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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잇! (여섯가지 짜릿한 오르가즘) - 할인행사
틴토 브라스 감독, 사라 코스미 외 출연 / 미디어소프트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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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섹스에 대한 여섯 가지 에피소드를 다루는 [두 잇]은 옴니버스라고 단언하기는 힘든 점이 있다. 하지만 남자들에 의해 결정되어지는 섹스의 정의 즉, <왜>, <어떤> 그리고 <어떻게> 섹스할 것인가에 대한 정의가 일관성을 띤다는 점에서  여섯은 공통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음'이라는 공통분모를 깔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일이다.
  어찌되었건, "우리는 왜 섹스를 하게 되는가?" "어떤 섹스를 원하고 또 어떤 섹스를 하게 되는가?"에 대한 감독의 고뇌(?)와 제작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라기 보다는 '포르노'에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일단 심의를 저쳐 DVD로 나왔다니 영화라고 하기로 한다.)

  영화의 이야기 여섯 토막을 들여다 보자.

  결혼 7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남편이 준비한 이벤트는 다른 남자(호텔 종업원)와의 화끈한 동침이다.
  "난 당신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괜찮아, 해보자. 여긴 카사블랑카잖아? 난 지켜만 볼거야"

  자신이 원하는 MC자리를 얻기 위해 여(女)PD는 사장에게 몸을 맏긴다. 같은 시각 그 사장의 부인에게 몸을 던져 쾌락을 쏟아부으며 숨을 헐떡거리는 테니스 코치. 그는 다름아닌 여PD의 애인이니...
  "MC자리를 확실하게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 사모님말고 또 누가 있겠습니까. 사모님, 제발..."

  짭잘한 "팁"을 받기 위해 부자 투수객의 사디스트(sadist) 노리개로 푸짐한 엉덩이를 기꺼이 까놓는 젊은 여인은 팁을 받아들고 애인에게 달려가 질펀한 숲 속의 정사를 치르며 외쳐댄다.
  "이젠 우리도 곧 호텔을 갖게 될거야! 그렇지? 자기야... 난... 참을 수 있어..."

  그 외에도, 일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섹스를 추억담으로 되새기는 해변의 여인과 이야기를 경청하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그녀의 남편.
  절대로 <뒤>는 안된다며, "결혼하면 모든 걸 허락할게"로 일관하던 완강한 태도의 여인이 창문 너머에서 다른 여자와 섹스하는 애인의 모습을 보고 질투를 느껴, 애인과 놀아난 여자의 남편에게 그렇게도 보호하던 그 <뒤>를 허용하고 만다는 섹스 스와핑.
  누군가 훔쳐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자, 괴성을 질러대며 더욱 과감하고 격렬한 섹스를 주문하는 신혼여행에서의 신부.

  아내를 위해 준비한 외간남자와의 섹스 이벤트, 아내의 불륜(우리 식으로 말하자면)을 들으며 오르가슴을 느끼는 남편, 달력을 만들자며 애인의 누드를 직접 찍어대는 사진사,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서 상사에게 그리고 상사의 아내에게 각각 봉사(?)하는 연인들, 숨어서 보는 사람을 위해 좀더 과감해지기로 합의한 신혼부부의 호텔방.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우리(한국인)의 성(性)상식으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과 그런 상황을 즐기는 듯한 대사들이 눈길을 끈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들에는 돈과 관계 그리고 욕심에 얽혀있다. 게다가 각각의 이야기들에서 나타나는 '훔쳐보기' 또는 '엿보기' 즉 '관음'이라는 공통된 설정은 [두 잇]을 옴니버스로 만드는 가장 큰 영향력이다.

