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구판절판


글쓰기에서 정말 심각한 잘못은 낱말을 화려하게 치장하려고 하는 것으로, 쉬운 낱말을 쓰면 어쩐지 좀 창피해서 굳이 어려운 낱말을 찾는 것이다. 그런 짓은 애완 동물에게 야회복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애완 동물도 부끄러워하겠지만 그렇게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은 더욱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141쪽

수동태로 쓴 문장을 두 페이지쯤 읽고 나면-이를테면 형편없는 소설이나 사무적인 서류 따위-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수동태는 나약하고 우회적일 뿐 아니라 종종 괴롭기까지 하다. 다음 문장을 보라. '나의 첫 키스는 셰이나와 나의 사랑이 시작된 계기로서 나에게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My first kiss will always be recalled by me as how my romance with Shayna was begun).' 맙소사. 이게 무슨 개방귀 같은 소리인가? 이 말을 좀 더 간단하게-그리고 더욱 감미롭고 힘차게-표현하는 방법은 다음 과 같다. '셰이나와 나의 사랑은 첫 키스로 시작했다. 나는 그 일을 잊을 수가 없다(My romance with Shayna began with our first kiss. I'll never forget it.).'-149쪽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슬쩍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름길도 없다.-176쪽

나는 일단 어떤 작품을 시작하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다. 날마다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 속에서 등장 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진짜 사람들이 아니라 등장 인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서술도 예리함을 잃어 둔해지고 이야기의 플롯이나 전개 속도에 대한 감각도 점점 흐려진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때의 흥분이 사라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집필 작업이 '노동'처럼 느껴지는데, 대부분의 작가들에게 그것은 죽음의 입맞춤과 도 같다. 가장 바람직한 글쓰기는 영감이 가득한 일종의 놀이이다. 어쩔 수 없는 경우에는 나도 냉정한 태도로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방법은 도저히 손댈 수 없을 만큼 뜨겁고 싱싱할 때 얼른 써버리는 것이다.-186쪽

지금까지 우리는 좋은 소설을 쓰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들을 살펴 보았는데, 그 모든 내용은 결국 두 가지로 귀결된다. 연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그러나 연습처럼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즐거워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진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묘사와 대화와 등장 인물을 창조하는 모든 기술도 궁극적으로는 명료하게 보거나 들은 내용을 역시 명료하게 옮겨적는 (그리고 그 불필요하고 지긋 지긋한 부사들을 안 쓰는) 일로 귀결된다.-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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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9-29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오류로 전부 날라갔음. 다음날 알라딘에서 타이핑해줘서 그걸로 다시 입력
 
셀 1 밀리언셀러 클럽 51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셀>은 리처드 매더슨의 <나는 전설이다>를 차용하고 있다. 미처버린 인류, 살아남은 인간의 몸부림. 다른 것이 있다면 휴대폰이란 테크롤로지가 원흉으로 부각된다는 점 정도다. 왜 스티븐 킹이 이야기에 앞서 이 소설을 '리처드 매더슨에게 바친다'고 했는지 이해된다.

스토리라인은 간결하다. <나는 전설이다>에 영감받은 수많은 아류작과 영화들에서 보아온 '그 내용 그대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아류작 혐의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스티븐 킹이 썼기 때문이다. <셀>은 '스티븐 킹의 <셀>'이기에 존재가치를 가진다.

시작부터 강렬하다. 상대를 공격하고 물어뜯고, 비명소리와 피가 난무한다. 퀭한 눈의 사람들, 빌딩에서 투신하는 사람들, 이성을 잃은 인간은 바로 악마였다. 난장판이 된 보일스턴 스트릿. 이를 지켜보는 '클레이튼 리델'(클레이)은 난장판이 되기 전 상황을 떠올리고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챈다. 그들은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클레이는 콧수염사내 '토마스 맥코트'(톰)를 만나고 함께 위기를 헤쳐간다. 또 두려움에 떨던 소녀 '앨리스 맥스웰'을 구해내 운명을 함께하게 되고, 이들 세명은 저주 받은 이들에 대항해 살아남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미스터 리카르디'의 호텔로, 톰의 고향인 맬든으로, 그리고 학교로, 과연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난 스티븐 킹을 좋아하지만, 그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다. 읽은 작품을 손에 꼽을 정도다. <셀>을 읽고 난 지금, 한가지 생각이 든다. 그의 초창기 작품부터 차근차근 읽어야 겠다는 생각. <셀>의 맛깔스런 문체와 흥미진진함은 '역시'였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차용한 설정의 벽은 너무 높았고, 간결한 스토리라인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 혹시 중반이후가 지루하게 느껴졌다면 이유는 바로 저것이다.

