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젤
이시다 이라 지음, 인단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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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은 독특하다. 살해당한 남성이 화자가 되어 자신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스토리, 그리고 사랑, 미스테리. 다양한 소재로 폭넓은 작품세계를 선보인 이시다 이라지만, <엔젤>의 강렬함은 급을 달리한다.

참혹한 모습으로 은밀히 매장되는 시체를 누군가 보고 있다. 경악한다. 혼란에 빠진다.  눈앞의 시체는 바로 자기 자신, 가케이 준이치이다. 그럼 시체를 보고 있는 '나'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는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 유령이 되어 자신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준이치. 어느 정도 안정을 찿은 그는 '빛의 소용돌이'에 따라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게 된다.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던 순간, 학창시절 첫경험, 아버지와의 갈등등. 빛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긴 준이치의 플래시벡은 p.80까지 이어진다. 인상적이다. 어린시절부터 최근까지 삶의 괘적을 돌아보니, (저자는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성장소설의 특유의 분위기도 만끽할 수 있었다.

플래시벡에서 돌아온 그는 한가지 사실을 알아챈다. 마지막 플래시벡의 시점이 96년도, 현재가 98년도, 그의 기억엔 2년간의 공백이 있었던 것이다. 준이치는 2년이란 기억의 공백과 죽음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 조사에 나선다.

제목인 '엔젤'은 의미가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 벤처 캐피탈로 성공을 거둔 준이치는 투자회사 '엔젤펀드'를 설립할 정도로 엔젤이란 단어에 애착을 가진다. '경영학에서 말하는 엔젤이란 하얀 날개를 단 신의 사자가 아니라 벤처 기업의 창업 시에 시동을 위한 자금, 즉 시드 머니를 제공하고 창업을 원조하는 개인 투자가를 일컫는다.'(p.70,71)고 하는데, <엔젤>의 '엔젤'은 경영학적 의미와 일반적 의미가 중의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이후 이야기는 유령이 된 준이치의 진실추적과정이다. 마치 '투명인간 탐정의 사건해결기' 같은. 준이치의 아킬레스건은 유령이라 물리적인 힘을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곧 전기다루는 기술(p.104), 음성전달 기술, 현시 기술등을 익히고, 자신의 사랑, 친구, 충격적 죽음의 진실에 한걸음씩 다가간다.

<엔젤>은 분명 인상적이고 흥미진진하다. 그래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 그건 '후미오와 준이치의 사랑이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준이치가 2년의 기억을 상실한 설정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이들의 사랑을 '뒤늦은 플래시백' 형식으로 부각시켜 주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후미오와 준이치의 애정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독자에게-결국은 등장인물에 몰입하지 못하는-이들의 사랑은 지나치게 가식적이다. 특히, 후미오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녀가 정말 준이치의 죽음을 전혀 몰랐을까? 정말 준이치를 사랑하긴 한걸까? '모든 것을 연기중'인 여배우를 보는 듯했다.

흥미롭고, 독특한 미스테리 <엔젤>. 기존 이시다 이라는 모두 잊어라. <엔젤>을 읽어라. 이시다 이라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시다 이라를 다시 읽게 될 것이다.


* 자신의 출생장면을 바라보는 p.16~21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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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전략 - Reading & Writing
정희모.이재성 지음 / 들녘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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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이다.

<글쓰기의 전략>은 글쓰기 전반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너무 교과적이고, 틀에 밖힌 이야기뿐이다. 이 책의 주독자층을 누구로 설정했는가? 고등학생을 타킷으로 한 논술교본, 작문교과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주의 깊게 읽었던 '바른 문장 쓰는 법'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한 부분을 보자. 잘못된 연결어미를 사용한 예로 '철수는 우리반 반장이지만, 우리 학교 학생회장이다' 같은 것을 들고 설명을 하는데, 뻔하다. 저런건 중학생도 안다.

