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仁祖 1636 -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
유근표 지음 / 북루덴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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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은 갑자기 닥친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에 앞서 40여 년 전에는 임진왜란을 겪었고, 불과 그 10여 년 전에도 정묘호란을 겪었다. 정묘호란 이후, 청나라는 각종 경제적 요구는 물론, 명나라를 치는 데 협조하라며 수시로 조선을 압박했다. 이런 와중에도 인조 정권은 시종일관 국방이나 백성들의 곤궁한 삶을 외면하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 팽창에만 열을 올렸다." (p. 5)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국가의 지도층이 자신들의 권력을 확대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파벌을 나누고, 정쟁을 일삼는 행태를 아프고 안타깝게 지켜봐왔다. 또한, 역사도 국민의 진의에 귀 기울이지 않거나 혹은 고의로 묵살하면서 민생을 외면하고, 주변 정세와 국가안보에 조차 신경 쓰지 않음으로서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수많은 리더들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 본서 <인조 1636>에서 다루고 있는 조선의 16대왕 인조도 정권의 안위를 위해 국가안보를 희생시킨 대표적인 그릇된 리더, 혼군 (昏君)으로 거론된다. 지금까지 역사서를 비롯해 소설과 드라마와 영화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수많은 자료들이 인조 집권시기를 다뤘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논쟁을 다루기도 하고,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사건으로 꼽히는 삼전도의 굴욕과 조선 왕실 최대의 가족비극사이자 최초의 의문사로도 일컬어지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조명하기도 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인조 정권이 주변 상황을 냉철하게 파악하고 좀더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전쟁이었다. 그러나 인조 정권은 임진왜란 이후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는 눈을 감은 채 지나친 숭명배금과 자신들의 정권 유지에만 급급한 나머지 국방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p. 131)

 


<인조 1636>가 기존의 수많은 자료들과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발간된 자료들은 기왕에 알려진 이야기만을 다루거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료에 근거하지 않고 저자의 추정적 판단하에 자료를 만들었다면, 이 책은 <인조실록>, <승정원일기>, <만문노당> 등의 조, 청 양국의 1차 사료를 중심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1차 사료라 함은 동시대 또는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편지 자서전 사진 유물 등을 말한다. 1차 사료가 중요한 이유는 당시 역사적 현장에 실재했던 증인들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1차 사료를 기반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해석이 들어간 2차 사료는 1차사료에 비해 '사실 (fact)'에의 접근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 유근표는 <인조 1636>을 통해 '자신들만의 권력을 지키고 대국을 섬기기만 하면 백성은 어떻게 되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병자호란은 불가피한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인조반정과 뒤를 이은 이괄의 난,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거쳐 소현세자의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시간대순으로 면밀하게 분석하고 돌아보면서 무능한 지도자의 그릇된 인식과 판단이 이 모든 비극과 전쟁의 원인이며, 그 결과로 아픔을 견디고 삶을 살아내야 했던 최종 피해자는 백성들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혼군의 전쟁, 병자호란'이라는 책의 부제에 걸맞게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전 인조반정,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 등을 다루고 있고, 2부는 병자호란 중 인조를 비롯된 집권세력의 무능과 무책임한 행태들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3부는 병자호란 후 패배로 인해 고통 받는 백성들의 삶을 기술하고 있다.

 


'반정'이라 함은 실정을 하는 왕을 폐위시키고 새로 왕을 세우는 일을 말한다. , 왕이 무능하거나 포악하여 백성이 곤경에 빠졌을 때 행하는 무력적인 정치변동을 의미하는 것이다. 조선은 500여년의 역사 동안 두 번의 반정이 있었다. 바로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 그것인데, 바르게 되돌린다는 반정의 의미를 생각해볼 때, 이 두번의 반정이 역사를 바르게 되돌렸는지, 아니면 역사의 수레바퀴 자체를 거꾸로 되돌려 퇴보시켰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중종반정은 연산군의 난정(亂政)과 패륜을 바로잡는다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고, 후에 중종이 되는 진성대군이 반정의 주역도 아니었다. 하지만, 인조반정은 후에 인조가 되는 능양군이 반정이 주역이었고, 폐모살제(廢母殺弟), 배명금친, 과도한 궁궐공사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는 세가지 명분도 되돌아 생각해보면 석연치 않은 것이었다.

