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상수는 경애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흐트러지고 느슨해진 것이었다. 마치 무언가에 단단히 묶인 사람처럼 최소한의 동작, 최소한의 말, 최소한의 공간 만 차지한 채 사무실에서의 시간을 견디던 경애는 이제 책상 앞에 앉아 바나나나 과자 따위의 간식을 먹으며 여느 회사원들이 그러 듯 일상을 들이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편안해지고 과세화되듯 지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남들처럼 사는 것이어, 수금이 되면, 좋네요, 하고 엄지손가락을 척 추켜올리고, 야근할 일이있으면, 짜증 지대로 아닌가요, 하고, 상수가 외근을 나갔다 오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슬며시 끄곤 했다. 상수가 뭘 하고 있었느냐고 물으면 경애는 언제나 아무것도라 고 대답했다.
"아무것도 안하면 어떡합니까? 일을 해야지."
"일은 늘 하니까 특별한 뭘 한 게 아니라는 거예요."
상수는 그런 경애의 일종의 태업을 반가워하고 있었다. 무엇보 다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언제 책잡혀 해고되지 않을까 걱정을 덜한다는 뜻이었고 상사인 자신을 믿는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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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모든 것이 모두 하나의 결과를 향하고 있다. 물리학은 존재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은 알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과학의 경계 학자들은 토론할 때 ‘SF‘ 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들이 사용하는 SF는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약자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두 단어의 영문 약자였다. 이것은 두 가지 가설에서 출발하고 모두 우주규칙의 본질과 관련된다.

‘저격수 가설‘은 저격수가 과녁에 10센티미터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놓았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과녁의 평면에 2차원 지능의 생물이 살고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들 중 과학자가 자신의 우주를 관찰한 결과 우주에는 10센티미터마다 구멍이 하나씩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했다. 그들은 저격수가 잠깐 흥에 겨워 아무렇게나 한 행위를 자신들 우주의 절대적인 규칙으로 본 것이다.

농장주 가설‘은 공포스러운 색채를 띤다. 한 농장에 칠면조 무리가 있다. 농장주는 매일 오전 11시에 그들에게 먹이를 주었다. 칠면조 중의 과 학자가 이 현상을 꾸준히 관찰한 결과 1년여 동안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매일 오전 11시에는 먹이가 있다‘는 위대한 법칙을 발견 했다고 생각하고는 추수감사절 새벽에 칠면조들에게 이 법칙을 공표한 다. 그러나 그날은 오전 11시가 되어도 먹이가 나타나지 않고 농장주가들어와 그들을 모두 잡아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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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 강의들 성말 잘 들으셨군요. 그렇죠. 그렇습니다. 불교는 무신론입니다. 그러나 무신론자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종교를 논할 수 없고, 근대정신을 논할 수 없어요. 종교가 반드시 하나님이라는 테마를 전제로 할 필요가 없어요. 하나님없어도 인간은 종교생활을 향유할 수 있어요. 인간의 종교적과제는 산적해 있어요."

무아의 종교불교도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합시다. 4법인에 의하면 그 하나님은반드시 "무아" 이어야 합니다. 자기동일성 즉 자성自性이 없는 하나님이어야만 하죠. 이렇게 되면 이론이 매우 복잡해집니다. 사실 무신론이란 황제신론을 진실한 신론으로 바꾸어 놓은 것에 불과하죠. 4법인만큼 우주의 진리를 요약한 법인이 없어요. 간결하게 말씀드리죠.

4법인의 요체는 "무아無我"이 한마디입니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무아의 종교" 입니다. 나도 무아고, 부처도 무아고, 중도 무아고, 절도 무아고, 다르마도 무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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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이렇게 생각해보죠. 선종의 마지막 대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임제의현臨濟義玄(?~867)은 이렇게 말했어요: "야 이놈들아! 불법이란본시 힘쓸 일이 없나니라(불법무용공처佛法無用功處). 단지 평상심으로 무사히 지내면 되나니라(지시평상무사只是平常無事). 너희들이 옷 입고 밥처먹고(착의끽반著衣契飯), 똥 싸고 오줌 누고(아시송뇨局限送尿), 졸리면 자고(곤래즉와困來), 하는 짓이 다 선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임제는 또 말하지요: "이놈들아! 뭘 추구하겠다구, 발바닥이 닳도록사방을 쏴다니고 있는 게냐? 원래 너희들이 구할 수 있는 부처라는 게 없는 것이요(무불가구無佛可求), 성취할 수 있는 도라는 게 없는 것이요(무도가성無道可成), 얻을 수 있는 법이라는 게 없는 것이다(무법가드… 法可得). 진짜 부처는 형이 없고(진불무형眞佛無形), 진짜 도는 체가 없고,
(진도무체眞道無體), 진짜 법은 상이 없나니라(진법무상眞法無相). 이 삼법法은 혼융混融하여 하나로 수렴되어 있거늘 이 사실을 분변하지 못한다면 너는 영원히 미망의 바다를 헤매는 업식중생業識衆生에 불과하도다!"
밥 먹고 똥 싸는 것, 졸리면 자곤 하는 것이 선禪이다? 이 깊은 뜻을 조금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결코 쉽게 넘어가는 일상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임제는 여기서
"일상의 삶" 그 모든 것이 선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는 모든 종교적환상의 실체성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佛도 없고, 도道도 없고,
법法도 없다. 그냥 삶이 있을 뿐이다! 그럼 무엇이냐? 그걸 말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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