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 - SF 작가 최의택의 낯설고 익숙한 장애 체험기
최의택 지음 / 교양인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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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 전체가, 그리고 내가 썼고 쓰고 있으며 쓰게 될 모든 글이, 나라는 사람이 움직여 온 경로를 미분해서 각각의 사건이 지닌 의미를 해석하는 동시에 그것들을 적분하여 전체 그리고 플러스 알파의 의미를 추출하는 일일 것이다. 그 결과는 분명 에너제틱할 것이다." (p. 225)

 

 

브레히트는 헤겔의 “진리는 구체적이다. (Die Wahrheit ist konkret.)” 라는 명제를 즐겨 인용했다구체적이지 않은 진리는 인간을 모호한 주관적 확신으로 이끈다때문에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일 필요가 있다이는 에세이나 자전적 글쓰기에도 적용되는 명제다생동하는 저 세계를 구체적으로 겪어내고 구현해내야 한다구체적이지 않고서는 독자의 마음을 관통할 수 없다비비언 고닉도 자전적 글쓰기에 관한 지침서 <상황과 이야기(The Situation and the Story)>에서 자서전의 주제는 항상 자기 인식이 우선이지만 실체가 없는 자기 인식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좋은 글은 실제로 경험하고 목격한 것들을 살아 있는 어휘로 표현되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독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자전적 에세이는 자신의 경험과 체험생각을 솔직하게 담아서 가장 쉽고 명확한 어휘와 문장으로 누구나 읽고 싶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최의택 작가의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하는 이유는 화자는 절대적으로 구체적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며불명확하게 또는 모호하게 두리뭉실한 문장으로 독자들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자전적 글쓰기의 기본 명제를 충실하게 지켜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에세이는 분명 에너제틱하다.

 

 

"장애인이 아닙니다. "장애 '경험자'입니다.“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아니라 경험에 반응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우리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을 살아간다. 동일한 사건을 경험하면서도 사람들은 서로 다른 언어적신체적심리적 반응을 보인다이는 그 사건을 대하는 개인의 신념과 사고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흔히 언급되는 A-B-C 법칙처럼 '사건(Accident)'을 경험하면서 개인은 자신만의 '신념(Belief)'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Consequence)'를 창출해내는 것이다인간은 저마다 '진실'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고이러한 인식하에 본능적으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계'가 필요할 수 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고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삶이란 저마다 쌓아 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서로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삶이라는 건 층층이 쌓인 무수한 목소리들을 다루는 고고학과도 같다내게 없어선 안 되는 게 있다면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 비비언 고닉 -

 

 

현재의 삶은 지나온 삶의 이력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작가의 지나온 삶에 관한 기록을 읽으며현재까지  삶에 존재했던 행복했던 기억아픈 추억낯설고도 친밀한 기억들이 떠올랐다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우리는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들을 기억하며 현재를 살아간다이는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행복한 기억들을 화석화하여 영원과 불멸의 세계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하지만 기억은 불완전한 것이고 객관화된 진실은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가다보면 우리는 '사실 (事實)' 보다 '사연 (事緣)'이 중요해지는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라쇼몽 (羅生門)의 대사처럼 진실이란 어차피 그 사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기억은 현재의 삶 안에서 고동치는 두 번째 심장이자미래의 삶에 대한 이정표이다우리가 어떤 일을 겪고 경험을 하든지 간에 그것을 현재 시점에서 어떻게 재생하고 재구성하느냐에 따라 행복한 기억이 될 수도 뼈아픈 추억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런 의미에서 모든 개인은 모더니스트 (Modernist)인 동시에 자기 자신의 역사가 (His own Historian)라고 할 수 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인물들. 인간 밖의 인물들, 굳이 인간이 아니어도 되는 인물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인물들, 그런 인물들에게 관심이 가는 데요." (p. 161)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인생을 살아가는 간다는 것은 어쩌면 조금씩 퇴보하고 소멸해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하지만 인간이 죽음을 예정하고 있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과 그러한 운명에도 불구하고 삶 속에서 인간적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존재와 소멸의 문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정글과 같은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다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인정’ 그리고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다그것은 환경의 제약 속에서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흐릿하게 잡힐 듯 떠오르는 희망에 대해삶의 온기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엉뚱하고 허튼소리를 잘 하는 또라이인 나의 이야기를 통해, 그저 분류로서만 존재하는 당신의 당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기를, 진짜 당신을 찾을 수 있기를, 따옴표를 벗어 던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나는 좋겠다." (p. 285)

 

 

