &lt;미술자료&gt;74호에 ‘윤두서 자화상의 표현기법 및 안료 분석’이란 글을 싣고 상세한 조사결과를 공개했다. 우선 적외선 투시 분석 결과 눈으로 보기 힘든 상체의 옷깃과 도포의 옷 주름 선의 표현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현미경으로 자화상 얼굴을 확대해 본 결과 화가가 생략한 것으로 알려져온 양쪽 귀또한 왜소하지만 붉은 선으로 그린 사실도 밝혀져 학계에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BR><BR><BR clear=all>공재의 자화상에 원래 상체가 그려졌다는 것은 이미 학계에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작고한 미술사가 오주석이 지난 96년 조선총독부 자료인 &lt;조선사료집진속&gt;(1937년 간행)에서 상체 윤곽이 보이는 당시 공재의 자화상 도판을 발굴해 공개한 바 있기 때문이다. 오주석은 “원래 윤두서 자화상은 밑그림 그릴 때 쓰는 유탄(버드나무 숯)으로 화면 위에 상체를 그렸다가 미처 먹선으로 다시 그리지 않은 채 미완성 상태로 전해졌다”고 추정했다. “후대 표구하는 과정에서 표면을 문질러 유탄 자국을 지워버리는 실수를 한 것”이라는 견해였다. 원래 자화상에 있던 공재의 상체 그림이 후대 표구과정에서 실수로 사라져버렸다는 그의 주장은 이후 통설로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번 조사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사라진 몸체를 그린 방식을 놓고 벌어졌던 학계의 논란또한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림 화면 앞 표면에 몸체를 그렸다는 오주석의 주장에 대해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옛 자화상 사진에 보이는 옷주름은 뒷면에 윤곽선을 그린 이른바 배선법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양보없는 논쟁을 벌여왔다. “&lt;조선사료집진속&gt;에 실린 자화상의 사진은 그림 뒤에서 조명을 비추어 찍었기 때문에 뒷면 옷주름선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이라는게 이 교수의 견해다. <BR><BR>그렇다면 박물관 분석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일단 두 주장 가운데 한쪽에 당장 손을 들어주기는 어려워보인다. 박물관쪽은 현존 &lt;자화상&gt;의 화면 앞쪽을 현미경으로 정밀 관찰한 결과 화폭 앞 표면에 어깨 부분 옷깃, 옷주름 등을 그린 듯한 부분적인 선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적외선 사진에서 확인된 것처럼 몸체의 형상을 이루는 일관된 선의 흔적은 확인하지 못했다. 통상 적외선 조사는 안료 등으로 가려진 먹선, 즉 채색화의 밑그림이나 먹글씨를 확인하는데 주로 쓰인다. 선이 연속되도록 최소한의 흔적이 남아있어야 먹의 탄소 입자가 적외선을 흡수해 먹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자화상 전면에 보이는 일부 선의 흔적보다 적외선 촬영 사진에서 나타난 몸체의 윤곽선이 더욱 뚜렷한 만큼 앞 표면의 윤곽선이 적외선 사진의 윤곽선으로 찍혔다고 보기에는 미진한 면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을 놓고 보면 그림 뒷면에서 선을 그려 비쳐보이게 하는 얼개로 몸체를 나타냈다는 이태호 교수의 주장에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단정은 어렵다. 이 그림이 액자로 표구되면서 배접(그림을 보호하기 위해 그림 뒷면에 다른 종이를 포개 덧대는 것)된 탓에 현재 뒷면을 드러내 조사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외선 사진에 나타난 몸체의 선들이 앞면에 그려진 유탄 혹은 먹선의 흔적인지, 그림 뒷면에 그린 윤곽선인지는 그림 뒷면을 제대로 조사한 뒤에야 규명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결론지었다. <BR><BR>하지만 연백과 진사 안료를 써서 그린 양쪽 귀의 윤곽이 현미경 관찰로 얼굴 가장 자리에서 발견되어 공재 윤두서가 귀를 그렸다는 사실은 분명히 입증됐다. X선 촬영을 통한 안료 분석 결과 선으로만 그렸다고 여겼던 자화상의 안면과 몸체, 탕건과 귀부분 등도 화면의 뒷면에 은은하게 채색하는 배채법으로 색칠되어 있었다는 점도 처음으로 밝혀졌다. 논란의 대상인 몸체의 도포는 전체가 흰색으로 은은하게 배채가 되어있었다. 뒷면에 칠한 색감을 투명하게 비치도록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 종이는 젖은 상태의 종이를 여러장 겹쳐 두드려 한장의 종이로 만드는 이른바 도침(搗砧)가공이 이뤄진 종이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BR><BR>결국 미완성처럼 보였던 공재 윤두서의 초상은 사실상 완성품으로 봐도 손색 없는 치밀하고 정교한 인물상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조사에 참여했던 미술부 이수미 학예연구관은 “지워진 줄 알았던 자화상의 상체 부분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는 점과 배채 채색 사실을 확인한 점이 큰 성과”라며 “액자로 표구하면서 배접지가 붙어 배채법을 쓴 몸체의 색감이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상체를 앞 화면에 그렸는지 화면 뒤에 그렸는지의 논란은 앞으로 그림을 다시 표구하기 전까지는 풀리기 어렵겠지만, 지금까지 분석결과로는 뒤에서 그렸을 가능성에 근접한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초본으로 보기에는 완성도가 매우 높아 미완성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lt;윤두서 자화상&gt;은 그의 후손들이 60년대 말려져 있던 것을 펼쳐서 액자에 표구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BR><BR>노형석 기자 nuge@hani.co.kr<BR>]]></description><image><url>http://photo-media.hanmail.net/200608/09/hani/20060809094606.877.0.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30938</link></image></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관광사이트 찾기,</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30303</link><pubDate>Tue, 08 Aug 2006 23: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30303</guid><description><![CDATA[http://www.tourkorea.or.kr/gg/gd/gggd_al1.jsp?pg=0&amp;code=1&amp;code_name=지역별여행지&amp;tag=1&amp;tag_name=서울/경기&amp;total=159
