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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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길게 늘어놓는 것처럼 짜증나는 것도 없다. <탐정 갈릴레오>가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멋진 작품인지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형사 구사나기와 천재물리학자 유가와가 대활약하는 지적 미스터리, 일본 최고의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 말 안해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 작품이 얼마나 흥미진진한지. 한마디로 끝내겠다. <탐정 갈릴레오>는 올해 출간된 일본소설 중 재미면에서 단연 최고다.

<용의자 X의 헌신>과의 관계를 보자. 천재물리학자 '유가와'와 경찰 '구사나기'가 함께 사건을 해결하는 작품은 군을 이루며, <탐정 갈릴레오>는 첫번째, <용의자 X의 헌신>은 세번째 작품이다. 그러나 후자가 유가와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국내엔 이 작품이 먼저 소개된데다 나오키상 수상사실이 집중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오키상 수상작 <용의자 X의 헌신>의 화려한 시작은 바로 '유가와 시리즈' 1탄, <탐정 갈릴레오>인 것이다.

<탐정 갈릴레오>는 다섯편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이야기는 늘어지지 않고, 긴박감이 넘친다. 전체적인 구성은 유사하다. '미스터리한 사건 발생 -> 구사나기 수사 착수 -> 미궁 -> 유가와 등장 -> 사건 해결' . 읽는 입장에서는 구성의 번잡성에서 벗어나 쉽게 내용에 몰입할 수 있다. '이번엔 어떤 사건이 벌어질까?', '어떤 트릭이 숨겨져 있을까?', '유가와와 구사나기는 어떻게 사건을 해결할까?' 작품과 완전히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시모를 단조로움의 위험은 '사건의 다양성'으로 극복한다. 공터에서 발생한 의문의 인간발화사건, 호숫가에서 발견된 실종자의 데스마스크, 갑작스런 해안가 폭발사건등 흥미로운 사건이 하나 가득이다. 미스터리한 사건 여럿을 한 작품 속에서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만족스럽다.

[제1장. 타오르다] 누군가의 뒤통수에 불길에 솟구쳐 오른다. 이어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몸을 덮친다. 아무도 없던 공터에서 어떻게 불이 날 수 있을까? 살인인가, 사고인가? 경찰청 구사나이와 데이도대학 교수 유가와는 함께 사건해결에 나서고, 단서는 속속 드러난다. 사건 현장에서 '빨간 실'을 봤다는 어린아이, 피해자들이 새벽까지 시끄럽게 굴어 인근주민들이 못마땅해 했다는 사실, 인근의 공장 정체 등등. 사건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제2장. 옮겨붙다] 연못에 잉어를 낚으러 간 중학교 동급생. 이들은 정체불명의 상자를 발견한다. 한편, 학교축제가 한창인 어느 중학교, 도저히 학생의 솜씨라고는 믿을 수 없는 데스마스크가 전시된다. 우연히 이를 본 음악선생과 그 친구는 데스마스크가 자신(가기모토 요코)의 실종된 오빠라고 주장하는데…. 중학생이 발견한 상자의 정체, 실종자의 행방은? 읽어 보시길.

<탐정 갈릴레오>, 히가시노 게이고란 명성에 어울리는 흥미진진한 작품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작품을 읽고나서 <용의자 X의 헌신>을 읽을 껄'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유가와, 구사나기 콤비의 미묘한 관계내지 특징을 시리즈 시작부터 제대로 파악한 후,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용의자 X의 헌신> 다시 읽어야겠다.) 휴가철, 여행지에 한권의 책만 가져가야 한다면, 아무 고민없이 이 책을 선택하겠다. 유가와, 구사나기 콤비의 대활약상은 흥미진진함을 넘는 통쾌함을 선사할 것이다. 유가와, 구사나기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 <예지몽>이 기대된다.

 

* <탐정 갈릴레오>는 후지TV에서 방영한 동명 드라마의 원작이다. 시청률 20%를 상회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작품뒤엔 이렇듯 탄탄한 원작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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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6-27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용의자 X의 헌신>에 나오는 물리학교수가 이 작품에서 처음 등장하는군요. 그런데 쥬베이님, '갈릴레오'는 뭔가요? 유가와 교수의 별명인가요?

