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클래식 보물창고 43
생 텍쥐페리 지음, 이효숙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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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에게 너는 아직은 수십만의 다른 남자 애들과 다를 바 없는 한 남자 애일 뿐이야. 그리고 나는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아. 너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에게 나는 수십만의 다른 여우들과 마찬가지로 한 마리 여우일 뿐이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될 거야.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될 거고, 나는 너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가 될 거야."-85쪽

"예를 들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나는 더 행복해지겠지. 그러다가 네 시가 되면 벌써부터 흥분되고 초조해질 거야. 그렇게 나는 행복의 대가를 알게 될 거야!"-88쪽

"너희는 내 장미와 전혀 안 비슷해. 너희는 아직 아무것도 아냐. 아무도 너희를 길들이지 않았고, 너희 또한 아무도 길들이지 않았으니까. 너희는 길들이지 전의 내 여우와 같아. 그 때는 그저 수많은 다른 여우들과 다를 바 없는 여우였어. 하지만 나는 그 여우를 내 친구로 만들었어. 그래서 이제는 세상에서 유일한 여우가 되었어."-91쪽

"너희는 아름다워. 하지만 텅 비었어. 너희를 위해 죽을 수는 없을 거야. 물론 보통 사람이 지나가다 나의 장미를 보면 너희와 똑같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단 한 송이의 내 장미가 너희 모두보다 더 중요해. 왜냐하면 내가 물을 준 장미이니까. 왜냐하면 내가 덮개를 씌워 준 장미이니까. 왜냐하면 내가 바람막이로 가려 준 장미이니까. 왜냐하면 나비가 되도록 남겨 둔 두세 마리만 제외하고 내가 벌레들을 잡아 준 장미이니까. 왜냐하면 투덜대거나 자랑을 늘어놓거나 때로는 침묵하고 있을 때까지 내가 모든 것을 다 받아 준 장미이니까. 왜냐하면 나의 장미이니까."-9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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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왕
니콜라이 바이코프 지음, 김소라 옮김, 서경식 발문 / 아모르문디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 색다르고 아름다운 책이다. '아름답다'란 말의 의미를 넘어 대단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웅장하고 늠름한 호랑이의 기상과 다양한 동물들의 생태, 인간과 동물과 교감과 갈등, 왜 이 작품이 '세계 동물문학의 고전'이라 불리는지 이해했다. 대단한 작품이다.

<위대한 왕>은 만주일대를 호령하던 늠름한 만주호랑이의 일생을 기본 축으로,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파괴와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이야기한다. 저자인 니콜라이 바이코프는 군인으로 처음 만주에 발을 디딘 이후, 30여년을 만주의 자연속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책은 만주의 동물과 자연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가 없이는 절대 쓸 수 없는 책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왕>엔 인간이 등장하긴 하지만,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주연은 '위대한 왕' 만주호랑이 이다. 시점 역시 인간이 아닌, '위대한 왕'을 비롯한 동물들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정말 독특하다. 이야기를 크게 세부분으로 나눠보았다. '위대한 왕'의 탄생과 성장기(처음-p.94), 타이가의 제왕, '위대한 왕'(p.95-p.166), 대자연을 파괴하는 인간과 '위대한 왕'의 죽음(p.167-p.끝) 좀 자세히 살펴보자.

