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관의 살인 3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권일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 있음

구시렁 구시렁대며 <암흑관의 살인>을 다 읽었다. 1권을 읽고 과연 2,3권을 읽어야 할지 잠깐 고민했지만 읽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야 말로 아야츠지 유키토 '관 시리즈'의 원류임을 알았기에. 하지만,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만약 누군가 이 작품에 대해 묻는다면, '지루한 작품'이라고 답해 주겠다. 200자 원고지 6000매라는 어마어마한 분량만큼이나 단점이 너무 많다. '지루함, 설정(트릭)의 억지스러움, 시점변화의 어색함-을 포함한 잦은 시점변화'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인 단점이다.

3권은 우라노 겐지가 츄야에게, 우라도家 및 자신의 성장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겐지의 진술을 통해 2권에서 츄야가 정리했던 의문 상당수가 해소된다. 의혹이 해소되고 진실이 밝혀진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할 수밖에 이 부분이 안타깝게도 늘어진다. 겐지의 이야기는 장황하고, 많은 것을 숨기고 (사실 겐지도 아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인물트릭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있어 답답하기까지 하다.

아무튼, 겐요ㆍ다쿠조 죽음의 비밀, 암흑관에 발생한 대형화재, 달리아의 정체 및 '달리아의 밤'때 먹었던 '살'의 정체(p.103이하), 미도리ㆍ미오 샴쌍둥이 자매의 비밀(p.309이하), 에나미의 정체(p.422이하)등이 차례로 밝혀진다. 겐요, 달리아 부부의 충격적인 행각에 경악해 버렸다. 부부가' 다른 영역'(?)에서 어찌나 경악할 짓거리를 했던지…대단하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인물트릭'이다.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의 이르는 병>을 연상시키는 인물트릭이 두 차례 사용된다. (가와미나미 / 에나미, 겐지 / 다다노리) 약간 억지스럽기도 하지만 분명 인상적이었다.

'가와미나미 / 에나미' 인물트릭은 이 작품의 핵이다. 내용구성의 뼈대인 것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엄청난 문제점이 대두된다. 나중에 언급) 또한 사실상 주인공인 '츄야'의 정체(p.552) 역시 인상적이다. 처음 이 작품이 '관 시리즈의 원류'라고 언급한 것은 바로 츄야의 정체를 염두에 둔 것이다. (말하고 싶어 근질대지만, 하지 않겠다.)

<암흑관의 살인>을 읽으면 아쉬웠던 점을 살펴보겠다. 첫째, 시점변화의 어색함 및 잦은 시점변화.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 본다. 일단, 아야츠지 유키토가 어떻게 시점을 변화시키는지 보자. '시점은 일단 겐지를 떠나 같은 날 밤의 다른 장소로 날아간다. (중략) 시점은 이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제3자의 시점으로 공간을 떠다니며 그곳의 광경을 바라본다.'(p.37) 저자는 '시점'이 자유의지를 가진 것으로 전제하고, 변사처럼 이야기한다. 이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다. 저런 시도도 할 수 있겠지. 저자는 200자 원고지 6000매 분량을 하나의 시점으로 끌고 가기 어렵다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시점변화의 어려움을 저런 식으로 얼버무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잦은 시점변화와 맞물려 이야기 흐름을 뚝뚝 끊어버린다. 이는 스토리에 몰입할 수 없게 하고 지루하게 만든 원흉이다.

시점에 대해서는 더 할 말이 있다. 물론 시점 자체를 하나의 트릭으로 볼 수도 있다. 인물트릭과 맞물려 가와미나미의 꿈 혹은 미스터리한 플래시벡은 곧 '시점'인 것이다. 즉, 생명력을 가진 변화무쌍 시점은 가와미나미의 꿈 혹은 미스터리한 플래쉬벡 속에서 가와미나미 시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위에서 이야기한 '시점변화의 어색함'은 실험적 설정에서 오는 불가피한 결과가 된다. 이 부분은 좀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우호적으로 바라본다고 해도, 잦은 시점변화 때문에 뚝뚝 끊어진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시점 변화는 빈도는 2권<3권<1권 순인데, 이는 몰입도와 정확히 반비례한다.)

