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라푼첼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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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푼첼'은 그림형제의 동화속 주인공 중 한명이다. 어린시절부터 마녀의 손에 자라, 외딴성에 갇혀 지내는 아름다운 아가씨. 기류 미사오의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를 보면 라푼첼은 외딴 성에서 남성들을 유혹하는 것을 강요받고, 마녀는 라푼첼이 유혹한 남성들을 살해하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이 부분을 읽으며 '나무요괴에게 잡혀 남자들을 유혹해야 했던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떠올랐었다.

<잠자는 라푼첼> 왜 저자는 라푼첼을 끌어온 것일까? 제목에 담긴 의미, 한번 생각해 볼 만한다. 이에 대해서는 끝부분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줄거리를 살펴보자. 결혼 6년차 전업주부 '시오미 데즈카'. 그녀는 모델활동을 잠시하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그의 남편은 유명 광고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광고기획자. 결혼 후 남편은 바쁜일 때문에 주말에만 집을 찿고, 시오미는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줄 모른다. 그러던 중, 그녀는 옆집 아이 '루피오', 옆집 남자 '대니', 파친코 종업원 '타카나시'등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고, 일탈을 감행한다.

난 야마모토 후미오의 <잠자는 라푼첼>과 소설속 등장인물-특히 시오미를 분리해서 살펴보고 싶다. 이를 분리하는게 과연 타당할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둘을 분리하지 않으면 내 생각과 감정이 뒤엉켜 버린다.

<잠자는 라푼첼> 읽는 내내 불편했다. 기분이 나빴다. 시오미의 충격적 행각은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는 옆집사는 13살 소년, '루피오'(루피오는 본명이 아니라, 영화 '후크'의 등장인물 이름. 시오미는 영화속 등장인물과 그가 닮았다 저런 명칭으로 소년을 불렀다. 루피오의 본명은 '로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그와 섹스를 한다.(p.234참조) 당신은 이것이 이해가 되는가? 15살이나 어리고, 고작 13살밖에 안 된 아이와 관계를 하다니...

그녀는 또 옆집 남자 '대니'(이 역시 본명이 아니라, 그가 영화배우 '대니 드비토'를 닮았다 하여 그녀는 이렇게 불렀다)와 섹스를 하는데, 대니는 루피오의 아버지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들(루피오,대니)의 옷가지를 빨고,  그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그들과 게임을 한다. 거창한 윤리관념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납득할 수 없다. 그녀는 한마디로 정신 나갔다.

시오미를 위한 변명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의 남편은 일에 너무 바쁜 나머지 그녀에게 많은 신경을 쓰지 못해, 그녀가 느끼는 심한 외로움과 상실감이 저런 비정상적인 행각으로 이어진 걸거야, 한번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자고. 내가 그녀라면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하지만. 결국 난 그녀를 위한 변명을 버렸다.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

시오미는 이렇게 말한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왜 열다섯 살이나 어린 소년을 좋아하게 된 것일까? 왜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있을까? 왜 나는 금붕어 시체를 받아야 하는 것일까? 왜 나에게는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것일까? 왜? 왜 내 옷장에는 똑같은 향수가 열두 개나 있는 것일까? 제발 누가 대답 좀 해줘요!"(p.196,197) 하지만 과연 누가 저 물음에 답할 수 있을까? 다른이에게 물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그런 그녀가 아주 답답하게 생각 되었다면, 난 너무 이기적인 것일까?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상징으로 고양이가 언급된다. 남편이 반강제적으로 던지고 간 고양이. 그녀는 당황하지만, 곧 고양이에게 깊은 애정을 느낀다. 일종의 동질감이라고 해야 할까? 난 동질감으로 해석하고 싶다. 집 안에서만 갇혀지내는, 남아도는 시간을 잠자는데만 쓰는, 그들은 친구이자, 또하나의 자신이다. 이 고양이는 다른 쪽으로도 큰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고양이 '다비'가 애완동물 기르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아파트에서 몰래 길러져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야기의 결말과 맞물려 시오미에게 '고양이 기르지 마'라는 편지가 오고, 썩은 금붕어가 고양이 먹이라고 배달된다. 그리고 현관문에 스프레이로 갈겨 써진 독설까지. 과연 저런 치졸한 짓은 누가 한 것일까?