  포르노그라피 영화를 보면서 '어찌 저리도 저들은 사고방식은 우리와 다른가!'를 연발하는 경험은 그리 자주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는 동안 줄곧 일전에 심의 과정에서부터 문제(?)를 일으켰던, 그래서 김태연이란 여인을 각인시켰던 우리영화 [거짓말]이 문득 떠올랐다.
  [거짓말]을 봤을 때는 원조교제라는 주제와 사디즘에 집중된 성행위가 우리에게는 '파란'일 수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두 잇]은 충분히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정신공격'에 다름아니다. 그것은 가히 강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두 잇]은 섹스를 하게되는 여섯 가지 이유와 여섯 가지 섹스유형을 엮은 "버라이어티 포르노그라피 옴니버스"다. 한마디로 범죄행위로 간주되는 깅간을 제외한다면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날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섹스를 표현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영화가 끝났지만 '이정도면 삶과 그에 수반되는 인간관계의 아이러니를 거의 정확하게 짚어내서 잘도 나열한 게 아닐까?'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비록 섹스라는 덜 친숙한 형식을 빌긴 했더라도... 아울러 "과연 포르노와 예술의 경계는 어디인가?"하는 질문도 새롭게 던져보게 된다.
  포르노그라피의 표현과 우리의 볼 권리는 어디까지 상충되고 어느 선까지 보호(?)를 받아야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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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없는 미녀 SE (2disc 디지팩)
김인식 감독, 김혜수 외 출연 / 베어엔터테인먼트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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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와 환상의 경계에 선 사랑놀음 

경계선 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der)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뇌(腦)구조. 그래서 충동적이고 예측불허의 격렬한 분노를 주기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성격장애. 계속되는 후회와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분노를 조절할 수 없는 치명적 히스테리. 그렇게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선 여인 <지수>는 경계선 장애를 가진 관능미의 여인이다. 무엇이 그녀를 위태한 경계선 상에 세웠을까...

 

사랑하면 안된다

흔히 <킬러>나 <보디가드>가 가져야할 제1의 원칙이다. 죽여야할 표적도 보호해야할 고객도 결코 사랑해선 안된다. 왜냐하면 그 알량한 사랑놀음은 일에 방해가 될 뿐만아니라 자신을 위태롭게 만드는 독약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이유로 정신과의사에게도 예외일 수 없는 법칙, "네 고객을 사랑하지 마라". 

 

중독된 사랑

환자를 사랑하게된, 사랑에 빠져버린 정신과의사 <석원>. 그녀와의 은밀하고 교태적인 섹스. 따뜻하게 서로를 받아들여 하나가 되는 유희의 시간들. 과거와 교접하는 환상체험... 그것은 중독성 강한 마약과 같은 것.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환상인가!

떠난 사람을 잊지 못해 마음 구석에 담아두고 자물쇠로 꼭꼭채워둔 채 스스로를 황폐하게 자멸시켜 가는, 변덕과 발광의 요체. 그런 아내를 굳이 떠나지 않고, 애인과 버젓이 밀회를 즐기는 남자, 그리고 그런저런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틈나는 대로 침대 위를 뒹굴며 몸과 침을 섞어대는 여자. 정신과의사와 정신질환자의 정사. 최면상태의 그녀, 과거의 그 남자와 섹스. 의사의 섹스 대상은 최면걸린 그녀. 죽은 아내의 정부가 내뿜는 목소리를 휴대폰으로 즐기며 복수라 생각하는 인간들.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진행되는 심리변주와 그 몽환적 섹스. 그리고 최후의 일격, 얼굴없는 미녀의 공포.

 

