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06년 4월
구판절판


누군가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문장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의 톤을 재현하는 것이다. 그 톤만 확실하게 포착하고 있으면, 그 이야기는 진실한 이야기가 된다.-46쪽

"만약 약속을 하라고 하면 하겠어. 난 너랑 잘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 다음에 너랑 잘 거야. 거짓말이 아니야. 약속해." 그때 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66쪽

여자는 운 다음에만 그를 원했다. 그 밖의 경우에는 늘 그 쪽에서, 여자를 원했다. 여자가 거절하는 때도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잠자코 고개를 젓는다. 그런 때 그녀의 눈은, 하늘 한 끝에 떠 있는, 새벽녘의 하얀 달처럼 보였다. 새 날을 알리는 새들의 지저귐에 몸을 떠는, 납작하고 암시적인 달. 그런 눈을 보면, 그는 더 이상 채근할 수 없었다.-90쪽

"사람의 마음이란 깊은 우물 같은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해. 그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는 모르지. 가끔 떠오르는 것들의 모양을 보고 상상할 수밖에."-96쪽

나는 잠의 테두리 같은 것을 손가락 끝으로 어렴풋하게 느낀다. 그러나 나의 의식은 깨어 있다. 나는 잠시 존다. 그러나 얇은 벽으로 나누어진 옆방에서, 그 의식은 말똥말똥하게 깨어, 나를 지그시 보고 있다. 나의 육체응 어슬렁어슬렁 어두컴컴한 공중을 떠다니면서, 내 자신의 의식과 시선과 숨결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처럼 느낀다. 나는 잠자고 싶어하는 육체이며, 그와 동시에 각성하려 하는 의식이다.-106쪽

사람이란 것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행동과 사고의 경향을 형성해 가는 법이고, 일단 형성된 그런 경향은 어지간한 일이 없는 한 지워지지 않는다. 즉 사람은 그런 경향이란 우리 안에 갇혀 평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잠이야말로 그런 경향의 편향을 중화시킨다. 즉 잠이 그 편향을 조절하고 치유하는 것이다. 인간은 잠을 통해 집중적으로 사용한 근육을 자연스레 풀고, 집중적으로 사용된 사고 회로를 진정시키고, 또 방전한다. 그런 식으로 인간은 냉각되는 것이다.-153쪽

TV피플은 일부러 일요일 저녁나절을 노려 내 방에 찿아왔다. 마치 우울한 상념이나, 소리도 없이 비밀스레 내리는 비처럼, 그들은 어슴프레한 시각에 슬며시 파고 들어오는 것이다.-180쪽

