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 2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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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엔 <모방범>에서 대활약했던 르포라이터 마에하타 시게코가 재등장한다. 모방범사건이후 9년이라는 시간적 설정부터, 곳곳에 남아있는 생채기까지, <낙원>을 <모방범>의 후속편으로 봐도 큰무리는 없다. 마에하타 시게코란 인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야베 미유키는 "쓰는 것이 직업인 마에하타는 여러 면에서 저와 공통되는 점이 많다"(문예춘추)고 말할 정도로 이 인물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난 소설 속 마에하타의 모습에서 어느 순간, 미야베 미유키를 발견했다.) 그렇기에, 마에하타 시게코가 등장하는 작품은 결코 <모방범>, <낙원>으로 끝나지는 않을거라 믿는다. 마에하타 시게코 시리즈의 대폭풍을 예견하는 건 너무 성급한 것일까?

마에하타 시게코 앞에 하기타니 도시코가 나타난다. 도시코는 죽은 아들(히토시)이 초능력자였다면서 아들이야기를 기사로 써달라고 부탁한다. 도시코는 그 증거로 히토시의 스케치북과 노트를 보여주는데, 거기엔 자신의 사고를 예견하는 듯한 트럭그림, 떠들석 했던 살인사건(부모가 딸을 살해하고 집 마루에 16년간 숨겨왔던 사건)을 연상시키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시게코는 과연 이 문제에 개입해야 할지 고민한다. 모방범사건의 충격에서 조금씩 벗어나 안정을 찾아가던 시게코에게 생면부지 소년의 초능력따위를 조사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충격적인 그림을 보고야 만다. 소년은 모방범사건의 연쇄살인범들이 아지트로 썼던 산장(p.127)과 그들이 묘비 삼았던, 일반에게 공표되지 않은 페리뇽 병(p.138)을 그려 놓았다.

시게코는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히토시가 어떻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었는지. 가능성은 두가지다. 히토시가 정말 초능력자이었던가, 어떤 계기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을 알게 되었던가.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볼 것이, 왜 시게코는 히토시에 대해 조사하려는 것인가이다. 물론,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위에서 이야기한 모방범사건 관련 그림때문이다. 여기에 조사를 원하는 어머니 도시코의 착실한 행동거지, 간절한 바램과 아직 아이가 없는 시게코, 쇼지의 상황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한다.

시게코는 먼저 하기타니家의 내력을 조사한다. 도시코가 말하는 자신의 가족, 성장, 히토시의 출생은 충격적이다. (이와 유사한 이야기는 <이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읽으며 이 부분이 지나치게 자세해 의아했는데, 의도적인 것이었다. 미야베 미유키의 말을 들어보자.

"특별히 의식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1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하기타니 집안의 과거」는 굉장히 쓰고 싶었던 부분이었습니다. (중략) 하기타니 집안에는 치야라는 가장이 있었고, 그녀가 '천리안'의 소유자였다는 건 소설이기에 가능한 과장된 표현이지만, 아무튼 그녀의 영향력 아래에서 도시코는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 갔습니다. 우리들은 가부장제를 악습이라고 비판하지만, 개인의 자유만을 존중해도 문제가 생기고 전부를 가장의 뜻에 따르더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고는 할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이런 생각을 표현해보고 싶어서 하기타니 집안의 역사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게 되었습니다."(문예춘추)

즉, 가부장제가 공고한 '하기타니家'의 모습(치야의 영향력-->도시코 억압)과 가부장제가 붕쇄된 '도이자키家'의 모습(도이자키 겐의 영향력-->아카네 통제불가)을 동시에 그려가면서, 가부장제와는 무관하게 발생하는 가족내 문제를 균형있게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아무튼 조사는 계속된다. 히토시를 가르쳤던 이토선생, 하나다선생을 만나고(p.239이하), 아카네 살해사건을 담당했던 노모토 형사를 만나고(p.283이하), 아카네부모를 변호했던 변호사 다카하시까지 만난다.(p.332이하) 이런 일련의 흐름은 세키네 쇼코를 추격하던 <화차>와 유사하다. 근래 출간된 미야베 미유키의 다른 작품을 접하며 아쉬움과 일종의 배신감까지 느꼈던 나로서는 이는 다행스럽고, 즐거운 일이었다. 한마디로, <낙원>은 가장 미야베 미유키적인, 미야베 미유키만의 작품인 것이다.