타이가를 누비던 암호랑이는 뱃속에 있는 새생명의 박동소리를 듣고, 편안한 동굴에 자리 잡는다.(p.25) 사흘간 고생끝에 암,수 한마리씩의 새끼가 태어나는데, 저 수컷이 바로 늠름한 '위대한 왕'. 이들은 어미 호랑이의 헌신적인 보살핌 덕에 무럭무럭 자라난다. 어미 호랑이는 독립했을때 스스로 먹이를 구하는 법을 교육하기 위해, 점차 반쯤 살아있는 먹이를 가져다 준다.(p.51) 어미는 새끼들이 어느정도 자랐다고 생각하고는 일종의 성인식(?)을 준비한다. 그것은 바로 잡아온 오소리를 새끼들에게 스스로 제압하도록 싸움을 붙인 것.(p.51-56) 과연 어린 '위대한 왕'과 그 누이는 오소리를 제압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새끼들이 자라자, 어미 호랑이는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하기로 한다. 어미는 수컷을 찿아 굴을 떠나고(p.94), 새끼누이는 반년간 같이 지내다 서로 자신의 길을 찿아 떠난다. 지금까지 어미의 보호아래 대자연의 생존법칙을 익히던 '위대한 왕'. 이제 대자연 앞에 홀로 서는 것이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위대한 왕>엔 많은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주로 다양한 동물그림인데, 생동감있고 생생하다. 참 마음에 드는 그림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 그림소개를 보면, '만주 뱀, 만주 너구리등'으로 되어 있다. 곰곰히 따져보면 저건 '만주 뱀, 만주 너구리'가 아니라 '한국 뱀, 한국 너구리' 아니겠는가? 우리가 고구려, 발해의 광할한 영토를 지켰다면, 일본에게 침략당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가장 가까이 했을 동물들을, 외국인의 시각에서 봐야한다는 사실, 참 가슴 아팠다.

<위대한 왕>에 등장하는 인간중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인물은 늙은 사냥꾼 '퉁리'이다. '위대한 왕'과 '퉁리'의 만남, 상당히 극적이다. 어두운 밤, 길을 가던 퉁리는 오솔길 위에 우뚝 서 있는 어두운 형체를 발견한다.(p.105) 그건 바로 '위대한 왕'. 퉁리는 두려워하는 낌새를 보이면 목숨이 달아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겁에 질리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린다. 결연하게 '위대한 왕' 곁을 지나가는 퉁리. '위대한 왕'은 늙은 모피 사냥꾼의 당당한 모습과 날카로운 시선에 존경의 감정을 갖는다.(p.110) 둘은 종(種)을 뛰어넘는 교감을 느낀 것이다.

'위대한 왕'은 멧돼지를 사냥(p.114)하고, 거대한 곰까지 사냥(p.122-128)한다. 만주일대에서 '위대한 왕'의 늠름함과 위상은 굳건히 이어진다. 헤어졌던 어미와의 재회하는 부분(p.144)은 감동적이었다. 인간쓰레기를 '동물만도 못한 놈'이라 칭하는 것은 잘못됐다. 세상에 인간같이 추악한 동물이 어디 있는가? 개나 호랑이같은 동물들이 훨신 낫다.

사랑의 열병을 과연 누가 피할 수 있을가? '위대한 왕'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짝을 찿아 나선다. 왕의 선택을 받기 위해 싸우는 암컷들, 결국 '위대한 왕'은 짝을 찿고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p.151) 하지만, 넘치는 행복은 오래가지 않고, 왕의 연인은 사냥꾼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p.160) 분노하는 왕. 동물들은 다른 동물을 죽이지만, 그건 살기위해 먹이를 구하기 위할때 만이다. 하지만 인간은 왜 동물을 죽이는가? 암호랑이는 왜 죽였는가? '위대한 왕'에 의해 잔혹하게 죽는(p.164) 모피사냥꾼 리싼은 죽어 마땅한 인간이다.

'위대한 왕'은 숲의 이상한 변화를 알아챈다. 금속괴물의 소음과 인간의 목소리, 뻐걱거리는 톱 소리,(p.179) 인간들은 타이가 산림을 파괴하고, 동물들의 보금자리를 빼았는다. 인간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위대한 왕'. 왕의 반응은 너무나 당연하다. 분노한 왕은 인간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고, 인간들은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다. 결국 사로잡힌 '위대한 왕'의 연인, 암호랑이.(p.260) 왕은 연인을 구출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광분한다. 결국, '위대한 왕'은...인간들의 총탄에 맞고, 힘겹게 산꼭대기로 올라간다. '위대한 왕'의 임종을 지키는 퉁리. 너무나 가슴 아픈 마지막 장면.

