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수프
마쓰다 미치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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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때문에 으슬으슬 떨면서 읽었다. 수프가 먹고 싶었다. 가슴깊게 퍼지는 따뜻함, 향긋한 향기, 김이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수프…살면서 수프가 이렇게 먹고 싶은 적은 없었다. <천국의 수프>를 읽게 된 건 행운이다. 이 책을 읽으며 잠시나마 추위를 떨쳐 낼 수 있었다. 엄청난 몰입력, 흥미로움, 책의 위대함.

<천국의 수프>는 읽을 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책이다. 포근하고 감미롭다. 누군가 이럴지 모른다. '아니 등장인물을 봐, 어떻게 마음이 편해질 수 있지? 모두 상처에 아파하고 있잖아!' 맞다. 등장인물은 모두 아픔을 가지고 있다. 료스케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이혼까지 했으며, 유이코는 언니의 사망과 이를 괴로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이들은 좌절하지 않는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묵묵히 자기 일에 몰두하며 상처를 극복해 간다. 바로 이점이다. 마쓰다 미치코는 다뜻한 시선으로 이들을 그려간다.

료스케와 유이코가 속도감있게 번갈아 서술된다. 이런 구성은 이들 사이 뭔가 접점이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며, 이야기를 심화시킨다. 접점이 뭐겠는가?^^ 제목을 떠올리면서 피식 웃어버리는 분도 계시리라. 이 둘의 '점접'은 그야말로 이야기의 뼈대다. '수프의 집' '유이코의 언니 아사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나중에 읽으실 분을 위해 남겨 두겠다.

제목인 '천국의 수프'에 주목하자. 과연 '천국의 수프'는 뭘까? 최고급 원료를 전부 사용한 값비싼 수프가 천국의 수프일까?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든 수프, 재료는 비록 별 볼일 없지만 애정이 넘치는 수프가 바로 '천국의 수프'가 아닐까? 유이코가 찾으려 했던 수프는 그런 의미에서 '천국의 수프'였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찿았고, 스스로 만들어 냈다.

쓴소리 좀 하자. <천국의 수프>는 분명 감동적이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크다. 첫째, 해피엔딩에 집착한 나머지 결말을 성급하고 엉성하게 끝내 버렸다. 유이코와 사토시의 만남, 결합, 이해할 수가 없다. 료스케와 마키의 '마지막'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왜 이렇게 허둥지둥 끝을 낸걸까? 둘째, 지나치게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료스케와 아사미의 만남, 료스케와 유이코의 만남, 어찌나 우연의 연속인지. 하지만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별다섯을 주겠다. 난 이런 소설을 좋아한다. 좋아하기에 좀 더 완벽해질 것을 요구했는지 모른다.

<천국의 수프>는 책 자체가 하나의 수프다. 김이 모락모락나는, 차가운 가슴을 녹여주는, 감미로운 수프. 책장을 넘길때마다 풍겨오는 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천국의 수프>를 읽고 나서 지독히 괴롭히던 감기가 사라졌다. 이 책 덕이라 믿는다. 추운 겨울 이불속에서 편하게 읽을 책을 찾는가? <천국의 수프>, 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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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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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머지않아 '고전'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이다.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와 역사를 가로지르는 두 여인의 신산한 삶, 고뇌, 충격적이었다. 처음 접하는 이슬람권-아프가니스탄-작품이라 생소한 단어도 많았고, 이해할 수 없는 장면(특히, 지독한 남성우위)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이 작품의 약점이 아니다.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즐거움과 충격은 그 자체로 의미있었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두 여성, 마리암과 라일라의 이야기다. 1부는 마리암의 이야기가, 2부는 라일라의 이야기가 화자를 달리해서 서술된다. 3부부터는 두 여인이 함께하게 된다.

마리암. 부유층인 '잘릴'과 가정부 '나나'사이에서 태어난 소녀. 잘릴은 잠깐의 불장난으로 태어난 나나와 마리암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주변의 시선이 두려웠던 것일까? 결국 나나와 마리암은 마을 외딴곳 움집에서 살게된다. 하지만 잘릴은 완전히 이들을 버린 것은 아니었다. 꾸준히 일용품을 보내주고, 마리암과 짧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마리암과 잘릴의 관계는 다정한 부녀관계이상이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마리암은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고 간청한다. 자신을 직접 데려와 달라고. 하지만 약속시간이 되도 그는 오지 않고, 결국 잘릴의 집으로 찿아간다. 그렇게 믿던 아버지였건만 마리암은 집안으로도 들어가지도 못한다. 마리암의 상처, 실망. 아버지와 그 집안에 끔찍하리만치 냉소적이었던 나나의 말이 맞는 것이었다. 마리암은 잘릴의 진면목을 알아 버렸다.

