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의 인사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4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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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보 시리즈 4권 <우주의 인사>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범우주적 이야기, 유머코드'로 특징지울 수 있다.

먼저, 유머코드. 블랙유머는 호시 신이치 작품의 한 축이기에 유머코드 자체는 그리 놀랍지 않다. 그럼 왜 유머코드가 특징이 될 수 있는가? 이 작품에서 선보이는 유머는 독특하기 때문이다. [원망(願望)](p.23)을 보자. 잠이 오지 않아 마음속으로 양을 헤아리던 사내, 양무리에서 여우를 발견한다. 여우는 말한다. "당신은 이나리가 생긴 이래 딱 육십만 번째 참배자 랍니다. (중략) 그래서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소원을 들어주겠습니다. 뭐가 좋을지 한번 말해 보세요."(p.26.27) 뜻하지 않은 행운을 얻은 사내, 과연 어떤 소원을 말할 것인가? 과연 소원은 이뤄 질 것인가?

놀랍게도, 이 작품은 90년대 인기를 끌던 '최불암 시리즈'의 한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최불암 시리즈'를 일본 작가의 작품을 통해 떠올리다니…신기하지 않은가?^^ 이 작품은 60년대에 나온 것이므로, 최불암 시리즈가 호시 신이치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듯 하다. ('최불암 시리즈' 자체가 기존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재가공한 것이지만)

[기대](p.160)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세계적인 희귀종이 된 백조를 사육하는 친구, 화자는 백조가 갖고 싶어 몰래 백조 알을 훔친다. 부화기 안에 있다 마침내 껍질을 깨고 부화되는 백조 알…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말을 말할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종합한다면 이런 일련의 유머코드는 '허무개그'와 유사한 느낌이다. 호시 신이치의 새로운 면을 접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특유의 블랙유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악당에 약점잡혀 결혼을 강요당한 신부의 이야기 [작지만 큰 사고](p.39)의 결말이 그 예)

다른 특징인 범우주적 이야기. <우주의 인사>는 그 제목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많다. [우주의 인사](p.7), [변덕스런 별](p.58), [우주의 남자들](p.80), [반응](p.167), [타임박스](p.188)등등. 특히 앞 두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반전이 있는 이야기라 자세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호시 신이치의 SF적 상상력은 역시 대단.

호시 신이치의 작품엔 등장인물 이름이 N씨, P박사, R씨등으로 나온다. 왜 그럴까 내심 궁금했는데, 도메키 쿄자부로의 해설에 이에대한 언급이 나온다. '왜 이름다운 이름을 사용하지 않은가 하면 현실에 있을 법한 이름을 사용하면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독자에게 심어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호시는 현실적으로 있을 것 같아 보이는 인물상을 일체 거부하고 작중 인물을 기호화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인사>는 호시 신이치의 범우주적 상상력과 독특한 유머코드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피식 웃음 짓게 하는 몇몇 작품에선 그의 다른 면모를 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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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8-07-30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은하수를 여행하는...>의 작가 더글라스 애덤스하고 비슷한 성향인가요? 서평만 봐도 톡톡 튀네요~~

쥬베이 2008-07-31 07:47   좋아요 0 | URL
짧은 이야기를 기발하게 풀어내요
츠츠이 야스타카 <최후의 끽연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나무>하고 비슷한 느낌입니다^^
 
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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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를 읽고 그 어떤 글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마음에 담아 두는 것, 그걸로 족하다고 믿었다. 그 어떤 감상도, 분석도 실례일 뿐이기에.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아래는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보고서 형식의 간략한 글이다.

