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 사고치다
공성수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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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쓰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여건상 많이 읽고 쓰는것은 어렵기 때문에 혼란이 야기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과연 글쓰기와 논술은 같은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양자는 분리되야 한다. 즉, 아무리 독서량이 부족하고, 글쓰는 것에 자신이 없어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양자는 다르기 때문에.

책속으로 들어가자. 저자는 'Part1'에서 논술학원,학교등 교육현장에 난무하는 거짓말을 살펴본다. '학교수업만 충실히 받으면 누구나 문제를 풀 수 있다.'(p.31) 저자는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공교육은 절대 변화하는 통합논술의 흐름을 따라 잡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를 일축한다.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학생들 교육만이 아니라, 다른 잡무에 시달리는 선생님들에게 논술교육까지 기대하기는 무리다. '결국 논술은 배경지식의 싸움이다'(p.32) 저자는 기존 논술학원의 강의방식-기출문제만 나열되어 있는 교재로 첨삭하는-을 비판하며, 해마다 바뀌는 문제유형과 대학의 전형방식을 따라갈 수 없다며, 이 역시 일축한다.

'Part2' 이 부분은 저자의 핵심주장이 농축된, 논술 지침이다. 논술하면 정말 어디부터 손대야할지 모르겠는게 현실이다. 단기간에 실력향상을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해야할 것은 많아 보이고, 하지만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답답한 상황인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저자의 지침은 명쾌한 길 안내자 역할을 한다. 저자의 지침중, 당연한 것이어서 추가적인 언급이 필요없는 것은 제외하고 나머지를 살펴보자.

[제1계명] 책상 위를 점검하라.(p.48) 논술하면, 신문을 읽어라, 고전을 읽어라, 기출문제를 풀어라, 정말 말이 많다. 이런 말들에 쉽쓸려 이것저것 불필요하게 범위를 확장하지 말고 지금 당장 달성해야 하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단 내가 해야 하는 일들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정리해 보자. 복잡하고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매일의 목표를 정해 놓고 차근차근 논술을 시작하는 것이다."(p.49) 이는 비단 논술뿐만이 아니라 모든 공부의 기초다. 불필요한 범위확장은 쓸데없게 수고스러울 뿐이다.

[제2계명] 책 한 권을 다 읽어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라.(p.50) 저자는 말한다. "백과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꼭 한 번에 읽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괜히 부담을 느끼는 독서법은 역효과만 가져오다."(p.50)라고...공감한다. 일단 책과 친해질 수 있는 독서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려운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은 지적허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제5계명] 삼위일체 학습! 수능과 내신과 논술은 함께 간다.(p.53) 일반적으로 수능, 내신, 논술을 다른 공부방법론으로 보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기본적으로 모두 같다고 주장한다. "논술에서 접하게 되는 제시문의 수준이 수능보다 조금 더 높고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제시문을 분석하고 그 속에서 해답을 이끌어 내는 원리는 수능이나 논술이 모두 동일하다. 논술공부와 수능공부가 서로 통해 있는 것이다."(p.54) 사실 '공부'라고 칭해지는 것들은 따지고 보면 전부 통해 있다. 소설을 읽으면 수능 문학에 도움이 되고, 시사적인 신문기사를 읽으면 사탐이나 과탐 대비가 되기도 한다. 논술공부는 별개라는 생각은 이제 버리자.

[제7계명] 자기만의 논술 사전을 만들자.(p.55) 저자는 '중요한 키워드와 개념을 평소에 미리 정리하는 습관을 들일 것'(p.56)을 강조한다. '새로운 용어와 이슈들을 접할 때마다, 그것을 정리해 단어장처럼 만들라는 것'(p.56)이다. 이건 상당히 중요한 것이다. 그냥 읽고 넘기는 것과 한번 생각해보고, 정리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우리가 '독서기록장'이란 사용하는 이유도 저와 같다. 읽고 생각하고 정리하고 기록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책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소화해 내는 것'이다. 난 저자가 주장한 '논술 사전'을 저런 개념으로 이해한다.

'Part3'은 조금씩 실력향상을 할 수 있는 실전코스다. 학습부담을 최소화하고,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하루에 한 꼭지씩 학습하도록 구성했다. 파트3의 부제가 '~논술 다이어리 일주일'인 것이 이해된다. 난 부담없고, 약간은 자신감 넘치게 읽기 시작했는데, 장난이 아니다. 생각외로 지문의 수준이 높다. 단지 글뿐만 아니라, 각종 도표와 사진, 그림까지 총동원되는 지문에 주눅이 들 정도였다. 지금 통합논술 문제수준이 이 정도란 말인가? 내가 논술준비를 하고, 대입 논술을 치르던 때하고는 차원이 다른다. 저자가 초반에 '빠르게 변화하는 통합논술'이라 언급했던게 다시금 공감이 된다.

