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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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어 블루 존슨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영감을 받아 불멸의 작품이 탄생했는지 문학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삶 그 한 단면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50명의 작가, 50개의 작품을 여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인생’으로 귀결된다. 작품의 씨앗으로 발아한 영감이 불현듯 뇌리를 강렬하게 스친 문장이든 환영이든 꿈이든, 원래 누군가에게 말로 들려주던 이야기든, 주변의 실존 인물이든, 범죄 세계든, 낯선 곳으로 떠났던 여행이나 모험이든, 생업이든 작가의 인생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학적인 영감이 떠오른 찰나의 순간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순간은 작가가 살아온 삶을 자양분으로 잉태할뿐더러 오로지 그것만으로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를 여는 첫 작품일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 리스트를 작성할 때마다 첫손에 꼽히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만 해도 그렇다. 실리어 블루 존슨은 톨스토이가 깜박 조는 결에 찾아든 환영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가 『안나 카레니나』를 존재케 한 결정적인 영감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시작이었을지 모르지만,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외모를 형상화해 나갈 때 위대한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딸 마리아 하르퉁을 떠올렸으며, 무엇보다 ‘안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애인에게 버림받고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안나 카레니나』의 뼈대를 이룬다. 톨스토이는 기차 자살 사건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을 부인하고 이전에 불륜녀에 대한 소설을 구상해 왔다고 말했지만, ‘안나’의 그림자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적인 영감에 대해서는 ‘환영+실존 인물+범죄 세계’에 두루 걸쳐 이야기돼야 한다.

실리어 블루 존슨의 분류는 한 권의 책을 짜임새 있게 보이도록 하는 편의상 구성일 뿐 무의미하다. 게다가 한 작가의 한 작품당 서너 장 정도로 짧게 할애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데 그칠 뿐 더 이상 깊이 나아가지 못한다. 문학적인 영감에 사로잡힌 작가의 생생한 영혼을 감동적으로 마주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하다. 줄거리 요약인 ‘작품 엿보기’도 본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외따로 뜬금없으니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았을 성싶다. 하지만 이런 결점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도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는 재미있고 흥미롭다. 개인적인 기호를 내세우자면 충분히 매혹적이다. 익히 알려진 에피소드도 꽤 있지만 어디에서 이 책에 담긴 것만큼 많은 작가들의 깨알 같은 사생활을 한꺼번에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가령 잉클링스 문학회에서 C. S. 루이스는 J. R. R. 톨킨이 확신 없이 『호빗』을 쓰고 있을 때 열렬한 찬사를 보냈지만, 톨킨은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사자와 마녀와 옷장)』에 대해 심드렁해했다고 한다. 게다가 루이스가 없는 자리에서 “아무래도 망할 것 같아!”라고 악평했고, 심지어 루이스가 나니아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날에는 아예 문학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친구의 뒷담화를 하는 톨킨이 상상되어 우스웠는데, 이것은 (나는 새롭게 알게 됐지만) 톨킨과 루이스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 꼭 짚고 넘어가는 유명한 일화인 듯하다. 친구의 작품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자리를 피할 것까지 있나 하면서도, 작가의 대단한 자존심을 떠올리면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작품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벙어리처럼 머릿수만 채우는 것도 고역이겠다 싶어진다.


또, 윌리엄 S. 버로스가 마약에 취한 채 앨런 긴스버그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바탕으로 마약중독자 ‘윌리엄 리’의 이야기를 파격적으로 담은 소설 『네이키드 런치』를 쓸 때 잭 케루악이 타자기로 원고를 정서해 줬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잭 케루악은 ‘Naked Lust’라는 원제를 ‘Naked Lunch’로 잘못 읽고서는 오히려 그게 더 신선하다면서 소설의 제목마저 바꿔버렸다!


친구 이야기라면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와 『인 콜드 블러드』를 쓴 트루먼 카포티도 기억에 남는다. 하퍼 리와 트루먼 카포티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나 보다. 하퍼 리의 아버지가 어린 두 아이에게 언더우드 타자기를 선물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또한 트루먼 카포티의 부탁으로 『인 콜드 블러드』를 위한 인터뷰를 하는 데 하퍼 리가 동행하기도 한다. 이성을 초월하여 언더우드 타자기를 두드리며 서로 작가의 길을 응원해 준 우정이라니, 멋지고 부럽다!


