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구판절판


유지니아, 나의 유지니아.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줄곧 외로운 여행을 해왔다.
아직 먼 여명에 떨던 날들도
오늘로 끝을 고하리니.
이제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으리.
나의 입술에 떠오르는 노래도,
아침 숲에서 나의 신발이 짓밟는 벌레들도,
쉴 새 없이 피를 내보내는 나의 작은 심장도,
모두 당신에게 바치리.-5쪽

논픽션? 난 그 말 싫어요. 사실을 바탕으로 했다고 주장해도, 사람이 쓴 것 중에 논픽션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저 눈에 보이는 픽션이 있을 뿐이죠. 눈에 보이는 것조차 거짓말을 해요. 귀에 들리는 것도, 손에 만져지는 것도, 존재하는 허구와 존재하지 않는 허구, 그 정도 차이라고 생각해요.-23쪽

저마다 사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하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본 그대로 이야기한다는 건 쉽지 않아요. 아니, 불가능합니다. 선입견이 작용한다든지, 잘못 봤다든지, 잘못 기억한다든지 하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다 조금씩 다릅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이나 받은 교육, 성격에 따라 보는 방식도 달라지잖습니까?-57쪽

요즘엔 피해자든 가해자든, 아직 진상이 다 밝혀지기 전부터도 거의 사형(私刑)을 당하잖아요. 나쁜 짓을 한 사람을 비난할 수 있는 건 피해를 당한 당사자뿐이죠. 어째서 무관한 사람들까지 '그럼 나도 돌을 던져도 상관없겠지' 생각하는 거죠? 도무지 이해가 안돼요.-119쪽

형제관계란 건 이상하죠. 어렸을 때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공유했으면서, 갑자기 소원해 지거든요. 완두콩 같은 거죠. 꼬투리인 부모쪽은 남지만, 오랫동안 같이 그 안에 사여 있던 콩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안 남습니다.-193쪽

간단한 걸 어렵게 이야기하는 놈은 세상에 차고 넘치지만, 어려운 걸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255쪽

인간은 죄 많은 존재. 태어나면서 저지른 죄도 많아. 이 세상에 태어난 게 그 증거란다. 인간은 죄를 회개하면서 살아가는 거야. 보렴, 이 세상이 얼마나 고뇌로 가득 차고, 피와 폭력으로 가득차 있는지.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게 죄가 아니면 뭐겠니? 이게 인간이 죄 많은 존재라는 가장 큰 증거야. 기쁨은 한순간뿐. 고통의 바다에 한순간 비쳐드는 힘없는 햇살에 불과해.-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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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각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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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 추리소설이란 단지 지적인 놀이의 하나일 뿐이야. 소설이라는 형식을 사용한 독자 대 명탐정, 독자 대 작가의 자극적인 논리 게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그러므로 한때 일본을 풍미했던 '사회파'식의 리얼리즘은 이제 고리타분해. 원룸 아파트에서 아가씨가 살해된다. 형사는 발이 닳도록 용의자를 추격한다. 드디어 형사는 아가씨의 회사 상사를 체포한다. 이런 이야기는 이제 좀 그만두었으면 좋겠어. 뇌물과 정계의 내막과 현대사회의 왜곡이 낳은 비극 따위는 이제 보기도 싫어. 시대착오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역시 미스테리에 걸맞는 것은 명탐정, 대저택, 괴이한 사람들, 피비린내나는 참극, 불가능 범죄의 실현, 깜짝 놀랄 트릭…이런 가공의 이야기가 좋아. 요컨데 그 세계속에서 즐길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거지. 단, 지적으로 말씀이야."-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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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7-31 0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파에 대한, 신본격의 기수 아야츠지 유키토의 일갈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있을지도

두 번째 쓰는 리뷰다. 처음 쓴 리뷰는 내용을 100%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쓴 것이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정하기 보단 완전히 새로 쓰는 게 나을거란 생각에 새롭게 쓴다.

<벚꽃이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충격적 반전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워낙 유명하다 보니 반전만 손꼽아 기다리는 분도 있고, 참 말이 많은 작품인데, 읽어 보면 왜 그런지 알게 된다. 이 작품의 반전은 생각지도 않았던 이가 범인으로 등장하거나, 일반인의 두뇌로는 상상하기 힘든 트릭이 사용되는, 그런건 아니다. 저자는 독자의 고정관념을 철저히 농락한다.

서술트릭. 아니, 이건 트릭이라고 할 수도 없을 거 같다. 고정관념 속에 사로잡힌, 그래서 이해하지 못한 스스로가 트릭 속에 빠져버린 것이다. 처음 읽고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등장인물들의 나이다. "젊었던 나루세가 갑자기 왜 늙어버렸지? 손자라니…뭔 말이야" 하고는 어리둥절해 했다. 대충 트릭의 겉만 훑고 넘어간 것이었다. 작품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좀 자세히 보자.

