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도치의 회고록
알랭 마방쿠 지음, 이세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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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출신 작가의 글은 처음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 아주 설랬다. 알랭 마방쿠란 작가가 마침표를 쓰지 않는다는 것, 아프리카 민속신앙을 바탕으로 소설을 전개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를 넘어서는 새롭고 독특한 자극을 선사해 주리라는 믿음을 가졌다.

마지막장을 넘긴 지금, 조금 어리벙벙하다. 마치 안개속에서 러시아방송을 듣는것과 같이...일단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할 수 없다. 옮긴이 말을 엿보니, '인간세상의 부조리한 행태를 비판하고 인간과 동물 가운데 과연 누가 더 짐승같은 존재인지 반문한다'라고 하는데, 글쎄...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내 자신이 알랭 바방쿠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런거라 생각한다.) 또한 바오밥나무에게 고백하는 식으로 서술되는 서술방식 역시 초반에는 신선하게 받아 들여졌으나, 갈수록 지루하고 따분했다. 대략적인 감상은 잠시 멈추고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이야기의 화자는 '느굼바'라는 가시도치이다. (가시도치란게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데, 고슴도치와는 다른 '호저'란 동물의 다른이름임) ('느굼바'라는 이름은 이야기내내 알려지지 않다 끝부분인 p.192에서야 슬그머니 등장한다) 느굼바는 키방디의 분신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해로운 분신'. 그는 키방디의 명령을 받아 그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살해한다. 총 99명의 사람을.../이야기는 키방디의 죽음을 목격한 느굼바가 자신이 살아있음을 확인하며, 자신의 삶을 바오밥(바오바브)나무에 고백하는 형식이다.

느굼바의 고백속에서 키방디의 삶,성장기,아버지,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지며, 독자는 그의 고백을 따라 키방디의 모습을 그려간다. 키방디의 아버지역시 분신(아버지의 분신은 쥐)을 가지고 마음에 들지 않는 동네사람들을 살해하다 동네사람들에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다. 동물분신의 역할 교대의식(p.54)이나 또다른 자아가 묘사되는 부분(p.73)은 아프리카의 토속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것은 상상력의 깊이를 깊게 하지만 동시에 독자에게 이질감을 줄 수도 있다.

키방디는 잘난척하는 '아메데' 살해를 사주하고 느굼바는 가시를 사용해 살해한다.(p.148) 이어 종료주를 채취하는 영감, 돈을 빌려놓고 갚지 않는 율라를 차례로 살해하는데(p.154/p.158-159) 느굼바의 살해는 이게 시작이다. 가시도치의 가시로 과연 살해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이 소설 전체적으로 풍기는 민속적이고, 약간은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아프리카 민속신앙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이야기를 전개한다. 동물이 화자가 되어 시종일관 고백하는 서술도 색달랐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여러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위에도 잠깐 이야기 했지만, 전반적으로 지루했다. 바오바브나무에게  "~~했지. 했었지"하는 가시도치의 말투도 이야기가 계속 될 수록 짜증이 났다. 그리고 느굼바와 키방디의 결합관계에 대한 설명도 미흡해(이해 또는 납득이 되지 않아) 그들 행동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힘들었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등장인물들이 뚜렷하게 부각되지 않아 등장인물에 대한 몰입 역시 어려웠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을 말하라면, 알랭 마방쿠라는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된 사실, 그 하나를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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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대기와 꼼지락거리기 - 인생의 사소한 갈등들을 가볍게 웃어넘기는 방법
가이 브라우닝 지음, 김예리나 옮김 / 부표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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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둥대기와 꼼지락거리기'라 제목부터 인상적인 이 책의 원제는 '해파리를 삽으로 치지 말라'(Never Hit A Jellyfish With A Spade)이다. 다소 생뚱맞은 제목이라 출판사에서 제목을 바꿔 출간한것 같다. 빈둥대기와 꼼지락거리기라, 제목을 참 잘 지은거 같다. 이 책은 책상에 앉아 심각하게 읽기보단 편하게 누워서 꼼지락대며 읽는게 더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비오는 날 편하게 방안에 누워 읽는 '빈둥대기와 꼼지락거리기' 정말 흥미롭게 읽었다. 책속으로 들어가자.

