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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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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간대나 장소를 막론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오묘한 것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우리와는 정서가 다른 나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세상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아이들과 캐치볼 ̄특히 미국에서의 부자지간의 캐치볼은 행복한 시절의 추억을 기억하는 스테레오타입처럼 사용되지 않던가 ̄을 꿈꾼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버지가 늙어갈수록, 아이가 자라날수록 어린 시절의 즐겁던 기억은 그저 기억으로만 남게 된다. 아이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거북해한다. 그런 아이가 자라 아버지가 되면 다시 자기 자식과의 캐치볼을 꿈꾼다. 그런 아버지들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신의 어린 자식을 어떤 방식으로든 귀여워했을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럽게 대를 이어지는 유전과도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식들은 나이를 먹어가고 자신이 아버지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그런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부재’는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어린 시절부터였다면 아버지는 부러움의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후라면 그리움의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큰 문제가 없는 가족이었다면 아버지가 없는 아이들은 늘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된다. 오에 겐자부로가 말하는 아버지는 어떤 것일까. 『익사』는 어떤 이야기일까. 장애인인 아들을 둔 아버지, ‘아버지의 부재’가 자신의 문학 세계를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쳤으며, 자신은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말한 오에 겐자부로가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아버지는 어떤 것일까.

소설가인 주인공인 조코 코키토는 어린 시절 홍수가 난 어느 날 아버지가 탄 배가 강에서 뒤집혔지만 아무것도 못하고 있던 자신을 기억하는 과거가 있다. 코키토는 군인들과의 궐기를 준비하던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자신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싶어했다. 오래전 ‘익사소설’이기도 한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소설 재료가 가득하다는 붉은 가죽 트렁크를 어머니에게 보여달라고 하지만 트렁크는커녕 어머니에게 보냈던 소설 초고마저 돌려받지 못하고 분노한 코기는 가족을 희화한 소설을 발표하고 어머니에게 의절당한다. 코키토에게 아들이 태어나고 장애가 있었지만 아들 덕분에 가족의 관계가 회복되지만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지낸다. 어머니가 죽은 후 10년이 지나 트렁크를 보게 된 코키토는 대부분의 자료가 불태워졌고 남아 있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을 알고 익사소설을 포기하게 된다. 이후 극단 혈거인의 우나이코를 만나고 극단과 함께 연극의 새로운 기획을 공동작업을 하게 되고 우나이코의 이야기를 알게 되고 이 일이 자신의 아버지를 탐구하는 것과도 맞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일본의 역사는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굴곡이 많다. 제국의 기치를 내걸고 아시아 여러 국가들을 유린하던 2차대전 전후의 일본은 작중 소설가 코키토의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였다. 이 시절의 일본인들은 제국과 천황을 무엇보다 뿌듯해했을 것이다. 원폭 투하 후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며 전쟁을 끝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코키토의 아버지처럼 천황과 함께 자폭하는 것은 종전에 대한 열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군 장교들의 농담 때문에 아버지가 궐기를 하려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코키토는 절망하지만 오히려 그것이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오에 겐자부로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리고 일본의 역사와 거대한 국가적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중 등장하는 연극배우 우나이코는 큰아버지에게 강간당하고 야스쿠니 신사에서 임신사실을 알게 되는 부분이 등장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위안부 문제와 얽혀 큰 상징적 의미로 다가온다. 오에 겐자부로는 여성에 대한 폭력과 위안부 문제가 전체주의, 국가주의적 나라가 만든 전쟁에서 ‘군인을 위한 여성’이라는 역할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소수일 뿐, 책임을 지고 사죄를 해야 할 국가와 집단은 침묵한다. 어느 나라나 사람들은 모두 다 닮아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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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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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일본 소설을 접하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일이었지만 오래 전에 일본 소설  붐이 처음으로 일어나던 때가 있었다. 90년대 즈음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 『상실의 시대』로 번역된 후였을 것이다. 하루키는 독자들 뿐 아니라 국내의 작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쳐 하루키 붐에 일조했던 기억이 난다. 이때 하루키를 읽고 다른 소설들을 찾던 독자들에게 하루키 옆에 꽂혀 있던 비슷한 이름의 작가를 보고 이것도 한번 읽어 볼까 하고 집어 들었던 것이 대부분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였을 것이다. 무라카미 류. 그의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팬이 되든가, 책을 집어던지든가. 1976년에 데뷔했던 그의 신작을 읽는다.

