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이런 독특한 소설은 처음이다. '아멜리 노통브'의 <시간의 옷>을 읽고 느꼈던 충격을 다시 한번 느꼈다. <나폴레옹 놀이>는 변호사 '피아르테스'에게 보내는 '뵈클레'의 편지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뵈클레가 늘어놓는 장광설이 이어지는 것이다. 놀라운 건 장광설이 미친 듯 흥미롭다는 점이다. 흥미로움과 장광설, 쉽게 어울릴 수 없는 것의 미묘한 결합,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유명 변호사였던 뵈클레는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감방에 갇혀 있다. 정당방위, '불가피한 살인'을 주장하는 그는, 변호사 피아르테스에게 사건전말을 이야기한다며 편지를 보낸다. 우리가 읽게 될 내용이 바로 이 편지이다. 뵈클레의 편지는 딱딱하고 틀에 박힌 것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 계모 이복동생을 포함한 가족들, 동서로 갈라졌던 독일의 현실, 대학시절, 나폴레옹론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망라되어 있다. (뵈클레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되기에 성장소설 느낌도 풍긴다.)

도대체 뵈클레가 원하는 건 뭘까? 무엇 때문에 자신의 어린 시절이야기부터 계모, 이복동생 이야기까지 늘어놓는 걸까? 물론 표면적인 이유는 범행 동기를 설명하고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석연치 않다.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죄수가 늘어놓는 이야기라 보기엔 너무나 여유 넘친다. 이런 의문은 이야기 마지막에 풀린다. 뵈클레, 이 사람은 일반인의 상식으론 받아들일 수 없는 인간이었다. '광기어린 천재'쯤이라고 해둘까?

뵈클레가 펼쳐내는'나폴레옹론'은 작품의 중심이다. 나폴레옹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나폴레옹에서 범행의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뵈클레.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뵈클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폴레옹은 분명 모스크바 출정이 그전에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한방에 날려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전의 모든 모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사실이 그를 그리로 떠나게 했고, 이성의 만류에도 승산 없는 출정을 감행하게 했고, 도박사의 심정으로 모든 것을 이 하나에 걸게 했습니다. 그 역시 자신이 획득한 모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승리를 거두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살기 위해 놀이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모스크바 출정이라는 수를 던졌습니다."(p.165)

즉, 자신의 살해 역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처럼 살기 위해 벌인 일종의 놀이라는 것이다. 이어 '당구'에 대한 열정이 서술되고, 본격적으로 바크날 살해사건을 이야기(p.194이하)한다. 삶 자제를 하나의 놀이로, 세상을 놀이판으로 여기는 그의 궤변에 가까운 논리, 그렇구나.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이 연상되기도.) 마지막 반전은 놀라웠다. 또한 다양한 해석도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 꼼꼼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헬무트 뵈티거는 이 작품을 '훗날의 문학사에 오래오래 거론될 책'이라고 평했다. 공감한다. 독특한 구성과 실험정신, 뵈클레의 괘변과 유머, 놀라운 흥미진진함, 단순한 소설차원을 뛰어 넘는 작품이다.

 

* '놀이'라고 번역된 독일어 'spiel'은 놀이라는 뜻 외에 게임, 도박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p.94 역자주 참조) 본문에서 '놀이'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때는 게임과 도박으로 바꾸어 읽으면 휠신 이해가 쉽다. 즉, 놀이,게임,도박의 의미를 문맥에 맞게 그때 그때 맞춰서 읽어야 한다는 것^^

* 뵈클레가 이야기하는 어린시절, 아버지공장의 여직원들 이야기, 이복동생과의 우표판매 에피소드, 대학생활 이야기등은 흥미진진했지만,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읽어 보시길.

댓글(1)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004 2010-09-10 2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닥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지만..
기묘한 내용이라 쉽게 읽혔던 책입니다.
추천해주신 시간의 옷, 추천 감사합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테메레르 4 - 상아의 제국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테메레르>시리즈가 4권까지 오고, 나오미 노빅이 펼쳐내고자 하는 이야기는 본 궤도에 올랐다. 이젠 말하는 용들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소를 통채로 삼키고, 전투에 나서고, 인간과 감정을 공유하는 용들이 역사의 한페이지에 실존했던거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다.