저자는 제일먼저 남자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자의 세련미는 목에서 완성된다. 큰 메달이나 성크리스토퍼가 새겨진 메달을 걸고 다니거나, 아니면 세련됨의 성배라고 할 수 있는 넥타이를 해도 된다. (중략) 세련된 이들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바디랭귀지를 구사한다. 세련된 남자들은 기둥이나 벽에 기대기를 좋아하고, 미끄러지듯 걷는 경향이 있다."(p.29) 요즘 매트로 섹슈얼이 강조되고 남성들도 세련미에 신경을 써야하는 시대가 왔다. 단순히 미는 여성의 관심사라 치부하긴 세상이 바뀐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련된 남자에 대한 저자의 말은 귀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 세련된 남자는 미끄러지듯 걷는다라...-_-

'잠들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부분도 인상적이였다. 현대인들의 고민중 하나인 편하게 잠들기...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양을 세는 것은 잠드는 데 도움을 주는 전통적인 방법이다. (중략) 깜찍하고 어린 양이 낮은 울타리를 폴짝 뛰어넘는 모습을 상상하는게 휠신 도움이 될 것이다."(p.60) 그리고 따뜻한 우유가 들어있는 음료를 마시는것도 하나의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편안한 잠옷 역시 편안한 수면에 도움을 준다. 뭔가 새롭고, 획기적인 방법을 기대했던 독자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가장 기본적이기에 중요한 원리를 이야기 했다.
'
저자는 정말 일상생활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잘 폴어가는 것 같다. 이번에 저자가 이야기하는건 바로 이것. "키 커 보이기"(p.91) 키 커 보이기는 내게 가장 큰 관심을 끌었다. 내 키는 보통키라 옷을 입을때 태가 안살아서...저자는 다소 쌩뚱맞는 접근을 하는데, 차근차근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게 더 현실적이게 느껴진다. "키가 커 보이고 싶다면 크게 생각해야 한다. 곧 재채기라고 할 것처럼 고개를 확 뒤로 젖히고 다니거나, 키가 큰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내려다보면서 말해라. (중략) 키가 큰 사람과 얘기할 때도 올려다보지 말고 그냥 가슴팍에다 대고 얘기해라"(p.92) 어떤가? 정말 쌩뚱맞긴 쌩뚱맞다. 하지만 키늘리기 수술을 받을 수도 없는것이니까 뭐.

저자는 '수영하기'를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마스터하는 수영법은 개헤엄이다. 물고기헤엄을 먼저 배우는 게 맞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헤엄에 있어서는 그래도 개보다는 물고기가 더 나은 모델이니까. 인간이란게 그렇게 웃기는 종족이자."(p.180) 저자의 저 위트 넘치는 말. 심각하지 않게 접근하는 저자의 저런 태도는 부정적으로 본다면, 가볍다고도 할 수 있으나 이 책은 인생의 사소한 갈등들을 가볍게 넘겨버리자는 책 아닌가? 저자의 위트는 그렇기에 더욱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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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미술관 마로니에북스 세계미술관 기행 1
파올라 라펠리 지음, 하지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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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예술작품에 관심은 많으나, 아쉽게도 미술관에 가본적은 없다. <반 고흐 미술관>을 읽으면서 간접적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접하게 되어 좋았다. 예술작품에 대한 갈증이 좀 풀렸다고나 할까? 더구나 그림이 많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저자는 반 고흐의 삶의 흔적을 따라 여러 에피소드를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그의 예술품을 소개한다. "테오에게, 지금 내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언젠가는 내 그림드르이 거기에 사용된 물감보다, 그리고 내 인생보다고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p.8) 반 고흐는 자기 그림이 팔리지 않는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언제가는 자기 그림의 가치를 알게 될거라는 자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테오는 자기의 동생이자 미술상이다. 오늘날 수백억을 호가하는 반 고흐의 작품이 그 당시에는 팔리지 않았다니, 아이러니.

인상적인 그림은 '감자먹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 그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림 속의 농부들은 정말 추하고 불쾌한 모습이지만, 그래서 더욱 진실해 보인다. 이 농부들은 신에게 부여받은 고귀함의 상징이고, 매일의 노동에서 오는 순수함의 메타포로 사회적인 아이콘이 될 만하게 그려졌다."(p.38) 처음 이 그림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그림 속 농부들은 기괴하다. 울퉁불퉁한 얼굴윤곽과 빨간 눈동자색...온화한 이미지보다 그들의 거친속성을 제대로 표현해 내는데, 초점을 맡춘듯 하다.

