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의 평화수업 - 소년원에서 명문대학 로스쿨까지, 감동적인 교실 이야기
콜먼 맥카시 지음, 이철우 옮김 / 책으로여는세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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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에게 평화주의 정신을 가르치는 것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군국주의를 이겨낼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예방접종과 같습니다. 나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가르치고, 증오보다는 사랑을 가르칠 것입니다" - 아인슈타인 (p.25)

워싱턴 포스트에서 28년간 칼럼니스트로 일한 저자는, '담장없는 학교'에서 글쓰기에 대한 수업을 부탁받고 그 제의를 기분좋게 받아들인다. 저자는 이때의 경험을 '말할 수 없는 흥분과 벅차오름'이라 표현한다. 이에 학교측은 정식으로 글쓰기 수업을 맡아 줄 것을 제의하는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평화를 가르치고 싶습니다."(p.14) 이렇게 그의 평화수업은 시작되었다.  

그의 평화수업은 많은 호응을 얻고, 조지타운 로스쿨, 오크힐 청소년센터, 워싱턴센터등 다양한 단체에서 강의가 이루어진다. 이후는 평화수업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서술된다.

소년원인 오크힐 청소년센터에서의 평화수업은 평화수업의 의미가 가장 크게 부각될 것이라 생각했다. 과연 정상에서 일탈한 청소년은 평화수업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예상대로 순탄하지 않았다. '똥 씹은 얼굴로 앉아 있는 아이들'(p.30) 저자는 첫 만남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은 수업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운동, TV시청, 카드게임등을 못해 불만이 가득한 것이다. 한 아이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수업이 내가 여기서 나가는 데 도움이 되나요?" 상다이 기분나쁠 수 있는 질문이지만, 저자는 멋진 답변을 한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네. 하지만 이 수업이 자네가 다시 여기에 들어오지 않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을 걸세."(p.32)

명문고등학교인 스톤리지 고등학교에서의 평화수업. 저자는 학생들이 평화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일찍 일어난 것에 감동하고, 그들이 왜 평화수업을 듣는지와 어떤 교훈을 얻어가고 싶은 가를 묻는다.(p.52) 학생들은 전쟁과 폭력에 질렸다,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치적 시각을 넓히기 위해등 여러가지 의견을 밝힌다. (자세한건 p.52-54를 참조하시길) 저자는 평화수업을 숙제,시험,성적에 얽메이지 않는 열린 수업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는 숙제,시험,성적에 의한 수업을 두려움에 의한 교육으로 정의하고, 이를 비판한다. 저자의 확고한 철학은 상당한 공감이 갔다.

저자는 교육철학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저자는 수업준비도 안하고, 마음이 어지러운 상태에서 영화시청이라는 방법으로 수업을 때운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음 수업시간에 이 점을 솔직히 털어놓고, 학생들을 실망시켰음을 고백한다.(p.207) 그리고는 5달러를 꺼내 학생들에게 수업료 환불차원에서 나눠준다. 참 놀라운 모습이다. 난 고등학교,대학교 시절 정말 무성의하고, 실력없는 선생,교수들을 많이 보았다. 물론 대다수의 교육자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수학, 영어를 배운는 것도 분명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올바른 인성교육, 평화교육이 아닐까? 우리의 교육현실에서 너무 요원한 말일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답답해진다. 저자의 평화수업을 함께 하는 싶다는 생각과 함께. 저자의 평화수업이 계속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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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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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어요? 그건 사실 끔찍하리만치 실망스러운 일이에요. 희미하게 반짝거렸던 것들이 주름과 악취로 번들거리면서 또렷하게 다가온다면 누군들 절망하지 않겠어요. 세상은 언제나 내가 그린 그림보다 멋이 떨어지죠. 현실이 기대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일찍 인정하지 않으면 사는 것은 상처의 연속일 거예요. 나중에 꿈꿨던 일조차 머쓱해지고 말걸요.-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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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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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어린 일본작가의 소설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국내엔 나보다 나이 어린 작가가 없어, 안도했었는데^^ 이제 저런 정체불명의 안도감도 느낄 수 없게 되었다. <달의 바다>의 정한아님은 나하고 동갑이다. 조금 놀라우면서도 아주 반갑다. 내 또래도 이제 문단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구나, 나도 나이를 먹어가는 구나, 하는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달의 바다>는 미국에 사는 고모가 할머니(즉, 고모에게는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내용과 은미, 민이 그려내는 이야기가 번갈아 서술된다. 고모는 편지속에서 자기가 비밀리에 임무를 수행하는 우주비행사를 자처하고 할머니는 이를 철석같이 믿는다. 할머니는, 거처를 옮기게 되어 영영 편지를 못할거 같다는 고모의 말에, 손녀 은미를 고모에게 보내 안부를 확인하게 하고, 은미는 절친한 친구 민과 미국으로 향한다.