494페이지 서술을 보면, '에바타가 자살한 것은 1951년 12월 15일로, 그 다음날 나는 겨우 스무 살이 되었다'가 있다. 즉, 나루세는 1932년 12월 16일생이다. 그 다음, 19페이지엔 '우선 내가 2002년 8월 2일 오후 4시 40분에 히로오~' 가 있다. 보았는가? 헬스로 체력단련 하고, 호라이 클럽을 추적하던 우리의 호프 나루세는 69세 할아버지였다. 당연히 기요시, 아이코역시도 70세 가까운 나이. 어떤가? 사건을 파헤치고, 호라이클럽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맞서는 주인공인 70살 할아버지라니…

그럼 왜 이 점에 당혹스러움을 느낄까? 고정관념이다. 당연히 탐정 역을 하는 주인공이 젊은이일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70살 먹은 할아버지는 경로당에 가만히 앉아 손자 재롱이나 보시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저자는 교묘하게 독자를 농락하는데, 일단 주인공의 나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연령을 추측할 수 있는 묘사도 하지 않는다. 거기다 이야기 중간 중간 나루세가 어설픈 탐정활동을 하던 20대 이야기를 끼워 넣음으로써, 완벽하게 혼란을 야기한다.

이제야 알았다. 저자가 왜 초반부에 쓸데없는(쓸데 없어 보이는) '연도'를 언급했는지.

지금까지는 가장 놀라웠던 연령트릭 이야기이다. 하지만 <벚꽃이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이게 전부가 아니다. 사망보험금을 노리고, 엉뚱한 인물의 생명보험을 가입한 사쿠라, 그리고 그 이유, 나루세의 이름을 잘못 알고는 당황하는 사쿠라의 모습, 쓰네코가 사쿠라와 동일 인물임이 드러나는 부분, 안도 시로의 처절한 인생사등 저자가 짜놓은 구성은 꽤 훌륭하다. 아 그리고, 초반부 땅 파는 사람 묘사가 등장하는 설정도 사소하지만 치밀한 구성이었다.

처음 시작되는 섹스에 대한 장광설은 약간 곤혹스러웠고, 문장에 군더더기가 많아서 작가의 문장력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호라이 클럽'이 등장하고 이야기에 속도감이 붙자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저자는 곳곳에서 노인문제를 은연중 부각하고 있는데, 연령트릭을 구사한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거 같다. 호라이 클럽의 사장 구레타가 쏟아내는 노인문제에 대한 독설과 비판(p.433~435)은 물론 궤변이다. 하지만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에 대해선 한번 생각해 봐야지 않을까. <벚꽃이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는 놀라운 반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대단한 작품이다. 미스터리의 팬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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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9 08: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쥬베이 2009-07-10 20:00   좋아요 0 | URL
달랑 한두줄인 서평, 읽지 않고 썼음이 분명한 서평, 다른 사람 서평을 대충 짜집기한 서평...등등 그런게 보여서요ㅋㅋㅋ 속삭님 반갑습니다^^ 저도 자주 놀러갈께요~~

2007-07-29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asdgghhhcff 2007-07-2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어봤는데요..아 말도안되요..ㅜ.ㅜ 어찌 그리 팔팔 하실수 있으신지..
뼈가 부러져도 한두개가 부러질 일이 아닌데 말이에요...'
근데요...
왜 제목이 벗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인걸까요? -_-;;
이건 잘 모르겠더라구요..ㅠ.ㅠ..

쥬베이 2007-07-29 10:46   좋아요 0 | URL
저는 이렇게 생각했어요. '벗꽃지는 계절'이란 노년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고...'그대를 그리워 한다'는 것은 뒤늦은 사쿠라와의 사랑이 결국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건 아닐까 하고요^^ 뭐 여러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서도ㅋㅋㅋ 휴일 즐겁게 보내세요^^

미미달 2007-08-09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는데 가혹한 혹평도 꽤 있더라구요. 흠흠

쥬베이 2007-11-11 17:38   좋아요 0 | URL
답글이 너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네 정말 혹평도 많더군요. 독자를 속였다는 것에 대한 분노??ㅋㅋ
 
럭키경성 - 근대 조선을 들썩인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봉관 지음 / 살림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럭키경성>은 독특한 책이다. 그리 멀지 않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일제강점기,근대조선의 부자들과 투기꾼 이야기를 한다. 그것도 아주 흥미롭게.

