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기누스의 창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허지은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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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살인>에 이어 접하는 아르노 들랄랑드의 두번째 작품이다. '단테의 신곡'을 소재로 삼았던 그가, 이제 '롱기누스의 창'과 '인간 복제'를 소재로 돌아왔다. 처음 '롱기누스'가 무엇 뜻하는지 알지 못했다. 호기심반 걱정반이었지만, 아르노 들랄랑드를 믿기로 했다.

'롱기누스'는 사람 이름이었다. 모난 얼굴에 사팔인 눈을 가진 25살 로마군인.(p.16) 롱기누스는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창으로 찔러 죽인다. 바로 그때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창이 '롱기누스의 창'이다. 롱기누스는 자기 손으로 그리스도를 찔렀다는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의 변화를 알려한다는 강렬한 의무감에 사로잡힌다.(p.32참조) 창을 숨기고 골고카 언덕에서 벌어졌던 일을 자세히 적어 기록으로 남기는 롱기누스.

시간은 흘러 2006년. 이후 이야기의 핵심인물은 '주디스'다. 그녀는 스피넬리 교황의 특별고문으로 교황청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다. <단테의 신곡 살인>의 호프, 흑란 피에트로에 대응하는 인물이 흥미롭게도 여성캐릭터다. 그녀는 자궁내막 종양때문에 자궁제거 수술을 권유받고 있다.(p.92) 아기를 원하지만 아기를 가질 수 없는 현실. (이런 설정은 이야기 뒷부분의 복선이다. 여기까지만^^)

'롱기누스의 증언'이 발견되어 이를 바탕으로 교황청은 므깃도에 탐사대를 보낸다.(p.49) 탐사대는 진짜로 추정되는 '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하는 개가를 올리지만, 갑작스런 습격을 받고 몰살당한다. 유일하게 한 사람, 다미앙 셀츠너만이 행방불명되고…바티칸은 주디스에게 다미앙 셀츠너 추격 및 사건 해결을 맡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듬직한 보디가드 안젤모와 함께 다미앙을 추적하는 주디스. 이스라엘 모사드요원들의 도움으로 다미앙을 발견하지만 그마저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살해(p.130)당하고 주디스 일행은 위험에 빠진다. 다미앙이 죽으며 남긴 한마디. "악수스 문디, 그들을 찾으시오!"(p.130) '악수스 문디'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악수스 문디의 정체, 음모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언급하지는 않겠다.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생명공학의 권위자, 박이원 박사. 비록 그는 악수스 문디를 돕는 악의 캐릭터지만 한국인이 등장한다는 점 하나만으로 좋았다. 한국의 생명공학이 상당히 발달했음을 저자는 알았던 것일까? 제주도도 살짝 언급된다^^

아르노 들랄랑드는 이 작품을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한 듯하다. 생명공학에 대한-특히 인간복제-깊이 있는 지식없이는 쓰기 힘든 내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악수스 문디의 4명의 박사들이 브리핑하는 장면(p.170이하) 같은 것.

<롱기누스의 창>은 대단한 작품이다. 예수를 찔렀던 롱기누스의 창을 바탕으로, 놀라운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것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닌 실현 가능한 것이기에, 이야기는 한층 힘을 받는다. 아르노 들랄랑드 특유의 속도감있는 전개, 놀라운 묘사는 이 작품에서도 여전하다. 안젤모와 정체불명 사내의 나일강을 배경으로 한 기차안 격투장면(p.197이하)은 백미다. 만약 이 작품이 영화화 된다면, 이 부분이 어떤 영상미로 구현될지 궁금하다.

마지막, 교황청의 힘든 결정(무엇에 대한 결정인지 밝히지 않겠음)과 주디스의 새로운 역할은 인상적이었다. '그래, 주디스는 아이를 가지고 싶어 했으니까.' 저자는 약간의 여운을 두고 이야기를 끝내고 있는데, 혹시 속편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에른스트 하인리히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노리고 있잖은가? 아무튼.