간략하게 이야기한 것이 <달의 바다>스토리의 전부다. 심사위원들로부터 군더더기없다는 평을 받은 간결한 구성. 또한 소설은 부담없이 진행되며, 가독성도 좋다. 그리고 예상은 했지만 막판에 약간의 반전도 있다. 작가의 첫 장편에, 데뷔작임을 고려한다면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듯하다.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저자는 할머니,고모등으로 대표되는 여성성을 은연중 부각하고, 할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성을 비판, 조소한다. 다음 서술을 보자. '할머니가 환상과 꿈, 아름다움, 비극, 무지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할아버지는 적금과 등산, 단골손님, 소갈비, 독감예방주사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남편과 삶을 공유하기 위해 조금이라도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일 때마다 모욕과 비웃음을 당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마음을 감추게 되었다.'(p.52)

여기서 저자는 천진한 감상을 가진 할머니를 '고결하게' 부각하며, 일상적인 것에만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를 조소하고, 할머니의 믿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점을 비난한다. 하지만 과연 그런 비난은 이유가 있는가? 왜 할아버지는 단골손님과 소갈비에만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할아버지를 비난하려면 먼저 저 질문에 답을 해야 할 것이다. 할아버지는 부인,아들,딸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이다. 과연 그에게 환상과 꿈 ,아름다움에 대한 믿음이 없을까? 아닐 것이다. 한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의 무거운 짐이 그를 일상적 믿음으로 내몰아 버린 것이다. 만약 할아버지가 아름다움, 무지개에만 믿음을 가졌다면, 비현실 몽상가의 가족은 거리로 내 몰릴것이 분명하다. 생각해 보자. 할아버지가 없고, 할머니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과연 할머니는 저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 할머니의 믿음은 할아버지의 믿음이 있기에 존재 가능한 소녀적 감상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한 부분은 또 있다. 저자는 미혼모가 된 고모와 그녀를 다그치는 할아버지를 대조하고 역시 할아버지를 은연중 비난한다. '할아버지는 모든 가혹행위로 고모를 심문했다. 하지만 끝내 아기 아버지가 누군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중략) 할아버지는 이틀이 멀다 하고 물건을 부수며 고함을 질렀고 할머니는 고모와 할아버지 사이를 가로막고  버티다가 내동댕이쳐쳤다. (중략) 고모의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을 바라보면 잘못된 쪽은 할아버지인 것 같았다. (중략) 모녀는 자연스럽게 출산을 준비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기 때문에 문제를 다시 들춰내려는 사람은 어딘가 촌스럽고 야비하게 느껴졌다.'(p.55-56)

과연 미혼모가 된 딸을 다그치는 할아버지에게 잘못이 있는가? 이 문제가 촌스러움,야비함을 언급할 문제란 말인가? 조금 황당하다. 자기가 미혼모가 되기로 결정했는데, 애비인들 뭔 상관이냐고 할 사람도 있을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험한 세상에 혼자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이 문제는 자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뱃속에 있는 아이의 삶까지 고려해 결정해야 할 문제다. 과연 고모는 모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미혼모가 되기로 한 것일까?