굳이 소개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야기의 결말때문에 언급해야 겠다. 옆집 루피오의 어머니는 '미노아'란 인물로 딸(주리)의 연예계 활동을 매니저하는 '스테이지 엄마'이다. 미노아는 일주일에 한번씩 열리는 생활협동조합 물건을 시오미에게 부탁하곤 했다. 뭔가 성격이 맞지 않는 그들. 결말은 이들과 관련이 있다. 스포일러 때문에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읽어보시길.

이처럼, 난 소설 속 시오미란 인물에 답답함과 혐오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시오미'를 창조한 야마모토 후미오까지 혐오하고 싶지는 않다.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없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이유는, 저자의 깔끔한 문체와 차분한 내면묘사 덕분이었다. 그녀의 차분한 문체는 동년배 여성들에게 상당한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과연 그녀의 다른 작품을 또 읽을지는 미지수다.

이제 젤 처음 언급했던 '잠자는 라푼첼' 제목이야기를 해보자. 성속에 갇혀 지내는 아름다운 라푼첼, 결혼 후 집안에서 잠이나, 파친코로 소일하는 시오미를 라푼첼과 병치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마녀에게 벗어나 왕자와 사랑을 나누던 라푼첼. 시오미에게 있어 왕자는 '루피오'였다. 비록 15살이나 어린 왕자였지만. 아니다. 그녀에게 있어 루피오도, 대니도, 타카나시도, 전부 왕자였다. 그녀를 괴롭히는 극한의 우울과 일상의 반복, 그것에서 구해줄 사람이면 누구나가 왕자였던 것이다. (이런 해석의 바탕은 p.193에 언급된 시오미의 심정을 바탕으로 한 것임. 그 부분 참조해 보시길)

그런 마녀는 누굴까? 그야 당연히 남편이다. '그가 과연 시오미를 사랑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결혼이란 합법적인 굴레속에, 시오미를 가둬 두고, 또 다른 사랑을 찿아 다녔던 것은 아닐런지? 여러가지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동시에 한아름의 씁쓸함을 던져준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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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의 죽음 랜덤소설선 18
이재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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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재웅. 난 그에게 설명할 수 없는 호감을 가지고 있다. 그냥 마음에 든다면, 너무 무책임한 말일까? 장편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을 읽었다.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는 신인급 작가가 펼쳐보일 그것이 아니었다. 인생의 힘든 시기에 접한 책이라 더욱 인상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후로 작가 이재웅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그가 신작 <럭키의 죽음>으로 돌아왔다. <럭키의 죽음>은 9편의 단편이 실린 그의 첫 소설집으로, 그에게 품고 있던 어렴풋한 호감을 확신시켜 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모의 사진] [럭키의 죽음]이었다.

[고모의 사진] 어머니에게 걸려 온 전화 한통. 어머니는 화자인 '나'에게 '연지평 고모가 찿아 왔었으며, 그녀가 시골노인들에게 수의를 팔고 다녔다'고 이야기 한다. 어머니는 특히 그녀가 노인들의 자녀들까지 동원해 수의를 팔려고 자녀들 전화번호를 묻고 다녔는데, 어쩔 수 없이 '나'의 전화번호도 알려 줬음을, 그리고 요령껏 처신하라고 신신당부 한다.(p.85참조)

'나'와 아내인 '현화'는 오랫만에 자신들을 찿을지 모르는 '연지평 고모'를 맞을 준비를 하고, 새삼스레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 올듯 안올듯, 마침내 한 노파가 방문을 하는데, '나'는 늙은 연지평 고모의 얼굴을 좀처럼 생각해 내기 어렵다. 아내 '현화'는 그를 연지평 고모라고 생각하고 살뜰하게 맞는데...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란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어릴적 자신을 귀여워 했던 친척을 이제는 얼굴조차 알아 볼 수 없는 현실. 길거리에서 마주쳐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현실. 쓴웃음 짓게 한다. 이런 '단절'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인물은 '현화'이다. 하지만 그녀의 노력은 (어떤 의미에서) 배신 때문에, 좌절되고 만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안타까운 이야기.

[럭키의 죽음] A동에 원룸으로 이사오게 된 학원강사인 '나'. 그는 고물상에서 일하는 황노인을 알게 된다. 황노인은 다소 도도해 보이는 인상으로 '럭키'란 이름의 개를 데리고 있다. 도도해 보이던 황노인은 그와 짧은 대화를 나눈것을 계기로 그에게 친근하게 수작하는데, 그는 그런 황노인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러다 알게 된 황노인의 전력. 그는 성격은 좋지만, 어딘가 허술한 사람으로 동네사람들의 따돌림을 받아 왔던 것이다. 그러던 와중, '럭키'는 병이들어 낑낑 신음소리를 내고, 동네사람들은 시끄럽다며 불평을 해데는데...