화제가 되었던 룰루 밀러의 에세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부제는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 대해 미국에서 가장 유쾌한 과학 저술가라고 불리는 메리 로치는 서정적인 동시에 지적이고, 사소하면서 거대하고, 별나면서도 심오한 완벽한 책으로 평했고 인디애나 존스이자 에밀리 디킨슨라는 별칭을 가진 세계적인 생태학자이자 탐험가, 작가인 사이 몽고메리는 이 책은 당신의 가슴을 사로잡고, 상상력을 장악하고, 예상을 박살 내고, 당신의 세계를 뒤흔들 것이다.“라고 평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가 수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그어 놓은 선 저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 자체가 삶의 소중함과 삶을 살아가는 지침이 될 수 있다'는 룰루 밀러의 삶에 대한 철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중구난방으로 접했던 지식의 단편들이 '조각 모음' 되는 것이 피부에 와 닿을 정도인데, 나는 그런 느낌이 정말 좋다. 새로운 앎을 얻는 것도 좋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 합쳐져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짜릿함을 선사한다. (p. 50)"는 최의택 작가의 말처럼 삶에 대한 아포리즘은 새로운 지식 보다는 새로운 시각과 관점에서 더 많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의택 작가의 체험적 진리가 담겨 있는 <어쩌면 가장 보통의 인간>은 정해진 경계를 넘어 진짜 당신의 이름과 삶을 찾을 수 있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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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함락 1945 걸작 논픽션 26
앤터니 비버 지음, 이두영 옮김, 권성욱 감수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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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찰리 채플린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을 남겼다이는 일견 행복으로 충만해 보이는 삶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고통삶에 대한 ‘비의(悲意)’가 내포되어 있다는 삶의 내밀한 속성을 잘 포착해낸 체험적 진리라고 생각한다앤터니 비버의 역작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을 읽는 내내 나는 찰리 채플린의 이 말을 계속 곱씹었다. 저마다의 방향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잎맥 (leaf vein)'처럼 삶은 다면적이고 정답을 찾기 힘든 것이고, 그러한 삶들의 집합체가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바라볼 때 보다 신중하게 다양한 시각과 사실 검증을 거쳐 판단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역사에 대한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서 우리는 멀리서 숲을 조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숲 안으로 깊숙이 침잠하여 나뭇잎의 형태와 주위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그 미세한 변화들에도 주목해야한다.

 

 

"비버는 전략적 상황의 큰 그림과 현장에서 벌어진 놀라운 일들의 의미를 솜씨 있게 결합시킨다. 이 책의 강점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놀라움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끔찍한 사건들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설득력 있게 풀어놓는다는 것이다." - 애덤 시스먼 (옵서버

 

 

독소전쟁이 역사적으로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도 있지만, 독소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단일 전쟁이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2차 세계대전과 독소전쟁에 대해 다루고 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독일이 3할이 넘는 인구를, 소련은 4할이 넘는 인구를 오로지 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동원하였다. 세계사를 통틀어 단일국가가 전쟁 수행을 위해 이렇게 많은 인구를 동원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양 국가의 인명피해는 3,000만명이 넘었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전체 인명 피해의 절반가량에 해당한다. 이념대립, 자원확보, 전쟁상황하의 전략적 선택 등 독소전쟁 발발의 배경과 의미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지만게르만족과 슬라브족간에 벌러진 정복전쟁을 넘어 상대 민족을 말살하기 위한 절멸전쟁이었다는 것에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이유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인도적 행위와 온갖 비인간적인 만행들은 이러한 비극적 선택으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2차 대전과 독일의 몰락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의 관심사사상적 배경고민과 감정들을 함께 다루어야 한다또한 명시적으로 표명된 것과 이와 반대로 암묵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관례와 도덕관습과 가치까지도 되짚어봐야 한다또한, 고통스럽고 쉽지 않은 과정이겠지만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진, 어두운 이면들도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이는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사건이자 미래의 형성에 일정부분 영향을 주는 사건으로 자리하고 있는, 2차 세계대전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발발하고, 범죄와 재난상황이 일어나면 처음에는 뭐가 뭔지 혼란스럽다가 점차 명료하게 전모가 밝혀지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다사실관계가 파악되고 모호한 면이 걷히면 정확한 그림이 잡힌다그리고 대중이 이를 받아들인다하지만 최종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진실과 무관할 때도 많다. 대중들이 연표로만 기억하고 쉽게 오해하거나 쉽게 지나쳐버리고마는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들이 그렇다. 전쟁 당시에는 현실로 존재했을 이데올로기의 망령과 그로 인한 살인과 공포는 먼 훗날에도 사건의 실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못하고, 이해관계자들이 만들어 낸 허상만 존재하는 사례가 많다.

 

 