뒤이어 서술되는, 자기 자식을 할아머지, 할머니(위에도 언급했지만 자기한테는 부모)에게 맡겨 버리고 나 몰라라 하는 부분에선, 위에서 보이는 그녀의 자신만만함이 오버랩 되며 심한 분노를 느꼈다. 내가 보기엔 고모는 현실감각없는 철부지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 고모는 우주비행사일 때문이라는 핑계를 대며, (이는 핑계임을 잘 아시지 않는가? 끝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자기 자식을 부모에게 맡기고 15년간이나 소식을 끊는다. 이게 과연 그처럼 당당하게 미혼모가 되겠다고 지랄하던 그녀의 모습이란 말인가? 생명은 장난이 아니다. (이 문제는 상대 남성이 근본 문제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비난은 없이, 괜한 할아버지만 비꼬는 점을 지적한 것)

음, 이건 약간 사소한 문제인데, 할머니의 부탁을 받은 은미는 친구인 민과 미국으로 향한다. 하지만 과연 민이 그렇게 쉽게 은미와 동행을 결정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왜?? 이 직전에 은미는 민의 성정체성과 자존감에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은미는 자기에게 성정체성 혼란과 수술에 대한 의견을 묻는 민에게 "장담하건대 너한테는 끼라는 게 없어. 네가 착각하고 있는 거야. 트랜스젠더들은 기본적으로 자태라는 걸 갖고 있는데, 봐, 너는 누가 봐도 뻣뻣하잖아. 어느 모로 봐도 너무나 건장한 남자라고."(p.28)라며 차갑게 일축한다. 이에 민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절망적으로, 본노에 가득 차서, 마치 화염을 내뱉듯이 소리를 질렀다.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면서 머리띠를 집어던지고, 주먹으로 자기 머리를 마구 때리면서, 시뻘게진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나쁜 년이라고 고함을 질렀다.'(p.28)

보았는가? 민은 자기가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정체성 문제를 정면에서 비아냥거린 은미에게 극한 분노를 느끼고 '다시는 은미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그 다음 아무런 극적화해 장치가 언급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이들은 아주 친한 모습으로 미국으로 고모를 만나러 떠난다. 거 참, 묘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구성.

그리고 초반부에 가장 의심스러웠던 것은, '미혼모인 고모가 정체도 불분명한 미국인을 따라 미국으로 가서, 우주비행사가 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건 아무리 그녀가 국립과학연구소에 취직한 적이 있다는 점(p.66)을 고려해도 거의 불가능 한 일이다. 난 이 점을 집중 비판하려고 했는데, 뭐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은 사람이라면 알지 않는가?^^ 저 비판은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은미와 고모의 만남 이후, 고모의 밑바닥 삶을 보고 난 저자가 내릴 결말을 이해했다.

주제 넘게 너무 많은 말을 한거 같다. 모든 걸 떠나 <달의 바다>는 느낌이 좋은 소설이다. 그 점 하나만으로도 가치를 가진다. 일본소설이 놀랄만한 속도를 잠식해 들어오는 현실에서 정한아라는 참신한 작가를 알게 되어 기쁘다. 앞으로 더 멋진 소설을 독자들에게 선보여 주시길.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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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4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을 것 같다고 나름 혼자서 기대하던 책인데 별점이 생각보다 적어서 재미없나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일어볼만한 소설이란 확신이 생기는 군요.^^

쥬베이 2007-08-04 11:33   좋아요 0 | URL
아...아니에요^^ 제가 요즘 별점에 아주 인색해지기로 정했거든요ㅋㅋㅋ
웬만한 일본소설보다 괜찮아요~ 일단 느낌이 좋거든요^^

유스케 2007-08-04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을 읽어보니... 느낌이 좋은 책일것 같습니다. 한국소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일이 요즘은 왠지 버겁게 느껴져서 막연히 멀리했는데요.. 이젠 이유없는 반항은 그만 끝내야겠습니다. 웬만한 일본소설을 너무 읽어서일까요? 집이 너무 그리워졌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첫걸음으로.. 이 책을 읽어보는것도 괜찮을것 같네요 ^^*

