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다를 닮아서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반수연 지음 / 교유서가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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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남겼다이는 일견 행복으로 충만해 보이는 삶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고통삶에 대한 ‘비의(悲意)’가 내포되어 있다는 삶의 내밀한 속성을 잘 포착해낸 체험적 진리라고 생각한다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제임스 설터도 "나뭇잎을 들어 올려 햇빛에 비추어 보면 잎맥이 보이는데다른 건 다 버리고 그 잎맥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이는 저마다의 방향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잎맥처럼 삶은 다면적이고 정답을 찾기 힘든 것이지만삶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멀리서 숲을 조망하기 보다는 숲 안으로 깊숙히 침잠하여 나뭇잎의 형태와 주위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그 미세한 변화들에 주목해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일이다." (p. 117)

 


반수연 작가의 <나는 바다를 닮아서>를 읽으며, 삶의 내밀한 영역까지 뜯어보면 인생이란 희극과 비극, 강자와 약자, 피해자와 피의자가 뒤섞인 영화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작가가 남편과 함께 영화 '조커 (Joker)'를 보고 쓴 산문 '결혼기념일'에 등장하는 말처럼 말이다. 딸아이가 큰 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적은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일"이라는 문구를 보고, 작가는 삶이란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것이고, 사소하고 다정한 것들이 모여 바위를 들 수 있는 힘이 된다는 체험적 진실을 털어놓는다. '당신의 강화반닫이'에서 언급한 할머니의 강화반닫이처럼 이토록 지리멸렬한 생을 흘러가게 하는 것은 어쩌면 무용하고 불가해한 것들일지도 모른다는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 삶이란 저마다 쌓아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생각을 한다. 서로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간은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불완전함이야말로 각자 다른 정체성을 가진 채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매듭이 되는 것 아닐까? 신뢰와 사랑, 자발적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불완전한 현실을 일정 부분 해소시켜주는 심연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을 비로소 인간답게 만들어주고, 삶을 살아가는 근원적인 동력이 되는 것은 일견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인 행위처럼 보이는 사랑, 우정, 신뢰와 같은 가치들이다. 서로를 향해 뻗는 온기 어린 손짓이 결국 메마른 삶에 활기가 되어 내일을 밝히는 희망이 된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He can do! She can do! I don't care!" (p. 109)

 


작가가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딸과의 에피소드는 이 같은 삶 속에서 온기가 배어있는 반짝이는 순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본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는데, 나라고 못 할까!"라는 구호가 등장하자, 레고를 가지고 놀고 있던 아들은 힘차게 구호를 따라 하는 반면, 딸아이는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지만, 나는 신경 안써!"라고 힘차게 바꿔 말했다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에피소드이다. 작가도 딸아이로 인해 온 가족이 행복하게 웃었던 귀여운 에피소드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두 번의 큰 수술을 오롯이 혼자 감내해야만 했던 딸을 생각하며, 작가는 딸의 삶을 대하는 긍정적인 시선은 천성 탓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이가 겪어온 아픈 시간들 때문일 수도 있다는 가슴에 담고 있던 생각을 조용히 털어놓는다. 그때는 모르고 지나쳤지만, 이제 어렴풋이 알것 같은 것, 또 영화제목처럼 지금은 맞지만 그때는 틀릴 수 있는 것이 삶이 내포하고 있는 기본적 속성인 듯하다.

 


코로나19는 그동안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당연하게 펼쳐지는 것인 줄만 알았던 평범한 일상이 정말 이토록 소중한 것이었음을 우리가 절절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많은 이들이 정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힘든 나날들을 보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견디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일상이 회복되지 못하면서 대면 모임이 최소화되고, 비대면 만남과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증가한 것은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풍경이다. 코로나는 우리 삶의 많은 부분들을 바꾸어 놓았지만 삶의 근본적 속성까지 바꾸어놓지는 못했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하지만 즐거움과 기쁨이 되고, 살아가는 동력이 되는 생의 순간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최근 내게도 코로나가 빚어 낸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쿄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던 여름날의 추억이다. 체조경기 중계를 보던 중 딸아이가 카메라를 향해 인사하는 여서정 선수를 보며 아빠, 저 언니가 나한테 안녕하면서 인사해라고 말해 온 가족이 웃었던 기억이다. 살아가면서 딸아이도 안녕에는 반가움의 표현도 있지만, 애틋한 작별의 인사, 차마 건네지 못한, 또 건네고 싶어도 건넬 수 없는 그리움도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갈 것이다. 재택근무로 사라진 출퇴근 시간을 활용하여 딸의 손을 잡고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며 유치원 등원을 함께 한 것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딸아이가 재채기를 하는 나에게 아빠, 고개 돌리고 입을 가리고 해야지.“라며 유치원에서 배운 코로나 예방수칙을 애교 섞인 말투로 늘어놓았던 것도 떠올릴 때마다 미소를 머금게 하는 기억이다.

