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세자의 고백
이덕일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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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평안도 간 이유가 시원치 않은 것 빼곤 괜찮은 책...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명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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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 개정판 오리 이원익 그는 누구인가
함규진.이병서 지음 / 녹우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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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성주에서 4도체찰사를 하면서 임란을 막아낸 조선의 재상..중국어에 능통하고 부를 쌓을 수 있는 기회도 거부한 1m40cm작은 거인 42년간 정승을 지닌 조선 역사 최고의 스펙남.임경업을 후들겨 패면서 인조에 대한 경고와 충고를 한 강한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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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상점
리궈룽 지음, 이화승 옮김 / 소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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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에서 19세기 중반 ㅈ차 아편전쟁까지 중국 무역을 일군 광주 13행 이야기 그리고 개독 영국의 더러운 아편질에 대한 괜찮은 역사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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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발명
정광 지음 / 김영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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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자운(파스파 문자),고대 인도의 음운학 ,티벳트 문자,팔만대장경,불경 그리고 원나라 이후 명나라부터 달라진 증국발음을 정확히 말하기 위한 훈민정음에서 우리의 말을 표현하는 언문이 되기까지 적은 휼륭한 책. 발음기관을 상형하고 중성은 천 지 인으로 한 조선 왕조 세종 문종 세조 그리고 변음토착 문제및 한글 학습발음법을 창의한 정의공주 그리고 10여명의 불교 고승이 만든 언문.. 첨가로 훈민정음의 사상적으로 연구 방어한 언어천재 식숙주 성삼문 집현학자... 나랏말씀이 듕국과 달라의 이문장은 백성을 어여쁘 여긴게 아니라 한자와 발음을 일치시킨거라니....

 참고로 양놈 문화에 종속되어 새로운 사대(서양에 대한 사대)에 쩌든 요즘 인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지금 우리가 연경(燕京)을 옌징으로 표기하라고 요구받고


북경(北京)을 베이징으로 표기하라고 요구받는 것과 관련한


옛 우리의 뛰어난 언어학자들의 일갈을 여기 인용한다. (P378)


(동국정운 서문)​



(전략) "우리 동방은 안팍으로 산하가 스스로 한 구역이 되어


풍기(風氣)가 이미 중국과 다르거늘 호흡이 어찌 중국어음과 서로 부합하겠는가?



그런즉 어음이 중국과 다른 것은 이치가 그러하지만 


문자의 발음에 이르러서는 마땅히 중국의 발음과 서로 부합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 호흡이 입안에에서 돌아가는 사이에 가볍고 무거움과 닫히고 열리는 기틀이 


역시 우리말의 어음에 이끌리게 되어 한자음도 역시 이에 따라 변하게 된 것이다. ​


 


그 음은 비록 변하였지만 청탁과 사성은 옛 것과 같아야 하나


일찍이 책이 없어서 바른 음을 전하지 못하였다.​



용렬한 스승과 속된 선비들은 반절법을 모르고


유섭(紐攝 모음에 해당)의 요체에도 어두워



혹은 자체가 비슷하다고 하여 하나의 음으로 하거나


혹은 전대(前代)의 휘(諱)를 피하려고 다른 음을 빌리거나


혹은 두 자를 결합해서는 하나로 만들든지 하나를 둘로 한다.​



혹은 다른 자를 빌려 쓰기도 하고 점과 획을 더하거나 감하기도 한다.​


혹은 중국어의 한음(漢音)에 의하든지 혹은 속어를 따르기도 한다.​



이리하여 자모와 칠음,​ 청탁, 사성이 모두 변한다."




​요컨대 풍토가 달라 중국음과 우리음은 같을 수가 없는데


용렬한 스승과 선비들이 언어를 파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연경(燕京)을 옌징으로 적지 않고


연경으로 적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지명과 인명을 한자음으로 돌려 놓았으면 좋겠다.


이것이 한글 발명의 궁극적인 목표다.


[출처] 한글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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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이영훈 교수의 환상의 나라 1
이영훈 지음 / 백년동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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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에 대한 조선사회의 깊은 이해를 못한 서양역사학자의착각에서 유례한 통계치를 이용한 멍청한 기술이지만 노비의 소송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한 세종대왕의 행적은 신선한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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