'Part4'는 각종 주제에 대한 심화된 이해를 도와주는 부분이다. 저자의 논술 학습론을 충분히 익힌 다음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실전파트라 보면 된다. 일단 출제가능한 예상주제를 던지고, 관련 서적이나 이론을 소개한 뒤 저자의 깊이있는 설명이 이어진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은 '사고해 볼까?'로 그야말로 기출예상문제가 제시된다. 어떤가? 그야말로 완벽한 구성이다. 또한 부담되지 않는 분량으로 나눠져 있으므로, 효과적인 학습시간 분배도 가능할 듯 하다.

논술의 중요성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있으리라.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져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교재는 찿아보기 힘들었다. '논술, 사고 치다' 이제야 제대로 된 논술 교재를 보게 되었다. 논술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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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쓰오 유미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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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을지도 

<사랑, 사라지고 있습니다> 제목만 보면 연애소설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니다.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이다. 독특한 것은 '죽임을 당한 피해자가 유령으로 등장'하는 독특한 설정을 추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연애소설이란 말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닌게, 피해자와 그녀를 돕는 주인공사이 생사를 넘나드는 사랑도 일정부분 부각된다. 요컨데, 어느 한 장르로 이 작품을 규정짓는 것은 무리.

'누마노 와타루'. 이모인 스미코가 미국으로 장기출장을 가게 되자, 와타루는 비게 된 맨션으로 이사한다. 스미코가 제시한 조건은 하나, 자기가 키우던 고양이(시로,토라)를 돌봐 달라는 것. 넓은 맨션, 공짜나 다름없는 집세, 와타루는 행운을 사로잡은 듯 즐거워 한다. '미나미 시나가와 맨션'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와타루는 비오는 날이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는 시로,토라의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저런 위화감은 정체불명의 여자 웃음소리와 함께 현실이 되는데, 이 맨션엔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처음부터 확실히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난 유령이에요. 그런 게 된 것 같아요. 3년 전에 이 맨션에서 죽었고, 그랬는데도 여기 이렇게 있으니까요."(p.36) 그녀의 이름은 '오다기리 치나미', 직장상사인 '모리야마 카오루'의 부탁으로 이 맨션에 살고 있었다. 그럼 그녀는 왜 죽었을까? 왜 유령으로 떠도는 것일까?

갑작스러운 자살충동(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꼈는지, 그녀는 비밀이라고 말하길 거부한다)을 느낀 그녀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자살을 위한 청산가리 캡슐을 구하고, 곧 바로 자살을 시도한다. 샴페인에 청산가리를 넣어 마시려는 것. 하지만 천장 선풍기 날개위에 올라간 샴페인 마개를 보고, 다른 이들이 비웃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녀는 소파에 올라가 그것을 치우려 한다. 하지만 균형을 잃고 넘어져 머리에 충격을 받고 기절한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 독이 들어있던 삼폐인을 입어 넣어 살해 했던 것.(p.60 참조) 당시 그녀는 이미 유서까지 써둔 상태였던데다, 인터넷 사이트에서 청산가리를 구한 사실이 밝혀져, 자살로 수사는 종결된다. 하지만 그녀는 자살을 시도는 했지만, 중간에 포기하고 삶의 의욕을 다졌었다. 누군가가 자살하려던 정황을 이용해 그녀를 살해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것. 그녀는 와타루에게 사건의 전말과 진범인을 잡아 달라고 부탁한다.  

여기서 잠깐, '치나미'는 왜 '와타루'에게 도움을 요청한 걸까? 살해 당한지 지금까지 근 3년여간 이곳을 거쳐간 다른 이들에게는 도와달라는 하소연을 하지 않던 그녀가 말이다. 난 이렇게 생각했다. 치나미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와타루에게 신뢰감을 느낀 것이라고. 잘 살펴보면 둘 사이엔 많은 공통점이 존재한다. 일단, 둘은 나이가 비슷하고, 독신 회사원이라는 점(이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또한 누군가의 부탁으로 '미나미 시나가와 맨션'에 살게 되었다는 점까지 같다. 아무튼 와타루는 그녀를 돕기로 하고 사건을 추적한다.