1. 첫 느낌

초반부 혼란스러웠다. 뭔가 심각한 상황임은 분명한데,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기 때문이다. '왜 저 지경이 되었을까? 핵전쟁이라도 났나?' 초반부 내내 저런 의문을 품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의문은 사그라 진다. 저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 걸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2. 문체 / 묘사력

1) 코맥 매카시의 문체는 간결하고 깔끔했다. 특히 주목한 것은 남자와 소년이 주고받는 단답형의 대화이다. 이들의 대화에서 약하지만 강렬한 생명의 숨결을 느꼈으며, 때론 비장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2) 코맥 매카시의 묘사는 탁월했다. 몇몇 부분을 예로 든다면, 재와 먼지로 뒤덮인 죽음의 도시 묘사(p.17),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널브러진 시체묘사(p.104), 숯이 되어버린 집의 잔해 묘사(p.149), 모든 것이 녹아버린 죽음의 도로(p.216)등. 이런 문체와 묘사력은 비단 <로드>뿐만이 아닌, 코맥 매카시 본래의 장기다. 건조하고 때론 음울하기까지 한 특유의 문체가 <로드>의 설정과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세기에 길이 빛날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3. 생각해 본 것

1) 주인공에겐 이름이 없다. 단지 남자, 소년으로 불릴 뿐이다. 이는 일종의 대표성을 부여한다. 저자는 특정개인이 아닌, 남자 혹은 소년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대표자란 상징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2) 여성의 부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지막까지 희망을 위해 분투하는 자는 남자와 소년이다. 그 어디에도 여성의 모습은 없다. "여자들은 다 죽었나 보지. 그러니까 안 나오는 거라고. 헛소리 집어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부분을 보자. 아내이자, 소년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은 "우린 생존자가 아니야. 우리는 공포영화에 나오는 좀비야"(p.65)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자살(로 추정)해 버린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성이 끝까지 소년을 보호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데 비해, 어머니는 쉽게 좌절하고 절망을 택한다. 이제까지의 코맥 매카시 작품을 고려한다면 뭐 그리 놀랄 것도 아니지만. 이런 편향성은 생각해 봐야지 않을까?

3) 마지막 장면은 과연 새로운 희망인가? 아무도 장담 못한다. 홍보글에는 자꾸 '몇 페이지의 절망, 한 페이지의 희망' 어쩌구 하는데 뭐가 절망이고 뭐가 희망이란 말인가?

남자와 소년이 힘겹지만 아름답게 살아가던 그 몇 페이지가 도리어 희망이 가득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등장한 인간군群은 일련의 서술로 보면, 남자와 소년이 찾던 사람들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소년이 저 무리에서 희망을 찾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 아래서 겨우겨우 살아가던 소년이 저들에게서 마찬가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4) 과연 저들은 인간인가? 지금은 많이 진정 되었지만, 처음 읽을 땐 자꾸 저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인간이 아닐지 몰라. 배경이 꼭 지구란 법도 없지.' 독자의 상상도 최소한 작품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에선, 허무맹랑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 해보지 못할 상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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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26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난해할 수도 있을듯 해요...굳이 장르분류를 하자면 어느 쪽인가요...

쥬베이 2008-07-26 18:59   좋아요 0 | URL
글쎄요...지옥도 같은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SF적요소가 있고요
전체적으론 휴먼스토리 입니다^^
여성분들은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한밤의 숨바꼭질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3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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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 신이치를 모르는 사람도, <미래의 이솝우화>, <여러 갈래의 미로>에 충격을 받지 못한 사람도, <한밤의 숨바꼭질>앞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도적인 구성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권을 달리할수록 충격의 강도가 깊어진다. 이 작품에 실린 24편의 이야기는 SF, 공포, 풍자, 블랙유머 등으로 버무려져, 결국 "역시 호시 신이치"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읽는 내내 감탄하며, 즐겁게 읽었다.

<한밤의 숨바꼭질>의 24가지 이야기는 분명 짧지만, 아이디어와 상상력은 다른 이의 24편 장편보다도 뛰어나다. 유사한 아이디어와 소재라면 '늘어지는 것'보다 '임팩트한 것'이 좋지 않은가? 특히, [어느 귀향], [금가루]는 대단했다. 저 정도 아이디어라면 원고지 5000매급 장편도 가뿐할 테지만, 호시 신이치가 누구던가? 쇼트-쇼트! 군더더기는 누르고 밟고, 핵심만 짜낸다. 저런데 명작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게 바로 호시 신이치의 진가다.

