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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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켄리우의 <종이 동물원>을 처음 접했을때의 감동과 놀라움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흔히 SF (science Fiction)가 그리는 미래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시대와 동떨어진, 혁신적이고 잠재적인 결과를 탐구하여 어쩌면 미래의 언젠가 도달할지도 모를 공상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SF가 그리는 미래의 어느 시점은 그 아득한 시간의 간극이 걷어내고 보면 또 다른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다. 언젠가 우리는 현재와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한 누군가와, 또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와 공존하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세월의 흔적을 걷어내고 바라보면 저마다가 직면한세상에 맞서 살아가는 똑같은 인간만이 남는 것이다. 환경이 달라지더라도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나가는 삶의 원형은 현재의 삶이나 미래의 삶이나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내가 켄리우의 단편집 <종이 동물원>을 읽고 느낀 것은 이것이었다. SF가 이렇게 따뜻하고 감동적일 수 있다니...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피치 못할 운명과 마주쳤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적응하는 것뿐입니다."

- 종이 동물원 中 -

<종이 동물원>에서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을 때 켄 리우의 소설집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의 출간 소식이 들려와서 너무 기뼜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켄 리우의 '한국판 오리지널' SF 단편집이다. '한국판 오리지널'이라 칭한 이유는 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함께 묶인 적이 없는 켄리우 작가의 미출간 단편 중 12편을 엄선하여 엮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데뷔작인 <카르타고의 장미>와 스페인 이그노투스 상 수상작 <사랑의 알고리즘>, 한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알려진 <매듭 묶기>, 저자가 특별히 아끼는 시리즈라고 밝힌 <싱귤래리티 3부작> 등 총 12편의 작품이 본 단편집에 한데 묶였다. 작품들은 모두 시간과 공간, 차원을 초월하여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다.

12가지 이야기 중 어느 하나 흥미롭지 않는 이야기가 없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가고 흥미로웠던 단편은 <내 어머니의 기억>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단편집 <종이 동물원>에서 표제작인 '종이 동물원'을 가장 감동 깊게 읽었었다. <내 어머니의 기억>은 단편집 중 가장 마지막에 수록된 짧은 단편이지만 제목에서부터 '종이 동물원'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읽었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내 어머니의 기억>을 읽으며 예전 알쓸신잡을 보면서 유시민 작가와 정재승 박사의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삶에 관한 토론이 떠올랐다. 불치병에 걸린 인간이 치료를 위해 냉동인간이 되어 자신의 가족을 비롯해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먼 미래의 어느 날 깨어나 살아가는 것에 관한 토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랑하는 딸이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그와 비슷한 선택을 한 어머니에게 마음이 갔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에서 작가는 시공간이 다른 12개의 독자적 세계를 제시하며, 우리를 인간으로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작가의 말에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제가 쓴 책을 펼쳐 주신 한국의 모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의 이야기가 외국어로 번역되어 머나먼 나라에 사는 수많은 독자들의 손에서 또 다른 삶을 누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 언어, 문화를 넘어 쓰는 이와 읽는 이가 대화를 나눌 때 우리는 비로서 가장 인간다워진다고. 저는 느낍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짓는 종(種)이니까요."