저자는 인간과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를 강하게 비판한다. 만주일대의 '위대한 왕'의 죽음은 파괴되는, 죽어가는 자연을 상징하는 것은 아닐런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위대한 왕>은 세계 동물문학의 고전으로, 국내 소개되는 첫 완역본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만주일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만주호랑이 '위대한 왕'의 일대기, 대자연을 파괴하는 인간과의 투쟁기 그리고 교감,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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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참
성석제.윤대녕 외 지음 / 북스토리 / 2006년 8월
절판


기억이라는 것은 참 이상한 것이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대신 사소하기 짝이 없다고 여겨지는 어떤 한 순간만 확대되어 또렷하게 각인되는 수가 왕왕 있게 마련이다. 나는 그것을 '기억 속 명장면'이라고 부른다. 가령 이런 것이다. 어린 시절, 공중목욕탕에서 첫 목욕을 경험했던 때의 내 기억은 탈의실에서 내복 바람으로 울고 있는 한 장면으로만 영원히 존재한다. 그 앞도, 그 뒤도 없다. 오직 그것 하나뿐이다.-151,152쪽

앞으로 사십 년쯤 후, 그대도 살아 있다면, 아마 나는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 사십 년 전 '쉬리'라는 영화가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었지. 엄청났었어. 그런데, 나도 영화를 보았을까? 허리가 아파서 쩔쩔매며 극장에 앉아 있던 장면 하나만 또렷하게 기억나고 나머지는 글쎄, 가만있자, 영화 제목이었던 '쉬리'가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는 작고 예쁜 물고기 이름이라고 그랬던가......-158,1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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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구판절판


이광두의 눈 바로 앞에 놓였던, 마르지도 뚱뚱하지도 않았던 그 엉덩이는 다섯 개 가운데 가장 그 모양이 둥글어서 마치 뭔가를 말아놓은 것 같았고, 탱탱한 피부는 조금 위쪽의 꼬리뼈를 살짝 드러나게 했다. 심장이 사납게 콩닥거리는 가운데 꼬리뼈 반대쪽에 난 털을 보고 싶었다. 여자의 거기 털은 어디서부터 자라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몸을 더 깊숙이 파묻고 머리를 처박아서 여자의 거기 털을 거의 다 보게 되었을 무렵, 뒷덜미가 낚아채져 버렸다.-16쪽

"이제껏 내 엉덩이는 오직 당신 한 사람한테만 보여줬는데, 저런 새까만 양아치 자식이 훔쳐봤으니 세상에 내 엉덩이를 본 사람이 두 사람이 되어버렸잖아요. 이를 어쩌냐구요? 당신 빨리 패주라니까! 저놈의 눈탱이를 패주라고! 왜 꼼짝도 않고 서 있어요? 부끄럽지도 않아요?"-22쪽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이광두가 류진의 거부가 되어 우주여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눈을 감은 채 자신이 우주 그 높은 곳에서 고개를 숙여 지구를 바라본다고 생각하자 갓난아기였을 때의 기억이 신기하게 돌아왔다. 상상 속의 지구의 장엄한 정경은 어머니가 자신을 안고 처음으로 남문 밖으로 나섰을 때 보았던, 달빛 아래 무한히 펼쳐진 논밭이었다. 갓난아기일 때 이광두의 눈빛은 러시아 우주선 유니언처럼 빠르게 지나갔다.-57쪽

사방팔방 아무도 없었고, 찬바람만 불어오고 파도 소리만 들려왔다. 맹렬한 기세로 물결이 밀려와 부딫치면 하얀 포말이 기다란 선을 만들었고, 그 머나먼 하얀 선은 때로는 회색으로, 때로는 시커멓게 변했다. 먼 곳은 밝기도 어둡기도 했고, 하늘의 달마저 구름에 가렸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139쪽