[어느 귀향](p.11) 부모는 모두 죽고, 홀로 남겨진 고아가 있다. 비참한 모습이 떠오르지만, 그렇지 않다.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땅과 금은보화 덕에 여유롭고 풍족하게 살아간다. 그는 어느 순간 마을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있다고 느낀다. 결국 진상을 알게 된 사내. 마흔 살까지 사는 것이 그의 숙명이며, 손 쓸 도리가 없다는 것. 좌절한다. 40년이란 시한부 삶을 살게 된 그에게 경제적 풍요는 무의미할 뿐이다. 사내의 운명은?

이렇게 살을 붙일 수 있다. 마을의 배경과 등장인물 묘사를 추가하고, 사내 조상이 기원했다는 전국시대 내용을 극적으로 부각한다. 또한 사내의 갈등을 곁에서 함께할 연인을 추가하는 것이다. 나아가 마을 내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세 남녀의 삼각관계까지 맞물리게 한다면 등장인물간 미묘한 갈등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방황하는 사내의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결말을 밝히지 못해 조금 그렇지만, 어릴 적 이와 유사한 드라마(?)를 본 듯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호시 신이치의 이 작품을 차용한 게 아닐까 싶다.

[금가루](p.135) 삶의 의욕조차 잃어버린 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남자, 삶의 줄마저 놓으려는 절망의 순간에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돈을 줍고, 경마와 주식으로 돈을 벌고 승승장구하는 것. 한편 중간중간 마법과 같은 주문이 이어진다. 정체불명의 여성은 "부디 이 남자가 돈을 벌 수 있도록…." 이란 주문과 함께 금가루를 뿌리고 있다. 남자의 행운은 이 여자 덕분인 걸까? 이 여자의 정체는? 이런 의문은 결말에 이르러 해소되는데 충격이다. 살을 붙여 하나의 공포 미스터리 작품으로 선보여도 손색이 없을 정말 대단한 작품.

이외에는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는 [승부](p.128), 폐품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과 미래인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 [미래인의 집](p.42), 초현실적인 플롯의 무한폭주를 맛볼 수 있는 [노란 잎](p.83)이 마음에 들었다. <한밤의 숨바꼭질>, 이 여름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다. 호시 신이치의 무한 상상력 앞에서, 당신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충격을 접하게 될 것이다. 즐거움과 공포를 넘나드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시공을 초월하는 시간의 타임머신, 느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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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본격추리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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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스터리의 애독자로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거의 없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은 접할 수 있지만, 정작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접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저런 생각은 혼자만의 아쉬움이 아니었나 보다. 뒤에 실린 '에도가와 란포를 소개하며'(p.553이하)를 보자. '놀랍게도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원류인 그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출간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남은 것은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 실린 작품은 근 한 세기 전에 쓰인 것이다. 하지만 몇몇 소재(화승총 따위)와 화폐단위만 무시한다면 요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오랜 먼지냄새 풍기지 않는 거장의 품격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한 가지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저자의 개입이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이 이야기 전체와 크게 관련이 있었다.'(p.119)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슬그머니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개입은 꽤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는데,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수록된 22개의 작품 중 '아케치 코고로'가 등장하는 [D언덕의 살인사건], [심리실험], [흑수단]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아케치 코고로는 [D언덕의 살인사건]에 처음 등장한다. 묘사되는 그의 외양을 보자. '나이는 나와 동년배로, 스물다섯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약간 마른 체형이고 걸을 때 이상하게 어깨를 건들거리는 버릇이 있다. (중략) 소위 미남은 아니지만 은근히 애교가 있고 천재처럼 생긴 얼굴을 상상하면 된다. 다만, 아케치는 머리가 덥수룩하니 길고 까치집을 짓고 있으며 남과 대화를 하는 동안 그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더 덥수룩하게 하려는 듯이 손가락으로 마구 헝크는 버릇이 있었다. 옷차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노상 무명옷에 다 해진 띠를 맨다.'(p.137) 뭔가 상당히 익숙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교고쿠도 시리즈의 '추젠지 아키히코'. 위 묘사를 고서점에 앉아 있는 교고쿠도와 연결한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케치 코고로는 [심리실험]에서는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p.59)하는데, 여기서 대활약하는 그의 모습은 요즘 일본 추리소설에 볼 수 있는 탐정역의 그것이다. 한마디로 일본 추리소설의 탐정캐릭터 중 상당수는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한 아케치 코고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비단 캐릭터 뿐이겠는가 만은^^)