우리는 모두 미쳤다

<미치다>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도달하다>와 <돌다>. 우리는 그 두 가지 모두를 사랑한다. 그리고 영화는 분명히 미친 우리를 담고있다. [얼굴없는 미녀]는 미친 사랑의 노래다. 미친 사랑의 저주가 흐르는... 그 몽환적 분위기에 압도되면 김혜수의 전라(全裸)가 "홀딱" 벗은 몸으로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전체를 장식하는 그들의 숨넘어가는 섹스는 정신적교감일까, 육체적 탐닉일까. 어쨌거나 이런 영화를 만들고 또 즐기는 우리는 모두 미쳐있다고 말할 수 밖에.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과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또 어디서 부터 환상이란 말인가. 우리 중에 누가 정신병자이고 누가 의사란 말인가. 모두가 미쳐서 날뛰고, 뒤죽박죽인 채 미묘한 분위기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그녀는 왜 <얼굴 없는 미녀>로 불리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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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 풍수와 함께 하는 잡동사니 청소
캐런 킹스턴 지음, 최이정 옮김 / 도솔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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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가 있다. 내 경우에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하지만 알고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들을 남을 통해 깨닫게 되었을 때, 그래서 왠지 작아진 듯한 나를 발견하게 될 때 주로 그런 생각을 하곤 하는 것같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스스로 겸연쩍어지면서 아무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이 어찌 나만의 일이겠는가마는, 아마도 이런 류의 '얼굴 붉힘' 현상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자괴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것에 대한 경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삶은 공부의 연속이다"라든가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한다"는 말들이 설득력있게 다가오는 것이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말하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칭호에 대해서도 나는 자유로울 수 없다.
  "당신도 그렇지? 쓰지도 않는 것들을 잔뜩 모셔둔 채, '언젠가는 쓸거야, 그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뿐이야'라며 자위하고 있잖아? 저기 저 책장에 도열한 책들 좀 봐. 어라, 전공서적이네? 당신, 대학 졸업한 지가 십수 년은 넘었지, 아마...? 아직도 저 책들로 공부하시나봐? 졸업 후에 단 한 번이라도 열어본 적 있어? 보지도 않을 걸 왜 모셔둔거야? 나중에 몸 아프면 약에라도 쓰시려나? 이것 봐라, 책상 서랍에 들어있는 라이터들은 또 뭐야. 왜, 라이터 장수 되시려고 작정하셨어? ... 주절주절..."
  끝을 모르는 빈정거림... 마치 바로 코 앞에서 저자의 조소가 번지는 듯하다. 하지만 가만히 귀기울여 보니, 귓가에서 징징 울리는 그 소리는 내면에서 새어나오는 '내' 목소리가 아닌가! 과연 그랬다. 나는 단 한번도 그것들을 <잡동사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나의 일부, 심지어는 분신이라는 생각까지 갖고있으니, 필요 없어진 -더이상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물건에 대한 나의 집착을 비웃는 작가의 모습이 눈에 선할 밖에...

  잡동사니란 무엇인가? 쓰지 않으면서도 모셔두고 있는 온갖 물품들이다. 좀더 정확하게 정의하자면, "쓸 일도 없고, 지난 몇 년간 한 번도 제대로 쓴 적도 없는, 하지만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길 거라는 사명을 띠고 당당하게 막대한 생활공간을 점령하고 있는, 응당 버렸어야 했을 물건들"이다.
  모양과 형태는 달라도 우리 주위에는 '내책'과 같은 지위를 가진 물품들이 산재해 있다. 그것은 지난 5년동안 한 번도 입지 않았던 옷일 수도 있고, 지난 3년간 꺼내 본 적 없는 앨범일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오래된 카세트 테잎이며 문구용품, (한 때는)애독했던 잡지들, 각종 수집품(우표, 인형...) 등등 그 수효를 헤아리기도 힘겨울 정도다. 우리의 생활방식 만큼이나 종류도 다양하고 또 그렇기에 간직하고 있는 사연도 가지가지겠지만, 결국은 모두가 <잡동사니>에 불과한 '내 삶의 편린'들...
  우리는 이런 준(準)쓰레기들이 버젓이 우리의 생활공간을 점령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더군다나 적잖은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그들에게 생활공간의 상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쩌면 부지불식간에 내 방과 집, 그리고 사무실을 쓰레기통으로 만들어가는 '작업'에 열중하며 살고있는 건지도 모른다.

  저자는 20여 년간 풍수지리를 연구한 결과를 근거로 "신주단지 모시듯 쌓아 둔 당신의 잡동사니들을 과감히 정리하라!"고 강력하게 주문한다. 그것도 "하루 속히 없애버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서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 <잡동사니>들이 기(氣)의 흐름을 방해하여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굳이 '풍수지리'까지 갖다 붙이지 않더라도, <잡동사니>들은 항시 방치되기 마련이고 때문에 그 주위에는 세균이나 벌레심지어는 쥐와같은 달갑잖은 손님들이 주로 활동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저자의 주장을 훨씬 더 설득력을 갖게 된다.
  나처럼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들을 위해 잡동사니를 처리해야 하는 이유를 일깨워주고 처리방법과 효과를 소개하는 것에 더하여, 우리 몸의 잡동사니 처리법인 '장청소'에 대하여도 일가견을 보여주는 전문가로서의 소상한 주의와 설명이 이채롭다.