둘째, 이야기의 장황함 및 등장인물의 소비. <암흑관의 살인>을 차라리 한권 분량으로 임팩트하게 서술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이야기가 지나치게 늘어지고 (특히 1권), 대화는 장황하다. 굳이 등장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인물도 여럿 등장해 흐름을 산만하게 한다. '이치로'. 이치로는 이야기 속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 버렸다. 초반 이치로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이런 생각을 품게 한다. '혹시 이치로는 겐지, 에나미, 츄야의 어린시절과 관련 있지 않을까? 즉, 이들이 상실한 기억의 일부가 바로 이치로의 모습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치로는 생뚱맞게 그냥 이웃이다. 이치로는 굳이 등장할 이유가 없다. 우연하게 이치로가 목격한 것, 이치로와 신타의 우정, 스토리의 소비일 뿐이다. 특히 결말 즈음에 언급되는 이치로와 신타의 우정은 전혀 공감할 수 없다. 감정이입 자체가 안 된다. '이사오'나 '세이쥰'의 역할이 미미한 것도 아쉽다. 용의점을 부여해 좀 더 미스터리를 강화했다면 하는 아쉬움. 아예 빼 버리던가.

셋째, 인물트릭을 포함한 스토리전개의 억지스러움. 저자는 인물트릭을 위해 설정의 공교로움을 감내한다. '이 정도는 봐줄만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돌이켜 생각하면, 우연성, 억지스러움이 너무 심하다. '가와미나미 / 에나미' 트릭을 보자. 우라노家 사람들이 에나미로 부르는 암흑관에서 부상당한 정체불명의 청년, 가와미나미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왜? 가장 큰 이유는 달리아의 시계, 즉 T.E라고 적혀 있는 시계 때문인데, 공교롭게도 둘 다 이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름 역시 공교롭게도 江南로 같다. 참, 공교로움의 연속이다. 거기다, 부상당하는 상황과 장소역시 같다. 에나미=가와미나미 공식에서 자유로웠을 독자는 아마 없을 것이다. 뭐, '달리아의 뜻'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넷째, 설정의 비윤리성. 소설의 설정을 두고 '윤리'니 뭐니 따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암흑관의 살인>의 설정은 도가 지나치다. '아버지가 딸을 강간하여 임신시킨다. 딸은 그 아이를 출산하고, 아버지는 또다시 딸이 출산한 아이마저 강간한다.' 말하기도 역겹다. 또 '어머니를 살해하고, 살은 염장鹽藏 보관하고 뼈는 가루를 내, 온 일가식구들이 해마다 먹는다.'는 것은 더 대단하다.

다섯째, 세부설정에서 아쉬웠던 부분. 미도리ㆍ미오 샴쌍둥이 자매의 비밀을 고려할 때,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츄야가 아무것도 알아채지 못할 수 있을까? 뭔가 위화감을 느꼈을 텐데. 또한 달리아가 수많은 마을 사람들을 살해하는 동안, 경찰등 사법기관은 뭘 하고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암흑관에 대한 소문까지 나돌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더욱. 또한 달리아의 살을 먹으면 영생한다는 설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부활한 겐요등과 연관 지어서 말이다.


 * 책 표지나 오노 후유미가 작성한 도판은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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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1-07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진짜 설정이 막나가네요..ㅇ.,ㅇ;; 저도 도덕관념과 소설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심하다는...=_=;
쥬베이님이 별을 이렇게 짜게 주시는 경우는 처음봤습니다.+_+;
아무래도 구매를 다시한번 생각을....허허

쥬베이 2008-01-07 15:56   좋아요 0 | URL
아 시즈님^^
뭐낙 일본소설에 빠져 있어서 웬만한 설정은 그러려니하는데, 암흑관은 좀 심하더라구요. 우라도 집안자체가 강간에, 불륜에, 거기다 어머니의 살을 먹지 않나...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조금이라도 읽어보신 다음에 사세요. 잘못하면 엄청난 후회를 하실지도 몰라요~ 십각관, 시계관은 무척 재밌었는데....
 