편집자(혹은 출판업자)의 이름도 눈에 띈다. 제임스 헨더슨(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보물섬』), 수전 대그널(J. R. R. 톨킨 『호빗』), 할 스미스(윌리엄 포크너 『소음과 격정(음향과 분노)』), 프레드릭 워버그(조지 오웰 『동물농장』), 로베르트 코틀리프(조지프 헬러 『캐치-22』), 맥스웰 퍼킨스(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세르지오 단젤로(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모리스 지로디아(윌리엄 S. 버로스 『네이키드 런치』), 테레사 폰 호호프(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마릴린 말로우(S. E. 힌튼 『아웃사이더』), 조지 브렛(잭 런던 『야성의 부름』), 조지 스미스(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블랑슈 크노프(대실 해밋 『붉은 수확』), 해럴드 래섬(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말콤 코울리(잭 케루악 『길 위에서』,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파스칼 코비치(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조나단 케이프(이언 플레밍 『카지노 로얄』). 대충 다 언급했나 모르겠다. 이들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작가와 작품을 명민한 시선으로 알아보고, 작가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오늘의 내가 그 작품을 지금의 형태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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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제주 애월에서 김석희가 전하는 고향살이의 매력
김석희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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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은 언제나 나를 끌어당기는 소재이지만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는 순전히 ‘김석희’라는 작가의 이름 석 자에 기대어 ‘이 책은 꼭 읽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 이름을 내가 즐겨 읽는 책들의 번역자로 자주 마주치곤 했다. 이후에는 그가 번역한 책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고 싶은 책’의 목록을 늘렸다.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이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데도 김석희 번역가의 고향이 제주였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가 제주로 돌아갔다는 사실에 다시 놀랐다. 그리고 그렇게 놀라는 나 자신이 또 놀라웠다. 책의 판권에는 간단한 학력과 번역서 중심의 짧은 소개글뿐이니 고향이든 무엇이든 그에 관한 개인적인 이야기는 쉽게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가 번역한 책들을 읽으면서 그를 꽤 친밀하게 생각했나 보다.

김석희는 40년 타향살이를 정리하고 제주로 돌아가는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했다. ‘물가에 어린 달’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바닷가 마을 애월에 집터를 마련하고 집을 지었다. 그는 그 과정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아무것도 없는 너른 터에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집이 근사하게 올라간다. 사진만 봐도 부러움의 탄성이 절로 새어 나오는데 그는 얼마나 설레고 흐뭇했을지.

사실 40년 가까운 세월은 겨우 20년 남짓 살았던 고향보다 타향에 더 익숙해지게 하는 시간이다. ‘타향’이라 하기는 해도 그곳을 굳이 ‘고향’과 분리하는 것이 무색할 만큼 긴 시간인 것이다. 그런데도 고향을 떠올리면 그리움과 설렘으로 심장 언저리가 뜨거워지는 것은, 생애 최초로 자신이 존재했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 대상을 공간으로 치면, 고향은 첫사랑인 셈이다. 무엇이든 첫 경험은 쌩하니 잊을 수 없는 법이다. 섬을 벗어나고 싶어 열병을 앓았던 제주 소년이라도.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에는 그렇게 첫사랑에게로 돌아가 이제 소년이 아니라 어른으로 성장기의 추억을 되새기고 익숙한 듯 낯선 친밀감을 새롭게 다져 나가는 고향살이가 담겨 있다. 육지 지인에게 조근조근 써 보낸 편지들(애월 통신)을 묶어 만든 책이라 김석희의 말투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듯하다. 작가가 건네는 육성이 살갑게 다가와서 책장을 넘기는 손이 편안해진다.


지금부터는 여담이다. 지인은 아니지만 독자로 ‘애월 통신’을 읽는 내내 부러움의 눈길을 거두지 못했던 이유는 ‘귀향’ 자체도 내가 바라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그가 도시에서 밀쳐나서 귀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은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이 도시에서 살아온 시간보다 더 길지만, 이 시간들은 곧 반전될 것이다. 그럴수록 어른으로 도시에서 내 삶을 책임지며 살아낸다는 것이 계획보다 녹록지 않은 일임을 절감하게 된다. 일찌감치 예순 무렵의 귀향을 꿈꿨던 김석희처럼 나도 언젠가는 내가 태어나 자란 곳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품고 있지만, 그것이 내 의지로 이루어지지 못할까 봐 두려워진다.