 


폐모살제를 내세우며 반정을 일으킨 인조는 후에 정권유지를 위해 자식인 소현세자 살해의혹과 세자빈을 살해하고 3명의 손자들 귀양을 보냈다. 또한, 배명금친을 이유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숭명반청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출범당시 명나라에게조차 정권을 인정받지 못했고, 이렇게 정권의 명분을 찾기 위한 행위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발발시켜 나라의 존폐에까지 몰아넣는 사태에 이르게 했다. 또한, 인조정권이 반정의 명분으로 과도한 궁궐공사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했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은 생각할 수록 기가 찰 노릇이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지 10개월 만에 반정 2등 공신이었던 이괄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는 이인거, 유효립, 이충경, 심기원 등으로 이어졌다. 이런 내분에도 모자라 정묘호란과 병자호란까지 겪은 민중들의 삶은 단지 과도한 궁궐공사에 따른 피폐한 정도에 비할 수 있을까? 하물며 인조는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백성과 도성을 버리고 떠났다.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숨어들었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십니까!” 하면서 울부짖는 자가 만 명을 헤아렸다." (p. 224)

 


흔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이는 대부분의 전쟁사가 승리자의 입장에서 생략과 왜곡을 포함한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개연성 있는 말이다. 승자의 입장에서 자신들의 명분을 만들고 선행을 열거하며 찬양하는 한편 패자의 잘못을 드러내어 꾸짖고, 패자의 선행과 행동의 명분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는 수많은 역사서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은 조금 더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이는 '승자''승리'의 기준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승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전쟁이나 정쟁에서 승리한 일방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당대의 최고 권력층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근현대 이전 과거의 역사는 권력자의 역사였다. 이는 역사서술의 중심이 최고 지도층 등의 권력자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권력자의 소유물이 아니다. 절대 다수에 해당하는 민중들을 배제시킨 것은 진정한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인조 1636>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주목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과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도 있다역사의 주역은 왕이나 최대 권력층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족과 국가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민중들의 삶까지 총체적으로 고려할 때 역사적 진실의 조각을 맞춰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조 1636>1차 사료를 중심으로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근왕령 발동으로 죽어간 수많은 근왕병들, 삼남에서 몰려온 군사들, 의병들, 지휘관들의 삶을 조명한다. , 전쟁에서 패배한 후 청으로 잡혀간 피로인들의 절절한 삶과 고향을 잊지 못하고 탈출한 안추원과 안단의 사례를 빼놓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특히, 근왕군으로 참전한 윤충우가 쌍령전투를 앞두고 부안에게 남긴 편지는 당시의 급박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해주며 읽는 이들의 심금을 울린다.

 


적의 세력이 시각을 다툴 만큼 급박하니, 내가 살아서 돌아간다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구려! 비록 살아서는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시신이 나뒹구는 산야에서 어떻게 나의 시신을 찾을 수 있겠소. 이 편지 띄운 날을 내가 죽은 날로 삼으시오만, 다만 어린 아들이 마음에 걸리는구려. 어미와 아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살 곳을 잃는 슬픔만 겪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소. 편지를 써 놓고 보니 슬프고도 망연하구려!” (163711일 쌍령에서) (p. 167)

 


이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힘은 민중에게 있으며이는 핍박과 분열갈등이 빚어낸 시대의 소음들을 꿋꿋이 버텨내며 역사는 계속된다는 사실을 후손들에게 일깨워준다. 역사는 지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면서 떠오르는 하나의 그림이 있었다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그림 속에서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광장 중앙에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넬슨이 승선했던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반면 테메레르호는 운수업자에게 넘겨져 해체되는 운명을 맞는다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 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수많은 윤충우와 안추원, 안단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아니 그 이전에 역사의 페이지에 그들의 몫도 있을까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그들을 다시 역사의 테두리 안쪽으로 끌어들이고 기억해주어야 한다그들의 정신과 투쟁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또한 그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수많은 '우리'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인조1636리뷰대회, #인조1636, #유근표, #북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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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행자 - 돈·시간·운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는 7단계 인생 공략집
자청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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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중 자기계발 만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가 또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기계발서를 선호하지 않는 쪽이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는 독자들의 대다수가 수긍할 만큼 좋은 철학적 지침이나 실천 방법론들이 담겨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책을 읽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라는 것 등이다. 하나 같이 삶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좋은 내용들만 가득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삶이 변화된 케이스를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 처럼 힘든 것이 현실이다. 왜 그럴까? 내가 자기계발서를 선호하지 않게 된 것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

