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사랑
텐도 아라타 지음, 박태규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0월
절판


"누구든지, 자기 아이를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한번쯤은 해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중략) "그러니까, 말하자면 아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역설적인 표현이라고나 할까요. 애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요. 만에 하나라도 사랑하는 아이를 잃게 된다면, 하는 생각에 불안해지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조금이라도 마음에 담아두기 시작하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불안은 점점 더 커지고 그 중압감에 시달리게 되죠. 예를 들면, 아이를 씻기다 잘못해서 물에 빠뜨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불안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런 거예요. 그 두려움을 견디다 못해 아이 엄마는 자기가 곧 아이를 죽일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남에게 하게 되는데, 그러한 언어적 표출은 당사자가 느끼고 있는 중압감을 다소나마 해소시켜주지요. 아내가 불안감에 못 이겨 그러한 소리를 입 밖에 냈을 때, 남편이 아무 일도 없을 것라며 웃음으로 위로한다면 아이 엄마의 불안은 그만큼 줄어들죠.(이어짐)-42,43쪽

또 친정 식구나 친구들, 집 근처의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누구든지 비슷한 생각을 품을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당사자의 마음은 더욱 편안해질 거예요. 하지만 요새는 다들 핵가족인데다 이웃과의 왕래도 거의 없잖아요. 따라서 젊은 부부들은 모든 문제를 둘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고 또 그러다 보면 가끔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죠. 나츠미 엄마는 아이의 아토피를 포함해서 육아에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좋아요. 아이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생명력을 존중하며 조금 멀리서 아이를 돌보는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어요. 남편 분도 불안에 시달리다 못해 툭 하고 내뱉는 말에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 엄마를 신뢰해주는 겁니다. 아시겠죠?"-42,43쪽

"생각해봐. 무엇보다도 소중한 내 자식이야. 내 뱃속에서 키워 있는 힘을 다해 낳은 아이를 내 손으로 죽일 것 같다고 하는 공포가 어떤 건지 당신 알기나 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알기나 하냐고? 나는 그런 어려움을 혼자서 이겨내야 했어. 가장 의지하고 싶었던 당신은 반대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지. 그때의 내 아픔을 당신이 알기나 해?" (중략) "당신이 너무 놀란 나머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워했던 걸 이애 못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당신은 결국, 스스로가 원하는 이상적인 삶이 흐트러지는 게 싫었던 것뿐이야!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이, 지금 당장의 평온이 깨지는 게 두려웠던 거야. 나나 나츠미도 어쩌면 당신이 행복이라고 이름 지어놓은 퍼즐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은 건지도 몰라."-62,63쪽

"자 그럼, 저는 지금 당신 눈앞에 있습니까?" (중략) "정말로 그럴까요? 저라는 존재는, 어쩌면 당신의 뇌가 인지하고 있는 환상일지도 몰라요. 당신의 뇌, 그중에서도 특히 어느 한 부분이 제가 이곳에 있는 것을 감지해, 다른 부분에 신호를 보내기 때문에 제가 이곳에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거예요. 반대로 만약 당신의 뇌가 어떤 사정으로 저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당신에게 저라고 하는 존재는 사라지게 되지요. 제가 아무리 저의 존재를 주장한다 해도 당신의 뇌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저라고 하는 인간은 적어도 당신에게는 존재 하지 않게 되는 거죠."-131,132쪽

"뇌의 일부를 다친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는 그리 드물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하지 않은 일을 했다고 하기도 하고 없는 물건을 있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고요. 뇌가 인식하고 있는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져도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어쩌면 원래부터 '실제'라고 하는 말은 무의미한 건지도 모르죠. 뇌를 다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존재가 애매해지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과거나 가족을 만들어내 그것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요."-132쪽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내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두려움은 물론 위험도 따르게 마련이야. 입원하기 전에는 그 사실을 몰랐어.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나 스스로를 '어쩔 수 없는 놈'이라고, '소심한 인간'이라고 책망했었지. 그러나 지금은 불안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 물론 아직도 이해 못 하는 사람이 더 많을거야.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것은 단순히 한 지붕 밑에서 사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드러내 보이는 것을 의미하니까. 두렵고 불안한 게 당연해. 하지만 그래도 같이 있고 싶어. 따로따로 헤어지는 게 휠씬 두렵고 더 괴로우니까.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 단 둘이서 생활하는 건 물론 두려운 일이야.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이 어떤 건지 이미 알고 있어. 그러니까 모든 걸 준비해둘 수 있을 거야. 힘들 땐 언제든지 도움을 청할 수도 있어. 원장님이나 다른 사람들에게……둘이지만 그렇다고 단둘밖에 없는 건 아니야."-189쪽