'산책하는 사람들과 마차가 있는 성벽' 이 그림(p.60)도 인상적이었는데, 평화롭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한가한 오후에 거리에 나와 편하게 거니는 사람들, 그리고 푸른하늘. 뭐낙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보니 오히려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니, 이 그림은 파리의 성벽을 그린 습작중 하나로 고흐가 1887년 여름 열중했던 주제라 한다.

'경작되는 들' (p.90)도 인상적이였는데, 뭉게구름이 둥실 떠 있는 푸른 하늘과, 넓게 펼쳐진 들이 예술이다. 늦은 오후의 한적함과 평화로움이 그림에서 풍겨난다. 등장하는 인물이 아무도 없는것도 한적함을 더욱 강하게 한다. 고흐의 친구 에밀 베르나르의 말이 소개된다. "나는 빈센트가 자기 마음에 드는 모티프를 그리기 위해 작열하는 태양아래에서 몇 킬로미터를 걷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떤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비, 바람, 이슬, 눈과 같은 이 모든것에 맞섰다. 별이 빛나는 하늘이나 정오의 태양을 그리기 위햇라면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작업을 시작했다."(p.90) 그림에 대한 고흐의 열정. 정말 대단하다.

고흐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던 내게 그의 많은 작품을 보게 된 것은 행운이다. 이 하나만으로 만족감이 충만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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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학기 밀리언셀러 클럽 63
기리노 나쓰오 지음, 김수현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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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을지도

유명소설가 '우부카타 게이코'의 남편이 출판사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저의 처, 옛 성으로 '기타무라 게이코'는 열살때 어느 남자에게 납치되어 1년여간 남자의 방에서 감금되어 지냈습니다. 남자는 체포되고 아내는 무사히 돌아왔으며 사건도 종결됐습니다. (중략) 그러나 아내의 침묵은 한통의 편지에 의해 깨졌습니다. 22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걸쳐 죄를 보상하고 출소한 범인으로부터 처 앞으로 편지가 온 것입니다."(p.10-11) 가타무라 게이코는 범인의 편지를 받은 후 갑자기 사라진다. '잔학기'란 소설의 원고와 범인 겐지의 편지만을 남기고…

이후 이야기는, 여류소설가 '가타무라 게이코'가 10살 때 겪은 충격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잔학기'란 소설이다. 게이코는 '성장한 여류소설가 가타무라 게이코'로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잔학기속 납치됐던 소녀로만 등장하는데,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그녀의 행방은 밝혀지지 않는다.

현실감각 없는 어머니의 욕심 때문에 옆 동네 발레교실에 다니던 게이코는 발레교실에서 돌아오는 길에 '겐지'라는 사내에게 납치당한다.(p.34-36 ) 자기를 '밋치'라고 부르는 이상한 사내, 가끔씩 가해지는 폭력, 게이코는 발버둥친다. "나는 맞는 것이 두려워 겐지의 옆에서 울기를 그치고 오로지 겐지의 페이스를 따라가고자 노력했다."(p.38) 겐지는 폭력만 휘두르는 게 아니라 밤에는 동급생처럼 다정하게 굴고, 낮에는 게이코를 발가벗겨 놓고 자위를 하는 등 음란한 짓을 자행한다. 이러한 낮과 밤에 이중적 태도에 대해 게이코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겐지는 의도적으로 두 역할을 구분해 쓰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중략) 속죄라기보다 낮의 겐지를 정당화하고 낮의 겐지의 욕망을 여는 안내역으로서 밤의 겐지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p.57)

이러한 감금상태는 아무도 없는 방에 전기미터기가 돌아가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사장부인에 의해 게이코가 발견됨으로써 끝이 난다. 예상 밖으로 너무 빨리(제1장이 끝나기도 전인 76페이지에서) 발견돼 조금 당황했다. 이야기의 중심이 '감금된 소녀의 내면, 심리상태'라면 겐지에 의한 감금이 소설 속에서 상당히 오래 지속될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알았다. 기리노 나쓰오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는 것을.

"나는 주어진 상처가 깊으면 깊을수록, 선의와 동정조차도 상처를 더욱 깊이 후빈다는 것을 배웠다."(p.109) 낮선 남자에게 납치되었다 풀려난 게이코.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는 건 "게이코, 겐지에게 야한 짓 당하지 않았니?" "너 혹시 겐지하고 사이가 좋았던 것 아니니?"라는 사람들의 이상한 관심, 수사기관의 집요한 추궁. 그리고 친구들의 부담스러운 동정과 이상한 호기심. 게이코는 이야기한다. "나는 겐지와의 단순한 생활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나를 둘러싼 세계가 너무나도 험난하고 적대적인 것처럼 느껴져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p.119) 게이코는 오히려 납치범 겐지와의 생활을 그리워 할 정도로 그녀를 둘러싼 환경은 힘겹기만 하다.