쥬베이 2008-06-28 00:11   좋아요 0 | URL
네, 이게 유가와/구사나기 시리즈 1탄이에요^^
갈릴레오에 대해선 따로 이야기하려다 말았어요.
읽어 보세요^^ ㅋㅋㅋ

칼리 2008-07-07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추리소설들이 언급되기 시작하면 이제 바야흐로 '무더운 여름이구나'하고 느끼게 됩니다. 일본추리물처럼 여름에 탐독하기에도 딱맞는 책이 없을듯 해요(사견입니당~)
전 <용의자 X의 헌신>을 서점에 서서 반권을 읽었는데 덕분에 아직 반권의 내용을 몰라요. 그럼 접어두고 <탐정 갈릴레오>를 먼저 읽는게 나을까나요???^^

쥬베이 2008-07-07 11: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일본추리물은 여름에 읽기 딱이죠ㅋㅋㅋ
먼저 <탐정 갈릴레오>부터 읽어보세요^^ 이게 시리즈의 1탄이니
먼저 읽는게 좋으실 듯 해요^^
 
몬스터 카니발
안 소피 브라슴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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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카니발>은 두 남녀의 미묘한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동화처럼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상상해서는 곤란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인간의 추함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표본을 수집'(p.10)하는 남자, '조아생 켈레르망'. 부조리의 극치를 보여주는 추한 여자, '마리카 마르비에'이다. '동화처럼 아름다운'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주인공에서부터 알 수 있다.

작품의 스토리 라인은 간결하지만, 품어내는 예술적 향취는 강렬하다. 특히, 안 소피 브라슴의 인물 내면묘사는 탁월하다. 괴물을 수집하는 조아생의 변태적 성향, 특이한 외모때문에 마리카가 짊어져야 했던 응어리, 이 모든게 내밀한 내면묘사를 통해 극적으로 부각된다.

마리카가 남자에 대한 욕구를 말하는 부분을 보자. '나는 남자들의 성적매력을 구걸하며 시간을 보냈다. 어떻게 하면 그들과 접촉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궁리하면서. (중략) 지하철이 급커브를 틀 때 그들의 팔꿈치가 내 몸에 닿기라도 하면, 그러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고 나서 지하철에서 내린 후에는 잰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웬 남자가 나를 따라오고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 나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만의 환상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p.26) 대단하다. 안 소피 브라슴의 내면묘사는 감미로운 동시에 충격적이다.
 
둘의 만남은 조아생이 낸 광고로 시작된다. 조아생은 '사진 모델, 그것도 특별한 신체적 결함을 지닌 모델을 찾고'(p.10) 마리카는 조아생을 찾아 온다. 마리카의 추한 외모는 조아생이 내건 조건과 잘 어울렸다. 미묘한 이들의 관계는 조금씩 친밀해져, 마리카는 조아생의 누드모델이 되기(p.72)까지 한다. 이들의 관계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조아생과 마리카의 관계가 변화하는 계기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조아생의 그림이 전시되는 전시회의 특별초대전, 다른 하나는 이들의 동거이다. 특별초대전(베르니사주)이후 마리카가 조아생의 집으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사실, 양자는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아무튼, 베르니사주에서 조아생은 의외의 모습을 보인다. 예쁜척을 하며 다른 남자의 관심을 끌려는 여자에게 일종의 질투 비슷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p.160)이다. 그런 다음 마리카와 동거를 시작한다. 소유욕에서 비록된 일련의 행동들. 더욱 놀라운 건, 동거 이후 조아생은 창작의욕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의 독백을 보자.  

'베르니사주에 다녀오고서부터 계속 그 모양이다. 자폐증에 걸린 것 같다. 벗어나보려고 했지만, 새하얀 화폭을 대할 때마다 허무하기만 할 뿐이다. (중략) 더는 선을 그어댈 필요가 없다. 그렇게 해서 초라한 인간의 형상을 만들고 그 안에 내 폭력성을 가둘 필요가 없다. 마리카를 그려서 뭐 하나? 이제 그녀는 내 것인데.'(p.184)

몬스터 카니발의 의미, 조아생의 비밀(p.201이하)이 밝혀지면 이야기는 정점에 달하며 두 남녀의 미묘한 관계는 종말로 치닫는다. 결말은 충격적이며, 의외의 반전도 있다. <몬스터 카니발>, 예술적 깊이가 대단한 작품이다. 안 소피 브라슴의 세련된 문체, 강렬한 이야기에 빠져보시길.

