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그 공포혼란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의 카피문구이다소설은 주인공 김지영씨의 이상행동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담당의사가 그녀의 삶을 되돌아보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김지영씨는 계집질 안 하고마누라 때리지 않은 게 어디냐고그 정도면 괜찮은 남편이었다고 진심으로 생각하는 할머니와 아들이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고그게 가족 모두의 성공과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어머니로부터 여자는 위험한 길위험한 시간위험한 사람은 알아서 피해야한다고못 알아보고 못 피한 사람이 잘못이라고 배우며 자랐다태어나면서 부여 받은 주민등록번호는 여성은 2번이었고초등학생 때의 학급번호도 남자부터였다남자부터 급식을 먹었고반장도 남자가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학창시절 남성으로부터의 스토킹언어폭력은 그 자체의 고통과 더불어 사회 문화적 분위기를 이해 못하는 사람이라는 낙인으로 이중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여성에게 가혹한 취업시장에서 홍보대행사에 어렵게 입사하여 악착같이 살아남지만아이를 가진 후 버티지 못하고 퇴사한다생활도일도꿈도심지어 자신까지 전부 포기하고 힘들게 아이를 키우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건 '맘충'이라는 비난이었다그녀는 결국 그녀 주변의 여성들에게 빙의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게 된다.


 

"차별과 억압, 편견, 온갖 사회적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 화학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

 


<82년생 김지영> "한국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일그 공포피로당황놀람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라고 한다면보니 가머스 작가의 <레슨 인 케미스트리> “1950-60년대라는 그 엄혹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마음 속 절벽들을 지속적으로 허물어내면서희망을 잃지 않고 세상의 변화를 위해 온기 어린 손을 건냈던 한 인물과 그 가족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더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차별과 억압, 편견, 온갖 사회적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여성 화학자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전통과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부조리와 불합리, 숨이 막힐 것 같은 가부장적이고 보수적인 가정환경 속에서 동성애자였던 오빠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엘리자베스는 역경과 고난에도 불구하고 독학으로 학사를 마치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녀의 실력보다는 외모에 관심을 보인 대학원 지도교수는 성폭행을 시도하고, 그 후 가해자인 지도교수는 자리를 보전하지만, 정작 피해자인 엘리자베스는 박사과정에서 쫓겨나는 부조리를 경험한다. 어렵사리 들어간 연구소에서도 동료들은 그녀를 동등한 화학자가 아닌 연구 보조원이나 사무 직원으로 취급하고, 남성 과학자들은 그녀의 성과를 가로채고, 비혼모라는 이유를 내세워 그녀를 해고한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영혼의 동반자 캘빈을 만나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랑했던 연인 마저 떠나보낸다. 엘리자베스는 명석한 화학자였지만, 여성과학자가 거의 전무했던 1950-60년대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여성 화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에 맡게된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요리야말로 새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 세대를 번성시키는 진지한 화학 실험이라며 대중과 시청자들이 꿈을 향한 변화의 첫걸음을 내딪을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넣는다.

 


"화학은 삶과 불가분의 관계를 이룹니다. 화학은 바로 삶입니다." - 2p. 87 -

 


절망적인 상황은 없고, 오로지 절망하는 인간만이 있을 뿐이라는 엘리자베스의 무한 긍정의 마인드는 그녀의 전공인 화학과 환상적인 케미를 만들어내며 대중에게 선한 영향력을 선사한다. 흔히 화학은 어렵고 복잡하고, 생소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우리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것들, 먹는 음식, 공기, 입는 옷, 쓰는 물건, 심지어 생각까지 모두 화학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만 년에 걸쳐 인류의 변화와 발전을 가능하게 한 DNA나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걸 가능케 해주는 신경전달 물질과 대사물질들이 모두 화학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세계 최대의 화학 학술단체인 미국화학회(ACS)화학물질이 아닌 것을 가져와라, 그러면 원하는 만큼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아무도 그러한 물건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화학은 바로 삶이라는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처럼 화학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고 변화와 혁신의 새바람을 일으키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화학자인 엘리자베스가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가 된 것, 그리고 요리야말로 새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 세대를 번성시키는 진지한 화학 실험이라는 엘리자베스의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저는 그냥 가정주부예요."