혼자 쓸쓸히 '럭키'에게 애정을 쏟는 황노인의 모습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사회에서 밀려난 늙은 그와 아무도 귀여워 하지 않는 늙은 개, 그들은 유일한 친구인 것이다. 병든 럭키의 수술비 30만원을 위해, 동네사람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황노인의 모습은 가슴이 아팠고, 안타까웠다. 마지막, '황노인의 선택'은 저런 현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결과인 동시에, 수술비 30만원조차 없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분노는 아닐런지. 황노인을 대하는 '나'의 심리변화 내지, 제3자적 태도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9편의 단편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은연중 이야기한다. [젊은 자식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망쳐놓는가?]에서는 가정과 사회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린 우리 아버지들의 현실을, [인터뷰]에서는 돈에 놀아나는 언론의 문제와 전학태란 인물 풍자를, [키스]에서는 방황을 잃어버린 젊음과 우리 사회를 이야기한다. 이는 전작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에서 보여지던 저자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저자의 첫 소설집, 인상깊고 흥미롭게 읽었다. 우리 작가들의 좋은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읽히지 않는 현실이 아쉬울 정도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으련만…아무튼, 그에 대한 내 호감은 앞으로 계속 될 것 같다. 좋은 소설 계속 선보여 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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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전설 세피아
슈카와 미나토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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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 표지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뚫어지게. 묘한 분위기의 그림이었다. 언뜻 보기엔 괴기스럽지만, '괴기스럽다' 이 한마디로는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느낌이다. 통통한 볼살과 둥글둥글한 얼굴, 생뚱맞아 보이는 선글라스, 조금 귀엽기도 하다. 이처럼, 어느 한 가지 느낌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그림. 이런 미묘한 느낌을 슈가와 미나토의 글을 읽으며 또 한 번 느꼈다.

<도시전설 세피아>는 5편의 단편이 실린 단편집으로, 슈가와 미나토의 데뷔작이다. 인상적인 단편 두세 편만 소개하려고 했는데, 읽고 난 지금 도저히 그럴 수 없다. 어느 하나 부족하다고 느낀 단편이 없기 때문이다. 전부 마음에 들었다. 이런 경우는 정말 드물다, 거기다 이 작품은 저자의 데뷔작이지 않은가??

[올빼미 사내] 사고로 중증 정신지체아가 된 '이사오'. 그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지만, 늘 혼자였다. 놀이터에서 호-오 호-오 호-오 라는 올빼미 우는 소리를 내, 아이들에게 같이 놀자고 호소하던 이사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응하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p.18) 이야기 속 화자인 '나'는 이사오를 부러워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사오가 괴롭힘 당하는 아이를 구해준 사건을 통해 아이들 사이에서 전설의 주인공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 요컨대, 이사오는 '올빼미 사내'의 원형인 것이다.

이야기속 '나'는 꿈꿔왔던 전설속 주인공이 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해 올빼미 사내란 도시전설을 퍼트리고, 인터넷 속에서 올빼미 사내는 점점 구체적으로, 공포스럽게 성장한다. 인터넷을 통해 올빼미 사내 이야기가 확대되는 과정-외양묘사에 지나지 않던 올빼미 사내가 사람들에 의해 점점 더 구체적인 특징까지 갖게 되는-은 부화뇌동하는 대중의 어리석음과 인터넷매체의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올빼미 사내 전설을 좀 들어보자. '올빼미 사내 이야기, 아세요? 요즘 나도는 도시전설 가운데 하나인데, 갈색 코트에 흰 장갑을 끼고 미러 선글라스를 쓴 남자라고 합니다. 밤거리에 나타나 호-오 호-오 호-오 하는 올빼미 소리로 말을 건답니다. 인간세계에 숨어들어 있는 동료를 찾는 거래요. 즉시 호-오 호-오 호-오 하고 대답하지 않으면 눈동자를 후벼 판답니다. 만약 깜빡하고 찍찍, 찍찍하고 쥐 소리로 대꾸하기라도 하면 당장 잡아먹힌대요. 사실인지 꾸며낸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정말 무섭네요.'(p.26)