<글쓰기의 전략>이 안 좋은 책이란 말은 아니다. 글쓰기 실력이 변변찮은 내가 이런 말을 하기도 조심스럽다. 비극은 내가 이 책을 엄청, 무지무지, 정말 기대 했다는 점이다. 기대와 실망은 꼭 비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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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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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탁환의 작품은 <열하광인>이 처음이다. 유명세에 비하면 너무 늦게 접한 셈이다. 사실 '한국형 팩션의 신기원'따위의 수식어가 부담스러웠다. 역사와 결합된 팩션을 좋아하지만 '잠깐 스쳐지나가는 유명에 지나지 않나'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열하광인>을 읽은 지금, 작가 김탁환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그는 자기만의 영역을 확실히 구축한 듯 하다.

<열하광인>은 백탑파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이다. 백탑파란, 영정조시대 활동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등 북학을 중시하던 실학자들을 말한다. 여러 작품에서 재조명 받고 있는 그들이라 꽤 친숙하다.

화자는 의금부 도사이자 표창의 명부인 '이명방'. 그는 백탑파 일원이자 왕실종친으로 정조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갑작스런 정조의 부름에 입궐한 그는 백탑파 서생들의 움직임을 보고하라는 칙명을 받고 갈등한다. 그럼 왜 정조는 이런 명을 내린 것일까? 정조의 부름을 받아 사회문화적으로 큰 역할을 했던 백탑파 서생들이지만 정조는 이들과 점점 거리를 둔다. 특히 '열하'나 '매설'같은 글에 대한 입장차는 뭐낙 깊어 결국 이들에게 '자송문'까지 쓰게 한다.

그러던 중, '열하'를 몰래 읽는 모임의 일원인 열하광인들이 자객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조명수, 덕천스님등이 죽음을 당한다. 사건은 이상하게 전개되어 이명방이 누명을 쓰고 의심받는 상황이 전개된다. 이명방은 과연 누명을 벗을 수 있을런지?

<열하광인>은 흥미로운 역사추리소설이다. 왜 김탁환 작가에 열광하는지 그 열광의 의미를 이해했다. 특히 열하광인들을 둘러싼 미스테리한 죽음, 이명방에게 쏟아지는 의혹과 누명등은 인상적이었다. 도대체 열하광인을 노리는 배후세력은 누구란 말인가?

이명방과 은주의 사랑은 또다른 흥미였다. 열하광인중 은주 같은 여성이 있다는 것 자체부터, '마방진'에 몰두하는 모습등등, 분명 저자의 창작이 분명한 은주는 이야기의 생동감을 넣어주었다. 또한 이야기 전체에 걸쳐, 처음 듣는 옛스런 단어들이 많이 사용되는데, 몰랐던 단어들도 알게 되고 좋았다. 이야기의 깊이를 더해 주었다.

<열하광인>, 한국형 팩션의 힘을 보여주었다. 스토리의 탄탄함과 흥미진진함, 묻어나는 역사적 진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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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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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오쿠다 히데오다! <마돈나>를 읽으며 골칫거리를 잠시나마 날려버릴 수 있었다. 복잡한 머리가 개운해졌다.

<마돈나>는 다섯편의 단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간 선보였던 작품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중년남성들의 심리상태와 일상이 흥미롭게 묘사된 것이 인상적이다.

표제작인 '마돈나'는 영업3과 과장 '오기노 하루히코'가 신참 부하직원 '구라타 도모미'에게 묘한 감정을 품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부하직원에서 연정을 품었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비도덕적으로 보이지만, 오쿠다 히데오는 특유의 유머로 이야기 이끈다. 

마흔두살의 오기노 하루히코. 그는 이상한 습관이 있다. 상대(직장 부하 여직원)에게 호감이 생긴 순간부터 상상속의 연애를 즐기는 습관.(p.10) 지금까지 세 번 부하 여직원을 좋아했던 그에게 네번째 그녀가 찿아 온다. 바로 우리의 마돈나, '구라타 도모미'. 그녀는 차분하고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여자였다. 거의 20년 가까운 나이차지만, 하루히코는 도모미를 짝사랑한다.