 '<테메레르> 4권, 상아의 전쟁'은 기존 시리즈와 약간 느낌이 다르다. 나오미 노빅이 선보이는 놀라운 상상력은 여전하지만, 노예문제와 맞물리는 용의 권익 문제, 깊이있는 역사구성등 작품의 깊이가 한층 깊어졌다. 이것이 <테메레르>시리즈의 변화를 의미할까? 글쎄, 그렇게까지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로렌스', '그린비'같은 등장인물소개, '테메레르'를 비롯한 말하는 용 설정이 필요했던 이전 작품과는 달리, 이미 체계가 잡히고 기본 설정이 갖추어진 지금은 필연적으로 느낌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테메레르>4권 상아의 전쟁'은 나오미 노빅이 앞으로 선보일 시리즈의 바로미터와 같은 작품이다.

전투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국공군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영국과 프러시아 동맹군은 프랑스의 맹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테메레르의 활약으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난다. 왜 지원이 없었는지 이유가 밝혀진다. 영국전역에 폐병의 일종인 전염병이 퍼져 용들이 앓아 누운 것(p.42)이다. (옵베르사리아, 콘테레니스는 슬프게도 죽는다.) 전운이 감도는 상황에서 공군력이 바닥난 위기상황! 프랑스는 영국 공군력에 문제가 있음을 간파하고 기습을 감행(p.65)한다. 과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로렌스와 테메레르는 용의 권익신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일명 '용권 신장운동'^^ 용 누각을 짓기 위해 협조를 요청(p.101이하)하는 한편, 용의 권익신장을 위한 지원요청을 위해 그렌빌을 만나기로 한다. 내키지 않는 파티에서 그렌빌을 기다리는 로렌스, 하지만 그렌빌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하다. 한편, 로렌스의 아버지 앨런데일경이 노예무역폐지 운동가 윌리엄 윌버포스와 함께 로렌스를 찾아온다. 월버포스는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로렌스에게 노예무역폐지를 위한 지지발언을 부탁한다. 노예무역폐지와 용권신장이 묘하게 맞물리는 부분.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 창궐하는 전염병이 테메레르만은 피해간다는 것이다. 테메레르가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용의사들도 테메레르에게 이것저것 먹이며 치료약 개발에 몰두(p.195)한다. 결국 치료약을 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떠나는 로렌스와 테메레르, 그리고 영국군.(p.178이하) 아프리카로 향하는 여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로렌스와 라일리는 갈등했고 자연히 공군과 해군들은 서로를 배타시 했다. 또한 치료약을 찾다 흑인들에게 납치(p.332)를 당하기도 하고, 로렌스는 모카찬 왕에게 모욕을 당하기도(p.374)한다. 미지의 대륙 아프리카를 탐험하는 부분은 <테메레르>시리즈 중 최고였다. 나오미 노빅의 상상력과 완벽한 이야기구성이 제대로 맞아 떨어져 몰입도를 배가 시켜줬다.

로렌스와 테메레르는 치료약을 구할 수 있을까? 계속되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읽어보시길. 적과 동지를 넘는 로렌스와 테메레르의 용기있는 결정(p.512이하)은 놀라웠다. (구체적인 건 읽어보세요^^) 이미 많은 분들이 <테메레르>의 매력에 빠져 버린 지금, 또하나의 극찬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이 말만은 하겠다. '<테메레르> 4권, 상아의 전쟁', 테메레르 시리즈의 정점이다. 이 작품을 읽지 않고 테메레르를 말할 생각은 하지도 말길. 명콤비 로렌스와 테메레르는 나오미 노빅이 펼쳐낸 역사속에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고 있다. 앞으로 나오미 노빅이 <테메레르>시리즈를 통해 무얼 보여줄지 궁금하기만 하다. 

 

* 이야기 말미에 테메레르가 질투할 법한 로렌스의 행동(p.470)이 나온다^^

* 읽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중국 청나라, 나폴레옹이 나오는 걸로 봐서 <테메레르>의 시대적 배경은 우리로 보면 조선말기인데…만약 테메레르가 조선에 온다면?' 3권까지는 시대적 배경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와 연관지어 생각해보니 조선시대인 것이다. 이거 놀라운 걸^^ 나오미 노빅, 우리나라에도 테메레르 좀 보내주세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리 2008-04-0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판타지...를 아우르는 장르같은데 팩션의 요소도 가미되어 있는 것인가요...? "반지의 제왕"과 비교해서는 어떤가요...솔직히 판타지물은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어서... 조언 부탁드릴께요^^