"세상에 그냥 가정주부란 없습니다. 가정주부 일 말고 또 무엇을 하시죠?" - 1p. 356 -

 

"요리는 화학입니다. 화학은 생명이지요. 모든 것을 바꾸는 여러분의 능력, 자신을 바꾸는 능력도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2p. 28 -

 


가사일을 돌부는 평범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저녁시간대 요리프로그램의 시청자들은 요리와 화학이라는 주제를 넘어 그들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잊고 지냈던 꿈을 이루기 위해 한걸음씩 나아간다. 아들 다섯을 둔 주부는 개흉 심장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라는 가슴 한켠에 밀어놨던 꿈을 이루기 위해 의대 예비과정에 입학하고, 다른 주부들도 저마다 처한 환경 속에서 야간학위과정에 등록하면서까지 꿈을 향한 배움의 꿈을 놓지 않는다. 다이어트 보조제 대신 조정운동을 하라는 엘리자베스의 조언에 남성 일색이던 조정 클럽이 여성들로 북적이기도 한다. 놀라운가? 이 모든 변화가 픽션에서만 가능한 비현실적인 것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는 화학적으로 언제나 변화할 수 있게 만들어진 존재라는 엘리자베스 조트의 말을 들으면 이 놀라운 변화의 동력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이 이 놀라운 결과로 이끌었는지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또한 엘리자베스는 일반적인 주부는 전혀 평범한 존재가 아니라며 주부들에게 가사노동에 대한 긍지를 불어넣는다. 삶에는 튼튼한 토대가 필요하고, 가정에서는 바로 주부의 존재가 구심점이 되어 안정적인 사회생활 및 미래를 위한 도약에 든든한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는 폭넓은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보편성을 얻는다. 사실 출산과 육아, 가사와 직장 등에서 벌어지는 성차별과 부조리들은 비단 1950-60년대 미국에만 국한되는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세대를 거쳐 변하지 않고 보편적으로 다가왔던 일상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불합리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이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애플TV에서 드라마화까지 결정될 정도로 많은 지지와 공감을 얻은 이유는 2022년 현재 우리 주위에도 보편적인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아픔과 상처를 겪고 있는 수많은 "소외된 우리"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 사실 "엘리자베스 조트"는 우리가 꿈꿔온 이상화된 판타지에 가깝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나는 조트의 긍정적인 마인드와 굳은 의지는 우리가 갖지 못했던 혹은 보호해주지 못했던 우리 과거의 모습이기도 하고, 새로운 시대가 반드시 필요로 하는 우리의 진화된 모습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 조트는 우리가 가질 수 없었던 과거이자 도달해야할 미래다.

 





"당신 정말 육아휴직 갈꺼니?“

 


세상에 태어난 딸에 대한 축하인사 다음으로 회사의 경영지원부문 임원이 내게 건넨 말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위해 회사는 남성육아휴직을 일정기간 의무화하기로 하였지만 아직 안정적으로 정착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의 인사와 복지정책을 총괄하는 경영지원부문 임원의 농담인 듯 진담인 듯 건넨 말 한마디는 내게 항거할 수 없는 압박이었고 보이지 않는 권력이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일상에서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이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평범한 남자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 살아가는 것의 고충을 느끼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이는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화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쩌면 가시화되고 권력화된 악 때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악의 없는 무심함, 선의로 포장된 무례가 누적된 결과가 아닐까?

 


선생은 매드의 블라우스에 분홍색 꽃을 핀으로 꽂아주려 했다.

"파란색 꽃을 꽂아도 될까요?"

매들린이 묻자 선생님은 대답했다.

