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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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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에 관한 짧은 ‘농담’ 하나로 루드빅은 당시 낙관적인 사회주의에 희망을 품고 있던 사회와 대학에서 축출당하고 인생은 송두리째 엉망이 된다. 농담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와 세계의 경직성에 대해 이야기하던 밀란 쿤데라는 <무의미의 축제>에서 그것을 넘어 농담이 거짓말이 되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6월의 어느 날, 파리의 거리를 지나던 알랭은 배꼽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차림의 아가씨들을 보며, 배꼽에 여성의 매력이 집중되어 있다고 보는 남자의 에로티시즘에 대해 생각한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매력인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고 정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배꼽은 어떻게 매력을 정의할 수 있을까. 그때 다르델로는 자신의 몸에서 발견된 의심스러운 증상들이 암 때문이었는지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가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그는 웃음기 가득한 의사의 얼굴을 보고 자신은 더 오래 살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다르델로는 우연히 만난 직장 동료인 라몽에게 자신은 암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 거짓말에 다르델로는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런 이득도 없는 거짓말, 오히려 자신이 중병에 걸렸다는 거짓말에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질까.

자기 거짓말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이상하게도 그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p.19)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거짓말을 한다. 우리 주위만 보아도 흔한 일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이나 학창시절, 군대에 대해서도 실제 자신이 겪은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통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사실은 자기 자신이 겪은 일은 그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히. 실제 부모에게 폭행을 당한 사람이 그에 대해 덧붙여서 거짓말처럼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니다. 부모에게 회초리나 꿀밤을 맞은 사람이 훨씬 부풀려 이야기를 한다. 암에 걸리지 않은 다르델로가 암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자신이 현재 안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도감 때문에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다르델로가 실제로 암에 걸렸고 자신은 암이 아니라는 거짓말을 한들 그의 기분이 나아졌을까? 다르델로의 거짓말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기분마저 좋아질 수 있었다.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말입니다, 존재의 본질이에요. 언제 어디에서나 우리와 함께 있어요. 심지어 아무도 그걸 보려 하지 않는 곳에도, 그러니까 공포 속에도, 참혹한 전투 속에도, 최악의 불행 속에도 말이에요. 그렇게 극적인 상황에서 그걸 인정하려면, 그리고 그걸 무의미라는 이름 그대로 부르려면 대체로 용기가 필요하죠. 하지만 단지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사랑해야 해요,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해요. (p.147)


밀란 쿤데라의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소설 <무의미의 축제>는 그의 첫 번째 이야기인 <농담>을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롭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해서 한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린 것이 첫 이야기라면 농담을 하며 즐거움을 느끼고 그 농담이 거짓말이 되는 세계가 마지막 쿤데라의 세계다. 80이 훌쩍 넘은 노작가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에서 우리가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 농담도 존재에 대한 이야기도, 거짓말도 모두 무의미한 것이다. 삶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삶이 존재가 무의미하고 하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즐거운 것 뿐만이 아니라 힘들고 괴로운 것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애정이 아닌-이다. 그런 이유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노인들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이들은 결국 삶이 무의미하며 보잘 것 없는 축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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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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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변해버렸다. 세상은 더 이상 수줍음을 바라지 않고 머뭇거림을 용납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더 튀어야 살 수 있고, 남들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주목받는다. 세상이 이러니 사람들도 카멜레온처럼 변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대를 겁내지 않는다. 아니 모든 것을 겁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부일 뿐 세상은 여전히 ‘신중함’으로 가득하다. 그 신중함은 여러 방식으로 드러난다. 남들과 비슷해지기 위해 애쓰는 것, 남들과 충돌을 하지 않고 자기가 손해를 감수하는 것, 포기하고 조용히 사는 것. 이승우의 <신중한 사람>은 이런 이야기다. 신중한 사람, 남들에게 ‘싫다’고 하지 못하고 자기에게서 그 이유를 찾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얼핏 신중한 사람이 아니라 우유부단하거나 소심한 사람처럼 들리겠지만 절대 그런 것이 아닌, 무언가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현상을 받아들이고 자기 가슴만 쿵쿵 치는 신중한 사람들.