"비버는 복잡한 군사적 움직임들과 여기에 책임 있는 사령관들의 논리를 대단히 명확하게 서술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전쟁의 실제 희생자들에게도 섬세하게 신경을 쓴다. 어른용 철모에 불안한 얼굴이 가려진 소년들, 여러 번 윤간을 당하는 사이사이 가까스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여성들, 가족 농장이나 배우자의 무덤을 떠나고 싶지 않아 지옥의 한가운데에 놓인 노인들. 그 결과 현대 역사서의 걸작이 탄생했다." - 마이클 벌리 (가디언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이 학계와 언론에 이르기까지 걸작 논픽션으로 오늘날까지 언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베를린 전투는 1945416일부터 52일까지 2주에 불과한 기간 동안 벌여졌지만, 작가는 베를린 함락과 독일이 몰락에 이르는 과정을 베를린 전투 발발 이전부터 시공간을 오가며,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한다. 비버는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베를린 전투가 발발하기 전까지의 시대적 상황부터 이를 둘러싼 주요 인물들의 심리상태까지 독일과 소련의 입장을 균형있게 다루며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시도를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기록보관소 자료, 일기, 회고록을 바탕으로 수백만 명의 경험을 재구성해내고 있다. 마치 영화를 방불케하는 시공간의 변화와 교차편집 방식, 극단적인 클로즈업과 롱샷이 반복되는 서술은 독자들의 혼을 빼놓으며 당혹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역사를 입체감 있게 다양한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일전에 읽었던 '봄의 제전 (Rites of Spring: The Great War and the Birth of the Modern Age)'에서 저자 모드리스 엑스타인스는 1차 세계대전의 의미에 대해 다룬 수많은 저술서 중에서 만족스러운 저작들은 대부분 시인과 소설가문학 비평가들한테서 나왔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역사는 이성이 살아 있던 18세기와 19세기 합리주의 시대에 널리 지지를 받았지만 1차 대전 이후 역사가들은 자신들의 세기의 감수성에 적응하지 못했고전쟁의 배경과 그 참혹한 현실전쟁의 의미에 상응하는 설명을 찾는데 실패했다는 의미에서다에곤 프리델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고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도 '집단적 현실은 존재하지 않고사회 환경과 접점을 잃어버린 개인적 반응꿈과 신화만이 있을 뿐'이라며 역사를 개인의 영역으로 축소시켰다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을 읽으며, 모드리스 엑스타인스의 말에 다시 한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자세와 시각은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앤터니 비버의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이 뛰어난 역사서로 평가 받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치 독일은 절대 악이라고 평가하고 낙인을 찍는다. 물론 나치 독일이 벌인 수많은 전쟁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지만 나치 독일에서도 인류와 인간애를 지키기 ㅟ해 노력했던 사람들은 분명히 있었고, 소련이 나치의 침략에 저항했고, 결국 승리를 거두었지만 대규모 강간 등 그 신성한성취를 더럽히는 행위도 있었음을 저자 비버는 언급하고 있다. 전쟁에서는 누구도 해당자의 역할 또는 정복자의 역할만 수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 깨닫는다.

 

 

수천만 명이 죽고 부상당하고 나서야 2차 세계대전전쟁은 끝이 났다경제는 파탄이 났고각 국에서는 분쟁이 발생했다패전국은 거리를 배회하며 조심스럽게 자신을 위장하였고승전국은 이겼지만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었다자유존엄정의는 전쟁이 초래한 막대한 희생을 생각할 때 공허하기만 했다옛 권위와 전통 가치는 신뢰를 잃었다그러나 옛것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권위와 가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전쟁에 들인 막대한 노력특히 강렬한 정서적 헌신은 평화를 달성하는 작업에서는 도저히 유지될 수 없었고 유럽은 엄청난 우울감에 빠져들었다유토피아적인 사회적 꿈은 전쟁 후 닥친 인플레이션과 실업빈곤인플루엔자 유행병으로 잔인하게 지워졌다결국 평화에 뒤이어 불가피하게 환멸과 허무가 찾아왔다전쟁이 그런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없었다는 끔찍한 생각에 직면하자 사람들은 한동안 그런 생각 자체를 묻어버리고 삶의 의미를 순간의 생생함 속에서 찾고 향락과 나르시시즘에 빠졌다.

 

 

앤터니 비버의 역작 '베를린 함락 1945 (Berlin : The downfall 1945)'를 읽으며 샤덴프로이데 (Schadenfreuse)’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리를 맴돌았다. ‘사덴은 상처를 주는것, ‘프로이데는 환희라는 뜻으로 ‘샤덴프로이데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줌으로서 느끼는 환희를 의미한다우리 중 누구도 한번쯤은 스탈린이나 히틀러처럼 세상의 정복 또는 멸망을 꿈꾸거나 자살충동을 느끼는 등 부정적 파괴욕망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우리 마음속에는 나의 행위로 인해 타인이 처하게 되는 고난적 상황을 기뻐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이런 심리적 기제는 어떠한 상황하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쩌면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너무도 불안정하기 때문에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세상에 나라는 자기정체성이 느껴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깃든 상태에서 악은 발현될 수 있다자신의 존재 그 자체가 공허하고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악이 구체화되는 것이다불평등한 격차가 역전의 가능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 사회개선의 가능성그 여지 조차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불안과 허무를 느낀다그 속에서 개인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고통과 고뇌의 원인 조차 규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사회구조의 거대한 힘을 느끼게 되는 순간개인이 세계와 단절되고 사회와 유리되었을 때 악은 발현되는 것이다.

 

 

"극도의 고통, 심지어 타락조차 인간 본성의 최악의 모습뿐 아니라 최선의 모습을 끄러낼 수 있다. 많은 소련군 병사들은 독일의 민간인들을 매우 친절하게 대했다. 이데올로기로 인간성이 파괴된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세계에서 뜻밖의 다정함과 희생에 가까운 몇몇 행동은, 만약 그조차도 없었다면 견딜 수 없었을 이야기에 작은 등불을 밝혀준다." (p. 57)

 

 

물론 완벽한 이념은 없다이데올로기는 적절한 방법으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지나친 경쟁 속에서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은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다악이 매력적인 이유는 악은 오로지 자기자신과 자신의 방식을 믿는 확고한 신뢰가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만 옳고 나만 믿을 수 있다라는 생각은 나 이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의 다른 말이다점차 파편화되고 원자화되는 신자유주의의 세계 속에서 악은 번성한다악을 극복하는 방법은 신뢰와 연대를 통해서 가능하다절망 속에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다절망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진정시키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인간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공존하며 살아 갈 수 있다. 쉽사리 변하지 않는 세계에 절망하며 무릎 꿇지 않고 같이 신뢰공감연대하며 상호협력과 공생의 질서를 만들어나가는 것그것이 사소한 변화와 미약한 성공이라고 하더라도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은 그러한 곳에서 나온다고 나는 믿는다.