 


* <몬스터 카니발>은 조아생과 마리카의 시점이 번갈아 제시된다.(A-B-A-B) 아예 다른 필체로 인쇄했다.

* 전체적으로 아멜리 노통브의 감성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다. '노틀담의 꼽추'의 설정을 재해석한 아멜리 노통브의 <공격>과 이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듯. 그리고, 안 소피 브라슴의 작품은 처음이라 확언하기는 어렵지만, 생생한 대화는 아멜리 노통브가, 인물 내면묘사는 안 소피 브라슴이 한 수 위인 것 같다.

* <몬스터 카니발>의 표지는 지금까지 본 책 중 최고다. 표지 속 여자는 인중부터 입까지 가리고 있다. 별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읽고나서 다시보면 고개가 끄덕여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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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24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리카란 인물이 굉장히 매력적이란 생각을 해봅니다. 아마 저와는 반대 성향을 가진 인물이어서 동경 비슷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하구요...
책표지는 아마도 마리카...일까요...?^^

쥬베이 2008-06-24 16:10   좋아요 0 | URL
굉장히 독특한 인물이에요. 조아생이 마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변화하는 걸 포착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처음엔 혐오하다 점점 빠져들거든요.
아무튼, 예술적 향취가 대단한 작품이에요^^ 추천합니다.
 
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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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줄은 몰랐다. <골든 슬럼버>는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중 최고다. 이제껏 선보였던 그의 재능은 이 작품에서 정점에 올랐다. '작가의 대표작'이란 바로 이런 작품에 붙여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예전 한 인터뷰(<다빈치>07년 4월)에서 이 작품을 ''다이하드'처럼 마냥 도망치고 싸우는 이야기'라고 겸손하게 말했지만, 그렇게 가벼운 작품이 아니다.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의 흥미진진함, 바탕에 깔린 매스컴과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의식, 그야말로 대작이다.

먼저 구성을 살펴보자. <골든 슬럼버>는 1부 '사건의 시작', 2부 '사건의 시청자', 3부 '사건 20년 뒤', 4부 '사건', 5부 '사건 석 달 뒤', 이렇게 다섯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의 85%이상인 4부가 핵심임은 쉽게 알 수 있지만, 4부 앞뒤에 배치된 나머지도 절묘한 역할을 한다. 3부를 보라. '사건 20년 뒤'는 시간상으로 본다면 5부 뒤에 위치해야 맞다. 왜 저자는 3부를 중간에 위치시킨 것일까? 3부는 '가네다 총리 암살사건' 관련자들의 20년 후 모습과 풀리지 않은 수많은 의문점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서술하는 부분이다. 때문에 독자들은 사건에 숨겨진 의혹과 비밀에 호기심을 갖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한마디로, 3부의 중간배치는 4부의 도입부로, 호기심 증폭을 통한 시선집중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였던 네명의 남녀가 있다. 아오야기, 히구치, 모리타, 가즈. '시내와 현내 패스트푸드 점을 돌아다니며 평가하고 신제품 확인'(p.91참조)을 하는 것이 고작인 동아리였지만, 이들의 우정은 끈끈했다. 시간이 흐르고, 이들은 사회로 나간다. 가정을 갖고, 직업을 갖고, 즐거웠던 기억은 추억속에 남았다. 그러나 누가 알았던가, 충격적 사건의 소용돌이가 이들을 덮칠 줄을.

센다이를 방문하던 새 총리 가네다는 무선조정 헬리콥터를 사용한 폭탄에 의해 암살당한다. 총리암살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모두가 경악하고, 연쇄 살인범 일명 '기루오'를 체포하기 위해 도입한 전국민 감시시스템 '시큐리티 포드'(p.33참조)가 발동된다. 비상사태란 명목으로 공공연히 이뤄지는 사생활침해, 폭력행위. 과연 이는 옳을까? 한편, 용의자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바로 택배기사 아오야기 마사하루. 아이돌스타 린카를 강도로부터 구해주고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던 택배기사는 총리암살의 유력한 용의자로 급전직하 한다. 이어지는 수많은 증언과 보도-성추행하다 도망쳤다는 증언, 사건의 쓰인 무선조정 비행기를 구입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등등-는 그가 범인임을 단정지어 버린다. 과연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총리암살범인가?