처음 히토시의 미스터리한 그림과 초능력에 초점을 맞추던 시게코의 조사는 점점 방향을 달리한다. 초점이 히토시의 그림에 등장했던, 부모가 딸을 살해한 아카네 살해사건으로 향한다. 특히 아카네의 여동생 세이코와의 만남, 의뢰(p.373)와 히토시의 능력에 대한 시게코의 결론(p.435 구체적으로 무었인지는 말하지 않겠다.)이후로는 아카네 살해사건만이 이 작품의 주요사건으로 부각된다. 이후 조사과정에서 밝혀지는 아카네의 비행행각, 남자친구 시게, 여기저기 빛을 지고 있던 아버지 도이자키, 푸른하늘 모임의 숨겨진 비밀 등등. 시게코는 서서히 숨겨진 진실로 접근한다.

구성상 주목할 것은 중간중간 짧게 삽입되어 있는 '단장'이다. 단장은 초등학생 미키가 통학로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는 내용(역시 자세한 언급은 피하겠다)인데, 굉장히 짧은 터치로 그려지기 때문에 미스터리함이 배가된다. 읽는 입장에서는 여러 의문점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미키란 아이는 누굴까? 발견한건 뭐지? 시게코가 조사하는 사건과 단장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등등. 이런 의문은 결말에 가서야 해소된다. 미야베 미유키다운 노련한 구성.

<화차>를 너무나 사랑했기에, 이 작품을 능가할 작품은 앞으로 나오지 않을거라 믿었다. 저것이 미야베 미유키의 정점이라 믿었다. 하지만, 성급한 판단이었다. <낙원>을 읽고난 지금, 난 미야베 미유키의 정점에 서있다. 지금까지 일본소설에 했던 모든 코멘트를 유보한다. 모든 것은 <낙원>의 아래에서 재정립되어야 한다.

 


* 왜 제목이 '낙원'일까? '낙원'은 어떤 상징성을 가질까? 낙원의 의미는 가족과 관련지어야 할 것 같다.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모두 정상적인 가족관계와는 거리가 있다. 도시코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치야에 의해 인생을 망쳤고, 세이코는 부모와 자녀(아카네)의 갈등 틈바구니에서 상처를 입었다. 또한 시게코조차도 아이의 부재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도시코가 히토시를 추억한 것이나, 도이자키가 딸을 살해한 것이나, 결국은 화목한 가족공동체에 대한 희구가 바탕에 있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미야베 미유키는 억압적인 가부장제 가족이던, 아버지가 없는 편모가정이던,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있는 가정이던간에, 가족간의 사랑과 이해가 넘치는 화목한 가족공동체를 낙원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조금 모호하지만, '낙원'의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의 답을 들어보자. "가족 중 누군가가 버림받음으로써 그걸 계기로 당사자를 제외한 가족들이 하나로 뭉쳐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현실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중략) 무언가를 내치지 않고는 행복해질 수 없는, 그런 낙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교리는 잘 모르지만 아담과 이브가 추방당했다는 그 낙원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심이 가요. 일본의 토착종교나 불교 등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이니까요."(문예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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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07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요한 뼈는 모두 추려주셨지만 역시 미미님의 책은 읽어야만할 의무감이 넘치는 작품인것 같네요. 리뷰가 자세해서 보는 저는 좋지만 길어서 쓰는데만도 고생하셨을듯^^

쥬베이 2008-07-07 10:16   좋아요 0 | URL
자세해서 읽기도 힘드시죠?ㅋㅋㅋ
재미있게 읽어서 쭉쭉 쓰다보니 길어졌어요.
미미여사님 팬이라면 <모방범>과 더불어 꼭 읽어야 할 책입니다^^
 
배터리 1 - 청소년 성장 장편소설 아사노 아쓰코 장편소설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해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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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성장소설은 언제 읽어도 재미있다. '성장'이란 어느 정도 보편성을 가지기에, 이야기속 주인공의 모습에서 자신의 유년시절을 발견해 낼 수 있다. 자연스럽게 추억을 되새기는 것이다. <배터리>의 다쿠미와 고의 만남, 학업과 운동을 놓고 벌이는 부모와의 갈등등은 나 역시 경험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며 소설속 다쿠미나 고가 되어 자연스럽게 '어린시절의 나'로 되돌아 갔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듯한 환상적인 경험, 놀랍지 않은가?