아르노 들랄랑느의 전작 <단테의 신곡 살인>서평에 '흥미로워 밥도 안먹고 읽었다'는 일화를 언급했는데, <롱기누스의 창>은 <단테의 신곡 살인>을 능가한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이제 아르노 들랄랑느란 이름 하나만으로 믿고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 같다.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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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기행 - 사막과 홍해를 건너 에티오피아에서 터키까지
박종만 지음 / 효형출판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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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기행>은 커피가 아프리카에서 전 세계로 퍼지는 발자취-저자는 커피로드라 명명한다-를 추적한 여행기이다. 일상적으로 마시는 커피가 어떻게 재배되고, 어디서 재배되는지등 몰랐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케냐부터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지부티, 예멘, 터키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일대를 누비며 고생한 탐험대의 땀이 묻어나는 책, 국내에 최초로 커피박물관까지 세운 저자의 커피사랑이 묻어나는 책, <커피기행>.

제일 앞장에 '커피 로드의 경로'가 소개된다. 앞으로 여행하게 될 나라들을 개괄하고, 보기 좋게 지도까지 인용하고 있다. 커피하면 콜럼비아, 브라질을 떠올렸는데, 의외로 아프리카에서도 커피가 많이 생산되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커피는 에티오피아 짐마(과거의 카파)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p.12)되었단다. 그렇구나.

저자는 탐험대를 조직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모집공고를 냈다(p.17)고 한다. 사진과 문학으로 나뉘어 2명을 뽑는 치열한 경쟁을 거쳐 김상범님, 김의진님이 선정되었다. '글솜씨가 좋고, 커피에 열의가 있으며, 밝고 자신감 넘치는 외모의 소유자'라는 점(p.21)이 선정이유. 저자와 박인찬PD포함 총 4명의 탐험대는 이렇게 뭉쳤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 이것부터 이야기하겠다. 탐험대원들은 이후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개인적인 소개도 없다. 저자가 말하는데로 '여행기가 아닌, 커피역사 순례기'(p.9)이기 때문인가? 커피에만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은 언급하지 않는 것인가? 그럴법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순례'과정에서 겪은 개인적인 어려움, 감상, 탐험대간 갈등 같은 것도 일정부분 언급해 주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후 커피기행이 딱딱하고, 수박 겉핡기식으로 보이는 이유는 저런 것 때문이다. 김의진씨가 여성분인 것은 나중에 사진보고 알았으니, 이거 원.

탐험대가 첫 발을 내디딘 곳은 케냐다. 국가가 커피산업을 적극 육성해 커피 생산의 요지로 떠오를 케냐.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원작자인 카렌 블릭센이 살던 음보가니 하우스(p.47)도 인상적이다. 이어 탄자니아, 에티오피아등이 이어지는데, 각 국가별로 30페이지 가량 분량으로 소개된다.(에티오피아 제외) 사소하고 더 깊이 있는 내용을 원했던 나로서는 너무 적은 분량이다. 위에서 말한 '수박 겉핡기'란 표현은 이런 차원이다. 고생한 탐험대원들에겐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부족한 경비와 빡빡한 일정 때문이었으리라. 저자인들 오랜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기행하고 싶지 않았을리 없다. 현실은 만만치 않으니까. 힘들어하는 탐험대의 고충이 전해졌다. 특히 경비때문에 된장찌개를 먹고 싶어하는 대원들을 챙기지 못하고 미안해 하는 저자의 모습은 안타까웠다.

이 책을 통해 많을 것을 알게 되었지만, '분나'란 용어는 특히 인상적이다. '분나'는 바로 커피의 다른 이름이다. 커피의 원산지 에티오피아는 '커피'란 용어대신, '분나'란 용어를 사용한다(p.119)고 한다. 저자와 짐마농대 아두나 학장의 대화를 잠시 인용하겠다. "왜 에티오피아에서는 커피를 커피라 하지 않고 '분나'라 부르지요?" "'분나'는 커피를 부르는 현지어입니다. 우리는 커피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커피의 이름이 '카파'라는 지역명에서 온 것은 틀림없습니다.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이지요. 그렇지만 '분나'는 커피를 지칭하는 우리 고유의 언어입니다."(p.121) 네 잘 알겠습니다^^

'커피기행'엔 커피가 없다. 오리지널 모카커피를 꿈꾸며 모카항에 당도한 탐험대. 하지만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밍밍한 인스턴트 커피뿐(p.202이하)이다. 또한 아프리카 사람들은 커피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았다. 안스러운 노천 커피점(p.73)을 보라. 그들은 커피보다 마약의 일종인 카트에 빠져 있었다. 커피를 밀어내고 재배지를 넓혀가는 카트, '붕어빵엔 붕어가 없다'는 우스개가 그대로 적용되는 상황인 것이다. 

