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지음 / 창비 / 2005년 5월
구판절판


처음 관아에 출두하라는 통지를 받았을 때, 그녀는 울컥 노여움이 치솟는 걸 느꼈다. 그건 약한 신분에 억울한 일을 당하고 소지를 올리며 드는 마음이 아니라 철모르는 아이가 아끼던 다관을 깨뜨리겠노라고 달려들 때 불쑥 치미는 공격적인 마음에 가까웠다. 밑에서 위를 우러러 분노한 게 아니라 위에서 밑을 아무르며 화를 냈다는 뜻이다. 그건 당연했다. 남녀간의 사랑을 최고의 덕목으로 떠받드는 종교가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녀는 그 종교의 성녀와도 같은 사람이랄 수 있었다. 그녀는 사랑에 관한 모든 신비체험을 경험한 몸이었다. 그 눈부시도록 환한 빛, 섬뜩할 정도로 뜨거운 기쁨에 일단 노출되고 나면 세상으 다른 모든 것들은 빛을 잃고 식어버린다. 삶과 죽음마저도 넘어설 수 있다고 나서는 그녀의 오만함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했다.-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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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프리카 - 사라진 DC 미니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파프리카>는 그리 쉽게 읽을만한 소설은 아니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이론을 상당 부분 받아들이고 있다. 기표와 기의를 의미하는 시니피앙, 시니피에가 등장하고, 파프리카가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은 정신분석 이론에 터잡은 것이다. 그렇다면 <파프리카>는 정신분석이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이해 가능한 소설이란 말인가? 그럴 리 있겠는가?^^

이야기를 이끄는 또 하나의 축은 '조직 내 권력암투'다. 정신분석 연구소의 현 소장 '시마 도라타로'의 자리를 노리는 이누이일당. 그들은 소장과 치바 아츠코, 도키타 고사쿠등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음모를 꾸민다. 이누이로 대표되는 악惡과 아츠코로 대표되는 선善의 대립구조.

파프리카는 PT기기를 이용 환자를 치료하는 여성 테라피스트의 암호명(p.31)이다. 파프리카는 빼어난 미모의 18가량의 소녀로 설정되어 있는데, 그녀의 정체엔 약간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니 읽어보시길. (이는 표지 그림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

파프리카는 타인에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PT기기를 이용, 사회 유명인사인 '노세'와 '고나카와'를 치료한다. 구체적인 활약상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겠다. 위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정신분석이론을 끌어들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 정도.

흥미진진하고, 놀랍게 진행되던 이야기는 결말로 가서 무너져 버린다. 저자는 갑자기 허둥지둥대며 대충 엉성하게 끝내버린다. 어이가 없다. 일단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분량문제다. 쓰다 보니 너무 길어져 대충 수습하고 끝내버렸다는 것이다. (초중반 저자가 깔아둔 이야기를 제대로 끝마치려면 한 권 분량으로는 도저히 어려운 게 사실) 아니면, 쓰다가 그냥 지쳐서 관뒀거나, 건강이나 외부적 문제로 어쩔 수 없이 대충 끝마쳤을지도 모르고. 이건 아닌 거 같지만, 후속편을 염두에 두고 그랬을지도.

저런 아쉬움은 있지만, <파프리카>는 분명 인상적인 작품이다.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독특한 설정, 그 하나만으로도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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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1-23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속편이 있구나ㅋㅋㅋ

lazydevil 2008-05-09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이었군요. 요즘 책들 표지가 너무 예쁘고 소녀취향이죠. 재출간된 이 작품도 표지가 어여뻐서 오히려 제가 덜컥 오해하고 말았던 것 같습니다. 암튼 좋은 소개 고맙습니다~.

쥬베이 2008-08-23 15:00   좋아요 0 | URL
네, 얼마전에 <파프리카>애니메이션 봤는데 새로웠어요
조만간 다시한번 읽을 생각입니다^^
 
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키 162cm, 몸무게 50kg의 빈약한 체격, 소심한 성격,(p.53)의 나카무라 마사히라. 멋진 남성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적어도 신체조건상으로는 말이다. 그는 지금까지 단 한번의 연애경험 밖에 없다. 그의 사업수완은 대단하다. 단팥죽 체인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키라의 '배신'으로 상심한 상태에서 과감히 시도한 사업확장이 성공해 버렸다.