모든 것이 거짓이요, 조작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권력의 손아귀 속에서 평범한 한 사람은 너무나 쉽게 총리암살범이 되었다. 저자는 작품 곳곳에 국가권력과 매스컴에 대한 비판의식을 표출한다. 눈을 가느스름하게 뜬 아오야기의 사진을 의도적으로 편집해 내보내는 언론(p.222), 증거를 조작하고 '증거는 나오게 돼 있다'고 떠드는 권력(p.257), 그 외(p.279, 307, 346)등등. 이런 비판의식은 작품전체를 관통하기에 하나의 소재쯤으로 치부할 수 없다.

"널 꾀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p.120)는 친구 모리타 고백과 '무조건 도망치라'는 당부, 아오야기는 도망친다.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 작품의 핵심, 국가권력과 아오야기의 쫓고 쫓기는 대추격전(p.163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됨)이다. 후배 가즈와의 만남, 위기, 가즈에게 가해지는 폭력(p.252이하). 옛 동료 '록 이와사키'아저씨의 도움과 탈출시도(p.316이하). 아오야기를 돕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는 히구치(특히 자동차 배터리를 구입해 탈출을 돕는 장면 p.350). 연쇄살인범 혐의를 받는 일명 '기루오'(미우라)와의 만남, 짧은 우정(p.273, 364등등). 하수관 전문가 호도가와 아스시의 도움(p.415이하)등등. 다양한 인물과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이쯤에서 구성에 대해 한마디 더하겠다. 아오야기는 도망과정에서 히구치, 모리타, 가즈와  우정을 나누던 대학시절을 떠올린다. 회상형식으로 과거와 현실을 넘나드는 것이다. <골든 슬럼버>의 회상장면은 영화의 플래시벡처럼 극적이고 효과적이다. 가즈의 집을 찾아가면서 10년전을 회상하는 부분(p.183이하), 택시안에서 도도로키 연화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부분(p.144이하), 히구치와의 추억을 떠올리는 부분(p.341)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제목인 '골든 슬럼버'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비틀즈의 음악제목인 '골든 슬럼버' 이야기는 주로 아오야기가 대학시절을 회상할 때, 혹은 그와 관련된 정황에서 등장(p.131,249,435,453등)한다. 갈등하던 멤버들을 하나로 모아보겠다며 폴 매카트니가 만든 '골든 슬럼버'를 통해, 아오야기는 평범했던 그 시절, 친구들, 우정을 되세긴 것이다. 아오야기의 되내임, '그때로 돌아가야 해. 그때의 친구를 구해야 해'(p.249)란 간절한 소망이 바로 '골든 슬럼버'에 담긴 속뜻이다.

아무튼 죄여오는 추격에 맞서 아오야기는 최후의 선택을 한다. 이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읽어 보시길. <골든 슬럼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한도 끝도 없다. 그 정도로 흥미진진했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기 때문이다. <골든 슬럼버>, 이사카 코타로가 선보인 충격의 대작이다.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사카 코타로는 잊어라. 이 작품을 읽고 다시 그를 보라.

 


* <골든 슬럼버>를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르포르타주 소설의 대표작인 <이유>의 장점을 <골든 슬럼버>는 받아들이고 있다.

* 아오야기의 아버지(아오야기 헤이이치)가 무례한 기자들에 맞서, 당당히 아들의 결백을 주장하는 장면(p.448이하)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 <골든 슬럼버>는 두말할 거 없는 대작이지만, 옥의 티가 있다. 이는 꼭 집고 넘어 가야겠다. 그건 바로 '이노하라 고우메'란 인물(p.166)이다. 아오야기가 무선조정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로지 이노하라,  고용안정센터에서 만난 이노하라 때문이었다. 사건 정황을 볼 때, 이노하라는 아오야기를 함정에 빠트린 거대권력의 하수인이다. 그러나, '이노하라 고우메를 신뢰할 수 있을까'(p.247)라는 아오야기의 독백이후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저자가 이야기 중반이후 '이노하라 고우메'란 인물의 존재자체를 잊어버렸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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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6-2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든 슬럼버>, 마치 미드같은 작품이군요. 일본 장르소설의 진화는 그야말로 눈이 부신 것 같습니다.