[D언덕의 살인사건](p.117) D언덕에 위치한 하쿠바이켄이란 찻집에서 빈둥거리던 '나', 비슷한 처지의 아케치 코고로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탐정소설이란 공통점을 발견한 이들은 아케치 코고로의 소꿉친구가 안주인으로 있다는 헌책방으로 향하고, 의문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나'와 아케치 코고로의 숨막히는 추리대결, 탐정역이 의심을 받는 역逆설정의 묘미, 멋진 작품이다. (결말이 다소 거친 감도 있지만, 아케치 코고로가 등장하자마자 '나'에게 의심받는 설정은 놀라웠다.)

[심리실험](p.37) '후키야 세이치로'의 범죄행각과 음모, 진범 색출을 위한 수사당국의 심리실험이 핵심이다. 수록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단어연상을 통한 심리실험과 중반이후 등장해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아케치 코고로 모습이 무척 인상적.

[흑수단](p.173) 갑자기 사라져 버린 사촌동생 후미코, 이어 잔악한 도적무리 흑수단을 자칭하는 협박편지가 날아온다. 두려움에 빠진 가족은 몸값을 내주지만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과연 후미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솔직히 중반이후 어느 정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다양한 트릭시도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에도가와 란포는 이 작품을 이렇게 평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였다. 단지 암호가 풀기 어려웠을 뿐이고 독특한 개성이 부족하다."라고^^  

이외에도 대화로만 구성된 [대화](p.247), 대화가 주가 되는 [낭떠러지](p.341)가 기억에 남았다. 다양한 구성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두 폐인](p.441)도 멋진 작품이다. 전쟁으로 얼굴의 큰 상처를 입은 사이토, 몽류병 때문에 큰 사건을 저지르고 인생을 망친 이하라,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실이 놀랍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 역시 대단했다. 요즘 소개되는 일본 추리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한 듯 한 설정, 소재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그가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할까. 일본 추리소설의 원류를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게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은 밝은 빛, 희망과도 같은 책이다. 희망을 꿈꾸고 싶은가? 더 이상 에도가와 란포는 전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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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22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유명한 작가라는것만 알고 있을뿐 읽어보진 못했는데 덕분에 유용한 정보 얻고 가네요. 감사^^ 요즘 비가 많이 내리는데 쥬베이님 서재에도 비가 맺혔네요. 우산 잘 챙겨들고 외출하세요^^

쥬베이 2008-07-22 07:53   좋아요 0 | URL
일본 추리소설 좋아하시면, 에도가와 란포 한번 읽어보세요^^
일본추리의 원형이라 할만해요
 
