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경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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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창조한 불멸의 어린 왕자가 되어버린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그 이름에 순수하게 공명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린 왕자』에 얽힌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가쿠다 미쓰요는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연작소설집에서 『어린 왕자』를 각별하게 추억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가 그림이 있는 작은 책을 선물했는데 단숨에 읽고서는 굉장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언젠가 한번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고, 알고 보니 초등학교 2학년 때 병원 침대에서 재미없다고 내던진 책이었다고, 그 책은 바로 중학교 1학년 때 하늘로 돌아간 이모가 선물한 『어린 왕자』였다고, 비로소 “그 책에 쓰인 내용을 이해했을 때 그 이야기를, 이야기의 세계를, 단어 하나하나를 다시 한 번 이모에게 선물 받은 것 같았다”고.

내 추억도 가쿠다 미쓰요와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나는 초등학교 때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이모가 옷장 서랍 안에 고이 넣어둔 책을 발견했었다. 그게 『어린 왕자』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모가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동안 몰래 읽었는데, 그때부터 생텍쥐페리의 아름다운 문장들과 어린 왕자에게 푹 빠졌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절반은 하품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면서 겨우 읽어냈다. 가쿠다 미쓰요처럼 차마 내던지지 못한 것은 다른 읽을거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나도 그 책에 쓰인 내용을 이해할 만큼 성장했을 때에야 비로소 이모가 흔한 책 한 권에 지나지 않는 『어린 왕자』를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생텍쥐페리의 편지를 엿본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토록 말간 동화를 쓴 사람의 진심은 얼마나 투명할까. 원래 편지는 다른 누군가가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편지를 받을 대상만을 염두에 둔 글이다.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편지에 담기는 진심의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어머니’라면 진심임을 의심할 여지가 완벽하게 사라진다. 그렇다.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생텍쥐페리가 열 살 소년일 때부터 마흔넷의 나이에 영원히 하늘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그의 어머니에게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숱하게 써 내려간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은, 자신은 그들을 알지 못하지만 자기 글을 읽고 한마디씩 늘어놓을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서 놓여나, 오직 자신과 가장 친밀한 엄마라는 유일한 독자를 위해 꾸밈없이 쓰인 글이다. 치부조차 생채기 없이 감싸줄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에게 토로하는 감정들은 연인을 향한 사랑의 긴장감, 친구에 대한 감정의 절제, 혹은 그들 모두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고픈 과시욕, 그 어떤 과장과 축소의 여과도 없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딱 그만큼의 감정들을 엄마한테 털어놓는다. 그 때문일까,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중 어느 하나의 별에 사는 어린 왕자였던 생텍쥐페리가 인간적인 욕망과 감정과 고뇌로 이루어진 사람으로 내려앉아 나와 눈 맞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든 것은.

그래서 엄마한테 보내는 생텍쥐페리의 편지들을 읽고 있으면 세상의 여느 자식들과 다를 바 없는 면면들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만다. 여기에서는 어느 별나라의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가 아니라 한 어머니의 아들인 인간 생텍쥐페리로 친밀하게 다가왔던 몇 가지만 기록해 두기로 한다.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엄마한테 보내는 편지들만 (거의) 모아놓았기 때문인지 생텍쥐페리는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엄마에게 상당히 의지한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의 학교생활부터 여러 번의 입시 실패를 거쳐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비행사로 자리 잡기까지 생텍쥐페리는 자기 일상을 시시콜콜 전한다. ‘과묵한 아들, 재잘대는 딸’의 공식에서 벗어난 다정한 ‘딸 같은 아들’이랄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용돈뿐만 아니라 성인으로 경제적인 독립을 도모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아 꽤 자주 돈이 바닥나 곤란한 처지를 토로한다. 이번 편지에서는 곧 구하게 될 직장에 대해 낙관했다가도 다음 편지에서는 냉정한 현실에 부닥쳐 실망스러워하는 모습도 곧잘 보인다. 소설 쓰는 비행사로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으면서 소중한 추억의 한 켠에 자리하기까지 생텍쥐페리도 불만에 가득 차서 변변치 않은 직업들을 전전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비행에 대한 사랑만큼은 확고하여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생텍쥐페리는 늘 고독과 외로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수천 미터 상공으로 날아올라서는 홀로인 고독을 만끽하다가도 지상으로 내려앉아서는 외로움에 사무친다. 그는 편지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입 밖으로 고백한 적은 없지만 엄마를 사랑해요!’라고 뜨겁게 고백하면서 ‘엄마의 편지만큼 제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없어요!’라고 날마다 편지를 보내달라고 어린아이처럼 성마르게 보챈다. 서로의 소식을 알 길이 편지밖에 없어서일까, 그는 엄마의 편지를 보채며 자신의 편지를 쓰는 것으로 지상의 외로움을 달래는 것 같았다. 이미 그동안의 무수한 편지들을 통해 마음으로 수천 번 안아준 엄마를,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비행사로서 마지막 정찰 임무를 나서기 직전에 또다시 마음으로 엄마를 힘껏 안는다. 그리고 이다음에 엄마를 안을 때는 마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장한 두 팔로 직접 엄마의 온기를 느끼며 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는 하늘로 온전히 날아올랐으나 지상으로 무사히 내려앉지는 못했다.