쥬베이 2008-04-03 22:23   좋아요 0 | URL
<테메레르>는 판타지가 맞긴한데, 특이한 판타지에요ㅋㅋㅋ
판타지에 거부감이 많은 분들도 재미있게 읽으시더라고요.
칼리님 말씀대로 역사팩션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저 역사가 실제역사가 아닌 '가상역사'입니다^^ 상아의 전쟁에서는 아프리카를 누볐는데, 전설속 국가도 등장하고 실제역사와는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말하는 용이 등장하는 설정만 익숙해 진다면, 테메레르 시리즈 무척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거에요. 꽤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고 있죠^^
(반지의 제왕은 제가 읽지 않아서....^^)

칼리 2008-04-0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추천에 힘입어 찜해놨어요.^^

쥬베이 2008-04-04 16:51   좋아요 0 | URL
귀염둥이 테메레르에 빠져보세요^^ 재밌답니다ㅋㅋㅋ
 
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 - 나는 생각 한다 그러므로 일이 일어난다
마티아스 브뢰커스 지음, 이수영 옮김 / 알마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라…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서있는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뭐 그런 느낌? 원제는 '코기토 에르고 붐'(생각한다. 그러므로 일이 일어난다.)이다. 데카르트가 떠오르는 철학적 제목이라, 부담스럽지 않게 바꾼 듯 하다. <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는 오래동안 언론계에 몸담았던 저자가 '실패'를 주제로 엮은 칼럼집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주의 블랙홀에서 전세계적인 채무 위기, 내 집 앞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모든 범주에서 일어나는 일들까지 모든 범주에서 일어나는 실패를 망라하는 책'(p.10)이라고.

총 49가지 소주제로 짧은 분량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짧은 분량이지만, 저자가 풀어내는 사유의 깊이는 대단하다. 거의 대학에서 한 학기동안 계속 토론해도 될만한 주제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다. 명쾌한 서술, 흥미진진한 사례,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신선한 관점까지, 세계를 보는 내 관점을 넓힐 수 있었다. 지구만 바라보다, 우주를 바라보게 된듯한 기분이다.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는 것에 대해 저자는 말한다. '아이들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면 걸음마를 배우는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이들이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는 것은 두려움 없는 태도와 넘어지는 것도 일어서는 것과 똑같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실패는 자연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모든 발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실패의 경험 없이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p.8) 가슴에 와닿는다. 성공과 실패사이에서 인생을 건 줄타기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컴퓨터와 IT업계, 빌 게이츠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p.72이하)이 있다. 빌 게이츠가 어떻게 세계최고의 갑부가 됐는지, 마이크로 소프트가 고객들에게 어떤 부담을 지우는지, 저자는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특히 '제너럴 모터스 같은 자동차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오는 것과 비슷한 수준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를 기록한 표'(p.77)는 인상적이다. 예를 들어, '당신의 자동차는 가금 알 수 없는 이유로 고속도로에서 멈춰 버린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시 출발해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 그렇지 않는가? 익스플로어를 쓰다 저런 경험을 한게 한두번인가? 블랙유머 같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공감이 간다.

오랫동안 언론계에 몸담았던 저자가 언론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p.165이하)을 보자. 저자가 바라보는 언론은 정치적이며 권력 지향적이다. <뉴욕 타임즈> 편집장을 지낸 존 스윈턴의 연설을 길게 인용하고  있는데, 가히 충격적이다. "제가 현재 일하고 있는 신문에 저의 솔직한 생각을 발표한다면 저는 24시간 안에 자리에서 쫓겨날 것입니다. 진실을 파괴하고, 적나라하게 거짓말하고, 왜곡하고, 비방하는 것, 재물신의 발등을 핥으면서 매일 일용할 양식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 언론인들이 하고 있는 일입니다. (중략) 우리는 지성을 파는 매춘부들입니다."(p.169) 물론 이 연설은 1880년대에 행해진 거지만, 저자는 오늘의 상황에 시의적절하다고 평가한다.