<배터리>는 성장소설이 가져야 할 요소를 모두 갖춘 '모범적인 성장소설'이다.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면 '너무 뻔하지 않아?' 할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이나 구성은 성장소설의 전형,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삐딱하게 볼 이유는 없다. 어차피 <배터리>는 성장소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히로시)의 갑작스런 전근으로 히로시마의 변두리 닛타로 가게된 가족들. 막내 세하는 간만에 자동차여행에 들떠 있지만, 다쿠미는 배터리였던 오사무와 헤어지게 된 것이 조금은 아쉽다. 닛타는 부모의 고향인 곳으로 외할아버지 요조가 살고 있다. 유명 고교야구 감독이었던 요조는 다쿠미와 세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야구는 혼자하는 운동이 아니다. 다쿠미는 자신의 공을 받아줄 누군가를 원했고, 한 소년이 운명처럼 나타난다. 의사 아버지를 둔 부잣집 아들, 나가쿠라 고. 이들은 한눈에 멋진 콤비가 될 것임을 예감한다. "당연히 배터리지. 벌써 정해진 거나 다름없어"(p.64)를 외치는 고, 앞으로 펼쳐질 다쿠미와 고의 뜨거운 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6권으로 이어질 대장정의 시작인지라, 커다란 사건보다는 등장인물간 만남과 성격묘사에 비중이 크다. 다쿠미는 승부욕에 불타는, 어떻게 보면 시건방진 모습을 자주 보인다. "내가 던질 수 없는 공을 다른 애들이 던지는 건 절대로 참을 수 없어."(p.32)라던지, 자신감에 넘쳐 미리 던질 공을 알려주고 던지는 모습(p.117)등, 만약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저런 아이를 만났다면 결코 좋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도 하나의 설정이다. 즉, 저자는 자신만을 믿는 독불장군에서 친구와의 우정을 알아가는 캐릭터를 그려가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더 극적이지 않는가?

갈등이라고 할만한 것도 등장한다. 바로 부모와의 갈등이다. 부모(세하의 어머니 마키코, 고의 어머니 세쓰코)는 자식이 야구보다는 학업에 전념하기를 바란다. 특히 세쓰코는 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의사가 되길 희망한다. 심지어 다쿠미한테 '고가 야구를 그만두게 도와달라는 부탁'(p.144)까지 한다. 그런 세쓰코에게 다쿠미가 따끔한 한마디를 던진다. "아주머니, 야구란 남이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하는 거에요."(p.147) 이 자식, 시건방진 줄만 알았는데 저런 멋진 면도 있다. 마키코 역시 세하가 형을 따라 야구를 하겠다고 하자, 극렬 반대한다. 동생을 야구에 끌여들였다고 다쿠미와 얼굴을 붉혀가면서까지. 역시 운동을 함에는 한국이나 일본이나 집안의 반대에 맞닥뜨리는 경우가 많구나.

아무튼, 다쿠미와 고 배터리는 꾸준히 호흡을 맞추며 우정을 쌓아간다. 그외 닛타히가시 중학교 야구부 멤버들과는 점점 친해지는 다쿠미. 이들이 보여줄 우정과 감동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배터리'가 어떤 의미인지 모를리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떤 의미인지 고개를 갸웃할 지도 모르겠다. 배터리는 야구의 투수와 포수를 함께 일컫는 말이다.

* 야구를 소재로 하는 스포츠 성장소설이라, 야구에 대해 알고 있으면 읽는데 도움이 된다.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극히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지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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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07 0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장소설이 6권까지 된다니 굉장히 긴 호흡으로 읽어야 될듯 하네요.