생텍쥐페리의 편지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끝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어른들의 보호 아래 전쟁의 위협을 절감하지 못했던 철부지 소년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쟁의 책임을 몸소 지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는 마지막 편지에서 엄마에게 고통스레 묻는다. “이 시대는 왜 이토록 불행한 걸까요?” 아들을 놓친 엄마는 “주여, 제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셨나요?”라고 울부짖는다. 대중에게는 어린 왕자의 신화를 덧씌워 더욱 신비로운 존재로 가슴에 새긴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이 아들의 생사조차 몰라 원통했을 엄마의 가슴을 날카롭게 베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동안 ‘불가사의한 행방’ 운운하며 그의 죽음을 가볍게 입에 올렸던 일이 죄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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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 - 보통의 독자 버지니아 울프의 또 다른 이야기 보통의 독자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인용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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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충고는 “자신의 본능을 따를 것,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것, 자신의 결론에 이를 것”뿐이라고 말한다. 독서에 대해 이토록 간명하면서도 모든 핵심을 꿰뚫는 정의라니 감탄을 거듭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세 가지뿐인 것이 얼마나 이상적인 독서를 의미하는지도 잘 안다. 그런 경지에 이르려면 보통 이상의 독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일단 ‘본능을 따를 것’. 이것은 자신이 책을 좋아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자신이 무슨 목적으로 책을 읽으려 하는지, 책에 대한 자기 취향이 어떤지 아직 모르는 사람이나 남의 추천이 아니라면 무수한 책들 중에 어떤 책도 선뜻 고르기가 두려운 사람처럼 아직 책의 문을 열지 않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첫 단계이다. 경제력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내 마음이 이끌리는 취향대로 한껏 사들여 빼곡히 채워놓은 책장에서 그때그때의 기분과 변덕에 따라 책을 펼치는 일은 얼마나 황홀한가. 물론 책의 문 안에 들어서면 필연적으로 여기저기에서 얻어듣게 되는 작가의 권위나 작품의 평가 같은 외부적인 영향력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순전히 나의 내재적인 본능에만 따른 선택이라고는 결코 말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어쨌든 책을 선택하면 ‘이성을 사용할 것’. 여기서부터 나는 난관에 부딪힌다. 처음 책장을 펼칠 때부터 내 선택에 대한 기대감으로 잔뜩 고무되어 있으니 콩깍지가 씐 시선에 이성이라는 잣대가 끼어들 여지는 좀처럼 없다. 다만 서슬 퍼런 이성을 마구잡이로 들이댈 때가 있으니 그 같은 호의를 끝내 지속시키지 못하고 냉담하게 팔짱을 끼게 될 경우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이성이라고 말하는 것이 민망해지는데, 이때부터는 급격하게 실망감에 휩싸여 눈에 불을 켜고 트집거리를 찾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버지니아 울프는 또다시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결론에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결론이다. 누구나 책을 읽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것이 작가의 결론인지 나의 결론인지 모호할 때가 많고, 전문가가 아닌 다음에야 내가 읽어낸 만큼의 결론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분명 결론에도 독자의 수준에 따라 ‘질’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보통의 독자, 또 다른 이야기』는 그녀가 충고한 독서의 세 단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매혹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나에게 버지니아 울프를 읽는다는 것은 절반쯤 겨우 읽어 나간 『세월』의 책장에 책갈피를 끼워둔 채 덮어놓고 여러 해가 지나도록 다시 펼쳐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도 『이상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을 두려움 없이, 주저함 없이 펼쳐 든 것은 나의 서가 분류법에 따르면 ‘책에 관한 책’으로 분류되고, 그런 책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개인적인 독서에 대한 나의 지독한 관음증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제대로 읽어내지는 못했어도 ‘버지니아 울프’라는 이름은 별처럼 반짝이니까.