쥬베이 2008-06-23 07:43   좋아요 0 | URL
네^^ 08일본서점대상, 08야먀모토 슈고로상 수상작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줍니다^^ 작가가 고심고심한 흔적이 보이더라고요

칼리 2008-06-24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운 여름에 화끈하게 읽을수 있는 재미있는 책 같네요...
쥬베이님은 정말 화끈하게도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리뷰도 끝내주고요...아~~~ 부러워라...
샘나욧!!!

쥬베이 2008-06-24 16:0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여름에 딱 제격인 쫓고쫓기는 대추격전^^
재밌어요ㅋㅋㅋ 리뷰가 끝내준다니...기분 좋아요ㅋㅋㅋ
칼리님 밖에 없어요^^

하향지혼 2008-12-18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골든슬럼버를 정말 재밌게 읽었던 차라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떤가 싶어서 리뷰를 훑어보고 있는데요..저 글 끝에 '이노하라 고우메'라는 여자 캐릭터 말예요.[사건 20년 뒤]의 80페이지에 보면,주인공이 치한으로 몰리게 됐을 때의 피해자 여성과 같이 타고 있던 차가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했다고 나와 있어요.그 둘은 아무 상관관계가 없지만 거액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만 공통점이라고..그러니까 이노하라도 돈을 받고 주인공에게 접근한 거라는 추측이 나오죠.작가가 그 캐릭터를 잊지 않은 것같은데..^^;;그럼 이만,,실례했습니다.

쥬베이 2008-12-24 22:59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글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고 수정해야 겠어요^^
 
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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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이랑 중학교 1학년은 1년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중학생이 되는 순간, 분위기가 백팔십도 변해 어른스러워져요. 웬지 알아요? (중략) 결국 사람이란 가까이에서 함께 지내는 연장자의 영향을 받아요. 초등학생이라면 6학년이 가장 연장자죠. 그러다 보니 6학년은 자신의 감각 그대로 행동하죠.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면 중학교 3학년이 최고 연장자예요. 그렇게 되면 중3들의 감각이 이 친구들을 자극하죠. 싫든 좋든. 한창 사춘기를 겪는 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이 친구들의 본보기가 되는 거죠. 그래서 한 살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감각적으로는 세 살 차이가 나는 거예요."-156쪽

아오야기의 머리에 한 가지 광경이 떠오른다. 방송국 스튜디오로 나가는 자신의 모습이다. 수많은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고 있는데, 그 카메라를 들고 있는 자들이 몽땅 제복을 입을 경찰이다. 깜짝 놀라는 것도 한순간, 그들 손에 들린 권총으로 벌집이 된다. 설명을 듣지 못한 방송국 스태프들은 무슨 짓이냐며 소란을 피우지만, 그 북새통에 사사키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나타나 "아오야기 마사하루는 총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사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하고 선언한다. 어느모로 보나 냄새나는 일이라 음모설이 나오겠지만, 진실은 어둠에 묻히고 오즈월드가 죽어 모든 것이 흐지부지 된 것과 똑같아진다.-313쪽

"우리 같은 대중이란 잘난 놈들이 정한 대로 끌려갈 뿐이야. 우리가 코앞에 닥친 일이나 연애에만 매달린 사이 멋대로 일을 진행하고, 그러다가 문제가 되는 짐짝만 덜컥 떠맡긴다니까. 그래가지고, 잘난 놈들은 저런 감시카메라 너머에서 놀라 쩔쩔매는 우리를 비웃고 있지."-379쪽

"그래, 너희. 내기할래? 내 아들이 진짜 범인인지 아닌지 내기할래?" (중략) "이름도 못 밝히는 너희 정의의 사도들, 정말로 마사하루가 범인이라고 믿는다면 걸어봐. 돈이 아니라, 뭐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걸라고. 너희는 지금 그만한 짓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인생을 기세만으로 뭉개버릴 작정 아니야? 잘 들어, 이게 네놈들 일이란 건 인정하지. 일이란 그런 거니까. 하지만 자신의 일이 남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면 그만한 각오는 있어야지. 버스기사도, 빌딩 건축가도, 요리사도 말이야, 다들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가며 한다고. 왜냐하면 남의 인생이 걸려 있으니까. 각오를 하란 말이다." -449,450쪽

그렇구나, 하고 아오야기는 새삼 깨닫는다. 지금 이렇게 자신이 엄청난 사태에 직면한 순간에도 신문 배달부는 자신의 임무를 수행한다. 집집마다 신문이 배달되고, 아침이 오며 하루가 시작된다. 회사나 학교로 가 "그 중계 보느라 졸려 죽겠다"라고 푸념을 해대며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마치 월드컵 일본전이 끝난 다음 날처럼.-4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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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24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상자의 글이 많이 와닿네요...