송범평은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고 용서를 구했다. 누구에게도 절대 굴복하지 않는 송범평은 이 순간 몹시도 살고 싶었던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무릎을 꿇은 뒤 피를 토하며 오른손으로 피를 쏟아내는 배를 막으면서 제발 그만 때리라고 눈물을 흘리며 애걸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주머니 속에 있던 이란의 편지를 꺼내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왼손으로 편지를 펼쳐 보이며 자신은 도망치려 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 편지를 받아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무수한 발길만이 차고 밟고 짓이겨댔으며, 날카로워진 몽둥이가 송범평의 몸을 쑤셨다가 뺐다가 쑤셨다가 뺐다가 했다. 송범평의 몸은 구멍이 뚫린 듯 선연한 피를 쏟아냈다. -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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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줄리오 레오니 지음, 이현경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먼저 뒤에 실린 '줄리오 레오니'의 인터뷰를 읽었다. 그가 왜 '단테'란 인물에 관심을 가졌고 탐정으로 재창조했는지, 그의 마술에 대한 관심등, 줄리오 레오니의 작품세계와 재창조한 단테에 대해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었다. 사실, <단테의 빛의 살인>을 읽고 단테시리즈의 단테는 신곡을 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 줄리오 레오니가 '창조'한 인물인 줄 알았다. 기존에 알고 있던 시인이미지의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오해에 대해 줄리오 레오니가 언급한 부분이 있다.

"약간 과장되게 표현된 면도 있지만 실제 단테는 그랬습니다. 그를 기이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들 모두가 단테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도외시한 채 학교에서 배운 단테의 이미지만을 떠올리기 때문이지요."(p.478) 저자의 말을 듣고 다시 생각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테는 저자의 말대로 학교에서 배운 단테일 뿐이다. 그런 한정된 이미지를 기준으로, 저자가 전문적인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재창조한 단테를 재단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산 귀다 성당'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사체는 머리와 목주위가 석회로 뒤덮힌 잔혹한 모습.(p.34) 행정위원인 단테는 코무네 수비대장 '바르젤로'와 함께 수사에 나서고, 피해자는 건축가이자 모자이크 기술자인 '암브로지오'임과, 피해자가 죽기 전에 남긴 것으로 보이는 'Ⅲ-COE' 란 글자(p.45)를 확인한다. 모자이크와 사건의 관련은? 피해자가 남긴 다잉메시지의 의미는? 이어 단테는 약재상 '테오필로 스프로비에리'를 찾아 기묘한 약을 처방받는데, 테오필로는 산 귀다 성당의 재건축을 지원하는 스투디움 교수 일원으로 단테와 '셋째 하늘' 멤버들을 연결 해주는 인물이다. ('셋째 하늘'의 자세한 의미는 p.83 참조하시길) 그는 이야기 초반 가장 주목받는 약간은 의심스러운 존재.

