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돼지
앤디 라일리 지음 / 지식프레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예전에 '공간의 요정'이라는 책을 통해 동화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을 거듭 언급했던 기억이 있어요. 널널한 활자에 여백 가득한 그림으로 가볍게 다가오면서도 그 안에 담은 생각거리들은 적잖이 묵직한, 역설적인 특성이 동화의 매력이라고 언급했었고요. 분량 대비 만족도라는 효율성의 측면에서도 동화만한 갈래가 없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지요. 누군가를 몰래 좋아한다는 비밀을 친한 친구에게 툭 털어 놓는 순간 그 호감의 감정이 터져나와 더욱 그 사람이 좋아지게 되는 것 처럼, 동화에 대한 호감을 서평으로 기록해 둔 후 더욱 동화라는 장르가 눈에 밟히기 시작했어요. 이번에 제 눈에 들어온 책은 '욕심돼지'라는 동화책이랍니다.

 



작가인 앤디 라일리는 이미 전작 '자살 토끼'로 유명세를 탔다고 해요. 자살을 무표정으로, 무심하게 거듭하는 토끼의 모습을 병렬적으로 나열한 그림책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번 책 '욕심 돼지'도 큰 이야기의 진행 방식에는 변화를 주지 않은 듯해요. '자살 토끼'라는 제목의 책이 자살을 거듭하는 토끼의 모습을 그려냈다면, '욕심 돼지'라는 제목의 책은 욕심을 끊임없이 부려대는 돼지의 모습을 그려내었을테죠?

3분 정도가 소요되는 노래가 시작되면서 책의 시작인 심술 잔뜩 난 돼지의 앞모습이 그려진 장을 펼치기 시작했고요. 노래가 세번하고 반정도 반복이 된 후 둥글게 말린 꼬리가 보이는 돼지의 뒷모습이 그려진 책의 마지막에 도달했습니다. 그 사이에는 욕심돼지의 심술과 이기심 가득한 못된 짓이 익살스럽게 그려져 있어요. 백여쪽에 이르는 욕심돼지의 악행의 향연은 십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했어요.

 

대기업 면접에나, 자동차에도 부럽지 않을 크리에이티브한 욕심의 향연이 펼쳐집니다. 그 욕심은 자기애에 기초한 이기심에서 한발 더 나간 추악한 악행으로까지 표현되요. 자신의 이익과 관계없이 타인의 행복에 훼방을 놓고, 심지어 타인의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합니다. 돼지를 내세워 욕심을 그려냈지만, 본능에 지극히 충실한 '동물'이라는 개체가 어디 생각하고 행동하나요? 그들은 작가의 메세지를 전하는 한가지 도구일 뿐이지요. 욕심 돼지가 펼치는 다채로운 욕심은 돼지에 대한 비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 비판의 목소리는 바로 우리들을 향하고 있습니다.  

『참, 비가 많이 왔군. 강원도 쪽에 눈이 굉장한 모양인데. 또 살인이야. 이번에는 두 살 난 애가 자기 아비를 죽였대. 참, 지프차가 동대문을 들이받아 동대문이 완전이 무너졌군. 지프차는 도망가 버리구. 이것 봐, 내 '개성을 잃은 노동자'라는 번역 책이 악마사에서 다시 나왔어. 이씨가 또 당선 됐군. 신경통에 듣는 한약이 새로 나왔다는데. 끔찍해라, 남편이 자기 아내한테 또 매맞았군. - 이근삼. 원고지 中』
지프차와의 충돌 때문은 아니지만 남대문이 완전히 무너진 것 처럼, 현재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이미 충분히 비현실적으로 섬뜩합니다. 욕심 돼지의 과장되고 희화화된 악행에 웃음정도로 머무르기는 곤란합니다. 오히려 욕심 돼지를 통해 투사되는 섬뜩한 경고에 조금은 귀를 기울여야 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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