 

 

2022년 봄유럽에선 또 다른 '봄의 제전'이 펼쳐졌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우리는 본서에서 다룬 바와 같이 그동안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에서 시작되어 명분과 목적 없는 전쟁이 결국 황폐함과 절망만이 남게 되는 참혹한 결과를 지켜봐왔다유발 하라리는 국가는 스토리 위에 만들어지며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앞으로 어두운 시대가 끝나고 난 후윗세대가 아랫세대에게 전할 스토리를 늘려가고 있다고 말한다이는 나는 대피할 곳이 아닌 탄약이 필요하다며 끝까지 수도에 남아 항전 의지를 전한 대통령항복하라는 러시아 함대 앞에 '엿이나 먹어 버려라'하며 굴하지 않고장렬하게 전사한 13명의 스네이크 섬의 수비 대원들맨 몸으로 러시아 탱크를 막아내려 했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하라리는 국가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태어나며 장기적으로이 이야기들의 힘은 탱크보다 강하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우크라이나에 하루 속히 봄이 찾아오길 바란다우크라이나의 국가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의 가사처럼 적들이 아침 태양의 이슬처럼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오길 바란다우크라이나의 영광과 자유가 지켜지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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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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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은 일반적으로 개별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을 다루는 미시 경제학부터 국가의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을 다루는 거시 경제학, , 환율이나 자유무역협정 등 국가간의 문제를 다루는 국제 경제학에 이루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와 사회현상을 복잡한 이론과 개념정립을 시도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경제학이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대표적인 사회과학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경제학이 현실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거나 현실과는 괴리가 있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분들을 위해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나왔다.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의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이다군나르 뮈르달 상 수상, 최연소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 수상이 말해주듯 장하준 교수는 세계적인 경제학자이지만, 동시에 지금까지 십여권 이상의 책이 집필하여 45개국 이상의 국가에서 200만부 이상이 판매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나쁜 사마리아인들, 쾌도난마 한국경제, 사다리 걷어차기등 이미 대중에서 익숙한 베스트셀러들로 대중들의 경제학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경제학의 저변 확대에 기여해왔다.

 

 

물론 이전 도서들도 모두 경제학에 대한 지식과 이해도를 기반으로 사회현상을 쉽게 설명하면서도 깊은 통찰력과 아포리즘이 담겨 있는 훌륭한 도서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이번 신작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은 특별한 무언가가 있다. 이는 이 책의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의 부제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식재료들을 통해서 경제학이 바라보는 현실을 연결하여 설명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사실 작가 장하준 교수도 책에서 맺는말을 통해 밝히고 있지만, 경제학과 음식은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장하준 교수는 이런 경제학과 음식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섭취하는 것처럼 경제학을 어떻게 하면 맛있게 섭취할 수 있을지에 대해 독자들에게 촌철 같은 조언을 하고 있다. 이는 경제학도 음식만큼이나 다양한 관점과 시각에서 평가하고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또 새로운 이론과 현상을 대할 때 편견과 선입관을 떠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 음식을 먹거나 조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학을 요리할 때 사용하는 재료의 출처와 기원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생각을 기반으로 저자는 수십가지의 음식과 식재료를 소재 삼아 가난과 부, 성장과 몰락, 공정과 불평등, 민영화와 국영화, 규제 철폐와 제한, 복지 확대와 복지 축소 등 따끈따끈한 경제의 현안들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경제와 관련한 각종 고정 관념과 편견, 오해를 불식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통해서 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경제학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서 함께 더 잘사는 세상을 만드는 방법과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권의 책을 통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맛있는 음식과 식재료를 소개하면서 경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더 나아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니... '이런 책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리뷰를 하면서 괜한 오버나 과장을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당신, 한번만이라도 이 책을 접해보길 진심으로 추천한다. 물론 책을 직접 읽으면서 이 흥미로운 내용을 알아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만, 책을 접하기 전에 책의 내용에 대해 미심쩍어 하는 분들을 위해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대목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마음 같아서는 <마늘에서 초콜릿까지 18가지 재료로 요리한 경제 이야기>18가지 이야기를 모두 소개하고 싶지만 지면 관계상, 또 직접 책을 읽을 독자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3개의 에피소드만 소개하는 점 양해 부탁 드린다.