여러 갈래 미로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2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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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뒤에 실린 일러스트레이터 '와다 마코토'의 해설이야기를 하고 싶다. 난 책을 읽을 때, 해설, 저자의 말 따위를 먼저 읽는다. 읽기 전 접한 저것과, 읽고 난 후 접한 저것의 미묘한 차이를 사랑한다. 사실, 플라시보 시리즈 1권에 실린 해설은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나치게 사변적이라 호시 신이치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다. 하지만 와다 마코토의 해설은 다르다. 호시 신이치와 함께 작업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여러 차례 반복해 읽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해설만으로도 페이지 전체를 채울 수 있지만, 딱 한 가지만 살펴보고 가자. 와다 마코토는 처음 만나는 호시 신이치에게 뜬금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쇼트-쇼트를 쓰는 비결은 뭔가요?" 호시 신이치는 말한다. "프랑스 콩트든 에도 시대의 만담이든 뭔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 테죠? 혹은 주간지에 나오는 콩트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도 좋아요. 기억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싶어지는 법이죠. 그걸 얘기해 주세요. 아마 처음에는 좀처럼 남을 웃길 수 없을 거에요.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이야기의 타이밍도 좋지 않고, 서둘러서 결론을 이야기해 버리지요. 그렇기 때문에 재미없게 느껴지는 겁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와중에 이야기하는 타이밍을 알게 되지요. 결국 상대를 웃길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라고. 와다 마코토는 감명 받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작가의 같은 시리즈를 비교한다는 것이 조금 우습지만 1권보다 2권이 좋았다. 1권이 100점 만점이라면, 2권은 100점 만점 플러스알파 정도. 취향에 맞는 작품이 더 많았다. 특히 정통 '쇼트-쇼트'보다는 약간 긴 작품들이 마음에 들었다. 중단편이나 장편 같은 긴 호흡에 익숙해 졌기 때문일까?

초반부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은 공포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숲속의 집](p.25)이다. 도둑질을 하고 적막한 숲속으로 도망친 도둑, 경찰은 따돌렸지만 허기와 피로만은 피할 수 없다. 간신히 집 한 채를 발견하고는 다가간다. 적적히 집을 지키고 있는 노인. 도둑과 노인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정부터 으스스하지 않은가? 왠지 옛날이야기를 연상시키는 듯 한 설정, 그러나 결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과도기의 혼란](p.54)과 [얼굴](p.70)은 미래과학과 세계에 대한 호시 신이치의 예언과 같은 작품이다. 지금 당장은 꿈같은 이야기지만 머지않아 현실화 될 수도 있는 그런 것. [과도기의 혼란]은 길거리에서 사탕을 파는 로봇이 출몰하면서 벌어지는 사회 혼란상을 그리고 있다. 판매금지구역에서 판매하는 로봇을 제재해야 할 지, 로봇판매행위에 대해 세금부과가 가능할 지, 로봇에게 선거권을 인정해야 할 지, 등등. [얼굴]은 페이스 오프와 유사한 설정으로, 평범한 삶에 염증을 느낀 남자의 무모한 도전(?)을 그리고 있다. 분명 가능하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왜 그토록 실감 나는지 의아했던, 약간은 오싹했던 이야기.

[출구](p.134)도 멋진 작품이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방송국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수는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출구를 찾으려야 찾을 수 없던 것. 왜 저리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고, 사람들은 호기심에 앞 다투어 방송국으로 달려간다. 포화상태가 된 방송국 안에선 갖가지 일이 벌어지는데…읽어 보시길^^ [행복한 공주](p.196)도 주목할 만하다. 동화속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공주 때문에 벌어지는 에피소드인데, 호시 신이치 작품치고는 약간 길다. 그만큼 가치가 있다. 동화에 대한 패러디, 비틀기. 1권의 '미래의 이솝우화'와는 다른 차원에서 흥미로웠다.

플라시보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을 읽었다. 역시 호시 신이치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무려 1000편 이상을 완성한 거장의 저력을 새삼 확인했다. 행복하다. 앞으로 수십 권의 책, 수백편의 작품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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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22 0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0편 이상이라...굉장한 저력이네요. 리뷰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물씬물씬 풍겨요. 일본작품들은 정말 주제가 다양하면서도 흡입력 강한 설정들이 많은것 같아요. 만능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쥬베이 2008-07-22 07:54   좋아요 0 | URL
네^^ 만능 이야기꾼이란 수식이 제대로 들어맞는 작가에요.
짧은 이야기들이 이어져 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