 


사실 성공의 방법은 여타의 자기계발서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 보다 심플하고,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성공방정식 중에서 내 상황과 환경에 맞는 나만의 성공루틴을 찾아서 그것을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동안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한 숨겨진 비밀이 아니고, 대단한 통찰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이들이 삶을 살아오며 직간접적으로 깨닫고 느낀 체험적 지식들인 경우가 많다. 이 처럼 대다수가 수긍하고, 이미 삶에서 체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게다가 심플하기까지 한 성공의 법칙들을 우리는 왜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이 같은 의문에 대해서 내 나름대로 찾아 낸 답은 세 가지다. 먼저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켜서 종국적으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고, 행복한 삶에 다가가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찾는다. 이를 위한 특별한 비결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며 자기계발서를 찾는 것이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성공의 법칙은 이미 우리에게 공개되어 있는 평범한 아포리즘일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런 기대를 하며 자기계발서를 찾는 이들은 자신에게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뻔한 지식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실망을 하고 건질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대부분의 자기계발서가 삶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라고 생각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기피하고 현실의 삶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 인간은 자신의 삶의 방향이나 속도에 영향을 주려고 하는 외부작용에 저항하고 기존의 삶을 유지하고, 익숙함과 편안함 속에 안주하려는 '관성 (Inertia)'이 있는 것이다. 변화된 삶을 애타게 갈망하지만, 이를 위해 지루한 성공루틴을 오랜 세월에 걸쳐 유지하면서 현재의 삶을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렇게 변화된 삶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어 보지만, 결국 이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수많은 기회비용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기존의 익숙한 삶, 정체된 삶으로 회귀한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각자 다른 삶에 대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저마다 주어진 다른 환경 하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이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진다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각자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주어진 삶의 조건이 다른 개인들의 삶을 변화시킬 만능의 솔루션이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존재한다해도 자기계발서에서 그것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이 리뷰를 쓴 필자는 자기계발서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품고 있는 여러가지 의문에도 불구하고 왜 자기계발서인 <역행자>를 선택했을까? 이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역행자>를 선택했고 독서 후 이렇게 리뷰까지 남기고 있는지 그 이유를 밝혀야겠다.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절대 이 책을 읽지 마라! 죽을때까지 똑같이 살고 싶다면..."이라는 이 책의 독특한 마케팅 문구 때문이었다. 저자 자청은 마케팅 전문가답게 자기계발서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조차 호기심을 유발할 정도의 스토리텔링과 마케팅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이 없었다면 애초에 자기계발서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거부했던 내가 이 책을 읽게 되는 일 자체가 없었을 것이다.

 


저자 자청은 자신은 반월공단에 취직해 월 200만원을 받으며 게임만 하는 삶을 꿈꾸던 오타쿠 흙수저였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현재의 자신은 이 같은 운명과 본능의 굴레를 극복하고 경제적 자유와 행복한 삶을 쟁취한 역행자이며, 라이프 해커라고 말한다. 그는 무자본으로 다수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키워 낸 창업가이고, 이에 대한 결과로 노동을 하지 않아도 월 1억의 자동 수익을 실현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하고 있다. 궁금하지 않은가? 가난한 가정환경과 비호감의 외모, 바닥을 기는 학업성적... 최악의 조건 속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하루하루 게임으로 현실도피를 했던 20대 초반의 사회부적응자는 어떻게 30대 초반의 나이로 연봉 10억의 8개 회사의 최고 책임자가 될 수 있었을까?