여기서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바로 '야타베'이다. 야타베는 납치범 겐지의 옆방에 사는 사람으로, 귀가 멀고, 손가락 한마디가 잘린 겐지의 공장 동료이다. 게이코는 야타베의 존재에 안심을 하고, 나중에 자기를 구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야타베일거라 생각한다. 게이코의 말을 들어보자. "그러나 단 한 가지, 공포를 이겨낼 희망이 싹텄다. 야타베씨라는 남자의 존재였다. 나는 야타베씨가 언젠가 나를 구출해줄 것이라는 희망에 부지런히, 꾸준하게 비료를 줬다. 희망은 점점 커졌다. 1년에 이르는 감금 생활 중에서 야타베씨는 반드시 올 구세주이자 나의 동경, 아니 신앙의 대상으로까지 변해갔다."(p.51)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야타베는 게이코를 구해줄만한 사람일까? 나중에 밝혀지는 야타베의 추악함을 떠올리면 게이코의 소망은 안스러울 뿐이다.

게이코 남편의 편지로 이야기가 시작된 것처럼 이야기의 끝 역시 게이코 남편의 편지를 통해 서술된다. 이 부분은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하는 부분으로 잔학기란 소설에 대한 남편의 평과 사건의 진실에 대한 견해가 중심이다. 게이코 남편은 바로 납치사건을 담당하고 겐지를 조사했던 검사임이 밝혀지는데, 읽다 약간의 충격을 느꼈다. (여기선 비중 있게 언급하지 못했으나, 게이코와 담당검사와의 관계역시 상당히 흥미로웠음) 게이코의 남편은 사건의 진실을 오랫동안 추적한 사람답게, 충격적인 여러 견해를 제시한다. '겐지,야타베,사장부부 공범설'이나 '겐지,야타베공범설'등

하지만 정말 충격적인 것은 바로 게이코의 고백이다.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겠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겐지와의 생활이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나는 이 원고의 앞부분에 적었다. (중략) 겐지는 낮에는 나를 욕보이면서도 밤에는 사이좋게 지내자며 다정한 얼굴로 다가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기술에는 거짓이 없다.(중략) 거기에 내 기분의 변화는 자세히 적지 않았다. 확실히 적겠다. 나는 겐지를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겐지가 일을 하러 가 있는 동안엔 그가 빨리 돌아왔으면 하고 애를 태웠고 겐지와 함께 지내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다. 겐지의 자위를 도운 일도 있었다. (중략) 나는 밀실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겐지를 사랑했다. (중략) 겐지를 좋아하게 된 순간, 그 방은 나와 겐지 두 사람만의 왕국으로 변했다.(p.198)

그랬다. 게이코와 겐지사이에는 납치범과 피해자라는 관계를 뛰어넘는 교감이 존재했다.

난 읽는 내내 의문이었던 제목 '잔학기'의 잔학이 무었을 의미하는지 다시금 생각해본다. 게이코에게는 겐지와 함께한 1년여의 감금보다도, 감금에서 풀러난 이후 자기에서 쏟아진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과 관심, 지나친 동정, 부모의 갈등등이 오히려 잔학했던 것이 아닐까?

"나는 겐지와의 단순한 생활로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을 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겐지를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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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널 사랑해
교코 모리 지음, 김이숙 옮김 / 노블마인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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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처음 읽은 건 군대에서였다. 유키의 담담한 서술에 가슴을 내맡기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 속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다. 굳이 이 얘기를 꺼내는 건 그 당시와 이 책을 읽은 후 감정이 워낙 강렬하게 이어져 있어, 둘을 떼어 놓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와 다시 읽으려 찾아보니 제목이 바뀌어 있다. 원래 한국어판도 원제처럼 '시즈코의 딸'이었는데, '그래도 널 사랑해'로…묻혀있는 좋은 작품에 새로운 옷을 입혀주고 싶었나 보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가며 처음 느꼈던 감정을 되살렸다. 사람의 감정을 출렁이게 한다는 거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 책은 해내고 있다. 충격적인 사건의 한가운데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담담히 그리고 당당히 성장하는 유키의 모습을 통해…