표제작이기도 한 [신중한 사람]은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꾸는 Y의 이야기다. 그는 아내와 결혼할 때부터 전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단월에 집을 지었다. 하지만 스물 한 살 된 Y의 딸은 시골에서 사는 것을 거부했고 신중했던 Y는 신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자신의 집을 이웃에게 관리를 맡긴 후 해외로 떠난다. 3년이 지난 후 돌아온 집은 아끼던 정원이 엉망이 되었을 뿐 아니라 낯선 남자가 살고 있었다. 자신의 왕국이 무너진 Y는 장팔식을 내쫒지도 못하고 엉망이 된 정원만을 신중하게 복구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무너진다.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그럴 때 먹은 것이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해서 가끔 쿵쿵 소리 나게 가슴을 때렸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신중한 사람 p46)


유는 곧 대도시로 이주할 예정이었다. 회사를 옮기며 일이 잘 풀리지 않던 유에게 외삼촌의 제안은 삶의 돌파구였다. 유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살던 집을 정리했다. 외국의 삶에 대비하기 위해 여관방에 자리를 잡고 비자를 신청했다. 비자 업무가 늦어지고 여관 주인의 일처리 때문에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늦게 비자를 받게 된 유는 떠날 수 있게 되었다고 확신했지만 유에게 집행관이 찾아와 목을 누른다. 예전의 범죄로 감옥에 있다 풀려난 유였지만 행정착오로 형기가 남았다는 것이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여관 주인은 그에게 아무 말도 도와주지 않고 야릇한 미소만 남길 뿐이었다.


이승우의 이번 이야기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며 또한 그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속의 인물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잃는다. 익숙한 곳, 있어야 할 곳을 잃고 주변에서 자신의 자리를 바라만 보는 이야기, 그곳에 가기에는 너무나도 신중해서 가슴만 치고 애처롭게 바라만 보고 있다. 자신의 집을 두고 월세방을 전전하거나 외국의 삶이 눈앞에 있는데 여관방에서 붙잡혀 있는 사람들. 이 사람들은 자신의 신중함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이승우는 집요할 정도로 한계까지 몰아붙인다. 여기에서 필요한 장치는 우유부단한 주인공만이 아니다. 제아무리 신중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울릴만한 상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대화가 통하지 않는 타자다. 대화는커녕 침묵하기까지 하는 타자다. 끔찍한 소통의 부재는 부자간에 칼을 품게 만든다. 이런 세상의 불합리에 소설의 주인공들은 묵묵히 견디며 자신은 신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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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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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이라는 게 있다. 긴 소설이라는 의미의 장편소설이 아니라 손바닥 장(掌) 자를 써서 콩트와 비슷한 아주 짧은 소설을 가리키는 것이다. 도서관에서 보고 그 독특함에 반해 구매했던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당시에 보기 힘든 길이와 유머를 가진 책이었다. 엽편소설이라는 굉장히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이 책의 작가는 성석제였다. 이후 성석제의 글은 꾸준히 찾아 읽게 되었고 이 작가는 특유의 입담과 해학을 가진 작가로 새겨졌다. <투명인간>은 성석제가 새로 들려주는 이야기다.