쥬베이 2008-07-07 10:16   좋아요 0 | URL
네^^ 그런데, 책이 아주 앏아요.
보통 책 3권 정도라고 보시면 될거에요^^
 
연을 쫓는 아이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 / 열림원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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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성장소설을 좋아한다. 성장과정은 그 자체가, 인생이라는 하나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장과정을 돌아보며 유년을 추억할 수도 있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의 할레드 호세이니, 성장소설, 도저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합니다. <연을 쫓는 아이>를 손에 잡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책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 올지를….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연을 쫓는 아이>가 내게 준 충격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조건적인 하산의 헌신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하는 아미르의 고뇌속에서 마냥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다.

<연을 쫓는 아이>가 아미르의 성장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라면, 그 맞은편엔 하산이 있다. 아미르와 하산의 관계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이 작품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둘의 '관계'라고는 했지만, 하산은 관계를 이끌어 갈 능력이 없는 캐릭터이다. 따라서 하산을 대하는 아미르의 변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하산에 대해 살펴보자. 하산은 바바家에 하인처럼 살고 있는 알리와 행실이 불량한 사나우바르 사이에서 태어났다. (혹은 태어났다고 알려졌다. 뒷 내용과 균형을 맞추자면) 신분이 미천한데다, 소수인 하자라인인데다, 언청이기까지 했다. 가엾은 운명을 짊어지고 태어난 하산이지만, 마음씨는 천사였다. 살아있는 천사, 하산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한 부분을 보자. '하산은 태어날 때조차도 천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산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 상처를 주지 않았다. 사나우바르가 몇 번 신음 소리를 내고  두 번 힘을 주자 하산이 나왔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웃고 있었다.'(p.21)

하산은 아미르의 식사준비를 하고, 옷과 신발을 정리하고, 모든 뒤치덕거리를 한다. 바바는 아미르와 하산을 최대한 평등하게 대해주지만, 사회적인 여건은 뭐낙 뿌리깊었다. 하산과 아미르는 친구처럼 어울려 놀았지만, 결코 친구는 아니었다. 아미르는 '하산을 친구로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p.42)고 말한다. 함께 어울리고, 웃고, 떠들어도, 인종적 차이(파쉬툰인과 하자라인)와 경제계급적 차이(사실상 주인과 하인관계)를 넘어설 수는 없던 것이다. 하지만 아미르는 하산과의 관계설정을 상당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하산을 친구처럼, 친구보다 더, 아니 형제처럼 대했다. 그러나 (중략) 왜 우리 놀이에 하산을 끼워주지 않았을까?'(p.66) 이처럼 형제보다 더 가깝지만, 결코 친구는 아닌 이상한 관계에 아미르 자신조차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관계에 첫번째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아세프 일당과 관련이 있다. 연싸움에서 승리를 하고 즐거워하던 아미르와 하산. (겨울철 행해지는 연 날리기 전통과 연싸움대회에 관한 p.80이하 부분은 상당히 아름답다. 하지만 이는 또한 비극의 전조이다.) 승리의 기념 연을 쫓던 하산은 아세프 패거리에게 붙잡힌다. 하자라인인 하산과 알리를 놀려대고 괴롭히던 이들은 하산에게 차마 저지를 수 없는 만행을 행한다.(p.111이하) 위기에 빠진 하산을 찾아나선 아미르, 아미르는 모든 것을 봤다. 아세프의 역겨운 얼굴과 체념한 하산의 얼굴, 그 모든 것을.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이후, 관계양상은 변화한다. 아미르는 하산을 의도적으로 멀리한다. 왜 그랬을까? 하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이다. 하산을 보면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기에. 아미르는 더욱 충격적인 '음모'를 꾸며 알리와 하산을 궁지에 몰아 넣는다.(160이하) 그러나, 하산은 그런 아미르조차 감싸준다. 비열하고 치사하기까지 한 아미르를 하산은 감싸준 것이다. 그리고 알리와 하산은 바바家를 떠난다.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흘러, 소설가로 성공한 아미르는 아버지의 친구 '라힘 칸'의 연락을 받고 파키스탄에서 그를 만난다. 라힘 칸을 통해 아마르는 하산이 남긴 편지를 전해 받는다.(p.322이하) 하산이 얼마나 아미르를 생각하고 아꼈는지 알 수 있는 애절함이 묻어 있는 편지들. 그러나 하산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하산은 탈레반의 인종청소에 희생당했던 것이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는 둘의 관계양상의 두번째 큰 사건에 해당한다. 바로 하산출생의 비밀과 아미르, 하산의 관계가 그것이다. 바바가 둘을 최대한 평등하게 대하려 했던데는 이유가 있던 것이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읽으며 이런 말을 했었다. '머지않아 고전의 반열에 오를 명작'이라고. 저 말을 <연을 쫓는 아이>에도 그대로 하고 싶다. 할레드 호세이니가 그려낸 감동과 애증의 대서사시 앞에서 읽는이는 인간본연의 감정에 충실하게 된다. 끝없는 감동, 슬픔, 애증, 그리고 희망. 모든 것을 이 책은 담고 있다. 아직까지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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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07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께 매우 가슴벅찬 내용의 책인가봅니다...