 <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멋진 책이다. 소주제별로 틈틈이 읽어나가도 좋고 한번에 읽어도 좋지만, 꼭 한문장 한문장 꼽씹어 보시길. 많은 걸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꺼이 길을 잃어라 -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빛을 향한 모험과 도전
로버트 커슨 지음, 김희진 옮김 / 열음사 / 2008년 2월
평점 :
절판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영화도 소설도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다. 그것은 희극일 수도, 비극일 수도 있다. <기꺼이 길을 잃어라>를 읽으며, 영화나 드라마를 능가하는 드라마틱함을 느꼈다. 분명 시각장애인 '마이크 메이'의 실화임을 알았지만, 그의 삶은 너무나 극적이었다. (실례일 수도 있다. 한 사람의 삶을 두고 드라마 운운하는 것이. 하지만 내 말의 의도가 뭔지 이해해 주시길.)

구성부터 살펴보자.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대기적 구성이 아니다. 성공한 삶을 거머쥔 '현재'의 마이크 메이(A), 갑작스런 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 '어린시절' 마이크 메이(B)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된다. A는 줄기세포 이식 방법을 전해듣는 것으로 시작해, 각막상피 줄기세포 이식수술, 적응과정, 부작용등 시력을 되찾기 위한 메이의 노력이 서술된다. B는 메이의 성장과정을 따라, 시각장애를 야기한 사고, 힘겨운 학창시절, 연애담등이 서술된다. B가 진행되어 A의 시작에 근접하면서 양자는 구별없이 하나로 수렴된다.

1999년, 마이크 메이는 시각장애인들의 위해 헌신한 공로자에게 주어지는 '케이 캘러허 상' 수상식장에 있다. 식후, 아내 제니퍼를 따라 안과에 간 메이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우리가 당신을 보게 해드릴 수도 있겠어요."(p.16) 줄기세포 이식 방법으로 시력을 되찾아 줄 수 있다는 것. 40년가까이 보지 못했던 그는 고민한다. 그를 담당했던 세계최고의 안과전문의 '맥스 파인' 박사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메이가 시력을 상실한 것은 어린시절 갑작스런 사고 때문이었다. 진흙 파이를 만들며 놀던 메이는 낡은 차고에 있던 유리단지를 발견한다. 이를 수돗가로 가져가 물속에 담갔다.(p.30참조) 잠시후 폭발음이 들렸고, 메이는 유리파편에 덮혀 피투성이가 되었다. 단지에 들어있던 가루는 물이 닿는 순간 폭발성이 있는 가스를 만들어 내는 탄산칼슘이었던 것. 끔직한 사고에도 메이는 좌절하지 않는다. 강한 어머니 '오리 진'과 특별 지도교사의 도움으로, 그리고 강한 의지로 삶을 개척한다. 안주하지 않고 뛰어가는 것, 비록 부딪치더라도 길을 잃더라도 뛰어 또 뛰는 것, 그것이 메이의 청소년기였다.

각막상피 줄기세포 이식수술, 결코 만만한게 아니었다. 수많은 위험(p.71)이 도사리고 있었다. 줄기세포와 각막은 언제든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수술을 실패하면 미미한 빛감지능력조차 잃을 수 있다. 또한 면역억제제 시클로스포린 부작용으로 암이 발생할 수도 있다. 비록 앞을 보지는 못하지만, 아내 재니퍼와 성공한 삶을 살고 있던 메이에게 저것은 하나의 큰 도전이다. 그러나 앞을 볼 수 있다는 것,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 메이에겐 어떤 위험도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결국 수술을 받는 메이.

'쾅! 휘익! 휘이이이이이훠…'(p.167) 한바탕 광풍 같았을까? 암흑속에 갇혀있던 메이가 빛을 되찾은 순간 말이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치고 메이는 앞을 보게 된다. 꿈에 그리던 아내 재니퍼의 얼굴(p.169), 어머니 오리 진의 얼굴(p.187), 아이들, 그리고 세상 모든 것. 그러나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았다. 시신경 문제때문에 세세한 것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저런 것이 아니었다. '앞을 보지 못했던 메이'와 '앞을 보는 메이'는 결코 같을 수 없었다. 어지럽혀진 집안을 보고는 아내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결국 다툰다. "그냥 좀 그렇게 두고 살면 왜 안되는데요?"라고 묻는 아내에게 메이는 말한다. 너무나 잔인하게. "왜냐고? 이제 내가 볼 수 있으니까."(p.245)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 면역체계가 이식한 각막을 공격하는 거부반응이 생긴 것. 메이는 과연 거부반응을 이겨낼 수 있을까? 뜻하지 않은 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읽어 보시길. <기꺼이 길을 잃어라>, 영화보다 드라마보다 감동적인 휴먼스토리다. 신체조건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삶을 개척하는 메이의 모습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열심히 살자. 열심히.

