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하재영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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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글을 통해 내 기억을 소환하거나, 그 상황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을 어떤 방식으로든 떠올리게 된다는 데 그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제목을 처음 들었을때, 읽어보고 싶은 책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책 제목이 열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정말 읽기를 잘 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 대한 시절의 추억과

아버지의 취미를 통해 배운 섬세한 감각

같은 지붕아래 , 그리고 그 집을 둘러싼 관계와 집

집과 어머니, 여성, 페미니즘

집을 통해 느끼는 삶의 희노애락

한구절 한구절 너무 좋아서 아끼는 아이스크림을 베어물듯 음미하며 읽어 내려갔다.

어린시적 아버지의 직업덕분에 나는 꽤 많은 이사를 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의 전근수 만큼 이사를 하지 않아 그나마 몇번의 이사를 피하고, 열번에 가까운 이사를 해야만 했다.

그중 가장 기억이 남는 집이

난방비를 아낀다는 명분으로 한방에 다섯식구가 오글오글 모여자던 때가 있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그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가족이 한방에 모여서 잔다는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꽤 미묘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일까 나는 최근까지 집을 소유해야 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집을 보며, 자연스럽게 '집은 사는게 아니야. 어차피 내가 원하는 집에 살지 못할거 그냥 전세를 옮겨 다니며 사는게 나아' 라는 신념 비슷한 것을 가지게 되었고. 언제부터인가 집에 대한 관심이 생길때 마다 애써 스위치를 'off' 시켜 놓았다.

그런 갈망을 애써 억지로 눌러 잠재운 탓인지 요 몇년간 봇물처럼 튀어나왔다.

집...

나만의 공간, 내가 바라는 집이 가지고 싶었다.

미치도록...

집은 나에게 무엇인가?

사라본의 <April in Paris>를 들으며 눈을 감고 생각했다.

안온한 집에 사는 느낌을...

이렇게 또 안온한 하루가 흘러가고 있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사회도 물리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장소이므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나의 위치도 자리의 문제 였다. 이것은 하나의 화두가 되었다. 넓게는 이 세상에서, 좁게는 이 집에서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p. 130

이 지점에서 눈물이 핑돈다.

몇년간 나를 괴롭히다 싶이 찾아온 공간에 대한 갈망.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

점점 올라가는 집값앞에 속수 무책으로 서 있는 내모습.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번생은 글렀나봐' 라는 말로 나의 욕망을 닫아버리려고 애를 썼다.

이번생에 내가 원하는 집을 얻는 것은 복권이 당첨되지 않으면 아마도 어려울 것 같은 그런 일이되어가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얼마전 회사를 이전하는 과정에서 나의 자리문제가 불거졌다

소소히 말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결국 아무데서나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뭐 하는 나의 선량한 마음에

자리문제로 사람들은 많은 상처를 내었다.

작가는 나를 대변해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덤덤하게

내가 자기만의 방을 소망할 때 나는 무엇을 소망하는가?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나의 고유함으로 자신과 세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욕망일 것이다.

집과 엄마, 여성과 집의 관계에 대한 익숙하지만 조금은 다른 시선

무관심해서 몰랐을 엄마의 자리

집의 구석구석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지만, 정작 엄마만의 오롯한 공간은 없다는 사실.

그 사실을 불편해 하거나 미안해 하는 가족들이 몇이나 될까?

내 방은 그토록 원하면서 말이다.

엄마에게 최소한의 자리를 내어주주기 그것은 비단 엄마뿐이 아닐지 모른다.

작은 집에 살면서 각자의 공간은 사치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공간의 크고 작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시켜주었다.

오롯한 나만의 공간이라고 정해두는 일.

거기서 충전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 힘차게 살아갈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사실은

나의 방의 문제에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늘을 사는 자녀들이 꼭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서구 사회의 전통은 결혼한 여성에게 남편의 성을 따르게 하지만 한국 사회의 전통은 원래의 성을 유지케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사회가 여성을 주체적인 존재로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피가 섞이지 않은 여성을 가족 안의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겨두었기때문이다. 부계 혈통주의에서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감히 따르지 '못한다' (p.25)

두 성별이 한집에 살 때 집을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쪽은 거의 여자다. 여자에게 집은 소유의 대상이기 이전에 관리의 대상이다. (p.136)

언제부터인가 우리가 살아갈 집을 고를때, 대부분 투자의 대상, 경제적 가치가 1순위가 되었다.

풍수지리는 집값이 얼마나 더 상승할 것인가에 포커스를 맞춘다.

하지만 정말 집이 주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보야야 하지 않을까?

그 집안에 사는 우리는 어떤 가치를 잃지 말아야 할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집의 의미, 그곳을 함께하는 가족과의 관계, 어떻게 인테리어를 하고 가구를 배치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의미, 고유함을 침해하지 않고 보호해 줄수 있는지에 대한 배려 등을 돌아보게 되었다.

잔잔하고 울림이 주는 책을 만난 것 같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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