 

 

첫번째 식재료는 '라임'이다. 라임은 괴혈병 치료와 예방에 효과적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이전에도 이는 비밀이 아니었다. 당시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들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조직 중 하나로 군림했던 영국 해군에게 이 '라임'이 없었다면 그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인류가 항해를 시작한 이후 19세기 중반까지 괴혈병으로 목숨을 잃은 선원은 200만명이 넘는다고 알려졌다. 영국 해군은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이 방법을 효과적으로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발휘하여 선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영국 해군이 내린 단호한 결정은 항해를 떠나기 전에 선원들이 라임을 챙기도록 맡겨 두는 대신 배급품에 의무적으로 포함시키고, 선원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료에 이를 섞어서 모두가 반드시 비타민C를 섭취하게 조치한 것이다. 작가는 '라임'과 얽힌 역사적 사례를 통해 현재 인류의 화두인 기후 변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괴혈병''기후변화' 문제의 공통점은 우리 모두 해결책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 해군과 '라임' 사례에서 보았듯이 그 해결책의 실천과정을 시장에서 각 개인이 내리는 선택에 맡겨 둘 수는 없다. 범사회적 행동을 가능케 하는 모든 매커니즘. , 정부, 국제적 협력, 국제협약 등을 총동원해서 해결책들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라임' 사례에서 깨달아야 하는 것은 개인 행동의 변화가 단호한 대규모 공적 조치와 함께 이루어질 때 사회 변화는 가장 효과적으로 발현된다는 사실이다.

 

 

두번째 식재료는 '멸치'이다. 멸치는 19세기 중반 페루가 누린 경제적 번영의 가장 큰 동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페루가 멸치를 수출해서 돈을 번 건 아니었다. 당시 페루는 바닷새의 구아노(마른 새똥)를 수출해서 국가적 번영을 누렸다. 구아노는 질산염과 인이 풍부하고 냄새가 그다지 역겹지 않아서 인기 높은 비료였을 뿐 아니라 화약의 핵심 재료인 질산칼륨이 들어 있어서 화약 제조에도 사용되는 등 활용도가 높은 자원이었다. 페루의 구아노는 태평양 연안의 섬들에 모여 사는 새들인 가마우지와 부비(얼가니새)의 배설물이다. 바로 이 새들의 주요 먹이감이 칠레 남쪽에서부터 페루 북쪽을 잇는 남아메리카 서쪽 해안의 영양소 풍부한 훔볼트 해류를 타고 이동하는 '멸치'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이 자원으로서 구아노가 차지하는 위상을 허물어뜨렸다. 1909년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가 공기 중에서 질소를 분리하고 고압전류를 사용해 암모니아를 만들어 인공비료를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또 다른 독일의 과학자 카를 보슈가 인공 비료를 대량 생산하는 기술을 개발하면서 구아노는 비료계의 황제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구아노보다 더 중요한 질산염의 공급원인 초석의 가치도 없어졌다. 이처럼 천연자원을 대체할 인공 물질 제조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경제 체제는 기존 시장(구아노 시장)을 완전히 파괴하고 새로운 시장(화학 비료 시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갖추게 한다. 우리가 '멸치' 사례를 통해 깨닫게 되는 건 고도의 기술력을 갖추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와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식재료는 '닭고기'이다. 저자의 인도인 친구는 고국을 방문할 때 항공료가 월등히 싼 러시아 국영 항공인 아에로플로트를 이용했다. 그 친구와 같은 비행기를 탄 다른 인도인 승객이 본인이 채식주의자인 사실을 밝히며 승무원에게 닭고기 말고 다른 식사를 제공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승무원은 아에로플로트가 사회주의 항공사여서 특별 대우는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소개하며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공평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한 사회적으로 불평등에 대한 논의가 오랫동안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 개인의 필요와 역량은 무시한 채 결과와 기회에만 초점을 맞춰 논의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진보주의 진영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 공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마다 다른 필요와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반대로 보수주의 진영에서는 기회의 평등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정한 경쟁이 되려면 개인 간의 역량이 어느 정도는 균등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닭고기 사례는 공정한 세상을 위해서는 기회의 평등뿐 아니라 결과의 평등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는 군침 도는 맛있는 음식과 식재료부터 출발하여 이와 연관된 사회현상과 경제이론까지 독자들이 맛있게 섭취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이를 위해 경제학의 개념을 실제 생활에 대입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며 쉽게 풀어내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경제학이 실제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아이디어도 제시하고 있다. 이보다 더 맛있는 경제학 레시피가 존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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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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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알 것 같았다. 이 아이와 함께 하는 이 순간이 내가 겪은 여름 중 가장 찬란하고 벅찬 여름이 될 거라는 걸. 마주하는 순간 마다 그리워하게 되는,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 계속 되고 있었다." (p. 187)



인간의 삶은 평범한 사건들이 빚어낸 기적이고 역사다사소하고 시시콜콜한 삶의 순간들이 누적되어 이루어진 인생은 누구에게나 값지고 귀한 것이다그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시간과 역사를 이루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개별적 세계가 빚어지기 때문이다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과 기억들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한다즐거웠던 추억과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아픔들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시절과 떠올리는 것조차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절들을 거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가진 하나의 섬이다서로의 고유한 존재방식상실과 결핍의 기억들은 우리 각자를 섬으로 만든다하지만 섬은 연결과 단절의 이중성을 가진 특별한 공간이다수면 위 드러난 부분을 기준으로 보면 섬은 단절된 공간이지만 드러나지 않은 수면 밑으로 섬과 섬들은 연결되어 있다삶이란 저마다 쌓아 둔 사연들로 섬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서로가 단절된 채 살아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인간은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하지만 어쩌면 그런 불완전함 이야말로 각자 다른 정체성을 가진 채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우리를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매듭이 되는 것 아닐까신뢰와 사랑자발적 책임이 동반된 관계를 구축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은 불완전한 현실을 일정 부분 해소시켜주는 심연의 해독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인간을 비로소 인간 답게 만들어주고삶을 살아가는 근원적인 동력이 되는 것은 일견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인 행위처럼 보이는 사랑우정신뢰와 같은 가치들이다서로를 향해 뻗는 온기 어린 손짓이 결국 메마른 삶에 활기가 되어 내일을 밝히는 희망이 된다.