한강 다리 위에서 서 있는 한 남자. 마치 자살을 하려 하는 것 같지만 아무도 그를 볼 수 없다. 그는 투명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또 다른 투명인간 하나가 알아보고 그에게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투명인간이 되기까지의 그의 삶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의 이름은 김만수, 두메산골 ‘개운리’에서 3남 3녀 중 넷째로 태어난 만수는 어려서부터 ‘큰 머리에 비해 가느다란 몸통에 유난히 길어 보이는 팔다리’와 ‘토끼처럼 커다란 앞니’가 두드러진 볼품없는 외모에, 어리숙하지만 마냥 착하고 순박하기만 하다. 그 시절의 대가족답게 큰형은 타고난 명석함으로 집안의 기대를 받고 있으며 여인네들은 희생을 감수하면서 살아간다. 평범하게 살던 집안은 베트남전에 파병되었던 큰형이 고엽제로 목숨을 잃고 서울에 올라오게 되면서 고난의 삶이 이어진다. 단칸방에서라도 살기 위해 고단한 노동을 하는 누이와 연탄까스를 마시고 반병신이 된 명희, 술꾼이 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의 책임을 지게 된 만수씨. 온갖 고생을 하며 결혼까지 하게 된 만수씨는 작은 행복이나마 누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회사의 도산의 책임까지 떠안게 된 만수씨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그는 삶의 고통 속에서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것이 쉽다고 이야기한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투명인간이 된 삶이지만 그래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성석제의 <투명인간>은 흔한 이야기다. 당연히 투명인간의 된 사람의 이야기가 흔하다는 것이 아니라 김만수씨의 삶이 흔하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이라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법한 이야기로 소설만큼 극적인 삶은 아니었겠지만 서사 자체가 주는 재미는 덜한 편이다. 그렇다면 투명인간이 되는 것은 어떨까. 투명인간은 고전적인 메타포다. 고전적인 메타포를 현실화시킴으로 작가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도 평범해질 수 밖에 없다. 과거의 삶에서나 현재의 삶에서 투명인간처럼 되는 것은 보기 힘든 일도 아니다. 조금 더 고약한 수법의 왕따의 경우 왕따되는 대상을 투명인간처럼 만들어 버린다. 바로 옆에 있어도 없는 것처럼 이야기도 걸지 않고 존재 자체를 무시한다. 사회의 경우 역사와 환경이 개인을 투명인간으로 만든다. 그 잘난 역사 속에서, 다수의 이익 속에서 개인들의 삶은 소수들은 죽거나 죽지 못해 살아 있는 투명인간이 된다. 이런 것이 역사가, 다수가 행하는 왕따, 이지메가 아니고 무엇일까. 투명인간은 어디에나 있다. 성석제는, 성석제니까 이런 개념을 실제로 확장시켜 버렸지만 이런 전개 자체가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투명인간이 되었다고 뭐가 대수일까. 만수씨와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 실제로 투명인간들이 되어 버렸고 실제로 투명인간이 되었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삶의 무게로 투명인간이 되어버린 가족이지만 자신들 말고는 그것을 알아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투명인간이 아니었을 때에도 투명인간과 다름없는 삶을 살았고 투명인간이 된 이후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무시하는 사회에서는, 특히 요즈음 같은 사회에서는 투명인간이 된 소수들이 얼마나 많을까. 어쩌면 나 역시도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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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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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권짜리 대하소설 같은 것들을 보다 보면 짧은 단편소설에 과연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콩트 형식의 장편(掌篇)이나 엽편소설들과는 달리 단편소설은 소설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호흡이 긴 장편과는 달리 짧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반대로 단편을 읽는 재미 또한 이런 것에 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놓치지 않고 읽는 것. 등장인물의 대사나 사소한 배경에도 한눈을 팔 틈이 없다. 이야기 전체를 내 안으로 새겨 넣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런 전제는 잘 쓰안 단편이라야 한다는 것이 먼저겠지만.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단편소설로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할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보면 이런 단편의 미덕이 잘 드러난다. 에드거 앨런 포 뿐 아니라 안톤 체호프나 기 드 모파상도 단편으로 유명한 작가들인데 여기서 소개할 모파상의 경우 독특한 성향을 가진 작가였다. 초창기에는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인 보불전쟁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았다. [비곗덩어리]와 같은 유명한 단편들이 이 보불전쟁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다. 그리고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단면을 다룬 작품들과 시골 생활을 그려낸 작품들인데 당시의 모파상은 휴머니즘이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내기보다는 전쟁이나 삶의 리얼한 모습을 가감 없이 묘사했다. 이후 모파상의 소설은 환상소설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독특한 색채의 작품이 많아졌는데 이는 모파상이 걸린 매독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때 발표한 작품들은 후에 러브크래프트나 웰즈 등의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파상의 작품들은 섬세하고 예리한 관찰력, 진지함과 유머가 함께 존재했던 단편들로 예술적 성취와 영향력을 동시에 가진 작가였다.