관광사이트 찾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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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알앗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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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가 된다면 가보아야지
여러분도 가보세요,,]]></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지금 평택이 의미하는 것</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17063</link><pubDate>Tue, 18 Jul 2006 22: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17063</guid><description><![CDATA[사회/ No. 167. 지금 평택이 의미하는 것
<BR><BR>&lt;수취인 불명&gt;과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BR><BR>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1년 6월 김기덕 감독의 영화 &lt;수취인불명(Address Unknown)&gt;은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공식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이 영화는 1980년대 말 기지촌을 배경으로 주한 미군과 ‘양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창국(양동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lt;수취인불명&gt;의 첫 장면은 미군기지 맞은편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마을에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고, 미군 공군기지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 소음이 마을의 평온을 깨뜨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마을 입구에는 빨간 버스가 있고, 그곳 편지함에는 수취인불명 도장이 선명하게 찍힌 편지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디에 있을지 모를 사랑을 찾아 편지를 보내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 그 마을엔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사랑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다. <BR><BR>베니스영화제에 초청된 김기덕 감독은 외신기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탈리아 현지의 기자회견에서 “한국 영화를 국제무대에 알릴 수 있어 기쁘다.”면서 “영화 속에서 표현된 주한미군 문제 등과 같이 한국의 역사적 상황을 유럽에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런 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을 묻는 외신기자들의 질문에 김기덕 감독은 “독일을 여행할 때, 뮌헨 역에서 한 남자가 당신은 ‘북한 사람이냐, 남한 사람이냐'라고 물어보길래 남한 사람이라고 대답을 하니까 '오 아메리카'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한국이란 나라가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했고, 많은 유럽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BR><BR>영화가 국제영화제에 초빙되어 치른 유명세에 비해 &lt;수취인불명&gt;의 실제 촬영지가 평택 미군기지 ‘K-6(캠프 험프리)'가 있는 평택 동창리 일대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촬영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 들녘이 있고, 대추리 가는 길녘 작은 능선 뒷편은 모두 미군기지로 현재 166만 평 규모의 부지를 사용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곳은 현재 아파치 공격용 헬기부대와 기갑연대, 항공기동여단, 도감청부대를 비롯해 위성지구국, 미군 범죄자 구치소까지 갖추고 있다. 유사시엔 인근 평택 신항만 시설과 오산 미 공군 비행장 등을 이용할 수 있어 그 자체로도 이미 대포도시의 위용을 갖춘 정예 요새이다. <BR><BR>한반도 전쟁억제 주장과 선제공격전략에 기반한 전략적 유연성<BR><BR>정부와 국방부는 국방부 홈페이지를 통해 주한미군재배치 사업과 그에 따른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문제의 당위성을 크게 “한반도 전쟁억제”와 “국토의 균형발전”이란 두 가지로 홍보해왔다. 