<럭키경성>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전부 실화라고 한다. 저자는 풍부하게 신문자료를 활용하고 고어체를 순화해 이야기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일본이 대륙진출을 위해 혈안이 되었던 '길회선'(p.19), 쌀 주식시장이라 할 수 있는 '미두시장'(p.53.118.119등) 그리고 최송설당님(p.249)이나 백선행님(p.209)같은 인물들까지.

미두왕 반복창 이야기를 살펴보자. 반복창은 어려서 부친을 잃고 일본인 집에 아이보는 하인으로 들어간다. 주인인 미두상 아라키에게 미두에 대해 배운 그는 자립해 미두상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 저자는 이렇게 표현한다. "44년 조선의 미두사에서 미두로 가장 큰 환희와 좌절을 맛본 사람"(p.52)이라고...

아라키에서 받은 일본식 이름 '반지로'로 잘 알려진 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이름을 떨치는 미두왕이 되었다. 당시 미모로 잘 알려진 '원동자켓'의 언니 김후동과 결혼하는데, 결국 그의 몰락과 함게 결혼생활과 파탄이 난다. (원동자켓에 대해선 65페이지 이하 읽어보시길) 미두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된 것인데, 놀랍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주식시장 비슷한 미두시장이란게 있었고, 그로 인해 성공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평양 백과부의 행복한 돈 쓰기'(p.209)부분을 읽으며 감동했다. 뿌리깊은 남녀차별을 이겨내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 백선행님. 그리고 힘들게 모은 돈을 교육발전을 위해 흔쾌히 쓴 아름다운 모습. 존경스럽다. 그녀가 돈을 모으는 과정은 눈물겨웠다. 한 부분을 보자. '조선에서 젊은 여자가 남편도 없이 홀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아침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다름없었다. 백 과부가 돈푼이나 만진다는 소문이 퍼지자 온갖 사내가 재산을 '날로' 집어삼키려고 달려들었다'(p.217) 탐관오리인 평양부윤이 어처구니없는 누명을 씌워 재산을 강탈하려하고, 강도가 들어 위해를 가하기도 하고...하지만 그녀는 꿋꿋하게 견뎌낸다.

그녀는 하도 좋은일을 많이해 '선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회에 기부한 금액만 무려 31만 6천여원. 오늘날의 가치로 하면 316억이라고 하니...놀랍다. 그녀는 정말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녀를 구두쇠라 비난하지 못했다. 힘들게 번 돈을 사회를 위해 멋진게 쓴 그녀를 과연 누가 비난한단 말인가?

이 책을 읽으며 느낀 한가지는, 저자가 가급적 가치판단을 자제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서술한다는 점이다. 돈에 눈이 먼 투기꾼도, 행적이 모호한 인물도...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조심스레 서술한다. 그건 이 책의 초점이 이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 대표적인 친일파를 '저명인사'라고 표현하는데, 거부감이 들었다. 뭐, 그들이 저명인사인건 맞다. '조국을 배반하고 일신의 영달만을 꿈꾼 저명인사'. 아무튼.

<럭키경성>을 통해 일제강점기와 근대조선의 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그간 몰라던 것을 알게 되었고, 여러모로 흥미로웠다. 저자의 전작인 <경성기담>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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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캘린더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6년 2월
구판절판


"냄새가 얼마나 끔찍한건지 너 아니? 피할 수가 없어. 가차없이 파고든잔 말야. 냄새가 없는 데로 가고 싶다. 병원의 무균실 같은 곳. 거기서 내장을 전부 꺼내서 깨끗해질 때까지 증류수로 씻었으면 좋겠다."-32쪽

"황매화색 과육이 얇은 유리 조각처럼 겹겹이 쌓여 있고,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비파 셔벗. 비파 셔벗이 먹고 싶다구." "비파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비파의 부드럽고 얇은 껍질과, 금빛으로 빛나는 솜털, 옅은 향을 바라고 있는 거라구. 게다가 그걸 바라는 것은 내가 아니야. 내 안에 있는 임신이 바라는거지. 임신이. 그러니까 나도 어쩔 수가 없어"-50쪽

"이 안에서 제멋대로 쑥쑥 자라고 있는 생물이 내 아이라는 것이 도무지 납득이 안 가. 추상적이고 막연하고, 그런데도 절대적이어서 도망칠 수 없어. 아침에 눈을 뜨기 전, 깊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도중에, 입덧과 M병원과 이 남산 같은 배, 그런 것 모두가 마치 환영인 것만 같은 순간이 있어. (중략) 내 안에서 나오면, 싫든 좋든 내 아이잖아. 선택할 자유가 없다구. 얼굴 반쪽이 뻘겋게 멍들어 있든 손가락이 죄 들러붙어 있든 뇌가 없든 샴쌍둥이든..." -6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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