모든 것을 떠나, 이 책에 저자인 박종만님과 탐험대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커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힘겨운 아프리카를 누빈 그 열정. 국내에서 커피나무를 재배하기 위해 노력하는 열의, 멋지다. 많이 배웠다. 커피에 대해서, 그리고 그 열정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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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 롬멜 리더십, 열정과 추진력 그리고 무한한 낙관주의 KODEF 안보총서 7
크리스터 요르젠센 지음, 오태경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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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멜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사막의 여우'라는 별명뿐이었다. 부끄럽게도 그가 연합군측 장군인지, 독일장군인지도 알지 못했다. 다행히 이 책을 통해 많을 것을 알게 되었다. 롬멜이 히틀러의 총애를 받은 독일군 장군이란 사실에 약간 놀랐지만, 이도 그의 빛나는 활약을 덮을 수는 없었다.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는 얼핏 독일의 명장 '에르빈 롬멜'의 전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전기라기보단 그의 군생활, 양차대전을 거친 활약상을 중심으로 리더쉽을 조명하는 책이라 하는 것 타당하다. 전기에 필수적인 유년시절 서술이 적고, 롬멜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무기(특히 전차)에 대한 이야기도 길게 등장하기 때문이다. (롬멜이 전차부대를 이끌었지만,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판단했다.)

롬멜의 좌우명이 두개 소개된다. 하나는, 루마니아 전선에서 동상과 굶주림을 겪으며 얻은 '너 자신이 하고 싶지 않거나 할 수 없는 일을 남에게 부탁하지 마라.'(p.21) 다른 하나는, 카스레토 전투에서 기만전술을 성공시킨 다음 얻은 '싸우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p.24)이다. 어찌보면 '이미 알고 있는거 아냐?' 하고 반문할지도 모르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전쟁터에서 몸소 얻은 좌우명이라 가슴깊이 다가 온다.

'사막의 여우'란 별명을 얻게한 롬멜의 북아프리카에서의 대활약은 p.108이하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세계대전 전황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각국의 관계, 무기등 전력, 유력인사들의 면면 등. 롬멜은 사막전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막은 전술가에게는 천국이지만 보급장교에게는 지옥이다.'(p.124) 공감간다. 보급을 소홀히 했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는 그의 말이다 보니 더욱 그렇다. 군수보급은 전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잘해도 보통인 그런 대접을 받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임무를 다하는 보급장교들의 고충을 롬멜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 롬멜의 성공비결은 무엇인지 궁금해 진다. 이는 p.202에서 이야기 된다. '사막에서 성공을 이룬 롬멜만의 운용방식과 핵심개념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밀집대형 유지 및 적의 보급선 위협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뒤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린다. '속도가 전부다. 적에게 알아챌 시간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추격군의 빠른 재조직과 보급의 재정비는 필수적이다.'(p.203)

최연소 독일 육군원수에 오르며(p.201) 승승자구하던 롬멜이지만, 노후된 무기와 지휘부사이 갈등으로 어려움도 겪는다. 승승장구하던 그가 어려움에 빠진 후반부를 읽으며 안타깝기 까지 했다. 당시는 이미 롬멜 혼자서 어찌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처음에 말했듯이 그는 나치와 히틀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인물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존경받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군에게도 아군에게도 존경을 받았던 에르빈 롬멜. 그의 활약상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다.
 

 

* 다양한 시각화 자료와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p.76,77,80,97,113,120,143,159,189,227,329 등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사진은 이보다 더 방대하게 실려있다. 또한 각 챕터 앞에 수록되어 있는 대형사진도 인상적이다.