그의 말처럼 인간은 유일하게 "이야기를 짓는 종(種)"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통해 서로 소동하고 그로 인해 가장 인간다워질 수 있는 것 아닐까? 변하지 않은 사실은 켄리우 그의 소설은 여전히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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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넌 도일 - 셜록 홈스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 클래식 클라우드 20
이다혜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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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클라우드 (Classic Cloud)를 알게 된 건 2018년 서울 국제도서전 아르테 (arte) 부스에 전시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발견하면서부터 였다. 207월 현재는 문학 (셰익스피어, 헤밍웨이, 피츠 제럴드 등), 철학 (니체, 아리스토텔레스 등), 미술 (클림트, 뭉크, 모네 등), 음악 (푸치니, 모차르트, 베토벤) 등 시리즈 중 21권이 출간된 상태지만, 그 당시 전시된 도서는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1, 2, 3, 셰익스피어, 니체, 클림트였다. 그 당시 나의 선택은 클래식 클라우드의 첫 걸음인 1권 셰익스피어였다.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거장을 논하는 시리즈의 상징적인 1권을 차지하는데 부족함이 없어 보였고, 또한 향후 시리즈의 성공을 가늠해보는데 있어서도 적합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클래식 클라우드는 내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독특한 컨셉을 가진 시리즈다. ,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100인이 문학, 미술, 철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일대일 (1 on 1)로 맵핑되어 거장들이 살아온 삶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을 정리한 일종의 기행집이다. 거장들이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면밀하게 되돌아보는 것이기 때문에 시리즈의 기획에서 개발까지 5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거장의 삶과 작품에 대해 전문적 식견을 쌓은 평론가, 작가, 학자들의 안내를 받으며 한 거장의 삶을 깊이 파고드는 '책으로 하는 여행'이라는 컨셉은 거장의 작품에 매료된 사람들은 물론 문학기행 등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현재 여름휴가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사태로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없는 대부분의 독자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처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접하게 된 후에 나는 한 권, 한 권 시리즈를 구성하는 도서들이 출간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거장의 삶에 대해서 관련 전문가의 체계적인 큐레이션을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며 향후에도 시리즈의 완간 목표인 100권까지 무사히 출간되길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그 중에서도 내가 유독 많은 기대를 가지고 출간을 손꼽아 기다려온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가 있다. 그 도서는 바로 본 리뷰의 대상인 <코넌도일>이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 기획의 신선함과 앞으로 출간된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리뷰를 남긴 적이 있었는데, 그 리뷰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도서로 언급했던 책이 이다혜 작가의 <코넌 도일>이었다. 그게 벌써 1년도 더 된 일이고, 시리즈의 새로운 도서 출간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시리즈의 20권에 이르러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책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개가 무량하다. (기쁜 마음에 시리즈의 다른 도서와는 달리 3권이나 소장하게 되었다. 이다혜 작가님의 사인본이 포함되어 있어 더 기쁘다.)



 

혹시 코넌도일이란 이름이 생소하게 느껴지는가? 그러한 생각은 본 도서의 부제를 보면 바로 불식될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코넌도일 : 셜록 홈즈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이다.

 

추리소설의 독자는 작가보다 주인공인 탐정 혹은 형사의 이름을 표지에서 가장 먼저 찾아내기 때문에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작가보다 탐정이 우위에 서게 된다. 홈즈가 전설을 쌓아간 방식 역시 그렇다. 그 결과 피조물은 창조자보다 더욱 거대해지며, 독자들은 원하는 피조물을 계속해서 보지 못할 경우 창조자를 응징하려고 한다. (p. 130)

 

영문학사에서 아니 세계문학사에서 대중에게 셜록 홈스를 능가하는 즐거움과 파급력을 준 캐릭터가 있을까? 탄생 후 백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읽히고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심지어 재창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셜록 홈스는 이제 시대를 관통하는 불멸의 영웅이 되었다. 본 도서 <코넌도일>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셜록 홈스는 최근에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재탄생되었다. 드라마의 인기는 셜록 홈스 시리즈는 물론 홈스를 연기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홈스는 그 옛날 빅토리아 시대의 구닥다리 영웅이 아니라 동시대의 인물로 살아 움직이게 된 것이다.

 

SF 소설 작가 아서 C. 클라크는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라고 했다. (...) 그가 만들어낸 불사의 마법은, 바로 그의 창조물이 증명해냈다. 죽지도 잊히지도 않는, 1885년 즈음의 런던 베이커스트리트 221B번지의 하숙집에 머무는 홈스와 그의 충실한 벗 왓슨이. (p. 226)

 

이다혜 작가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드라마화될 때, 원작이 쓰인 시대를 재현하는 시대극이 되는 경향이 있다면, 셜록 홈스 시리즈는 미국 드라마 <엘리멘트리>와 영국 드라마 <셜록>이 잘 보여주었듯 핵심적인 요소만 잘 유지하면 누구나 이 이야기의 고유성을 받아들일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작가가 지적한 그 핵심 요소란 홈스와 왓슨이다. 상술하자면 상반되나 함께 있을 때 상호 보완적인 성격과 무례할 정도로 초면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아맞히는 홈스의 통찰력 등이라 할 수 있다.