쥬베이 2007-08-04 18:23   좋아요 0 | URL
네네 집으로 얼른 돌아오세요~ 저도 요즘 집이 너무 그립습니다.
반성중이죠 ㅋㅋ

2007-08-09 1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쥬베이 2007-08-12 21:27   좋아요 0 | URL
한번 읽어보세요^^ 느낌이 괜찮아요

2007-08-16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쥬베이 2007-08-22 15:41   좋아요 0 | URL
디드님 댓글을 이제야 봤네요^^ 답글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부러웠어요. 벌써 등단해 작가활동을 하다니... 디드님 저하고 동갑.ㅋㅋ 반가워요
 
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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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절한 고통을 받은 우리의 형제자매들. 일제의 악랄한 식민통치, 끔찍한 소비에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등, 우리는 강대국의 노예였다. 이런 우리 부모형제들의 고통과 비극은, 안타깝게도 개인차원에서 조명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냥 '민족의 비극'인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 개인 한 사람의 삶? 그건 사치였다.

조정래님은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고통받은 개인을 주목한다. 복도훈님의 해설을 잠시 살펴보자.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을 뿐이며, 역사와 그를 기록하는 사가는 알렉산더가 인도를 정복할 때 그 혼자서 해냈는지 묻지 않고 진시황제가 만리장성을 완성한 날 밤에 벽돌공들과 인부들이 어디로 갔는지 더이상 궁금해하지 않는다. 조정래는 소설 또는 문학의 임무는 만리장성을 쌓았던 벽돌공들과 인부들의 한 많은 이야기와 신산스러운 삶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 일차적 소임임을 분명히 한다."(p.224)
 
한 장의 사진이 있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처럼 조금은 의아한 사진이다. 한 동양인이 독일군복을 입고 적개심(?) 가득한 시선으로 처다보고 있는 사진. '오 하느님'은 사진에서 부터 시작된다해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소설속에서는 등장인물이 직접 사진을 찍는 장면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점은 복도훈님도 뒤 해설에서 약간 의아하다는 뉘앙스로 언급하고 있다) 그럼 소설속으로 들어가 보자.

일본은 지원병임을 가장하고, 만주로 쫓아낸다고 협박해, 젊은 청년들을 전선으로 내몬다.  신길만. 그 역시 부모의 말을 뒤로 하고 전지로 떠난다. "총알 피해 댕겨라"(p.20) 아버지의 무뚝뚝한 한마디. 귀한 자식을 전지로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는 옥쇄를 강요하는 일본군에서 벗어나 소련군에 포로로 잡힌다. 힘겨운 포로생활. 어느 날 갑자기, 소련군 장교는 신길만을 포함 한국인 포로들에게, 소련군이 되는건 어떠냐고 제의(?)하고 그들은 받아들인다.(p.83) 갑자기 달라진 대우. 그들은 모스크바를 향해 진격하는 독일군과 맞서 싸우다 독일군의 포로로 잡히고, 또 독일군이 될 것을 강요당한다. 독일항복 후 이번엔 미국의 포로가 된 그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조국이 아니었다. 마지막 장면은 조금 갑작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가슴의 다가온 울림은 심했다.

200페이지 가량의 짧은 장편이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우리민족의 슬프고 가련한 역사와 그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우리 형제자매들. 많은 생각을 했다. 자칫 잃혀질 수 있었던 한 인물을 저자는 훌륭하게 그려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삶, 갈등이 크게 부각되지 않아 등장인물이 조금 밋밋하다. 그리고 위에서 잠깐 언급한 급작스러운 결말과 실존하는 사진이 찍혀진 내역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역시 아쉬웠다. 내용의 깊이나, 소재만을 봤을때, 거의 대하소설급인데 너무 짧은 소설로 그려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조정래 작가님께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거 같지만^^) 

 

