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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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편지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아날로그 기적. 일드 <츠바키 문구점>만큼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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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비해
이종수 지음 / 이요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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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담담한 문장, 아름다워 더 처연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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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회사 파티션 너머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누가 볼세라 숨겨가며 이승우를 읽었다.

이승우는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가이지만,

왠지 이승우를 읽을 때는 잘 이해해보자는 마음부터 다지게 되는데

<사랑의 생애>는 그런 긴장 없이 재미나다.

 

이야기는 어느새 사랑에 뒤따르는 '질투'에 이르렀고, 줄리언 반스의 그레이엄 헨드릭이 떠올랐다.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에서 그레이엄 헨드릭은 전직 단역 배우였던 아내의 과거에 집착하면서 질투의 끝장을 보여준다. 그게 다소 과한 측면이 없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게도 되는데, 질투로 폭주하는, <사랑의 생애>에 따르면 질투로 폭주할 수밖에 없었던 그레이엄의 심리를 이제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의심하는 사람은 무엇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의심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기 의심이 오해에서 비롯한 것임이 밝혀져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왜냐하면 의심하는 동안은 몹시 괴롭고 혼란스러우니까)과 자기 의심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마음(왜냐하면 의심하는 자기에 대한 확신, 근거 없이 의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의심하는 동안의 고통과 혼란을 일정 부분 상쇄시켜준다고 믿으니까)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고 동시에 계속해서 의심에 지배당하기를 바란다. 의심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면서 더 의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하려 한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확인되면, 나머지 하나는 확인되지 않는다. 두 가지 모두 확인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믿기에도 믿지 않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있는 법이니까), 두 가지 모두 확인될 수는 없다. 상반된 두 가지 욕구를 동시에 충족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의심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만족이 아니라 의심이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사람의 의심은 확신하는 사람의 확신보다 언제나 확고하다.

 

의심하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말하는 사람의 말을 다르게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무슨 말을 해도 다르게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질투는 연인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 모든 영토를 삼키고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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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이다. 사랑은 누군가에게 홀려서 사랑하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을 시작한다.

숙주는 기생체가 욕망하고 주문하는 것을 욕망하고 주문한다. 자기 욕망이고 자기 주문인 것처럼 욕망하고 주문한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전에는 하지 않거나 할 거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말과 행동을 사랑의 숙주가 된 다음에 하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몸 안에 사랑이 살기 시작한 이상 아무 변화도 생기지 않는 경우는 없다. 그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 다른 사람과 다를 뿐 아니라 사랑하기 전의 자기와도 같지 않다. 같을 수 없다. 사랑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사랑은 문득 당신 속으로 들어오고, 그러면 당신은 도리 없이 사랑을 품은 자가 된다. 사랑과 함께 사랑을 따라 사는 자가 된다. 사랑이 시키고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갖춰서가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올 때 당신은 불가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자격을 갖추고 있어서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당신 속으로 들어와서 당신에게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랑이 들어오기 전에는 누구나 사랑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랑했거나 사랑하고 있는 어떤 사람도 사랑할 만한 자격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했거나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은총이나 구원이 그런 것처럼 사랑은 자격의 문제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이승우의 새 소설이 나왔다.

그런데 이승우가 사랑을 이야기하다니...

반가워서 바로 주문하고, 이제 겨우 몇 장 읽기 시작했는데...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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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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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 보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제 아무리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특별하거나 평범한 사람이라도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파괴적인 순간은 사람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삶 자체가 무너진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훨씬 나았을 텐데, 내 잘못도 아닌데 왜 이렇게 된 거지’라는 생각은 아마 죽을 때까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편혜영의 『홀』은 한순간의 사고로 삶이 무너진 한 남자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긴장감 넘치게 들려준다.

오기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이 부셨다. 강원도로 여행을 가던 길, 심야의 고속도로. 앞차를 확인하지 못하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추락해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아내는 죽었고 자신은 스스로 통제조차도 할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의 사망으로 결혼 당시 오기의 식구는 아내밖에 없었다. 장모는 딸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오기를 정성껏 간호했다. 경찰에게 받은 결혼반지를 갖고 있겠다고 허락을 구하며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을 보며 오기 역시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오기는 집으로 돌아왔다. 무리해서 산 타운하우스, 아내는 이사 오던 날 집 안의 모든 불을 켜놓고 미래를 축복했다. 자랑스럽게 가꾸었던 집의 정원이 엉망이 된 것이다. 화려했던 정원의 식물은 죽거나 시들었으며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았다. 빠졌던 기억이 하나씩 돌아왔다.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집과 아내와의 관계는 기억 속에서 이면을 드러낸다. 화려했던 정원과 아내가 정원 가꾸기에 몰두했던 이유, 불륜에 대한 의심, 한 인간이 속물이 되는 것에 대한 아내의 관찰기, 오기의 삶에는 이미 충분한 홀이 생겨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장모의 변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기를 두렵게 했다. 무기력한 자신에게 주변의 변화는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것이다. 미래를 약속하던 타운하우스가 덩굴식물에 뒤덮인 감옥 같은 족쇄가 되었다. 장모가 파고 있는 마당의 흉물스럽고 큰 구멍은 무얼 위한 것일까. 물고기를 키우기 위한 것일까? 오기는 마침내 그 구멍에 누웠다. 인생은 한순간에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 때문에 생겼을 어두운 구멍,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눈물을 흘렸다.

소설의 이야기가 주는 매력은 이런 것이다. 평범한 가정이 불의의 사고로 무너지고 굳은 의지로 고통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여야 한다. 최소한 나에게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서는 영 매력이 없다. 편혜영의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대형사고로 아내를 잃고 눈밖에 깜빡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자신의 몸, 상황은 끔찍하고 절망스럽다. 하지만 오기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무너졌을 터였다. 절망스러운 현재의 모습과 오기의 이면의 삶의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주며 사고가 아니었어도 무너지고 말았을 인생을 그려냈다. 작위적인 느낌이 없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상황이 두렵다. 그래서 오기는 구덩이 속에 누웠을 때 오히려 편안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p.20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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