이야기속 '나'는 올빼미 사내를 현실세계로 끌어내기 위해, 직접 올빼미 사내로 변장하고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어제의 공원] '어제의 공원'은 현재-과거-현재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부자지간인 엔도와 쇼이치는 공원에서 베트민턴을 치며 놀고, 아들 쇼이치가 베드민턴 공을 사러 간 사이, 아버지 엔도는 공원에서 뛰어 놀던 어린시절을 추억한다. '과거' '비버'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엔도, '마치'라 불리던 절친한 친구 '마치다 다케오'. 공원에서 함께 놀다 헤어진 엔도는 마치의 사고사 소식을 듣게 되고, 충격에 빠진다.(p.81참조)

그런 상황에서, 공원을 지나던 엔도는 마치와 함께 가지고 놀던 고무공이 튀어나오는 것을 발견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시간 여행처럼, 죽었던 마치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에 엔도는 마치의 죽음을 막으려 하지만, 그때마다 더 잔혹한 방법으로 마치는 죽음을 당한다. 계속 반복되는 시간의 돌이킴. 되돌아 왔다 더, 더 잔혹하게 죽는 마치. 어떻게 해도 마치의 운명을 돌이킬 수는 없는 것이다.

회상에서 깨어 현실로 돌아온 엔도, 하지만 쇼이치는 왠지 슬퍼하는 듯 한 모습.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인간의 힘으로 절대 바꿀 수 없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섬뜩하게 그려졌다. 마지막 반전도 좋았고, 아주 마음에 드는 단편이다.

[아이스맨] 사촌 친척집에서 지내고 있는 가즈키. 그는 사촌형 고이치와 마쓰리 구경을 갔다 한 소녀를 만난다. 그 소녀는 가즈키에게 곰살맞게 스스럼없게 대하고, '갓파'를 보러 가자고 한다. (일종의 소녀 삐끼 입니다ㅋㅋ) 소녀가 가즈키를 데려간 곳은 '세계 최초! 갓파 통얼음 백 퍼센트 진품'이라고 적힌 버스.(p.131참조) 가즈키는 그 버스에서 신기한 사진들과 '갓파 통얼음'을 보게 되는데, 그는 갓파를 가짜라고 여기고 약간의 실망을 하는데.

여기서 언급해야 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갓파가 전시되어 있는 버스의 주인 뚱보남자다. 그는 그로테스크하고 미스테리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그와 소녀의 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과연 소녀 말대로 그들은 부녀관계인가? 그는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정확한 정체가 밝혀지지 않는다.

소녀(논코)와 가즈키의 관계는 황순원 '소나기'의 소년소녀의 관계하고도 약간 유사한 분위기이다. 소년이 어수룩하고, 소녀가 영악하다는 측면 때문일까. 뭐 아무튼. 뚱보는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사내를 살해하고, 이 때문에 뚱보는 논코와 가즈키에게 '냉동 갓파'를 처리하라고 한다. 이어지는 논코의 고백, 마지막의 충격적 사실.

[사자연] 굉장한 작품이다. 한 인간의 비뚤어진 집념과 소유욕의 오싹함을 제대로 그려낸 작품이다. 일단 줄거리를 살펴보자. 노지마 구미코가 이단 예술가 '가나에 린코'를 취재하고 있고, 취재에 응하는 린코의 독백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처음 린코가 그림에 몰두하게 된 것은 '사쿠타 기미히코'라는 화가 지망생이 쓴 책을 접하면서 였다. 기미히코는 죽음을 통해 예술성을 찾으려 20세란 젊은 나이에 자살한 인물.

여기서 '미카자키'란 인물이 등장하는데, 미카자키 역시 기미히코에 완전히 빠져버린 여성. 그녀와 린코는 기미히코란 공통 관심사로 친해지지만, 결국 기미히코에 대한 독점욕 때문에 갈등하고 분노하는 사이가 된다. 이들의 모습은 욘사마에 홀릭하는 일본 아줌마들을 떠올리게 하고, 특히 미카자키의 이어지는 그 상상을 초월하는 행각은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능가한다. 자세한 것은 언급하지 않겠다. 기미히코의 죽음에 비밀이 있다는 것. 또한 미카자키의 경악할 행각에 초점을 맞추고 읽어보시길.