김석희의 귀향이 순조로울 수 있었던 것은 도시와 고향을 가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번역’이라는 일도 한몫했을 것이다(물론 모든 번역가가 ‘번역’만으로 삶의 경제적 기반을 넉넉하게 꾸려가기 힘들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런데 나에게 더욱 강하게 남겨진 것은 ‘번역’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그는 제주외고 학생들에게 번역에 대한 강연을 하면서 “외국어를 잘한다고 번역을 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책 읽는 게 좋고 글을 쓰고 싶거든 그때 번역을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책 읽는 것은 물론 좋고 내가 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는 못해도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을 도저히 버리지 못하겠으면 번역이라는 길도 있다’는 말로 나에게 속살거린다. 어떤 여자는 ‘돈 되는 공부’를 해야 한다면서 내 나이에도 ‘아카데믹한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코웃음 치지만, 사실 나는 내년부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즐기기 위해 그 ‘아카데믹한 공부’를 계획하고 있다. 어쩌면 그 공부가 또 다른 글쓰기로 확장될 수 있지 않을까, 괜히 새로운 희망으로 부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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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책 읽는 시간 - 무엇으로도 위로받지 못할 때
니나 상코비치 지음, 김병화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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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으면서 목적을 가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책이 내 앞에 들이닥친 현실을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내 의지가 발가락 하나라도 꼼지락거리는 행동으로 이어질 때뿐이다. 소박한 범인의 세속적인 일상생활에서 현실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굳이 책을 들추지 않아도 그 정답을 자신은 알고 있다. 의지와 행동이 결여되어 있을 뿐 자신도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구구절절 옳은 소리로 젠체하는 자기 계발과 교훈과 훈계의 허명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평생 그럴 일은 거의 없겠지만 거룩한 대의나 사명을 위해서라면 약빠른 처세술이나 눈 가리고 자랑 식의 성공담 따위가 아니라 나에게 턱없이 부족한 인문학적 공부가 요구될 것이다.

사실 책과 위안의 관계에 대해서도 같은 의구심을 품었다.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슬픔과 절망과 좌절은 어떤 책을 읽어야 위로받고 지독하게 휩싸여버린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자신을 한없이 주저앉히는 감정을 극복하려면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교과서 같은 해답을 이미 머릿속에 이성적으로 떠올려놓아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데 그것을 책으로 또다시 확인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책에서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다. 오로지 책은 내가 처한 현실과 잠시 유리될 수 있도록 즐거운 도피처이기만 하면 되었다. 다음에 읽을 책을 고를 때 첫 기준은, 내 책은 가능한 한 내 현실과 동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책이 피난처만 되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나를 위무해 주기도 한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위안을 받고자 그 책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공교롭게도 그 책을 읽는 동안, 또한 예기치 못하게 스산해진 마음이 책 속의 단어와 문장과 행간에 조응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신경을 잔뜩 곤두세우고서 주문처럼 ‘그래 봤자 불필요한 감정 낭비일 뿐이야’라고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속절없이 거친 마음의 풍랑이 가라앉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책은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의 원인을 조목조목 따져들어 명쾌하게 갈무리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차갑고 딱딱한 내 마음에 온기가 돌아 부드러워졌다.


책을 읽는 동안은 즐거워도 책 밖으로 돌아갈 시간을 언제나 예비하고 있어 책을 덮기만 하면 책을 펼치기 직전의 현실이 고스란히, 때로는 비루함이 더해진 채 내 앞에 다시 뚝 떨어졌다. 참으로 기묘한 경험 이후에도 책이 대신 내 현실을 해결해 주는 일은 없지만, 그 현실에 다시 맞서는 나는 어딘지 모르게 달라져 있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읽는 책마다 전부 그토록 고마운 경험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위로가 궁해져 일부러 위안이 되어줄 만한 책을 읽어도 좀처럼 찾아들지 않던, 그 조응의 마법은 독서에 아무런 사심이 없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깜짝 선물처럼 일어났다. 책의 내용이 내 현실과 딱 들어맞지 않아도 문득 어떤 장면 하나, 풍경 하나, 문장 하나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 있다. 우연히 찾아드는 그 순간, 책은 고단한 일상에 치인 영혼들을 안쓰러워하며 어루만져주는 것이 아닐까.


니나 상코비치는 하루에 한 권, 365일이면 365권을 읽는 독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녀는 그 일 년 동안 다른 무엇보다 책을 우선하여 몰두했다. 그것은 언니를 죽음으로 잃은 상실감과 언니보다 오래 산다는 죄책감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을 삶으로 되돌려놓기 위해 그녀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상실감을 메우고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을 골라 읽은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언니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서 날마다 자신이 순수하게 읽고 싶은 책을 읽었을 뿐이다. 언니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그림자 한 자락 드리우지 않았는데도 그녀는 모든 책의 모든 문장마다 언니를 되살리고, 언니를 데려간 죽음과도 자신을 남겨놓은 삶과도 화해한다. 그리고 언니가 죽는 순간에 언니의 몫까지 살아내느라 멈춰버린 그녀 생의 시간이 다시 똑딱똑딱 시곗바늘을 돌리기 시작한다.