  비록 마지막의 '부록'편(세 페이지)에 드러난 주술적 이미지가 마치 무슨 종교의식을 연상시키는 황당함을 자극하여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였지만, 책을 계기로 주변을 돌아보고 미처 버리지 못해 보듬고만 살아왔던 '나쁜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 졌다는 것은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소유하고 있는 모든 물건들, 소위 '내꺼'에 대한 과민반응 증세가 단지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에 불과한 것이며, 그 집착은 어린 시절에 만들어진 뚜렷한(대개는 아픈) 기억이 작용하여 무의식적으로 유발되는 과민반응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기에 나는 좀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시각을 얻을 수 있었다.
  아울러 내 <잡동사니>들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정확히 인지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잡동사니에 불과하지만 타인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왜 진즉 깨닫지 못했을까.

  책읽기를 마친 후 동사무소 '마을문고'에 기증할 책들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무슨 일에든 '때'가 있긴 있나보다. 내가 목숨처럼 여기던 책을 기증할 생각을 다 하다니...
  시원섭섭... 시집 보내는 자식 혼수를 챙기는 부모의 기분이 이런걸까? 간혹 '그만둘까?'하는 생각이 고개를 디민다. 하지만 생각일뿐, 손이 그대로 노니는 걸 보면 결심이 확고한 것같아 안심이다.
  "비워야 채울 수있다"고 하였던가. 평범하기 그지없는 진리를 깨닫기 위해 너무 멀리 돌아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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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antomlady 2005-06-26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끼던 책들을 마을문고에 기증하시다니 정말시원섭섭하시겠어요..
외국작가인데 풍수를 들먹이고 주술까지 나오다니..
이 책 특이해뵈네요 궁금.. ㅎㅎ

자유인 2005-06-2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서운은 합니다만... 뿌듯함도 무시할 수 없지요.
세상에 영원한 '새것'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 집이 쓰레기통이 되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많이 가져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변화를 준 작가에게 감사할 따름이지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그리고 나누는 삶, 베푸는 삶이 되시기를...
 
오리지날 씬
마이클 크리스토퍼 감독, 안토니오 반데라스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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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언제나 수수께끼다. 결코 정답이 없는... 하지만 여자는 수수께끼를 넘어서는 미스터리다. 완벽한 미스터리의 결정판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그런지 사랑이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항상 여자의 손에 들려있게 마련이다. 마치 자연의 법칙처럼... 그런데 그 사이에 돈이 끼어들게 되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메머드급 불가사의가 되어버리곤 하니, 이또한 신의 섭리일까?

영화 [오리지날 씬]은 감당하기 버거울 것같은 세번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탄탄한 시나리오로 무장한 채. 그리고 그 철벽 시나리오를 제대로 복제한 안젤리나 졸리는 급기야 나를 당혹케 하였다. 가히 메머드급으로!
우리말 <원죄>라는 제목의 영화는 사형 집행대가 바로 코앞에 놓여 있는 감방안에서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는 안젤리나 졸리의 회고로부터 시작된다. 창살 가득 클로즈업된 '입술 미녀' 특유의 도톰한 입술을 통해, "이 이야기는 <러브스토리>가 아닙니다."라는 첫 마디를 던짐으로써 수도 없이 뒤집어질 반전을 예고하는 것으로 그 서막을 여는 것이다.

감방 안의 여죄수. 그녀는 사형 집행대를 바라보며 고해성사를 하는 중이다. 자신의 목뼈를 부러뜨릴 사형대를 준비하느라 간수들의 손놀림은 분주하건만, 그녀의 고백은 담담하고 차분하다. 오히려 그 장면과 분위기를 즐기는 듯한 그녀의 야릇한 미소는 그녀가 소위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여자임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렇게 도입부터 강한 '냄새'와 자신감을 풍기는 영화는 '재미'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결코 실망을 안기지 않는다.