나나가 자살하고, 혼자 남은 마리암은 잘릴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들에게 마리암은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마리암을 내쫒듯이 시집보내기로 하는 그들. 결국 마리암은 20살 가까이 차이나는, 거기다 결혼 경험까지 있는 구두장이 라시드와 결혼한다. 조선시대 서로의 얼굴도 모른채 혼례를 올리던 그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라일라. 신산한 마리암의 삶에 비하면 라일라는 행복한 편이다. 가족들이 있고, 타리트란 친한 이성친구도 있다. 하지만 전쟁과 폭력은 라일라에게서 행복을 빼앗아 버린다. 혼자 남은 라일라. 그런 라일라를 돌봐준게 바로 라시드다. (마리암과 라일라의 접점은 바로 라시드인 것) 라시드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반대편에 선 인물로, 악의 근원이다. 툭하면 이어지는 구타, 모욕, 끔찍한 전근대적 남편의 전형이랄까. 그가 라일라를 돌봐준 것은 다른 속셈이 있었다. 예쁜 그녀를 자신의 첩으로 삼으려 했던 것. 그 과정에서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는데, 이는 밝히지 않겠다. 가엾은 라일라.

라일라가 첩이 되면서 찬밥신세가 된 마리암은 라일라를 질투하고, 둘은 갈등한다. 하지만 라시드란 공통의 적을 상대하며 이들은 점점 하나가 된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자유를 찿아 몸부림치지만, 사회는 여성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그녀들의 분노는 극적으로 폭발하는데…

라일라와 마리암에 가해지는 라시드의 폭력, 이에 저항하고 탈출을 시도하지만 결국 제지 당하는 장면, 억압당하고 고통받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 '델마의 루이스'같은 느낌도 약간 들었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 정말 멋진 작품이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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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근대 망령으로부터의 탈주, 동아시아의 멋진 반란을 위해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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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까지 들먹이면서 강남 귀족 중심의 생활 환경을 변화시켜 보려는 움직임을 막아버린 2004년 연말 헌법재판소의 행정수도 이전 위헌 판결을 보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명확하지 않은 관습과, 다수 국민의 의사가 명확히 반영된 성문헌법을 구분하는 근대의 법 체계상 성립할 수 없는 억지 이론을 만천하에 내놓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권위를 치명적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가 해서였다. 그러나 기득권의 사수 선언문의 역사적 맥락을 생각해보니 그들의 역사적ㆍ문화적 생리상 이런 '관습'운운은 꽤 자연스러운 것이었다.-125쪽

국내의 교내 폭력 관련 뉴스를 접할 때마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학생이 교사를 때린 '교권 침해'사건이 일어나면 곧바로 '충격적인 뉴스'가 된다. 물론 교사에 대한 모독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교사가 학생들에게 교육적 체벌이라는 미명으로 휘두르는 신체적 폭력이나 언어적 폭력은 특별히 심한 경우를 제외하면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한 학생의 일생에 영향을 미치거나 평생의 상처로 남을 수 있는 인격 모독을 해도 사회가 관심을 가질 만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학생이 교사의 권위를 약간이라도 손상시키는 언행을 하면 막대한 불이익이 돌아가지만, 반대로 체벌 관련 대법원의 판례로 봐서 교사가 학생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몇 차례 빰을 때리는 것쯤은 아직 법적인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166쪽

일본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반 세기가 지났고,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아예 법적으로 규정된 적도 없는 '간통죄'를 동북아 주요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만이 원칙상 적용하지 않는가? 두 남녀가 정이 깊어 서로에게만 충실한다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윤리'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로 무장한 국가가 개개인의 성생활을 규제ㆍ감시ㆍ심판ㆍ처벌한다면, 위선과 폭력이 난무하고 비극의 씨앗이 뿌려진다. 결국 용감한 소수는 모든 탄압에도 불구하고 '금지된 사랑'에 도전하지만, 순응하는 다수는 국가가 만든 윤리법을 하늘의 법으로 알고 내면화하기에 이르는 것이다.-281쪽