‘책에 관한 책’, 혹은 ‘독서 에세이’ 정도로 가볍게 치부하고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읽기 시작했는데, 죽음의 저편으로 언니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이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짙게 배어 있어 당황했다. 그 통렬한 감정이 너무나 익숙해서 도리어 아팠기 때문이다. 10여 년, 내가 사는 동안 점 셋은 죽었다. 점을 하나씩 포기할 때마다 상실감에 한없이 비어가고 죄책감에 끝없이 꺼져들어도 시간이 제멋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면 나는 다시 살아가고 있었다.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방편으로는 습관적으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책을 펼치면서 일상을 꾸역꾸역 살아내는 것만 한 게 없다. ‘즐거움’ 혹은 ‘도피’ 같은 독서의 혜택은 떠올릴 겨를도 없이 평소처럼 책을 펼치고 그저 글자만 기계적으로 읽었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해체된 글자들이 모여서 유의미한 단어로 조합되고 문장을 이루고 이야기를 만들어 고통, 상실감, 죄책감을 덜지 않고도 내 생의 시간은 흘러간다고 속삭였나 보다. 그렇게 ‘로애(怒哀)’뿐만 아니라 ‘희락(喜樂)’까지 산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감정들에 골고루 휩싸여 염치없이 살아갈 궁리를 하게 된다고 말이다. 나는 시간뿐만 아니라 책에도 빚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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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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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미국 문학의 대가라는 위대한 명예를 얻기 한참 이전,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면서 이제 막 소설가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젊은 날의 이야기이다. 이 회고록을 써 내려간 시기는 헤밍웨이가 1961년에 엽총 오발 혹은 자살로 추정되는 불시의 사고로 죽기 4년 전쯤인 1957년 가을부터 1년 전쯤인 1960년 봄까지이다. 이 집필 시기에 자꾸만 눈길이 머무는 것은 만년에 헤밍웨이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걸작으로 1953년에는 퓰리처상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거머쥐며 작가의 명성에서도, 경제적인 부(富)에서도 남부러울 것 없이 누렸던 헤밍웨이가 생애의 마지막 시절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가장 행복했다고 절절하게 떠올린 시간이 하필이면 가장 가난했던 시절이라니.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기 이전에 나는 인생의 굴곡과 거리가 먼 삶을 대체로 편안하게, 비교적 풍족하게 누려왔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별 고비 없이 살아가리라고 순진하게 믿었지만, 자기 보호막 정도는 스스로 쳐야 하는 단계의 인생에 이르면 삶은 언제나 예측 불허.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은 이후에 나는 처음으로 굴곡이나 고비, 혹은 역경 같은 단어들로 표현되는 쓴맛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고 끝 장을 덮은 때와 맞물렸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작가의 풋내기 시절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실비아 비치와의 교류 등)에만 한가롭게 빠져 있었는데, 헤밍웨이가 죽음을 맞으면서 자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가장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했다는 사실에 이제 나는 내 희망을 걸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도 조금 가난해진 오늘을 행복하게 추억할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헤밍웨이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쓴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권유로 프랑스 파리에서 문학 수업을 받기로 한다. 그는 갓 결혼한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을 데리고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해외 통신원으로 1921년 말부터 1926년까지 5년여 동안 파리에 머문다. 토론토 신문사의 원고료에 기대어 생활할 때도 작업실을 덥힐 장작 한 단을 선뜻 사기가 부담스러웠으며, 독서광이었지만 책 한 권조차 마음 내키는 대로 구입할 여력이 없어서 실비아 비치의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서 빌려 읽었다(심지어 도서 대여를 위한 등록보증금마저 수중에 없었다!). 자기 글에 집중하기 위해 기사 원고료를 내팽개쳤을 때는 약간의 식비를 아끼려고 점심에 초대받아 멋진 식사를 했다고 아내에게 거짓 너스레를 떨었다. 헤밍웨이가 청춘을 추억하는 문장들에는 그 시절의 궁기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하지만 그 궁기는 과거의 무수한 사실들 중 하나를 무심히 드러낼 뿐 그로 인해 비참하거나 남루하거나 좌절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가난해도 사랑하는 첫 아내 해들리와의 신혼 생활은 조금도 구차하지 않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헤밍웨이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가난 때문에 징징거리지도, 질척거리지도 않고 서로에게 유쾌하고 산뜻하며 자족한다. 센 강변을 따라 함께 산책하면서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 들러 책을 빌리고, 없는 돈으로 경마에 운을 시험했다가 몽땅 날려도 다음에 둘 중 누군가 속내를 비치면 또다시 선뜻 따라나서고, 어쩌다가 경마에서 행운을 잡으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기고, 엉뚱하게도 부부가 똑같은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남편은 기르고 아내는 자른 뒤 파리에서 유행하는 머리 모양이라고 눙친다. 사실 그리 대단하고 인상적인 추억 거리랄 것은 없는데도 그토록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그 사소한 행복의 빛이 이상하리만치 찬란하게 아른거린다.