아키라의 배신? 도대체 아키라는 누구며, 어떤 배신을 했다는 건가? 아키라는 호스티스다. 술집에서 마사히라를 만나 그와 사귀었다. 하지만 '사귀었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녀는 마사히라에게 거짓말을 하고 돈을 뜯어내려 했다.(p.113-115) 마사히라는 모든게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었으리라. 아픈 추억으로 남아버린 단 한번의 사랑.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녀, 그건 그만의 착각이었던 것인가?

<얼마만큼의 사랑>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작품이다. '수상작 없음'이었던 제136회 나오키상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을 받았다는 작품. 인상적인 특징은 '가독성이 좋고, 부드럽게 읽힌다'는 점이다. 특별한 고민없이 저자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그만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언급하겠다.

이야기의 핵심은 '마사히라와 아카리의 사랑'이다. 스토리는 간결하다. '만남 - 사랑 - 배신(적어도 외부적으로 보면) - 헤어짐 - 화해 - 재결합' 이런 구성에서 저자는 '아카리의 배신과 그 진실'을 주목한다. 즉, '아카리가 마사히라를 배신하기는 했지만, 뭔가 사정이 있지 않을까'하는 뉘앙스를 풍기며, 진실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가는 것이다.

드러나는 진실을 통해, '아키라의 배신'은 사실 그녀의 의사가 아님이 드러난다. 사랑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물들.

비중있는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키즈 유미히코.(p.120) 그는 영적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일종의 점쟁이다. 마사히라가家에서 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의 어머니는 거의 광신도 수준으로 그의 말을 신뢰한다. 의외로 마사히라도 그에게 강하게 의지하는데, 좀 특이했던 부분.

위에서 '가독성이 좋은게 하나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왜 <얼마만큼의 사랑>은 가독성이 좋은가? 문체나 구성을 떠나, 근본적인 이유는 '스토리가 진부하기 때문'이다. '얼굴은 못났지만 사업은 성공을 거듭하는 능력있는 남자, 예쁘지만 가난한 밑바닥 인생 호스티스, 둘의 운명적 사랑. 둘의 사랑을 방해하는 갖가지 장애물. 결국 한번 파국을 맞지만, 결국 오해를 풀고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다.'라는 이야기. TV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그런 내용이다.

소설이 꼭 색다른 소재, 실험적인 구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뭐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겠지. 편하게 달콤한 드라마보는 기분으로 읽는다면, 감동할지도…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명확히 갈릴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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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은 왜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아랑은 왜> 묻혀 있는 작품이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평이 좋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과감한 도전, 실험정신, 아랑전설에 관심을 가지고 재해석한 시도, 인상적이다.

'장편소설'이라지만, '전설을 재해석해 소설로 구성하는 과정을 그린 일종의 해설서' 비슷한 느낌이다. 즉, '소설바깥 저자'가 대놓고 아랑전설을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재해석하겠다고 설명하고, '박'과 영주가 등장하는 현실, 억균과 이상사가 등장하는 과거가 교차서술된다. '소설바깥 저자'가 치밀하게 전설을 해석하고 소설로 재구성하는 부분에 감탄했다. 소설 저술의 전단계쯤 될 법한 과정을 독자에게 가감없이 설명함으로써 강하게 몰입하게 한다.

현실과 과거가 교차되는 구성을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펴보자. 길지만 그대로 인용하겠다.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런 식의 설정은 현대와 과거를 유기적으로 연관지어 묶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과거의 이야기와 현대의 이야기가 판박이처럼 똑같으면 유치할 테고 너무 다르면 도대체 뭣 하러 과거와 현대를 한 소설 안에 병치시켰느냐는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난점에도 불구하고 현대와 과거를 이렇게 대위법적으로 나란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배치하는 구성에는 상당한 매력이 있다. A-B-A-B-A-B-A-B. 이런 식으로 이어지게 될 과거와 현대는 대체로 느슨한 의미상의 연결을 유지하면서 서사적 화음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실패하면 불협화음을 빚어내겠지만.'(p.64,65)

유감스럽게, '박'과 영주가 등장하는 현실은 실망스럽다. 인물 캐릭터도 뻔할 뿐더러, 영주와 아랑을 오버랩 시키는 부분은 한마디로 억지다. 저자는 과거와 현실의 교차구성을 취했지만, 차라리 현실을 제외하고 과거에 집중하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저자가 걱정한 '불협화음'수준을 넘어 소설의 가치를 저하시켜 버리고 말았다. '소설바깥 저자'와 과거,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과거'속에 등장하는 어사 조윤, 의금부 낭관 억균, 밀양 현령 이상사, 호장등등 인물들은 뚜렷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용감하고 공명정대한 지방관으로 알려졌던 밀양 현령 이상사를 재해석한 것과 사건을 파헤치는 억균을 등장시킨 것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억균은 어사를 수행하는 종8품 관리이다. 그는 아랑 전설 내막에 호장을 비롯한 지방벼슬아치의 음모가 있음을 짐작하고 결국 진실을 밝혀낸다.