치나미는 유령임에도-그것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그리 공포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치나미와 와타루의 기묘한 동거(?)는 마치 치나미를 신혼부부 새댁처럼 느껴지게 한다. 서로간의 공동규칙을 만들고, 호칭도 달리하며, 서로를 배려하는 이들.(p.74이하,133이하 참조) 점점 마음을 열고 생사를 뛰어넘는 애정을 공유한다. 아, 한가지 이야기하지 않은게 있다. 치나미는 비오는 날만 모습을 드러낸다. 초반 비오는 날 고양이들이 평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인건 바로 저런 이유 때문이었다.

와타루는 살인사건의 피해자인 치나미의 증언(보통의 경우 도저히 알 수 없는)을 토대로 사건해결을 시작한다. 치나미는 두가지 의문을 제기(p.78)한다. 첫째, 어떤 사람이 했던 이상한 말. 둘째, 사건현장에서 사라진 어떤 것.

치나미의 첫번째 문제제기는 직장상자 모치즈키를 겨냥하고 있다. 모치즈키가 "괜찮아. 여자 쪽도 오늘밤 안에 결말이 날 것 같으니까"라는 말을 한 것을 자기가 들었고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가 모치즈키의 횡령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 모종의 수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첫번째 용의자의 등장. 두번째 문제제기는 '미나미 시나가와 맨션'에 걸려 있던 그림과 관련이 있다. 사건 직후 거실에 걸려있던 그림액자가 사라진 것 같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럼 사건의 동기는 고가의(혹은 고가로 추정되는) 그림 때문인 걸까?

저런 치나미의 문제제기는, 사건조사에 착수한 와타루를 통해 하나씩 실마리가 풀리지만, 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조금은 황당하다고 해야하나. 이 부분을 보며, 마쓰오 유미가 소설의 미스테리 측면은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해봤다. 피해자에 의해 제기된 두가지 의문은 문제해결에 있어 핵심임에도, 너무나 허무하게 너무나 빨리 해소된다. 또한 마지막 사건의 진실, 이것도 조금 갑작스러운 면이 있다. 저자는 미스테리를 재료로, 인간관계 내지 사랑을 요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몇가지 의문이 있다. 일단, 도대체 왜 치나미는 자살을 기도했을까? 물론, 발레를 했던 치나미는 극단의 공개오디션에서 떨어져 자살을 기도했던 것이라고 말한다.(p.204) 하지만 와타루는 납득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렇다. 왠지 끝까지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듯한 모습. 둘째, 와타루는 직장인이다. 직장에 얽메인 그가 사건해결을 위해 탐정처럼 조사를 한다는 것은 여건상 맞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시간여유가 있단 말인가? 퇴근후에 조사를 한 것일까? 잠시 휴직했던 것일까? 잘 모르겠다.

비 내리는 날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치나미, 그런 그녀를 이해하고 돕는 와타루. 그들은 '멋진 커플'이었다.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기에 더욱 서로를 이해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비 내리는 날 특유의 촉촉함과 왠지 모를 쓸쓸함이 더해져, 소설은 한층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와타루가 차근차근 사건의 진실로 접근해 가는 모습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하나의 미스테리 작품으로 봐도 상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을듯 하다. 비 내리는 날에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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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다나다 군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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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꿈이다. 이건 전부다 '다나다'의 꿈일 뿐이다'

<사랑하는 다나다 군>을 읽는 내내 되내었던 말이다. 마구로 사장도, '마바'도, '호테이 가드'들도, 비현실적이고 황당해서 도무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현실적이기에 독특한 재미가 있었고, 비현실적이기에 마음껏 상상의 세계를 누빌 수 있는 '다른 차원의 보편성'을 느꼈다. 모든 것이 반복되는 일상처럼 똑같이 굴러갈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나다 군' 그는 신장 189센티미터, 체중 70킬로그램, 올해 29살이다. 지도회사 경리과에 근무하고 있으며, 심각한 '방향치'이다.(p.10참조) 이후 이야기는 '이상한 경험'을 한 다나다 군의 회상으로 진행된다. 만나던 여성의 헤어지자는 통보, 키우던 장수풍뎅이의 죽음, 그는 그의 애마 '론포군'과 함께 기분전환 삼아 드라이브 한다. 이것이 저 '이상한 경험'의 시작. 그는 낮선 거리로 가게 되고, 보게 되는 서커스단 같은 이상한 사람들과(p.16), 운명의 여인.(p.20)