 


"이제 내게 너무 익숙해진 이국의 시간과 손님처럼 어색한 고향의 시간이 서걱거리며 부딪혔다.“

 


반수연 작가는 통영에서 태어났지만 20여 년 전에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주하여 살고 있다. <나는 바다를 닮아서>에도 고국의 기억을 가지고 오랜시간을 타국에서 살아가는 것에서 비롯되는 경험들이 등장한다. 태어나서 배우고 익힌 고국의 언어와 문화를 두고서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는 타국에서 살아 온 시간들은 결코 쉽지 않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속한 문화를 거슬러 자기 내부의 역사를 발견하고현재를 살아내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작가도 고백하고 있듯이 이주자로, 소수자로, 주변인으로 늘 자신을 낮추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덜 쉬고 눈에 띄지 않게 존재하면서도 필요할 땐 늘 거기 있어야 겨우 인정받는 사람, 그것이 이방인이 살아남은 방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세월이 흘러 익숙해진 이국의 시간 속에서 다소 어색하지만 추억이 담긴 고향의 시간을 작가는 그리워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같이 공유하고 만들어 온 가족이라는 존재를 생각한다. 머나 먼 타국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작가의 남편은 두려움을 내색하지 못한채 언어의 장벽을 덮고 이주자에 대한 경계를 허물려는 노력을 해왔다. 유난히 마음이 여린, 서른이 조금 넘은 젊은 남자가 어린아이와 아내를 데리고 이국으로 와 그 막막함과 두려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고, 마음을 졸였을지 이제 와서 아내는 다시 떠올린다. 그 시절 무거운 짐을 진 어린 남자의 마음을 아내는 세월의 풍파를 헤쳐 온 지금 더 애잔하게 기억해낸다. 청력검사가 타국어에 대한 이해를 테스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던 이방인의 시간들, 그 시간들은 지나고 나면 가족을 한층 더 단단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응시한다.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 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향하는 것은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 번째 심장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편견과 집착에 사로잡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서로에 대한 관심과 공감, 진심이 담긴 위로가 진실을 가능하게 하고, 아주 미약한 부분이나마 세상을 진보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 아닐까?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2022년의 겨울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산문집을 만난 것 같아 너무나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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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22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길 2022-12-24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읽고갑니다.
 
독립운동 열전 2 - 잊힌 인물을 찾아서 독립운동 열전 2
임경석 지음 / 푸른역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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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는 투쟁과 부역의 역사다. <독립운동 열전>의 저자 임경석은 아직 청산되지 못한 이 어두운 시절을 조망하고 있다. 주목해야할 것은 '잊힌 사건과 인물을 찾아서'라는 책의 부제처럼 독립운동에 헌신했음에도 이념 등의 이유로 주목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인물과 사건들을 재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독립운동의 진정한 주역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진심을 보이고 이름 없이 사라져간 민중들이었다. 이들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힘은 민중에게 있으며, 이는 핍박과 분열, 갈등이 빚어낸 시대의 소음 속에서 일순간에 타오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독립운동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하나의 그림이 있다. 바로 윌리엄 터너의 명화 <전함 테메레르>.


1805년 넬슨 제독이 이끄는 영국 해군은 나폴레옹의 유럽제패를 저지하고 자국을 수호하기 위해 트라팔가 해전에 임한다. 전장에서 테메레르는 위기에 처한 영국의 기함 빅토리호를 구하는 전적을 올린다. 이를 기반으로 한 트라팔가 해전의 승리는 19세기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에 표현된 테메레르는 찬란하게 빛났던 트라팔가에서의 모습이 아닌 시대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구시대의 유물로 쇠락한 모습이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빛낸 존재였지만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덩치 큰 범선은 그림 속에서 작은 증기선에 의해 예인되며 해체되기 전 마지막 항해를 하고 있다.