쥬베이 2008-06-24 16:05   좋아요 0 | URL
마치 요즘 국내정치상황과 비슷한 글이죠^^
 
몬스터 카니발
안 소피 브라슴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절판


턱이 합죽하니 작은 데 비해 잇몸은 지나치게 컸다. 입술이 얄팍한 데 비해 이는 지나치게 크고 엉성했다. 당연히 앞니는 입 밖으로 삐져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그녀의 입은 언제나 헤벌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늘 실실거리고 웃는 듯 했다. 얼굴 한복판에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그 입만 빼면 꽤 이쁘장한 얼굴이었다. 코도 오똑했고 눈썹도 가지런하고 숱이 많았다. 하지만 그 입 때문에 다른 부분마저도 덩달아 추해 보였다. 눈빛까지도. 그러고 보면 마리카의 얼굴은 부조리의 극치였다. 이목구비가 조각조각 엇나가게 끼워맞춰진 것처럼.-14쪽

지하철이 급커브를 틀 때 그들의 팔꿈치가 내 몸에 닿기라도 하면, 그러다 그들과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고 나서 지하철에서 내린 후에는 잰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웬 남자가 나를 따라오고 있을 거라 상상하면서. 나는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나만의 환상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26쪽

아름다움이란 스스로를 의식하는 순간부터, 관능적으로 변하는 순간부터 끔찍한 것이 되게 마련이다.-36쪽

지하철 안에서 나는 차창에 비친 내 모습을 한동안 뚫어져라 노려보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게 네 얼굴이야, 마리카.'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못생겼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듯 화들짝 놀랐다. 그러고 나면 한참이 지나서야 내 이목구비 하나하나를 내 얼굴의 일부분들로, 한결같이 내 얼굴의 구성해왔던 것들로 바라볼 수 있었다.-64쪽

나는 내 추한 몰골을 사랑했다. 그것을 증오하는 만큼이나. 이따금 나는 벌거벗은 채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여자를 비웃었다. 시시덕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벌거벗은 몸뚱이를, 볼썽사납게 얼굴을 일그러뜨린채 흐느끼는 여자를 비웃었다.-66,67쪽

나는 내 몸을 끔찍이 싫어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든 그걸 감춰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내 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냄새가 그렇게 싫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바닐라 향이며 갖은 향수로 그 냄새를 가리고 숨겼다. 한 시간씩 샤워를 하며 몸을 박박 문질렀다. 살갗이 다 벗겨져나갈 정도로. 나는 내 몸이 존재한다는 걸 잊어버리기 위해 그렇게 몸을 망가뜨렸다.-80쪽

그녀가 아무리 연극을 해도 소용없었다. 내게서 아무것도 못 느끼는 척, 나를 아랑곳하지 않는 척해도 그녀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한심한 바보 마리카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다. 제 애인이 되어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그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었던 바로 그 선물에 혹해 마리카는 내게 매달렸다.-130쪽

우리는 딱했다. 왜냐, 마리카가 나를 사랑하고 있지 않았으니까. 내 삶이나 내 성격 같은 것 따위에 그녀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그녀에게 나는 하나의 살덩어리이자 살가죽에 불과했다. 그녀가 그토록 섹스에 집착하는 건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내 몸 밑에 깔려 있는 제 모습을 상상하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를 통해서 제 자신과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나르시시즘을 충족시켜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건 못생긴 여자에 사로잡힌 남자라면 누구나 감수해야 하는 운명이었다.-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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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6-24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상자의 글이 이 작품에서 두 남녀의 사랑의 향방을 보여주는듯 하네요...

쥬베이 2008-06-24 16:02   좋아요 0 | URL
와 칼리님은 짧은 문장만으로도 이야기전체를 꽤뚫어 보시네요^^
두남녀의 '이상한' 사랑이야기, 예술적 향취가 대단한 작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