위에서 '<셀>을 읽었다'라고 했지만, 1권만 읽고만 내가 과연 '<셀>을 읽었다'라고 할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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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7-09-18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스티븐킹은 이전작들이 훨씬 좋은것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캐리와 돌로레스 클레이본, 샤이닝을 좋아합니다..^^
그래도 셀은 최근작중에서 재밌었던 책인데, 2권까지 읽으시면 어떠실지 모르겠네요..^^흐흐..

쥬베이 2007-09-18 21:58   좋아요 0 | URL
전 조금 약했어요^^ 2권을 선뜻 잡지못하고 있답니다
이전작품들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설의 명작들...ㅋㅋㅋ
 
개가 된 CEO -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편견을 뒤집어라
조한필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한창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누릴때, 베스트셀러였던 책을 읽었고 배신감을 느꼈다. 왜 저런 책이 인기를 얻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낱 동화책보다도 빈약한 뻔한 내용, 그냥 동화책이 더 나았다. 또 아쉬웠던 것은,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외국이야기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실정에도 맞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이는 내가 품어온 오랜 의문이다.

다행스럽게, 최근 한국형 자기계발서들이 속속 선보이고 있다. 색다른 도전으로 무장한 이들의 활약은 분명 관심을 기울일만 하다. <개가 된 CEO>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창 잘 나가던 CEO가 갑자기 개가 되버린다'는 설정, 그 속에 담긴 깊은 교훈, 스토리라인이 뭐낙 흥미로워 스토리만으로도 흥미롭다. 한국형 자기계발서의 진면목을 보았다고나 할까.

대명컴퓨터의 사장인 고대명. 그는 IT업계를 주물럭거릴 전도유망한 CEO였다. 그의 눈엔 아침 일찍 PC방 근처를 어슬렁 거리는 학생들도(p.9), 계약해지를 항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p.19),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안하무인인 고대명에게 저주가 내린것일까?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신이 잃은 그는 갑자기 개로 변한다.(p.22) 명품 넥타이를 맨 똥개.

'옥탑방 고양의'의 여주인공을 꿈꾸는 안하리. 그녀는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지만 두달만에 거지가 된다. 떡볶이조차 사먹을 수 없는 현실에 필사적으로 직장을 구해보지만 힘겹기만 하다. 겨우 대명컴퓨터 고객센터에 자리잡은 그녀는, 상사와의 갈등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넥타이를 멘 개한마리를 보게 된다. CEO출신 똥개와 만사 부정적인 안하리와의 운명적 만남.

고대명 똥개는 떠돌이개를 만나 자기가 왜 개로 변해는지 알게된다. "자네가 개가 된 것은 바로 저주를 받았기 때문일세. 최근 일주일 사이에 자네가 개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적어도 셋 이상은 되었다는 뜻일세."(p.84) 그러고는 저주를 풀려면 '저주의 대상자를 찿아가 진심으로 속죄를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떠돌이개는 차라리 개가 속편하다며 신세한탄을 하고, 가족조차 외면한 그의 현실은 왜 그가 인간이 되기를 포기했는지 알았다.

CEO출신 똥개는 돈버는 비법을 묻는 안하리에게 '복리의 마법'을 알려주고, 안하리에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은연중 독자들에게 교훈을 전달한다. 한편, CEO가 사라진 틈을 이용, 제갈 전무는 회사를 장악할 음모를 세우는데, 과연 고대명 똥개는 어떻게 위기를 헤쳐나갈까?

<개가 된 CEO>는 흥미로운 설정만으로도 멋진 책이다. 더욱이 저자는 이야기 곳곳에 하고자하는 말을 은연중 녹여놓는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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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허진호 시나리오, 김해영 지음 / 노블마인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영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다. 걱정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일반 소설과는 다른 '뭔가'가 있으리라는 생각에. 영상을 염두에 둔 글이라 그런지 빠르게 읽혔다. 장면마다 영화화 될 장면을 떠올렸고, 황정민과 임수정이 어떻게 연기해 낼지 상상했다. 색다른 경험이었다.