쥬베이 2008-07-07 10:17   좋아요 0 | URL
정말 재밌어요. 감동도 있고, 문학성도 있고, 좋은 작품입니다^^
 
하리하라의 과학고전 카페 1
이은희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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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리하라의 과학고전 카페>는 '과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명저를 읽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관심은 있지만 '따분하고 어렵지 않을까?'란 두려움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게 과학이다. 하지만 역으로 저런 고정관념이야말로 이 책의 존재가치이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내용을 재미있고, 체계적으로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 누구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하리하라의 과학고전 카페>는 굉장히 '친절한 책'이다. 소주제별로 깔끔하게 내용을 정리하고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저자가 내려준 동아줄을 그냥 잡고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구성은 이러하다. 각 꼭지마다 한 권의 과학고전이 소개된다. 먼저 'XXX는 누구인가?'로 저자소개를 한다. 그 다음, '핵심개념 프리뷰', '콘텐트를 확장하라!'에서는 내용소개, '생각해 볼 문제'에서는 과학고전을 바탕으로 한 논술문제를, '더 읽어 봅시다!'에서는 주제와 관련된 다른 책을 소개한다. 굉장히 탄탄하다. 평소 과학대중화에 관심이 없는 저자라면 도저히 저렇게 정리할 수 없다.

특히, 주목한 것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과학(앞에 소개한 과학고전)을 주제로 한 논술문제를 수록하고 있다. 대입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독자에게는 논술준비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일반독자에게는 본문내용을 좀 더 다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단순히 논술문제가 있다하여 '청소년만을 위한 책'이라 단정해서는 안된다.

[마틴 가드너의 '아담과 이브에게는 빼꼽이 있었을까'](p.38이하). 이 책은 '사이비 과학'에 대한 비판서이다. 사이버 과학이란,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것을 과학적인 이론들에 기초하여 주장하는 아이디어들의 모음(p.39)이라 한다. 저자는 최근 널리 퍼진 혈액형 심리학을 예로 든다. 과학적 상식에 비추어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혈액형이라는 생물학적 소재를 바탕으로 하기에 사람들이 '과학적인 것'으로 받아들인 다는 것(p.45참조)이다. 이어 논의는 대체의학이 사이비과학인가 여부, UFO와 초능력의 검증여부로 확대된다.

[스티븐 제이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p.252이하) 저자는 먼저 굴드의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생물학적 이론들-단속평형설, 환원주의, 생물학적 결정론등-을 설명한 다음, 굴드의 이론을 본격적으로 살펴본다. 굴드는 정신성에 대한 정량화 주장을 비판한다. 즉, 인간의 정신적 능력은 어떤 정량화된 수치로 강제될 수 없다는 것(p.259)이다. 이어 과학이론이 사회적으로 적용되는 경우 왜곡되는 사례를 설명한다. 새롭고 어려운 개념과 이론이 이어지지만,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쉽게 따라갈 수 있다.

<하라하라의 과학고전 카페>는 오랫동안 과학대중화를 위해 노력해 온 저자의 역량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부담없이 편하게 읽을 수 있다. 탄탄한 구성과 흥미로운 서술은 '과학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날려 보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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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여, 안녕! 오에 겐자부로 장편 3부작 3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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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이여, 안녕>은 <체인지링>을 시작으로 한 장편 3부작의 완결편이다. 작가가 마지막 작품이라 생각하고 쓴 작품이라 역시 대단했다. 마음에 담아두었지만 미쳐 하지 못했던 모든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심하고(^^) 써내는데, 명작이 아니 나올 수 없지 않는가? 실로 오랜만에 거장의 향취를 느꼈다.