 

셜록 홈스 시리즈의 성공은 이다혜 작가가 언급했듯이 셜록 홈스와 왓슨이라는 잘 짜여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것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풀어낸 재미있는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다. 코넌도일은 좋은 글의 세 가지 조건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재미있을 것, 영리할 것." (p. 130)

 

과학수사라는 개념정립이 되어있지 않은 시절, 디테일한 관찰력과 통찰력을 가지고 영리하게 수사를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대중들이 쉽게 관심을 가지고 이해할 수 있는 주제로 재미있는 스토리를 구성해낸 도일은 그가 언급한 좋은 글의 세 가지 조건으로 셜록 홈스 시리즈를 그조차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큰 성공을 창출해내었다. 하지만 이러한 어마어마한 성공과 셜록 홈스에 대한 대중들이 넘치는 관심은 작가 도일에게 그가 만들어낸 전설적인 피조물을 그 스스로 없애기로 결심한 동기로 작용한다. 하지만 홈스가 가지고 있는 시대를 뛰어넘는 불멸의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탓일까? 본 도서 <코넌 도일>을 읽기 전까지 셜록키언을 자처하는 나조차도 홈스가 세상에 나타나 그 빛을 발한 순간이 사실 그렇게 길지 않았다는 걸 미처 알지 못했다.

 

"그가 홈스를 해치우기로 결심한 시점이 얼마나 빠른지 돌이켜보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10년이나 20년 정도 홈스의 인기에 시달린 끝에 탐정 살해를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 홈스는 시리즈가 되고 고작 3년을 살았다." (p. 170)

 

또한, 책에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코넌 도일의 안타까운 말년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불가능한 것들을 배제하면,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 사실만 남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것' (When you have eliminated the impossible, whatever remains, however improbable, must be the truth.)이라는 말처럼 과학으로 무장한 홈스를 창조해내고 그 자신도 의사였던 도일이 말년에 심령주의에 빠졌던 사실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것들을 배제하면,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 사실만 남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말은 과학적 추리의 근간이 될 수도 있지만, 불가능한 것들을 배제하고 추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면 비과학적인 것들을 맹신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다혜 작가의 지적에 동감한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나도 감사하고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사실은 심령주의에 심취했던 말년의 도일이 셜록 홈스라는 자신의 피조물을 심령술에 대한 전도사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일은 셜록 홈스 시리즈의 마지막 책인 <셜록 홈스의 사건집>에서 자신의 피조물인 홈스에게, 그리고 홈스를 아끼는 수많은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홈즈의 귀환이 근심스러운 인생사를 잊는다든가 아니면 생각을 전환하여 삶에 활력을 얻는다든가 하는, 낭만이라는 요정들의 왕국에서나 가능한 형태로 이루어졌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본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코난도일>편을 쓴 아다혜 작가는 이보다 더 적절한 작별의 인사로 홈스의 마지막 말을 택했다.

 

왓슨, 그 사건을 문서철에 잘 끼워놓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테니까.” (p. 234)


이보다 더 적절한 작별인사가 있을까? 세상을 떠나기 전 도일은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는 수없이 모험을 했다. 이제 가장 크고 멋진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코넌 도일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또 작가로서 수많은 도전을 하였고, 모험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한 코넌 도일과 그 결과로서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셜록 홈스라는 불멸, 불사의 영웅에게 이 보다 더 적절한 찬사가 있을수 있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셜록키언을 자처하는 나는 리뷰를 마치며 나만의 찬사와 작별인사를 선택해보고자 한다. 그렇게 해야만 내 인생의 특정시기의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셜록 홈스 시리즈에 대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고, 또 셜록키언을 자처하는 수많은 팬들 앞에서 코넌 도일과 셜록 홈스라는 중압감을 이겨내며 훌륭한 책을 만들어낸 이다혜 작가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수많은 만남과 이별의 순간을 만나게 되지만 유독 슬픔과 아쉬움의 여운이 남는 헤어짐이 있다. 하지만 시대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불멸의 존재로서 새로운 형태로 재탄생될 또 다른 홈스를 기다리며 아쉬움을 달랜다. 내가 선택한 작별의 말은 이것이다.

 

