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는 분노 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
제이콥 톰스키 지음, 이현주 옮김 / 중앙M&B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1.
<저는 분노조절이 안 되는 호텔리어입니다>(이하, 분노조절 호텔리어)는 장르구분이 꽤 어렵다. "논픽션, 에세이네. 아마존 '논픽션'분야 베스트셀러고, 앞날개에 '에세이'라고 적혀있잖아!" 이런 반응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노조절 호텔리어>는 소설로 읽힌다. [좌충우돌 흥미진진한 토미 제이콥스의 호텔업계 투신기(소설) + 중간중간 이어지는 호텔업계에 대한 비판 혹은 숨겨진 비밀 폭로(비평)] 일반적인 에세이와는 전혀 다르다.
2.
먼저 소설 측면을 보고, 항목을 바꿔 비평 측면을 이야기 하겠다. 주인공 토미 제이콥스는 철학과를 졸업했지만 그를 필요로 하는 회사는 없었다. 그가 얻을 수 있는 일이란 고작 호텔 주차요원. 거칠고 불성실한 직원들 중 토미는 단연 한마리 학이었고, 곧 프런트 직원으로(p.41), 객실관리 지배인으로(p.76) 승진한다. 승승장구하던 토미는 재충전을 위해 사직을 결심(p.125)하고 런던행 비행기(p.129)에 오른다. 얼마지 않아 호텔업계로 돌아온 그는 예전의 토미가 아니었다. 업그레이드를 원하는 여자고객과 사랑을 나누고(p.232), 사기도 쳤고(p.271), 자기 기분을 상하게 한 고객에게 은밀한 보복을 가하기도 한다. 타락의 끝은 어디일까?
<분노조절 호텔리어>에서 특히 재미있는 건, 다양한 호텔직원과 고객의 면면을 살피는 거다. 과도한 팁 경쟁을 벌이다, 주먹다짐을 벌이는(p.38) 키스와 월터, 룸메이드에게 군림하며 그들의 일이 얼마나 쉬운지를 강조하는 재수없는 관리자 테런스, 토미를 유혹하며 룸 업그레이드를 얻어낸 줄리(p.229) 등등. 또한 토미가 호텔업계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다 결국, 타락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3.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분노조절 호텔리어>의 하이라이트는 비평측면 즉, 호텔업계의 숨겨진 비밀폭로다.
1) A호텔의 빈방이 있음에도, 고객을 인근 B호텔로 보내버리는 이유는?(p.67)
한도이상으로 예약을 받은 경우, 교통비를 지불하고 인근호텔로 안내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온라인 여행사를 통해 예약해서 할인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리 중요한 손님이 아니다. / 한 번도 우리 호텔에 묵은 적이 없었고, 이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이 도시를 다시 방문하지 않을 것이다. / 프런트 직원에게 못되게 굴었다.
2) 호텔 유리잔이 반짝반짝 빛나는 이유 / 유리잔에 따라 마신 물에서 레몬향이 나는 이유(p.87)
일부 청소부들이 유리잔 닦는데, 레몬향이 나는 가구용 광택제를 사용하기 때문.
3) 미니바 음식을 돈내지 않고 먹는 방법(p.93)
저자는 미니바 요금이 가장 빈틈이 많은 요금이라 말한다. 각종 입력실수, 직원들의 절도, 시스탬문제 등으로. 그래서, 먹어놓고 "난 이것들을 절대로 먹지 않았어요!"라고 주장하면 호텥측은 별다른 문제제기없이 요금을 철회한다고 한다.
또한, 체크인 과정의 헛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금연객실을 달라고 한 다음, 객실로 올라가 미니바 물건을 모조리 챙긴다. -> 그후 담배을 피고, 프런트에 전화해 담배냄새가 심하다며 방을 바꿔달라고 한다. -> 바뀐 방으로 가 챙긴 물건들은 맛있게 먹는다. (ㅋㅋㅋ) 방을 바꾸는 5분은 기록에 남지않고, 미니바 담당자들도 여러 사정때문에 비어있는 물건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4) 진상 손님들에게 가하는 호텔의 보복.
중국집에서 음식 재촉을 하면, 음식에 침을 뱉는다는 소문이 있다. 얼마 전에는 피자배달원이 피자에 침 뱉고 조롱문자를 보내 문제가 된 사례가 있고. 호텔업계는 어떨까?
저자는 '열쇠폭탄'(p.327)이야기를 한다. 체크인을 하게 되면 '초기화된 열쇠'를 받게 되는데, 진상에겐 그냥 이전 열쇠를 줘버린다. 그러면, 열쇠는 작동하지 않고 고객은 낑낑대다 결국 프런트와 방을 오가야만 한다. 고객 눈앞에선 정상작동하는 것처럼 조작할 수 있기에, 고객은 항의도 제대로 할 수 없다. 또한, 열쇠를 두 번째 사용했을 때 갑자기 열쇠를 기능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한다.
프런트 직원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프런트 직원은 고객을 더 나쁜 방으로 보내버린다. 원래 고객의 방은 센트럴파크를 내려다 볼 수 있는 멋진 곳이었지만, 경치가 형편없는 방으로 보내는 거다. 물론 고객은 이를 전혀 알 수 없다. 또한, 호텔번호와 유사해 끊임없이 전화가 오는 방으로 보내버리기도(p.326) 한다.
4.
<분노조절 호텔리어>는 10년간 호텔에서 근무한 저자의 경험이 제대로 녹아있는 작품이다. 소설적 재미가 가득하기에 소설로 읽어도 좋고, 호텔업계 비밀폭로에 집중해도 좋다. 사실, 호텔업계의 비밀이라곤 하지만, 모든 서비스업계가 마찬가지다. 알게 모르게 고객 뒤에서 수많은 일이 진행되고 있겠지. 전미 호텔업계를 발칵 뒤집었다는 <분노조절 호텔리어>, 이제 우리 호텔업계가 긴장할 차례다.
* 리뷰에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부록(p.387이하)에 실린, [호텔에서 손님이 절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이야기], [호텔에서 손님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 [모든 호텔 손님이 알아야 할 사실]은 꼭 한번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