무엇보다 가난해도 훌륭한 글과 문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흔들리지 않고 작품을 성실하게 구축해 나가는 열정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헤밍웨이의 집필 작업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행해진다. 오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한 대목을 완성하기 전에는 중간에 일을 멈추지 않았고, 또 다음번에 쓸 내용을 미리 생각해 둔 다음에야 그날 일을 끝냈으며”, 오후에는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헤밍웨이는 글쓰기에 진척이 없으면 ‘수사적인 표현, 과장된 문장, 미사여구’를 모두 지우고 “가장 진실한 문장”을 집요하게 찾아들었다. 글로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생략”을 통해 남겨진 내용을 강화하고 독자에게 단순한 이해 이상의 깊은 울림을 주려고 애썼다. 또한 헤밍웨이는 장편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조금씩 긴 글을 쓰는 훈련을 꾸준히 했다. 모든 작품들이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명실상부하게 미국, 아니 세계 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새긴 대작가인 헤밍웨이가 자기 재능을 과신하지 않고 부단히 연습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후대 문학가들이 선망하고 연구하는,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건조하며 강인한 ‘하드보일드’의 정제된 문체가 천재성으로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지독한 가난은 헤밍웨이에게서 아무것도 퇴색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이루어진 말년에 헤밍웨이는 가난 속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파리 시절로 끊임없이 돌아가고 싶어 한다. 가난했으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청춘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의 청춘’은 언제나 ‘지금의 나’보다 과거에 존재한다. 훗날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서 ‘나의 청춘’이라 기억할 것이다. 가난은 헤밍웨이에게서 그러했던 것처럼 내게서도 아무것도 퇴색시키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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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여행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묶여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좀더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평범한 사람의 여행과 여행자의 여행이다. 평범한 사람의 여행은 우리에게 친근한 그것이다. 삶에 쫓기다가 겨우 며칠 동안의 휴가를 얻어 지친 육신과 마음을 쉬려고 계획하는 것, 그래서 결국 유명하거나 경치 좋은 곳이거나 가끔은 꼭 가보고 싶던 곳을 찾아 열심히 사진 찍고 먹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의 평범한 여행이다. 여행자의 여행은 조금 더 원시적이다. 때로는 충동적이거나 오지 같은 사람들이 전혀 찾지 않을 곳을 향하기도 한다. 그저 세계를 방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여행자의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여행의 좋고 나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무언가 볼만한 것들을 찾을 것이고 맛있는 것을 찾을 것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여행을 떠날 테니까. 여행자의 여행은 그 자체가 삶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삶을 이어가는 것이고 그 기록은 여행자의 삶이 녹아 있는 직접적이면서 호소력 짙은 목소리이기도 하다. 제이 그리피스의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역시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유나 통찰에 대한 담론에 가깝다.

제이 그리피스는 원시의 자유를 찾아 지도 바깥으로 모험을 떠난다는 책 소개는 저자를 돋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지도의 여백에 탐닉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지도에도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은 원시의 자연―땅, 얼음, 물, 불, 공기, 정신―을 방랑하며 인간의 정신을 탐색하고 그런 인간이 자연에 저지를 파괴의 현장을 증언한다. 제이 그리피스는 “인간의 영혼은 야생성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형태”라고 말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더불어 사는 인간―원시부족 등―은 자연의 일부로 인정하지만 지식(종교)을 가진 인간에 대한 분노는 날카롭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자연에 맞서려는 인간은 자연을 황무지(도시)로 바꾸는 야만적인 존재일 뿐이라 고발한다.

현대의 삶 속에서 제이 그리피스의 책은 이상론(理想論)에 가깝다. 머리로는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지만 몸은 그럴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훼손하며 문명에 매인 채 살아왔고 살아갈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서 어떻게 아마존의 삶을 강요할 수 있을까. 문명의 지식이 원시 자연의 삶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반대도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테두리 속의 삶이다. 사람들은 기껏해야 전원의 삶을 꿈꿀 뿐이고 이것도 원시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지식과 종교에 의해 야생성을 거세당해 클로로포름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그곳의 통조림 같은 삶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자연을 파괴해 조금 더 안락한 삶을 누리려는 인간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야생성은 어쩌면 머릿속밖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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