다나다는 낮선 거리에서 보게 된 저 여인에게 강한 호감을 느끼고 그녀를 따라 간다. 처음 그녀를 본 다나다가 그녀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살펴볼까. '그것은 하나의 빛인 동시에 걷고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내가 여자와 빛을 잘못 본 것은 아니다. 내 눈에는 번화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가게 간판 중에서 단지 한 사람, 그 여자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p.20) 홀로 반짝반짝 빛나는 이성, 저런 경험은 누구나 한번을 해 봤을 것이다. 한마디로 다나다는 콩깍지 씌인 상태^^  그 여인은 호텔로 보이는 건물로 들어가고, 다나다는 용기를 내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다나다를 기다리는 것은 '호테이 가드'라는 이상한 경비원들이었다. 그들과 실랑이 하던 다나다는 '게스트 룸'이라 칭해지는 감옥에 갇힌다. 철창 안엔 다나다 외에도  이치이,슈운조란 이들이 있었고, 이들을 통해 이 호텔이 '호테이 호텔'이란 것, 그 여인를 둘러싼 소문들, 호테이 호텔의 사장 마구로에 대해서 듣게 된다. 이 곳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호테이 호텔'은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의 결정체이다. 다나다가 한 여인을 쫒아 이 곳으로 들어오는 순간부터, 그의 '이상한 체험'은 본격적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한 평론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이 작품을 비교했다고 하는데, 공감이 간다. 하지만, 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제대로 읽은 적이 없어서 줄거리밖에 모른다. 양자를 비교해 보는건 분명 흥미로운 일이나 지금은 무리.

다나다가 반해버린 그 여성은 식사를 가지고 오고, 다나다는 갑작스러운 만남에 놀란다. 그녀의 이름은 '마바'. 다나다는 마바에게 자기가 이 곳에 온 이유를 구구절절 이야기하며, 그녀에게 사랑고백을 하는데, 마바의 반응은 정말 특이하다. '(사귀고 싶다는 다나다를 보고) 마바 씨는 (역시)라는 느낌으로 두세 번 작게 끄덕인 후, 변함없이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 그럼 사귀어보도록 하죠."'(p.122) 처음 본 사내에게 사랑고백을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사귀자는 마바. 어리둥절한 것은 나만이 아니다. 다나다 역시 어리둥절해 어쩔 줄을 몰라 한다. (마바가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마바의 입을 통해 p.210에서 설명된다. 참조하시길)

이치이와 슈운조는 마바를 둘러싼 소문을 다나다에게 말해주는데(p.127~135), 소문속 그녀는 결혼을 약속한 나이지리아(혹은 알제리) 출신 연인을 전쟁으로 잃고 괴로워하는 여인, 호테이 호텔의 사장 마구로의 정부. 과연 그녀를 둘러싼 소문은 맞는 것일까? 과연 그녀의 정확한 정체는 무었이란 말인가?

사실, 이 작품을 논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황당하기 그지없다. 누누이 이야기한 등장인물들이나 배경뿐 아니라, 결말로 이어지는 스토리라인 자체가 몽롱한 것이다. 특히, 다나다의 사랑을 과학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마구로가 감행한 은밀한 피검사, 마구로와 마바의 관계등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면 강한 비판의 대상이다. 도무지 설득력이 없다. 참 재밌게 읽었던 이 책의 리뷰를, 거의 하루종일 끙끙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잡고 있던 이유는 저런 간극 때문이다. 하지만, 논리따위는 치워버리길 바란다. 그래야 이 작품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내가 이 이야기가 전부 꿈이라 생각했던 것 역시 저런 이유 때문이다. 저자는 등장인물들(마구로,이시이,슈운조등)이 칠복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극히 초현실적인 장면(p.348)을 마지막에 보여주면서도, 마바와 다나다의 관계는 깨버리지 않는다. 자기가 이룩한 세계를 꿈으로 날려버리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한 여자를 진정 사랑했던 다나다와 그 사랑을 이해해 준 마바. 그들의 사랑은 그 어떤 몽롱함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다나다가 처음 그녀에게서 본, 강한 사랑의 빛처럼.