"가스는 드디어 단내가 났다. 불결한 달콤함이었다. 시즈코는 그 냄새를 맡자 어릴 적 등굣길에 본 조그맣고 노란 들꽃이 생각났다. 작은별 모양의 그 꽃에서 불결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꽃이름은 생각나지 않았다. 가을이면 꽃은 하얀 솜털로 변해 사방으로 날아다녀 시즈코의 머리카락에 묻었다. (중략) 시즈코는 종이조각을 흩뿌렸다. 색종이 조각처럼, 흰 벚꽃 잎처럼, 서까래에서 허공으로 떨어지는 떡처럼, 종잇조각들이 떨어지는 걸 지켜보다가 시즈코는 육박해오는 어둠에 굴복했다." (p.16-17) 섬뜩하다. 시즈코의 죽음이 섬뜩한게 아니라, 죽음에 대한 놀라운, 어찌보면 환상적이기까지 한 묘사가 섬뜩하다.

유키는 '자기가 이런 짓을 저지른다 해도, 널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는'시즈코의 편지내용을 떠올린다. 시즈코는 유키에게만 작은 메모를 남겼을 뿐 어느 누구에도 유서 같은걸 남기지 않는다. 시즈코가 남편에서 쓴 편지를 마지막에 찢고 흩날리는 부분은 그녀의 상실감이 절정을 지나 넘쳐 흐름을 암시한다. 유키에게 시즈코의 빈자리는 크다. 이어지는 시즈코의 장례식, 아버지의 재혼 등은 유키의 시각으로 아슬아슬 세밀하게 묘사되는데, 사춘기 소녀의 슬픈 감수성이 문장 하나하나에 묻어있다.

유키는 과연 자기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에 대해 직접 언급되는 부분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비판적이고 냉소적이다. 다음 장면을 보자. 결혼식(아버지의 재혼)때 신랑, 신부, 하객들이 다 같이 마시는 사발의 곡주, 유키가 사발을 받게 되자…'유키는 체중을 가득 실어 바닥에 뒤꿈치를 대며, 사발을 테이블에 떨어뜨려 산산조각 내버렸다, 장례식날 아침, 엄마의 영혼이 아버지의 집이나 그 집안의 어느 누구도 괴롭히지 못하게 아버지가 엄마의 밥그릇을 현관 층층대에 던져 깨버린 것처럼…"(p.41) 사발을 깬 건 아버지에 대한 유키의 반발이다. 시즈코가 죽자마자 다른 여자와 재혼해버린 아버지에 대한 반발. 생각해보자. 아내가 죽었는데, 슬퍼하지는 못할 망정 귀신이 붙을 줄 모르니 밥그릇을 깨야한다며 층층대에 내던지는 그런 남편이 과연 아내에 대한 애정이 있을까? 시즈코를 그토록 깊은 외로움과 슬픔속으로 내던져 버린건 과연 누구였을지…왠지 그가 미워진다.

아버지와 새엄마 사이에서 위태위태 견뎌가던 유키. 그녀의 마음속엔 항상 시즈코가 있다. 부엌에 남겨진 도자기, 엄마가 하던 스카프등 시즈코의 작은 흔적을 따라 유키는 시즈코를 추억한다. 그런 유키에게 있어 새엄마는 시즈코를 죽게한 원흉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시즈코의 눈을 피해 수년간 만나오며 시즈코가 죽기만을 기다려 온 두사람' 그것이 유키가 이들에 대해 가지는 감정의 근원이다.

"넌 폐쇄적이고 교활한 애야, 유키. 왜 날 그렇게 끔찍한 계모로 만드는거야? 해마다 옷을 사주잖니, 그런데 넌 내가 그런 의무를 행하지 않는것처럼 군단 말이야" / "일부러 그런적은 전혀없어요. 가장 하는건 당신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주위에 있을때면 날 좋아하는 것처럼 굴잖아요. 우리모두 행복한것처럼 행동하잖아요. 난 꾸미지는 않아요. 당신이 싫어요!"(p.133)

유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아니 아버지와 새엄마를 피해 먼지방의 미술전문대학에 진학한다. 거기서 만난 이사무와의 짧은 사랑…유키는 엄청난 시련속에서도 자신을 놓지않고 성장한다. 유키를 덮친 그 엄청난 시련과 고통은 그녀에게 어떤걸 남겼을까…? 유키의 애잔하고도 가슴아픈, 그래서 아름다운 이야기,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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