함께 살면서 그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 진심으로 절실하게 그의 존재를 느끼고 있었는지 다시 생각해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그를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가슴을 펴고 자신 있게 사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그와 보낸 하루하루가 진정 사랑으로 충만했느냐고 묻는다면……자신이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말 자체가 애매할 뿐 아니라, 스스로가 아무리 사랑이라 믿고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어떤지는 항상 의심이 따르게 마련이니까요.-304쪽

……만일 내가 이대로 죽는다면, 나는 누구를 생각해야 할까? 특별히 부모님을 싫어하는 건 아니니까 부모님을 생각해도 좋지만…… 만에 하나,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 역시 그 사람을 생각하고 싶다. 혼자 된 사람은 무척이나 마음이 아프겠지만……-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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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고 싶은 책,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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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술친구 깨묵이의 별난 모험
신동일 지음 / 지경사 / 1991년 4월
4,000원 → 3,600원(10%할인) / 마일리지 200원(5% 적립)
2007년 11월 15일에 저장
품절
어린시절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흥미진진, 지금 읽어도 재밌을거 같아.
엄마도 장난꾸러기 였대요
이슬기 / 지경사 / 1991년 11월
5,300원 → 4,770원(10%할인) / 마일리지 260원(5% 적립)
2007년 11월 14일에 저장
절판
이 책도 정말 재밌었어. 다시 읽고 싶다.
별난가족 - 지경문고 51
최영재 지음 / 지경사 / 1997년 2월
4,500원 → 4,050원(10%할인) / 마일리지 220원(5% 적립)
2007년 11월 14일에 저장
절판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재밌고 인상적인 책. 어린시절을 따스하게 만들어 줬던 고마운 책.
시리즈 격인 <별난 국민학교>도 재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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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하 영원의 아이
텐도 아라타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1999년 7월
구판절판


"어릴 적에는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정말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어요. 다소 건방을 떨어도, 귀엽다고, 정말 귀엽다고 늘 주위에서 그런 말을 들으며 의기양양했었어요. 예쁜 옷을 입고, 당시 유명했던 화가의 모델이 되기도 했었어요. 그런데…갑자기 짓밟히고 망가져 버렸어요. 나 자신이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더러워졌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았어요. 상대가 아버지의 동생이니까, 부모에게 나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지 않았던 거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도 충격을 주고 싶지 않았어요……. 만일 이야기하면, 그들의 평온과 행복을 내가 모두 짓밟아 버리는 꼴이 된다고, 나를 이전처럼 귀여워해 주지도 않고, 사랑해 주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웠죠. 귀엽고 천진무구한 딸로서 어른들에게 늘 사랑받는 사람이고 싶었던 거예요. 남자는 그런 내 마음을 읽고 이용했던 거죠."-99,100쪽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활하면서 우리는 자기가 사는 곳을 정리하죠. 그런 일을 가사라고 하지요. 그리고 다음 세대를 기릅니다. 이걸 양육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앞선 세대의 죽음을 지켜본다는 의미에서, 노인간호를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도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라면 오로지 어린아이밖에 없지 않을까요? 물론 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죠. 그것 또한 정말 힘든 일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그건 사는 장소를 정리하는 가사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고, 양육이나 간호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일만 하면 그만이라는 것은 어린아이가 밖에서 열심히 놀고, 집에 돌아와서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맡기는 것과 별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정말 어른이 해야 할 절실하고 중요한 일은 양육과 노인 간호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이만 먹었다고 누구든 다 어른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들이 사는 현실 세계에서, 어른이 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나 역시 아버지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런 나를 어른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죠.(이어짐)-119,120쪽

정말 멋진 어른을 찿아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어린 사람들끼리 협력하고, 서로를 도울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바로 그게 희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개의 인간에게 억지로 자립을 강요하는 것이 오히려 많은 사람을 어린아이의 세계로 퇴행시키는 결과가 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119,120쪽

"우리한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있지는 않아 하는 생각이 들어. 너무 상대방의 처지만 배려하다 보면, 오히려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고 마는 수도 있는 거야. 결혼은 하지 않아도, 가정은 꾸리지 않아도 좋아. 그렇지만, 가능하다면 함께 살아갈 상대를 찿는 게 좋지 않겠니? 상대를 인정해 주고, 상대에게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무척 중요한 일이야. 혼자서만 너무 애를 쓴면, 자신은 물로이고,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는 거야.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고 해결하려는 것만이 어른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닐 거야. 사람을 믿고, 맡기고, 또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받아들여 주는 것도 사람에게는 좋은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게 아닐까? 천천히라도 좋아. 자신의 마음을 열어 봐. 어때…다른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어리광이라도 한번 피워 보라고. 그걸 자신에게 허락해 보면 어떨까……?"-160쪽