"안돼. 파란색은 남자아이용이고, 분홍색이 여자아이용이란다." - 1p. 310 -

 


주변의 수많은 "소외된 우리"들은 일상의 부조리 앞에서 눈을 감고 입을 닫고 살았다기득권 가해자들이 작은 것 하나를 잃을까 전전긍긍할 때 피해자들은 삶의 전부를 잃을 각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또한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피로와 보복무력감 속에서 괴로워해야했기 때문이다아버지로서 나는 딸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여성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지길 바란다딸이 성장해나가면서 가장 많이 받게 될 질문 중 하나는 꿈과 장래희망에 대한 것일 것이다아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묻는 건 상당히 흔하고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는 딸이 성장해가면서 '너는 도화지와 같아서 어떤 그림으로든 완성될 수 있단다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맘껏 펼쳐보렴'에서 "이제는 무슨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정해야 하지 않겠니?"로 바뀌어 갈 것이다하지만 적어도 "여자인 네가 그걸 한다는 게 가능할까?"로는 변질되지 않길 바란다.

 


삶의 작은 순간들이 누적되어 한 사람의 일생을 구성하듯 세상의 변화도 생각보다 작은 부분에서 시작될 수 있다나는 딸이 태어나고 회사에 남성 육아휴직을 신청하였다이는 물론 태어난 아이를 위해 앞으로 일정부분 여성이 아닌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아내 그리고 세상에 태어나 또 다른 여성으로서 살아갈 내 딸을 위한 것이었다하지만 내가 내린 결정이 조직 구성원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 육아휴직제도가 안정화되고 나아가 조직문화가 개선되는데 미약하나마 기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상에 절망하지 않고 신뢰하고 연대하며 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그것이 비록 사소하고 미약한 성공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아내와 엄마가 아닌 여성으로서의 삶이 빛나는 사회로 나아가는 동력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엘리자베스 조트"들의 희생과 헌신이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작지만 끊이지 않는 목소리들이 '새 시대를 열어갈 에너지를 창조하고 새 세대를 번성시키는 진지한 화학 실험'의 촉매제가 될 것임을 믿는다. 누군가의 딸누군가의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여성들의 삶에 행복이 깃들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한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8-10 2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잭와일드 2022-08-11 09:4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mini74 2022-08-10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재미있다는 글 많네요 *^^* 축하드립니다 ~

잭와일드 2022-08-11 09:41   좋아요 1 | URL
여름 휴가철에 읽기 좋은 페이지 터너 소설인 것 같아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2-08-10 22: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책 인기가 많네요
오프라인 서점에서도 눈에 띄던데...^^

잭와일드 2022-08-11 09:4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휴가철에 어울리는 소설인 것 같습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8-10 23: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편안하고 기쁜 시간 되세요^^

잭와일드 2022-08-11 09:4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8-11 1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잭와일드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잭와일드 2022-08-11 13: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수박 수영장 수박 수영장
안녕달 글.그림 / 창비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박 수영장>은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책이고,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시켜주는 좋은 그림책이다. 이름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지금처럼 햇볕이 내리쬐는 무더운 여름날, 아이들이 커다랗고 시원한 수박 속에 들어가 수영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워할까?'라는 신사는 상상이 그대로 그림책으로 구현되었다. <수박 수영장>을 읽으면 그야말로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는 상상을 한 느낌을 받는다.


책이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는 해마다 여름 햇볕이 한창 뜨거워지면 '수박 수영장'이 개장한다. 엄청나게 큰 수박이 "쩍" 하고 반으로 갈라지면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논일을 하던 아저씨들, 고무줄놀이하던 아이들, 빨래를 널던 아주머니들 모두 수박 수영장으로 모여든다. 커다란 수박은 수영장도 되고, 모래사장도 되어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각각 저마다의 형태와 방식으로 한여름의 무더위를 즐긴다.