* 역자는 역자후기에서 우리말 작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원작에 충실한 번역을 위한 리스트를 소개한다. '1.모리스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 CD감상하기. / 2. 평론가가 비교했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다시 보기. / 3. 루이스 캐럴 관련 도서 읽기. / 4.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찿아보기. / 5.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주인공 다나다를 사랑하기.'(p.355)

* 저자는 이런 말을 한다. "이 책은 '로린 마젤이 지휘한 모리스 라벨의 오페라 <어린이와 마술>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 위해 만들었다는 이 오페라의 특징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의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특이한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중략) 이 책은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음악'을 의식하며 쓴 작품입니다."(p.356) 하지만 음악에 대한 나의 식견부족인지는 몰라도, 저것이 소설속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초현실주의를 상징하는 도구일까, 마바의 사랑을 구체화하기 위한 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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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30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하는 다나다 군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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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하나의 빛인 동시에 걷고 있는 한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내가 여자와 빛을 잘못 본 것은 아니다. 내 눈에는 번화한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나 자동차, 가게 간판 중에서 단지 한 사람, 그 여자만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20쪽

"연애라. 여자에게 말을 걸고, 영화나 유원지 같은 곳에 간 다음은 호텔......그뿐이지 않나......핑계일 뿐이야, 핑계! 여자랑 하고 싶다는 이기심, 슬픈 핑계라."

"여자 냄새를 맡고......불알이 불록해지면서, 하고 싶다고 결정하고 나서 연애라는 말을 꺼내는 거야......타인의 형편 따윈 생각하지도 않고......"

"뭐가 운명적인 사람이야? 듣는 것도 질렸어......너희들 행동 반경 중에서 적당한 사람을 고르는 것뿐이잖아. 그렇지 않다면 티베트 사람과 연애를 해봐. 할 수 없을걸......"-149쪽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이런 짓을 함으로써, 이런 곳까지 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깨달은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아직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하고 싶은 겁니다. 사랑이 무었인지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장이나 다른 누구보다, 코끼리보다도 더 강합니다. 제가 바보같은 짓을 하루 종일하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304쪽

"모리스 라벨은 군대에 지원했지만 병사가 되진 않았어. 자동차 호송대에서 트럭 운전을 했었지. 1916년 어느 날 밤, 그는 전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트럭 운전을 하고 있었어. 무서운 굉음과 포성이 들리는 가운데 인류 최고의 음악가는 애국심만을 의지한 채 핸들을 잡고 있었던 것이지. 그런데 갑자기 모든 소리가 멈춰버렸다. 전장의 중심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되었지. 날이 밝아오고 있을 때였어. 그런 완벽한 침묵 속에 한 마리 새가 지저귀기 시작한 거야. 대단히 섬세한 귀와 감성을 지닌 자에게 있어서 이 경험은 실로 인상적인 사건이었다는 걸, 자네도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실제로 그것은 충격적인 체험, 하늘의 계시와 같은 순간이었지. 사람 목숨을 날려버리고, 우리의 기억을 담당하던 건조물이 파괴되는 지옥과 같은 때에 마치 신의 사자가 너희들을 살려둔 것은 너희들이 선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러 왔던 것처럼......(이어짐)-333,334쪽

내 가치관으로는 군대는 폭력단 같아 보이지만, 그보다 품격이 있는 인상을 라벨을 받았던 거지. 전쟁이 끝나면 이 이미지를 음악으로 만들어보자. 타이들은 <무관심한 산새>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그는 생각했지. 하지만 라벨의 작품 가운데 <무관심한 산새>라는 타이틀을 가진 곡은 없어. 숨이 막힐 것만 같은 감명을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곡을 만들지 않았던 거지. 왜 그랬는지 알겠나?"

"열기가 식은 거야. 전쟁에서 돌아와서 자신의 피아노 앞에 앉았을 때는 이미 생지옥도 없어지고, 신의 손에 닿았던 것 같은 감동도 사라져버린 거지. 그것이 바로 평화라는 것이야. 세로토닌과 같지. 처음에는 감정이 아주 열렬해지지 때문에 혈액과 세로토닌을 감소시키지만, 나중에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감동이 사라지는 거야. 인간은 감동 속에서 계속 살 수는 없어. 그러니까 자네도 지금은 이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정직하게 고백할 필요는 없어. 단지 감동이 사라져도, 감동했던 기억은 남는다. 자네가 언제까지 그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을지, 그건 나도 몰라."-333,3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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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8-28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0자 넘으면 입력이 안되는군.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 신분을 뛰어넘은 조선 최대의 스캔들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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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관점에서 사랑에 얽힌 조선시대 사건들을 돌아보면 안타깝다. 신분제와 차별, 약자를 억압하는 지배계급. 하지만 저런 끔찍한 환경도 사랑만은 막지 못했다.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에 실린 사랑이야기는 사랑이야기인 동시에 투쟁인 것이다.