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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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 노통브 작품 중 '최악'이다.

일단 설정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설정의 독특함, 합리성 차원을 떠나, 당최 이해할 수 없다. 느닷없이 살인청부업에 빠져 버린 사내, 자기 일기장을 가져 갔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살해한 소녀, 뭘 이야기하려는 걸까? 등장인물이 뚜렷하게 부각되는 것도 아니다. 위르뱅(이노상)과 소녀는, <오후 네 시>의 '베르나르뎅', <살인자의 건강법>의 '프레텍스타 타슈'같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도 아니다.

아멜리 노통브의 장기, 정신을 빼놓는 '신랄한 대화'가 오갔다면 그런데로 봐줄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화도 약하다. ('인사부장인 듯한 사내'와 '이노상'의 대화가 오가는 p.116이하는 예외. 하지만 이 몇 페이지를 제외한 대부분에서 아멜리 노통브의 장기를 엿볼 수 없다.)

제목에 등장하는 '제비'는 p.85이하에 등장한다. 위르뱅은 죽은 새끼 제비를 자신이 죽인 소녀와 일치시킨다. 이렇게 이야기한다. '네가 누구였는지, 네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애타는 나, 너를 제비라 부르마. 그야말로 네게 딱 어울리는 이름. 제비란 이름을 가진 아가씨는 너 말고 아무도 없으니까.'(p.88) '제비 일기'란 바로 그 소녀가 아버지를 죽인 원인이 된 일기를 말한다. '유리'일파가 이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으로 보아, 뭔가 깊은 비밀이 있는 듯도 하나, 더 이상 언급되지는 않는다.

'유리'일파에게 잡혀 구금된 이노상이 '제비 일기'를 한장씩 뜯어 먹으며, 이런 말을 한다.

'이 글은 한 미치광이가 뒤죽박죽으로 풀어낸 풀어낸 사랑 이야기이다. 제비와 함께한 사랑 이야기는 시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끝은 최고로 좋을 것이다. 왜냐, 영원히 끝나지 않을테니까. 나는 제비를 먹음으로 해서 죽어가고 있다. 그 애는 내 뱃속에서 천천히 나를 죽이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그러나 결코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 고통을 주면서. 나는 그애의 손을 잡고 죽어간다. 왜냐, 나는 글을 쓰고 있으니까. 글쓰기는 내가 제비와 사랑에 빠진 곳. 이 글이 끝나는 순간 나는 죽으리라.'(p.128) <제비 일기>도 끝나 버린다.

128페이지 책이 8000원이란 것부터, 내용까지, 실망만 한 가득 안긴 책이다. 아멜리 노통브에 대한 내 기대가 순간 무너졌다. 하지만, 여전히 난 아멜리 노통브의 팬이다. 매몰차게 돌아서기엔 그녀가 내게 준 믿음이 너무나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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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8-01-0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뭔가 슬럼프일까요. 저도 그제 황산을 읽었는데, 그다지...~.,~
제발 1년에 한권씩 안내도 좋다!!라고 언론에서 말한다던데, 그말이 왠지 이해가....(소설을 쓸만한 아이템이 있다기보다는 의무감에 쓰는것같은 느낌도 가끔 들고...)
아멜리 노통브는 재밌기는 한데, 뭐 어쩌라는 건지 모를 정도로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들이 몇개씩은 나오는 것같아요. 그래도 재밌는 건 또 재밌으니 안읽을수도 없고..음..