이꽃님 작가의 신작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사랑, 우정, 신뢰에 대한 이야기 즉, 우리네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화재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찬'과 스스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지오', 저마다의 아픔과 상처를 지닌 열일곱의 두 아이가 어느 해 여름 우연히 서로를 만나게 되면서 굳게 닫았던 세상을 향한 마음을 조금씩 열고, 함께 하는 삶으로 한걸음 씩 다가간다. 그러는 과정에서 덥고 습한 고통스러운 여름의 나날들은 시원한 바람이 불고 형형색색의 눈부신 푸르름이 아로새겨진 둘만의 새로운 계절이 된다. 젊은 날의 순수한 날것의 감정들과 첫사랑의 열정과 떨림의 순간들이 여름날을 청량감 있는 빛나는 순간들로 채운다. 지오, 유찬 두 아이의 시선을 대변하여 번갈아 교차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조는 이를 한층 더 극대화하고 현장감을 높이면서 독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게 한다.



"바람이 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나뭇잎이 초록색 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날은 아니었다. 어떤 잎은 아주 연한 연두색이었고 어떤 잎은 짙은 초록색이었다. 또 어떤 잎은 쨍한 초록색이었고 어떤 잎은 연둣빛이 사라져 가고 있었고 어떤 잎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그 모든 잎들이 하나하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그 순간 유찬의 머리 위로 그토록 다양한 초록 잎들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p. 85)



유찬이네 가족은 서울에서 살다가 할머니의 고향이자 아버지의 고향이기도 한 '정주(定住)'라는 도시에 정착하게 된다. 일과 후 집에 돌아와도 계속 떠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서울의 삶에 비해 '자리를 잡고 산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아버지의 고향 '정주'에서 유찬이의 가족은 안정감을 얻는다. 하지만 떠돌이의 삶에서 '정주(定住)'하는 삶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찰나에 유찬이는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게 된다. 지오 또한 미혼모의 자녀로 태어나 투병생활을 하는 엄마를 지키고 또 의지하면서 불안정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왔다. 인생의 기로에 섰을 때혹은 도무지 인생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절로 떠오르는 곳을 고향이라 부른다면 유찬이와 지오에게 고향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입장 차이로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했던 시기를 지나 새로운 만남과 관계정립을 거치며 유찬이와 지오는 점차 안정을 찾아가며, 함께 세상으로, '정주(定住)'하는 삶으로 다시 나아가게 된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상실과 결핍의 과정을 겪으며 천천히 소멸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개개인이 켜켜이 쌓아 올린 저마다의 사연들은 상실과 결핍의 기억을 머금은 채 조용히 빛난다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이해 받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이해라는 것은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와 타인의 배려에 대한 무시와 거부를 넘어서야 하고또한 어떻게든 살아 보기 위해 세상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이해를 이용하는 위선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그것은 타인과 삶의 온도를 맞춰가는 일이며상대적 성숙의 시간을 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러한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삶의 고통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진정한 위로의 경험을 얻는다초월적인 존재를 통해서도 치유 받을  없는 오직 사람에게서만 구할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것이다밝은 곳에서는 어두운 곳이  보이지 않지만인간은 서로 간에 존재하는 적당한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과 온기로 서로를 알아볼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니도 안다 아이가.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데 유도가 필요한 게 아이고 마음이 필요하다는 거. 삐뚤어진 마음을 제자리로 돌리는 건 이런 온기가 아닐까? 누군가를 지키는데 필요한 건 마음이라는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있었다." (p. 162)



우리는 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응시한다동시대를 같이 호흡하면서도 온전히 현재를 살아내지 못하고 누군가는 과거의 한때에 머무르고또 누군가는 과거의 기억을 넘어 미래를 향하는 것은 인간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 (Kronos)' 보다 주관적이고 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 (Kairos)'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는 것인 동시에 미래를 꿈꾸고 호흡하게 하는 두 번째 심장이 된다소설을 읽으며 우리는 어쩌면 과거에만 얽매여서, 또 편견과 집착, 아집에 파묻혀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거나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 지오의 말처럼 정말로 놀라운 사실은 세상에 대해 절망하고 있던 아이들이 '온 마음을 다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변하기 시작한다는 사실 (p. 171)'을 새롭게 깨달은 것이라고 생각한다서로에 대한 관심과 공감진심이 담긴 위로가 진실을 가능하게 하고아주 미약한 부분이나마 세상을 진보 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 아닐까?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아픔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빛을 향해 함께 손을 뻗는 청춘의 이야기다. 유난히 무더웠던 2023년의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주는 청량감 있는 소설을 만나게 되어 너무나 기쁘다.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 방금 내가 네 여름 먹었잖아.”

“뭐?”