"감성은 지는 쪽에서 발견되는 화학적 결함이야. (Sentiment is a chemical defect found on the losing side.)"- Sherlock season2 <episode 1>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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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넌 도일 - 셜록 홈스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 클래식 클라우드 20
이다혜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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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슨, 그 사건을 문서철에 잘 끼워놓게.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테니까.” 이보다 더 적절한 작별인사가 있을까? 세상을 떠나기 전 나는 수없이 모험을 했고 이제 가장 크고 멋진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코넌도일, 그리고 그가 세상에 남기고 간 불멸의 캐릭터에 어울리는 최고의 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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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 효과로도 불리는 ‘제노비스 효과 (Genovese effect)’는 사건에 대한 목격자가 많을수록 책임감이 분산되어 개인이느끼는 책임에 대한 부담이 적어져, 피해자를 도와주지 않고 방관하게 된다는 심리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제노비스 효과’라는 명칭은 1964년 ‘키티 제노비스(Kitty Genovese) 사건’에서 비롯됐다. 뉴욕 퀸즈에 거주하던 키티 제노비스가 자신의 아파트 근처에서 칼을 든 강간범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38명의 살인 목격자 중 아무도 경찰을부르지 않았다 (Thirty-Eight Who Saw Murder Didn’t Call the Police.)”라는 헤드라인을 낸 <뉴욕 타임스>의 기사에따르면 제노비스는 세 차례나 칼에 찔렸다. 새벽 3시15분, 첫 비명을 들은 아파트 주민들은 지켜만 봤다. 목격자 중 누군가가 그만하라고 소리치자 범인은 도망쳤다. 쓰러진 제노비스를 아무도 돕지 않자 범인은 돌아와 피해자를 또 찔렀다. 비명 소리에 아파트 창문들의 불이 켜지자 범인은 다시 도망갔다. 제노비스가 힘겹게 아파트 안쪽으로 기어가는 순간 범인은 또 다시 나타나 한번 더 찌르고 몹쓸 짓까지 저질렀다. 사건을 목격한 사람은 38명이었지만 누구도 피해자를 돕지 않았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제노비스는 이미 숨져 있었다.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사건의 실상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세 차례 폭행이 35분간 이어지는 동안 피해자를구조하지 않은 현실에 ‘냉혹한 도시’, ‘사라진 시민정신’, ‘인간성의 소멸’ 등의 후속 보도가 잇따랐다. 보도에 따르면 범인이 사라졌을 때 38명의 목격자 중 어느 누구라도 그녀를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면 그녀는 살 수 있었다. 사건에 대한 보도의 파급효과가 커짐에 따라 ‘제노비스 신드롬 (방관자 효과)’이라는 새로운 심리학 용어가 생겨났다. 제노비스 사건은 ‘다원적 무지 이론’과 함께 아직도 범죄심리학의 주요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제노비스 신드롬 (방관자 효과)’는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자의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도와줄 확률은 낮아지고,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더 길어진다는 의미를 담은 용어다. 이는 목격자가 많다보니, 자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도움을 주겠지 하는 심리적 요인 때문인데, 이렇게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가리켜 심리용어로 ‘책임분산’이라고 한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제노비스 사건’은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긴급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도움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단순히 개인의 성격적인 측면으로 해석하기보다 사회적 상황 요인을 고려해 해석해야 함을 시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제노비스 사건에는 기막힌 반전이 숨어 있었다. 사건에 대한 충격으로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던 피해자의 남동생이 끈질긴 진실 추적 결과 당시 사건의 실제 목격자는 6명이었고 이중 2명이 경찰에 신고했다는 사실을 2007년에 밝혀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2016년이 되어서야 오보를 인정하는 사과 기사를 냈다. 정작 당시 오보를 낸 당사자였던 사건 데스크는 연이어 제기되는 의혹을 부인한 채 편집국장·칼럼니스트 등으로 승승장구하다 오보가 완전히 드러나기 직전인 2006년 사망했다. 사건의 범인도 2016년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어쩌면 ‘제노비스 사건’의 진정한 시사점은 사회나 주변 상황 요인이 방관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방관은 그 자체로 구조적인 악을 창출해낸다는 것 아닐까? 애초에 38명의 방관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실제 사건의 목격자는 38명이 아닌 6명이었고 이들 중 2명이 경찰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거대언론들은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자극적인 기사를 내고보도와 보도로 인한 파급효과에 대한 책임에 대해 외면했다. 당시 특종 욕심에 눈이 먼 기자는 확인되지 않은 경찰의 이야기를 기사화하였고, 사건 한달 후 경찰이 목격자는 6명이었다고 최종수사결과를 발표했지만 뉴욕 타임스는 정정기사 조차 내지 않았다. 제노비스 사건의 방관자는 누구였을까?