내 경우, 일요일 오후에는 많은 것이 그렇게 조금씩 되고 만다, 무슨 일을 해도 전부 어중간해지고 만다. 무언가에 재대로 열중할 수가 없다. 아침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듯 느껴진다. 오늘은 이 책을 읽고, 이 레코드를 듣고, 지난번에 받은 편지의 답장을 써야지, 하고 생각한다. 오늘이야말로 책상 서랍을 정리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고, 오랜만에 세차를 해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계 바늘이 두 시를 돌고, 세 시를 돌아 점점 저녁에 가까워지면 모든 생각이 허물어지고 만다. 그리하여 나는 결국 언제나, 소파에 누워 어쩔 줄 모른다. 귀에는 시계 소리만 들린다. 타르푸-쿠-샤우스-타르푸-쿠-샤우스, 하고. 그 소리가 빗줄기처럼 주변의 사물을 조금씩 깍아내려 간다. 타르푸-쿠-샤우스-타르푸-쿠-샤우스. 일요일 오후에는 그렇게 모든 것이 조금씩 마모되어 크기가 작게 보인다. 마치 TV피플 그 자체인 것처럼.-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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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빌 게이츠를 승자로 만들었을까?
샤오쭤 지음, 김락준 옮김 / 이스트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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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무었이 빌 게이츠를 승자로 만들었을까?' 제목만 들으면, 조금은 딱딱한 인문서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빌 게이츠의 여섯명의 친구들을 통해 그의 삶의 되짚는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전혀 지루하거나 딱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럼, 저자는 왜 빌 게이츠란 인물에 관심을 갖는 걸까? 일단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 책은 빌이 공부하고 창업하고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친구들과의 차이점을 통해 성공의 참모습을 밝혀내려고 한다."(p.10) 저자는 세계 최고의 갑부이자, 컴퓨터 전문가인 그의 성공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성공의 참의미를 찿으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떻게 하면 우리도 빌 게이츠처럼 성공할 수 있는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어린시절 빌은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치킨카레라이스 일화를 살펴보자. 빌은 초등학교 3학년때 새로 생긴 식품회사에 견학을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책에서 빌의 초등학교 친구로 소개된 톰과 다른 친구들은 특별한 요리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빌은 딱부러지게 이렇게 주문한다. "치킨카레라이스로 주세요. 카레를 듬뿍 얹어서요. 그리고 콜라도 큰 컵으로 한 잔 주세요."(p.25) 내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빌의 저런 태도가 얼마나 용기있는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저자는 이 일화의 시사점으로 '어릴 적부터 스스로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습관을 키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또 한명의 초등학교 친구인 윌리엄과 그를 비교한다. 윌리엄은 시험만 봤다하면 A를 받는 모범생으로, 교과서만 파고드는 전형적인 책벌레였다. 이에 반해 빌은 새로 개설된 컴퓨터수업에 열중하고, 관련 잡지를 탐독하는 조금은 괴짜같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고, 빠져드는 그의 열정만은 모두가 인정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고, 묵묵히 나가는 것도 분명 하나의 삶의 방법이리라. 저자는 빌 게이츠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윌리엄을 상대적으로 비판적으로 보지만, 그건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다. 만약, 괴짜 같은 빌이 오늘 날 이토록 성공하지 못했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분명 이런 말이 나왔을 것이다. "어린 시절 저 짓거리 했으니, 저리 살지 쯧쯧. 묵묵히 공부하는게 최고야"라고...빌 게이츠는 A를 선택했고, 윌리엄은 B를 선택했다. 그들은 그 선택의 책임을 지고 삶을 살아간다.

빌은 명문 하버드 법대에 입학해 형사법을 전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포화상태인 변호사시장과 불안정한 지위에 환멸을 느끼고 실리콘밸리에 MS사를 설립한다. 그는 명문대 간판과 전공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는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 냈다. 저자는 빌의 학창시절 친구들 여섯명과 빌을 비교한 다음, Chapter4부터는 본격적으로 빌 게이츠와 MS사를 이야기한다. 이는 빌 게이츠의 이야기인 동시에 컴퓨터 발전사 내지 윈도우 발전사이다. 그 정도로 빌 게이츠와 MS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빌 게이츠라는 성공신화를 통해 우리는 성공을 엿보았다. 어쩌면 뻔해 보일 수 있는 성공이야기지만, 저자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다양한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멋지게 이를 극복한다. 지금 사회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 뭔가 일이 잘 안풀려 답답한 직장인들, 이 책이 답답함을 뚫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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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용을 떠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은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제목과 묘하게 어울리는 표지나, 출판사의 균형감각 있는 책디자인. 아무 이유없이 책장에 꽂아 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나 할까.

<나의 미스테리한 일상>은 요즘 주목 받고 있는 일상미스테리를 다루고 있다. 과연 이를 진정한 미스테리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조금 회의적이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는건 분명하다. 저자가 선보이는 '회사 사내보의 연작소설'이라는 설정 역시 아주 신선하다. 연장선상에서 p.308이하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도 인상적이었는데, 이는 나중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건설회사인 '사나다 건설'의 사내보 '르네상스'의 편집을 맡게 된 와카타케 나나미. 그녀는 선배인 사타케 노부히로에게 단편 연재를 부탁하고, 사타케는 한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 그가 내세운 조건은 익명으로 연재하겠다는 것. 이렇게 사내보 연작소설을 시작된다.