 


저자 자청은 이 같은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신이 '역행자'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역행자'의 개념은 이런 것이다. 그는 인간 중 95퍼센트는 타고난 유전자와 본성에 치우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이렇게 본성에 치우쳐 사는 사람들은 정해진 운명과 본성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순리자'. 그러나 나머지 5 퍼센트에 속하는 '역행자'들은 타고난 유전자와 본성을 거스르고 극복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이러한 삶의 방식으로 인해 경제적 자유와 행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저자 자청은 자신이 역행자로 살아온 10년 동안의 지식과 노하우들을 본서 <역행자>에 풀어내고 있다. 이것이 바로 '역행자의 7단계 모델'이다.

 


'역행자의 7단계 모델'은 저자 자청이 자신 있게 공개하는 인생 레벨업 치트키이다.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단계 자의식 해체 : 잘못된 자의식을 인지하고 해체한다. 무의식에 균열을 내고 잠재된 능력을 깨우는 단계이다.

2단계 정체성 만들기 : 스스로 정체성을 만들 수 있도록 고찰한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해 통찰하는 단계이다.

3단계 유전자 오작동 : 평판 및 새로운 경험에 대한 거부나 오작동을 극복한다. 심리적 함정을 극복하는 단계이다.

4단계 뇌 자동화 : 지속적으로 뇌를 자극하여 뇌를 '최적화'하는 단계이다. 이와 관련하여 저자는 2년간 매일 2시간씩 책을 읽고 글을 쓰는 '22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5단계 역행자의 지식 :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한 학습과 훈련을 하고, 이를 실제로 실행하는 단계이다.

6단계 경제적 자유를 얻는 구체적 루트 : 상대를 편하게 해주거나 행복하게 해주는 구체적 방법을 발굴하여 사업화를 하는 단계이다.

7단계 역행자의 쳇바퀴 : 실패를 통해 실수나 과오를 되돌아 보고 더 나은 방안에 대해 탐구하는 단계이다.

 


이것이 바로 '역행자''역행자'가 되기 위한 7단계 모델이다. 물론 책에는 각각의 단계별로 현실에서 발생했던 케이스와 구체적 실천 방법론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간략히 축약한 것이다.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나는 자기계발서를 선호하지 않았던 사람이고, 오히려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기피했던 사람이다. 자기계발서 혐오자가 본 <역행자>는 어땠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역행자>가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킬 동력이 잠재되어 있는 훌륭한 자기계발서이고, 내 자신에게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역행자>를 읽고 난 내 솔직한 소회이다.

 


왜 그렇게 생각 하냐고? 그 이유는 앞서 내가 자기계발서가 독자들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이유로 언급한 3가지와 관련이 있다. 내가 <역행자>라는 자기계발서에 호기심을 느끼고 읽어보기로 결정하면서 기대한 것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특별한 인생 성공 비결이 아니었다. 또한, 저마다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개인들을 만족시키는 만능의 행복 솔루션이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단지 내가 기대했던 것은 누군가가 인생을 변화시킨 방법들 중에서 내 삶에 적용시키고, 나만의 성공 루틴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하나의 단서였고, 이를 통해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내 본능과 관성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것이었다.

 


<역행자>를 접하고 자연스럽게 나는 역행자의 7단계 모델을 내 현실의 삶에 적용해보았다. 자의식 해체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진정한 ''와 대화를 시도했고, 내가 원하고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그러면서 마주한 결론은 오랜시간 현실의 벽 앞에 숨겨왔던 '작가'라는 꿈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읽고 쓰는 삶'은 내 오랜 꿈이었다. <역행자>를 읽은 것이 계기가 되어 유전자 오작동을 극복하고 내 본연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게 되었고 나는 용기 내어 공모전에 도전하게 되었다. 소설을 쓰고 싶었지만 짬을 내어 쓴 동화로서 먼저 도전해보았다. <역행자>를 만나기 전 '22전략'은 몰랐었지만 그 동안 취미로 행한 독서 경험들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작가라는 꿈에 도전하기 위하여 뇌 자동화와 나만의 역행자의 지식 노하우를 쌓은 훈련을 계속해나가고자 한다. <역행자>의 리뷰를 남기는 것도 그 과정 중 하나이다.