부자임을 밝히지 않은 쿠바의 한 부호와 '도시의 번잡함에서 탈출하고 싶었을 뿐'이라는 미국 처녀의 첫 만남, 뭔가 심상찮은 초고속(당일치기) 웨딩마치, 첫날밤부터 왠지 수상쩍은 신부의 거동들... 이쯤되면 우리는 그들의 만남 뒤에는 반드시 음모가 도사리게 된다는 것쯤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거기까지는 매우 쉽다. 하지만 아쉽게도 섯부른 판단은 거기서 접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론은 그리 간단하지가 않기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결코 녹녹치만은 않은 이 영화의 맛을 '어리둥절' '왔다갔다' '당혹과 혼란' '끊임없는 반전'으로 표현하고 싶다. 잘 짜여진 시나리오(구성)를 통해서만 취할 수 있는, 목구멍을 짜릿하게 치면서 넘어가는 57도짜리 위스키처럼 강한 그 '맛' 말이다.

그것은 영화가 "사랑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평범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전개 방식이 진부하지 않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짜릿함이다. 118분동안 거의 20여 분(分)을 주기로 계속되는 반전은 '역시 여자란 이해하기 힘든 동물(?)이 아닌가!'라는 상상을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다.
게다가, [오리지날 씬]은 쿠바의 세 도시를 오고가며 진행되는 덕에 쿠바(또는 남미)의 특이한 정취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강점을 지녔다. 커피 농장, 고풍스런 교회, 야자수가 늘어선 저택, 마상 데이트, 자유분방한 카니발(축제) 분위기, 가면 무도회와 예사롭지 않은 춤사위들, 나름대로 우아한 오페라극장, 그리고 고대 로마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특이한 매음소굴까지... 한마디로 볼거리가 가득이다.

그녀의 눈빛에는 사랑의 묘약이 담겨있는 걸까? 영화는 눈길 한번 닿는 것만으로도 무너져내리는(사랑에 빠졌다고 착각하는) 남자들로 차고 넘친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그녀를 떡 주무르듯 조종할 수 있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은 삶의 아이러니를 고스란히 담고있지 않은가. 어찌되었건 두 남자 사이를 오가는 졸리의 심리변화가 결국은 남자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게 된다는 상황은 어찌 그리도 우리네 삶을 닮았는지...

"이 이야기는 <러브스토리>가 아닙니다."
고해성사를 마치고 형장을 향해야 할 시간 마지막으로 졸리가 남긴 말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멘트를 날린 그녀는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사라진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두 남자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쥔 졸리는 돈을 택할까 사랑을 택하게 될까? 결과를 보지 않은 채 넘겨짚거나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특히 여자와 돈에 관계된 일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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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협박이라 말하지 않는다 - 두려움,의무감,죄책감이 당신을 힘들게 할때
수잔 포워드 지음, 김경숙 옮김 / 서돌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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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혼란스럽다. 무엇보다 <협박>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안감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책에서 다루는 <협박>은 우리가 흔히 "지금 나를 공갈 협박하는거야?" 할 때의 그 협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협박 당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 순간의 '당혹'과 나 또한 한 명의 '제대로 된' 협박자였음을 솔직히 털어놓지 않을 수 없는 이 순간이 괴롭고 힘들 뿐이다.  

 책의 <협박>은 법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을 경우, 그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위협하는 강력한 형태의 조종"을 의미하는 <감정적 협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별할 것도 없고 이름도 생소한 이 <감정적 협박>이 왜 문제이고,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문제는 "설령 우리가 다른 모든 면에서는 노련하고 성공적일지 몰라도, 이 <감정적 협박>에 얽히기만 하면 당혹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는 데 있다. 뿐만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정적 협박>에 분개하고 좌절을 느끼면서도 '평화'라는 명분으로 협박에 굴복하는 자신을 합리화 시키고 만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볼 때 끊임 없이 우리를 조종해서 성인답게, 다른 모든 분야에서 성공하고 있는 '나'답게 처신하지 못하게 만드는 협박자들은 대개 배우자나 부모, 형제 또는 친구, 애인, 직장 상사, 동료와 같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넌 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니? 너때문에 내가 얼마나 괴로운 줄 알아? 또 그러면 난 '콱'죽어버릴 거야!"

  "얘야, 정히 그렇다면 우린 더이상 널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겠다. 그래도 좋다면 그 여자와 결혼해라."