'우리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참사에 비하면, 우리들의 일상에서 생기는 슬픈 일이나 실수는 하잘것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늘 똑같이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도 끝없이 생겨나는 문제가 과연 세계적인 참사와 그리 다른 것일까요? 어쩌면 같은 뿌리에서 발생한 경우도 많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나 자신 아주 사소한 일에도 번번이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에, 변명 비슷하게 그런 생각을 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일에 고민하고 화를 내느라고, 바로 곁에 있는 사람의 아주 일상적인 슬픔과 고통조차 공감하지 못한 채 일에만 쫒겨 지낸 것이 바로 나의 현실이었습니다. 더구나 나는, 도저히 나 자신의 현실을 살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받은 상처와 저지를 죄, 그리고 죄를 저릴렀다는 죄책감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짓눌린 채 살아왔습니다. 아무리 자기 자신은 현실을 살았다고 생각해도 어디선가 뒤틀려서, 결국은 환상적인 색채마저 품고 있었던 것처럼 여겨지니까요. 언제 이것이 나의 현실, 진정한 나 자신이라고 내 두 손으로 움켜질 수 있는 날이 올까요.(이어짐)-377쪽

전에는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언젠가는 틀림없이 그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싶은 심정입니다. 너무도 슬픈 일이 많았지만,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허망함에 몸을 맡기지 않고,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기를 스스로에게 다짐해 봅니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비밀과 거짓말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이지마씨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어른이란 비밀과 거짓말을 간직하고 있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우리들은 고통스런 일이 있을 때마다 비밀과 거짓말로 대응했기 때문에 더욱 슬픈 결과를 초래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주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경우에도, 비밀과 거짓말로 피신하지 말고…오히려 진실을 밝힘으로써 발생하는 한층 더 슬픈 비극과 죄악마저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태도야 말로 성장이라 불리는 것이 아닐까요? 미안합니다. 나는 또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군요.'-378쪽

셋이서 같이 얘기했었지. 녹나무에 팔을 두르고, 셋이서 울었었어. 그후에 구멍에 들어가 손을 마주 잡고, 서로 몸을 꼭 껴안듯 기대고, 우리는 줄곧 같은 말만 나누었던 것 같아. 모울, 기억하고 있나? 자네는 이렇게 말해 주었지. 유키도 이렇게 말해 주었지. 우리는 오직 이 말만을, 오로지 이 한 마디 말만을 주고 받았었어. "살아 있어도 괜찮아. 너는…살아 있어도 괜찮아. 정말로, 살아 있어도 괜찮아."-3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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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7-11-14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텐도 아라타 글참 잘쓰죠...저는 <고독의 노랫소리>에서가 제일 이었던것같다는...-_ㅠ乃

쥬베이 2007-11-14 19:52   좋아요 0 | URL
네 텐도 아라타 작품은 이게 처음이었는데, 놀랐습니다^^
저 <고독의 노랫소리> 샀어요ㅋㅋ 얼른 읽어야지~
 
영원의 아이 -중 영원의 아이
텐도 아라타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1999년 7월
구판절판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고 하면서, 사실은 자신의 욕구나 바람을 우선시하고 있어. 그런데도 모든 것을 자기 아이를 위해서라고 하고, 자식이 고마워하지 않으면 은혜를 모른다고 화를 낸단 말이야. 오히려 자식 쪽이 참으면서 어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경우가 더 많은데도, 어른들은 부모 마음을 몰라 준다고 나무라기만 해. 아마도 부모는 그런 사정을 잘 모르고 있을 거야. 무엇이 인간의 행복인지……. 아무도 자기가 배운 것 이상으로는 행할 수 없어. 어린이 된 후에도 어릴 적에 배운 것, 자라면서 환경을 통해 익힌 것을 그냥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아. 부모도 어린 시절에는 그들의 부모가 하는 말, 하는 일을 참고 따르고, 이해하기 힘든 명령에도 싫다는 말 한 마디 못 하고 지내 왔을 거야. 부모가 하는 일들이 너무 어처구니 없어도, 고마워해야만 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런 아이가 부모가 되면 이제 자기 자식한테 사랑을 주는 힘이나 빼앗는 힘 모두를 가지게 되니까, 그 힘을 무의식적으로 휘두르며 자식을 지배하려고 하지. 때문에, 어린아이가 말대꾸를 하거나 반항이라도 하면 화를 내는 거야.(이어짐)-100쪽