트라팔가 해전 승리후 런던에는 트라팔가 광장이 조성되었고, 광장 중앙에 승장 넬슨 제독의 동상이 세워졌다. 넬슨이 승선했던 빅토리호는 포츠머스 해군기지에 영구 보존되고 있다. 반면 테메레르호는 운수업자에게 넘겨져 해체되는 운명을 맞는다. 템즈 강가로 산책을 나간 터너는 이 위대한 선박의 마지막 항해를 그림으로 남겼다. 윌리엄 터너는 시대를 빛내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영웅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찬사를 보냈다. 모두가 기억하는 넬슨 제독, 빅토리호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테메레르도 있었다고그것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라고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존재에 대한 최대의 찬사는 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해주는 것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스러져간 이름 없는 민중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아니 그 이전에 역사의 페이지에 그들의 몫도 있을까? 우리는 윌리엄 터너가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그들을 기억해주어야 한다. 그들의 정신과 투쟁, 숭고한 희생은 <전함 테메레르>가 되기 충분하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우리의 과거였고,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또 하나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삶을 희생해가며 세상의 진보를 위해 고독한 걸음을 내디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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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 신들의 사생활 - 판도라의 항아리를 열다! 그리스 로마 신화 : 신들의 사생활 1
<그리스 로마 신화 - 신들의 사생활> 제작팀 지음 / 단꿈아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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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책은 이미 많이 나와 있지만, 삶이란 무엇이고,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고전에서 답을 찾게 된다. 쉽게 풀어 쓴 스토리텔링과 고전학자의 깊이 있는 해설 그리고 신화를 다채롭게 표현한 예술 작품 소개를 통해 독자의 이해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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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한 레이 달리오의 원칙 - 일과 삶의 성공을 위한 나만의 원칙 만들기
레이 달리오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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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레이 달리오‘가 나만을 위한 원칙을 만들어 준다니... 이것 만으로도 일독의 가치가 있음. 전작 <Principles>을 통해 그가 공개한 그만의 원칙도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이트를 주었지만, 책을 읽으며 독자 스스로가 자신만의 원칙을 만들 수 있게 가이드를 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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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작은 곰자리 49
조던 스콧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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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저널 등에서 올해의 그림책으로 선정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평단은 물론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책이다. 이 그림책이 이렇게 많은 화제를 일으킬 정도로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은 동력은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늘 가지고 있었다. 책의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그 후에 딱히 인연이 닿지 않아 Reading List 목록에 올려두고 미뤄놓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작년 김영하의 북클럽에서 이 책을 대상도서로 선정하였고, 이를 계기로 이 책과 만나게 되었다.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북클럽에서 그림책인 이 책을 대상 도서로 선정한 것에 대해 놀랐고, 이를 계기로 책이 담고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을 접하고 받은 이 책에 대한 첫 인상은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라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은 유화풍의 서정적인 그림과 마치 시와 같은 감각적인 문구들이 어우러진 결과이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시인 조던 스콧의 이야기에 케이트 그리너웨이상을 수상한 그림 작가 시드니 스미스의 조화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에 더해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의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한국어 번역은 화룡점정이다. 굽이치고 부딪치고 결국 산산이 흩어져도 긴 세월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삶의 내밀한 아픔을 딛고 자라나는 아이의 눈부신 성장 스토리가 너무나 아름답게 느껴졌다. 남과 다른 자신을 인정하고,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세상을 향해 한발짝 내딪게 되는 과정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많은 감동을 준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이 책에 글을 쓴 시인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한다. 책에 담겨 있는 내용처럼 조던 스콧의 아버지도 학교에서 발표가 있는 날이면 말을 더듬는 아들을 배려하여 아들을 데리러 왔다고 한다. 주인공인 아이가 주문처럼 되뇌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는 실제로 조던 스콧의 아버지가 아들인 조던에게 들려준 이야기라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는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건 몰랐었는데, 이를 알고나서 책의 스토리가 한층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또래 집단과의 사회적 연결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있다. 아이에게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은 이제껏 살아왔던 그 어느 순간 보다 두렵고 무서운 순간이었을 것이다.

 


왜 나는 친구들과 같지 않은지 고민하는 아이에게 저 흘러가는 강물을 보라고, 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은 강물도 때론 부딪치고, 때론 돌아가면서 흘러간다고 말해주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크게 위로가 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실은 실제로 어린시절의 조던 스콧이 아버지의 말에 큰 위안을 받고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한 것만봐도 알 수 있다. 어린 조던 스콧은 자신과 닮은 강물을 통해 혼자라는 고립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자신의 내면에 흐르는 유려한 강물을 시로 옮길 마음을 갖게 된 것 아닐까? 아버지의 사려 깊은 배려와 아름다운 자연이 말더듬이 소년을 시인으로 길러 낸 것이다. 이러한 아이에 대한 애정을 담은 눈길과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마음은 우리의 마음에도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부드럽게 굽이치며 반짝거리는 저 강물의 물결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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