일부만 요약해보면 현재 서울 도심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기존의 미군 기지들을 통·폐합해 평택기지를 450만평으로 확장하고, 춘천의 캠프페이지를 비롯한 전국의 미 2사단 소속 기지를 평택 한 곳으로 집중시킨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오는 2008년까지 총16개 기지를 환수하고 춘천의 캠프 페이지 등 3개 기지의 병력과 시설을 분산 배치해 모두 7,000억 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둔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2006년 8월 시행예정인 평택지원특별법에 따라 기지이전과 평택기지 확장조성비용은 전국에 분포한 미군 기지를 매각하여 충당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국방부는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현재 미군기지 이전사업을 반대하고 있는 단체들도 당시에는 용산 미군기지의 이전을 적극 요구하였는데, 이제 와서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행동이며, 결국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지금까지 환경단체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들이 앞장서서 전국 각지의 비어 있는 미군 기지를 반환하라고 요구해온 것은 사실이다. <BR><BR>어째서 이들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에 반대하는 것일까? 그 사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정부와 국방부가 주장하는 확장이전의 당위성들을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과연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전은 전쟁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국토균형발전에 이바지하는가? <BR><BR>지금껏 어떤 항의에도 꿈쩍 않던 주한미군이 갑자기 평택으로 집결하는 까닭이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 주한미군의 공세적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널리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8.8%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미국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국의 안보를 위해 적극적인 선제공격(preventive war)을 감행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고, 그것이 전략적 유연성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불안해하는 국민들에게 용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이나 주한미군 재배치(GPR)가 주한미군의 역할변화(전략적 유연성)와 관계없다고 주장해왔지만, 지난 1월 반기문 장관과 미국의 라이스 장관은 워싱턴에서 공동성명을 통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은 평택기지를 확장해 전 세계 분쟁에 개입하기 위한 거점기지(HUB)로 사용할 계획이다. 미국의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지난 2003년 3월 대북방어는 한국이 부담하고, 미군이 맡고 있던 한국 내 10대 군사임무도 2008년까지 한국군에 이양된다고 밝힌 바 있다. 즉, 앞으로 주둔할 미군은 더 이상 대북전쟁 억지력이 아니라 미국의 세계전략을 추진하고 강제하는 선제공격도 가능한 군사력이다.<BR><BR>국토의 균형발전과 지속불가능한 환경오염<BR><BR>미국은 전세계 50여 개국에 725개의 기지(비밀기지를 제외하고)를 가지고 있다. 50여 개 나라들 가운데 기지를 무기한으로 임대해주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토지 소유자들에게는 기한을 정하여 임대하도록 하고, 임대비용부터 토지용도까지 공개적인 심리절차를 거쳐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도 기지 내 개인 토지를 반환받아 양계장으로 사용하거나 미술관을 개설한 경우도 있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가 먼저 요구하였으므로 그 비용을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의 요구에 앞서 이미 변화된 군사전략과 비용문제로 인해 세계 각지의 미군기지를 조정할 필요성(4개년 국방개혁검토QDR, 2001년 9월)을 제기해왔다. 정부는 반환되는 기지들을 매각해 이전비용을 마련하겠다지만, 실제로 춘천 캠프페이지의 경우 지난해 3월 폐쇄된 이후 1년이 넘도록 소유권, 부지 활용권은 고사하고 부지매입비용 산출작업조차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국방부는 이 땅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주기보다는 자신들이 사용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BR><BR>지난 2000년 주한미군에 의한 한강 독극물(포르말린) 방류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미군측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최근 주한 미군이 사용 중인 기지 22곳에서 실시한 토양조사 결과 암을 유발시키는 벤젠 등 유독성화학물질인 BTEX(벤젠, 톨루엔, 에틸벤젠, 크실렌)가 기준치의 1,830배가 검출되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도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은 “SOFA는 미국에 토지가 미군에게 공여된 당시의 상태대로 복원하도록 요구하지도 않는다.”