쥬베이 2008-01-05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습작했던걸 손질해서 내놓는 것 같기도 하고...
자전적이야기가 아니면, 힘들어 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아멜리 노통브 안 읽을 수 없죠^^
 
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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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는 약점이 많은 부위다. 덮개가 없는 구조여서 더 그렇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기어이 듣게 되고 들어야 하는 이야기는 반드시 놓히고 만다. 모두들 가는 귀가 먹었다. 절대음감을 가졌네 어쨌네 하는 사람들조차도. 음악의 기능중 하나는 우리네 인간으로 하여금 그 덜떨어진 기관을 제대로 지배하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하는 것이다.-17쪽

짝사랑에 미쳐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예전에 나는 그런 광란적인 짝사랑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끔직한 방법을 쓰곤 했다. 그 방법이란 게 무엇이냐, 짝사랑의 대상을 '심층연구'하는 것이었다. 즉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다보면 짝사랑의 열기는 급속도로 식어가게 마련이었다. 대상들은 십중팔구 가공의 인물을 연기하고 있었으니까. 그 사실을 파악하는 순간부터 연구 주제는 지극히 단순해지면서 나는 그 미친 사랑으로부터 쉽사리 빠져나올 수 있었다.-51쪽

네가 누구인지. 미안하다, 그래, 미안하다. 너를 내 품에 안을 수만 있다면. 내 비록 너를 무참하게 망가뜨렸지만, 너를 품에 안아 네게 내 온기를 전해줄 수만 있다면. 네가 누구였는지, 네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애타는 나, 너를 제비라 부르마. 그야말로 네게 딱 어울리는 이름. 제비란 이름을 가진 아가씨는 너 말고 아무도 없으니까. 생기발랄한 아가씨에게 꼭 알맞는 이름, 제비. 왜냐하면 제비만큼 생기발랄한 것도 없으니까.-88쪽

읽을거리가 성스러운 성격을 띠기 위해선 성경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읽히거나 그 반대로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아야 한다. 물론 읽히지 않는다는 다 성스런 책이 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책들을 성스럽다고 해야 할 것인가. 중요한 건 글을 쓴 사람이 그 글을 얼마나 절실히 숨기고 싶어 하는가이다. 얌전하기 짝이 없던 한 아가씨가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제 아버지를 죽이기까지 한 것으로 볼 때 '제비 일기'만큼 성스러운 책이 또 있을까.-99쪽

이 글은 한 미치광이가 뒤죽박죽으로 풀어낸 풀어낸 사랑 이야기이다. 제비와 함께한 사랑 이야기는 시작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끝은 최고로 좋을 것이다. 왜냐, 영원히 끝나지 않을테니까. 나는 제비를 먹음으로 해서 죽어가고 있다. 그 애는 내 뱃속에서 천천히 나를 죽이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그러나 결코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 고통을 주면서. 나는 그애의 손을 잡고 죽어간다. 왜냐, 나는 글을 쓰고 있으니까. 글쓰기는 내가 제비와 사랑에 빠진 곳. 이 글이 끝나는 순간 나는 죽으리라.-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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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에게 물을 (양장)
새러 그루언 지음, 김정아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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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콥 얀콥스키란 노인이 있다. 그의 나이는 아흔살 혹은 아흔 세살. 맛없는 영양식보단, 고기찜 요리, 껍찔째 삼은 감자, 자루에 박힌 옥수수를 먹고 싶어하고, 잘난체 하는 전직 변호사 맥긴티를 보며 광분하는 다소 괴팍한 노인. 그렇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코끼리에게 물은> 제이콥 얀콥스키가 회상하는 1920,30년대 서커스단 이야기와 현재가 번갈아 서술된다.

제이콥 얀콥스키는 코넬 대학(p.103)에서 수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서커스와는 전혀 무관할 거 같은 그에게 충격적 사건이 발생한다. 그의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p.34). 얍콥스키는 충격에 휩싸인다. 시험도, 섹스도, 그 무엇도 그에겐 무의미할 뿐이다. 그는 무작정 열차에 오른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뭔가에 이끌려…. 얀콥스키는 열차안에서 이상한 사내들과 맞닥드리고, 블래키란 사내에겐 구타당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도대체 누굴까? 이들은 바로 '벤지니 형제 서커스단'의 일원이며, 얀콥스키가 탄 열차는 바로 이들의 서커스 열차였던 것(p.54)이다. 얀콥스키와 서커스와의 만남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독특한 것이 있다. 그건 바로 소설임에도 다양한 사진자료가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을 통해 이야기의 배경인 1920,30년대 분위기에 흠뻑 젖을 수 있었다. 인상적인 사진은, 서커스단으로 보이는 인물들을 찍은 사진(뚱보여성이 특히 인상적 p.122), 불쌍해 보이는 코끼리 사진(p.220), 미녀와 공연중인 코끼리 사진(p.398)등이다. 저자가 이 책을 위해 얼마나 철저하게 자료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했는지는 저자의 말 p.547이하 참조)