[양녕대군 폐세자 사건](p.24) 지금까지 난 세종의 즉위과정을 야사에서 알려진 것처럼, 양녕대군이 양보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내막에 여자와 사랑이 얽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조금 놀랐다. 태종의 세자로 책봉되었던 양녕대군은 중추부지사 곽선의 첩인 '어리'란 여인에 빠지고, 그녀를 강제로 궁으로 들인다. 사랑을 불태우는 두 사람. 하지만 이 일은 태종과 세자사이 묘한 권력관계와 결합되면서 큰 문제로 부각된다. 태종은 점차 영향력을 확대하는 떠오르는 태양, 세자를 고까워 했고 비양녕대군 세력들은 세자를 모함했다. 결국, 어리는 궁중에서 추방되고, 세자는 반성문까지 쓰게 된다.

여기서 일단락 된 듯 보이던 '어리문제'는 끊을 수 없는 사랑때문에 다시 논란의 핵심이 되는데, 그건 바로 세자가 어리를 여종으로 위장해 입궐시키고, 어리가 애까지 낳았기 때문. 이 문제로 또다시 태종과 세자는 신경전을 벌이고, 신하들은 편을 갈라 대립한다. 결국 태종은 세자 양녕대군을 폐위하고, 훗날 세종인 충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다. 양녕대군은 어리에 대한 절절한 애정때문에 한나라의 임금 자리까지 내놓게 된 것이다. 물론, 어리와의 사랑 때문에 양녕이 폐세자가 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노쇠하던 태종과의 알력, 비양녕 신하들의 모함등의 견제등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하지만, 어리문제가 폐세자가 된 원인중 하나임은 분명하지 않은가?

[신분을 초월한 용기 있는 사랑](p.105) 가슴 아픈 사랑이야기이다. 양가 규수 '가이'는 어려서 부모를 모두 잃고 사노인 '부금'과 함께 집안을 꾸려 갔다. 어릴적 부터 혼자가 된 가이가 부금에게 의지한 것은 당연지사. 가이는 점점 자라 모두가 탄복할 정도로 아름답게 자라고, 이들 사이에는 주인과 종이라는 신분을 넘는 사랑이 싹튼다. 결국, 이들은 혼례를 올리고 행복한 삶을 누리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그들을 신분제를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관가에 고발 한 것.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 두 사람. 조선시대는 사랑조차 마음대로 할 수없는 사회였던 것이다. "양반의 딸이 천민과 혼인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혼인이 아니라 강상의 죄를 저지른 것이다. 가이는 양반의 위신을 더럽혔으니 이혼시키고 왜관에 있는 왜인에게 시집을 보내라."(p.112) 경상도 관찰사는 이렇게 판결 내렸다. 너무 가슴 아픈 상황. 가이를 엉겹결에 아내로 맞은 왜인은 가이를 학대하고, 견디다 못한 그녀는 부금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부금은 왜관으로 달려가 가이를 학대하던 왜인을 살해하고, 가이와 함께 도망친다. 그러나 곧 체포된 그들은 국문을 당하는데...

남성은 상민이나 노비를 첩으로 거느릴 수 있으면서, 여성의 경우는 저런 것이 불가능 했다. 정말 불합리한 사회구조이다. 저런 불합리한 사회구조의 희생자인 가이와 부금. 안타깝다.

[양성을 넘나든 사방지 사건](p.227) '사방지' 그는 특이하게도 남녀 양성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다. 사방지는 재상을 지냈던 이순지네 종이었는데, 여장을 하고 다니며 여승과 부인네들과 간음한 것이다. 당연히 조정은 벌컥 뒤집혔고 사방지는 국문을 받는다. 당시는 양성인을 '인간이 아닌 괴물로 취급하였으며, 양성인이 나타나면 불길한 일이라 하여 크게 화제가 되었다'(p.237)고 한다. 하지만 다방면에 해박했던 세조는 그를 처벌하자는 신하들을 물리고 그의 처리를 주인인 이순지에게 맡긴다. 세조의 관대함이 돋보이는 장면.

책 중간중간에 다양한 그림과 사진이 소개되어 있는데, 흥미로웠다. 저자의 전작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을 아직 읽지 못했는데, 조만간 찾아 읽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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