먼저 그림체 자체가 시원하다. 작열하는 태양, 붉은색의 아삭한 맛의 수박, 청량한 수박쥬스, 아이들의 웃음소리, 시원한 소나기, 붉은 노을, 밤의 반딧불이 등 여름을 대변하는 이미지가 시원한 그림체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면서 여름의 정취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제는 <당근 유치원>이나 <할머니의 여름휴가>, <눈아이> 등으로 동심을 대변하는 그림책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안녕달 작가이지만 본 도서가 안녕달 작가의 첫번째로 펴낸 그림책으로 알고 있다. 가족에 대한 애정과 이웃에 대한 따뜻한 관심과 연대의 시선이 담겨 있는 <수박 수영장>은 아이와 함께 읽기에는 물론 성인들도 여름의 추억과 정취를 되살리며 읽기에 너무나도 좋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는 해녀입니다 (양장)
고희영 지음, 에바 알머슨 그림, 안현모 옮김 / 난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 엄마의 숨소리, 엄마가 살아 있다는 소리"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할머니, 엄마, 나 까지 삼대가 제주 바다와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담았다. 한글 보드북으로 책이 출간되었을 때 구입하여 지금까지 딸아이와 함께 잘 읽고 있는 책이다. 처음 구입할 당시에는 글밥도 많고 해녀라는 생소한 소재기 때문에 딸아이가 읽기에 아직 너무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4-7세의 유아책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무엇 보다 그림체가 너무나 마음에 들어 구입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선택인것 같다. 지금까지 다수의 그림책을 사고 딸아이와 함께 봐왔지만, 구입한 대부분의 그림책이 아이가 처음에 잠깐 흥미를 보이고 점점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는데, <엄마는 해녀입니다>은 지금까지도 바다와 해녀, 그리고 예전에 가족여행을 갔던 제주도에 대해 얘기도 나누며 즐겁게 함께 책을 보고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해녀입니다>을 만든 사람들의 이력도 정말 독특하다. 잠깐 소개하자면, 글을 쓴 고희영 작가님은 한때 SBS의 시사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의 방송작가였고, 다큐멘터리 <물숨>을 만든 감독님이기도 하다. 작가님의 대표작으로 해녀들의 삶과 숨을 기록한 '물숨Breathing Underwater', 눈을 잃은 남자와 눈만 남은 남자의 동행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시소See-Saw', 한 점 그릇과 한 남자의 한 길 불 속 이야기를 담은 '불숨the breathing of the fire', 지은 책으로 『다큐멘터리 차이나』 『물숨 - 해녀의 삶과 숨』 등 이 있다. 그림을 그린 에바 알머슨은 전 세계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왕성한 전시 활동을 하고 있고,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미술 학위를 취득한 스페인 출신 화가이다. 이런 그녀가 어떻게 제주도 해녀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어떻게 <엄마는 해녀입니다>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에바 알머슨은 우연히 상하이의 한 호텔에서 집어든 잡지를 통해 해녀를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직접 제주도에 가서 해녀들의 물질 장면을 보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고 그러면서 고희영 작가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세계의 어린이와 함께 읽고 싶다는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영어로도 번역되어 출간되었고, 번역은 동시통역사 안현모님이 맡았다. 안현모님은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통해 해녀의 삶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고, 이 책의 인연으로 운명처럼 해녀 학교에서 해녀 수업도 이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많은 이들의 헌신과 공헌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엄마는 해녀입니다>는 제주 해녀의 삶, 그 깊은 진실한 삶에 대해 독자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진 책이다. 또한, 교육적인 차원에서 아이와 함께 제주도에 대해, 자연환경에 대해, 해녀의 삶에 대해 얘기하면서 함께 읽기에 좋은 책이다. 이 책에는 더 많은 해산물을 따기 위해 욕심을 부리는 엄마를 할머니가 구해주면서 하는 말이 있다.


"바다는 절대로 인간의 욕심을 허락하지 않는단다. 바닷속에서 욕심을 부렸다간 숨을 먹게 되어 있단다. 물속에서 숨을 먹으면 어떻게 되겠냐. 물숨은 우리를 죽음으로 데려간단다."


아이가 살아가면서 이는 비단 해녀들뿐만 아니라 세상사 전반에 적용된다는 사실을 아이도 깨달아 갈 것이다. 물질하는 해녀가 바다 밖으로 나와 숨을 쉬는 소리를 "숨비소리"라고 한다. 사실 몰랐던 사실인데 아이와 함께 소리도 내보고 웃었던 것이 계속 떠오른다.