모파상 이야기의 특징은 반전에 있다. 추리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치밀한 반전이라기보다는 삶 속에서 흔하게 있을 법한 반전인데 그것이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잘 알려진 [목걸이]만 보아도 그렇다. 파티에 가기 위해 귀부인에게 빌린 목걸이를 잃어버려 10년 동안 이것을 갚기 위해 초라한 삶을 살았지만 부부를 기다리고 있던 진실은 무엇인가. [어느 농장 아가씨 이야기] 역시 독특하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일을 하다 주인과 결혼한 하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 아내가 된 하녀는 남편을 떠날 결심을 하고 자신이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또한 모파상의 이야기에는 사랑에 관한 것이 많다. 사랑이야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기도 한데 모파상의 사랑 이야기는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모파상 특유의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평생을 환멸과 향락 사이에서 살아왔고 매독으로 인해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묘비에 쓰여진 ‘인생의 온갖 것들을 탐했으나 그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는 말처럼 그의 이야기는 그의 삶처럼 극적이지는 않다. 전쟁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 사랑의 이야기마저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야기 말미에 종종 드러나는 반전 역시도 삶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기에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파상이 그려낸 삶은 우리의 그것과 닮아 있다. 시대가 다르고 지역이 달라도 삶은 여전히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가 매독을 앓게 된 후로 써낸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많다. 그동안 모파상의 작품은 유명한 것 위주로 중복출판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데 이 단편집을 통해 최대한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모파상의 나머지 단편들 모두가 소개되길 바라며 모파상과 단편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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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목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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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가 Pastoral 牧歌 - 전원생활이나 목가적인 정서를 주제로 한 시문학. 목가라는 것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한적한 느낌이 드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목가라는 단어에 반어적인 의미가 담긴다면 어떨까. 1960년대는 세계가 격동했던 시기였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격동적인 상황이 많이 펼쳐졌는데 ‘광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전쟁과 반전운동, 젊은 대통령의 당선과 암살, 흑인운동가의 암살, 패권주의와 우드록 페스티벌 등 미국의 당시 상황은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신제국주의 정책의 표방으로 여러 나라에 간섭을 하게 된다. 겉으로 내세운 것은 평화라는 이상이었지만 결국 미국이 걷게 된 길은 패권주의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미국과 소련의 끝없는 냉전과 타국의 공산화를 저지하고 패권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것으로 이어져 쓰디쓴 실패를 겪게 된다.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는 광기와 폭력으로 얼룩진 1960년대 말의 혼돈스러운 미국을 배경으로, 베트남전쟁의 실패와 맞물리며 한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몰락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스위드, 마법처럼 불렸던 이름. 유대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미국인 같았던 그는 스포츠의 영웅이었고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는 전설로 통했고 실제 전설이 되었다. 미스 뉴저지 출신의 미국인 미녀와 결혼한 것이었다. 스위드는 결국 해내었다. 둘 사이에 소중한 딸인 메리가 태어나고 삶의 또 다른 소중한 가치가 된다. 하지만 메리가 자라고 미국인을 향해 저지른 사건으로 자신의 낙원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으로 미국인들에게 폭탄테러를 가한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미국인다웠고 그걸 원했지만 결국은 완전한 미국인이 아니었던 그에게 딸의 행동은 무엇보다도 충격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첫 번째 성공으로 여겼던 아름다운 부인이 바람을 피운 것이다. 스위드의 낙원은 완전히 몰락했고, 이렇게 몰락하고 나서야 스위드는 완전한 미국인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겪었을 분노와 상처와 절망을 함께 똑같이 겪게 되었다. 유대인과 미국인의 이상은 한곳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고 몰락 역시 함께였다.

어느 쪽이 옳은 가치인지는 알 수 없다. 참전용사인 아버지를 비난하는 반전주의자 아들, 피땀흘려 일군 가업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흑인들의 폭동으로 어려워지게 되는 것, 규칙을 준수하는 것과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것. 스위드의 딸 메리는 당시 미국에서 벌어졌던 폭력적인 운동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패권주의로 타국의 전쟁에 개입한 미국과 메리의 폭력적인 운동을 두고 어느 것이 더 옳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으로 온 스위드는 평범하고 목가적인 삶을 꿈꾸었고 결국 이루어 냈지만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은 지옥이 되었고 자신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필립 로스는 『미국의 목가』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도약하게 된다. [기억 속의 낙원][추락][잃어버린 낙원]으로 이어지는 각 장의 제목은 주인공의 몰락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현재도 끊임없는 영토분쟁과 전시에 준하는 상황을 가진 이스라엘을 보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유대인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스위드의 이야기를 쓴 작가를 내세워 그 뒤에 숨으려는 필립 로스에게 언뜻 느껴지는 감정은 유대인의 이상이 내비치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스위드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원했고, 질서를 원했고, 규칙을 원했다. 그에게는 미국의 가치를 반대하는 모든 것이 나락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스위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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