* 제목인 '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는 p.87에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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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탁상 위의 전략은 믿지 않는다 - 롬멜 리더십, 열정과 추진력 그리고 무한한 낙관주의 KODEF 안보총서 7
크리스터 요르젠센 지음, 오태경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07년 11월
구판절판


후퇴하거나 여기서 멈추거나 아니면 공격하거나, 롬멜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은 간단하고 단호했다. 가능한 모든 경우에 롬멜은 공격하는 쪽을 선택했다.-24쪽

롬멜이 검열을 위해 어떤 기지에 도착했는데 처음에 초병이 경례를 하지 않았다. 화가 난 롬멜이 지휘관을 호출하자 지금 취침 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롬멜의 분노는 격노로 바뀌었다. 극도로 화가 난 롬멜은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침대에서 끌어내 그 지역의 상황이 어떤지 물어보았다. 별다를 것이 없다는 대답을 듣자 롬멜은 바로 받아쳤다. "어떻게 알지? 귀관은 취침중이었지 않아!"-2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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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역사를 뒤바꾼 치명적 말실수
이경채 지음 / 현문미디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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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계륵'이란 말이 있다. 촉의 한중을 공략하기 위해 대치하던 조조가, 진격하지도 그렇다고 물러나지도 못하고 고민하다 닭갈비를 뜻하는 계륵을 암호로 정했다는. 그때 계륵의 의미를 간파해 퍼트린 양수는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야말로 목숨을 앗아간 치명적 말실수인 것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조조는 그냥 웃어넘길 수도 있었다. 관도대전 후 원소와 내통했던 이들을 살려둔 조조아닌가? 양수의 죽음은 단지 그의 말실수 때문만은 아니다. 조조 아들간 벌어진 후계 다툼에 그가 깊이 간여했기에 조조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말실수를 빌미로 죽인 것이다.

이처럼, 단수한 말실수 때문에 죽임을 당하거나 집안이 몰락하는 경우 같아도, 그 이면엔 정치적 역학관계 내지 다양한 제반사정이 숨겨져 있다. <설화, 역사를 뒤바꾼 치명적 말실수>는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저자 역시 '남이의 죽음'을 단순한 말실수 때문이 아닌 '신진세력과 훈구세력간 갈등'때문으로 이해(p.122이하)하고, '민무구 민무질 형제의 죽음'도 태종의 왕권강화와 관련지어 살펴본다. 공감할 만하다.

<설화, 역사를 뒤바꾼 치명적 말실수>는 조선개국에 큰 역할을 한 정도전의 설화를 시작으로,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의 충격적 설화를 이야기한다. 자칫 딱딱해질 수도 있는 이야기를 저자는 부드럽고 흥미있게 서술한다. 꽤 많은 대화도 오가는데, 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제목부터 '말실수, 설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말실수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것까지-혹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것까지-말실수 때문이라고 단정지어 버린다.

한 부분을 보자. '따라서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1차 왕자의 난'은 정도전이 내뱉은 말실수 때문에 빚어진 잘 짜인 한 편의 시나리오라고 할 수 있다.'(p.64) 이건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물론 정도전의 말실수가 이방원에게 뭔가 '영향'은 미쳤겠지만, '말실수 때문에 짜인 시나리오'라 하는건 억지다. 이처럼 이 책은 제목(이 책의 기획의도)에 사로잡혀 간혹 지나친 확대해석을 하고 있다. 정도전의 말실수를 다룬 제1화, 신숙주의 아들 신정의 이야기를 한 제4화, 사도세자를 모함한 나경언 이야기인 제7화는 말실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흥미로웠던 건, 제4화 '신숙주의 골칫덩어리 아들 신정'(p.133)이었다. 세종 대부터 성종 대가지 4대 임금으로부터 대학자로 추존되던 정치가 신숙주. 그에게 신정 같은 개망나니 아들이 있었다니…놀라운 일이다. 신정의 행각은, 아비의 권력만 믿고 날뛰는 영화속 쓰레기들과 꼭 같다. 아비 덕에 음직으로 관직에 진출한 뒤 급제하기 위해 부정행위를 하고, 온갖 진귀한 물건들을 가로채고, 왕에게 도토리 20만석을 구해 백성을 구휼했다며 거짓말까지 한다. 어이없다 못해, 쓴웃음까지 난다. 신숙주의 강력한 지지로 왕권에 오른 성종, 과연 그는 신정을 어떻게 처리할까?

<설화, 역사를 뒤바꾼 치명적 말실수>, 흥미로운 책이다. 소설처럼 부드럽게 읽히고, 인물들의 대화역시 생생하다. 기존 역사관련 책과는 분명 다르다. 역사에 관심 있지만,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하셨던 분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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