하루히코의 짝사랑이 직책을 이용한 강요내지 이상한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변태 직장남성의 여직원 농락기'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저런 것이 책으로 나올리 없지 않은가? 저자는 42세 과장과 부하직원 야마구치를 연적으로 설정해 웃음을 유발시킨다. 서로가 도모미를 쟁취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을 다한다. 이런 갈등은 결국 주먹다짐으로 까지 폭발하는데,(p.69이하) 갈등 후 이들의 모습이 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눈물겨운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모미는 자기 일에만 열중할 뿐이다. 과연 이들의 '이상한' 관계는 어떻게 될런지?

<마돈나>는 재밌고 유쾌한 책이다. 복잡한 가슴을 툭툭 털어버리고 싶다면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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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 하 - 미야베 월드 제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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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멍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과연, <외딴집>을 단순히 '미스테리'라고 할 수 있을까? 미스테리란 장르에 국한시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외딴집>은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휴먼 드라마'이며, '마루미 번'을 둘러싼 감동과 미스테리의 대서사시이다. '바보의 호'가 '보석의 호'로 거듭나는 부분과 '호'와 '우사'의 마지막 해후 장면...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외딴집>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테리'이다. <화차>나 <이유> 같은 '사회파 추리소설'의 강렬함을 기억하기에 다소 의외였다. 하지만 미야베 미유키가 전부터 꾸준히 시대 미스테리를 써 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왜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미야베 월드 제2막'이라는 소개글은 공연한 문구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미야베 미유키의 시대 미스테리를 접하게 된 것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북쪽으로 세토 내해를 면해 있고, 남쪽으로 산이 둘러싸여 있는 '마루미 번藩'이다. '호'라는 아이가 마루미 번으로 오게 된다. 요로즈야가家 도련님의 사통 결과로 태어나, 내심 죽어버렸으면 했지만 결국 살아남은 아이. 이름조차 바보(일본어로 '아호')라는 뜻의 호. 이 곳까지 쫓겨 온 것이다.

'호'는 괴롭힘과 냉대에 익숙해 버린 순진하고 불쌍한 아이다. 일을 하지 않았기에 밥을 먹어서는 안된다고 믿는 안타까울 정도로 순진한 호. 하지만 호를 가엾게 여긴 사람들이 있었다. 이노우에가家의 고토에, 견습 히키테(일종의 경찰?) 우사. 우사는 히키테를 꿈꾸는 발랄한 아가씨다. '도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활달한 우사는 호를 맡아 자매처럼 뜨거운 정을 나눈다.

난 <외딴집>의 사실상의 주인공이 '우사'라고 생각한다. 바보스럽게 순진한데다 어린 '호'는 설정상 한계로 이야기를 이끌어갈 힘이 없다. 극히 미미하다. 또한 뒤에 언급될 '가가' 역시 끝부분에 등장해 전체적인 비중에서 약하다. 우사가 좌충우돌 이야기를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조용하던 마루미 번은 '가가'라는 인물의 유배소식으로 소란스러워 진다. 가가는 아내와 자식을 독살해 '살아있는 악령, 마귀'등으로 불리는 미스테리한 인물. 가가의 유배를 즈음해서 이상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사람들은 가가의 저주라고 떠들어 댄다. 가가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다, 하권에 가서야 모습을 드러내는데(하권 p.61) 이어지는 가가와 호의 교감은 인상적이었다.

마루미 번에 벌어지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충격적인 사건들과 가슴아픈 결말도...'꼭 읽어보라는 말'외에 무슨 말을 더 해야할지? '미야베 월드 제2막'을 연 시대 미스테리의 걸작. 강력 추천한다.


* 진실을 목격한 호.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호가 잘못 본 것이라며 호를 몰어 붙인다. 전체라는 미명하에 희생되어 버린 소수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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