임가비 작가의 <혐오스러운 방관자>를 읽으며 제목의 ‘혐오스러운’이라는 수식어에 대해 생각했다. 소설에서 선미는 3번의 방관을 한다. 학창시절 왕따 피해자인 친구 ‘민수’를 외면했던 것, 성형외과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진료 중 환자들을 성폭력의 제물로 삼았던 의사를 방관했던 것, 살인범의 사전 범행을 목격했음에도 눈감았던 것이 그것이다. 선미가 행한 3번의 방관에서 선미는 사건에 대한 거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학창시절에는 ‘민수’의 처지를 이해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며, 성형외과에서는 유일한 목격자는 아니지만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몇 안되는 목격자였고, 공익제보를 한 간호조무사에 의해 사건이 수면위로 드러난 이후에도 자신의 일상에 피해를 준 공익제보자를 원망한다.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마지막 사건에서도 절실하게 도움을 구하는 피해자를 외면하고 만다. 아마도 작가는 상황적 요인에 의해서가 아닌 진실 앞에 눈을 감고 책임을 외면하는 ‘제노비스 사건’의 진정한 방관자를 염두에 두고 ‘혐오스러운’ 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았을까? 


브릿G 작품소개 <혐오스러운 방관자>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262588&novel_post_id=11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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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2020년 프로야구의 시계도 한동안 멈춰있었지만 한국프로야구는 지난 5월 5일 무관중으로 개막하였고, 일본과 미국 리그도 개막이 가시화되고 있어서 야구팬으로서는 참 반가운 요즘이다. 엄성용 작가의 <크리스 데이비스처럼>은 프로야구가 개막을 맞아 브릿G 야구 소설을 모아놓은 큐레이션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부제인 ‘소녀와 노인은 친구가 되었다.’처럼 이 소설은 은퇴후에 별다른 소일거리 없이 TV로 프로야구중계시청을 유일한 낙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노인과 이러한 노인의 일상에 뛰어들어 온 이웃집 소녀와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야구’는 베일에 가려진 은퇴 전의삶을 뒤로 하고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무뚝뚝한 노인과 한없이 사랑스럽고 친절한 소녀가 우정을 쌓는 매개체가 된다. 소녀는 메이저리그를 좋아하고 노인은 한국프로야구를 좋아한다는 차이점은 있지만, 야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한다는점에서 그들은 한 마음이 된다.

소설을 읽으며 제목이 왜 <크리스 데이비스처럼> 인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는데 현재 메이저리그에 실존하는현역 선수인 크리스 데이비스는 작품 전개에 주요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재미 있는 것은 메이저리그에 크리스 데이비스라는 이름을 가진 선수는 2명으로 그들의 묘한 관계가 작품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내야수인 크리스 (Chris)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외야수인 크리스 (Khris)가 그들인데, 이들은 동명이인에 타율 보다 홈런, 타점으로 승부를 거는 거포형 선수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둘의 영혼이 바뀐 게 아니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로 두 선수의 전성기와 타격 사이클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90cm에 100kg이 훌쩍 넘는 볼티모어의 크데 (크리스 데이비스)에 비해 180cm에 90kg 남짓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크데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드물게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지만, 하드웨어적 열세를 극복하고 40개 이상의 홈런을 치는거포로 성장한 선수이다. 즉,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크데는 리그를 대표하는 거포 볼티모어의 크데와 이름만 같은 ‘짭데‘였다가 이를 실력으로 극복하고 등명해나가면서 ‘참데‘, ‘찐데‘ 라는 타이틀을 쟁취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이다. 소설에서 힘든 현실 속에서도 엄마와 함께 긍정적인 마인드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소녀는 메이저리그의 ‘크데‘를 보며 희망을 키워나간다.

 

“원래 엄청 못하는 선수였는데, 갑자기 홈런을 뻥뻥 치는 거예요! 이름이 같은 선수가 또 있는데, 그 선수는 다른 팀 홈런왕이어서 맨날 비교당했거든요. 그런데 지금 완전 역전!”

“정말 좋아하는가 보구나.”

“네. 저도 그럴 수 있잖아요.”


이렇게 나이답지 않게 성숙하지만 맑고 투명한 소녀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공주‘에게 찾아온 비극을 지켜보는 독자들은한층 더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크리스 데이비스 처럼>은 노인과 소녀, 비극, 복수 등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클리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전개과정을 지켜보는 묘미를 느낄수 있는 단편이다. 작년 54타수 연속 무안타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역대 최장 연속 타수 무안타라는 불명예 기록을 수립한 볼티모어의 크데는 올해 시범경기에서 3경기 연속홈런을 치는 등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 발발로 리그 전체가 중단된 상황이니 삶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다.



브릿G 작품소개 <크리스 데이비스처럼>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173606&novel_post_id=83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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