초반부 당혹스러웠다. 간경변이란 병마에 지친 인물의 파괴적 자의식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아무런 사건도 없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을 끊고 사라지기 위해, 모든 대상을 냉소하는 주인공(한영수)의 모습뿐이다. 그는 연인이었던 수연, 자기 가게를 차지한 친구 동준을 떠난다. 그들은 힘들어하는 영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영수의 심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찿은 어머니 앞에서 되내는 그의 독백. '어머니, 나 잃어버렸어. 열심히 노력하면 찿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보물찿기하던 것처럼 그런 열정적인 마음으로, 친구들 다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밤새도록 보물 한번 찿아볼까?  그런데 어머니, 내 보물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어.'(p.31) 그렇다. 쌓아올린 자기 가게와 여자친구...그 모든걸 그는 잃어버렸다. 갈피를 잡지못하는 파괴된 자아.

분위기가 전환된다. 지금까지 상실감에 휩싸인 사내의 자의식이 그려졌다면, 이젠 희망의 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희망의 집'이란 요양원으로 가는데, 그곳은 요양원이란 단어에서 풍기는 무기력함과는 전혀 다른, 이름 그대로 희망이 넘치는 곳이다. 하이파이브 하자는 원장과 순수한 사람들, 그리고 만나게 된 운명적 여인.

아이다운 순수함과 병약한 이미지를 풍기지만 한편으로는 자기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 듯'(p.40)한 여인. 계속 마주치는 여인(은희)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는 영수. 이들의 묘한 관계는 은희를 업고 숲을 산책하는 부분에서 극적으로 발전된다. 은희는 영수에게 업어달라하고, 이들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찿아 어둠 속을 걸어가는 오누이처럼 숲속을 거닌다.(p.76) 이들은 점점 서로에게 의지하고, 모든 것을 맡긴다. (수연과 계속해서 은희를 대조하는 영수, 그런점 때문에 그녀에게 반한 것일까?) 희망의 집에서 싹틔운 사랑. 하지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사라지질 않는다.

<행복>은 독특한 구성을 취한다. '2장, 희망의 집에서 그녀와 나는...'은 영수의 시점에서, '3장, 세 잎 클로버를 꿈꾸는 너는...'은 은희의 시점에서, '4장, 네 잎 클로버, 나의 당신은...'은 수연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리고 마지막 5장은 다시 영수의 시점으로 마무리 짓는다. 다양한 시점에서 등장인물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구성은 긍정적이다. 이를 영화상으로 어떻게 구현할 지 궁금하다.

사라지지 않는 불안감은 갑작스런 수연의 방문으로 서서히 증폭된다. 요양원으로 찿아온 수연과 동준은 통해 영수는 '두고 온 것들'에 대한, 바깥 세상에 대한, 미련을 갖는다. 이곳에 존재하는 은희와 저곳에 존재하는 수연사이에서 갈등하는 것. 결국 영수는 선택한다. 그에게 '희망의 집'은 어차피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곳일 뿐이었다. 불쌍한 은희...그에게 희망의 집은 어떤 의미인가? 은희는 어떤 존재인가? 과연 그는 돌아간 일상에서, 수연에게서 진정한 행복을 찿았을까?

전반적인 스토리가 진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상으로 묘사될 장면 하나하나의 영상미,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는 큰 기대된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한 소설로 즐거운 책읽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부담없이 영수와 은희,수연의 관계속을 파고 들 수 있었다. 이 점 하나만으로 <행복>은 가치를 가진다. 영화를 보기전에 한번 읽고 비교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아니면 영화를 보고 읽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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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6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진호 시나리오에 김해영 소설..
영화로 나올 거라니 기대되네요. 임수정이 과연 황정민과 잘 어울릴지도..

쥬베이 2007-09-18 22:12   좋아요 0 | URL
정말 임수정, 황정민이 잘 어울릴지 궁금합니다^^
스토리가 좀 진부하긴 한데...연기여하에 따라 괜찮을거 같기도해요~
 
슬로 굿바이
이시다 이라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시다 이라의 작품은 최대한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가에 대한 호감이나, 외부적 요소를 배제한 채 작품만 응시하는 것이다. 이런 근저에 무었이 있든 작품 감상면에서는 긍정적이다. <슬로 굿바이> 10편의 단편이 모인 이시다 이라의 첫 단편집이다. 달콤 미적지근한 이시다 이라식 연애소설.