* 200페이지 정도인데, 책이 상대적으로 두꺼워 보인다. 종이질이 다른걸까? 조금 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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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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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없어 가려질 데가 없는 초원의 하늘은 초원보다 더 아스라하게 넓었다. 그 하늘에서 크고 작은 새떼들이 휘돌고 맴돌면서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새떼들은 맘껏 날갯짓하며 무성한 풀숲으로 급강하하고는 했다. 시체를 뜯어 먹으려는 독수리떼와 까마귀떼였다. 그것들은 날마다 포식을 했다. 새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을 맘대로 뜯어 먹고 있으니 산 사람도 먹이로 보이는 것인지 몰랐다. 새떼들은 대포가 폭음을 터트릴 때나 겨우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들은 비웃기라도 하는 듯 소총 소리나 기관총 소리에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8쪽

독수리떼와 까마귀떼는 포식한 것을 소화라도 시키려는 듯 가끔씩 그 푸른 하늘로 날아올라 빠르게 휘돌고, 느리게 맴돌고, 어지럽게 감돌면서 검은 군무를 추고는 했다. 그 검은 춤은 검은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검은 날갯짓들은 소련군의 살기를 실어와 이쪽에 뿌려대는 것처럼 불길했다. 새떼는 더 많이 포식하기 위해서 죽음을 부르는 저승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고, 제멋대로 까욱까욱 울어대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들은 영락없는 장송곡이었다.-34쪽

사람끼리 말이 통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대한 것인지 신실만은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사람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으니 그건 사람과 사람 사이가 아니었다.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으니 사람과 짐승 사이나 같았고, 서로 아무 감정도 통하지 않는 바윗덩어리와 다를 것이 없었다, 사람끼리 말이 통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하루 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중대한 일이었다.-56쪽

시체 위에 시체가 포개졌고, 부상자들이 눈보라 속에 그대로 버려져 죽어갔다. 하얗게 눈 덮인 대지는 피로 붉게 물들었다. 그 위에 다시 눈이 내려 덮었다. 그러나 다음날이면 눈은 또 붉게 물들었다. 마치 하늘과 인간이 거대한 화폭의 추상화를 그리고 지우는 다툼을 벌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인간들이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105쪽

추위 속에서 이천여 명은 삽시간에 발가숭이가 되었다. 알몸으로 우글거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상스럽게 생긴 짐승들이었다. 그들은 알몸이 되자마자 피부색을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몸을 웅크리며 두 손을 모아 아래를 가렸다. 그리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니 그 모습은 옷을 입고 움직이는 독일군들과는 너무나 다르게 보였다. 인간은 옷을 입어야만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의 모습을 갖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117쪽

신길만은 고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 구수한 고기 냄새가 입안에 퍼졌다. 군침이 지르르 흘렀다. 고기의 감촉에 혀가 요동쳤다. 고기를 꿀떡 삼켜버리고 싶도록 목구멍이 크게 열리고, 어서 넘겨달라고 뱃속에서는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대로 삼키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고기를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졸깃졸깃한 육질의 탄력에 이들이 일제히 환호한다. 향기로운 고기 냄새가 씹을수록 진하게 퍼진다. 그리고 달치근하면서도 고소한 고깃물이 입 안 곳곳으로 스며든다. 막으려고 했지만 고깃물이 저절로 목구멍으로 넘어가 뱃속으로 흘러들어간다.-169,170쪽

흰 종이 위에 새빨간 피글씨들이 한 자씩 그려져나갔다. 몸속에 감추어져 몸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피들이 이제 주인의 몸을 구하려고 몸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피는 붉었지만 단순히 붉은색이 아니었고, 액체였지만 단순히 액체가 아니었다. 피의 붉은색은 피만의 독특한 붉은색이었고, 액체이되 농도와 온기가 다른 액체였다. 그건 목숨이 담긴 붉은색이었고. 영혼이 스며 있는 액체였다. 주인의 생명을 구하려고 그려지고 있는 떨리는 피글씨들은 숙연하고 처연했다.-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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