버지니아 울프는 “삼사백 년 전의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다”고 이 책을 시작한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는 그녀의 본능이 시키는 대로 엘리자베스 시대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주로 그들의 산문에 집중했는데, 그녀의 말에 따르면 엘리자베스 시대의 산문에는 아름다움과 불완전함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아직까지 산문이 사람들의 일상을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가령 글 속에서는 하녀도 귀부인처럼 행동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신문 부고조차 “죽음에 대한 명상과 영혼의 불멸성”을 숙고했던 그 시대의 문학 가운데 최대한 화려한 격식과 점잖은 체면을 거두고 진솔한 마음으로 남긴 내밀한 산문들을 찾아내어 행간에 숨어 있는 엘리자베스 시대 사람들의 속마음과 일상과 응접실과 사랑과 교육과 음식을 어루만진다. 그러나 그녀의 말처럼 엘리자베스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한 그 시대가 배경인 글을 읽어도 그 시대의 시선을 가질 수는 없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시선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면서 단지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내가 살아보지 못한 특정 시대를 상상하는 일은 달콤한 기쁨인 것이다.

물론 그나마 이름 정도는 익힌 존 던이나 대니얼 디포, 로렌스 스턴, 토머스 하디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낯선 작가인 데다가 버지니아 울프가 언급하는 작품들도 읽어보지 않아 그녀의 문장들을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녀가 섬세한 시선으로 써내려간 지적인 문장들이 매혹적이라는 사실은 절대 부정할 수는 없다. 게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난해한 것만은 아니라 친절하고 흥미로운 부분들도 가득하다. 도중에 맥락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재미있고, 완독한다면 보람까지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다른 작품을 펼칠 용기를 얻는다. 무엇보다 그녀처럼 읽고 싶다는 강렬한 부러움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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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 혼비의 노래(들) - 닉 혼비 에세이
닉 혼비 지음, 조동섭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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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려고 읽은 책을 뒤적이는 중 박주영의 아스날 입단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당연하게도 닉 혼비 역시 이 소식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닉 혼비는 이제 두 명의 Park을 기억할 것이다. 번번이 자신의 팀 아스날에게 골을 넣으며 굴욕을 맛보여준 박지성과 이제 자기 팀의 공격수가 된 박주영. 축구가 아닌 노래를 주제로 한 에세이에 이렇게 축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뻔하다. 영국(잉글랜드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지만)의 사람들에게 축구와 음악을 빼놓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리버풀을 응원하고 비틀즈를 사랑하거나 맨체스터시티와 오아시스를 함께 사랑하는 곳이다. 이것이 그들의 삶이고 닉 혼비야말로 아스날의 영원한 추종자 아니던가.

작가로 유명해진 닉 혼비이지만 실제 글쓰기는 음악 평론으로 먼저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닉 혼비의 노래(들)』은 평론이 아닌 음악에 대한 에세이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곡과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평범한 구성의 에세이로 다행(?)하게도 축구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피버 피치』에서 축구광으로서의 닉 혼비의 모습을 봤다면 『하이 피델리티』에서는 그의 음악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었고 이 책에서는 아예 음악을 말한다. 음악을 평론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에세이일 뿐이다. 가사가 없는 음악을 싫어하고 흔해 빠진 팝뮤직에 빠져 자꾸 듣게 된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물론이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당연하게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그 음악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다. 섹스의 사운드트랙으로 가장 좋다는 카를로스 산타나의 삼바파티(Samba Pa Ti)를 들어보지 않고 어떻게 그가 하는 이야기에 공감을 할까. 다행히 인터넷 덕에 쉽게 음악을 찾아 들을 수도 있으니 그의 글을 읽기 전에 유튜브에서 한 번쯤 검색해 보시는 것도 좋으리라. 책의 첫 곡인 틴에이지 팬클럽이라는 60년대스러운 이름을 가진 밴드의 노래가 모던록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반 <Born to Run>의 <Thunder road>에 대한 닉 혼비의 이야기는 고해성사에 가깝게 들린다. 마지막 음악인 로스 로보스의 <El Cancionero>는 어떠한가. 음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박스셋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음반 가게와의 인연 이야기 같은 평론가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그저 음악을 듣고 음반을 사는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에 마음을 풀고 공감하며 집중할 수 있다.

닉 혼비의 이야기에 노래들을 더 깊은 감동으로 이끈다는 책 소개의 공치사는 제쳐두고라도 작가 자신의 개인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각 이야기를 읽기 전에 해당되는 노래를 들어본다면 더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고 좋아하던 노래가 등장한다면 훨씬 더 즐거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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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고백 -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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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움베르토 에코라면 기호학자나 철학자보다는 소설가로 더 익숙하다. 『푸코의 추(진자가 아닌)』로 처음 접한 그의 소설은 중세 기독교, 성당기사단, 암호와 기호학 등이 버무려진 지적이고 백과사전식 추리소설로 개인적인 취향과도 맞아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구해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의 정교한 세계관과 지적인 내용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가로서의 에코도 궁금할 터, 할아버지가 다 된 에코의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란 어떤 것일까?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간혹 사건의 현장 같은 간단한 도면이 등장할 때가 있다. 삽화 같은 것들이 아닌 말 그대로 도면의 일부인데 이런 것들을 보다 보면 그야말로 작은 세계 속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코의 경우 『장미의 이름』에서 턱없이 많던 각주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베네딕트 수도원의 도면이었다. “서사는 우주가 탄생하는 사건이며, 그 세계는 최대한 정밀하여 스스로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 자신의 말처럼 에코의 소설 속 세계는 한없이 정교하다. 이런 세계 속에서 독자는 해석의 무한한 확장을 거듭하며 소설가가 구축해 놓은 세계를 덧칠하는 것,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일 것이다.