노년의 이야기, 삶에 불안을 느끼는 사람들, 새로운 인연과 희망으로 다시 한 번 출발을 꿈꾸는 사람들의 이야기. 50대 여성이 이혼을 하고 결혼상담소를 통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꿈꾸다 한참 어린 연하와 섹스를 하고 삶에 대한 희망을 느끼게 되는 「결혼상담소」. 정년퇴직을 하고 집에서 뒹굴거리며 자신에게 무관심한 남편 대신 애완견 ‘보비’라 이름붙이고 에게 사랑을 쏟지만 애완견이 병에 걸려 죽은 후 서먹했던 남편의 다정했던 속마음도 알게 되고, 보비 2세를 계획하는 「펫로스(pet loss)」. 다른 단편들 역시 노년의 불안감에 미래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사람은 변한다. 천재적인 단편을 발표하던 작가가 종교로 귀의하는 경우도 있고, 하드록을 하던 뮤지션이 트로트를 부르는 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언제나 놀라운 것이 사실이다. 『55세부터 헬로라이프』를 접하고 난 느낌은 놀라움을 넘어선 당혹감이었다. 무미건조하고 차갑게 변태적인 묘사를 보여줬던 그의 문장은 책 뒤편의 말처럼 온화함과 희망적인 묘사로 호소한다. 젊음의 욕망을 보여주던 그는 이제 노년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지금이 2015년이고 작가가 데뷔한 것이 1976년이라는 사실이 새삼 느껴진다. 어쩌면 난 과거의 무라카미 류만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인간은 변한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니 작가도 변한 것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본소설=하루키’라는 공식(지금은 미야베 미유키 정도려나)이 떠오르지만, 오히려 무라카미 류가 일본스러운 작가에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과거 작품에서 보여줬던 청춘의 일탈, 욕망 등을 차갑고 무미건조하지만 솔직하게 드러냈고 이것이 바로 당시의 일본 젊은이들의 혼네(속마음)였다. 변태적인 묘사 때문에 꺼리는 독자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이런 염세적이고 자극적이지만 현실적인 부분이 당시의 일본 사회와 일본인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런 변화가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버블 시절의 풍요로움을 몸으로 느꼈던 현재 일본의 노년 세대들은 지금의 일본의 현실은 천국에서 지옥에 떨어진 기분일 것이다. 무라카미 류는 여전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글을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해도 그는 자신들 세대의 이야기를 쓴다. 고통스러운 현실, 그래도 꿈을 꾸고 사는 작가 세대의 사람들. 하지만 개인적으로 작가의 이런 변화는 그다지 달가운 것은 아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전한 이야기를 써 내는 것에 비해 이제 무라카미 류는 과거에 썼던 이야기 같은 것들은 접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다. 이것이 작가의 변화는 이해가 가지만 이것이 혹시 육체적인 나이의 변화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 서글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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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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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인의 입장에서 보면 종교의 갈등처럼 우스우면서 한심스러운 것도 없다. 특히 서구와 중동간의 갈등이 더 그러한데 같은 뿌리를 둔 자식들이 타 지역에서 자라나 서로 다툼을 하고 있는 양상과 다른 것이 뭘까? 게다가 이 다툼은 타 종교에 대한 살육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아무리 종교의 이상과 논리를 들이밀어봐야 그들의 부모인 절대자 입장에선 가당키나 한 소리일까.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라 범죄 집단일 따름이다. 게다가 사악한 인간들은 자신들의 파괴와 약탈과 살해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념에 따른 행동이라며 종교를 내세우는 짓을 서슴지 않고 있으니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들부터 천벌을 내려야 할 것이다. 특히 최근의 과격단체인 IS의 과격한 행동을 보고 있으면 종교의 말을 내뱉는 사탄의 모습이라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집트 출신의 나지브 마흐푸즈(Naguib Mahfouz)는 198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아랍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이 상이 제정된 이후 87년 만에 처음이었다고 하니 문학상 자체가 서구적 시각으로 반영된다는 것과 같은 해에 ‘알카에다’가 수립됐고, 살만 루슈디의 살해 위협 등의 사건이 발생한 터라 작가의 수상에는 정치적인 고려도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작품 『우리 동네 아이들』로 작가 역시 신성 모독 논란에 휩싸였고 실제 테러를 당해 오른손 신경손상을 겪기도 했다.