우선, 인상적이었던 단편과 아닌 것을 나열해 보고 싶다. 이리하는 이유는 단편마다 너무나 큰 편차를 보였기 때문이다. 어떤 작품은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좋았고, 또 어떤 작품은 너무나 유치해, 실망스러웠다. [GOOD] 8월,사라져가는 희망 / 9월,길상과의 꿈 / 12월,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 1월,정월탐정 // [BAD] 6월,눈 깜짝할 새에 / 7월,상자 속의 벌레 / 2월,밸런타인 밸런타인 // 언급되지 않은 것들은 평균작이다.

[사라져 가는 희망] 홀로 하숙하게 된 고등학생 다키자와. 그는 원예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친구 한명이 살풍경한 방도 달라 보일거라며 나팔꽃씨를 가져와 심었다. 그 후 다키자와는 기괴한 꿈을 꾸기 시작하는데...그 꿈이란, 바로 이런 것.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닌 긴 머리 여자가 자기를 보고 있다. 그녀는 다키자와의 발치에 음전하게 앉아 그를 지긋이 바라보며, "안아주세요."'(p.118) 이거 거의 전설의 고향 수준^^

도대체 꿈속에 나타나는 저 여인은 누구란 말인가? 나팔꽃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다키자와에게는 무슨일이 벌어질까? p.130이하, 나팔꽃을 심었던 미카즈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시길.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전형적인 일상미스테리로 학창시절 사랑이야기가 반전으로 깔려 있다. 오쿠타마 한적한 시골에 살고 있는 아라이. 그(?^^)의 옆집으로 유스케가 새로 집을 지어 이사오고, 그들은 친구가 된다. 유스케는 식물, 광물, 천체에 관심이 많았고 케익만들기라는 특이한 취미까지 있어 아라이에게 간식을 만들어 주곤 했다고 한다. (p.217 참조) 그런 유스케는 아라이와 같이 살고 있던 친척 유키코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행동을 하는데...

한편, 유스케가 아라이에게 보낸 케이크를 대신 유키코가 먹게 되고, 유키코는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병원에 실려 간다. 유스케가 보낸 케이크의 비밀은? 유스케는 연상의 유키코를 짝사랑했던 것일까? 끝부분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같은 고정관념을 뒤흔드는 반전이 등장한다. 그런거였군. 그랬어^^ 읽어보시길.

이제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에 대해 이야기 할 차례다. 저자는 약간은 독특한 이 장을 통해, 지금까지 소개된 12편의 단편을 이야기의 배경연도별로 재배열하고, 익명의 작가의 정체를 파헤치려 한다. 약간은 설익은듯한, 엉성한 추리지만,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여기서 익명의 연작소설의 작가가 위 12편의 단편 가운데 등장한다는 것도 밝혀진다. (이 정도는 스포일러 아니겠지^^)

나머지 단편은 굳이 설명할 필요을 못 느낀다. 역자는 후기를 통해 '일본의 언어 및 문화자체에 얽힌 트릭들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일부 단편이 부족하게 느껴진건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이럴땐 정말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게 한스럽다. 아무튼, 색다른 일상미스테리 속으로 빠져보고 싶으신분들, 한번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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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호로 역 다다 심부름집 - 제135회 나오키 상 수상작
미우라 시온 지음, 권남희 옮김 / 들녘 / 2007년 6월
구판절판


"사람의 본질이란 게 거의 첫인상 그대로야. 친해진다고 그만큼 상대를 더 잘 아는 건 아냐. 사람은 말과 태도로 얼마든지 자신을 위장하는 생물이거든."-49쪽

"다다, 개는 말이야 키우고 싶은 사람 품에서 자라는게 가장 행복해." "누군가한테 필요한 존재하는 건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는 의미야."-105쪽

"난 버릇없는 애새끼들이 싫어. 학원 보내고, 학원 끝나면 교통체증 일으키며 데리러 가고. 그런 지극 정성 쏟기 전에 저 애새끼한테 먼저 가르쳐야 할 게 있다고 봐."-114쪽

"아니, 넌 갖고 있지 않은 척하지만, 사실은 전부 갖고 있어. 널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네 피가 흐르는 자식도. 넌 그런 걸 잃거나 상처받지 않을 거리에 두고, 아무것도 갖지 않은 척하는 거야. 넌 너무 교만하고 무신경해."-298쪽