서커스단과 우연하게 함께하게 된 얀콥스키, 하지만 그에게 처음 주어진 일은 말똥 치우기(p.66)였다. 언제쯤 화려움의 중심에 설까? 그는 서커스단 단장인 '엉클 엘'과 만나고 단장은 그가 수의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에게 동물 진찰을 맡기기로 한다.(p.104) 달리는 기차에선 수의사를 부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얀콥스키는 수의사 대리 겸 일꾼으로 당당히 서커스단의 일원이 된다.

한가지 의문이 생길지 모른다. '제목엔 코끼리가 언급되는데, 도대체 코끼리는 언제 나오는 걸까?' 조금만 기다려 보시길^^ 코끼리는 p.212부터 등장한다. 단장이 거금을 들여 로지란 이름의 코끼리를 구입한 것이다. 단장은 최고의 수확이라며 좋아하지만, 서커스단의 오거스트는 떨떠름할 뿐이다. 과연 얀콥스키는 어떤 일을 겪을까? 로지와는 어떤 인연으로 이어질까? 새러 그루언의 글에 가만히 몸을 실어보자.

<코끼리에게 물은>은 흥미롭다. 새러 그루언의 경쾌한 문장과 서커스라는 독특한 소재가 미국의 1920,30년대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려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꼭 한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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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주다
와타야 리사 지음, 양윤옥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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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주다>의 최대 장점은 '쉽게 읽힌다'는 것이다. 가볍다는 의미가 아니다. 흥미롭고, 문장 하나하나 깊게 가슴에 와 닿는다. 어느새 이야기속에 몰입해 버려 편하게 읽을 수 밖에 없다. 아쿠타가와 상 수상이후 오랜 공백기를 가졌던 와타야 리사, <꿈을 주다>로 화려하게 돌아왔다.

<꿈을 주다>는 아역배우로 국민적 인기를 끌게 된 유코의 성공과 몰락을 그리고 있다. '몰락의 원인'에서 국내 인기 여배우의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주목할 것은, 유코의 모습에서 와타야 리사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유코 = 와타야 리사' 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인기스타가 되어버린 유코, 고등학교 2학년때 문예상을 받고, 아쿠타가와 상도 최연소 수상한 와타야 리사, 그들의 고뇌는 무엇일까? 너무 높이 올라가 버렸기에 자칫 잘못하다간 떨어져 버리리란 두려움,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 숨이 막힌다. 와타야 리사는 이야기 곳곳에 유코가 느끼는 불안을 드러낸다. '타들어가는 불안, 마음의 깊은 안쪽에 자리 잡은 불안이 늘 생활 여기저기에 질척거리는 입을 벌리고 있었다.'(p.178)

유코의 부모 토마(토마는 프랑스 혼혈이다.), 미키코의 사랑과 갈등, 우여곡절 끝 결합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미키코의 놀라운 계략(^^p.20)과 어쩔 수 없는 토마의 선택은 이후 벌어진 갈등관계를 암시한다. 그러던 중 유코가 태어난다. '유코는 마치 무지개에서 이 세상에 뚝 떨어진 것처럼, 거의 비현실적일 만큼 예쁘고 완벽한 아기였다. 투명하게 흰 살결에 목이며 다리며 두 개의 팔이 모두 소시지처럼 톡 터질 듯 통통하고, 큼직한 눈에 동그스름한 얼굴은 태어난 지 두 달 만에 이미 미소를 기억해서 침에 젖은 앙증맞은 입 사이로 늘 핑크빛 혀가 내보였다.'(p.25) 유코의 천성적 사랑스러움(p.21참조)은 두사람을 바꾸어 놓았지만, 이는 일시적일 뿐이다.