거친 사막 한 복판에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대저택을 소유하고 부유하게 살아가는 자발라위, 그는 자신의 재산을 관리할 후계자로 장남 이드리스를 제치고 막내아들인 아드함을 지목한다. 이드리스는 아버지의 결정해 반발해 집에서 쫓겨나고 악행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이드리스는  막내인 아드함을 꼬드겨 비밀유언장을 보게 하지만 아버지 자발라위에게 들키게 되고 아드함마저 사막의 한가운데로 쫓겨난다. 아드함은 생계를 위해 노동을 하며 대저택의 삶을 평생 그리워했으나 결국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후 둘의 후손은 사막에 구역을 형성하고 살아가고 마을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나타난다. 자발라위는 자발과 리파아와 까심에게 피지배층의 지도자, 선지자의 역할을 주문하고 그들의 투쟁은 망각이라는 이름 아래 잊히고 또 잊히지만 계속된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종교라는 주제를 알레고리 기법으로 풀어낸 소설이다. 알레고리란 ‘다른 것을 말하기(other speaking)’의 의미를 지닌 그리스어 알레고리아(allegoria)를 어원으로 인물, 행위, 배경 등이 일차적 의미(표면적 의미)와 이차적 의미(이면적 의미)를 모두 가지도록 고안된 이야기이다. 『우리 동네 아이들』의 등장인물들과 이야기들은 것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서와 코란의 선지자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야훼인 자발라위와 에덴동산이기도 한 대저택, 그리고 대저택에서 추방당한 사탄인 이드리스, 사탄의 유혹에 빠진 아담인 아드함의 이야기다. 이후 선지자인 자발, 라피아, 까심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모세, 예수, 모함마드를 상징한다. 그리고 사막의 마을은 우리의 세계를 그대로 상징한다. 세계는 항상 갈등하고 폭력에 휩싸이며 매우 적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 낸다. 자신의 집에서 절대 모습을 보이지 않는 자발라위처럼 신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창조한 세계의 악을 지켜보고만 있으며, 인간은 신의 말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왜곡한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런 것처럼 앞으로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도 신은 그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탄이 가득한 이 세상에 신은 왜 구원의 손길을 보내지 않을까?

 

밤이 지나면 낮이 되듯 불의는 반드시 사라져. 우리는 우리 동네에서 압제가 멸하고 기적과도 같은 날이 훤히 밝아 오는 것을 분명 보게 될 거야. (2권. 3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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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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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간혹 예술가들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순간처럼 묘사되곤 한다. 특히 젊어서 자살한 예술가들이라면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한데, 죽음으로 그 예술가의 작품들이 주목받게 되고 가치가 올라가는 말 그대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어찌 실제의 삶이 그러할까? 예술가이건 평범한 사람이건 간에 자살은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가장 극한의 고통에서 할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이다. 약물이나 술에 취해있지 않고 멀쩡한 상태에서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을까? 자살을 하는 사람은 이미 정신 상태가 무너져 내려 버린 것이다. 죽을 용기로 열심히 살아 보라는 턱도 없는 충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돈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성적 때문에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들은 과연 살아 있을 용기가 없어서 자살을 할까. 그들은 이미 진작에 무너져 있던 것이다. 코맥 맥카시의 『선셋 리미티드The Sunset Limited』는 인간의 최후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자살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삶과 자살에 관한 인류의 운명에 관한 논쟁은 과연 어떤 것일까.

선셋 리미티드(Sunset Limited). LA에서 출발해 뉴올리언스까지 시속 130킬로로 달리는 급행열차다. 한 백인 남자가 자살을 하기 위해 열차로 뛰어들지만 이를 본 흑인 남자가 구해 낸다. 백인 남자는 대학교수로 세상은 불합리하고, 앞으로 더 나아질 전망조차도 없는 무의미한 곳이기에 자살을 결심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를 구해낸 흑인 남자는 목사로 교도소에서 살인을 할 뻔하다가 신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을 종교와 믿음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흑은 자살하려는 백의 마음이 타락했음을, 종교로 그를 구원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하고 백은 자신이 이러한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흑에게 납득시키려 한다. 완전한 죽음을 원하는 백과 그를 구하려는 흑의 논쟁은 좁은 방 안에서 계속 이어진다.