자신을 억제할 수가 없으니까. 특히 어머니란 존재는 불쌍해. 남자는 밖에 나가서 제멋대로 행동해도 용서를 받을 수 있지. 남자란 어차피 어린아이니까. 여자는 그렇지가 못해. 어머니가 되어도 누군가의 자식임에는 변함이 없어. 어리광을 피우고 싶을때도 있을 것이고, 모든 것을 의지하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만, 늘 남편이나 남편의 가족들에게까지 어머니의 역할을 강요받게 되지. 나이에 관계없이 부모가 되는 순간 그렇게 되고 말아. 결국, 어머니란 존재가 안심하고 어리광을 피울 수 있는 대상은 아이밖에 없는 셈이야. 자기가 어린아이로 돌아가 의지할 수 있는 상대가 자기 자식밖에 없는 거야. 때문에, 한층 어린아이의 반항을 이해할 수 없게 되는 거라구. 그렇지만 어린아이도 당하지만 하지는 않아. 참고 있다가 언제가는 웃기지 말라고 대들지. 당연한 일 아니겠어? 부모란 입장은 물론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해. 그렇다고 아이의 입장이나 감정을 무시하면서 다루면,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어머니에게 항상 좋은 감정만 품게 되지는 않으니까. 부모가 애정표현에 인색한 사람이라면...어린아이라고 해도 울면서 반격을 가하게 되는 법이라구."-101쪽

"상대방이 아무리 무겁고 고통스런 고민을 고백한다 해도 그걸 온전히 견뎌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 (중략) "그렇게 힘들고 무거운 고민인데고 견뎌낼 수 있다는 것은 아무 느낌없이 그냥 듣기만 하고 때문이에요. 귀로는 듣는 척하지만, 마음은 닫고 있으니까요. 상대방 입장에서 똑같은 마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려 하다가는 자신도 구렁텅이에 빠져 버릴 그런 고민도 세상에는 있는 거란 말이에요."-163쪽

"때로 이 세계는 부모라고 해서 반드시 성숙한 어른은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 아이이면서도 부모가 될 수 있으니까.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아이의 모든 것을 맡긴다면, 아이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때도 있거든. 아이를 기르는 일이 경쟁이 아니라는 것을 왜 가르쳐 주지 않는 거야. 나아갈 길도 가르쳐 주지 않고, 미숙한 부모만 책망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아이를 때리는 것과 다를 게 없어."-284쪽

엄마…당신은, 내가 정말로 사실을 얘기해 주기를 바라는 게 아니야. 진심은 그런 게 아니지. 이렇게 달려온 것은 나를 생각해서가 아니야. 불안해서 견딜 수 없는 마음, 그 괴로움을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서 달려왔을 뿐이야. 엄마가 바라는 것은 엄마를 안심시켜 달라는 것이겠지. 엄마가 나한테 듣고 싶어하는 말은 엄마가 기절해서 나자빠질지도 모르는, 그런 진실이 아니야.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진실이 아니라구. 나 혼자만 참고 지내면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거짓말로 똘똘 뭉쳐진 말을 들려 달라고, 그렇게 바라고 있는 거야….-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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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아이 -상 영원의 아이
텐도 아라타 지음, 김난주 옮김 / 살림 / 1999년 7월
구판절판


'반드시 이 세상이 멸망할 날이 올 거야. 아무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 이 세계는 이제 곧 멸망하여 아무도 구원받지 못할 거야. 그러나 어쩌면 우리한테는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라. 이 세계에서 버림받고 부정당한 우리들이니까, 이 세계가 부정될 때 비로소 날개를 펼 찬스가 찿아 올지도 모르잖아….'-19쪽

"네놈도 이게 병이란 걸 알고 있겠지. 아무리 그만두려 해도,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을. 너무 괴로워서, 누군가가 말려 주기를 바란 적도 있겠지. 너 자신이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생각도 해보았겠지. 그러나, 그래도 그만둘 수 없었을 거야. 앞으로도 계속 이런 짓을 하게 될 거야. 몇 년 형무소 생활을 해봐야, 네놈의 병은 절대로 낫지 않아. 너의 어린 시절이 그랬을 테니까. 너도 당했을 테지. 그러나 복수를 하고 싶으면, 바로 그때 했었어야 했어. 이제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어. 네놈은 또 다른 어린애에게 상처를 입힐 거야. 견딜 수 있겠어? 그런 인생을 견딜 수 있겠난 말이야…. 내가 끝내 주지. 너를 구원해 주겠어."-108쪽