유코가 본격적으로 연예계와 인연을 맺는 것은 '스타치즈 CF'다. 스타치즈측은 발매 30주년을 기념해 독특한 CM을 기획한다. 소녀를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기용해 그 아이가 스타치즈를 먹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기록한다는 것.(p.38참조) 유코는 스타치즈를 통해 서서히 인지도를 넓혀간다. 마치 TTL소녀처럼 신비스럽게…. 유코를 국민적 인기스타로 발돋음하게 해준건 뜻밖의 사건이다. 같이 활동하던 걸스클럽 멤버 아케미가 레이서도전기 촬영중 사고사한 것. 유코는 슬픔에 빠져 장례식에 참석한다. 수수한 교복차림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던 그녀에게서 시청자들은 눈물을 쥐어짰다.(p.192참조) 이제 유코는 1년 스케줄이 쫙 잡혀있는 최고 스타로 거듭난다.

토마와 미키코의 갈등은 이야기의 작은 축이다. 토마는 자신이 '일생의 친구'라 부르는 프랑스 여인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미키코는 이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의 갈등속에서 유코는 힘겨워 한다. 이런 갈등이 어떤 의미인가는 깊게 생각해 볼 만한 문제다. 하지만, 난 일단 이 정도로 그치겠다.

또하나 생각해 볼 것은, 유코의 연예활동에 적극 개입하는 미키코의 행동이다. 이를 자신의 욕망을 대리충족하는 이기적인 발로로 봐야 할까, 아니면 딸을 걱정하는 애정의 과잉으로 봐야 할까? 남편과 사실상 헤어지고 유코만을 바라보는 미키코로서는 모든 걸 유코에게 바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미키코와 유코의 관계, 단순히 모녀관계라고 말하기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꿈을 주다'라는 제목을 생각해 보자. 유코는 인터뷰에서 '어른이 되면 텔레비전을 보는 이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여배우가 되고 싶어요'(p.179)라고 답한다. 습관적으로 내놓은 뻔한 답변. 그녀는 생각한다. '꿈을 준다'란 건 뭔가 이상하다고. "'준다'라는 말이 결정적으로 이상한 거야. 쌀은 안 되는데 꿈이라는 건 당당하게 '준다'라는 식의 오만한 말투가 허락되다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애초에 이런 때의 '꿈'이란 게 무엇인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어지간히도 많이 떠들어왔지만."(p.180) 유코는 엄청난 경험을 한 뒤에야 '꿈을 준다'의 의미를 어렴풋이 느낀다. ''꿈을 준다'는 것의 꿈은 언제까지고 '타인의 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꿈을 주는 쪽에서는 꿈을 꾸어서는 안 된다.'(p.379)라고.

 

* 유코를 몰락시킨 충격적 사건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와 연관된 어설픈 사랑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직접 읽어 보시길.

* 도서관에서 읽은 다음, 소장가치 충분한 작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구입하지는 않을 것이다. 책 뒤쪽에 잡지에서나 볼 수 있는 광고가 실려 있다. 중앙books, 다시는 저런거 실지 말길 바란다. 도대체 저건 뭐란 말인가? 사고 싶지만, 사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쇄를 바꿀때 저거 빼는지 안 빼는지 살펴보고, 사라졌으면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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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2-0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타야 리사, 정말로 훅이 있는 작가인가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 몇 개월째 책장에서 쉬고 있다는... 쥬베님 리뷰를 보니 들쳐는 봐야겠다는... 분량도 많지 않고요^^

쥬베이 2008-02-02 21:05   좋아요 0 | URL
저는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인스톨>, <꿈을 주다> 전부 인상깊게 읽었어요.
공감하는 점도 많고, 재미있기도 하고...좋아하는 작가랍니다^^
뭐낙 호오가 갈리는 작가라, lazy devil님껜 어떨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