  "직장보다 가정이 더 소중하다고? 그렇게 말한다면 내게도 다 생각이 있지. 당장 사표를 쓰게!"

  "야, 친구사이에 이런 것 하나 못들어 주냐? 넌 친구도 아냐 임마!"

  "자긴 날 사랑하지 않는거야, 진즉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우린 이쯤에서 갈라 서는 게 낫겠어!"

 어디선가 누군가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오던 정겨운(?) 소리들이 아닌가. 가만히 되짚어보자. 이런 말을 듣게되었을 때 어떻게 반응했었는지...

 잘 살펴 보면, 그들과 헤어지거나 외면당하거나 관계가 소원해 질 것이 두려운 나머지 그들의 요구에 쉽게 굴복해 버리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의 행위에는 어느 구석에도 삶의 주체로서의 '당당한 <나>가 없다. 순식간에 정체성을 상실당하게 되는 그 순간에는 어쩌면 자존심 따위는 스스로 호주머니 속에 구겨 넣어버리는 지도 모른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아니, 나는 항상 그렇게 살아왔던 것같다. 그리고 협박에 굴복할 때면 늘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번에도 또 졌어. 양보하는 건 항상 내 쪽이군. 나는 왜 내 의견을 내세울 수 없는 거지? 어쩌다 이렇게 돼버린 걸까?"했던 것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껏 그렇게 살아 왔다. 그리고 내일을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까지는 여전히 그렇게 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체 왜 이렇게 '뻔하고 뻔한' 스토리는 끊임 없이 우리네 인생에 도돌이표를 찍게 되는 걸까?

 책은 "그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협박자들이 자신의 행동을 가리기 위해 드리워 놓은 짙은 <안개> 때문에 그들이 우리를 어떤 식으로 조종하고 있는지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안개(FOG)>란 협박자들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두려움(Fear), 의무감(Obligation), 죄책감(Guilt)의 약칭이다.

 우리가 가장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는 까닭에 협박자들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그들과의 관계를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어떤 때에 상처를 받는지. 그리고 대개의 경우 우리의 가장 은밀한 비밀까지도 송두리째 알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를 굴복시킬 위협을 구체화하기 위해 이 내밀한 지식들을 이용해서 안개(FOG)를 뿜어대는 것이다. 그러면 순식간에 안개 속에 갖힌 우리는 그자리에 쓰러져서 특유의 영민함을 발휘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항복하고 만다.

 여기까지가 [그들은 협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에 나타난 <협박>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그 협박 앞에 나약하게 무릎 꿇어 온 우리의 실상이다.

 살다보면 가끔씩은 차분히 주위를 둘러봐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스스에게 묻게 된다.

  "누가 나의 진정한 협력자고, 누가 나를 위해하려는 자인가?"

 책은 말한다. 가장 친근감을 느끼고, 늘 내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왜일까? 그들의 사소한 부탁 속에는 소위 <협박>의 요소들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이, 상사가, 애인이, 우리에게 어떻게 압력을 가해 오는지 알고 싶다면 책을 들여다 보라.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것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현재의 나를 이곳에 끌어다 놓은 수많은 원인들과 만나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니...

 그리고 설혹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기 마련인 법, 만약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면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답을 들고 바로잡아 나가면 될 것 아니겠는가.

 저자는 <갑정적 협박>의 유형들과 극복 대안을 선험자들(5명)의 실례를 통하여 제시하고 있다.

 <약점단추 제거하기>로 명명된 '안개(FOG) 속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스스로의 가치관과 의견, 자신의 믿음과 바람을 당당히 지켜내기위한 "특별한 용기"와 "생각 멈추기" "죄가 없다는 확신과 해방감" "정체성 확립" "의견과 사실 구분하기" "협박 되돌려주기" 등이다.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지만, 쉽게 생각해서 속단할 사항들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우물안에 앉아서는 하늘 전체를 볼 수 없음을 인지한다면, 한 번쯤 책 속에 들어가 <나>와 <우리>를 찬찬히 관찰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나도 모르게 저지른 나의 <감정적 협박>때문에 상처입었을 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과 부모님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모든 분들께 이 글로 사죄의 말씀을 대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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