며 그동안 한국과 미국이 진척시켜 온 환경관련합의를 모두 깨뜨리는 발언을 했다. 더 나아가 주한미군은 이 문제가 “한미동맹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등 공개적인 입장 표명을 통해 우리 정부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만약 미국의 의도대로 된다면 기지이전비용은 고사하고, 앞으로 반환받게 될 기지의 환경오염을 정화하는 데만도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BR><BR>주한미군은 정말 450만 평의 땅이 필요한가? 가끔 여의도 면적의 몇 배라는 표현을 볼 수 있는데, 여의도 총면적 840만㎡를 평으로 환산해보면 254만 평이다. 영등포구 여의도동에는 2006년 4월말 기준으로 31,126명(11,146세대)이 거주하고 있다. 여의도는 국회의사당을 비롯해 오피스 빌딩들이 밀집해 있어 유동인구가 거주 인구보다 훨씬 많다. 그렇다면 2008년까지 평택 미군 기지에 머물게 될 주한미군의 수는 얼마일까? 2008년까지 주한미군은 24,500명으로 감축되고,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추가감군도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다. 고작 24,500명의 주한 미군을 위해 여의도 면적 2배의 땅이 필요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택 미군기지 확장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용산기지이전협정이나 한-미 연합토지관리계획(LPP)협정 개정안의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할 경우”에 해당하므로 재협상의 정당성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의지다.<BR><BR>아무도 받지 않는 편지, 아무도 받지 않는 사랑<BR><BR>3년이 넘는 투쟁 과정 속에서 한·미 두 나라 정부는 단 한 차례도 국민들에게 이 문제를 투명하게 공개하여 논의한 적이 없었다. 평택주민들의 정당한 요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계엄령을 방불케 하는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앞으로는 대화를 말하지만 뒤로는 김지태 대추리 이장 검거에서도 알 수 있듯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는 단지 특별법을 만들고, 땅을 뺏고, 농민들을 감옥에 가두고, 정부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겠다고 협박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의 이런 태도는 우리가 과연 주권국가에 살고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BR><BR>지금 평택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미 많은 이들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이 지닌 문제점을 알고 있으며 평택주민들이 벌이는 투쟁의 의미를 알고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란 미명아래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고, 못 본 척 외면하거나 평택 주민들에 대해 동정을 보내지만 지역 문제에 제3자가 끼어들어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폄훼한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지금 우리들의 침묵은 스스로의 생존과 평화를 방기하고, 평택 주민들을 타자(他者)화한다. 지금 평택 주민들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다. 한반도, 같은 땅에 살고 있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편지,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이 땅의 사랑을 담아 그들은 오늘도 편지를 띄운다. 그 편지의 겉봉에 적힌 주소는 평화를 바라는 우리들의 양심이다. 이 편지를 수취인불명으로 되돌려 보낼 것인가? <BR><BR>출처 : 함께 사는 길, 2006년 7월호(통권157호)<BR>* "지금 평택이 의미하는 것"이란 제목으로 제가 쓴 글입니다. ]]></description></item><item><author>바람돌이</author><category>퍼온 마이 페이퍼</category><title>[퍼온글] 캘리포니아 롤 레시피,,</title><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10839</link><pubDate>Sun, 09 Jul 2006 00: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blog.aladin.co.kr/baramdori/910839</guid><description><![CDATA[준비물,
김밥용김. 밥은 김밥용밥으로 해서 양념을 해둔다, 양념이라야 소금이랑 참기름 ,,넣고싶다면 통깨도,,
그리고 아보카도, 없으면 말구, 맛살. 오이. 치즈. 참치(물을 쪽 빼고) 양파. (살짝 물에 담가서 매운맛을 제거)
날치알(마트에 가면 많다. 색깔별로준비해두어도 좋다) 마요네즈조금. 와사지 조금. 일식집 마늘이랑 생강이것도 마트에서 판다,
이렇게 준비해두고,,
우선 
1 김에 삼분의 이까지 밥을 편다
2 그리고 뒤집어서 밥을 펴지 않은곳에 위에 준비해둔 갖은 재료를 넣는다,
3 그리고 꼭꼭 눌른다,
4 그렇게 만든 누드김밥을 날치알에 퐁당해서 돌돌돌 \굴린다,
5 이쁘게 썰어서 위에 마요네즈랑 와사비를 얹어서 먹는다.,.
와사비는 취양이므로 꼭 넣지 않아도 된다,
그러면 
끝...
<BR><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61847193221152.jpg</url><link>http://blog.aladin.co.kr/baramdori/910839</link></image></item></channel></r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