“네 가슴에서 자꾸만 널 괴롭히는 그 못되고 뜨거운 여름을 내가 콱 먹었다고. 이제 안 뜨거울 거야. 괴롭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을 거야. 두고 봐.” (p.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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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50만 부 기념 우리들 에디션)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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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의 신 오시리스도 조각조각 부서질 수 있다사랑이 끝날 때경력이 단절될 때소중한 꿈이 날아갈 때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다익숙했던 질서가 사라진 자리에는 체념불안불확실절망이 들어찬다허무주의와 심연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등장해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삶의 가치들을 파괴한다결국 혼돈이 출현한다. “ - <질서와 혼돈> 에서 -

 

 

삶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안정된 상태라고 느끼는 순간기다렸다는 듯 미지의 것이 느닷없이 닥친다이렇게 질서가 무너진 혼돈 속에서 우리 삶은 현실부정과 절망,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잠식되어 간다삶은 질서와 혼돈으로 점철되어 있다안정된 질서 속에 갑자기 혼돈이 찾아오기도 하는 반면, 모든 것을 상실한 듯한 절망적 순간에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삶의 길을 걸어간다는 것은 질서와 혼돈의 경계 위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삶에서 인생의 의미가 빛을 잃어가고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드는 순간과 마주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

 

 

학부시절 오랜 기간 꿈꾸었고 치열하게 준비하였던 행정고시에서 최종적으로 탈락했을 때, 나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인생에서 처음 경험해보는 실패는 그동안 내가 투자했던 시간과 노력의 무게만큼이나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겁게 느껴졌다. 수험생활을 하면서도 정해지지 않는 혼돈의 시간 동안 고통을 견뎌내야 하는 삶의 무작위성이 너무나 무섭게 느껴졌지만,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되어 목을 죄어오는 삶의 조건들 앞에서 나는 숨이 막히고 두려워 남몰래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다세상은 내 편이 아닌 것만 같았고, 조각나고 깨어진 꿈을 추스리고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그 시절의 나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듯 그냥 되는 대로 아무런 목표 없이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그러던 중 남들에 비해 뒤쳐진 채 불과 얼마 전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취업시장에 급하게 눈을 돌렸다. 다행스럽게도 그 중 한 기업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나는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나긴 혼돈 끝에 찾아온 질서였다. 하지만 취업을 한 뒤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애초에 목표로 했던 곳에 취업했던 것도 아니었고, 오히려 꿈을 쫓다가 실패한 후 인생의 선로에서 이탈하여 가까스로 도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받아준 회사에는 감사했지만, 회사는 나에게 새로운 꿈이라기보다는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가까웠다. 직장인으로서의 조직생활은 힘들었고, 또 다른 절망과 혼돈, 안정과 질서가 반복해서 찾아왔다. 질서가 무너질 때면 원망과 현실부정 그리고 두려움이 찾아왔다. ‘왜 하필 나에게지금 이 순간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고,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가장 두려웠던 건 눈앞의 현실이 되어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였다불안과 두려움은 자가 증식하며 다른 모든 감정을 잠재우며 무한정으로 퍼져 나갔다삶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내 마음 깊은 곳 심연에 머물고 있는 괴물은 점점 더 포악해져갔다삶의 의미는 빛을 잃어갔고절망과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수험생으로서 일정한 루틴을 오랜 기간 유지했던 성실함은 회사생활에 적응하고 새로운 질서와 안정을 만들어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지내는 동안에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고, 회사가 성장하면서 직장인으로서 나도 성장하면서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이 책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만났다.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 물류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당시 나는 IT회사의 기획팀에 근무하고 있었고 운송, 보관, 포장 등 물류의 전 단계에 걸쳐 센서, 제어기술 등의 IT기술을 접목해 물류운영의 효율화와 비용 절감을 이뤄내는 스마트물류가 각광 받고 있었다. 신규 사업 진출을 검토하기 위해서 물류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 필요했고, 회사 차원에서도 사업운영을 위해 물류관리 자격을 갖춘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회사에서는 하루하루 바쁘게 돌아가는 기획팀 업무를 수행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 막 결혼한 신혼으로서 행복하지만 새롭게 경험하고 적응해야할 게 너무나 많은 좌충우돌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가진 삶의 조건들 속에서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서는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작고 사소한 판단이 모여 내 하루를 이루고, 그 하루가 결국 내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지금의 나를 좀 더 강하고, 좀 더 지혜롭고, 좀 더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p. 57)

 

 

수험생활을 하면서도 한계에 부딪치거나 매너리즘에 빠질 때면 합격수기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곤 했었다. 이번에도 주어진 시간과 조건하에 성공적인 시험 준비를 위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있던 중에 지인의 추천으로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에세이라는 생각에 가볍게 생각하고 훑어봤지만,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특히, "내 인생은 단 한 번뿐이고, 나는 세상에서 내 인생을 가장 귀하게 여겨야 할 사람이다. p. 56)“는 아주 단순하지만 쉽게 잊고 지낸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작은 결정들이 모여 인생이 된다는 내 수험생활을 지탱했던 기본 원칙이자 신조를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인생'이라는 건 현실의 나로부터 까마득하게 멀리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오늘 하루쯤 마구 낭비해도 내 삶의 전체, 즉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 삶을 구성하는 하루하루가 이미 '내 인생'을 이루는 작은 조각들이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내 인생을 만드는 귀한 재료 p.198)" 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 따로, 내 인생 따로는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채울지 내가 내린 결정들이 모여서 내 인생을 이루고, 나를 만드는 것이다. 이 단순하고 당연한 체험적 진리는 앞으로 살아갈 수많은 날들이 있는 젊은 시절에는 참 깨닫기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이를 처음 체감했건 소설 <대망>을 읽고서였다.