부상당한 고기토가 조금씩 회복단계에 이르고, 지카시와 마아등 가족은 고기토의 퇴원 이후 생활을 고민한다. 마아와 이메일을 주고 받던 건축가 츠바키 시게루는 일본으로 돌아와 고기토와 함께 지내기로 결심한다. 고기토는 시게루와의 추억을 되새김 하는데(p.24이하), 이들의 관계는 그리 절친한 것도, 유쾌했던 것도 아니었다. 특히 '네 엄마는 하녀야'라는 취지의 망발에 고기토는 벽돌로 그를 찍어 버리기까지 했었다.(p.29) 그럼 왜 고기토는 시게루를 거부하지 않은 것일까? 어머니의 죽음,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속에서 어머니와 했던 화해,(p.24참조) 노년의 넉넉함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고기토, 시게루의 '기타가루이자와의 집'(시게루의 젊은 시절 대표작)에서의 삶이 펼쳐진다. 시게루가 가르치던 블라디미르, 싱싱도 함께 하게 되는데, 같이 T.S앨리엇을 읽기도 하고, 미시다 유키오의 정치사상에 대해 토론(p.100이하,208이하)하기도 한다. 이처럼 <책이여, 안녕>엔 명작이 끊임없이 이야기된다. T.S앨리엇의 시,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p.183이하), 스타니스와프 램(p.254)등. 명작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다면 한층더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게, 바로 미시마 유키오와 할복사건이다. <책이여, 안녕>에는 놀랄만큼 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생활의 한 축인 블라디미르, 싱싱이 그의 사상에 큰 관심을 갖고 있는데다, 자위대 초기간부 하토리 다케시(p.203)가 등장하면서는 완전히 미시마 문제에 대해 토론에 토론을 거듭한다. 사실상 이후 시게루와 고기토가 벌이는 사건도 미시마의 행동과 일정정도 연관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미시마 유키오와 할복사건에 대해서는 따로 찾아보시길.)

블라디미르와 싱싱의 정체와 성격은 이야기속에서 급작스레 변한다. 시게루가 고기토에게 그들이 '커다란 계획'을 갖음을 말한 것이 계기인데, 아무튼 이들은 비밀유지를 위해 고기토를 철저히 감시하고, 다케 다케시 형제를 불러 오는등 일련의 조치를 취한다. 이들의 이런 급작스런 변화는 당혹스러웠다. 시게루와의 관계부터 재설정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싱싱과 블라디미르에 대한 시게루의 말은 더욱 혼란을 가중시킨다. p.218) 놀란 것은 고기토가 너무나 담담하다는 것이다. 일종의 감금과 감시가 이어지는 데도 고기토의 생활은 변하지 않는다. 묵묵하게 독서를 하고, 토론을 한다. 이는 기타가루이자와 집 자체가 사회에서 고립된 무인도 같은 곳이라는 점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시게루는 다케, 다케시, 네이오등과 함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준비를 해나간다. 계획이란 '조그만 노인의 집'을 폭파하는 것. 고기토의 견해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묵시적인 동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의 계획은 성공할 것인지, 어떤 결과를 야기할지, 읽어 보시길.

책을 빨리 읽는 편이지만, <책이여, 안녕>은 한문장 한문장 음미하면서 아주 천천히 읽었다. 조금씩 이야기속으로 빠져드는 놀라운 경험,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한권의 책을 선물한다면, 바로 이 작품을 고르겠다. 달콤한 연애소설도,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도 아니지만, 오래오래 당신의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선사할 소설이기 때문이다. 잔잔하게 울리는 거장의 향취를 느끼고 싶다면, 절대 이 책을 놓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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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7-01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이해하는 작가의 시선을 대략 알고 있기에, 작품 속에서 미시마 유키오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무척 궁금하네요. 쥬베이님의 리뷰를 읽어보니 작품의 제목도 의미심장한 것 같구요.

쥬베이 2008-07-01 19:56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서 거의 몰랐어요.
장편3부작이 처음 읽는 작품이랍니다. <책이여 안녕>과 장편3부작, 정말 좋은 책이에요. 강추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