<도시전설 세피아> 수록된 다섯편의 단편 모두 고른 작품성과 흥미를 보장한다. 다섯편의 오싹한 도시전설은 한 여름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 줄 것이다. 일단 읽어보시라. 하지만 이거 하나는 조심하시길. 읽는 도중, 어디선가 호-오 호-오 호-오 하는 올빼미 사내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목청을 가다듬고 낭낭한 목소리로 호-오 호-오 호-오 하셔야 한다는 것을. 안 그러면 올빼미 사내가 눈을 파내려 달려들 수 있으니...하하^^ 강력추천!!!


* 마지막 단편 '월석'은 리뷰쓰다 지쳐서 언급을 못했습니다-_- 가슴 찡한 호러물이고, '이시다 이라'는 뒤에 실린 해설에서 이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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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le 2007-08-24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 꼼꼼한 서평..+_+별로 관심없던 책인데, 재밌다니 읽어봐야겠네요!!

쥬베이 2007-08-24 07:08   좋아요 0 | URL
시즈님 좋아하실거 같아요^^ 스포일러 때문에 최대한 크라이막스 직전에 멈췄습니다ㅋㅋ

책향기 2007-08-2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꾹~ 근데 리뷰와 상관없지만 왜 재수없는 알라딘이에요???@.@ 이유가 무지 궁금해요^^

쥬베이 2007-08-24 15:50   좋아요 0 | URL
아..책교환건하고 반복되는 오류문제 때문이랍니다ㅋㅋ
 
굿모 에비앙
요시카와 도리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7년 2월
절판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해둘 말이 있어. 우리 집에서는 보통 세상의 룰은 안 통한다. 다른 애들 집하고는 사는 방법이 달라. 다른 애하고 똑같이 해달라고 떼를 썼다가는 얻어터질 줄 알아. 명심해. 우리 집에는 우리 집만의 룰이 있는 거야."
어린 나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것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집의 룰은 단 한 가지야. '재미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자, 따라 해봐."
"재미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나는 조그만 소리로 웃기는 우리 집만의 룰을 따라 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긴 했지만 역시 우리 엄마는 뇌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다.-13쪽

"해피짱이다-48쪽

이 아이는 절대 해피짱이다-163,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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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7-08-2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알라딘 오류로 입력했던게 저 지경-_-
정말 어이없네.
힘들여 입력했던거 전부 원상복구 하세요

쥬베이 2007-08-2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피짱이다 -_- 이 아이는 절대 해피짱이다 -_- 정말 이럴겁니까???

쥬베이 2007-08-31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구불가능 하단다-_- 결국, 알라딘에서 타이핑해서 메일로 보내줬음.
근데, 또 입력하니 같은 오류-_- 환장하겠네 정말.
 
단테의 신곡 살인
아르노 들랄랑드 지음, 권수연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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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서관에 앉아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점심도 먹지 않았다. 계속 읽었다. 책을 읽고 있단 사실, 그 사실 하나에 행복해질 정도로 <단테의 신곡 살인>은 대단했다. 

처음 이 책을 보고는 약간 당황했다. 그건 이름은 '단테시리즈'이지만, '줄리오 레오니의 단테시리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목만 유사할 뿐, '줄리오 레오니의 작품'과 '아르노 들랄랑드의 작품'은 전혀 다르다. 같은 것은 단테가 이야기에 언급된다는 것 밖에 없다. 가장 큰 차이는 '단테'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느냐 아니냐인데, 이 작품엔 단테란 인물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테의 신곡'에 영감을 받은 살인사건만이 존재할 뿐이다.

두 작품의 우열을 정해볼까. <단테의 빛의 살인> 그리고 <단테의 신곡 살인>. 후자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무시무시한 '일 디아블로'를 추격하고, 사건의 비밀을 파헤치는 '피에트로'와 '란드레토'의 대 활약상, 아르노 들랄랑드의 현란한 묘사력,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특히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하나둘 자행되는 끔직한 살인사건은 이 작품이 단순히 흥미만 추구하는 소설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나중에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을 읽으면, 세 작품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겠다. 조금 잔인하지만^^

'아르노 들랄랑드' 그의 묘사력은 정말 이야기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특히 베네치아의 떠들석한 모습의 묘사(p.15-16)나, 살인사건과 시체묘사(p.77-82 /164-165), 비카리오 도서관에서 단테의 신곡-지옥편을 접한 '피에트로'의 반응묘사(p.202-204)등은 압권이다.