"키에르케고르라는 사상가였던가?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아름다워진다고 한 사람이. 철학자 야스퍼스는 거기에다 주석을 달았지. …그러나 사랑하는 자만이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 고 말이야."-176쪽

"너는 어쩌다 우연히 태어난 거야. 나는 더 재미를 보고 싶었는데, 그 멍청한 것이 참을성도 없이 그냥 싸 버려서 생긴 거란 말이야. 떼려고 했지만, 할망구가 눈치를 채고 낳으라고, 우리 부모까지 동원하여 나무라고, 그놈도 열심히 도와 주겠다고 해서 믿고 낳았어. 그랬더니 그 멍청이는 손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할망구는 나를 씨받이로 여겼는지, 아이 낳는 기계 정도로나 취급하면서 하는 일마다 잔소리만 늘어놓았어. 나름대로 잘 키우려고 했어. 너를 낳으면서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아야 했으니까. 역시 내 자식이라 귀엽긴 했지. 그런데, 너는 밤마다 울면서 잠도 못 자게 했어. 그 멍청이와 할망구는 내가 아기를 잘못 키워서 그렇다고 지랄이구. 너는 나를 도와 주기는커녕, 툭하면 아프고, 방을 어지럽혀 놓고 하루도 빠짐없이 나를 괴롭혔어. 정말 불효막심한 애였어. 너 덕분에 나는 늘 야단만 맞고, 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야 했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거야, 알겠니? 집에다 불을 지르려 했던 적도 있을 정도니. 네 아빠가 조금만 더 어른스럽고,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만 아니었더라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야….(이어짐)-225쪽

결국, 이 사회는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지만, 여자한테는 불공평해. 여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그것이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세상이니까. 남자의 사회라고 하지만, 아냐. 유치한 얼간이들의 사회야. 일 때문에 고생이 심하다고 하는데, 할 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르고 있어. 일을 해서 돈도 벌고 평가도 받고 뭔가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한테나 즐거운 일이야. 고생스럽기는 하지만, 살아가는 보람을 느낄 수 있고,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행복한 일이라구. 그것을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양 떠벌리는 놈은 여자를 어머니 대용으로 생각하는, 되다 만 어른이지. 나는 자유롭기를 선택한 거야. 너를 돌보기도 힘든데, 그 남자와 할망구까지 돌봐야 한다고? 그럼, 내 인생은 뭐야? 나도 부모에게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사람이야. 소중하게 자란 사람이란 말이야. 그런데 왜 가정에 들어서는 순간, 야단만 맞고 순종만 하면서 살아야 해? 어릴 적에서는 남자와 여자는 다 똑같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교육을 받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까 전혀 아냐.(이어짐)-226쪽

너도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의 희생양인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내게는 아무런 힘이 없어. 사회적 모순의 책임을 질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구. 나와 함게 살면, 우리 둘 다 무너질 거야. 그렇지만, 네게는 그 집이 있잖니. 나처럼 무일푼으로 쫒겨난 게 아니잖아. 좋은 집에, 아버지하고 할머니하고 함께 남았으니까. 나도 네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괴로울 때는 아프리카의 굶주리는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너는 그보다 훨신 더 행복하니까."-226쪽

입원하기 전에도 가끔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려는데, 입고 있는 옷에서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몇번 이나 그런 일이 있고서, 주위 사람들도 자기를 묘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 시호에게 냄새가 난다고 호소했다. 시호는 유키의 옷에 코를 박고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고 거듭 말했지만, 말을 들어 주지 않았다. 유키는 자기 손으로 집요하게 옷을 씻었다. 그래도 냄새는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강해지기만 했다. 시호가 유키의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만두라면서 나무랐다. 유키는 눈물을 흘리면서, 왜 몰라 주느냐고 따졌다. 드디어 시호는 성가시게 굴지 말라고, 유키의 빰을 쳤다.-305쪽

'노력하지 않으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당신들은 거듭 강조했다. 노력하지 않으면 인생은 의미가 없다고 질타했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말하는 노력, 그리고 노력하는 길은 무한히 욕망을 충족시키는 생활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소용이 있는가 없는가로 모든 생명의 가치를 판단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늙음과 장애를 무시하는 한이 있어도, 거짓말로 약속을 파기하는 한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락고 변명할 수 있는 그런 길을 말하는 게 아닌가? 그런 길로 나아가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냐고 물으면, 당신들은 시끄럽다고 뿌리쳐 버린다. 이상한 애라고 상대도 하지 않는다. 개성과 순종이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 실체도 없는 환상이 나를 무참히 찌부러뜨린다.'-3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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