육체를 타고나서 식욕이나 색욕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헛소리일 뿐이다. 억제할수록 더욱 심해질 뿐이고 오직 어지러운 상태에 이르지만 않으면 군자다. 그 욕망을 억지로 억누른다면 은근한 음행을 범하게 돼 풍속을 어지럽힐 가능성이 높다. 불교를 아내 삼아 평생 독신으로 살 영웅이 있다면 그를 존경하지만, 평범한 이의 수준에 맞추자면 관세음보살이 미인으로 몸을 나타내 음탕한 사나이를 제도했다는 고사대로 하나의 방편으로 수행자에게 결혼을 허해야 한다. <조선불교유신론>,1913-317쪽

처음부터 지금까지 미국이 냉정하게 잘 이용해오고 있는 '티베트 문제'의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미국의 행동이 미국 지배층들의 이익을 철저히 따르는 만큼, 우리의 운명을 그들의 판단에 한순간도 맡겨선 안 된다. 만일 미국의 군수기업과 네오콘들이 필요하다면 북한을 침략하는 일도 완전히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그때 가서 미국에 환멸을 느껴봐야 이미 늦을 것이다. 미군의 북침으로 한반도가 사막화되어버리는, 생각하지조차 끔찍한 참사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은 오직 남북의 다방면의 공조 강화와 반전과 평화 운동, 그리고 미군 철수를 위한 운동등일 것이다.-3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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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
김미숙 지음 / 엘도라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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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나 신문에서 보험광고를 보았는가? 끈질긴 보험가입 권유를 받아 보았는가? 보험 한두 개 가입하지 않은 사람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과연 보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고지의무'를 준수해야 하며, 청약서류는 '자필로 작성'해야 한다는 사실등. 보험금 받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은 진실>은 전 국민이 돌려 읽어야 한다. 아이부터 어르신까지, 학생부터 주부까지 모두다. 보험회사 배만 불려주고, 보험금은 받지도 못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난 놀랐다. 그동안 보험회사가 얼마나 가입자들을 우롱해 왔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보험회사에 휘둘렸던 우리가 얼마나 바보였는지, 비로소 알았기에. 보험하면 떠오르는 보험사기, 나일론 환자, 그 반대편에 함정은 숨겨져 있었다.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보험가입의 진실, 보험상품의 진실, 보험유지 해약의 진실, 보험금 지급의 진실. 물론 전체를 관통하는 뚜렷한 주제는 제목 그대로 보험회사가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았던 진실이다.

저자는 보험관계업에 종사했던 경험을 토대로, 보험과 관련된 진실과 보험회사의 행각을 낱낱이 까발린다. 사실 그들의 행위는 법에 위반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가슴 아픈 재해재난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상술(p.86이하)에 화가 치밀었다.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어느 한 내용 인상적이지 않을 것이 없었다. 마음 같아선 전부 소개하고 싶지만, 몇 부분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효도보험의 진실](p.113) 저자는 말한다. '효도보험은 다른 상품들에 비해 무효처리될 공산이 큰 보험'이라고. 효도보험은 성질상, 고지의무와 계약청약서 자필서명의무를 다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생각해보자. 서울에 있는 자식이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위해 효도보험에 가입한다고 한다면, 자필서명은 어떻게 할 것이며? 부모님의 몸 상태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알고 고지의무를 다한단 말인가?

[3개월 조건의 함정](p.210) 저자는 보험약관상'청약서상 자필서명, 청약서 부본 및 약관 전달, 약관의 중요내용 설명을 받지 못한 경우 3개월 내에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조항의 함정을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일견 공정해 보이지만, 3개월이란 기간이 지나면 계약상의 하자가 치유되어 버리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보험법을 공부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생생한 보험현실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거래계에서 이뤄지는 생생한 보험관계내지 문제점을 알 수 있었다. 그간 공부했던 보험법 지식과 연계해서 입체적인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정말 인상적인 책이다. <보험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은 진실>, 꼭 읽어라. 당신이 가입하고 있는 보험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어설픈 재테크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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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 거장의 향취
우울한 얼굴의 아이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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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버릇처럼 '최후의 소설'이라고 하는 말을 나는 좋아하지 않아요. 우리 은사님이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 강연집 서문에 이렇게 썼어요. '이러한 의견을 최종적인 확신에 기초한 보고라고 받아들이지 말기를, 순례 중에 한 번의 휴식 속에서의 보고라고 생각하기를……. 당신도 마찬가지로 순례의 때가 마지막에 가까웠다고 느끼더라도……걷고 있는 도중의 보고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써주었으면 좋겠어요."-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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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3 1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