이처럼 소설 읽기는 해석의 문제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현실과 일치시키려는 사람들이 많다. 에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경험적 시청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악역을 연기한 배우가 실제 생활에서도 욕을 먹는 이유는 이야기의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세계를 현실의 감정이나 경험과 동일시하려는 것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흔한 예로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소설이 대중에게 공개된 이상 수많은 해석들과 오해가 뒤따르게 된다. 또한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현실의 독자에게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소통하지 못한다. 항상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햄릿은 ‘불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불완전한 세계 속에 사는 햄릿을 인정해야만 한다.

소설가로의 인생이 28년밖에 되지 않고 다섯 편의 소설밖에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제목을 지은 에코의 허풍과 함께하는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에코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에코가 만들어 놓은 우주는 발을 들여놓기가 쉽진 않지만 빈틈없는 그의 서사 속에서 헤매다 보면 그의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에코의 세계에 다시 빠져들고 싶은 기분, 다음 소설이 또 기대된다고 하기엔 너무 이른 재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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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학교 - 고양이에게 배우는 마음공부
잇사이 쵸잔시 지음, 김현용 옮김, 이부현 감수 / 안티쿠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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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러운 고양이 그림에 ‘고양이 대학교’라는 책의 제목. 이렇게만 놓고 본다면 어떤 이야기일까 싶다. ‘고양이에게 배우는 마음 공부’라는 걸 보면 예전 고양이 이야기를 모아놓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책 첫머리에 있는 추천의 글을 보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검도에 관한 무도서이기 때문이다. 다만 검도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삼아 쓴 우화이긴 하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노장 사상을 비롯한 동양 철학과 중세 일본에 널리 퍼진 선불교 사상이 어우러져 심오한 철학의 세계까지 제시하고 있다. 『고양이 대학교』는 도가 사상의 계몽서로 에도 시대 사무라이이며 계몽사상가인 잇사이 쵸잔시가 검술의 정도를 가르치고자 쓴 『이나카소우시』 전 10권 중 1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당시에는 비전서로 취급될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쇼켄이라는 검술가의 집에 나타난 큰 쥐를 잡기 위해 주위의 평판이 좋은 고양이를 데려왔으나 쥐를 잡기는커녕 오히려 쥐에게 당할 뿐이었다. 결국 근처의 마을에 뛰어난 고양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데려온 것은 똘똘해 보이지도 않는 늙은 고양이였다. 그런데 큰 쥐가 고양이를 보자마자 위축되어 움직이지도 못해 늙은 고양이가 손쉽게 쥐를 물어 왔다. 이에 젊은 고양이들이 자신들의 수련 과정을 이야기하며 늙은 고양이에게 그 비결을 묻자 정도(正道)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양이 대학교』에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최고가 되려는 젊은 고양이들이 등장한다. 기술을 수련하는 검은 고양이에서 기세를 단련하는 호랑이 무늬 고양이, 그리고 경험이 쌓여 마음을 다스리는 회색털 고양이다. 사실 이 고양이들은 검도는 물론 무술의 수련 단계와 그리 다르지 않다. 처음에 기본적인 기술을 배우고 기세를 단련해 경험을 쌓으면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 그리고 여기서 깨달음을 얻게 되면 자연과 융화되어 무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무술 뿐 아니라 사람의 깨달음도 마찬가지다. 살아오면서 마음을 다스린 후에야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양이 대학교』의 모티브가 되는 이야기인 장자의 달생편 싸움닭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싸움닭을 만들기로 유명한 기성자가 말하길 좋은 싸움닭은 나무로 만든 닭처럼 주위의 어떤 것에서 반응하지 않는 무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 했다.

『고양이 대학교』는 얇은 책이다. 시대 상황이나 소개 등의 내용을 제외하고 책의 실제 내용만이라면 몇 장 정도면 끝이다. 이 얇고 쉬운 우화로 된 책에 담긴 내용은 쉽지 않다. 모든 것을 초월해 무가 된다는 것, 깨달음이란 자신 속에 있는 것을 제대로 찾아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그 경지는 검도와 같은 무술 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가장 찾기 어려운 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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