이런 녀석이었구나. 제멋대로 말하고, 남이고 자신이고 아무래도 좋다는 듯 행동하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슴속 깊이 감춰 두고 있었어.-302쪽

잃어버린 것은 완전히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얻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는 기억이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이제야 다다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행복은 재생된다고. 행복은 모양을 바꾸어 가며 다양한 모습으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몇 번이고 살그머니 찿아온다고.-3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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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6월
구판절판


벚꽃은 4월, 새 학기의 상징이다. 나는 4월이 싫었다. 주변이 갑자기 어수선해지고, 반이 바뀌고 자리가 바뀌면서 좋든 싫든 익숙해진 것들과 헤어져야 한다. 인관관계를 처음부터 새로 쌓아야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그 어수선한 분위기가 지긋지긋하게 싫었다.-16쪽

"난 막연히 벚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 뭐야. 나쁜 버릇이지.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할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나한테 있더라고. 그걸 부정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괜히 튀려고 저런다고 단정해 버리고 말이야"-19쪽

실제로 그 빙수는 2천 엔씩이나 하는 가격에 걸맞게, 몽블랑이나 마차푸차르처럼 우뚝 솟은 거대한 얼음산이었다. 딸기의 빨강, 멜론의 초록, 레몬의 노랑 시럽이 색동무늬를 그리며 둠뿍 끼얹어져 있고, 통조림에 든 체리와 황도, 귤, 파인애플, 종잇장처럼 얇게 자른 멜론 등이 산기슭을 빽빽이 메우고 있다. 4부 능선 부근에는 푸딩, 5부 능선에는 팥, 6부 능선에는 설탕에 조린 밤이 매몰되어 있다.-88쪽

"잠깐,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콩트는 하나도 안 가벼워. 장편이 무겁고 단편이 가볍다는 건 좌우지간 양만 많으면 된다는 일본사람의 가난뱅이 근성이 문화에까지 영향을 끼쳐서 생긴 망상에 지나지 않아. 무지막지하게 긴 대하소설보다 스파이시한 콩트가 훨신 무거운 경우도 있다고."-96쪽

"어머, 대하소설 무시하네. 성공한 대하소설은 신이 창조한 이 세상보다 훨신 뛰어날 때가 많은걸. 인물 묘사, 복잡한 인간관계, 멋진 배경, 콩트가 그런 깊이를 표현할 수 있겠어?"-96쪽

"콩트에 깊이가 없다고 한다면 그건 독자 쪽에 문제가 있는 거야. 판단력과 상상력이 없는 독자가 콩트를 몇백 편 읽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 원래 일본은 뭐든지 상 다 차려놓고 떠먹여주기를 바라는 마마보이 피터 팬들이 활개 치면서 어른인 척하는 나라고, 일본사람은 전세계에서 유례를 찿아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정신적 미숙아들이라고. 그래서 쓸모라곤 길이밖에 없는 소설 따위에 껌뻑 죽는 거야."-96,97쪽

여름이 되어 몇 년 만에 무더위가 찿아왔다. 나는 오히려 이 끔찍한 무더위를 즐기면서, 풍경과 모기향을 갖춰놓고 유카타를 느슨하게 입고 다다미방에 앉아 나팔꽃 모양의 부채를 부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워드프로세서 앞에서 지냈다. 에어컨은 물론이고 선풍기조차도 쓰지 않는 것은 반쯤은 취미 같은 것이니 본인은 꽤 즐겁게 살지만, 가끔 놀러 오는 사람들에게는 열탕지옥이 따로 없다.-114쪽

버린다는 행위가 신체의 배설작용과 연관......되는지 안 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버리는 일은 일종의 쾌감을 불러일으킨다.-169쪽

우리는 가끔씩 침을 튀겨가며 소설 이야기를 하고, 시시한 농을 주고받고, 합숙을 하고, 술을 마시며 실연의 상처를 서로 핥아주었다. 오늘 모이는 사람들은 모두 당시 나의 '상처'를 핥아주신 분들이다. 물론 그들이 상처를 입었을 때는 나도 열심히 핥아주었다. 그렇게 말하니 꼭 무슨 개 같지만, 결국 대학시절의 친구관계는 무리지어 장난치는 개들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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