구구절절 늘어놓지는 않겠지만, 아랑을 윤관의 딸이 아닌 관기로, 아랑 살해의 주체를 통인이나 유모가 아닌 윤관으로, 그 근저에 제방붕괴 사실을 숨기기 위한 이상사와 지방벼슬아치의 음모가 있는 것으로 재해석한 것은 신선했다. 여러 지방의 다양한 민담을 살피고, 깊은 사유끝에 재해석한 것이라, 고개가 끄덕여 졌다. 진실은 누구도 모르지.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려 있고.

김영하의 <아랑의 왜> 좋은 작품이다. 저자의 과감한 시도 하나만으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마음에 든다. (이를 바탕으로한 역사소설이 나온다면?? 생각만해서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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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총각 고짱의 간단요리 레시피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본요리
아이다 고지 지음, 이현경.김정은 옮김 / 지상사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어릴적 집에 있던 요리책을 보며 형형색색 아름다운 요리에 매료됐다. 신기했던 것이다. '이런 것도 있구나'하는. 저때의 느낌을 <고짱의 간단요리 레시피>를 읽고 다시 느꼈다. 보기 좋은 일본요리를 즐겁게 구경했다. 내 수준에서 가능할 법한 요리도 몇개 꼽아뒀는데, 도전하게 될지는 미지수다.

일단 요리제목과 사진이 큼직하게 자리잡고, 재로와 만드는 법 소개가 이어진다. 고짱이 생각하는 요리의 핵심은 '고짱의 어드바이스'라는 코너에서 소개된다. 고짱이 블로그에 올린 것을 책으로 엮어낸 것인 만큼, '네티즌 목소리'라는 코너를 통해 네티즌의 반응까지 소개하고 있다.

한마디 하겠다. 절대 밤에는 이 책을 읽지 마시길. 먹고 싶어 잠을 못이룰 것이기에. 다이어트 중이어도 읽지 마세요. 나중에 고짱 원망하지 말고ㅋㅋ 읽으면서 지금 당장 먹고 싶은 요리를 골랐다. 뭐 당장 어떻게 먹을건지 대책도 없지만. 쇠고기 두부조림(p.29), 돈까스(p.33), 닭가슴살 튀김(p.42), GBS포테이토(p.94), 두부튀김(p.112), 치킨토마토 파스타(p.149), p.164이하 덮밥 및 볶음밥들. 닭고기, 두부, 감자, 면류를 좋아하고, 생선, 쇠고기 싫어하는 취향이 강하게 반영^^

<고짱의 간단요리 레시피>는 단순히 요리법만 소개하지 않는다. '고짱이 애용하는 키친 아이템'(p.159)과 '요리 고민상담실'(p.135/p.161)같은 섹션을 통해 보다 깊이있는 지식을 전달한다. 특히 '요리 고민상담실'은 젊은 주부님들에게 큰 도움이 될거라 생각했다. 필수인 조미료나 재료보관법, 계란 반숙 만드는 법, 튀김 잘하는 법등.

고짱은 한국풍 요리도 소개하고 있다. 보쌈(p.23), 두부김치(p.116), 부침개(p.117), 잡채(p.118)등이 대표적인데, 일본인이 소개하는 한국음식을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보쌈이나 잡채는 약간 달라보였지만, 부침개는 완전한 한국식.

일본 네티즌이 뽑은 고짱 최고의 레시피는 'GBS 포테이토'(p.94)라고 한다. GBS는 마늘Garlic, 버터Butter, 간장Soy의 앞자를 딴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감자와 베이컨을 넣고 졸인 감자조림인데, 상당히 맛있어 보인다. (요리 사진보면 정말 먹음직. 완전 밥도둑일 듯^^) GBS 포테이토에 대한 일본 네티즌의 평을 살펴보자. '저도 어제 만들어 보았습니다♪ 식구들이 좋아해서, 어젯밤에 다 먹어버렸답니다'(p.95) 오호~

혼자 자취하는 대학생들, 직장인들, 그리고 신혼인 젊은 부부들, 도시락반찬 걱정하시는 어머니들, <고짱의 간단요리 레시피> 한번 읽어보시길. 좀 독특하고 색다른 일본요리책...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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