베네치아의 모습과 그들의 영화, 쇄락등 그들의 역사적 사실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내용은, 문화적 합일점이 없는 독자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욕스러운 부분이다. 지루해지기 딱 좋은 내용인 것이다. 나 역시 이 부분은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내용이 저자의 놀라운 묘사력과 충격적 사건과 어울리면서, 색다른 묘미를 선사했다. 어느덧 '이야기에 몰입해 버린 나'를 발견한 것이다.

산 루카 극장에서 아주 잔인하게 살해된 시체가 발견된다. 피해자는 '마르첼로 토레토네'. 베네치아 권력 핵심부는 이 사건을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고위인사들에 대한 정치적 범죄로 간주하고 사건해결의 혈안이 된다. 그런 권력핵심부의 하나인 10인 위원회의 '에밀리오 빈디카티'는 베네치아 총독 '프란테스코 로레단'에게 사건해결을 맡길 한 인물을 소개한다. 그가 바로 우리의 호프, '피에트로 루이지 비라볼타 데 살란트'(이하, 피에트로)

피에트로는 현재 감옥에 갖혀 있는 죄수신분. 이 때문에 총독은 그를 탐탁치 않게 여기지만, 빈디카티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그는 결국 자유를 대가로, 사건해결이란 중책을 맡게 된다. 그럼 그는 왜 감옥에 갖혀 있던 것일까? 그는 험란한 젊은 날은 보냈다. (그의 인생역정은 p.39-43참조) 그러다 암호명 '흑란'으로 불리는 비밀첩보요원으로 성장하지만 자기의 후견인의 아내, 안나 산타마리아와의 불륜이 들통나 온갖 혐의를 뒤집어 쓰고 감옥에 갖혔던 것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피에트로'가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이다. 일단 그는 사건현장인 산 루카 극장을 찿아가 아직 보존중이던 사체를 살펴보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피해자 마르첼로 토레토네가 10인 위원회, 40인 위원회의 첩보원이었다는 사실, 동성애 같은 이상성욕자 였다는 사실등-을 알게 된다. 이어지는 고급창녀 '루치나 살리에스트리'와 유리장인 '패데리코 스파데티' 조사과정. 특히 루치나는 사건현장에 떨어져 있던 브롯치의 주인으로, 사건과의 관련성이 궁금증을 자아낸다.

여기서 비중있게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건 바로 '카펠리 신부'이다. 그는 피에트로가 감옥에 갖힐 때, 앞장 섰던 인물로 그에게는 원수나 다름없다. 하지만 피에트로는 사건해결을 위해 그를 찿고, 그에게서 '일 디아블로'와 '스트리게'라는 중요한 단서를 얻는데...그리고 이어지는 어린 소년을 범하는 카펠리 신부의 모습과 정체불명의 쪽지.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든다.

살인사건은 끝이 아니었다. 문란한 동성애를 즐기던 타락한 신부 '카펠리'가 살해 당한 것. 그는 성당 꼭대기에 매달린 채, 벼락을 맞아 죽는데, 더 충격적인 것은 그가 거세를 당한채 죽었다는 사실. 하지만 살인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살인. 죽음.

자, 줄리오 레오니의 단테시리즈엔 단테가 행정위원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역이지만, <단테의 신곡 살인>엔 단테란 인물은 없다. 지금까지 언급되던 '흑란 피에트로'가 바로 주인공이다. 그럼 왜 제목에 단테가 언급되는 걸까? 그건 바로 악의 무리 '일 디아블로' '불새'의 무리가 단테의 신곡에서 살인의 영감과 소재를 차용해 왔기 때문이다. 바카리오 도서관에서 처음 이 사실을 알아챈 '피에트로'는 그야 말로 경악(p.202)하는데, 이 부분의 묘사가 훌륭하단 건 위에서 밝힌 바 있다. (인용은 하지 않겠다, 직접 느껴 보시길)

'피에트로'란 인물은 참 매력적인 캐릭터다. 여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외모는 둘째치고, 사랑을 위해서(그것이 불륜일지라도)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는 모습. 그리고 뛰어난 검술. 어설픈 단테보다  그가 훨신 매력적이다. 그와 '안나 산타마리아'와의 금지된 사랑, 루치나와 그와의 짧은 만남. 인상적이었다.

<단테의 신곡 살인> 긴 말이 필요없다. 이 말 한마디만 하겠다. 정말 재밌다.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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