희곡의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작가가 소설이라고 하지만 연극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좁은 공간인 방 하나 뿐인 무대와 둘을 대화로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둘 사이의 논쟁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선셋 리미티드』에서 이야기하는 자살은 실제적이라기보다는 은유적이다. ‘세계가 무의미해서’ 죽으려 하는 ‘백인 교수’와 그를 다시 삶으로 이끌려는 ‘흑인 목사’가 주는 극적인 대비는 죽음 그 자체보다 오히려 더 강렬하다. 백-흑, 지성-종교, 무의미-욕망 등의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구도는 둘의 논쟁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세상은 무가치하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아무리 세상이 고통스럽고 어지러워도 살아 내려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은 흑처럼 늘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백은 이를 전면적으로 부인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삶이 좋다는 흑의 이야기에 세상이 온통 개똥밖에 없다는 죽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백의 대답은 삶과 죽음보다 세상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의 죽음은 이런 것이다. 세상이 무의미해서 죽으려는 것. 하지만 이런 소설 속의 죽음도 현실과 같은 점이 있다면 자살은 설득과 신에 대한 기도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가장 강렬한 대비는 무의미해진 삶을 포기한 지성과 유일신에게 삶을 구하고 설득하는 종교다. 그리고 지성은 종교를 믿지 않기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르고 종교는 그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어둠을 갈망합니다. 죽음을 달라고 기도해요. 진짜 죽음을. 죽은 다음에 내가 살아서 알았던 사람들을 또 만나야 하는 거라면 도무지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건 최악의 공포가 되겠지요. 최악의 절망이.” (p.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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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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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인생의 바닥에서 기어올라 꼭대기까지 도달하는 삶도 있고 범죄자에서 성자가 되는 삶도 있을 것이고 거리의 폭력배에서 작가가 되는 삶도 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의 특징은 대부분의 경우 평온한 사회에서는 어지럽거나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더 부각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평온한 시절이 얼마나 있었을까. 세상엔 늘 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 속에 몸을 던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위험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사회가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사람이 역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교차한다. 하지만 때때로 개인이 시대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드러나기도 한다.

아버지를 동경하며 자랐던 리모노프는 아버지의 군화를 닦으며 전쟁 영웅이 된 자신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일개 하급 관리일 뿐이었고 결국엔 한적한 시골로 쫓겨난다. 리모노프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지만 공장에서 일을 하는 하층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인 생활을 하던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 노숙자의 삶을 살다가 억만장자의 집사에서 쓴 글 덕분에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문단에서 성공했지만 발칸반도의 사병으로 참전하고 러시아로 돌아가 정치활동을 시작하고 투옥되기도 한다. 그는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개떡 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는 온전한 전기라고 하기에는 작가가 실존 인물의 삶을 풀어 가는 방식이 아주 독특하다. 아름답든 추하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동시에 카레르 자신의 인생과 감상이 섞여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전기인 동시에 소설이기도 하다. 에두아르드 베니아미노비치 사벤코다. 레몬을 뜻하는 러시아어 ‘리몬’, 수류탄을 뜻하는 ‘리몬카’에서 따온 그의 이름은 그의 삶을 그대로 대변한다. 레몬과 수류탄을 오가는 삶, 극적인 삶. 레몬과 수류탄은 비슷한 생김새 말고는 모든 부분에서 대척점에 위치한다.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나라는 수류탄의 길을 걸어왔다. 평온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계의 역사는 피로 얼룩져 있다. 러시아, 아니 소련의 역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피를 많이 흘린 역사다. 제정 시절과 세계 대전을 거치고 분리독립을 지나 현재에도 러시아의 역사는 피를 흘린다. 현재의 러시아는 어떠한가.


“공산주의를 복원하고 싶다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공산주의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이것이 현실이다. 러시아의 실세이자 공산주의를 그리워하고 심장이 뜨거운 푸틴은 정적을 암살하고 공산주의를 외치며 부를 축적하고 러시아를 피로 물들인다. 스탈린은 NKVD를 등에 업고 폭력을 통해 권력을 유지했고, 푸틴은 지금 거짓말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리모노프의 인터뷰는 러시아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푸틴이 주는 차를 마시지 말라는 씁쓸한 유머가 있다. 푸틴의 반정부 인사 암살계획을 폭로했던 연방보안국(FSB) 요원이 방사능이 든 차를 마시고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푸틴의 정적이자 푸틴을 비판했던 야당의 보리스 넴초프가 암살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는 푸틴은 역사 속의 사람들에게 리몬이 아닌 리몬카가 되기를 강요한다.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리몬의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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