 

 

"인생...이라고는 하나 그것은 순간 순간의 누적에 지나지 않는다. 한 순간의 만남을 소중히 한다....아니, 순간의 만남에 정성을 다해 대하려는 다도(茶道)의 마음이야 말로 인생 그 자체를 충실하게 하는 진실을 말해준다." - <대망> 에서 -

 

 

"인생은 순간의 누적이다. 순간의 만남을 소중히 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이 삶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진실이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소설을 읽으며 난세를 수놓은 수많은 명장과 영웅들 속에서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았던 건 인생에 대해 읊조리듯 말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삶에 관한 아포리즘이었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장이 넋두리를 늘어놓듯 한 이 말은 내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삶 앞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내세울 수 있는 진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순간을 충실히 보내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함으로서 삶의 순간, 순간이 켜켜이 쌓여 종국에는 일생이라는 기적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에도 언급되고 있지만 인간과 동물의 중요한 차이 중 하나는 인간은 카이로스의 시간을 산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은 인간의 정신 안에서 주관적이고상대적이며심리적 시간인 ‘카이로스가 된다반면 동물은 물리적 시간인 ‘크로노스의 적용을 받는다동물에게는 시간의 흐름을 걸러내는 장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따라서 동물들은 단지 이곳에서 지금 이 순간을 견디며 항상 현재를 살 뿐이다. 반대로 인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자신을 개념화하는 존재 즉시간을 인식하는 동물이다우리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를 모두 책임져야 하는 존재다현재의 우리는 미래에 매여 있는 동시에 우리의 미래도 현재를 기반으로 설계될 수밖에 없다결국 현재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의미 있게 채울 것인가가 누군가의 삶이되고 인생이 된다.

 

 

하지만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렇게 순간에 충실하게, 의미 있는 시간들로 하루하루를 보내도 삶은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영역에 자리해 있고, 질서와 혼돈이 뒤섞여 있다. 이때, 공부는 인생에 보탬이 될 지식과 지혜를 얻는 '멋진 탐험'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조만간 막이 오를 본격적인 인생을 위한 '마음 단련' p. 63)"이라는 저자의 말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정말 그렇지 않을까공부는 학생시절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인생 전반에 걸쳐 삶을 탐구하는 수도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공부란 내 인생을 보다 다채롭게 만들어줄 '지식'을 얻는 탐험이자, 풍성하게 만들어줄 '지혜'를 얻는 탐험 (p. 59)"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절망과 혼돈의 시기를 극복한 원동력은 영원한 삶에 대한 지향이 아닌 당장의 삶, 내일에 대한 믿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활기가 희망의 불씨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믿음으로 쌓아올린 매일 매일의 삶이 도피처를 만들고, 메마른 삶에 활기가 되어 내일을 이루고 희망이 된다고 믿는다.

 

 

한계는 절실히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내가 무언가를 얼마나 강렬하게 원하는지 깨닫게 해주는 기회죠. 한계라는 건 다른 사람들을 멈추게 하려고 거기 있는 겁니다. 뜨겁게 원하는 나 말고요.“ p. 135)

 

 

삶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혼돈과 절망의 시간에 심연에 들어앉아 있는 괴물은 점점 존재감을 드러내며 삶을 집어삼킨다. 하지만 진정한 삶은 혼돈 너머에 자리해 있다. 괴물 앞에서 존재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견디며 힘없는 먹잇감처럼 숨죽이고 움츠리지 않고 맞서 싸울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되찾을 수 있다. 삶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느낄 때,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내어 맞설 때, 새로운 길이 열리고 고통의 해독제가 되어줄 새로운 삶의 목적을 갖게 된다는 걸 나는 살면서 절실히 체험했다. 심연의 어둠이 비록 두려울지라도 회피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눈을 맞출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어려움과 그에 딸린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짊어질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수용한다는 것은 자발적이고 실천적인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그 책임이란 다름 아닌 강인한 의지와 용기를 가지고 주어진 삶의 조건을 받아들이며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일 것이다하지만 우리는 상실과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들이다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기꺼이 짊어지기 위해 노력하지만 현실의 삶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는 불안과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가지고 상황에 대응하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시간들로 하루하루를 충실히 채워나가며, 희망 찬 내일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지워나갈 때 혼돈 속에서도 질서는 세워질 수 있고, 우리가 꿈꾸는 삶 또한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은 청소년을 위한 에세이지만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모범답안은 존재하지 않는다많은 사람들이 삶이 던지는 시험에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각자가 서로 다른 시험에 응하고 있다는 것을 종종 망각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타인의 답을 모방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모범답안을 찾는 것으로는 세상이 던지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다. 공부란 어떤 것이고, 우리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청소년부터 더 나은 삶을 꿈꾸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성인들에게 <이토록 공부가 재밌어지는 순간>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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