일단, 두가지를 살펴보고 가자. 첫째는 '단테의 성격'이다. 이야기 속 그는 상당히 권위적이고 다혈질적이다. 약간은 건방지게 행동하는 병사에게 욕설을 퍼붓고 따귀를 때리는 모습(p.68), 이방인에서 저급한 욕설을 퍼붓는 모습(p.85), 적선을 구걸하는 거지에게 욕설을 퍼붓고 구타하는 모습(p.121), 추기경과 언쟁하고 칼까지 겨누는 모습(p.227-231), 병사들에게 저급한 욕설을 퍼붓는 모습(p.427)등등 무뢰배가 따로 없다. 위 나열한 것은 내 기억에 남았던 극히 일부분이다. 다혈질적인 몰라도, 행정위원이란 직위를 이용 권위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은 상당히 실망이다. 단테는 왜 저런 성격으로 묘사된 것일까? 단테가 살던 당시에는 저런 행동이 일반적이고 당연한 것이었을까?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특이한 것은 '단테의 빛의 살인'에서는 저런 권위적이고, 욕설을 퍼붓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는, '단테의 건강'이다. 단테는 심한-거의 앞이 안보이고 쓰러질 정도-편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다.(p.151) 그가 약재상 '테오필로'를 찾아간 것도 편두통 때문이었다. 도대체 단테를 괴롭히는 편두통은 어떤 병 때문인가? 그렇다면 역사속 단테는 실제 편두통에 시달렸는가? 읽을 당시에 난 삼국지의 조조처럼 단테가 뇌종양을 앓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는데, 단테에 대한 관련자료를 살펴보니, 그는 '간질환자' 였다고 한다. 그리고 간질의 증세중 하나가 편두통. 한마디로 그는 간질때문에 편두통에 시달렸던 것이다. 천하의 단테가 간질환자였다니, 조금 놀라운 사실. 다른 측면에서 이 부분은 저자가 단테를 얼마나 정확하게 재창조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 생각한다. 단테가 실제 고생했던 질환까지 재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다시 이야기속으로 돌아와 볼까. 단테는 부검결과 확인차 시체를 안치했던 '미제르 코르디아'병원을 찾고, 부검의로부터 시체 가슴에 긁힌것 같은 문양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 문양은 불길한 5각형 형태의 다섯줄.(p.213) 과연 저 문양이 단서가 될런지. 이어 단테는 무희 '안틸리아'와 사랑에 빠지며, 또 특유의 욕설을 퍼부으며^^ 사건을 파헤쳐 간다. 어찌보면 너무나 인간적인 단테.

'빛의 살인' '신곡 살인'과 이 작품을 비교해 보자. 사실 '신곡 살인'은 줄리오 레오니의 작품이 아니지만, 단테라는 교집합이 존재하기에 비교해 볼만 하다. '신곡 살인'의 주인공은 단테가 아니라 흑란이라 불리는 첩보원 '피에트로'이다. 단테와 피에트로...둘다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이지만, 행정위원이라는 안정적인 지위의 단테와는 달리 피에트로는 죄인 신분으로 사건을 해결중이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마음에 안들면 욕설과 구타도 서슴치 않는 단테와는 달리 피에트로는 온건하다. 조심스럽다고나 할까. 두 주인공 중에 누구에게 더 호감이 가냐고 묻는다면, 난 피에트로를 선택하겠다. 편두통에 시달리는 다혈질의 단테보단, 뜨거운 열정과 뛰어난 검술, 멋진 외모를 가진 피에트로가 좋지 않은가?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조금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우상화되고 완벽하게 묘사된 피에트로보다, 너무나 인간적인 단테에게 끌리기도 함. 여러번 읽어본 후 판단해야 할 듯)

'모자이크 살인'은 줄리오 레오니의 출세작이고, '빛의 살인'은 그 이후 작품이다. 하지만 난 '빛의 살인'을 먼저 읽었고 이는 먼저 언급했다. 두 작품의 우열을 가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건 조금 어렵지만, '모자이크 살인'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전체적으로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속도감 있는 이야기의 전개나 군더더기 없는 설정에서 '모자이크 살인'이 조금 더 나았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루니타>는 이 작품을 "<장미의 이름>보다 환상적이며, <다빈치 코드>보다 지적이다"라고 평했다 한다. 난 <장미의 이름>을 읽지 않아 더 환상적인줄은 모르겠으나, <다빈치 코드>보다 지적인 것은 분명하다. 중세에 대한 깊은 지식, 단테에 대한 풍부한 연구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추리소설의 수준을 뛰어 넘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더군다나 속도감있는 이야기전개와 철학적 사유까지 보여주는 결말은 충격 그 자체다. 여름의 막바지, 단테와 함께 사건현장을 누벼보는 것은 어떨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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