화자를 통일하고 중간중간 약간의 장치를 한다면, 10편의 단편은 한편의 장편으로 읽을 수 있다. 그 정도로 <슬로 굿바이>를 지배하는 느낌은 유사하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인터넷을 소재로 채용한 작품'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You Look Good To Me'와 '낭만 홀리데이'가 대표적.

[You Look Good To Me] 인터넷 쇼핑몰 대화방에서 만난 나(대화명 오스카)와 미운 오리새끼. 채팅창에서 이루어지는 이들의 대화는 그대로 옮겨진다. 미운 오리새끼는 '나는 못생겼으니까'라는 말을 반복하는 외모 컴플렉스 소유자이지만, 오스카는 그런 그녀에게 묘한 감정을 느낀다. '굉장히 이론적인 타입의 열정가 같았다. 외모에 관해서는 중증의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 이야기해 본 바로는 상당히 괜찮은 느낌이었다. 반응도 빠르고, 머리도 좋고, 노골적으로 여성스러움을 내세우지도 않는다.'(p.72,73) 인터넷상으로 만나, 이야기 나누고,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상당히 공감가는 내용이다. 또한 외모 컴플렉스를 가진 인물이란 설정까지.

오프라인 미팅에 참가한 오스카는 미운 오리새끼를 기다리지만, 그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약간의 실망을 한다. 파티 시작후 한 시간 반쯤 지나 미운 오리새끼는 모자를 눌러쓰고 모습을 드러내지만, 짓굿은 장난때문에 울상이 되어 자리를 떠난다.(p.80참조) 오스카는 자기 얼굴을 보고 실망했을거라는 미운 오리새끼의 말에 자기는 '예쁘지 않은 여자 마니아'라며 너스레를 떤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을 키워간다.

채팅창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이시다 이라는 공감가는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난 못생겼다'고 자학하는 캐릭터의 심리와 그런 그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주인공. 그녀는 진실한 사랑속에, 미운 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거듭난다.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 그처럼 아름답고 확실한 묘약이 있을까? 부끄러워 말아요. You Look Good To Me.

[낭만 홀리데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확인한 한 메시지. '나와 <로마의 휴일>을 하지 않으시렵니까? -유키'(p.188) 미즈키는 '답글쓰기'를 클릭하고 좀 더 영화에 대한 이야기나 연출계획을 말해달라고 얘기한다. 곧 둘은 메일을 주고 받는 사이까지 발전한다.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던 미즈키는 오프라인에서 유키를 만나고 싶다고 하고, 결국 이들의 첫데이트는 8월 첫 주 금요일로 정해진다.(p.185참조) 그리고 만나게 되는 두사람...

미즈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 앞에 있는 여성은 '진짜 유키' 즉, 그와 메일을 주고 받았던 상대는 따로 있던 것이다. 누굴까? 이 부분까지 말하지는 못하겠다. 읽어보시길. 진짜 유키의 말을 들은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배신감? 분노? 상당히 공감가는 내용이다. 우리 주변에도 저런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을 활용한.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미즈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고, 또 멋졌다. 자신을 속인 상대를 찿아가 자기가 대화를 나누던 미즈키라며 그녀를 이해하려 한다. 사실 그 역시 약간의 거짓말을 했으니...또한 마지막부분에 이어지는 '나와 <프리티 우먼>을 하지 않으시겠습니까?'(p.213)라는 진짜 유키의 반응도 귀여웠다. 대신 나가 만나보곤 그에게 빠져버린 그녀. 어쩌면 침착하고 다정한 그의 반응에 반한건지도…

<슬로 굿바이>를 읽으며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속에서 또다른 날 발견했다는 것. 하나와 세이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스기모토, 채팅창에서 만난 여성과 사랑을 꿈꾸는 오스카. 어느새 소설속으로 몰입해 버렸다. 가만가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그려낸 저자의 능력을 다시 봤다. <슬로 굿바이>,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다. 지금 사랑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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