 


<역행자>를 읽고 내용을 정리하며 나만의 성공 방정식이자 인생의 법칙으로 변환해 보았다. 첫번째 인생의 법칙은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대화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의식 해체와 정체성 만들기와 관련된 것이다. 두 번째 인생의 법칙은 실행에 앞서 리스크에 대한 통찰과 결단을 거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전자 오작동과 뇌자동화 역행자의 지식과 관련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인생의 법칙은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지식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누구도 알지 못한 성공비결은 존재하지 않고, 성공 방정식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 속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볼 때 지식을 습득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습득한 지식을 현실에 적용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먼저 실행하는 것 (Doing First)'을 내 삶의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삶의 모토로 정하고자 한다. 어떤가? 당신도 당신만의 성공법칙을 만들고 꿈꾸던 삶으로 도전해보고 싶지 않은가? <역행자>를 읽는 것은 그 길로 가는 훌륭한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역행자리뷰대회, #역행자, #인생역행, #자청, #웅진지식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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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애착 비비언 고닉 선집 1
비비언 고닉 지음, 노지양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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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의 전범이자 고전으로 일컬어지는 <사나운 애착>에서 비비언 고닉은 모녀(母女)간의 관계에 투영된 삶에 대한 진실을 생생하게 포착해낸다. 엄마와 딸의 관계를 '애정 (affection)'이 아닌 애착 (attachment)’으로 표현한 것 그리고 또 이를 사나운 (fierce)’이라는 형용사가 수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착'은 대상에 대한 애정에서 한발 더 나아가 끈끈하고 끈즐긴 감정적 유대와 소유와 집착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만큼 모녀라는 특수한 관계에서 비롯된 애증이 섞인 복잡미묘한 감정과 욕망들을 저자는 기발한 전개로 풀어내고 있다. <사나운 애착>은 어머니와 뉴욕 거리를 산책하며 사소한 말싸움을 하다가, 돌연 과거를 회상하며 엄마를 포함한 주변 여성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저자는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 유대계 이민 가정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저소득의 노동자 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브롱크스에서 다양한 이웃들과 부대끼며 성장했다. 그러한 그녀의 삶의 중심에는 이른바 '사나운 애착'으로 엃힌 어머니가 있었고, 고닉은 성장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본 서에서 어머니와의 대화나 서사를 통해 진솔하게 털어 놓는다. 이러한 과거 어느 순간의 감정과 욕망들은 일정시점의 시공간을 포착해내는 사진처럼 <사나운 애착>에 잘 스크랩되어 있다.

 

"삶이라는 건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들을 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 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 비비언 고닉 -

 

브레히트는 헤겔의 진리는 구체적이다. (Die Wahrheit ist konkret.)” 라는 명제를 즐겨 인용했다. 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끈다때문에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이는 에세이나 자전적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명제다. 생동하는 저 세계를 구체적으로 겪어내고 구현해내야 한다. 구체적이지 않고서는 독자의 마음을 관통할 수 없다. 비비언 고닉도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지침서 <상황과 이야기(The Situation and the Story)>에서 자서전의 주제는 항상 자기 인식이 우선이지만 실체가 없는 자기 인식이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좋은 글은 실제로 경험하고 목격한 것들을 살아 있는 어휘로 표현되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 자전적 에세이는 자신의 경험과 체험, 생각을 솔직하게 담아서 가장 쉽고 명확한 어휘와 문장으로 누구나 읽고 싶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사나운 애착>이 자전적 글쓰기의 고전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화자는 절대적으로 구체적 진실을 이야기 해야 하며, 불명확하게 또는 모호하게 두리뭉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속여서는 안된다는 저자 비비언 고닉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이다.