 

* '파인박사'(p.274이하)와 '아는 것과 보는 것'(p.297)은 메이가 겪은 문제를 좀 더 깊게 파고든 부분이다. 사진을 비롯한 수많은 시각화자료가 소개되어 있어, 이야기흐름과는 무관하게 흥미로웠다.

* 20세기 폭스사에서 영화화 결정 했다고 한다. 영화로 만들어지면 꼭 봐야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리 2008-03-31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적인 인생역정이네요. 이런 책을 보면 나자신이 고민하는 상황들은 아무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영화화된다고 하니 어떤식으로 해석이 되어 스크린에 옮겨질지 궁금해지네요.

쥬베이 2008-03-31 19:5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극한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많은 분들을 보면 난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영화가 참 기대됩니다^^
 
씽크 이노베이션 - 경쟁자가 못하는 것을 하라
노나카 이쿠지로 외 지음, 남상진 옮김 / 북스넛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씽크 이노베이션>의 최대 장점은 사례를 통해 핵심에 접근한다는 점이다. '싱크 이노베이션'이란 추상적인 개념이 사례를 통해 구체화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최근의 획기적인 히트상품이나 대성공을 거둔 사례들을 보면서 리더 역할을 담당한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 특성을 자세히 살펴 이노베이터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나 조건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목적이다.'(p.9) 사회적인 주목도, 화제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한 총 13편의 사례가 소개된다.

'라면의 붐을 대대적으로 일으킨 신요코하마 라면박물관'(p.137), 인상적이었다. 신요코하마 라면박물관(라하쿠)은 유명 라면브랜드를 한데 모아, 라면 테마파크와 결합한 '라면 식도락단지'이다. 예컨대, 칼국수의 모든 것을 전시해둔 칼국수 박물관에 유명 칼국수집을 모두 모아, 칼국수를 판매와 관람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상당히 기발한 아이디어. 이 책은 '혁신 포인트'란 항목에서 신요코하마 라면박물관의 혁신을 정리하고, '신요코하마 라면박물관에서 배울 점' 항목에서 배울 점을 소개한다.

'축구장에 구름 관중을 몰고 온 J리그 축구팀 알비렉스 니가타'(p.313) 스포츠에 관련된 주제라 한층 더 관심이 갔다. 알비렉스 니가타는 축구 불모지였던 니가타에서 평균 입장객수 4만명을 자랑하는 최고 인기팀으로 성장했다. 알비렉스 니가타의 '혁신 포인트'를 살펴보자. 이야기는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니가타는 2002년 월드컵 개최 도시에 지원했다. 하지만, 니가타에는 변변한 축구팀조차 없었다. 부랴부랴 팀을 만들었지만, 시민들의 관심은 미미한데다 재정적으로도 적자를 거듭한다. 이에 알비렉스 니가타의 구단주 이케다는 사비를 털어 위기를 극복한다. 이어 축구경기는 공짜라는 시민들의 인식전환을 위해 다양한 이벤트 및 시장조사를 한다. 이런 일련의 노력덕에 알비렉스 니가타는 지역주민와 완벽히 일체가 된 J리그 최고의 팀이 되었다.

제8장 '성공의 본질'(p.333이하) 지금까지 살펴봤던 13명의 씽크 이노베이터의 공통점을 종합하고, 저자가 재구성한 부분이다. 한마디로 핵심정리. 특히 인상적인 것은 시각화 자료의 활용이다. 조직적 지식창조의 일반적 원리인 'SECI모델'(p.336), 변증법적 지식창조 모델(p.360), 사리분별의 이미지(p.374)등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씽크 이노베이션>은 기업조직을 포함한 사회 전반에 혁신 원동력을 제공한다. 생생한 사례만으로도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멋진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칼리 2008-04-0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라!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일인것 같네요. 창조적 발상이 선행되어야 실천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책장에 꽂아두고 되새김질 하듯이 읽으면 좋을 책 같네요. 추천 들어갑니다.^___^

쥬베이 2008-04-01 21:24   좋아요 0 | URL
네^^ 자기계발서나 경제관련 책은 조심스러운데,
이책은 아주 좋았어요. 일본기업과 단체의 성공사례가 모여있어서
읽는 재미도 있답니다^^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