"호오이~ 호오이~" 숨비 소리, 엄마와 할머니가 살아있다는 소리.


생각 난 김에 오늘 저녁 아이와 함께 다시 책을 뒤적여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는 해녀입니다 (양장)
고희영 지음, 에바 알머슨 그림, 안현모 옮김 / 난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호오이... 호오이... 숨비소리...
호오이... 호오이... 엄마가 살아있다는 소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저드 베이커리 (양장)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소설Y
구병모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삶은 인간의 예측 가능한 영역을 벗어나 자리해 있다.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는 것? 우리는 삶에 대한 진실의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간절히 매달리지만, 진실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 언저리에서 표류하며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삶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 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별, 아픔, 상처, 억센 슬픔의 순간들을 겪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는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상실과 결핍의 경험들도 치유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곧 일상이 되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녹아든다.

 


삶이 궤도를 이탈하였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삶을 완전히 통제하여 온전히 행복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아니 행복을 논하기 전에 우리의 삶 속에서 완벽히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일을 완벽히 통제하고 선택하지 못한다. 다만 이미 발생하여 현실이 되어버린 상황에 대해 대처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저마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와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와 신념들이 결국 우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가 되고, 행복에 대한 가치를 만드는 것일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매트릭스는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를 의미하며, 이는 모든 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네오에게 두 가지 형태의 알약을 건넨다. 파란 알약은 비록 허구로 이루어진 세계이지만 그러한 현실에 안주하며 살 수 있는 약이고, 빨간 알약은 참혹하고 고통스럽지만 거짓을 꿰뚫고 불편한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약이다. 네오는 단 한 번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순간에 빨간 알약을 삼키고 진실을 택한다. <위저드 베이커리>는 성장 소설이지만, 고통과 상처, 수없이 밀려드는 갈등과 난관을 극복하고 극적인 결말을 맺는 성장소설의 문법을 거부한다. 마치 매트릭스의 빨간 알약을 삼키고, 마법과 판타지의 프리즘으로 들여다 본 리얼리즘의 세계라고나 할까?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갈등을 극복하고 행복에 도달해 있을 때보다는 때론 환경에 순응하고, 때론 맞서고 극복하면서 삶을 견디고 이어 나가는 측면이 많다는 걸 깨닫는다. 정글과 같은 삶을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상실과 결핍, 아픔들은 자연스럽게 삶의 한 부분으로 녹아든다. 이런 측면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갓 구운 빵과 같은 온기가 혈관을 타고 번져 나갔다.” (p. 115)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 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 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 하지만, 섬은 단절된 듯 보이지만 연결되어 있는 이중적 성격을 띠는 특별한 공간이다. 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 서로의 존재 방식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 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 삶의 흔적, 아픔을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위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 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수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 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보이지 않지만, 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살인마는 안톤 시거는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살인의 대상으로 선택하고 동전 던지기를 통해 살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개인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삶의 우연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동시에 '전부를 걸어야만 전부를 얻을 수 있다.'는 안톤 시거의 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한 번씩 주어진 삶에 임하는 진지한 탐구 자세와 의지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삶이 던지는 시험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가 다른 시험지를 받았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한 채 타인의 답을 모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다가 실패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부여되고 스스로 계발한 재능을 토대로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각자의 답안을 작성하면 되는 것일 뿐이다. 내가 그랬듯이 다른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며 현실의 삶을 견디는데 도움을 받았으면 한다.

 


삶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해야 할 때 무조건적인 부정이나 외면, 현실을 도외시하는 만능 답안 제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게 때론 거칠고 날이 서있다 하더라도, 다소 고통스럽고 마주하기 힘든 진실을 대면하게 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 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고단한 삶 속에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만나게 된 카스텔라의 폭신한 감촉과 찬바람 속에서 온기 어린 위로를 건네는 대보름 빵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잡고자 했던 불분명한 현실의 경계를 넘어 표류하고 있는 삶에 대한 진실의 조각은 이것 아닐까? 과거와 현실을 딛고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 진실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