 

"내가 속한 사람은 엄마였다. 엄마와 함께 있으면 여러 가지 확실한 문제가 있다. 숨이 막힌다. 그래도 안전하다." (p. 110)

 

그들 모녀는 삶을 함께 하며 같이 살아남았고, 모든 순간은 아니었다 해도 서로의 곁을 지켰으며, 그렇게 그들만 아는 동지애를 키워냈다. 그들은 끈끈하게 얽힌 혈육으로서 서로를 단단히 지지하지만, 함께 있으면 숨이 막히고 천 근 같은 공허가 무거운 짐짝처럼 매달려 두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내리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무기력과 절망, 분노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로 인해 위안을 얻는다. 저자는 책에서 히로시마 원폭이 터졌을때 기모노를 입고 있던 사람들의 경우 기모노는 열에 녹아 사라졌지만 기모노의 무늬가 피부에 인쇄된 것처럼 남아 있던 사례를 언급한다. 어쩌면 모녀가 삶 속에서 겪은 일들은 연기처럼 사라졌지만, 그들 삶의 빛났던 순간과 깊고 어둡고 무감각한 수동성은 그들 모녀의 피부에 고스란히 새겨져버린 게 아닐까? 두 모녀는 평생 서로의 생활 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면서 놓친 그 모든 것과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인생을 그저 허망하게 응시한다. 희망과 절망, 연민과 분노 등이 뒤섞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로 묶인 그들 모녀는 삶을 살아내며 결국 서로 간의 적절한 거리와 각자의 공간을 확보하고, 진정한 독립된 자아로 성장해간다. 이는 그들의, 그들만이 가능한 사나운 애착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인생이 연기처럼 사라지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제대로 살지도 않았는데. 세월만 가버려." (p. 301)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런 순간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돌아보면 지극히 평범한 사물과 풍경이 기적이었고 사건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 일상의 소박한 순간들로 채워진 하루 하루가 존재하였기에 쓸모와 필요만으로 이루어진 '기능적 생활'을 벗어나 여유를 풍경으로 두는 ''이 가능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인간이란 각자가 고유한 존재 방식을 가졌지만 서로가 가진 중력으로 인해 영향을 받고 기쁨과 고통을 나눈다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읽으며, 삶이란 저마다 쌓아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그들 모녀간에 존재했던 '사나운 애착' 처럼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눈다.

 

"얘들아, 감정이 모든 걸 좌우한단다. 무엇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인생이 풍족할 수도 빈곤할 수도 있어. 감정을 고양시키면 큰 재산이 되기도 하고, 그게 싹 사라져버리면 길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인생이 되기도 하는 거야." (p. 44)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삶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모든 것을 상실한 듯 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우리는 세상에 관해또 삶에 대해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언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중요한 것은 무모할지라도 우리의 생각과 언어로서 세상을 이해하고지속적으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가 아닐까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엄마의 인생 저장소야, 알잖아?" (p. 305)

 

현재의 삶은 지나온 삶의 이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작가의 지나온 삶에 관한 기록을 읽으며현재까지  삶에 존재했던 행복했던 기억아픈 추억낯설고도 친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우리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간다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하지만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고 객관화된 진실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사실 (事實)' 보다 '사연 (事緣)'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라쇼몽 (羅生門)의 대사처럼 진실이란 어차피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기억은 현재의 삶 안에서 고동치는 두번째 심장이자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이다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마치 같은 역사를 겪어내며, 서로의 삶의 동반자인 동시에 증인이기도 '사나운 애착'으로 묶인 이들 모녀 관계처럼 말이다.

 

"이제 더 이상의 '항상'은 없다. 정해져 있던 패턴이 서서히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이 어그러짐의 과정 속에 나름의 즐거움도 있고 놀라움도 있다." (p. 301)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정글과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그것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우리가 그토록 잡고자 했던 불분명한 현실의 경계를 너머 표류하고 있는 진실의 조각은 이것 아닐까? 과거와 현실을 딛고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진실 말이다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의 흐름에 떠밀려가면서도 저마다의 속도와 방향으로 불완전한 궤적이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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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리커버 에디션)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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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순간이 있을 뿐’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깊이 공감하며,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을 걸어온 또 걸어갈 우리 모두의 앞날에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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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
김미월 외 지음 / 다람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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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여성 그리고 엄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여섯 작가들의 분투기. 육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과 동시에 괴로움을 수반하지만 그들은 이 특별한 경험을 통해 부모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 성숙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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